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선거와 한반도 통일 정세

한익수

미주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원

 

머리말

 

한국의 제 15대 대통령선거가 1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97년 12월 18일 한국민은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여는 길목에서 한국사회를 이끌어나갈 새 대통령을 선출해야한다.

'20세기를 맺고 21세기를 맞는 시점'이라는 말에는 한세기의 끝과 시작이라는 연대기적 의미뿐만 아니라 '민족의 장래와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전환기'라는 엄숙한 화두가 자리를 잡고 있다. 20세기는 우리 민족이 식민지와 분단 상태의 지속이라는 얼개에 갇혀 고난과 수난이 끊이지 않았던 민족사의 암흑기라 할 수 있다. 21세기를 여는 문턱에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를 수립하는 일은 그 어떠한 정치적 사안들보다 중차대한 민족 과업이 되고 있다. 통일 국가를 실현하여 민족 융성기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분단 고착상태를 유지하여 민족의 퇴락을 자초할 것인가는 민족 주체역량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객관적 조건과 상황에 대해 어떠한 역사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수 밖에 없다. 민족 주체 역량은 한반도를 가르고 있는 낡은 분단질서를 해체하고, 자주적 민족 통일 국가 수립에 유리한 형세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올리기위해 민족의 지혜와 힘을 모아가야 한다.

이같은 과제와 결부해 볼 때 '민족의 장래와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전환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일시대를 여는 민족사적 전환기'와 엇맞물려 진행되는 한국의 제 15대 대통령 선거는 무척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대통령 선거의 향방과 그 결과, 그리고 이후 한국사회 정치 세력의 재편이 몰고 올 '변화'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와 방향이 되든 향후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같은 문제 의식에서 출발, 한국 대통령 선거와 한반도 통일 정세를 주제로 다루고자 한다.

본고는 아래와 같은 3개의 중간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1. 통일 정세와 관련하여 대선이 갖는 의미

2. 15대 대선의 성격

3. 대선 후보들의 통일정책과 이에대한 비판적 검토

1. 통일 정세와 관련하여 남한 대통령 선거가 갖는 의미

(1) 4강과 동북아 관계

1997년은 탈냉전이후 신국제질서 형성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해였다.

미국은 클린턴 집권 2기를 맞아 유럽과 아시아를 두 개의 핵심 전략축으로 삼는 개입과 확장 전략을 공세적으로 취하기 시작했다.

클린턴 미대통령의 집권 2기 개입 확장 전략은 NATO의 동유럽 확대로 가시화됐으며, 동북아시아에서는 미국주도의 쌍무적 협력 관계의 심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97년 10월말 클린턴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은 워싱턴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공동 합의를 이뤄냈다. '미·중간의 전략적 제휴 선언'으로 일컬어지는 이 정상 회담을 전후해 미, 중, 러, 일 4국의 정상회담이 교차, 전개됐다. 미·중 정상회담과 거의 동시의 시기인 11월초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총리와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시베리아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어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4월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11월 9일 중국을 방문, 장쩌민주석, 리펑총리와 만나 중, 러 양국간 정상 회담을 가졌다. 중국 리펑총리는 옐친 방문 직후인 11월 중순 일본을 방문했다. 98년에는 3, 4월 모스크바 미·소 정상회담, 5월경 러·일 동경 정상회담, 미·중 북경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같은 한반도 주변 4강대국의 빈번한 정상 방문외교는 "구 소련체제 붕괴 이후 새롭게 모색되고 있는 4강관계와 그에따라 재편될 동북아 국제질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세기적 의미를 가진 역사적 사건들"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 4강이 정상회담을 통해 추구하는 새로운 관계 정립의 방향은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탈냉전시대 국제질서의 주도력을 미국 중심으로 끌고 가려하고 있다. 미국의 탈냉전시대 신국제질서 수립 전략인 개입 확장 전략은 냉전이후 유일한 패권국이 된 미국의 힘과 기회를 능동적으로 활용, 군사 지배력과 경제 이익을 전세계적으로 확장하려는 패권적 성격의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이같은 개입 확장 전략은 지역과 세력의 범위에서 볼때 4가지 대응 체계로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1)냉전 시기부터 유지돼온 자본주의권 동맹국가에 대한 군사, 경제력 유지, 강화 (2)사회주의 붕괴이후 세계자본주의에 새로이 편입된 동구권에 대한 군사, 경제력 확장 (3) 위협 국가에 대한 제어, 봉쇄와 흡수 (4)잠재적 위협 국가에 대한 견제와 개입이라 할 수 있다.

미국 주도의 동북아 관계는 이들 4가지 대응체계가 착종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둘째, 중, 러, 일은 미국 주도의 동북아 신질서 구도에 대응, 참여와 견제, 그리고 이들 국가간 상호 협력관계 형성이라는 또다른 기류를 조성해내고 있다. 동북아시아 관계가 복잡성을 띠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같은 4강국간의 이해관계와 남북의 이해관계가 중층적으로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군사적 동맹관계인 일본이 러, 중과의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려 하는가 하면, 중국과 러시아는 수십년간 지속돼온 국경선 분쟁을 종식하고 상호 협력 관계를 급격히 복원시켜 나가고 있다.

(2) 4강과 한반도 관계

앞서 지적한 동북아 신질서를 둘러싼 4강의 움직임은 한반도에 새로운 기류를 도출해내고 있다. 이들 4강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장 경쟁이 치열하게 시도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과 관련, 긍정과 부정적 영향력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첫째, 이들 4강의 한반도 영향력 확장 경쟁은 한반도에서 급격한 변동-붕괴나 국지전, 혹은 전면전과 같은 지역간 분쟁-의 가능성을 현격히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한반도의 통일 역시 4강의 이해에 의해 견제, 유실 혹은 조정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전망을 낳게 한다. 이들 4강은 남북에 대한 등거리 외교와 지역 안정화를 통해 그들의 이해를 관철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통일없는 분단 상태에서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는 분단구조의 고착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4강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강화 시도는 향후 남북간의 역학 관계에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4강의 영향력 확장 경쟁은 북한에 대한 봉쇄의 빗장을 허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향후 북한은 대외관계에 있어 남한과 대등한 위치 혹은 우세한 위치로 나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90년대초 이후 남한은 중국과 러시아와 수교, 4강과 완전한 국교 관계를 수립한 반면, 북한은 냉전구도에서 형성된 중소관계-그것도 이전 보다 소원한 형태로 유지할 수 밖에 없는 형태화한 관계-라는 고립된 대외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4강은 동북아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 확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시도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남북한간 대외관계의 불균등성을 균등성의 위치로 돌려놓는 연쇄작용을 불러오게 된다. 북한의 봉쇄 해소는 현재 눈에 띄게 진행되는 미,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 시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편입을 급속도로 수행하며, 남한과 수교을 맺고 '친남정책'을 전개해온 중, 러와 북한간의 관계 복원까지도 포괄하는 전방위 봉쇄 해제를 뜻한다. 향후 북한은 이들과 관계 개선에 유리한 입장에 서 있으며, 득실 계산을 통한 역 등거리 외교를 펼 수 있는 위치로 발돋움하고 있다.

반면 남한은 이같은 변화를 상쇄할만한 카드가 없어, 외교적 고립이라는 위기와 시련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을 축으로 형성된 한미간의 군사 동맹관계는 이미 중·러의 정치 군사적 견제대상이 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 고수 혹은 일방적인 미국 의존은 남한의 대외 입지형성에 결정적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나, 향후 가까운 시기내에 남한 정부가 미국의 울타리를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노선과 한반도 정책을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고립은 필연성을 띠고 있다.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이같은 고립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남북 관계의 정상화 뿐이라 할 수 있다.

(3) 남북의 신정권 등장과 남북관계

97년은 남북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였다. 북한은 3년상을 마감하고 김 정일 총비서 추대라는 '후대수령' 시대를 열기 시작했으며, 고난의 행군의 마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김 정일 총비서 시대를 맞은 북한은 개혁, 개방이라는 틀-북자체의 변화-보다는 북한 주체 사회주의의 유지, 고수속에 앞서 지적한 4강국의 적극적인 대북 접근을 지렛대로 삼아 대외관계의 개선 시도라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정일 총비서 시대에 접어든 북한이 취하고자 하는 남북관계의 방향은 현재 유동적이라 할 수 있으며, 남한 차기 정권의 성격과 대북, 통일정책 방향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김 영삼 정부하에서 남북관계는 목전에 앞두고 무산된 남북 정상회담, 완만한 대화 진전, 극도의 긴장과 대립이라는 극단의 상황이 펼쳐져 왔었으며, 이는 남한 정부의 북한에 대한 접근 태도가 주요 동인이었다.

김 영삼 정부에 비해 남한의 차기 신정부는 남북한 정상회담 개최라는 남북한 관계의 신기원을 열 수 있는 유리한 조건에 있다. 남한의 신정부는 김 영삼 정부하에서 남북 정상회담 무산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던 조문 파동 문제라는 짐을 자연스럽게 벗게 된다.

또 김 정일 총비서가 97년 8월 4일 발표한 논문 '위대한 수령 김 일성동지의 조국 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이하 '유훈')'에서도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시켜야", "대결정책에서 벗어난다면 아무때나 민족의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지적한 점을 놓고 볼 때 남북 정부간 대화 재개나 정상회담 개최의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차기 남한 정권이 대북, 통일정책에 있어 김 영삼정부와 차별성을 갖지 못할 경우, 북한은 종전 남북 정부간 대화 기피 혹은 소극적 전개라는 방침을 고수할 가능성도 높다.

남한의 대선은 앞서 지적한 4강과 한반도 관계, 남북관계를 풀고 나가야 하는 신정부의 등장을 의미한다. 이번 대선은 21세기 한반도 질서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를 드러내주는 풍향계 역할을 할 것이다.

2. 15대 대선의 성격

(1) 87년이후 한국정치 10년의 총결산

15대 대선은 후보들이 출마 명분으로 내건 '정권교체' '3김청산' '세대교체' 구호의 격돌, 'DJT연합'과 '반DJT연합', '내각제 개헌'과 '대통령제 고수'라는 대각 구도의 충돌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외형상의 명분을 한거풀 벗겨내고 이들 후보의 안 구조를 들여다 보면 이번 대선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이번 대선의 기본적인 성격은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를 통한 보수 기득권 세력내의 권력이동이라 할 수 있다. 이 권력 이동은 기득권 세력내의 헤게모니 쟁투와 지역주의라는 상호 연동된 두 개의 특질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전자가 목적이라면 후자는 수단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두 개의 특질은 87년 대선과 92년 대선, 97년 대선으로 이어지는 10년간의 한국 정치의 흐름을 좌우해온 지표였으며, 이번 대선을 87, 92년 대선의 연속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해준다.

남한내 10년간의 대선은 80년초 광주민중항쟁에서 시발, 87년 6월항쟁기간을 통해 절정에 오른 민족민주세력의 등장과 확대를 합법적 선거를 통해 좌절시키고 반공 보수세력의 확대, 강화를 심화시켜온 보수대연합의 긴 여정이라 할 수 있다.

군부-재벌-관료-보수적 정치인의 결합으로 유지되온 반공 보수 독재권력에 저항해온 민족민주세력은 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정치, 사회적으로 강력한 실체로 급부상했으나, 합법적 정치세력의 토대마련에 실패를 거듭했다. 반면 민중 저항에 직면, 지배기반의 극심한 동요를 겪던 반공 보수세력은 동일한 기득 세력이면서도 권력중심에서 소외돼온 자유주의적 성향의 야당을 보수진영에 흡수시키면서 자신의 토대를 확장, 강화해 왔다. 반공 보수세력들은 10년간 한국정치의 대각점이 돼온 민주-반민주의 구도를 87년 대선에서는 대통령직선제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행이라는, 92년 대선에서는 문민정권수립이라는 변신을 통해 희석켜 왔다. 민족민주세력은 87년 군정종식, 92년 민자당 독재종식이라는 공동의 이해를 실현하기위해 야당인 자유주의 세력과 연합, 민주-반민주 구도의 복원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0년의 선거를 거치는 동안 자유주의적 세력의 기둥인 김영삼, 김대중씨는 반공 보수세력에게 포위, 흡수되버렸고, 한국 정치, 사회 지형은 반공 보수세력의 독무대로 변질됐다.

아직도 남한 사회에는 민주화 과제가 의연히 살아 있으나, 반공 보수세력의 강화와 이들의 언술 조작에 의해 내용적인 민주화는 상실의 위기를 맞고 있다. 97년 대선에서 반공 보수세력들은 '정권교체' '3김 청산' '세대교체'라는 언술을 동원, 민주화 요구를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 밑으로의 민주화 요구를 담아온 민족민주 세력의 도약 없이는 이 구도의 변화는 불가능한 상태이다.

(2)기득권 보수세력간의 권력 쟁투

대선 후보 진영내의 정치 세력 분포는 이들의 보수 색채를 선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이 회창후보는 5, 6공 세력+관료 엘리트를 축으로 하고 있다. 김 대중후보는 권력장악에서 소외돼왔던 야당세력+김 영삼정권으로부터 소외돼 여당을 이탈한 3, 4, 5, 6공 세력이, 이 인제후보는 이 회창세력으로부터 소외돼 이탈한 전 신한국당내 민주계 일부세력이 중핵을 이루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권력장악 의지가 강하고 대중적 지반을 형성한 후보를 앞세운 보수세력 내부의 대리전이라도 할 수 있다. 합종연횡이라 불리우는 유래없는 남한 정치권의 이합집산과정은 정권장악을 향한 보수세력내부의 치열한 각축의 반영이다.

이들 보수 세력들은 지역적 할거를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지역주의, 연고주의는 한국 정치의 보수화 과정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선거의 기본구도는 지역주의를 빼놓고 설명이 불가능하며, 이 혈연주의적, 전근대적 구조가 당락의 잣대가 되고 있다. 지역주의의 기본구도는 호남대 영남간의 대결구도이다. 영호남중 어느 지역이 타 지역을 자신의 연대세력으로 포섭하느냐가 관건인 선거라 할 수 있다.

92년 선거는 호남대 반호남 지역연합이라는 형태로 치뤄진 바 있다. 97년은 이와 반대로 남북으로 분산된 영남지역과 반영남지역 연합이 기본구도로 자리잡고 있다. DJT연합을 통한 영남포위 지역연합 대 영남 분산(이회창후보는 경북+전통적 여당지지 성향의 고연령층, 무직자, 여성층 일부, 이 인제후보는 경남+ 일부 경기, 강원+비호남 반이회창, 반김대중성향을 주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라는 지역 구도가 작동하고 있다. 11월 중순 현재 여론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는 김 대중후보의 약진은 호남+α(충청+경북 지역 일부)라는 지역 분할전략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이다.

김대중후보가 호남지역을 핵심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이 회창후보가 경북을, 이 인제후보가 경남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분점한 97년 대선은 노태우후보의 대구 경북지역, 김 영삼후보의 경남, 부산, 김 대중후보의 호남지역 분할로 치뤄졌던 87년 대선과 유사성을 띠고 있다.

<도표 1> 87년 대선과 97년 대선 지역별 지지도 비교

 

87년 지역별 지지율(%)*

97년 여론조사 지지율(%)**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김대중

서울

25.7

30.9

33.5

32.6

22.2

36.8

인천/경기

40.8

28.3

23.5

25.3

30.8

38.0

강원

46.8

34.4

10.4

30.3

39.4

15.2

대전/충청

32.3

20.7

16.0

33.3

22.2

39.2

광주/전라

5.2

4.1

88.5

3.5

2.6

93.9

대구/경북

67.3

24.8

2.9

51.3

30.8

17.9

부산/경남

38.6

51.8

6.5

35.8

47.4

16.8

*한국 갤럽조사 연구소 조사 (「한국의 대통령선거」,『월간조선』,1997년 1월호)

**한국일보, 한국리서치 공동 여론조사(『한국일보』, 1997. 11.15)

지역주의에 근거한 정치세력 할거와 지역연합 구도는 향후 청산의 과정보다는 온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분열된 여권은 대선 가까워 오면서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전략을 다시금 꺼내들고 있다. 이 회창후보를 엎고 한때 영남배제론을 주장해온 김 윤환은 최근 김 영삼정권과의 차별화, 이 인제신당=김 영삼당 전략을 구사하며, 경북지역 지지세 확보에 전력을 가하고 있다. 그는 영남 지역 민심을 자극하기위해 92년 대선 당시 집권 여당이 구사한 "우리가 남이가"라는 저질성 구호를 최근 그대로 들고 나오기까지 한다.(『조선일보』, 1997. 11.19)

지역주의에 근거한 보수세력의 할거는 김 대중후보의 집권이 성사될 경우, 더욱 지반이 두터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지역세력간의 연대에 기반하고 있는 DJT연합은 그동안 지역등권론-수평적 정권교체론-정권교체론으로 자신들의 집권의지를 명분화해왔으며, 집권후에는 공동 정권 운용, 내각제 실현이라는 방식으로 집권연장을 꾀할 것이다. 내각제는 80년대 중반 보수 집권세력이 자신의 통치 기반에 위기가 조성되자 끄집어낸 책략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반공 보수세력들은 내각제를 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86년 이 민우신민당 당수의 내각제파동, 90년 내각제합의 밀약을 통한 3당 합당, 92년 새한국당의 내각제공약, 97년 DJT연합의 내각제 개헌 합의등 내각제를 둘러싼 보수세력들의 일련의 흐름들은 보수대연합을 통한 영구집권의 구상과 맞닿아 있다.

내각제는 정치적인 지반을 형성하지 못한 민족민주세력에게는 정치적 진출의 길을 막는 봉쇄의 제도이며, 대통령 직선제라는 제도에 내포된 정권교체의 가능성, 민주화 반영을 뒤집는 반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다.

 

(3)민족민주운동 진영의 정치세력화 시도와 경과

남한 민족민주세력은 87년 대선에서는 비판적 지지, 후보 단일화, 독자후보론으로 갈리우고, 92년에는 민주대연합론에 의한 김대중후보와의 정책연합과 민중후보 시도로 나뉘어,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다가 참담한 실패를 맞았었다. 97년 대선을 맞아 민족민주세력의 정치적 대표체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이하 전국연합)과 민주 노총은 9월 7일 '국민승리 21'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후보로 권 영길 민주노총위원장을 선출했다. 민족민주운동세력의 공식입장으으로 대선 후보를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92년 대선 당시 전국연합은 공식입장으로 민주대연합론에 근거, 김 대중 민주대연합 후보의 지지를 채택하고 이에 반대, 민중후보를 낸 백 기완 후보진영을 비판한 바 있다. 민족민주운동 진영이 92년 입장을 접고, 국민후보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후보 진영은 이를 현 대선구도가 보수 일색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맞서 민족민주운동진영의 정치세력화가 절박해졌다는 현실 인식에서 찾고 있다. 국민후보진영의 대선방침은 진보정치세력의 정치적세력화와 민주적 정권교체에 있다. 이 중 현실적으로 무게의 비중을 더 두는 문제가 진보정치의 세력화라 할 수 있다. 김 두수 전국연합 정치국장은 '국민후보의 대선전략과 전망'이라는 글을 통해 "기존 정치권이 보수 일색(잡탕보수, 신흥보수, 후발보수, 젊은 보수)로 정리되고 있는 시점에서 "라고 현 대선구도를 분석하고 있다. (『전국연합통신』,통권 129호, 1997. 10.13) 그는 이어 "진보세력에게 15대 대선은 보수 기성정치세력의 정치독점 현상을 타파하여 새로운 지향, 새로운 대안을 가진 진보정치세력을 현실 구도속에 정립시키는 역사적 계기"라고 국민후보 출마의 의의를 밝히고 있다.

'보수 독점'의 선거판을 향해 출사표를 던진 국민후보운동과 관련, 민족민주운동에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보수 독점의 대선구도에서 진보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존재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11월 26일 등록 이전에 국민 후보는 10%(250만표)이상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국민후보운동이 실패하면 민족민주운동의 위신추락은 물론, 민족민주운동진영이 동반자살하는 사태가 초래할 것이라며,(중략)이러한 비판들은 대중조직을 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기층간부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낙관과 비관이라는 상반된 견해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이 민족민주운동진영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데는 이들 모두 공통된 인식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정치세력화의 교두보를 마련, 진보 정당을 건설하고, 이를 통해 남한 정치에 새지평을 열어갈 것인가, 참담한 패배속에서 민족민주운동의 추락을 맞을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있다는 것이다.

 

3. 대선후보들의 통일정책과 이에 대한 비판적 검토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선거 유세시 공약이나 당선이후 취임사를 통해 평화적 통일과 남북대화의 의지를 국민 앞에 약속해 왔었다. 좀 길지만 역대 대통령 취임사중 통일 관련 대목들을 인용해 본다.

 

"우리는 27년동안 단절되었던 남북간에 대화의 문을 열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달성할 수 있는 전망을 갖게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분단의 논리가 지배하던 냉전의 대결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번영을 추구하는 평화와 조화의 구조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중략) 남북이 서로 하나의 민족으로서 평화와 번영을 추구해나갈 수 있도록 하기위하여,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대화를 계속하고, 이를 더욱 넓혀 나갈 것입니다" (박정희 제 8대 대통령 취임 연설문, 1972. 12.27. 「한국의 대통령선거」, 앞의 책에서 재인용)

"고도성장과 안보를 앞세워 자율과 인권을 소홀히 여길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힘으로 억압하거나 밀실의 고문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중략)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재결합을 위한 길이 보인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개의치 않고 방문해 어느 누구와도 진지하게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힙니다. 민족자존의 새시대에 부응하여 대화하며 공존하고 공존하고 협력함으로써 휴전선에도 화해의 봄을 가져 옵시다.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북 당사자들이 민주적 방식을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나갈 것입니다. (노태우 제13대 대통령취임 연설문, 1988. 2.25. 앞의 책)

"김 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 협력할 자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계는 대결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과 국가 사이에도 다양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김주석이 참으로 민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남북한 동포의 진정한 화해와 통일을 원한다면, 이를 논의 하기위해 우리는 언제 어디서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따듯한 봄 날 한라산 기꽭에서도 좋고 여름날 백두산 천지 못가에서도 좋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터놓고 민족의 장래를 의논해 봅시다. 그때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는 원점에 서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도처에서 민족의 긍지를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5백만 해외동포 여러분, 금세기 안에 조국은 통일되어 자유와 평화의 고향땅이 될 것입니다. " (김영삼 제 14대 대통령 취임사, 1993. 2. 25. 같은책)

 

그러나 이들의 화려하고 유장한 문체의 취임사와는 달리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전망은 금세기안의 실현이 불투명한 상태이며, 남북관계는 교착과 대립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왔다. 단적으로 볼때 역대 대통령이 내건 평화 통일 공약이 현실성 적합성이 없었던가, 정략적으로 치장된 언술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하는 평가를 낳게하고 있다. 현실 적합성의 문제는 통일 문제에서 쌍방성, 호혜 공존성이 결여된 일방적인 대북정책, 남북, 주변 한반도 관계가 무시된 주관적인 통일 정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 정략적 언술의 측면에서 상황에 따라 말바꾸는 정책, 종잡을 수 없는 상황 연출등으로 인해 대통령 후보의 발언과 정책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는데 깊은 회의와 의구를 던지고 있다.

따라서 현 대선 후보들의 정책 공약이라든가 입장, 정견을 놓고 그들의 취임후 통일 정책을 예측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하는 회의와 의구까지 낳게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 후보의 정책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은 이들의 향후 통일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을 창출하는데 기초가 되기 때문에 제한적이나마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겠다. 본장에서는 현 대선 후보들의 통일관련 공약과 발언을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1) 이 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통일정책

이회창후보는 통일 체제와 관련 "어떤 형태의 통일이라도 좋은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체제하의 평화적 통일이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은 남한의 흡수통일을 의미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대북 정세관과 연동돼 있다. 그는 11월 17일 조선일보가 주관한 대선 후보 합동 토론회에 참석, 김 대중후보의 3단계 연방안을 비판하며 "현재처럼 북한 체제가 약화되면 연방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체체가 존속하느냐 아니면 흡수통일이냐 문제만 남게 됩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대북정책의 기조를 '선 안보 후 대화'에 두고 있다.

 

"우선 한반도에서 평화관리를 정책기조로 삼아야하며, 그 다음에 전쟁의 위협이나 무력 도발 상태에 억지력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갖춘 후에 북한과 폭넓은 경제 협력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북한 체제가 최후의 수단으로서 모험적 군사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북 억지력을 갖추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그는 "우선 한미 안보협력체제를 유지, 발전시켜 대북 우위와 통일의 주도권을 확보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또 "군구조와 무기체제를 기술집약형, 장비 집약형으로 개편하여 통합 전력을 극대화시켜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이후보의 대북 정세관과 정책 기조는 현 김 영삼 정부의 것과 같은 내용으로, 계승성, 반복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그는 대북지원 사업과 관련, "인도적 차원에서 대북 지원을 계속해나가고 이를 활성화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대북 지원은 남북한 신뢰강화,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아래 식량배분의 투명성 보장이 확보돼어야 한다"고 밝혀, 조건부 대북지원론을 주장하고 있다.

남북 정부간 대화문제에 대해 그는 "북한의 변화와 북한 주민의 자유및 복지 신장이라는 목표아래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남북 당국간 회담에 나설 것"이라며 "특히 남북한 정상의 남북한 상호 방문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그는 "독일의 경우도 서독이 동독과 교섭과정에서도 주장한 바 있다"며 "우리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당당하게 주장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대북 인권문제의 강력 제기를 주장하고 있다.

"한미 동맹관계를 외교에 있어 중핵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균형된 전방위 외교를 펼치겠다" 는 그의 외교론은 한국정부가 종전에 취해온 외교정책기조의 고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11월 17일 열린 조선일보 토론회에서 말바꾸기를 시도했다. "대미자세, 정책조율에 대해 입장을 밝혀 달라"는 질의를 받고, 그는 "대미관계는 현재 바뀌고 있다. 양극체제에서처럼 많은 분야에서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던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통상에서는 대립적 관계, 지역 안보에서는 남북관계와 동북아 전체를 보는 시각에 한미간의 시각차가 존재한다. 한미 관계에서 공동 보조는 앞으로도 필요하나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군사대국화함에 따라 거기에 대응하는 자세도 달라져야한다"고 주장, 변화된 입장을 드러냈다.

이 회창후보 통일 정책과 관련한 발언이나 공약은 상대 후보와 비교해 볼때 절대적으로 적고, 대강의 틀을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는 종전 신한국당의 입장이나 정부 입장에 대한 고수의 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김 영삼정부의 임기 응변식 대북 정책을 그대로 계승할 뜻을 비추고 있다.

"통일문제를 논할 때 아주 상식적인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상대방이 대화와 화해의 태도로 나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며, 또 원하든 원치 않든 자체 붕괴같은 것이 일어나 그야말로 흡수통일의 방향으로 가야할 상황이 벌어지면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2) 김 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통일정책

통일문제에 관한 한 '전문가'를 자임하는 김 대중후보가 주장하는 통일정책은 최근 보수성이 짙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민회의는 최근 자민련과 공동으로 작성한 150대 공약 합의문에 그동안 국민회의가 공약으로 제시해온 3단계 연방 통일방안을 삭제하고,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문구로 대체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대신 자민련이 주장해 온 흡수 통일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서는 민주질서수호법으로의 대체를 줄곧 주장해왔으나, 이번 합의를 통해 국가보안법 존속의 입장으로 '우'선회했다.

김 대중후보는 자민련의 보수 입장에 밀려 공약에서 빠지게 된, 그러나 자신이 87년 대선 시기부터 줄곧 제기해온 이 3단계 연방안을 완전히 접지는 않고 있다. 11월 17일 열린 조선일보 토론회에서 김 대중후보는 이 회창후보가 "전혀 다른 체제인 북한과 연방하자는 것은 북한 당국이 주장하는 고려 연방제와 다름이 없다", 이인제후보가 "김일성의 고려연방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통일을 않겠다는 것이라는 생각…, 동질성이 없는 체제간 연방이 가능한가"라고 공세를 취하자, 자신의 연방제안은 "미국식 연방제안"이라며, 이 통일 방안을 다시 끄집어냈다.

"1국가 2지방 정부 형태이나 북한의 연방제와는 다릅니다. 미국도 하지 않습니까. 1단계 남북 연합 단계에서 북한이 개혁 개방하고, 시장 경제와 복수 정당을 도입하게 되면 그 다음에 연방제로 나가게 됩니다. 장차 일은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가 이토록 자신의 통일론에 대해 집착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다른 의미에서 사용했지만 "미국"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올림으로써, 그 해답의 실마리를 던져 주고 있다.

미국의 연착륙 정책, 그의 햇빛론 길게 나아가서는 그의 3단계 연방안이 모두 동일한 추구점을 갖는 '개혁 개방 유도의 대북정책'이라는 그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97년 10월 15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기자회견에서 "닉슨대통령의 데탕트 정책이 북한에도 적용될수 있을 것"이라며 "(본인의) 대북 정책이 김 영삼대통령의 강경노선보다는 클린턴 미정부의 정책과 근접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일부 미국관리들이 오는 12월 한국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바라고 있다"는 10월 13일자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사에 화답을 하듯 던진 그의 이 발언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손발을 맞출 적임자는 자신 뿐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김 대중후보의 대북정책이 왜 미국의 대북 정책과 일치하는가. 그가 기술한 '남북문제와 한반도 통일방향'이라는 글의 흐름을 따라잡아 가다 보면 맥이 잡힌다. 아래는 그 글의 요약문이다.

 

"통일문제에 관한 한 노태우정권은 7.7선언을 발표하고 남북 기본합의서를 만드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남북합의서 6개항을 실천해나가면 통일문제에 별 어려움이 없다. 김 영삼정부는 북한 붕괴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이와는 달리 북한을 연착륙시켜 개방을 유도하고 제 2의 중국을 만드려 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죽기 전에 정해 놓은 정책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하고 손을 잡는 것이었다. 이점에서 북한의 강온파는 일치한다. 그런데 남한과의 관계에서는 차이가 있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의 선거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남한의 비무장지대에서 사건을 일으켜 선거에 영향을 주었다. 핵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밀폐하지 않고 있다가 미국선거를 앞두고 밀폐하는데 동의했다. 이를 계기로 클린턴은 일본을 미국의 핵우산에 잡아놓을 수 있었고, 미국 선거에서도 큰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북한은 클린턴의 입장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에 미군이 있음으로써 앞으로 남한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침범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 포위정책을 쓰고 있으며 북한과 미국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보조를 맞추지 않고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면 일본은 곧바로 대북 국교정상화로 나갈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외부에서 경제협력을 얻을 수 없다. 우리가 이점을 인식하고 나가면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우리는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햇빛정책을 취해야한다. 한편으로는 철저한 안보 태세를 갖추고 동시에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해야한다. 71년 닉슨은 햇빛정책을 취해서 중국을 개방시켰다. 북한은 개방을 하면 자유경제를 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 돈벌이 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고 돈벌이 하는 사람은 중산층이 된다. 이 중산층은 자신들이 정당을 만들게 되고 선거에서 정권을 교체하게 될 것이며, 남한하고도 차이가 없는 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과 끊임없이 교류를 추진하면 된다. 통일은 서두르면 안된다. 공산주의는 세계적으로 패배했다. 남북한과 미, 일, 중, 러시아 등의 6자가 동북아협력체제를 만들어 상대방의 안전을 보장하고 협력해야 한다."

앞의 그의 주장은 대북 햇빛론과 3단계 연방안이 북한의 체제 변질을 유도하는 정책임을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다. 이 주장은 스티븐 보스워드(Steven Bosworth)신임 주한미대사가 97년 9월 24일 미 상원인준청문회에서 한 "이 상태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일반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을 외부사회에 끌어들이는 작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개혁을 유도, 활성화하는데 한미 정부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라는 발언과 일치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3단계 연방안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통일의 완결형으로 삼는 북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1민족 1국가 1정부를 통일의 완결형으로 삼고 있는데, 그는 위의 글을 통해 북한의 체제변화가 이 1민족 1국가 1정부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같이 한미 공조의 북한 개방 유도를 주장하는 한편, 미군의 한반도 주둔과 한미군사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안보면에서 미국과 협력을 주 조정을 종으로 해야 합니다. 대북 안보뿐만 아니라 동북아안정, 중국과 일본의 강대국화, 패권 경쟁을 막기위해서라도 미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통일이후에도 동북아시아의 군비경쟁을 에방하기위해 주한미군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봅니다."

92년 대선에서 김 대중후보의 민주당은 전국연합과 정책 연합을 하며, 주한 미군문제에 대해 단계적 철수를 주장했었다. 또 당시 민주당은 전국연합과의 정책연합 타결문에서 "외세로부터의 자주성과 자립성을 확보하며, 7천만 겨레의 염원인 조국통일을 실현한다"는 민주정부의 상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단계적 철수론이 통일이후까지 주한미군 주둔 필요로 급선회한 시기는 언제인가.

1994년 5월 12일 그는 미국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대한 충언'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미국은 주한 미군을 계속 주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간에 핵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시점에 열린 이 강연에서, 그는 방북 특사로 지미 카터 전대통령을 보내자고 최초로 주장, 훗날 이 강연은 그의 '선견지명'을 알리는 유명한 강연이 됐다. 이 강연에서 그는 카터의 방북 특사를 제안하고, 미국주도의 2+4방식의 동북아 안보협력체의 필요, 한미 방위 조약의 존속등을 역설했다. 그는 또 토론의 말미에서 1973년 일본에서의 납치사건, 1980년 사형선고등을 열거하며, 미국이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고 강조함을 잊지 않았다.

그는 또 97년 4월 미 국방대학원 초청 강연회에서 "주한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은 한국 통일이 성취된 이후에도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발언하는 등 한국에서 보다 미국에서 더 직설적인 화법을 사용하며 주한미군의 장기 주둔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타 후보들에 비해 눈에 띠게 남북기본 합의서에 유다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예의 주목해 볼 대목이다.

"우리가 남북 문제를 다룰 때 한가지 잊어 버리는 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남북합의서입니다. 정상회담을 서두를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남북 합의서 정신을 살리고 특사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정상회담을 할 수가 있다고 봅니다."

"남북합의서를 되살리는 그러한 남북 정상 회담을 하겠다. 이것을 미, 중, 일, 러 4자 합의의 동의를 통해 해내겠다."

"향후 대북 정책은 정치, 경제,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해가야한다. 정치 분야의 경우 남북기본합의서의 재가동, 경제분야는 정경 분리원칙에 입각한 남북 경협 강화, 인도적 분야에서는 민간차원의 대북식량지원 확대에 역점을 둘 것이다."

"북미관계의 일방적인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한서울과 평양의 연락사무소설치, 각 부문별 남북 공동위원회등의 설치 운영이 필요합니다. 그렇게되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될 것"

그의 남북 합의서 이행 강조는 남북 대화 재개 더 나아가서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연동돼 있다. 그의 남북 합의서 이행이라는 화두는 남북 정상회담을 향한 몸짓이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과 관련, 이렇게 주장한다.

"집권시 남북한 군축을 비롯해 경제 및 민간 교류 협력-인용자주, 그는 이 모든 내용이 기본 합의서에 담겨 있다고 주장해 왔다-등을 위해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다. 이에 앞서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를 만나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을 위한 한미일 공조체제를 공고히 다질 것이다."

남북 합의서를 '북남 공동의 행동 지침'이라 평가하는 북한을 향해 남북 정상회담과 연동된 남북 합의서의 이행을 제기한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북한의 연착륙을 주장하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계속 공개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가 이같은 제안을 한데 대해 북한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4자 회담에서 남한측 대표가 주장해온 "남북 합의서 이행을 회담의 골격으로 삼자"는 발언과 그의 주장은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 만약 그의 주장대로 남북 회담이 재개되거나,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몰고 올 한반도의 변화는 무엇인가. 남북대화의 재개는 4자회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상의 의문들은 그가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남북 관계와 관련하여 던져질 질문들이다.

 

(3) 이 인제 국민신당 후보의 통일 정책

적극적인 남북 경협 추진을 강조하는 이 인제 후보의 통일 정책에 대해 남한내 진보진영의 잡지는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이 인제 후보는 통일 문제와 관련해 비교적 진취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통일 문제와 관련해 이 후보는 정경 분리의 원칙에 따라 남북 경협을 적극 추진하고, 조기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형상으로 볼 때 그는 강력한 남북 대화와 교류 추진 의지를 지닌 교류 추진론자이다.

"대북 봉쇄 정책은 남북한 관계를 냉전시대로 되돌리고, 민족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집권한다면 즉시 무조건적으로 남북한 정상회담을 제안할 것이다"

"평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화해협력으로부터 통일에 이르는 2단계 전략을 추진하겠다. 이를 위해 조건없는 남북 대화를 추진하고, 점진적인 정경분리 원칙하에 남북한 경협과 교류를 확대하겠다"

"정경 분리 정책을 시도할 경우, 우선 경제적으로는 대북 대규모 식량지원과 농업 기술 이전의 추진, 두번째로는 간접 교역의 직교역화, 세 번째로는 북한 상품의 대폭적 수입, 네번째는 소비재 교역 확대및 경공업 설립이다. 기타 나진 선봉지구에 적극 참여, 북한 관광 자원 공동 개발, 한미일 공조를 통한 국제적 지원, 한국 물품의 북한에서의 조립생산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남북한 정치 협상은 경제 교류보다는 완만한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정치협상이 진행될 경우 그 의제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일 것이다. 남북한간의 정치적 화해와 군사불가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 특히 남북한 군비통제를 위한 신뢰 구축 우선주의를 제시할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 경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가.

이는 그가 "북한체제는 인민 폭동이나 군사쿠데타 형태로 5년내에 붕괴할 것"으로 확신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그는 "통일후에 있을 수 있는 경제혼란을 억제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은 통일을 대비한 경제교류를 확대하는 것" 이라고 역설하고 이 미래를 대비, 미리 투자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라며, "분단비용은 소모적인 비용이며, 통일이 빠를 수록 통일 비용의 투자 효과 역시 빠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통일방안은 분명하다. "남북이 동등한 관계라는 가설을 버리고 힘의 우세를 바탕으로 자신있고 적극적인 통일전략을 구사해나가" 결국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한국을 건설"할 것이며, "통일 한국의 경우는 통일후 일정기간 동안 북한지역을 한시적으로 별도 관리하면서 점진적으로 경제적 통합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 그는 11월 18일 열린 우리 민족 서로돕기 운동과 시사저널이 주관한 정책 간담회에서 참석, "정경분리 원칙아래 민간차원의 지원을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효과적인 대북지원을 위해 한미일 3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에너지개발 기구(KEDO)식 지원체계를 제안했다. 그에게 있어 그러한 식량지원은 대북 유인 전술을 의미한다.

"북한은 붕괴되어 가고 있는 체제이다. 굶주리는 북한에게 일정한 식량을 지원한다 할지라도 북한이 회생될 수는 없다. 우리가 그들에게 식량을 제공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북한을 회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주의적 목적을 띌 것이다"

 

북한체제 붕괴에 대한 그의 확신은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충고로 이어져, "미국이 연착륙정책을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식량 에너지 문제나 모든 산업의 정체 현상, 그리고 내부 권력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체제 유지가 힘들 때는 이 정책은 무의해진다. 이 체제가 반드시 망하게 되있다는데 주목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주한미군은 통일후 한국이 안정되는 일정 시기까지 주둔"을 주장, 안보 견해에 있어서는 미국과 일치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11월 12일 자유총연맹을 방문, "(본인은) 한 번도 사상적 순수성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 이 사상적 순수성은 "시대착오적인 북한 전체 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적, 북한 엘리트층은 적, 일반주민은 동포, 현실적으로 북한은 남한의 적"으로 보는 극우 반공사상을 의미한다.

 

(4)권 영길 국민승리21 후보의 통일정책

국민후보진영은 10대 핵심 정책 공약을 통해 3당후보와의 차별성을 갖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10대 정책 과제중 '한반도 평화체제 실현과 통일국가 기반구축'이라는 정책 과제에서 4개항의 통일 관련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1) 심각한 식량난에 처해있는 북녘 동포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이산가족 만남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민족 화해와 신뢰 보장

2)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남북간의 교류를 활성화하며, 민간차원의 평화적 통일논의와 운동을 적극 지원

3)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행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여, 통일국가의 기반을 구축

4) 남북 주도의 평화체제 실현, 외국군 주둔분담금 폐지, 기지 사용료 징수를 통해 민족 자주 평화통일 열망을 완수

위 사항중 타 후보와 차별성을 갖는 공약은 2), 4)항의 국가보안법 철폐, 외국군 주둔 분담금 폐지, 기지 사용료 징수항이라 할 수 있겠다. 1)항은 김 대중, 이 인제후보, 3)항은 김대중후보의 공약과 근본적인 차이가 없는 대동소이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민간통일운동 진영내에서 입장과 견해 차이로 논쟁이 되어 온 연방제 방안, 주한 미군 철수 문제등에 대해 국민후보측은 상당히 유연성을 갖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민후보진영은 통일국가의 상과 관련하여 '연방 형태'의 통일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통일국가의 건설 과정에 대해 권 영길후보는 "남북기본합의서의 원만한 이행을 기초로 통일을 위한 제반 준비를 내실있게 하기위해 (가칭)민족통일위원회를 두고자 합니다. 외교와 군사권이 단일화된 '연방형태'의 통일국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통일이념의 개발과 공유, 외교군사, 두 개 정부의 운영에대한 현실적인 지침이 필요합니다. 민족통일위원회는 이런 지침을 마련하며 통일방안에 대해 모든 민족성원의 의사를 수렴할 것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권 영길후보는 민족통일위원회의 구성방식에 대해 "남북 정부기관에서 운영하는 실행위원회와 민족성원의 의사를 결집하고 주요사안을 결정하는 남북민족위원회를 두며, 남북민족위원회는 국회를 중심으로 사회단체 대표 적정수가 참여하여 구성하게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는 주한 미군 주둔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는 반대하지만 당장 철수해야한다는 것은 아니고 구체적인 것은 한미간의 협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 "한미간의 군사동맹, 조중간의 군사동맹을 점차 완화하여 남북간 평화체제로 대체해 나가야 하며, 한반도에서 양국의 군사적 역할을 축소할 것입니다. 미군의 급격한 철수와 이로 인한 힘의 공백은 또다른 정치군사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그 축소는 단계적으로 진행하면 됩니다"라고 조심스러운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수립과 관련해서는 "남북 주도하에 평화논의를 진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이 논의에 참여하여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국민후보의 통일 공약들은 통일을 준비하는 통일 기반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이는 현재 민족민주운동내에 일반화돼 있는 대북인식과 상관관계가 있다. 그는 1??14일 한겨레 신문 초청 토론회에서 대북식량지원의 매년 10억달러의 지원을 역설하며 "지금 당장 북한주민이 아사직전이라는 점을 지적하겠다"며 "안보 측면에서도 식량지원은 필요하다. 식량문제가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맺는 말

 

남한 정치 지형이 보수 반공세력의 강화로 귀결되면 될수록 한반도의 통일 정세는 교착과 긴장, 대결의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이들 보수 세력은 '북한붕괴'라는 대북 인식을 중심에 세우고 남북 관계를 전망하고 있어, 북한과 대화의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그는 결과를 낳고 있다.

북한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인권문제나 개혁 개방을 정책노선으로 삼고 남북대화를 유도할 경우, 북한이 대화에 응하겠는가에 대한 고려가 이들에게는 전혀없다. 자유민주주의 혹은 시장경제에 의한 1국가 1정부 1체제를 통일의 완성형으로 삼는 이들의 통일방안은 민족 공영 공존을 표방하며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를 주장하는 북한의 고려민주 연방공화국안과 타협의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이질적인 제안으로, 남북의 객관적 현실을 놓고 볼 때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하는 의구를 낳게 된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보수 후보들이 한결같이 내거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 구호는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 북한의 연착륙 유도, 정부 주도의 통일논의를 통한 창구 단일화시도, 한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한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분단 합법화의 추구, 정권 재창출에 이용이라는 정략적 목적을 띤 구호가 아닌가하는 의심을 던져 주기 까지 한다. 더욱 큰 문제는 미국의 울타리에 갇혀 자율성, 독자성을 상실한 채, 탈민족성을 띠고 행해지는 이들의 한반도 정책이 가져올 결과는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 남한 소외, 고립을 불러올 뿐이다.

이번 대선은 분단의 장벽보다도 더 견고한 형옥에 갇혀 40년간을 살아온 양심수가 존재하는, 이를 안받침하는 국가보안법이 서슬퍼렇게 존재하는 남한사회의 현실을 조금도 바꾸어 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이 남기고 갈 교훈은 '정권교체' '3김청산' '세대교체'에 있지 않다.

남한의 자주화,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통일시대의 진운도 열린다는 평범한 진리의 확인에 있다.

<보론>남한 대통령 선거의 향배와 미국의 선거 개입

남한 신정권 창출은 남한 사회의 동인에 의해 움직이는 내적 요인외에도 외적 요인에 의해 결정지워진다. 역대 남한정권의 출몰 과정은 외적 요인인 미국의 동북아, 한반도 전략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이같은 관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의 입장은 역대 선거와 마찬가지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남한 정권 재창출과 맞물려 진행된 미국의 개입 궤적을 고찰하고, 현 대선에서의 개입 양태를 밝히는 작업은 남한 대선의 향배와 성격을 재단하는데 필수적인 검토 대상이다. 남한 정권의 창출 과정은 역사적으로 볼때 미국의 중남미권, 제3세계 정부에 대한 개입 과정들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80년대 초반까지 진행된 제 3세계내의 친미 반공 군사독재 정권 출현과 몰락,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저강도 정책에 의해 수립되는 친미 민간정권, 친미 보수대연합 추진에 있어 남한은 예외 지역이 아니었다. 본고는 이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분석은 후술의 과제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