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설-연착륙설 논리 구도의 분석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들어가는 말

미국의 정부 관리들과 정책 수립가들 사이에서, 그리고 미국의 다양한 정책 연구 집단들, 정보 분석가들, 여론 형성 집단들 사이에서 북(조선)의 장래 문제에 관련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탈냉전 시기에 들어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처하고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있는 한 나라의 장래 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논란을 벌이는 모습은 언뜻 보아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이상 현상의 뒷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미국의 정책적 고민이 스며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북(조선)의 장래 문제에 관한 미국 조야(朝野)의 무성한 논란은 이른바 붕괴설과 연착륙설이 서로 어긋나는 논리 구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워싱턴 정가와 그 주변부의 논객들이나 호사가(好事家)들이 주고 받는 화제 거리가 아니며, 정치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정책 문제다. 국제 정세가 이미 탈냉전 질서로 전환되어온 시기에 붕괴설-연착륙설 논리 구도는 어쩌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의 향방을 결정하고, 더 나아가서 동북아 정책에 영향을 주게 될 무게 있는 중심축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지금 한(조선)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정세 변화의 주도력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자국의 외교 정책을 붕괴설-연착륙설 논리 구도 안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이 구도의 전개 방향이 장차 한(조선)민족의 민족 문제 전반에 미칠 파장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미국 정가의 붕괴설-연착륙설은 워싱턴의 화제거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의 장래 운명에 결부된 문제가 된다.

이 글은 붕괴설-연착륙설 논리 구도가 제기하고 있는 정책 논의 과정을 분석적으로 검토하고 그 본질을 파악해보려는 한 시도다. 붕괴설-연착륙설은 미국의 정가에서는 물론 남(한국) 및 일본의 정책 수립가들, 정보 분석가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는 논점의 핵이지만, 이 글에서는 논의 범위를 미국으로 좁혔다. 왜냐하면 붕괴설-연착륙설을 제기하고 그 논리구조 위에서 북(조선) 정책을 집행해나가고 있는 주체를 미국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는 논리적 근거에 관해서는 이 글의 논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지게 될 것이다.

(2) 분기점에 선 연착륙설

이른바 연착륙설(soft-landing theory)이 미국 정부의 북(조선) 정책의 중심 기조를 설명해주고 있는 개념으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렇지만 연착륙설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나오면, 그에 대한 해석과 주장이 달라진다. 자못 혼란스러움을 느낄만큼 해석의 차이와 다양한 주장들이 엇갈리고 있지만, 연착륙설에 관련된 담론들과 수사적(修辭的) 표현들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두 갈래의 연착륙설이 존립하고 있는 논리 구도는 오늘 북(조선) 정책의 수행 방향과 속도, 그 내용과 성격을 구별짓는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다. 그 분기점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로, 분기점에 서있는 연착륙설의 한 부류는 연착륙설을 붕괴설(collapse theory)에서 비롯된 대응 논리로 보는 해석, 다시 말해서 임박한 붕괴를 미리 막아내려는 붕괴 예방책의 담론으로 파악하는 해석이다. 이 담론에서 논의되고 있는 붕괴 예방책이란 식량난→ 탈북자 증가→ 대량 난민사태→ 전쟁 위기→ 체제 붕괴의 예상 경로로 이어지는 북(조선)의 전면 붕괴가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 지역에 파국적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가상(假想)하고, 이를 미리 막아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논리 전개 상에서 강조점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이러한 논리 구도에서 전개되고 있는 주장들은 한 마디로 '붕괴 예방 연착륙설'이라고 요약·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연착륙이란 어떤 장기적인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지향·추구하는 전략 단위가 아니라, 위기 관리형의 전술 단위가 될 뿐이다. 따라서 붕괴 예방 연착륙설은 단기적이며, 즉응적인 전술 개념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제한성이 있으며, 전략적 관점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붕괴설을 왜 가상 논리(假想 論理)로 보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뒤에서 논의하게 되겠는데, 붕괴 예방 연착륙설이 붕괴설이라는 가상 논리 위에 서있다는 점은 이 담론이 피할 수 없는 결정적인 맹점으로 부각된다.

둘째로, 연착륙설의 다른 한 부류는 연착륙설을 개혁·개방 유도책의 담론으로 보는 해석이다. 이것은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그래서 평화적인 연착륙설라고 볼 수 있는데, "깡패 국가 -- 마지막 남은 스탈린주의 체제의 나라며, 확실히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a rogue state -- the last country with a Stalinist system and surely the most isolated country in the world)"인 북(조선)을 개혁·개방의 궤도로 유도해 내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태평양 질서 안에 편입·흡수한다는 전략적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 지구적 확산과 최후 승리"를 실현하려고 하는 미국의 세계 전략 구상에서 파생된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 구상이 한(조선)반도에서는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그것은 1994년의 제네바 조·미 합의에서 시작하여 1996년의 4자 회담 제안을 거쳐온 미국이 북(조선) 정책 집행 과정을 통하여 전망도가 그려지고 있는데, 그 궁극적인 목표 지점은 결국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주는, 포괄적이고 새로운 안보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이 북(조선)의 연착륙은 장기적, 단계적인 예상 경로를 따라 이행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과 동일한 차원에서, 동아·태지역의 전략 수행 과정도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북(조선) 연착륙설의 발생 근원은 바로 이러한 전략적 방침의 한 구성 부분으로 내포되어 있다.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전략적 연착륙설은 단기적이고 즉응적(卽應的)인 전술적 연착륙설과 마찬가지로 논리 전개 상에서 강조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는 다양한 견해를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크게 보아서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설'로 요약·정리될 수 있다. 미국의 북(조선) 정책이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설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한 그것은 유화책(appeasement policy)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으며, 미국 정부(더 구체적으로는 백악관과 국무부)가 실제로 대북 유화책에 의존해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지금 미국의 조야(朝野)에서 설왕설래하고 있는 두 갈래의 연착륙설은 이처럼 갈라지면서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당면 정세를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전망·제시하는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남(한국)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한 마디로 둔감·무능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은 정부와 국회, 군부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이 북(조선)붕괴설을 아무런 분석·검토·확인도 없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연착륙설을 개혁·개방 유도를 지향·추구하는 전략 개념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붕괴 예방을 지향·추구하는 전술 개념으로 단조롭게 이해하고 있거나, 아니면 연착륙마저 이미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절대 붕괴설'에 매몰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의 맹류 현상(盲流 現狀)은 남(한국)의 대북 정책이 전략적 인식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는 근본적 결함 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개선 속도의 불균형 상태 때문에 삐걱거리고 있던 남·북·미 삼각 구도를 1996년 가을의 '잠수함 사건'이 맹타함으로써 기존의 맹류 현상이 이제는 아예 캄캄한 일식 현상(日蝕 現狀)으로 바뀌어진 듯하다. 바로 이 '암흑기'에 남(한국)을 방문했던 미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소장 제임스 톰슨(James Thompson)은 "한국의 외교 담당 관리들을 만났는가"라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 "모두들 북한의 연착륙을 어떻게 유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뚜렷한 대답을 못찾고 있는 것같았다. 아마 지금은 누구도 그 해답이 없을 것이다. 지적인 미스터리다"고 지적한 바있다. 그의 말대로 연착륙설은 지금 지향점을 찾지 못하고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암중모색하고 있으며, 불가사의의 미로 속으로 빠지고 있는 게 아닐까? 왜 그렇게 되었을까?

미리 이 글의 결론부터 성급하게 말하자면, 연착륙설의 운명은 이미 태생적으로 '불우'하며, 미국은 그 해법을 아마 찾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 보는가? 아래의 내용은 이 도전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을 얻기 위해서 작성한 것이다.

(3) 연착륙설의 논리 구조

먼저 연착륙설의 논리 구조를 분석해보자. 연착륙설의 논리적 전제는 무엇인가? 붕괴 예방 연착륙설이 형성·유포되어온 경과를 살펴보면, 그것을 주장·전파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보수·강경파들이다. 이들은 군부와 정보 기관, 의회와 일부 언론 기관 및 정책 연구 기관에 포진하고 있는 세력이다. 이들은 연착륙의 불가피성이란 북(조선)의 체제 불안정과 그에 따른 붕괴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붕괴 불가피설이 연착륙설의 논리적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의 선임연구원들인 로버트 매닝(Robert A. Manning)과 폴라 스턴(Paula Stern)은 "북코리아의 핵문제는 코리아 통일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내파(implosion)나 루마니아 식의 붕괴로 인한 폭발(explosion), 또는 제2의 코리아 전쟁으로 이어지는 예상 경로와 결부되어 있다. (줄임) 내파건 폭발이건 간에 그 결과는 급진적인 흡수 통일(reunification by absorption)이 될 것이다. 심지어 점진적인 연착륙의 예상 경로(more gradual soft landing scenario)를 보더라도 1990년대 안에 코리아의 통일이 이루어지게 될지 모른다"고 하면서 붕괴 불가피설을 주장하였다. 분명히 이들의 붕괴설은 비평화적인 예상 경로를 가상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붕괴 불가피설이 '남침 가능설'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 겨울부터(1995년 말을 뜻함-인용자) 미국의 일부 정보 분석가들이 북(조선)의 남침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틀림없이 예상되는 일이라고 경고함으로써 북(조선)에 대한 개입 시도는 고무받았다.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 정보 분석가들은 북(조선)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몰락 상태에 이르렀음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남침을 감행하는 것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고 경고하였다. 그렇지만 미 국무부의 고위 관리들과 정보 부서의 북(조선) 문제 담당 관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분석을 비웃었다."

위의 보도 내용을 따르면,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과 정보 분석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믿지 않고 있지만, 소수 강경파가 붕괴 불가피성과 그로 인한 '남침 가능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소수 강경파의 담론은 북(조선)에서 발생할 붕괴의 파국적 사태를 예방하면서 연착륙으로 유도해낸다는 구상을 지니고 있다. 요컨대 이들은 북(조선)이 "동독처럼 평화적으로 무너지리라는 보장도 없을 뿐아니라, 광범위한 기근 등으로 경제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됐을 때 남한에 '자살적 공격'을 감행할 위험성"도 있으며, "붕괴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엄청나"기 때문에 '연착륙'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만일 북(조선) 붕괴의 불가피성이 객관적 사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부류의 연착륙설은 성립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북(조선) 붕괴의 불가피성을 전제로 상정하고 있는 붕괴 예방 연착륙설의 관점에서는 필연적으로 북(조선)의 현실이 '돌이킬 수 없는 경제 파국', 특별히 '최악의 식량난'이 붕괴 위기를 몰고오는 다급한 상황이라는 주장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최악의 식량난'은 붕괴 불가피설을 성립시키는 '객관적 근거'로 제시되며, 연착륙 정책은 파국적 위기를 극복하는 '예방적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쟁점으로 등장하는 것은 북(조선)이 '최악의 식량난', 그리고 그로 인한 파국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주장의 사실성 여부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으나, 식량 부족은 북(조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식량 부족으로 인해 체제(또는 국가)가 붕괴한 사례는 없기 때문에 북(조선)의 식량 문제를 붕괴설에 연결시킬 수 없다는 점, 식량 부족 상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비록 수해가 있었지만, 마치 수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처럼 과도하게 부각되었다는 점, 북(조선) 식량난 발생설은 극히 제한된 정보나 방문자들의 부분적, 피상적 관찰에 근거한 첩보 수준의 내용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사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 식량난 발생설에 대한 한·미·일·중 주변국 정부 당국의 견해가 상치되고 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는 점이 그 사실성 여부에 부정적인 결론을 맺게 하는 근거로 등장하고 있다.

붕괴 예방 연착륙설에 기울어져 있는 미국의 소수 강경파, 그리고 남(한국)의 절대 다수 강경파가 지니고 있는 또다른 측면의 문제점은 한(조선)반도와 그 주변 해역에서 군비 증강과 대규모 군사 훈련으로 군사적 긴장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붕괴설을 유포함으로써 자기들의 주장이 정당함을 입증하는 한편, 자기 세력의 존립 근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래에서 논할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정책과 일정하게 어긋물린 구도를 이루며, 그것의 수행을 견제·제동하는 일종의 길항작용(拮抗作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연착륙설이 소수 강경파들의 가상 논리인 붕괴 불가피설에서 파생된 정책론이 아니며, 탈냉전시기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engagement-enlargement strategy)에서 파생된 정책론이라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대로, 현재 탈냉전 시기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의 요체는, 논리 전개상 일정한 굴곡이 생길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북(조선)의 개혁·개방 유도책이라고 정리해서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관여·확장 전략이 북(조선)을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태평양 질서(Pax Americana in the East Asia-Pacific region) 안으로 유도·편입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면, 문제의 연착륙이란 말은 이러한 정책의 수사적 표현(rhetorical expression)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미국 정부의 공식 문건에서는 연착륙이라는 수사적 표현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연착륙의 용어 사용 범위는 정부 관리들의 언론 대담이나 기자 회견에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조야에서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설이 전개·유포되어온 경과를 살펴보면, 이것을 주장·전파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온건파들로서 백악관과 국무부, 일부 언론 기관 및 정책 연구 기관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력이다. 백악관과 국무부가 그 권한과 기능에서 군부나 정보기관, 의회와 달리 한(조선)반도에 대한 외교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집행자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이러한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설의 궤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여왔고, 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의회 조사국의 연구원 래리 닉쉬가 "미 행정부와 국무부의 관리들은 붕괴 이익(collapse benefits) 대(對) 붕괴 위험(collapse dangers)이라는 두 관점 사이의 논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개혁·개방 유도책을 활용해왔다"고 한 주장은 붕괴설에 대한 대안으로 개혁·개방 유도책을 활용해왔다는 점을 밝혀주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일면적인 설득력을 지니고 있지만, 미국 정부 관리들 사이에서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설이 붕괴 예방 연착륙설과 대칭 구도를 이루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반감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가 주장한 '붕괴이익 대 붕괴위험의 구도'는 '개혁·개방 이익 대(對) 붕괴 위험의 구도'라는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을 집행하기 위하여 미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내놓았을까? 그것은 정치·군사 분야에서는 북(조선)을 4자 회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으로, 경제 분야에서는 북(조선)에 대한 식량 지원 및 경제 제재 완화 조치를 실시하는 방안으로 구체화되었다. 얼마전까지 미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으며, 지금은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학장으로 있는 조셉 나이 2세(Joseph S. Nye, Jr)는 기고문에서 "미국은 최근 한·일과 협의를 거쳐 북한에 식량을 지원했다. 이것은 만약 북한이 계속 대외 개방 정책을 추진한다면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인 경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상징적인 표시로 간주됐다. 결국 북한의 연착륙(soft landing)은 숱한 인명을 앗아갈지도 모를 무력 충돌보다 모든 점에서 낫다. (줄임) 4자 회담의 취지가 바로 이것이다"고 주장했다. 미 국무부 아·태담당 부차관보 찰스 카트먼은 언론 대담에서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북한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으며 우리는 그 상태를 역전시키기 위해 조만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고 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미국이 '조만간 해야 할 임무'란 무엇일까? 현 단계에서 북(조선) 정책의 당면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촉발시킨 카트먼의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의 직속 상관인 동아·태 차관보 윈스턴 로드의 아래와 같은 발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로드는 "한·미는 북한의 소프트 랜딩을 원하고 있다. 붕괴 과정에서 우려되는 소요, 불안, 위기의 파장이 가능한 적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북한의 국제 사회 개방을 평양 당국에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4자 회담 제안과 경제 지원 방안은 현시기 미국의 한(조선)반도에 대한 관여·확장 전략의 적용 실체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개혁·개방 유도 연착륙 정책은 흔히 선관여-후변화론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관여'란 구체적으로 말해서 4자 회담 제안과 경제지원 방안을 뜻하며, '변화'란 북(조선) 체제의 개혁·개방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정세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게 되자, 곤경에 처하게 된 쪽은 남(한국)이다. 남(한국)은 냉전 시기에 이미 굳어져 버린 자국의 대미 의존성 때문에 탈냉전 시기로 넘어와서도 여전히 미국의 정세 변화 주도력에 파묻히고 마는 곤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한국)의 이른바 변화 선행론은 이러한 곤경을 벗어나려고 하는 대응 논리로 나온 것이다. 북(조선)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대응 논리에서는 모호성이 드러나고 있다. 이 모호성은 남(한국)이 겉으로는 변화 선행론을 말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비평화적 붕괴설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붕괴 촉진설'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논리적 어긋물림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여기서 '변화'란 북(조선)의 체제 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한데, 북(조선)이 미국만 상대하려 하지 말고 남(한국)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라고 촉구하는 대화 태도의 변화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북(조선)의 무엇을 변화시켜야겠다는 뜻인지 아리송하다.

미국은 남(한국)과의 기존 동맹 관계를 현상 유지하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책 수행 범위를 확장하여 이제는 북(조선)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연착륙 정책을 수행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이른바 한(조선)반도 '등거리 외교 시대'에 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에 대응하여 북(조선)도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정세 변화를 읽어내면서, 남북 관계 개선을 조·미 관계 개선의 종속 변수로 격하시키는 대남 외교 공세를 펼치고 있다. 남(한국)의 변화 선행론은 북(조선)의 대남 외교 공세와 미국의 등거리 외교라는 이중적 부담에 대응하기 위하여 내세운 궁여지책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될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얼마나 효력을 보일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남(한국)의 대북 정책 추진 방향은 자신의 대미 의존성의 견지에서 봐도 그렇고, 논리적 타당성이 없다는 견지에서 봐도 그렇고, 명분이 아니라 실리를 얻을 수 있는 차원에서 재조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효력 발생 미지수의 궁여지책만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게 아니라, 만일 효력 발생이 없다고 판명된다면, 이를 포기하고 현실주의적 선택을 찾아나서는 것이 더 현명한 조치가 아닐까?

(4) 절대 붕괴설의 대두

북(조선)의 장래에 관한 논의에서 이른바 붕괴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북(조선) 붕괴설이 미국의 주요 언론에서 크게 부각된 시기는 1994년 가을이었다. 붕괴설은 인과론적 견지에서 보자면, 외압이나 공세에 의한 붕괴가 아니라, 내부 모순 때문에 생기는 자체붕괴라고 하는 점에서 일종의 '내부 와해설(theory of internal disintegration)'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붕괴설과 관련하여 유행어처럼 번져나간 것은 이른바 '고장난 비행기'의 유추론(analogy)인데, 이 유추론적 견지에서 보자면 붕괴설이란 곧 '추락설(crash theory)'로 이해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연착륙(soft landing)에 대한 대비 개념으로 경착륙(hard landing)을 말하기도 하지만, 경착륙이란 것도 사실상 추락(붕괴)을 뜻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붕괴설의 범주에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 글에서 우리가 논의하고자 하는 붕괴설은 붕괴 예방 연착륙설의 논리적 전제로서의 붕괴설이 아니라, 예방 조치인 연착륙마저도 불가능하게 된 상황, 곧 추락 밖에는 다른 가능성이 없는 절대 붕괴설이다. 절대 붕괴설은 개혁·개방으로 유도·편입된 소련형의 붕괴와 체제 전환을 가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과 폭동, 내란과 소요, 기근과 난민 발생이 예상되는 비평화적, 파멸적, 종말론적 가상 논리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절대 붕괴설과 연착륙설은 그 의미 구성에서 논리적으로 어긋난 구도를 이루고 있다.

북(조선)의 붕괴설에 관련해서는 확인할 길이 없는 종말론적 담론(eschatological discourse)들이 끊임없이 등장·난무하는 바람에 북(조선)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혹 있다고 해도 매우 빈약한 미국과 남(한국)의 대중 사회는 절대 붕괴설을 아예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되짚어보자면, 북(조선) 붕괴설은 어제 오늘에 나온 것이 아니며, 한·미·일 세 나라의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논의된 바있는데, 그 등장 시점을 언론에서 확인해보면 1992년 후반기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무렵 미국과 일본의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북(조선) 붕괴설을 논의하게 된 종말론적 담론의 발생 원인은 그들이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지자 그 연장선 위에서 북(조선)의 붕괴 가능성도 그만큼 확실해졌다고 가상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들의 종말론적 상상력에 자극을 준 것은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로 줄이어 일어났던 1993년의 미국의 핵압박, 1994년의 김일성 주석의 급서, 1995년의 수해 등이었다. 북(조선)에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아가자"는 정치 구호가 나오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어려움들이 겹치게 되자 한·미 두 나라 정부는 북(조선) 붕괴설을 가상 논리가 아니라, 확정적인 사실로 인정하기에 이르렀으며, 북(조선)에서 말하는 '고난의 행군'을 '와해의 행군'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분위기도 생겨났다.

미국에서 북(조선) 붕괴설을 주장·전파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국방부와 군부, 정보 기관, 의회에 속해 있는 강경파다. 그들의 의식 구조는 언제나 냉전적 대결론을 선호한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북(조선) 붕괴는 이제 시간 문제인데, 붕괴는 곧 남(한국)에 대한 '자살 공격(suicidal attack)'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 한·미 두 나라는 '안보 강화의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는 다급한 주장과 촉구다. 이들이 주장하는 안보 강화의 총력전이란 다른 것이 아닌 군비 증강(남[한국]군의 현대화와 주한미군 전력의 첨단화)과 대규모 군사 훈련(단독 또는 합동 군사 훈련)이며, 여기에는 언제나 북(조선)의 군사력은 한·미 연합군의 군사력에 비해 수적 우세에 있다고 하는 '수량 비교 우위론'이 따라붙고 있다.

얼마전까지 중앙정보국(CIA)의 동아시아 정보 담당관을 지냈고, 지금은 하버드대 교수로 있는 에즈라 보겔(Ezra Vogel)은 북(조선)이 앞으로 2-3년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으며, 1996년 2월 22일 미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중앙정보국 국장 존 도이치(John Deutch)도 북(조선)의 경제난과 식량 부족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붕괴가 "충분히 가능하다(quite possible)"고 주장했고, 국방정보국(DIA) 국장이며 현역 중장인 패트릭 휴즈(Patrick M. Hughes)도 폭발(explosion)과 내파(implosion)의 조짐이 보인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 북(조선) 붕괴설을 가장 열심히 주장·전파하고 있는 쪽은 아무래도 국방부와 군부라고 볼 수 있다. 주한미군이 1996년 2월에 작성해, 주한미군사령관 게리 럭(Gary Luck) 등 주한미군 고위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미 국방부와 백악관의 고위 관계자들에게 '보고'하고, 그리고 남(한국)의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에게 '통보'한 「북(조선) 하부 구조 붕괴 유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있다. 이 보고서는 ① 식량난 등 자원 고갈 단계 ② 대상을 선별해 자원을 공급하는 차별화 단계 ③ 생존을 위협 받음에 따라 각 지역별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지역 독립 단계 ④ 중앙 정부의 억압 단계 ⑤ 내부 저항 단계 ⑥ 폭력을 수반한 균열 단계 ⑦ 권력 재편 단계로 붕괴 예상 경로를 전망하고 있는데, 현재 북(조선)은 붕괴 제2단계에서 제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사령관 게리 럭은 1996년 3월 13일에 열린 미 하원 국가안보세출 소위원회에서 "북한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북측의 도발적 행동과 말이 훨씬 더 위협적이고 예측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북한이 붕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붕괴할 것이냐 하는 문제며, 자체 붕괴냐 남침이냐 하는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북한이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붕괴되거나 혹은 내정 문제에 대한 관심을 돌리려는 절박한 시도로 한국에 대한 공격 행동을 취하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평양 지도부는 이성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결집력을 갖고 있지 못하거나 앞으로 이를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으로 진술하면서 '전쟁 가능설'을 강력히 뒷받침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남(한국)에 미사일 요격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게리 럭의 절대 붕괴설은 주한미군의 「북(조선) 하부 구조 붕괴 유형」이라는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붕괴 불가피설과 전쟁 가능설을 결부시키려는 이 논리는 미 중앙정보국장 도이치가 청문회에서 "점차 증대하는 불안정과 불확실성 때문에 북한이 제한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한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미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는 언론 간담회에서 "북(조선)에게는 펑 터져버리느냐(bang) 아니면 훌쩍훌쩍 우느냐(whimper) 하는 문제만이 남아있다. 북(조선)은 남(한국)과의 새로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을 것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고 하는 '공포스러운 예언'을 한 적이 있다. 1996년 4월 30일자 『도쿄신문』은 미 국방부 동아시아담당 차관보 커트 캠벨(Kurt Campbell)이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일본 의원단에게 "북한은 전체 시스템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6-7개월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하였는데, 캠벨은 그로부터 6개월 뒤인 10월에 미국 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서 한 연설에서도 "북한 주민들의 영양 실조 현상이 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특수 집단인 군에서조차 아프리카 기아국에서 만연하는 질병이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 국방부 동아·태과장인 윌리엄 라이트(William Light)는 지난 9월 12일 미 상원 외교위 아·태 소위원회 청문회에서 "그간 특수한 지위에 있던 북한군도 식량난 등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은 북(조선)의 경제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중대한 위기가 임박하기는 했으나 즉각 현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징조는 보이지는 않지만, 15년 뒤에 현 체제대로 존속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주장했다. 어쨋든 소수 강경파가 주장·전파하는 시한부 종말론에는 소종파주의(sectarianism)의 기괴성마저 엿보이는 듯한데, 번번히 그 종말 시한을 넘기고 예언이 빗나가고 만다는 점에서 정치적 점성술(political astrology)의 말장난이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미 국방부의 이러한 종말론적 담론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주장이지만, 방북 경험이 있는 미 하원의원 토니 홀(Tony P. Hall)도 "최근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북한의 모든 것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가지를 목격했다. 지난 1월 이후 북한 주민들의 몸무게가 14kg가량 빠졌다. 그들은 하루에 2백50-3백50g의 식량을 배급받는다고 한다. 주민들은 물론, 북한 군인들까지 극단적으로 지쳐보였다. 그들은 아직 여물지 않은 낱알들을 구하러 들판으로 나갔다. 아프리카에서와 같은 어린이들의 집단 아사사태를 보지는 못했지만, 북한의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고 '제도 마비설'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방문자의 목격담이나 체험담은 피상적 관찰이나 개인적 체험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한계를 생각할 때, 그 진술의 신빙성에 의혹이 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더우기 이러한 주장에 대한 의미있는 반론들이 워싱턴 정가에서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 의혹은 더욱 커진다.

(5) 절대 붕괴설에 대한 반론들

반론은 주로 미 국무부쪽에서 나오고 있다. 1996년 3월 19일 미 하원 동아·태 소위가 주최한 청문회에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윈스턴 로드는 "미 정부는 북한의 식량 부족상황을 기아 상태라기 보다 영양 부족 상태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주한미국대사를 지냈고 현재는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 회장으로 있는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전면적 붕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찰스 카트먼은 한 일간지와 나눈 대담에서 북(조선)이 곧 붕괴할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을 통해 "부분적 정보에 의한 가설이다. 이는 가중되는 식량난과 탈북자의 증가, 김일성 사망 등에 근거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단기적으로 북한의 붕괴가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북한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이른바 '7단계 붕괴설'에 대해서 주한미국대사 제임스 레이니는 "주한미군의 북한 붕괴론은 하나의 가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부는 원래 상정 가능한 모든 위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짜거나 상황을 준비하게 마련이지요"라고 하면서 반론을 제기하였다.

조·미 핵협상에서 미국 대표로 나왔으며, 현재는 조지타운대 국제관계대학장인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는 언론 대담에서 "불안 요인은 많지만 북한 정권이 아직도 정치적 통제력을 장악하고 있고, 40년동안 잘 참고 지냈다. 북한 정권의 갑작스런 붕괴는 현실감 없는 주장이다"고 했으며, 5월 8일 미 공영방송인 PBS 텔레비전 방송순서에서 그는 "북한 사람들이 지난 40년간 엄청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견뎌왔으며 그들은 매우 특수하게 인격화된 정치 지도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붕괴설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발언하였다.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의 코리아담당과장 케네스 퀴노네스(Kenneth Quinones)는 조·미 관계를 주제로 한 강연회에서 북(조선) 경제가 와해 직전에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그런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은 북한이나 중국의 사회 구조가 유교에 바탕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점에서 북(조선)은 옛 소련이나 동유럽의 경우와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1996년 4월 25일자)나 주한 몽골대사 우루쥔루훈데브의 견해(『한겨레』 1996년 2월 24일자)도 모두 같은 유형의 붕괴설 반박론에 든다고 볼 수 있다.

미 국무부 코리아과장 데이빗 브라운(David Brown)은 "현재 북한의 상황은 '위기를 넘어선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로 한때 한반도 위기상황이 있었으나 북·미 제네바 합의로 이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 연구소 코리아센터 연구원이며, 유진 벨 재단 이사장으로 1979년 이후 북(조선)을 가장 많이 다녀온 미국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스티븐 린튼(Steven Linton)도 북(조선) 붕괴설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표명한 바있다.

북(조선)이 사회·정치적 안정 상태에 있지만 식량난에 처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미 국무부 정보 분석관 존 메릴(John Merrill)의 견해가 그러한 시각에 서있다. 그는 "현재 북한 정권이 표류하고 있거나 지도부 내에서 권력을 둘러싸고 투쟁 중이라는 점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분란이 있다면 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쟁이 있을 뿐이다. 북한의 식량 재고는 단지 수주일분 정도에 불과할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북한이 기아 상태를 향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미 의회 조사국 선임연구원 래리 닉쉬는 "그렇지만 평양 정권은 임박한 붕괴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붕괴 임박설은 주로 북(조선) 경제의 전반적인 침체, 그리고 특히 식량 부족에 근거하고 있는데, 식량 부족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기상 상태가 좋으면 북(조선)의 식량 사정은 조금 안정되거나 개선될 수 있다. 식량 부족은 지속적일 것이나, 집단적인 굶주림은 없을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중국주재 대사와 남(한국)주재 대사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미 기업연구소 아시아연구 책임자로 있는 제임스 릴리(James Lilly)는 1996년 9월 12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아·태 소위 청문회에서 "중국 정부는 나에게 북한이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강한 사회이고, 김정일은 리더쉽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다. 북한의 식량난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될 것이다"고 발언했다. 종전에는 붕괴설을 주장해오던 로버트 매닝도 '잠수함 사건' 이후에 발표한 글에서 "북한의 붕괴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제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줄임) 평양은 어떤 분석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탄력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북(조선) 붕괴설과 그에 대한 반론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이르게 되는 결론은 붕괴설이란 그것이 붕괴 예방 연착륙설이건 절대 붕괴설이건 상관없이 붕괴의 필연성에 대한 객관적 근거제시가 매우 빈약한 가상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며, 바로 그런 맥락에서 종말론적 기대(eschatological expectation)를 내장하고 있는 비과학적 담론이라고 볼 수 있다.

(6) 붕괴설-연착륙설 구도는 존속할 수 있는가

붕괴설은 가상 논리로서는 존속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논리 구조로서는 더이상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미국의 보수·강경파들은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대결주의에서 벗어나서 가상 논리인 붕괴설을 거두어들이고, 탈냉전적 방향으로 자신들의 정책적 사고를 전환해야 할 때가 된 것같다.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선임연구원 셀릭 해리슨(Selig S. Harrison)은 1995년 10월 북(조선)을 방문한 뒤 언론 대담에서 마치 보수·강경파들이 들으라는듯이 "워싱턴과 서울에서는 아직도 북한 체제 붕괴를 기대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데 그것을 기다리다가는 늙기만 할 것입니다"고 말한 바있다.

그렇다면 연착륙설은 존속할 수 있을까? 위에서 살펴본대로, 연착륙설은 미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와 지향이 담겨져 있는 담론 체계다. 거기에 녹아있는 미국 정부의 주관적 요구는 과연 실현가능한 것인가? 온건파 정책 수립가들이 북(조선)의 연착륙설에 대하여 다시 한번 검토하고 숙고해야 할 때가 된 것같다. 연착륙설의 실현 가능성은 북(조선)이 과연 개혁·개방유도 연착륙 정책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달려있다. 만일 미국의 주관적 요구를 북(조선)이 거부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끌고가게 된다면 연착륙 정책은 파산당하고 말 것이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이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정책적 사고를 가동할 때가 된 것같다. 스탠리 로스가 1996년 3월 19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지적한대로, 북(조선)이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경제 개혁, 남북 대화 재개, 조·미 현안 등이 선결되어야 하는데, 북(조선)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래리 닉쉬는 "만일 북(조선)에서 임박한 붕괴가 발생하지 않고, 북(조선) 정부가 개혁을 추진할 의향이 없는 채로 계속 남아있다고 한다면, 미국은 앞으로 3년이나 그 이상의 기간동안 북(조선)과의 관계에서 순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에게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 않는 이 경고성 발언은 붕괴설과 연착륙설이 모두 실현 불가능한 '가설'로 판명되는 미래 상황을 내다보면서 우려하는 발언이다. 그의 예상대로 북(조선)이 붕괴하기는 커녕 안정적으로 존속하고, 미국의 연착륙 정책에 이끌려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기는 커녕 오로지 조·미 관계 개선만 외곬으로 추진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북(조선)은 실제로 붕괴설-연착륙설 논리 구도에 대해서 코웃음을 치고 있는데, 이것을 단지 수사적 표현이라고만 보아넘길 수 있을까? 만일 북(조선)이 오로지 조·미 관계 개선만 추진하려 하면서 미국의 주관적 요구인 개혁·개방을 거부하거나 극히 제한적으로만 수용한다면, 미국의 붕괴설-연착륙설 논리 구도는 결국 파산되고마는 것이 아닐까? '붕괴위기'에 다가서고 있는 것은 사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아닐까?

탈냉전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미국은 북(조선)의 위기를 가상하면서, 그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추구에 유리한가 하는 위기 관리 문제를 안고 고심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안정된 북(조선)과 어떻게 협상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 추구에 유리한가 하는 문제를 놓고 새로운 고심을 시작해야 할런지 모른다. 이것은 미국의 북(조선) 정책이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하는 시점에 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시대가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격변기라는 시대 인식은 미국의 대북 정책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1996년 11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