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 회담 제안의 배경과 전망을 논함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서 본 4자 회담 제안

미국이 한(조선)반도 평화 질서 수립을 4자 회담 제안을 통해 추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미국이 북(조선)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까닭, 그리고 그 관계 개선 과정에서 4자 회담 제안을 내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평화 질서가 수립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며,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자국의 기본 태도를 능동적으로 바꾸고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이 오랫동안 적대·혐오감을 가지고 대해왔던 북(조선)에 대해 요즈음 갑자기 적대·혐오감이 해소되어서, 일련의 관계 개선이 진척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이 대북 관계 개선을 통하여 추구하고 있는 진짜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 진짜 목표는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역내(域內) 안보 질서에 대한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데 있다.

지난 냉전 시기 미국이 전쟁 수행과 전진 배치 무력의 장기 주둔, 그리고 쌍무적 동맹 관계의 장악 등을 통하여 동북 아시아에 구축해놓은 외교·안보 질서(실제로는 미국의 일국적 지배 질서)를 탈냉전 시기로 넘어간 뒤에도 그대로 유지·관리하려면, 변동하고 있는 전략 환경에 초점을 맞춰가면서 기존 질서의 형식을 일정 정도 전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기존 질서의 변동을 부드럽게 추진하기 위해서 동북 아시아의 외교·안보 질서 변동 과정에서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안보 질서 변동 과정을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장악해야 할 당면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동북 아시아의 외교·안보 질서에서 미국의 신경을 가장 곤두서게 하는 대상은 중국과 일본이라고 하는 사실은 이미 상식에 속하는 것인데, 이 두 나라를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는 '절묘한 지렛대'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한(조선)반도 문제다. 한(조선)반도 외교· 보 제가 탈냉전 기에 걸맞게 조절·편되는 진행 향을 따라서 일본의 외교·안보 문제, 중국의 외교·안보 문제가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는 지정학적 연동 작용은 자명한 이치에서 나온다. 물론 중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견제책은 한(조선)반도 문제 밖에도 베트남 문제, 대만 문제가 더 있는데, 베트남 문제는 이미 수교 협상으로 마무리지었고, 동북아 지역에서 지금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대만 문제와 한(조선)반도 문제다. 미국이 중국과 일본에 대해 동시적으로 견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라고 평가하는 점에서 한(조선)반도 문제는 대만 문제에 비하여 역내에서 전략적 비중이 더 많이 쏠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조선)반도의 케케묵은 냉전 질서를 주도적으로 전환시키는 나라가 앞으로 동북 아시아의 탈냉전적 외교·안보 질서도 장악하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외교·안보 역량을 얼마나 투입하여 어떠한 성과를 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21세기 역내 질서의 국가적 우위를 매기는 준거점이 될 것이다. 미국이 동북아 정책의 수행 과정에서 한(조선)반도의 냉전 질서 전환 문제를 중요한 전략 과제로 설정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 중국에 대해서는 미·중 외교의 길항작용(拮抗作用)을 긴장(緊張)·협력 관계로 끌어내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는 기존의 순응(順應)·협력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려고 애쓰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반미 성향국'들인 이라크나 쿠바에 대해서 미국은 탈냉전 시기에 들어선 지금도 냉전적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반면에 북(조선)에 대해서는 탈냉전적 온건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동북 아시아에서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한 외교·안보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기본틀을 한·미 동맹 관계, 조·미 관계 개선, 4자 회담 성사, 6자 안보 협력체 창설 등 네 갈래로 잡아놓고 그 틀 안에서 상호 관계를 적절하게 조절해 가고 있다.

한(조선)반도의 외교·안보 문제를 탈냉전적으로 조절·해결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역시 평화 질서 수립 문제며, 그것은 곧 한·미 동맹 관계, 조·미 관계 개선, 4자 회담 성사, 6자 안보 협력체 창설에 모두 맞물려 있는 초미의 문제다. 이 문제는 다른 말로 하면, 정전 협정을 누가, 어떤 방식과 성격으로 처리하느냐 하는 전략적 과제다. 정전 협정 처리 과정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나라가 한(조선)반도에, 그리고 더 나아가 동북 아시아에 형성된 20세기의 냉전적 외교·안보 질서를 탈냉전적인 21세기의 전략 환경에 맞게 조절·재편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한(조선)반도에서 평화 질서를 수립하는 당면 과제를 풀어내게 될 4자 회담 제안은 동북 아시아 외교·안보 질서를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맞게 조절·재편하려는 미국의 능동적 전략 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만일 미국의 구상대로 4자 회담이 성사된다면 예상하지 못한 돌출 변수가 없는 한 미국은 4자 회담 진행과정에서 일관되게 협상의 주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미국이 4자 회담 성사 과정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면 무엇보다도 회담 제안을 수락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북(조선)을 설득·유도해야 한다. 만일 북(조선)이 거부하면 4자 회담은 '제안'으로 끝나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조선)을 설득·유도하는 방책은 무엇일까? 미국은 지금 이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2) 4자 회담 제안, 그리고 식량과 미사일

미국은 4자 회담을 제안해 놓고 이에 대한 북(조선)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올해 대선 전에 가시적 외교 성과를 얻어내야 할 클린턴 행정부는 언제까지나 막연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고, 나름대로 북(조선)을 설득·유도하려는 일련의 방책을 동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북(조선)에 대한 식량 지원이다. 미 의회 안에서 공화당이 그렇게도 반대했고, 남(한국)정부가 제동을 걸었데도 클린턴 행정부는 이를 뿌리치고 왜 북(조선)에 대해 식량을 지원하고 있을까? 북(조선)에 대해 식량을 지원하면서 클린턴 행정부가 얻게 될 이익은 무엇일까?

미 국제개발처(USAID)가 최근에 낸 자료를 보면 미국은 1994년 기준으로 대외 원조 예산이 가장 인색한 나라로 나타났으며, 미국이 국내 총생산(GDP)를 산출해온 이래 가장 낮은 대외 원조 수준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북(조선)에 대해서만은 예외적으로 너그럽다. 대북 식량 지원을 위해 남(한국)과 일본을 설득하고 있었던 제주도 고위 정책 협의회에서 미국은 북(조선)이 지난 1월말 1994년의 냉해 피해와 관련하여 적지 않은 보험금(액수 규모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를 이미 탔으며, 1995년 수해 피해와 관련해서 2차 보험금 지급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는데도, 그리고 남(한국)은 북(조선)이 4자 회담을 수용한다는 의사를 표시한 뒤에야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는 조건부 지원책을 완강하게 주장하면서 미국의 무조건적 식량 지원에 제동을 걸었는데도, 미국은 막무가내였다. 미국은 세계식량계획(WFP) 같은 국제 기구들을 부추겨 이른바 '식량 전용(轉用)설'과 '식량 지원 불필요설'에 입막음을 할 방북 보고서를 작성·발표하게 하는 한편, 미 국제개발처에게 북(조선) 식량 실태 보고서를 발표하게 하여 국제 사회에서 대북 식량 지원이 긴요하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남(한국)과 일본에게 대북 식량 지원을 촉구하는 외교적 압박을 가한 것은 클린턴 행정부가 얼마나 끈질기게 대북 식량 지원을 성사시키려고 하는가를 드러내주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결정 사실을 발표하던 날, 백악관 대변인 마이클 맥커리와 국무부 대변인 니컬러스 번스는 "기아 상태에 빠진 외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미국의 전통이었다. 대북 추가 지원은 북(조선) 정권의 장래와는 관계 없이 북(조선) 주민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고 말하면서 '너스레'를 떨었지만, 식량 지원의 속셈은 분명히 다른 데 있었다. 남(한국)의 언론들은 미국이 북(조선)에 식량을 지원하는 목적이 북(조선)의 식량 위기를 완화시켜 개방·개혁으로 유도해 내는 이른바 '연착륙' 방략이라고 풀이하고 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방·개혁으로 유도해 내는 1차 관문인 4자 회담 구도로 유도해내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식량 지원 속셈을 알아보기 위해서, 4자 회담 제안이 나온 뒤 대북 식량 지원이 결정되기까지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을 짚어가다 보면 눈길이 ꃨ는 데는 미 하원의원 빌 리처드슨의 방북이다. 그는 평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에 들러 가진 기자 회견에서 자신이 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 미국 언론은 특사(envoy)가 아니라 대리인(proxy)이라는 표현을 쓴 바있다. - 4자 회담을 설명하기 위해 방북한 것은 아니며,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발굴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방북했노라고 애써 자신의 방북 목적을 국한·해명하는 발언을 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발굴 작업에 '의원 외교'가 필요한 시점은 이미 지난지 오래며, 실무자들이 방북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는 북(조선) 외교부 고위 관리들에게 "4자 회담의 중요성과 4자 회담과 관련한 한미 양국의 공동 설명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스스로 털어놓은 바있으며, 식량 지원 문제도 논의한 바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빌 리처드슨이 평양에서 4자 회담 문제를 거론하였음을 확인해 준 바있다. 빌 리처드슨이 방북 뒤에 북(조선)의 고위 관리들과 나눈 회담 내용을 모호하게 흐린 까닭은 자신의 방북을 달갑지 않게 보고 있었던 미 공화당과 남(한국) 당국을 의식한 조치였다고 풀이할 수 있다. 빌 리처드슨을 매개로 한 북(조선)과 미국의 막후 협상 ?어느 정도 나아갔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 없으나, 미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리처드슨이 방북 기간 중에 식량 지원을 포함한 일련의 비공식적인 '거래'를 했으며, 4자 회담에 관한 한·미 공동 설명회에 참석할 것과 미군 유해 발굴 시기를 앞당겨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다고 발언하여 한때 워싱턴 정가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 '약속설'은 나중에 미 국무부의 한 소식통으로부터 북(조선)이 한·미 공동 설명회에 참석할 것을 약속했다는 보도는 '과장'되었다는 부인성(否認性)발언이 나옴으로써 일단 확인되지 않은 '설'로 흘러가 버렸다.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결정 직전에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어떤 '비공식·비공개 약속'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클린턴 행정부는 4자 회담 제안에 대한 북(조선)의 긍정적 반응(제안 수용)을 되도록 빨리 얻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하며, 북(조선)도 4자 회담 제안에 대해서 공식적인 태도를 밝혀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북(조선)의 식량 부족이 '위기 상황'에 이르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제2차 식량 지원에 나선 클린턴 행정부는 북(조선)을 4자 회담 구도로 끌어들이려는 자신의 구상과 식량 지원을 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행정부가 북(조선)에 대해 식량 지원을 결정하던 날, 베이징에서는 중국을 '조용히' 방문하고 있던 최우진 외교부 부부장과 첸치천 외교부장, 탕자쉬안 부부장 사이에서 연쇄 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언론은 조·중 사이에서 4자 회담 제안에 관련하여 견해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도하였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 나라의 견해가 엇갈리는 지점은 아마도 남(한국)의 4자 회담 참가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현 시기 국면을 들여다보면, 4자 회담 제안을 받은 남·북·중·미 4자 사이에서 요즈음 각기 여러 갈래의 '막후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미국의 4자 회담 제안과 한(조선)반도 미사일 회담의 상관 관계다. 미국은 4자 회담을 제안하고 나서 남(한국)과 북(조선)을 상대로 각각 미사일 문제에 관한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미 미사일 협상은 1995년 11월부터 시작되었고, 조·미 미사일 협상은 올해 4월 19, 20일에 시작되었다. 이미 알려진대로 1990년 10월 남(한국)의 전두환 정권은 '미사일 각서' 한 장에 서명함으로써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주권을 미국에게 송두리째 넘겨주는 바람에, 지금까지 사정거리 1백80km, 탄두 무게 5백kg 이상의 어떠한 '로켓 시스템'도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못하게 발이 묶여있다. 그런데 지난 6월 10일부터 이틀동안 열린 한·미 미사일 회담에서는 남(한국)이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에 가입하는 것과 더불어 미국이 미사일 각서의 일부 내용을 조절·변경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것은 미사일 각서의 내용을 일부 조절·변경하고, 미국이 미사일 개발 기술을 남(한국)에 넘겨주기 위한 목적에서 한·미 미사일 회담을 빠르면 오는 9월쯤에 다시 열어 매듭짓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한다. 되돌아보면, 지난 1994년에 열렸던 한·미 미사일 회담에서 미국은 만일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통제 조치를 풀어주면 미국이 앞으로 북(조선)과 마주 앉게 될 미사일 회담에서 협상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미사일 각서를 폐기해 달라는 남(한국)의 요청을 거절한 바있다. 그 회담에서 미국은 남(한국)이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에 가입하더라도 미사일 각서는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강경한 태도로 나온 바람에 회담은 결렬되었다. 그런데 지금와서 미국은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통제 조치를 풀어주고 로켓 개발 기술을 지원할 것처럼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이번 한·미 미사일 회담에서 회담 재개 일정을 3개월 이내로 잡으면서 '9월 재개설'을 언론에 흘린 것은 9월까지 진행될 미국의 대북 협상을 겨냥한 조치가 아닐까? 한·미 미사일 회담이 열리기 엿새 전인 지난 6월 4일 미 국무부 차관보 윈스턴 로드는 북(조선)이 미사일 생산과 수출을 동결하고 4자 회담 제안을 수용할 경우 북(조선)에 대한 경제 제재 완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바있다.

미국은 북(조선)에 대해서는 남(한국)패(覇)를 쓰고, 남(한국)에 대해서는 북(조선)패(覇)를 쓰면서 교묘하게 남(한국)과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을 모두 통제하려는 책략을 벌이고 있을 뿐아니라,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에 대한 족쇄를 일정 부분 풀어주겠다는 의사 표시를 함으로써, 북(조선)에 대한 협상력을 높히려고 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 관계에서 현안으로 떠오른 것은 북(조선)이 4자 회담 제안을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9월로 잡아놓은 한·미 미사일 회담 재개 일정은 만일 앞으로 석달 안에 북(조선)이 4자 회담 수용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 족쇄를 풀어놓겠다는 '시한부 압력'이라고 읽어낼 수는 없을까?

(3) 4자 회담 제안에 대한 전망

4자 회담 성사 여부는 북(조선)에게 달려있다. 북(조선)이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회담은 성사될 것이다. 그런데 4자 회담 제안이 나온 뒤로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북(조선)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4자 회담 제안에 대해 북(조선)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까닭은 그 제안 자체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4자 회담에 남(한국)이 다른 3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함으로써 '한·미 공조 체제'를 형성하고 4자 회담 구도 안에서 북(조선)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가함으써 그 판도가 그대로 한(조선)반도 안보 질서 수립 과정으로 관철될 것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4자 회담 구도에서 중국은 중립적 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회담 진행 과정에서 실제 판도는 한·미 두 나라 대(對) 북(조선)로 좁혀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보는 것이 북(조선)의 예상 구도다. 지금까지 핵문제 협상, 미사일 회담, 유해 송환 협상 등에서 미국은 남(한국)을 제끼고 북(조선)과 마주앉음으로써 남(한국)은 철저하게 소외당한 바있다. 이러한 곤혹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남(한국)의 불만을 커졌으며, 이렇게 가다가 한·미 동맹 관계에 금이 가는 게 아니냐 하는 걱정스런 발언들도 여기저기서 나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은 4자 회담 제안을 한·미 공동 제안이라는 형식에 담아내면서 그동안 소외당한 남(한국)의 곤혹스러움와 불만을 일거에 풀어내려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의도가 보이기 때문에 북(조선)은 의사 표시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은 남(한국)이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피보호국이고, 정전 협정 체결 당사국도 아니라는 근거를 들면서, 정전 협정 처리 문제를 다루게 될 어떠한 형태의 한(조선)반도 평화 회담에도 남(한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나오는 것을 극력 반대해왔다. 북(조선)은 남(한국)이 한(조선)반도 평화 회담에 참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는 것은 결국 한·미 공조 체제의 연장이 되기 때문에 반대해온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자면, 남(한국)의 지위를 격상·강화하는 반면, 북(조선)의 지위를 격하·약화할런지 모르는 4자 회담 제안을 북(조선)이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리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북(조선)은 4자 회담 제안에 대한 설명을 요청한 바있다. 이것은 미국의 4자 회담 제안이 남(한국)의 '체면 살려주기', 또는 일시적 무마책으로 나온 것인가 아니면 4자 회담이 성사된 이후의 회담 진행 과정에서 미국이 실제로 한·미 공조 체제를 형성하여 북(조선)을 외교적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인가를 미국이 밝혀 달라는 요청이다. 만일 미국이 4자 회담 구도에서 한·미 공조 체제를 형성하여 북(조선)을 궁지에 몰아 넣으려는 의도가 없다는 사실을 보장해 준다면, 북(조선)은 4자 회담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미국은 이 설명 요청에 대해서 한·미 공동 설명회를 열겠으니 나오라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것은 북(조선)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었다. 미국은 북(조선)의 설명 요청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나, 그 설명회가 실제적으로 조·미 사이의 2자 사전 예비 회담으로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한·미 공동 설명회 방안을 내놓았다.

만일 클린턴 행정부가 4자 회담을 통하여 북(조선)을 외교적 궁지에 몰아넣고 압박을 가하려는 냉전적 의지를 청산했다고 한다면, 미국은 새로운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조선)에게 4자 회담 제안을 수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기존의 공동 설명회 같은 형식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미국의 탈냉전적 대화·협력 의지를 북(조선)에 전달한다면 북(조선)의 의구심은 풀릴 것이며 그로써 우선 급한대로 1차 걸림돌은 제거될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은 미국이 한(조선)반도 평화 문제에 관련하여 탈냉전적 대화·협력 의지를 확실하게 표시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4자 회담 구도가 형성된 이후에 남(한국)과 북(조선)을 상대로 한 미국의 '삼각형의 외교 줄다리기'는 더욱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내놓은 '협상의 줄'이 남(한국)과 북(조선)에 대해서 등거리는 아니고, 남(한국)쪽에게 더 가까운 것은 명백한 현실이지만, 문제는 그 협상의 줄을 남(한국)과 북(조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힘있게 끌어당기느냐 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 핵문제가 제네바 합의로 타결된 전후의 정세 기상도를 읽어보면, 북(조선)의 외교력은 외부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강력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북(조선)의 대미 협상력은 남(한국)의 대미 협상력에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강도가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일련의 대미 협상과정에서 북(조선)은 때로 미국의 견인력에 끌려간 적도 있고 서로 비긴 적도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평가해서 초강대국인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공조 체제에 독자적인 힘으로 맞서면서 미국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 당겨왔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미국이 4자 회담 구도 안에서 남(한국)과 북(조선) 양자에 대한 '외교 줄다리기'를 포기하고 한·미 동맹 관계에 전면적으로 복귀·의존하지 않는 한, 북(조선)의 견인력이 미국과 남(한국)을 잡아끄는 형세는 앞으로 전개될 4자 회담 구도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견지에서 보자면, 남(한국)이 4자 회담 구도에 진입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밝혀진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외교·안보 부문의 대미 의존성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지위와 역량을 확보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기존의 한·미 동맹 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외교·안보 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전략 수정을 검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한·미 동맹 관계에 내장되어 있는 예속적 성격을 제거하고, 두 나라가 상호 대등한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남(한국)이 자주적인 외교·안보 역량을 구축하는 전략적 과제로 직결된다. 만일 4자 회담 구도에서 남(한국)이 대미 협상력을 여전히 확보하지 못한채 여전히 한·미 공조 체제에만 의존·안주하려는 구태의연한 자세를 버리지 못한다면, 한(조선)반도 평화 회담은 베트남 평화 회담의 재판으로 전화되면서 남(한국)은 협상력과 발언권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며, 4자 회담 구도는 결국 남(한국)을 실질적으로 소외시키고 조·미 사이에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마저 생겨날 수 있다. 4자 회담 구도는 남(한국)에게 이러한 근본 문제를 도전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1996년 6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