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기일수록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모든 진보 운동사가 보여주는 교훈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한호석 정책위원장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박세길 편집위원장 대담

·일시 : 1999년 1월 27일

·장소 : 김포공항

·정리 : 편집실

·사진 : 곽성호 / 사진부

〈편집자주〉 미주통일학연구소 소장이면서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 정책위원장이신 한호석님이 올 1월에 한국을 방문하셨다. 10여일동안 8개지역을 돌면서 순회강연을 여는 벅찬 일정에도 불구하고 전국연합 회원과 「민」지의 독자들을 위해 대담자리에 흔쾌히 응해주셨다. 지역순회에서 느낀 소감과 전국연합에 바라는 소중한 말씀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의 나아갈길, 한반도의 정세 등에 대해 더욱 생생히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한국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셔서 보내온 ‘미국의 한반도 정책과 세기말의 한반도’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함께 싣는다.

질문 : 이번에 한선생님께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시면서 강연하실 기회가 있었고 그 자리를 통해서 우리 전국연합 일꾼들, 그리고 전국연합을 아끼고 사랑하는 회원들을 많이 만나셨습니다. 여러가지로 느끼신 바가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과정에서 겪고 느끼신 것을 말씀 좀 해주십시오.

답변 : 그동안 몇차례 여기를 다녀갈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처음으로 서울을 벗어나서 각 지방에 있는 활동가들이나 그 지역에서 운동하시는 분들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상당히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을 둘러보니까 지역마다 특색이 있더군요. 지역의 분위기도 조금씩 다른 것 같고. 어떤 지역은 활기차게 잘 되는 지역도 있고 자주민주통일 강령을 버리고 떠나간 분들이 있음에도 새로 시작하려는 결의를 보여준 지역도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분위기에서 전국연합을 강화발전시키겠다는 결의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해외에 있기 때문에 문건으로 밖에는 알지 못했는데 직접 현장에서 만나뵌 분들을 통해서 오랜 운동의 분열을 극복하고 자주민주통일을 더욱 풍요롭게 추진하려고 하는 그런 힘찬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한가지는 밖에 대한 정보를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반도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정보, 특히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 목말라하고 있더군요. 통일의 주체이며 통일의 대상인 북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 운동권에 대한 정보도 알고싶어 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러한 정보의 빈곤을 극복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3자연대의 출발점을 마련하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절실하게 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들이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겠다는 새로운 사명감을 자각했습니다.

질문 : 특별히 인상깊었던 자리라든가 사람은 없었는지요. 워낙 경황없이 다니다 보니 기억하시기도 쉽지 않으시겠지만.

답변 : 활동가들을 만나본 것도 굉장히 큰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이 땅의 노동자 농민 형제들을 직접 만나서 같이 말씀을 나누고 또 하룻밤을 같이 지내게 된 것은 저로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해외에서 18년 살면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라든가 북한학을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통일운동을 배우고 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제가 그동안 공부했던 것을 이땅의 활동가들과 민중앞에 보고드린다는 심정으로 지냈습니다. 또 그분들의 눈빛에서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돌파하려는 새로운 힘을 느꼈습니다.

질문 : 지난 94년 조국통일북미주동포회의가 출범해서 활동을 하다가 작년 12월에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으로 강화 재편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전국연합 회원들의 경우에는 해외운동에 대한 이해가 대단히 부족합니다. 물론 한선생님의 이번 순회강연을 통해서 이해정도가 크게 높아졌을 걸로 생각합니다만 해외운동이 민족민주운동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해왔고 또 하고자 하는지 개략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답변 : 해외 민족민주운동의 기반이 되는 해외동포사회 자체가 식민지와 분단의 산물입니다. 재일동포, 재중동포, 러시아·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식민지시대에 조국을 등지고 건너가셨던 분들의 후손들이고, 그 다음에 미국에 있는 재미동포들은 분단시대의 산물입니다. 박정희 정권때 내부적인 불만을 해외로 유출시키는 정책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기민정책이었는데 국민을 버리는 이런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에 흘러가게 된 것이죠.

물론 70년대 이후에 형성되기 시작한 재미동포 사회는 이 땅에서 그래도 밥들은 먹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살아보겠다고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건너간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재미동포사회는 보수적인 성향이 상당히 강한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형성사적인 측면에서 해외 각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해외동포라는 개념에 한 500만명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만, 일률적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재미동포사회를 중심으로 한 민족민주운동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게 되면 사실은 국내보다는 일찍 70년대 초에 유신독재체제를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출발해서 광주민중항쟁을 겪으면서 민족민주운동의 수준으로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이 있었고 분열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다 정리가 됐습니다. 우리 자주연합과 범민련 미주본부가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운동조직이라고 볼 수 있죠.

자주연합은 70년대에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출범을 한 미주민주국민연합의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운동조직입니다. 미주민주국민연합은 그 당시에 주한미군 철수라든가 유신독재체제 철폐 그리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 지금으로 말하면 자주민주통일 3대 강령이라고 표현은 안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자주민주통일 3대 강령을 기치로 내걸고 투쟁했던 가장 중요한 조직이었습니다. 사실은 그 조직이 출발이었죠. 그 이전엔 없었어요. 그것이 80년대를 거치면서 발전되다가 90년대 들어와서 북미주조국통일동포회의로 계승되고 그것을 지난해 12월에 자주민주통일미주연합이라는 연합체 수준의 조직으로 강화발전시켜서 새롭게 출범하게 된거죠. 자주연합은 지금 보스톤,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시카고 그 다음에 남가주에 지부를 두고 있구요, 올해안에 북가주지부를 결성하려고 합니다.

질문 : 국내의 민족민주운동의 경우는 노동운동, 농민운동, 학생운동 등 부문운동을 기반으로 지역운동을 결합해서 전개되는 그런 특성을 보이는데 아무래도 해외운동, 특히 몸담고 계신 미주의 경우 국내와는 다른 독특한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좀 소개해 주십시오.

답변 : 미주 동포사회는 여기와 달리 계급적 기반이 없습니다. 거기는 해외동포이자 거주국의 소수민족 일원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이민 2세들은 이민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2세들이 자라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민족교육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무슨 노동자라든지 농민이라든지 하는 단일한 계급적 이해관계로 결합될 수 있는 사회구성부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로 해외동포운동의 중심은 조국통일운동이 되겠습니다. 재미동포 사회 자체가 분단의 산물이기 때문에 특히 이산가족이 많이 빠져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고향을 등지고 전쟁때 38선을 넘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월남자들이 다시 미국에 건너와서 살고 있는 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분들은 일찍부터 미국에 사시면서 북에 있는 가족들하고 상봉하려고 하는 그런 움직임을 보여왔고 그런 점에서 통일문제가 상당히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북과 남이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는 분단악법으로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서로 만나고 화해하고 교류하는 그런 중개자의 역할을 해야 된다고 평소 생각해왔고 또 그를 위해서 계속해서 뛰고 있다고 봅니다.

질문 : 올해 전국연합은 8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자리가 있을 때마다 너나할 것 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마는 단순히 기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나온 7기를 마무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점에 놓여져 있다고 여깁니다. 자주연합의 경우에는 전국연합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자주연합이 전국연합의 활동에 어떻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지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 오늘의 현실을 이야기하기 전에 역사적 이야기 하나 하자면 45년 이후 해방공간에서 이미 최초의 전선운동체인 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이 있었습니다. 그 민전에도 제가 기억하기로는 국제부가 따로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 선배들이 지금부터 50년전에 이미 시야를 국제사회로 넓혔습니다. 그 당시 일본 빼놓고는 해외동포 사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민전은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사회와 연계를 갖고 싸웠고 재일동포들이 해방정국에 남한의 민전과 연계를 가지고 투쟁했던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 이후 분단독재체제에 갇혀서 우리의 시야가 좁아졌고 또 국제연대 전통을 거의 망각한 채 오랜 세월을 지내오게 된거죠.

이것을 다시 복원하는 것은 오늘 이 시대에 전국연합과 자주연합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전국연합 안에도 국제부나 국제국을 정식으로 설정하셔서 그 통로로 해외동포운동이라든가 국제사회 진보적인 운동과 손잡고 같이 나가는 그런 방향으로 발상을 확장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실 준비정도는 미약하지만 언제든지 국제연대운동이라든가 해외민족민주운동의 일원으로서 참가할 준비는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먼저 질문을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전국연합에 있는 간부들 중에서는 자주연합은 말하자면 ‘미주에 있는 전국연합 조직이다’ 그렇게 보자거나 ‘그렇게 하기로 했다’라는, 어쩌면 기대에 섞인 바램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당사자측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간단하게 얘기해 주십시오.

답변 : 같이 손을 잡고 연대협력하는 관계를 강화발전시킨다는 점에서는 당연히 그런 표현을 써도 좋겠습니다만 그런 표현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대협력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고 보는데, 어떤 구체적인 운동력으로 이것을 전개하느냐는 앞으로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단 상호 인적인 교류, 상호 정보 교류,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발전시켜 나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 8기를 맞이하고 있는 전국연합은 올해 투쟁계획을 수립하면서 무엇보다도 민족자주의 과제를 전면에 내걸고 광범위한 민중연대투쟁을 전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민족자주의 과제는 현실적으로 반미의 문제를 핵심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데, 선생님께서 활동하고 계신 곳이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 본토에서 본 한국의 반미자주의 과제는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또한 실천해야 하는지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비추어서 설명을 해주십시오.

답변 : 민족자주라고 하는 커다란 과제를 당면해서 어떻게 실천하느냐하는 문제는 깊이 연구하고 토론해야 하는 문제인데, 저희들이 밖에서 보기에는 미국의 한반도 전략이라는 것이 군사전략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오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략에 대응하는 것을 민족자주화 과제의 중심축으로 해서 배치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미국을 중심으로한 한미연합군의 군사적 대치상황, 이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북 7천만 겨레 전체의 생사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또 북녘 동포들의 경제난의 많은 부분들이 군사비 부담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고, 남녘 동포들도 IMF체제하에서 과중한 군사비로 혈세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합의서 이행이 동시적으로 제기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여기와서 느낀 것인데 일부 사람들은 남북합의서 이행만을 이야기하고 평화협정 체결문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일부사람들은 평화협정 체결은 이야기하는데 남북합의서 이행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 두가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면서 이 두가지가 같이 해결되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전쟁상태를 종식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바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이 실현되어야 주한미군 철수가 가능합니다. 그 이전에는 논리적으로 실천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가 불가능합니다.

민족자주의 과제를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한국 민중이 주체적으로 대응한다고 했을 때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로 집약될 수 있겠습니다.

주한미군 철수라고 하면 일부에서는 북한의 주장과 똑같다, 그래서 너무 과도하고 과격한 주장이 아니냐고 하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워싱턴 전략가들의 생각을 모르는 말인데 워싱턴 일부 전략가들은 우리보다 더 오래전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오고 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다만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 것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주한미군 철수 자체를 거부하는 목소리가 미 행정부 안에 지배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행사되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 워싱턴 전략가들도 주한미군 철수를 이야기합니다. 그 사람들이 북한의 주장을 동조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죠. 전략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남한의 민족민주운동이 주한미군 철수주장을 드는 것은 우리 민족자주의 입장에서 보거나 워싱턴에서 나오는 일부 전략가들 주장의 견지에서 보거나 정당하다고 볼 수 있죠.

질문 : 그러면 민족자주의 과제 중에서도 핵심적인 과제인 주한미군 철수의 문제는 방식 문제를 떠나서 지금 이 시점에서 제기해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인지 이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십시오.

답변 : 평화협정 체결을 하려면 평화회담이 이루어져야 평화협정이 가능합니다. 저는 미국이 평화회담을 하지 않고 4자회담이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요구와 주장을 희석화하고 평화협정 체결없이 사태를 넘겨보려고 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4자회담 자체만 가지곤 평화협정 체결은 상당히 힘들다고 보고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4자회담을 명실공히 한반도 평화회담으로 그 임무와 성격을 분명히 변모시키도록 우리 민족이 주체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당면해서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언론에 4자회담의 본질을 폭로하고 4자회담이 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회담으로 전환되어야 하는가를 대중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계기를 포착하여 시행해야 됩니다. 제네바도 가야 되고 이와 관련된 토론회도 조직해야 되고 여러가지 선전물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제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국제연대 측면에서도 이것을 지원하는 일이 중요한 사안으로 대두된다고 봅니다.

질문 : 은연중에 민족민주운동이 인식의 혼란을 겪고 있는 대목이 ‘미국은 과연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미국은 흡수통일을 기도하며 이를 위한 여건조성에 착수하고 있다거나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미국은 일관되게 영구분단 즉 남과 북을 별도로 관리하고자 하는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거나 하는 인식이 혼재돼 있습니다. 어떻게 보는 것이 정확한 것인지에 대해 말씀을 해주십시오.

답변 :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냉전 시기에는 분명히 분단합법화 혹은 분단영구화라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죠. 옛날 두 개의 한국정책이라는 것이 그것이었고 그것의 구체적인 표현이 한반도 주변 4강의 교차승인, 유엔 동시가입이었습니다. 미국은 그것을 실현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북한이 외교적인 고립 상태에 빠지고 내부적으로 경제난을 심각하게 겪게되니까 이 기회에 워싱턴의 강경파들은 북한을 굴복시키고 개혁개방으로 유도해내서 종국적으로는 남한형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통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한 때 논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흔히 연착륙정책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연착륙 정책이 나오니까 일부 사람들이 그 논리에 말려들면서 결국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분단을 유지하려는 정책이 아니라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정책이다, 따라서 기존의 통일 대 반통일 구도는 무너지고 미국도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이다’라고 생각하는 착오에 빠졌습니다.

제가 착오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연착륙정책을 주장했던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북한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지난해부터 연착륙정책 자체가 워싱턴 내부에서 붕괴되었다는 자기비판들을 하고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그런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이 추구할 수 있는 정책은 잠시 자기들의 주관주의적인 판단으로 북한이 몰락하게 될테니까 흡수통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접고 다시 적극적으로 분단을 관리하는 정책으로, 즉 두 개의 한국정책으로 전환을 해서 추진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엔동시가입은 미국이 완성했죠. 그 다음 단계로 교차승인인데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하기만 하면 교차승인 구도는 완성됩니다. 그것이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이라는 말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을 사실상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교차승인구도는 다른 말로 하면 분단관리구도 정책의 핵심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은 미국의 논리로 말려들어가는 것이죠. 사실 미국과 관계개선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회의적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와 국가의 상호공존, 평화적 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틈을 이용해서 분단구도를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남북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북한은 강력히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남북을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전환시켜서 이른바 국가연합체제로 만들고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그런 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남북화해를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로 변모시키려고 하는 이른바 국가연합식의 관계개선방안에 대해서 반대하죠.

질문 : 그러면 미국이야말로 한반도 통일의 결정적 장애물이라고 하는 나름대로 민족민주운동 진영의 확립된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씀이신지 확인을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변 : 그렇죠. 우리가 미국의 한반도 전략을 깊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미국이 한반도의 분단을 관리하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통일 대 반통일 구도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반통일 세력의 핵심 또는 중심이 미국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봅니다.

질문 : 다른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통일운동은 극심한 분열속에서 고통스런 한시기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00년대가 마무리되는 올해는 지난 분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자주의 기치아래 민족대단결의 새 장을 여는 한 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의가 전국연합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많이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해외, 가능하시다면 북은 올해 통일운동과 관련해 무엇을 초점에 두고 어떤 방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 제가 여기에 들어와서 느낀 것의 하나는 올해에는 통일운동진영 내의 분열상을 극복하고 어떻게든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보고자 하는 열기가 있다는 점입니다. 남한 통일운동진영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북과 해외 통일운동진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봅니다.

사실 북이나 해외가 심각한 분열상을 겪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북은 전혀 그런 것이 없었겠고 해외를 보더라도 범민련 세력과 범민련이 아닌 세력간의 갈등과 분열은 없었습니다. 서로 협력해 왔고 언제든지 손잡고 한 목소리로 한 틀안에서 8월 행사를 치러낼 수 있는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남한 안에 있는 통일운동세력의 일치단결입니다. 하나의 틀을 남한 안에서 만들어주시기만 하면 해외는 문제없이 따라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북해외가 하나의 틀 안에서 올해 8월 행사를 성과적으로 치러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직적 틀을 담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올해 8월 행사에 임박해서 그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단일한 8월 행사를 치러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바라건대 이것이 좋은 결과를 내서 지금까지의 분열상을 일거에 극복하고 21세기의 조국통일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질문 : 관련해서 추가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분열을 극복하고 단결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올해 처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줄기차게 진행되어 왔는데 결과적으로 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있는데요,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여하튼 올해 10년째를 맞이하는 범민족대회는 현재의 논의와 무관하게 개최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런만큼 이를 수용하고 인정할 때 어떻든 너른 단결의 장이 마련될 수 있지 않느냐는 판단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해외, 또 북은 나름대로 판단이 있는 것인지 도움이 될 이야기가 있으면 해주십시오.

답변 : 범민족대회 관련해서는 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말씀을 드릴 처지는 아니지만 그전의 경험을 비추어서 다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범민족대회는 범민족대회대로 그 의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지금 당면해서는 분열의 아픔을 건드리게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럼에도 범민족대회 하나만 가지고는 이 땅 민중의 통일열기를 다 담아낼 수 없다는데 현실적인 문제가 있지요. 이 두 부분을 어떻게 절묘하게 결합하느냐가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범민련은 범민련대로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범민족대회만이 유일무이한 대안으로 생각하는 그런 관점에서는 좀 벗어나서 그 틀이 담지 못하는 민중들의 통일의지를 어떻게 같이 담아내 갈 것인가를 처음부터 고민한다면 문제해결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의 통일대축전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통일대축전은 북한이 먼저 제의했습니다. 통일대축전은 분명히 범민족대회나 범민족회의는 아니었고, 이름부터가, 그안에 포괄할 수 있는 범위가 더 커다란 틀이었죠. 제 추측에 북이 작년에 통일대축전을 제안한 것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범민련이라는 틀에 다 담아내지 못하는 남한 민중들의 열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서 통일대축전이라고 하는 포괄적인 틀로 의견이 모아진다면 저는 무리없이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질문 : 고맙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전국연합은 지나온 과정을 정리하고 혹은 반성하여 청산하고 새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자주연합 입장에서, 좀더 넓은 해외운동을 하는 입장에서 8기 전국연합에 특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나 나름대로 기대되는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 전국연합에 드리고 싶은 말씀인데 어쨌든 전세계적으로 진보운동의 시련기라고 말하고 있는 이때 시련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도는 원칙을 고수하는 겁니다. 시련기일수록 원칙을 고수하지 않으면 돌파할 수 있는 힘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진보운동사가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는 바입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련이라는 것 자체가 원칙에 대한 도전이고 원칙을 훼손시키려는 세력과의 심각한 투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변함없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전국연합이 앞장서시고 또 그런 투쟁을 통해서 검열되고 단련된 핵심운동 세력들이 민중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자주민주통일의 역사적 임무를 자각하는 길로 함께 나가도록 이끈다면 전국연합의 조직적 기반, 대중적 기반은 날로 확장될 것이고 전국연합이 장차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나라안에서 앞장서서 투쟁해주십시오. 저희들은 나라밖에서 끝까지 손잡고 함께 할 수 있는 결의를 갖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 마직막으로 선생님 개인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전국연합은 다방면에서 현재의 자주연합의 위로와 격려를 받고 정세판단이라든가 이론적 영역에 있어서 막대한 도움을 받아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호석 선생님께서 특히나 많은 역할을 해주셨는데 대단히 바쁜 한해가 될 걸로 믿습니다마는 올해 특별히 계획하고 있으신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보면 전국연합 회원들에게 약속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는데요, 공개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답변 : 저는 제가 쓴 글을 여기서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지 사실상 풍설에 들었을 뿐이지 직접 확인하기는 처음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하는 고민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쓴 글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읽혀지느냐 그 반응을 직접적으로 얻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대화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와서 얻은 가장 중요한 소득은 제가 쓴 글들을 여러분들이 읽고 그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저는 겸허한 반성과 자기비판을 통해서 이 시대에 요구되는 그런 글들을 써내라고 하는 격려와 채찍질로 받아 들입니다.

앞으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머리를 싸매고 더 좋은 글을 써서 밖에서 보는 정세분석, 밖의 사정을 알려주는 정보교환의 통로, 이런 것들을 좀 더 착실하게 만들어 가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거꾸로 남한민족민주운동의 움직임, 여기 민중운동 전체의 움직임을 밖에서는 잘 모르고 있는데 이것을 밖에 알려주는 책임도 역시 똑같이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는 사실 전국연합쪽에서 좀 풀어주셔야 될 과제고 그런 의미에서 「민」지가 발간되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고 있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앞으로 「민」지를 더욱 알차게 가꾸고 키우셔서 민족민주운동의 이론적 주춧돌을 놓는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리 : 이제 우리 전국연합은 훌륭한 눈과 귀를 갖게 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는데 있어서 선생님의 역할을 기대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