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조선)의 정세관과 정세 대응에 관한 담론 분석

- 1997년 상반기 『로동신문』 분석을 중심으로 -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들어가는 말

한(조선)반도의 통일 문제와 안보 문제를 논할 때, 북(조선)에 대한 인식은 비켜갈 수 없는 '관문'으로 우리 앞에 놓인다. 만일 북(조선)의 현실에 대해 무지하거나 판단 착오를 일으킨다면 한(조선)반도의 통일 문제, 안보 문제를 이해하는 길은 사실상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북(조선)을 정확하게 아는 만큼 통일 문제, 안보 문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깊이와 폭이 정해진다. 북(조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정부 차원의 통일 정책도,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도 방향 감각을 잃게 될 것이다. 최근에 남(한국)의 학계에서 '북한 연구'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고, 이른바 '북한학'이라는 개념도 생겨나기는 했으나, 북(조선)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성과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북(조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통일 문제나 안보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들에게 주어진 풀기 힘든 '화두'다. 이 화두를 붙들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면서도 눈앞이 확 트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밖에서 북(조선)의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열려진 통로가 없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북한 연구'나 '북한학'에 관계하는 연구자들은 '현장'에 가서 답사를 하거나 자료를 모으기가 아예 불가능한 조건에서, 극히 제한적인 자료들만 가지고 연구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 지금 북(조선)에 관한 정보나 첩보는 내외통신의 보도 자료, 확인할 수 없는 소문, 단편적인 견문 기록, 그리고 '탈북 귀순자'의 증언에 국한된 것이 전부다. 북(조선)의 내부 형편에 관한 첩보·소문은 주로 조선족 사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른바 '옌벤통신'을 말하는데, 거기에는 신빙성이 없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북(조선)에 대한 견문 기록이 단편적이라고 하는 까닭은 외부인이 방북했을 때, 그의 방문 체험에는 명백한 한계선이 그어지기 때문이다. 이 한계는 방문자 자신의 인식 한계이기도 하지만, 북(조선)에서는 외부인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없고 방문 목적에 준한 여행 범위만이 허용된다는 데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한계다. '탈북 귀순자'들에게는 자기들이 버리고 떠난 과거의 경험에 대해 전면적으로 거부하려는 심리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증언'이라는 것이 객관성을 가지기는 매우 힘들며, 더우기 견문 기록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개별적, 부분적 체험이나 주관적 견해를 일반화하는 오류도 있다. 이러한 사정은 남(한국)을 버리고 북(조선)으로 넘어간 '의거 입북자'의 증언이 실린 북(조선)의 신문 기사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북(조선)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는 무엇일까? 그것은 북(조선)에서 간행된 문헌들이다. 이 문헌들은 『로동신문』, 조선로동당 출판사에서 펴내는 각종 도서들, 각 연구소에서 펴내는 연구지 등이다. 문헌 분석만이 과학적인 현실 인식으로 통한다. 지금 남(한국)의 북한학계 일부에서는 북(조선)의 공식 문헌들과 북(조선)의 현실·경험을 구분하면서, 전자는 "공식화된 선전적 주장"이므로 "가공된 경험일 뿐 실제의 경험과는 무관하다"고 단정하고 공식 문헌에 대한 불신감과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공식 문헌들은 선전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선전적 주장과 현실·경험을 구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공식 문헌들이 현실·경험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극단적인 논리는 '불가지론'을 불러올 뿐이다. 선전과 현실·경험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그 '다름'을 '관계 없음'으로 볼 수는 없다. 공식 문헌에서 선전적 주장과 현실·경험을 구분하고 그 양자의 연관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야말로 북(조선) 연구의 기본이다. 다른 한편으로 소문이나 견문 기록들은 문헌 분석을 뒷받침해주는 보조 자료로서 일정하게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객관적 자료로서 값어치는 떨어진다.

여러 문헌들 가운데서도 이 글의 주제인 북(조선)의 정세관과 정세 대응을 분석하기 위해서 외부의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는 『로동신문』이다. 『로동신문』은 일반 언론이 아니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다. 그 신문은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신문들처럼 사실 보도를 주로 전하는 언론 매체가 아니라 조선로동당의 정치적 의사를 전파하는 정치 선전 매체다. 무릇 당 기관지란 당의 견해와 주장, 의도와 요구, 정책과 방침, 사상과 이론을 각급 당 기관들과 당원 대중들에게는 물론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전파하고 침투시키는 선전 매체로 기능하는 것이 통례다. 『로동신문』도 예외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모든 사회주의 사회가 사회주의 집권당의 지도를 떠나서 존립할 수 없었지만, 북(조선) 사회에 대한 조선로동당의 지도는 역사적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유일하며 절대적이다. 조선로동당에 대한 이해가 없이 북(조선)을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므로 당 기관지 『로동신문』에 대한 분석은 북(조선)의 현실·경험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이해의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당 기관지들이 그러한 것처럼 『로동신문』도 선전(宣傳)의 수사학(修辭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선전의 수사학은 현실·경험과 무관한 '가공화된 허구'가 아니라, 북(조선)의 현실·경험을 반영하는 수동적인 담론 체계와 더불어 그 현실·경험을 규제하거나 그것에 침투하는 능동적인 담론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수사적 표현들 속에 섞여 있는 반영의 담론 체계, 규제와 침투의 담론 체계를 읽어내는 분석 작업은 명민한 감각과 분석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선전의 수사학에 동원된 특정한 개념이나 담론이 북(조선) 사회에서 어떠한 의미로 이해되고 수용·경험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인데, 외부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이 글의 논의 과정에서 차차 밝혀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북(조선)에서 지금 동원되고 있는 선전의 수사학은 북(조선)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재해석이며, 그 경험의 현재적 의의를 오늘에 되살리는 계승·발전의 기능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북(조선)의 원초적 역사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늘 동원되고 있는 선전의 수사학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북(조선)의 역사적 경험이란 항일 무장 투쟁과 전후 복구라는 두 차례의 경험을 말한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대한 재해석의 중심 주제는 '고난을 이겨낸 승리'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 시기 『로동신문』에 나타나 있는 선전의 수사학은 '고난과 승리의 담론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글은 현재 북(조선)이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또 당면 정세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려고 한다. 북(조선)이 당면한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당면 정세 속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풀어내기 위하여 어떠한 대응 방향을 취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오늘 한(조선)반도의 통일 문제와 안보 문제를 논할 때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 이 글은 올해 상반기 동안 발행되었던 『로동신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과정에서 글쓴이의 능력 한계를 절감하였지만, 북(조선)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조선)반도의 통일 문제와 안보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 글을 썼다.

당연한 말이지만, 남(한국)의 정부 당국이나 민간 통일운동 단체들은 친북이냐 반북이냐 하는 켸켸 묵은 논쟁의 골방에서 나와서 북(조선)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종래의 친북-반북론이 지북론(知北論)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을 가진다. 물론 연구라는 것도 완전히 객관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가치관, 이념적 성향이 개입되어 있는 '인식의 주관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 북(조선) 연구에서 가지각색의 분광(spectrum)이 나타나는 것은 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인식의 주관적 기초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 태도와 이념적 주장을 혼동해서도 아니되며, 북(조선)에 대한 연구를 회피·거부·금지할 필요도 없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알게 되면 보인다는 통속적 격언들은 북(조선)을 정확하게 알아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외부인들'에게 두루 통하는 평범한 진리다.

(2) 피포위 의식의 정세관

북(조선)의 정세관은 제국주의의 공세에 포위되어 있다는 피포위 의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피포위 의식의 정세관은 한국(조선)전쟁 이후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붕괴, 독일의 흡수 통합, 미국의 걸프전 압승, '핵문제'로 인한 전면적인 압박, 그리고 경제난 등 일련의 상황 전개는 북(조선)이 피포위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올해 상반기에 나온 『로동신문』들은 현 시기를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준엄한 시련의 한 해"며,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시기, "력사의 준엄한 폭풍우"라고 표현하였다. 북(조선)이 현 시기를 이처럼 시련의 때로, 현 정세를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하고 있는 까닭은 "세계 여러 사회주의 나라들을 무너뜨린 제국주의 광풍은 오늘 크지 않은 나라, 동방의 조선을 노리고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기승을 부리며 날치는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인민, 우리 혁명을 압살하려고 사면팔방에서 공격하고"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자들은 힘으로 우리 공화국을 압살해 보려고 발광적으로 날뛰"고 있으며, "우리식 사회주의를 질식시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책동은 더욱 악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압살 책동은 그 횡포성과 악랄성, 비렬성에 있어서 력사에 류례가 없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이러한 논조는 평화 공존, 긴장 완화, 화해·협력을 말하는 탈냉전 시대의 정세관을 무색하게 만드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탈냉전 시기에 들어와서 북(조선)의 피포위 의식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피포위 의식에 관한 담론은 외부인의 눈에는 별로 현실감이 없는 선전 문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북(조선)의 인민들에게는 정세를 인식하는 의미 체계로 수용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줄곧 그래왔지만, 북(조선)의 정세관은 비타협적인 계급 노선, 반제 자주 노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주적 인민이 되느냐, 망국노가 되느냐 하는 준엄한 시각"에 일어나고 있는 공방전은 "자주적 인민이 되느냐, 노예로 되느냐 하는 치렬한 계급 투쟁"이며, "사회주의를 지키느냐 아니면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느냐 하는 결사전"으로 묘사된다. 남(한국)의 한 논평가는 이러한 일련의 담론은 "체제에 대한 결속을 강조하여 인민의 이탈을 막기 위한 극단적 표현들"이라고 해석한 바있지만, 제국주의의 포위 공세에 반격을 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반격을 통해 포위 공세를 뚫고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를 이러한 전투적 정세관 속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북(조선)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북(조선)은 자신들에 대한 제국주의의 공격과 압력은 세 방향에서 몰려오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 그것은 "정치군사적 압력과 끈질긴 경제 봉쇄, 비렬한 사상문화적 책동"이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더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은 군사적 위협과 경제 봉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강조는 "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 보루인 우리 공화국에 공격의 화살을 집중하고 있으며 전쟁 도발 책동을 미친듯이 벌리고 있다"는 표현과 "제국주의의 포위 속에서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을 받으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조건"이라는 표현에서 뚜렷이 드러나있다. 경제 봉쇄에 관해서도 "반동적 경제 봉쇄로 우리의 경제 생활을 파괴 혼란시키고 우리 인민을 질식시켜 보려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비렬한 책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경제 봉쇄는 "우리의 경제를 질식시키고 나아가서 우리 인민들 속에 불평 불만과 혼란을 조성하여 우리의 사회주의 제도를 허물어보려는 비렬한 행위"라고 규탄한다. 이러한 경제 봉쇄에 대해서 북(조선)은 "적들의 압살 책동에 자력갱생의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는 대응 전략을 내놓고 있다. 자력갱생의 전략은 1950년대 후반 전후 복구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강조되어온 전통적인 전략이라는 사실을 볼 때, 북(조선)의 대응 전략은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좀처럼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북(조선)이 말하고 있는 제국주의라는 실체를 구체적으로 지목한다면 그것은 미국이다. 북(조선)의 공식 문헌들은 '미 제국주의'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써왔는데, 최근 몇 해 사이에 미국과 관계 개선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뒤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저 '제국주의'라는 일반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북(조선)이 말하는 포위 공격은 결국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경제 봉쇄 정책이다. 따라서 북(조선)은 현재 경제난을 겪고 있는 원인이 미국의 경제 봉쇄, 군사적 위협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자면, 경제 봉쇄와 군사적 위협은 연동 작용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압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미국의 대북 경제 봉쇄가 한국(조선)전쟁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 연동 작용의 역사적 사례가 된다. 사실 북(조선)은 미국의 경제 봉쇄를 가장 오랫동안 받아오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과 함께, 오늘 정전협정마저 기능이 마비된 위험한 상태에서 미국과 군사적으로 직접 대치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올해 『로동신문』의 논조를 보면, 북(조선)은 제국주의의 포위 공세를 논할 때 군사적 위협보다도 경제 봉쇄에 더 무거운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이 군사적 위협에 심각하게 직면했던 1976년의 '판문점 사태'와 관련하여 1977년 신년사에 나타난 위기감과 그로부터 20년 뒤인 1996년의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관련하여 올해 공동사설에 나타난 위기감을 비교하면, 후자는 전자보다 위기감에 대한 표현 내용이 더 완곡하며, 언급한 비중도 덜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것은 오늘 북(조선)이 제국주의의 포위 공세를 군사적 긴장으로 파악하기 보다는 주로 경제 봉쇄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조선)은 포위 공세를 뚫고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의지를 "제국주의 광풍이 기승을 부릴수록 조선의 마치와 낫과 붓은 더 억세여지고 우리의 총폭탄 정신은 더욱 강렬하게 불타 오른다"는 수사적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수사적 표현에는 의지 뿐아니라, 자신감도 들어있다. 북(조선)은 포위 공세에 대응하는 전술은 일시적 후퇴가 아니라 '대담한 역공'이라고 한다. 그들은 "오늘의 난관을 참고 견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진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며 방어가 아니라 대담한 공격으로 새로운 승리를 마련해나가는 여기에 우리 식 사회주의 총진군의 거대한 위력이 있다"고 하면서, "오늘의 강행군은 단순히 애로와 난관을 참고 견디여내기 위한 행군이 아니"라는 것이며, "혁명의 길은 멀고 오늘의 투쟁은 간고하지만 사회주의 강행군에서의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난관은 일시적인 것이며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가장 정의로운 혁명위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뚫지 못할 난관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든지 "그 어떤 도전과 시련도 우리의 전진 운동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고 하는 대목에서 저들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자신감에 대한 표현들은 역경에 처한 인민들을 격려하기 위한 단순한 선전 문구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어떤 근거가 있는 주장일까? 이 물음에 대해서 단답형으로 답변할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으로 북(조선)은 매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가를 운영해오면서 독특한 위기 관리 능력을 배양해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위기 관리 능력이 저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 북(조선)을 잘 알고 있다는 한 조선족 기업가가 "역사적으로 볼 때 때릴수록 단단해지고 무릎 꿇느니 굶어 죽겠다는 혁명적 열의를 택했던 북한 사회의 특수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한 지적은 오늘 북(조선)이 당면 정세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제3차 고난의 행군

오늘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담론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난의 행군은 1930년대와 1950년대에 각각 진행된 바있다. 1930년대에 있었던 제1차 고난의 행군은 "백두 밀림의 고난의 행군"으로서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알려진 항일 무장 투쟁 세력이 진행한 행군이라고 한다. 이 행군은 1938년 12월 초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 부대가 진행했던 '1백일 행군'을 말한다. 이 행군은 몽강현 남패자에서 장백현 북대정자에 이르는, 걸어서 대엿새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무려 1백10일이나 걸려 진행하였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회고록에서 그 시기가 항일 무장 투쟁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다고 회상하였으며, 1990년 10월 5일 미국 사회로동당 대표단과 한 담화에서 1938년의 고난의 행군을 회상하는 가운데 소련·동구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있던 당시의 상황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오늘의 정세는 바로 그 때의 정세(고난의 행군 시기를 뜻함-인용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 바있다.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에 기술된, 제1차 고난의 행군 시기가 지니고 있는 상황적 특징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 '혁명의 저조기'라는 일반적 인식이 퍼지고 있었다.

② 항일투쟁에 대한 서간도 지구와 국내 민중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③ '혜산 사건'으로 국내 항일운동 조직이 파괴되었다.

④ 일제의 선전 공세가 더욱 드세지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은 망했다는 거짓 선전이 국내외 민중들에게 먹혀들어가던 시기였다.

⑤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대'의 공격이 집중되면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추격전과 포위전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⑥ 조선인민혁명군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과 식량 부족, 물자 부족으로 시련을 겪었다.

제2차 행군은 "1950년대 중엽에 진행했던 제2의 <고난의 행군>"으로서 전후 복구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에 겪고 있는 오늘의 시련과 도전은 제3차 고난의 행군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담론 속에는 북(조선)이 현재 국가적 차원에서 난관을 겪고 있다는 객관적 현실 인식과 그 난관을 '사회주의 강행군'으로 극복하겠다는 주관적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난관이란 경제난을 뜻하는데, 특히 유류와 외화의 절대부족 때문에 생겨난 식량난을 비롯한 인민 생활의 어려움이다. 그들은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고난의 행군>은 단순히 부닥친 난관을 참고 견디어내자는 것이 아니라 현 난국을 뚫고나가 경제 건설에서 새로운 앙양을 이룩하며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보람찬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알곡 생산을 늘여 인민 생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제3차 고난의 행군은 올해로 끝나게 된다. "<고난의 행군>을 더 끌 수 없으며 올해에 어떻게 하나 <고난의 행군>을 결속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의지이고 결심"이라는 것이다. "올해의 총진군은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한 최후 돌격전"이며, "승리의 새 봄을 안아오는 투쟁과 위훈의 행군, 창조와 번영의 행군"이며, "오늘의 강행군은 우리 식 사회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앞당기는 승리자의 대행진으로 빛나게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승리의 수사학'이 동원된다. 『로동신문』은 김정일 비서가 "올해는 혁명의 난국을 헤쳐나가는 우리 당과 인민의 투쟁에서 력사적 전환의 해이며 최후 돌격전의 해입니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1996년 2월 김정일 비서가 방북한 총련 청년 활동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3년이면 길이 열린다. 그때까지 인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북(조선)이 식량난을 극복하고 미국·일본과 국교를 수립해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희망을 표시한 것이라는 관계자의 해석을 덧붙인 바있다

그러면 제3차 고난의 행군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일까? 『로동신문』 1997년 3월 15일자 기사는 오늘 고난의 행군이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련하여 김정일 비서의 말을 인용하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이 몇해동안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어왔다고 하시면서 올해에 우리는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여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고, 전당적으로 혁명적 군중 관점을 철저히 세우고 인민들이 바라는 문제, 걸린 문제를 풀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말한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것, 인민들이 바라는 문제와 걸린 문제를 푸는 것이란 당면한 경제 문제의 해결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당면한 경제 문제에 대한 북(조선)의 견해와 주장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다.

제3차 고난의 행군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보다도 시련을 통해 '혁명의 주체 역량'이 더욱 강화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혁명의 주체 역량'이란 무엇인가? 『로동신문』의 논조를 분석해보면 대개 두 가지가 드러나고 있다. 첫째는 '사회주의 건설의 3대역량', 곧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으로서, "지난 해의 어렵고 보람찬 투쟁을 퉁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의 3대 진지가 굳건히 다져지게 되였다"고 하는 담론이다. 둘째는 '사회정치적 생명체'에 관련한 담론인데, "<고난의 행군>과정에 우리 인민들은 더욱 혁명적으로 단련되였으며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이 일층 강화되였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령도자의 두리에 뭉친 당과 인민의 통일체, 혁명의 주체가 백방으로 다져지게 된 것은 몇 백만톤의 쌀에 비길 데 없는 고귀한 승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북(조선)이 현실을 이렇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늘의 객관 현실이 아무리 불리하고 어렵다고 해도 '혁명 정신'만 있으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일종의 정신력 제일주의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조선)은 고난의 행군을 혁명 정신의 싸움, 곧 주체사상의 사상전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당면한 난국을 타개하는 길도 주체사상의 혁명 정신을 발휘하여 사상전에서 승리해야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저들은 "우리 조국과 민족, 우리 혁명과 사회주의의 운명과 미래는 전적으로 주체사상을 어떻게 고수하고 혁명 실천에 구현해나가는가 하는데 달려있다"고 말하면서,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여 반드시 이긴다는 필승의 신념, 억천만번 죽더라도 우리 식 사회주의와 운명을 끝까지 같이 하겠다는 결사의 각오,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싸우는 불굴의 투지, 이것이 <고난의 행군>을 힘차게 떠밀어온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사상전이란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기 위한 사상전인데,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는 반제 자주의 사상전이며, 대내적으로는 인민들 속에서 벌이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사상전을 뜻한다. 북(조선)은 "제국주의자들과 누가 누구를 하는 총포성 없는 전쟁, 신념과 의지의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북(조선)의 정신력 제일주의가 오늘의 난관을 극복하는데 과연 얼마나 힘을 발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고, 또 그 문제에 관한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 있으므로, 여기서는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하는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는 혁명 정신이 어떠한 담론 체계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한다.

(4) 군사 중시 사상과 혁명적 군인 정신

북(조선)의 사상전을 이끌고 있는 혁명 정신의 담론 체계는 군사 중시 사상과 붉은 기 사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군사중시 사상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최근 김정일 비서의 현지 지도가 협동농장이나 연합기업소 같은 생산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주로 군사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현시기 북(조선)의 국가 체계가 군사 중시 사상으로 지도·관리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현상 때문에 외부에서는 김정일 체제가 군부 세력이 장악한 체제라고 추측한다든지, 군부는 '강경파'이기 때문에 이른바 '개혁·개방 정책'을 반대할 것이고 따라서 당과 정무원의 '온건파'인 기술관료(technocrats)들과 갈등하고 있으므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추측을 낳고 있다.

그런데 이런 추측과는 달리 북(조선)은 김정일 비서의 군사 현장에 대한 빈번한 현지 지도가 "단순히 군대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김정일 비서가 군부대들을 현지 지도하는 것은 김일성 주석이 "해방 직후와 전후에 강선의 로동 계급을 찾으시여 그들을 불러일으켜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신 것처럼" 오늘 김정일 비서는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어려운 때일수록 인민 군대를 믿고 그에 의거하여 난국을 타개하고 조선혁명의 전환적 국면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제2차 고난의 행군 시기에 로동 현장, 생산 현장에 대한 현지 지도를 주로 하였다고 한다면, 김정일 비서는 제3차 고난의 행군 시기에 군사 현장에 대한 현지 지도를 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군대에 의거하여 난국을 타개하려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북(조선)의 주장에 의하면, 그것은 온 사회가 군대를 본받도록 요구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군사중시 사상은 "군대를 내세우고 모든 혁명 대오를 군대처럼 전투력있고 견실한 대오로 만들려는 사상"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군대에서 '혁명적 군인 정신'을 본받아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자는 논리는 "모두다 인민 군대가 창조한 사상과 도덕, 문화를 적극 따라배우자"는 구호로 집약된다. 북(조선)에서는 온 사회가 "인민 군대가 창조한 혁명적 군인 정신"을 본받아 현재의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체 인민들이 혁명적 군인 정신으로 부닥치는 난관을 뚫고 사회주의 건설을 다그치도록"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요구가 과연 어떻게 인민들 속에 수용되고 이행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연구 과제로 남는다.

그렇다면 혁명적 군인 정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북(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혁명적 군인 정신은 본질에 있어서 당이 맡겨준 전투적 과업을 어김없이 수행하는 절대성, 무조건성의 정신, 아무리 어려운 과업도 자체의 힘으로 해내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서는 자기 한 몸을 서슴없이 바쳐 싸우는 자기 희생 정신, 영웅적 투쟁 정신"이라고 하며, "이 정신은 우리 혁명의 운명, 사회주의의 운명을 판가리하는 <고난의 행군>을 다그치고 있는 때에 높이 발휘된 것으로 하여 전체 인민을 새로운 위훈과 영웅적 투쟁에로 고무 추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혁명적 군인 정신에 관한 담론은 1996년 6월 10일 김정일 비서가 제시한 것으로서, 혁명적 군인 정신을 따라 배우는 것은 전략적 방침이라고 한다. 외부에서는 북(조선)의 군사 중시 사상을 군사적 통치방식, 전시 체제적 통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담론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북(조선)에서는 이 담론을 상명하복(上命下復)체계, 엄격한 통제를 강요하는 철권 통치 등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군사 중시 사상과 혁명적 군인 정신에 관한 담론 체계는 북(조선)의 독특한 군사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북(조선)의 군사관은 자기의 군대를 "가장 견결한 공산주의적 혁명 정신의 창조자"로, "사회주의 새 문화의 창조자"로 보는 관점이다. 저들은 "우리 인민이 력사적으로 발휘하여온 불굴의 혁명 정신도 군대에서 나온 것이며 우리 인민의 고상한 도덕적 풍모도 군대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며 우리의 혁명적인 문화도 군대에서 흘러들어온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군대야말로 조선 혁명의 고귀한 사상 정신적 재보의 창조자, 선도자이고 사회주의 새 문화의 무진장한 저수지"라고 말한다. 다른 한 편으로 북(조선)의 군사관은 군대를 당·국가·사회와 연결되어 있는 통일체의 한 부분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동신문』은 이렇게 말한다. "원래 혁명 군대는 특수한 존재가 아니라 당과 인민, 사회주의 국가와 하나로 련결되여 있다. 강력한 군대가 없이는 인민도 사회주의 국가도 당도 있을 수 없으며 인민과 당, 국가가 없으면 혁명 군대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군대는 곧 인민이며 국가이며 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군사 중시 사상은 "결국에 있어서 인민 중시 사상이고 당과 사회주의 국가의 옹위 사상"이며, "당과 군대, 인민의 혼연일체의 철학"이라고 한다.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데서 당과 군대, 인민은 3대 력량이고 3대 기둥"인데, "당과 군대, 인민의 3대 단결을 튼튼히 다지는 데서 군대는 특별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군대는 단결의 주춧돌이고 수호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군사 중시 사상은 언뜻 듣기에 전쟁 준비를 촉구하는 무력 숭상론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인상을 받게 되는데, 북(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이 사상은 군사 만능주의나 무력 숭상론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군사 중시 사상은 "군대를 사회주의의 생명선으로 틀어쥐고 나갈 데 대한 혁명 철학"이요, "온 사회가 혁명적 군인 정신을 적극 따라배우고 그 요구대로 살며 싸워나가도록 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에서 끊임없는 앙양이 일어나게 하는 전투적 기치"라는 것이다.

(5) '붉은 기 사상'이 말하고 있는 것

북(조선)이 말하고 있는 붉은 기 사상이 외부의 관심을 모으게 된 계기는 『로동신문』 1996년 1월 1일자에 발표된 공동 사설에서 붉은 기 사상을 강조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황장엽의 망명 과정에서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는 내용이 북(조선)언론에 나오자, 외부의 관측통들이 북(조선)당국이 그의 망명을 '비겁한 배신자의 도주'라고 보고 있다고 해석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붉은 기의 정치적 상징이 제3차 <고난의 행군>을 진행하고 있는 이 시기에 강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조선)에서 붉은 기에 관련한 담론은 '3대 혁명 붉은 기 쟁취운동'에서도 강조된 바있으며, 이미 1988년도에 있었던 김일성 주석의 담화 이후 여러 차례 발견된다. 김일성 주석은 혁명적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서 '적기가'의 가사 후렴의 의미를 말한 바있다. 그렇지만 붉은 기 사상이 북(조선) 사회주의를 지키려는 당의 의지의 표현으로 강조되기 시작한 계기는 조선로동당 창건 50주년이었던 1995년 10월 김정일 비서가 "우리는 비겁한 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 기를 지키리라는 <적기가>의 가사와 같이 당을 따라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야 합니다"고 말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북(조선)에서 강조하고 있는 '붉은 기'라는 정치적 상징은 역사적 성격을 가진 담론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 붉은 기라는 상징의 역사적 근원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알려진 항일 무장 투쟁 세력이 불렀다는 '혁명가요 적기가'다. 이 '적기가'에 나타나고 있는 정신적 분위기는 비장한 각오와 결전의 의지로 요약될 수 있다. 북(조선)은 '붉은 기'라는 정치적 상징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정신적 분위기를 오늘에 되살리고 있다. "항일 혁명 투사들이 <적기가>와 함께 준엄한 혁명의 길을 헤쳐온 것처럼 우리 인민들은 90년대의 <적기가>인 <높이 들자 붉은 기>를 부르며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기 위하여 과감히 전진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북(조선)은 붉은 기라는 정치적 상징을 내세워 항일 무장 투쟁 시대와 현 시기를 동일한 의미 체계로 연결하고 있다. 항일 무장 투쟁은 원초적 역사이고, 그 역사를 오늘 또다시 추체험(追體驗)하고 있다고 보는 재연(reenactment)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일성 주석은 회고록에서 "그러니 지금도 고난의 행군은 계속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 "지난 날에는 수 십만의 일본군이 우리를 포위하고 추격하였지만 오늘은 그와는 대비도 할 수 없이 막강하고 포악한 제국주의 세력이 우리 나라를 압살하려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붉은 기 사상은 "자력갱생의 사상"이요, "집단주의 사상, 단결의 사상"이라고 한다. 북(조선)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이라는 것이 우리의 붉은 기에 새겨진 철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의 노예로 되지 않기 위하여 붉은 기를 더욱 높히 추켜들고 우리 식 사회주의를 굳건히 지켜나가야"한다는 것이다.

북(조선)은 "붉은 기 사상은 우리 인민이 혁명의 개척기부터 높이 들고 투쟁해온 전통적인 혁명 사상"이며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때려부시는 두 차례의 준엄한 전쟁에서도 붉은 기 사상으로 승리하였고 어렵고 복잡한 두 단계의 사회 혁명도 붉은 기 사상으로 수행하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의 맥락은 김일성 주석의 담화에서 말한 붉은 기의 담론과 지금 북(조선)이 강조하는 붉은 기 사상이 공유하고 있지만, 오늘에 와서는 거기에 더하여 새로운 강조점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기에는 붉은 기가 사회주의를 수호하려는 신념의 상징으로 해석되어 왔는데, 지금은 거기에 더하여 "우리의 붉은 기 사상은 본질에 있어서 혁명의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이며 령도자와 생사 운명을 끝까지 같이 하려는 수령 결사 옹위 정신"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포함하고 있다. 북(조선)에서 조선로동당의 당기를 붉은 기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 그 붉은 기에는 김일성 주석의 "한 생이 어려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붉은 기는 당과 수령을 옹위하는 북(조선)의 전통적인 정치 이념의 상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붉은 기 사상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강조되는 담론 체계이기 때문에 북(조선)은 "올해의 총진군을 다그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온 사회를 우리 당의 붉은 기 사상으로 일색화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붉은 기 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는 사업은 사회주의에 대한 필승의 신념과 수령 결사 옹위 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기 위한 일대 사상전이며 패배주의, 비관주의, 개인 리기주의를 비롯한 온갖 불건전한 사상 요소를 불사르고 온 나라에 혁명적 열정과 불굴의 기상이 차넘치게 하기 위한 혁명적 공세"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당중앙위원회 비서 최태복은 1997년 4월 10일에 열렸던 전국 주체사상 토론회에서 보고를 통하여 "오늘 주체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나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온 사회를 붉은 기 사상으로 일색화하여 전체 인민을 사회주의에 대한 필승의 신념과 수령 결사옹위 정신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사회주의 강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6) 자주적 개방 정책과 자립적 민족 경제 노선

개방 시대, 정보화 시대의 요란한 구호들이 무색하게 자기 모습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는 나라를 말하자면, 아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손꼽힐 것이다. 국토가 작고 인구도 많지 않은 사회주의 나라, 동아시아의 끝에 자리잡은 이 나라를 가리켜 서방 언론들은 한결같이 '은둔국'이니 '폐쇄국'이니 하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북(조선)이 그러한 평가를 받게 된 근본 원인은 따지고보면 반세기가 넘게 냉전·분단 체제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몇몇 나라들은 한결같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 대해서 자국의 내부 형편이 노출되는 것을 극력 꺼리고 있는데, 북(조선)은 냉전·분단 체제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그 정도가 더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지구 위의 어느 나라나 국가적 차원에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기밀 사항'이 있는 법이지만, 북(조선)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국가 기밀의 범위에 들지 않는 일반적인 내부 사정까지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공개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서방 세계에서 말하는 국가 기밀을 지킨다는 차원과는 다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와의 단절·격폐는 서방 세계를 단순한 외부 세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치하고 있으며 자신을 위해하려고 하는 적대 세력이라고 파악하는 북(조선)의 전통적인 정세관, 안보관을 성립하게 하였다. 북(조선)의 개방 정책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주제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 북(조선)은 통상·교역·투자의 자유화를 자국에 대한 '시장 개방'이라고 보려는 외부의 견해에 대해서는 거부·배척하고 있으며, 통상·교역·투자를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를 보완하는 경제 활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무역 제일주의 방침'이라는 것은 북(조선)의 '혁명적 경제 전략'인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완하는 기능으로 자리가 매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이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보완 기능을 전례없이 더 강조하고 강화하려는 까닭은 사회주의 국제 시장의 붕괴에서 온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외부의 시각에서는 이러한 보완 기능 강화 의도를 과대 평가하면서 북(조선)이 마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 경제 노선을 포기하고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로 변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관측하는 것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북(조선)은 이미 1970년대 초에 대외 경제관계를 사회주의권에 국한시켰던 종래의 범위에서 벗어나 서구 자본주의권으로 확대하면서 기술·설비를 도입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1984년 북(조선)이 합영법을 제정한 것은 대외 경제 부문에서 종전처럼 무역 중심 구조의 확대 뿐 아니라 자본·기술 도입에도 힘을 기울이면서 개방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이러한 개방화 추세는 1990년에 들어오면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북(조선)의 정무원은 1992년 2월 무역을 발전시키고, 인민 경제의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수출 대상을 최대한으로 찾아내어 시장을 개척하고 대외 수출을 늘리기 위하여 '새로운 무역 체계'를 채택하였는데, 이것은 대외 무역을 정무원 산하의 대외 무역 담당 부서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담당한 위원회, 부들과 도 행정경제위원회들이 무역 관리 부서와 무역 회사를 두고 각 부문별로, 각 지방별로 생산한 수출품들을 직접 내다 팔고 필요한 제품들을 직접 수입하게 하는 새로운 체계와 방법으로 중앙 집중화되어 있던 대외 무역을 지방화하고 이원화되어 있던 생산-무역의 관계를 통합화한 특징을 보인다. 같은 해 12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4차회의에서는 정무원 산하의 무역부와 대외 경제사업부를 대외 경제위원회로 통폐합하여 단일화되었는데, 이 위원회에는 조선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와 조선 국제무역촉진위원회가 소속되어 있다.

여기서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와 무역 제일주의 방침 사이의 관계는 전략-방침의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지만, 북(조선)은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 경제의 전략에 의거하여 무역 제일주의 방침을 추진할 것이고, 이에 따라 서방 세계, 특히 미국과의 경제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힘쓸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본다면, 북(조선)의 개방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은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조치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둘째로, 개방 정책과 조·미 관계 개선 문제다. 북(조선)이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대미 관계 개선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체제 위기에 몰려가고 있는 북(조선)이 미국으로부터 체제 유지를 보장 받으려는 궁여지책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으나, 북(조선)의 대미 관계 개선 정책을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이라는 평가하는 견해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방이란 일반적으로 말해서 여행·통신의 자유화, 통상·교역·투자의 자유화를 뜻한다. 위에서 밝힌대로 북(조선)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한 통상·교역·투자를 반대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서방측과의 통상·교역·투자를 요구하면서 미국의 대북 경제 봉쇄 정책을 비난하고 있다. 북(조선)의 개방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통상·교역·투자의 자유화라는 경제 교류는 물론이지만 더 선호하는 것은 여행·통신의 자유화라는 인적 교류와 정보 교류다. 미국이 대북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면 미국이 요구하는대로 경제 교류가 인적 교류, 정보 교류의 자유화로 전화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북(조선)의 체제는 그러한 전화를 적극적으로 통제하려 할 것이라는 데 미국의 고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의 '개방론'은 문을 열되 모기와 쉬파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기장을 치는 개방 정책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자면, 미국이 대북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경제 교류가 북(조선)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 경제를 자본주의적인 성격으로 변질시키지 못하고 되레 강화시켜줄 가능성이 높고, 경제 교류를 통해 여행·통신의 자유화를 실현할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내다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조건에서 만일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섣불리 해제한다면,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유력한 압박 수단을 잃어버리고 마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개방 정책과 남북 관계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개방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다. 개방은 남북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간의 교류·협력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교류·협력 단계에서는 불가피하게 서로 상이한 체제의 상호 침투가 이루어진다. 북(조선)과 남(한국)은 모두 이러한 상호 침투를 전제로 한 개방 정책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만일 남(한국)이 자신은 북(조선)에 대해서 개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개방할 생각이 실제로는 전혀 없으면서, 북(조선)을 폐쇄 국가라고 비난하고 상대측에게 개방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정치 공세의 구호가 될 뿐이다.

넷째로, 북(조선)의 개방 정책은 한(조선)반도에 평화 공존 체제를 수립하는 문제와 분리해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평화 공존 체제가 수립되면서 남북이 상호 교류·협력의 길로 나아가지 않고, 지금처럼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가 지속되는 한 북(조선)에게 개방 정책을 시행하라고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 공존 체제의 수립은 상대방에 대해 일방적인 평화 공세를 펼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평화 회담을 통하여 상호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상호 군비 축소를 이행해야 가능하다. 상호 합의와 상호 실천을 통해 평화 체제를 수립하지 않은 '준전시 상황'에서 나오는 개방 요구는 상대방을 자극할 수 있는 상투적인 정치 공세가 될 뿐이다.

지금까지 개방 문제와 관련하여 표명된 북(조선)의 논리를 정리해보면, 그들은 대외 관계에 관한 전략적 사고를 개방-폐쇄라는 형식 논리에서 보지 않고, 예속-자주라는 정치·사상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의 개방 조치는 곧 예속을 불러오기 때문에 약소국이 자주성을 옹호·고수하려면 서방 세계에서 말하고 있는 개방 정책을 거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북(조선)의 논리다. 저들에게 있어서 미국에 대한 전면 개방은 곧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세력에게 예속되는 것을 뜻한다.

개방이건 폐쇄건 간에 대외 정책을 자주적으로 수행하느냐 아니면 예속적 태도로 수행하느냐 하는 본질 문제를 묻어버리고, 오로지 개방-폐쇄라는 형식 문제만을 가지고 논한다면 논리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개방 국가라고 해서 모두 예속적인 것도 아니며, 자주적인 개방국가가 있을 수 있고, 예속적인 개방 국가가 있을 수 있다. 강대국과는 달리, 약소국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개방하면 대외 자주성을 잃을 수 있다. 만일 섣불리 개방하여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에게 농락당하는 예속적인 개방 국가로 전락하느니 차라리 자주적인 폐쇄 국가로 남겠다는 것이 북(조선)의 선택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문제의 초점은 개방이냐 폐쇄냐 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약소국이 어떠한 대외 전략을 가지고 개방 정책, 또는 폐쇄 정책을 수행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7) 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전략과 방침

지난 시기에 북(조선)의 대외 무역은 사회주의 국제 시장을 주요 기능으로 하고 자본주의 시장을 보조 기능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냉전 체제의 붕괴와 함께 사회주의 국제 시장이 무너지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북(조선)이 사회주의 국제 시장에서 수입해왔던 품목들은 북(조선)에서는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원료·연료, 그리고 자체로 생산하지 못하는 설비·부품이나 자체 생산 보다도 수입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설비·부품들이었다. 이러한 수입 품목들은, 그 수입량은 비록 적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경제 발전에 심각한 장애를 조성할 뿐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산업 전반이 마비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필수불가결한 핵심 품목들이었다. 사회주의 국제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북(조선)의 수출도 수입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국제 시장이 무너진 뒤로 타격을 받아 수출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유엔 기구의 통계 자료를 보면, 북(조선)의 수출액은 1990년에 18억5천7백만 달러였는데, 1994년에는 8억4천만 달러로 줄었고, 수입액은 29억3천만 달러에서 12억7천만 달러로 줄었다.

북(조선)은 사회주의 국제 시장이 무너지게 되자 대외 경제 활동의 추진 방향을 재빨리 서방 자본주의 나라들로 옮기려 하였지만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 정책에 가로막히고, 자체의 경험 부족, 기술·자본 부족에 발목이 잡히게 되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사그러들 줄 모르고 여전히 첨예한 상태로 지속됨으로써 외부에서 수입한 원료·연료·설비·부품들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인민 경제보다도 먼저 군사 경제에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인민 경제는 난국에 처하게 되었다. 군사적 긴장과 경제 봉쇄는 오늘 북(조선)에게 경제난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조선을 정치군사적 압력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제국주의자들은 경제적 봉쇄로 우리를 압살하기 위해 더욱 악을 쓰고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난의 원인을 분석하자면, 자체의 경험 부족, 기술·자본 부족도 지적될 수 있겠지만, 북(조선)은 경제 봉쇄와 군사적 부담을 주원인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북(조선)의 견해는 경제난의 원인을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 경제가 내부 모순 때문에 파탄에 이르렀다고 규정하는 '외부의 시각'과는 정면에서 배치된다. 경제난의 원인에 관련하여 '외부의 시각'은 내인론이며, 북(조선)의 시각은 외인론이다.

북(조선)은 지금 경제 봉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길을 어디서 찾고 있을까? 북(조선)의 논리를 따르면, 두 가지 해결 방향이 제시된다. 첫번째 해결 방향은 자력갱생의 경제 건설 노선을 지속적으로 견지하는 것이다. 북(조선)은 자력갱생의 경제건설노선으로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조치에 맞설 수 있다고 보면서 "우리는 적들의 압살 책동에 자력갱생의 전략으로 맞서야"함을 강조하고 "오늘의 <고난의 행군>에서의 승리의 열쇠는 자력갱생에 있다"고 못박는다. 올해 조선로동당이 추구하고 있는 구체적인 방침들을 보면, 국토 건설, 중소형 발전소 건설, 전기 절약, 풀판 조성과 염소 기르기, 버섯 기르기 등이라고 한다.

두번째 해결 방안은 정치적 해법이다. 북(조선)은 경제 문제의 본질은 정치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치주의적 관점에 서있는 것이다. 경제난의 정치적 해법은 근로자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내부 예비와 잠재력을 동원하는 것이다. 1975년 10월에 '70일 전투'를 지도했던 김정일 비서는 당 일군들을 생산 현장으로 파견하면서 "나나 동무들에게나 설비와 자재는 없다, 우리에게는 주체사상과 조직적 수완 밖에 가진 것이 없다, 이런 형편에서 부족되는 설비와 자재를 어디서 얻겠는가, 예비는 일군들의 머리 속에, 근로자들의 심장 속에 있다, 그러므로 대사상전을 벌려 내부 예비를 최대한으로 동원해야 한다"고 말하고, 생산 현장에 파견되는 당 일군들에게 근로자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내용이 담긴 영화 한 편을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고 하는 일화가 최근 『로동신문』에 기사로 게재되었다.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과업을 수행하는 길은 "우리의 힘,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동원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은 22년 전 '70일 전투' 시기나 오늘의 '고난의 행군' 시기나 마찬가지로 제시되는 북(조선)의 특이한 해결 방안이다. 여기서는 "당 조직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맞게 현실적이고 절실한 문제들을 가지고 대중 속에 들어가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정치 사업을 진공적으로 벌려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른바 혁명적 군중 노선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이 겪고 있는 경제난을 타개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사회주의 경제 건설의 사활적 문제이며, 따라서 북(조선)의 국가 운명에 결부되어 있다. 『로동신문』은 "오늘 우리의 경제 건설 투쟁이야말로 당과 혁명의 운명, 조국의 운명을 위해 벌리는 결사의 투쟁"이며, "전당, 전군, 전민이 경제 문제에 낯을 돌려야" 하며, "경제 문제를 떠나서 혁명의 승리적 전진도 사회주의 조국의 부강 번영도 생각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상황 인식 속에 있는 북(조선)이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 건설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이룩하는 것은 현 시기 우리 당이 내세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며, "우리 당일군들에게 있어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은 경제 문제를 풀고 실적을 올리는 데서 나타나야 한다"고 지적할만큼 그것은 절실한 문제다. 그리하여 올해 1월 24일부터 27일까지 당중앙위원회와 도, 시, 군당위원회, 정무원 위원회, 부, 중앙기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을 비롯한 각 부문의 당일군들, 인민무력부, 사회안전기관 정치일군들 1만여명이 참가한 '전당 당일군대회'를 평양에서 열었고, 그 대회에서 김정일 비서가 발표한 서한이 '올해를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서 혁명적 전환의 해로 되게 하자'였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올해 경제난을 타개하는 주목표는 무엇보다도 인민 생활의 향상이다. "우리는 올해에 당의 의도대로 먹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풀고 인민 생활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켜야 하며 그러자면 농업과 경공업을 추켜세우고 선행 부문을 비롯한 인민 경제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혁명적 앙양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북(조선)은 1993년 말부터 농업 제일주의, 경공업 제일주의, 무역 제일주의라는 3대 방침을 내걸고 인민 경제의 발전에 힘쓰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특히 농업과 경공업 부문에 대한 강조가 돋보이고 있다. 올해 공동 사설에서는 "우리는 올해에도 당의 혁명적 경제 전략의 요구대로 농업 제일주의, 경공업 제일주의, 무역 제일주의 방침을 계속 철저히 관철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 3대 방침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나온 것은 아니며, 이미 1980년대부터 강조되어 오던 것을 당의 방침으로 정식화한 것이다. 이미 김일성 주석은 1982년 4월 14일 시정 연설에서 "쌀은 곧 공산주의"라는 구호를 내놓았고, 농사 제일주의 방침을 당의 방침으로 확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 김일성 주석은 이미 1983년에 북(조선)에서 "제일 뒤떨어진 부문이 경공업 부문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지적했고, 북(조선)에서는 경공업을 발전시키는 과제를 이미 1980년대부터 당의 방침으로 강조하면서 '경공업 혁명'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 바있다.

이와 함께 기왕에 역점을 두어오고 있는 무역 제일주의 방침도 올해에 더욱 강조되었다. 북(조선)이 올해 1월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을 발표하여 1월 28일을 무역절로 제정한 사실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무역 제일주의 방침도 이미 1988년도부터 '수출 제일주의'라는 개념으로 표현된 경험을 발전시켜 당의 방침으로 공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상반기 『로동신문』을 살펴보면, 이 3대 방침 가운데서도 농업 제일주의 방침에 대해 더 강조하고 실천을 촉구하는 내용이 돋보인다. "농업 전선은 우리 식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해나가는 가장 중요한 전선이다. 오늘날에 와서 농업 생산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이룩하여 쌀로써 우리 식 사회주의를 고수해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업은 없다"거나 "농업 전선은 올해 우리 당이 최대의 힘을 넣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전선"이라고 한다. 이것은 두 차례의 수해와 연료·원료·동력 부족 때문에 생겨난 식량난을 올해에는 해결해야 한다는 의도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북(조선)에서는 수해 지역 복구 사업에 힘을 기울여 1996년 가을과 올해 봄에 각각 '국토 관리 총동원 기간'을 정하고 '전군중적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국토 관리 운동은 산림 조성 사업, 강하천 정리 사업(강바닥 파기, 물줄기 바로 잡기, 제방 쌓기, 돌 입히기, 갯버들 심기), 도로 관리 사업, 도시 경영 사업 등으로 추진되었다고 한다. 『로동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국토 관리 사업은 후대들이 "가장 큰 감동과 감탄을 표시할"만한 성과를 낳았다고 높이 평가되었다. 수해 피해가 가장 심했던 황해남도의 경우에는 올해 6백60만t의 거름을 생산하고 10만여 정보의 논에 흙깔이를 끝내어 농사준비를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농촌 경리 부문 일군들과 농업 근로자들은 "그 어느 해보다도 주인다운 립장에서 주체농법의 요구를 철저히 관철해나가고 있으며 높은 혁명적 열의와 일본새로 농사 차비를 잘 해나가고 있다"고 하면서 농업 부문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올해 농사는 먹어 놓은 농사다. 요즘 어디가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올해에 풍년은 틀림이 없다는 말"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만풍년"이나 "전례 없는 대풍" 같은 기대와 희망의 표현들은 모내기를 끝낸 뒤 1997년 6월 6일자로 발표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전신명령 제3호'에도 여러 차례 되풀이 되고 있다. "올해 농사에서 기어이 대풍을 마련하여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려는 것은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의지"라고 한다.

(8) 맺는 말

현재 조성된 난국의 근본 원인에 대한 북(조선)의 시각은 기본적으로 외인론과 일시적 난국론이라고 볼 수 있다. 제국주의의 포위 공세 때문에 난국에 처해 있지만, 이러한 난국은 일시적인 것이며 자체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처럼 외인론을 주장하는 북(조선)은 난국 타개의 주된 방향을 대외 전략의 강화라는 외부 문제가 아니라 주체 역량의 강화라는 내부 문제에 맞추고 있다. 주체 역량의 강화라는 난국 해법은 군사 중시 사상과 혁명적 군인 정신, 붉은 기 사상을 동원하면서 인민들 속에서 사상전을 벌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통적인 방도다.

북(조선)이 오늘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부적 해결 방도 뿐아니라 마땅히 대외적 해결 방도도 찾아야 할 터인데, 『로동신문』에는 대외 전략에 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로동신문』이 당조직에 대한 선전을 주요 임무로 하고 있는 당중앙위원회 기관지이기 때문에 그 신문에 나타나 있는 난국 해법은 대외적 해결 방도를 강조하는 선전 내용 보다는 내부적 해결 방도를 강조하는 선전 내용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또한 주체 역량이 강화되지 아니한 조건에서 대외 전략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선 주체 역량의 강화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거기에 더하여 앞으로 대미·대일 수교가 성사되면서 강대국인 미국과 일본과의 대외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될 것을 내다보고 지금부터 내부의 정치·사상적 단결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북(조선)의 대외 전략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다. 지금 북(조선)의 대외 전략은 개방 정책과 경제 봉쇄 조치라는 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경제 봉쇄 조치를 풀면 개방 정책이 활력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경제 조치가 해제된 조건에서 시행될 개방 정책도 전통적인 자주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행될 것이므로 자주 노선의 규정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범위 안에서 시행되는 이른바 '자주적 개방 정책'이 될 것이다.

경제 봉쇄 조치가 해제되면서 시행될 이러한 자주적 개방 정책은 북(조선)의 대외 관계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가능하리라는 것은 분명한데, 그 변화란 대미·대일 수교의 성사다. 따라서 북(조선)의 자주적 개방 정책은 대미·대일 수교를 성사시키고 경제 봉쇄 조치를 해제하려는 대외 전략의 궤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대미·대일 수교가 성사되면 지금까지 조금씩 풀려나가고 있는 경제 봉쇄 조치가 완전히 무력화되는 단계로 접어들게 되며, 그로써 북(조선)의 자주적 개방 정책은 일단 완결점에 이르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 봉쇄 조치가 완전히 해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북(조선)의 경제난을 과연 얼만큼 해결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첫번째 견해는 북(조선)의 경제난이 원료·연료·동력이라는 3대 원천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과도한 군비 부담 때문에 생긴 현상이기 때문에 경제 봉쇄 조치가 해제되면 이 3대 원천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고,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제가 수립되면 군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으므로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낙관론이다. 두번째 견해는 북(조선)의 경제난은 경제 봉쇄나 과도한 군비 부담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 경제에 오랫동안 체내화되어온 구조적인 모순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비록 경제 봉쇄 조치가 해제되고 군비 부담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경제난은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비관론이다. 낙관론은 북(조선)의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 경제 노선이 그대로 유지·강화되리라고 전망하고 있고, 비관론은 그 노선의 자발적 폐기, 또는 불가피한 파산을 전망하고 있다. 낙관론자들은 북(조선)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나름대로 경제 건설의 경험과 일정한 경제·기술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평화 체제 수립과 조·미 수교 및 조·일 수교라는 피할 수 없는 '탈냉전화의 일정'에 따라서 북(조선)에게 유리하게 전변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비관론자들은 '탈냉전화의 일정'이 결국 북(조선) 체제의 긴장 상태를 결정적으로 이완시키고 따라서 심각한 체제 동요의 위기를 몰고올 것이기 때문에 경제난을 극복하기는 어렵고 되레 소련·동구형의 체제 변질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탈냉전의 세계화는 한(조선)반도에도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그 선택의 갈림길이 북(조선)의 체제 강화로 이어질 것이냐 아니면 체제 변질로 이어질 것이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충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체제 강화냐 체제 변질이냐 하는 문제를 결정짓는 데는 외부 규정력이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는 변수로 작용할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지만, 결국 결정적인 상수는 북(조선)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의 체제는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외압과 봉쇄에 시달리면서 자체 대응력을 강화해온 특이한 체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미 1990년대에 들어와서 핵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미국의 전면적인 압박 때문에 발생했던 정치·군사적 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그리고 경제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오늘까지 동요·이탈을 보이지 않고 대처하고 있는 북(조선)의 모습은 바로 이러한 특이한 체질이 저들에게 내면화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1997년 8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