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바뀌고 있는가

한 호 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들어가는 말

이 글의 목적은 1997년 이후 워싱턴에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어떻게 논의되었는가를 알아보려는 데 있다. 이 글이 다루고 있는 범위를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이 1997년 초 이후 한(조선)반도 군사정세를 어떻게 조성하려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대북정책을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 글은 미국 연구기관들의 자료, 미국과 남(한국)의 언론 보도자료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하였다. 미국은 대외정책 문건을 거의 밖에 내놓지 않으므로 이 글에서 다루지 못했으나,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연구하고, 그 정책 토론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견해와 주장, 그리고 언론 보도에 나타나 있는 정책 추진 방향을 살펴보았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지만, 행정부-정책전문가 집단-언론 이 3자 사이에서 연구·토론·조절 과정을 거쳐 결정되고 집행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책전문가 집단과 언론이 내놓은 견해와 주장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런데 요즈음 남(한국)의 연구자들이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를 다루면서 써내놓고 있는 논문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통일문제를 남북문제로 좁혀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남(한국)의 통일학 연구자들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과 통일정세의 연관성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까 이러한 현상이 생겨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통일정세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어떤 연구자가 통일학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만일 미국의 대북정책과 대남정책에 무지하거나 고개를 돌리고 자기의 연구 관점과 분석 방향을 남북관계, 북(조선) 내부와 남(한국) 내부의 현실로만 좁혀놓으면, 그것은 '반쪽짜리 연구'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반쪽짜리 연구' 때문에 반신불수가 되어 절뚝거리고 있는 통일학의 풍토를 넘어서야 한다. 통일학은 '나머지 반쪽'을 연구대상으로 삼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바로 여기에 통일학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까닭이 있다.

(2) '대나무 체계'와 남(한국) 군축 선행론

1. '대나무 체계'

1998년 3월 13일 베를린에서는 조·미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얼마 동안 그만두었던 미사일 협상을 다시 시작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런데 같은 날 하오 4시 서울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 연병장에서는 주한미군의 육군구성군사령부(ASCC: Army Service Component Command) 창설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베를린과 서울에서 거의 같은 때에 일어난 이 두 사건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군사정세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가려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남(한국)언론은 미국이 미 8군 사령부를 지상군 구성군 사령부로 증강·개편한다는 소식을 한·미연합사 고위소식통의 말을 빌려 이미 1998년 1월 초에 보도한 바있다. 미국은 1997년 초에 '한·미연합사 및 주한미군의 지휘통제구조 개편 계획'을 세웠고, 그해 8월 '을지·포커스 렌즈 한·미 합동군사훈련'에서 이 개편 계획에 의거한 모의훈련을 실시한 바있다.

이처럼 미국은 1997년 초에 본토 미군의 편제 개편과 더불어 주한미군의 전력을 정규 야전군 수준으로 높이고 그 지휘부를 지상 구성군 사령부로 개편하였는데, 주한미군은 이 군사 지휘 체계를 '대나무 체계(Bamboo System)'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대나무(bamboo)를 잘라서 땅에 꽂으면 저절로 번식하듯, 평시에 지휘부를 강화해 놓은 뒤 전시에는 병력만 보강하면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체계라는 뜻이다. 『시사저널』은 "8군을 미국 육군 구성군 사령부로 전환한다는 이 개편안의 취지는 △현재 한·미연합사에 소속된 미군을 전시 독자적 작전 수행이 가능하도록 독립 편성하고 △기존 방어형 대형을 공세적으로 전환하며 △전시 병력 증강이 가능하도록 유연한 체제로 바꾼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남(한국) 언론이 지적했듯이, 육군구성군사령부 창설은 "주한미군이 대대적인 체제 개편을 단행"한 사건이다. 육군구성군사령부는 종전의 8군 사령부 지휘부를 두 배로 증강한 체계다. 이와 함께 미국은 현재 지휘참모부 10여 명으로 편제되어 있는 한·미연합사 예하의 지상구성군 사령부(GCC)를 오는 1999년까지 8월까지 5백명 수준으로 증강하여 연합지상구성군 사령부(Combined Ground Component Command)로 개편하고 있는데, 1997년말 이미 1차로 연합지상구성군 사령부에서 일할 장교 30여명을 배치했다. 미국은 오는 2001년까지 장교급 주한미군을 1천6백명 늘려 "그동안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던 미8군 사령부의 작전 기능을 보강하기 위해 작전분야에 집중배치"하려 하고 있다.

북(조선)은 주한미군의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주한미군의 증강에 대응해 북한이 △지난 3월 21일부터 대대적인 군사 훈련에 돌입했고 △22일에는 평양 시내에서 군대가 시가 행진을 하는 등 무력 시위를 하고 있는 데 대해 '쓸데 없는 정력 낭비'라고 일축"했고, "한국에 증강된 미군은 한국의 안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일 뿐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해외 주둔 미군을 감축하려는 최근의 추세를 거스르면서 주한미군을 증강·개편하고 있는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중앙일보』는 이 문제를 장기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 언론은 주한미군의 증강·개편 조치는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경우 미 태평양사령부 예하의 주한·주일미군을 흡수, 미 국방부가 검토 중인 동북아사령부로" 개편하여 "21세기 동북아 안정의 핵심역할을 수행할 미군 동북아사령부(가칭)의 창설에 대비"하려고 장기적으로 전망하는 조치라고 분석하면서, "미국은 오키나와 미군 성폭행 등의 사례가 보여주듯 주일미군의 장기주둔이 흔들리는 상황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될 경우를 감안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의 증강·개편 조치가 남(한국)의 안보 공백을 메우려는 목적에서 취해졌다는 주한미군의 주장이나 한·미연합사가 해체될 경우에 대비한 조치라고 하는 언론의 분석은 설득력이 없다. 한·미연합사의 해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금, 남(한국)의 '안보 공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관해 밝히지도 않고, 기존의 방어형 군사 지휘체계를 공격형 체계로 전환한 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군사정세에 지배주의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2. 한·미연합군의 무력통합론

미국은 올해도 남(한국)에서 군사력 증강과 군사 활동을 꾸준히 계속해오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미국은 1998년 2월 2일 미해군 주력전투기 F15 18대와 AC130 두 대를 처음으로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하였는데, 이 항공기는 C130 중형수송기를 개량하고 1백5mm포를 장착하여 공대지 포격을 할 수 있는 기종이다. 그로부터 약 보름 뒤에 주한미군의 한 소식통은 주한미군이 AH-64 아파치 공격용 헬기 80여대 외에 UH-60 플랙호크 공격용 헬기 30여대를 "비밀리에 보유,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막강한 전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미연합사는 1998년 4월 23-29일 한·미연합군 정례 군사연습을 실시했다. 이 군사연습은 '한·미연합사 지휘소 연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1994년에 시작되어 해마다 그맘때쯤 열렸다. 미국은 이번 지휘소 연습에서 '대나무 체계'가 전시상황에서 잘 작동하는지를 처음으로 시험했다. 이 연습에 참가하려고 미국 본토와 태평양 사령부에서 1개 연대 병력(약 7천명)이 긴급 수송되어 한·미연합군에 합류하였다. 주한미군은 이 연습을 군사용어로 'RSOI(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and Integration: 수용·대기·전방이동 및 통합 연습)'이라고 부르는데, 이번 경우에는 72시간 뒤 제2방어선에 투입할 미군 병력의 수송 및 투입 연습을 진행하였다.

남(한국) 언론은 주한미군을 강화하는 조치와 한·미연합사 지휘소 연습을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의 하나"라고 보았다. 언론은 미국이 1998년 2월 6일 조·미 장성급회담을 제안하는 내용을 담은 주한미군사령관 편지를 판문점을 통해 북(조선)에 보냈으나, 이에 대해 북(조선)이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러한 대응 조처를 단행했다고 풀이했다.

다른 한편, '98 환태평양훈련(Rimpac)'이 1998년 6월 6일부터 한달동안 하와이 부근 바다에서 실시되었다.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칠레, 남(한국)이 여기에 참가하였고, 해군 3만여 명, 항공모함, 수상함 60여 척, 잠수함 10여 척, 항공기 2백80여 대가 동원되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해군 대표단도 이 훈련을 처음으로 참관했다. 남(한국)은 이 훈련에 호위함 2척을 비롯해 잠수함, 해상초계함 등 훈련 참가 사상 가장 많은 전력을 보냈다.

남(한국) 정부와 한·미연합사는 지난 8월 17일부터 28일까지 '을지·포커스 렌즈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는데, 이 훈련에는 주한미군 병력의 3분의 1일인 1만3천명이 참가했다. 여기서 '을지·포커스 렌즈 합동군사훈련'에 관해서 알아보자. 한·미 연합사는 전면전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북침 작전계획을 세워놓고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해 왔다. '을지·포커스 렌즈 군사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이 합동군사훈련은 1960년대부터 주한미군이 실시해온 포커스 렌즈 훈련과 1968년 1·21 사태 이후 남(한국) 정부가 실시해 온 을지훈련을 1976년에 통합한 훈련이다. 이 훈련은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면서 을지훈련과 포커스 렌즈 훈련으로 나뉘어져 실시되다가, 1994년 '핵위기' 때부터 종전 방식으로 다시 통합되었다. 이 훈련은 한·미연합사 '작전계획 5027(OPLAN 5027)'의 5단계 작전에 따라 시행된다. '작전계획 5027'은 1단계(전쟁이전), 2단계(거부작전), 3단계(격멸작전), 4단계(고립화), 5단계(종전 이후)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3단계에서 기계화 군단이 북침하게 되어 있다. 또 4단계에서는 청천강까지 북진한 한·미연합군이 북(조선)군을 추격해 압록강까지 진격하게 되어 있다.

한·미 두 나라는 '작전계획 5027'에 공지전(Air-Land Battle) 공격 전술과 종심(縱深) 공격 전술을 도입한 1984년부터 휴전선 이북지역에 대한 관할권 문제를 협의해 왔다. 미국은 압록강까지 진격하면, 중국이 개입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북침 연습'을 청천강까지 제한하자고 하면서, 북(조선)이 유엔에 가입한 주권 국가이므로 휴전선 이북지역을 점령해야 할 지역으로 간주해 이 지역에 대한 한시적인 군정을 시행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남(한국)은 헌법 3조에 의거해 북(조선)을 수복해야 할 지역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대통령 훈련 제67호인 '응전 자유화 계획(충무 9000)'에 근거하여 남(한국)군의 독자적인 '수복 계획'을 세워놓고 '완전한 국토 수복 작전'을 주장해 왔다. 두 나라는 휴전선 이북지역을 한·미연합사 통제지역으로 하고, 한·미연합사령관이 통제하는 민사작전을 수행하며 이를 '작전계획 5027'에 명시한다고 잠정적으로 합의하였으나, 다른 문제들은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남(한국) 정부는 이북지역 관할권 문제가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 만큼, 한·미가 어떻게 합의하느냐에 상관하지 않고 남(한국) 정부와 합동참모본부가 통제하는 수복지역에 대한 민사작전 수행 태세를 완비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시기 남(한국)군은 전면전이 일어나도 북침하지 않고 휴전선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작전이 끝나는 도상 연습을 해 왔는데, 1989년부터는 평양까지 진격해 상황을 끝내는 도상 훈련을 발전시켜 왔다. 한·미연합군은 1993년의 '을지·포커스 렌즈 합동군사훈련' 때부터 평양을 점령한 뒤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 한·미연합사는 1993년의 이 합동군사훈련에 처음 도입한 정치·군사 모의 연습(POL-MIL Game)에서 한·미연합군이 북(조선)의 남침 기도를 물리친 상황을 가정해 북(조선)을 어떻게 응징하며,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전후상황('수복' 및 '통일')을 처리하는가를 주요 사항으로 설정해놓고 해마다 '북침연습'을 실시해 왔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한·미연합군이 올해 훈련에서 처음으로 '작전계획 5027'의 제3단계 군사연습(이른바 '격멸작전')인 '북침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남(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올해 을지 포커스 렌즈 훈련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북한 지역 내 진격 단계를 포함해 정상적으로 실시됐다. 단계별 작전계획 표현과 내용이 작년과 다소 달라져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10월 26일부터 11월 6일까지 한·미연합군은 제37회 연례야외기동훈련인 '98 독수리연습'을 실시하고 있다. 이 훈련에는 미군 3만5천 명, 남(한국)군 5만여 명,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와 미 해군 전함들이 참가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음을 던진다. 무력통합론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군사전략 안에서 주한미군을 증강·개편하고 있는 미국의 의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할 때, 우리는 1997년부터 약 1년 반동안 워싱턴의 정책집행자들과 정책연구가들이 한(조선)반도 정책을 새로운 각도에서 논의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 논의의 구체적 내용은 밖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간접 자료들을 분석하여 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제 이 글은 워싱턴의 정책집행자들과 정책연구자들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어떻게 논의했는지를 살펴볼 단계에 이르렀다.

(3) 한(조선)반도 정책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가

우리는 가장 먼저 한(조선)반도 정세가 '전환기'에 들어 섰다고 보고 있는 미국의 정세관을 지적해야 한다. 미국은 지금 한(조선)반도 정세가 크게 바뀌는 과도 상황(transition)에 들어섰다고 인식하고 있다. 스캇 스나이더(Scot Snyder)는 미 의회 산하 연구기관인 미국 평화연구원(U.S. Institute of Peace)에서 연구원으로 한(조선)반도 정책을 연구하고 있는데, 논문 「코리아의 평화과정을 수립하는 데 따르는 도전들: 한(조선)반도의 정치적, 경제적 과도 상황(Challenges of Building a Korean Peace Process: Political and Economic Transition on the Korean Peninsula)」에서 "정치와 경제의 병행적 과도 상황은 한(조선)반도에서 수립되고 있는 평화의 전망을 검토하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하면서, 과도 상황의 의미를 아시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남(한국)의 경제적 과도 상황,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승리 및 정권교체로 생겨난 정치적 과도 상황, 그리고 북(조선)의 경제난과 김정일 시대의 개막으로 각각 나누어서 고찰하였다. 오늘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바로 이러한 정세관을 반영하여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변화 조짐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남북 군축론과 '북(조선) 군사력 수준 하향평가설'

미국은 북(조선)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문제를 '국가 안보 제1순위'에 올려놓고 있다. 대외관계협의회(CFR) 선임연구원인 한(조선)반도 정책 전문가 로버트 매닝(Robert A. Manning)과 공화당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보수적 연구기관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의 아시아연구소 소장 제임스 프르지스텁(James J. Przystup)은 대외관계협의회 코리아문제 특별연구반에서 1998년 3월 2일 발표했던 공동논문 「강대국들과 코리아의 장래(The Great Powers and the Future of Korea)」에서 미국이 한(조선)반도 전략을 수행할 때, "단기적 목표와 중기적 목표에 걸쳐 있는 핵심 문제는 최우선적으로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을 줄이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의 제1순위"이며, "북(조선)의 위협을 줄이는 것은 정치적으로 유지해야 할 외교 전략의 중심 목표"라고 지적한 바있다.

이러한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미국은 남북에 대한 군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에서 한(조선)반도 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돈 오버도퍼(Don Overdorfer)는 주한미군이 '대나무 체계'를 발표하기 바로 전인 1998년 3월 중순 서울에 있는 미국 공보원(USIS) 초청으로 방한하여, 한(조선)반도 군축문제 연구기관으로 알려진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남북한과 미국의 3각 관계, 그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였다. 이 강연회에는 군축문제를 다루는 남(한국)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강연에서 그는 남북이 긴장을 풀고 신뢰를 쌓으려면 남(한국)이 먼저 군사비 삭감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지금까지 미국이 주장해오던 한(조선)반도 정책과는 분명히 달랐다. 강연회 참석자들은 남북 사이에 신뢰가 없는데 어떻게 남(한국)부터 먼저 일방적인 군축을 단행하라고 하느냐고 비판하자, 그는 "바로 신뢰 구축을 위해 먼저 군사비 삭감을 단행하자는 것"이며, "북한측도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그의 강연을 보도하면서 "그의 이같은 제안은 90년대 초 군축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을 때부터 한·미 양국이 주장해온 '선 신뢰 구축, 후 군비 축소' 입장과 정면 배치하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그의 발언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최근 입장이 깔려 있다고 판단된다"고 적었다. 이 강연회를 주관했던 극동문제연구소 곽태환 소장은 "그의 방한 메시지는 미국 정부가 정책 추진 단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애드벌룬 띄우기로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오버도퍼가 서울에 가기 직전 미 국무부 군축담당관을 만나 남(한국) 군축 선행론을 깊이 논의했다는 주한 미국대사관의 한 소식통이 전해준 말에서 곽 소장의 그 지적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남(한국) 국방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오버도퍼의 강연은 "요금 워싱턴 정계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을 반영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은 보도에서 "최근 미국 정계에는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더 방치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를 위해 한국정부에 대해 군축 이니셔티브를 취하라고 막후에서 종용하고, 북한에 대해서도 긴장 완화를 위한 실질적 조처를 하라고 요구해 왔다"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주한 미국대사관쪽의 말을 인용하여 한(조선)반도 군축에 대한 미국의 추진방향은 결정되었고 이미 행동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국무부 대변인 니컬러스 번스는 1997년 4월 15일 정례 설명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우리는 이 말에서 미국이 북(조선)에게 군축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북한은 군에 대한 자원배분 집중을 줄이고,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북한이 세계 최대 규모 중의 하나인 1백만 이상의 대군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한반도에는 그처럼 많은 군대가 주둔할 이유가 없으며, 병력 규모를 조속히 줄일 수 있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한결 쉬워질 것이다. 북한군의 감축 문제는 미국 정부의 주요한 관심사 사항들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신뢰 구축 우선론'을 수정하고, 남(한국)이 군축에 먼저 나서게 하여 북(조선)을 군축으로 이끌어내보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버도퍼의 군축 강연이 있기 전부터도 미국의 이러한 구상을 엿볼 수 있는 사건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사건은 셀릭 해리슨(Selig S. Harrison)의 발언이다. 그는 1998년 새해 벽두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편지 형식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한의 역대 정권은 신뢰구축 및 병력 재배치 문제에 대한 북한의 양보를 병력 감축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주장해 왔습니다. 당선자께서 이런 정책을 고수한다면 평양과의 관계 개선은 불가능합니다. (줄임) 당선자께서는 남북의 경제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점진적인 병력 감축을 주장해야 합니다. 아울러 남북 병력 감축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연계하려는 북한의 제안은 거절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북한은, 가령 당선자께서 우선적으로 10만 병력을 감축할 준비가 돼 있음을 내비친다면,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철회할 것입니다.

이 기고문이 나온 뒤에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과 때를 맞춰서 또다시 이와 같은 견해를 밝힌 사람이 있는데, 그는 스캇 스나이더이다. 그는 『워싱턴 포스트』 2월 23일자 기고문에서 "긴장 완화를 위해 한·미 양국이 먼저 군사력 후방 배치와 유엔사령부 해체를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돈 오버도퍼, 셀릭 해리슨, 스캇 스나이더 이 세 사람이 지금 워싱턴 정가의 한(조선)반도 정책 논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대표적인 한(조선)문제 전문가들이라는 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시사저널』은 보도에서, 미국은 아직까지는 북(조선)을 겨냥하여 군축을 공세적으로 제안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주간지는 "미국은 현재 북한 군부로 하여금 미국의 요구에 부응해 대화에 응하든지 아니면 미군을 상대로 군비 경쟁을 하든지 양단간 결단을 내리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하면서, '미군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이 "미국은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있다. 북한 군부가 현명하다면, 대화에 응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잘 판단해야"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케네스 퀴노네스(C. Kenneth Quinones)는 "평양측이 생존의 길을 택했다는 사실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협상 방편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평양측에 생존 수단을 제공해 주는 대신에 평화를 위협하는 그들의 수단들을 포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미국은 또한 북한측에도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군축을 단행할 절호의 기회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즉 한국은 군사비를 이미 삭감했고, 미국이 주한미군 병력을 증강해 한반도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 만약 북한이 이 때를 놓쳐, 남한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난 뒤 군비 증강을 시작하면 북한은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한 바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남북 군축론과 함께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북(조선) 군사력을 다시 평가하였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은 보도에서, 미국 정보기관들은 그동안 북(조선)의 군사력과 그 위험성이 과장되었으며, 특히 경제난 때문에 군사력이 심각하게 약해지고 있다고 결론지었다고 적었다.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 1998년 1월 7일자와 『디펜스 위크』1월 12일자는 미국 국방정보국(DIA), 중앙정보국(CIA), 국무부가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및 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 제출한 「북(조선) 군사력 평가 보고서」에 관해 보도했다. 이 보고서들은 북(조선)의 경제난 때문에 조선인민군도 "식량난과 유류난에 허덕이고 있어" 전쟁 위험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돈 오버도퍼도 대외관계협의회의 한(조선)문제 특별연구반에서 발표했던 논문 「미국-남(한국) 관계」에서 1994년 핵위기 이후에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균형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하면서, 남(한국)군과 주한미군은 전투력을 높일 수 있는 현대적인 군사 장비로 더욱 강력해졌다고 지적하는 한편, 국방정보국(DIA) 국장 패트릭 휴즈(현역 중장)가 1998년 1월 28일 미 의회에서 증언한 내용을 근거로 하여 북(조선)은 경제적 상황이 나빠져 군사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자기에게 이익이냐 손해냐 하는 문제(무기 판매시장의 확장과 군사동맹관계의 공고화)를 기준으로 북(조선)의 군사력을 상향평가도 하고 하향평가도 해왔다. 그런데 이들이 북(조선) 군사력 수준 하향평가설을 내놓은 까닭은 남(한국)에게 먼저 군축을 시행하라고 요구하는 근거를 마련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만일 남(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따라 군축을 시행하면, 미국은 북(조선)에게도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군축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미국은 결과적으로 북(조선)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북(조선) 군사력 수준 하향평가설에 들어있는 미국의 의도다.

2. 미국이 보는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

미국은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고 있을까? 정책전문가 프랭크 재누지는 "북(조선)은 낡은 군사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만, 경보 시간이 짧기 때문에 주한미군과 남(한국)군에 대해서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비무장지대를 따라서 설치된 지하 갱도들 속에 배치하고 있는 장거리 자주포들은 개전 초기에 서울에 수천만 발의 강력한 포탄이나 화학-생물학 포탄을 퍼부을 수 있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 미국이 느끼고 있는 위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미국은 남(한국)의 수도권에 머물고 있는 "7만5천명의 미국인들이 북(조선) 병기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남(한국)에 있는 7만5천명 미국인을 북(조선)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문제와 워싱턴의 정책전문가들이 군축이라는 명분으로 진행한 일련의 논의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주한 미국 대사관의 관계자는 "이런 조처를 통해 서울을 북한 직사포 부대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게 하고, 유사시 워닝 타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미군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북[조선]에게-옮긴이) 군사력을 축소하라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투입이 가능한 포부대의 후방 이동 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긴장 완화를 얘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 발언을 인용하면서, "북한은 일본·유럽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남북의 동시 병력 삭감을 군축 방안으로 제시해 온 적이 있으나, 미국은 감시·감독이 어려운 병력 삭감보다는 쉽게 감시할 수 있는 포부대 후방 배치야말로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대구경 장거리포 말고도 미사일에서도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북(조선)의 미사일 생산을 중단시키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은 미사일 문제와 경제 지원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겠다는 의도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워싱턴의 몇몇 정책전문가들은 '미사일'과 '달러'를 맞바꾸는 이른바 '일괄타결 거래'를 논의한 바있다. 미 국방부도 이러한 '일괄타결 거래' 방식을 암시하였다. 1998년 6월 16일 미 국방부 대변인 케네스 베이컨은 정례 설명회에서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조치가 풀리기에 앞서 미사일 협상과 4자회담에서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케네스 퀴노네스는 미국이 북(조선)의 미사일을 비롯한 다른 대량 파괴 무기 확산 문제를 조·미 양국 사이의 문제로 한정해놓으니까 지난 이태 동안 미사일 회담에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지난 시기 북(조선)의 '핵문제'를 다루었을 때처럼 다자간 공조 체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조선)의 대량 파괴 무기와 그 생산력을 없애기 위한 단계마다에서 적절한 유인책을 써야 하는데, 이 유인책은 미국 뿐아니라 이스라엘, 일본, 남(한국), 그리고 유럽연합을 비롯한 모든 유관국들이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미국이 북(조선)을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에 가입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이 체제의 몇몇 성원국 대표들이 사찰단을 구성하여 남(한국)과 북(조선)이 이 체제의 의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내놓은 단계적 방도를 살펴 보자.

첫 단계는 서울쪽이 미사일 개발 계획을 그만두고 이와 동시에 평양쪽과 더불어 미사일기술 통제체제에 가입하고 정례 사찰을 받으며 미사일 기지들을 폐쇄하는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한(조선)반도에 배치한 미사일과 그 발사 장비들을 철수한다. 그리고 나서, 남북은 모든 무기의 수입과 수출을 동결한다는 합의 사항을 이행하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이 동결 이행을 보장하고 존중할 것을 약속한다. 북(조선)이 미사일 수출에서 얻는 수입을 보상해 주기 위해서 미국, 일본, 오스트렐리아, 캐나다, 이스라엘, 유럽연합은 북(조선)의 광산업에 대한 투자 장벽을 낮춰주어야 하며, 현대적인 광업 기술과 장비들을 양보 가격으로 제공하고, 광산과 광물을 다루는 북(조선) 기술자들을 훈련하는 교육에 재정을 지원한다.

 

그렇지만 일부 정책전문가들의 이러한 '일괄타결 거래' 방안을 반대하는 소리도 들리고 있다. 『지지통신』은 1998년 6월 17일 워싱턴발 기사에서 미 국무부가 북(조선)이 공식 성명에서 미사일의 개발·수출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경제 제재 조치를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한 반응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제임스 릴리는 강경론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북(조선)의 미사일 계획을 돈으로 그만두게 하겠다고 하나 그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이처럼 미국의 정책전문가들이 북(조선)의 미사일 문제를 논의하고 있던 1998년 8월 31일 북(조선)은 '광명성 1호'를 우주공간에 쏘아올렸다. 이로써 북(조선)은 탄도 미사일 개발능력이 미국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입증했으며, 주일미군 기지들과 태평양의 미군 기지들을 겨냥한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우리는 '광명성 1호' 발사에서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적극 추진하면서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북(조선)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로써 미국은 북(조선)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예방'하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지금은 그 예방계획을 어쩔 수 없이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미국은 북(조선)을 전면적으로 압박하는 전술을 동원해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제 미사일 협상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리라 생각된다.

조·미 미사일 제3차 협상이 1998년 10월 1일과 2일 뉴욕에서 열렸는데, 미국은 이 협상에서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에 가입할 것,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지 말 것, 미사일과 미사일 개발기술을 중동에 수출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북(조선)은 이 협상에서 미사일 개발, 생산, 실전배치는 나라의 자위권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다른 나라가 간섭하거나 다른 나라와 협상할 사안이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사일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으므로 정당한 보상을 해주어야 수출을 그만둘 수 있다고 하면서, 만일 미국이 경제제재 조치를 풀어주어 북(조선)이 앞으로 3-5년에 걸쳐 해마다 10억 달러의 수입 증대 효과를 얻게 되면 미사일 수출을 영구히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바야흐로 북(조선)과 미국이 북(조선)의 미사일 문제를 놓고 벌이고 있는 '샅바싸움'은 바야흐로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바꾸는 변화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3. 주한미군 문제를 보는 워싱턴의 시각

우리는 워싱턴의 정책전문가들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 변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물론 미군 철수 문제에 관한 논의는 대세가 아니라 일부에 국한된 현상을 보이고 있지만, 퀴노네스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눈길을 끈다. 그는 "워싱턴과 서울이 한(조선)반도에서 미군을 점진적으로 철수하지 않으면서 평양이 먼저 세계 차원에서, 지역 차원에서 평화를 안정시키는 능력을 발휘해 주기를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묻고, 주한미군 철수문제에 관해서 이런 대안을 내놓았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북(조선)의 요구에 대해 말싸움을 벌이기 보다는, 북(조선)이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위한 타당한 조건을 마련한다면, 철수 의사를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유엔사령부와 군사정전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 (줄임) 북(조선)은 미국이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검토하기 전에 먼저 남(한국)과 평화 조치를 매듭지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유엔사령부와 군사정전위를 계속 유지함으로써 얻을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보수강경론자 리처드 앨런도, 퀴노네스의 주장에 비해서는 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미국은 전쟁 억지력과 준비 태세를 유지하는 한편, 인계철선(tripwire)의 기능을 유지하는 소수의 미군 병력을 주둔시키는 시기, 그리고 미군 주둔이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 시기를 내다보아야 하고 그 때를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나서, "만일 남북의 상호 군축이 실제로 이행될 만큼 통일이 진전된다면, 주한미군의 감축이 남북 대화에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퀴노네스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한(조선)반도 평화체제 수립 문제를 떼어놓고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는 미국은 뒤로 빠지고 남북 사이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한(조선)반도의 평화체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며, 다만 미국이 자의적 결정으로 미군을 철수한다는 전제 위에서 논리를 전개했다. 우리가 그의 논리구조를 보면, 미국은 한(조선)반도 평화체계 수립과정에서 책임적인 당사자가 아니라 마치 외부의 참관인인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북(조선)과 남(한국)이 남북 기본합의서를 다시 확인하고, 이어서 미국, 남(한국), 북(조선)이 조·미 기본합의서를 다시 확인한다.

② 북(조선)과 남(한국)은 새로운 쌍무적 평화 조치를 협의하기 위한 목적에서 남북 기본합의서에 규정된 남북 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시킨다. (중국과 미국의 참관단이 모든 협의 과정을 참관한다)

③ 미국-남(한국)-북(조선)은 3자 군사회담을 열어 정전협정을 임시적인 평화 구조로 대체하고 이를 남북이 항구적이고 쌍무적인 평화 조치를 체결할 때까지 유지한다. 남북은 정전협정의 실행과 관례에 들어맞는 평화 조치(peace arrangement)를 만들어 비무장지대의 평화를 유지한다.

④ 북(조선)의 군사 대표단은 미국과 남(한국)의 군사 훈련을 참관하고, 미국-남(한국)의 군사 대표단은 북(조선)의 군사 훈련을 참관한다.

⑤ 미국은 새로운 평화 구도가 효력을 발생하는 즉시 군사정전위원회를 해체한다.

⑥ 미국은 남북의 평화 조치가 체결되자마자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기로 약속하고, 주한미군의 철수 이후 비무장지대를 감시할 다국적 평화 유지군을 구성하는 책임을 맡는다.

⑦ 남북은 병력이 10만명 이하가 될 때까지 공군력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지상군을 동시적으로 감축한다.

⑧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남북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 같은 국제 협약들을 준수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함께 힘쓰며, 남북이 항구적이고 쌍무적인 평화 조치를 체결하면 한(조선)반도에 대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합의한다.

 

그의 주장은 이처럼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한(조선)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떼어놓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지만, 여기서 우리는 좀더 합리적인, 다른 대안도 찾아볼 수 있다. 경제전략연구원(Economic Strategy Institute)은 보고서 『'기적' 이후의 아시아: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우선사항을 다시 정의함(Asia after "Miracle": Redefining U.S. Economic and Security Priorities』을 펴냈는데, 여기에 나와있는 주한미군 철수론은 좀더 합리적이다. 이 보고서는 대체로 '중도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정책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연구반이 작성했으며, 학계와 언론계의 전문가들과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상무부, 중앙정보국을 대표한 현직 관리들이 연구반의 토론과정에 참가하였다. 이 연구반을 이끈 사람은 공동의장인 셀릭 해리슨과 클라이드 프리스토위츠 2세(Clyde V. Prestowitz, Jr.)다. 이 보고서는 "미국은 상황이 허락하면 즉시 미군의 점진적 불관여(disengagement)를 추진하기 위한 일정에 관하여 남(한국)과 공개적으로 협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주한미군을 완전 철수하기까지 감축과 재배치에 요구되는 과도기가 7년 이내라고 내다보았다. 이 보고서는 주한미군을 감축, 재배치, 철수하는 문제와 정전협정을 새로운 평화유지 조치로 전환하는 문제를 이어놓고 있는데, 새로운 평화유지 조치를 마련하는 문제는 미국, 중국, 북(조선), 남(한국)이 시작한 4자회담처럼 중국, 러시아, 일본도 참가하는 다자간 외교를 포함할 뿐아니라, 북(조선)이 오랫동안 제의해오고 있는 조·미 사이의 쌍무적 안보대화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보고서는 또한 "미군이 철수한 뒤에야 비로소 서울쪽은 지금까지 미국이 제공해온 방위력의 수준에 상응하여 요구되는 희생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느슨한 국가연합과 상이한 체제의 공존에 기초하고 있는 북(조선)과의 화해를 선택하게 되는 탈냉전의 현실에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최근 남(한국)이 종전의 태도를 바꾸어 4자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이나 재배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선으로 물러섰다는 언론 보도를 보았는데, 이 보도에서 우리는 미 국무부가 남(한국)의 견해와 달리 주한미군 문제를 북(조선)과 논의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워싱턴의 보수강경론자들은 주한미군 철수론에 쐐기를 박으려고 하는데, 이들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1997년 5월 19일에 미 국방부가 21세기 미국의 군사전략을 정리하여 발표한 「4개년 국방계획보고서」는 주한미군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주둔 미군 병력 10만명과 유럽지역 주둔 병력 10만명을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 국방대학 전략문제 연구소의 「98년도 세계 전략정세 보고서」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미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은 6월 29일 로스앤젤레스 외교협의회에서 주한미군은 한(조선)반도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4자회담과 6자회담에 관한 워싱턴의 구상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평화체제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건너뛸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것은 4자회담이다. 4자회담을 제안하던 때에 미국은 어떤 의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 거의 결정한 바가 없었다. 미 국무부 코리아과 과장 데이빗 브라운은 "4자회담은 남북대화가 중단된 데 따른 한국 정부의 우려와 곤혹스러움을 고려한 제의"라고 했는데, 사실 처음에 미국은 북(조선)과 중국의 반응을 파악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미국이 4자회담의 장래에 대해서 어떠한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지금 워싱턴에서는 미국이 4자회담에 대해서 종전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당면정세 속에서 김대중 정권의 남북대화 추진 의도를 적극 지지하고 있으므로 자연히 4자회담을 덜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리처드 앨런은 한(조선)반도 정책의 추진방향은 남북 대화에 맞추어져 있으므로, 4자회담과 같은 구도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한다고 해도 그것이 남북 대화를 앞질러 가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케네스 퀴노네스도 "4자회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평양과 서울의 관리들이 얼굴 ?맞대고 한 자리에 앉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97년 11월 중순 미국의 한 고위 인사가 도쿄에서 일본의 북(조선) 전문가 20여 명을 대상으로 비공개 강연을 하였는데, 우리는 이 강연에서 4자회담 문제에 관련한 미국의 견해와 전망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그 미국인은 이 강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 정부(김영삼 정부를 뜻함-옮긴이)는 대북정책을 소프트 랜딩으로 할 것인지 하드 랜딩으로 할 것인지 확실한 밑그림도 없이, 미·중·일의 북한 접근을 차단하면서 식량으로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지난 1년 반 이상을 4자회담에 매달렸던 한국의 대북정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대북 관계에서 유리한 입지 역시 상실했다. (줄임) 4자회담은 김영삼 정권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만약 한국의 새 정권이 지혜를 발휘한다면 4자회담 대신 남북대화를 다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해서 기존 북한·미국 대화통로와 북한·일본 대화통로, 그리고 남북 대화통로로 대화 체제를 개편하고, 핵협상에서처럼 한·미·일 공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사저널』은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새 정권 들어서 남북대화가 시작되면 4자회담은 안보분야에 국한한 회담으로 위상이 축소"된다고 보도했는데, 이것은 지금 미국의 관심이 어디에 쏠리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4자회담의 위상이 축소될 가능성은 4자회담 구도가 변형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퀴노네스는 언론 대담에서 "4자회담은 동북아시아의 안보 문제에 집중할 수 있으나 이 회담 과정에는 종국적으로 도쿄와 모스크바도 포함된다는 회담 구도의 변형이 뒤따라야"한다고 말하면서 4자회담 자체의 변화를 6자회담 구상에 연결시켰다. 경제전략연구원도 보고서 『기적 이후의 아시아』에서 4자회담 구도를 6자회담 구도로 전환시키는 문제를 언급하였다. 한 일간지 기자가 주한 미국대사 보스워스에게 1998년 1월 중국을 방문한 김종필 국무총리가 '6자 선언 구상'을 내놓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중국, 일본, 러시아도 한반도 상황의 엄연한 이해 당사자이며, 4자회담은 결코 일본과 러시아에 배타적인 구조가 아니라"고 답변했다. 매닝과 프르지스텁도 6자회담 구상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들은 "동북아시아의 6자(종국적으로는 5자) 정치 협의 구도가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지냈던 제임스 베이커 3세(James Baker, III)가 1992년에 『대외 문제(Foreign Affairs)』에 발표한 논문에서 동북아시아의 6자 협의체를 제안했던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수 외교통상부 장관(당시 직책)은 1998년 6월 26일 '동북아 협력대화'에 북(조선)이 들어가도록 이끈 뒤, 이를 정부 차원의 협의체인 '동북아 다자간 안보대화'로 격상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방위청도 '동북아 다자간 안보기구' 설립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이 방일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일본 총리 오부치 게이조가 6자회담을 제안하였고, 한·일 두 나라 정상이 합의·발표하였는데, 이것은 두 나라가 이미 워싱턴에서 나왔던 6자회담 구상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고 볼 수 있다.

(4)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들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이익을 보장하는 넓은 맥락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한·미 동맹은 미국이 전진배치한 군사력을 지탱하는 동맹과 방위 협력 조치의 쌍무적 관계의 일환이다. 미·일 동맹은 동북아에 수립되어 있는 비공식적인 지역 안보 체제의 초석이며, 한(조선)반도의 변화를 관리하는 데 긴요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미 안보 동맹의 운명과 주한미군의 운명은 주일미군의 장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역외 균형자(offshore balancer) 역할은 적어도 21세기가 시작된 뒤 25년 동안 동북아시아의 안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남아 있게 된다. 여기서 독립 변수는 중국의 정치 체제와 중·미 관계의 향방이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추구하는 단기적 목표들은 북(조선)의 무력 사용을 억지하고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막고 한(조선)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다. 중기적 목표는 북(조선)을 국제 사회로 이끌어내고, 서울쪽이 주도하는 화해와 통일의 평화적 과정으로 이끌어내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매닝과 프르지스텁이 공동논문 「강대국들과 코리아의 장래」에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 변화를 설명한 대목이다. 지금 미국의 정책전문가들은 클린턴 행정부가 한(조선)문제에 대해서 정책적 관심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하고, 개입력를 더 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대한 개입력을 종전보다 더 늘여야 한다고 보는 이 논리는, 케네스 퀴노네스의 말대로, "한(조선)반도의 문제들은 세계 차원에서, 지역 차원에서, 그리고 남북 차원에서 효력을 발생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으며, "클린턴 행정부의 최고위급 관리들이 한(조선)반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욱 확실하게 관심을 기울이고 개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 매닝과 프르지스텁은 "이러한 전략을 수행하는 데는 가능하다면 대통령과 국무장관에 버금가는 고위급 책임자의 지속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이것이 한(조선)문제에 대한 고위급의 관심을 유지하는 유일한 보장책"이라고 하면서, 조·미 핵협상을 벌일 때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를 전권대사로 임명했던 것처럼 전권대사나 대통령 특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6월 24일 자유 아시아 방송(Radio Free Asia)과 회견하면서 "남북 사이의 직접적 관계의 수준이 일정치 않고, 한(조선)반도 4자회담 같은 미·중 양국이 참여하는 회담이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한(조선)반도 특사를 임명할 계획이 없다. 그러나 만약 특사 임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될 때가 온다면, 한·중 양국과 협의·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 의회는 김정일 총비서와 직접 통할 수 있는 북(조선) 고위인사를 상대하는 수준으로 대북 특사의 격을 높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는 찰스 카트먼을 4자회담 전담대사로 임명하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마무리지으려고 했으나, 의회는 이보다 더 높은 직급의 대화통로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의회의 요구에 밀린 클린턴 행정부는 중장기 대북정책을 조정하는 특별고문단을 결성하고,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를 이 고문단의 '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려고 하고 있다. 만일 이렇게 되면 4자회담의 위상은 크게 축소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미국은 한(조선)반도 정책을 동북아정책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다. 매닝과 프르지스텁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과 동북아정책의 관계를 겹쳐 있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동심원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그들은 "미국의 정책은 일련의 동심원이 겹쳐지는 꼴이 되어야 한다. 첫째 동심원에는 미국과 남(한국)이 들어있고, 둘째 동심원에는 일본이 들어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셋째 동심원에 포함되며, 유럽연합과 아세안(ASEAN), 그리고 국제 사회는 가장 밖에 있는 동심원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러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들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은 정책을 바꾸어 코리아가 곤경(predicament)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대시킨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촉진한다. △장차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개입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경제적, 정치적 구조와 안보 구조의 토대를 마련하는 통일 이후의 외교 과정에 중국, 일본, 러시아를 참여시킨다.

그들은 "코리아의 통일은 21세기가 시작된 뒤로 25년 동안 동북아 지역의 지정학적 구도를 재편하는 전략적 충격이 될 것 같다. 따라서 한(조선)반도의 변화를 관리하는 미국의 전략은 미국의 이익과 지도적 역할을 보장하는 통일 이후의 안보 설계도를 구상할 수 있도록 수립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이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한 주장과 통일 이후의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고 한 주장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최근 워싱턴의 정책전문가들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한때 통일문제는 당사자인 남북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던 이른바 '남북 당사자론'을 수정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들 정책전문가들 뿐아니라 행정부의 정책수립가들도 한(조선)반도의 통일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미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커트 캠벨(Kurt Campbell)은 미국은 비핵화되고, 평화적으로 통일된 한(조선)반도를 장기적 안보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힌 바있다. 프랭크 재누지는 "미국의 장기적 목표는 최소한의 경비를 들여, 자유민주주의적인 정부 아래, 미국과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안보 체제에 완전히 통합된, 한(조선)반도의 통일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5) 미국의 대북정책 추진방향

클린턴 정권 2기에 들어와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샌디 버거가 대외정책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대외정책을 '협상 중심의 원칙'에 입각하여 수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 원칙은 미·이라크 대결 국면이 무력 충돌로 번지지 않고 진정된 것, 코소보 사태에 미국이 무력 개입을 삼가고 있는 것, 미국이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중국의 인권 문제를 꺼내지 않고 장쩌민 주석의 방미 때 협상하여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석방하도록 타협한 것, 중국에 대한 원자력 발전 설비 수출을 허용하고 군사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전자부품에 대한 금수조치를 풀어주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북정책도 '협상 중심의 원칙'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외는 아니나, 우리는 행정부 안에서 견해 차이를 조절해야 하는 문제가 걸려있다는 현실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북(조선) 정책과 관련하여 국무부와 국방부의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 국방차관보를 지낸 조셉 나이(Joseph Nye, Jr.)는 앞으로 몇 년동안 한·미 동맹관계의 초점은 북(조선)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그의 말마따나 미국은 지금 대북정책을 한(조선)반도 정책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파악하려면 1997년 7월 중순 워싱턴에서 열린 한(조선)문제에 관한 고위 전략회의를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 회의에는 한(조선)반도 정책에 관여하는 워싱턴의 고위급 실무자들이 참석했는데, 그들은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 국방정보국, 의회, 학계 등 그동안 공식, 비공식적으로 대북정책에 관여해 온 고위 관계자들이다. 이 회의는 조·미 관계가 협상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열렸는데, 언론에서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실질적 최고 결정 기관'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 회의는 각 정권 기관, 개인, 사회 단체의 분기별 활동 성과를 종합 토론하고, 다음 단계 활동의 목표와 방향, 서로의 역할 분담을 결정한다. 이 고위 전략회의는 그동안 3개월에 한 차례씩 열려 왔는데, 1996년에는 3월, 6월, 9월 12월에 열렸고, 1997년에는 "이례적으로" 2월에 열렸다고 한다. 이 회의에 관하여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옮겨보면 이렇다.

① 고위 전략회의에서는 4자회담 예비회담(1997년 8월에 열림)에 중국이 참가하게 된 데 대해서, 그동안 4자회담 문제를 다루어온 국무부와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하였다. 사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 실무를 맡은 국무부와 국방부 인사들은 중국을 4자회담에 끌어들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조·미 대화 통로를 공들여 만들어 놨더니 갑자기 중국이 끼어들었다고 불평했다. 이들은 남(한국)이 미국을 믿지 않고 있으므로 중국을 끌어들여 4자회담을 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혹을 가졌다.

② '핵위기'를 전후하여 미국은 북(조선) 문제를 군사 문제로 보았으므로,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이 대북정보사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국방정보국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질서로 전환시키겠다는 붕괴설을 정책의 기조로 삼았다. 그런데 고위 전략회의에서 중앙정보국은 국방정보국이 대북 강경책 일변도로 나간 까닭에 남(한국)의 대미 불신, 중국의 개입이라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지적하고, 북(조선)의 지정학적,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면서 "더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③ 고위 전략회의는 미국의 북(조선) 정책이 성과를 얻기는 했지만,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던 원인을 분석하면서 미국이 혼자 모든 것을 관리하려 하니까 그런 부작용이 생겼다고 결론 맺고, 앞으로는 미국과 호흡을 맞출 동반자를 선택해 동반 진출하는 방식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④ 미국은 이러한 동반 진출 전술에 일본을 끌여들였다. 『시사저널』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해외의 한 정보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하면서, 1997년 8월 21일 조·일 수교 회담의 막전 막후에서 미국의 고위 외교 인사들이 결정적인 중재 역할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하였다. 1997년 7월 고위 전략회의가 끝난 뒤 약 한 달이 되던 8월 20일 제임스 레이니와 샘 넌은 도쿄에서 미 공군 특별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하였다. 위의 해외 정보 소식통은 "그들의 진짜 방북 목적이 남북간 현안이 아니라 조·일 간 현안을 중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두 사람은 7월의 고위 전략회의와 관련한 미 국무부의 취지(message)를 가지고, 도쿄에 들러 일본 외교 당국과 조·일 교섭을 다시 시작하는 문제에 관해 의견을 조율했다. 이들은 평양에서도 조정을 거친 다음, 일본에 가서 또다시 재조정하는 실질적 중재 역할을 했다. 8·21 베이징 수교 회담은 이들이 중재하여 열렸다. 이보다 앞서 8월 10일에서 14일까지 미 하원 정보위원장 포터 고스를 단장으로 하는, 민주당-공화당 하원 정보위 소속 의원 6명으로 이루어진 방북단이 똑같은 경로와 방식으로 평양에 들어갔다. 조·일 수교회담은 미국의 중재로 8월 21일 베이징에서 열렸는데, 일본인 처의 고향 방문, 조·일 수교 회담 본회담 재개라는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1997년 8월 이후 미국은 남(한국)을 소외시키고 일본을 앞세웠던 대북정책의 방향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워싱턴의 정책수립가들은 1997년 "8월 이후 미·일 공조를 통한 한반도 재편 구도를 다시 한·미 공조 중심 체제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방향전환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미국은 김대중 정권이 주도하는 대북정책을 강력하게 지원하게 되었다. 이와 반비례하여 조·일 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일본은 '일본인 납치 의혹'을 들고나왔고, 이에 대해 북(조선)은 행방불명자를 한 명도 찾지 못했다고 통보하고, 그동안 진행되어 오던 일본인 처의 방일 허용을 그만두겠다고 발표했는데, 그때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1998년 6월 5일과 9일이었다.

프랭크 재누지는 미국의 대북정책을 세 가지 선택 범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대북정책 수행에서 봉쇄(containment), 심한 불안정(active destabilization), 관여(engagement)라는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는 전쟁 억지력만으로는 북(조선)을 다루는 데 효과가 없고 한(조선)반도의 불안정을 촉발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에 관여정책을 선택하였다"고 주장했다. 관여정책은 식량 지원, 미군 실종자 및 포로의 유해를 송환하는 사업, 북(조선)로 하여금 비확산 분야에서 국제 규범을 준수하도록 몰아가는 외교적 자극을 포괄하고 있다. 재누지는 "관여정책은 미국과 남(한국)에게 유리하게 성취될 평화적 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까지 전쟁의 위험을 최소화시키도록 고안된 실용적 정책"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앨런은 미국의 대북정책은 가까운 장래에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고 내다보면서, 이 정책이 1970년대 중반 미국의 대소련 정책이었던 긴장완화 정책(policy of detente)의 변형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미국이 옛 소련에 대해서 긴장완화 정책을 추구하였지만, 소련은 군비를 증강하였고,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여 자국의 영향력을 늘려갔다고 지적하면서 회의감을 보였다. 이러한 회의적 태도는 이른바 강경론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진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북(조선)이 적대적이고 난폭한 태도를 유지하고, 남(한국)을 무시하거나 희생시키면서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자고 주장할 경우를 대비하여 강경책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은 남(한국)의 동의를 얻어서 대북 식량 지원 문제나 조·미 합의서의 재정문제를 곤란하게 만들어 버리는 강경책을 수행할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강경책 예비론에서 온건책과 강경책을 병행하자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으며,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긴장완화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는 레이건 행정부 초기에 그랬듯이 미국이 대소 협상에 나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중거리 순항 미사일과 퍼싱 미사일을 배치하는 이중 전략(dual-track strategy)을 추진하려 하는 것은 현 단계 대북정책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들이 말하고 있는 긴장완화란 결국 "점진적인 화해와 평화의 과정이지만, 이 경로의 결과는 북(조선)에서 근본적인 시장 경제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북정책의 본질은 점진적인 긴장완화를 통하여 북(조선)을 변화(변질)시키겠다는 데 있다. 매닝과 프르지스텁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논의하면서 그 정책 수행의 경로와 단계를 밝혀주는 개념 설명도(notional roadmap)를 내놓았다. 그들의 주장은 아래와 같다.

제1단계는 규범(norm)을 정립하는 단계다. 북(조선)이 내놓게 될 마지막 교환물은 1백만 병력과 군사력이다. 북(조선)은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를 준수하고 생물학 무기 협약(BWC)과 화학 무기 협약(CWC)에 가입하며, 과거의 핵개발에 관하여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정을 추진한다. 남북은 긴급전화를 개설하고, 남북 기본합의서에 규정된 남북 경제교류·협력 공동위원회를 가동시킨다. 3자회담 또는 4자의 후원을 받은 회담을 시작하며, 정전협정을 개정하거나 추가하는데, 여기에는 분계선에 챨리 검문소(지난 시기 베를린 경계선에 설치했던 통과 검문소를 뜻함-옮긴이)를 설치하는 문제가 포함된다. 미국, 남(한국), 북(조선) 3자 회담, 또는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서 유럽 군비 감축형(CFE-type)의 재래식 군비 감축을 시작한다. 남북 이산 가족의 상호 방문이 진전된다. 미국, 남(한국), 일본은 대규모로 장기간에 걸쳐 식량 지원과 농업 협력을 제공한다. 미국은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연락 사무소를 개설하며 외교 정상화 과정에 들어서고, 북(조선)이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하도록 지원한다. 남(한국)은 기업들과 그밖의 사적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남북접촉에 대한 제한을 완화한다. 미국, 남(한국), 일본은 북(조선)에게 기업관리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통상법에 서명하도록 도와주며, 북(조선) 사람들을 훈련한다. 남(한국)은 북(조선)의 구조적 피해와 농업 개혁 요구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농학자를 파견한다. 일본은 북(조선)의 화학 무기를 해체하는 비용의 일부와 연락 사무소 개설 비용의 일부를 부담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은 4자회담 또는 주변 강대국들이 참가하는 별도의 다자간 협상에서 대량 파괴 무기 뿐아니라 평화협정과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제2단계는 평화구조를 수립하는 단계다. 북(조선)은 과거의 핵개발 문제에 관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만족할 만한 투명성을 보장한다. 스커드 미사일과 장거리포들을 비무장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다. 유럽 군비 감축형의 군비 감축 체제를 위한 협상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룩한다. 쌍방의 감시단이 상호합의하여 비무장지대에 접근한다. 만일 제1단계에서 성사되지 않은 경우, 정전협정을 개정하거나 보완하여 분계선 통과를 보장하는 챨리 검문소 설치에 관한 합의를 마무리한다. 남북 이산가족의 상호방문에 관해 합의한다. 미국과 일본은 북(조선)에 대한 외교 정상화 과정을 더욱 촉진하는 한편,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관련창구에 더 많은 자금을 내놓는다. 미국과 일본은 북(조선)을 개혁하기 위한 경제원조 종합계획을 논의하고, 석탄 정화기술을 원조한다. 남(한국)은 북(조선)에 대규모로 직접 투자하고 항만에 대한 수로학적 조사(hydrographic survey)를 실시한다.

제3단계는 국가연합(confederation) 수립 계획을 협의하고 주변 4대 강국이 이를 보장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미국은 교차승인을 완결한다. 남북 화해는 공고하게 정착된다. 남북이 군비를 크게 감축할 때, 주한미군 문제를 협상하기 시작한다.

 

매닝과 프르지스텁은 "위에서 제시한 외교적 과정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외교 양식을 창출할 것이며 한(조선)반도 통일 이후의 정치·안보를 설계하는 기초를 마련할 것"이라고 하면서, 만일 북(조선)체제가 존속 가능성과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현재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보수 성향의 정책전문가들답게 "그렇지만 우리는 현상(status quo)은 존재하지 않으며, 북(조선)은 날이 갈수록 쇠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조선)의 경제는 여러 측면에서 이미 국가 실체로서는 붕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제 미국의 대북정책 추진방향을 세 각도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1. 추진방향 (1) - "북(조선)에게 '독이 든 사과'를 줘라"

남(한국)에서 대선정국이 한참 열기를 더해가던 1997년 9월초, 조셉 나이가 방한했다. 우리는 그가 "현재도 클린턴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그의 움직임을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97년 9월 11일 박관용 국회의원과 대담하였는데, 박 의원은 대담 뒤에 "그와의 대화에서 미국이 한반도 통일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람들은 조셉 나이가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전환시키겠다는 '붕괴설'을 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는 미 국방부의 보수강경론을 대변하리라고 예상했는데, 그가 서울에서 발언한 내용은 그런 예상을 뒤엎었다. 그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지금 불안정한 북(조선) 체제를 안정시키려는 지원정책으로 펼쳐지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7월 중순 워싱턴의 고위 전략회의에서 정책적 방향전환이 논의되었다는 사실과도 들어맞는 내용이다. 박 의원과 나눈 대담에서 나이가 말한 내용을 요점적으로 정리해보자.

① 미국은 한(조선)반도 통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략은 궁극적으로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지향하고 있고, 현재도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② 미국이 통일된 한(조선)반도와 동맹 관계를 맺어야 국익추구에 들어맞는다. 그러나 통일된 한(조선)반도가 만약 일본과 동맹 관계를 맺게 될 경우 동북아 안보는 위협을 받게 될 수 있다.

③ 미국이 통일 과정을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체제 붕괴 위협을 느낀 북(조선) 지도부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거나, 아니면 남(한국)이 엄청나게 많은 통일 비용이 쓰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북(조선) 체제를 안정시키려는 지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북(조선)에 대한 적당한 지원은 결국 '독이 든 사과'를 주는 격이므로, 체제 약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④ 미국의 당면 목표는 남북관계를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려고 대화하고 있었던 1991년 이전 상태로 복원하는 데 있다. 미국은 우선 북(조선) 체제를 안정시킨 뒤 1단계로 북(조선)을 4자회담 등 각종 국제 회담에 끌어내고, 다음 단계에서는 남북이 직접 대화하도록 이끌어내야 한다.

⑤ 남북이 직접 대화를 하게 되면 곧 국가연합 단계로 들어설 수 있으며, 이 단계에서는 북(조선)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까 하는 위험성이 사라지게 된다. 국가연합 단계는 10년 정도 지속되리라고 본다.

나이가 솔직하게 표현한대로, 우리는 체제 안정, 개방과 변화, 지원정책 따위의 개념들을, 나이가 솔직하게 표현한대로, '독이 든 사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미국이 한때 주장했던 북(조선) 붕괴설을 '독을 묻힌 화살'에 비유할 수 있다면, 지금 미국이 말하고 있는 북(조선)의 개방·개혁을 위한 지원설은 '독이 든 사과'에 비유할 수 있다. 그동안 북(조선) 붕괴설을 반대해왔던 셀릭 해리슨 같은 사람도 북(조선)의 개방·개혁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다. 그는 1998년 6월 북(조선)을 다녀온 직후 발표한 기고문에서 "요컨대 북한은 아주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아주 천천히 개방되고 있었다. 나는 이런 과정이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 (줄임) 북한이 붕괴한다는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도부의 재구축을 포함한 변화는 예스지만, 붕괴는 노"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정책집행자들은 이러한 '북(조선)의 개방·개혁을 위한 지원'은 경제제재 조치를 풀지 않고서는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미 국무부가 경제제재 조치를 풀어보려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언론은 미 국무부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단계적으로 풀어가기로 결정하고, 제재 조치의 내용이 북(조선)에 미치고 있는 품목별 영향 정도에 따라 수천 개의 항목을 분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는데, 이 보도는 이미 1998년 2월에 나왔다.

지금 워싱턴 정가에서는 비단 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 뿐아니라 세계적 범위의 경제 제재 조치 전반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판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클린턴 행정부와 의회의 민주당 세력은 경제 제재 조치를 재검토하고 있다. 북(조선)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도 이러한 추세 속에서 조금씩 풀려나갈 수 있다. 그렇지만, 조셉 나이가 표현했듯이, 미국은 경제 제재 조치를 풀어가면서 북(조선)의 사회주의 체제를 약화시키고 종당에는 없애보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독이 든 사과'를 내놓고 있다.

2. 추진방향 (2) - "북(조선)을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이용하라"

미국은 21세기 아시아 전략구도에서 중국 문제를 핵심적 위치에 놓고 있다. 1996년 7월 17일 초당적 임기기구인 미국 국가이익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는 미국이 앞으로 비중있게 추진해야 할 전략 목표들 가운데 중국을 '세계 무대'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첫째로 꼽은 바있다. 미국은 중국의 대외 팽창력을 견제하고, 자기가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중국을 더욱 깊숙이 끌어들이겠다는 전략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전략 목표를 수행하는 방편을 여러 개 가지고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대북정책을 중요한 방편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 국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1997년 여름 워싱턴을 방문한 남(한국)의 인사에게 "동북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그런데 남(한국)도 일본도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없다. 지정학 차원에서 볼 때 북(조선)만이 미국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미국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남(한국) 언론은 이렇게 분석했다.

미국은 현재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 체제를 전환시키는 것이야말로 북한을 미국의 틀 안에 확실하게 편입하는 담보일 뿐아니라,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최고 수단이다. 북한의 체제가 바뀐다면, 그것은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골간을 뒤흔들게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서 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분석과 반대되는 방향에서도 논리가 성립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은 대북정책을 추진할 때 중국을 제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정책수립가들은 중국의 양해나 중국과의 상호합의를 통해야 북(조선)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시사저널』은 1997년 10월 26일 장쩌민 주석의 방미로 열린 중·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기존 조·미 관계를 인정한다 △4자 회담에 중국도 참여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보도했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중국에 대해 조·중관계와 한·중관계는 중국의 재량에 맡긴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로써 미국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서 걸림돌인 중국의 양해를 이미 얻어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중국이 조·미 관계나 4자회담에 대해 별반 말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이 때문이라고 한다.

리처드 앨런은 대북정책을 추진과정에서 중국이 어떠한 태도로 나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클린턴 행정부 안에서는 세 가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했는데, 국방부는 중국이 대북정책에 "대체로 도움이 된다(generally helpful)"고 보고 있고, 국무부는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very, very helpful)"고 보고 있다고 한다. 이와 다른 견해를 가진 관리들도 있는데, 이들은 중국이 대북정책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이 동북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때, 자기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지역 패권주의를 추구하리라고 보면서 경계하고 있다. 특히 매닝과 프르지스텁 같은 보수파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남다르다. 그들은 "중국의 장기적 목적은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과 동맹관계를 중국 중심의 다자적 안보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우리는 베이징이 한(조선)반도의 통일 이후에 주한미군의 철수에 영향을 미치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보수파 전문가인 리처드 앨런도 "특히 북(조선)과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중국은 북(조선)을 대미관계에 이용하려고 할 뿐"이라고 말하면서 경계심을 보였다. 로스 문로(Ross H. Munro)와 리처드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같은 강경파들은 미·일 동맹을 반중국 동맹(anti-China alliance)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워싱턴의 경제전략연구소의 보고서 『'기적' 이후의 아시아: 미국의 경제·안보 우선사항을 다시 정의함』은 미국의 중국정책에 관한 문제의식을 이렇게 설정하였다.

탈냉전 시기에 미국이 아시아에서 수행할 안보 역할을 다시 평가할 때, 미국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과연 중국이 미국과 일본의 강경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군사적 위협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 중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어느 쪽을 편드는 것이 미국의 이익추구에 들어맞는가 하는 문제, 비(非)아시아 강대국인 미국이 중국의 크기, 힘, 야심을 뻔히 알면서도 아시아의 맹주로서 가지는 권한을 주장하면서, 중국과 인근 나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세력균형을 조절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시아에서 미국의 안보 역할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과 들어맞는가 하는 문제다.

이 보고서는 중국의 재래식 군사력이나 대외팽창을 주시하지 않고, 중국과 일본의 핵무장 경쟁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중국정책에서 중·일 핵무장 경쟁을 예방하다는 데 힘써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중도파'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조선)을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이용하려는 미국의 정책은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나 '강경파'의 관점은 중국에 대한 대립구도를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국무부 안의 온건파의 주장이 힘을 얻는 한, 미국은 북(조선)을 중국을 견제하는 지렛대로 이용하려고 할런지 모른다. 얼마전 클린턴 대통령은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수립'를 선언했는데, 적어도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는 강경파의 주장이 먹혀들어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3. 추진방향(3) - "'포용'을 앞세워 '관리'하라"

오버도퍼는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경제적, 정치적 분야의 발전은 미국과 남(한국)의 동맹관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했는데, 이 평가에서 그는 미국이 김대중 정권의 등장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미국은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김대중 후보의 당선과 집권을 바랐다.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워싱턴 정가에서 찬사가 쏟아져 나왔는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미국의 기대와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던가를 알게 된다. 워싱턴은 김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전후하여 또다시 찬사를 보냈다. 한때 김 대통령을 '의혹의 눈초리'로 보았던 워싱턴의 보수강경파들도 태도를 바꿔 찬사를 보냈다. 리처드 앨런은 이러한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 변화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강경파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그의 때가 왔으므로 남(한국)이 (대북정책을-옮긴이)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 대선에서 만일 다른 후보자가 이겼다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시기 리처드 닉슨이 중국 정책에서 주도권을 발휘했듯이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특별한 자질과 지위를 갖추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김 대통령과 닉슨 대통령을 유사한 영상(image)로 이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돌이켜 보면, '닉슨 독트린'이라고 세상에 알려진 닉슨 행정부의 아시아정책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이 이길 수 없다고 내다보고 평화협정을 추진했으며, 1972년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를 지렛대로 삼아 중국에게 접근하여 중·미 관계를 개선하는 한편, 소련과 긴장완화 시대를 열었고, 1971년 주한미군 제7사단 2만여 명을 전격적으로 철수했던 일련의 조치들로 전개된 바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오늘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닉슨의 아시아정책과 유사하게 한(조선)반도에서 긴장완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리처드 앨런은 지금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긴장완화를 추구하여 대북정책에서 김대중 정권의 주도권을 보장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미국의 희망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줄임) 그는 남(한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이므로 그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입장이었다." 리처드 앨런은 이 기회를 "새로운 남(한국) 정부의 주도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미국의 이익추구에 들어맞으며, 또한 이것은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포기(relinquish)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했다. 돈 오버도퍼도 김대중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내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1988년 7월에 노태우 대통령이, 그리고 그 뒤에 김영삼 대통령이 북(조선)과 공존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북(조선)과 공존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히는 데서 가장 앞서 나간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밖에는 아무도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언은 매우 중요하며,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 자신의 평화 공존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의 지위를 공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 확실하다.

이로써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을 뒷받침하여 남북대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주한 미국대사 스티븐 보스워스는 『뉴욕타임스』 기자가 미국은 한(조선)반도 정책을 재평가하고 북(조선)과 관계 개선을 더 많이 논의할 때에 이르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것은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해답은 남북대화"라고 답변했다. 그는 "우리 둘(미국과 남[한국]을 뜻함-옮긴이)은 자동차 앞자리에 타고 있는데, 이제는 당분간 당신(남[한국]을 뜻함-옮긴이)이 운전대를 잡을 때가 되었다. 우리(미국을 뜻함-옮긴이)는 당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라는 말로 미국과 남(한국)의 새로운 관계를 묘사했다. 오버도퍼는 "이제 서울의 새로운 정부는 대북 관계에 관한 건설적인 구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미국은 한(조선)반도 문제에 관한 지도적 역할에서 강력한 지원적 역할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으며, "현재의 상황에서 미국은 조·미 관계와 관련하여 너무 많은 일을 해서는 안되며, 남(한국)과 진지하게 토의하고 조절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된다. 조·미 관계보다 남북관계가 훨씬 더 중요하다. 미국의 정책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버도퍼가 논문 『미국-남(한국) 관계』에서 제시한 정책 요점 여섯 가지는 아래와 같다.

① 남(한국)이 남북정책 수행을 주도해야 하며, 미국은 지원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②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남(한국)과 성과적으로 일하려면, 대남정책에서 남(한국)과 성과적으로 일해야 한다.

③ 미국과 남(한국)은 북(조선)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지금처럼 함께 힘써야 한다.

④ 미국은 만일 남(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북(조선)에 대한 사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⑤ 미국과 남(한국)은 지난 시기 엉망진창이 되었던 정책 조율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⑥ 미국과 남(한국)은 남북의 군사적 배치, 다시 말해서 한(조선)반도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인 상호 병력 감축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케네스 퀴노네스는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대북관계를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는 미국의 의도를 역할분담론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한(조선)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책임 영역을 정해야 한다. 즉, 통일 문제는 코리언들에게 맡기고, 미국은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줄임) 협상은 직렬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즉, 워싱턴은 세계 차원의 문제를 놓고 평양과 협상하는 데 주력하고, 서울은 남북 기본합의서의 이행과 같은 주요한 쌍방 관심사를 놓고 평양과 협상하는 것이다.

매닝과 프르지스텁도 퀴노네스와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이 파악하고 있는 한·미역할분담론은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문제를 장악하고, 남(한국)은 남북 기본합의서에 규정된 비정치적이고 비군사적인 교류·협력문제만 추진하면 된다는 논리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코리아가 안고 있는 문제는 남북 기본합의서와 신뢰 구축에 근거한 남북 대화(이를테면 경제적, 정치적 협력, 이산가족 재결합, 문화교류)에 아주 적합한 문제들이다. 정전협정, 군비 축소, 평화협정 같은 문제들은 성격상 남북대화에 적합하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이 전진배치한 미군과 남(한국)의 안보조약을 유지하고 그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논리적으로 말해서, 평화협정 보장 문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존중하는 문제, 통일된 코리아를 재건하는 문제, 군비 수준을 정하는 문제, 코리아의 대외 경제 협력 문제 같은 것은 한(조선)반도 주변 4강의 역할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남북관계의 변화과정에서 김대중 정권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케네스 퀴노네스가 잘 설명한 바있다. 그는 남(한국) 언론에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조언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이 글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에 맞추어 발표했는데, 이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퀴노네스의 조언을 옮겨보면 이렇다.

① "남북은 기본합의서를 좀더 빨리 이행하는 방안을 토의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북한의 속내를 떠볼 가장 좋은 방법은 기본합의서의 약속을 이행하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② "김대중 대통령은 이산 가족과 관련한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는 분명히 정치적으로 국회나 국민의 지지를 광범위하게 얻을 것이다. 협상을 질질 끌 필요가 없다. 남북 기본합의서에는 이산 가족 상호 교환 방문에 관한 세부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산 가족 상봉 제의는 남북 대화 재개에 관한 한국정부의 진지함을 입증하고 평양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압력 요인이 될 것이다."

③ "북한은 서울이 소수의 비전향 장기수들을 석방할 때까지 대화에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버티고 있다. 이들 장기수를 북한으로 송환해 이산 가족의 재결합을 돕는 것과 죄수 6-8명을 계속해서 붙잡아 두는 것, 어느 것이 이득인지 김대중 정부는 결정해야 한다."

④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포럼(forum)이나 더 깊은 논의가 아니라, 남북 기본합의서가 만든 공동위원회를 다시 소집하는 것이다." 퀴노네스는 "나는 남북 군사공동위원회가 다시 열린다면, 이 회담을 감시할 미국과 중국의 참가를 허용하라고 남북에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매닝과 프르지스텁은 "북(조선)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경우가 아니라고 한다면, 서울쪽은 통합-통일 과정(integration/reunification process)에서 주된 결정자가 되어야 하고, 다른 외세들은 그 과정에 영향을 주거나 그 과정을 촉진하거나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말한대로 김대중 정권은 남북관계에서 주도권을 발휘하고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더 커져서 김대중 정권은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남(한국) 언론도 "새 정권은 이처럼 미국의 한(조선)반도 영향력이 한층 강화된 조건에서 남북 관계에 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즉 최근의 IMF 정국과 마찬가지로 남북 관계 역시 미국의 영향력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6) 맺는 말

우리는 위에서 한(조선)반도 군사정세에 대한 미국의 움직임과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화조짐을 살펴보았다.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한다면, 미국은 대북정책의 추진방향을 일정정도 바꾸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지배주의 전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이 여전히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지배주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을 뿐아니라, 북(조선)의 정치·군사적 도전과 중국의 국력 팽창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그 전략을 되레 더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미국의 지배주의 전략이 추진되고 있는 영향권의 중심부에 놓여 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지배주의 전략의 핵심이다. 미국은 정치협상과 무력시위를 병행하면서 대북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김대중 정권은 김영삼 정권이 때로 대미 갈등을 보였던 것과 달리 미국의 행동계획을 충실하게 뒤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미국의 이러한 행동계획이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미국은 행동계획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수행할 수단과 방법이 없어서 고민에 빠져 있다. 돈 오버도퍼는 언론 대담에서 "북한 주민을 굶지 않게 하면서 북한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방법이 제일 좋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방법이 없다"고 말했으며, 도쿄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도 언론 대담에서 "사실 미국은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할 경제적으로 유효한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랭크 재누지의 솔직한 표현을 빌리면, "간단히 말해서, 북한의 운명은 미국의 손 안에 있지 않다." 바로 이것이 지배주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이 한(조선)반도 정책 수행과정에서 성과를 얻지 못하는 까닭이다. 지배주의 전략을 버리고 호혜평등 전략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성과를 얻지 못한다. (1998년 10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