북(조선) 경제의 이해를 위하여

한호석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1) 대담이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1995년 8월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8·15 50주년 민족 공동 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결성된 8·15 50주년 민족 공동 통일 대축전 미주 준비위원회의 일원으로 방북하였다. 이 준비위원회는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 8·15 행사에 각각 대표들을 파견한 바있다. 나는 평양을 방문한 길에 북(조선) 경제학자들과 만나 오랜 시간 대담을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미주 평화통일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대담을 요청했는데, 사회과학원 주체경제학연구소 소장이며 경제학학회 회장인 김원삼 교수(박사)와 이 연구소 정치경제학 연구실장인 한득보 박사가 대담에 응해주었다.

대담은 평양에 있는 고려호텔 이층에 있는 한 회의실(돈을 주고 빌린 장소였다)에서 이루어졌으며, 대담 내용을 녹음한 것을 다시 정리하였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일 본의 아니게 착오가 생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자신의 책임이 될 것이다. 대담에서 나온 일부 표현이나 존칭 등에 관해서는 남(한국)과 해외의 읽는이들을 생각하여 정리자 임의로 일부 고쳐야했음을 밝혀둔다. 내 자신이 경제 분야의 전문 지식이 제한되어 있고, 특히 북(조선)의 경제 문제에 관해서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에 대담이라고는 했으나 토론 형식으로 진행할 수 없었고, 묻고 답하는 형식이 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글에서는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하자는 뜻에서 정리자 임의로 각주를 달아서 읽는이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번 대담에서도 밝혀진 것이지만, 남북의 학술 교류가 외부적인 제약 때문에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지난 50년 분단 시대를 지나왔다는 사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들어서 중국 베이징(7월)과 독일 프랑크푸르트(9월)에서 남·북·해외의 학자들이 만나 학술 토론을 벌이면서 상호 이해 수준을 높힌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인데, 이제까지의 남북 학술 토론은 주로 조국통일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경제학 분야에서는 남북 학술 교류가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조선)반도의 복잡한 정치 정세 때문에 남북 당국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풀어지기는 커녕 더욱 조이고 있는 듯한 오늘, 통일 문제를 생각하고 논의하는 공간을 넓혀가는 일은 우선 민간 차원에서 상호 이해의 수준을 높혀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이런 목적에서 기록한 것이다.

(2) 경제 건설의 기본 원칙과 노선에 대하여

자본주의 나라건 사회주의 나라건 간에 경제 건설의 기본 원칙과 노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북(조선)의 경제 건설 노선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 건설 과정에서 주되는 총화는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노선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할 데 대한 노선을 내놓고, 그 노선을 단계별로 실현해왔으며, 지금은 더 높은 단계인 인민 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를 추구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외부에서는 자립 경제를 폐쇄 경제, 고립화된 경제라고 보고 있는데, 이러한 견해는 우리가 말하는 자립 경제와는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립적으로 경제를 건설한다는 말은 우리 나라의 자원에 의거하고, 우리 나라의 경제력을 강화하고 인민 생활 수준을 높히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생산 문제를 자체로 해결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지난 시기 사회주의 나라들이 우리 나라도 '상호 경제 협조 회의'(COMECON)에 가입하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당시 김일성 주석은 "동구 나라들의 생산력은 중학생 수준이고, 우리 나라는 아직 유치원생 수준인데, 만일 중학생과 유치원생이 한 학급에서 공부하게 된다면 유치원생은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힘으로 경제를 건설해서 중학생 수준으로 올라선 뒤에 그 나라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끝내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자체적인 생산 경험이 있고 일정한 기술 토대를 축적한 한 두개 부문에서는 자립적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겠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문에서 자력으로 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이 걸어온 경제 건설 행정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제 토대를 강화하는 데 필요한 기계 공업, 화학 공업, 금속 공업을 발전시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공업 기초를 자력으로 건설하려 하니까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농촌에서 기계화에 필요한 트랙터는 약 8만 대인데, 해마다 1천 대씩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다고 해도, 8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당시 해마다 1천대씩 수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가 생산한 트랙터를 두 대 들여와 분해해 가면서, 설계 도면을 작성하고 자체 힘으로 트랙터를 생산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와서는 한 정보당 트랙터 6-7대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체 힘으로 트랙터를 생산하다보니까, 선진국에서 생산한 트랙터에 비교해서는 생산품의 질이 좀 낮은 것은 있지만, 어떻든 자체의 힘으로 수요를 충족하는 데서, 그리고 높은 속도로 농촌의 기계화를 이룩하는 데서는 결정적으로 유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건설 노선에 기초해서 다른 공업 부문의 발전도 자체 힘으로 이룩했습니다. 그 건설 과정은 참으로 힘겨운 전투와 같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건설 기본 노선은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 건설 노선을 내놓았을 때, 일부 사람들은 그런 노선은 어디에도 없다고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상 우리 나라의 경우, 중공업만 발전시켜서는 영락된 인민 생활 수준을 높힐 수 없었습니다. 식민지 시기와 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인민 생활은 가장 뒤떨어진 수준에 있었습니다. 전쟁 시기 우리 농민의 40-50%는 집도 없는 영세농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보자면, 중공업만 발전시켜야 한다는 기성 이론은 우리 실정에 전혀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경제 건설에 필요한 자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당은 전인민적 운동으로 지방 단위의 산업 시설을 건설하자는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이 방침은 매개 군 단위로 군의 자재, 군의 노동력을 동원하여 자체적으로 공장 한 개를 건설하고, 그 건설 경험을 모범으로 해서 다른 공장을 건설해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방침을 따라서 경공업 부문의 건설에 힘을 기울여온 결과 지금은 매개 군에 지방 산업 공장이 20여 개씩 있으며, 전국적으로는 약 4천개가 됩니다. 중요한 기본 소비품들은 자기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자급하고 있습니다. 경공업 생산의 지방 자립도를 높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 단위에서 자체로 건설한 지방 산업 공장의 기술 수준은 대규모 중앙 산업 공장보다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뒤떨어진 기술 수준을 갱신하기 위해 중앙 산업 공장이 지방 산업 공장을 하나씩 담당하여 기술 수준을 높히는 데 협력해왔고, 이렇게 힘쓴 결과 지금은 지방 산업 공장의 기술 수준도 거의 중앙 산업 공장 수준을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경공업 생산 활동을 통하여 인민 생활에 필요한 소비품을 거의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나온 통계를 보더라도, 우리 나라 인민 소비품 총생산량 가운데서 54.3%가 지방 산업 공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경공업 부문에서 기본되는 것은 중앙에서 풀어주고, 식료품, 편직물 같은 생활 소비품들은 군에 있는 20여개의 공장에서 거의 보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군 단위의 지방 자급 산업이 중앙 산업에 의존하면서도, 자체적으로 생활 소비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3) 경제 건설의 행정(行程)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8월 5일 제6차 전원회의에서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3년을 전후 복구기로 정했고, 1956년부터 1960년까지는 사회주의 공업화의 기초를 축성하는 단계로 정하고 제1차 5개년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계획은 액수상으로는 2년 8개월만에 끝냈고, 지표상으로는 4년째인 1959년에 끝냈습니다. 남은 1년인 1960년은 완충기로 설정했습니다. 이 기간에 기계 제작 공업을 핵심으로 하는 중공업의 기초를 축성했습니다. 이 기간에 처음으로 트랙터, 자동차, 불도저 같은 중력 기계들을 생산했습니다.

1961년부터 제1차 7개년 계획을 세우고 경제 건설에 힘썼는데, 7개년 계획이라면 1968년에 끝나야 하는데, 1970년까지 3년이 연장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카리브해 위기('쿠바 사태'를 말함), 베트남 전쟁 등으로 우리 나라의 정세가 매우 긴장하게 되어, 경제 건설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국방 건설을 병진해야 했습니다. 이 기간에는 경제 건설에 대한 투자를 국방 건설에도 돌려야 했는데, 당시 우리 나라의 국방비는 30%가 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쟁으로 마사진 폐허 위에서 일어선 우리 나라는 1956년부터 1970년까지 14년 동안 사회주의 공업화를 완성지은 것입니다. 1971년부터 1976까지는 기술 개조를 기본 과업으로 한 6개년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기술혁명은 사상혁명, 문화혁명과 함께 3대혁명의 기본인데, 이것은 공업노동과 농업노동의 차이, 중노동과 경노동의 차이를 줄이는 과업을 뜻합니다. 특히 고열노동, 유해노동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해결되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하는 과업을 수행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기술혁명의 과업에는 여성을 가사노동에서 해방하는 과업이 들어있지 않다고 하지만, 이것은 가사노동을 덜어줄 수 있는 부엌 살림을 꾸려주는 것, 가정에서 필요한 식료품을 가공 원료로 꾸려주는 것 등을 말합니다. 이 기간에 새로 건설한 공장은 1만7천7백여 개나 됩니다.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제2차 7개년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의 기본 과업은 인민 경제의 주체화·현대화·과학화입니다. 지금까지 수행해온 공업화의 성과를 세계발전의 추세에 맞게 더욱 고조시키자는 것입니다. 현대화 과업이란 구체적으로 종합적 기계화 자동화를 말하며, 주체화의 과업은 부문 구조를 완비하고 원료 토대를 강화하는 것을 말하며, 과학화란 경영 활동에서 전자계산화·로보트화를 말합니다. 제2차 7개년 계획의 성과로 농업노동에서 손으로 하는 노동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제3차 7개년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물질·기술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한 목표와 인민 생활 수준을 높히기 위한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공업 생산 총규모에서, 그리고 강철, 화학섬유, 전력을 비롯해서 몇 가지 중요한 지표들이 목표량에서 미달되었습니다. 그 밖의 다른 지표들에서는 목표량을 달성했습니다. 미달하게 된 원인은 우리 나라 경제 건설에서 아주 엄혹한 정세가 조성된 것 때문인데, 소련과 동구 나라들이 무너지니까 그 나라들과 맺었던 대외 경제 관계가 막히고 말았습니다. 또한 미국이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군사 대결로 나오는 바람에 우리 나라는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의 경제력은 일정한 수준에 올라있고,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기만 하면 자체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토대를 세웠다고 볼 수 있습니다. 1만t 프레스, 대형 산소 분리기를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이건 지엽적인 물음인데, 1만t 프레스나 산소 분리기란 구체적으로 무엇에 쓰는 건지 궁금하군요.

지금 1만t 프레스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열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우리는 1년반 걸려 자체 설비와 기술로 만들어냈습니다. 룡성기계총국에서 이것을 만들어낸 것도 벌써 오래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1만t 프레스는 '5·18 공장'이라는 한 공장 단위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에서는 각종 기계 설비들, 내연 기관들을 만들 때 일일이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틀에 넣고서 눌러서 단번에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커다란 배의 내연 기관이나 기관차 크랭크 축 같은 것을 깎아서 만들자면 상당히 힘이 들지만, 이 프레스에다 넣고서 눌러서 찍어내면 됩니다. 지난 시기 우리는 3천t 프레스나 6천t 프레스는 여러 개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3천t, 6천t 프레스는 중소 규모의 기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판식 산소 분리기를 자체로 만들어내는 나라는 아마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겁니다. 산소 분리기에는 판식 분리기와 관식 분리기 두 종류가 있습니다. 관식은 낡은 기술이며, 판식은 우월한 새 기술입니다. 우리 기술자들이 다른 여러 나라에 가서 관식 분리기를 보았는데, 선진 기술 정보를 조사하던 중에 관식보다는 판식이 우월하다는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0여 명의 기술자들이 달라붙어서 판식 산소 분리기를 만들어내는 데 힘썼습니다. 락원기계제작소에서 1년반 걸려 판식 분리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6천 입방m 판식 산소 분리기를 만든 것입니다. 98%이상의 산소를 분리할 수 있는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아주 커다란 성과지요. 산소 분리기에서 나온 산소는 모든 제철소에서 용광로의 온도를 높히기 위하여 쓰고 있습니다. 6천 입방m 산소분 리기를 만들어낸 것도 벌써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의 기술자들은 매해 1만여 건의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계속하지요.

이제까지 말씀드린대로 우리 나라의 경제력은 자립적 기초 위에서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인민 생활의 수준은 아직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먹고 쓰고 입는 것들 가운데 일부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서 쓰는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체의 힘으로 생산하여 해결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이란 공장굴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생활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 당의 결심이며, 김일성 주석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1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동안 추진할 새로운 경제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이 새로운 경제 전략의 기본내용은 이제까지 마련한 경제 토대를 인민 생활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 동안 축성해놓은 경제 토대를 인민 생활 향상에 돌려서 은을 내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 발전 수준은 지금 이 단계에 와있습니다.

그리하여 선행 부문을 확고히 앞세우면서, 농업 제일주의, 경공업 제일주의, 대외무역 제일주의를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의 중공업 토대를 갑자기 경공업으로 돌리려하니까 지난 해 성과에서 나타났듯이 미흡한 점이 들어났습니다. 그래서 경공업과 농업에 대한 투자 구조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화학비료 생산, 트랙터 생산를 늘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화학비료 생산은 1.5배 늘이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대외 무역 부문을 보면, 자본주의 나라들은 우리 나라의 대외 무역로를 봉쇄하고 있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우리 나라와 무역 관계에 나서지 않고 있으며, 사회주의가 무너진 나라들도 우리 나라와 무역 관계를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는 무역의 방향을 제3세계 나라들로 돌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합영과 합작을 늘이고 있습니다. 지금 나진·선봉 지구에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세우는 것도 대외무역 제일주의를 추진하는 한 방도가 됩니다. 그리하여 다른 나라의 앞선 기술을 우리가 배우기도 하고, 우리의 기술을 다른 나라에 밀어넣기도 하면서 경제 발전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자는 생각입니다.

(4) 대외 무역에 대하여

지금까지 말씀해주신 북(조선)의 경제 발전 전략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자립적 민족경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아까 지적하셨듯이 최근에 들어와서 대외무역 제일주의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하셨는데, 북(조선)의 경제에서 수출 의존도는 과연 어느 정도인지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말 가운데는 "생산이자 수출이고, 수출이자 곧 생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대외무역 제일주의를 추진하면서 대외 무역량이 상당히 늘어났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는 대외 무역액이 65억달러라고 발표했는데, 지금은 그 보다 훨씬 더 늘어났습니다. 대외 무역량에 대한 공식 발표는 없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대략 3-4배가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대외 무역은 중앙에서 하는 것도 늘어났지만, 지방 단위에서 하는 무역도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부, 위원회가 독자적으로 하는 무역, 도 자체에서 하는 무역, 군 자체에서 하는 무역 등 변방 무역, 단독 무역이 있습니다. 산지 사방에서 무역을 하고 있습니다. 무역의 품종을 보면 지난 시기에는 공작기계류와 1차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품종수가 크게 늘어났습니다. 물론 기술 집약적인 제품을 수출하지 못하고 있는 결함이 있습니다.

연합 기업소들은 거의 자체 원료와 자체 기술로 생산하고 있지만, 몇 가지 해결하지 못하는 것도 생기는데, 각 연합기업소에서 원료 자재가 모자라거나 기술이 부족한 것이 있으면, 자기 기업소의 상품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여 번 외화를 가지고 필요한 것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여 해결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연합기업소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수출 목표와 무역 목표에 미달하는 연합기업소는 거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무역부터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역 목표를 달성해야 국내 생산 목표도 달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립적 민족경제라고 하면, 폐쇄 경제를 생각하게 되고, 다른 나라와 무역 관계가 약화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것이 없어서 남의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무역이라고 보지 않고 구걸이라고 봅니다. 우리 나라는 대외 무역 관계에서 자기 것을 주고 남의 것을 달라고 하는 유무상통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5) 산업 구조에 대하여

이야기를 산업 구조에 관한 문제로 옮겨보겠습니다. 공업과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요?

대개 공업이 80%, 농업이 20%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발달된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이른바 서비스산업이 있습니다. 산업 구조에서 서비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습니다.

네, 70-80%가 되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나라들은 공업과 농업의 많은 부분을 제3세계 나라들에게 이전시키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동화(空洞化)현상이지요.

국제 분업체계라고 이름을 달았습니다만, 실제로는 자본주의가 아직 덜 발달된 나라들에 대한 국제적 수탈 구조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우리는 서비스산업을 봉사산업이라고 합니다.

북(조선)에서 봉사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군요.

우리 나라에서는 봉사산업을 따로 분리해 내어 독자 부문으로 계산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분류하는 방식을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하여 본다면, 그것도 적은 비중은 아닙니다. 교통, 통신·정보, 금융, 관광 등이지요. 우리는 교통, 통신 부문을 인민 경제의 선행 부문이라고 보면서 이 부문들에 대한 투자를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교통 부문에 대한 투자가 특별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철도만해도 3천8백50 km의 전기화를 완성했습니다. 대외 무역 부문에서는 다른 나라와 봉사산업 부문에서 무역을 하려는 경향, 봉사 무역의 경향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관광 산업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관광 산업 시설도 차츰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관광객을 약 50만 명 정도 받을 수 있는데, 앞으로는 2백만에서 3백만 명까지 받을 수 있도록 발전할 것입니다. 그런데 관광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교통·통신·정보 산업이 함께 발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에 통신 부문에서 빛섬유 통신 시설을 들여와서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봉사산업을 독자적인 산업으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봉사산업 분야는 아직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자산업 부문은 어떠한지 일반적인 상황을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우리 나라의 전자산업은 제2차 7개년 계획 기간에 전자산업 기지를 꾸리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전자 계산기(컴퓨터)와 전자 일용품 70여 가지를 생산해내었습니다. 인민들의 일상 생활에 필요한 새로운 전자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 기지도 최근에 꾸렸습니다. 16비트짜리 전자 계산기(컴퓨터)를 생산하고 있으며, 32비트 수준으로 높힌 새로운 전자 계산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세우고 있습니다. 1994년 4월에 김정일 비서가 국가과학원을 현지 지도했는데, 이 현지 지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 전자 제품 생산의 첨단 기술 개발에 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6) 연료·원료 부족을 해결하는 길

경제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주요한 원료인 원유가 우리 나라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외부에서는 북(조선)이 에너지난 때문에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에너지난으로 인한 '위기설'이 더 심한 경우에는 '몰락설'을 점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경제 발전에 꼭 필요한 원료들 가운데 우리 나라에서 나지 않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원유, 생고무, 코크스입니다.

흔히 외부에서 하는 평가를 보면, 원유가 나오지 않는 이 나라에서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다 보니까, 생산력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원유가 나지 않는 조건에서 경제를 건설해야 했기 때문에, 원유가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서는 이 나라에서 많이 생산되는 석탄으로 해결하는 에너지 공급 체계를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좀 더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먼저 동력 원천을 해결하는 문제를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서 원유를 사다가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우리 땅에서 석탄을 캐내어 전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하다고 되어있습니다. 지난 시기 소련은 우리 나라가 상호 경제 협조 회의(COMECON)에 가입하면 시베리아에서 송유관을 우리 나라에 연결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는 원유를 아직 개발하지 못한 조건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서 나는 석탄으로 동력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고, 석탄으로 돌아가는 화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원유 발전소는 없고, 모두 석탄 발전소입니다. 석탄을 쓰는 화력 발전소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들라하면, 동평양 화력발전소, 청진 화력발전소, 해주 화력발전소, 12월2일 화력발전소 등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석탄은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석탄 개발이 점점 불리해지기도 하지만, 수요 충족은 되고 있습니다. 수력 발전소가 돌아가지 않을 때 화력 발전소의 발전량을 가지고 전력 수요를 충족하고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수력 발전소의 발전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 때에는 화력 발전소를 보수·정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유란 동력 문제에 관련된 것뿐아니라 경공업 제품의 원료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주요 원료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면, 원유가 경공업 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부문이 2백여 가지나 된다고 하는 보고도 있더군요. 우리는 2·8 비날론 연합기업소를 건설하여 원유를 대신할 수 있는 종합적인 가소재들인 메타놀, 가성소다 등을 개발함으로써 화학 공업을 발전시켰고, 그 수요가 늘어나서 다시 순천비날론 연합기업소를 새로 건설했습니다. 여기서 생산되는 종합 가소재를 가지고 상당한 정도 수요를 충족하고 있습니다. 이란과 중국, 동남 아시아에서 수입한 원유는 자동차, 트랙터 같은 수송 부문의 원료로 쓰면서, 우리가 경공업 부문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몇 가지 생산 부문에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원유개발총국을 두고 우리 땅에서 원유를 찾아내는 일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해안 대륙붕에 원유가 묻혀있다는 설이 있는데, 앞으로 우리땅에서도 원유를 생산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생고무도 나지 않습니다. 만포 타이어 같은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으로는 아직 수요를 모두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과학자들과 기술자들 5-60여 명이 달라붙어서 동남 아시아에서 수입한 생고무를 기본 원료로 하여 합성 고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코크스탄도 나지 않습니다. 코크스탄은 강철 생산에 필요한 고열탄을 말합니다. 소련의 치타 지방이나 몽골에 코크스탄이 많이 묻혀있는데, 소련 당국과 몽골 당국에서 우리에게 캐어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용량이 매우 큰 채취 공업 설비와 수송 설비에 드는 비용 때문에 하지 못하고, 이 문제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과학자들이 개발해낸 것이 삼화철입니다. 코크스탄을 대신하여 쓸 수 있는 삼화철은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가장 좋은 고열탄, 그러니까 8천 칼로리가 나오는 석탄과 시멘트와 석회석을 섞어서 알로 만든 것입니다. 삼화철을 용광로에 넣으면 코크스탄은 원래 쓰던 양의 8분지 1만 넣어도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7) 외국 자본의 유입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핵문제'가 타결되면서 조·미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복잡한 경로를 통하여 진척되겠지만, 아뭏든 이 관계 개선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미국의 자본이 여기 북(조선)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자본이 들어오면, 일본 자본이나 남(한국)의 자본, 그리고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의 자본도 함께 들어올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본의 생리지요.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외국 자본의 유입과 자립적 민족경제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우리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자는 겁니다.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치한 것이 바로 그러한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해 타산을 따지면서, 21세기에 들어가서 다시 보겠다고 하고 있는데, 우리는 들어오려면 지금 들어오고 싫으면 그만두라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우리 나라를 통하여 진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투자하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언젠가 캐나다 기업이 자본을 들여오겠다고 했는데, 알아보니까 미국에 있는 재향 군인회의 자금을 동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조·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미국과 일본이 동시에 우리 나라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함께 움직이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를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 해결은 조·미 관계 개선 속도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조선'은 더욱 적극적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 일군들에게 여러 차례 관심을 표시한 바있습니다.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우리쪽을 통하여 진출하는 것이 매우 유리하기 때문이죠. 다른 나라 항구를 이용하는 것보다 우리쪽을 통하여 진출하는 것이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 하는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이익 규모가 상당하더군요.

최근에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법제화 조치도 이루어놓았기 때문에, 프랑스, 독일, 스웨덴 같은 유럽 나라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 나라들은 정치 정세를 관망하면서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가장 눈치를 보고 있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8) 경제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

지금 외부에서는 북(조선)의 사회주의 경제 운영 방식에 관하여 여러 가지 비판과 비관적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경제 운영 방식의 본질적 특성은 계획 경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계획 경제란 일방적인 지시·명령 체계를 통하여 운동하는 구조이므로, 경제 활동에 참가하는 노동자들이 위로부터 지시와 명령을 받고 이것을 수행해야 하는 피동적 존재로 생산 노동에 참여하기 때문에 자연히 그들의 창조성과 노동 의욕이 떨어지게 된다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나라들이 경제적 낙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몰락하게 된 까닭은 바로 이러한 계획 경제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북(조선)의 경제 운영도 소련·동구형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북(조선) 경제의 침체를 논증하는 주요한 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여기 북(조선)의 경제학계에서는 소련·동구형 경제 운영 방식과 북(조선)형 경제 운영 방식의 차별성을 논하고 있는 줄로 압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는 사회주의 경제 제도와 그 관리·운영하는 방식의 일치성을 주장합니다. 제도는 좋은 데 관리·운영 방식이 나쁘면 안된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은 사회주의적 경제 제도는 그대로 두고, 관리·운영 방식은 비사회주의적인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런 나라들은 기술 부문, 경제 관리·운영 부문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별이 없다고 보는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미국에서 이른바 테일러 시스템을 생산 현장에 적용하니까, 소련에서도 그 관리 체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의가 많이 있었습니다. 미국식 관리 체계란 무엇입니까? 자본가가 공장의 주인인 자본주의 경제 제도에서는 생산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한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자각과 열의를 가지고 일하지 않게 되니까, 시간 단위로 노동 강도를 측정하여 노동자들이 건달을 부리지 못하게 하고 노동 강도를 높히려는 목적에서 그런 관리 체계가 나온 것이지요. 그런데 노동자가 생산의 주인이 된 사회주의 경제 제도에서 그런 비사회주의적인 관리 체계를 들여다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사회주의 경제 제도를 약화시키려는 나라들은 이러한 비사회주의적인 관리 체계를 들여오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식 관리 체계가 노동 강도를 높히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기 때문에, 생산 성과를 일정하게 높힐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본주의적인 관리·운영 방식을 들여올 경우 일시적으로는 더 많은 생산별별倖?얻는 반면에 사회주의 경제 제도의 근본을 갉아먹는 폐해를 끼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중국의 『인민일보』를 보니까 중국 농촌에서 가족 도급제를 실시한 뒤로 분쟁건 수가 10배 이상 늘었다고 하더군요. 분쟁의 주요 원인이 관개수 공급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관개 관리소는 7정미의 관개수를 보냈는데, 정작 농민들의 논에는 5정미에도 미치지 못하는 물만 공급되니까, 농민들은 5정미에 대한 돈만 내겠다고 해서 마찰이 생긴 겁니다. 중국에서 관개 관리소는 공동 경리고, 논은 개인 경리입니다. 공동 경리와 개인 경리의 불일치가 결국 마찰과 분쟁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 중국 농촌에서 병해충을 구제하는 것, 물을 공급하는 것, 농약 치는 것 등에 관련해서는 개인 경리가 아니라 공동으로 하자는 취지에서 각 향 단위로 공동 관리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생산·기술 부문에서 공동 관리의 필연성이 다시 제기되는 겁니다. 차츰 공동 경리 방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그들도 개인 경리로 해서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지요.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경제 관리와 운영은 경제 제도의 본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사회주의 경제 관리의 기본 원칙은 한 마디로 말하여 민주주의 중앙집권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공식화되어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란 생산자 대중의 창의성, 창발성을 발양하고 집계하여 중앙에서 결정한 사항은 하부에서 무조건 관철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계획 경제란 국가 계획이 기본으로 되고, 그 계획을 수행하기 위한 과업에 생산력을 집중하는 경제 질서를 말합니다.

지난 시기 소련·동구형의 경제 운영 방식을 보면, 소련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행정 명령식으로, 지령 하달식으로 하부의 근로 대중을 경제 건설에 동원하는 중앙 집권제에 크게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먹이는 경제 운영 방식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 근로인민의 창발성과 생산의욕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국가계획실(Gosplan)과 국가 물질 공급국(Gosnab)에서 결정한 경제 계획에 대해서는 하부의 생산자들과 다시 토론하지 않았습니다. 각 경제 부문들 사이의 연계 균형, 다시 말하여 생산 수단과 소비재 사이의 균형, 공업과 농업 사이의 균형, 채취 공업과 가공업 사이의 균형을 평가하여 국가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 사항을 하부의 생산자들에게 무조건 내리먹였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소련식 계획 경제는 계획 경제라고 하기 보다는 관료주의 경제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계획 경제는 가장 먼저 생산자에게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쳬계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계획의 국가적 성격을 강조하면서도, 계획은 구체적인 것까지 밑으로부터 올라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경제 운영이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시작하여 각 부서들과 기업소를 거쳐 마지막에 생산자로 내려가는 하향식을 취하게 되면, 생산 문제에 관련한 책임은 위에서 지는 게 아니라 모두 밑에서 떠맡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행정 명령식, 지령 하달식 운영 방식의 폐단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 계획 사업을 군중 노선에 기초하여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군중 노선에 기초한 경제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체계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맨 처음에 공장 기업소에서 자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데, 이 자리에는 국가계획위원회 일군과 부위원회 일군이 함께 참여합니다. 중앙에서 내려온 국가계획위원회 일군들, 부위원회 일군들이 현장에서 생산자들과 구체적으로 토론하면서 생산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파악하고 생산자들과 함께 일차적으로 생산 목표를 세우는 겁니다. 중앙에서 내려간 일군들은 제1차 생산 목표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국가계획 전반의 시각에서 목표를 재조정하게 됩니다. 중앙의 일군들은 어떠한 조건이 갖춰지면 이번에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생산자들이 제기하는 요구를 들어줍니다. 이것은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슨 조건이 갖춰져야 하고, 어떤 설비가 필요하다는 요구입니다. 중앙의 일군들은 이러한 문제 제기와 요구들을 종합하여,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갑니다. 그 다음 단계는 지구위원회인데, 여기서 다른 기업소들과의 연관 속에서, 또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이 나옵니다. 지구위원회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맨마지막에 국가계획위원회와 부위원회에서 받아 안게 됩니다. 국가계획위원회와 부위원회는 지방의 토론을 거쳐 올라오는 생산자들의 문제들을 존중해주고, 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은 국가가 받아 안고 대외 무역을 통해서 해결하게 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제의 운영 방식입니다. 절대로 내려먹이는 식의 운영을 하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계획은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이 되었을 때, 생산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생산자들과 토론해서 계획을 세우고, 거기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위로 올라오면서 풀어주고, 마지막까지 풀 수 없는 문제들은 국가가 대외 무역을 통해서 책임지고 풀어줍니다. 우리 나라 경제 운영에서는 아래 단위의 계획과 목표를 어떻게 존중하고 실현하는가 하는 문제, 아래 단위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국가에 어떻게 책임지고 풀어주며 보장해주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됩니다.

우리 나라에는 세 가지 계획 지표가 있습니다. 국가 계획 지표, 지구 계획 지표, 기업소 자체의 계획 지표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국가 계획 지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것이고, 기업소 자체의 계획 지표는 아니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각 기업소들이 자급할 수 있는 원료와 자재로 달성하는 계획 지표는 자체의 힘으로 하고, 국가 계획 지표를 달성하는 문제는 중앙의 협조를 받아서 해결하게 됩니다. 국가 계획 지표를 달성하게 되면 여기에 참여한 기업소는 영예를 받아안게 되며, 생산자들에게는 생활비와 상급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생산자들은 국가 계획 지표를 달성하는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른 사회주의 나라의 경제가 무너진 원인을 보면, 밑에서 생산자들과 함께 계획 지표를 세우지 않고 꼭대기에서 내려먹이는 식으로 경제를 운영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9) 집체적 지도란 무엇인가?

한 가지 개념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것은 이른바 집체적 지도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집체적 지도라는 것은 공장 기업소에서 당 위원회가 집체적으로 지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공장 기업소의 최고 지도 기관은 당 위원회입니다. 얼뜻 듣기에 당 위원회라고 하면, 그저 당 관료가 일방적으로 내려먹이는 정치 지도를 머릿 속에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대안 전기공장의 당 위원회에는 한 서른다섯 명으로 구성된 당 위원회가 있습니다. 그 당 위원회 위원 35명의 90%가 생산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기술자, 직장장들입니다. 만일 생산자들이 생산·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되면 그 문제에 관하여 생산자들이 자체적으로 토론하고 안을 만들어 가지고 당 위원회에 갑니다. 당 위원회에서는 기사장, 지배인, 당비서가 생산자들이 제기한 안을 토론하여 결정합니다. 이 당 위원회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 지배인은 행정적으로 조직 사업을 수행하고, 기사장은 기술적으로 안받침하고, 당비서는 거기에 맞게 대중을 불러일으키는 정치 사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기사장, 지배인, 당비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삼위일체라고 부릅니다. 공장 기업소의 당 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당비서는 그 분야에 관한 전문 지식과 경험을 일정 정도 지니고 있는 당 일꾼들입니다. 당비서가 아무리 정치 사업을 전담한다고 하지만, 경제·기술 분야의 지식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업소 당 위원회의 토론 내용은 국가 계획을 수행하는 문제, 생산·기술적 문제, 계획 지표 수행에서 나서는 문제, 다른 기업소들과의 문제들입니다. 지배인이 독단적으로 기업소를 관리·운영할 수 없으며, 당 위원회의 토론을 통하여 생산자들의 의견을 존중·반영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산 활동에서 당 위원회의 집체적 지도가 생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지배인 유일 관리제를 실시했습니다. 지배인 유일 관리제를 실시한 사회주의 나라에도 당 위원회가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위원회는 노동자 이사회, 행정 간부 이사회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 의견만 제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 위원회는 일종의 자문 기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만일 당 위원회가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노동자 이사회가 반대하게 되면, 그 문제를 공장 기업소가 시당에 제기할 수 있습니다. 시당에서 나온 사항도 노동자 이사회가 반대하면 중앙에 제기할 수 있습니다. 중앙에서 결정되면 노동자 이사회가 참고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당 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통하여 경제를 관리·운영하고 있습니다. 당 위원회가 최고 지도 기관이지만, 정치적 지도만이 아니라 생산·기술·정치 세 분야를 종합적으로 지도하는 기관입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그럼 당 위원회가 공장과 기업소마다 하나씩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당 위원회의 집체적 지도를 실시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1961년에 체계를 창조하고 1962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지배인 유일 관리제였습니다. 그런데 경제 규모가 커지고, 과학·기술적 문제가 많이 생겨나게 되니까, 지배인 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생산자 대중의 의견을 모아서 가장 합리적인 방도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서 '대안의 사업체계'가 생겨난 것이지요.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일반적으로 생겨나는 현상들 가운데는 당이라는 존재가 경제 문제에 관하여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고 지시만 내리기 때문에 경제 관리·운영에 차질을 빚게 되고 경제 발전 속도를 늦추는 역기능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관료들이 장악하고 생산자 대중은 그저 의견이나 제시하고 관리권은 온데 간데 없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거지요.

우리 나라에서는 생산자 대중에게 관리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생산자가 관리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전에 소련의 경우처럼 토론할 때 생산자가 참가하여 의견이나 말하라고 해서는 생산자가 공장 관리의 주인이 될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생산자 대중의 관리권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는 생산자 대중의 의견을 당 위원회에게 집중하고, 당 위원회는 생산자 대중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하게 되어있습니다. 당 위원회를 통하여 나온 생산자의 의견은 그대로 관철되는 겁니다.

(10) 연합 기업소가 움직여 가는 경제

설명하시는 가운데 기업소라는 개념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 개념이 북(조선)의 경제 운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연합 기업소라고 합니다. 연합 기업소는 계획 단위, 집행 단위, 생산 단위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의 경우를 보면, 연합 기업소가 계획 단위로는 기능하지 못하고, 그저 경영 단위로만 기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71년에 채취 공업 부문과 화학 공업 부문에서 한 두 개 연합 기업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매개 공장들이 권한을 행사하면서 운영하니까 자기 공장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본위주의가 심해지는 폐단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단위 공장들은 분산 상태로 놓아두지 말고,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경영할 수 있는 단위로 묶어야 하겠다는 요구가 나왔고, 마침내 1985년에 전반적으로 연합 기업소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연합 기업소를 조직하는 원칙은 무엇이었는가 하면, 첫째로는 기본 제품 생산에 연관된 공장들을 하나로 묶어놓은 연합 기업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김책제철연합기업소'가 있는데, 이 연합 기업소는 철강재 생산에 복무하는 쇳돌 광산들, 석탄을 보장해주는 석탄 광산들, 광산들에서 생산된 원자재들을 운반하는 수송 부문 사업소들을 하나의 생산 기지로 묶어놓은 것입니다.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생산·경영 활동을 할 수 있는 공장들을 최대한으로 많이 통합한 생산 기지가 연합 기업소입니다. 우리 나라의 연합 기업소는 크고 작은 규모가 있지만, 가장 커다란 연합 기업소는 20-30여 개의 개별 공장과 사업소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자동화 총국' 같은 것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일반적으로는 10여 개의 공장 기업소들을 망라하고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국가는 개별 공장을 상대로 하지 않게 되고, 연합 기업소를 대상으로 합니다. 연합 기업소 안에서는 생산 수단, 원료 조달을 자체적으로 조절할 수 있고, 외부와 계약도 체결할 수 있습니다. 일부 연합 기업소들은 대외 무역 권한도 행사하게 됩니다.

둘째로는 같은 종류의 공장 기업소들을 묶어놓은 연합 기업소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자동차와 트랙터를 생산하는 '윤전기계 총회사' 같은 연합 기업소가 그것입니다. 글라인더 공장, 타이어 공장 같은 것들은 하나로 묶어놓고, 모든 윤전 기계를 생산하는 겁니다. 탄광의 경우도, 개별 탄광들이 분산되어 있는 것보다, 집단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 더욱 우월성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면, 순천지구 탄광 연합기업소, 안주지구 탄광 연합기업소와 같이 여러개의 탄광들, 갱목 사업소들, 건설 사업소들을 망라하여 한 생산 단위로 묶어놓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경영 활동에서 집체성이 발양되고, 뒤떨어진 공장은 앞서가는 다른 공장이 도와주고, 모자라는 것은 서로 보충해 주는 협동 정신이 실현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합 기업소를 큰 공장에 작은 공장들이 종속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데 그렇지 않습니다.

연합 기업소는 회사, 관리국, 총국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연합 기업소는 독립 채산제의 한 단위이며, 또한 연합 기업소에 망라되어 있는 개별 공장 기업소들도 독립 채산제의 한 단위가 됩니다. 이중적인 독립 채산제입니다. 개별 공장 기업소들은 연합 기업소의 생산에 이바지한 정도를 따라서 평가를 받으며, 상금이나 장려금을 받게 되는 체계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연합 기업소가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겠군요.

그렇습니다.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매 군마다 20여개 씩 있는 '지방산업 종합공장'도 연합 기업소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방산업 종합공장에는 생산·기술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개별 공장들이 망라된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식료 공장과 건재 공장이 한 지방산업 종합공장에 망라되어 있는 경우가 있겠지요. 우리 나라의 모든 생산력은 거의 모두 연합 기업소 단위로 조직되어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11) 이윤 추구의 문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교환을 포괄하는 경제 활동 전반은 철저하게 사적인 이윤 동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조선)에서 경제 활동은 사적인 이윤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경제 활동에서 이윤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는 이윤 본위제는 반대하지만, 어느 기업에서건 일정한 정도의 이윤이 있어야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공장 기업소는 수익성을 보장하고, 이윤을 내야합니다. 이윤이 없으면, 생산 확대를 하지 못하지요.

우리는 이윤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 활동 전반을 이윤 추구에 종속시키는 것을 반대합니다. 공장 기업소가 자기의 경영 활동을 이윤 추구에만 종속시키게 되면, 국가 계획 지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어떤 공장 기업소에서 트랙터를 만들어야 하는 데, 트랙터 생산에서 나오는 이윤보다 라디오 생산에서 나오는 이윤이 더 많다고 해서 그쪽으로 돌아서면 전사회적으로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윤이 많이 나는 것으로 따지면, 중공업보다는 경공업이 훨씬 유리합니다. 현물 지표별 계획을 수행하는 데서 이윤을 내야합니다. 연합 기업소에서 얻은 이윤 가운데 경영 활동에 들어가는 이윤은 자체적으로 사용하게 되어있습니다. 몇 퍼센트는 연합 기업소의 기금으로, 몇 퍼센트는 공장 기업소의 기금으로, 몇 퍼센트는 국가에 내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연합 기업소의 이윤 가운데 국가 예산에 들어가는 것은 국가 경영 이익금과 거래 수익금이라는 두 통로를 통하여 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업소에서 남는 이윤은 자체 기술 발전이나, 상대적으로 부족한 노임을 메꾸는 것이나, 생산자에 대한 상금 수여로, 생산자들의 후생 복지 시설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기업소들은 이윤 추구에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만, 국가의 지표별 계획을 무시하고 이윤이 많이 나는 부문만을 골라서 하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윤 추구의 문제는 현재 사회주의 경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서 민족적 자립 경제 노선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하나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경제 관리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경제 관리 운영의 문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중앙집권제냐 아니면 개별적 경쟁 체계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극 체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극 체계 문제란 어떻게 하면 근로자들의 생산 노동 의욕을 높히고, 생산 노동에서 창발성, 자발성을 발휘하게 하는가 하는 문제로 집약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는 자극 체계의 사적인 이윤 동기로 획일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비하여, 우리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물질적 자극 체계와 정치·도덕적 자극 체계를 구별하고 이 둘을 어떻게 배합하는가 하는 문제로 되어있습니다. 소련과 동구 나라들은 사회주의 경제를 한다고 하면서도 물질적 자극 체계만을 앞세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물질적 자극 체계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어디까지나 정치·도덕적 자극 체계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인 차이이며, 이 차이는 주체사상에서 나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근로자들이 당과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생산 노동에 참여하는 주인이라는 자기 인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거기에 물질적 자극을 적절히 배합하고 있습니다.

선행 맑스주의 전통에서는 사회가 사회주의 단계로 발전하면 상품 경제, 시장 경제를 완전히 무시하게 될 것이라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지난 시기 소련도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왔다 갔다 했고, 중국도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사회주의 계획 경제의 대원칙을 지키면서도, 상품·화폐 경제와 물질적 자극을 무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균형을 잡아나갔습니다. 정치·도덕적 자각을 기본으로 선행시키면서, 거기에 물질적 보상을 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양자를 어떻게 배합하느냐를 따라서, 사회주의가 제 모습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자본주의로 전락되고 마느냐가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질적 자극을 앞세우면, 생산 활동에서 일시적인 성과를 볼 수는 있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죽어라고 일하게 되는 사회적 풍조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이윤 추구만을 위한 생산 노동이 어느 길로 가느냐는 뻔합니다. 노임도 많이 주고, 혜택도 많이 주어서 생산을 높히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정치 사업을 통하여 생산을 높히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생산과 정치의 결합은 위대한 예술입니다.

정치·도덕적 자극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정치적 각성을 말합니다. 근로자들이 당과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주인답게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인답게 일을 잘 한 근로자에게는 정치적 평가를 줍니다. 전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지요.

생산 노동의 주체인 인간을 물질적 자극으로 상대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도덕적인 각성으로 상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생산 노동의 본질을 어떻게 보느냐,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노동관과 인간관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주의 학자들은 인간을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생산 노동에 나서는 존재로 보고 있는 자본주의적 인간관과 노동관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을 단순한 노동력을 보고 있는 거지요.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가치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 자체의 완성을 지향하느냐 하는 것과 인간을 사회·역사의 발전을 지향하는 존재로 보느냐, 그렇게 보지 않느냐 하는 것이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됩니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서 갖는 우월성은 사람을 물질적 자극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정치·도덕적 본성을 가진 존재로 보는 인간관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은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가 소련형의 사회주의 사회와 구별되는 점이라고 봅니다.

(12) 소유 문제

소유 문제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여기서는 협동적 소유와 전인민적 소유로 구분되어 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적, 사적 소유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협동적 소유(cooperative property)와 소련형의 집단적 소유(collective property)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국가 소유는 공업 부문에서 지배적인 형태고, 협동적 소유는 농업 부문에서 지배적인 형태입니다. 그런데 공업 부문이라 할지라도 전부 국가 소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협동단체 소유도 일부 있습니다. 이를테면, 어린이 자전거 공장이라든지, 철제 일용품 공장이라든지, 비닐수지 공장 같은 데는 생산 협동 조합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장 단위가 소유 단위입니다. 이러한 공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어떤 것을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해서 생산을 합니다. 물론 중앙의 계획을 받기는 받지요. 국가 소유제에서는 국가가 소유 단위이고 경영 단위는 상대적 독자성을 가진 기업소입니다. 경영권과 관리권은 생산 단위별로 분할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 다음으로 협동적 소유가 지배적인 농업 부문에서는 농업 전체가 협동적 소유라는 뜻이 아니라, 협동농장 단위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한 협동농장의 소유를 다른 협동농장에서 이용하지 못합니다. 협동농장끼리 생산 현장에서 연계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 나라 농촌에서는 소유 단위와 경영 단위가 일치되어 있습니다. 소유권과 경영·관리권의 통일이지요.

협동농장의 생산물을 교환하는 원칙은 어디까지나 등가성의 원칙이 아니면 안됩니다. 반면에, 국가 소유제인 기업소들 사이에서 교환 원칙은 완전 가치에 근거한 교환이 아니라 기업소 도매 가격, 다시 말해서 원가와 기업소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이윤을 합한 가격이 통합니다. 그러나 국가 소유제인 기업소가 협동농장과 교환할 때는 상품 교환의 원칙을 적용합니다. 상품화하지 않는 것은 국가 소유로 남겨둡니다.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나 자동차는 국가 소유입니다.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노동자가 농촌에 들어가서 일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해당한 노임을 받습니다. 해마다 농기계 사용료, 관개 사용료, 종축값 등은 국가에서 보장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국가적 소유는 그 사회화 수준이 전인민적이기 때문에 전인민적 소유(property of the whole people)라고도 부릅니다.

협동적 소유는 협동농장의 소유인데, 어떤 협동농장에서 자기 포전에 벼를 심기가 힘드니까 강냉이를 심겠다, 아니면 강냉이 농사는 그만두고 박하를 심어서 외화를 벌겠다고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만일 이처럼 매개 협동농장이 각자 자기 수익성만을 높히려고 한다면, 가뜩이나 농경지가 제한된 우리 나라에서는 알곡 수요를 자급자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가족 도급제를 도입하면서, 30년동안 경영·관리권을 주었으므로, 무엇을 경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완전히 개별화, 개인화되어 있습니다. 중국 농촌에서는 개인이 트랙터와 자동차도 사들여서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벼 농사를 집어치우고 딸기를 심어서 비행기로 베이징에 내다가 파는 경우도 생겼고, 농경지에 자기 별장을 짓기도 하고, 농토의 일부에 자기 조상의 묘를 쓰기도 합니다. 이런 결과로 중국의 알곡 생산량이 자꾸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경지 면적이 2백만 정보 밖에 되지 않는 우리 나라에서 만일 이러한 사태가 생기면 커다란 혼란이 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군 단위로 협동농장 경영위원회라는 국가의 농업 지도기관을 내왔습니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농업 생산력을 통일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이지요. 이 위원회에서는 해당 협동농장에게 알곡 생산 계획을 줍니다. 만일 어떤 협동농장에서 알곡 생산이 아닌 다른 품목을 경작하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국가 농업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협동적 소유는 국가적 견지에서 보면 아직 미숙한 점이 있습니다. 협동적 소유가 협동농장 단위의 소유이기 때문에 농업 부문을 완전히 전인민적 소유·관리·경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현재로서는 농민들의 사상의식 수준과 농업 생산력 발전 수준에서 본다면 협동적 소유가 우리 나라의 현실에 맞는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이러한 조건에서 농업 생산력을 높히고 있습니다.

지금 협동농장을 무조건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해서 국영농장으로 만들어놓으면 농민들이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조건이 성숙된 농장들부터 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협동농민들이 스스로 협동적 소유를 없애고 국가적 소유로 넘기겠다고 하는 경향이지요. 이를테면 만경대 국영농장, 숙천군 국영농장을 비롯하여 몇몇 농장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기 토지 개혁을 할 때,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개인 단위로 경영할 수 없는 일부 토지는 군 단위로 국가 소유로 만든 것이 있습니다. 웅기군, 안악군 등이지요. 이러한 국가 소유 농장의 생산 수준은 다른 협동농장의 생산 수준에 비하여 높지 못합니다. 농민들의 사상의식 수준이 아직 전인민적 소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협동적 소유에 대한 관념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협동농민들이 국가적 소유로 넘어가는 원인은 농민들의 의식 수준이 발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업 생산에 참가하는 물질·기술적 수단에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국가 소유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협동농장의 소유란 탈곡장, 사료 분조장에 국한되어 있고, 주요 농기계는 모두 국가적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소를 가지고 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농기계가 아니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농업 생산 수단의 동원 문제에서 국가 소유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변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협동적 소유가 국가적 소유에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농업 관리 부문에서 우리 당의 방침은 어떤 법령을 제정하여 협동적 소유를 당장 국가적 소유로 전환하자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국가 소유의 생산 수단과 협동적 소유의 생산 수단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그 결합 관계에서 국가적 소유가 지도적, 주도적 역할을 놀게 하여 농업 생산의 전과정에서 국가 소유의 생산 수단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켜 나가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협동농민들이 국가적 소유·관리를 닮아가면서 자발적으로 국가적 소유로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협동적 소유를 전인민적 소유로 발전시키는 역사적 경로입니다. 농업 생산의 전과정이 약 1백 가지의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노동 과정이 30 가지가 됩니다. 이 30 가지의 노동 과정이 국가적 소유의 물질·기술적 수단에 의해서 좌우되게 되면 협동적 소유는 자동적으로 국가적 소유로 전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국영농장들은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협동농장의 생산물을 국가가 많이 팔아주면서 국가적 소유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잘 사는 농장은 더 잘 살게 되고, 잘 못사는 농장은 여전히 못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중국 사람들은 소유 단위가 적으면 적을 수록 이해 관계가 절실해지고 생산 추동력이 높아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협동농장 소유 단위는 너무 크니까 분조 단위로 소유권을 분할하자, 분조 단위 소유권보다도 가족 단위 소유권이 가장 좋다고 하여 가족 도급제, 개인 책임제가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물질적 견지에서만 파악하고 있는 견해인데, 농민이 자신들을 공동 소유, 공동 경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협동적 소유가 발전해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를 말하지요. 중국 농민들은 이러한 의식 수준과 자각을 갖지 못하고 그저 물질적 자극만을 추구하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소유권의 행사는 실제적으로 관리·운영에서 나타납니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과 달리 우리 나라 협동농장에는 분조 관리제라는 것을 두었습니다. 한 개 분조에는 17명에서 20명까지 망라됩니다. 이 분조 관리 단위 안에 토지, 농기구, 육축, 트랙터, 농기계 등을 대체로 5-6년 동안 고정시킵니다. 분조 단위로 생산 수단과 토지를 일정 기간 동안 고정시키고 관리·운영권을 행사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정보당 수확고를 따른 알곡 생산 계획의 정해진 분량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모두 분조에 소유권과 처분권을 주어 노력에 따라 분배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분조 관리제를 합리적인 생산 및 노력을 조직한 형식이며, 현재 농민의 사상의식 수준과 농업 생산력에 맞는 우월한 분배 방식이라고 봅니다. 협동농장 안에 여러 개의 작업반과 분조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협동적 소유라고 하면 국가가 절대로 개입·간섭해서는 안된다고 보고 국가적 지도의 책임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교조적 견해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협동적 소유라고 해서 협동농장이 잘 되건 망하건 자체의 힘으로 하라고 하면서 국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협동농장 뿐아니라 국가도 농업 생산 전반에 대한 책임을 진 주체라고 보기 때문에, 국가는 마땅히 협동농장에서 제기되는 각이한 문제들을 풀어주고 도와주며 농업 생산력의 통일적 발전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의 경우에, 특히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협동적 소유가 사적 소유로 분해되어가는 경향이 분명하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 북(조선)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협동적 소유에서 전인민적 소유로 발전하는 추세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사회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기본 목표들 가운데 하나는 계급적 차이를 없애는 것입니다. 협동적 소유는 농민 계급의 물적 기초가 아닙니까. 농민 계급의 물적 기초가 전인민적 소유로 되어야 농민들도 노동 계급으로 될 것이고 노동 계급과 농민 계급의 계급적 차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사회 발전의 전망이고, 경향입니다. 사회주의 사회는 이러한 전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데, 협동적 소유를 해체하여 개인적 소유로 만들어 놓으면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협동농장을 모두 없애고 국영농장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협동농장에서 국영농장으로 바뀌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게 되는지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농민들에 대한 생활비 계상이 달라집니다. 협동농장(cooperative farm)에서는 많이 생산하면 많이 분배되고, 적게 생산하면 적게 분배되지만, 국영농장(state-owned farm)에서는 자기들이 생산한 것을 모두 국가에 들여놓고 국가가 정한 식량과 생활비를 받게 됩니다. 국영농장의 농민은 공장 노동자와 같이 농업 노동자로 변하게 됩니다. 국가는 농업 노동자들에 대해서 노동 보호 물자, 영양제를 공급하는 등 생활을 책임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합니다. 사회 보장 문제도 협동농장에서는 공동 축적 본투를 통하여 해결하고 있지만, 국영농장에서는 국가가 책임지게 됩니다. 노동자들은 정양이나 요양이나 휴양을 가게 되는 경우 국가가 모두 해결해주지만, 협동농민은 자기 협동농장의 공동 축적 본투가 있는만큼만 정양, 요양, 휴양을 갈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사회 보장은 매달 자기 생활비의 1%만 내면 모두 해결되는데, 협동농장의 경우에는 5-6%를 내야 합니다. 국가가 협동적 소유의 생산자들까지 모두 노동 계급과 똑같이 보장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협동농장별로 차이가 있을 것같은데, 어떻습니까?

물론 차이가 있지요. 벌방 지대의 협동농장과 산간 지대의 협동농장은 차이가 많습니다. 알곡 생산량을 보면, 벌방 지대의 협동농장에서는 알곡 생산량이 많지만, 산간 지대의 협동농장은 알곡 생산이 아닌 다른 농산물이나 특산물을 생산하여 현금을 벌어들이기는 하지만 알곡 생산량은 매우 적습니다. 우리 나라의 농경지는 그 자연·지리적 조건을 따라서 산간 지대, 중간 지대, 벌방 지대로 구별합니다. 산간 지대와 중간 지대는 농업 조건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곳이므로, 그곳에 있는 협동농장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농기계를 더 많이 배치하고 있습니다.

(13) 노임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구체적으로 노임(wage)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궁금하군요.

생활비는 국가에서 정하는 국가 생활비 등급 기준표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생활비와 노동 정량에 관한 문제는 각 기업소의 재량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소에는 개별 근로자들의 생활비와 노동 정량을 결정하거나 조절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에서 일하든지 개별 근로자는 국가가 기능 급수를 따라서 정한 생활비를 받게 되어 있고, 국가에서 정한 노동 정량만큼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특별한 상황에서 조절할 필요가 생기면, 문건을 작성해서 부위원회에 올라가야 하고, 노동행정부에서 승인을 받아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노동 부류를 다양하게 나누지만, 우리 나라에서 노동 부류를 셋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제1부류가 힘든 노동으로 채취 공업과 석탄 공업의 노동이 여기에 들어가고, 제2부류는 조금 덜 힘든 노동으로 금속 공업과 기계 공업의 노동이 여기에 들어가고, 제3부류는 가장 힘이 덜 들어가는 노동으로 상업 노동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비는 부류별로 등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힘든 노동은 특수 부류로 두었는데, 지하 막장의 노동, 잠수부의 노동, 벌목 노동 같은 것입니다. 특수 부류의 노동을 하는 근로자들에게는 노동 정량을 따라서 누진 도급제를 실시합니다. 국가가 특별히 생활비를 더 많이 보장해주는 거지요.

제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근로자의 노임을 시간제로 결정합니다. 한 시간의 노동에 대해서 최소한의 기본 노임은 주어야 한다는 이른바 최저 노임제는 주정부에서 주법령으로 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저 노임 이상의 노임액수에 대한 결정권은 각 기업에 맡겨져 있습니다. 최저 노임 이상을 주는 기업도 있고, 최저 노임만을 주는 기업도 있고,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최저 노임 이하로 주는 불법적인 행위도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 기업에서 정해진 노임 밖에 더 주는 것을 상여금이라고 하는데, 북(조선)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우리 나라에서는 상금이라고 합니다. 자기의 노동 정량을 높혀 계획을 초과 달성하면 상금을 주지요. 원가를 절약한 근로자에게는 장려금을 줍니다. 기술을 혁신한 근로자에게는 표창금을 줍니다. 목표량 초과 달성, 원료 절약, 기술 혁신에서 나온 이윤은 국가가 기업소와 개별 생산자에게 균등하게 분배합니다. 대개 상금, 장려금, 표창금의 액수는 생산자 본인 생활비의 50% 정도로 책정됩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자기 생활비의 1백%까지도 책정되지만, 법령으로 1백%를 넘지 못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14) 경제학 분야의 남북 학술 교류와 상호 이해의 문제

남북의 경제학자들이 만나서 학술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까?

역사 분야나 언어학 분야 같은 데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통일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는 있었지만, 경제학 분야에서는 아직 한 번도 없습니다.

저는 남(한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박현채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경제 문제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박현채 선생은 진보 진영의 이론가로서, 민족민주운동에 실천적으로 참여한 분으로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분인데, 애석하게도 지난 8월 1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혹시 그 분의 저작을 읽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남조선'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대해서 폭넓게 알지 못합니다. 오래전 이야깁니다만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할 때, 박극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우리 나라 정치경제학의 대표적인 학자였지요. 얼마나 정열적으로 강의하셨던지 앞자리에 앉아있던 학생들은 침이 튀기는 것을 참으면서 열강을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혹시 박극채 선생이 박현채 선생과 인척관계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조선' 경제를 논할 때, 일부 사람들은 발전 수준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면서, 경제적 자립 수준은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부품을 들여와서 조립해서 팔았든 상관하지 않고, 상품 생산 수준이 앞섰다고 주장합니다. 소련 사람이 '남조선'에 가서 경제 형편을 평가한 것이라든지, 폴란드 사람이 가서 경제 형편을 평가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남조선'의 경제 발전 수준이 매우 높다고 평가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남조선' 경제가 미국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반 사람들은 예속이 되었건 어쨌건 간에 상품만 매끈하게 잘 만들어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남조선'에서는 실제로 전자 제품이나, 반도체, 자동차들을 매끈하게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조선'의 상품 생산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릅니다. '남조선'의 어떤 사람들은 '예속적 경제 발전'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경제를 보는 평가 기준이 다른 것이지요.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체 기술과 자기 자본으로 생산한 것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경제적 자립도를 기준으로 삼고 '남조선' 경제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남조선'의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상품들을 여기에 들이밀기만 하면 우리 인민들의 환심을 살 수 있겠거니 하고 상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오산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평가 기준이 따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민은 우리의 평가 기준을 가지고 사회주의 자립경제의 성과에 대해서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남조선'에서는 얼마나 매끈하게 잘 만들어서 상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느냐를 유일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조선'에서는 우리 경제가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경제이기 때문에 발전 수준이 매우 낮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립적 민족경제가 추구하는 목표, 우리 사회주의 경제가 유지·발전시켜온 성과를 전혀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남조선' 사람들이 우리의 경제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면, 남북의 경제학자들이 서로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상호 이해를 깊게 해야 합니다. 김정일 비서도 그의 논문에서 밝혔듯이,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경제는 예속 경제가 아니라 자립 경제이며, 시장 경제가 아니라 계획 경제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제 문제를 조국통일 문제와 연결해서 논의해보았으면 합니다. 우리 민족이 분단 50년이 되도록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단 상태 안에 묶여있습니다. 분단이란 민족사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만, 특별히 우리의 논의와 결부하여 생각하자면 분단은 민족 경제의 통일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봅니다. 남북으로 나누어진 경제를 전민족적인 관점에서 하나로 인식하고 이것을 통일적으로 발전시키려면 조국통일을 이루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보기로 하지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내놓은 조국통일의 기본정책은 한 민족, 한 국가, 두 제도, 두 정부라는 개념 속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단 시대가 반세기가 흘렀다고 해도 민족성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남과 북의 상이한 두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연방국가를 창립하고, 그 두 제도를 각기 운영하는 지역 자치 정부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만일 이런 방식으로 통일이 된다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남과 북에 있는 자원을 민족의 공동 이익과 공동 번영을 위하여 더 유리하게 쓸 수 있다고 봅니다. 민족적 견지에서 나라의 국토와 자원을 합리적으로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통일 연방국가의 경제 시책이란 두 제도를 그대로 두고 경제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하자는 겁니다. 제도 통합을 하겠다고 하는 주장은 결국 남과 북 사이에 다시 싸움을 해서, 이기는 쪽이 다른 쪽을 먹겠다는 호전적인 정복론입니다. 제도 통합은 전쟁의 위험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평화 통일과 제도 통합은 모순 관계에 있습니다.

오랫동안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경제학 분야에서도 남북의 학술 교류가 진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학자들이 논문과 연구성과를 서로 교환하면서 남북의 상호 이해를 넓혀나간다면 분단 시대가 쌓아놓은 오해와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이란 상호 이해를 통하여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1995년 11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