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 외교 전략과 한(조선)반도 통일 정세의 변화

한호석

미주 평화통일연구소장

(1) 자주 외교와 자립 경제의 상호 연관성

한(조선)반도의 통일 정세는 이미 질적 변화기에 들어섰다. 이것은 소련·동구 사회주의 진영의 몰락과 독일의 흡수 통합, 중국 사회주의의 혼란, 미·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군사력 시위, 제3세계 민족 해방 운동 세력의 약화과 분열이 몰고온 세기적 변화의 파장이 한(조선)반도에 밀려오면서 한·소 수교와 한·중 수교의 성사, 남북의 유엔 동시 가입,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압박과 제네바 합의, 김일성 주석의 급서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시작된 질적 변화다. 이 글의 관심은 이러한 정세 변화에 대하여 북(조선)은 어떠한 외교 전략, 외교 정책을 가지고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집중된다.

이미 알려진대로 북(조선)의 외교는 자주 노선을 추구해왔다. 북(조선)이 자주 외교 노선을 일관되게 추구해올 수 있었던 기본 동인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겠으나, 우선 자립적 민족 경제를 건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관점을 통하여 북(조선)의 자주 외교와 자립 경제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3개 대륙에서 식민지 체제를 뒤엎고 일어선 수많은 신생 독립국들은 그들 나름대로 정치·외교 분야에서 자주적 지위를 확보하려고 애를 썼지만, 식민지 지배 체제 아래서 자원과 노동력의 수탈 시장으로, 상품과 자본의 투하지로 영락했던 처지에서 벗어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었고, 따라서 허약한 경제적 기반 위에 나라를 세울 수 밖에 없었으니, 그러한 사정을 간파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그냥 놔둘리 없었다. 미국은 '원조'니 '협력'이니 하는 그럴듯한 간판을 달고 그 나라들을 유도해 내었으며, 이 길로 들어선 나라들은 하는 수 없이 편입·예속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다른 한편으로 전후 사회주의 진영에서도 강대국이었던 소연방을 중심으로 한 국제 분업 체계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50년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의 물질·기술적 발전 수준은 그 당시 북(조선)의 물질·기술적 발전수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들 나라 가운데 몇몇은 이미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걸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진 나라들도 있었고, 공업화 수준이 일정한 높이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 식민지의 혹독한 억압·착취에서 해방을 얻은 동아시아의 약소국 북(조선)에 자립적 민족 경제를 건설할만한 디딤돌은 성한 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3년 동안 벌어진 전쟁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경제적 기반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 폐허 위에서 자립적 사회주의 경제 토대를 건설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으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북(조선)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간고분투, 자력갱생'의 기치를 들고 다른 사회주의 강대국들에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자기 힘으로 경제 건설을 추진하였다.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은 이러한 자주 노선을 걸어가는 북(조선)을 '어리석은 거북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조선)은 자립적 민족 경제 건설 노선을 지켰다. 그 때 만일 북(조선)이 경제 건설을 좀 더 쉽고, 빠르게 하자는 짧은 생각에서 발전한 사회주의 공업국들과 국제 분업 체계를 이루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북(조선)은 1980년대 후반에 아마 그들 나라들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었을런지 모른다. 사람들은 40년이 지난 뒤에야 그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소연방과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은 북(조선)보다 훨씬 앞선 물질·기술적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했는데도 결국 몰락했고, 그들보다 한참 뒤떨어진 물질·기술적 수준을 가지고 출발한, 그나마 전쟁으로 전지역이 초토화되었던 북(조선)은 오늘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을 의연히 지키고 있다. 이러한 근본적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자주 노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무력 대결과 대치 상태로 숨막히는 긴장과 위기감에서 하루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땅 한(조선)반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다국적 동맹 세력이 막강한 무력과 경제력으로 휴전선에 대치선을 그어놓은 준전시 상태 속에서 북(조선)이 자기 힘으로 자립적 경제 토대를 닦는다는 일은 참으로 간고한 과정이었지만, 그러한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자주 외교 노선을 일관되게 지킬 수 있었다. 북(조선) 역사를 한 번쯤 살펴본 사람들은 당연히 이런 의문을 가져야 한다. 전쟁 폐허에서 물질·기술적 수준이 매우 낙후한 작은 나라가 맨 손으로 자립적 경제 토대를 축성하고, 사회주의 공업화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었던 그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북(조선)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자력갱생과 일치단결의 정신력, 곧 '주체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조선)은 자립 경제와 주체사상의 기초 위에 서있지 않으면 자주 외교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 탈냉전 시대와 '후계자 시대'

현재 북(조선)의 외교에 대한 이해는 '후계 시대'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해야 가능하다. '후계자 시대'의 외교 전략을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조선)의 '후계자 시대'는 금세기 말 인류가 도달한 탈냉전기와 겹쳐진다. 세상이 다 아는대로, 1994년 남북 정상회담을 눈앞의 일정으로 남겨두고 김일성 주석이 급서했으며, 그 뒤로 김정일 비서의 '후계자 시대'가 이어졌다. 아직까지 당 총서기직과 국가주석직에 취임하지 않고 있는 사정을 놓고 외부에서는 온갖 억측과 왜곡으로 얼룩진 '권력 구조 이상설' 같은 유언비어를 버젓이 퍼뜨리고 있다. 이 '정치적 유언비어'는 1994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북(조선)을 적대국으로 규정해왔던 자본주의 나라들은 최고 지도자를 갑자기 잃은 북(조선)이 필경 정치적 혼란과 불안에 빠지고, 내분이 일어나 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른바 '귀순자'들과 '잠행 방북자'의 입에서 나온 강명도·이찬삼 류의 유언비어가 남(한국) 사회의 북(조선) 인식을 혼란의 함정에 빠뜨리고 있다. 과연 북(조선)이 정치·사회적 불안과 경제난으로 비틀거리고 있으며, 곧 쓰러질 운명일까? 남(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쓰러지고 있는 북(조선)에 대해 동정심을 보내는가 하면, '흡수 통합 비용'을 미리 마련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북(조선)의 체제 붕괴와 급격한 흡수 통합으로 이어지는 허구적 시나리오 앞에서 그겁 ?한(조선)반도 전체의 사회·정치·경제적 불안정을 몰고 온다면, 차라리 흡수 통합도 되지 않고 영구 분단의 안정을 택하겠다는 생각도 퍼지고 있다. 오늘 남(한국) 사회에서 북(조선)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러한 의문과 불안감으로 뒤틀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고, 유언비어는 유언비어로 끝났다.

후계자 시대는 정치·사회적 안정 상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식량난으로 비틀거린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꼬리를 물로 나오고 있지만, 북(조선)에 대한 정보가 제일 밝다는 미국조차도 그러한 소문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수석연구원 셀릭 해리슨이 전한 미 농무부 보고서의 북한 식량 사정에 관한 대목은 "기근이 만연하고 식량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들은 근거가 불충분하다. 북한은 중앙집중식 식량 배급 체제를 지방분권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그 와중에서 일부 지역이 때때로 심각한 식량 부족 사태에 처하게 될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상황이 절망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으며, 94년에 사정이 더 악화됐다는 조짐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난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북(조선)의 에너지 부족은 2대 에너지 원천인 원유와 코크스가 한(조선)반도에서 한 움큼도 나지 않는 한계에서 오는 것이지, 총체적인 파탄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일찌감치 이러한 한계를 파악한 북(조선)은 에너지 자급자족의 원칙을 밀고나가면서 시간이 더 걸리고, 힘이 더 들더라도 이 2대 원료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한으로 낮춘 '매우 특이한' 산업 구조를 세웠며, 북(조선)에서 생산되는 자급 원료를 이용한 대용 연료 및 합성 연료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자급자족 수준을 높히는 데 힘써왔으므로, 총체적인 파탄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사회주의 국제 시장이 붕괴하였고, 미국의 경제 제재 조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상황에서 외화가 부족하여 에너지를 수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북(조선)이 에너지 부족으로 머지 않아 무너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북(조선)이 빨리 망하기를 바라는 '반북론자의 몽유병'과 다를 바없다고 볼 수 있다. 남(한국) 사회가 이러한 허구적인 정보를 가지고서는 올바른 대북 정책, 통일 정책도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북(조선)의 '후계자 체제'를 유지시켜주고 있는 안정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정치적 관점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늘 북(조선)의 정치는 이른바 후계 체제의 정치다. 후계 체제의 정치적 기반은 어제 오늘 다진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북(조선)에서 나오는 말을 빌리면, 후계 체제의 정치 지도력은 이미 30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이라고 한다. 북(조선)의 주장을 따르면, 이 준비란 밖으로는 반제 자주 역량을 강화하고, 안으로는 사회주의 건설 역량을 강화하는 양대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정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곧 사회주의 정치 제도를 강화·발전시키는 일이라고 한다. 북(조선)의 주장을 따르면, 이 과업은 사회주의 집권당과 국가 기구와 인민을 하나의 사상, 하나의 집단적 의지로 결합시키는 것이며, 그 공고한 사회·정치적 결합체의 핵심에는 '수령의 영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러한 과업 수행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른바 '인민 정권'을 끊임없이 강화·발전시켜온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인민 정권'의 지반 위에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의 실현, 이것을 그들은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북(조선)의 외교 사업은 바로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 역량의 한 집행 단위라고 볼 수 있다.

(3) 핵압박과 제2의 정전 협정

북(조선)의 역사 50년동안에 한국(조선)전쟁을 빼놓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전후 복구기와 '핵압박' 대응기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후 복구기가 내부에서 돌출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던 시기였다면, '핵압박' 대응기는 외부에서 조여들어오는 압력에 대응해야 했던 시기였다. 미국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가지고 외교적 압박을 가한 것은 몰락과 혼란 속에서 비틀거리던 사회주의 진영의 국제 역량이 최하 수준으로 떨어져 있던 사정과 연관된다. 미국은 이 기회에 북(조선)에 압박을 가하면 사회주의 진영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북(조선)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굴복하리라고 타산했다. 북(조선)의 굴복은 곧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 지구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아시아 사회주의 삼국', 북(조선), 중국, 베트남을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사막전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한 '사막 폭풍 작전'의 맹렬 기세를 휘몰아 드디어 '사회주의 동방 초소'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국제원자력기구을 앞세웠고, 유엔안보리의 제재 위협을 동원했다. 거기에 남(한국)과 일본이 적극 가세했다. 만일 우리가 이 숨막히는 외교 대결을 순전히 물리적 역량 계산법으로만 따진다면, 북(조선)은 이라크처럼 대응력을 잃고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위기 전황이 분명했다. 한(조선)반도에는 한 때 전운이 감돌았다. 세계는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진 '양치기 소년 다윗과 거인 장수 골리앗의 싸움'을 가슴 조이며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외교 대결의 마지막 고비에서 미국은 북(조선)이 외부 압력을 가해서는 꺾을 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 행정부가 지미 카터를 급히 평양에 보내 대결 분위기의 극적 반전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의 정책 수행 집단이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인식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1950년대 한국(조선)전쟁에서 무력으로 승리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1990년대 외교전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힘겨운 싸움을 벌였던 북(조선)도 미국과 벌인 치열한 외교전에서 '핵주권'을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대신 북(조선)은 남(한국)에 쌓아놓았던 미국의 지상 배치 핵무기들을 철거시켰고, 지난 시기 자기와 단 한 차례도 마주앉기를 거부해왔던 '오만한' 미국을 마침내 협상 자리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으며, 그로써 조·미 관계 개선을 궤도에 올려놓았다. 4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이익도 얻었던 것은 물론이다. 1994년 10월의 제네바 기본합의서 채택은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 맺은 '제2의 정전 협정'이었다.

(4) 북(조선)의 새로운 외교 전략

소연방·동구 사회주의 진영이 몰락한 뒤로 미국은 냉전 시기 사회주의 진영에 대응했던 봉쇄·대결 전략을 용도폐기하면서,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이 새로운 전략을 관여·확장 전략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도 냉전 시기의 봉쇄·대결 전략(Containment-Confrontation Strategy)을 뒤로 물리고, 탈냉전기의 관여·확장 전략(Engagement-Enlargement Strategy)을 수행해야 할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지난 시기 봉쇄·대결 전략의 한(조선)반도적 전개 단위는 두 코리아 정책(Two·Korea Policy)이었고, 이것은 한(조선)반도 분단의 영구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는 반(反)한(조선)반도적 정책이다다. 그런데 미국이 국제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 때문에 냉전적 봉쇄·대결 전략을 용도폐기하게 된다면, 그 전략의 한 전개 단위였던 두 코리아 정책도 당연히 폐기될 것이다. 이것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반대해온 미국의 외교 정책도 변화된다는 뜻이며, 그만큼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지평이 개방·확대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에게 의문이 생긴다.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은 과연 한(조선)반도의 통일 실현에 전면적으로 유리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전략이 자본주의적 흡수 통합(capitalist integration by absorption)을 실현하기 위한 기제, 곧 아시아 사회주의 삼국인 북(조선), 중국, 베트남을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늪으로 유도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변질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거대한 자본주의 지배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이른바 유도·편입 정책(Inducement-Incorporation Policy)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여·확장 전략이 유도·편입 정책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는 것 때문에 북(조선)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북(조선)은 한(조선)반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전략 환경의 전환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미국의 유도·편입 정책을 막아내면서 전략 환경의 전환을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의 전환 국면으로 이끌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북(조선)이 자주·평화 통일·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따라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움직임을 더욱 능동적으로 벌이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정치적 판단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은 연방제 통일 실현을 위한 국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자주 외교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북(조선)이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에 대응하여 수립한 새로운 전략적 방침이란 무엇인가? 북(조선)의 새로운 전략적 방침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데 유리한 전략 환경을 한(조선)반도에 조성하는 데 복무하는 전략일 것이다. 또 그것은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에 외교적 대응력을 갖춘 새로운 전략일 것이다. 북(조선)의 이러한 새로운 외교 전략을 우리는 협상·공존 전략(Conversation-Coexistence Strategy)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북(조선)의 자주 외교는 협상·공존전략과 연방제 통일 정책으로 안받침되어 있다. 북(조선)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데서 커다란 걸림돌이 두 개가 가로놓여 있으니,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요, 다른 하나는 평화 협정(조약) 체결문제다.

먼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면, 북(조선)이 기존 전략인 주한미군 철수론을 최근에 들어와서 뒤로 물리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야말로 북(조선)의 대미 외교 정책 및 통일 정책 수행 과정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가 되어왔는데, 이제 북(조선)은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변화다. 북(조선)은 주한미군의 주둔을 '잠정적으로' 용인한 기초 위에서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할 수 있고, 평화 체제를 수립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연방 국가도 창설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남(한국)이나 미국의 정계 일부와 일부 전문가들이 최근에 주장하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대화할 수 있는 접촉점을 만들어주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에 대한 잠정적인 용인은 대미 관계 개선과 연방제 통일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북(조선)이 현재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유연한 '전술적 선택'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① 북(조선)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대해 사활적인 이해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을 결코 자진해서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며, 그렇다고 해서 북(조선)이 무력으로 주한미군을 몰아낼 수도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

② 이러한 상황에서 북(조선)이 만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대미 관계 개선의 조건과 연방제 통일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도리어 결과적으로 대미 관계 개선과 연방제 통일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점.

③ 따라서 북(조선)은 미국이 주한미군의 무력을 무제한으로 증강시켜 군사 긴장을 높히지 않겠다는 공식적 보장, 주한미군을 동원하여 북(조선)에 대해 무력 사용을 하지 않겠다는 공식적 보장을 하는 경우, 차라리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 전술적으로 탄력성있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

④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북(조선)은 주한미군 철수 요구를 전술적으로 철회함으로써 미국을 협상 자리에 끌어들이는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는 한편, 대미 관계 개선의 수위를 차츰 높혀가면서 한·미 동맹 체제를 약화시키고 남(한국)에 대한 전략적 우세를 보장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점.

⑤ 북(조선)은 앞으로 대미 협상을 통해 미국이 연방제 통일 방안을 지지해주는 조건과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조건을 '동시 타결안'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

그 다음으로 정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북(조선)이 1995년 8월 11일자로 발표한 '정부 비망록'에서 이런 부분이 눈길을 끈다. 원문 그대로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정전 협정의 실제적 당사자이다. 더우기 미국에 의해 정전 협정의 기본 조항들이 파기되고 정전 기구들이 마사진 조건에서 응당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미국이 정전 체계를 평화 보장 체계로 바꾸는 문제를 담당해야 한다. 평화를 보장하고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만 가동되면 련방제 통일에 더욱 유리한 조건이 조성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북(조선)이 조·미 평화 조약 체결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북(조선)의 주장을 따르면, 이 '제도적 장치'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경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상수가 된다는 것이다. 이 문건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이 제도적 장치란 구체적으로 남북 기본합의서를 실질적으로 이행·가동하는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수립되는 '새로운 평화 보장 체계'를 말한다.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행하는 문제가 남북 대화를 재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조·미 사이의 새로운 평화 보장 체계를 수립하는 구체적인 방도는 무엇일까? 북(조선)은 이 문건에서 그것이 조·미 평화 조약(평화 협정)이라고 지적하지 않고 있다.

이 문건은 요즈음 남(한국) 당국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2+2 방식'의 평화 보장안을 거부하고 있다. 북(조선)은 남북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미국과의 협상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북(조선)은 남북 사이의 평화 보장 체계 수립과 조·미 평화 보장 체계 수립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추진하자는 이중 구도를 제안하고 있다.

1995년 9월 19-26일 평양을 방문했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 셀릭 해리슨은 도쿄에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 북(조선)의 외교 정책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 바있다. (『중앙일보』 1995년 9월 28일자) 그의 설명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북(조선)은 미국이 남(한국)과 공조하여 북(조선) 체제를 변질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체제 붕괴를 꾀하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

② 북(조선)은 조·미 평화 협정 체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 협정 체결이 조·미 관계 정상화의 전제 조건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주한 유엔군 사령부의 해체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③ 북(조선)은 조·미 평화 체계가 이루어져야 남북 당국자 사이의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④ 북(조선)은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한다고 보지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상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평화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

⑤ 북(조선)은 주한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용인하는 대신, 현 정전 체제를 '새로운 평화 체계(new peace mechanism)'로 전환하기를 바라고 있다.

⑥ '새로운 평화 체계'란 먼저 조·미 상호 안보 협의회를 구성하고, 이 협의회가 가동되는 시점에서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남북 군사 공동위원회를 가동시키는 평화 보장의 이중 구조를 뜻한다.

이제 한(조선)반도의 통일 정세는 미국의 관여·확장 전략과 북(조선)의 협상·공존 전략이 서로 외교력을 총동원하여 벌이는 새로운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양대 전략의 충돌은 결국 미국의 유도·편입 정책과 북(조선)의 연방제 통일 정책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느 편이 힘겨루기에서 이길 것인가? 국제 사회의 이목은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게 될 정책 대결의 추이에 집중되고 있다.

(5) '후계자 시대'의 통일 정책

북(조선)은 탈냉전 시대를 민족사적 관점에서 '통일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북(조선)은 1990년대가 가기 전에 조국 통일의 길을 열어놓는 것을 '수령의 유훈'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수령의 유훈'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무조건 관철해야 하는 것이 후계자 김정일 비서와 조선로동당의 정치 철학이며, 북(조선) 인민들의 신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1990년대에 기필코 조국 통일의 결정적 국면(조국 통일을 완결하겠다는 적이 아니라)을 열어놓겠다는 북(조선)의 주장은 빈말이나 수사적 표현만은 아닐 수도 있다. 북(조선)이 '후계자 시대'를 '통일 시대'라고 보는 까닭은 그 사회에서 그들 나름대로 유훈 관철의 신념 기제를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90년대라고 해야 앞으로 4년 밖에 남지 않았다. 이 짧은 기간 안에 과연 어떻게 통일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북(조선)이 말하는 통일 경로와 방식은 말할 것도 없이 1민족, 1국가, 2체제, 2정부의 원칙에 선 연방제 통일이다. 앞으로 4년 동안에 남(한국)에서는 총선과 대선이라는 커다란 정치 변동을 겪게 되고, 그것은 남북 대화·협상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남(한국)의 차기 대통령과 차기 집권당은 통일 문제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한(조선)반도 정세 발전의 객관적 요구 앞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조선)반도 정세 발전의 객관적 요구란 결국 북(조선)과 미국의 관계 개선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서 생겨나는 통일 정세의 질적 변화 상태를 말한다. 북(조선)과 미국이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본격적인 관계 개선에 들어서면, 이 두 나라는 어떻게 해서든지 현 정전 상태를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전향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 조치는 점진적, 단계적으로 진전될 것이지만, 평화 상태로 전환하는 과정은 한(조선)반도의 통일 정세를 결정적인 변화 국면으로 이끌어 가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 전환과 변동과정에서 한(조선)반도 전체의 정치·외교 지형은 엄청난 변동을 겪을 것이며, 아마도 우리 민족의 21세기 장래 운명이 여기서 결정될 것이다.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자면, '후계자 시대'를 '통일 시대'로 열어가는 과정은 민족 주체 역량을 총동원하여 자주적 평화 통일의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조선)은 외교 전략 수행의 근본 목적을 사회주의 건설과 조국 통일 성취라는 최상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북(조선)은 이 과업 수행을 촉진시키는 가장 확실한 추동력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 걸어놓은 봉쇄·대결 전략의 무거운 빗장을 하루 빨리 풀어내고, 한(조선)반도의 긴장 완화를 실현하여 항구적인 평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엄청난 군비 부담을 줄이고 사회주의 국가 역량을 사회주의 건설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평화 보장 체계의 실현과 정착이 조국의 자주적 평화 통일을 실현하는 결정적 국면으로 직결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국) 당국은 이처럼 변화되고 있는 통일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대응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앞으로 남북 관계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1995년 10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