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자 회담 제안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미국이 4자 회담을 제안하게 된 정치적 배경

한·미 두 나라 정상이 공동으로 제안한 형식에 담아 발표되었던 4자 회담 제안은 형식만 공동 제안이었지 실제로는 미국의 독자적인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의 4자 회담 제안 과정에서 남(한국)은 '마지 못해' 이 구상을 받아들였다. 여기서 '마지 못해'라는 말에 강조점을 두는 까닭은 남(한국) 당국으로서는 원래 남북 2자 회담을 통해 정전 협정 대체 문제에 대한 기본틀을 만들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추인·보장하는 '2+2 회담'을 구상하고 있었고, 이 구상을 미국에 제안한 바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남(한국)의 2+2 회담 구상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중심축이 되고, 미국과 중국이 보조축이 되는 형태다. 그렇지만 미국은 남(한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4자 회담 구상을 밀어부쳤다. 이 과정에서 남(한국) 당국은 자신의 구상을 포기하고 미국의 구상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남(한국) 당국이 마지 못해 미국의 구상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남(한국) 당국이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 수립이라는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독자적 지위를 지니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외교적 대미 의존성이라는 '제약 구도'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남(한국)은 만일 미국의 구상이 먹혀들어가서 4자 회담이 성사된다면, 그 회담은 결국 조·미 사이의 정치·군사 협상이 핵심 문제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한국) 당국의 지위가 약화되는 것은 아닐까하고 고심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남(한국)의 제안을 거부하고 4자 회담 구상을 내놓았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남북 뿐아니라 한(조선)반도 주변 열강들의 이해 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과제로 끌어안고 있는 미국은 지난 냉전 시기에 동북아 지역에 구축해놓은 자국의 지배 질서를 21세기 탈냉전 시기에 가서도 그대로 유지·관리하고자 하는 역내 질서 재편 문제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역내 질서 재편 과정에서 자국의 우세한 지위를 확보하고 주도력을 관철해야 한다는 강한 목적 의식에서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사실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한(조선)반도 내부 문제로서가 아니라 미·일 관계와 미·중 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동북아 안보의 재편 구도 안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이 제주도에서 4자 회담을 발표하던 날, 『워싱턴 포스트』는 미 국무부의 한 관리가 한 말을 옮기면서 "지난 시기 남북 코리아 두 나라의 발전, 일본의 점증하는 이해 관계, 미국과 중국의 긴장 완화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특별히 50년 묵은 정전 협정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고 적었다.

4자 회담 구상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미국의 의도는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우리의 민족 주체 역량으로 풀어가야 하는 민족적 의사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4자 회담 구상에서 미국은 동북아 지역의 탈냉전적 안보 질서를 자국의 주도로 수립하려는 자기 중심주의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안보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한(조선)반도의 통일 국가 수립이라는 과제는 얼마든지 희생시켜도 된다고 하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민족 문제 안에서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을만큼 포괄·결합되어있는 평화 문제(냉전 질서 해체 문제)와 통일 문제(분단 질서 해체 문제)를 분리시키고, 자국의 이익·패권 추구를 위하여 냉전 질서만 해체하고 분단 질서는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통일 국가를 수립하는 길에 난관을 조성하고 결국 우리 민족의 자주적 의사를 관철하는 방향이나 민족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과는 배치되는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것은 미국이 4자 회담을 통하여 추구하려는 동북아 지역의 탈냉전적 안보 질서 수립 문제가 미국에게는 역내 주도권을 강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겠지만, 정작 우리 민족에게는 통일 지향을 가로 막고 도리어 탈냉전적 분단 질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강화해갈 수 있다는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 글을 뒷부분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미국은 남(한국)이 주장해왔던 이른바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은 북(조선)이 극력 반대하고 있으므로 실현 불가능한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판단했으며, 북(조선)이 주장해왔던 조·미 당사자 해결 원칙도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안이었다. 러시아와 일본까지 끌어들이는 6자 회담 구상도 있지만, 이 구상은 협상 상대를 너무 많이 상정함으로써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주도권이 자칫 분산·약화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내놓기 힘든 구상이었다.

이렇게 보자면 미국으로서는 결국 남·북·미 3자 회담이 가장 적합한 제안이라도 할 수 있겠는데, 미국은 3자 회담 방안을 택하지 않고 중국을 끌어들이는 4자 회담 구상을 선택하였다. 바로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미국이 무엇때문에 중국을 한(조선)반도 냉전 질서 해체 과정에 끌어들이려고 하느냐 하는 물음이다. 미국은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 힘겨운 협상 상대인 북(조선)에 대해서 외교적 설득·압력을 가할 '협조자'가 필요했고, 중국에게 그 협조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은 북(조선)에 대한 영향력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며, 현재 북(조선)에 대한 영향력으로 말하자면 중국보다는 오히려 미국이 더 비중있는 상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대북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중국을 4자 회담에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견해는 별로 설득력이 없게 된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긴밀한 동맹 관계가 아니라 상호 견제 관계에 놓여있으며, 역내 정세 변화의 주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적 관계, 때로는 갈등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서는 역내 질서 재편 과정에서 중국을 견제 또는 배제해야 마땅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중국을 그 재편 과정의 중심부에 끌어들인 것은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다. 미국이 중국을 4자 회담 구도에 끌어들인 까닭은 중국의 대북(對北) 영향력을 기대했다고 하기 보다는, 동북아 안보 질서 재편 과정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 글의 관심은 미국이 중국을 동북아 안보 질서 재편 과정에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던 정치적 배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일이 된다.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 해체 과정에서 그 해체 과정을 배타적, 독점적으로 주도하는 것을 일정 정도 양보해야 했던 미국의 속사정은 과연 무엇일까?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이 4자 회담 제안을 통하여 기대하고 있는 중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달(1996년 3월을 뜻함·인용자) 대만 선거와 중국의 핵무기 관련 장비를 파키스탄에 수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베이징과 갈등을 빚은 뒤에, 중국의 지도부에 대해서 동북아 지역의 안보 문제에 관련하여 협력할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는 의미있는 논평을 실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들을 바탕으로 정리해낼 수 있는 초점은 대만 문제 해결에 얽혀있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 관계로 모아진다. 미국에게 대만 문제는 한(조선)반도 문제에 못지 않게 동북아 지역의 중요한 전략 문제이며,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 대만해협을 무대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일어났던 긴장의 파고가 그 전략적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영국의 국제전략연구소(IISS)도 1996년 1월에 펴낸 보고서 『아시아·태평양에서의 미국의 전략』에서 한(조선)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국의 역내 전략이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임을 지적한 바있다.

4자 회담 구상에서 미·중 관계의 '숨겨진 방정식'을 풀기 위하여 들추어내야 할 중요사건은 4자 회담 구상을 주도한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앤터니 레이크(Anthony Lake), 국무장관 워런 크리스토퍼, 동아·태 차관보 윈스턴 로드 등과 중국 국무원 외사판공실(外事辦公室) 주임 류화치(劉華秋, 외무부 차관급)가 만났던 연쇄 회담이다. 이 연쇄 회담에서 "미국은 자신의 카드를 끊임없이 중국에 제시하였다"고 한다. 중국이 국무원 외사판공실 주임 류화치를 미국에 파견한 것은 3월 8일부터 25일까지 계속되었던 중국의 무력 시위, 즉 중국이 대만 남부 해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무력 시위로 발생한 이른바 '대만해협 위기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 팽팽한 긴장 국면으로 말려들어간 미·중 관계를 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류화치가 워싱턴에서 미국 정부의 외교안보 담당 고위 관리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이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 해체 문제에 관련한 조·미 관계의 교착 상태에 해결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고 미국측에 제의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미국의 4자 회담 구상은 이미 3월초에 류화치의 방미를 접촉점으로 삼은 미·중 외교안보 협상을 통해서 더욱 분명한 윤곽을 잡아가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은 '대만해협의 위기'를 넘어설 외교적 탈출구를 찾아가고 있었다. 미국은 중국과 벌인 일련의 외교안보 협상을 통해 조·미 관계와 중·미 관계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상식에 드는 정보지만, 미국의 동북아 전략 수행에서 중심축으로 움직이고 있는 미·일 동맹 관계는 한(조선)반도에 대한 지향점으로 국한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중국 문제를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질서를 지향하고 있는데, 그 중국 문제의 한복판에는 대만 문제도 들어있다. 미국은 한(조선)반도 냉전 질서 해체 문제를 한(조선)반도 안에 국한시키지 않고 있으며, 동북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안보 질서를 형성하는 문제로 보고 있는데,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미국의 4자 회담 구상은 동북아 안보 전략 구상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전략 구상과 한(조선)반도 4자 회담 구상이 연계되는 부분은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이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담긴 요점은 미국이 일본을 동맹 관계로 더욱 확실하게 끌어들이고, 그 힘으로 중국의 패권 추구 의도를 견제해 보겠다는 것이며, 이러한 구상은 이미 4·17 미·일 공동 선언에서 드러났다. 이에 대해서 가장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운 쪽은 물론 중국이었다. 중국의 외교부 대변인 선궈팡(沈國放)은 그 공동 선언이 발표되던 날 일본 NHK방송과 한 대담에서 미·일 안보 선언은 아·태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고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은 일본 정부가 이러한 점에 유의하기를 바란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다.

이미 중국의 대만 문제 해결 과정에 개입해야 하는 시점에 와있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 해체 과정에 일정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대가로 자국이 대만 문제의 해결 과정에 일정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중국도 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대만에 대한 기득권 세력인 미국의 입김을 봉쇄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 제약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미국과 밀고 당겨야 하는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다. 그리하여 미국과 중국은 동북아 안보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떠오르고 있는 두 개의 축인 한(조선)반도 문제와 대만 문제를 역내 냉전 질서 해체 및 새로운 안보 질서 수립이라는 포괄적인 구상 안에서 서로 연계하려는 게 아닐까?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 해체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면서 중국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고, 대만 문제는 중국이 주도하면서 미국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는 절묘한 타협 방향에서 풀어나가려고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닐까?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새로운 안보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설명이 필요 없을만큼 명백하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 해체 과정에서 중국, 일본, 러시아 보다 훨씬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와 일본 열도에 전진배치한 무력과 한·미, 미·일을 연결하는 두 개의 쌍무 동맹 체제를 통하여 장악한 독보적 지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조선)반도 냉전 질서의 해체 과정을 미국이 배타적으로 이끌고나갈 수 있는 형편은 아니며, 주도권을 관철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은 4자 회담 제안에서 조·미 관계 개선과 중국 참여 유도를 노리고 있으며, 이것을 통하여 동북아 안보 질서를 자국의 주도로 재편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냉전 질서의 해체 과정에서 중요한 상대는 미국과 냉전적 무력대치 상태로 맞서있는 북(조선)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조선)의 국제적 위상은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에 반하여 남(한국)은 이러한 안보 질서 재편 과정에서 난기류를 맞고 있다. 그 까닭은 남(한국) 안보의 전면적인 대미 의존도가 남(한국)을 종속적 지위에 묶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2) 4자 회담 제안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미국이 4자 회담을 제안하기까지 일어난 일련의 흐름을 짚어보면 눈에 띄는 것은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앤터니 레이크의 움직임이다. 1973년에 평화 협정 체결로 이어진 베트남 평화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헨리 키신저가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4자 회담 제안에는 레이크가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 그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밑그림이 드러난다.

1996년 1월 18일 레이크는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 관리들과 한(조선)반도 전문가 10여명을 백악관에 불러놓고 자신이 직접 주재하면서 북(조선)정책에 관한 긴급 회의를 벌였다고 한다. 바로 이 회의를 통해 레이크는 4자 회담을 통한 동북아 안보 질서 재편 문제에 관해 깊이있게 점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그 회의가 있은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그가 방한했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지난 2월 초 레이크는 제주도에 날아가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유종하와 2박 3일동안 회담했다. 그의 방한은 원래 1월 13일로 예정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실제로 서울에 나타난 날은 2월 3일이었다. 워싱턴에 있는 한 외교 소식통의 설명을 따르면, 레이크의 방한 목적은 북(조선)의 핵문제에 국한되었던 미국의 "미시적이고 단선적인" 대북 정책을 포괄적인 안보 차원에서 다시 조정하려는 데 있다고 하면서, "미국 정부의 외교안보 관리들은 북한에 대한 시각과 문제 인식에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됐다"고 밝혔다. 레이크-유종하 회담에서 오고간 내용은 구체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바없으나, 정황을 앞뒤로 살펴보면 레이크는 포괄적인 안보 차원에서 다시 조정한 미국의 대북 정책, 곧 4자 회담 구상을 남(한국) 당국자에게 설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레이크가 주도하여 재조정된 대북 정책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혀진 바없으나, 분명한 것은 조·미 관계 개선 문제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관계 개선의 핵심부에 떠오른 냉전 질서를 해체하기 위한 4자 회담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클린턴이 바쁜 일정 때문에 거부했던 남(한국)당국의 방한 요청을 4·16 제주 회담으로 성사시키고 그 자리에서 4자 회담 제안을 발표하게 만드는데 외교적 수완을 발휘한 주역도 레이크였다.

외교안보 정책 관계자들과 북(조선) 문제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미국 대표단이 "포괄적인 안보 차원에서 재조정된" 4자 회담 구상을 들고 평양에 나타난 것은 레이크-유종하 회담이 있었던 때로부터 약 20일이 지난 2월 27일이었다. 미 국무부 동아시아 정보조사국 부과장(국장) 로버트 칼린(Robert Calrin)과 스탠포드대 교수인 존 루이스(John Lewis) 등 5, 6명 대표단의 방북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대표단이 3월 5일까지 평양에 머물면서 한 일은 북(조선) 당국의 책임자들과 함께 한 '군사안보 협의'였다. 그들이 평양에 머물고 있던 무렵 때를 맞추기나 한듯 평양 주재 초대 미국 연락사무소장에 내정되어 지난 1년동안 서울에서 대기 상태로 머물고 있던 스펜서 리처드슨(Spenser Richardson)이 평양에 모습을 보여 두 주간동안이나 머물고 있었던 것도 가볍게 스쳐갈 일은 아니다. 남(한국)의 한 일간지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가 한 말을 옮기면서, 한·미 양국이 4자 회담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한 때는 2월이었으며, 그와 동시에 미국과 북(조선)은 주유엔 북(조선) 대표부를 통해 4자 회담 문제를 협의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있다.

로버트 칼린, 존 루이스, 스펜서 리처드슨 등이 평양에 나타나기 약 닷새 전인 2월 22일 북(조선)은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하여 미국에 대해 잠정 협정(modus vivendi)을 체결하자고 제의한 바있다. 방북한 미 국무부 관리들과 안보 전문가들은 잠정 협정 체결 제안을 이미 들은 상태에서 방북길에 올랐다. 그렇지만 그들은 조·미 잠정 협정 체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새로운 대북 정책'에 기초한 4자 회담 구상을 내놓고 그 구상 안으로 북(조선)을 끌어들이려고 설득하였다. 그들이 평양을 떠난 직후인 3월 8일 북(조선)은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비망록'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미국의 4자 회담 구상 제안에 대한 북(조선)의 첫 공식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의 군부가 내놓은 이 첫 공식 반응은 강경한 것이었다. 이로써 미국의 4자 회담 구상과 북(조선)의 잠정 협정 구상이 서로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한 일치인지는 모르나 한(조선)반도의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북(조선)의 구상이 서로 어긋나 마찰이 일어나고 있음이 공개적으로 확인되던 바로 같은 날(3월 8일), 중국은 대만 앞바다를 겨냥하여 미사일을 날리고 있었다. 3월초 워싱턴에서 있었던 레이크-류화치의 회담은 바로 이러한 외교 마찰을 풀어내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루진 것이다. '대만해협의 위기'와 '조·미 의견 충돌'에 대해 책임적인 발언을 할 위치에 있는 동아태 차관보 윈스턴 로드(Winston Lord)가 3월 14일과 19일에 한 발언은 미국이 조·미 관계와 미·중 관계를 연계하여 풀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그는 "중국 정부는 외교 경로를 통해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고, "중국은 그들의 이해 관계에 부합되는 이같은 방식(그가 이 말을 할 때만해도 '2+2' 회담 방식을 뜻하였으나, 실제로는 4자 회담 방식을 말한다-인용자)에 대해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은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 문제에 관련하여 중국과 계속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은 한국 정부의 제안을 주의 깊게 들은 뒤 미국의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발언하였다.

그로부터 약 열흘 뒤인 3월 말 미국이 제주도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그 자리에서 4자 회담 제안을 공식 발표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북(조선)으로서는 미국에 대해서 "정전 체계를 새로운 장치로 바꾸기 위한 최종적이고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4월 4일 북(조선)의 중앙방송을 통해 발표된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변인 담화에서 정전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와 관련된 임무를 포기하겠다고 한 선언과 그 다음날로 판문점 공동 경비 구역에 무장 병력이 투입된 사건이 바로 그 조치였다. 이 '판문점의 긴장'은 바로 미국의 4자 회담 구상과 북(조선)의 잠정 협정 구상이 충돌하면서 빚어낸 외교 마찰의 한 표출 현상이었다. 미국과 남(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언론이 무장 병력 투입 사건으로 한(조선)반도에 다시 긴장이 감돌고 있다는 보도를 날려보내고 있는 긴박한 시각, 윈스턴 로드가 이번 사태는 "정전 체제 와해를 위해 북측이 지난 수년동안 전개해온 조직적인 캠페인"의 일환이라고 말하면서 짐짓 여유있는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북(조선)의 '판문점 군사 행동'이 조·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외교 마찰 때문에 일어났음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일각에서는 '판문점의 긴장'을 남(한국)의 4월 총선과 연계시키면서 이른바 '북풍론(北風論)'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견해는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한(조선)반도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던 '보이지 않는 외교 마찰'이 '판문점의 긴장'으로 표출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견해로 보인다. 이 견해는 총선 정국이라는 '틀'에 정세 인식의 관점을 고정시켜놓고, 그 틀로 민족 문제(구체적으로 당면한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보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남(한국)의 집권당은 '판문점의 긴장'을 자기 세력의 선거 득표전에 이용하기 위하여 마치 전시(戰時)와 같은 긴장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었다. 북(조선)은 '판문점의 긴장'을 남(한국)의 집권당이 총선 득표전에 이용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있었겠지만, 총선에서 보수 야당이 승리하든 아니면 집권당이 승리하든 총선 결과는 4자 회담 구상을 밀어부치고 있는 미국의 의도에, 그리고 그러한 미국의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북(조선)이 잠정 협정 체결을 촉구함으로써 일어난 조·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외교 마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을 것이다. 만일 보수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그 결과로 남(한국)이 평화 질서 수립 문제에서 미국에 대해 독자적인 지위를 얻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북(조선)은 총선에서 보수 야당에게 불리하게 될 '판문점의 긴장'을 조성하지 않았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북(조선)으로서는 총선 정국과 '판문점의 긴장'은 처음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진행될 수 밖에 없는 별개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자신의 4자 회담 구상을 발표하기 이전에 이미 북(조선)과 협의한 바있는 사실은 4월 16일 백악관 대변인 마이클 매커리(Michael McCurry)의 발언에서도 이미 확인된 바지만, 미국은 북(조선)이 조성한 '판문점의 긴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자 회담 구상을 밀어부쳤다. 제주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4자 회담 제안은 미국과 북(조선) 사이의 보이지 않는 외교 마찰을 배경으로 깔고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의 바쁜 일정 때문에" 미·일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한·미 정상회담을 가질 수 없다고 했는데, 공로명 외무장관이 워싱턴에 나타나 레이크를 설득하여 결국 제주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다. 제주도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된 것은 북(조선)이 판문점에서 긴장을 조성하기 전이었다. 미국이 제주도에서 4자 회담 제안을 공동 발표하자는 남(한국) 당국의 요청을 들어주면서 그 대가로 남(한국) 당국에게 요구한 것은 조·미 관계 개선 추세에 제동을 걸어왔던 남(한국)의 기존 정책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조·미 관계 개선과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는 대신, 자국의 구상인 4자 회담 발표 형식을 한·미 공동 제의 형식으로 발표함으로써 남(한국) 당국의 '위신'을 세워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요구대로 조·미 관계 개선과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의 연결 고리를 끊게 되면, 미국은 11월 대선 일정 전에 조·미 관계 개선의 가시적 성과를 수월하게 만들어내어 선거전에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며, 북(조선)이 거부해오고 있는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을 파기하여 북(조선)에게도 4자 회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4·16 제주도 한·미 정상회담은 이처럼 남·북·미 3자 사이에 일정한 양보를 통한 접촉점을 만들어내는 계기로 설정되었다.

미국은 4자 회담 구상을 확정지은 뒤 곧 남(한국)과 북(조선)에 각각 비공개 통로를 통해 이 구상에 관련한 협의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그 뒤로 계속하여 북(조선) 유엔 대표부를 창구로 삼아 4자 회담 개최 방안에 대해 협의해오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이 사전 접촉이 4자 회담 제안에 대한 북(조선)의 "의구심을 해소키 위한 차원에서의 접촉"이라는 해명 발언으로 남(한국) 당국의 불안감을 달래보려고 하지만, 사실 4자 회담에 관련하여 조·미 사이에 사전 접촉을 어느 한계선 안으로 잡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한·미 사이에서는 분명한 합의가 없었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남(한국) 당국이 "4자 회담의 구체적인 사항과 관련해 미국과 완전한 합의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는 말로 이 문제의 모호성을 설명했으나, 시간에 흐를수록 한·미 사이의 견해 차이는 더 크게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남(한국) 당국은 이러한 조·미 사전 접촉을 막을만한 아무런 대응력도 지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단지 그러한 사전 접촉을 반대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조·미 사전 접촉 때문에 곤경에 놓인 남(한국) 당국에게 미국은 4자 회담과 관련해서는 조·미 예비 회담을 가질 계획은 없다는 말로 안심하라고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말이 어디까지 지켜질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로 4자 회담 제의에 관련하여 가볍게 보아넘길 수 없는 것은 미국의 11월 대선 정국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클린턴 진영은 이번 선거전에서 조·미 관계 개선을 통해 북(조선)의 '위협'을 현저하게 약화시키는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야 한다. 조·미 관계 개선은 클린턴 진영의 재선 전략에 직결되어있는 외교 현안들 가운데 하나다. 『뉴욕타임스』는 4자 회담 제안에 관한 기사에서 클린턴이 이번 선거전에서 자신을 '국제적 평화 창출자'(international peacemaker)로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클린턴 진영은 11월 대선이라는 임박한 시한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일정에 붸기고 있다. 특히 남(한국)은 그동안 조·미 관계 개선 속도를 늦추라고 계속 강한 제동을 걸어왔는데, 미국은 이제는 더이상 그 제동 장치에 발이 묶여서는 안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그 제동 장치를 풀어내는 시급한 조치가 필요했으니, '4·16 제주 선언'에서 조·미 관계 개선 접촉과 남북 대화 재개 문제를 분리시키고 그 분리 사실을 아예 공동 선언문에 뚜렷이 밝혀놓았던 것이다. 클린턴 진영의 선거 정치(election politics)가 마침내 남(한국)의 대북 정책을 압도하는 단계로 들어간 것이다. 제주도 한·미 정상회담 뒤에 줄이어 조·미 미사일 회담이 베를린에서 열린 것이라든지, 5월에 들어오면서 조·미 유해 외교가 타결점을 찾은 것은 미국의 대북 관계 개선 발걸음이 선거 일정에 맞춰 속도를 높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 국무부가 그동안 조·미 협상에 참여했던 관리들을 오는 6월 교체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6월 교체설'은 적어도 6월까지는 4자 회담에 관련한 조·미 사전 접촉의 가닥이 잡혀질 것이 아니냐 하는 전망을 가능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3) 4자 회담 제안의 전망

미국의 4자 회담 구상은 열린 구상이다. 발표 내용을 보면, 아무런 전제 조건을 달지 않는다는 점, 빨리 개최하자는 점, 광범위한 긴장 완화 조치가 토의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다. 지난 4월말 미국 방문 중에 기자 회견을 가진 북(조선) 대외경제위원회 김정우 부위원장은 "4자 회담에 대해서는 미국에서 구체적인 제안이 나와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으로서는 누구와 누구 사이에 평화 협정을 하자는 것인지 그 내용도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이 '열린 공간'을 회담 성과로 채워가는 문제는 결국 미국과 북(조선)의 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의 4자 회담 제안은 조·미 관계 개선을 겨냥한 것이지, 남북 관계 개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4자 회담 제안을 남(한국)이 독자적인 구상을 가지고 주도하여 북(조선)에 제의했다고 가정한다면, 4자 회담의 지향점은 남북 관계 개선에 맞취질 수 있었을 터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리처드 솔로몬(Richard Solomon,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현 평화연구소장)은 언론과 나눈 대담에서 "미국이 4자 회담을 제의하긴 했지만 그 요체는 결국 남북한과 미국의 '3자 회담' 형식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지만, 4자 회담이 실질적인 의미에서 남·북·미 3자가 주도하는 회담으로 틀을 잡아간다고 하더라도, 현재 조·미 관계 개선 추세를 감안한다면 그것은 조·미 2자 협상의 주도성이 관철되는 '변형된 3자 회담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조선)이 4자 회담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그때에는 지금까지 조·미 협상을 요구하면서 제기해온 평화 협정 체결 문제를 4자 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풀어내야 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북(조선)이 이처럼 조·미 평화 협정 체결 문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까닭은 조·미 관계 개선을 통하여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 안보 관계를 수립·보장해가는 긴 과정(현재로서는 4자 회담의 긴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에서 평화 협정 체결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남(한국) 당국으로서는 4자 회담이 자신의 구상이 아니라, 미국의 독자적인 구상에 끌려온 측면이 있기 때문에 4자 회담의 전망에 대하여 불투명한 상(像) 밖에는 지닌 것이 없지만, 반면 미국은 확실한 4자 회담 전망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자 회담은 북(조선)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성사될 것이다. 남(한국)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조선)이 최근 조·미 사이의 공식 및 비공식 접촉을 통해서 "고려할만한 반응"을 나타냈다고 밝혔는데, 이러한 분위기로 미루어봐서 4자 회담의 성사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이 4자 회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대응 방안을 가지고 나올 것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없으나, 위에서 지적한대로 4자 회담 구도를 조·미 관계 개선의 추세와 연결시키면서 남·북·미·중 4자의 안보 논의 구도 속에서 조·미 평화 협정 체결 문제를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

4자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추진 계획을 세워놓고 있을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 미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거나 드러내놓지는 않았지만, 미국은 북(조선)의 요구를 일정 부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까? 미국은 일단 4자 회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북(조선)의 공식 발표를 얻어내어 성사 분위기를 잡아 놓고, 조·미 사이에서 회담의 실질적인 '기본축'을 만들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 '기본축'이란 결국 조·미 평화 협정이 될 것인데, 이것이 기존의 조·미 평화 협정 체결 구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다만 그 협정이 4자 회담이라는 포괄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차이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미국이 조·미 관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4자 회담의 선차적 해결 목표가 얹혀져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4자 회담의 전망을 가늠해 보아야 한다. 물론 4자 회담 제안에는 남북 관계, 한·미 관계, 미·중 관계를 재편 또는 재정립하는 측면도 들어있지만, 그 선차적 해결 목표는 결국 조·미 관계 재편에 있다는 말이다. 미국이 4자 회담을 발표하던 4월 16일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부과장 로버트 칼린과 다른 한 관리를 다시 평양에 보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러한 미국의 관심사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미국이 4자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별도의 조·미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있다고까지 내다보기도 한다. 미국은 별도의 조·미 평화 협정 체결 방안에 관련하여 남(한국) 당국의 견해를 비공식적으로 타진해 오기도 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4자 회담의 틀 속에서 북미 양자 관계를 우선시하는 북한의 주장을 일부 수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미 간의 협정 내용은 무엇보다 미국의 극동 군사력으로부터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는 관심을 끌만한 발언을 하였다. 여기서 북(조선)의 주장이란 4자 회담에서 한(조선)반도 평화 질서 수립 문제를 논의하되 의제를 분리해 남(한국)에 대해서는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 문제를 합의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평화 협정 체결을 비롯한 포괄적 안보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남(한국) 정부의 한 고위 소식통이 한 말을 옮기면서 남북 사이에는 평화 헌장, 조·미 사이에는 평화 협정, 한·중 및 미·중 사이에는 한국(조선)전쟁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이것을 포괄적인 합의문에 담는 방안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 바있는데, 이 방안은 남(한국) 정부 보다도 미국이 더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 이러한 '포괄적인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중심은 역시 조·미 평화 협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한·중 및 미·중 사이에는 이미 국교가 수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4자 회담에서 한국(조선)전쟁의 적대 관계를 법적으로 청산한다고 해도 큰 의미는 없으며, 남북 사이에도 이미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상호 불가침을 합의하였기 때문에 4자 회담에서 평화 헌장을 채택한다고 해도 상호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우기 남북 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니므로 평화 조약(협정)을 체결할 수 없고 국제법상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일종의 신사 협정인 '평화 헌장'을 채택하는 데 그치게 되므로 정치적 의의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하여 조·미 평화 협정은 만일 그것이 체결된다면 국제법상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주권 국가 사이의 조약으로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4) 냉전 질서 해체와 분단 질서 해체의 분리 가능성

미국의 4자 회담 제안과 이에 대한 북(조선)의 긍정적인 반응을 생각한다면, 지난 반세기동안 한(조선)반도에 드리워져있던 냉전 질서의 해체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4자 회담이 성사되면서 차츰 가시화될 한(조선)반도 냉전 질서의 해체 과정(평화 질서의 수립)이 분단 질서의 해체(통일 국가의 수립)로 이어지지 않고 서로 분리되면서, 분단 질서는 여전히 남아있게 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냉전 시대에 한(조선)반도를 짓눌러왔던 고강도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일정 부분 이완되면서 탈냉전 시대의 저강도 긴장(low-intensity tension)으로 대체되기는 하지만 통일 국가 수립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조선)반도의 정세 변화는 한(조선)반도 문제에서 평화 문제와 통일 문제를 분리시키고 통일 국가가 수립되지 아니한 분단이 유지된 평화 질서(남북의 평화 공존 상태)를 수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미·일 안보 동맹 체제가 강화되고, 이에 대응하여 중·러의 안보 협력 관계(이 두 나라는 최근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힘주어 말한 바있다)가 강화되고 있는 현재 추세를 감안하더라도 예상할 수 있는 방향이다. 주변 열강들의 각축전이 한(조선)반도에서 저강도 긴장 상태는 용인하지만, 통일 국가 수립은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4자 회담이라는 다자간 협상을 통한 한(조선)반도의 평화·안보 문제 해결은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의사·염원과는 무관하게 미·일과 중·러라는 강대국들의 세력 판도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자 회담 추진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될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자국이 주도하여 탈냉전적 평화·안보 질서를 수립하려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한(조선)반도의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리고 있다. 미국은 평화·안보 문제와 통일 문제를 분리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적극적, 개방적으로, 후자에 대해서는 소극적, 폐쇄적으로 대처하는 방향으로 정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4월 13일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코리아담당 과장 케네스 퀴노네스가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평화 메커니즘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이 요구하는 평화 협정과는 다른 형태가 될 것이다. 한반도 통일 촉진은 미국의 목표가 아니다"고 한 발언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4자 회담의 성사로 조성될 탈냉전적 정치 지형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 국가를 수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영구 분단의 위기도 된다.

오늘 우리 민족이 4자 회담 제안 이후의 향방을 주시하면서, 깊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과제는 무엇보다도 외세 의존, 남북 대립, 민족 분열이라는 3대 제약 조건을 극복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탈냉전 시대에 대응할 민족 주체 역량을 형성하고 그 힘으로 탈냉전적 전략 환경의 변화를 통일 국가 수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격동 시대를 살아가는 민족적 양심은 적어도 이러한 문제 의식에 눈을 떠야 한다. (1996년 5월 작성, 뒤에 가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