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 관계, 조·일 관계의 개선, 그리고 남북 관계의 정체


한호석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1) 조·미 '유해 외교'의 재개와 '중무장지대'의 교전

그 동안 뜸했던 조·미 관계 개선의 움직임이 최근에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논평가들이 '화해의 손짓'이라고 부르는 최근의 개선 움직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유해 외교다. 미국과 북(조선)의 미군 유해 합동 발굴 작업은 7월 15일부터 8월 4일까지 평안북도 운산군을 비롯한 3개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이 합동 발굴 작업은 조·미 유해 외교를 본 궤도에 올려놓은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조·미 양국은 1996년 1월에 있었던 미군 유해 문제에 관한 제1차 하와이 협상이 결렬된 뒤로, 5월 4일부터 9일까지 뉴욕에서 제2차 협상을 가졌고 여기에서 의견이 접근하여 합의문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으며, 1996년 10월 3일 미 국방부는 조·미 공동 조사를 통해 최초로 미군의 유해가 발굴되었다고 발표한 바있다. 미국이 이번에 유해 발굴 작업을 위하여 실무 작업 담당관 8명과 연락관 2명을 20일 동안 북(조선)에 파견하여, 미군 유해 4구를 발굴하였고 8월 4일에는 판문점을 통해 유해가 송환되었다. 미국은 8월 9일 북(조선)에 있는 '조선전쟁 문서 기록 보관소'에 관계자 5명을 보내 문서 조사 활동을 벌이고 19일에는 2차 발굴단을 파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조·미 양국이 오는 10월 말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공동 발굴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유해 외교는 조·미 수교를 향한 징검다리를 놓아가는 절차다. 북(조선)은 유해 외교를 통해 미국의 대북 여론을 강성 분위기에서 연성 분위기로 바꾸어놓아 조·미 관계 개선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발맞추어 미국도 유해 외교를 통해 대북 유화 정책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미국이 유해 외교를 통하여 북(조선)에 접근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중국이 남북 동시 수교국이라는 유리한 조건을 통해 한(조선)반도에 들이밀고 있는 영향력을 견제하고 미국 자신이 구축해놓은 동아시아 지배 질서를 더 확고하게 다지려고 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미국은 동남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교전국이었던 베트남과 수교하려 할 때에도 유해 외교를 동원한 바있다. 미국은 이제 동북 아시아에서 교전국이었을 뿐아니라 지금도 무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조선)에 유해 외교라는 전술을 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7월 16일에 있었던 중동부 전선 비무장지대의 교전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교전 사건은 중화기와 포를 동원한 강도 높은 군사적 충돌이었다. 비무장지대는 양측이 중화기 공격과와 포격을 주고 받는 것으로 보아서 소규모 군사적 충돌이 전쟁으로 번질 수 있는 극도의 위험을 안고 있는 중무장지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군사적 충돌은 유해 외교의 본격화와 미국 대표단의 방북이라는 조·미 협상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기 시작한 시점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우발적인 사건이었을까 아니면 의도적인 사건이었을까? 의도적인 사건이었다면, 유해 외교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발표된 다음날, 그리고 미국 대표단의 북(조선) 방문을 불과 나흘 앞둔 시점에서 비무장지대 교전 사건이 일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북(조선) 군부는 현재 한(조선)반도의 정전 상태를 관리할 군사적 협의 기구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조선)반도에 영구적인 평화 체제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과 서방측에 일깨워주기 위해서 그러한 의도적인 사건을 일으켰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극도의 전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중무장지대에서 일종의 모험을 벌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교전 사건에 대한 미국측의 반응을 살펴보면, 북(조선) 군부가 중무장지대에서 군사적 모험을 벌였다고 보는 시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은 마치 북(조선) 군부의 의도를 읽고 있는 듯이 전쟁 위기설이라는 화급한 반응과는 거리를 둔 여유있는 반응을 보이면서, 협상의 필요성과 평화 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중동부 전선에서 남북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 직후, 백악관 대변인 마이클 맥커리는 "휴전선 교전과 같은 사건에 대한 해답은 평화 협상"이라고 말했고, 미 국무부 대변인 니컬러스 번스는 "휴전선 교전 사건은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 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 교전 사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북(조선)을 규탄·비난하는 쪽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평화 협상과 평화 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에 맞춰졌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무장지대 교전 사건에 대해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의 유지와 남북 양측의 냉정한 대처를 희망한다는 내용으로 발표한 중국 외교부의 논평이 현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과 대비하여 미국의 논평은 새로운 평화 체제 수립을 지향한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 행정부의 여유있는 반응과는 달리, 비무장지대 교전 사건에 대한 미 의회의 반응은 종전처럼 강경하였다. 미 상원은 7월 16일 구두 표결에서 경수로 사업에 대한 미국의 기금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조처를 채택하였고, 같은 날 미 하원은 북(조선)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고 연방정부의 자금 사용을 막는 법안을 본 회의에 상정하였다. 미 의회의 분위기는 대북 강경론으로 뒤덮히고 있었다. 그러나 7월 24일 미 하원은 본 회의에서 강경론과 온건론을 절충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식량 지원을 유엔 세계식량계획과 미국의 비정부 단체로만 국한시키는 내용으로 원조 법안을 통과시켰다.

(2) 미국 대표단의 방북과 남·북·미 삼국의 함수 관계

북(조선)은 미국의 유해 외교 전술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조·미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북(조선)은 미국의 유해 발굴단이 북(조선)에 들어간지 닷새 뒤에 또다른 미국 대표단을 북(조선)에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미국 대표단의 방북은 미국쪽에서 방북 의사를 먼저 밝힘으로써 성사된 것이 아니라 북(조선)쪽에서 먼저 초청하여 성사되었다. 이번 대표단은 비록 미국 정부의 공식 대표단은 아니었지만, 민간 대표단의 형식을 빌어 미국 정부의 견해와 의사를 북(조선)에 전달한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대로,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미대사와 샘 넌 전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 미 국무부 코리아과 부과장 데이빗 스트라우브, 미 국방부 코리아담당관 리처든 핀이 북(조선)의 초청을 받고 평양을 방문하였다.

북(조선)에서 이루어진 조·미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 말할 필요 없이 한(조선)반도에 새로운 군사 대화 기구를 설치하는 문제였다. 미국 대표단이 북(조선) 군부측과 면담하겠다고 요청하여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대표인 리찬복 중장과 만났다는 사실은 미국측이 새로운 군사 대화 기구를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적극적인 의사를 지니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 대표단과 판문점 대표부가 만난 자리에서 샘 넌 전 미 상원 군사위원장은 남(한국)군, 북(조선)군, 주한미군의 동시 감축에 관련하여 김일성 주석과 카터 전 대통령의 대화 내용을 읽어 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김일성 주석의 권위를 빌어서 북(조선) 군부를 설득하려고 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하여 리찬복 중장이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조·미 상호 안보 협의회의 설치를 역설하였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쨋든 이 자리에서 양측은 군사 협의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였고, 파괴된 군사정전위원회를 대체할 새로운 군사 협의 기구를 설치하자는 데 기본적으로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러한 조·미 사이의 기본적 의견 일치는 그것이 비록 공식 합의는 아니라고 해도, 새로운 군사 협의 기구를 설치하는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서 양측 정부의 적극적인 의사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7월 31일 CNN방송 특집 프로그램에 나온 레이니와 샘 넌은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머지 않아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비서를 만날 것임을 밝힌 것이다. 레이니와 샘 넌의 이러한 발언이 있기 하루 앞서 7월 30일에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도 CNN 방송과 한 회견에서 대동소이한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만일 그들의 말대로 김정일 비서와 카터 전 대통령의 평양 회담이 성사되면 그것은 조·미 관계 개선을 촉진시키는 획기적인 국면을 열어놓게 될 것이다. 머지 않아 카터의 방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 그들의 발언은 김정일 비서의 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혹시 카터 전 대통령은 김정일 비서의 국가주석 취임식에 미국을 대표한 축하 사절로 나타나려는 게 아닐까? 레이니와 샘 넌은 카터의 방북 뒤인 내년 초에 남(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끝나게 되면 남북 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는데, 이러한 전망 발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김정일 비서의 취임,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남(한국)의 대선이라는 순서를 밟은 뒤에 자연스럽게 남북의 새로운 정권이 카터의 중재를 통하여 대화의 자리에 나오리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미국이 카터의 방북을 통하여 조·미 관계 개선을 적극 추진하려는데 반해 남북 관계는 개선의 조짐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저 조·미 관계가 개선된다면 남북 관계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하는 정도의 의례적인 기대 발언을 한 것일까? 지금까지 정세 변화의 방향을 가늠해본다면 후자가 더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월 10일부터 닷새 동안 미 하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인 포터 고스(플로리다주 출신, 공화당)의원 등 정보위원회 소속 공화·민주 양당 소속 의원 7명이 남북을 동시 방문한다는 보도는 미 의회에서 북(조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원 정보위원회는 행정부의 외교·안보 담당 부서와 직결된 통로로서, 이들의 방북 체험은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 동안 개인적인 방북은 몇 차례 있었지만, 미국 의회에서 7명이나 되는 인원으로 방북단을 편성해서 단체 방북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의회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유화 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는데, 의원들의 줄이은 방북은 이러한 제동 장치를 풀어놓게 할 것으로 보인다. 요즈음 미 의회에서는 북(조선)에 한 번 다녀와야 언론을 타게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저마다 방북 신청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한(조선)반도의 군사 문제에 대한 조·미 양국의 견해는 남(한국) 당국의 견해와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남(한국) 당국의 기본 입장은 기존의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남(한국)은 군사정전위원회 수석 대표를 남(한국)군 장성으로 임명하자 북(조선)이 군사정전위원회를 파기하였던 것을 감안하여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수석 대표인 남한군 장성 1명을 제외하고, 남(한국)군 장성과 미군 장성을 각각 한 명씩 포함한 유엔사의 장성급 대표들과 북(조선)군 장성급 대표들 사이에 군사적 의사 소통 기구를 가동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남(한국) 당국은 미국의 방북 대표단에게 이러한 군사적 의사 소통 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의 틀을 약간 변동한 채로 유지해보려는 남(한국) 당국의 논리가 조·미 협상에서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남(한국) 당국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국) 당국은 그 대신 남북 사이의 긴급 전화(hot line) 개설, 군사 훈련 상호 통보 및 참관, 남북 이산가족 방문 및 우편물 교환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북측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북(조선)은 이러한 남(한국) 당국의 제안을 전달 받고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묵살하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미 양국은 긴급 전화 설치나 군사 훈련 상호 통보 및 참관 보다도 더 포괄적인 군사적 상호 협의를 바라고 있으며 그러한 포괄적 군사협 의를 위한 공식 기구를 설치하려는 의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 사이의 긴급 전화 개설 문제를 바라고 있는 쪽은 미국이다. 일본 민주당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하고 있던 요코미치 다카히로 부총재는 7월 28일 미국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국장 잭 프리처드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은 남북 기본합의서에 근거하여 긴급 전화를 개설할 것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남북 기본합의서에 근거한 남북 사이의 긴급 전화 개설을 바라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먼저 개설되어야 주한미군-조선인민군 사이의 긴급 전화를 개설할 수 있다고 타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조선)은 조·미 군사 협의 기구와 남북 군사 협의 기구를 동시에 가동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3) 유해 외교와 4자 회담, 그리고 상충되는 분위기

미국 대표단의 방남에도 눈길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방남 목적을 남(한국) 당국에게 방북 결과를 설명해주면서 조·미 관계 개선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남(한국) 당국의 불안감을 덜어주려는 외교적 행태라고 좁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북 식량 지원을 자국이 주도하게 될 4자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중요한 방책으로 여기고 있는 미국이 대표단의 방남을 통해서 남(한국) 당국이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설 것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미국 대표단의 남북 동시 방문은 결국 4자 회담을 미국 자신의 주도로 성사시키려는 의지를 드러내보인 사건이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방북 일정을 마친 미국 대표단이 미 군용기에 몸을 싣고 동해로 빠져나가 남(한국)으로 넘어가던 시각과 거의 때를 같이 해서 워싱턴에서는 미 상원 국제관계위원회 주최로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청문회는 한(조선)반도의 정세 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지명자를 인준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지명자 스탠리 로스가 남긴 말은 미국 대표단의 남북 동시방문 목적이 무엇인가를 재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반도에 있어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 지역(동아시아지역을 뜻함)의 활발한 경제 활동과 점차 증대하는 외교적 지위, 그리고 강력해지고 있는 군사력 등으로 미국의 개입 정책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북(조선)은 유해 외교를 통하여 한(조선)반도의 군사 협의 기구를 설치하려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 구상은 4자 회담과는 별개의 사안이지만, 미국은 이 구상과 4자 회담 추진 문제를 연계시키려고 하고 있다. 샘 넌 전 위원장이 리찬복 중장을 만난 자리에서 군사 협의 기구를 설치하기 위해서라도 북(조선)이 4자 회담에 참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사실은 미국에게 이같은 연계 의도가 있음을 밝혀준다. 미국은 남(한국)과 공조하여 4자 회담에 북(조선)을 끌어들이려고 애쓰고 있으며 4자 회담을 주도함으로써 한(조선)반도 평화 체제 수립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북(조선)은 4자 회담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지는 않고 있지만, 4자 회담에 참여하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조·미 및 남북 사이의 이중적 군사 협의 기구를 설치하는 데 힘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은 유해 외교를 통한 군사 협의 기구를 설치하려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4자 회담 예비 회담에 참가하겠다고 수락했으며, 그 수락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하여 유해 외교를 본 궤도에 올려놓는 한편, 미국의 대표단을 평양에 끌어들여 군사 협의 기구 설치에 관련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 북(조선)은 이 군사 협의 기구를 조·미 사이의 협의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결국에 가서는 조·미 및 남북 사이의 이중 형식의 협의 기구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이중 협의 기구의 형식을 갖추었으면서도 실제로는 조·미 2자 관계가 운영·관리의 주도권을 쥐게 될 새로운 군사적 대화 구도를 수립하려고 하는 것이 북(조선)의 의도라고 파악된다. 북(조선)은 조·미 유해 외교를 이러한 자신의 구상을 추진하기 위한 유력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도 유해 외교의 틀 안에서 대북 식량 지원과 대북 경제 제재 조치 완화라는 방책으로 화답하면서 일정하게 끌려가지 않을 수 없는 형국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미 합동 유해 발굴단이 발굴 작업을 끝낸 8월 4일 다음날은 4자 회담 예비 회담이 뉴욕에서 열린 날이다. 발굴 작업을 마치는 때와 4자 회담 예비 회담을 시작하는 때를 맞물려놓은 이러한 일정 배치는 우연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4자 회담 예비 회담에 북(조선)이 참가하는 것은 조·미 유해 외교의 성과를 한층 더 무르익게 할 것이 분명하다. 4자 회담 본 회담이 열리게 되더라도 그 회담은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짧은 기간 안에 마무리 지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에 비해서 유해 외교의 성과는 짧은 기간 안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러한 분위기에 맞추어 북(조선)은 군사 협의 기구 설치를 위한 조·미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이 4자 회담에서 노리고 있는 목표는 무엇일까? 미국은 4자 회담에서 평화 협정을 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협정 체결 이전의 3대 조치를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3대 조치란 한(조선)반도의 긴장 완화, 신뢰 구축, 그리고 북(조선)의 경제 개혁이다. 이 3대 조치는 레이니-넌 미국 대표단이 북(조선)을 방문하여 제기한 문제들과 일치한다. 이러한 3대 조치에 관련한 내용은 미 의회 부설 연구기관인 미 평화연구소(USIP)가 7월 2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조선)반도의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관련하여 재래식 무기 감축을 위한 협상을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북(조선)이 앞으로 외국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정치·경제 환경을 조성하는 구조적인 경제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다른 한 편으로 북(조선)은 4자 회담에서 평화 협정 체결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를 주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유엔 주재 북(조선) 대표부의 리근 차석대사는 7월 31일 성명을 통해 4자 회담 예비 회담과 관련하여 그러한 의도를 분명히 밝혔으며, 8월 5일 뉴욕에서 열린 4자 회담 예비 회담에서 북(조선) 대표는 평화 협정 체결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를 본 회담의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대표단이 수정할 재량권이 없는 문제이므로 단 한 자도 고칠 수 없다고 분명한 태도를 보이며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북(조선) 대표가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 주한미군의 '성격' 문제롤 논의하자고 주장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최근 몇 해 사이에 북(조선) 고위 관료들의 비공식적인 발언을 통해서 나온 견해로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잠정적으로' 용인할 수도 있으며 그 대신 주한미군의 성격과 위상을 바꾸어야 하며, 완전 철수가 아니라 남북 군대의 감축 비율에 상응하여 동반 감축해야 한다는 북(조선)의 기존 견해를 일관되게 주장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지만 주한미군 성격 문제를 4자 회담에서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미 양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성격에 관한 논의는 있을 수 없다는 즉각적인 거부 반응을 보였다. 앞으로 주한미군 문제는 성격 불변-현 수준 동결, 성격 변화-현 수준 동결, 성격 변화-점진적 감축, 성격 변화-점진적 감축이라는 네 가지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데, 종국적으로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는 지금 예측하기 힘들지만, 미국이 남(한국)에 자국의 군대를 주둔시킨 뒤로 조·미 사이에서 한 차례도 공식적으로 거론되지 아니했던 주한미군 문제가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회담에서 거론되었다는 사실은 한(조선)반도의 군사 문제에서 중요한 변화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최근 조·미 관계의 개선 분위기에 맞추어 미국의 대북 경제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7월 15일 미 국무부 대변인은 곡물 10만t이 오는 8월말까지 북(조선)에 전달될 것임을 밝힌 바있다.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1997년도 중유 지원 대금 가운데 4백만 달러를 남(한국)이 분담할 것을 공식 요청하였는데, 이 중유 지원에 대한 분담 요청은 미국이 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전담하도록 했던 묵시적 양해 사항을 일방적으로 어기는 것이다. 미 의회에서 대북 강경론의 제동에 걸려 대북 중유 지원금을 마련하기 힘들어진 미 행정부는 지원 부담을 지금 남(한국)과 일본에게 떠넘기려고 하고 있다. 어쨋든 이러한 미국의 대북 경제 지원은 경제 제재 조치의 해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안겨주고 있다. 런던의 금융가에서 최근 은행이 발행하는 북(조선)에 대한 채권값이 올해 초보다 2.5배나 치솟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대북 경제 제재 조치를 해제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라는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분석도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화해·개선의 분위기에 찬 물을 끼얹으려는 강경파의 움직임도 보인다. 7월 하순에 발간된 영국의 군사 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대량파괴무기 관련 기술과 재래식 고등무기: 1996년 7월-12월」이라는 제목의 미 중앙정보국 기밀 문서를 인용하면서 북(조선)이 1996년에 이집트와 시리아에 스커드-B 미사일 부품과 기술을 제공했다고 보도하였다. 7월 23일 일본의 주간 국제 정보지 『사피오』는 미 정보 기관이 미 하원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비밀 보고서를 인용한 기사에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설, 생화학무기 실전 배치설, 중거리 미사일 개발설을 주장하였다. 또한 『워싱턴 타임스』는 7월 25일 미 중앙정보국 비밀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를 통해 미 중앙정보국이 지난 수 주 동안 찍은 위성 첩보 사진에서 북(조선)이 전진배치한 전투 부대에 1백70mm 자주포대와 2백40mm 로켓 발사대를 보강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북(조선)의 군비 증강설은 미국에서 대북 강경파의 대결론을 고무해주고 온건파의 협상론을 상대적으로 억누르는 여론 효과를 낳고 있다.

7월 29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우호 협회와 미 국가안보협의회 재단 공동 주최 세미나에서 조셉 가레트 미 육군 소장은 남(한국) 정부에 3억3천6백만 달러 규모의 무기 구매 계약을 7월 15일 체결했다고 발언하였으며, 8월 4일 남(한국) 정부는 '을지 연습'을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실시할 것이며, 이와 동시에 한·미 합동군사훈련 '포커스 렌즈'도 18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남(한국)에 대한 슈퍼 컴퓨터 수출을 승인하였고 이로써 남(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는 최근 미국 크레이사로부터 고성능 최신형 슈퍼컴 T-916 1기를 사들이기로 한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슈퍼컴은 미사일, 전투기를 비롯, 각종 무기 개발에는 물론 전투 시뮬레이션 개발에 필수적인 장비라고 한다. 미국의 남(한국)에 대한 무기 판매는 남(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여 북(조선)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겠다는 이른바 '억지 전략'의 일환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북(조선)은 자신을 자극하여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히는 '군사 대결주의'라고 보고 있다.

(4) 조·일 협상 재개와 남·북·일 삼각 관계

1992년에 결렬되었던 조·일 수교 협상이 닷새만이 다시 열리게 될 전망이다. 조·일 관계의 이러한 새로운 국면 전환은 7월 17일 북(조선)의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가 북(조선)의 일본인 처 방일 문제에 관련하여 허용 의사를 담은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은 마치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발빠르게 반응을 보였다. 요사노 가오루 일본 관방차관은 같은 날 담화에서 일본인 처의 방일은 일·조 관계 개선의 실마리라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이틀 뒤인 19일부터 이틀 동안 베이징에서는 조·일 과장급 접촉이 이루어졌다. 이 접촉에서 북(조선)은 일본인 처의 방일은 본의의 희망에 따라 허용할 것이며, 8월에 제1진의 방일을 허용할 의사가 있음을 전달했다. 일본인 처 20명은 8월 15일께 방일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7월 29일 일본 외무성은 조·일 수교 협상에 나설 '일·조 국교 정상화 교섭 정부 대표'로 다카하시 마사지 경제 협력 개발 기구 대표부 대사를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는 9월쯤 정식 발령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북(조선)은 지난 6월 외교부 산하 군축평화연구소 이명봉 부소장을 일본국(14국) 국장으로 배치했는데, 다카하시 대표부 대사는 이명봉 국장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일 관계와 한·일 관계는 분단 상황이 빚어내고 있는 함수 관계에 놓여있다. 일본은 대남 관계와 대북 관계를 적절하게 조절·활용하면서 외교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 남북 관계가 대립적으로 남아있는 한 이러한 불리한 함수 관계는 그대로 존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조·일 수교 협상이 재개되려는 분위기와 맞물려 있는 한·일 어업 분쟁은 분단 상황이 빚어내고 있는 함수 관계가 어떻게 우리 민족 전체에게 손해를 안겨주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일본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직선 기선을 그어 자국의 영해 면적을 확대하고, 지난 6월 15일부터는 그 안에서 조업하고 있던 남(한국) 어선들을 나포할 뿐아니라, 납치한 선원들 폭행하였으며, 오는 9월까지 한·일 어업 협정을 배타적 경제 수역(EEZ) 경계획 확정 협상과 분리하여 추진하고 기존 어업 협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기존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리겠다고 위협한 바있다. 이에 당황한 남(한국) 정부는 7월 28일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어업 분쟁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발판을 마련하기는 커녕 되레 일본의 압력에 밀려 양보만 하고 말았다.

한·일 어업 분쟁은 과거 이승만 정권이 '평화선'을 긋고 그 선 안에 들어온 일본 어선들을 나포함으로써 일어났던 40여년 전의 어업 분쟁을 상기하게 한다. 그 당시 일본은 어업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북(조선)과 재일 동포 귀환 협약을 맺고 귀환을 허용함으로써 이승만 정권을 압박하였다. 이번에 일본이 조·일 수교 협상을 재개하려는 시점에서 한·일 어업 분쟁을 고의적으로 일으킨 것은 북(조선)과의 수교 협상과 남(한국)과의 어업 협상을 '간접적으로' 연계시키고 이 두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남북 관계를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을 사고 있다.

남(한국)은 대일 어업 협상에서 양보하는 한 편, 일본에게 북(조선)과의 수교 협상 진전 속도를 되도록 늦추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될런지 모른다. 그러나 중·일 어업 협상이 타결점에 접근하고 있고, 유해 외교와 4자 회담의 성사를 통해 조·미 관계의 정상화가 추진되고 있는 현 국면에서 일본이 남(한국)의 눈치를 볼 필요는 거의 없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은 대남 어업 협상에서 양보를 따내는 한 편 조·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다. (1996년 8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