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공동성명의 역사적 의의와 오늘의 통일 정세

한호석

미주평화통일연구소장


(1) 7·4 공동성명은 민족 자주를 지향하고 있는 민중의 역사적 요구를 담고있다.

우리 민족은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한(조선)반도는 외세의 지배력이 밀려들어와 충돌하는 격돌의 무대가 되었다. 중세에는 중국이, 근세에 와서는 일본이, 그리고 현대에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한(조선)반도를 자국의 발밑에 두려고 획책하였다. 한(조선)반도를 강대국의 침탈과 외세의 지배로부터 지켜내고 민족 자주를 수호하는 과업은 수백년동안 민족의 흥망에 관련된 최대 문제가 되어왔다. 민중을 억누르고 수탈하던 지배 계급은 언제나 강대국의 침략 앞에 맥없이 무릎을 꿇었고, 외세의 지배력에 의존하여 자기의 존립을 유지하고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배반과 예속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민중은 언제나 강대국의 침탈에 맞서 저항하고 외세의 지배력을 거부함으로써 민족의 자주성과 존엄을 지킨 참다운 민족 주체 역량을 자기 안에 키워왔다. 민족 문제의 본질을 민족 자주의 문제라고 할 때, 역사적으로 민족 자주성을 수호해오고 있는 세력은 민중이고, 따라서 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 역량은 언제나 민중에게서 나온다. 주변 열강의 침략과 지배,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생겨난 지배계급의 외세 의존, 예속, 사대주의의 반민족성을 배격하고 민족 자주를 실현함으로써 이 민족이 민족적 삶을 살게 하는 역사적 과업을 달리 표현하자면 자주적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최고 수준의 정치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 자주의 과업, 곧 자주적 민족국가 건설의 과업은 민중의 역사적 요구였으며, 민중은 자기의 주체 역량으로 이 과업을 해결해야 할 역사적 임무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자주의 원칙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통일을 실현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중세 이후 수백년 동안 우리 민족사에 제기되고 있는 민중의 자주적 요구다. 민중의 자주적 요구는 민중 자신의 자주화에 대한 요구이며, 동시에 민족 전체의 자주화의 요구다. 현 시기 민족 자주의 요구는 자주적으로 통일된 민족국가의 건설에 대한 요구다. 자주적으로 실현되는 통일은 곧 외세의 개입·간섭·지배를 배격하고 자주적으로 통일민족국가를 건설하는 일이다.

(2) 7·4 공동성명은 연방제적 통일국가 건설의 정치 강령을 확정·제시하였다.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민족 대단결의 원칙은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을 말하고 있다.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체제의 차이라는 말로 풀이한다면, 그것은 체제의 차이를 초월하여 한 민족으로서 단결한 기초 위에서 통일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체제의 차이를 초월한다는 말은 남과 북에 현존하는 상이한 두 체제를 상호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민족적 단결을 실현함으로써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과 북에 현존하는 상이한 두 체제를 상호 인정하는 기초 위에서 민족적 단결을 실현하는 통일의 의미를 국가 형태론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연방제적 통일국가를 건설한다는 뜻이다.

7·4 공동성명의 역사적 의의는 체제 통합의 과제와 민족적 단결의 과제를 서로 구분하고, 체제 통합의 과제를 조국통일 과업에서 분리시킴으로써 통일을 체제 통합의 과제가 아니라 민족적 단결의 과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규명하였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상이한 두 체제를 단일한 체제로 만들어가는 체제 통합은 통일 과업에 속하지 않는다. 통일 과업은 민족적 단결에 기초한 연방제적 통일국가건설의 과업이다.

오늘 남·북·해외에서 전민족적 범위로 확산되고 있는 연방제적 통일국가건설에 관련한 다양한 논의 과정은 이미 25년 전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통일의 정치 강령으로 구체화·명료화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 대단결 원칙의 실현은 곧 연방제적 통일국가의 건설을 뜻한다. 따라서 연방제적 통일국가의 건설을 반대하는 모든 주장은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결국 민족 분열주의와 분단 국가주의로 흘러가게 된다.

(3) 7·4 공동성명은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제 수립과 평화통일의 앞길을 밝혀주었다.

7·4 공동성명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의의는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제 수립과 평화통일의 앞길을 밝혀주었다는 데 있다. 성명에서 천명된 것처럼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 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말은 한(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 체제를 수립하고 그에 기초하여 평화적 통일을 실현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한(조선)반도에 평화 체제를 수립한다는 말은 낡을대로 낡아서 이제는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져있는 정전 체제를 공고한 평화 체제로 전환한다는 말이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지 못하면 평화적 통일 실현이 불가능함은 말할 것도 없고, 평화통일 이전에도 한·미 안보동맹의 불평등성과 예속성이 여전히 유지될 수 밖에 없으며,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한·미 연합군과 조선인민군 사이의 살벌한 무력 대치 상태와 군사적 긴장 구도가 지속되고 군비 경쟁을 자극하여 결국 우리 민족의 막대한 역량을 군비에 소모하게 되고, 미국 군부와 미국의 관·군·산 복합체에게만 이익을 넘겨주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한(조선)반도에서 무력을 대치하고 있는 당사자들인 남(한국), 북(조선), 미국 3자 사이에서 평화 회담을 개최해야 하며, 그 평화 회담을 통하여 현존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고, 남북이 방어형 수준으로 군비를 크게 축소해야 하며 그에 상응하여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추진해야 한다.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는 조국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는 과업과 밀접하게 결부하여 해결해야 한다. 만일 평화 회담 개최와 평화 협정 체결, 그리고 남북의 군비 축소와 주한미군의 철수 등의 한(조선)반도 평화 체제 수립 문제를 평화 통일 과업와 분리시킨다면, 그것은 대결적 분단 체제를 평화적 분단 체제로 바꾸어놓자고 하는 일종의 반통일론에 빠지게 된다. 7·4 공동성명에 천명된 평화통일의 원칙은 평화적 분단 체제의 유지가 아니라,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평화 체제의 수립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

(4) 7·4 공동성명은 남(한국) 민중의 통일 의지를 고취하고 통일 민족주의를 되살렸다.

분단 체제를 합법화·영구화하려는 반통일 세력들이 민족 분열의 어둠을 드리우고 있던 1970년대 초에 남(한국) 민중은 7·4 공동성명의 발표라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면서 분열·분단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통일 의지를 새롭게 가다듬게 되었다.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의 3대 원칙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남(한국) 민중은 분단 체제에서 벗어나 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를 발견하게 되었으며 반통일 세력과 분열주의자들의 모진 금압 때문에 시들어가던 통일 민족주의를 되살릴 수 있었다. 7·4 공동성명의 발표를 계기로 남(한국) 민중의 의식 속에는 통일 민족주의가 분단 국가주의의 대립항으로서 차츰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것은 1945년 이후 외세와 민족 내부 반통일 세력의 공조로 강요당한 분단 국가주의의 반민족성을 거부하며 투쟁했던 남(한국)의 통일 민족주의의 사상적 맥락을 되살린 것이다. 분단 1세대로서 통일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투쟁하다가 반통일 세력의 손에 희생당한 백범 김구, 죽산 조봉암을 이은 통일 민족주의의 사상적 맥락을 1970년대에 다시 되살린 사람은 장준하였고, 그가 박정희 정권의 탄압 속에 희생되자 1980년대에 다시 그 뒤를 이은 사람은 문익환이었다. 장준하와 문익환의 통일 민족주의가 7·4 공동성명의 통일 강령에 기초하고 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 크게 성장한 남(한국)의 통일운동도 7·4 공동성명의 통일 강령에 기초한 통일 민족주의를 자기의 운동이념으로 삼고 있다.

(5) 7·4 공동성명과 통일 정세

1) 25년 전 7·4 공동성명이 발표되던 시기에 한(조선)반도는 주변 정세의 질적 변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변동은 1969년 7월 '닉슨 독트린'의 발표와 주한미군의 감축이었다. 1970년 2월 18일 닉슨이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U.S. Foreign Policy for the 1970s: A New Strategy of Peace"에 정리되어 있는 닉슨 독트린은 미국이 앞으로도 동맹국들에게 공군력과 해군력을 계속 제공하기는 하겠지만, 지상군은 해당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미국의 정책변 화를 밝혔다. 1971년 3월 미국은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 제7사단 2만여 명을 전격적으로 철수했다. 이로써 주한미군 지상군은 2사단만 남게 되었으며, 병력이 6만 여명에서 4만 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시기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미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였다. 1971년 8월에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함으로써 일어난 이른바 '달러 위기'에서 드러났듯이 미국 경제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닉슨 독트린이 다른 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회피하겠다고 밝힌 것도 바로 이러한 위기 상황의 반영이었다. 1972년 2월 닉슨-주은래의 상하이 공동성명 발표와 같은 해 5월 닉슨의 모스크바 방문으로 이루어진 미·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른바 '데탕트 시대'가 열렸다. 특히 상하이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긴장 완화를 추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미·중 관계와 미·소 관계가 평화 공존 관계로 전환되는 국제 정세의 질적 변동은 한(조선)반도의 대결구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닉슨 독트린과 주한미군의 감축, 그리고 '데탕트 시대'의 개막은 냉전 구도 속에 태어나 대미 의존적으로 살아왔던 박정희 정권에게 심각한 위기 의식을 몰고왔다. 이것은 박정희 정권으로 하여금 북(조선)에 대한 냉전적 대결 정책을 밀고나가지 못하게 했으며, 따라서 반통일적인 박정희 정권이 7·4 공동성명에 합의할 수 밖에 없는 외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2) 7·4 공동성명을 합의·발표했던 박정희 정권은 그 성명 발표로 남(한국) 민중의 통일 의지가 높아지게 되자 얼마 가지 않아서 7·4 공동성명을 저버리고 말았다. 정권의 반통일적 생리 때문에 7·4 공동성명을 발표해 놓고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역대 남(한국) 정권은 7·4 공동성명 발표를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 데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실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역대 남(한국) 정권에 있어서 7·4 공동성명의 역사적 사건은 잊혀져 버렸다. 역대 남(한국) 정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7·4 공동성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남(한국) 민중의 조국통일운동을 탄압해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남(한국) 정권이 7·4 공동성명에 합의하고 이를 발표했던 한 당사자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거부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7·4 공동성명 발표 뒤로 역대 남(한국) 정권들의 통일 방안은 1982년 전두환 정권의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 1989년 노태우정권의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으로 이어졌다.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은 과거 비정치적인 교류를 확대하면 자연스러운 파급 효과가 발생해 저절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종래의 소극적 접근 방식과는 달리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같은 정치협상을 가미한 '신기능주의' 접근방식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은 '민족 공동체(Commonwealth)' 개념을 도입하여, 상징성을 강화하고 통일국가에 이르는 중간 단계를 제시하여 통일 경로를 제시하였으며, 특히 중간 단계인 남북연합 단계에 관해 구체적으로 전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남(한국) 정권의 통일 방안은 한결같이 7·4 공동성명에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은 1993년 출범 초기에 내놓았던 이른바 '3단계 3기조 통일 방안'조차 버리고 199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발표한 이른바 '한민족 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 방안(Unification Formula for the Korean National Community)'을 확정했다. 이 통일 방안은 7·4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평화통일·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 가운데서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버리고 자주·평화·민주의 3대 원칙을 내놓았다. 민족 대단결의 원칙을 버리고 새롭게 채택한 '민주'의 원칙이란 결국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통합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남(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적 기반인 자유 민주주의를 통일의 원칙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역대 남(한국) 정권이 자기 체제를 북(조선)에 강요하려는 속셈을 차마 드러내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분명하게 언급하기를 피해 왔던 자유 민주주의적 체제 통합 문제를 김영삼 정권은 노골적으로 주장하였다.

3)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냉전 체제가 해체되자, 그 영향은 곧 한(조선)반도의 분단 체제에 파급되었다. 7·4 공동성명의 정신을 계승한 남북합의서 채택은 바로 이러한 통일 정세의 변화 속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런데 걸프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소련·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냉전 체제가 해체되자 이제는 북(조선)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전면적인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북(조선)은 미국의 전면적인 압박에 굴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북(조선)과의 협상을 거부해오던 미국을 협상 자리에 끌어내어 제네바 합의를 채택하였다. 이로써 지금 한(조선)반도의 통일 정세는 조·미 관계 개선이라는 중심축의 움직임을 따라서 변화하고 있다.

북(조선)이 대미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까닭을 단기적 전망으로 보면 40년이 넘게 지속되어온 미국의 대북 경제제제 조치를 해제시킴으로써 사회주의 국제 시장이 무너진 뒤로 어려움에 빠진 경제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 전망에서 볼 때는 대미 관계 개선과 통일 실현이라는 두 과제를 상호 연동시키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평등하고 비자주적인 한·미 관계를 평등하고 자주적인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조·미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미 관계의 개선과 조·미 관계의 개선은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조·미 관계가 냉전적 적대 관계에서 탈냉전적 평화 공존 관계로 전환된다면, 한·미 관계도 냉전의 유산인 불평등성과 비자주성을 청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통일강령 제1조인 자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길이다. 또한 조·미 관계가 적대 관계에서 평화 공존 관계로 전환되는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평화 체제의 수립은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통일 강령 제2조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전략 환경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조선)은 대미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대북 정책은 판단 착오와 실수를 연발하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정책 수립가들은 북(조선)이 경제난으로 곧 무너질 것이라는 이른바 '조기 붕괴설'을 도입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기 전에 북(조선)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여 제네바 합의서의 채택에 일단 응했지만, 그 뒤로 자신들의 '북(조선) 붕괴설'이 판단 착오였음을 알게 되자, 제네바 합의서를 이행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행하지 않을 수도 없는 외교적 진퇴양난에 빠져들어갔다. 미국이 3년이 다되어오는 지금까지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제네바 합의서에서 천명된 전면적 관계 개선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대북 경제제제 조치에 매달리고 있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사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 관계 개선을 뚜렷한 명분도 없이 무한정 회피할 수 없기 때문에 궁색한 대응책으로 내놓은 것이 4자 회담 제의다. 미국은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제의해놓고서도 한·미 연합군의 전력을 현대화한다는 명목으로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한(조선)반도에서 선제 타격을 겨냥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감축 계획을 백지화하고 계속 주둔시키겠다고 발표하였다. 이것은 조·미 관계 개선이 실현될 경우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 수립과 군비축소를 반대할 명분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동북 아시아에 대한 자국의 지배력에 손상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안보 불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조·미 관계 개선은 냉전 체제의 붕괴 이후 미국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앞으로 양국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정치·군사 협상에서 팽팽한 힘겨루기와 우여곡절이 예상되지만, 그 귀결은 한(조선)반도의 평화 체제 수립과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실현에 유리한 지점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6) 결론을 대신하여: 문제는 다시 민족 자주 역량의 단결이다

민족 자주를 실현하고 평화 체제를 수립하여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그 앞길에는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놓여있다. 겹쌓여있는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실천 주체의 역량을 부단히 강화·발전시키는 방도 밖에는 없다. 실천 주체의 역량은 분산·분열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단결된 민족 자주 역량을 형성해야 한다. 실천 주체의 역량이 없거나 미약한 조건에서는 아무리 정당한 원칙과 합리적인 방안이 제시되어도 실현 가능성은 아직 없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민족 자주 역량의 단결과 강화·발전에 귀착된다.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통일 강령 제3조인 민족 대단결의 원칙은 바로 이러한 당면 과업을 해내외 통일 운동 세력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민족 대단결의 원칙에 기초하여 1993년 4월 6일 김일성 주석은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을 발표하였다.

민족 대단결이란 다기다양한 실천 주체들 사이에서 생겨난 상황적 이질성, 정치적 견해차이, 이익 추구의 상충성을 접어두고 민족적 동질성, 통일의 당위성, 민족의 공동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단결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단결·단합된 민족 자주 역량만이 7·4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통일 강령을 실천할 수 있다. (1997년 7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