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회담 제안과 군비 증강의 모순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들어가는 말

탈냉전 시대에 관련된 담론들이 국제 사회에 쏟아져 나온지도 벌써 오래 되었다. 남북 기본합의서가 채택되었고, 오랫동안 적대 관계에 있던 북(조선)과 미국이 관계 개선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최근에는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를 수립하는 문제를 풀어내기 위하여 4자 회담 제안이 나왔다. 이러한 경향과 추세로 미루어봐서 지난 시기 한(조선)반도를 짓눌러왔던 냉전 질서가 머지 않아 해체되고 마침내 공고한 평화 질서로 대체되는 게 아니냐 하는 기대와 희망적인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국제 사회의 탈냉전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한(조선)반도에서는 이러한 기대와 희망적 관측을 부정하는 신(新)냉전 기류가 흐르고 있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풀리기는 커녕 도리어 더욱 조여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냉전이 끝났는 데도 유독 한(조선)반도에서는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은 1996년 4월 17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안보 공동 선언'에도 드러나 있다.

그런데 더욱 중대한 문제는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군비 증강과 군사 훈련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위협은 어느 쪽에서 가하고 있는가 하는 '민감한' 물음에 대해서는 관점과 견해의 차이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리영희 교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과 남한의 군사적 위협은, 그들의 관점에서 판단하는 바로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한 말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다.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는 앞으로 4년 밖에 남지 않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과연 변화 단계로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가? 한(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궁극적으로 군비 축소가 이루어지고 공고한 평화 질서가 수립될 수 있을까? 오늘 미국과 남(한국)이 조·미 관계 개선, 4자 회담 제안과 전면적으로 모순되는 군비 증강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을 본다면, 이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일 수 없다. 여기서 또다른 물음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4자 평화 회담 제안이 나온 뒤에도 여전히 냉전의 공포와 긴장감 속에 있는 한(조선)반도의 모순에 찬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글은 이 '모순에 찬 현실'을 분석하기 위한 한 시도다.


(2) 미국의 군사 전략망 속에 갇혀있는 한(조선)반도

탈냉전기에 들어오면서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았다는 사실은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평가에서도 쉽사리 확인된다. 미국은 이미 오래 전에 하와이를 중심으로 대만→한(조선)반도→일본열도→알래스카→미 서부 지역 연안을 부채살 모양으로 연결한 거대한 군사 전략망을 펼쳐놓았다. 태평양을 내해(內海)로 지배하고, 아시아 대륙을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묶어두려는 세계 전략 구상으로 알려진 이른바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를 안받침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군사 전략망이다. 이러한 미국의 군사 전략망을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보호'라고 생각하는 견해가 있지만, 그 군사 전략망을 설치·운영하는 근본 목적이 남(한국)의 안전 보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 미국이 자기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군사 전략망을 운영하고 있는 통치 세력이 만일 동북 아시아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에 이른다면, 저들은 한(조선)반도를 폐허로 만들 국지전도 수행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관점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보자면 동방의 적은 땅 한(조선)반도는 '냉전의 볼모'다. 이 거대한 군사 전략망 속에서 휴전선 이남 지역은 갇혀있는 셈이고, 그 이북 지역은 대치하고 있는 상태다. 한(조선)반도를 포함하여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드리운 미국의 군사 전략망은 최근 탈냉전 분위기에도 아랑곳 없이 여전하며, 앞으로도 좀처럼 변화될 조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는 1996년 4월 15일 도쿄의 미 대사관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 실현되면 그때 가서 동아시아의 미군 병력 규모나 군사 배치를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결국 동아시아에 전진 배치한 군사력을 언제까지나 변동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부장으로 동북 아시아 정책의 책임자였던 더글러스 펄 전 미대통령 특별 보좌관은 1995년 10월 28일 『마이니치신문』과 한 회견에서 미국은 오키나와에 주둔시키고 있는 미 해병대를 남(한국)으로 이동·배치하여 동북아 군사 전략의 축을 오키나와에서 남(한국)으로 이전시킴으로써 "북한이 무너진 뒤에 한국에서 제기될 미군 철수 요구에 선수를 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음을 밝힌 바있다.

미국의 군사 전략망 가운데, 우선 한(조선)반도의 군사 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미 태평양 사령부의 전력을 살펴보자. 미 태평양 사령부(PACOM: U.S. Pacific Command)는 31만5천여 명의 병력으로 태평양과 인도양에 걸쳐 있는 지구 표면의 52%를 작전 구역(AOR)으로, 세계 인구의 60%를 작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바, 세계 최대의 군사력을 지휘하는 곳이다.

진주만 동쪽 마칼라파 분화구에 자리잡고 있는 미 태평양 함대사령부(PACFLT: U.S. Pacific Feet)는 일본 요코스카에 기지를 두고 있는 제7함대와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에 기지를 두고 있는 제3함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 해군 전체 전력의 60%를 태평양 함대사령부가 지휘하고 있는 셈이다. 핵추진 잠수함 5척을 포함한 잠수함 48척, 항공모함 7척을 포함한 각종 함정 2백60 척, 항공기 1천6백 대, 병력 21만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요코스카를 기지로 하고 있는 제7함대는 인천상륙작전, 베트남전, 걸프전에 주력군으로 참전하였으며, 걸프전에서는 6개 항모전투단을 이끌고 2백여 척의 다국적군 함정을 지휘했다고 한다. 제7함대는 병력 6만 여명(해군 3만8천 명, 해병 2만2천 명), 8만t급 인디펜던스호(재래식 항모), 니미츠호(핵추진 항모), 함정 70여 척, 항공기 4백50 대로 이루어져 있다.

미 태평양 해병사령부에 소속된 미 캘리포니아의 제1해병 원정군, 오키나와의 제3해병원정군은 일부 병력과 장비를 4만-6만t급 대형 수송함 여러 척에 실은 채 전투 대기 태세에 있다. 미국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는 병력을 재빨리 무장시킬 1개 중여단급 군사 장비를 남(한국)에 배치해두고 있다.

하와이 히캄 기지에 있는 미 태평양 공군사령부는 남(한국) 오산 기지의 제7공군, 일본 요코다 기지의 제5공군, 미 알래스카 엘먼도프 기지의 제11공군, 괌 앤더슨 기지의 제13공군으로 편성된 공군력을 지휘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제11공군사령부는 미 태평양 공군사령부 예하에 있으며, 알래스카 통합사령부, 북미주 방공사령부(NORAD)와 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는데, 이 사령부는 F-15 전투기 44 대, F-16 전투기 18 대, C-130 수송기, E-3B 조기 공중경보 관제기 2 대를 지휘하고 있다. 한(조선)반도 영공도 이 사령부의 제공권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주한 미공군(제7공군)과 합동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미 태평양 사령부는 정보 위성과 정찰기 동원, 전자정보 수집체계 등을 통해 북(조선)에 대한 면밀한 감시·첩보 활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미 태평양 사령부는 북(조선)을 겨냥한 '시간별 병력투입 목록(TPFDL)'을 작성해놓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엄청난 무력을 짧은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려고 하는 미국의 '군사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 목록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1단계는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에서 F-15, F-16 전투기들이 곧바로 발진하고, 한(조선)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작전을 벌이고 있는 미 항모 전투단이 투입된다. 조기 공중경보 관제기(AWACS) 3 대와 E-2C 2 대가 한(조선)반도 상공에 투입된다.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특전사 요원,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2만여 명이 출동한다.

제2단계는 미 본토의 2개 군단 약 10만 명, 항모 전투단 3-4 개가 추가로 투입되고, B-1, B-52 장거리 폭격기가 태평양을 건너 북(조선)의 핵심 군사 시설을 폭격·파괴한다. 병력 12만 명, 전투기 3백 대, 공격용 헬기가 투입된다.

미 국방부는 한(조선)반도와 같은 주요 지역 분쟁(Major Regional Conflict)에 항모 전투단 5 개, 해병 원정군 1 개, 육군 5 개 사단, 전투 비행단 10 개, 폭격기 1백 대, 특전 부대 등 최대로 병력 43만 명을 투입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신속 대응군'(RRF) 체제는 육군 2개 사단, 해병 1개 부대로 된 지상군 1개 군단, 병참 및 지원 부대 10만 명, 전투기 6백 대를 갖춘 전술 전투비행단 8 개, 공격용 헬기 3백 대를 보유한 헬기 부대로 편성되어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전진 배치해 놓은 미국의 군사력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주일미군은 병력 5만5천6백 명(해병 1만9천 명, 공군 1만4천8백 명, 해군 6천 명, 육군 1천9백 명), 전차 70 대, 항공모함 1척을 포함한 함정 64 척, 전술기 2백 대를 동원하는 막강한 전력으로 편성되어 있다. 주일미군의 배치 상황을 보면, 미자와 기지에 공군 및 해군 항공부대 4천7백20 명, 이와쿠니 기지에 해병대 2천2백5 명, 사세보 기지에 해군 3백70 명, 캠프 자마에 주일 미육군사령부 8백10 명, 요코다 기지에 주일 미공군사령부 3천8백30 명, 아쓰기 기지에 해군 항공부대 9백60 명, 요코스카 기지에 주일 미해군사령부 2천1백25 명, 오키나와 기지에 해병대, 공군 등 2만7천2백20 명 등이다. 주한미군은 지상군 중심인데 비하여, 주일미군은 해·공군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어 두 지역 주둔군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고 한다.

주한미군은 병력 3만7천 명, 전차 2백 대, 하와이 주둔군은 병력 4만5천 명, 전술기 1백50 대, 함정 26 척, 잠수함 17 척으로, 알래스카 주둔군은 병력 2만 명, 전차 70 대, 전술기 90 대로, 괌 주둔군은 병력 5천 명과 제13공군사령부로, 사이판 주둔군은 해상 사전 배치 전대(해병대)와 육군 해상 사전 배치 전단(Maritime Preposition Ship, 1개 여단분)으로, 싱가포르 주둔군은 서태평양 군수사령부로, 디에고 가르시아 주둔군은 제3해병 사전 배치 전대와 육군 해상 사전 배치 선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한(조선)반도가 자리잡고 있는 동북아 지역에 전진 배치해 놓은 미국의 군사력은 병력 11만5천 명, 전술기 4백24 대, 함정 64 척이다.

(3) 주한미군과 남(한국)군의 군비 증강 실태와 그 추진 방향

얼마전 한(조선)반도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4자 평화 회담 제안이 있었지만, 그 제안 뒤에는 지금 신(新)냉전의 차거운 기류가 흐르고 있다. 주한미군과 남(한국)군의 군비 증강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남(한국)은 대치 상대인 북(조선)을 한·미 연합군의 군비(軍備)로 완전히 압도하는 날까지 무력 증강을 멈추지 않겠다는 기세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고립·봉쇄 상태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조선)이 견디지 못할 때까지 군비 증강 수준을 극대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먼저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들이 엄청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F-16 80여 대(남〔한국〕공군 보유대수의 두 배), A-10 지상 공격기 21대, AH-64 아파치 헬기를 비롯한 공격용 헬기 1백23대, 에이타킴스 지대지 미사일 및 다연장 로켓 40기, 특수 작전용 헬기인 H-53J 등이 그것이며, 4개 전투여단으로 구성된 미 2사단은 미군 사단급 부대 가운데서 가장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완전 전자화된 지휘 통제·통신·정보 체계를 통해 작전을 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으므로, 그 공격력은 남(한국)군 1개 군단(3개 사단)에 버금가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북(조선)의 수많은 탱크와 전투기들은 별로 큰 위협이 되지 못하고, 가장 위협적인 것은 "휴전선에서 수도권을 행해 분당 5천-1만 발씩 무차별적으로 쏘아댈 대구경 장거리포"라고 지적한 바있지만, 주한미군은 "대(對)적군 포대 포착 레이더와 미 공군과의 정보 연계를 통해 정밀 공격용 항공기로 수백 대에 달하는 북한의 장거리 포대를 초탄 내지 제2탄 발사 이후 거의 전부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최근 주한미군의 군비 증강 실태는 언론에 드러난 것만을 보더라도 아래와 같다.

199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이후 미국은 한(조선)반도 유사시 이 지역에서 조기 전개되는 증원 전력(FDO)의 규모를 종전보다 두 배 늘린 항공모함 전투단 2개와 군단 2개(미 제1군단과 제3군단)로 각각 강화했다고 한다. 또한 최근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늘어나게 된 것과 더불어 지원 병력의 수요도 늘어나자 미국은 2003년까지 육군 1개 연대 규모인 2천7백40여 명을 남(한국)에 추가로 배치할 것이라고 한다. 미 해군은 원격 조작으로 미사일을 발사하여 상대측 육·해·공군을 공격할 수 있는 첨단 장비를 장착한 '로봇 군함'을 2001년께 한(조선)반도 주변에 배치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자국이 개발한 차세대 패트리어트 및 해군 미사일 방어 체제를 오는 1999년 초까지 실전에 배치하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은 1996년 7월 16일 최신식 공격용 헬기인 AH-64 아파치 헬기 66 대를 주축으로 한 항공여단을 창설하게 되었다고 하며, 현재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OV-10 모호크 전술 정찰기에 비해 정찰 능력을 훨씬 향상시켜 야간과 악천후, 구름에 관계 없이 정찰 활동을 할 수 있는 고성능 첨단 정찰기를 1996년 6월 30일부터 주한미군에 배치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남(한국)군의 군비 증강 실태는 어떠한가?

군축 문제에 관하여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한 전문가는 남북의 군사력 균형에 관련하여 남(한국)의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우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군사력의 균형이 깨지고 남(한국)이 북(조선)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하는 사실은 이미 1988년 8월 국회 통일정책 특별위원회 공청회에 제출·발표한 리영희 교수의 논문에서 명확하게 논증된 바있다.

남(한국)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올라섰다고 한 것이 이미 1980년대 후반인데, 그 뒤로 남(한국)의 군사비가 끊임없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 사실은 최근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도 지적한 바있는데, 이 보고서를 따르면, 남(한국)의 군사비(공식규모 기준)는 1987년부터 1993년 사이에 35.9%가 늘어났으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이 증가율은 일본(16.8%), 중국(6.4%), 대만(24.1%), 호주(1.9%), 인도(10.6% 감소), 미국(28.2% 감소) 등에 비해 훨씬 높으며, 군사비 규모는 1993년 현재 1백21억 달러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많다(일본 군사비의 약 3분의 1)고 한다. 1995년 11월 28일 통계청이 내놓은 『남북한 경제사회상 비교』라는 자료는 1985년에 이르러 남(한국)의 군사비가 북(조선)의 군사비에 비해 1.2배가 많아졌으며, 1994년에는 그 비율이 1백30억3천만 달러 대 56억6천만 달러가 되어 2.3 배나 많아졌다고 밝힌 바있다. 남(한국)의 군사비는 1990년 106억 달러에서 1993년 120억 달러로 3년 동안 13.6%가 늘어났는데, 북(조선)의 군사비는 1990년 52억 달러에서 1993년 21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북(조선)의 군사비에 관한 남(한국)의 관급(官給) 통계 자료들은 한결같이 오차가 매우 큰 '주먹구구식 방법'으로 북(조선) 군사비를 추산하면서, 대북 정책의 필요에 따라 통계 수치를 늘이는 방향으로 북(조선) 군사비를 추산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남(한국)과 북(조선)의 군사비 격차는 위에 언급한 비율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리영희 교수는 "국방비가 공개된 것만 하더라도 1992년 107억 달러인데, 지난 수 년 동안 매년 평균 40억 달러 정도가 무기 구입비로 투입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국방비의 약 3분의 1 정도인 40억 달러의 현대 무기 구입비만도 북한의 연간 총군사비보다 훨씬 크다"고 지적한 바있다.

남(한국) 국방부가 1995년 12월 22일 처음으로 공개한 「국방중기계획」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동안 지출할 군사비 예산 규모를 정한 것인데, 운영 유지비가 63조6천억 원, 방위력 개선비가 23조4천억 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방위력 개선비는 무기 구입과 무기 개발에 투자하는 예산인데, 구입하게 될 무기들은 조기 공중 경보 관제기(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 AWACS), 무인 정찰기를 포함한 정보 수집 및 조기 경보 장비, 에이타킴스 지대지 미사일, 다연장 로켓포(Multiple Rocket Launcher System), 보병 연대를 적진 깊숙이 투입하는 UH-60 및 CH-47 등 강습 헬기, 먼바다 및 전천후 작전 능력을 갖춘 4천t급 구축함 등이라고 한다. 남(한국)의 군부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조기 공중 경보 관제기 E-3C기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이며, 미국, 영국, 프랑스, 사우디 아라비아가 보유하고 있는 이 첨단 항공기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 남(한국) 군부는 1991년부터 비밀스럽게 첨단 정보 수집 장비를 사들이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이를 1996년 6월 28일에 공개했다. 이 구입사업은 원격 조종 감시 체계(RCSS)와 영상 레이더 체계(LAIRS-II), 그리고 이 장비를 싣고 비행할 정찰기 호크 800XP에 관련된 것이다.

워싱턴에서 나오는 『월간 무기 무역 뉴스(Arms Trade News)』 4월호의 기사를 보면, 미국의 1995 회계 연도(1994년 10월에서 1995년 9월)에서 미 정부가 승인한 민간 차원의 군비 판매액(비밀 판매액을 포함) 가운데서 남(한국)에 대한 판매액은 약 9억8천6백만 달러로 세계 1백51개 나라들 가운데 5위에 올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도에 남(한국)의 무기 수입액은 모두 4억1천4백만 달러로 개발 도상국 15개 나라들 가운데 10위를 차지한 바있었는데, 불과 2년 뒤에 전 세계 순위에서 5위로 올라섰으며, 금액도 두 배가 넘어섰다. 한편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1996년 6월 13일 발표한 연례 보고서를 보면, 남(한국)은 1995년에 재래식 무기 16억7천7백만 달러 어치를 사들여 세계 2위의 무기 수입국으로 올라섰다고 하는데, 이 수입액은 1994년의 수입액 4억8천5백만 달러에 비해 한 해 사이에 무려 2백46%나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1996년 5월 2일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는 워싱턴에서 기자 회견을 통해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미 군수 산업계가 51억-67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남(한국)에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남(한국)의 구체적인 무기 구매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는 전자 첩보기, 조기 공중 경보 관제기, 공격용 헬기, 개량형 지대공 미사일, 다연장 로켓, 구축함이 포함되어 있는데, AH-64 아파치 헬기 18대와 사거리 40km급 2백27mm 다연장 로켓 발사기(MLRS) 24대(1개 대대)를 미국에서 사들이는 문제는 이미 1997년도 예산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한다. 남(한국)은 미국에 45RIM-7P 스패로 함대공 미사일 및 부품을 주문했으며, KDX-I 구축함과 SS209 잠수함에 장착할 하푼 미사일 46기도 구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남(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대전차 미사일인 TOW-1 미사일을 개량한 TOW-2A를 2백억원 어치, 차세대 전투기사업(KFP)으로 배치되는 F-16기에 장착할 전방위 미사일인 암람(AMRAAM: Advanced Mmedium-range Air-to-air Missile)미사일은 3백억원 어치를 사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남(한국) 군부는 최대 사정거리 1백km짜리 중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오는 2000년까지 사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 미사일은 북(조선) 지대공 미사일 사정거리 밖에서 전략 목표물들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이므로 남(한국) 공군의 공격력을 크게 높혀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남(한국)의 국방부가 1996년 7월 12일 확정·발표한 '1996년도 5차 방위력 개선 사업'에서는 새로 사들이는 무기들이 미국산 상륙 돌격형 장갑차 50여대, 남(한국)산 해안 감시 레이더 영상 변환 장치, 방공포대의 정보 교환 및 작전 통제를 위한 방공 지휘 통제 장비(미국산)이며, 4천2백t급 한국형 구축함(KDX-II) 기본 설계비, 미국산 고등 훈련기인 T38기 30여 대 임차료를 합해 1996년도 상반기에 모두 1조9백억 원을 지출했다고 밝힌 바있다.

남(한국) 군부는 1995년 8월 17일 '장비 및 보급품 일괄 처리에 관한 한·미 합의 각서'를 체결하면서, 주한미군이 전쟁 예비 물자로 비축하고 있던 M48-A5 전차 2백75대, 8인치 자주포 13문, 탄약 4만여t 등 6천7백만 달러(약 5백30억 원) 어치의 군비를 넘겨받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남(한국)이 군비를 증강하고 있는 두 개의 축 가운데 하나인(다른 한 축은 무기의 자체 개발이다) 무기 구입은 주로 미국산 무기를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 사업과 남(한국)의 군비 증강 추세가 상호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미국의 관·군·산 복합체의 이해 관계와 남(한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전세계 무기 판매망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지역별 무기 판매 비율(1982-1991년 평균율)을 보면, 중동 지역 및 남아시아 지역이 47%로 가장 많고, 유럽 지역과 캐나다가 28%, 동아시아 지역이 21%라고 하는데, 동아시아에서 미국산 무기를 많이 사가는 '단골 손님'이 남(한국)이다. 이처럼 미국의 무기들을 계속 사들이면서 군비 증강을 꾀하고 있는 남(한국)에 대한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라빈더 팔 싱 박사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외국의 첨단 무기를 계속 사들이면 한편으로 군사력을 높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북한으로 하여금 군비 증강에 나설 수 밖에 없도록 압박함으로써 결국 전체적인 안정감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남(한국) 군부는 미국산 무기를 수많이 사들이는 것과 별도로 '무기의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1970년대 초에 남(한국)은 기관총, 탄약, 전투기, 지대지 미사일을 비롯하여 12개가 넘는 미국산 무기를 완전 자체 생산하거나 부분 생산할 수 있는 인가(認可)를 미국으로부터 받았으며, 약 10년 뒤인 1982년에는 10억달러에 가까운 무기를 해외에 수출함으로써 제3세계 무기 수출국들 가운데서 5위를 차지하였다.

'현대전의 총아'라고 하는 미사일 개발 수준을 보면 남(한국)은 미국의 정치적 규제 조치(이른바 '미사일 각서'의 준수 의무)에 묶여 있기 때문에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남(한국) 미사일 개발 능력의 잠재력을 평가해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박정희 정권은 평양을 공격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 개발에 나섰고, 1978년에 미국의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개량한 지대지 미사일을 자체 개발하였다. 미국의 미사일 전문가인 제인 놀런(Janne Nolan)은 남(한국)은 이미 그 당시에 미국의 도움을 받아 "훌륭한 전술 핵무기라고 할 수 있는 무기 개발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한 바있는데, 이것은 남(한국)이 미국의 규제가 풀리기만 하면 언제든지 전술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고성능 미사일을 개발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로 풀이할 수 있다.

남(한국) 군부는 1974년부터 이른바 '율곡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군비 증강을 추진해오고 있는데, 제1차 기간인 1974-1981년에는 각종 공용 화기 생산, 고속정 건조, F-4 팬텀기 도입이 이루어졌고, 제2차 기간인 1982-1986년에는 자주포, 한국형 전차, 한국형 장갑차를 개발했으며, 한국형 구축함을 비롯한 주요 전투 함정을 건조했고, F-5 전투기를 기술도입을 통해 생산했다. 제3차 기간인 1987-1994년에는 전차, 장갑차, 자주포를 양산했고, 헬기, 잠수함, F-16 전투기를 기술 도입을 통해 생산했으며, 각군의 장비 성능을 개량했다고 한다. 또한 오는 1999년에 끝나는 F-16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 이후 F-15급 최신예 전투기를 주축으로 하는 차차세대 전투기 사업(FXX사업)과 공중 작전 영역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넓히기 위해 공중 급유기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이 '21세기 전략형 공군 전설'에 들어갈 비용은 약 21조5천9백12억 원으로 같은 기간 남(한국)군 전체의 군사력 증강 예산의 약 31.3%를 차지한다.

최근 언론에 나타난 사례들을 보면, 남(한국) 군부는 화력과 기동성이 기존의 K-55 자주포에 비해 훨씬 향상된 사거리 40km급 XK-9 자주포를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개발하였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박격포보다 사거리가 1.5배나 늘어난 최대 사거리 4천7백m의 81mm 신형 박격포를 개발했으며, 올해부터 실전 배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현재 해군의 주력함인 1천5백t급 호위함보다 서너배 높은 작전 능력과 전투력을 갖춘 4천t급 한국형 구축함(KDX-II)을 앞으로 6년 동안 건조하기 위한 설계 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최첨단 이지스 방어 체계를 갖춘 7천t급 한국형 구축함(KDX- III)과, 헬기와 수직 이착륙기인 해리어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어 경항공모함으로 운용할 수 있는 1만t급 대형 수송함(LPX) 건조 사업을 위해 설계비를 1997년도 예산에 반영했으며, 유도 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잠수함 3척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연차적으로 건조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잠수함, 구축함 등에 장착할 신형 경어뢰를 2000년대 초까지 자체 개발하기로 했다고 한다.

(4) '한(조선)반도의 위기'와 한·미 군사 훈련

미국과 남(한국)은 '한(조선)반도의 위기'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한 군사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한(조선)반도에서 냉전 시기 내내 군사적 긴장 상태를 유지·고조시켜온 낡은 무력 대치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1990년대 이후 탈냉전 시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한(조선)반도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이 기존의 '남침 위협설' 뿐만아니라, 북(조선)의 '내부 혼란'과 '붕괴 가능성'에도 있다는 새로운 논리가 첨가되었다. 이른바 '북(조선) 붕괴 임박설'은 냉전·수구 세력의 무력 대결 정책을 합리화·정당화시켜주면서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무제한으로 연장·유지시키고 있는 구실이 되었다.

'북(조선) 붕괴 임박설'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조·미 관계 개선을 통한 유도·편입 전략(이른바 '연착륙' 전략)의 추구고, 다른 하나는 강력한 무력 대응이다. 전자가 탈냉전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면, 후자는 냉전 질서의 공고화 현상과 군사적 대치 상태의 첨예화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양립될 수 없는 모순 구조를 한(조선)반도의 현실 위에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1995년 7월부터 한(조선)반도의 위기 상황에 대비한 독자적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1996년 3월말 현재까지 적어도 세 차례 훈련이 있었다고 한다. 동해안에서 실시된 이 훈련에는 미 태평양함대 소속 원자력 잠수함, 미 본토에 주둔하고 있는 B1-B, B-52 전폭기 등이 참가했다고 하는데, 주한미군은 이들 장비를 철수하지 않고 "북한 도발에 대비한 가상 훈련"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남(한국)의 한 일간지도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의 핵잠수함이 지난해 7월 이후부터 2회 이상 동해안 등 한반도 해역에 출동했다.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이 훈련은 대북 정세의 판단에 변함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1995년 8월말 한·미 연합군은 '95 을지·포커스 렌즈 훈련'에서 '전투력 증강(Force Enhancement)전략'을 시험하여 기존의 '신속 전개 억제 전력(Flexible Deterrence Option)'의 경우보다 더 많은 전폭기를 한(조선)반도에 동원했다고 한다. 1995년 10월 13일부터 11월 17일 기간에는 한·미 합동훈련인 '독수리 훈련'이 있었는데, 지난 1966년부터 해마다 실시해오고 있는 이 훈련에는 상륙훈련, 대공(對空)·대함(對艦)·대잠수함전 평가, 특수전 훈련, 기뢰 제거 훈련이 포함되었고, 이번 훈련에는 미 제7함대의 지휘함 블루리치함이 이끄는 핵잠수함, 구축함, 상륙함 등 함정 9척과 미 본토 및 태평양 지역에서 동원된 미군 1만여 명, 주한미군 2만여 명, 서울 이남 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남(한국)군이 모두 참가한 엄청난 규모였다고 한다. 1996년 1월 20일부터 28일까지 서해 중부 해역에서 '한·미 합동 대잠 준비 태세 훈련'이 실시되었는데, 이 합동 훈련은 그로부터 열흘 전 미국의 공격용 핵잠수함 버밍햄호가 진해 앞바다에서 남(한국)해군과 대잠 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진 대규모 훈련이었다.

1996년 2월 중순 한·미 연합사와 제3군 사령부의 남(한국)군 2백85 명이 미국 텍사스의 미 육군 3군단과 한 주일동안 한·미 연합군의 '작전 계획 5027'을 따라 한(조선)반도 지형을 모형으로 차원 높은 합동 훈련을 처음으로 실시하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미 제3군단이 한(조선)반도에 파견될 경우에 대비하여 병력 전개 계획과 상호간의 임무 수행 및 협조에 관한 훈련이었다고 한다. 이 합동 훈련은 199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 이후 미국이 한(조선)반도 유사시 이 지역에서 조기 전개되는 증원 전력(FDO)의 규모를 종전보다 두 배나 늘리기로 하여 새로 추가된 미 육군 제3군단과 남(한국)군이 손발을 맞추기 위한 합동 훈련이었다.

1996년 5월 22일부터 약 한달 동안 하와이 주변 해역에서 실시된 환태평양 합동 군사훈련(RIMPAC 96)은 연안 전투를 가정한 군사 훈련으로, 미 해군 7함대와 일본 해상 자위대가 하와이 일부를 침공하고, 미 해군 제3함대와 남(한국), 호주, 캐나다가 '다국적군'을 편성하여 그 지역을 탈환하는 훈련이었다. 1996년 7월 4일부터 이틀 동안 동해와 포항 앞바다에서 실시된 한·미 합동 대잠 훈련에는 남(한국)측에서는 1천3백t급 잠수함 최무선함이 처음으로 참가했고, 구축함을 비롯한 함정 6척과 대잠 초계기 P-3C도 참가했다.

이와같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남(한국)군의 단독 군사 훈련도 실시되고 있는데, 1996년 3월에 열린 '호국 96' 훈련은 한국(조선)전쟁 이후 최대 규모로 전방에 배치한 군단 2개를 동원한 야외 기동 훈련이었다. 남(한국)은 육군 사단급 부대의 병력 규모를 줄여 경량화하는 한편, 1백55mm 자주포, 다목적 전투 차량, 40mm 고속 유탄 기관총 등 발전된 무기 체계와 장비를 보강하여 기동력과 화력을 크게 강화하기로 하고 이같은 내용을 시험 평가한 뒤 2000년대초에 확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실전 훈련과 전쟁 연습들에 대해서 북(조선)이 극도로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남(한국)의 한 일간지는 북(조선)이 날카로운 경계심을 보이고 있는 군사 훈련은 "한·미 연합 해군 기동 훈련, 한국군 2개 군단이 참가한 '호국 96' 훈련과 앞으로 미 본토 병력과 연합으로 실시될 한·미 연합 기동 훈련 등"이라고 지적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한·미 합동 해군 기동 훈련이나 1994년 7월 이후 B-1 전략 폭격기까지 동원해 실시하고 있는 미 본토의 병력과 남(한국)군의 합동 군사 훈련에 대해서는 남(한국)의 군부가 "통상적 훈련"이라고 해명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북한은 이런 훈련들을 팀 스피리트 훈련의 재판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5) 냉전의 신화로 남은 '남침 위협설'

1980년 5월 남(한국)의 군부가 북(조선)의 전력(戰力)에 대한 평가를 공개하면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북(조선)의 전력을 과장하고 이른바 '남침 위협설'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얼마전에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조작된 '남침 위협설'은 문민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되풀이하여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를테면, 남(한국)의 한 언론은 중국의 당·정·군 수뇌부가 비밀 회의에서 북(조선)이 남침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남침 임박설'을 베이징의 한 소식통이 한 말이라고 하면서 대서 특필하였다. 또 얼마전에는 귀순한 조종사의 '증언'을 통해 '남침 계획 수립설'을 퍼뜨리기도 했다. 이러한 관행 때문에 남(한국)의 대중 사회가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에 관한 당국의 발표를 믿지 않게 되었으며, 당국이 '안보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삼성 교수는 "남북한 사이의 군사력 균형에서 북한이 우위에 있다는 (한·미 양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에 대해서 갈수록 많은 회의가 제기되어왔다. 한국인들 내부에서도 주한미군을 제외하고도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은 남한이 유리한 상황에 있으며, 북한은 남한에 대해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의도도 능력도 없다는 인식이 점증해왔다"고 지적한 바있다.

소련·동구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한 뒤로 남(한국) 군부는 북(조선)에 대한 '안보 불안감'이 줄어들어 상당히 여유있는 태도를 갖게 되었는다는 데도 "군부는 그 존재 이유(raison detre)때문에 아직도 북한의 군사 위협을 계속 강조하고 있으며, 동북아에 제1강국으로 계속 남으려는 미국의 정책과 맞물려 계속 군비 증강 및 주한미군 주둔을 역설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부수적으로 한·미의 산군 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이해 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견해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관련하여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남(한국)의 냉전·수구 세력이 여전히 '남침 위협설'을 내세우면서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는 실태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 일간지는 남(한국)군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1995년에 들어와서 북(조선)은 "170mm 자주포와 240mm 방사포도 각각 50여문, 1백여 문을 서부 전선 지역에 설치해 서울 등 수도권에 대한 포격이 가능한 것"이라고 보도한 바있다.

1995년 12월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권영해 안기부장은 북(조선)이 1995년 10월 전투기, 전폭기, 수송기, 헬기 등 4백20여 대를 전·후방 기지로 재배치하면서 항공기 90여 대 이상을 비무장지대 40km 안팎에 있는 예비 기지 세 곳으로 전진 배치했다는 것과 그 가운데 IL-28 폭격기 1개 연대는 의주에서 태탄으로 옮겨 서울 공격 시간이 30분에서 5분으로 줄어들었다는 것과 MIG-17 70여 대를 전진 배치시켰는데, 그것은 구형기인 MIG-17로 1차 공격을 감행한 뒤 이어 MIG-29 등 최신예기로 2차 공격을 하려는 전술로 보이며, 서울 공격 시간이 종전 8분에서 6분으로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항공기를 전진 배치한 실제 이유는 그 당시 한·미 연합 훈련인 독수리 연습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으며, 전진 배치한 항공기인 MIG-17은 한국(조선)전쟁 때 참전했던 MIG-15가 나온 직후에 개발된 기종으로 기껏해야 폭탄 1-2발 정도를 달고와 떨어뜨리는 성능을 가지고 있는 '전쟁 박물관 전시용'이며, MIG-19도 지난 1950년대에 개발된 '고물 항공기'고, IL-28 폭격기는 폭탄 탑재량이 F-4 팬텀기에도 못미치는 '고물 폭격기'로서 지난 시기 남(한국)의 군부가 북(조선)에는 남(한국)에 없는 폭격기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북(조선)의 군사력 위협을 과장할 때 이용된 항공기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고 한다. 이 경우에도 남(한국)의 냉전·수구 세력은 북(조선)의 군사적 움직임에 관련하여 그것이 대응 전력이라는 측면과 동원된 장비들이 화력과 성능이 매우 뒤떨어진 '고철 덩어리'들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고 오로지 '전진 배치'라는 사실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냉전의 신화로 남은 '남침 위협설'을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북(조선)의 군사 훈련 상황에 대해서도 외부에서는 서로 모순된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혼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테면, 영국의 주간 군사전문지 Jane's Defense Weekly 1996년 1월 10일자는 미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과거 10-20년 간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북한의 이번 동계 훈련은 가장 강도가 높다"고 보도한 바있는데, 바로 몇 일 뒤 남(한국)의 한 일간지는 남(한국)의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지난 연말까지도 하루 전투기 출격 횟수가 300-400회에 이르던 것이 신년 연휴를 지나면서 100회 수준으로 뚝 떨어진데다 지상군의 기동 훈련도 최소한으로 실시되고 있다"고 보도하여, 어느 주장이 진실인지 알기 힘들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북(조선)의 미사일 생산 문제와 화학무기 문제를 가지고 북(조선)의 전력이 위협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미 국방정보국(DIA)이 작성한 『북코리아 군사력의 기초』라는 보고서는 "북한은 신경가스 등 무기용 화학제와 이를 사용한 화학무기 생산 및 저장 시설을 보유함으로써 화학무기를 사용해 한국을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보고서는 노동 미사일은 수출하거나 실전 배치될 정도로 제조되지 않았고, 실전 배치도 되지 않았음을 확인했으며, 대포동 미사일도 설계 단계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북(조선)이 "최근 성능 개량에 성공한 노동 1호를 빠르면 오는 3월 이란에 수출하려 하고 있다"는 상반된 주장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보 기관과 언론 기관의 '합작품'으로 만들어진 북(조선)의 '미사일 위협설'은 미 의회의 군사비 책정을 겨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 공화당 지도부는 1996년 3월 21일 북(조선), 이란을 비롯한 이른바 '불량 국가들'의 미사일 공격 위협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2003년까지 미 전역에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하는 내용의 '미국 방어법안'을 상·하 양원에 제출했다. 미 국가정보위원회 위원장 리처드 쿠퍼는 1996년 3월 28일 미 하원 국가안보위원회에 내놓기 위해 마련한 보고서에서 "우리는 북한이 알래스카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포동 2호라는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 미사일은 2천km 떨어진 미국 서부와 하와이까지도 사정 거리에 둘 수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미 의회에서 미사일 개발에 투입될 군사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 시기(3월)가 가까와지면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군수 산업 자본의 입김이 강하게 미 의회를 움직이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북(조선)의 '미사일 위협설'이 과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걸프전에서 입증되었듯이 현대전에서 전력은 질적 우위로 판가름나기 때문에, 남(한국)과 북(조선)의 전력을 수량으로 비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지만, 일단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1995년판에 나온 남(한국)과 북(조선)의 전력 비교표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병력 정규군: 남 - 63만3천명, 북 - 128만명

예비군: 남 - 450만명, 북 - 470만명

육군 병력수: 남 - 52만명, 북 - 1백만명

전차 대수: 남 - 2천50대, 북 - 3천4백대

장갑차 대수: 남 - 2천4백60대, 북 - 2천2백대

대포 수: 남 - 4천6백문, 북 - 9천9백문

지대지 미사일: 남 - 12기, 북 - 84기

해군 병력수: 남 - 6만명, 북 - 4만6천명

잠수함: 남 - 3척, 북 - 6척

프리깃함: 남 - 33척, 북 - 3척

구축함: 남 - 7척, 북 - 없음

초계정: 남 - 122척, 북 - 413척

상륙함: 남 - 15척, 북 - 15척

공군 병력수: 남 - 5만3천명, 북 - 8만2천명

전투기: 남 - 4백90대, 북 - 8백10대

공격용 헬기: 남 - 1백43대, 북 - 3백48대

위에 열거한 수량 비교표를 보면 북(조선)의 군사력이 남(한국)보다 '수적 우위'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1993-94년 『국방백서』에 나온 수량과 비교하면, 남(한국)의 국방부가 북(조선)의 군사력에 대해서 '수량적으로' 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미 지난 냉전 시기에 미국이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과장·조작하기 위해서 수량 비교법을 이용한 바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현대전에 필요한 군사력을 수량으로 나타낸 단순 비교는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가로막는 일종의 '속임수'로 이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남(한국)에서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네 가지 문제점에 대한 지적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 총생산(GNP) 규모가 남(한국)이 월등히 많다는 사실은 감추면서 군사비가 국민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만을 드러내어 북(조선)이 20%, 남(한국)이 6%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문제점을 들 수 있는데, 이처럼 북(조선)의 높은 군사비 비중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의 경제력을 저평가하는 한편 북한의 전쟁 준비 태세와 호전성을 선전하는 이중 효과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군사 장비의 질적 수준에 대한 평가는 감추고 단순한 수량 비교만을 강조하면서 북(조선)의 군사력이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문제점, 인구수를 보더라도 남(한국)이 북(조선)에 비해 두 배나 많기 때문에 유사시 병력 공급 능력이 남(한국)이 월등히 많은 데도 지상군 병력수에 대해 강조하는 문제점, 해군력의 경우 톤수, 전자 장비 수준, 보유 화력의 성능을 감추고 단순한 수량 비교만을 강조하는 문제점 등이다.

미국의 한 주요 언론은 한(조선)반도의 군사 상황을 분석한 기사에서 지난 5년 동안 탱크, 헬기, 장갑차 등을 비롯한 주한미군의 군사 장비들은 모두 최신형으로 완전 교체되었다고 밝히고, 남(한국)군도 1987년부터 1994년까지 군사비의 3분의 1을 들여 군비 증강을 추진했는데, 그 반면에 북(조선)은 1970년대에 생산된 낡은 군사 장비, 연료 부족 (여기에 식량 부족까지 겹쳐있다고 볼 수 있다)때문에 전투력이 크게 약화되었음을 밝혔으며, 클린턴 행정부의 미 중앙정보국(CIA) 아시아 담당관이었으며, 현재 하버드 대학 교수로 있는 에즈라 보겔(Ezra Vogel)도 북(조선)에서는 연료 부족 때문에 공군 조종사의 비행 훈련 시간이 전혀 없어진 실정이고, 군사 훈련도 취소되는 등 북(조선)의 전투 태세가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한 바있다. 일본의 한 전문가도 북(조선)의 연료 부족을 지적하면서 공격 능력을 상실했다고 밝힌 바있다.

아직도 수적 우세를 들먹이면서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조선)의 군사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이른바 냉전의 유물인 '수량 비교법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거기에 더하여 북(조선)의 '남침 위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조선)이 미 태평양사령부의 세계 최강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한·미 연합군의 막강한 전력에 독자적인 힘으로 힘겹게 대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남침 위협설'은 논리적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6) 미·일 동맹 체제 강화와 한(조선)반도 군사 문제

1996년 4월 17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안보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다. 이 선언 발표는 미국이 미·일 두 나라의 군사 동맹 체제를 확대·강화하는 가운데 일본을 군사적 동반자(정치·경제적 동반자 뿐아니라)로 격상시킨 중대한 사건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 기술 협력은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는데, 두 나라가 기술 교환 협정(Exchange of Technology Agreement)을 맺은 것은 1983년이었다. 그 뒤로 두 나라의 군사 협력 관계는 꾸준히 강화되어오다가, 이번에 공동 선언을 발표하면서 미국의 일본 방어 책임론(일본의 전수[專守] 방위론)은 미·일의 아시아 안보 공동 책임론으로 옮아간 것이다. 이제 미국은 미·일 군사 동맹 체제의 활동 범위를 아시아·태평양 전역으로 광역화하면서,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의 무력의 상호 결합도를 더욱 높히게 되었다. 미국은 전시(戰時)에 일본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주일 미군 기지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미국은 만일 군사적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일본과 기지 사용에 관한 합의를 얻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문제를 걱정해오고 있다. 1996년 4월 15일에 체결된 물품·용역 상호 제공 협정(ACSA)도 상호 제공을 평시(平時)에 국한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 협정의 의미를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무기 부품을 제공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과 일본의 지원 범위를 일본 영토·영해·영공에 한정하지 않음으로써 미·일의 합동 군사력이 해외로 팽창하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군사적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문제는 1978년 11월에 발표된 '미·일 방위 협력 지침'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제3국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그 분쟁이 국익에 직결된다고 판단하게 되면 침략을 받지 않아도 군사 작전을 벌인다는 이른바 '집단 자위권(집단적 군사 행동권)'을 '실제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군사 동맹국의 협력 방안이다. 여기서 "실제적으로 보장한다"는 표현에 강조점을 찍는 까닭은 이러한 집단 자위권 행사 문제는 현재 일본의 평화 헌법과 모순되는 것으로, 적어도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침'이 나옴으로써 미·일 관계는 미군에 대한 일본의 기지 제공 등 후방 협력 관계에서 상호 군사 동맹 관계로 격상·전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 정세를 미·일 군사 동맹 강화로 이끌어가면서 정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이다. 1994년말 일본을 방문했던 조셉 나이 미 국방차관보(당시)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일 통상 외교가 미·일 관계를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면서 두 나라의 안보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이른바 '나이 구상(Nye Initiative)'을 제시하게 되었는데, 미·일 안보 공동 선언은 이 '나이 구상'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한다.

미·일 군사 동맹 체제의 강화추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 자위대의 해외 작전 능력 증강 문제는 한(조선)반도의 군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한(조선)반도에서 만일 군사적 위기가 생긴다고 했을 때, 일본 자위대의 한(조선)반도 출동 가능성은 차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예상된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남(한국) 당국의 대응 방향은 한·일 사이의 상호 신뢰 구축을 위한 군사 교류·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한·일 군사 교류·협력 강화는 남(한국)의 안보력을 일본의 군사력에게 위탁하는 경향으로 흘러갈 위험성을 높혀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북 아시아에서 일본의 군사적 지위가 높아지고 군사적 역할이 확장되는 현 추세는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기는 커녕 도리어 고조시키는 신냉전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7) 맺음말

4자 평화 회담 제안과 무력 대결의 위험 사이에서 드러나는 모순 구조는 한(조선)반도에서 신냉전 기류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모순 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무력 숭배론과 전쟁 애호론을 주장하는 냉전·수구 세력이다. 한(조선)반도에서 냉전·수구 세력이 형성하고 있는 신냉전 기류는 북(조선)에 대한 무제한 군비 경쟁의 추구→상대의 국가 역량을 군비 경쟁에 소모하도록 유도→군비 소모의 극대화를 통한 상대측의 붕괴 촉진→최종적인 흡수 통합 성취라는 다단계 경로일 것이다. 미국과 남(한국)의 냉전·수구 세력들에게는 그 경로가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그리고 그 경로를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가 하는 문제를 가려볼만한 냉철한 판단 능력이 마비상태에 있는 듯하다. 그들은 무력 숭배론과 전쟁 애호론을 행동에 옮기고 있다. 이러한 행태를 지배하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오로지 무력 대결과 승패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냉전적 사고 구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남(한국)의 문민 정부는 이러한 신냉전 기류를 형성하면서, 대북 관계에서 문민화 정책이 아니라, 군사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문민 정부의 냉전적 군사화 정책은 남북 사이의 신뢰 구축과 군비 감축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북(조선)의 경제 파탄과 국가적 붕괴를 촉진시켜 궁극적으로 흡수 병합을 목적으로 삼고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군비 증강을 무제한에 가까우리만치 추진하면서도 다른 한 쪽에서는 '대북 지원을 통한 연착륙'을 말하는 문민 정부의 자가 당착에 대한 리영희 교수의 지적은 날카롭게 들린다.

"이산가족이 만나서, 얼싸안고 재회의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확실히 '인도주의'적이다. 두 예술단이 한 무대 위에서 '나의 소원은 통일......'을 소리 높이 합창하는 것은 틀림없이 '평화적'이다. 식량이 부족하다는 북한에 양곡을 몇천 톤 보내주는 것은 더욱 인도주의적이다. 하지만 경제력이 10배, 연간 군사비가 3-5배인 남한의 물질적·군사적 우월에 대항하기 위해 생살 같은 군사비를 뜯어내야 하는 북한 인민의 아픔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인도주의'는 군비 경쟁을 중지하는 결단이 아닐까? 경제력(GNP)이 10대 1일 경우, 남한이 GNP의 1%만을 군사비에 추가해도 북한은 그들의 총 생산액의 자그만치 10%를 군사비에 추가 투입해야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민족적 낭비인가? 남·북 간 전쟁의 조건이 거의 사라진 현실에서 이같은 무제한의 낭비는 거의 '범죄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도 다른 한 쪽에서는 북(조선)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도 북(조선)을 겨냥하여 배비한 군사력의 집중과 증강은 좀처럼 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를 수립하는 문제를 풀어갈 4자 회담의 제안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북(조선)을 겨냥한 미국의 군비 증강과 군사 훈련이 계속되는 한, 북(조선)은 4자 회담 제안이 '위장 평화 공세'가 아닐까 하고 의심하면서 극도로 긴장하고 경계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조·미 관계 개선의 진전과 4자 회담의 성사를 통해 한(조선)반도의 탈냉전화를 추구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 추구에 걸맞는 동북아 전략 목표라고 판단한다면,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군비를 현수준에서 동결하고 위협적인 군사 훈련을 중지해야 할 것이다. 군비 동결과 군사 훈련 중지는 4자 회담을 성사시키는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정착과 평화 통일은 추상적 논의 수준에서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조선)민족의 운명이 걸려있는 사활적 문제며, 21세기 한(조선)반도가 선택해야 할 유일무이한 길이다. 한(조선)반도의 공고한 평화 질서가 수립되고 평화 통일이 실현되지 않으면, 한(조선)민족은 냉전의 비참한 볼모로 여전히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볼모 신세'에서 벗어나 정상 상태를 찾는 일은 한(조선)민족 전체 성원에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며, 민족사 발전의 최대값이며, 열강들의 군비 증강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현 정세를 공고한 평화 질서로 바꾸어가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미국과 남(한국)이 진정으로 북(조선)과 평화 공존을 추구한다면, 쌀이나 중유를 보내며 생색을 내는 것보다 북(조선)이 막대한 군비 부담과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

한(조선)반도에서 군비 증강은 어떠한 명분으로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한(조선)반도에서 군비 증강과 군사 훈련을 추진하고 있는 냉전 구조는 탈냉전 구조로 전환되어야 하며, 평화질서 수립과 평화 통일 실현을 지향한 새로운 전략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만일 한(조선)반도에서 군비 감축이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현 단계에서 어렵다고 한다면, 우선 군비 증강을 중지하는 군비 동결의 과감한 정치적 결단부터 내려야 한다. 군비가 현 수준에서 동결되어야 신뢰 구축이 가능해지고 냉전 질서가 해빙기로 접어들 것이며, 그때 비로소 평화와 평화 통일의 지평이 열리게 될 것이다. (1996년 7월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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