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류의 주체철학 해석에 대한 북(조선) 내부의 비판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들어가는 말

일본 도쿄에 있는 조선문제연구소(Korean Affairs Institute)가 펴낸 일본어 자료집 『월간 조선자료』 1998년 3월호(통권 제442호)에는 북한학자들이 주목해야 할 자료가 실렸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이론지 『근로자』에 실렸던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의 일어 번역문이 그것이다. 『월간 조선자료』에 의하면, 이 담화는 평양의 외국어 출판사(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가 1997년에 펴낸 자료라고 한다.

북한학자들이 이 담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북(조선)의 당 이론가들 사이에서와 사회과학계에서 황장엽류의 주체철학 해석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었다는 사실과 그 비판을 김정일 총비서가 마무리함으로써 주체철학에 관련한 일련의 이론 문제들에 대한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학자들이 이 담화에 주목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한 북(조선) 내부의 비판은 1997년 2월에 일어났던 '황장엽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주체철학 해석 문제와 '황장엽 사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물론 '황장엽 사건'의 원인을 주체철학 해석 문제로 국한하여 파악하는 것은 일면적인 오류이며, 남(한국)의 대북 공작이라는 정치 문제로 접근해야 그 원인을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지만 북(조선)의 당 이론가들 사이에서와 사회과학계에서 진행된 황장엽류의 해석에 대한 비판이 '황장엽 사건'의 배경의 일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황장엽 사건'의 충격으로 한(조선)반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던 때, 본 연구소가 펴낸 『통일논의』 제16호(1997년 3월)는 「황장엽 사건에 대한 분석적 이해」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은바 있다. 그 논문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당 기관지인 『근로자』 1996년 7월호에도 황장엽의 수정주의 노선을 겨냥한 비판 논문이 실렸는데, 그것은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개편·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독창적인 이론 체계라고 주장'(『월간 조선』 1997년 3월호, 100쪽)하는 포괄론자의 글이라고 한다. 북(조선) 사정에 정통한 도쿄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른바 '주체사상의 수정주의 노선'에 기울어져 있던 황장엽은 김정일 비서가 주체사상에 대한 수정주의적 오류를 지적·비판했던 1995년(1996년의 착오로 보임-인용자) 7월 23일 조선로동당 내부 담화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였고, 그 결과 젊은층 당 고위간부들로부터 황장엽은 사상적 정통성에 문제가 있으며, 관념론자라는 집중적인 비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한겨레』 1997년 2월 15일자)"

"1996년 7월 26일 김정일 비서가 당중앙위 선전부 일꾼들에게 제시한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는 제목의 논문에서 주체사상은 북(조선)에서 독창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밝히면서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한국일보』 1997년 2월 18일자)

내가 '황장엽 사건'을 분석하고 있었던 1997년 2월 말에서 3월 초만 해도 이 사건과 관련하여 파악한 정보는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에, 황 씨의 주체철학 해석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비판에 대한 나의 분석에는, 위의 인용문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약간의 혼동과 모호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근로자』에 발표되었던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의 전문이 일본어 번역으로 공개됨으로써 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를 좀 더 진전시킬 수 있었다. 이에 관해 요점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가 1996년 7월 이후 당 중앙위원회 이론지 『근로자』에 실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그런데 『월간 조선자료』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리론잡지 『근로자』에 준 담화, 1996년 7월 26일"이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이 날짜가 담화를 한 날짜인지, 아니면 담화를 『근로자』에 준 날짜인지를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았다.

2) 이 담화의 내용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최근 북(조선)의 당 이론가들 사이에서와 사회과학계에서 황장엽류의 주체철학 해석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는 점.

3) 이 담화는 당 이론가들 사이에서와 사회과학계에서 그 동안 주체철학 해석 문제와 관련하여 진행해 온 비판을 마감하는 '최종 결론'으로 당 중앙위원회 이론지에 발표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이 담화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최근에 우리의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주체철학을 해설하는 데서 우리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그릇된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조선로동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그릇된 견해를 주장하고 있는 일부 사회과학자들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이 담화에는 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황 씨와 그의 견해에 동조하는 몇몇 사회과학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추정하는 근거는 이 담화가 "그러한 견해가 대외에도 류포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였습니다"고 한 대목과 "그들은 주체사상 선전을 대외선전의 특성에 맞게 하기 위하여" 그러한 견해를 대외에 유포하였다고 한 대목에서 좀더 명확해진다. 황 씨는 '탈북입남(脫北入南)' 이전에 주체사상을 대외에 선전하는 지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은 당의 지도 사상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당과 당 사이의 논쟁이나 당내 논쟁은 '정통 해석(orthodox interpretation)'에 이설(異說)을 제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데, 정통 해석을 견지하는 쪽과 이설을 제기하는 쪽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 과정에서 전자는 후자를 '수정주의자들(revisionists)'로, 후자는 전자를 '교조주의자들(dogmatists)'로 비판하면서 날카롭게 맞서곤 하였다. 만일 당내 논쟁에서 '수정주의자들'의 오류가 판명되면, 철직과 출당이라는 책벌이 가해지며 그로써 논쟁은 막을 내린다. 그런데 '황장엽 사건'의 경우는 철직과 출당 이전에 남(한국)쪽의 대북 공작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탈북입남'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 담화의 첫 문장에서 "문제가 제기되였습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담화가 발표된 1996년 7월 이전부터 북(조선)의 당 이론가들 사이에서와 사회과학계에서 황장엽류의 '편향'에 대한 비판이 진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비판과 논쟁은 '사상교양'을 담당하고 있는 당의 선전부 간부들, 그리고 사회과학계 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동아일보』는 김정일 총비서가 연설에서 황 씨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고 전했다. "그는 말로는 주체사상을 신봉한다고 하였지만 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인연이 없는 주장들을 자주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의 그릇된 사상관점과 주장을 여러번 비판해 주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겉으로는 접수한다고 하고서는 뒤에서 은밀히 자기의 그릇된 주장을 퍼뜨리려고 했습니다." 『동아일보』가 보도한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황 씨를 비롯한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당의 비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황 씨는 1996년 11월 13일자로 쓴 비밀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국은 금년 5월 9일을 계기로 나의 사상이 자기의 통치 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격을 개시했으며, 나에 대한 감시를 집중하고 있음. 특별 강연회를 소집하고 나의 이름을 찍지 않고서, 그러나 청중이 누구를 염두에 둔다는 것은 알 수 있게 비판하고 사상이론적 권위를 떨구기 위한 깜파니야를 계속하고 있음." 위의 인용문이 사실이라면, 황장엽류의 '편향'에 대한 당의 비판은 적어도 1996년 5월 9일부터 본격적으로, 공개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가 발표된 날짜가 7월 26일이므로 약 석 달에 걸쳐 지적과 비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조선) 당 이론가들 사이에서와 사회과학계에서 진행되었던 황장엽류의 일부 사회과학자들의 '편향'과 '오류'에 대한 비판은 위에서 언급한 그대로지만, 그러한 비판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도 있었다. 1990년 10월 15일에 있었던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를 읽어 보면, 1996년 7월 26일의 담화와 거의 같은 내용의 지적과 비판이 나오는 데, 이러한 사정으로 보아서 '편향'과 '오류'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적어도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1980년대 말이라고 하면, 김정일 총비서가 주체사상을 집대성하고 그 체계를 완성한 시점이다. 1986년 6월 27일에 있었던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금 주체사상의 원리를 해석하는 데서 통일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원리를 해석하는 데서 통일성을 보장하지 못하면 근로자들을 교양하는 데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리론 문제에서 통일성을 보장하는 것을 행정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여서는 안됩니다. 사회과학자들 속에서 집체적 토론을 심화시켜 주체사상의 원리를 해석하는 데서 통일성을 보장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주체사상 교양은 선전부가 책임지고 하여야 하지만 주체사상과 관련된 리론 문제는 사회과학 연구기관들이 중심이 되여 풀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986년 당시만 해도, 북(조선)의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주체사상을 잘못 해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눈길을 끄는 것은 만일 이론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일방적으로 위에서 '이론 지침' 같은 것을 내려보내는 행정적 방법이 아니라, 사회과학자들 속에서 집체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토론 과정은 사회과학 연구기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90년 10월 15일에 있었던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는 일부 사회과학자들에게서 생긴 문제가 주체철학의 독창성을 알지 못하고,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맞춰서 해석하려 했다는 것임을 밝혀주고 있다.

"최근에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주체사상을 해설하여 쓴 글들을 보면 주체철학의 독창성과 우월성을 당의 정책적 요구에 맞게 바로 해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 자체가 아직도 주체철학에 대하여 올바른 관점과 정확한 리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여 줍니다. (줄임) 지난 시기 일부 사회과학자들 속에서 주체사상을 맑스주의 유물변증법의 틀에 맞추어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체사상의 독창성을 옳게 인식할 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말해 준 일이 있는데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1990년 10월 15일의 담화와 1996년 7월 26일의 담화에서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과 비판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은 두 문헌을 비교하면 금방 드러난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주체철학을 완전히 독창적인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맑스주의 유물변증법 리론 발전의 견지에서 해석하려는" 편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2) "사물 발전을 객관적인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선행 리론의 제한성을 극복"해야 하므로, 주체철학을 해설·선전하는 데서 생물학주의적이며 속류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배제해야 한다.

3) 변증법적 유물론의 법칙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the law of unity and struggle of opposites)'을 중시하는 것은 오늘 사회주의 사회 발전의 합법칙성을 해명하는 데 맞지 않는다.

4) 사람의 본질적 속성들(essential attributes)과 다른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의 차이를 발전 수준의 차이로 보는 견해는 진화론적 고찰 방법이므로 잘못되었다.

5) 사회적 재부를 사회적 존재에 속한다고 보는 견해는 사람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와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이므로 잘못되었다.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제기되어온 주체철학 해석 문제에 관하여 다시 언급한 김정일 총비서의 1996년 7월 26일 담화는 거의 10여 년 동안이나 해결되지 못했던 주체철학 해석의 오류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린 문헌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 정치 구조의 특성상 당의 지도 사상과 관련하여 제기된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최종적인 해석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은 당의 최고 지도자에게 주어져 있음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사회주의 집권당의 최고 지도자는 당의 지도 사상의 창시자, 또는 그것을 정립하고 집대성한 사상이론가이기 때문이다. 맑스-레닌주의 창시자들인 맑스와 엥겔스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국제 사회주의 운동과 '현실 사회주의' 체제를 이끌어온 정치 지도력은 무엇보다도 그 운동과 체제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사상이론적 '업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에 황장엽류의 '편향'과 '오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소련과 동유럽의 소비에트형 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변동과 무관하지 않다. 이 시대적 변동 속에서 황 씨는 중국식의 '개혁·개방'만이 체제 수호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그를 중국 예찬론자로 만들어 놓았다. 그의 중국 예찬론은 근세 조선의 봉건 지배계급을 사로잡고 있었던 모화사상(慕華思想)에 결코 뒤지지 않는 듯하다. 그가 내놓은 현대판 모화사상을 여기 옮겨 보자.

"오늘 개혁 개방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중국은 전세계 진보적 인민들의 희망의 등대이며 국제 반동들의 질투와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에서 개혁 개방의 성공은 인류 공동의 대경사이며 역사 발전에서 결정적 의의를 가진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중국의 개혁 개방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따라 배워야 할 것이며 중국 인민이 개혁 개방에서 종국적인 승리를 이룩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유구한 기간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고 허다한 역사의 파란곡절을 겪으면서 풍부한 경험과 교훈을 체득한 재능 있고 강의하고 생활력 있는 위대한 중국 인민이 개혁 개방의 위업을 성과적으로 완성하고 세계 평화와 인류 발전에 응당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을 충심으로 바라 마지 않는다."

(2) 주체철학·주체사상·김일성주의

1990년대에 진행된 주체철학 해석에 관한 비판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에 앞서, 개념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명료하게 정리해 두어야 할 논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주체철학이라는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흔히 북한학자들 사이에서는 주체철학, 주체사상, 김일성주의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여 혼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이 세 개념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주체철학(Juche Philosophy)이라는 개념은 김일성주의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철학적 원리와 사회역사적 원리의 철학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북(조선)에 의하면, 주체사상(Juche Idea)은 사상, 이론, 방법의 3대 체계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 체계는 철학적 원리(philosophical principle), 사회역사적 원리(socio-historical principle), 영도 원리(guiding principle)의 3대 체계로 설명된다. 그 가운데 '사상'의 체계가 곧 주체의 세계관을 뜻하며, 이것을 주체철학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하여 맑스-레닌주의는 철학적 유물론(philosophical materialism),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과학적 사회주의(scientific socialism)의 3대 체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체사상의 3대 체계와 대응시키면 철학적 유물론과 주체철학이 상응하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김일성주의(Kimilsungism)란 사상, 이론, 방법의 3대 체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주체사상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북(조선)에서는 내부적으로는 김일성주의라는 용어를 쓰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김일성주의와 주체사상이라는 두 개의 용어는 동일한 사상이론을 달리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김일성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를 쓰는 까닭은 김일성주의가 국제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체제의 지도 사상인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상이론, '불완전한' 맑스-레닌주의를 완성시킨 최고의 사상이론이라는 조선로동당의 주장과 견해를 외부에 명시적으로 드러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만일 조선로동당이 주체사상이라는 방편적 용어를 접어두고 김일성주의라는 명시적 용어를 쓴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맑스-레닌주의를 지도 사상으로 하여 전개되어온 국제 사회주의 운동과 그것을 지도 사상으로 하여 수립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지도 사상을 대외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맑스-레닌주의를 지도 사상으로 인정하고 있는 중국공산당이나 다른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 정당들, 그리고 국제 사회주의 운동 내부에서 사상 논쟁과 외교 문제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이다. 조선로동당은 이러한 정황이 조성되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이미 20여 년 전에 김일성주의를 정식화한 뒤에, 내부적으로는 김일성주의라는 용어를 써오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주체사상이라는 방편적 용어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따져 말하면, 주체사상이 아니라 김일성주의라는 용어가 더 정확한 용어다.

남(한국)의 북한학자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오고 있는 주체사상과 맑스-레닌주의의 관계 문제에 관한 논의는 북(조선)이 주장하는 김일성주의의 '사상사적 지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은 부정확한 용어를 전제로 삼은 조건에서 진행된 것이었기 때문에 혼동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사회주의 사상사에서 스탈린, 티토, 마오쩌둥, 덩샤오핑, 호치민 같은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각기 자신들이 살며 투쟁했던 시대의 요구와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여 다양한 사상과 이론을 정립하고 전개하였지만, 지도 사상으로서 유일한 지위를 누려온 것은 언제나 맑스-레닌주의였다.

지난 시기 소련공산당의 지도 사상은 맑스-레닌주의였는데도, 서방 언론이나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스탈린 체제를 규정하는 통치 이념을 표현할 때 흔히 스탈린주의(Stalinism)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그렇지만 스탈린주의란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하는 소련공산당의 지도 사상으로 정식화된 것은 아니었으며, 단지 맑스-레닌주의를 계승·발전시킨 이론 체계였으므로 정확히 표현하자면 스탈린사상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옳았다.

한편 중국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를 중국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마오사상을 주장한 바있다. 서양에서는 마오주의(Maoism)라는 용어를 쓰면서 마오사상과 마오주의를 구분하지 않았으나, 마오쩌둥은 맑스-레닌주의자였으며,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상이론을 창시하지는 못하였다. 마오사상의 핵심인 1937년의 「모순론」과 「실천론」은 중국의 철학적 세계관인 음양사상의 범례(paradigm)를 통하여 맑스-레닌주의의 철학적 유물론을 중국식으로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기초 위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 것이며,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하는 사상사적 지위에 오르지는 못했다. 마오쩌둥 이후 시대에는 덩샤오핑사상이 등장하여 마오사상에 대해 수정을 가했고, 베트남공산당의 경우에도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호치민사상을 내세운 적이 있다. 그런데 호치민사상이나 덩샤오핑사상은 마오사상에 견주어 볼 때 더 체계화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맑스-레닌주의가 지도 사상으로서 유일한 지위를 누려올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최고 수준의 철학적 세계관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어쨋든 김일성주의가 새로운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를 정립함으로써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했다는 북(조선)의 주장은, 세계 사회주의 사상사에서 등장했던 여러 경험들과 확연하게 구별된다. 이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주의는 맑스-레닌주의와 다른 독창적이고 우월한 철학적 세계관을 세웠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구성 체계와 전개 내용에 있어서도 맑스-레닌주의와는 다르게 정립되었으며, 이로써 김일성주의는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계승·발전의 관점이 아니라 독창·우월성(originality-superiority)의 관점에서 그 사상이론적 지위와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조선로동당이 자기의 유일한 지도 사상을 김일성주의라고 하게 된 이유이며 근거다. 김일성주의의 독창·우월성에 관련한 북(조선)의 주장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 자세하게 검토하기로 한다.

이제 이 글의 논의는 김일성주의와 맑스-레닌주의를 대비하여 고찰하면서, 김일성주의에 대한 황장엽류의 '수정주의적 해석'과 '편향'이 어떤 것이며, 그것에 대한 북(조선)의 비판과 지적은 어떠한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물론 북(조선)은 엄격한 비밀주의 정책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황장엽류의 '수정주의적 해석'과 '편향'에 대한 당 이론가들과 사회과학계의 비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외부에 공개한 바없다. 이러한 제약 때문에 이 글에서는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에 나타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3)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견해들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세계관의 기초는 '철학적 원리'라고 부른다. 이 '철학적 원리'는 세계관의 사상적 기초, 이론적 기초, 방법론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근본 원리로서, "그로부터 주체사상의 모든 내용을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대표하게 되며 주체사상의 진수, 그 혁명적 본질을 이룬다"고 한다. 김일성주의 체계에서 '철학적 원리'의 지위는 맑스-레닌주의 철학이 '철학의 근본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 대해 해명과 답변을 주었던 원리, 곧 '철학의 근본 원리'의 지위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원리와 맑스-레닌주의의 철학적 유물론이 어떻게 다른가를 파악하려고 하면, '철학의 근본 문제'를 각기 어떻게 제기하였는가, 그리고 그 근본 문제에 대해 각기 어떻게 해명하고 답변하였는가를 고찰해야 한다. 김일성주의의 독창·우월성에 관한 북(조선)의 주장은 이러한 고찰 과정에서 검토할 수 있다.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원리와 맑스-레닌주의의 철학적 유물론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되었고, 긴 논의 과정을 거쳐왔다. 북(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주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발아기(發芽期)를, 1950년대에 창시기(創始期)를 거쳤다고 한다. 주체사상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도 아직 정립되지 못했으며, 조선로동당의 지도 사상을 '우리 시대의 맑스-레닌주의', 또는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것은 북(조선)이 자기의 지도 사상을 맑스-레닌주의의 계승·발전으로 인식했던 과도적 단계가 있었음을 말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의 지도 사상은 1970년대에 이르러 이 과도적 단계에서 벗어나 김일성주의로 정식화되었고, 1980대에 집대성되고 전일적 체계화가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김일성주의를 정립하고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사람은 김정일 총비서였다. 북(조선)의 문헌들을 분석해 보면, 김일성주의 정립 과정은 대략 아래와 같이 네 차례의 전환적 계기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

1) 1974년 2월 19일 '전국 당선전일군 강습회'에서 한 김정일 총비서의 결론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당사상사업의 당면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이 문헌에서 김일성주의를 정식화, 공식화하였다.

2) 1982년 3월 31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탄생 70돐 기념 전국 주체사상토론회'에 보낸 김정일 총비서의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이 문헌에서 김일성주의를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 체계로 정립하였다.

3) 1986년 7월 1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김정일 총비서의 담화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이 문헌에서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하여 해명하였다. 김일성주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정립함으로써 집대성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 학자 스즈키 마사유키는 북(조선)이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정립함으로써 사회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맑스-레닌주의의 기존 개념과 다르게 되었다고 보았다.

4) 1990년 5월 3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 앞에서 한 김정일 총비서의 연설「사회주의의 사상적 기초에 관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이 문헌에서 맑스-레닌주의의 제한성과 김일성주의의 독창·우월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맑스-레닌주의의 제한성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이제부터는 그 제한성을 정확히 알아야 하며, 김일성주의의 독창·우월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하여 존립하였던 소련과 동유럽의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중국이 '천안문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대혼란기에 이 문헌이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는 김일성주의를 파악하는 데서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회주의의 사상이론 체계는 철학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성립되는 것이므로, 철학적 세계관에 대한 해석의 오류는 곧 사상이론 체계 전반의 오류로 확대되기 마련이다. 맑스-레닌주의의 세계관이 철학적 유물론에 기반을 두고 성립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원리'도 철학적 유물론의 틀 안에서 해명된다고 한다면, 김일성주의는 맑스-레닌주의를 계승·발전시킨 '아류 사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FONT <

그러나 이와 달리 김일성주의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독창·우월성을 주장하려면, 북(조선)은 김일성주의가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제기되었던 것과는 다른 '철학의 근본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하여 '철학적 원리'로 답변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성립했다는 주장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김일성주의와 맑스-레닌주의의 관계를 독창·우월성의 견지에서 보느냐, 아니면 계승·발전의 견지에서 보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계승·발전의 견지에서 이 양자의 관계를 보았던 종래의 관점은 김일성주의가 맑스-레닌주의를 계승한 측면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측면을 '변증법적 종합'으로 파악하면서, 창조적 발전의 측면을 위주로 하여 계승성의 측면을 보아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이와 더불어 맑스-레닌주의로부터 계승한 내용은 무엇이며, 창조적으로 발전시킨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당연히 그 뒤를 이어 전개되었다.

그러나 김정일 총비서는 한때 계승·발전의 견지에서 전개되었던 과도기적 논의를 마감하고 독창·우월성의 관점에서 양자의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공식 천명하였다. 그는 계승성이란 김일성주의와 맑스-레닌주의의 양자 관계를 대치적, 대립적 성격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등적, 계승적 성격으로 보는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계승성의 의미를 "맑스-레닌주의의 력사적 공적을 인정"하는 문제로 국한하여 해석한 바있다. 이제 김일성주의의 독창·우월성에 관한 김정일 총비서의 견해를 그의 문헌들에 의거하여 알아 보기로 하자.

북(조선)에서 김일성주의의 주체철학을 독창적이고 우월한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운 철학의 근본문제(the new fundamental question of philosophy)'를 제기하고, 그것에 의거하여 새로운 '철학적 원리'를 정립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철학의 근본 문제'란 철학적 세계관을 해명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명하느냐에 따라 세계관의 내용이 달라지게 되는 세계관 해명의 출발점이요 중핵이다. '철학의 근본 문제'란, 북(조선)의 학자가 지적했듯이, "그 해결이 다른 모든 문제의 해명을 위한 사상이론적, 방법론적 기초를 이루는 문제로서 세계관을 세우는 데서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기초적인 문제"며, "선차적으로 풀고 그것을 사상이론적, 방법론적 기초로 삼아야 다른 문제들을 옳게 풀 수 있는 기초적인 문제"다.

원래 맑스-레닌주의의 철학적 세계관이 제기하고 해명한 '철학의 근본 문제'는, 엥겔스가 정리한대로, 물질-의식(matter-consciousness)의 관계 문제였다. 이것은 때로 존재-사유(being-thinking)의 관계 문제, 또는 자연-정신(nature-spirit)의 관계 문제로 표현되기도 했다. 세계는 물질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물질이라는 범주와 의식이라는 범주는 더 이상 다른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고, 더 이상 추상화될 수 없는 최고 단계의 포괄적 범주가 된다. 이것이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가 '철학의 근본 문제'가 될 수 있는 근거다.

두루 알려진대로, 맑스-레닌주의는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를 철학의 근본 문제로 제기하고 해명하면서 두 개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것은 세계의 존재론적 근원에 관한 문제와 세계에 대한 인식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전자는 세계의 근원이 물질인가 아니면 의식인가 하는 문제이며, 후자는 의식이 물질 세계를 반영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다. 맑스-레닌주의는 전자와 관련해서는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material unity of the world)과 의식에 대한 물질의 선차성(primacy of matter to consciousness)과 물질의 외재성(externality)이라는 답변을 주었고, 후자에 대해서는 객관 세계에 대한 인식 가능성과 물질 세계의 운동과 의식의 반영 운동 사이의 상응성(correspondency)이라는 답변을 주었다.

그런데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에서, '의식'이라는 범주는 존재론적 실재를 표현하는 범주가 아니다. 의스 ?실재가 아니라 작용과 기능이다. 의식은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라, 인간 뇌수라는 고급한 생명 물질의 작용과 기능이다.

맑스-레닌주의가 이처럼 '물질'이라는 존재론적 실재의 범주와 뇌수의 작용을 표현하는 '의식'이라는 비(非)실재적 범주를, 철학의 근본 원리를 해명하는 양대 개념으로 설정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는, 유물론적 세계관이 세계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는 '물질'과 관념론적 세계관이 세계의 근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의식'을 대립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양대 세계관의 진위(眞僞)를 선명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물질-의식 관계 문제에서 말하는 '의식'이란 뇌수의 작용과 기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관념론적 세계관이 주장했던 세계의 존재론적 근원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레닌은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가 유물론과 관념론의 근본적인 차이와 어떻게 결부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물론자들과 관념론 철학의 신봉자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유물론자들은 관념, 개념, 감각, 그리고 일반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정신을 객관 실재의 영상(image)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처럼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 관계를 철학적 범주로 표현하고 있는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는 서양 철학사에서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승리'를 선언하고, 관념론의 '허위와 반동성'을 폭로하고 폐기하는 문제로 맑스-레닌주의에 의해서 부각되었다. 맑스-레닌주의에 의하면,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를 해명함으로써 철학적 유물론의 세계관적 진리성이 확증되었다고 한다.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라는 '철학의 근본 문제'는 철학적 유물론의 세계관적 진리성을 확증하기 위하여 설정된 것이다.

맑스-레닌주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론적 실재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로 추상화된 실재를 표현하고 있는 '물질'이라는 범주는 전체(totality)로서의 세계를 표현하는 철학적 범주다. 레닌에 의하면, "물질은 우리의 감각에 의해서 모사되고, 촬영되고, 반영된 객관적 실재, 그리고 우리의 감각에 의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는 철학적 범주"다. 맑스-레닌주의는 이처럼 '물질'이라는 철학적 범주의 진리성을 확정하고나서, '물질'에 대하여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으로 해명하였다. 맑스-레닌주의는 '물질'의 보편적 운동 법칙에 대한 해명에 집중하였다. 맑스-레닌주의의 해명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물질 일반의 존재 방식은 운동이다. 엥겔스는 물질의 직직임(mo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그는 물질 세계의 운동을 기계적 운동 형식(mechanical form of the motion of matter), 물리적 운동 형식(physical form of motion), 화학적 운동 형식(chemical form of motion), 생물학적 운동 형식(biological form of motion), 사회적 운동 형식(social form of motion)이라고 밝힘으로써 물질 세계의 운동 형식의 다섯 가지 범주를 정식화하였다. 레닌은 엥겔스와 달리 물질의 운동(movement)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레닌은 "세계에는 운동하는 물질 이외에는 없으며, 운동하는 물질은 오직 시간과 공간 안에서만 운동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맑스-레닌주의가 해명한 물질 세계의 근원과 존재 방식이다. 이 해명에 대해서 북(조선)의 강민구 교수는 "맑스주의 철학에서는 무생명 물질, 생명 물질, 인간 등 발전 단계를 달리하는 존재들을 그 공통적인 특징을 일반화하는 방법으로 세계의 존재의 특징을 밝혔다. 물질 일반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의 다양한 존재들의 본질적 특성을 분석하면 그것이 인간의 의식밖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는 물질적 개념이 도출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맑스주의 철학은 세계는 본질에 있어서 물질이며 그것은 3차원적인 공간과 1차원적인 사간 속에서 존재한다는 세계의 보편적 특징에 관한 견해를 제기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김일성주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김일성주의가 맑스-레닌주의와 비교해서 다른 점은 '물질'이라는 철학적 범주에 포괄되어 있는 세계관적 개념을 '세계'와 '사람'으로 구분하면서, "사람과 객관 세계는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주되는 두 측면"이라고 하였다는 데 있다. 이것은 전체로서의 '세계'와 그 세계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두 개의 철학적 범주로 구분하여 고찰하기 위한 '새로운' 철학의 근본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김일성주의는 이 새로운 근본 문제를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로 정식화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새로운 철학의 근본 문제에서 '사람'과 '세계'는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유물론의 '물질'과 '의식'에 대한 해명에서 표현되었던 것처럼 세계관의 대립성을 표현하는 개념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는 '물질'이라는 철학적 범주 속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론적 실재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해명하는 세계관의 문제다. 김일성주의는 '사람'이라는 철학적 범주를 중심에 놓고 객관 세계를 해명해야 한다고 하였다. 북(조선)의 강승춘 박사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고찰하는 방법은 물질 세계를 인간과의 관계에서 고찰하며 사람의 존재와 발전을 중심에 놓고 물질 세계의 존재와 발전의 일반적 특징을 고찰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북(조선)의 주장에 의하면, "사람을 중심에 놓고 세계를 고찰하면 세계는 주체인 사람과 그의 생활 환경이며 개조 대상으로서의 객관 세계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주체인 사람과 그 대상인 주위 세계와의 관계 문제를 철학의 근본 문제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는 주체-세계의 관계 문제로 풀이될 수 있으며, 세계에 대한 주체의 관계는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의 문제로 해명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와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는 무관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김일성주의는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는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가 해명된 뒤에 제기되고 해명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의 철학적 문제라고 한다. "물질과 의식의 관계 문제의 해결은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의 해명을 위한 전제를 이룬다"는 것이다.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가 해명되지 않은 단계에서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가 제기될 수 없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주체철학이 새로운 세계관을 밝혔다고 하여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체철학은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세계가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세계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는 객관적 물질세계의 본질과 그 운동의 일반적 합법칙성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리해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관념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를 신비로운 존재로 본다면 사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없으며 형이상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를 고정불변한 존재로 본다면 사람이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세계가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세계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는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는 세계에 대한 유물변증법적인 리해를 시인하는 조건에서만 성립될 수 있습니다. 맑스주의 유물변증법이 일련의 제한성과 미숙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본 원리들은 과학이며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체철학이 유물변증법적 세계관을 전제로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담화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처럼,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는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명한 기초 위에서 철학적 세계관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를 해명한 김일성주의는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적 해명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이론적 전제'로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의 뜻은 주체철학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이론적 전제로 포괄한 조건에서 더 높고, 새로운 단계의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조선)의 리성준 교수는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은 물질 세계의 일반적 특징을 밝혀주는 유물론과 변증법의 원리를 포괄하여야 인간의 운명 문제에 전면적으로 심오한 해명을 주는 세계관이 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물질과 의식의 관계 문제는 사람과 세계의 관계 문제의 한 측면을 이룬다. 사람과 세계의 관계 문제는 의식을 가진 물질적 존재인 사람과 다른 모든 물질적 존재와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의 문제는 물질과 의식의 관계 문제를 한 계기로서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체의 철학적 원리 자체가 유물론적이며 변증법적인 원리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은 물질 세계의 일반적 특징을 밝혀주는 유물론과 변증법의 원리를 종속적인 계기로서 포괄하는 것이다."

김일성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 세계의 보편적 운동 법칙은 해명했지만, 물질 세계가 그것과 구별되는 '사람'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해명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으며, 주체철학은 그 단계를 뛰어 넘어 새로운 세계관을 독창적으로 정립했다는 주장이 성립되는 것이다. 김일성주의의 독창성이라는 개념은 단지 독창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선행 철학의 한계를 뛰어넘은 철학적 세계관의 완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를 해명한 것이므로 그것으로는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를 해명하지 못한다.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는 오로지 주체철학에 의해서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객관적인 물질세계에 대한 유물변증법적 리해를 떠나서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개조할 수 없지만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유물론과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발전한다는 변증법의 원리만으로는 사람이 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를 개조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다른 모든 물질적 존재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해명된 조건에서만 세계의 주인, 세계의 개조자로서의 사람의 특출한 지위와 역할이 옳게 밝혀질 수 있습니다. 주체철학에 의하여 비로소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그 본질적 특성이 과학적으로 해명됨으로써 사람은 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를 개조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근본 원리가 밝혀지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한 황장엽 씨의 견해는 어떠한가? 황 씨는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가 철학의 근본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만이 '철학의 근본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말을 옮겨 보자.

"오랫동안 유물론과 관념론이 대립되어 논쟁을 계속하다 보니 마치도 철학의 기본 문제가 물질과 정신의 호상관계를 해명하는 데 있는 것같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질과 정신의 호상관계 문제는 인간의 운명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를 해명하기 위하여 파생된 이론적 문제이지 그 자체가 철학의 기본 문제는 아니다. 철학의 기본 문제는 처음부터 인간과 세계의 호상관계 문제, 즉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인가 아닌가, 인간이 세계의 주인으로 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가 철학의 근본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황 씨의 주장은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이룩한 '철학적 공적'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뒤에서 다시 나오겠지만, 황 씨의 견해 가운데 어떤 부분은 맑스-레닌주의와 관련이 없고, 어떤 부분은 맑스-레닌주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또한 어떤 부분은 김일성주의와 관련이 없고, 어떤 부분은 김일성주의와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상은 그의 견해와 주장이 논리 체계로서 일관성이 없으며, 맑스-레닌주의와 김일성주의의 관계조차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는 모호한 상태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써 그의 견해는 이 두 사상이론에서 이곳 저곳을 옮겨와 조야하게 짜깁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황 씨는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란 인간 운명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물음과 관련된 신의 존재 여부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파생된 이론 문제라고 간단히 처리하였다. 그는 철학의 근본 문제는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이며 초인간적인 신이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와, 인간의 운명이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변경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맑스-레닌주의가 제기했던 철학의 근본 문제를 신의 존재 증명이라는 문제와 인간 운명의 결정론이라는 문제에 결부시켰다. 사실 신의 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ement of God)은 종교철학의 해묵은 논제고, 인간의 운명에 대한 결정론(fatalism)은 철학적 인간학에서 다루었던 낡은 논제다. 그리고 철학의 근본 문제와 신의 존재의 문제를 결부시켰던 고전적 철학 사조는 토마스주의(Thomism)였다.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에 대한 맑스-레닌주의의 유물변증법적 해명은 신의 존재 여부나 인간의 운명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 파생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 세계의 운동과 발전에 관한 일반적 법칙과 물질 세계에 대한 인식의 일반적 법칙을 해명하는 선결 조건(postulate)이다. 그것은 객관 변증법(objective dialectics)과 주관 변증법(subjective dialectics)를 성립시키는 근본이며, 존재와 사유의 보편적 법칙들을 해명하는 출발점이다. 엥겔스가 변증법이란 "운동의 일반적 법칙, 자연의 발전의 일반적 법칙, 그리고 인간 사회와 사유의 일반적 법칙에 관한 과학"이라고 규정하였던 것을 보면, 맑스-레닌주의의 유물변증법이 무엇을 해명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황 씨는 맑스-레닌주의가 제기하고 해명한 철학의 근본 문제를 낡고 해묵은 관념론의 논제들과 결부시킴으로써 사실상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원리를 폐기하였다. 이것은 김일성주의가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원리를 폐기하지 않고 그 '역사적 공적'을 인정할 뿐아니라, 자기의 철학적 원리 안에 '종속적 계기'로 포괄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여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김일성주의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이 비록 제한성, 미숙성, 일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면서도 "그 기본 원리들은 과학이며 진리"라고 인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한 것과는 달리, 황 씨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원리를 폐기한 조건에서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를 해명하려고 하였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만일 황 씨처럼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원리를 폐기하고 사람-세계의 관계 문제를 해명하는 경우에는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까? 그것은 세계가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김일성주의의 기본 명제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으며, 관념론의 한 유파인 철학적 인간학(philosophical anthropology)이 주장했던 인간 중심주의(anthropocentricism)라는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 황 씨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관념론의 함정에서 건져 올린 인본주의(humanism)와 도덕적 담론의 냄새가 전반에 걸쳐 진하게 풍겨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황 씨는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원리에 대한 해석에서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요점을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견해가 김일성주의와는 관련이 없는 인간 중심주의와 인본주의 따위를 도덕적 담론으로 조야하게 종합해 놓은 것임을 보여 주었다. 그의 주장을 옮겨 보자. 1) "인류는 세계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될 수 있다." 2) "서로 증오하고 배척하면서 싸우는 것보다 서로 믿고 사랑하며 서로 존중하면서 협조하는 것이 좋다." 3) "인간은 발전할수록 끝없이 아름답고 보람찬 생활을 꽃피워 나갈 수 있다."

김일성주의의 철학적 원리를 인간 중심주의, 인본주의로 잘못 해석하는 황장엽류의 오류는 김정일 총비서에 의해서 이미 1974년 4월에도 지적된 바있다. "한 사회과학자가 주체철학과 관련하여 자기의 의견을 적은 편지를 보내온 것"을 받아 본 김정일 총비서는 그 내용이 "주체철학을 마치 인간철학과 같이 리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생명 물질 일반이 가지 ?있는 생존하려는 자연적 속성이 발전되고 완성된 것으로 리해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 담화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14년 전에 그 문제의 편지를 보냈던 사람은 황 씨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4) 사회와 역사에 대한 견해들

맑스-레닌주의에서 '의식에 대한 물질의 선차성'이라는 명제는 사회적 의식(social consciousness)에 대한 사회적 존재(social being)의 규정성이라는 사적 유물론의 명제를 성립시켰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물질-의식의 관계 문제를 해명하면서 의식이 물질을 반영한다(reflect)고 보았던 것처럼, 사적 유물론은 사회적 존재-사회적 의식의 관계에서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를 반영한다고 보았다. 이로써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가 나왔다. 여기서 사회적 존재란 사회 생활에서 형성되는 물질·경제적 관계들의 총체를 의미하며, 사회적 의식이란 사물에 대한 사회적 견해, 관념, 이데올로기, 심리를 포함하는 정신 생활의 총체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의식의 작용에는 두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객관 세계를 반영하는 측면과 객관 세계를 개조하는 측면이다. 이 두 측면 가운데서 어느 측면을 중심으로 의식과 객관 세계의 관계를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맑스-레닌주의가 했던대로, 의식이 객관 세계를 반영하는 측면을 강조하게 되면, 의식 작용의 주체인 사람을 객관 세계의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는 존재로 보는 관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김일성주의는 의식 작용의 주체인 사람이 객관 세계의 조건에 의하여 규정되는 측면보다는 객관 세계를 개조하는 측면을 더 중시하고 강조한다. 김일성주의는 "자연 환경이나 사회적 조건은 사람들의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사람은 환경과 조건에 그저 순응하지 않"으며, "세계를 더욱더 사람을 위하여 복무하는 세계로 개조하고 변혁해 나간"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그리하여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되는 대상이고, 사람은 "세계의 주인"이고 "세계의 개조자"라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사람을 세계의 개조자라고 보는 김일성주의의 관점에서 의식의 능동적 역할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의 해석을 본다면, 비록 맑스-레닌주의는 의식의 능동적 역할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의식의 반(反)작용설을 강조한 단계에 머무른 것이며, 의식을 담지한 주체인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세계의 관계를 고찰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역사관이 이처럼 '제한성'에 머무르게 된 원인은 사회역사의 발전과 자연사적 발전이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레닌의 말을 빌리면, "사회구성체의 발전은 자연사의 과정"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일 총비서는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운동과 사회적 운동의 공통성을 기본으로 보는 사회력사관이며 그 리론으로써는 사회의 발전 과정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제한성을 면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 바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연의 운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들의 상호 작용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운동은 주체의 운동적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발생발전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밝힌 유물변증법의 원리를 사회력사에 그대로 적용하여서는 사회의 본질도 사회적 운동의 합법칙성도 정확히 해명할 수 없습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러한 전제에 기초하여 사적 유물론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유물사관의 주되는 제한성은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옳게 밝히지 못하고 자연의 운동과 사회적 운동이 다 물질적 운동이라는 공통성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적 운동 원리들을 전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 총비서에 따르면, 맑스-레닌주의의 사적 유물론은 "사회를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으로 구분하고 그 호상 관계에서 사회적 존재에 규정적 의의를 부여하였으며 사회 구조도 생산력과 생산 관계, 토대와 상부 구조로 가르고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관계에 결정적 의의를 부여"했다고 한다.

맑스-레닌주의와 달리, 김일성주의는 세계의 보편적 운동을 사회역사적 운동과 자연사적 운동으로 구분하고, 사회역사적 운동에는 자연사적 운동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합법칙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해명하였다. 그렇지만 김일성주의가 사회역사와 자연사를 구분한다고 해서 자연사와 '분리'되어 있는 사회역사를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이 양자를 분리한다면, 주의주의(voluntarism)의 오류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김일성주의는 이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하고 있을까?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변화발전하는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에 관해 김정일 총비서가 해명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사회역사는 사람의 자의적인 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따라 변화발전한다.

2) 사회역사에서 작용하는 법칙은 자연에서 작용하는 법칙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자연사의 법칙은 사람의 활동과는 무관하게 자연발생적으로 작용하지만, 사회역사의 법칙은 사람의 활동을 통하여 작용한다.

3) 사회역사의 법칙들 가운데는 사회제도와 무관하게 사회역사 전반에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법칙도 있고, 일정한 사회 제도에서만 작용하는 법칙도 있다.

4) 모든 사회역사의 법칙은 사람의 활동에 따라 법칙이 순조롭게 작용할 수도 있고 그 작용이 억제되거나 제한될 수도 있다.

5) 사회역사의 법칙이 사람의 활동을 통하여 작용한다고 해서 그 법칙이 객관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거나 사회역사적 운동에는 자연발생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6)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형성되면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한 사회 법칙이 작용하며 따라서 그것은 자연 법칙과 같이 객관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7) 사회역사적 운동에 자연발생성이 작용하게 되는 까닭은 사람의 본질적 속성의 발전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못하고 또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충분히 발양시킬 수 있는 사회 제도가 세워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본질적 속성의 발전 수준이 높아지고 그것을 충분히 발양시킬 수 있는 사회 제도가 세워지면 사람은 더욱더 객관적인 법칙의 요구에 맞게 활동하게 되며 자연발생성의 작용 범위는 더욱더 좁아지게 된다.

두루 알려진대로, 맑스-레닌주의의 사회·역사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사회구성체론을 논의해야 한다. 경제적 사회구성체론은 토대(base)와 상부 구조(superstructure)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토대가 상부 구조를 규정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토대'라는 개념은 경제적 토대를 의미하는 것이고, '상부 구조'라는 개념은 법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질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부 구조에 대한 토대의 규정성'이라는 명제에서 '규정성'이란 토대만이 능동성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그것이 상부 구조에 대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의미, 다른 말로 해서 상부 구조는 수동적일 뿐이라는 의미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토대와 상부 구조에 관한 맑스-레닌주의의 교의를 토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보는 견해는 '기계적 결정론'의 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맑스-레닌주의는 '기계적 결정론'을 거부하고 있으며, 내적 모순과 외적 모순, 원인과 결과, 필연과 우연, 가능성과 현실성이 교호하는 변증법적 상호 관계에 바탕을 둔 '변증법적 결정론'을 말하고 있다. 엥겔스는 이 문제를 토대와 상부 구조의 '교호 작용'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우연성 속에서 경제적 운동이 자신의 필연성을 관철시킨다고 설명하였다. 토대의 산물인 상부 구조가 토대-상부 구조의 교호 작용에서 능동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해석은 레닌에게 와서 더욱 강조되었다. 그레젤만의 설명을 빌리면, "결국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아직 갖지 못했던, 또한 가질 수 없었던 사회주의 건설의 실천 상의 경험에 의해서, 사회가 발전하는 데에 상부 구조가 수행하는 능동적인 역할을 더욱 더 명확히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스탈린은 1950년에 소련에서 있었던 언어학 논쟁을 해명하면서 이 문제를 더욱 분명히 정리하였다. 당시 스탈린은 토대-상부 구조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면서, 상부 구조가 토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그것이 토대를 단순히 반영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토대의 대해서 피동적이고, 중립적이고, 무관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상부 구조는 일단 형성된 뒤에는 능동적인 힘을 발휘하면서 낡은 토대를 제거하는 한편, 새로운 토대를 형성하고, 공고하게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 문제에 관련한 맑스-레닌주의의 내부 논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였다.

"맑스주의 창시자들이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사회력사에 적용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력사관을 확립하였지만 그들도 현실적으로 사회적 운동에서 물질세계의 일반적 합법칙성만으로는 풀 수 없는 많은 문제들에 부닥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회적 의식은 물질경제적 조건을 반영하여 발생하지만 물질경제적 조건에 반작용을 하며 정치도 경제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경제에 반작용을 한다는 리론을 비롯한 일련의 리론들을 제시하여 유물변증법적 사회력사관의 일면성을 극복해 보려고 하였습니다."

맑스-레닌주의에서는 원래 생산 양식(mode of production)이라는 개념과 토대(base)라는 개념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토대의 범주에 생산력을 포함시킬 것인가 아니면 생산력을 제외하고 생산 관계의 총체만을 토대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 과정에서 스탈린은 토대의 범주에는 생산력이 포함되지 않고 생산 관계의 총체라는 개념만이 포함된다고 해명함으로써 사회의 토대는 곧 생산 양식을 의미한다는 기존 견해를 부정하였다.

여기서 그렇다면 '생산력'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맑스-레닌주의는 생산력이라는 개념을 생산 도구와 사람이라는 개념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맑스-레닌주의가 생산력이라는 개념 안에 포괄되어 있는 생산 도구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으며, 생산 도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루는 주체, 곧 생산노동의 주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료화하지 않고 모호한 상태로 남겨두었다.

1960년대 초에 맑스-레닌주의 사회과학계 일각에서 '사람(people)'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생산력 개념을 재해석하려 했던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생산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라는 개념으로 국한된 것이어서 일면적이었고 불완전하였다. 맑스-레닌주의에서 사람의 범주는 "로동력의 담당자로서의 사람이지 사회적 운동의 담당자로서의 사람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체현되여 있는 육체적 및 정신적인 로동력을 념두에 둔 것"이었다. 이러한 모호성과 일면성은 맑스-레닌주의 사회과학계가 의식에 대한 물질의 선차성과 상부 구조에 대한 토대의 규정성이라는 두 개의 기본 명제를 일치시켰던 종래의 관점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러므로 생산력의 범주와 관련하여 발생한 모호성과 일면성을 극복하려면, 생산노동의 주체인 '사람'이라는 범주를 새롭게 해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일성주의가 '사람'의 철학적 범주를 자기의 '철학적 원리'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김일성주의는 사람을 생산노동의 주체라고만 보는 사회경제적 관점을 넘어서서, 사람을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체라고 명시하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사회적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도 인간에게 있고 이 운동을 추동하는 힘도 인간에게 있다"고 전제하고, "물론 인간은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고 력사를 창조할 수 없지만 객관적 조건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창조적 활동에 의하여 인간에게 유리하게 개변될 수 있는 것입니다. 력사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말했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발전 법칙에 복종되여 자연과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인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 고유한 사회적 운동법칙에 따라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가는 사회적 존재"로 해석된 것이다.

맑스-레닌주의 사회과학계가 한때 생산노동의 주체인 사람, 곧 '노동자'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사회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해명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김일성주의는 '인민대중'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사회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해명하고 있다. 맑스-레닌주의 사회과학계가 '노동자'라는 개념을 내세운 것은 사회역사의 본질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생산노동의 주체를 해명한 데 기인한다. 그러나 김일성주의가 제시한 '인민대중'이라는 개념은 단지 생산노동의 주체라는 일면성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김일성주의에 의하면,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의 기본 집단은 인민대중이며 따라서 인민대중은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김일성주의의 사회역사적 원리가 제시한 "사회역사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라는 명제의 이론적 근거다.

김일성주의의 사회역사적 원리에 대한 해명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김일성주의는 "사회력사적 운동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인민대중의 창조적 운동"이라고 규정하였으며, 그 운동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사상의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김정일 총비서는 사회적 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적 운동은 인민대중을 주체로 하는 운동으로서 자연의 운동과는 다른 자기의 특성을 가집니다. 자연의 운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들이 호상작용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운동은 주체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발생발전합니다. 그러므로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밝힌 유물변증법의 원리들을 사회력사에 그대로 적용하여서는 사회의 본질도 사회적 운동의 합법칙성도 정확히 해명할 수 없습니다. 유물사관의 주되는 제한성은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옳게 밝히지 못하고 자연의 운동과 사회적 운동이 다 물질적 운동이라는 공통성을 기본으로 하여 사회적 운동 원리를 전개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검토해야 할 것은 '발전(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맑스-레닌주의의 사적 유물론을 이해하는 데서 핵심 개념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인간의 사유, 사회역사, 자연사를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보편적인 법칙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법칙들이라고 보았는데, 그 법칙들 가운데서도 중요한 것은 모순의 법칙(law of contradiction)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 법칙(law of unity and struggle of opposites)'이다. 맑스-레닌주의는 세계를 대립물의 통일로, 세계의 발전을 대립물의 투쟁으로 인식하였다. 레닌은 "자기 운동(self-movement)을 전개하고 고고, 자발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실제로 생동하고 있는 세계의 모든 과정들을 인식하는 조건은 세계를 대립물의 통일로 인식하는 것이다. 발전은 대립물의 '투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에서 강조되는 것은 '통일'이 아니라 '투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가 나온 것은 맑스-레닌주의가 '투쟁'을 모든 사물의 변화, 발전, 운동을 일으키는 원동력(driving force)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레닌은 "대립물의 통일(일치성, 동일성, 동일한 행동)은 조건적이고, 잠정적이고, 일시적이며, 상대적이다. 발전과 운동이 절대적인 것처럼 상호배타적인 대립물의 투쟁은 절대적"이라고 말했고, 스탈린은 이러한 레닌의 명제를 해석하면서, "발전 과정은 사물과 현상들 속에 내재하고 있는 모순의 기초 위에서 작용하는 대립적 경향들의 '투쟁'의 발현"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같이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 안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모순의 범주'라고 할 수 있다. 맑스-레닌주의의 사적 유물론이 '생산 양식설'을 말할 때, 그것의 기본 관점은 생산력(productive forces)과 생산 관계(relations of production)를 모순의 범주로 규정한 것이었다. 생산력과 '낡은' 생산 관계는 생산 양식(mode of production) 안에서 상호모순적이라는 점이 강조되는 것이다.

모순의 변증법과 사회역사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스탈린 이후 맑스-레닌주의 사회과학계에서 새로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958년 4월 소련 아카데미 철학연구소에서 벌어진 논쟁은 소련 사회과학계 뿐아니라, 중국, 불가리아, 동독의 당 이론가들과 사회과학자들까지 참가한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이 논쟁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로 떠올랐던 것은 '모순(contradiction)'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다. 모순이란 맑스의 표현에 의하면, "모든 변증법의 원천(source)"이며, 레닌의 표현에 의하면, "변증법의 핵심(nucleus)"이다. 맑스-레닌주의에서 모순은 물질의 자기 운동(self-movement)을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규정되었다. 맑스-레닌주의에 의하면, "내적 모순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 내재하고 있으며, (줄임) 발전 과정의 본질적 내용이며, 양적 변화를 질적 변화로 전화시키는 본질적 내용"이다.

그런데 만일 모순이 모든 사물과 현상에 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사회주의 사회에도 내적 모순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이 문제는 맑스-레닌주의 이론가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모순론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사회에도 모순은 존재하나 그것은 비적대적 모순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스탈린과 주다노프도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소련의 로친, 투가리노프 같은 이론가들은 1957년에 발간된 『철학의 제 문제(Voprosy Filosofii)』 제3호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 「모순과 원동력」에서 "사회주의 진영의 힘과 위력의 원천은 그 내적 모순이 아니라 그 전체적인 힘의 통일과 단결이다"고 밝혔다. 이들은 계급 모순이 타파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내부 모순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순이 오히려 발전을 방해한다고 하였고, 오로지 통일, 단결, 일치만이 있을 뿐이며, 이것이야말로 사회주의 사회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하였다. 1964년 중국에서 있었던 '일분위이(一分爲二) 논쟁'에서 양헌진(楊獻珍)은 대립물의 투쟁이라는 측면보다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합이이일(合二而一)'이라는 대립물의 통일을 변증법의 기본 교리로 내세운 것이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 계급적 대립을 부정하는 계급 화해론자라는 비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에 비해서, 북(조선)의 문헌들은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에 대해서 이론적 견지가 아니라 실천적 견지에서, 그리고 철학적 관점이 아니라 역사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맑스-레닌주의의 다른 리론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도 혁명 실천의 견지에서 력사적으로 고찰하여야 합니다. 맑스주의 유물변증법에서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이 중요시된 것은 당시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경제적 모순과 계급투쟁의 법칙을 철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 중요한 력사적 과제로 나섰던 것과 관련되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맑스주의 철학이 밝힌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원리가 오늘에 와서 사회주의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해명하는 데서는 불합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체철학 리론을 전개하면서 이 원리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에 관련한 황장엽 씨의 견해는 어떠한가? 그는 "모든 물질적 존재는 다 대립물의 통일로 되어 있다. 물질의 구성 요소들은 각각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물질 존재에서 대립의 면을 대표하고 있고 물질의 결합 구조는 각이한 요소들을 공통성에 기초하여 하나로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물질 존재에서 통일의 면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립물의 통일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했고, 대립물의 투쟁이라는 측면은 단지 사회역사의 운동 형태(발전의 원동력이 아니라)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모순은 "물질이 변화발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필수적 조건으로 된다"고 말하면서도, 대립물의 투쟁은 "힘이 작용하는 운동 형태이지 운동을 떠미는 동력 자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계급 투쟁은 사회 발전의 동력이 아니다. 사회 발전의 동력은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투쟁하는 인간의 창조적 힘이다. 계급 투쟁은 인간의 조조적 힘이 작용하는 형태, 즉 창조적 활동의 형태이지 창조적 힘 자체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대립물의 투쟁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보는 맑스-레닌주의와 명백히 구별된다.

(5) 인간에 관한 견해들

맑스는 "사람의 본질은 각 개인들에게 내재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의 총체(ensemble of the social relations)"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맑스-레닌주의와 김일성주의는 모두 '사회적 관계'라는 용어를 쓰고 있지만, 그것을 서로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맑스주의 창시자들은 사람의 본질 문제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제기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사회적 의식에 반영되는 사회 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경제적 관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썼습니다. 물론 맑스주의 창시자들이 사람을 생산력의 구성 요소로, 사회 관계의 총체로 보았던 것만큼 그들이 말한 사회적 존재에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맑스주의 창시자들은 사회적 존재라는 말을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규정하는 고유한 의미로는 쓰지 않았습니다."

북(조선)의 장영남 교수는 "주체사상에서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고 할 때의 사회적 존재는 사람이 주동적으로 자기의 의사와 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사회적 관계를 맺고 그것을 목적의식적으로 개조변혁해 나가면서 사회적으로 생활하고 활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하였다. 김일성주의는 사회관에서 맑스-레닌주의와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일성주의는 "사회는 사람들과 그들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와 그것을 결합시키는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회관을 제시하고, "사람과 사회적 재부, 사회적 관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는 사람에 의하여 창조되고 발전하는 것인만큼 사람의 발전이 사회의 다른 구성 요소들의 발전을 규정하게 된다"고 해석하였다.

그런데 황장엽 씨는 "사회는 사람과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전제하고 사람, 사회적 재부, 사회적 관계는 "동물계에선 전혀 볼 수 없는 구성 요소들이며 결합 구조"인데, "이러한 특수한 구성 요소들과 결합 구조에 기초하여 인간은 동물에는 없는 사회적 속성인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김일성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전제와 주장은 사람(사회적 존재)이라는 개념 속에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를 포함시키는 맑스-레닌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류'로 지적될 수 있다. 이 '오류'는 황 씨가 사람의 사회적 속성을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의 특수성'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그런데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의연히 사회적 존재에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과 사회적 재부, 사회적 관계의 차이를 모호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비판했다.

김정일 총비서는 "맑스주의 철학은 사람의 본질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규정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은 옳게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선행 리론이 사회적 운동원리를 물질세계 발전의 일반적 합법칙성을 기본으로 하여 전개한 것은 바로 사회적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해명하지 못한 것과 관련되여 있습니다"고 지적하였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맑스-레닌주의는 의식을 사회적 존재인 사람의 본질적 속성의 작용으로 보지 않고, 객관 세계의 반영으로 보았다. 이에 비하여, 김일성주의는 의식과 의식성을 구별하고 의식성을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 규정하였다. 김정일 총비서는 "의식성은 세계과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의식성이 있기 때문에 의식이라는 작용과 기능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맑스-레닌주의의 의식에 대한 이해와 다르게, 김일성주의는 의식이라는 범주에서 지식과 사상의식을 구분하고, 지식은 물질 세계의 본질과 현상, 그리고 발전의 법칙을 반영한 것이며, 사상의식은 사람의 활동 목적과 방향, 의지와 투쟁력을 규정한다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의 관점에서 보면, 맑스-레닌주의는 지식과 사상의식이라는 두 개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의식이라는 포괄적 범주를 사용했다는 비판이 가능하게 된다. 반면에 김일성주의는 지식과 사상의식을 구분하고, 그 가운데서 더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후자라고 보았다.

김일성주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자주성(Chajusong), 창조성(creativity), 의식성(consciousness)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황 씨의 해석도 이러한 3대 속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3대 속성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서 김일성주의자들과 달리 이설을 내놓고 있다. 황 씨의 이설은 사람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된 근거가 물질의 구성 요소의 다양성과 그 결합 구조의 복잡성에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 황 씨가 이러한 이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 문제를 물질적 존재로서의 발전 수준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의 발전은 물질의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의 발전이며, 물질의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의 변화 발전은 물질의 성질과 운동의 변화 발전을 규정하는 것이 된다. 또한 그는 "물질은 대립물의 통일의 수준이 높을수록 보다 발전된 존재로 되며 보다 발전된 존재일수록 물질의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발전 능력이 강하다"고 전제하고, "인간은 대립물의 통일의 수준이 가장 높은 물질적 존재"라고 하였다.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동물계에선 전혀 볼 수 없는 구성 요소들이며 결합 구조"인 사회적 재부와 사회적 관계가 있는데, 사람은 "이러한 특수한 구성 요소들과 결합 구조들에 기초하여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본질적 속성이 가장 발전된 물질의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에서 생성되었다는 이러한 주장은 김일성주의와 명백히 다른 내용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그런데 우리의 일부 사회과학자들이 물질의 구성 요소와 그 결합 구조에 대한 론의를 들고 나와 사람의 본질적 특성과 관련시키며 마치도 그것이 주체철학의 중요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주체철학을 맑스주의 유물변증법의 틀에 맞추어 해석하는 편향의 표현이며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생물학적 속성의 발전완성으로 리해하는 그릇된 진화론적 고찰방법을 정당화하려는 것으로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비판하였다.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북(조선) 학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사유 기능과 노동 기능을 가진 사람의 발전된 유기체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닐 수 있는 생물학적 바탕으로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이 발전된 유기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도 유기체 자체가 낳은 것이거나 또 유기체와 같이 진화 발전에 의하여 생겨난 것처럼 보아서는 안된다. 자주성은 생물체에는 맹아적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존재할 수도 없었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은 생물학적 속성이 발전완성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지닐 수 있었다."

 

김정일 총비서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물질의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의 발전·완성의 문제와 결부시켰던 황장엽류의 '오류'를 진화론적 고찰 방법의 오류라고 지적·비판하였다. 관련 대목을 인용해 보자.

"사람의 본질적 속성을 생명 물질 일반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속성이 발전완성된 것으로 리해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생물학적 존재의 견지에서 보면 사람의 육체는 다른 생명 유기체에 비하여 발전 수준에서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존재의 견지에서 볼 때 사람은 오직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으로 하여 다른 모든 생명 물질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생명 물질의 발전 수준에서의 차이로 보는 것은 진화론적 고찰 방법입니다. 사람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본질적 속성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하여온 속성입니다."

사실 이러한 황장엽류의 '오류'를 지적·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90년에 김정일 총비서는 이러한 진화론적 오류를 비판한 바있다.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생물학적 및 사회적 구성 요소의 다양성과 결합 방식의 복잡성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고찰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사람은 세계에서 유일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줄임) 구성 요소와 결합 구조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가지고서는 사회적 존재와 자연적 존재의 근본 차이를 정확히 밝힐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6) 맺는 말

지금까지 우리는 1990년대에 북(조선) 내부에서 주체철학 해석에 관련하여 제기되었던 몇가지 문제를 맑스-레닌주의와 견주어 보면서 분석적으로 검토했다. 오늘 남(한국)과 해외에서 북한학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북한학의 연구 항목들 가운데서도 특히 김일성주의에 대한 연구는 불모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일 북한학 연구에서 김일성주의 연구를 경시한다면, 그것은 지난 시기 소련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맑스-레닌주의를 잘 모른채 소련을 연구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마찬가지의 오류가 될 것이다. 실제로 김일성주의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는 북한학계에 여러 가지 학문적 맹점을 안겨주고 있다. 북한학의 현재 실정이 이렇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김일성주의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분석은 거의 없고, 주로 통치 이념으로만 규정하려는 정치학적 접근과 분석이 주류를 이루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김일성주의에 대한 철학적 접근과 분석이 진척될 수 없었던 원인(遠因)은 오늘의 북한학계가 김일성주의보다 앞서 있었던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연구부터 일천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이 일천한 단계를 넘어서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오늘의 북한학이 당면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는 김일성주의를 맑스-레닌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비교하여 고찰하면서 김일성주의를 분석하는 일이다.

북(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김일성주의는 김일성 주석이 창시하고 김정일 총비서가 정립한 사상이론 체계라고 한다. 김일성주의도 맑스와 엥겔스가 창시한 맑스주의가 레닌에 의해서 맑스-레닌주의로 정립되었던 것과 비슷한 경로를 밟아 왔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상이론이란 어느 한 사상가에 의해서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발전 경로와 단계를 거쳐서 정립되고 완성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김일성주의나 맑스-레닌주의가 그러한 정립의 경로와 단계를 거쳤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 '경로와 단계'를 발전·완성의 과정으로 보느냐 마느냐 하는 '평가 문제'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오늘 북한학의 김일성주의 연구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조선)은 김일성주의가 김정일 총비서에 의해서 전일적인 사상이론 체계로 정립되고 집대성되었음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조선)에 의하면, '김일성주의'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하고 공식화한 사람도 김정일 총비서였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나는 우리 혁명의 요구와 새로운 자주시대 인민들의 지향을 반영하여 주체사상을 내놓고 그것을 지침으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여 왔으나 주체사상의 원리를 종합체계화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김정일 동지에 의하여 빛나게 실현되였습니다. 그는 주체사상의 근본 원리와 진수를 이루는 내용들을 깊이 연구한 데 기초하여 우리 당의 지도 사상을 주체의 사상, 리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로 정식화하였습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이후 김정일 총비서가 김일성주의에 관련하여 발표한 문헌들을 분석해 보면, 김일성주의를 전일적인 사상이론 체계로 정립한 사람이 김정일 총비서라는 북(조선)의 주장을 그저 '정치적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김정일 총비서가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초기 단계의 주체사상을 '철학적 원리'에 기초한 사상이론 체계로 정립하고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다는 사실은 북(조선)에서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학 학자들이 잘 모르고 있다. 더욱이 그를 덮어놓고 비난하는 데 열을 올렸던 극우세력과 반북론자들이 설치해 놓은 학문 외적인 제약 때문에 북한학의 시야는 심하게 굴절되어 있다.

김일성주의가 김정일 총비서에 의하여 정립된 사상이론이라는 북(조선)의 주장을 인정한다면,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서 창시된 사상이론이 레닌에 의해서 '더욱 발전되고 풍부하게' 전개됨으로써 맑스-레닌주의(Marxism-Leninism)라는 개념이 정립되었듯이, 오늘 북(조선)의 현실에서 김일성주의는 김일성-김정일주의(Kimilsungism-Kimjongilism)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북(조선)이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공식 문헌들이 아직도 김일성주의라는 용어조차 명시하지 않고, 주체사상이라는 방편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북한학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논의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실제로 북(조선)에서도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한 적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현실'이다. 오늘 북한학의 김일성주의 연구는 '정치적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학문적 현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김일성주의가 김정일 총비서에 의해서 정립된 사상이론이므로 김일성-김정일주의라고 개념화해야 더 정확한 게 아니냐는 생각은 오늘 김정일 시대에 들어선 북(조선)의 사상적 측면을 연구하는 북한학 학자들에게 중요한 연구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1998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