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론과 현 수준 동결론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주한미군 감축론의 궤적

1970년대에 시작된 주한미군 단계적 감축론의 역사는 세계 체제로 존재했던 냉전이 완화·해소되어간 과정과 일정하게 함수 관계에 놓여있다. 닉슨(Richard Nixon)이 1969년 7월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괌도에 들렸을 때 발표한 이른바 '닉슨 독트린'에는 해외 주둔 미 지상군의 단계적 철수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에 따라 1971년 3월 닉슨 정권은 주한미군 제7사단 2만여 명을 전격적으로 철수했다. 닉슨 정권의 주한미군 감군 조치는 북(조선)의 남(한국) 당포함 격침(1967년 1월 19일), 1·21사태(1968년 1월 21일), 푸에블로호 나포(1968년 1월 23일), 미군 정찰기 EC-121기 격추(1969년 4월 15일), KAL기 납북(1969년 12월 11일)이 일어나면서 한(조선)반도의 긴장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에 '전향적으로' 취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72년 2월 닉슨·주은래의 상하이 공동 성명에서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긴장 완화를 추구한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같은 해 5월 닉슨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이루어진 미·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른바 '데탕트 시대'가 막을 열었다.

그런데 1974년에 들어선 포드 정권은 닉슨 정권의 주한미군 감축 정책과는 어긋나게 미·소 협상을 계속 추구하면서도 주한미군 감축론에는 쐐기를 박았다. 미국이 패배한 베트남전이 1975년 4월에 끝나게 되자, 포드 정권은 안보 불안감에 떨고 있는 아시아의 우방 및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아시아를 순방했고 하와이에서 이른바 '태평양 독트린'을 발표하였는데, 거기에는 주한미군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었다.당시 미 국무장관 키신저(Henry Kissinger)도 1976년 7월 22일 씨애틀에서 한 연설에서 주한미군의 일방적인 감축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베트남전의 패배가 준 여파 때문에 미국에서는 해외 지역 분쟁에 대한 군사적 개입과 미군의 해외 주둔을 반대하는 여론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포드 정권은 이러한 여론과는 상관없이 주한미군 감축론을 동결시켰다.

다른 한편, 베트남전 패전 이후 해외 주둔군의 감축 여론에 편승했던 민주당 대통령후보 카터(Jimmy Cater)는 1975년 초 주한미군 감축을 자신의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카터의 주한미군 감축 계획은 4-5년 동안에 주한미군 지상군 병력 약 3만2천명을 철수시킨다는 것이었다. 카터는 자신이 집권하자 1977년 5월 '대통령령 제12호(Presidential Decision 12)'를 발표하여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실행하라고 지시하였다. 카터가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밀고나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윌리엄 베리(William E. Berry, Jr)의 분석을 들어보자.

① 남(한국)군의 무력이 증강되었기 때문에 주한미군이 없이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② 소련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이 바뀌었기 때문에 소련과 중국의 지원 없이 북(조선)이 단독적으로 남(한국)을 공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③ 남(한국)의 경제력이 독자적인 국방력을 뒷받침할 수 있을만큼 성장하였다는 사실.

④ 한(조선)반도에서 지역 분쟁이 일어날 경우에도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문제는 신축성있게 대처하려고 했다는 사실.

⑤ 미국의 군사비를 감축하려고 했다는 사실.

⑥ 인권 문제를 외교 정책의 지렛대로 삼았던 카터 정권은 박 정권의 인권 유린 행태 때문에 박 정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했다는 사실.

이처럼 1970년대 말 미국의 대외 전략 논의에서 주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던 주한미군 감축론은 1978년부터 미국 내 보수 강경 세력의 반대를 불러일으킨 것은 물론 남(한국)과 일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카터 정권은 이러한 안팎의 반대에 떠밀려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며, 1979년 7월 카터의 서울 방문을 통해 나온 한·미 공동 성명에서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 미국은 대한민국에 미국의 군사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우기 1979년 12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1981년 신(新)보수주의 물결을 탄 레이건 정권의 등장으로 결국 '데탕트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주한미군 감축론은 워싱턴 정가에서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그뒤로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미국에서는 또다시 주한미군 감축론이 고개를 들게 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는 남(한국)이 장차 1990년대에 가면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에서 북(조선)을 앞지르게 된다는 '낙관적 발전 전망'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심지어 미 군부의 야전 사령관마저도 이러한 발전 전망에 기초하여 주한미군 철수론에 기울어지고 있었다. 1989년 8월 주한미군사령관 루이스 메네트리(Louis Menetry)는 1990년대 중반에 가면 한(조선)반도의 상황은 주한미군이 없어도 군사적 평형 상태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며, 9월 18일에는 남(한국)군의 작전 통제권을 조건부로 반환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전망에 고무를 받아, 1988년 이후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주한미군의 주둔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감축론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주한미군 감축론은 곧 의회에서도 제기되었다. 1989년 6월 베넷 존스턴(J. Bennet Johnston)과 데일 범퍼스(Dale Bumpers)를 비롯한 미 상원의원 6명은 주한미군을 최소 규모의 '인계 철선(tripwire)'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하면서 1992년까지 1만명을 감축하는 철군안을 상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시기는 유럽에서 탈냉전의 분위기가 무르익게 되자 동아시아에서도 미국이 북(조선)과 접촉하고, 대북 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조·미 관계 개선의 조짐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1989년 7월 31일 미 상원은 상원 군사위원장 샘 넌(Sam Nunn)과 상원의원 존 워너(John Warner)가 7월 23일에 제기했던 주한미군 감축 5개년 계획안을 심의하고, 1990년 4월 1일 이전까지 주한미군 감축에 관한 5개년 계획을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주한미군 감축보고안'을 제출할 것을 미 행정부에 요구했으며, 11월 2일에는 상하 양원 합동위원회에서 이 감축보고 제출 요구안이 통과되었다. 세간에 '넌·워너 수정안'이라고 알려진 이 안의 핵심내용을 요약·정리하면, 주한미군 감축 5개년 계획안에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침략 억지를 위한 주도적 역할에서 보조적 역할로 재조정하는 방안, 주한미군의 부분적, 점진적 감축방안, 미군 주둔 경비에 대한 남(한국)의 부담금을 증액하는 방안, 주한미군과 남(한국) 주민 사이의 마찰을 줄일 수 있도록 병력 및 시설을 남(한국)에 재배치하는 방안, 특정 임무와 작전 통제권을 남(한국)에 반환하는 방안, 동북아 지역의 긴장 완화를 촉진하기 위한 신뢰 구축 방안, 남(한국)이 자신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증대시킬 수 있는 추가적인 조치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1990년 4월 1일 이전까지 한·미 양국의 협의 결과와 진전 상황에 관한 미 대통령의 첫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1990년에 들어와서 부시 정권은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비 통제(arms control) 문제를 검토하였으며, 한(조선)반도가 유럽형 신뢰 구축 조치를 적용하여 긴장 완화 및 군비 통제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지역'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 당시 부시 정권은 1993년까지 주한미군 병력 7천명을 감축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감축 계획은 또다시 미 의회와 남(한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실현되지 못했다.

1990년 2월 15일 서울에 열렸던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주한미군 비전투 병력 5-6천명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것, 주한미군 역할을 주도적 역할에서 보조적 역할로 바꾸는 것과 이에 따른 평시 작전 통제권 반환, 주한미군 유지비에 대한 남(한국) 부담금의 증액을 논의하고 이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보았다. 미국은 같은 해 4월 19일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아시아·태평양 연안에 대한 전략구조: 21세기 전망(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n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th Century)』에서 20세기가 끝나는 앞으로 10년 안에 수행하게 될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제시했다. 그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이렇다.

제1단계 감축 (1990-1992년) - 주한 유엔군사령부는 그대로 존치시킨다. 미국은 주한미군 경상비를 줄이고 남(한국)군으로 대체할 수 있는 주한미군 병력은 철수한다. 1993년까지 주한 미 공군 2천명과 지상군 비전투 요원 5천명을 포함, 7천명을 감축한다.

제2단계 감축 (1993-1995년) - 미국은 북(조선)의 위협을 검토(review)하고 정세 변화를 분석하여 2단계 감축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미 제2사단의 재편성을 고려하며, 추가철수는 남북 관계와 남(한국)군의 능력 향상을 고려한 뒤에 결정한다. 두 나라는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문제와 관련하여 평시 작전 통제권을 이 기간에 반환한다.

제3단계 감축 (1996-2000년) - 선행 감축 단계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남(한국)은 자국의 방위를 주도적으로 담당할 수 있게 된다. 주한미군은 한(조선)반도의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극소수만 남고 모두 철수하게 된다.

위와 같은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은 미국이 연방 정부 예산에서 막대한 재정 적자를 줄이려는 절박한 요구 때문에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탈냉전이라는 정세 변화에 부응하는 전략적인 조치였다.

이처럼 1990년 4월에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이 나오자 북(조선)은 5월 28일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 다섯 구를 미국에 넘겨줌으로써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 의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미국과 남(한국)에 대해서 한(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 논의를 잇달아 제안했다. 이로써 조·미 관계는 개선 가능성을 보이고 있었다. 만일 그 뒤로 한(조선)반도와 그 주변의 정세가 정치적 대결 상태와 군사적 긴장 상태를 차츰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동하였더라면, 이 감축안은 일정대로 수행될 수 있었을런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미국이 제2단계에서 주한미군 감축을 중단한 것이다. 1991년 11월 서울에서 열렸던 제23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ecurity Consultative Meeting)에서 미 국방장관 딕 체니(Dick Cheney)는 1990년의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에 따라 이미 제1단계 감축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인데도 감축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면서, 중단 사유는 북(조선)의 핵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곧 이어 1992년 1월 방한했던 부시(George Bush)는 "주둔의 필요성이 있는 한, 그리고 주둔이 환영받는 한" 주한미군을 유지할 것임을 밝혔고, 같은 해 7월에 나온 미 국방부의 「1992년도 아시아·태평양 전략구조(Asia-Pacific Strategic Framework 1992)」는 강력한 전진배치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1993년 7월 서울에 간 클린턴(Bill Clinton)은 "한국민이 원하는 한, 그리고 주둔의 필요성이 있는 한"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기간에 미국은 북(조선)의 핵문제를 내세우면서 한(조선)반도의 위기를 강조했고, 따라서 더 이상 주한미군을 감축해서는 안되겠다고 판단했을 뿐아니라, 주한미군과 남(한국)군의 대북 군사 전략을 더 강화하는 '냉전 회귀'의 방향으로 되돌아섰다. 이른바 '신축 억지 전략(Flexible Deterrence Option)'이 채택되고, 한(조선)반도와 중동에서 동시에 지역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이중 승리 전략(Win-win Strategy)'으로 대응하겠다는 '상향식 검토 보고서(Report on the Bottom-up Review)'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서는 주한미군 현수준 동결론과 한·미 연합군의 무력 증강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시기에 미국은 한·미 연합군의 기존 방어 전략을 폐기하고 새로운 공격 전략을 채택했다. 만일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미 연합군은 북(조선)군의 서울 진격 속도를 서울 북방에서 저지하여 늦추고 미국의 증강 병력이 도착될 때까지 시간을 벌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하여 2주 안에 점령한다는 5단계 공격 계획을 내용으로 하는 한·미 연합군의 '작전 계획 5027(Operation Plan 5027)'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1993년과 1994년에 최고조에 이르렀던 조·미 '핵대결'은 이처럼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백지로 만들고 한·미 연합군의 대북 공격 전략을 채택하는 배경이 되었다. 특기할만한 점은 미국이 같은 시기에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남(한국)에 더 많이 떠넘기기 시작했고, 북(조선)의 핵문제와 더불어 중국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 문제도 부각시켰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련의 중대한 '안보 조치'들을 취한 바있는데, 이를테면 1994년 10월 4일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에 대한 중국의 협력을 약속하는 미·중 공동 성명 발표, 1994년 10월 21일 조·미 제네바 합의문 채택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추구하고 있는 전략적 목표가 결국 대량 파괴 무기 반확산 문제에 집중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도에서 보자면,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결국 탈냉전기에 들어와서도 주한미군의 감축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되레 전력 증강을 추구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미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실(Office of 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이 작성하여 국방장관 페리(William J. Perry)의 이름으로 1995년 2월에 발표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전략 (United States Security Strategy for the East Asia-Pacific Region)」은 탈냉전기의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앞으로 20년동안 동결해 두겠다는 일종의 '대외 선언'이었다. 당시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조셉 나이(Joseph Nye)가 주도하여 작성했다고 해서 '나이 보고서'로 세상에 알려진 이 문건의 머릿글에서 페리는 "1990년과 1992년에 나온 국방부의 전략 보고서들은 90년대 말까지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탈냉전적인 병력 감축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보았으나, 이 보고서에서는 반대로 이 지역에서 안정적인 전진 배치 역량을 현재 10만명 수준에서 가까운 장래에도 계속 유지할 것을 재확인한다"고 말한 바있다. 여기서 그가 말한 "가까운 장래(for the forseeable future)"란 1995년을 기점으로 해서 향후 약 20년의 기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조셉 나이는 이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가진 1995년 2월 28일의 기자 회견에서 미국은 주한미군 병력을 감축하려던 종래의 정책을 포기했으며, 주한미군의 전력은 북(조선)의 핵위협 가능성에 대해서가 아니라 군사분계선을 향해 전진 배치된 방대한 북(조선)군 병력에 대해서 억지력의 쐐기를 박고 있다고 주장한 바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이 21세기에 태평양의 강국으로 남아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면서 끝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는 문서다. 클린턴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면, 이 보고서에서 천명된 앞으로 20년 동안의 주한미군 현수준 동결론도 그 20년 안에 정세가 변동하여 고정·불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바뀌면 앞으로 20년 주한미군 현수준 동결론도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바뀌자, 그 기간에 한(조선)반도의 안보 상황이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었는데도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한미군을 감축했던 사례는 위에서 말한 변동 가능성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변화하게 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변화 요인은 동아시아 지역 정치 지형의 변동과 미국 내 정치 지형의 변동이라는 두 개의 축에서 발생할 것이다. 이를테면 위에서 이미 살펴본대로 1970년대 '닉슨 독트린'과 '태평양 독트린'이 이러한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 정책과 현수준 동결 정책 사이를 오락가락했던 것을 상기할 수 있다.

탈냉전기에 나온 '나이 보고서'는 미국이 앞으로 20년동안 동아시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방침을 제시한다고 스스로 밝히고는 있지만, 그 20년동안 동아시아와 미국에서 현재와 같은 정치 지형이 고정·불변하지 않고 급격하게 변동할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탈냉전 질서가 초기의 정착기를 넘기고 내적으로 심화·공고화되면서 어떠한 변동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주의를 돌리지 못하는 논리적 한계를 안고 있다. 탈냉전기의 동아시아는 역내 정세가 전 세계에서 가장 급변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는 지금 잠재되어 있는 갈등 요인들이 변동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역내 긴장 구도가 이완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주한미군 현수준 동결론이 감축론으로 다시 바뀔 가능성도 그만큼 높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은 이러한 변화 전망을 내다보고 주한미군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런 정책도 없이 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2) 탈냉전기의 주한미군: 그 주둔의 논리와 명분

지난 냉전기에 대소 전진 기지의 무력으로 배치되었던 주한미군은 탈냉전기로 넘어와서도 변함없이 주둔하고 있을 뿐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탈냉전기의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미국의 공식 견해는 여전히 안정적인 주둔이다. 안정적 주둔은 비단 주한미군 뿐아니라, 주한미군과 연결되어 있는 주일미군, 그리고 미 태평양 사령부의 상비군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논리다. 이 문제에 대한 미 국방부의 공식 견해는 아래와 같다.

"아시아에 전진 배치된 우리의 무력, 주로 대한민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무력은 광범위한 지역의 안정을 보장했고, 동맹국에 대한 침략을 억지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역내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바있다. 오늘 이러한 책임 수행은 미 태평양 사령부의 전면적인 상비군이 뒷받침하고 있는 미군병력 약 10만명의 안정적인 전진 배치 무력을 통하여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자국을 직접적으로, 전면적으로 위협하고 있다고 여겨왔던 '거대한 붉은 용' 소련이 내부 모순으로 와해되고 동·서 진영 구도가 깨져버린 탈냉전기에 와서도 '안보 불안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탈냉전기에 자국의 지배 질서에 도전하는 새로운 위협이 두 방향에서 생겨나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proliferation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이고, 둘째는 지역 강국들의 대규모 공격 위협으로 생겨나는 주요 지역 분쟁의 위험(danger of major regional conflicts)이다. 이것이 탈냉전기 미국 안보관의 핵심 내용이다.

이러한 탈냉전기 미국의 안보관에 입각하여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밑받침해주고 있는 논리 구조를 분석하면 지역 분쟁 억지 정책, 지역 균형 유지 정책, 대량 파괴 무기 반확산 정책이라는 세 개의 중심축이 자리잡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제 이 세 개의 정책적 중심축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론이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문제를 검토하기로 하자.

1) 지역 분쟁 억지 정책: 예방(prevention)과 억지(deterrence)의 논리

영토 분쟁, 인종·민족적 갈등, 종교적 갈등 때문에 생겨나는 지역 분쟁 때문에 미국이 주도하는 안정된 지역 질서가 파괴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탈냉전기에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더하여 반미 성향국들이 세계 각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국들을 정치·군사적으로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미 성향국과 친미 동맹국들 사이에 군사적 충돌이 지역 분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심각하게 증대되었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이런 판단에 의거하여 미국은 냉전기에 전세계적 범위에서 대소 봉쇄 정책을 위해 투입·동원했던 군비와 전력을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다른 여러 지역으로 분산·재배치하였다. 미국은 지상군 1개연대 규모인 2천7백40여 명을 오는 2003년까지 남(한국)에 추가로 배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미국은 한(조선)반도 유사시에 긴급 투입할 '신축 억지 전략(Flexible Deterrence Option)'의 증원 규모를 종전보다 두 배나 늘여 2개 항공모함 전투단과 2개 군단으로 각각 강화했다는 사실을 199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27차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에서 남(한국)에 통보했다.

미국은 일단 지역 분쟁이 발생한 이후에 어렵사리 수습하는 것보다 미리 방지하는 편이 자국의 지배 질서를 유지·관리하고 안보 이익(security interest)을 추구·보장하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지역 분쟁 예방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지역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미국의 방략은 자국의 사활적 이해 관계가 걸려있는 지역에서 안정(stability)과 신뢰(credibility)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며, 그 보장 수단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안받침되는 외교력이다. 이로써 역내 질서의 안정화와 우방 및 동맹국들에 대한 신뢰 조치의 유지가 탈냉전기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핵심 과제가 되었다. 지금까지 미국의 외교력은 언제나 군사력으로 안받침되는 강압 외교(coercive diplomacy)가 주된 경향을 이루어 왔는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러한 지역 분쟁을 예방하고 억지하는 정책을 한(조선)반도에 적용하고 있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의 지역 분쟁 억지력은 남(한국)의 안보를 위해 거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데, 그 대가는 남(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부담하는 것과 군사적 예속 관계에 계속 순치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2) 대량 파괴 무기 반확산 정책과 한(조선)반도의 핵문제

미국은 자국의 이해 관계가 걸려있는 지역에서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억지하는 이른바 반확산 정책(counterproliferation policy)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미국이 반확산 정책을 수행한다는 것은 역내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전히 해소하고 진정한 의미의 평화 질서를 창출하려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적절한 수준에서' 역내 군사적 긴장 상태를 유지시키면서 그것을 빌미로 삼아 재래식 저성능 잉여 무기의 판매망을 계속 유지·관리·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재래식 저성능 잉여 무기의 수출을 여전히 계속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지역의 동맹국들이나 반미 성향국들이 이른바 첨단 군사 기술를 개발·수입하여 대량 파괴 무기를 생산·보유하려는 추세를 완강하게 통제·저지하고 있다. 첨단 군사 기술의 발전에 의한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은 결국 미국이 주도·지배하는 현존 질서, 곧 지역의 안정과 신뢰를 무너뜨린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개발과 그 기술 및 부품의 수출, 생화학무기의 개발에 대해서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의 대외 정책 수립가들은 지역 분쟁의 가능성과 대량 파괴 무기 확산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위험 지대'를 한(조선)반도와 중동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냉전기에도 이 두 지역을 지역 분쟁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분류법을 탈냉전기에도 고스란히 물려받은 셈이다.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면, 그것은 미국이 탈냉전기에 접어들면서 이 두 지역을 지역 분쟁 가능성 뿐아니라, 대량 파괴 무기 확산 가능성도 가장 높은 곳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조선)반도는 이러한 '이중적 위험성' 앞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미국의 동북아 지역 안보관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주장하는 '이중적 위험성'은 이 두 지역에서 이른바 대량 파괴 무기인 핵무기 개발 문제로 터져나왔다. 미국이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억지하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격퇴하여 지역 분쟁을 수습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무력으로 개입했던 걸프전의 경험을 통하여 반미 성향국들은 탈냉전기와 냉전기가 아무런 차이가 나지 않을 뿐더러, 반미 성향국들에게는 차라리 힘의 균형 상태가 유지되고 있었던 냉전기보다 탈냉전기에 도리어 더 심각한 미국의 무력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이러한 위협 체감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북(조선)이었다는 사실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이 대북 관계에서 중시하고 있는 전략 목표들 가운데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문제, 대량 파괴 무기 확산 예방 문제 등이 나타나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북(조선)은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이 몰고온 충격 파장에 더하여 이른바 '핵사찰' 문제를 둘러싸고 외교적 굴복을 강요하려는 초강대국 미국의 직접적, 전면적 위협에 직면한 바있다. 걸프전에서 외교·군사적으로 압승을 거둔 미국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예방·억지하겠다고 하면서, 재빨리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켰다. 미국은 자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 동맹 체제를 가동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외교적,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그렇지만 북(조선)은 이러한 압박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맞서 나가면서 1993년 3월 9일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고 이어서 사흘 뒤에는 핵확산 금지 조약 기구 탈퇴 선언이라는 초강경 대응책으로 '응전'하였다. 1994년 6월 2일 미 국무부 특별 성명에서 조·미 3단계 회담 취소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추진이 발표되면서 한(조선)반도의 위기 상황은 폭발 직전에까지 이르렀으나, 북(조선)이 계속 맞서게 되자 미국은 하는 수 없이 압박을 철회하고 10월 21일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제네바 조·미 합의를 반확산 정책의 외교적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면에 북(조선)은 미국의 전면적 압박을 물리치고 미국을 협상 자리에 끌어낸 외교적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대량 파괴 무기 반확산 정책에는 동맹국과 적성국의 구별이 없다. 미국은 '적성국'으로 분류해놓고 있는 북(조선)의 대량 파괴 무기 개발 잠재력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동맹국'으로 분류해놓고 있는 남(한국)의 대량 파괴 무기 개발 잠재력에 대해서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조선)반도에서 핵무기 개발과 핵탄두 운반 가능 미사일 개발을 먼저 시도한 쪽은 사실 남(한국)이었고, 북(조선)은 그에 대한 대응으로 풀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의 건설과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였다는 설은 설득력있게 들리는데,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북(조선)만이 아니라 남(한국)에도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주장대로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일단 차단했다고 해도, 한(조선)반도에 대한 반확산 정책의 실현 정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잠재력을 차단한 것 뿐이지, 화학무기 및 미사일 개발·보유 문제에 관해서 미국은 아직 확실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앞으로도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완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조선)이 동북아 지역에서 "예측 불가능성과 잠재적 위험의 원천"이 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 대한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 위협은 누그러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남(한국)도 한(조선)반도의 군사 문제를 다루는 조·미 협상에서 소외당하게 되자, 외교적 소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하여 군사력의 균형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중거리 미사일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의 통제선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북(조선)의 대량 파괴 무기 확산 가능성(미사일 문제와 화학무기 문제)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예방·억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남(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통제선에서 벗어나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로써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남북을 모두 포함하는 한(조선)반도 전체를 그 적용 범위로 삼게 되었다.

미국은 북(조선)의 대량 파괴 무기 개발 잠재력이 자국의 안보 이익에 대해, 그리고 동맹국인 남(한국)의 안보에 대해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면에 북(조선)은 한·미 동맹 체제가 자국에 대한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위협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냉전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탈냉전기에 와서도 한·미 연합군의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압박은 이완·해소되기는 커녕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양측의 이러한 주장·견해는 겉으로 보기에는 논리적인 모순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그 모순 논리의 실상을 따져보면, 북(조선)의 군사력보다 한·미 연합군의 군사력이 훨씬 막강하고 우위에 있으며, 따라서 군사적 위협을 느끼고 있는 쪽은 북(조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더우기 북(조선)의 주장을 들어보면, 한·미 연합군은 한(조선)반도에서 고강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끊임없이 유지시켜 결국 북(조선)의 국가 역량을 군비 유지 및 증강에 소모하게 만들고, 그로써 '경제 발전 전략'을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제네바 합의에 기초한 미국의 대북 관계 정상화 계획과 북(조선)의 대량 파괴 무기 개발·보유 문제에 대한 미국의 반확산 정책 수행은 서로 별개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은 조·미 관계 개선과는 관계없이 한(조선)반도에서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억지한다는 명분으로 주한미군의 주둔을 안정적으로 연장하고 있으며, 한·미 연합군의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조·미 관계 개선이 더욱 진척되면, 평화 협정 체결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주한미군의 감축·철수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억지한다는 미국의 반확산 정책의 견지에서 볼 때, 비록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된 뒤라고 하더라도 미국은 북(조선)의 대량 파괴 무기 개발 잠재력이 아직 존재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를 억지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 할 것이다.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반확산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명분을 앞세우는 한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외 군사 전략은 반확산 정책과 해외 전진 배치 군사력의 주둔 문제를 밀접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미국은 해외에 전진 배치해놓은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반미 성향국들의 대량 파괴 무기 개발·보유 문제와 그에 따른 위협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반확산 정책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고 있다. 미국은 한(조선)반도를 바로 이러한 반확산 정책의 주요 표적으로 만들고 있으며, 따라서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명분을 그 정책에서 찾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냉전기에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은 북(조선)의 남침 위협을 억지한다는 지역 분쟁 억지 정책에 비중이 쏠려 있었는데, 탈냉전기에 들어와서 북(조선)의 대량 파괴 무기 확산을 억지한다는 반확산 정책이 거기에 하나 더 첨가되었다. 북(조선)의 남침 위협설이 '냉전의 신화'로 퇴화되어 설득력을 차츰 잃어가게 되자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은 약화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반확산 정책이라는 새로운 주둔 명분을 첨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지역 균형 유지 정책과 중국 정책의 상관성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의 눈에 비치고 있는 아시아는 "불확실성과 긴장의 지역이며, 군사력이 거대하게 집중되어 있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더 개방된 국제 경제 체제를 추구하는 데 사활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은 모든 미국인들의 복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활적인 국익의 문제"라고 한다. 미국이 냉전정착기였던 지난 1950년대 초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쌍무적 안보 조약을 체결한 동맹국들은 필리핀(1951년 8월), 일본(1951년 9월), 호주(1951년 9월), 남(한국)(1953년 10월), 태국(1954년 9월) 다섯 나라다. 금세기에 들어와서 미국이 세 차례의 커다란 전쟁(태평양전쟁, 코리아전쟁, 베트남전쟁)을 치룬 지역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다. 그만큼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해 관계는 뿌리가 깊으며, 안보 감각은 예민하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정책 구도에서 중국 정책은 우선순위에 놓여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정책의 성패가 아시아·태평양 정책의 성패와 직결된다. 미국은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극력 저지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패권주의적 성향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까닭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로, 정치적 이유에서인데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 발언권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군사적 이유에서인데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한 핵무장국이며 미사일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중국은 "미 군사력의 아시아 주둔이 불필요하고, 잠재적인 불안정 요소가 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셋째로, 경제적 이유에서인데 미국과 중국은 교역 관계에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경제적 상호 의존성으로 연관되었으며, 그 연관 관계가 더욱 심화·확대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거대한 인구, 광활한 국토, 풍부한 자원을 동원하여 고도 성장의 길을 치닫고 있으며, 21세기에 가서는 선진 자본주의 진영과 경쟁하는 경제 대국으로 일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일 중국이 정치·군사·경제적 측면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여 지역 패권국으로 올라서고,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심각한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된다면, 미국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중국 경계심이 중국을 봉쇄·고립시켜서 적대 세력으로 만들려는 냉전적 상황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중국을 자국이 주도하는 지역 안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협조 세력으로 끌어들여 길들이려는 순화 정책(domestication policy)을 펴고 있다. 미국은 "중국 문제에 관여(engage)할 것이며,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을 한정시키려는 국제적 노력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여 중국이 국제 사회에 건설적으로 통합되는 것을 지원할 것이며, 중국의 국방 정책과 군사 활동의 투명성을 보장할 것"이라고 한 말 속에서 그러한 의지가 엿보인다.

다가오는 21세기에 있을지 모르는 중국의 패권적 진출을 예방하기 위하여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 대만 문제와 한(조선)반도 문제를 들고 나오고 있다. 한(조선)반도의 평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미국이 독점하지 못하고, 중국을 끌어들인 4자 회담을 제안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6자안보 협의체 안에 중국을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중국도 이러한 미국의 구상에 반대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중국이 지역 패권국으로 등장하게 되면, 일본을 자극하여 결국 중·일 패권 경쟁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의 군사력을 한(조선)반도와 일본 열도에 전진배치시켜 중·일 패권 경쟁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일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면 남(한국)이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남(한국)으로서는 중국에게 밀착하며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고, 자연히 일본에 대해서 군사적으로 더욱 밀착·의존하게 될 것이다. 일본도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된 기회를 틈타서 남(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한·일 군사 동맹 체제를 수립하려고 할 것은 명백한 일이다. 이처럼 한·일 군사 동맹 체제가 성립된다면, 북(조선)과 중국이 안보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조·중 동맹 체제를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조·중 동맹 대 한·일 동맹의 대치 구도가 형성된다면, 그것은 미국의 동북아에 대한 최소한의 영향력마저도 배제할 수 있는 팽팽한 긴장 구도가 될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며, 주한미군을 안정적으로 주둔시킴으로써 조·중 동맹 대 한·미·일 동맹의 대치선이 형성되는 가능성을 미리 차단·봉쇄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자국을 정점으로 하여 한·미 동맹 체제, 미·일 동맹 체제를 포괄하면서 한·미·일 삼각 동맹 구도를 계속 유지·관리하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일 삼각 동맹 구도가 존재하는 한, 한·미 동맹 체제가 존속할 수 밖에 없고, 한·미 연합군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미국은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의지는 냉전기나 탈냉전기나 변함없이 일관성이 있으며, 언제나 단호한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북(조선)의 계속적인 재래식 능력을 감안하여 우리는 남(한국)에서 미군을 조심성 있게 감축한다는 이전의 계획을 영구히 중지하였으며, 남(한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할 뿐아니라 주한미군을 현대화하고 있다. 우리는 미군 병력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분쟁에 개입한다고 해도 북(조선)의 침략을 억지 또는 중지시키거나 패퇴시키기에 충분한 병력과 지원 물자들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4) 미·일 동맹 체제와 한·미 연합군

미국이 설정한 동아시아 전략의 중심축은 미·일 동맹 체제다. "일본과의 안보 동맹은 미국의 아시아 안보 정책의 요체(linchpin)"며, 미·일 관계는 "안보 동맹, 정치 협력, 경제와 교역"이라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미국은 "지역 안보 및 세계 안보를 함께 증진시키는 기본구 조로서 운영하고 있는 일본과의 쌍무적 동반자 관계(bilateral partnership)를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미·일 동맹 체제가 국제 사회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막대한 이익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1996년 4월 1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미·일 안보 공동 선언'은 바로 이러한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관을 배경으로 하여 나온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미국이 미·일 동맹 체제를 지역 안보는 물론 세계 안보를 위하여 가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서 한·미 동맹 체제는 어떠한가?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침략을 억지하기 위하여 대한민국과의,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방위 임무 수행을 강력하게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을 보면, 한·미 동맹 체제의 목적은 한(조선)반도 안보의 범위 안으로 국한된다고 볼 수 있다. 한·미 관계는 "상호 안보조약, 한·미 연합사, 연례 안보회의 개최"라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보면, 한·미 동맹 체제와 미·일 동맹 체제가 불가분리적으로 연관되어 동아시아 전략을 구성하고 있지만, 양자 사이의 성격과 위상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성격 문제를 고찰해보면, 한·미 동맹 체제는 남(한국)의 안보를 위한 불평등한 예속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고, 미·일 동맹 체제는 전 세계의 안보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strategic partnership)의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위상 문제에서도 한·미 동맹 체제는 미·일 동맹 체제의 외곽 방어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탈냉전기에 들어오면서 남(한국)이 군사 부문에서 대미 예속성을 탈피해서 차츰 자주성을 획득해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현실은 그러한 분석과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남(한국)은 '자주 국방 건설'을 자신의 군사 노선으로 정한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그 동안 본질적인 변화는 없었고, 한·미 양국의 군부도 군사 부문에서 대등한 관계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고 흔히 말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남(한국)의 국민 감정을 염두에 둔 무마책의 언술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군사적 예속 구조가 변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일 동맹 체제와 한·미 동맹 체제의 연관 관계는 미·일 동맹 체제가 세계의 안보를 위한 동반자적 연관 관계를 강화·공고화하면 할 수록 그에 따라 한·미 동맹 체제도 예속 관계를 강화·공고화하게 된다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필연성은 남(한국)의 의지나 희망과는 무관한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미·일 동맹 체제를 확고하게 유지·관리하기 위해서 한·미 연합군의 전진 배치와 남(한국)군에 대한 군사적 지배 구도를 유지·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인 문제가 된다고 보고 있다.

(3) 탈냉전기에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은 가능한가?

1970년대 말의 주한미군 감축론은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미국이 동북아시아의 지역 분쟁에 자동적으로 휘말려들어 엄청난 인명과 전비를 소모하지 않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반해, 1980년대 말의 주한미군 감축론은 동북 아시아의 지역 분쟁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 탈냉전적 상황에서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자국 부담으로 소모하지 않겠다는 실리 추구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970년대 말의 주한미군 감축론은 짧은 기간 안에 거의 전면적인 철수를 계획했던 것인데 비하여, 1980년대 말의 주한미군 감축론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 부분적 철수를 계획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역할을 변경하려고 하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처럼 주한미군 감축론이 정세 변화를 따라 강조점을 다른 곳에 찍고 있는데도, 끝내 변하지 않고 있는 '철칙'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계속 유지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의 운명은 바로 이 '철칙'에 묶여있다. 그러나 이 부동의 철칙이 여전히 관철되고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점은 탈냉전기에 들어와서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 전환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전환된 방식은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상황에 어떠한 변화를 주게 될 것인가?

위에서 살펴본대로, 미국은 탈냉전기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가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억지하고, 지역 분쟁의 위험을 예방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반확산 정책과 지역 분쟁 억지 정책을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과 결부시키는 논리다. 이러한 미국의 논리는 과연 타당한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반확산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남(한국)에 주한미군을 주둔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 전 세계에는 탈냉전기에 대량 파괴 무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려 하거나, 이미 그러한 무기 체계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성능을 개량하고 기술 및 부품, 완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만일 미국이 반확산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미군을 해외지역에 주둔시키고 있다면, 대량 파괴 무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멕시코와 브라질, 이집트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같은 나라들이 있는 지역에도 모두 미군을 주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독 북(조선)에 대한 반확산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남(한국)에 미군을 주둔시켜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으며, 남(한국)에 대한 반확산 정책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해서 수행하는 것은 아니며 '한·미 미사일 양해 각서' 같은 불평등한 합의에 기초한 군사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실제 목적이 반확산 정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정권이 반확산 정책의 최대 성공 사례로 내세우고 있는 제네바 조·미 합의도 전진 배치 무력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타결로 이루어낸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잘라 말하여,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은 반확산 정책과 결부될 수 없으며,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외교적으로(군사적이 아니라) 관철해야 한다.

둘째로,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목적이 지역 분쟁 억지 정책에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다. 지금 한(조선)반도는 지역 분쟁 가능성이 높은 위험 지역이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지만, 이 주장에 대해서도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한(조선)반도를 지역 분쟁 가능성이 가장 높은 위험 지역으로 만든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주한미군에게만은 그 책임을 묻지 않고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주한미군이 유엔 평화 유지군처럼 오로지 지역 분쟁의 예방·억지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지금 전력 현대화라는 이름 밑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군비 증강과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북(조선)을 자극하여 군비 증강에 나서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한(조선)반도에서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부추기고 무제한 군비 증강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삼성 교수의 지적을 들어보자.

"우리는 주한 미 군사력이 몇 가지 점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긍정적인 효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갖는 기능은 그 총체적인 맥락에서 평화 과정을 억제하고 고밀도의 군사적 대결과 군비 경쟁을 지속시키는 성격의 것일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우리는 한반도에서 외국 군사력이 없는 평화와 안정에 관한 새로운 개념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한·미 상호 방위 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epublic of Korea) 6개 조항 가운데 주한미군 주둔에 관련된 제4조만을 수정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킨다고 해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유지되고 있는 한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살아있을 것이며, 남(한국)군의 전력이 지금처럼 증강되고 주일미군과 태평양사령부 휘하의 막강한 전력이 뒤에서 버티고 있는 한, 한(조선)반도에서 힘의 균형 상태가 깨지면서 북(조선)의 군사적 행동에 의한 지역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오늘 탈냉전기에 들어와서 미국이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감축한다고 해서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동북 아시아의 힘의 균형 상태를 위협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조선)반도에서 지역 분쟁의 위험도를 낮추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도는 주한미군을 안정적으로 주둔시키고 한·미 연합군의 군비 증강과 합동 훈련을 지속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비정상적인 한·미·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있다. 그것은 조·미 관계, 한·미 관계, 남북 관계를 무력 대치의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평화 정착의 정상적인 관계로 재편하는 것이다. 그 재편 방향의 종착점은 자주와 평화, 그리고 평화적 통일의 실현이다. 이삼성 교수는 이 문제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가 평화 체제로 전환해 외교·경제 관계가 정상화될 때 한미 관계가 안고 있는 종속적 군사 관계 중심의 비정상적 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 또한 역으로 한국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그 동안과 같이 군사 중심적 성격 유지를 고집하는 한 북미 관계의 조속한 정상화는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이란 해외의 전진 배치 무력과 군사적 위협으로 막을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해외에 전진 배치한 군사력을 동원하거나 증강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외교력을 동원하여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을 통제·규제하는 국제 협약의 영향권을 확대해 나감으로써 평화적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반확산 정책을 수행하는 가장 유력한 지름길은 반군확(反軍擴) 정책과 평화 정책이다. 해외 주둔 미 군사력의 군비 확장은 되레 반확산 정책을 파탄시키고 세계 각지에서 대량 파괴무기의 확산을 충동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주한미군 감축론과 결합될 때, 비로소 강한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며 북(조선)과 남(한국)의 대량 파괴 무기 확산추세를 진정으로 억지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1971년 닉슨 정권이 주한미군 제7사단을 철수하고, 소련과 중국에 대해서 화해 정책을 추구하게 되는 것과 때를 같이해서 북(조선)의 군비 지출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총괄한 결론은 한(조선)반도에서 반확산 정책을 안받침할 수 있는 미국의 외교력은 평화를 향한 진지한 노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셋째로,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역할 변경론으로 풀이하려는 논법이다. 미 행정부 안에서 주한미군 감축론이 폐기된 현재의 조건에서 새롭게 제기될 수 있는 대안 논리는 주한미군의 역할을 변경해야 한다는 역할 변경론에 기울어지고 있다. 북(조선)의 '남침 위협설'을 인정한 기초 위에서 북(조선)의 남침을 억지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유지한다고 주장했던 냉전기의 낡은 명분은 탈냉전적 상황 안에서는 더 이상 실효가 없어지고 있으므로,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국가들 간의 힘의 균형을 보장하는 균형 유지 역할로 변경하자는 논리가 생겨났다. 최근 주한미군은 2005년까지 한(조선)반도가 통일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통일 이후에도 한(조선)반도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전략 요충이므로 주한미군은 북(조선)의 '남침 위협'을 견제하는 것이나 통일 여부에 상관없이 21세기에도 이 지역의 안정 세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분쟁의 억지보다는 지역 균형의 유지에 더 강조점을 두는 논리다. 만일 주한미군의 역할이 균형 유지 역할로 변경된다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조건부로 용인한다는 조건부 용인론과 주한미군의 주둔을 잠정적으로 용인한다는 잠정적 용인론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잇게 될 것이다. 북(조선)이 최근 미국에 대해서 조건부 용인론과 잠정적 용인론을 협상책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다. 주시해야 할 중요한 점은 이러한 '용인론'과 단계적 감축론이 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북(조선)으로서도 단계적 감축론을 배제한 상태에서 용인론을 대미 협상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조선)의 용인론에 대해서 지금 겉으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조·미 관계 개선이 더 진척된다면 그에 대해서 어떠한 대응 논리를 내놓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의 감축 문제를 조·미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교섭 수단(political bargaining chip)으로 이용하려고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앞으로 조·미 정치 협상이 수위를 높혀가는 과정에서 어느때인가 미국이 주한미군을 정치적 교섭 수단으로 사용해야 할 시점이 반드시 올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 시점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고 하면서 그 대신 북(조선)에게 커다란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지 않을까?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그대로 동결시키고 있겠지만, 북(조선)이 주한미군 용인론을 철회하지 않는 한, 워싱턴 정가에서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론이 다시 등장할 시점은 그리 멀지 않은 것으로 예상해도 되지 않을까?

넷째로,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을 미국의 안보 이익론에서 찾는 논법이다. 미국이 탈냉전기에도 동아시아 지역에 전진 배치한 자국의 군사력을 감축하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반확산 정책, 지역 분쟁 억지 정책, 지역 형형 유지 정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반확산 정책이나 지역 분쟁 억지 정책이나 지역 균형 유지 정책 따위는 미국의 안보 정책 중에서 대외 군사 부문의 범주에 드는 것들이다. 안보 문제의 본질은 '군사' 보다도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이 탈냉전기에도 동아시아에 전진 배치한 군사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근본 이유는 역내 패권국의 출현을 저지하고 자국의 지배 질서를 계속 유지하려는 간섭주의(interventionism)와 패권주의(hegemonism)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미국의 '안보 이익(security interest)'을 유지·추구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패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하고 자국의 지배 질서를 계속 유지하려는 미국의 안보 이익 문제와 관련하여 주한미군은 과연 필요불가결한 존재일까?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주일미군만으로도 역내 지배 질서를 유지하고 안보 이익을 유지·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한(조선)반도는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한·미 동맹 관계로 보호해줄만큼 과연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안보이익에 사활적인(vital) 지역일까? 지금까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냉전기가 끝나기까지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은 한(조선)반도가 미국의 사활적인 안보 이익을 보장해주는 지역이라는 고정 관념 위에 붙박혀 있었다.

그런데 탈냉전기의 미국은 이러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미국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서로 논의의 출발점이 다르고 강조점도 다르지만, 우드로우 윌슨 센터의 셀릭 해리슨(Selig Harrison), 노스웨스턴 대학의 부르스 커밍스(Bruce Cumings), 케이토 연구소의 테드 갤런 카펜터(Ted Galen Carpenter)와 덕 밴도우(Doug Bandow) 등이 대표적인 주한미군 감축론자, 또는 철수론자들로 손꼽히는데, 미국 정부는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테드 갤런 카펜터는 한(조선)반도는 미국의 안보 이익을 위한 사활적인 중심부가 아니라, 그 '주변부(periphery)'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지역 안보관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대한민국이 미국의 안보에 사활적이라는 생각은 미국의 현재적 안보 이익 또는 안보적 요구에 대한 합리적 판단이라기 보다는 한국(조선)전쟁에 피와 자산을 쏟아 희생했던 미국인들의 정서적 행위에 얽혀있는, 쓸모없게 된 냉전적 관념의 산물이다. 미국에 대한 남(한국)의 경제적 중요성이나 전략적 중요성이 워싱턴의 안보 행위에 따라오는 비용부담과 위험부담을, 특히 미군의 계속적인 한(조선)반도 주둔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줄임) 남(한국)이 전략적으로 사활적이라고 하는 관념은 진부해진, 더우기 차츰 무의미해지고 있는 냉전기의 전진 방어 교리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지금까지 검토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주한미군의 실제적인 주둔 명분은 약화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결론은 미국은 실제적인 주둔명분이 차츰 퇴색되고 있는 주한미군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막대한 유지비를 소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와 더불어 북(조선)이 극도의 경계심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고 군비 유지에 힘을 쏟게 하여 한(조선)반도에서 되레 미국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반확산 정책을 거스르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점도 드러내주고 있다.

(4) 결론을 대신하여 -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을 지향한 동아시아 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고찰

이미 위에서 살펴본대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미 행정부 안에서 주한미군 감축론이 다시 대두되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물론 미국의 정책 구구가들이나 군부 일각에서 주한미군 감축론을 계속 주장해왔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책 차원이 아니라 연구 차원, 논의 차원에 그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논의해야 할 문제는 미국이 과연 동아시아 정책을 탈냉전의 새로운 안보 환경에 걸맞게 스스로 재편·변경할 수 있는가 하는 데로 집중된다.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아직 냉전기의 유산을 무거운 짐으로 지고 있다. 클린턴 정권의 대외 정책은 지난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다자간 안보 협력 구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군사력보다 정치 협상을 수용하려는 태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사활적 안보 이익이 걸려있다고 판단하는 주요 지역들, 이를테면 동북아 지역 같은 데서는 다자간 안보 협력의 접근은 부차적, 보조적 수단으로 그치고 간섭주의적, 패권주의적 접근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이삼성 교수의 지적은 정확한 분석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널리 알려진대로, 미국은 탈냉전기에 들어오면서 이른바 관여 정책(engagement policy)을 자국의 대외 전략 기조로 채택하였다. 지금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관여 정책은 확장 정책(enlargement policy)과 맞아떨어지는 '일란성 쌍생아'지만, 주목해야 할 사실은 냉전기의 낡은 유산인 간섭주의 정책(interventionist policy)을 완전히 폐기한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관여 정책은 간섭주의 정책을 주요 기능으로 하고, 협력 안보 구도(cooperative security framework)를 보조 기능으로 접목시켜놓은 변형물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관여 정책이 채택됨으로써 지난 시기 간섭주의 정책과 한 쌍을 이루고 있던 대결 정책은 일정 정도 약화되고 있는 추세라고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며, 간섭주의 정책의 기반이 되고 있는 패권주의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은 미국이 독점적이고 지배적인 지위에서 동아시아 문제에 부당하게 개입해왔던 간섭주의 정책이 동아시아에서 냉전의 종말과 함께 이미 그 수명이 다했음을 알아야 하며, 탈냉전기에 조응하는 새로운 안보 환경으로 변동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관여 정책은 그 중심부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간섭주의 정책, 대결 정책, 강압 외교, 패권주의 같은 냉전의 유산들을 뽑아버리고 새로운 정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미국의 관여 정책은 반확산론, 지역 분쟁 억지론, 지역 균형 유지론 등의 명분을 내걸고 자국의 무력을 세계 각지에 주둔시켜온 간섭주의와 패권주의라는 빛바랜 신화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탈냉전기 동아시아에서 정치 지형의 변동 추세와 궤를 같이 하는 현실 조응력을 확보하는 길이며, 또한 미국의 대외 정책이 보수주의의 굳은 껍질을 벗어던지고 전향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동아시아 정책을 수립하는 과제와 맞물려 있는 문제다. 이제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은 간섭주의와 패권주의의 강성 기류에만 순응하려 할 게 아니라, 미국 안에서 들려오는 간섭주의와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아래와 같은 여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때가 되었다.

"만일 지역 갈등이 지역 분쟁의 불을 당겼다면, 단지 미군을 그 지역에 주둔시켰다고 해서 그러한 지역 분쟁을 중지시킬 수 있다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 미국 사회가 아시아 지역의 전쟁에 대한 미군 파병을 지지할 것으로 보는 견해는 가당치 않다. (줄임)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었던 짧은 시기는 이제 끝났다. 미국이 모든 지역 문제에 개입해야 하며, 해당 지역의 인민들보다 그 지역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간섭주의적 견해(paternalistic view)는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전혀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적 사고의 전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여러 갈래에서 나올 수 있겠지만, 탈냉전기의 미국이 냉전의 유산인 간섭주의 정책을 보조 기능으로 격하·약화시키고, 그에 반비례하여 협력 안보 구도를 주요 기능으로 격상·강화시킨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정책을 불관여 정책(disengagement policy)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불관여 정책이란 관여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책적 사고를 출발점으로 잡고 있다. 불관여 정책은 간섭주의 정책의 대칭점에 놓여있는 다른 한 극단인 자폐적인 고립주의 정책(isolationist policy)이나 무관심의 정책이 아니다. 덕 밴도우는 불관여 정책의 기조를 나름대로 설명하면서, 미국은 5년동안의 단계적 실시 기간을 설정하고 한·미 연합사 지휘권의 남(한국) 반환, 주한미군의 전면 철수, 한·미 상호 방위 조약 폐기,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 완화, 미 태평양 전력의 재배치, 그리고 조·미 관계 개선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은 바있다. 그는 불관여 정책을 통하여 미국이 얻게 될 이익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① 자동 개입 철회에 따른 군사적 이익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지역 분쟁에 개입하는 문제야말로 미국 안에서 신중하게 논의하고 판단하여 결정해야 하는데도, 한(조선)반도의 경우 미국이 지역 분쟁에 대한 자동 개입의 의무에 묶여 있는 것은 불합리하므로, 한(조선)반도의 지역 분쟁에 대해 미국이 자동적으로 개입하도록 규정된 '인계 철선(tripwire)'을 해체하고 미국의 전쟁 개입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점.

② 주한미군 전력을 유지·증강하기 위해 미국이 부담하고 있는 직접 경비(약 25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

③ 남(한국)에서 주한미군 주둔이 반미주의(anti-Americanism)를 촉발시켜 정치적 불안정이 생겨날 가능성을 미리 제거할 수 있는 정치적 이익.

같은 맥락에서 셀릭 해리슨도 "미국은 남과 북 사이의 정직한 중개자로서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것 뿐아니라, 중국, 일본, 러시아가 한(조선)반도의 군사 문제에 관련하여 발을 빼는 조치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감으로써 불관여 방책을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덕 밴도우의 논리대로 만일 불관여 정책을 주한미군의 전면 철수,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의 폐기 같은 매우 중대하고 민감한 사안에 결부시킨다면, 그러한 급진적 주장은 한·미 당국의 즉각적인 거부에 부딪혀 더 이상 논의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셀릭 해리슨은 덕 밴도우의 급진성에 회의감을 보이면서, 10년이 넘지 않는 기간동안 과도기(transition period)를 두고, 그 기간에 미국이 남(한국)군에게 방위 책임을 넘기고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재조정해야 할 것과 주한미군 지상군 병력(물론 미 공군과 해군은 처음부터 개입한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겠지만)은 '인계 철선'으로 복무하도록 배치함으로써 한(조선)반도의 분쟁에 자동 개입하게 되어있는 기존의 전략과는 달리 오로지 마지막 수단(last resort)으로서 개입하도록 재배치해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한·미 상호 방위 조약도 조·중 안보 조약이 폐기되는 경우에, 그리고 최근 폐기된 조·러 안보 조약이 복구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경우에만 폐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중론을 폈다. 덕 밴도우의 주장은 지역 분쟁 억지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논리 위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비현실적인 급진성을 내포하게 된다. 이처럼 불관여 정책을 기존의 관여 정책과 확장 정책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시키면 비현실적인 급진론에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현실주의적인 사고의 균형이 요구된다.

현실주의적인 사고의 균형은 지금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반확산 정책과 지역 분쟁 억지 정책을 중심축으로 하고, 지역 균형 유지 정책을 보조축으로 포괄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변화된 새로운 안보 환경에 발맞추어 반확산 정책과 지역 균형 유지 정책을 중심축으로 하고 지역 분쟁 억지 정책을 보조축으로 포괄하는 불관여 정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대안 제시에서 출발해야 한다. 여기서 지역 분쟁 억지론의 정책적 비중이 앞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근거는 이 정책이 남북의 군사적 불균형설, 곧 북(조선)의 남침 가능설에 입각해 있는데, 남(한국)의 국력이 증강·발전하여 군사적 균형을 이루었고 차츰 남(한국)의 군사력이 대북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으므로 남침 가능설을 근거로 삼은 지역 분쟁 억지 정책은 그 정책적 효과가 삭감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구상에서 지역 균형 유지 정책은 다자간 안보 협력체 창설 문제와 맞물려 있으며, 불관여 정책은 다자간 협력 안보 구도를 주요 기능으로 내장하고 있다. 불관여 정책은 역내 안보 환경을 일국의 독점적, 지배적 구도에서 풀어내어 다자간 안보 협력 구도로 전환하는 지역 안보 환경의 변화 속에서 가능하다.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은 동아시아에서 다자간 안보 협력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 이익에 배치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스티븐 보스워스(Stephen W. Bosworth)나 패트릭 크로닌(Patrick M. Cronin) 같은 전문가들도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전개 방향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면서, 아시아에서 미국은 간섭주의에 기초한 기존의 쌍무적 안보 구도를 중심축에 의존하는 정책에서 벗어나서, 다자간 안보 협력체의 형성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최근 미국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EIP), 진보정책연구소(PPI),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이 핵개발 문제에 관련하여 '아시아 원자력 에너지 공동체(아시아톰)', '태평양 원자력 에너지 공동체(패카톰)'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게 된 것은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성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례다. 다자간 안보 협력체에 참가하는 관련국들에게는 상호 대등한 지위에서 참여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하며, 이 안보 협력체에서 미국은 냉전기에 서로 대치해왔던 동아시아 국가들과 대립 관계를 풀고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서로 협력하여 지역 안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새로운 안보 환경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지금 동아시아에서 당면과제로 떠오른 한(조선)반도의 평화 문제나 대만 문제도 이러한 새로운 안보 환경을 창출하는 과정 속에서 해결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가장 예민하다고 볼 수 있는 북(조선)도 이러한 다자간 안보 협력체에 대해서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참여 의사를 내비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불관여 정책으로의 전환과 그에 따른 다국적 안보 협력 구도의 형성은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에 동아시아 인민들이 평화와 안정과 번영의 지평을 주체적으로 열어가는 '진보의 행진'에 일정하게 이바지할 것이다. (1997년 5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