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여·확장 전략과 협상·공존 전략의 대치,

그리고 한(조선)반도 통일 정세의 변동 방향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봉쇄·대결 전략과 관여·확장 전략의 이중 수행

오늘 미국은 탈냉전 시대의 추세에 맞추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냉전 질서의 표상인 한(조선)반도에서 봉쇄·대결 전략(Containment-Confrontation Strategy)을 폐기하고 관여·확장 전략(Engagement-Enlargement Strategy)으로 수정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이 정치적 부담의 핵심부에는 조·미 관계를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정상화해야 하는 간단치 않은 숙제가 들어있다.

미국의 전략 수정이 한(조선)반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알려면, 먼저 미국의 전략 수립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 의식을 파악해야 한다. 탈냉전의 물결이 몰려오기 시작한 뒤로 워싱턴에 있는 전략 수립가들의 머리 속에는 관여·확장 전략에 대한 생각이 가득차 있다. 우리는 세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고심하고 있는 저들이 자기들 내부에서 전략 수정에 관한 논의를 어떻게 진전시켜왔는가를 엿볼 수 있다.

미국의 전략 수립가들이 탈냉전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관여·확장 전략이라는 명확한 개념으로 정리하기까지 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새로운 태평양 공동체 건설론'이 논의되었다. 이 논의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James A. Baker, III)와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of the States for East Asia and the Pacific)로 임명된 윈스턴 로드(Winston Lord)였다.

'새로운 태평양 공동체 건설론'을 확장전략으로 개념화한 사람은 클린턴 행정부에 들어와 백악관 국가안보 담당관으로 임명된 앤터니 레이크(Anthony Lake)다. 그가 1993년 9월 21일 미국 존스 합킨스대학원 국제학과에서 한「봉쇄에서 확장으로(From Containment to Enlargement)」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처음으로 '확장'이라는 전략적 사고가 모습을 드러내었고(New York Times 1993년 9월 22일자), 한 해 뒤인 1994년 9월 12일 외교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서 그가 한 연설「민주주의의 확장: 힘과 외교의 결합을 위하여(The Reach of Democracy: Tying Power to Diplomacy)」에서 다시 제시한 바있다.

백악관과 국무부를 연결하는 전략적 사고의 진행 궤도와 다른 또 하나의 궤도를 따라 움직여온 집단이 있는데, 그것은 미 국방부의 전략 수립가들이다. 이들이 탈냉전 시대의 전략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고심해 왔는가를 살펴보려 할 때,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미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관(당시 직책)이었던 조셉 나이(Joseph S. Nye, Jr.)다. 그가 주도하여 작성한 뒤, 1995년 2월에 발표했던 중요한 보고서「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전략(United State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에서 저들은 이른바 '관여'이라는 전략 개념을 정리했다. 미 국방부의 관여 전략이 지니고 있는 핵심 내용은 부시 행정부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EASI)을 따라 1990년부터 1992년 말까지 시행되었던 주한미군 1단계 감축(7천명) 이후 북(조선)의 '핵문제'로 잠시 중단되고 있던 제2단계 감축 계획(1993-1994년도)을 완전히 폐기하고, 주한미군은 현 수준에서 앞으로 10년 동안 유지한다는 것을 확정하고 주한미군 3만7천명과 주일미군 4만5천명, 그리고 미 제7함대의 해상 지원 병력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에 전진 배치한 10만명의 병력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과 동북아시아의 다국간 안보협의체를 창설하려는 구상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미국이 남(한국)과 일본에 전진 배치한 무력을 감축하지 않고 현재 수준을 앞으로 장기간 동안 유지하겠다고 하는 확고한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사실이다.

조셉 나이는 관여·확장 전략을 영도 전략(Leadership Strategy)이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이 탈냉전 시대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관여와 확장을 통해 자국의 영도권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두드러지게 강조한 표현으로 보인다. 영도 전략을 논하면서 그는 "오늘의 안정과 번영을 앞으로 20년 동안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아시아에 관여해야 하며, 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이바지해야 하며, 동맹국들을 강화하고 친선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이가 말하는 영도 전략의 세 가지 구성 부분은 동아시아 지역의 동맹국들을 탈냉전 시대의 새로운 기지로 건설하고 강화하는 것, 미국의 전진 배치 무력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다자간 지역 안보 협의 구도를 창설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셉 나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북(조선)이라고 지목하였다. 1995년 10월 11일 미 상원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가 열었던 중국 군사력에 관한 청문회에서 그는 미국의 관여 전략은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안정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미국이 중국과 이해 관계를 일치시키는 목적, 미·중 사이의 안보 협력 및 안보 상호 의존도를 향상시키는 목적 등을 달성하는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레이크의 확장 전략 개념과 국무부·국방부의 관여 전략 개념이 결합되면서 관여·확장 전략으로 정식화됨으로써 논의의 완결점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데, 탈냉전 시기의 이 전략은 지난 냉전시기 미국 대외 정책의 핵심이었던 이른바 개입 정책(Intervention Policy)과 다르지 않은 것이며, 말만 바꿔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미 국무부 정치 담당 차관이었으며, 현재는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의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아놀드 캔터(Arnold Kanter)는 미국이 탈냉전 시대에 관여 정책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① 탈냉전 시기에는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행동이 제약을 받지 않게 되었다는 점. ②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경제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 ③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게 되었다는 점. ③ 탈냉전 시대는 혼란과 위험이 가득찬 시기이기 때문에 관여 정책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점.

워런 크리스토퍼도 미국의 외교 전략을 4대 원칙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① 미국의 영도력을 수행하는 원칙, ② 강대국들과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생산적인 방향에서 유지하는 원칙, ③ 협력 관계를 강화한 공고한 체제를 수립하는 원칙, ④ 미국의 이익과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지하는 원칙이다. 그는 "미국이 일본과 맺은 전략 동맹 관계는 남(한국) 및 다른 동맹국들과 맺은 전략 동맹 관계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미국의 관여는 아시아의 안정·번영·민주화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1996년 2월 클린턴 대통령이 내놓은 「관여와 확장에 입각한 국가 안보 전략」이라는 연례 보고서에서도 같은 내용이 되풀이되었다.

관여·확장 전략은 미국이 1994년 한 해 동안에 아시아 지역에서 수출 실적 1천5백30억 달러을 올리고, 이로써 자기 나라에서 직업 3백10만 개를 유지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지키려는 목적에서 수립·가동하는 전략이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관여·확장 전략을 수행하려면 중국과 북(조선)에 접근·공략해야 하는데, 이 접근·공략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한(조선)반도의 정전협정 체제다. 앞으로 몇 해 안으로 미국은 정전협정 체제를 어떤 경로, 어떤 방식으로든 변경, 또는 청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런데 정전협정 체제 문제와 관련하여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얼마전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미군 장성으로 다시 교체하려 했고, 북(조선)이 제의한 조·미 장성급 회담 제안을 받아들이는 문제를 검토한 적이 있다고 추정했다고 한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여서 이 글의 뒤부분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조·미 장성급 회담 제안을 먼저 꺼낸 쪽은 북(조선)이 아니라 미국이었고,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다시 교체될 미군 장성도 이미 내정되었는데, 무슨 까닭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회담 계획과 교체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이 아직 한(조선)반도에서 관여·확장 전략을 본격적으로 수행할만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낡은 봉쇄·대결 전략에 발목이 잡힌 상태로 일정 기간 동안 두 전략을 병행할 수 밖에 없는 실정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다. 따라서 현시기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략 수행은 이중적이며, 대북(조선)관도 이중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북(조선)을 관계 개선 대상으로 인식하여 1995년 9월 23일부터 열린 평양 회담에 참석하고, 결국 임시 영사 보호권을 상호 행사하기로 합의하면서도, 같은 때에 북(조선)을 '잠재 적국'으로 규정한다고 발표하는 전략 수행의 이중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좋은 예다.

1995년 9월 1일 한·미 국방장관의 호놀룰루 회담에서 '한·미 중장기 안보협의체'를 창설하기로 합의하고 있던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은 1995년 9월 1일로 임기가 끝난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한·미 연합사 부참모장인 이석복(소장)을 임명한 사실, 그로부터 꼭 한 달 뒤인 10월 1일에는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현재 주한미군사령부 산하에 분산되어 있는 정보 기관들인 육군 501군사정보여단(MIB), 해군 방첩수사대(NIS), 공군 제45지구 방첩수사대(OSI), 제32특활정보대(AFIC)의 대인 정보 수집 기능을 통·폐합하여 '미 국방정보국 코리아 지원단'(DODSAK)을 창설하기로 했다는 사실, 그리고 주한미군이 무력 충돌의 위기가 생기면 사전에 긴급히 배치할 신속 전개 억제 전력(FDO)에 더하여 전투력 증강(Force Enhancement) 개념을 추가한 새로운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9월 23일 언론 기관에 흘린 사실 등은 모두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자국의 전략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위에서 파악한 현실을 종합해보면, 지금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기존의 봉쇄·대결 전략을 매우 조심스럽게 점진적으로 변경하면서, 관여·확장 전략을 구사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윈스턴 로드는 미국의 북(조선)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세 가지 궤도'를 제시했는데, "하나는 미·북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남북 대화 등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유도하는 것이며, 세번째는 미·북 접촉 확대를 통해 한반도의 안보와 안정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있다.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관여와 확장이 확실히 보장되었을 때 비로소 '봉쇄의 빗장'을 완전히 풀어놓고 '대결의 칼끝'을 누구러뜨리려 할 것이며, 그 이전에는 이 두 전략의 비중을 따져가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 갈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접근 속도를 조절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제동 역할을 맡은 곳이 미 의회다. 알려진대로, 1995년 9월 18일 미 하원은 대북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 하원 아·태 소위원장의 발의로 1995년 6월말 국제 관계 위원회를 통과한 뒤 일부 수정된 이 결의안은 미 상원의원 프랭크 머코스키가 마련하고 있는 비슷한 내용의 대북 결의안과 조정·통합되어 단일 법안으로 상원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 결의안은 북(조선)이 휴전선 부근에 배치한 군병력을 후방에 재배치하지 않고, 탄도 미사일을 계속 개발하고, 탄도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 살상무기를 계속 수출한다면, 이것은 미국의 장기 정책 목표에 진전이 없는 것이므로 미 대통령은 조·미 관계를 격상하는 조치를 취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미 상원 에너지 위원장 프랭크 머코우스키가 주도하여 외교위원장 제시 헬름즈, 상원의원 존 맥케인, 돈 니클스가 공동 제출한 결의안에는 조·미 국교 수립의 전제조건으로 특별 사찰을 포함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안전 조치 완전 이행, 남북 대화 진전, 한국(조선)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 문제에 대한 공동 조사 활동, 국제 테러 지원 중단, 인권 존중,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 준수, 모든 폐연료봉의 제3국 반출 허용, 흑연 감속로 완전 해체를 제시하면서, 의회에서 사전에 명시적으로 지출을 허용한 것 외에는 행정부가 전용하여 북(조선)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북(조선)이 중유를 전용할 경우 더 이상 중유를 제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미 의회의 이러한 보수적 조치들은 한(조선)반도에서 긴장·대결 상태를 지속시켜 잉여 무기를 처분하려고 하는 미국 군수 산업 자본의 '선거구 공략'의 영향에 대해서 행정부보다 의회가 더 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어쨋든 조·미 관계 개선에 대한 미 의회의 이러한 거리낌은 조·미 관계 개선의 진전 속도가 관여·확장 전략을 수행하는 궤도 안에서 규제를 받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2) 북(조선)의 전략적 대응

1995년 9월 23일 평양에서는 조·미 연락사무소 개설 협상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미 국무부 코리아 담당관인 제프 골드스타인(Jeff Goldstein)을 단장으로 한 전문가 13명이 참석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 대표단이 제3국이 아니라 평양에 들어가서 협상 자리에 마주 앉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1984년 조·미 협상 전략을 수행하겠다고 발표했던 북(조선)은 4년 뒤인 1988년 12월 6일 베이징에서 참사관급 공식 접촉을 이끌어냈으며, 1991년의 뉴욕 고위급 협상과 1994년의 역사적인 제네바 합의를 거쳐 마침내 11년만에 미국을 평양에 끌어들여 협상 자리에 마주앉는데 성공하였다. 미국을 협상 자리에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북(조선)이 수행해오고 있는 대미 외교 전략을 우리는 협상·공존 전략(Conversation-Coexistence Strategy)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로써 한(조선)반도는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과 북(조선)의 협상·공존 전략이 맞부딪치며 힘을 겨루는 판도가 되었다. 이 양대 전략의 격돌은 이미 이른바 '핵문제'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이목을 끈 바있다. 조·미 핵협상과 관련하여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과 충돌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북(조선)은 자국의 핵에너지 개발권을 양보하는 대신, 주한미군의 지상 배치 핵무기를 모두 철거시키는 한편, 미국을 극적으로 조·미 협상 자리에 끌어내었으며, 4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북(조선)이 핵에너지 개발권을 양보하고서라도 협상·공존 전략을 기어이 관철시켜 미국을 협상 자리에 끌어낸 근본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남(한국) 언론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듯이 북(조선)이 경제 문제를 개방 정책으로 풀어보려고 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구책이 아니라, 한(조선)반도 전체의 민족 문제인 평화체제 수립 문제와 통일 문제에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놓으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외교 전략의 성과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보인다. 북(조선)이 핵협상 과정에서 이른바 '한국형 경수로'의 수용 문제에 대해 반대한 까닭은 언론들이 추측하듯이 남(한국)의 기술·인력·자본이 북(조선)으로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원인은 미국을 지향한 협상·공존 전략을 일관되게 수행하려는 정치 협상 과정에 다른 변수가 관여해서 저항을 받으면는 안된다고 판단한 정치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관여·확장 전략과 북(조선)이 수행하고 있는 협상·공존 전략, 이 양대 전략은 지금 조·미 관계 개선이라는 중심축을 따라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 양대 전략의 수행 방향과 그 중심축인 조·미 관계 개선의 추세에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조선)반도의 자주 문제, 평화 문제, 통일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냉전 시기, 그러니까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대해서 봉쇄·대결 전략을 수행하던 시기에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체제 정착의 가능성과 통일국가 수립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미국은 한국(조선)전쟁을 집단 방어라는 명목의 무력 대결로 마무리지은 뒤에 한(조선)반도의 분단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이른바 예방 외교(Preventive Diplomacy)를 추구해왔다. 한(조선)반도에서 그러나 지금 한(조선)반도의 상황은 질적으로 변동하고 있다. 앞으로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체제 정착과 통일국가 수립의 역사적 경로와 성격은 이 양대 전략의 대치선에서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 의식은 북(조선)이 과연 미국이 추구하는 관여와 확장의 범위와 수준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것과 미국은 과연 북(조선)이 추구하는 협상과 공존의 범위와 수준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이 관여·확장 전략을 한(조선)반도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은 냉전 시기에 작동했던 이른바 두 코리아 정책(Two-Korea Policy)의 궤도를 수정하여 이른바 유도·편입 정책(Inducement-Incorporation Policy)을 수행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유도·편입 정책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성격으로 변질되도록 유도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안으로 편입시킨다는 의도와 의지를 담고 있다. 남(한국)에서는 이것을 흡수 통합(integration by absorp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 북(조선)이 당면한 문제는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 및 유도·편입 정책에 대응력을 갖추는 일이다. 북(조선)은 이 대응력을 체제 수호라는 소극적, 수동적인 명분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협상·공존 전략의 수행에서 찾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전략 대치선의 변동과 남·북·미 관계

이러한 전략 대치선의 변동은 남(한국)의 처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남(한국)은 자신의 '적대자'인 북(조선)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커다란 지각 변동 속에서 당혹과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 남(한국)은 전략 대치선의 변동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 미국과 정치·군사적 관계를 더욱 의존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평양-워싱턴-서울의 삼각 관계에서 평양-워싱턴 관계가 가까와질 수록 서울은 그 관계 개선을 반대하면서, 이른바 남북 사이의 평화 체제를 수립하자는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반대 의사를 관철하려는 목적으로 워싱턴에 대해서 더욱 밀착·의존된 관계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조·미 관계 개선이 진척되면 남(한국)의 대미 의존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예시해주고 있다.

최근 대통령 김영삼의 미국 방문과 한·미 국방장관의 호놀룰루 회담을 살펴보면 이러한 대미 의존성의 증대현상이 드러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미 알려진대로, 이 두 사건에서는 각각 새로운 형태로 대미 의존 관계의 강화를 위한 포석을 놓았다. 지난 7월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외무차관급 이상이 참가하는 새로운 안보 협의체인 '대북 공동 전략 고위 협의체'를 오는 11월 한·미 연례 안보 협의회 이후 서울에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에 하와이에서 열린 제2차 세계 대전 50주년 기념 행사에 참가하고 있던 국방장관 이양호는 1995년 9월 1일 미 국장장관 윌리엄 페리와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는 주한유엔군사령부가 북(조선)에 제의한 바있는 유엔군 대표 4명 (미군 장성, 남[한국]군 장성, 영국군 장성, 그 밖의 참전국 장성)이 참가하는 회의 이외에 군사정전위원회와 관련된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겠다고 합의하고, 현재 가동하고 있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뿐만 아니라, '한·미 중장기 안보협의체'를 새로 창설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장기적인 군사동맹회의로서, 미국은 앞으로 조·미 관계 개선과 중국의 영향력 증가, 일본의 군사적 진출이 이루어지게 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역내 질서를 변동시키지 않으려 하는 사정 때문에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북(조선)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 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협상·공존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외교 환경을 조성해 가는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국)이 가입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완전히 배제된 비동맹 회의가 이러한 외교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적지로 떠올랐다. 북(조선)이 비동맹 외교를 가동하려는 것이다. 1995년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에서 열린 비동맹 정상 및 외무장관 회의(NAM)에서 정전협정 체결국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비동맹 회의 이름으로 채택하려 했던 움직임이 그것이다. 이 움직임을 포착한 남(한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유엔 주재 대표부 차석대사를 파견하고, 의장국의 특별 초청을 받은 자격으로 이 회의에 참석하려고 애를 썼으나 좌절되고 말았다. 비동맹 외교 무대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남(한국)은 북(조선)의 외교 공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남(한국)은 이러한 북(조선)의 외교 공세 앞에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남(한국)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은 미국과 유엔을 통한 외교 통로 밖에 없다. 남(한국)은 중국을 끌어당겨 조·미 평화조약 체결을 지향한 관계 개선 추세에 제동을 걸려고 했으나, 이것은 기대한 것만큼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미 연락사무소 개설에 관한 평양 회담 개최와 때를 맞춰 남(한국)이 조·미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를 북(조선)이 '화학무기 금지협약(Chemical Weapons Convention)'에 가입하는 문제와 연계시켜 달라고 미국에 공식 요청한 것은 바로 이러한 외교 불안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통일·외교·안보 문제에 관한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 나선 민자당 의원 이세기가 "미국이 북한에 접근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를 담보로 하여 경수로 비용은 우리에게 지워놓고 미국 자신은 핵문제 해결보다는 동북아질서 재편성이라는 고차원의 전략에서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한 발언에도 그러한 외교 불안감이 스며있다.

다른 한 편 유엔 무대에서 남(한국)은 북(조선)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연설을 통해 북(조선)에 대한 외교 공격을 퍼부었고, 이것은 유엔을 무대로 한 남북의 '인권 공방'으로 번졌다. 남(한국)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우성호 사건, 안승운 목사 사건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UNHCR)에 정식으로 제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1995년 9월 30일 제3차 남북 대화는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끝났다. 베이징에서 열린 이 회담에서 남(한국)은 첫날부터 대남 비방을 중단하고, 김용순 비서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우성호 선원을 즉각 송환하라고 요구하면서, 경제 협력안을 제시했다. 또한 수재 지원을 받으려면 당국자 간의 협상으로 격을 높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현재의 쌀협상이나 수재 지원 협상을 남북 당국자 협상으로 전환·격상시킴으로써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제 수립 문제를 남북 당국자 협상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로 보이며, 조·미 관계 개선에 제동을 걸고, 조·미 관계 개선으로 발언권과 협상 주도권을 잃어버린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남(한국)의 대응책이었다. 그래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조선) 수석대표인 전금철 대외경제협력위원회 고문에 대해 그러한 비공식 직함 대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공식 직함을 사용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남(한국)은 제4차 회담 장소는 반드시 한(조선)반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3국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에서 회담을 하게 되면 자연히 당국 협상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남(한국)이 조·미 관계 개선 추세에 완전히 밀려나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개선 추세를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로 변경시켜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는 강한 의지와 이를 반대하는 북(조선)의 의지가 대립하고 있다. 북(조선) 대표들은 이러한 남(한국)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하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남쪽이 쌀과 정치를 직결시키는 전략을 써서 순수한 목적의 쌀회담이 결국 결렬되었다. 남쪽은 동족을 우롱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조·미 관계 개선이 진척되는 과정 초기에 남북 관계의 냉각 상태는 일정 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남(한국)이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과연 조·미 관계 개선이 곧 남(한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일까? 북(조선)이 주장하는대로,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기초한 조·미 관계 개선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하기 위한 남북 당국자 간 협상 재개를 촉진시키고 그 결과 한(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하는 새로운 국면이 열린다면, 남(한국)은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 수립이 왜 자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는 것일까? 『뉴욕타임스』는 서울에서 북(조선)에 관한 자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마이클 브린의 말을 빌려, "미국과 북(조선) 사이의 분리된 평화 협정은 남(한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고 한(조선)반도에 포괄적인 평화를 향한 길을 열어놓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4) 북(조선)과 미국의 새로운 전략 구상

어느 나라든지 교착 상태에 빠져있는 대외 정세에 돌파구를 내려고 할 때는 자국의 정책구상을 언론을 통해 외부에 흘려주거나, 민간 통로를 통해 자국의 정치적 의사를 상대방에게 간접적으로 전달하면서 상대방의 반응을 탐지하는 게 일종의 관례처럼 되어 있다. 1994년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다국적 동맹 세력이 이른바 '핵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드센 압박을 가하고, 이에 대하여 북(조선)이 한 치도 양보하지 않을 기세로 맞서고 있었던 '핵위기의 긴장'이 한(조선)반도에 뒤덮혀 있을 때, 미국이 평양에 보낸 사람이 셀릭 해리슨이었는데, 그때 그는 조·미 대결 분위기의 극적 반전을 이끌어내는 민간 통로의 구실을 맡은 바있다. 해리슨이 지난 1995년 9월 19일부터 한 주간 동안 북(조선)을 방문하고 서울에 가는 길에 일본에서, 그리고 서울에 들어가서 발표한 내용은 그가 지난 번에 이어 다시 조·미 관계 개선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놓을 수 있는 민간 통로의 구실을 맡았다는 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1995년 9월에 북(조선)이 셀릭 해리슨을 통하여 밝힌 자국의 새로운 정책 구상은 미국이 1995년 2월초에 발표한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전략'에 대한 일종의 대응 방침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북(조선)은 셀릭 해리슨의 발언을 통해 자국의 새로운 정책 구상을 미국에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정책 구상이 협상·공존 전략에 기초하고 있는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북(조선)이 해리슨을 통해 미국에게 밝힌 새로운 정책 구상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평화 협정(조약) 체결 문제와 관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관련한 것이다. 해리슨의 발언 내용에 나타난 북(조선)의 대미 인식 및 새로운 정책 구상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① 북(조선)은 미국이 남(한국)과 공조하여 북(조선) 체제를 변질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체제 붕괴를 꾀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이 한(조선)반도에서 결국 유도·편입 정책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한 데서 생길 수 있는 경계심이다.

② 북(조선)은 현재 조건에서 조·미 평화 조약 체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평화 조약 체결이 조·미 관계 정상화의 전제 조건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주한유엔군사령부의 해체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③ 북(조선)은 조·미 평화 체제(체계)가 이루어져야 남북 당국자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④ 북(조선)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상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평화 체계(new peace mechanism)'를 구상하고 있다.

⑤ 북(조선)은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대신, 현 정전 체제를 '새로운 평화 체계'로 전환하기를 바라고 있다. 해리슨의 말을 따르면, 김영남 외교부장은 주한미군이 남(한국)에 주둔하는 상황에서도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북(조선) 관리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주한미군의 철수가 동북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으며, 특히 일본의 재무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고 한다.

⑥ '새로운 평화 체계'란 먼저 '조·미 상호 안보협의위원회(Mutual Security Consultive Committee)'를 구성하고, 이 협의체가 가동되는 시점에서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시키는 이중 구조의 평화 보장안을 뜻한다.

해리슨이 전한 북(조선)의 구상에 관련하여 먼저 주한미군 용인론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미 알려진대로 지난 시기 북(조선)은 정전 상태의 유지와 주한미군의 주둔을 대미 예속성의 근거라고 규정하면서, 먼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자주성을 확립하는 것이며, 자주성을 확립해야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정전상태의 유지와 주한미군의 주둔은 곧 조국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며, 미국이 두 코리아 정책(Two-Korea Policy)을 수행하는 발판이라고 보았다. 정전 상태의 유지와 주한미군의 주둔이란 자주적 평화통일의 실현과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의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북(조선)은 이러한 기존 정책을 수정하였다는 견해를 해리슨을 통해 거듭 밝히고 있다. 사실 주한미군 주둔 용인론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이미 1992년 1월 22일 뉴욕에서 열린 조·미 고위급 회담에서 김용순 비서가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며, 연방제 통일 뒤에도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단계적으로 철수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있고, 같은 해 6월 23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남북 통일에 관한 6개국 회의'에서 리삼로 대표(당시 조·일 수교 교섭 대표)는 통일 전에 남북이 외국과 체결한 모든 조약은 통일 뒤에도 존중되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인정한다고 밝힌바 있다. 지금까지 북(조선)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하여 밝힌 견해와 주장을 살펴보면, 1954년에 나온 주한미군의 즉각적, 전면적 철수안→ 1987년에 나온 평화와 통일의 선결 조건으로서 주한미군이 단계적,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안→ 1990년에 나온 남북 군축에 상응하는 비율로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안→ 1992년에 나온 통일 전까지 주한미군 주둔 용인하고, 통일 이후에 주한미군을 단계적,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안으로 차츰 변화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북(조선)이 주한미군을 어떤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군축 문제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군축을 위한 선행조건, 곧 군축을 위한 신뢰 구축 조치(confidence-building measures)로 생각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여기서 북(조선)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군축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뢰 구축 조치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주장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만일 북(조선)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신뢰 구축 조치의 차원에서 보고 있다면, 주한미군 주둔 용인론을 내놓은 북(조선)은 앞으로 조·미 협상을 통해서 아무리 요구해도 미국의 완강한 반대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요구하면서 조·미 사이의 신뢰 구축 조치를 추구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북(조선)이 구상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가 아닌 다른 방식의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란 과연 무엇일까?

북(조선)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는 말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자면, 그것은 한(조선)반도와 동아시아지역에 드리운 미국의 현존 지배 질서를 '현실적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며,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 및 유도·편입 정책을 일정한 범위에서(전면적으로가 아니라) 용인하겠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신뢰 구축 조치, 곧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아닌 새로운 신뢰 구축 조치란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을 '일정 범위에서' 인정하는 대신 요구하고 있는 조건과 결국 동일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북(조선)이 구상하고 있는 새로운 신뢰 구축 조치의 선결 조건이란 연방제 통일 방안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지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북(조선)은 만일 미국이 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하게 되면, 그것은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은 조건에서도 미국이 북(조선)과 신뢰 구축 조치를 취한 것이 되며, 그 신뢰 구축 조치 위에서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은 미국이 연방제 통일안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게 되면 남(한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연방제 통일을 향한 결정적인 국면이 열리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만일 연방제 통일의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게 되면, 한(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 체계 수립 문제도 그 바탕 위에서 해결하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북(조선)의 새로운 평화 체계(체제) 수립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북(조선)은 여기서 정전 체제와 정전 협정을 서로 구별하고 있으며, 평화 체계(또는 평화 보장 체계)와 평화협 정(또는 평화 조약)을 서로 구별하고 있다. 이것은 북(조선)이 이미 사문화(死文化)된지 오래 된 정전 협정, 그리고 그 사문화된 정전 협정을 유지하는 제도적 장치인 군사정전위원회가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진 현재 상황에서 정전 체제란 정전 협정을 준수하고 군사정전위원회를 가동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 연합군과 북(조선)의 정치·군사적 대치 균형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앞으로 평화 보장 체계를 수립하려면 무조건 평화 협정(조약)부터 체결해야 한다고 인식해오던 고정 관념을 일단 수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평화 보장 체계의 수립을 통하여 북(조선)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로동신문』에 나온 "우리와 미국 사이에 새로운 평화 보장 체계가 수립되면 조선반도 정세는 완화되고 북남 합의서 리행도 순조롭게 될 것이며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없다"고 한 주장에 드러나있다.

북(조선)의 새로운 평화 체계 수립론에도 주한미군 철수론과 마찬가지로 단계적, 점진적 과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한(조선)반도의 평화는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고위급 정치·군사 협상을 시작하고 이를 상호 안보협의위원회(mutual security consultive committee)로 정착시켜가는 점진적, 단계적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상호 안보협의위원회의 창설이란 평화 협정(조약) 체결로 나아가는 복잡하고 긴 협상 과정에서 거쳐가게 될 '중간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셀릭 해리슨이 전하는 북(조선) 군부 고위급의 말을 들어보면, 이러한 상호 안보협의체 창설 문제에 대해서 먼저 제의한 쪽은 놀랍게도 미국이었다고 한다. 해리슨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5월 19일 (1995년도를 뜻함-인용자 주) 미국은 북한측에 대해 양측 군 실무자간의 협의를 제의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북한측 인사들의 말을 빌리면 미국은 추후 장성급 접촉을 준비하기 위한 실무 협의체(mutual security consultive committee)를 구성하자고 제의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지난 12일까지 열 차례의 영관급 실무회담이 열렸으며 그 결과 지난 21일 양측간 장성급 회의를 갖기로 잠정 합의하였으며 미국측 대표로 군사정전위 미국측 대표인 공군 소장 넬스 러닝이 내정됐다고 합니다. 양측 대표와 구성인원·회의절차까지 포함돼 있는 잠정 합의문을 이찬복이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일 회의 석상에 미국 장성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는 한국 정부의 방해 공작 때문이었을 것이라면서 이찬복은 분개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한국 정부의 방해 공작"이라는 것은 이 회담을 개최하기 직전에 주한미군사령관 게리 럭이 남(한국)의 이양호 국방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조·미 장성급 회담 개최 방침을 통보했을 때, 이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던 사건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9월 21일자로 예정되었다가 성사되지 못했던 조·미 장성급 판문점 회담을 대신하여 미국은 결국 두 달 뒤인 11월말에 남(한국) 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평양 비밀 접촉을 성사시켰다. 남(한국)의 언론 보도를 따르면, 이 비밀 접촉은 "미군의 장성급 협상팀이 지난해 (1995년을 말함-인용자) 11월 중순께 예비 실무접촉을 거쳐 11월 말께 극비리에 평양에 들어가 북한 군부의 핵심 실세 그룹과 미·북한 군사 현안에 대해 협의했으며, 협의 내용 중에는 미군의 주요 관심사인 미군 유해 송환 문제를 비롯해 미국 군부와 북한 군부의 향후 역할 조정 및 경제 협력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 언론 보도에 나타난 조·미 비밀 접촉의 윤곽을 더 들여다 보면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① 조·미 비밀 접촉을 위해 북(조선)에 들어갔던 미국 대표는 정보 계통에서 일하는 예비역 준장이었다는 점. 이 언론은 정보 계통 인사가 대표로 된 것은 그 동안 이 접촉을 추진해온 그룹이 미군 정보 기관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미국이 현역 장성을 내세우지 않은 까닭은 남(한국)의 반대를 의식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당시 미국은 북(조선)과 예비 접촉을 벌이던 11월 17일께 이 사실을 남(한국)에 통보했다고 한다.

② 조·미 비밀 접촉에 나선 북(조선) 대표는 이하일 당 군사부장이었다는 점.

미국은 조·미 장성급 판문점 회담에 대해서 남(한국) 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나오고 있는데, 1996년 1월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커트 캠벨(Kurt Campbell)은 남(한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미 장성급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한국 정부의 정책 재검토 작업이 긍정적 결과가 되게 도와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북(조선)은 조·미 장성급 판문점 회담에서 논의하게 될 상호 안보협의위원회 구성 문제를 잠정 협정 체결 문제와 결부하고 있다. 1996년 2월 22일에 발표한 외교부 대변인 담화는 조·미 "잠정 협정을 채택하며 조·미 공동 군사기구를 내오는 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해당급에서 협상이 진행되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있다. 이 담화에서는 조·미 군사 공동기구가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신하여 앞으로 체결될 잠정 협정을 이행하고 감독하게 될 것임을 밝힌 바있다.

북(조선)은 평화 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조·미 협상의 내용과 성격을 단순히 정전 체제 대체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정치·군사·경제 문제를 모두 아우르는 안보 문제로 확대하여 상호 안보 협의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새로운 평화 체제가 한(조선)반도의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포괄적이고 동반자적인 안전 보장 체계여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셀릭 해리슨과 강석주 부부장의 대화에서 강 부부장은 "미국이 안전 보장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북[조선]을 뜻함-인용자 주)과 미국이 동반자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즉 공화국의 남한에 대한 침략 위협 뿐아니라 남한의 공화국에 대한 침략 위협을 양국이 모두 방지한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공화국과 미국 둘 다가 안전 보장자가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는 1996년 4월 28일 미국 조지아대에서 열린 남·북·미 관계 학술회의에서 북(조선)의 리종혁 당 부부장이 "미군이 한반도에서 평화 유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현재는 미군이 신뢰 구축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고 한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만일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 상호 안보협의가 시작된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무엇보다도 관심을 끄는 문제는 미국은 주한미군의 성격과 임무를 바꿀 수 밖에 없으며, 북(조선)은 성격과 임무가 달라진 주한미군에 대해서 그 주둔을 용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의 성격과 임무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 미국은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채택했기 때문에, 지난 냉전 시기 동안 북(조선)을 망나니 정권(rogue regime), 부랑자 국가(pariah state), 반동 국가(backlash state)라고 비난·공격하면서 북(조선)을 적성국으로 규정하여 적대 의사를 표명해왔던 봉쇄·대결 전략을 적어도 '선언적으로는'(실제로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유지하고 있지만) 포기해야 했다. 이제 미국에게 넘어간 숙제는 이러한 '선언적 조치'에 걸맞게 북(조선)을 겨냥한 공격 의지와 한(조선)반도에서 그 의지를 발동하여 시행해온 대규모 군사 훈련, 군비 증강을 포기함으로써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을 탈냉전 전략 변화에 맞게 변경하는 일이다. 이것은 탈냉전 전략의 일단계 조치로 볼 수 있는 군사위협 해소와 군비 동결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한(조선)반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안보 질서를 탈냉전 시기의 전략 환경에 맞게 변화시키는 더 광범위한 숙제와 맞물려있다. "앞으로 10년간 이 지역에서(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뜻함-인용자 주) 가장 극적인 변화는 한반도 통일을 향한 진전이 될 것이며 이는 현재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 3만6천명의 상당한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적 발언에 미국은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미국은 관여·확장 전략에 기초하여 한·미 안보 질서의 기본 성격을 탈냉전적인 내용으로 조절·수정하고, 그 안보질서를 미·일 안보 질서와 함께 동아시아의 포괄적인 안보(comprehensive security)를 추구하는 새로운 안보 장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며, 그에 따라 주한미군도 역내의 포괄적인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담보 무력으로 그 존재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셀릭 해리슨이 전한 북(조선)측의 말을 들어보자.

"단지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냉전 체제 해체 후 한반도 주변 정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리와 러시아의 상호 방위조약이 끝났고 중국은 남한과 더 가까운 현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안보 역할도 당연히 바꾸어야 한다. 미국이 남과 북 사이에서 완전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남한과 미국 사이에 상호 안보조약이 유지되고 있는 만큼 우리와 미국 사이에도 정전 협정 대신 새로운 평화 체제가 유지되면서 평화 유지 역할을 해야만 균형이 잡힌다. 미국은 이같은 균형자적 역할을 하면서 그 대가로 우리에게 경제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에는 이같은 군사적 측면만이 남아있다. 군사 긴장이 해소될 때까지 미군은 주둔할 것이고 한·미 상호 방위조약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정치, 외교 등의 분야에서까지 미국이 남한에 대해 책임질 것은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존 안보 질서의 성격 변화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지난 1993년 초부터 1995년 말까지 미국의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와 국방부 산하의 연구 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공동 연구한 연구 결과에서 밑그림을 찾아볼 수 있다. 「21세기를 지향한 한·미 안보 협력 방향」이라는 제목이 달린 이 공동 연구는 두 나라 정부가 주도하여 추진한 것으로서 일종의 '준정부 정책'으로 볼 수 있다. 이 공동 연구의 최종 결과는 "남북한 화해 및 통합 시기와 통일 이후에는 지역 안보 동맹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고 하는데, 지역 안보 동맹은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대치 상태를 유지해온 기존의 한·미 안보 동맹이 그 기본 성격을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주한미군은 북(조선)에 대해 겨누어온 대결 지향성을 버리고 그 대신 동아시아의 지역 안보를 보장하는 포괄적 안보 기능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남(한국)의 한 언론이 정리해놓은 지역 안보 동맹 이후의 상황 변화를 다시 정리해보면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① 주한미군이 상당 부분 철수하게 된다.

② 주한미군은 한(조선)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태에 대응한다.

③ 현재 남(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휘권은 남(한국)군에게 넘어간다.

④ 지역 안보 동맹에 미국과 남(한국) 이외의 동북아지역 국가들이 포함되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없다.

⑤ 지역안보동맹이 동북아 다자간 협력 안보 체제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도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없다.

한(조선)반도의 안보 구조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다른 나라의 역사적 경험과 관련지은 유추 해석을 통해 미래를 전망할 도리 밖에 없다. 이미 알려진대로,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진영은 지난 냉전 시기 소연방을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지니고 있었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주독미군을 그대로 존치시킨 채 러시아와 안보 협의를 지속·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져준다. 물론 이러한 전략 환경의 변화는 소련·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시사점을 보면서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미국이 미국·러시아 관계 개선은 곧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해체와 주독미군의 철수라는 등식으로 성립된다는 고정 관념을 넘어서서, 기존 안보 질서의 형식을 존치시킨 채 러시아와 동구지역에 대한 관여·확장 전략 및 유도·편입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조·미 관계 개선을 통해 한(조선)반도의 전략 환경이 변화되면, 조·미 수교는 곧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해체라는 등식으로 성립된다는 고정 관념을 수정하게 하는 역사적 경험이 될 수 있다.

또한 유럽에서 냉전 시기의 집단 안보 체제(collective security regime)인 북대서양 조약기구를 대체하지 않는 새로운 협력 안보 체제(cooperative security regime)인 유럽 안보협력회의(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를 창설한 것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유럽 지역이 재래식 군비 감축에 성공하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킨 과정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① 지난 시기 양대 진영이 상호 적대 의사를 포기한 탈냉전이라는 전략 환경의 변화가 군축을 이끌어내게 되었다는 점.

② 지난 시기 소련·동구 진영과 서방 진영 사이에서 정치·군사 협상의 타결(상호 안보 대화)을 통하여 군축을 위한 실질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점.

③ 재래식 군축의 구체적인 방안을 합의하고 이를 이행했다는 점.

유럽 지역에서 기존 안보 질서의 변화는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전략 환경의 변화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 기존 안보 질서의 변화는 한(조선)반도에서 조·미 협상을 통한 정치·군사적 긴장 완화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북(조선)과 미국이 상호 적대 의사를 포기하고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상호 합의를 통해 창설하게 될 조·미 상호 안보협의위원회는 정치·군사 협상의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두 나라는 이 협의체를 통하여 재래식 무기 감축을 통한 긴장 완화, 기습 공격 및 대규모 공격 작전 능력의 제거를 추구하는 정치·군사 협상부터 시작할 될 수 있을 것이다. 북(조선)이 조·미 안보협의체 창설 구상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한(조선)반도의 긴장 완화와 실질적인 재래식 군비의 감축이다. 평화 보장 체제는 군비 감축이 없이는 수립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를 보더라도 유럽 안보협력회의가 진전되는 과정과 함께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바르샤바 조약 국가들 사이에서 병력 수준에 관한 협정인 유럽 재래식 무력 협정(Conventional Forces in Europe 1A agreement)이 체결되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북(조선)이 조·미 안보 협의를 통하여 군비 감축을 추구할 것이라는 예상은 북(조선)이 이미 오래 전부터 한(조선)반도의 군축 문제를 평화 보장 체계 수립론과 통일국가 수립론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논리적 뒷받침을 받는다. 북(조선)은 평화 보장 체계가 수립되면 "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획기적인 상황이 도래할 것이며 련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도 마련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북(조선)에서 주한미군 감축 문제(완전 철수가 아니라 감축이다.)를 비롯한 남북의 군축 문제는 조국통일 정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서울-평양-워싱턴 당국은 조·미 상호 안보협의위원회의 창설이 기존의 한·미 안보동맹 관계를 대체하거나 그 안보동맹 관계의 유지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으며, 기존 안보 질서의 틀을 그대로 존치시킨 상태에서도 새로운 안보 협의체를 창설할 수 있다는 점을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조선)반도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인 군축 문제는 미국 '관·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상황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은 이 문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 북(조선)은 잠정적, 비공식적으로 조·미 상호 안보협의체 창설 구상에 견해 일치를 보기는 했지만, 미국은 이 구상이 주한미군 감축 문제와 연결되었다는 점을 구실로 이 구상을 외면하는 대신, 자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다자간 협력안보 체제를 창설하고, 그 안에 북(조선)을 끌어들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협력안보 체제를 창설하는 문제는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주변 열강의 이해 관계와 남북의 이해 관계가 매우 날카롭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의도대로 간단하게 성립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미국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다자간 협력안보 체제를 창설하는 조건을 성숙시켜 가려면 역내 전략 환경 변화 과정에서 주도력을 확보해야 하며, 이 주도력은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체계를 수립해나가는 추진 과정에서 확보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은 동북아 다자간 협력안보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도 현재의 조·미 관계 개선을 상호 안보협의체 창설이라는 차원으로 높혀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미 관계 개선이 일정에 오른 지금, 미국이 기존의 한·미 연례 안보회의를 존치시킨채, 한·미 중장기 안보 협력을 위한 새로운 협의체를 창설하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다. 조·미 관계 개선이 연락사무소 개설이라는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점에서, 한·미 사이에서 새로운 안보 협의체를 창설하려는 움직임과 조·미 관계 개선 사이에는 과연 아무런 연관이 없을까? 미국은 조·미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앞으로 유해 외교 협상의 성사를 통한 유해 발굴 공동사업 추진,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 미사일 문제에 관한 조·미 협상 개최 등으로 관계 개선 분위기를 잡아가면서 그 개선 범위 안에 조·미 상호 안보협의위원회를 창설하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미 관계 개선은 비록 느린 속도로 진척되겠지만, 결국 그 종착점이 두 나라 사이의 국교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연락사무소 개설에서 국교 수립까지 이어지는 긴 과정에서 조·미 상호 안보협의가 시작되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북(조선)은 한(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 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결국 남·북·미 3자 사이의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3자 대화는 일원화된 3자 대화가 아니라 조·미 대화와 남북 대화라는 이원화된 3자 대화라는 형태로 진행하려는 의도를 표명하고 있다. 이제 미국 정부는 제네바 기본 합의서의 연장선 위에 등장한 조·미 상호 안보협의위원회 창설 구상과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합의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의 가동이라는 이원 구도로 변형된 북(조선)의 3자 회담 개최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고심해야 한다. 북(조선)의 새로운 정책 구상이 해리슨을 통해 밝혀졌을 때, 주한 미대사관의 공사 카트만은 "북(조선)의 제의가 표면상 잘못된 것이 없고,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는 정전 체제가 사실상 마비된 조건에서 미국이 북(조선)과 관계 개선을 추구해야 하는 지금, 문제 해결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북(조선)의 구상과 제의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견해(비록 비공식 견해지만)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전 북(조선)과 미국이 '핵문제'를 놓고 날카롭게 대결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상대방의 주장과 제안을 서로 일정 정도 수용하고 타협했듯이, 한(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 체계를 수립하는 문제도 상대방의 전략과 정책을 서로 일정 정도 수용하고 타협하면서, 타결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정치 판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 셀릭 해리슨의 아래 발언은 설득력이 있다.

"금방 효과는 없을 것이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봤을 때 미국과 남한의 정책 변화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북미 핵문제가 잘 해결되면 연락사무소가 설치될 것이고 거기서 상호 신뢰가 쌓이면 경제 관계도 진전될 것입니다. 이처럼 북미 관계가 진전되면 자연히 남북 관계도 진전될 것이고 그러면 이같은 새로운 평화 체제의 실현에 도달하지 않겠는가라고 전망합니다."

 

(5) 북(조선)이 내놓은 두 가지 전제 조건

해리슨이 전한 내용을 살펴보면, 북(조선)은 미국이 두 가지 전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첫째는 미국이 유엔군 사령부를 해체하는 문제다. 주한미군은 명색만 남은 유엔군의 '낡은 깃발'을 아직도 내리지 않고 있으며, 지금까지 북(조선)을 상대할 때마다 유엔군의 '모자'를 쓰고 나왔다. 정전 상태를 관리해온 군사정전위원회가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진 오늘 이 위원회의 형식(내용이 아니라)을 그나마 유지해오고 있었던 일방이었던 유엔군 사령부도 마지막 존립 근거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여전히 유엔군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는 까닭은 조·미 평화 회담 제안(잠정 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안)을 피하고 기존의 정전 체제를 유지하려는 목적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직접적인 조·미 평화 회담 제안을 피하고 있는가? 그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관여·확장 전략 및 유도·편입 정책을 수행할 만한 주객관적 조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 새로운 전략과 정책을 수행할 조건을 성숙시키기까지는 냉전시대의 봉쇄·대결 전략의 핵심 구조인 현 정전 체제를 어떻게 해서든지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유엔군의 깃발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추구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한(조선)반도에서 수행할 수 있는 조건, 즉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계 수립과정과 통일 실현 과정(미국으로서는 '통합' 실현 과정이라고 인식할 것이다)에 깊이 관여하여 미국의 이익 추구 판도를 전반도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한(조선)반도 평화 체계 수립 및 통일 실현의 성격과 방향을 이끌어가고, 궁극적으로는 북(조선)에 자본주의 체제를 확장·이식하여 북(조선)을 자본주의 질서 안으로 유도·편입하는 것을 뜻한다. 미국은 이러한 관여와 확장의 전략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북(조선)의 자주적 국가 역량을 약화·무력화시켜 의존·종속의 길로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만일 미국이 지금 상황에서 직접적인 조·미 군사 협상 요구에 응한다면 그것은 북(조선)의 정치·외교적 위상을 강화시키고 남(한국)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불행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이 직접적인 조·미 군사 협상을 피하고 유엔군의 이름을 앞에 내세우는 한, 새로운 평화 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조·미 상호안보협의위원회의 창설은 실행에 옮길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북(조선)의 당면 과제는 주한미군이 쓰고 있는 '유엔군 모자'를 벗겨내고 직접 협상의 구도를 수립하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이 새로운 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하는 문제다. 여기서 우리가 북(조선)의 연방제 통일안을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논의하는 까닭은 북(조선)이 연방제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제기했던 주한미군 철수론과 조·미 평화 협정 체결론을 양보한 연방제 통일안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만일 북(조선)이 조·미 상호 안보협의를 시작하는 것을 조건으로 남(한국)의 자원·시장·기술에 대한 미국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미국의 시장·자본·기술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 북(조선)에 진출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그리하여 그 대가로 성격과 임무가 변경되고 규모가 크게 축소된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미국도 이러한 변화된 전략 환경 속에서 연방제 통일안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미 상호 안보협의를 추진한 이후 변화된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연방제 통일은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의 기존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통일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이 지금까지 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할 수 없었던 주요 원인은 북(조선)이 연방제 통일의 전제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조·미 평화 협정 체결을 주장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위에서 검토했듯이 북(조선) 정책의 초점이 주한미군 주둔 용인론과 조·미 상호 안보협의 추진론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면, 미국이 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평화 체계 수립론과 주한미군 주둔 용인론에 관한 북(조선)의 견해는 1995년 8월 11일에 발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비망록」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미국이 정전 체계를 평화 보장 체계로 바꾸는 문제를 담당해야 한다. (줄임) 미국이 이미 조·미 기본 합의문을 통해 공약한대로 조선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담보하는 실천적 행동에로 넘어가려면 낡은 정전 체계를 대신하는 새로운 평화 보장 체계를 수립하는 데로 지향해야 할 것이다"고 밝히면서도, 조·미 평화 조약 체결론과 주한미군 철수론은 내놓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 사이의 평화 체계 수립론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까지 북(조선)은 남북의 평화 체계 수립에 관한 협상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채택·발효시킨 이상 이미 완료되었고, 이행 문제만 남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북(조선)은 이번에 새로운 정책 구상을 보여주면서, 미국이 조·미 관계 개선 속도를 늦추는 명분이 되고 있는 남북 대화의 재개를 거부해왔던 종래의 방침을 스스로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것은 북(조선)이 조·미 관계 개선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의 속도·방향·수준을 결정하려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북(조선)의 새로운 정책 구상에 대하여 셀릭 해리슨은 조·미 상호 안보협의위원회의 창설과 남북 공동 군사위원회의 가동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미국이나 남(한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점과 남북 양쪽의 전방 배치군의 철수나 감축을 통해 군사분계선의 긴장을 완화하는 구체적인 신뢰 구축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북(조선) 관계자들에게 지적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북(조선)은 동시적 이원 접근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두 문제가 상호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동의하고, 남북 전방 배치군의 철수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감축 문제는 논의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나타내 보였다고 했다.

북(조선)은 남북 협상 보다 조·미 협상를 선행하려 하고 있다. 남(한국)은 이러한 전략을 통미봉남(通美封南) 또는 친미배남(親美排南)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북(조선)이 평화 체계 수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미 협상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려는 까닭은 한·미 동맹이 두 나라 사이의 대등한 동맹 관계가 아니라,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자의적 동맹'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셀릭 해리슨의 발언을 통해서 전해진 북(조선)의 정책 구상은 선 조·미 협상, 후 남북 협상으로서 선미후남(先美後南)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북(조선)이 남(한국)을 배제하거나 남북 협상을 거부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또는 현실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남(한국)의 보수적 견해는 북(조선)이 종전처럼 평화 협정 체결을 그대로 주장하든, 아니면 새로운 평화 체계 수립을 주장하든 간에 그것은 한결같이 남(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협상하여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바꾸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파악하면서, 남북 협상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남(한국)이 한국(조선)전쟁의 '법적 당사자' 가운데 일방이며, 한(조선)반도에서 북(조선)에 대해 무력을 대치하고 있는 '법적 당사자'가 남(한국)이라는 그릇된 전제를 깔고 있다.

이제 북(조선)과 미국은 조·미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조·미 협상이 한·미 안보동맹 관계를 침해·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남(한국)에게 납득시켜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미국은 "세계 전략적인 견지에서 볼 때 한·미 동맹 관계의 원래의 바탕은 사라졌다. 지금 미국은 내부 분쟁의 양쪽 당사자가 모두 미국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데도 한쪽 편을 드는 데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고 말한 셀릭 해리슨의 지적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미국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냉전 시대의 한 복판, 그러니까 베트남에서는 '열전'이 벌어지고 있던 긴장된 시기였던 1968년에 일어난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에 얽혀있는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남(한국)을 완전히 배제한 채 진행된 조·미 협상에 대해 남(한국)이 반발하자 미국이 한·미 안보장관 회의의 구성과 남(한국) 군수 산업의 육성을 무마책으로 제시했던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이제 탈냉전 시대에 남(한국)에 제공할 미국의 새로운 무마책은 과연 무엇일까? (1995년 10월 작성, 뒤에 가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