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삼각갈등과 한(조선)반도 정세의 변화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서해 교전' 이후의 남·북·미 삼각관계

(2) 북(조선)이 미국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거부하고 있는 까닭

(3)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와 미국의 '페리 보고서' 발표 준비

(4) '현무' 시험 발사와 미국의 '미사일 족쇄'

(5)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햇볕정책'의 위기

(6) 맺음말을 대신하여 - 21세기 통일정세 전망

(1) '서해 교전' 이후의 남·북·미 삼각관계

북(조선)은 '서해 교전'이 일어났던 6월 15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인민군 군인들의 생명이 엄중히 위협당하였으며 우리측 함선 1척이 침몰하고 3척이 심히 파손되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북(조선)은 인명피해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북(조선)의 함선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남(한국) 국방부의 발표에서도 확인된 바있다. 그런데 6월 19일에 발표한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 대변인 성명은 남(한국)이 '서해 교전'에서 "10여척의 전투함선들이 불에 타거나 대파되였으며 숱한 송장들과 패잔병들을 걷어가지고 도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북(조선)의 발표내용을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다. 한때 전쟁위기감을 불러왔던 '서해 교전'과 관련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첫째, '서해 교전'에서 피해를 입은 북(조선)이 보복공격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서해 교전' 당시, 황해남도 해안에 배치된 해안포대와 지대함 미사일 기지들은 바로 코앞에서 함포를 쏘는 남(한국)의 초계함과 고속정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 해안포대와 미사일 기지들은 교전의 포성을 직접 귀로 들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미연합군은 '서해 교전'이 일어나자 북(조선)이 보복공격을 가해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무렵 한미연합군은 이미 준전시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북(조선)은 보복공격을 하지 않았고, '서해 교전' 다음날인 6월 16일부터 21일까지 남(한국)의 전투함선들이 줄이어 북(조선) 영해를 '침입'하고 있다는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 보도를 발표한 것이 대응의 전부였다. 그러자 한미연합사령부도 6월 28일 11시를 기해 준전시체제인 '워치콘 2'를 해제하고 평시체제인 '워치콘 3'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북(조선)이 보복공격을 하지 않고 넘어간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우리가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만일 북(조선)이 '서해 교전'에서 입은 피해 때문에 보복공격을 하면 그것은 미국 군부의 '저강도 분쟁' 계략에 말려들어가면서 한(조선)반도에서 국지전을 벌이는 것이 되므로 그냥 넘어간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둘째로, 북(조선)은 '서해 교전' 이후 정치공세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조선)의 정치공세는 두 갈래로 나오고 있다. 하나는 대남 정치공세이며, 다른 하나는 대미 정치공세다. 먼저 대남 정치공세를 살펴보자. 북(조선)은 『로동신문』을 통해 '서해 교전'이 있었던 6월 15일에 판문점에서 장성급 회담이 열렸던 사실을 전하면서, "이번 사건의 기본책임은 남조선 괴뢰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이 조선반도에서 긴장을 격화시키려는 미국의 보수강경세력들의 묵인 하에 감행되고 있는 것만큼 미국에도 피할 수 없는 응당한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6월 19일에 이르러 '서해 교전'을 보는 북(조선)의 시각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나왔다. 이날 발표된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 대변인 성명은 '서해 교전 사태'의 책임이 남(한국)과 미국에게 있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6월 22일에 진행된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 관한 『로동신문』의 보도에서도 '서해 교전 사태'에 대한 책임은 남(한국)에게 있다고 지적하였으며, "미국은 이번 사건을 구실로" 한(조선)반도에서 무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북(조선)이 '서해 교전 사태'의 책임을 남(한국)에게로 집중시키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의도는 결국 남(한국)이 그렇게 바랐던 남북 차관급 회담이 결렬되는 사건으로 나타났으며, 그동안 남(한국)이 '햇볕정책'의 총아라고 자랑해왔던 금강산 관광이 관광객 억류사건으로 문을 닫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위기로 몰아넣는 정치공세였다.

그 다음으로 '서해 교전' 이후 북(조선)이 펼치고 있는 대미 정치공세를 살펴보자. 북(조선)은 '서해 교전' 바로 뒤부터 해상분계선을 획정하기 위한 남·북·미 삼자 군사회담을 열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북(조선)은 1999년 2월부터 6월까지 열렸던 제4-7차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도 남·북·미 삼자 군사회담을 열자고 계속 요구해왔는데, '서해 교전' 뒤에는 해상분계선 획정문제를 삼자 군사회담에서 논의하자고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6월 21일 주창준 중국주재 북(조선)대사는 북방한계선 문제를 한(조선)반도의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6월 22일에 열린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 북(조선)은 해상분계선을 획정하자고 요구하였다. 이 요구는 다음날 베이징에서 열렸던 제5차 조·미 고위급 회담에서도 되풀이되었다. 비공개로 열렸던 이 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베이징의 외교소식통들에 의하면, 북(조선)은 조·미 사이에서 해상분계선 획정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의하였는데 미국은 그 문제가 자국과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조·미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들어간 찰스 카트먼 한(조선)반도 평화회담 담당대사는 6월 26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방한계선 문제를 논의했느냐고 기자가 묻자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다뤘다"고 대답함으로써 북방한계선 문제도 논의했음을 암시했다. 그런데 찰스 카트먼이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북(조선)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보도 제789호에서 미군이 관할하게 되어 있는 것은 서해 다섯 개 섬뿐이며, 해상분계선이나 한계선이 그어진 것은 없으므로 문제의 수역은 북(조선)의 영해라고 주장하면서, 해상분계선 획정문제를 조·미협상에서 다루려는 의도를 보였다. 7월 2일에 열렸던 제8차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서 북(조선)은 "미군측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북방한계선은 정전협정과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이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회담에 나갔던 미군의 한 관계자는 "서해상 선제공격 주체와 북방한계선 영유권 문제 등을 놓고 양측이 팽팽히 맞섰으나 서해상 긴장완화를 위한 추가적인 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서해 교전' 뒤로 남북관계는 얼어붙었다. 이 썰렁한 분위기와는 달리, 북(조선)은 판문점 장성급 회담과 조·미 고위급 회담을 통해서 미국에게 해상분계선 획정문제를 논의하자고 하면서 조·미 정치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북(조선)은 해상분계선 획정문제를 조·미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연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북(조선)에 대한 협상을 계속하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동안 남북관계는 교착상태에 머물러있고, 조·미관계는 갈등 속에서나마 협상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 미국 평화연구소(USIP)의 스캇 스나이더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스스로를 한국에 대해서는 우월한(above) 위치에 있다고 보는 반면, 미국에는 대등한(equivalent) 상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한국과 협상할 때와 미국과 할 때의 자세는 완전히 다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다음과 같다. 북(조선)은 껍데기만 남은 주한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지금의 판문점 장성급 회담을 발전시켜 남·북·미 삼자 군사회담으로 나아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이 삼자 군사회담에서 해상분계선 획정문제를 비롯한 평화체제 수립문제를 논의하려 하고 있다. 해상분계선 획정문제, 평화협정 체결문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평화체제 수립문제는 군사회담이 아니라 정치회담에서 다루어야 하므로 삼자 군사회담은 장차 삼자 정치회담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사자회담은 자연히 퇴출되고, 그 대신 동북아 안보를 협의하는 육자회담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2) 북(조선)이 미국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거부하고 있는 까닭

지난 6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조·미 고위급 회담은 두 가지 중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하나는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제안한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북(조선)의 반응을 알아보는 문제였다.

먼저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사건을 마무리한 문제를 살펴보자. 미국은 그 회담에서 금창리 지하시설은 제네바 합의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미국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북(조선)에게 전했다. 회담을 마친 뒤 서울에 갔을 때 열린 기자회견에서 찰스 카트먼은 금창리 지하시설 조사결과에 관하여 기자가 묻자 "대부분의 의혹은 제거됐다. 금창리 조사는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고 답변한 바있다. 베이징에서 조·미 고위급 회담이 열리던 날, 미 국무부 대변인 제임스 루빈은 정례 언설설명회에서 "미국의 현장조사단은 지하시설이 무슨 목적으로 건설됐는지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조사했다. 의혹이 아직 남아있기는 하지만, 조·미 기본합의를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릴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이러한 조사결과를 남(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미 연방의회에도 이미 알렸다. 이것은 지난해 8월 북(조선)이 '광명성 1호'를 쏘아올린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미국의 군부가 연방의회의 대북 강경파를 충동하면서 불거져나왔던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사건이 일단 막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이로써 평양과 워싱턴 사이의 정치협상을 가로막고 있는 거침새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조·미 정치협상은 진전속도를 낼만도 한데 지금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왜 그러한지, 그 까닭을 알아보자.

이미 알려진대로, 클린턴 행정부는 연방의회가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 퍼부었던 공세적 비판을 막아보려는 생각에서 지난해 11월 황급히 대북정책조정관이라는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 연방의회로부터 괜찮은 평을 받고 있는 윌리엄 페리를 앉혔다. 그러므로 윌리엄 페리의 주된 임무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대하고 있는 연방의회 강경파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가 페리를 앞세워 연방의회의 강경파를 설득하려면 대북정책에서 무엇인가 눈에 드는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클린턴 행정부가 노리고 있는 대북정책의 성과란 무엇일까? 그것은 북(조선)이 '포괄적 접근방안'을 받아들여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고 인공위성을 쏘아올리지 않겠다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클린턴은 지난 5월 25일부터 삼박사일동안 페리를 대통령 특사자격으로 평양에 보내면서 그에게 들려보낸 자신의 친서에서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 문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나 북(조선)은 클린턴 행정부의 이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조·미 정치협상이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사건을 넘긴 뒤에도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면서 갈등국면을 보이고 있는 까닭은 클린턴 행정부가 페리의 방북길에 제안했던 '포괄적 접근방안'을 북(조선)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윌리엄 페리는 6월 10일 워싱턴에서 한 연설에서 자신은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북(조선)의 반응을 더 알아보고나서 보고서를 내놓을 것이며, 그때는 올해 후반기가 되리라고 밝힌 바있다. 여기서 그가 북(조선)의 반응을 더 알아보겠다는 말은 강석주 외무상 제1부상을 특사로 워싱턴에 맞아들여 그를 통하여 북(조선)의 견해를 들어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페리의 예상은 빗나갔다. 6월이 지나도록 북(조선)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급해진 클린턴 행정부는 6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렸던 조·미 고위급 회담에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페리의 평양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워싱턴에 와줄 것을 거듭 요청하였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국의 특사 방문 요청에 대해 의도적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찰스 카트먼은 "북한은 아직까지도 페리 조정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제안한 내용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적당히 둘러댔지만, 우리는 북(조선)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한 거부의사의 표현이라고 풀이해야 한다. 윌리엄 페리는 김대중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미국은 북(조선)이 '포괄적 접근방안'을 받아들이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 성사 가능성을 50%로 점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성사 가능성이 50%라고 한다면, 그것은 비관적이다. 페리 자신도 워싱턴에 있는 메리디언 국제센터에서 한 연설에서 "북한으로부터 (포괄적 해법에 대해) 예스라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실토한 바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 니컬러스 에버스타트도 "솔직히 페리 활동이 성공할 것인지 무척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조선)이 클린턴 행정부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거부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을 생각해보야 한다.

첫째로, 북(조선)은 미국의 침략전쟁 의지가 유고전쟁에서 더욱 숨김없이 드러난 것을 보면서 미국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연방의회의 승인조차 받지 않고 첨단미사일로 유고를 선제공격했다. 유고전쟁은 미국이 지금까지 방위동맹체로 알려져왔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침략전쟁의 도구로 만들고, 유엔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저지른 침략전쟁이었다. 유고전쟁에서 커다란 자극을 받은 나라는 미국과 전면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조선)이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한 바있다. "북(조선)의 관리들은 사석에서 북(조선) 정부가 워싱턴의 의도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유고 폭격은 북(조선)이 협박과 강압과 침략으로 전세계를 정복하기로 결심한 또 하나의 히틀러를 상대하고 있다는 철저하고 뒤집을 수 없는 확신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북(조선)은 미국이 지금은 정치협상에 나오고 있지만 북(조선)의 군사력이 유고처럼 허술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언제든지 선제공격을 가해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북(조선)은 국제법이나 유엔 따위는 미국의 전쟁의도를 전혀 막지 못하는 오늘의 냉혹한 현실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조선)은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라는 미국의 요구를 자국에 대한 무장해제의 요구로 받아들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까닭에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게 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포괄적 접근방안'을 북(조선)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의 말대로, "북한은 결코 체제 생존책인 핵·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로, 미국이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는 조건으로 내놓은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조·미 외교정상화는 이미 제네바 합의에서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합의한 것이었다. 북(조선)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였지만,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했던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대북관계 정상화를 이행하지 않고 5년 세월을 보냈다. 이것은 명백한 약속어김이다. 제네바 합의를 어기고 있는 미국이 또다시 '포괄적 접근방안'이라는 명목으로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게 하고 새로운 합의를 하자고 제안한다면, 약속위반자의 말만 믿고 새로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어리석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북(조선)은 미국의 대북제안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 '포괄적 접근방안'을 놓고 북(조선)과 협상하려 한다면, 먼저 경제제재 조치를 풀고 북(조선)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하여야 한다는 것이 북(조선)의 생각이다.

클린턴 행정부의 '포괄적 접근방안'에 대해서 북(조선)은 행동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다. 미국의 '포괄적 접근방안' 제안에 대한 북(조선)의 대답은 인공위성 발사 준비로 나타났다.

(3)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와 미국의 '페리 보고서' 발표 준비

지난 6월 24일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스탠리 로스는 헤리티지 재단에서 「북(조선)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면서 "현재로서 북(조선)의 미사일 발사실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6월 29일 미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열린 국가미사일방위망(NMD) 법안 상정식에서 하원의장 데니스 해스터트는 북(조선)의 핵과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힘주어 말했다. 이처럼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에 대해서 워싱턴이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긴장감이 감도는 곳은 역시 국방부와 군부다.

미 국방부는 6월 28일 미사일 추적함 '옵서베이션 아일랜드호'를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 배치했다. 첨단 전자장비를 실은 1만7천t급의 이 함정은 지난해 8월 북(조선)의 '광명성 1호' 발사 전후에도 일본 앞바다에 배치된 바 있다. 미 국방부는 또한 첩보함 '코브라 제미니호'와 '유에스엔에스(USNS) 인빈써블호'도 파견했다. 미군의 미사일 추적함이 일본의 미 해군기지에 배치된 6월 28일, 미 국방정보국(DIA)은 보고서에서 북(조선)이 7월 안에 인공위성(저들은 '대포동 2호'라고 부른다)을 시험발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6월 30일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커트 캠벨은, 미국의 정보기관은 북(조선)이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미사일을 쏘아올리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을 탐지하였음을 공식 확인하였다. 미 행정부 관리가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를 '미사일 발사 준비'라고 표현하면서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캠벨은 "경고를 몇 차례 했는데도 북(조선)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도전적인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 진행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북(조선)은 인공위성을 발사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또한 자체의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인공위성 또는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그것이 미국의 북(조선)정책에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올 매우 심각한 행위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7월 6일 미 국방부 대변인 케네스 베이컨은 "우리는 이번주에도 지난 주와 똑같이 북한이 준비하고 있다는 조짐을 보여주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를 따르면, 미군 첩보위성이 탄두와 유도장치가 없는 추진체를 발사하는 북(조선)의 미사일 엔진 분사시험을 하는 것을 포착한 때는 지난 4월이었다. 일본의 엔에이취케이(NHK) 방송은 미군 소식통의 말을 빌려 보도하면서, 북(조선)이 지난 4월부터 '대포동 2호'로 보이는 탄도미사일 추진장치를 노출시킨 채 정상작동 여부를 되풀이해서 점검하고 있는 모습을 미군 첩보위성이 포착했다고 밝힌 바있다. 미군 첩보위성이 북(조선)의 미사일 엔진 분사시험을 포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인 지난 4월 29일과 30일 평양에서 제4차 조·미 고위급 회담이 열렸는데, 이 회담에서 미국은 북(조선)에게 사거리 3백km, 탄두무게 5백kg이 넘는 미사일을 시험발사하지 말고 인공위성도 쏘아올리지 말라고 요구하였다. 5월 하순 윌리엄 페리가 평양에 갔을 때도, 미국은 그를 통하여 북(조선)에게 미사일과 인공위성을 쏘아올리지 말라고 요구한 바있다. 미 국무부 대변인 제임스 폴리는 7월 12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다시 발사할 경우 매우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금 미국은 이처럼 북(조선)에게 미사일과 인공위성을 쏘아올리지 말라는 경고를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워싱턴이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한 무렵, 미국과 일본의 주요언론이 일제히 북(조선)이 인공위성 발사(저들은 '미사일 시험발사'라고 표현했다)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낸 때는 '서해 교전' 이틀 뒤인 6월 17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6월 17일자 워싱턴발 기사에서 클린턴 행정부 관리가 미국 정보기관의 보고내용을 인용하여 북(조선)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초기단계의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음을 보도했다. 같은 날 『워싱턴타임스』 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준비에 관한 일본 언론의 보도는 같은 날 엔에이취케이방송, 『산케이신붕』과 『지지통신』에서도 나왔고, 그보다 하루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붕』에서도 나왔다. 특히 『산케이신붕』은 북(조선)이 무수단리 발사장에서 터다지기, 발사장 확장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지난 5월에 미군 첩보위성이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월 23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조·미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은 첩보위성이 포착한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움직임을 지적하면서 이를 그만두라고 요구하는 한편,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면 경제제재 조치를 풀어주겠다고 제의하였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국의 요구와 제의를 거절하였다. 요구와 제의를 거절 당한 카트먼은 7월 중순에 제6차 고위급 회담을 열자고 제안했으나, 이에 대해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본국 정부와 상의한 뒤에 확답을 주겠다고 했다. 이처럼 북(조선)과 미국은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선 가운데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북(조선)은 경제제재를 풀어주겠으니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라는 미국의 제안과 요구를 받아들여 미사일 개발을 그만두고 인공위성 발사를 포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평양방문을 마치고 7월 3일 베이징에 나온 전 유엔 사무차장 아카시 야스시는 북(조선) 외무성 일본과장이 "우리는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다. 제2탄의 발사준비는 이미 끝났다"고 확언했다고 말했다.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7월 13일 발표한 담화에서 "위성발사는 자주적인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권리에 속하는 문제다. 우리의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를 가지고 그 누가 시비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여 제 할 바를 못하리라고 생각한다면 망상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신념과 결심에 따라 곧바로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현재 한·미 양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준비의 진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지만, 북(조선)이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고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까닭은 명백하다. 북(조선)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 까닭이 두 측면에서 설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정치적 자주권의 문제다. 미사일 개발과 인공위성 발사는 국가주권에 속한 문제로 외국의 간섭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군사적 자위권의 문제다. 북(조선)이 만일 미사일 개발을 그만둘 경우, '제2의 유고슬라비아'가 되어 미국의 공격 앞에 방비가 없이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연구소가 합동으로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조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탐욕스런 독수리(vulture)처럼 북(조선)을 공격할 것"임을 북(조선)은 잘 알고 있으므로,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전쟁위협에 대한 억지력이라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대로, '페리 보고서'가 다룰 문제는 북(조선)의 미사일 개발을 막는 문제다. '페리 보고서'는 정책권고안과 협상안으로 이루어질 것인데, 앞엣것만 공개되고 뒤엣것은 공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페리 조정관의 최종 보고서와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 실험 여부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의 한 관리는 "페리 보고서는 미사일 문제를 최우선순위에 둘 것이며, 포괄적인 방식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그 내용도 지금까지의 모든 협상들을 대체하는 것이 될 것이기에 보고서가 나오면 미사일 협상은 그 내용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있다. 여기서 우리는 '페리 보고서'와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가 차츰 갈등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이 갈등국면의 근본원인은 미국의 대북정책과 북(조선)의 대미전략의 모순관계, 다시 말해서 '포괄적 접근방안'과 '선군정치노선'의 모순관계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갈등국면이 장차 어떻게 수습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잘라 말하기에는 때가 아직 이르지만, 차츰 드러나고 있는 갈등국면에서 불리한 조건을 안고 있는 쪽은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보아야 할까?

그 까닭은 인공위성 발사는 '포괄적 접근방안'을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포괄적 접근방안'은 '선군정치노선'을 무력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포용정책'이 유일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정책적 대안이다. 미 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현재 미사일 발사실험 준비를 하고 있으나 만약 실제로 발사실험을 강행하면 한·미 양국이 대북 포용정책을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만일 유일한 정책대안인 '포용정책'이 파탄나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표류하게 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지금 초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래리 닉시는 『시사저널』 기자에게 "북한이 핵과 미사일 포기를 전제로 한 미국측 당근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의 강공책을 염두에 둔 '계획 비(Plan B)' 부분 작성과 관련해 페리 조정관이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가 말한 '계획 비'라는 것은 강경책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포용정책'이 파탄난 뒤에 궁여지책으로 나올 강경책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보겠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를 구실로 삼아 강경책으로 나아간다면 그 강경책은 인공위성 발사를 규제하는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무법적 조치이므로 명분부터 약하다. 또한 만일 미국이 대북 강경책으로 돌아선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추진해오고 있는 '포용정책'이 파탄났음을 자인하는 패배 선언이 될 것이다. 또한 그 강경책은 북(조선)의 미사일 및 인공위성 개발을 그만두게하지 못할 뿐아니라, 되레 미사일 개발을 자극하고, 제네바 합의 자체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북(조선)이 인공위성을 발사한 뒤에도 제네바 합의를 파기할 수 있는 군사적 대결책은 쓰지 못하고, 경제제재의 강경책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조선)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면, 안보·외교부문에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는 쪽은 클린턴 행정부다. 그래서 지금 클린턴 행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 결정자들은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라는 풀기 어려운 문제 앞에서 곤혹스러움을 느끼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미국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이처럼 시간의 압박을 받고 있음이 드러난 자리는 7월 2일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그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페리 보고서'를 7월 안에 서둘러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고, 미국은 이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내외언론은 보도했다. 이것은 미국 연방의회가 8월 6일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가므로, 적어도 그안에 공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의 요청이 있기 앞서 클린턴 행정부는 '페리 보고서'를 일찍 공개하기로 이미 결정한 바있다. '페리 보고서'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개하는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클린턴 행정부가 결정할 일이지, 남(한국)이 요청한다고 해서 공개일정이 바꿔질 일이 아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마치 남(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페리 보고서'를 일찍 공개하게 된 것처럼 겉모양새를 꾸몄을 뿐이다.

그렇다면 클린턴 행정부가 김대중 대통령의 조기공개 요청을 받아들이는 겉모양새를 꾸민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북(조선)이 클린턴 행정부가 내놓은 대북정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포괄적 접근방안'을 거부하면서 인공위성 발사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차츰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클린턴 행정부는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라는 정면도전 때문에 '페리 보고서'를 예정 시간표보다 일찍 서둘러 공개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궁색한 꼴을 숨기면서 초강대국답게 태연한 척해야 했다. 이러한 '체면 차리기'에 동원된 것이 남(한국)의 '페리 보고서' 조기공개 요청이었다. 남(한국)의 언론은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페리 보고서'가 예정보다 일찍 공개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페리의 권고안이 북한에 먹혀들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미국 행정부의 초조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만일 북(조선)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면, '페리 보고서'의 정책권고안은 미국 연방의회 강경파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휴지조각이 돼 버릴 것이며, 그 협상안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격으로, 일본은 북(조선)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면 신포 경수로 건설을 위한 차관 10억 달러를 내놓지 않겠고 말하고 있다. 일본 외상 고무라 마사히코는 6월 30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건설비 분담금 10억 달러 제공을 중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일본이 제네바 합의 이행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번에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조선)이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한 뒤에도 제네바 합의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확인한 것은 일본이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에 반발하여 경수로 차관 분담금을 내지 않으려 하고 그로써 제네바 합의가 깨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미리 쐐기를 박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문제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을 뿐아니라, 한·미·일 세 나라의 대북 공조체제를 뒤흔들고 있다. 일본의 언론도 "세 나라 사이의 결속이 시련에 직면한 상태"라고 지적한 바있다. 이것은 제네바 합의에 기초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파탄나고,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력이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4) '현무' 시험 발사와 미국의 '미사일 족쇄'

『뉴욕타임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조선)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그만두도록 설득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남(한국)이 북(조선) 전역을 사정권 안에 넣을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야 한다는 남(한국) 내부의 정치적 압력에 김대중 대통령이 반대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클린턴 행정부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지난 4월 10일 남(한국)이 서해의 섬에서 지대지 미사일 '현무'를 시험발사한 사건이다.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짧았지만 연료통의 일부만 채우고 쏘았으므로 미국은 실제 사거리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정보기관은 남(한국)이 '현무'의 시험발사가 미국이 던지는 의혹의 눈길을 피하기 위하여 사거리를 제한하였다고 하면서 물음표를 달고 있다. 남(한국) 정부당국도 자체의 미사일 개발사업계획에 관하여 미 국방부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문제와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 정책이 비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로, 미국이 남(한국)의 미사일 발사문제를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를 억제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북(조선)이 지난 해 8월 31일 '광명성 1호'를 쏘아올리기 스무날 전에도 미국은 남(한국)과 미사일 협상을 벌이면서 남(한국)이 사거리 3백km가 되는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허가하였다는 내용을 외부에 흘린 바있다.

둘째로, 우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7월 1일 워싱턴에서 남(한국)의 미사일 문제가 불거져나왔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미 국무부 대변인 제임스 폴리는 7월 1일 미국이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 『뉴욕타임스』 보도와 관련하여 "미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적절한 억지력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한국의 단거리 미사일 개발계획에 협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의 방위력 증강이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 목표와 조화를 이루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폴리의 말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 의지가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과 어긋나서는 안된다고 지적한 대목이다. 미국이 남(한국)의 단거리 미사일 개발을 도와주고 있다는 그의 말은 별로 의미 없는 소리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남(한국)은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지원 받아 사거리 1백80km가 넘지 않는 미사일을 보유함으로써 미국의 개발통제조치에 순응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남(한국)이 백두산까지 날아가는 사거리 5백km짜리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의도에 이른바 '미사일 족쇄'를 채워놓은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사거리 5백km는 고사하고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가 허용하는 범위인 사거리 3백km짜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도 꺼려하고 있다. 얼마전에 남(한국)이 사거리 3백km짜리 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요구하는 바람에 미국은 하는 수 없이 '원칙적으로' 개발을 허용한다고 해놓고서도, 개발단계의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철회하지 않음으로써 아직까지도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 족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남(한국)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회원국으로 들어가는 것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남(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심하게 억누르고 있는 까닭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도 깔려있다"고 한 지적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의 불신'이란 무엇일까? '미국의 불신'과 관련하여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측면은 두 가지다.

첫째 측면은, 남(한국)이 미사일 개발사업을 밀고나갈 경우 독자적인 기술수준을 높히게 되고 따라서 미국에 대한 미사일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미국은 자국산 미사일의 완제품, 부품, 기술을 팔아오면서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는 남(한국)의 시장을 잃어버릴 것이다. 미국은 남(한국)이라는 미사일 시장을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 미 국방부는 4월 29일 연방의회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역미사일방위체계(TMD)에 남(한국)이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먼저 지상저층방어체계(MEAGS)의 주력무기체계인 개량형 패트리엇(PAC-3) 25기를 배치해야 할 것임을 강조한 바있다. 미국은 북(조선)의 단거리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주한미군에 배치된 패트리엇 미사일이 방어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전역미사일방어체계에 남(한국)이 참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투종심이 매우 짧은 한(조선)반도에서는 그러한 미사일방어체계가 쓸모가 없다고 보고 있다.

둘째 측면은, 미국은 남(한국)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이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을 흔들게 된다고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남(한국)이 미국의 '미사일 족쇄'에서 풀려나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경우, 그것은 장차 남(한국)을 핵무기 개발로 유혹하는 동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은 위태로와질 것이다. 기술 측면에서 보자면,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흔히 핵탄두 개발과 병행하여 이루어지게 된다. 미국은 자국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에서 벗어난 나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동맹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남(한국)의 독자적인 중거리 미사일 개발은 곧 한·미 동맹체제 한복판에 '갈등의 골'을 파놓는 사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남(한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고 하는 의지는 남(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여 북(조선)을 위협하게 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한·미 동맹체제에 갈등을 몰고올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 연방의회 관계자는 "한국의 미사일 개발추진은 '커다란 실망'을 안겨준다. 자칫하면 한·미 동맹관계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므로 청와대 관계자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막는 군사전략적 대응수단을 보유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는 극적 효과가 있다"고 자찬한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로 들린다. 왜냐하면, 남(한국)은 자기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문제를 대북문제로만 보려하고, 대미문제로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북문제와 대미문제 가운데서 결정적인 것은 앞엣것이 아니라 뒤엣것이다.

한·미 두 나라가 '현무'의 시험발사를 두고 물밑 신경전을 벌인 뒤인 지난 7월 2일 한·미 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 회담에서 클린턴은 남(한국)이 독자적으로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데 대하여 우려를 표명했다. 사거리 3백km짜리 미사일을 개발하겠다고 하는 "한국측 태도를 못마땅해하던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남(한국)은 북(조선)이 제2차 인공위성을 발사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이번 기회에 미국의 '미사일 족쇄'를 얼마큼 풀고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내려 했다. 남(한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최소한 사거리 300km 미사일은 확보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뜻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정상회담에서 "양쪽 실무 대표들이 이 문제를 논의하자"고 말함으로써 김대중 대통령의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미국이 베이징에서 북(조선)을 접촉한 결과 북(조선)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조짐을 보였다고 남(한국)에게 알려준 것도 남(한국)이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 준비에 자극을 받아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고 하는 명분을 제거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발언이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은 남(한국)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문제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미사일기술통제체제가 허용하는 사거리 3백km가 넘는 미사일은 개발해서는 안되며, 그 허용수준의 미사일을 개발하는 경우에도 미국의 철저한 감시를 받아야 개발을 허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4년에 남(한국)은 이제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하겠으니 미국의 '미사일 족쇄'를 풀어달라고 요구하였고, 미국은 남(한국)이 가입하더라도 '미사일 족쇄'는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미 국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미 양국의 우선적 정책 목표는 북한을 설득, 미사일 계획을 중지토록 하는 것이지 역확산(counter proliferation)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면서 남(한국)의 중거리 미사일 개발을 반대하였다. 지금 남(한국)과 북(조선)을 대상으로 미사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은 남(한국)의 '미사일 족쇄'를 풀어주는 것이 미국의 대북 미사일 협상력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으로 보고 남(한국)의 '미사일 족쇄'를 그대로 유지하려 하고 있다.

(5)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햇볕정책'의 위기

김대중 대통령은 6월 23일 『워싱턴포스트』와 회견하면서 "냉전이 아니라 긴장완화(데땅뜨)로 소련을 무너뜨렸듯이 공산주의를 다루는 데는 대결정책보다는 포용정책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포용정책'은 '햇볕정책'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정책의 전략목표는 양국론(兩國論)에 바탕을 둔 국가연합(또는 남북연합, 공화국연합)을 한(조선)반도에 세우자는 것으로서, 오래전 서독의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을 모방한 것이다. 그의 '동방정책'은 동서독의 긴장을 완화하자고 하면서 통행·통신·통상을 적극 추진하여 마침내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였고, 그로써 독일판 국가연합을 수립하는 데 성공한 바있다. '동방정책'과 마찬가지로, '햇볕정책'의 당면과제도 남북 사이의 통행·통신·통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남(한국) 정부당국이 대북 투자사업, 금강산 관광개발사업, 남북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까닭이 있다. 그동안 대북 투자사업과 금강산 관광개발사업으로 통상부문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는데, 통행·통신부문은 완전히 막혀있는 실정이다. 지금 남(한국) 정부당국이 남북 이산가족 상봉사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그 사업이 통행과 통신을 실현할 가장 안전하고 적절한 초기단계사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한국) 정부당국은 북(조선)에 비료를 보내주면서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남북 차관급 회담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북(조선)은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북(조선)이 이번에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자는 남(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차관급 회담에 나왔던 것은 단순히 비료를 지원 받자는 경제논리에 이끌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것이 남북관계개선을 조·미관계개선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미국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남(한국)의 한 전문가의 말대로, 북(조선)은 남(한국) 정부를 "비료를 지원하는 민간기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북(조선)은 애초에 남북 차관급 회담을 조·미 정치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일종의 '보조장치'로 삼으려 했던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북(조선)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서해 교전 사태'가 일어나자, 남북 차관급 회담을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국) 정부당국은 북(조선)이 비료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경제논리만을 생각하면서, 비록 '서해 교전 사태'가 있었기는 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남북 차관급 회담이 제대로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차관급 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남(한국) 정부당국은, 남북이 비공개 사전 접촉에서 상당히 논의를 해두었기 때문에 회담이 열리면 올해 가을쯤 이산가족 상봉사업을 성사시키자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막상 회담이 열린 뒤에 난항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북(조선)이 "통크게 실천적 방안을 준비하겠다"고 했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볼 때, 남(한국)이 이번 차관급 회담에서 "안일한 인식과 대책"만을 가지고 나갔으므로 북(조선)에게 "시종일관 끌려다녔다"고 남(한국) 언론이 꼬집은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남(한국) 정부당국은 7월 3일의 수석대표 접촉에서 '비료수송 계획서'까지 북(조선) 대표에게 보여주며 회담을 7월 10일에 다시 열자고 '간청'했으나 북(조선)은 이를 거부했다. 이처럼 남(한국) 정부당국은 "햇볕정책의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걸'도 통하지 않고 '간청'도 소용이 없이, 남북 차관급 회담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남(한국)이 알지 못한 것은 북(조선)이 오로지 비료를 지원받기 위해서 남북 차관급 회담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비료 20만t을 가지고 북(조선)을 움직여보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산이 분명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6월 23일 김한길 수석의 발언을 통해 '포용정책'의 성공을 믿고 있다고 장담했지만, 그러한 말잔치와는 달리 남(한국) 정부 당국은 자꾸만 허물어져가는 마지막 선택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엔에이취케이 방송은 1999년 6월 23일 북(조선)이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 '서해 교전 사태'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언급함으로써 1년2개월 만에 재개된 남북대화가 하룻만에 암초에 걸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붕』 6월 23일자 기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제까지 햇볕정책 현황을 설명할 때 금강산 사업의 진전을 예로 들어온만큼 이대로 중단될 경우 정권이 타격을 받을 것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니컬러스 에버스타트는 "오히려 현대사업은 햇볕정책의 성공이 아니라 북한의 인질이 되고 있고 한국 정부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남(한국)의 언론은 "햇볕론을 포기할 경우 사실상 '대안'이 전혀 없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 이상의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최후의 선택인 '햇볕정책'은 과연 존속할 수 있을까?

(6) 맺음말을 대신하여 - 21세기 통일정세 전망

'포괄적 접근방안'을 내놓은 클린턴은 지금 퇴진을 1년 반이나 남겨놓았는데도 '권력누수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언론이 지적한대로, '레임덕(lame duck)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대결책이건 협상책이건 간에 대북협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당사자는 '권력누수현상'에 밀리고 있는 클린턴 행정부가 아니라 차기 행정부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자리잡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내다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전망하는 데는 몇 가지 판단근거가 요구된다.

첫째로, 우리는 미국의 경제호황 지속과 연방정부의 재정흑자 확대가 대북정책에 미치는 간접적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오랫동안 계속되는 경제호황에 힘입어 연방정부의 재정흑자가 당초 예상보다 2백억달러 이상 늘어난 9백8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대로 잘 나갈 경우 앞으로 15년동안 재정흑자 규모는 모두 5조9천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흑자 가운데 얼마큼은 사회보장제도를 보완하는 데 돌려질 것이며, 따라서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경제부문과 사회보장부문은 차기 행정부가 들어선 2001년 뒤에도 안정세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2001년 2월에 출범할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와 비교하여 특출한 업적을 과시해야 할 부문은 외교통상부문이 될 것이다. 특히 외교부문 가운데서도 특히 대북정책이 중국정책과 더불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00년 11월 대선에서 '외교 대통령'이 선출되기를 바라고 있다.

둘째로, 우리는 차기 행정부가 2003년이라는 '운명의 시간'을 지나가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2003년은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에 제네바 합의를 채택하면서 북(조선)에게 신포 경수로를 세워주고,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외교 정상화를 실행하겠다고 약속한 시한이다. 그런데 신포 경수로를 2003년까지 세워주겠다는 시한약속은 일찌감치 깨졌고,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외교 정상화라는 약속도 이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2003년은 북(조선)이 차기 행정부에게 미국이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따지면서,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궁지에 몰아넣는 '운명의 시간'이 될 것이다. 차기 행정부는 미국에게 매우 불리한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차기 행정부는 대결책과 협상책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될까? 만일 텍사스 주지사 조지 부시가 2000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여 집권할 경우, 차기 행정부는 협상책을 내버리고 대결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보아야 한다. 텍사스 주지사 부시의 대북정책 참모로 일하고 있는 전 국방차관보 리처드 아미티지는 "부시는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선에 출마하게 된 조지 부시의 참모진 인맥은 그의 아버지인 전 대통령 조지 부시의 인맥을 이어받고 있다. 부시 행정부 때 국방장관을 지낸 딕 체니, 국방차관을 지낸 폴 월포위츠가 눈에 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 가운데 북(조선)에 대한 군사대치상태를 완화하면서 대북 협상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러한 경험을 가진 '협상인맥'이 지금 차기 대선에 나선 부시 진영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연방의회의 다수당인 공화당이 앞으로 대선에서 집권할 경우, 지금처럼 행정부와 연방의회가 대북정책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 행정부와 연방의회가 서로 돕는 관계로 들어가는 경우, 미국의 대북정책은 군사대결이 아니라 정치협상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내다보는 까닭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알려진대로, 미국의 한(조선)반도에 대한 군사전략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대결주의 에 바탕을 둔 대치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북(조선)이 허점을 보일 경우 불의의 선제공격을 가한다는 전쟁전략이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대치전략을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전쟁전략도 추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보아야 할까?

탈냉전 뒤로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의 동인을 살펴보면, 군수산업자본과 석유산업자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전쟁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걸프전의 경우, 텍사스주 석유산업자본의 지지를 얻어 집권한 조지 부시는 석유산업자본의 요구와 캘리포니아주 및 미국 북동부지역의 군수산업자본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걸프지역의 유전지배권과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라크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한편, 남아도는 미군 무기를 처분하고 첨단무기의 성능을 과시하는 전쟁을 일으켰다. 클린턴 행정부가 일으킨 유고전의 경우, 카스피해 유전개발에 도전한 러시아를 밀어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적 지배권을 동유럽으로 확장하고 자국의 군수산업자본에게 이윤을 안겨주기 위한 전쟁이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석유산업자본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석유소비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중국의 보하이만(발해만) 유전개발사업과 북(조선)의 유전개발사업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 지역의 유전개발권을 페르시아만과 발칸반도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무력으로 탈취·장악할 수 없다. 또한 미국은 페르시아만과 발칸반도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한(조선)반도에서 미군의 남아도는 무기를 처분하고 첨단무기의 성능을 과시하는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실제로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1993년 이후 미국의 군수산업자본과 결탁한 미국 군부세력이 몰고온 전쟁위기를 몇 차례나 아슬아슬하게 비켜가야 했는데, 그런 위기를 맞았는데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북(조선)과 중국이 강력한 군사력으로 미국과 맞서있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미국 본토를 사정권 안에 둔 핵탄두 장착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공중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전국토의 지하요새화를 실현하였고, 반미항전의식과 자폭정신으로 무장한 '군민일치'의 방대한 무장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다. 중국은 핵폭탄과 수소폭탄은 말할 것도 없고 중성자탄까지 이미 개발하였다고 선언한 군사강국이다.

미국의 석유산업자본이 북(조선)의 유전개발사업에 참여할 때, 차기 행정부는 대북 경제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하는 제네바 합의의 약속을 이행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해결은 대결주의 정책을 이어가려는 대치전략에만 기대어서는 되지 않는다. 유전개발을 중심으로 한 조·미 경제협력은 두 나라 사이에서 군사적 대치상태를 누그러뜨리면서 정치협상을 진전시키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군사대결보다는 정치협상에 더 무게를 실으면서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의 정세변화를 이끌어내려 할 것임을 내다볼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대북 정치협상에 무게를 싣는다고 했을 때, 그 정치협상은 미국의 요구를 따라 일방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북(조선)은 대미 정치협상에서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이뤄내려고 온힘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중 정치협상과정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조선)과 중국이 대미 정치협상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요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통일문제다. 중국은 올해 12월 마카오를 되찾은 뒤에 2000년부터는 대만을 통합하기 위한 '일국양제' 통일방안을 힘써 추진할 것이며, 북(조선)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제네바 합의에 묶어놓고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설방안'을 이루기 위해 대미 정치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북(조선)이 펼칠 통일을 위한 정치공세를 집중적으로 받게 될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 북(조선)에서 유전을 합작합영으로 개발하려는 석유산업자본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할 것이다. 석유산업자본의 이익을 대변했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대해서는 전쟁을 벌이면서도, 북(조선)과 역사상 처음으로 고위급 회담을 열고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방안을 내놓으면서 대북 정치협상에 나섰던 경험은 차기 행정부에서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정전협정에 바탕을 둔 군사적 대치상태는 지난 50년 동안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극도의 긴장상태에 묶어두면서 파상적으로 전쟁위기를 몰고왔다. 그러나 그러한 대치상태는 영구히 지속될 수 없으며, 앞으로 몇 해 안에 평화공존상태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전망하는 까닭은 지금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과 미국이 평화공존이라는 공동의 당면목표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대로,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조·미 평화협정을 맺고 조·미 평화공존으로 나가자는 것이며, 미국은 북(조선)이 '포괄적 접근방안'을 받아들이면 경제제재 조치가 풀리고 조·미 국교가 수립되어 평화공존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북(조선)과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평화공존'이라는 당면목표는 같지만, 평화공존을 통하여 추구하는 전략목표가 맞부딪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보아넘겨서는 안된다. 미국은 북(조선)과 평화공존을 이루면서 남북관계를 양국론(兩國論)에 바탕을 둔 국가연합으로 묶어놓는 한편, 미국의 동북아 지배권 안으로 북(조선)을 끌어들이려는 전략목표로 나아가려하고 있다. 이와 달리 북(조선)은 조·미 정치협상을 거쳐 평화공존체제가 이루어지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하여 '명예롭게' 물러나고 한(조선)반도는 미국과 국교를 맺은 영세중립국이 되는 한편, 일국론(一國論)에 바탕을 둔 연방국가로 통일하려는 전략목표로 나아가려하고 있다. 이처럼 맞부딪치는 두 개의 전략목표를 놓고 북(조선)과 미국은 지금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페리 보고서' 발표 준비와 인공위성 발사 준비라는 상충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북(조선)과 미국이 상충되는 전략목표를 추구하면서 벌이고 있는 전초전이다. (1999년 7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