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식량 문제 분석에 대한 재검토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통계 수치의 혼란

최근 남(한국) 언론에 나오고 있는 북(조선) 식량 문제에 관한 통계 수치와 분석들은 일관성이 없이 들쭉날쭉하다. 이러한 통계 자료와 분석의 불일치는 논리적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불일치의 원인이 단순한 판단 착오 및 계산 착오가 아니라, 정치적 편견에 결부되어 있지 않는가 하는 의혹을 사기에 넉넉할만큼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1995년도 북(조선) 식량 생산량에 대해서 적게는 2백60만t에서 많게는 4백80만t까지 편차를 보여 무려 2백20만t이나 차이가 난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남(한국)의 분석은 적은 방향으로, 반면에 유엔 관련 기관들의 분석은 많은 방향으로 잡혀져 있다는 사실이다.

북(조선) 당국이 1984년 뒤로 식량 생산량에 관한 통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의 공백'이 비과학적인 억측을 낳고 그와 더불어 심한 불일치 현상이 생겨났다고도 볼 수 있다. 우선 남(한국) 언론에 나온 북(조선) 식량 문제에 관한 통계 수치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95년 생산량 96년 수요량 부족량

1) 2백60만t 6백22만4천t 3백63만t

2) 3백40만t 7백만t 3백60만t

3) 3백45만t 5백8만t 1백63만t

4) 3백45만t 6백73만t 3백28만t

5) 3백45만t 6백73만t 3백28만t

6) 3백50만t 6백20만t 2백70만t

7) 3백76만t

8) 4백만t

9) 4백8만t

10) 4백13만t 6백72만t 2백59만t

11) 4백80만t 6백만t 1백20만t

1) -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운근이 내놓은 통계수치.

2) - 북(조선)의 큰물피해 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을 인용한 남(한국)언론의 보도.

3) - 남(한국) 통일원이 1996년 1월 17일 언론에 배포한 자료.

4) - 남(한국)의 한 고위 당국자가 1996년 1월 17일 언론에 제시한 통계 수치.

5) - 남(한국) 당국이 1996년 1월 24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고위 협의회에서 제시한「북한 식량 사정 평가 분석 자료」

6) - 한국농촌진흥청이 발표한 통계 수치.

7) - 한국개발연구원이 인용한 북(조선) 당국의 통계 수치

8) -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담당 차관 알렉산드르 파노프가 1996년 1월 3일 이타르타스 통신과 한 회견에서 내놓은 통계 수치.

9) - 한국개발연구원이 인용한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와 유엔 세계식량계획 조사단의 통계 수치

10) - 남(한국) 언론이 인용한 남(한국) 당국의 통계 수치.

11) -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합동 보고서에서 나온 통계 수치.

남(한국) 당국과 민간 연구기관, 언론이 제시하고 파악하고 있는 북(조선) 식량 문제에서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는 중요한 것은 북(조선)이 식량 절약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실제 식량 수요량과 실제 식량 부족량을 따로 계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정에도 여러 가지 통계 수치들이 엇갈리고 있다. 1995년을 기준으로 한 통계 자료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실제 수요량 실제 부족량 절약 가능량

① 5백78만t 2백33만t 95만t

② 5백40만t 1백90만t 80만t

③ 5백18만t 1백73만t 1백55만t

④ 4백13만t 68만t 95만t

① - 남(한국)의 한 고위 당국자가 1996년 1월 17일 언론에 제시한 통계 수치.

② - 한국농촌진흥청이 발표한 통계 수치.

③ - 남(한국) 당국이 1996년 1월 24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고위 협의회에서 제시한「북한 식량 사정 평가 분석 자료」

④ - 남(한국) 통일원이 1996년 1월 17일 배포한 자료.

다른 한편 한국농촌진흥청이 발표한 1990년대 북(조선)의 식량 수급 현황은 아래와 같다.

 

해당연도 총수요 전년도 생산량 부족한 량

1991년도 6백47만t 4백81만2천t 1백65만8천t

1992년도 6백50만t 4백42만7천t 2백7만3천t

1993년도 6백58만t 4백26만8천t 2백31만2천t

1994년도 6백67만t 3백38만4천t 3백28만6천t

1995년도 6백72만t 4백13만t 2백59만t

한국농촌진흥청이 발표한 북(조선)의 쌀 생산량 현황은 아래와 같이 나와있다.

1991년 1백64만1천t

1992년 1백53만1천t

1993년 1백31만7천t

1994년 1백50만2천t

그런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북(조선)의 1980년대 후반기 쌀 생산량을 참고로 보면, 1986년 3백1만t, 1987년 3백6만t, 1988년 3백10만t, 1989년 3백55만t, 1990년 3백55만t으로 나와있다. 이러한 통계는 한국농촌진흥청의 발표와는 너무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90년에 3백55만t의 식량 생산량이 한 해 뒤에 1백90만9천t이 줄어든 1백64만1천t으로 격감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통계 수치의 차이는 단순한 계산 착오라고 볼 수는 없으며,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한국농촌진흥청의 통계 수치 가운데 분명히 어느 한 쪽이 그릇된 통계 수치를 내놓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위에서 살펴본대로 북(조선) 식량 생산량에 대한 통계 수치는 기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가려낼 수 없을 정도다. 요즈음 남(한국)의 정부 기관, 민간 연구소, 언론 기관에서 나돌고 있는 북(조선)의 식량 문제에 대한 통계 자료는 엄청난 수치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신빙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논의가 제기하는 물음은 이러한 통계 착오 또는 통계 조작의 허구를 넘어서 북(조선) 식량 문제의 실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하는 데로 집중된다.

(2) 통계 착오인가 아니면 통계 조작인가

식량 문제는 어디까지나 객관적 통계 자료에 근거하여 파악해야 한다. 요즈음 남(한국)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이른바 '북(조선) 식량난'에 대한 요란한 담화들은 북(조선) 식량 문제의 실상에 얼마나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북(조선)의 식량 생산량과 식량 수요량을 산출할 때 어떠한 산출 근거를 적용하느냐 하는 데서 결정된다. 북(조선) 농업 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농촌경제연구원의 김운근도 "북한의 곡물 수요량은 산출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그릇된 산출 근거를 적용할 경우 그릇된 통계 수치를 만들어 내고, 그것에 근거를 두고 이른바 '식량난 발생설'이 나오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요즈음 남(한국)에서 나돌고 있는 북(조선) 식량 문제에 관한 계산법은 식량 생산량은 되도록 적게 만들어놓고, 식량 수요량은 되도록 많게 만들어놓으니까 결과적으로 엄청난 식량이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결론은 식량난 발생 사실을 증명하는 '객관적 분석'으로 둔갑하면서 결국 이른바 '북(조선) 멸망 임박론'을 안받침해주게 된다.

먼저 북(조선)의 식량 생산량에 관한 문제부터 검토해 보기로 하자.

무릇 식량 생산이란 경작지 면적과 단위 면적당 수확량 및 농업 인구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동원하여 파악해야 할 문제다. 북(조선)의 경작지 면적은 모두 1백97만4천 정보다. 이 가운데서 논면적은 61만4천 정보, 밭면적은 1백36만 정보가 된다. 농업 인구는 8백50만 명이다.

북(조선)에 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통계를 보면, 북(조선)의 경작지 면적은 2만1천6백73 평방km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남(한국)의 경작지 면적은 1천54 평방km가 적은 2만6백19 평방km다. 남(한국)의 인구가 4천4백61만3천9백93 명(1993년 7월 현재)이고, 북(조선)의 인구가 절반 밖에 안되는 2천2백64만5천8백11 명(1993년 7월 현재)라고 하는 미 중앙정보국의 통계 수치를 놓고 생각해보면, 정작 식량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곳은 북(조선)이 아니라 경작지는 적고 인구는 두 배나 많은 남(한국)이어야 한다는 '상식적인 판단'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러한 상식적 판단을 뒤엎어 버린 '반(反)상식적인 정보' 앞에서 인식의 혼란을 겪고 있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북(조선)의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어떻게 산출하는냐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공식 통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 기구의 공식 발표를 따르면, 북(조선)의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북(조선)은 이 분야에서 이미 1981년에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운 바있고, 그 뒤로도 해마다 기록 갱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구의 통계 자료를 따르면, 1991년도 세계 평균 쌀수확량은 1정보당 3.5t인데, 1990년도 북(조선)의 1정보당 쌀 수확량은 8.209t이라고 한다. 참고로 주요 쌀 생산국의 정보당 쌀 수확량을 살펴보면, 미국은 6.30t, 일본 5.86t, 중국 5.56t, 인도네시아 4.35t, 베트남 3.09t이다. 북(조선)의 논면적 61만4천 정보에 단위 면적당 쌀 수확량(1990년 현재) 8.209t을 곱하면 5백4만t이라는 수확량이 나온다. 물론 이 수치는 감수량을 계산하지 않은 이론상의 수치다. 만일 감수량을 30%로 추정하면, 3백52만8천t의 쌀 수확량이 나온다. 이 경우 정보당 수확량은 5.746t이 된다. 이것은 중국과 비슷한 수치다.

여기서는 정보당 쌀 수확량을 얼마로 파악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남(한국)과 미국의 분석가들은 북(조선)이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보고하여 공개된, 쌀 수확량이 8.209t이라고 하는 발표를 믿지 않고 있으며, 그보다 훨씬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면복(전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은 북(조선)의 경우 실험 농장의 쌀 수확량이 정보당 8-12t이고, 협동농장에서는 정보당 3-5t으로 수확량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의 주장을 인정하여 북(조선)의 정보당 쌀 수확량이 중국의 수확량과 같다고 추정하면, 3백41만3천8백40t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다른 한편, 북(조선)의 밭면적은 1백36만 정보인데,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가장 낮은 추정값으로 계산하여 정보당 3t으로 추정한다고 해도, 밭작물 수확량은 연간 4백8만t이 된다. 밭작물 가운데서 중요한 옥수수 수확량에 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하자. 북(조선)의 옥수수 경작면적은 65만 정보다. 중국 길림성의 단위 면적당 옥수수 수확량은 정보당 6.3t이고, 남(한국)은 정보당 4.14t이다. 만일 북(조선)의 옥수수 수확량을 중국 길림성보다는 적고, 남(한국)보다는 많은 정보당 5t이라고 추정하고, 여기에 감수량 30%를 빼면 옥수수 수확량만해도 2백27만5천t이나 된다.

다음으로 북(조선)의 식량 수요량을 산출하기로 한다.

식량 수요량을 검토하려면 먼저 인구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북(조선)의 인구 통계에 관하여 미 중앙정보국(CIA)은 2천2백64만5천8백11 명(1993년 7월 현재)이라고 밝힌 바있다. 그 밖에도 미국의 전문가들이 낸 통계는 1990년 현재 약 2천1백40만 명인데, 연간 자연 증가수를 39만5천9백 명으로 잡는다면, 1993년 현재 2천2백58만7천7백 명이라는 수치가 나오므로, 미 중앙정보국의 통계와 미국 전문가들의 통계가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93년 이후 연간 자연 증가수를 더한다면, 1995년말 현재 북(조선)의 인구수는 약 2천3백37만9천5백 명으로 산정된다. 1995년 12월 25일에 통일원 정보분석실이 펴낸『95 북한개요』에서는 1994년 말 현재 북(조선) 인구를 2천2백95만3천여 명으로 추산했다.

인구 2천3백만이 모두 같은 양의 식량을 소비하는 것은 아니므로, 인구의 나이층을 따라 식량 소비량을 달리 계산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북(조선) 인구를 나이층별로 분류하면 아래와 같은 통계가 나온다. 0-14 살의 미성년 나이층은 전체 인구의 15.9%인 3백71만7천3백40 명, 15-64 살의 성인 나이층은 전체 인구의 69.1%인 1천6백15만5천2백34 명, 65살 이상의 노인 나이층은 전체 인구의 15.0%인 3백50만6천9백25 명이다.

이제 더 검토해야 할 것은 한 사람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을 어떻게 산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참고로 남(한국)의 형편을 보자면, 한 사람당 연간 쌀 소비량이 약 1백5.7kg이므로,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2백90g이 된다. 북(조선)에서 0-14살 나이층의 미성년 한 사람에게 필요한 하루 평균 쌀 분량을 2백50g, 15-64살 성인 한 사람당 하루 평균량을 3백30g, 65살 이상 노인층의 하루 평균량을 3백g으로 각각 잡는다면(이것은 평균 2백93.3g의 쌀소비량을 뜻한다.), 미성년층은 한 사람당 연간 91.2kg, 성인층은 120.4kg, 노인층은 109.5kg의 쌀 수요량이 각각 나온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미성년층은 한 해에 33만9천21t, 성인층은 한 해에 1백94만5천90t, 노인층은 한 해에 1백5만2천77t의 쌀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를 모두 합하면 북(조선) 전체 인구가 한 해 동안 필요한 쌀 수요량인 3백33만6천1백88t이 나온다. 위에서 계산한대로 쌀 수확량이 3백52만8천t이라고 한다면, 한 해에 19만1천8백12t의 쌀이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일 정보당 쌀 수확량을 중국의 수확량과 같다고 추정하여 계산한 3백41만3천8백40t을 수확량으로 본다고 해도, 7만7천6백52t이 남는다. 김운근도 최근 북(조선)의 식량 문제를 분석하면서, 한 사람당 연간 평균 곡물 소비량을 1백29kg이라고 주장하고, 북(조선)에서 연간 3백만t 정도의 곡물만 있으면 식용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사실은 두 가지다. 하나는 북(조선)의 식량 수확량을 계산할 때, 경작 면적과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비교적 확실하게 밝혀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착오가 생기기가 어렵다고 하더라도, 나쁜 기후 조건(냉해나 홍수 등), 병충해, 낙후한 영농기술, 협동농장 제도 운영으로 농민의 의욕이 감퇴되었기 때문에 감수량이 생긴다고 전제한 감수량 산출 과정에서 통계 착오, 또는 의도적인 통계 수치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감수량 산출 과정에서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임의로 감수량을 산출하는 경우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감수량 산출 근거를 제시할 때 임의성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는 김운근의 주장이다. 그는 북(조선)에서는 물바구니의 피해가 심하여 쌀 감수량이 적어도 25%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한 바있다. 그는 또한 북(조선)의 영농 기술이 남(한국)의 1970년 수준 정도로 낙후하였기 때문에 감수량이 29%라고 주장했으며, 협동농장이라는 제도적 결함 때문에 농민들이 의욕을 잃어버리고 농사일을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감수량은 33.5%라고 주장한다. 그가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임의로 이렇게 빼고 저렇게 빼고 나니까, 북(조선)의 정보당 실제 수확량은 1.63t으로 격감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산출된 북(조선)의 수확량은 고작 1백만8백20t 밖에 되지 않는다. 위에서 감수량을 30%라고 추정하여 산출한 3백52만8천t의 쌀수확량에 비교한다면, 무려 2백52만7천1백80t이라는 엄청난 계산상의 차이가 생겨나게 된다.

다음으로는 식량 수요량의 산출 과정에서 생기는 착오의 가능성 또는 의도적인 통계 수치 조작의 가능성에 대하여 검토할 차례다. 주의를 돌려야 할 것은 북(조선)의 식량 수요량을 산출하면서, 만일 인구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수요량 가운데 10g을 가산하느냐 아니면 감산하느냐는 산출 기준을 따라서 연간 전체 인구의 식량 소비량은 무려 85만3천3백35t이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인구 한 사람당 평균 식량 수요량이 얼마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에서 천차만별의 차이가 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 사람당 평균 식량 수요량을 터무니 없이 늘려놓으면 그만큼 식량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한 사람당 평균 식량 수요량을 연간 3백80kg이라고 주장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수요량을 다시 하루 평균값으로 환산하면 무려 1kg41g이라는 엄청난 수요량이 나온다.

다른 한편으로 냉해나 홍수 같은 기후 조건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감수량의 산출 과정에서도 커다란 착오가 생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해로 입은 곡물 피해량에 대해서도 서로 엄청나게 엇갈리는 통계 수치가 나오고 있다. 최대 피해량과 최소 피해량 사이에는 무려 2백74만t이라는 격차가 드러난다. 수해 때문에 일어난 곡물 피해량에 대해서 북(조선) 당국은 최대값으로, 한·미 두 나라 정보 기관들은 최소값으로 산출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수해로 입은 곡물 피해량

① 2백94만t

② 1백90만t

③ 1백50만t

④ 1백7만-1백45만t

⑤ 22만t (10억 달러)

⑥ 20만t

① - 1996년 2월 1일 마카오에서 열린 '동북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나눔과 연대회의'에 참석한 조선 기독교도연맹 강영섭 위원장이 보고서에서 밝힌 피해량(쌀 1백8만t, 강냉이 81만t, 재고식량 1백5만t)이다.

② - 북(조선)은 국제 사회에 수해로 인한 피해가 1백50억달러에 이르고, 곡물 감수량은 1백90만t이라고 밝혔다.

③ - 북(조선) 당국은 국제 사회에 곡물 피해량을 1백50만t이라고 발표한 바있다.

④ - 유엔 조사단은 수해로 인한 곡물 피해량이 1백7만 - 1백45만t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⑤ - 한·미 두 나라의 정보 기관들이 발표한 추정치.

⑥ - 미 중앙정보국(CIA)은 1995년 수해 직후 곡물 피해량을 20만t이라고 추정한 바있다. 이러한 추정은 미국 정찰 위성이 촬영한 사진 자료를 미 중앙정보국이 분석한 것이라고 한다.

미 중앙정보국의 통계 자료는 북(조선)의 수해 가운데 곡물 피해는 10% 안팎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남(한국)의 안기부와 통일원이 내놓은 곡물 피해 자료는 모두 미 중앙정보국의 이 자료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중국 소식통들도 북(조선)의 중국 접경지역은 해마다 식량 수급난을 겪는 지역으로 지난 여름 수해 때문에 다소 심각한 형편이지만 다른 지역은 다급하지 않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견해라고 밝혔다. 셀릭 해리슨은 미 농무부의 분석을 인용하여 이렇게 주장한 바있다.

"미 농무부가 북한의 외부 지원 요청 결단이 주로 중국쪽의 갑작스런 옥수수 수출 격감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석가들은 좋지 않은 날씨가 북한의 곡물 생산에 악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94년과 95년도의 북한 식량 생산수준은 실질적으로 감소하지 않았으며, 수입 필요량도 늘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식량난의 원인이 수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 농업의 '구조적인 결함'에 있다고 하는 주장이 더 강하게 나오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세계식량계획(WFP)과 공동으로 작성한 유엔의 내부 보고서에서 북(조선)의 식량난이 1995년 여름의 수해 피해 때문이라기 보다도 단일 품종 재배, 밀집 경작에 의한 지력 저하 등 '주체농법'으로 불리는 농업 정책 자체의 결함이 더 큰 원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남(한국) 당국이 1996년 1월 24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고위 협의회에서 배포한 자료는 남(한국) 당국이 "국내는 물론 러시아, 중국 등 수집 가능한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해 자세한 통계 숫자와 산출 방법, 배급량 등을 제시한 뒤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은 1회성 지원이 아니라 영농 기술 개선·종자 개량·비료·농약 개발 등과 과대한 국방비 절감 등 구조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민간 연구 단체의 주장을 통해서도 나오고 있다. 그 주된 내용은 '사회주의적 농촌 경리 모순설'과 '비료·농약·영농 기기 연료의 절대 부족설'이다. 대표적인 것이 김운근의 주장, 이복복의 주장,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주장, 이희상의 주장 등이다.

미 국무부도 이러한 남(한국) 당국의 견해와 일치한 견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6년 1월 25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고위 협의회에 참석했던 미국측 수석대표인 윈스턴 로드(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심각한(serious)' 상태며 이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북한의 정책 결함, 그리고 지난 해 수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3) 북(조선) 식량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때 미 중앙정보국이 북(조선)이 수해로 입은 곡물 피해가 심각한 것이 아니라고 파악하고 있었던 것에 반하여, 미 행정부 일각에서는 북(조선)의 수해 피해가 식량난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는 '심각한 논의'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다. 1996년 1월 18일 대통령 안보보좌관 앤터니 레이크 주재로 열린 긴급회의는 국가안보위원회(NSC) 관리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석한 자리였는데, 이 회의에 대해서 언론은 "홍수 피해로 인한 북한의 경제 사정이 심각하다는 전제 아래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에 합의를 유도"하였으며, "북한의 식량난이 북한 체제의 동요와 군사적 불안 상태로 확대될 가능성"을 심각하게 논의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런데 미 중앙정보국이 북(조선)의 수해 피해가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발표한 뒤로 약 두 달이 지난 1996년 2월 22일 미 상원 청문회에 나온 미 중앙정보국장 존 도이치는 북(조선)의 수해 피해와 경제난에 관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경제 사정이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으며, 기아와 궁핍의 상황을 돌이킬 능력도 거의 없다"고 하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미국이 이처럼 '북(조선) 식량난'을 과장하면서 '식량난이 몰고올 파멸적 영향'을 강조하고 있는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 행정부가 식량 지원을 통해 무엇인가 다른 것을 추구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 행정부는 왜 북(조선)의 식량난을 과장하면서까지 북(조선)에 식량을 지원하려고 하고 있을까? 지금 식량난으로 허덕이고 있는 지역이 이 지구 위에 얼마든지 있는 데, 정작 그러한 지역은 그만두고 실제로 식량난이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북(조선)에 식량을 지원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원래 국제 사회에서 식량 지원이란, 스포츠 문제와 더불어, 정치·외교적 이해 관계를 따라 움직이는 주요 변수들 가운데 하나다. 식량은 다른 데 전용하거나 오래 비축할 수 없는 '소모품'이며,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몇 나라를 빼놓고서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반드시 필요한 '전략 품목'이며, 그럴듯한 대외 명분을 달기에 편리한 '인도주의 품목'이며, 미국에서 남아도는 '잉여 품목'이다. 이 문제에 대해 "대북 식량 지원 문제는 결국 하나의 표피적인 현상일 뿐이며 3국이 북한 문제를 통해 노리는 정책이익이 크게 다르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 식량난이라는 한 가지 사안에 대한 분석이 국가에 따라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 남(한국) 언론의 분석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이런 물음이 생긴다. 미 행정부는 북(조선)에 대한 쌀 지원을 통하여 조·미 관계 개선을 확실하게 추진하는 외교 발판을 마련하려는 게 아닐까? 미국의 쌀지원 저의를 가장 솔직하게 밝힌 사람은 아마도 주한미국대사 제임스 레이니일 것이다. 그는 1996년 1월 21일 아침 한국방송공사 특별 회견에서 "북한이 원하지 않더라도 북한을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데 식량을 미끼로 쓰고 싶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현지에 있는 미국 외교관의 이른바 '쌀 외교'에 관한 언급이다.

(4) 식량난설과 식량 부족설의 차이

위에서 검토한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북(조선)은 현재 식량이 '일정 정도' 부족하다고 볼 수는 있지만, 식량 부족 때문에 체제 붕괴의 위기에 몰려있다거나 식량 부족 때문에 '생지옥'으로 변하였다고 하는 '식량난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96년 3월 5일부터 12일까지 황해도와 자강도의 수해 피해 지역을 돌아본 미국 언론인 버너드 크리셔(전 『뉴스위크』지 도쿄특파원)는 자신이 만났던 북(조선) 큰물피해복구위원회 이종화 대표가 "북한 내에서 식량 부족 사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근이 벌어지고 있다는 외신보도나 어린이들의 영양 실조가 심각하다는 외국 관리들의 발언은 북한의 안정된 이미지를 약화시키거나 동정을 얻기 위한 것일 뿐이다"고 한 말을 전했다.

남(한국)의 이수성 국무총리도 최근 "북한 내부 사정이 구체적으로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체제 붕괴에 대한 성급한 단정은 우리의 건전한 대북관과 통일관에 혼선을 초래하고, 나아가 대북한 대응 태세에도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말한 바있다. '식량난설'은 식량 부족을 식량난으로 과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과장설의 뿌리는 북(조선)의 인민들이 굶주림에 지쳐 망하기를 바라고 있는 이른바 '북(조선) 멸망 임박론'에 결부된 것이며, 따라서 냉전·분단 의식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의 한 언론인은 북(조선) 멸망 임박론은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데 누가 교류 협력이니 신뢰 구축이니 하는 멀고도 지루한 작업에 매달릴 것인가"고 되물으면서, 그것은 "통일을 지향하는 논리가 아니라 주체적인 통일 노력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식량난설'로 안받침을 받고 있는 북(조선) 멸망 임박론은 결국 반통일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북(조선)의 식량 문제에 관하여 균형 감각을 갖추려면 아래와 같은 평가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국 정부는 북(조선)의 식량 문제와 관련하여 자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식량 사정이 어렵기는 하나 체제 위기에 이른 것은 아니며, "독특한 공산 체제의 배급 체계를 감안할 때 북한이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줄임) 특히 지난 시절 자국이 겪었던 비슷한 경험 등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서방 세계들은 공산 체제가 운영하고 있는 독특한 식량 배급 체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밝힌 바있다.

셀릭 해리슨이 전한 미 농무부의 연구보고서는 "기근이 만연하고 식량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들은 근거가 불충분하다. 북한은 중앙집중식 식량 배급 체제를 지방분권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와중에서 일부 지역이 때때로 심각한 식량 부족 사태에 처하게 될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이 절망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으며, 94년에 사정이 더 악화됐다는 조짐도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셀릭 해리슨은 1995년 10월 하순 북(조선)을 방문한 뒤에 적은 '인상기'에 이렇게 적었다.

"평양은 아직 경제적 곤궁으로 인한 고생은 없어보였습니다. 음식도 좋고 충분하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식량 배급도 잘 되고 있습니다. 당 창건 50주년 기념행사 리허설로 평양 거리는 굉장히 들떠 있었습니다. 아파트 주민 단위로, 직장 단위로 지정된 장소에서 연습을 하는데 사람들이 지하철에서도 쏟아져 나오고 버스에서도 쏟아져 나와 수십만 명이 거리를 왔다갔다 했습니다. 이들은 손에 횃불이나 꽃을 들고 열정적으로 리허설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가 결코 붕괴될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워싱턴과 서울에서는 아직도 북한 체제 붕괴를 기대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 데 그것을 기다리다가는 늙기만 할 것입니다."

일본의 사진작가이며 군사문제 전문가인 가토 겐지는 1995년말 함경북도 지역(유선과 무산)에 몰래 들어가본 경험을 이렇게 전했다.

"명색이 국경인데도 경비병, 철조망, 감시탑 같은 것이 전혀 없어 놀랐다. 국경 지역의 경비가 의외로 허술해 주민들이 탈출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았지만 굳이 도망가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줄임) 북한의 농촌 마을은 가난하지만 평온해 보였다. 개울에서는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고 있었고 동네 어귀에서 한 떼의 어린이들이 추위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 놀이를 하고 있었다. 길가는 어른들은 점퍼 등을 두툼하게 입고 있었고 건상 상태도 좋아 보였다. 최근 언론들의 식량난 관련 보도 때문에 북한이 아프리카의 기근 지역 못지 않은 참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줄임) 이날은 북한의 전기 사정이 궁금해 일부러 해가 질 때까지 머물렀다. 오후 6시쯤 사방이 어두워지자 산간 지역 주택 곳곳에 전깃불이 켜졌다. 큰 길가에는 가로등까지 켜졌다. 분명히 북한의 물자난은 생각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1996년 3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