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회담이 예고한 조·미 관계 정상화와 한(조선)반도 통일

* 이 글은 월간 『말』 1999년 10월호에 실린 것을 조금 다듬은 것입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세 사건의 연관고리에 감춰진 비밀

베를린에서 조·미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이 열리게 된 직접적 원인은 북(조선)의 제2차 인공위성 발사 준비였다. 초강대국 미국은 동방의 작은 나라 북(조선)이 인공위성 발사대를 세우겠다고 하면서 강하게 밀어부치자 그 공세에 밀려 하는 수 없이 회담장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993년 이후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상투적인 수법인 협상회피작전, 시간끌기작전은 북(조선)의 공세 앞에서 또다시 맥을 추지 못하고 말았다. 이번에 미국은 베를린에서 열린 조·미 회담의 결과가 나온 뒤에 페리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문제, 조·미 회담 개최 문제, 페리 보고서 발표 문제라는 세 사건이 한 연관고리로 묶여있음을 보게 된다. 페리 보고서는 미국의 대북정책 기본구도를 담은 문서이므로, 미국은 앞으로 조·미 회담을 그 기본구도 안에서 끌어가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대북정책 기본구도와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조·미 관계 정상화의 비밀은 바로 이 연관고리 속에 들어있다. 그 비밀을 엿보려면, 양국이 이미 조인한 두 개의 외교문서, 곧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서와 1993년의 뉴욕 공동성명에 들어있는 정책구도를 읽어보아야 한다. 페리 보고서는 이 두 외교문서에 담겨있는 기본구도를 미국의 시각에서, 미국의 표현법으로 작성한 정책문서다.

조·미 관계 정상화란, 적대관계에 있던 두 나라가 평화공존적 외교관계를 맺는다는 일반적 의미를 넘어서, 한(조선)반도의 21세기 운명을 좌우하는 최대 사건이며, 동시에 동북아 안보구도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어놓을 대사건이다. 조·미 관계 정상화는 베트남-미국 또는 이란-미국의 관계 정상화에 견줄 수 없는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오늘 세기말 전환기는 이 엄청난 격변을 눈앞에 둔 태풍 전야처럼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 새로 읽기

1994년 10월 21일에 조인된 제네바 기본합의서는, 겉을 보면 북(조선)이 영변의 원자로 두 기와 재처리시설을 동결하는 대가로 미국은 신포에 경수로 두 기를 책임적으로 건설한다는 원자로 협상을 타결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져있는 기본구도는 정치·군사적인 것이다. 즉 미국은 북(조선)의 계속적인 핵무기 개발을 동결시키는 동시에 핵무기 보유사실을 묵인하는 한편, 북(조선)의 대미 관계 정상화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 핵무기 보유국 북(조선)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겠다는 외교적 약속이었다. 이로써 북(조선)과 미국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 사실에 대해서 서로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이른바 '비시인 비부인(NCND)정책'을 지킨다는 암묵적 합의에 이르렀던 것이다.

원래 미국은 북(조선)을 '반역국가'로 낙인 찍고, 조금이라도 빈틈만 보이면 선제 핵공격으로 아예 멸망시켜야 할 '테러집단'이라고 여겨왔다. 미국에게 북(조선)은 결코 대등한 협상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은 1993년과 1994년에 두 차례나 이른바 '5027 작전계획'에 의한 선제 핵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세상에 '핵위기'로 알려진 북(조선)과 미국의 사활을 건 싸움은 그렇게해서 벌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토록 살기등등하던 미국의 기세는 어느 시점에 가서 갑자기 팍 꺾이면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국이 북(조선)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면서 핵무기 보유국 북(조선)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국교수립을 추진하겠다고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외관계사는 건국 이래 미국이 자기 보다 약한 나라에 대해서 이처럼 굴욕적으로 협상을 추진한 선례를 알지 못한다. 어떻게 돼서 이런 놀라운 이변이 일어난 것일까? 두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는 군사적 측면이다. 미국은 두 차례의 '핵위기' 때, 북(조선)을 선제 핵공격으로 멸망시키려는 전쟁준비에 들어갔으나,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1백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는 군사강국 북(조선)과 전쟁을 벌이는 경우, 남(한국)과 일본이 쑥밭이 되는 것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참화를 입는다는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핵탄두를 장착한 북(조선)의 전략미사일은 전략미사일 공격에 대해서 완전히 무방비상태로 있는 미국과 일본의 수도권을 한방에 날려보내어 전쟁을 예상보다 싱겁게 끝낼 수 있지만, 미국의 핵공격으로는 8천여개가 넘는 북(조선)의 지하요새를 깨뜨리기 어렵고 고도의 핵전쟁 방어훈련으로 조직된 북(조선) 인민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점을 미국 군부와 정보기관은 잘 알고 있었다.

둘째는 정치적 측면이다. 미국의 대외전략 핵심인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이 파탄되는 것을 막고, 태평양 지배전략의 중심축인 미·일 동맹체제가 와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미국의 사활적 국익문제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문제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사실을 세계에 공개하는 날에는 일본, 남(한국), 대만 같은 핵무장 잠재국들이 들고일어나 핵무기를 개발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의 비확산정책은 파탄되고 말 것이며, 더욱이 일본은 전범국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교전권을 주장하면서 미국에 대해 정치·군사적으로 독자노선을 걷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그것은 미국의 숨통을 조이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즉 비확산정책의 파탄, 미·일 동맹체제의 와해, 그리고 미국의 태평양 지배구도가 한꺼번에 날라가버리는 최악의 재앙 씨나리오다.

미국은 이 재앙을 두려워하기에 북(조선)의 공갈·협박전술에 쩔쩔매면서 끌려다니는 외교적 수모를 겪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초강대국의 체면을 지켜려고 사실을 덮어두는 한편, 이른바 '포괄협상'으로 북(조선) 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느니, 체제불안에 떨고 있는 북(조선)은 대미협상을 통해 '벼랑끝 생존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느니 하는 궁색한 거짓말을 되뇌이고 있다.

조·미 관계 정상화의 기본구도

 

이래저래 말도 많았던 페리 보고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도대체 그 보고서가 뭐길래 시끌벅적한 것일까? 줄여 말하면, 그 보고서는 북(조선)이 비확산정책과 미·일 동맹체제를 위협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대가로 미국은 대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조선)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간섭하거나 가로막지 않겠다는 21세기 정책대안을 설계한 정책문서다. 물론 페리 보고서는 일본과 남(한국)에 대한 정치적 배려 때문에 이러한 정책대안을 노골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한바퀴 돌려서 표현하는 '수사학적 편법'을 쓰고 있다. 이를테면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을 저지시키는 조건에서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조선)반도의 냉전구도를 완전히 해체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그런 미국식 표현법이 아니라, 페리 보고서의 정책대안이 1993년 6월 11일 뉴욕에서 조인된 조·미 공동성명의 3대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공동성명은 정전 뒤에 북(조선)과 미국이 조인한 최초의 외교문서다. 따라서 그 문서에는 앞으로 조·미 관계를 어느 방향으로 정상화시킬 것인가 하는 3대 원칙이 담겨 있다. 첫째 원칙은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 원칙은 상호 자주권을 인정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원칙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 3대 원칙은 조·미 평화공존, 조·미 관계 정상화, 한(조선)반도의 평화적 통일 실현이라는 정세변화의 방향을 규정하고 있다. 이 3대 원칙을 정치 과제로 재구성하면, 조·미 평화협정 체결, 미국의 한(조선)반도 지배전략 포기, 연방제 통일 실현이 된다.

그러나 미국은 공동성명에 조인하고서도 외교적 패퇴를 만회하려고 1994년에 또다시 선제 핵공격을 가하겠다고 북(조선)을 협박했다. 전쟁 일보 직전, 평양에서 열린 1994년 6월 17일의 김일성-카터 평양담판에서 미국은 또 기가 꺾이면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해 10월 21일 제네바에서 채택된 기본합의서는 미국이 평양담판에서 패퇴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미국은 제네바 기본합의를 통하여 북(조선)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대북 관계를 개선하면서 북(조선)을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제네바 합의의 강조점은 북(조선)의 핵개발 저지가 아니라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묵인한다는 데 찍혀있으며, 북(조선)의 개방 유도가 아니라 조·미 관계 정상화를 통하여 1993년의 조·미 공동성명 3대 원칙을 실현한다는 것을 재확인한 데 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뒤인 1995년에 조·미 회담이 재개되었고,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하겠다는 발표가 나왔으며, 한(조선)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발족되고, 조·미 영사보호권을 합의하기도 했으나 미국은 관계 정상화 약속을 건성으로 대하면서 시간 끌기 작전에 들어갔다. 혹시 북(조선)이 붕괴하지나 않을까 하는 허망한 기대감에 한때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약속 이행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던 북(조선)은 1996년 2월 22일 미국에게 잠정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이행·감독하기 위해 판문점에 조·미 공동군사기구를 두자고 제안하면서 조·미 회담을 열자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4월 16일 한·미 공동발표 형식을 빌어 4자회담을 역제안하였다. 그 뒤의 과정은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4자회담이 알맹이 없는 말잔치를 되풀이해온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북(조선)이 1998년 8월 31일에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 1호'는 미국의 시간 끌기 작전를 끝장낸 결정타가 되었다. 인공위성 발사에 기겁한 미국은 서둘러 대북 정책조정관을 임명하고 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1999년 5월 말 페리가 대통령 특사의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내놓은 조·미 관계 정상화의 기본구도는 북(조선)의 요구와 어긋난 내용이었다. 페리의 제안을 거부한 북(조선)에게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요구되었으니, 그것은 제2차 인공위성 발사준비였다. 이번에도 미국은 회담장에 나오라는 북(조선)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1999년 9월의 베를린 회담은 이러한 배경에서 성사되었다. 앞으로 조·미 회담은 북(조선)이 1996년 2월에 제안했던 잠정협정을 체결하는 문제와 판문점에 조·미 공동군사기구를 설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3년의 '운명적 시간'과 북(조선)의 통일전략

조·미 회담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2003년을 전후하여 관계 정상화에 연착륙하게 될 것이다. 2003년은 미국이 신포 경수로를 건설하겠다고 대통령 보장서한까지 내놓으면서 약속한 시한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2001년에 출범할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이 외교적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하는 결정적 약점을 안게 되었다. 2003년의 '운명적 시간'을 전후하여 북(조선)은 미국의 약점을 공격하는 공갈·협박전술로 미국의 손발을 꽁꽁 묶어놓으면서 조·미 관계 정상화를 완결짓는 정치공세를 펼 것으로 전망된다. 북(조선)이 강제할 조·미 관계 정상화는 조·미 평화협정 체결, 조·미 국교수립,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라는 세 단계를 밟아갈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조·미 평화협정 체결은, 1996년 2월 잠정협정 체결을 제안했던 문서에 나타나있는 북(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련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아도, 우선 북(조선)과 미국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국교 수립도 가능하고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며, 국교를 수립하고 주한미군 문제를 해결해야 한(조선)반도의 평화적 통일이 실현되는 길이 열린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적 통일의 실현이란 대외적으로 중립적이고 대내적으로는 연방제 원칙을 구현한 자주적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미 관계 정상화의 세 단계는 한(조선)반도의 자주화, 중립화, 연방화가 실현되는 21세기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경로와 일치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주화 과정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지배전략을 차츰 봉쇄하고, 중립화 과정은 한·미 동맹체제를 차츰 무력화시키며, 연방화 과정은 남북 당사자의 통일회담을 통해 하나의 주권국가로 정치적 통합을 이루어가는 역사적 경로인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자주화, 중립화, 연방화, 이것이 북(조선)이 추진하고 있는 한(조선)반도 통일전략의 내용이다.

북(조선)은 핵보유에 관한 '비시인 비부인 정책'을 견지하면서 때때로 인공위성 발사를 준비함으로써 비확산정책과 미·일 동맹체제를 와해시키겠다고 공갈·협박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미·일 동맹체제와 한·미 동맹체제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궁지에 빠지고 만다. 이 교차점에서 미국은 남(한국)의 안보이익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지난 냉전기에 미국은 남(한국)에 배치한 핵무기에 대하여 '비시인 비부인 정책'을 견지하면서 북(조선)을 끊임없이 괴롭혔지만, 탈냉전시기에는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어 북(조선)이 바로 그 정책을 동원하여 미국의 한(조선)반도 지배구도를 뒤흔들고 있는 전세로 역전되었다. (1999년 9월 1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