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위기와 금융 위기: 한(조선)반도 정세를 읽는 두 초점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들어가는 말

저물어가고 있는 1990년대는 말뜻 그대로 격동의 시대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그 격동의 진원지는 소비에트형 사회주의의 몰락과 독일의 점진적 흡수 통합의 완결이었고, 그 격동의 파장은 수십년 묵은 냉전 질서를 무너뜨렸다. 유럽에서 발생한 해체와 몰락의 거대한 파장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운명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냉전 질서의 해체는 한(조선)반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바야흐로 미치고 있는 중이다. 냉전 질서가 수립되던 1945년부터 1953년까지의 격동기에 조성된 한(조선)반도의 내외 정세가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 동안이나 한(조선)민족의 운명을 규정해왔던 바와 마찬가지로, 오늘 1990년대의 한(조선)민족이 냉전 질서의 해체라는 세계사적 변동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아마도 앞으로 반세기 동안 한(조선)민족의 운명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격동의 현대사는 당대의 세인들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다. 한(조선)민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냉정하게 말해서, 이 물음에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는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역사의 물음에 대한 자신있는 답변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데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 의식이 놓여있다.

1945년부터 1953년까지 격동기의 역사에서 한(조선)민족이 배운 역사적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파란이 중첩되고 위기가 고조되는 격동기에 한(조선)민족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 각성과 대동 단결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아닌게 아니라 오늘 우리는 정치적 각성과 대동 단결과는 정반대인 정치적 미몽과 분열주의가 뒤덮혀 있는 분단 현실 속에서 날로 소진되어가는 민족 역량을 보아야 하는 불행과 비운을 몸소 겪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냉전 질서 수립기에 겪어야 했던 오류와 전철을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도 어처구니 없이 되풀이하는 정치적 미몽의 안개 속을 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미몽의 안개 속에서 끝내 헤어나지 못한다면 새로운 세기는 절망과 파탄의 시대로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1990년대의 한(조선)민족은 두 차례의 커다란 위기를 겪고 있다. 1990년대 전반부에 한(조선)반도는 이른바 핵위기의 태풍 속에 휘말려 들었고, 후반부를 거의 접어가고 있는 지금 그 태풍이 지나가는가 했더니 금융 위기의 해일이 몰려오고 있다. 한(조선)민족의 운명을 뒤흔드는 이 두 차례의 위기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기습적인 사태였다. 당대의 한(조선)민족에게 거듭 몰아치고 있는 위기의 내습은 두 차례 모두 세계적 범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냉전 질서의 해체와 그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 국제 질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으킨 강력한 파장이 한(조선)반도를 강타하면서 생겨난 것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파장의 중심권에는 언제나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북(조선)에게 핵 압박을 가했을 때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앞세운 바있고, 남(한국)의 경제 위기에 개입하고 있는 지금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을 앞세우고 있다.

20세기를 마감하고 있는 세기말 한(조선)민족 앞에는 '핵'과 '금융'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화두(話頭)가 놓여있다. 한(조선)민족은 이 '역사의 화두'를 붙들고 21세기의 불확실한 미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한(조선)민족은 풀기 어려움 이 물음을 안고 씨름하며 지금 격동기를 헤쳐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은 이 물음을 풀어가는 가느다란 실마리라도 한 줄기 찾아보자는 동기를 안고 씌여진 것이다.

(2) 핵위기의 본질

한(조선)반도를 강타한 두 차례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이 글의 논의를 진전시키는 전개 통로다. 우선 핵위기의 본질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지난 냉전 시기 내내 한(조선)반도는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공격이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핵위기를 경험해야 했다.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처음으로 핵무기를 배치한 때는 1958년 1월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 개발된 미국의 대북 공격 전략인 이른바 공지전 전략(AirLand Battle Strategy)은 1980년대로 넘어와서 더욱 가공할 공격성을 띤 군사 전략으로 변모하였는데, 그 내용의 골자는 휴전선의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개전 초에 북(조선) 전역을 전술 핵무기로 완전히 초토화한다는 선제 핵공격 전략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있다. 그런데 1991년 냉전질서 해체와 함께 일어났던 걸프전에서 얻은 실전 경험 가운데서 재래식 최첨단 무기인 공대지 미사일 AGM-130과 AGM-142가 실증해준 공격력과 파괴력은 종래의 전술 핵무기를 능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난 시기 전술 핵무기에 의존해왔던 미국의 기존 군사 전략은 불가피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군사 전략의 변화는 1991년 가을에 주한미군 기지들에 배치해 두었던 엄청난 양의 전술 핵무기들을 철수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전술 핵무기의 철수와 상관없이 북(조선)은 지금도 미국의 핵공격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여전히 상시적으로 드리워져 있는 한(조선)반도의 핵위기는 탈냉전 시대에 관한 모든 담론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미 국방부 전략사령부(STRACOM)는 탈냉전기에도 여전히 적대국들에 대해 비이성적이고 보복적인 자세로 핵공격 위협을 계속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있다. 핵무기를 장착한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다도해의 군항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미국이 최근 대륙간 핵공격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한(조선)반도의 핵위기 실상이 드러난다. 재래식 무기에 의한 우발적인 충돌이 곧 미국의 대북 핵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볼 때, 휴전선을 두고 쌍방의 무력이 대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정전 상태가 끝나지 않는 한, 한(조선)반도의 핵위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핵무기로 북(조선)을 선제 공격한다는 미국의 기존 전략(이른바 '핵우산 전략')은 사람들이 탈냉전을 말한지 오래인데도 한 점도 바뀌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술 핵무기가 철수된 1992년 이후 한(조선)반도에서는 냉전 시기의 핵위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되레 새로운 형식의 핵위기 국면이 날카롭게 조성된 바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앞세운 미국은 1993년부터 전면 공세로 북(조선)을 압박하였고, 북(조선)도 이에 맞서 대응함으로써 생겨난 것이 이른바 한(조선)반도의 핵위기다. 그런데 미국과 남(한국)의 군부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설'을 거론하면서 그에 대한 공세적 조치를 검토하기 시작한 시점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991년초였다. 핵위기의 먹구름이 몰려오던 당시 한(조선)반도에서는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숨막히는 대치 상태가 조성되었다. 한(조선)반도의 운명은 전면전의 재앙에 휩쓸리느냐 아니면 정전 상태를 유지하느냐 하는 벼랑끝의 선택 앞에서 풍전등화처럼 흔들렸다. 최근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와 리온 시걸(Leon V. Sigal)이 펴낸 주목할 만한 두 권의 책이 밝히고 있는 그 당시의 긴박한 위기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94년 6월 16일 아침 대통령 클린턴, 부통령 고어, 국무장관 크리스토퍼, 국방장관 페리, 합참의장 샐리캐쉬빌리, 중앙정보국장 제임스 울시, 유엔대사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가안보담당보좌관 앤터니 레이크, 그리고 고위 외교 정책 관리들과 국방부 관리들이 모인 가운데 북(조선) 핵문제와 관련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제2차 회의가 백악관 각료실에서 열렸다. 회의가 시작되면서 클린턴은 북(조선)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제재 조치를 결행하라는 최종 재가를 내렸고, 미국 군부는 한(조선)반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 증강 배치 현황에 관해 개략적으로 설명하였다. 병력 1만 명 증파와, 항모 전투단 및 전투기 증강 배치가 논의되었다. 이 회의에서 미 국방부는 주한미군사령관 게리 럭(Garry Luck)이 전쟁에 대비해 요청한 40만명의 증파 병력에게 준비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문제와 병참 지원 병력 2만3천 명을 남(한국)에 배치하는 문제, 그리고 전투기를 포함한 항공기 30-40 대를 남(한국)에 배치하고 F-117 스텔스 전폭기와 다른 폭격기들을 괌에 배치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두 대의 항모 전투단을 동해에 급파하고 지상군과 해병 전투 병력을 추가로 파병하는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전쟁 준비가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가 하는 문제는 최근 이라크에 대한 군사 공격을 위하여 미국이 걸프 지역에 배치한 무력 동원 규모와 비교하면 될 것이다.

전쟁 경보 국가정보 담당관 찰스 앨런은 이와 같은 무력 증강은 북(조선)의 전시 동원령을 유발시킴으로써 선제 공격의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 대통령에 대한 전쟁 경보 보고는 전쟁 개시가 임박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관례다. 전운이 감도는 지역의 야전군 사령관 개리 럭은 급히 워싱턴으로 날아가 국방장관 페리와 합참의장 샐리캐쉬빌리가 5월 18일 국방부 회의실에서 소집한 전군 지휘관 비상회의에 참석했다. 합참본부의 해군 대령 토머스 플래니건(Thomas Flanigan)은 그 비상회의가 "전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하여 전쟁 지휘부가 모인 회의"였으며, 회의 분위기가 "매우 진지했다(extremely sobering)"고 뒷날 회고했다. 그 무렵 서울의 미 대사관저에서 비밀스럽게 만난 제임스 레이니 주한미대사와 개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은 본국의 공식 명령을 기다릴 사이도 없이 미국인들을 본국으로 피난시킬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건드리면 터질 듯이 팽팽한 위기감 속에 도사리고 있던 미국의 전쟁 의지는 결국 수그러들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물론 평양을 방문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회담을 갖고 핵문제를 타결할 수 있는 외교적 합의를 이끌어냈기 때문에 전쟁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카터의 방북 외교와는 별도로 미국의 정책 결정 집단들 가운데 일부 집단이 조·미 전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만일 그들마저 전쟁에 동의했더라면, 카터의 방북 자체가 아예 허용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의 전쟁사를 보아도 전쟁이 임박한 국면에 이르러 화전 양론(和戰 兩論)이 상충하는 것은 드물지 않는 현상이지만, 놀라운 점은 조·미 전쟁에 동의하지 않은 집단이 주전론 세력으로 분류될만한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에 잠시 혼란을 일으킨다. 리온 시걸이 전하는 대목을 읽어보자.

"그 자리(대북 공격 문제를 최종적으로 논의했던 백악관 각료실을 말함-인용자)에 있었던 한 고위관리는 '그 당시 심각한 경보 신호가 울리고 있었다는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중앙정보국과 국방정보국이 (전쟁을-인용자) 동의하지 않았기(disagree) 때문이었다. 중앙정보국은 전쟁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서 더 심각하게 우려하였다"

여기서 물음이 생긴다. 응당 주전론을 들고 나왔으리라고 생각되는 중앙정보국과 국방정보국은 어째서 전쟁에 동의하지 않았을까? 특히 중앙정보국으로 말하면, 북(조선)의 핵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로서 핵문제에 관해서라면 매우 강경한 대결주의적 태도를 지니고 있었음은 잘 알려진 바있다. 그러한 성향을 가진 이 두 정보 기관들은 전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후의 순간에 왜 뒤로 물러섰을까? 리온 시걸은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 넘어갔다.

당시 상황의 전후 맥락을 짚어가다 보면, 미국의 정책 결정 집단들 가운데서 북(조선)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두 정보 기관이 동의하지 않은 이유를 능히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두 정보 기관이 조·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려면 너무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미 전쟁에서 미국이 입을 수 있는 피해에 관해서 당시 미 군부가 예상한 것을 살펴보자. 군부는 만일 조·미 전쟁이 일어날 경우 처음 90일 동안에 미군 사상자가 5만2천명, 남(한국)군 사상자가 49만명이 생겨나고, 전비 6백1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어야 하는 참상이 빚어진다는 것과, 결과적으로 미국의 정치권도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상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전과 걸프전의 경험에 근거하여 개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이 예상한 것은 더 심각했다. 그는 개전 초기에 미군 8-9만명을 포함하여 약 1백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며, 미국이 전비 1천억 달러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주변 나라들과 유관국들이 입을 재정 피해가 1조 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북(조선)은 비록 무기 수준이나 화력에서는 미국에 대비되지 못하는 약소국이지만, 미국과 전쟁을 하면 2천4백만이 전인민적인 결사 항전으로 맞서 싸울 것이므로 결국 미국에게도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된다는 사실을 중앙정보국과 국방정보국이 알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는 초강대국과 '고난의 행군'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약소국의 정면 대결에서 초강대국의 무력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인은 약소국의 견고한 단결력과 강인한 항전 태세에 있었다고 보는 것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조·미 전쟁이 임박했던 초읽기의 상황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임의의 시각에 전쟁을 일으키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권이 백악관 각료실에 모인 스무명 남짓되는 미국인 고위 관리들의 손에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북(조선)에 집중되고 있던 압박 공세를 무력 행사로 이끌어감으로써 한(조선)반도를 참혹한 전화의 불길 속에 밀어넣는 한(조선)민족 생사여탈권을 미국인 고위 관리들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경악할만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눈길을 북(조선)으로 돌려보자. 핵위기의 긴장 상태 속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전면적인 압박 공세에 단독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던 북(조선)은 어떠했을까? 북(조선)의 철저한 비밀주의 정책 때문에 당시 내부 형편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간간히 흘러나온 단편적인 사실은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능히 짐작하게 한다.

① 미국이 비핵보유국에게는 핵전쟁 위협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하면서 1993년 3월 9일 한·미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을 재개하던 날, 북(조선)에 준전시령이 선포되자 열흘 남짓한 기간에 북(조선) 전 지역 곳곳에서 1백50만명에 이르는 청장년층과 참전 용사들이 군입대를 자원했다고 한다.

② 북(조선)에서 3년 동안 지냈던 한 외국인 외교관은 "나는 평양에서 3년간 살았지만 평소 북한 사람들이 소박하고 친절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지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준전시 상태가 선포됐을 때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경보 사이렌은 예고 없이 불시에 울렸다. 그런데도 2-3분이 채 안돼 평양 거리는 단 한 사람의 인적도 없는 유령의 도시로 변했다. 힘겹게 짐을 이고 가던 할머니조차 순식간에 지하 대피소로 사라지는 모습에서 전율했다. 북한은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의해 똘똘 뭉쳐 있는 것같았다"고 증언했다.

③ 준전시령을 선포한 김정일 총비서는 "관저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당중앙위 청사에서 침식을 하면서" 핵위기에 대처했다고 한다. 핵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에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말한 바있다.

"지금 적들이 우리에게 원자탄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우리를 고립말살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지만 우리는 조금도 겁나하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일군들에게 우리나라를 이라크와 같은 나라로 잘못 생각하지 말라고 미국놈들한테 말해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적들한테서 칭찬을 받는 것보다 욕을 먹는 것이 낫습니다. 우리가 적들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곧 투항한 것이나 같기 때문에 절대로 칭찬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속담에 네 떡이 한 개면 내 떡도 한 개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만단의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적들이 덤벼들면 맞받아나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1990년대 전반부에 일어났던 핵위기는 반미 성향을 지닌 신흥 공업국들의 대량 파괴 무기 개발 추세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반확산 전략(counterproliferation strategy)과 북(조선)의 핵에너지 개발 전략이 정면 충돌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세간에서 흔히 '핵무기 개발 전략'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핵개발 전략'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피하고, '핵에너지 개발 전략'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여기서 '핵에너지'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까닭은 북(조선)이 "겨우 플루토늄 추출 단계의 수준에 와 있고, 기폭 장치 개발 능력은 갖지 못했으며 운반 체계는 어느 정도 개발되었으나 핵탄두 장착용으로까지는 개발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흑연 감속로에서 핵무기 개발용 풀루토늄을 많이 추출하였다는 의혹을 국제 사회에 부각시키면서 핵위기를 조성하였으나, "플루토늄 추출형 북한 원자로는 자체 기술, 자체 원료에 의존하려는 경제 기조인 자립적 민족 경제 논리와 서방의 대북 기술 금수 조치의 결과이지 반드시 핵무기 개발용으로 의도적으로 선택한 원자로형은 아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신흥 공업국들은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핵에너지 개발 전략에 관심과 힘을 기울여왔고, 핵에너지 개발 과정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것은 이들 나라들의 공업화와 기술공학의 진보가 가져다준 필연적 결과였다. 에너지 공급원을 석탄과 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북(조선)도 다른 신흥 공업국들과 마찬가지로 산업화 수준이 높아질수록 에너지 수급의 불균형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고, 자체의 기술로 고효율 동력자원인 핵에너지를 개발하려고 애써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중요한 점은 플루토늄 추출 능력이 곧 핵무기 제조 능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일성 주석은 "우리나라에는 핵무기가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지적하였다.

"우리는 이미 핵무기를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한두번만 천명하기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보 기관들이 신빙성도 없는 정보 자료들을 조작해가지고 우리가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느니, 핵무기를 1-2개 만들었다느니 하고 떠드는 것은 다른 정치적 목적을 추구한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동아시아·태평양지역 분석 담당실의 동북아 담당관(Northeast Asia Division Chief) 로버트 칼린(Robert Carlin)의 분석은 이 문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준 바있다.

"기술적인 어려움과 정치적 압력이 없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개입하지 않는다면, 북(조선)은 아마도 1990년대 말까지 작은 병기고에 보내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과연 이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의문으로 남아있다. (중략)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무기를 제조하는 작업은 일련의 지속적인 정밀 공정(sustained precision engineering)을 요구한다. 이러한 정밀 공정은 북(조선) 산업의 강점이 아니다."

미국의 보수·우파 세력들은 플루토늄 추출 능력과 핵무기 제조 능력 사이에 놓여있는 기술 발전 단계와 시차를 고의적으로 무시하면서 북(조선)에서 핵무기 개발 전략이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핵위기를 조작하였다. 때로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북(조선)의 '핵폭탄 보유설'은 요즘에도 수구러들지 않았으며, 1997년 7월과 1998년 1월에도 언론에 흘러나왔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종종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96년에 1백46개 나라들이 가입한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을 체결한 뒤에도 여전히 새로운 핵무기들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신흥 공업국들에게서 핵에너지 개발 전략과 핵무기 개발 전략 사이의 연계성을 사전에 차단하고 그들 나라의 핵개발 경로를 오로지 핵에너지 개발 전략에만 묶어두려는 반확산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다양한 핵무기들을 끊임없이 개발하면서도 다른 약소국들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핵패권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반확산 전략을 수행하는 첨병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다. 미국은 3개 대륙의 신흥 공업국들이 핵에너지 개발 전략을 추진해오고 있는 과정을 감시·분석하면서 그 개발 전략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금지조약 체제(Nonproliferation Treaty Regime) 안으로 끌어들여 핵무기 개발 전략을 차단·통제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반확산 전략은 어떻게 추진되어 왔는가? 일본은 일찍이 1961년에 정부 차원에서 핵무장론을 제기한 적이 있었고, 1971년부터 핵무기 생산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일본의 핵무장은 미국에 의하여 저지되었으며, 1970년대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였던 남(한국)도 미국에 의하여 저지당했고, 1980년대에 대만의 핵무기 개발 계획도 미국에 의해 저지당했다.

미국과 소련이 대치 상태에 있었던 냉전 시기에는 3개 대륙의 신흥 공업국들의 핵에너지 개발 전략은 미국의 안보에 대한 관계에서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소련의 핵전략이 일차적인 문제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핵강국 소련이 몰락하고 냉전 질서가 해체된 뒤로 미국은 신흥 공업국들의 핵에너지 개발 전략을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안보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안보 관점에서 보자면, 북(조선)의 핵에너지 개발 전략과 미국의 안보 이익은 불상용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북(조선)의 핵에너지 개발 전략이 차츰 발전하면 할수록 플루토늄 추출량은 증대될 것이고, 따라서 핵무기 개발 전략으로 전화·발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기 마련이므로, 한(조선)반도의 핵위기는 역사적 필연이었다.

(3) 금융 위기의 본질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연쇄적으로 금융 위기에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오늘 금융 위기의 원인은 일국 단위의 경제 분석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국가 경제의 고도 성장을 추구해왔던 개도국들에게서 드러나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해내고 그 원인을 분석해야 오늘의 금융 위기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동아시아 금융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두 가지 요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 번째 요인은 오늘 금융 위기를 겪고 있는 동아시아 나라들에는 한결같이 친미 반공 정권이 수립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한 요인은 그 나라들은 지난 1980년대 이후 고도 성장을 거듭해온 개도국들이라는 점이다. 동아시아에서 친미 반공 개도국들의 대미 예속성과 고도 성장은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요인들은 서로 어떠한 관계로 얽혀 있을까?

미국과 소련이 대치 상태에 있었던 지난 냉전기에 동아시아 친미 반공 국가들의 경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냉전의 보호 장치 속에서 고도 성장의 길을 달려왔다. 동아시아 친미 반공 국가들에게 있어서 냉전의 보호 장치는 그 나라들의 친미 반공 정권들에게 강력한 도전을 퍼부었던 각국의 자생적 '좌파 세력'들이 북(조선), 중국, 베트남의 사회주의 세력과 연계 속에서 관료적으로 부패한 친미 반공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아시아 사회주의 진영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는 것을 막아주는 미국의 지역 안보 체제로 기능을 발휘해왔다. 미국이 가동해온 이 냉전의 보호 장치 안에서 '안보 혜택'을 받아온 동아시아 친미 반공 국가들은 이른바 '적색 공포증(red complex)'에 시달리면서도 경제 성장에 힘을 기울일 수 있었다. 만일 미국이 가동해온 지역 안보 체제가 없었더라면, 동아시아의 친미 반공 개도국들은 고도 성장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며, 낙후한 경제와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국내 '좌파 세력들'의 강력한 도전에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며 계급적 대립은 발화점에 이르러 결국 폭발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로써 이 나라들은 베트남전쟁 이후 사회주의적 이행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동아시아가 사회주의화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이 설치한 안보 체제는 북(조선), 중국, 베트남 같은 동아시아 사회주의 나라들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냉전의 방파제였으며, 동아시아 친미 반공 세력들을 위한 미국의 육성 정책은 국내 '좌파 세력'에 대한 탄압을 촉진시킨 반사회주의화 전략의 중심축이었다. 미국이 쌓아올린 냉전의 방파제 안에서 수립된 친미 반공 정권들은 정치·군사 분야는 미국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편, 경제 분야에서만 상대적 자율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상대적 자율성은 서구형 자본주의적 발전 방식과는 다른 특이한 자본주의 발전 방식을 성립시켰다. 이른바 동아시아 경제 발전의 특수한 유형으로 분류되고 있는 이 현상의 기본 성격을 이 글에서는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이라고 규정한다.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은 자본주의 경제 전략의 한 변종이다. 그것은 서구형 경제 성장과는 다른 역사적 경험을 내포하고 있다. 서구형 경제 전략은 자유 시장 원리에 기초하고 있지만, 동아시아 친미 반공 국가들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은 자유 시장 원리를 제한하는 대신 관료 집단이 경제를 규제·지배하는 특이한 경제 전략이었다.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의 중요한 특징은 지난 1970년대 이후 관료-재벌-금융기관의 3자 유착 관계 속에서 발생·정착되어왔다는 데 있다.

관료 집단은 가격 통제 정책, 경쟁 억제 정책, 공공 부문 조달에 대한 배타적 정책을 펴면서 시장을 지배하였고, 그 속에서 독과점 구조를 형성시키고 재벌들을 키워냈다. 이를테면 남(한국)에서 30대 재벌의 1996년도 총매출액은 국민 총생산(GNP)의 91.2%를 차지하게 되었고, 자산 총액도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해마다 11.8-17.0%의 증가세를 보였는데 1995년에는 무려 22.9%나 증가했다. 관료 집단은 특혜 금융 정책을 통해 통화 팽창이나 국민 부담으로 금융 위기를 넘기곤 하였으며, 그 대가를 챙겨갔다. 재벌은 기업의 수익에서 빼돌린 돈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고위 관료들과 여권 주요 인사들에게 넘겨주면서 온갖 특혜를 받았다. 그 비자금은 관료 집단이 관리하는 금융 기관으로부터 쉽게 조달되거나, 정부가 수주한 공사를 통해 형성되면서 탈세나 뇌물 수수 같은 부정 부패의 수렁을 넓혀갔다. 1996년 6월 미국 의회 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이 펴낸 자료 「한국의 시장 개방 전망(South Korea: Prospects for Greater Market Openness)」은 "엄격한 경제 규제는 한국 관료·정치 지도자들의 엄청난 규모의 부정 부패를 낳게 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뇌물을 제공하는 것은 특혜를 얻기 위한 것일 뿐아니라 관료들이 취할지도 모르는 제재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 바있다. 한 경제학자는 해마다 남(한국)의 국민 총생산(GNP)의 5%가 부패한 집권 세력에게 넘어간다고 추산하였다. 정치경제위험 자문사(PERC)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부정 부패는 남(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의 개도국들에게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관료 집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재벌의 해외 시장 개척을 지원하는 정책과 내수 시장에 대한 보호 무역 정책(또는 '폐쇄 정책')으로 재벌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시켜 주었다. 이로써 1980년대 중반부터 동아시아 국가들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고도 성장을 이루었으나 80년대에 들어 추락하고 말았던 중남미의 개도국들을 제치고 고도 성장을 거듭하면서 '동아시아의 황금기'라는 새로운 경제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로써 동아시아에서 일정한 수준으로 금융 자본이 축적되었고 국제 금융 시장 진출과 해외 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고도 성장기가 무르익으면서 동아시아 친미 반공 개도국들은 생산과 투자를 더욱 가속화하였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과잉 생산과 과잉 투자로 이어졌다. 남(한국)의 경우, 자동차, 조선, 메모리 반도체, 특수강, 항공, 석유화학, 직물 분야는 과잉 설비 투자 때문에 구조적인 불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국제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인하여 수급 균형이 깨지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지금 세계 자본주의 시장은 철강, 반도체, 자동차, 조선, 에너지, 화학을 비롯한 주요 분야에서 상품이 넘치고 있고, 이것이 남(한국) 경제에 수익율 감소와 무역 수지 적자의 누적 현상을 몰고 온 것은 필연적이었다. 위기감에 사로잡힌 재벌들은 생산 과잉으로 악화되는 수익율을 만회하기 위해 해외 확장과 설비 투자에 더욱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해외 확장과 설비 투자에 들어가는 자금은 외채와 내채를 끌어다가 허겁지겁 메울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부채 총액은 1990년도부터 천문학적인 규모로 불어났고, 1998년에 들어와서 외채 총액은 약 1천5백억 달러로, 내채총액은 약 3천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수출 부진과 부채 증가의 악순환은 보유 외환의 급격한 고갈 현상을 불러일으켰고, 외환 고갈과 부채 지불의 압박은 환율 폭등, 금리 폭등, 국제 신인도 추락, 주가 폭락을 몰고온 가공할 공황 국면으로 이어졌다.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이 주도한 활황 국면은 불과 10년을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남(한국)은 이미 금융 공황의 위험 신호가 켜진 경제를 살리려는 비상 대책을 세우는 게 아니라, 곧 21세기가 오면 선진 7개국 대열에 올라설 것이라는 공상적 성장주의에 도취한채 일종의 희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동아시아형 경제 발전 전략이었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은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몰아친 생산 과잉과 투자 과잉의 파고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져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사망 확인서'를 받았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유지·관리해왔던 냉전의 방파제가 무너지는 시점에 이르러 한동안 기세 좋게 나가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은 파산과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여기서 분석의 초점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렇다면 동아시아 경제 위기에 대한 미국의 시각과 대처 방도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뉴욕타임스』의 분석은 아래의 세 가지 초점에 맞춰져 있다.

① 미국은 미 재무부가 '시장의 접촉 감염(market contagion)'이라고 부르고 있는 경제 위기의 연쇄 반응을 차단하는 긴급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점.

② 미국의 중심 목표인 세계적 범위의 시장 개방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점. 특히 "클린턴 대통령은 시장 개방을 자신의 외교 정책에서 중요 과제(centerpiece)로 삼았고, 오늘의 시장 교란은 그의 외교 현안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③ 동아시아 나라들이 미국 주도의 현존 국제통화기금 체제에서 이탈함으로써 일본이 제안한 아시아의 독자적인 지역 금융 체제가 창설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미국은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대응 전술들은 미국이 견지하고 있는 동아시아 외교· 안보· 통상의 전략적 관점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안보·통상 전략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경제 위기에 어떻게 전술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게 된다.

두루 알려진대로, 미국은 냉전 질서가 해체된 뒤로 북(조선)에 대한 압박 공세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제네바 핵합의를 성사시킴으로써 동아시아의 사회주의 나라들과 공존을 추구하며 협상을 벌이는 새로운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이 새로운 전략의 요체는 대치와 대결을 중심으로 했던 냉전기의 반사회주의 전략과는 달리, 남아있는 사회주의 나라들과 정치·군사 분야에서 공존하는 한편, 경제 분야에서는 서구형 자본주의의 핵심 내용인 자유 시장 원리를 침투시켜 사회주의 계획 경제 전략을 차츰 변질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미국의 전략가들은 관여·확장 전략(engagement-enlargement strategy)이라는 이름을 붙인 바있다. 사회주의 계획 경제 전략도 일종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으로 보고 그것을 변질시켜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시각에서 볼 때, 동아시아 친미 반공 개도국들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이 미국인들의 눈에 개혁과 개방의 주요 대상으로 비쳐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은 파산과 몰락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있는 동아시아 친미 반공 개도국들에게 구제 금융을 건네주는 대가로 우선적이고 철저한 개혁과 개방을 시행하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이며 압박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를 제거하고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전지구적으로 확산시켜 서구형의 단일한 성격과 유형으로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이를 위해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깃발 아래 미국이 우선 동원한 것은 다자간 협상이다. 우르과이 라운드(UR) 협상의 타결,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확대 가동이 그것이다.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은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 나라들의 계획 경제 전략은 물론이고 친미반공 개도국들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까지 포괄하는 광범위한 공세 전략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불행하게도 이 공세 전략 앞에 가장 무방비한 상태로, 가장 허약한 체질로 드러난 나라가 남(한국)이다. 주한미국대사관이 1998년 3월 4일자로 작성하여 본국 정부에 보낸 보고서 「한국 경제 위기가 미국 기업에 주는 시사점」이 "이번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경우 향후 한국에 진출할 미국 업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권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사실을 볼 때, 미국이 남(한국)의 경제 위기를 통하여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작성한 보고서 『98년 한·미 무역·투자 문제』에서도 복수 노조 허용 철회, 퇴직금 자유 선택제, 회사별 휴가일 자율 결정, 자동차 시장 개방, 금융 시장 개방, 회계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면서 경제 정책과 노동 정책을 미국의 요구에 맞게 바꾸라는 '내정 간섭'적 발언을 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적 규모에서 생산 과잉과 투자 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경제가 살기 위해서는 이미 파산과 몰락의 길에 들어선 동아시아 개도국들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에 대한 철저한 개조 작업이 선행되어야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해 관계를 같이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동아시아 개도국들을 경제적으로 희생시키지 않고서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 공황을 예방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동아시아 개도국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선진 자본주의 7개국들은 자기들의 경제 공황 탈출구를 열어놓는 이른바 영합 경기(零合競技)를 벌이고 있는 셈이다.

최근 『시사저널』이 공개한 이른바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에 관련된 문건은 미국의 금융 자본이 동아시아 개도국들의 경제를 지배하기 위한 조치를 어떻게 취해오고 있는가 하는 윤곽을 밝혀주고 있다. '워싱턴 합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깃발을 들고 1980년대에 남미 나라들의 경제를 지배권 안으로 편입했던 미국 금융 자본의 공략 경험을 연구한 끝에 전략과 전술을 새로 연구·재정비하여 탈냉전기인 1990년대 초반에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워싱턴 합의'에 나오는 여덟 가지 조치들을 보면 "정부 예산 삭감, 자본 시장 자유화, 외환 시장 개방, 관세 인하, 국가 기간 산업 민영화, 외국 자본에 의한 국내 우량 기업 합병·매주 허용,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호보"다. 『시사저널』이 밝힌 바, 미국의 금융 자본이 이러한 조치를 수행하는 전술로 채택한 것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추진한다.

② 집권 핵심 세력이 연루된 부패 고리를 폭로하여 기존 정권을 무력화시키고 선거 패배로 유도한다.

③ 재벌과 노조 세력의 저항이 부딪혀 이른바 '구조 개혁'이 좌절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서로 다른 지지 계층과 기반을 갖춘 중도 성향의 정당 2개를 결합시킨 연립 정권을 새로운 정권으로 내세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국제 금융 자본이 "이같은 전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구조 조정의 성공에 가장 걸림돌인 노조 세력"을 "무력화"하는 것으로서, "DJP연합은 이를 위해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어 정리 해고제를 도입하는 데 성공"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④ 새로운 연립 정권은 의회를 거치지 않고 '구조 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긴급 명령권을 포함한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작성한 '워싱턴 합의'가 이처럼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모순된 전술을 택한 까닭은 지난날 남미의 구조 개혁을 시장에만 맡겨 놓은 결과 실패하고 말았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이 기사에서 "이같은 전략과 전술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 한국이 IMF 사태를 겪으면서 직면했던 일련의 정치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고 적었다.

여기서 동아시아의 금융 위기는 미국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태인가 아니면 국가 동원 경제 전략 자체의 한계와 파탄 때문에 일어난 사태인가 하는 원인 분석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외인론과 내인론으로 갈린다. 외인론자들은 미국의 세계 경제 지배 질서에 도전하기 시작한 동아시아 신흥 공업 경제국(NIECs)들의 고도 성장 추세를 꺾고 길들이기 위하여 동아시아 금융 위기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시아 개도국들의 고도 성장이 미국의 세계 경제 지배질서에 얼마나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지에 관해서 한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가전 산업과 조선 산업으로 시작하여, 철강 산업, 석유화학 산업, 최근에는 자동차 산업까지 대형 설비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는 거의 동아시아 국가들의 밀어내기 전략이 효력을 내고 있어 선진국 동일 산업들이 속속 문을 닫고, 고부가 가치 첨단 산업으로의 이동을 강요받게 만들었다. 이 현상이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와 산업계 안에 얼마나 많은 적을 만들고 있는지,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하다."

외인론자들은 아시아의 금융 중심지인 홍콩이 중국에 귀속된 1997년 7월초, 거의 같은 시점에서 태국의 금융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사실과 동아시아에서 엔화 경제권 건설을 꿈꾸어왔던 일본이 9월에 들어서 부랴부랴 아시아 통화기금(Asia Monetary Fund) 창설을 제의하였으나 11월 18일 좌절당한 시점에서 남(한국)의 금융 위기가 터져나왔다는 사실에서 논거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인론자들은 동아시아 신흥 공업 경제국들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영향권에서 집단 이탈하여 일본이 주도하게 될 동아시아 경제권을 창설하고 독자적인 지역 금융 체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미국의 금융 자본이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본다. 그리하여 태국, 인도네시아, 남(한국)에서 미국의 대형 금융 기관들, 단기 자금 투자 회사(Hedge Fund)들이 신용 평가 기관들과 모의하여 동아시아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기 위한 고의적인 조치로 투자 자금을 한꺼번에 빼내가 버림으로써 외국인 주식 투자 자금이 함께 이탈하여 결국 가공할 외환 위기가 발생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이 파산의 한계점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은 일면적인 판단의 오류다.

다른 한 편, 내인론자들은 경제 위기에 대한 원인 분석을 관료-재벌-금융 기관의 3자 유착 관계에 집중시키면서, 3자 유착 관계를 해체하는 구조 개혁이 성공하면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에 기울어지고 있다. 이른바 3자 유착 관계로 표현되는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이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 상황에 미국의 금융 자본이 개입하여 경제 예속을 강요하고 있는 지배주의의 내습이라는 측면을 간과하는 오류에 빠지고 있다. 이 오류는 관료-재벌-금융 기관의 3자 유착 관계와 미국의 금융 자본을 대립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미국의 금융 자본이 마치 남(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구제금융을 지원해주고 3자 유착 관계의 해체를 촉진시켜주는 등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시혜자, 구원자인양 바라보는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와 더불어 남(한국)보다 먼저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음으로써 미국 금융 자본의 지배권에 완전히 편입된 멕시코가 마치 경제 구조를 개혁하고 국난을 극복한 성공 사례인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도 일어나게 된다. 그렇지만 문제는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의 파산과 미국 금융 자본의 지배주의적 내습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올바른 원인 분석은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의 내부 모순이 한계에 이르러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이른바 '시장의 접촉 감염'이라는 위기 국면에 미국의 금융 자본이 적극 개입하여 이른바 '시장 개방'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동아시아 경제 구조의 전면 개편과 경제 예속의 극대화를 강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늘 금융 위기의 본질은 한계의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남(한국)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이 허물어지면서 미국의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 재편 전략에 휘말려들고 있는 것이다. 남(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친미 반공 개도국들은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운 미국의 개편 압력에 기세가 꺾이고 밀리면서 투항과 순응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남(한국)에 가장 많은 외채를 빌려준 채권국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과 유럽연합인데도, 남(한국)의 금융 위기에 대한 모든 조치는 미국 금융 자본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경제 질서 재편 전략이 배타적으로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한국)의 금융 위기는 대미 예속의 심화와 전면화라는 역사적 필연의 한 측면이다.

(4) 서로 맞물려 있는 핵과 금융

경제력과 정치력이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다. 남(한국)의 금융 위기가 가시권에 들어오던 때 "한반도는 돈과 정치적 영향이 어떻게 서로 교차하는지를 보여주는 초유의 사례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뉴욕타임스』의 예상대로, 지금 한(조선)반도에서 경제 문제인 금융 위기와 정치 문제인 핵위기가 연동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요즈음 한(조선)반도의 핵문제가 남(한국)의 금융 위기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 그러한 가능성을 돋보이게 한다. 미국은 경수로 사업 비용 분담 협상에서 자기들은 전혀 재정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남(한국)과 일본이 전액 부담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일본은 10억달러 이상은 지원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남(한국)의 부담액은 42억달러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가장 적게 잡아도 그 부담액은 35억달러가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하루에 약 15억원씩 날마다 10년동안 부담해야 하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또한 이 금액은 1달러에 7백80원으로 계산한 금액이기 때문에 요즈음 환율 폭등을 감안하면 거의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파산 위기에 몰리고 있는 남(한국) 경제가 과연 이 부담액을 마련할 수 있을까? 엄청난 외채를 얻어 경수로 분담금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남(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당초 약속한 60% 이상은 결코 부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김대중 정권의 「1백대 국정 과제」에서는 "대북 경수로 사업 원활한 추진"을 위하여 "역할에 상응하는 합리적 재원 분담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표명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인 재원 분담 대책이란 국제통화기금의 관리를 받는 기간에는 남(한국)의 분담금을 지급하지 않고 관리 기간 이후로 미루는 연기책을 뜻한다. 그렇지만 그 관리 기간이 언제 끝날지 확실하지 않을뿐더러, 관리 기간을 넘긴 뒤에도 분담금을 지불할만큼 남(한국) 경제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언론에서도 남(한국)의 경제난을 감안하여 경수로보다 건설 비용이 적게 드는 비핵 발전소를 북(조선)에 건설해야 하며, 이를 위해 조·미 제네바 합의를 수정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실리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남(한국)이 경수로 분담금을 줄이는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1998년 1월말 워싱턴에 있는 핵통제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는 미국의 핵발전소 장비 생산 기업인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ombustion Engineering)이 상업용 전력(군사용 전력이 아니라)을 생산할 경수로 두 기를 북(조선)에 수출하기 위한 허가 신청을 냈다는 내용을 발표한 바있다. 미국 관리들은 이 발표 내용이 "외교적 실수(diplomatic gaffe)"라고 곧 해명하였지만, 실수라고 보아 넘어가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일부 언론은 원래 이 경수로는 남(한국)이 공급하기로 미국과 남(한국) 사이에서 합의한 것이었는데, 남(한국)이 경제 위기에 빠진 틈을 타서 대북 경수로 사업을 주관하는 미국측 기업이 합의를 무시한채 독점적으로 수출하려다가 미 국무부에 의해 저지당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 다른 언론은 미국 정부가 미국과 핵관련 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나라에 미국의 핵시설과 기술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령에 저촉되기 때문에 수출허가를 보류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위의 기사에서 미국의 기업들이 생산한 경수로의 수출 비용을 남(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남(한국)을 진정시키기 위해 "코리아형 원자로(Korean-style reactor)"로 부르기로 했다고 하면서, 경수로처럼 민감한 품목들은 적성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다고 보도하였다.

최근 남(한국)의 강인덕 통일부 장관은 『아사히신문』과 나눈 대담에서 "한국이 경제 위기지만 국제적 약속은 지키겠다"고 말한 바있지만, 남(한국)이 만일 현재의 경제 위기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북(조선)의 경수로 건설을 위한 분담금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북(조선)은 조·미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겠다고 했던 미국의 약속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독자적인 핵에너지 개발 정책을 재개하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위스컨신 핵무기 통제 연구소(Wisconsin Project on Nuclear Arms Control)의 개리 밀홀린(Gary Milhollin) 소장도 이러한 예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체결된 제네바 합의는 깨질 수 있는 위기를 맞게 되며, 한(조선)반도에서는 제2차 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제2차 핵위기는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맞는 이중적 위기가 될 것이므로, 한(조선)반도의 운명은 미증유의 재앙으로 밀려갈지도 모른다. 미국의 언론은 남(한국)이 대북 경수로 분담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여 경수로 건설 공정이 늦어지게 되면 그것은 핵위기를 다시 촉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아시아의 금융 위기가 미국의 외교 정책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례"가 된다고 경고하였다. 미국이 조·미 제네바 합의에 대해 묵직한 외교적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미 국무부의 코리아과(課) 산하에 남(한국)계(係), 북(조선)계 이외에 제네바 합의를 담당하고 있는 별도의 계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북(조선)이 조·미 핵합의 이행이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다는 있다는 것 때문에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 소식은 미국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태 변화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는 미국은 대개 세 가지 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포착된다. 첫째는 북(조선)이 조·미 제네바 합의를 성실히 준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는 중국에게 대북 경수로 자금 분담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셋째는 남(한국)이 경수로 분담금을 원래 합의한대로 지원하도록 은근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핵위기와 금융 위기의 연동 작용을 분석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북(조선)의 핵에너지 개발 전략과 남(한국)의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이 모두 미국의 지배주의 전략과 어떠한 연관 관계 속에 놓여있는가를 밝혀내는 일이다. 한(조선)민족이 핵위기와 금융 위기에서 궁극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는 한(조선)민족이 미국의 지배주의 전략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5) 미국의 지배주의와 동아시아의 자주·자강 전략

지금 미국의 금융 자본은 금융 위기의 돌풍 속에 휘말린 동아시아에서 지난날보다 더 많은 이익을 거둬가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들고 세계 자본주의 경제 체제 재편에 나선 미국은 우선 자본력과 기술력에서 열세에 있는 동아시아 친미 반공 개도국들에게 금융 시장과 상품 시장을 개방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리하여 『뉴욕타임스』가 지적한대로 동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커다란 고통이며, 그 고통은 미국에 대한 분노로 바뀌고 있다. 이 신문은 태국의 신문들을 인용하면서,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사회주의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이념적 승리를 의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경제의 붕괴는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금융 제국주의(financial imerialism)의 교묘한 승리"이며, 서방은 아시아에서 "지적 식민주의(intellectual colonialism)와 경제 식민주의(economic colonialism)"를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음을 전하면서 동아시아에 반미주의(anti-Americanism)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고 경고하였다. 이 보도 내용에서 드러나 있듯이, 미국의 정부 관리들과 전문가들은 앞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경제 관계, 외교 관계는 반미주의의 저항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해서 새로운 마샬 플랜을 제공하고 있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미국은 지원해주는 한편, 미국식 유형에 대한 동아시아의 거부감을 완화시키고 미국식 경제 질서와 정치 질서를 촉진하면서 동아시아의 복종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하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미국의 금융 제국주의와 경제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은 유독 남(한국)에서만 예외적일 수가 있을까? 『뉴욕타임스』는 그 기사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경제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음을 논거로 들고, 남(한국)은 마치 반미주의가 일어나지 않을 특별한 예외 지역인 것처럼 보도하였는데, 그 내용은 설득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의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의 논리가 차라리 더 현실적이다. 그는 1998년 1월 9일 시애틀의 국제문제위원회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아시아의 현 경제적 현실이 민족주의, 나아가 반미로 흐를 경우, 이 처방(국제통화기금의 조치들을 뜻함-인용자)은 질병보다 더 해로운 것이 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 위험성이 "적의에 찬 민족주의가 강하게 형성된 한국에서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치 키신저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이, 1998년 1월 24일 경상북도 왜관에 있는 미군 기지 캠프 캐롤에서 미군 제728 헌병대대 병력 2백여 명은 영내에서 반미 시위 진압 훈련을 벌였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동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반미주의 기류가 폭발한 나라는 아직 없지만, 강력한 반미주의 기운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그 잠재력에 대해 미국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동아시아의 반미주의를 논하는 대목에서 분명히 파악해야 할 논점이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반미주의는 중세기 이후 중국, 몽골의 패권주의와 지배주의에 대한 저항, 그리고 근세 이후 서구 열강과 일본의 식민주의와 지배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동아시아의 친미 반공 개도국들에 대한 미국의 지배주의를 거부하는 반미주의는 바로 이 역사성을 자기의 존립 기반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으니, 그것은 구미 학계의 이론과 주장을 숭상하는 개방주의자들은 동아시아의 반미주의가 형성된 역사적 맥락을 외면한채 조건반사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방주의자 함재봉 교수의 주장을 들어보자.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직접 투자를 통해서 회사를 운영하고 한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부동산을 소유하도록 해야 한다. 외국인을 관광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땅에 뿌리 내려서 우리하고 같이 일하고 세금 내고 더불어서 살 수 있게 되어야 한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뉴욕이나 런던 같이 외국인이 아무런 거부감과 불편함이 없이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강대한 외세를 약소국을 지배·침탈하는 지배주의 세력으로 보는 게 아니라, 어려움에 빠진 약소국을 도와주고, 부강과 발전의 길로 이끌어주며, 약소국과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지구촌을 꿈꾸는 공상적 세계주의자(utopian cosmopolitan)의 출현을 보게 된다. 개방화, 국제화, 세계화를 주장하는 개방주의자들은 지배주의자의 논리에 대한 원초적 친화력을 갖고 있다. 함 교수는 자신의 기고문에서 "당장은 어렵더라도 개방화와 국제화 세계화만이 우리의 살 길이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보다 부강하게 하고 우리의 삶에 다양성을 주며 문화적으로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을 갖고 이를 위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사회 기반과 정치 세력이 하루 빨리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방주의의 정치 세력화를 주장하는 이 논리를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하자면 한 세기 전 조선조 말기에 등장했던 개화파 지식인의 논리를 그대로 닮았다. 개화파 세력은 부패 무능과 외세 침탈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조선왕조 봉건 체제를 지키려는 수구파와 대결하였고, 척양 척왜와 보국 안민을 외치며 투쟁했던 갑오 농민군을 '무지몽매한 폭도'로 규정하고 배척하였다. 개화파 지식인들은 구미 열강과 일본의 침략을 환영하지는 않았지만, 근대적 세계관과 서구화된 문물에 대한 개방 정책과 자율적 모방을 중심 과제로 놓고 내외 정세를 인식하고 국가 발전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제국주의에 대한 정신적 항체(抗體)를 지니지 못했고, 결국 구미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구미 학계의 이론과 주장을 숭상하는 개방주의자들도 개화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지배주의를 환영하지는 않지만 미국식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받아들이는 개방화, 국제화, 세계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들은 반미주의(anti-Americanism)의 정치적 담론을 반미 감정(anti-American sentiment)으로 바꿔치기하면서 집단적 자폐증, 또는 외국 혐오증(xenophobia) 같은 정신 병리 현상으로 깎아내리려는 몰역사적인 관점에 매달리고 있다. 그들은 반미주의를 국수주의, 배타주의, 고립주의, 폐쇄주의 같은 녹슬은 골동품으로 가볍게 보아 넘겨버리는 데 아주 능숙하다. 이러한 태도는 동아시아 역사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가 아니면, 그 역사를 천박한 궤변으로 짓밟아 보려는 반지성적 가혹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오늘 개방주의자들은 한 세기 전 개화파 지식인들이 정치 세력화하여 1984년 집권에 성공하고 그 기세를 몰아 실시했던 근대적 개혁 정책인 갑오경장이 일본이 이른바 '내정 개혁 방안 강령 5개조'란 이름으로 추진했던 침략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갑오개혁의 실시와 친일 정권의 수립은 일본의 조선 침략을 촉진함으로써 결국 식민지화의 길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위정 척사라는 낡은 구호를 들고 무너져가는 봉건 체제를 지키려 했던 수구파 세력과 척양 척왜를 외쳤던 갑오 농민군을 쇄국주의 세력으로 동일시했던 개화파 지식인들의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오늘 동아시아의 반미주의를 올바로 인식하기 위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반미주의와 개방 정책을 대립항으로 설정하는 판에 박힌 사고 방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개방 정책과 관련하여 두 가지 논점을 명료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국가 경제의 성격과 구조를 오로지 개방-폐쇄의 양극 논리로 단순 명쾌하게 설정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동아시아에서 개방의 문제는 국가 경제를 관리하고 발전시키는 사회·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전술 문제다. 우리가 물어야 할 물음은 무엇을 위한 개방이고, 누구를 위한 개방이냐 하는 것이다. 개방과 개혁의 과업은 자주·자강의 전략적 관점을 확고하게 설정한 기초 위에서 전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오늘 남(한국)을 비롯한 친미 반공 개도국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개방·개혁 전술의 운용에 앞서 무엇보다도 먼저 자주·자강의 전략을 확고하게 수립하는 일이다. 어느 나라든지 개방을 할 줄 몰라서 아니하는 것은 아니다. 자주·자강의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조건에서 무분별하게 개방 정책에만 매달리게 되면 강대국의 지배주의 내습에 무릎을 꿇어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개방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개방이란 자주·자강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한 전술 단위로서 그 위치를 분명히 정해야 한다.

경제 강국인 일본을 보더라도 금융 자본을 개방하지 않고 있으며, 시장규제를 여전히 존치시키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시급히 시장 원리를 도입해야 할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힘없는 친미 반공 개도국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개혁·개방 정책을 일본에게 차마 강요하지는 못하고 그저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1992년 이후 시장 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21세기의 경제 강국' 중국에 대해서도 미국의 지배주의 전략이 통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미국의 지배주의 전략은 매우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이 지배주의 전략을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기준은 적용대상국이 자주·자강 전략을 수립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데 있다.

지금 남(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남(한국)이 국가 동원 경제 전략을 스스로 폐기하고 자율적인 개방·개혁을 추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타율적인 개방을 강요 받는 경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주·자강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약소국에게 있어서 섣부른 개방 정책은 대안이 결코 아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날이 갈수록 심화·전면화되어 왔고, 안팎으로 허약한 체질이 드러난 남(한국) 경제가 이제와서 자율적으로 개방했다고 한들, 약육강식이라는 밀림의 법칙이 광란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맨몸으로 나서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문제는 자율적 개방이냐 타율적 개방이냐가 아니라, 자주·자강 전략을 수립하였느냐 하지 못하였느냐다. 자주·자강 전략이 없는 약소국의 개방화, 국제화, 세계화는 부강·발전하는 길이 아니라, 강대국의 지배를 받는 굴종과 예속의 길이다.

둘째로, 개방-폐쇄의 문제를 탈냉전-냉전이라는 체제 변동 문제와 등식화하려는 단순 논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미 학계의 이론과 주장을 숭상하는 남(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지난 시기 냉전 체제의 기본 성격이 폐쇄성이었다면, 오늘날 탈냉전 체제의 기본 성격은 개방성이라고 주장하면서 탈냉전 시대로 넘어온 지금 개방은 불가피한 선택일 뿐아니라 시대 정신의 보편타당성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동아시아의 역사를 냉전-탈냉전의 구도를 통해서만 보려는 것은 무리다. 전후 동아시아는 중국 내전, 한국(조선)전쟁, 베트남전쟁을 겪었으며, 더 나아가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세 대륙은 민족 해방 전쟁, 내전, 지역 분쟁들이 끊이지 않았던 열전(熱戰)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유럽의 동서 냉전 체제가 전 세계의 정치·군사적 현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바있었으나, 1960년대 중반 이후 중·소 분쟁과 제3세계의 등장으로 동서 냉전 체제는 질적 변화를 겪었다. 세 대륙에서는 유럽 중심적 동서 냉전 구도로 설명할 수 없는 열전 시대, 곧 미국과 반미 국가들, 그리고 미국의 지배권 아래에 있는 친미 반공 정권들과 반미주의 세력들의 치열한 전투가 지속되었다. 그러므로 전후 세 대륙에서는 냉전과 열전의 교차되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열전의 시기에 미국이 은밀한 개입과 배후 조종을 일삼으며 이른바 저강도 전쟁(low-intensity warfare) 전략으로 대응했다는 것은 여기서 새삼스럽게 밝힐 필요가 없을만큼 공인된 사실이다. 만일 냉전기의 기본 성격을 폐쇄성으로, 탈냉전기의 기본 성격을 개방성이라고 강변한다면, 그것은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나토군과 바르샤바 조약군이 봉쇄와 대치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왔던 진영 구도가 성립하고 소멸한 유럽 중심주의적 정세관에나 들어맞는 논리다. 탈냉전-냉전을 개방-폐쇄로 등식화하는 따위의 담론은 유럽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며, 세 대륙에는 무차별하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세 대륙이 지나온 냉전과 열전의 교차 시대를 오로지 개방-폐쇄론의 시각에서 읽을 수는 없다. 어쨋든 유럽 지역에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이 존재하고 있었던 지난 시기에 미국의 지배주의는 사회주의 진영의 강한 견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팽창되지 못했다. 그러나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진 이른바 탈냉전 시기에 이르러 미국의 지배주의에 맞설 견제력은 없어지고 말았다. 지금 미국의 지배주의는 정보·통신 기술력의 확산 기류를 타고 전 지구적인 팽창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친미 반공 개도국들은 미국이 몰아부치고 있는 지배권의 팽창력에 산개전(散開戰)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매우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 마치 구렁이와 도마뱀의 싸움과도 같은 이 산개전은 사실 그 승패가 뻔하다. 지배주의적 팽창력을 동원하여 약소국들의 자기 해체를 강요하고 있는 미국에게 맞설 수 있는 자주·자강의 전략과 역량이 불행하게도 동아시아의 친미 반공 개도국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이 자기 해체의 강요에 순응하려는 세력들은 그것을 탈냉전 시대가 요구하는 세계사적 추세인 개방성이라고 그럴듯하게 미화·분식하며 불가피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컨대 동아시아의 반미주의는 강자의 지배력이 약자에게 강요하는 자기 해체를 거부하고 자기를 지키려는 약자의 자기 긍정, 곧 탈미 자존(脫美 自存)의 정치적 담론이다. 그 담론 속에는 동아시아 민중들의 정치적 열망과 지향이 담겨 있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지구촌 시대'의 반미주의 담론은 지배주의의 팽창을 거부하는 자주·자강 전략을 수립할 것을 분명히 요구한다. 이 요구는 중세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자주·자강의 역사적 과업에 대한 동아시아 민중의 정치적 각성이기 때문이다.

이제 글의 끄트머리에 이르러 우리는 자주·자강 전략의 관점에서 오늘 남(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자주·자강의 역사적 과업을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비춰본 오늘 남(한국)의 현실과 미래는 불행하게도 어둠 속에 잠기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반세기동안 한·미 관계의 총체는 미·일 관계나 미·독 관계에서 보이듯이 동맹국들의 대등한 상호성에 기초한 관계가 아니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특히 한·미 양국의 정치·군사적 관계는 일찍이 미군정의 비호·육성 아래 친미 반공 정권인 수립된 뒤로 지금까지 50년동안, 그리고 한국(조선)전쟁과 그 이후 정전 상태 45년동안 보호국-피보호국의 특수 관계로 남아있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이 특수 관계에 변화가 조금 있었다면 그것은 다만 형식의 변화였지 본질의 변화는 아니었다. 한·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일부 논자들은 남(한국)의 경제력이 1980년대 중반 이후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되자 대미 관계의 정치·군사적 측면도 불가피하게 그에 상응한 변화를 일으켜 이른바 상대적 자율성(또는 상대적 독자성)을 획득했다고 주장해 왔지만, 오늘 남(한국)의 경제 위기는 경제 성장에 조응하여 성립된 정치·군사 분야의 상대적 자율성을 주장하는 논리 구조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경제 위기에 처한 남(한국)은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수 없이 경제 주권마저 미국의 손에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한때 동아시아의 용들 가운데 하나로 다른 개도국들의 부러움을 샀던 남(한국)은 이제 구렁이 앞에서 저항 한 번 해보지도 못한채 항복하고만 도마뱀처럼 되고 말았다. 한·미 관계에서 남(한국)의 지위가 '변방의 속국'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한 재미동포의 탄식을 우리는 무심히 스쳐가서는 안된다.

탈미 자존의 정치적 담론은 동아시아의 친미 반공 개도국들이 사대·의존 전략을 버리고 자주·자강 전략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이것은 미국의 피보호국, 변방의 속국이라는 멍에를 벗고 명실공히 자주국으로 일어서는 것이며,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고 상호 협력하는 정상 관계로 변화·발전하는 민족 중흥의 길이다. 이것이 남(한국)이 경제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남(한국)이 미국의 속국이 아니라 미국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은 자주국으로 변화되는 것은 한(조선)반도에 통일 국가가 수립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한(조선)민족이 민족 분열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여 분단 질서를 그대로 붙들고 있는 한, 남(한국)은 미국의 속국, 피보호국 신세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만일 한(조선)민족이 남북으로 분열되지 않고 자주적 통일 국가를 이루고 살아왔더라면, 오늘 핵위기와 금융 위기의 고통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갈라진 남북이 분단 의식에서 벗어나서 민족이라는 공고한 집단 의식으로 다시 결합되고 그 결합력에 기초하여 국가 통합을 이룩하지 않고서는 참된 의미에서 자주·자강의 역사적 과업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며, 거꾸로 자주·자강 전략이 없이는 한(조선)반도에서 민족적 단결과 국가적 통합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주·자강의 과업과 한(조선)반도의 통일 과업은 하나의 일치점으로 겹쳐진다. 한(조선)민족이 추구할 21세기의 미래는 이 일치점 위에 그 뚜렷한 영상이 맺혀지게 될 것이다. (1998년 3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