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동북아 협력 안보 전략과 한(조선)반도 정세 전망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집단 안보론에서 협력 안보론으로

1992년 말 미국 워싱턴 디씨에 있는 부르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e)는 중요한 보고서를 세상에 펴냈다. 『협력안보의 새로운 개념』이라는 제목을 단 보고서다. 이 보고서의 출간은 오늘 미국의 대외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전문가 집단, 관료 집단들이 변화하고 있는 국제 질서 속에서 재래식 전략 개념을 다시 검토하고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정책 논의를 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책 논의에 손을 댄 것은 부르킹스 연구소,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하버드 대학과 스탠포드 대학의 정책 연구가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 새로운 논의를 이끌고 있는 중심 인물이 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와 현 국방차관 애쉬튼 카터라는 사실이다. 그 무렵 페리는 스탠포드 대학에, 카터는 하버드 대학에 교수로 있었다. 1991년 11월부터 시작된 이 새로운 정책 논의에 참가한 '두뇌 집단'안에는 부르킹스 연구소의 제인 놀런과 월프강 레이니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레너드 스펙터와 셀릭 해리슨, 하버드 대학의 데이빗 머싱턴 같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전문가들이 들어있다.

현재 미국에서 정책 논의의 전면에 떠오른 '협력 안보(cooperative security)'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의 적대국들, 반미 성향국들, 또는 경쟁국들을 지난 날처럼 일대일 관계에서 압력 수단을 동원해 위협·통제하기 보다는 그런 나라들을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안보 기구의 틀 안에 끌어들여 외교력을 동원하여 통제·유도하면서 미국의 외교·군사·경제적 안보를 추구하려는 전략적 방침이다.

지난 동서 진영 대립기에 미국이 유지해왔던 외교·군사 정책은 무력 대결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이른바 억지(deterrence)와 봉쇄(containment)라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두 개념에 재보장(reassurance)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더하여야 하며, 재보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중심으로 미국의 대외 정책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나온 억지와 봉쇄라는 개념은 '집단 안보(collective security)'라는 전통적인 전략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난 시기 집단 안보 전략은 무력 대결 구조과 군사 긴장 상태를 계속 유지·고조시키면서 상대측을 몰아부치는 대외 전략이었고, 일단 상대측과 충돌이 일어나면 미국의 우세한 무력으로 패퇴시킨다는 전쟁 전략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에 비하여 '협력 안보 전략'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이 지역 패권국들이 일어서는 것을 미리 막아내어 미국의 국익을 보장해주는 역내 국제 질서를 계속 유지·강화하는 한편, 지역 분쟁이 터질 수 있는 정치·군사적 긴장 상태를 미국의 국익 추구에 걸맞게 압도적 외교력으로 관리해보겠다는 '예방 전략(preventive strategy)'이다.

유럽은 미국이 주도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집단 안보 개념을 넘어서 새로운 협력 안보 개념을 가장 먼저 적용하게 될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것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같은 다자간 안보 체제가 동유럽 여러 나라들을 받아들이고, 러시아와 일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현실 변화로 나타나고 있으며, 협력 안보체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유럽 안보 협력 회의(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의 가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조짐은 비단 유럽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미·일 군사동맹 체제와 한·미 군사 동맹 체제를 확고하게 유지해온 동북아 지역에서도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일본과 (남)한국에 대한 쌍무적 이중 안보 체제를 통하여 러시아, 중국, 북(조선)에 대해 억지·봉쇄 전략을 추진해왔던 동북아 지역에서도 미국은 요즈음 역내 정치·군사 긴장 구도와 경제 질서에 변동이 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미국의 정책 집단은 이 지역에서도 새로운 지역 안보 전략을 수립·적용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터다. 이미 북(조선) '핵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북(조선)과 미국의 공방전을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정책 집단은 이러한 필요를 더욱 현실감 있게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2) 미국이 느끼는 새로운 '안보 불안감'

미국은 지난 15년 동안 재래식 무기 체계를 혁신하는 개발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여, 엄청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은 광범위하고 정밀한 감시·정찰력, 정보 처리력을 군사 작전 수행력과 결합시켜 미군의 전투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으며, 정밀 유도 폭탄의 개발로 미군의 공격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미국이 이라크와 벌인 전쟁은 이러한 성과들을 '유감 없이' 발휘한 기회가 되었다. 미국·이라크 전쟁을 CNN 방송의 현장 중계를 통해 지켜보면서 미국의 대외 정책 집단은 자국의 재래식 첨단 무기 체계와 그 전투력이 다른 어떤 나라도 따를 수 없는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고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다. 미 국방장관 페리는 협력 안보를 논하는 자신의 글에서 허풍이 아니라 실제로 오늘 미국의 군사력은 다른 나라들이 수 십년을 두고도 따를 수 없는 최고 우위를 확보했다고 장담했다.

이처럼 막강한 군사 기술과 전쟁 수행 능력을 가진 미국이 느끼는 '안보 불안감'과 위협 요인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엄살을 피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안보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의 관심을 끄는 문제는 오늘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한 미국이 왜 새로운 예방 전략 개념인 '협력 안보론'을 논의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과 배경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 정책 논의 집단의 견해를 살펴보면 이렇다.

지난 동서 진영 대립기에는 미국이 별로 위협 요인이라고 보지 않았던 대상들이 이제는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미국의 정책 집단은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대외 전략이 그 초점을 전지구적인 진영 대결 구조에서 지역별 대결 구조로 옮겼음을 뜻한다. 미국은 적대국, 반미 성향국 또는 경쟁국들이 비록 미국보다는 뒤떨어진 수준이라 할지라도 재래식 또는 핵관련 군사 기술을 독자적으로 또는 협업적으로 개발하거나, 또는 그런 나라들에게로 고급 군사 기술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가장 커다란 위협 요인으로 느끼고 있다.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들이 민간 산업 기술과 군수 산업 기술을 급속하게 발전·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간·군수 산업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속속 새로 등장한 무기 공급 국가들이 국제적인 합작 개발 체계 및 협업적 생산 체계를 갖추어 가고, 무기 생산 기술의 전세계적인 공급망이 형성되고 있는 오늘 현실은 미국에게 커다란 위협 요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르헨티나, 이라크, 이집트가 콘돌 미사일 개발을 상호 협력하고 있는 것이나, 중국이 시리아와 파키스탄에 무기 생산 기술을 공급하는 현상이 그 좋은 본보기다. 미사일 개발 문제에 관련하여 북(조선)과 이란이 밀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워싱턴 정가의 우려하는 시각도 이런 범위 안에 들어 있다.

오늘 웬만한 산업 기술 능력을 확보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또는 다른 나라와 협력하여 핵무기, 미사일,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 파괴 무기를 개발·생산해내는 문제는 이제 군사 기술 차원을 넘어서, 정치·외교 차원의 문제으로 전화되었다. 지난 1970년대 이후 미국은 독일, 일본, 캐나다, 스웨덴, 이탈리아 같은 실제적으로 핵무장 능력이 있는 선진 산업국들을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통제권 안에 확실하게 묶어 두는 데 성공했지만, 20여 년이 지난 요즈음 북(조선) 같이 핵무장 잠재 능력이 있는 게 아니냐 하는 '혐의'를 두고 있는 나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면 장차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게 된 것이다.

협력 안보론이란 바로 이러한 안보 불안감과 정책적 고심을 풀기 위한 논의다. 지역 안보 기구를 확대·개편 또는 창설하고 미국의 적대국, 반미 성향국, 경쟁국들을 그 기구로 끌어들여 '통제'해 보겠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3) 협력 안보론과 '무기 상인'의 독점욕

미국이 외교력을 총동원하여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학 무기, 탄도 미사일 기술, 재래식 무기, 민수·군수 겸용 기술의 확산을 막자고 외치면서, 온갖 관련 국제 조약들을 만들어내어 이른바 무기 확산 방지에 그토록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는 까닭은 과연 외교·군사 문제 때문만일까? 그렇지 않다. 거기에는 분명히 또 다른 배경이 있다. 그것은 미국과 극소수 동맹국들만이 무기 개발권 및 생산·판매권을 무한정 유지하고,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제3세계 진영에 대해서는 그러한 권리를 주지 않겠다는 '무기 상인의 독점욕'이 깔려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협력 안보론의 배경에 무기 상인의 독점욕으로 표현되는 경제적 이해 관계가 얽혀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미국이 북(조선)의 핵개발 문제와 미사일 기술 개발 및 부품 수출 문제에 그토록 많은 외교력을 기울이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북(조선)이 실제로 그러한 잠재 능력을 현실화하고 개발 능력을 확산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무기 확산 현상을 불러일으켜, 결국 미국의 무기 개발·생산·판매권을 유지해온 현 체제가 깨져나갈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조선)의 민수·군수 겸용 플루토늄 확보와 미사일 개발 및 판매 문제는 미국, (남)한국, 일본, 이스라엘의 이해 관계가 예민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며, 이는 곧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일국적 지배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돌발 현상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조선)도 자국의 핵개발 및 미사일 개발 능력이 앞으로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때가 오면 그 때 가서는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일국적 지배 질서를 일정하게 흔들어 놓을 수 있으리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북(조선)은 동북아 지역에서 50년 묵은 미국의 일국적 지배 질서를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변화시켜야 자체적으로 정치·경제의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배 질서를 변화시켜야 한(조선)반도의 자주·평화·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조선)이 이미 독자적으로 확보해 놓은 미사일 기술과 풀루토늄 생산 능력은 앞으로도 미국의 군수 산업 자본, 보수 관료 집단, 군부 세력 이 3자 동맹과 벌이는 힘겨운 공방전에서 북(조선)이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을 수 있는 유리한 '외교 진지'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4) 동북아 다자간 협력 안보 논의의 현 주소

1993년 7월 26일부터 28일까지, 그리고 10월 8일과 9일 미국 샌디에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는 기억할 만한 국제 회의가 열렸다. 동북아 다자간 안보 대화를 위한 국제 회의였다. 미 국무부가 후원한 이 회의는 남(한국), 북(조선),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여섯 나라 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군비 축소, 위기 관리, 분쟁 예방, 환경 및 대기 오염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그 무렵 남(한국)언론들은 이 '안보 대화'는 '유럽 안보 협력 회의(CSCE)의 동북아 축소판'을 전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한국) 언론들은 이 '안보 대화'가 앞으로 기구화되면 동남아 국가연합(ASEAN)과 서로 보완 기능을 하면서 아시아 전체의 다자간 안보기구로서 기능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유럽 안보 협력 회의'란 미국, 캐나다 등 13개 나라가 가입하고 있으며, 일본이 특별 회원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상설 협의체가 아니라 군비 축소, 위기 관리, 분쟁 예방, 바다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 환경 및 대기 오염 같은 문제가 일어났을 때 사안별로 협의하고 있는 비상설 기구다.

동북아 지역에서 이 '안보 대화'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날 것인가? 동북아 지역에 협력 안보 기구가 생긴다면 그것은 동남아 국가연합(ASEAN), 앞으로 정상회담으로 격상하려고 벼르고 있는 아·태 경제 협력체(APEC),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과 함께 어울려 클린턴이 제안한 '새 태평양 공동체(New Pacific Community)'의 4대 기둥 가운데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태 경제 협력체'와 안보 대화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아세안 확대 외무장관 회담에는 남(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싱가포르, 브루나이, 그리고 '유럽연합(EU)'이 가입해 있다. 여기에 아·태 경제 협력체에는 중국, 대만, 홍콩이 더 들어가 있다.

이 국제 회의보다 몇 일 앞서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보고서가 나왔다. 미국 애스핀 연구소가 1993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 「세계 강국(Global Power)으로 떠오르는 일본을 관리하는 미국의 전략」이다. 이 보고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일 정책 입안에 관여하는 관료들과 전문가들이 작성한 것이다. 전 하버드대 교수며 국가정보회의(NIC)의장인 조셉 나이, 전 매사추세츠공대 교수며 국방차관인 존 도이치 같은 정책 입안 관료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경제 자문위원회(CEA) 위원장 로라 타이슨, 국가정보회의에 참여하기로 된 하버드대 교수 에즈라 포겔 같은 전문가들이 협조했다. 에즈라 포겔은 "앞으로는 아시아에서도 개별 나라들 사이의 안보 체제에서 다자 안보 체제 시대로 변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클린턴은 더욱 적극적으로 아시아에서 다자 안보의 기반을 다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이 앞으로 택하게 될 국가 전략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놓았다. 군사력을 강화한 일반형 초대국화, 아시아에서 경제적 지역 블록의 형성, 미국에 추종하는 현상 유지형, 국제 기구에 편입된 비군사 대국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미국에게 가장 바람직한 유형은 '국제 기구에 편입된 비군사 대국'이라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국제 기구란 무엇일까? 보고서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럽 안보 협력 회의(CSCE) 동아시아판을 창설하자고 제창했다. 이 기구에 일본을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보고서는 "아시아 안보 체제는 미·일 안보 조약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두 나라 관계가 긴장할 경우 지역 전체의 불안정으로 연결된다. 또 일본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인 주변 나라들을 안심시키고 지역 안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이 기구는 필요하며 이 기구가 창설되면 북(조선), 중국, 러시아 같은 잠재 적국에 대한 전쟁 억지력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5) 협력 안보 전략에 들어 있는 북(조선) 흡수통합론

워싱턴 정가는 지난 3년 동안 북(조선)에 대해 핵문제 공방전을 벌여오면서 재래식 억지·봉쇄 전략이 잘 통하지 않고 있음을 경험해왔다. 그것은 북(조선)이 미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왔기 때문에 미국의 정책 집단이 한계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재래식 억지·봉쇄 전략만 가지고서는 변화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에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미국의 정책 집단은 새로운 전략 개념을 개발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과 경험은 동북아 지역에서 예방 전략에 바탕을 둔 다자간 안보 기구를 세우는 방향으로 논의를 끌어가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논하는 전문가들 가운데 북(조선) 핵문제를 협력 안보라는 개념으로 풀어보려고 하는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로버트 매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지냈으며, 지금은 미국 민주당 정책 연구기관인 진보정책연구소(PPI)의 선임연구원으로, U.S. News and World Report지와 Far Eastern Economic지 기자로 있다.

1994년 7월 7일 그는 북(조선) 핵문제에 관한 해법을 내놓았다. 이른바 3단계 해법이다. 그는 제1단계에서 미국이 취할 조치들 가운데 남(한국), 북(조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동북아 6개국 회담을 개최하여, 지역 긴장을 해소하고 협상 창구를 마련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이러한 다자간 안보 기구 창설은 조·미 평화협정 체결 문제, 두만강 개발 사업 문제와 맞물려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와 관련하여 클린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94년 7월 4일자 『마이니치신문』은 그로부터 사흘 전 백악관에서 가진 회견에서 클린턴이 한 말을 실었다. 클린턴은 이렇게 말했다.

"현 시점에서 북(조선)이 한 두 개 핵폭탄 보유 능력을 가졌느냐 하는 문제보다 장래에 핵을 제조할 가능성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북(조선)의 지도자는 금세기 말과 20년 뒤에 미사일과 핵물질을 팔아 수입을 얻는 고립 국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이웃 나라들과 조화·공존하며 산업, 무역, 인민의 발전을 꾀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해답은 자명하다."

여기서 북(조선)이 이웃 나라들과 조화·공존하며 산업, 무역, 인민의 발전을 꾀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요구 내용 속에는 미국이 북(조선)을 장차 주도하는 동북아 지배 질서 안으로 흡수통합시켜야 한다는 미국 정책 집단의 '주관적 희망'이 들어 있다.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윈스턴 로드의 특별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노라면, 미국의 동북아 지역 협력안보론에는 북(조선)을 대등한 상호 협력 관계로 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흡수통합을 성취해보겠다는 의지가 숨겨져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윈스턴 로드가 1993년 8월 31일 한 특별보고 「미국의 동아시아 및 태평양 정책」에 나타난 흡수통합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 클린턴이 주창한 '새 태평양 공동체 구상'은 그가 일본과 남(한국) 방문 때 밝힌 경제와 안보를 두 축으로 해서 이 지역에서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클린턴은 1993년 7월 7일 와세다대 연설에서 "21세기를 향해 개방경제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세 태평양공동체를 만들자"고 주장한 바있다.)

② 미국은 북(조선)과 핵무기 및 미사일 문제를 놓고 대화를 하고 있으며, 중국에는 M11 미사일 기술 수출 문제가 걸려 있다. 기술·정보 시대에는 '개방 경제'와 '폐쇄 정치'가 양립할 수 없다. 아시아에서 얼마 동안은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열린 시장, 열린 무역 체제가 공존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③ 미국은 앞으로 몇 해가 걸릴 지는 모르지만 '새 태평양 공동체'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것은 자유 시장 경제에 바탕을 둔 예방 외교 및 대량 파괴 무기의 통제에 바탕을 둔 지역 안보를 추구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6) 동북아 협력 안보론과 남·북·미 3자 관계

미국에서 협력 안보 문제에 관한 정책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부르킹스 연구소는 남(한국)정부의 견해를 알아보는 일에도 열심을 보였다. 1993년 6월 하순 연구원 다섯 사람과 함께 서울에 나타난 미국 부르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 해리 하딩이 협력 안보 개념에 대한 남(한국) 정부의 견해를 어떻게 파악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는 다자간 안보 기구가 생기면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의혹을 없앨 수 있고, 러·일 사이에 군사적 긴장을 풀어주고,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약소국의 안보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워싱턴 디씨로 돌아간 적이 있다.

남(한국) 정부는 미국의 협력 안보 전략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밀착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지난 50년 동안 밀착되어온 한·미 관계를 놓고 평가할 때 '이상 반응'은 결코 아니다.

1993년 7월 한승주 외무부 장관(당시)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클린턴의 방한과 '새 태평양 공동체' 선언을 계기로 동북아 지역의 다자간 안보 대화를 위해 '안보 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우선 남(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를 중심으로 하고 중국, 러시아도 포함하기로 했다. 클린턴의 새 태평양 공동체 구상과 관련해 일본은 경제 협력을 강조했고, 우리는 다자간 집단 안보 개념을 부각했다"고 밝힌 바있다.

한 장관은 여기서 마치 남(한국) 정부가 다자간 안보론(그는 여기서 협력 안보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을 독자적으로 들고 나온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한·미 군사 동맹 체제의 불평등성이 살아있는 한 남(한국) 정부는 이러한 역내 안보 문제에서 독자적 발언권과 주도권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다. 협력 안보론도 미국의 정책 집단이 자국의 이익 추구를 위해서 들고 나온 것이지, 남(한국) 정부가 창안해 낸 것은 아니다. 남(한국)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동북아 협력 안보 구상에 찬성 표시만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1993년 7월 28일 남(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먼저 남(한국), 북(조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6개 나라가 참여하는 군사 협력 기구를 만든 뒤에, 호주, 캐나다 및 아세안 6개 나라등 나머지 역내 나라들이 참여하는 아·태 군사 협력 기구를 만드는 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남(한국) 정부는 이 계획을 아세안 확대외무장관 회담에 내놓았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① 다자간 지역 안보 협력체는 이미 있는 안보 체제를 보완하는 성격을 지녀야 함.

② 지역 분쟁 문제는 원칙적으로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함.

③ 점진적 지역 협력이 되어야 함.

④ 역내 모든 나라들이 참여하는 안보 대화가 바람직함.

미국의 동북아 지역 협력 안보 구상이 한·미 외교 통로에서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은 위에서 언급한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였다. 한승주 외무장관과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이 회담에서 아·태 지역 전체에서 안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아세안 확대외무장관 회담을 활용할 것이나, 동북아 지역 차원에서는 새로운 다자 안보 대화 모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합의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문제들은 다음에 협의하기로 했다.

여기서 문제는 이 기구에 북(조선)을 가입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 만일 남(한국)과 미국이 이 기구에 북(조선)을 끌어들인다면, 어떤 목적과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조건과 절차를 구상하고 있을까?

미국의 외교 정책론자들은 이 기구에 북(조선)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이 기구를 창설하려는 목적 가운데 중요한 것은 북(조선) 같은 나라를 이 기구에 끌어들여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조선)의 가입 문제는 현재 북(조선)을 주권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남(한국)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며, 만일 앞으로 남북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흐름이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 기구 안으로 밀려간다면 남(한국) 정부의 대북 발언권이 더욱 약화되는 부정적 측면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감이나 우려도 북(조선)을 점진적으로 흡수통합하려는 장기 목표 앞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한국) 정부가 북(조선)을 이러한 미국 주도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 이른바 '자본주의적 경제 개방'과 '자유 민주주의적 정치 개혁'을 유도해 내고, 그로써 1국가 1체제 1정부의 흡수통합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국제적 전략 환경을 조성하게 된다는 측면을 남(한국) 정부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그 뿐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있는 남(한국) 정부로서는 새로운 동북아 협력안보체의 창설 때문에 기존의 한·미 군사 동맹 체제가 약화되거나 주한미군 철수론을 불러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안보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서 1993년 7월 26일 아세안 확대 외무장관 회담에서 미 국무장관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말했다. 아래와 같은 그의 발언은 남(한국) 정부의 안보 불안감을 진정시켜 주는 '위로의 말'이 되었다.

"우리는 공동의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지역 안보 대화가 필요하며 이 점에서 아시아 지역 포럼이 가장 유망하다. 클린턴 행정부가 이 포럼에 참여함으로써 아시아 안보 포럼을 반대했던 과거 태도에서 벗어나고 있다. 부시 행정부 때는 이러한 포럼에 참여하는 것이 미군 철수론으로 해석되는 것을 우려했으나 지금은 확실히 상황이 달라졌다. 아시아에서 미사일과 대량 파괴 무기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같은 무기 부품을 만들 수 있는 아시아 나라들이 국제 조약을 맺을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어서 그는 "새 태평양 공동체는 역내 안전과 군비 통제와 분쟁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이루어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공동의 적에 대처하는 동맹 체제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한 자리에 마주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상적들과 가상 경쟁자들이 있다"고 하면서, "다자간 안보 협력은 이 지역 안에서 미국을 축으로 하는 기존의 쌍무적 군사 동맹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조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밝혔다.

(7) 자주·평화·통일운동의 국제적 임무

한(조선)반도의 자주·평화·통일 문제가 오늘 처럼 국제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적이 일찌기 있었던가? 한(조선)반도 정세가 질적으로 전환되었던 8·15 '해방 공간' 이후로 아마 요즈음이 처음일 것이다.

미국의 협력 안보론이 한(조선)반도 주변의 국제 환경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뒤바꾸려는 현실 앞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평화·통일운동은 이에 맞서는 대응력을 갖추어야 한다. 자주·평화·통일운동은 전민족적 과업을 수행하는 운동일 뿐아니라, 동시에 국제적 임무를 지니고 있는 운동이기 때문이며, 자주·평화·통일의 과업은 민족 내부의 남북 관계에서 결정될 뿐아니라, 한(조선)반도 주변의 국제 관계에서도 규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조선)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외세의 규정력이 비상히 강화된 시기에 외세에 대한 대응력은 무조건 외세에 대한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외세 척결 구호를 부르짖는다고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이 한(조선)반도의 분단을 막고 통일 국가를 세울 수 있는 '현실적인 차선의 선택'으로 우리 민족 앞에 주어졌을 때, 그 결정은 조선 민중이 내린 결정이 아니라, 미·소 외세가 내린 결정이므로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고 외친 반외세 민족주의자 김구가 밟았던 실책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그때 반외세 민족주의자들은 한(조선)반도 주변 국제 관계의 변화를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 국가 수립 운동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국제적 임무를 알지 못했다. 아니 설사 알았더라도 전민족적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서 속수무책이었으리라.

민족 자주 역량과 외세의 규정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의 관계는 언제나 정면 대결으로 치닫는 것은 아니다. 외세가 대결주의 정책만을 고집할 때는 불가피하게 정면 대결로 맞서야겠지만, 외세가 외교 협상력을 동원하였을 때, 또는 정면 대결을 추구하던 외세를 외교 협상 자리에 끌어들였을 때 민족 자주 역량은 거기에 걸맞는 대응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미국의 동북아 협력 안보론을 기존의 대결주의 정책에 대한 수정주의적 방향 전환이라고 본다면, 우리 민족 자주 역량이 추진하고 있는 자주·평화·통일운동도 그것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대응력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자주·평화·통일운동의 국제적 임무에서 그 대응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운동은 이제 국제적 임무를 수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지난 시기 어느 상황, 어느 국면에서도 운동의 국제적 임무란 필수적인 것이었지만, 요즈음 같이 외세의 규정력이 비상히 강화된 시기에 이 특정 임무는 더욱 중요해졌다. 이에 관련하여 해외운동에 참여해온 한 사람으로서 몇가지 생각을 내놓아 토론 주제로 삼고 싶다.

우리 운동이 국제적 임무를 수행하려면 자체적으로 국제 운동 역량을 강화·발전시켜야 한다. 국제 운동 역량은 어떻게 강화·발전시킬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전민족적인 자주·평화·통일운동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민간 국제 기구를 창설하는 것이다. 조직이 없이는 운동도 없다는 말은 어느 분야에서나 통하는 '진리'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협력 안보 기구에 맞설 수 있는 대응력을 갖추어야 할 이 민간 국제 기구에는 남, 북, 미, 일, 중, 러 동북아 6개 나라의 진보적인 민간 평화 운동 세력이 참여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 지역의 평화·군축운동을 추진하는 역내 국제 협력 기구다. 이 민간국제 기구 창설은 여러 가지 여건을 생각해 볼 때, 먼저 남(한국)의 자주·평화·통일운동이 주도하여 발기해야 한다. 남(한국)의 운동 역량이 만일 미국과 일본에 있는 해외 동포 운동 역량과 손을 잡고 이 사업을 추진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해외 동포 운동에는 그 동안 국제 분야에서 일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성과가 있고, 운동의 국제 감각도 비교적 예민하다고 볼 수 있다. 남(한국) 운동 조직들은 자체 안에 국제부 같은 담당 부서를 두어서 이 분야의 전문 역량을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동북아 평화·군축을 위한 국제 민간 기구는 국제 회의를 개최하여 국제 사회에서 한(조선)반도 자주·평화·통일운동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한(조선)반도의 평화·군축 문제에 관한 여론을 나라 안팎에서 형성하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관련국에게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 기구는 유엔의 비정부 자문 기관(NGO)으로 참가하여 많은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구는 6개 관련국의 평화·군축 운동 세력들과 연대하는 구심력을 발휘할 것이다. (1995년 4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