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진보정당과 대중조직의 투쟁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잠재동력을 표출, 발동하는 생존권사수투쟁
3. 결집계기, 전화공간, 촉진요인
4.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투쟁에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
    4-1) 통일전선의 강령에 대한 정치적 합의
    4-2) 민족통일전선과 민족자본가, 지역통일전선과 중소자본가
5. 전선형성, 동력배합, 투쟁통합
    5-1) 통일전선 형성과 산별노조 건설
    5-2) 통일전선 형성과 진보정당 기층조직
    5-3) 통일전선의 동력배합방식과 투쟁통합방식
    5-4) 노동계급의 생산수단 점거와 진보정당의 집권투쟁

6.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지금 남(한국)사회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이 산발적으로 조직, 전개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두 지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돋보인다. 포항에서 일어난 건설노동자들의 투쟁과 서울에서 일어난 고속철도 여승무원들의 투쟁이다. 그들의 투쟁이 돋보이는 까닭은, 그들의 투쟁에서 하나의 질적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의 투쟁에서 일어난 질적 변화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포항 건설노동자의 진지한 목소리에서 질적 변화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독재정권시절에 학생들이 거리에 나가 열심히 데모할 때 우리는 묵묵히 일했다. 그런 거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거리에 나와 데모를 하고 있다.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을 찍었고 탄핵 때도 일을 하루 쉬며 광화문에 올라와 집회에 참석했었는데, 지금은 손가락을 자르고 내 발등을 찍어버리고 싶다."

언론이 전한 그의 말을 되새겨보면, 남(한국)의 노동계급이 지난 20년 동안 겪어온 정치경험의 축약도를 한 눈에 보는 듯하고, 노무현정권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어떠한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군사독재정권에게 분노할 줄 몰랐던 노동자가 참여민주주의를 외치는 노무현정권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그리하여 결국 투쟁대오에 들어선 것이야말로 오늘 생계불안과 민생파탄을 겪는 남(한국) 노동계급의 일반적 현실이라는 사실은 더 논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명백하다.

주목하는 것은, 속칭 '노가다'라고 불리는 건설노동자들이 생존권사수투쟁에 나서면서 계급의식을 획득하였다는 점이다. 포항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이 말해주는 것은, 생계불안과 민생파탄을 겪는 노동계급의 생존권사수투쟁에서 계급의식의 획득이라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고속철도 여성승무원들의 투쟁 역시 다르지 않다. 노동계급의 투쟁대오에 들어서기 전에는 한껏 멋을 부리며 그 어떤 투쟁과도 인연이 없었을 젊은 여성들이 고속철도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노동계급의 현실에 눈을 떴을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끈질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계급의식의 획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회변혁의 과학은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일어나는 질적 변화, 곧 계급의식의 획득을 중시한다. 중시할 뿐 아니라, 계급의식의 획득이라는 질적 변화가 민주주의혁명의 발전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탐구하고 해명한다.

사회변혁의 과학이 계급의식의 획득에 관하여 해명한 공식들을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지만, 계급의식의 획득이라는 질적 변화는 노동계급의 투쟁력이 양적으로 축적되어야 일어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물의 질적 변화는 허공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적 축적을 전제로 일어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력은 한 두 차례 투쟁을 벌이고 나면 이내 소진되는 것이 아니다. 투쟁의 주객관적 조건에 따라 축적속도가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지만, 그들의 투쟁력은 그들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그들의 투쟁이 승리하였건 실패하였건 간에 끊임없이 축적된다. 이것을 투쟁동력의 양적 축적이라 한다.

그런데 투쟁동력의 양적 축적을 거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이 반드시 각계각층 대중조직을 통해서 투쟁동력을 축적한다는 점이다. 대중조직을 통해서 투쟁동력을 축적한다는 점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은 다른 사회적 집단의 투쟁과 구별된다.

만일 대중조직이라는 그들 자신의 조직이 없다면, 그들의 투쟁력은 동력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투쟁이 끝나는 것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이 반드시 대중조직의 투쟁으로 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조직 속에 투쟁동력을 축적해가고, 그들 자신의 투쟁에 의해서 조직력을 강화해간다.

이 글에서 논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축적된 동력을 표출, 전화, 발동하는 조건과 방식, 그리고 그들이 여러 갈래로 폭발시키는 동력을 배합하기 위한 전선형성에 관한 문제이다.

2. 잠재동력을 표출, 발동하는 생존권사수투쟁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없지만, 세계사가 경험하였던 모든 사회변혁의 동력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 뜻에서, 사회변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자신의 운동이며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의 논제는, 사회변혁의 주체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라는 불변의 명제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사회변혁의 동력을 공급하면서 사회변혁운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가 하는 데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 잠재된 무궁무진한 동력을 어떻게 사회변혁의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키는가 하는 문제를 논하려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그 문제야말로 사회변혁의 과학이 연구를 거듭해오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21세기 민주주의혁명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키는 문제에 대한 이론적 해명과 실천적 해결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리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킬 조건과 방식을 찾아내는 것은, 사회변혁을 실천하는 활동가들이 수행하는 정치과업으로, 사회변혁의 과학을 연구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해명하는 연구과제로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킬 조건과 방도를 찾아내는 과제에 대해서는 더 깊은 연구가 요구되거니와, 시론수준에 있는 이 글에서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이론적 해명에 그칠 수밖에 없다.

2-1)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은 언제나 잠재적 형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한다. 잠재동력을 영구히 잠재되어 있는 동력으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이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하는 조건은 제국주의세력과 국내지배계급이 그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현실 속에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제국주의세력과 국내지배계급으로부터 지배와 착취를 당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이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사회현상이다.

이 글에서 중시하는 것은, 그러한 지속적이고, 보편적이며, 필연적인 사회현상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절실하게 요구하고, 절박하게 제기하는 현실문제에 의해서, 오직 그러한 현실문제를 통해서 그들의 잠재동력이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한다는 사실이다.

제국주의세계체제와 그것에 예속된 개별적 자본주의체제로부터 이중적으로 지배와 착취를 당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절실하게 요구하고, 절박하게 제기하는 현실문제란 자기 생존에 직결된 문제 곧 자신과 자기 가족의 생계를 보장하고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문제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실질임금 감소와 실업,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차별, 가계부채와 개인파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겪는 궁핍과 빈곤의 직접적 원인으로 된다. 지난 시기에는 무산계급의 궁핍과 빈곤이라는 말을 썼지만, 지금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계불안과 민생파탄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절실하게 요구하고, 절박하게 제기하는 문제는 자기의 삶을 조여오는 생계불안과 민생파탄의 올가미를 벗어 던지고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문제이다. 그것보다 더 절실한 요구가 없고, 그것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없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계불안과 생존파탄이, 조성된 사회경제적 조건을 원인으로 하여 일어나는 현상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잠재동력을 표출, 발동하는 까닭은 생계불안과 민생파탄을 해결하려는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키는 문제를 논하는 출발점은, 생계불안과 민생파탄을 해결하기 위하여 잠재동력을 표출, 발동하는 당면현실 속에 있다.

2-2)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계불안과 민생파탄으로 고통을 겪을 때, 그들은 저항권을 행사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유일한 선택권 곧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을 생존권사수투쟁이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이란 누가 배후에서 조종하여 일어나는 싸움이 아니라, 그들을 얽어맨 사회계급관계를 원인으로 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싸움이다. 생존권사수투쟁은 사회계급관계를 원인으로 하여 일어나므로 당연히 계급투쟁의 범주에 속하지만, 계급적 요구가 전면적으로 제기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하는 낮은 단계의 계급투쟁으로 된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 유럽연합, 일본에 비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이 훨씬 치열하게 조직, 전개되고 있는데,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남(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이 가장 치열하게 조직,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자기의 계급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하지 못하지만, 그리고 비록 부분적, 산발적이지만,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잠재동력을 매우 치열하게 표출, 발동하고 있음은 주목하고 중시해야 할 문제이다.

잠재동력이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되는 경우, 그 동력은 대중항쟁의 폭발적 동력으로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서 나간 연재물에서 논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재론하지 않는다.

3. 결집계기, 전화공간, 촉진요인

잠재동력을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키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자신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말은 옳은 말이지만, 너무나 일반적인 명제를 거론하는 것이어서 그러한 일반적 명제에 의존해서는 이 글의 논리전개를 심화시키기 힘들다. 좀더 분석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키려면,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일정한 방향으로 모아내는 결집계기가 있어야 한다.

현 시기 남(한국)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사회계급관계를 생각할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에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일정한 방향으로 모아내는 유력한 결집계기는 두말할 나위 없이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조직, 전개하는 다양한 생존권사수투쟁 가운데서도 특히 남(한국)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벌이는 생존권사수투쟁이 가장 치열한 까닭은,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일정한 방향으로 모아내는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이라는 두 개의 결집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밀고 나가는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에서는 그들의 잠재동력이 아직 전체적, 집중적으로 발동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두 개의 투쟁을 잠재동력을 부분적, 산발적으로 발동하는 낮은 단계의 계급투쟁 곧 생존권사수투쟁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잠재동력이 현실동력으로 바뀌는 역동적인 전화과정을 알지 못하는 일면적 견해이다. 그 두 개의 투쟁은 생존권사수투쟁에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현실동력으로 바꾸는 역동적인 전화과정에 들어있는 것이다.

생존권사수투쟁에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민주주의혁명의 발전방향으로 모아낼 수 있는 결집계기라는 점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그 두 개의 당면투쟁에서 민주주의혁명의 계급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할 수 있고, 잠재동력을 현실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혁명을 전진시키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이 차지하는 계기적 의의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이라는 두 개의 결집계기가 조성된 것은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이 생겨났음을 뜻한다. 오늘 진보정당과 대중조직들에게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투쟁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결집계기가 조성되지 않는 조건에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를테면, 지난 수 십 년 동안 남(한국)에서 민주주의혁명에 힘썼던 선배활동가들은 통일전선을 형성하려고 분투하였으나 공동투쟁을 조직하거나 또는 연대조직을 세우는 통일전선 형성의 초기단계를 넘지 못한 채 그 과업을 미완성으로 남기고 말았다. 그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는데, 여기서 지적할 수 있는 원인은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 같은 결집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결집계기는 일상적으로 조성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 때나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결집계기가 조성된 것은 민주주의혁명을 전진시키는 여러 필수조건들 가운데 한 가지 필수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민주주의혁명을 전진시키려면 또 다른 필수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전화공간의 형성이라 한다. 생존권사수투쟁에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발전방향으로 결집시켜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으로 바꾸는 전화공간이 반드시 조성되어야 한다. 그 전화공간을 통일전선(united front)이라 한다.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이라는 결집계기가 조성되었어도, 잠재동력을 현실동력으로 바꾸는 전화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두 개의 투쟁은 민주주의혁명의 계기적 의의를 가질 수 없고 여느 대중투쟁과 마찬가지로 한시적 의의만 갖게 된다.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연합한 전화공간 곧 통일전선에서 조직, 전개되어야 대중항쟁으로 폭발할 수 있다.

민주주의혁명의 수행과정에서 통일전선이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는 까닭은, 그것이 생존권사수투쟁에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발전방향으로 결집시켜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으로 바꾸는 전화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통일전선이 형성되지 않은 조건에서 민주주의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기대이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에서 통일전선이 가지는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결집계기와 전화공간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민주주의혁명의 필수조건이 모두 충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결집계기, 전화공간과 더불어 또 하나 요구되는 필수조건은 촉진요인이다. 여기서 말하는 촉진요인이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키는 촉진요인이며, 부분적, 산발적으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을 전체적, 집중적으로 폭발시키는 촉진요인이며, 저항권을 행사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민주주의혁명의 계급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제기하는 높은 단계의 계급투쟁을 불러일으키는 촉진요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촉진요인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이다.

생존권사수투쟁에서 표출, 발동하는 잠재동력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이 주도적, 주동적으로 일으키는 촉진작용에 의해서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으로 전화, 발동되어야 전체적, 집중적으로 폭발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이 촉진하지 않으면, 잠재동력은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으로 전화, 발동되지 않는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이란 민주노조나 민주농민회 같은 각계각층 대중조직들에 망라된 대중조직역량 일반이 아니다. 수백만 명에 이르는 대중조직역량 가운데서도 선도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그 역량을 선진역량이라 부른다. 각계각층 대중조직에 망라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들 가운데서 진보정당의 열성당원과 대중조직 활동가들이 선진역량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이 수적으로 얼마인지 헤아리기는 힘들지만, 현재 민주노동당 당원 8만 명 가운데서 열성당원이자 대중조직 활동가인 인원은, 당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당원이 10%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약 1만 명으로 추산된다. 추산이므로 1만 명보다 더 많을 수도 있는 데, 문제의 핵심은 양적 크기가 아니라 질적 수준에 있다.

그들 1만 명 당원들은 각계각층 대중조직, 현장조직, 지역당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각계각층 대중조직, 현장조직, 지역당조직에 1만 명 당원이 있다는 것은, 그들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으로 육성, 배치하는 정치사업에 당력을 집중할 요구가 민주노동당에게 제기되었음을 뜻한다.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의 당면과업은 각계각층 대중조직에 망라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100만 명을 민주노동당의 깃발 아래 결집시키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으로 육성, 배치한 1만 명 당원들이 각계각층 대중조직에 망라된 100만 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통일전선의 깃발 아래 결집시키는 것이다.

1만 명의 선진역량이 100만 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하나의 전선에 결집시키면 그것이 곧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1만 명의 선진역량이 촉진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100만 명이 결집하는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없다. 100만 명이 하나의 전선에서 투쟁하는 거대한 질적 변화는 선진역량의 촉진요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4.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투쟁에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

좌파활동가들은 통일전선 자체를 부정한다. 그들은 통일전선이 실패한 역사적 경험을 논거로 들면서 통일전선을 부정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실패한 역사적 경험이란, 스페인내전에서 인민전선(Fronte Popular)이 실패한 것, 중국혁명에서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의 제1차 국공합작이 실패한 것, 그리고 칠레혁명에서 정당연합체인 인민단결(Unidad Popular)이 선거승리로 집권하여 밀고 나갔던 민주주의혁명이 3년만에 좌절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전선이 실패한 역사적 경험이라고 그들이 지적한 것은, 통일전선의 실패를 입증한 역사적 경험이 아니라 통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한 역사적 경험이다. 그들의 자의적 해석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가 보인다.

스페인내전 시기(1936-1939)의 인민전선은 통일전선이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직 통일전선이 될 수 없었다. 그 까닭은 당시 스페인 노동계급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페인 노동계급은 스페인 사회당이 지도한 노동자총동맹(UGT)과 무정부주의 노동조합주의자들(anarco-syndicalists)이 지도한 전국노동연합(CNT)으로 갈라져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노동자총동맹은 계급협조노선과 관료주의에 빠져있었고, 전국노동연합은 좌경모험주의에 물들어있었다. 노동자총동맹을 대중적 기반으로 하여 연립정부가 세워졌으나 민주주의개혁에 실패하자, 노동자총동맹은 좌경화되었고, 그 영향을 받고 있었던 전국농민연합(FNTT)도 좌경화되었다. 스페인 노동계급의 분열과 사회당, 공산당, 무정부주의자들의 갈등은 통일전선을 형성하기는커녕 일반적인 정치연대마저 가로막았다. 1935년 4월에 8개 정당 및 정치조직이 채택하였던 인민전선협정은 통일전선의 강령이 아니라 선거연합강령이었으며, 1936년 2월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한 인민전선정부 역시 통일전선정부가 아니라 집권당인 급진당(Radicals)과 제1야당인 스페인자치우익연합(CEDA)의 우익연립정부에 지나지 않았다. 명백하게도, 스페인 내전시기에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통일전선은 단 한 차례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만일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더라면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1975) 파시스트도당의 반동공세를 막아내고 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쟁취하였을 것이다.

중국혁명 시기에 있었던 제1차 국공합작도 통일전선이 아니었다. 쑨원(孫文, 1866-1925)이 영도한 중국국민당은 1924년 1월 제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연소용공(聯蘇容共)과 농공부조(農工扶助)의 정치노선을 채택하고, 그 무렵 막 창건된 신생정치조직이었던 중국공산당과 손잡고 정당연대를 실현하였다. 이에 중국공산당 당원들은 당적을 유지한 채 개인자격으로 중국국민당에 입당하여 그 당을 부르주아정당에서 진보정당으로 개조하려고 힘썼다. 이것이 제1차 국공합작(1924-1927)이다. 그러나 1927년 4월 반동군벌의 우두머리로 변신한 장졔스(蔣介石, 1887-1975)가 상하이에서 저지른 이른바 '반공숙청'으로 제1차 국공합작은 깨지고 말았다.

제1차 국공합작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통일전선이 아니라 계급적으로 대립하는 두 정당이 한시적 정당연대를 실현한 것이었다.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의 정당연대가 실패한 까닭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연합한 통일전선이 형성되지 못하여 중국공산당이 장졔스 파시스트도당의 반동공세를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1936년에 일어난 시안사변으로 시작된 제2차 국공합작(1937-1945)은 통일전선의 반제적 임무에 대한 정치적 합의만 있었을 뿐 통일전선의 계급적 임무에 대한 정치적 합의는 애초에 불가능하였으므로 미완의 통일전선이었다.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이 분리된 정당연대를 통일전선이라 할 수 없다.

칠레혁명 시기의 인민단결 역시 통일전선이 아니었다. 칠레의 집권당이었던 인민단결은 진보정당들끼리 결집한, 대통령선거를 위한 정당연합체였다. 그 정당연합체가 가까스로 선거전에서 승리하여 집권하는 과정에는 칠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도, 참여도, 정치적 합의도 없었다. 따라서 칠레혁명에는 통일전선의 강령이 없었다. 진보정당 정치연합체인 인민단결의 집권투쟁이 선거전을 중심으로 조직, 전개된 까닭에 선거가 끝나자 그 집권투쟁은 동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통일전선이 형성되지 못한 칠레혁명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이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으로 전화, 발동되지 못하였다. 칠레혁명의 좌절원인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지 못하였다는 데 있다. 만일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더라면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파시스트도당의 반동공세를 막아내고 칠레혁명을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세계혁명사에서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은, 스페인의 전술적 인민전선, 중국의 한시적 정당연대, 칠레의 선거를 위한 정당연합체가 겪었던 실패와 좌절 그 자체가 아니라,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실패와 좌절을 딛고 통일전선의 길을 개척하여 마침내 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쟁취하였다는 것이다. 인민전선, 정당연대, 정당연합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 속에서 통일전선으로 변화, 발전되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4-1) 통일전선의 강령에 대한 정치적 합의

좌파활동가들은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의 정치연합'으로 규정하지만, 그것은 통일전선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다.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은, 한 마디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략적 정치연합이다. 통일전선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략적 정치연합이므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조직으로 건설된 진보정당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망라된 각계각층 대중조직들이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통일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통일전선을 형성하려면 진보정당과 각계각층 대중조직이 정치적으로 합의하여 통일전선체를 건설해야 하는데, 그때 나서는 문제는 각계각층 대중조직이 진보적 대중조직과 개혁적 대중조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정치적 분열이다. 각계각층 대중조직을 두 갈래로 갈라놓은 진보와 개혁이라는 정치노선의 근본적 차이가 통일전선 형성을 가로막는 걸림돌인 것이다.

통일전선이란 정치노선이 다른 상대를 동일한 정치노선으로 개조하여 조직적 통합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정치과업을 규정한 통일적 강령에 합의하고 그 강령에 따라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전선에서 중시하는 것은 강령의 통일이다.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강령의 통일은 필수적이다. 만일 강령의 통일을 실현하지 못한다면, 비록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연합을 표방한다고 해도 전술적 정치제휴에 지나지 않으므로 통일전선이 아니다.

통일전선이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의 전략적 정치연합이라면 형성과정에서 어려움이 덜 하겠지만, 정치노선이 다른 개혁적 대중조직들과도 전략적으로 연합하여야 하므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에게 제기되는 문제는, 민주주의혁명을 회피 또는 거부하는 개혁적 대중조직들을 어떻게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에 참가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개혁적 대중조직들과 함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문제는,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이 통일전선의 강령을 내놓고 그들을 불러모으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으며, 반드시 정치적 합의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새로운 통일전선체는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이 실현한 어떤 정치연합체가 아니라,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과 개혁적 대중조직 3자의 정치적 합의구조 위에서 세워지는 정치연합체인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3자의 정치적 합의가 여러 갈래의 정파들 사이의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일련의 투쟁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는 대중투쟁의 정치적 성과라는 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안별 연대투쟁 전개→공동투쟁체 건설→통일전선체 건설의 경로를 밟아 가는 발전과정에서 3자 사이의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 공동투쟁체를 건설하고 맹렬히 투쟁하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과 평택미국군기지확장 저지투쟁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그 투쟁들이 3자 사이의 정치적 합의를 촉성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은 그 두 종류의 당면투쟁을 위에서 논한 바 있는 다양한 투쟁동력의 결집계기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개혁적 대중조직들과 함께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는 사회주의강령이나 사회민주주의강령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에 따라 이루어진다. 현 시기 통일전선의 강령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으로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이란 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일치시킨 강령이다. 실질적 민주주의가 형식적 민주주의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하나의 발전계기로 내포하는 것처럼, 민주주의혁명도 민주주의개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하나의 발전계기로 내포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새로 건설되는 통일전선체의 강령이 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일치시킨 강령으로 되어야 민주주의혁명을 회피 또는 거부하는 개혁적 대중조직들이 통일전선에 참가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개혁적 대중조직들이 수행하는 민주주의개혁에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이 참가하는 형태의 정치연합이 실현된다면, 민주주의혁명은 민주주의개혁으로 변질될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이 개혁적 대중조직들과 결합하는 형태의 정치연합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새로 건설되는 통일전선체의 강령이 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를 일치시킨 민주주의강령으로 된다고 해서, 민주주의혁명이 민주주의개혁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을 채택하는 것은 진보정당, 진보적 대중조직, 개혁적 대중조직 3자가 실질적 민주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강령적 일치와 그것의 실천적 완성이라는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조직들이 개혁적 대중조직들과 함께 통일전선을 형성하면, 개혁적 대중조직들이 말로만 개혁을 떠드는 이른바 '개혁정권'의 유인과 포섭에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고 민주주의혁명의 발전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진보와 개혁이라는 두 갈래의 흐름이 하나의 전선으로 합류할 때, 더 정확히 말하면 민주주의혁명의 투쟁동력이 민주주의개혁의 운동역량을 하나의 전선으로 이끌어 정치적으로 연합할 때, 그리하여 말 그대로 광범위한 통일전선체를 건설할 때, 민주주의혁명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4-2) 민족통일전선과 민족자본가, 지역통일전선과 중소자본가

통일전선을 계급연합전술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오해는 계급연합전술의 몰계급성이 결국 사회변혁운동을 망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와 거부감을 동반한다.

통일전선을 그렇게 오해하는 원인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원인은 민족자본가를 통일전선에 포함시키는 쟁점에 걸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자본가(national bourgeoisie)란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것으로 하여 사회변혁운동의 반제국주의적 요구를 일정하게 수용하는 개별자본가를 뜻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일전선은 계급적 적대관계에 있는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을 화해와 연대의 길로 이끌어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적대관계에 있는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을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야말로 관념론의 중독에 빠져 사회변혁 자체를 부정하려는 최악의 발상이다.

오해가 동반하는 우려와 거부감을 벗겨내고 통일전선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신식민지체제에서 예속자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다음과 같은 사전지식이 요구된다.

세계혁명사를 살펴보면, 사회변혁운동에서 민족자본의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되었을 때, 그 문제는 자본형성의 성격을 해명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서유럽의 이른바 선진자본주의나라들에서 자본의 시장지배력이 개별국가범위를 아직 넘어서지 못하였던 시기에 자본형성의 민족국가적 성격이 존재하였다든지, 또는 아시아 경제사학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지만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이 적용되는 자본주의 발아기에 자본형성의 민족국가적 성격이 존재하였다든지 하는 이론적 해명들이 그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자본형성의 성격문제에 관한 일련의 해명은 이 글에서 논하는 통일전선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논하는 민족자본가와 통일전선의 관계문제는 자본형성의 성격을 해명하는 문제와 전혀 다른 것이다.

민족자본가와 통일전선의 관계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구식민지체제를 뒤집어엎은 아시아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였다. 당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에서 제기된 민족자본가의 문제는 반제국주의통일전선에서 차지하는 민족자본가의 지위와 역할을 해명하는 문제였다.

서유럽, 미국, 일본에서 형성된 자본의 시장지배력이 개별국가범위를 넘어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팽창하면서 그 세 대륙을 거대한 식민지시장으로 강탈, 지배하기 시작하였을 때, 국내시장의 식민지화를 반대하는 토착자본이 존재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식민지토착자본의 일부가 반제국주의 성향을 가짐으로써 식민지민족자본가가 통일전선에 참가하였던 것은, 제국주의세력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식민지민족해방운동에서 나타난 하나의 필연이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반파시스트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구식민지체제가 무너지면서 정세는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전승의 깃발을 틀어쥔 제국주의 미국은 경제원조와 차관제공을 마구 들이밀어 신생독립국들에 잔존하는 중소토착자본을 매판자본으로 개조하였다. 매판자본으로 개조된 중소토착자본은 제국주의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는 예속정권의 특혜정책에 따라 체계적으로 육성되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지체제에서 체계적으로 육성된 매판자본들이 자국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하기 시작할 즈음, 그 자본들은 제국주의지배세력 및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요구와 예속정권의 지휘에 따라 제국주의세계체제에 일괄적으로 예속되었다.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성립된 이후 토착자본이 자취를 감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지체제에서 반제국주의 성향을 가진 1920년대형의 민족자본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이전 시기의 공식만 가지고서는 답변하기 힘들게 되었다. 더욱이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지구적 범위로 팽창하면서 현대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세계화 공세가 전면화, 노골화된 21세기에 이르러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21세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지체제에서 제국주의독점자본에 맞서 국내시장의 식민지화를 반대하는 토착자본은 찾아볼 수 없고, 대자본이나 중소자본이나 가릴 것 없이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세계시장 지배력에 장악되어 있음은 명백하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개조속도, 팽창속도, 편입속도가 빨랐던 남(한국)의 독점자본은 매판자본의 전력을 가진 예속자본임이 분명한데도, 지금 남(한국)시장과 자본주의세계시장에서 각각 제국주의독점자본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쟁은 겉에 드러난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속에 감추어진 본질은 전혀 다르다. 삼성, 현대, 엘지(LG) 같은 국내독점자본들은 예속정권의 특혜정책에 따라 체계적으로 육성되어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편입된 예속자본이므로, 그런 예속자본이 제국주의독점자본들과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독점강화를 위한 경쟁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세계체제 안에서 진행되는 예속심화를 위한 경쟁이다.

다른 한편, 현 시기 남(한국)의 비독점중소자본은 국내독점자본의 하청계열체계에 고착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중소자본이 개별국가범위를 넘어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여 이른바 '해외시장'을 개척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제통화기금(IMF)사태의 파괴적 영향으로 치명상을 입고 이제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급속한 체결로 파산위험에 직면한 남(한국)의 중소자본들 가운데 일부가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을 조직, 전개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공동투쟁체에 일시적으로 참가할 수는 있지만,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에 참가하는 민족자본가가 등장할 가능성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혁명사를 살펴보면, 사회변혁에 참가한 개별적 자본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레닌(Vladimir Ilyich Lenin, 1870-1924)의 소비에트혁명정부와 미국의 자본가 알먼드 해머(Armand Hammer, 1898-1990)가 경제협력을 추진한 것이 첫 번째 사례이다. 물론 그 경제협력은 레닌과 해머의 관계에 의존하여 추진되었지만, 사회주의 10월혁명이 승리한 직후 소비에트경제건설에 개별적 자본가가 참가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혁명을 보면, '붉은 자본가'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국가부주석의 책임까지 맡았던 룽이런(榮毅仁, 1916-2005)이 신민주주의혁명에 참가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다른 나라의 경험을 말할 것 없이, 북(조선)에서는 '사회주의 백만장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민족자본가 송대관(1912-1994)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에 참가하였다.

역사적 경험은 통일전선에 민족자본가를 참여시키는 문제가 실천적으로 해결되었음을 말해준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사회변혁에 참가한 자본가는 매우 특수한 개별적 존재였다는 점이다.

지난 시기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에서 제기된 민족자본가라는 개념은 자본계급의 하위적 계층개념이 아니라 특수한 정치적 개념이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통일전선에 민족자본가를 포함시키는 문제가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계급연합전술이 될 수 없고, 통일전선전략의 핵심문제로도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좌파활동가들은 민족자본가를 통일전선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계급연합전술로 오해하거나 통일전선전략의 핵심문제인 것처럼 과도하게 부각시키면서 통일전선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세계혁명사의 역사적 경험과 통일전선전략에 대한 무지이며 편견이다.

중요한 것은, 남(한국)에서 일어나게 될 민주주의혁명에서 민족자본가를 통일전선에 포함시키는 문제를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두 갈래로 해명될 수 있다.

4-2)-(1) 민족자본가를 통일전선에 포함시키는 문제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민족통일전선(national united front, NUF)에서 제기되는 것이지,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지역통일전선(regional united front, RUF)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다. 전민족적 범위에서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민족통일전선의 역량편성 및 전략목표는, 남(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지역통일전선의 역량편성 및 전략목표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혁명과 조국통일운동을 혼동하는 것은 오류이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민족통일전선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민주주의혁명에서 형성되는 보편적인 의미의 통일전선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에서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하는 특수한 통일전선이므로, 거기에서는 계급적 임무가 아니라 민족적 임무가 전면에 나선다.

6.15 공동선언에 따라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민족자본가와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주체는 남(한국)의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아니라 북(조선)의 사회주의정권이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민족자본가를 민족통일전선에 포함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북(조선)의 사회주의정권이 수행하는 독자적인 정치임무인 것이다. 실제로, 북(조선)의 사회주의정권이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고,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계급적으로 대립한 민족자본가들과도 통일전선을 형성함으로써 민족통일전선을 확대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한국)의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은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하는 민족통일전선에 당연히 적극 참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민족자본가를 직접 상대하는 것은 아니며, 상대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북(조선)의 사회주의정권과 남(한국)의 현대아산이 경제협력관계를 맺은 금강산 개발사업이나 북(조선)의 사회주의정권과 남(한국)의 중소자본들이 경제협력관계를 맺은 개성공업단지 건설사업에 남(한국)의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참가할 여지는 없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는 문제는, 남북(북남)경제협력에 대한 좌파활동가들의 비판이다. 남북(북남)경제협력이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변질시키는 개방정책의 결과물이며, 개성공업단지에 진출한 남(한국)의 중소자본이 북(조선)의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것이 그들의 비판이다. 주목하는 것은, 남북(북남)경제협력을 바라보는 좌파활동가들의 관점이 개성공업단지 건설사업을 개방정책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노무현정권의 관점과 일맥상통하고, 개성공업단지의 '질 좋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이윤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중소자본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남북(북남)경제협력은 6.15 공동선언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개방정책의 관점이나 중소자본의 관점이 아니라 조국통일운동의 관점으로 되어야 한다. 남북(북남)경제협력을 조국통일운동의 관점이 아니라 사회변혁운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좌파활동가들의 시각은 조국통일과 사회변혁을 혼동하는 오류에 빠진다.

남북(북남)경제협력은 북(조선)의 사회주의정권이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남(한국)의 중소자본을 개성에 끌어들여 북(조선)의 노동자를 착취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국)의 중소자본을 민족통일전선에 끌어들이는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남(한국)의 중소자본을 정치적으로 중립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들 가운데 일부를 민족통일전선에 참가시키는 정치적 임무인 것이다. 그러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연방제 방식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실질적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물론 개성공업단지에서 기업운영에 참가한 남(한국)의 중소자본과 북(조선)의 노동자들 사이에는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가 불가피하게 형성되지만, 북(조선)의 사회주의정권은 남(한국) 중소자본의 기업활동을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4-2)-(2) 남(한국)에서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지역통일전선은 제국주의독점자본과 국내독점자본의 생산수단을 무상몰수하여 모든 종류의 독점자본을 해체하는 중요산업 국유화정책을 강령으로 삼고 있으므로, 지역통일전선에 국내독점자본이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강령을 지지하는 중소자본가들은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수 있다. 중소자본가들이 개별적으로 지역통일전선에 참가하는 문제는 그들이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여기서 중소자본가와 영세자영업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중소자본가는 기업체를 소유한 자본계급의 범주에 들지만, 기업체라고 할 수 없는 조그만 상점이나 식당을 경영하는 영세자영업자는 근로대중의 범주에 든다.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을 흔히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고 표현하는데, 영세자영업자들은 서민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아직 중소기업정책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그 강령에서 "중소기업에서 사적, 개인적 사업의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고,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모든 정책을 강구"하고, "노동자 소유 등 협동조합적 소유에 기초한 중소기업의 창업을 장려"한다고 밝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차 민주주의혁명의 승리로 세워질 자주적 민주정부는 중소자본 해체정책이 아니라 중소자본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정책을 실시할 것이다.

민족자본가를 남북(북남)경제협력에 참가시키는 문제와 중소자본가를 민주노동당에 입당시키는 문제는 뚜렷이 구별된다. 앞의 것은 민족통일전선의 과업이고, 뒤의 것은 지역통일전선의 과업이다.

5. 전선형성, 동력배합, 투쟁통합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지만, 통일전선은 아직 대중조직에 망라되지 못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조직에 망라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형성한다. 그러므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업은 각계각층 대중조직에 망라되어 산발적으로 저항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조직역량을 하나의 통일적 강령 아래 결집시키는 문제,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망라된 각계각층 대중조직들을 통일전선에 참가시키는 문제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현존하는 각계각층 대중조직들끼리 합의해서 비교적 손쉽게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대중조직에 망라되지 못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조직하고 그들을 통일전선에 참가시킴으로써 통일전선을 비약적으로 확대,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므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려면 아직 대중조직에 망라되지 못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조직하는 과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 당면과제를 풀어내려면, 진보정당의 열성당원들과 대중조직 활동가들이 아직 대중조직에 망라되지 못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생존권사수투쟁으로 불러일으키고, 그 투쟁과정에서 기존의 대중조직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대중조직을 내와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논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선진역량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을 불러일으키는 촉진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대중조직사업을 밀고 나가면, 광범위한 대중조직역량이 통일전선에 참가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통일전선의 역량은 각계각층 대중조직에 망라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서 나오지만, 통일전선의 중심역량, 주력대오는 민주노조 깃발 아래 조직적으로 단결한 노동계급이다. 문제를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현 시기 통일전선이 형성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은 노동계급의 조직화가 미진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이외의 근로대중이 각계각층 대중조직에 망라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조직 노동계급을 민주노조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최적의 방도이다. 21세기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은 민주노조 깃발 아래 조직적으로 단결한 노동계급이 중심에 서고, 민주농민회로 조직된 근로농민을 비롯하여 청년회, 여성회, 지역주민회 같은 대중조직들로 조직된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대중적 결집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5-1) 통일전선 형성과 산별노조 건설

통일전선을 형성하려 할 때 나서는 문제는, 오늘 거의 90%에 이르는 미조직 노동계급을 어떻게 민주노조로 조직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남(한국)의 노동계급 1천500만 명 가운데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노동자의 비중은 1970년대에 40%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 약 12% 정도로 줄어들었다. 현재 대기업 노동자는 약 180만 명이다. 그에 비해, 50명 미만의 영세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70%로 크게 늘었다.

기업규모별 노동자 수를 살펴보면, 1명-49명이 일하는 영세기업은 1993년에 60.6%이었던 것이 2003년에는 69.3%로 늘어났다. 50명-299명이 일하는 중기업은 1993년에 18.4%이었고 2000년에 18.5%로 큰 변동이 없었다. 그런데 300명 이상이 일하는 대기업은 1993년에 21.1%이었던 것이 2000년에는 12.2%로 크게 줄었다. 중소기업의 비율은 무려 87.8%나 된다.

그런데 문제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중소기업 노동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조직화가 미진하다는 점이다. 2005년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56.1%이고, 그 수는 840만 명에 이르렀다.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엄청난 '차별'을 받는다. 보수언론이 '차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목을 조르는 민생파탄의 요인 곧 절대적 착취인 것이다.

그러므로 당면과제는 절대적 착취로 민생파탄에 빠진 중소기업 노동자를 어떻게 민주노조로 조직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회변혁운동의 견지에서 볼 때,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중소기업의 민주노조 조직화사업은 일반적인 의미의 노동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전략투쟁으로 된다. 또한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을 밀고 나가면서 중소기업에서 민주노조를 건설하는 것은,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업만이 아니라, 장차 중소자본에 대한 자주적 민주정부의 민주주의적 통제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조직적 준비이기도 하다. 물론 비정규직차별 철폐투쟁과 중소기업의 민주노조 조직사업은 민주노동당의 중소기업정책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민주노총이 기업별노조를 산별노조로 전환하기 시작한 최근의 움직임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2006년 6월 30일 현대자동차노조, 기아자동차노조, 지엠(GM)대우차노조, 로템노조, 두원정공노조를 비롯한 금속연맹 소속 13개 노동조합이 투표를 통해 산별노조를 건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금속노동자 16만 명을 단일한 금속노조의 깃발 아래 결집시키는 산별노조 건설사업이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 지금까지 개별기업체 중심주의나 지역주의의 한계를 넘지 못하였던 노동계급이 이제는 다른 것에 견줄 바 없이 위력적인 단결의 무기를 움켜쥐고, 전면적 총파업투쟁에 나설 수 있는 새로운 조직체계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뒤이어 공공운수사회서비스연맹(11만 명), 화물통합노조(3만 명), 민주택시연맹(2만 명), 민주버스연맹(2천 명)은 2007년 안에 조합원 16만 명을 망라한 공공운수산별노조로 통합, 전환될 것이다. 화학섬유연맹(3만 명), 사무금융연맹(7만 명)에서도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질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은 산업적 연관성에 따라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를 단일노조로 결집시키고,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를 단일노조로 결집시키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를 단일노조로 결집시킴으로써 현재 10% 수준에 멈춰있는 노조 조직율을 결정적으로 높여줄 것이다.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투표에서 비정규직노조의 97.5%가 찬성표를 던진 것은, 그 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있었던 남(한국)의 노동계급이 산별노조를 함께 건설함으로써 계급적 단결의 질적 비약을 실현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준다.

5-2) 통일전선 형성과 진보정당 기층조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서 각계각층 대중조직을 확대, 강화하는 투쟁을 밀고 나갈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서 진보정당 기층조직을 강화하거나 건설하는 투쟁도 함께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대중조직 강화사업과 진보정당 강화사업은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하여 밀접히 연계, 추진되는 양대 기축사업이다.

진보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던 지난 시기에는, 대중조직을 강화하는 사업과 함께 현장조직을 강화하는 사업이 양대 기축사업으로 되었다. 현장조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고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활동가조직이었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는, 그들 자신의 정치조직인 진보정당이 건설된 조건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산현장, 생활현장에서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제기하고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기본단위는 진보정당 기층조직으로 된다. 기존의 현장조직과 진보정당 기층조직으로 이원화하여 열성당원과 대중조직 활동가를 분리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주노조나 민주농민회 같은 조직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일상적, 경제적 요구를 해결하는 대중조직이라면, 진보정당 기층조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는 정당조직이다. 진보정당 기층조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일상적 투쟁이 벌어지는 대중조직들을 정치적으로 안받침해주고, 대중조직들 속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한다. 진보정당은 기층조직을 통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다.

진보정당의 당원은 기층조직에서 자기의 개별적, 분산적 정치활동을 조직적, 집단적 정치활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진보정당의 중앙조직은 기층조직에서 당원을 유능한 정치활동가로 길러내는 사업에 당력을 집중할 수 있다. 진보정당은 당의 기층조직을 통하여 노동자당원, 농민당원, 주민당원, 학생당원, 청년당원, 여성당원, 장애인당원 등 각계각층에 퍼져있는 당원대중에 대한 체계적인 교양과 학습을 진행할 수 있다. 진보정당 기층조직을 강화하거나 건설하는 것은 당간부들과 당원대중의 공동과제이자 공동투쟁이다.

진보정당이 기층조직의 강화와 건설을 중시하는 까닭은, 그 기층조직들이 진보정당과 대중조직을 연결시켜주기 때문이며, 또한 당의 중앙조직이 기층조직들로부터 전투적 활력과 혁신의 기운을 공급받고, 당의 기층조직들은 중앙조직으로부터 세련된 정치역량과 정치방침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당의 중앙조직과 기층조직 사이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상호소통은 인체의 활력과 건강을 유지해주는 혈액순환처럼 중요하다. 중앙조직만 움직이고 기층조직은 움직이지 못하는 진보정당은 반신마비에 빠지게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산현장, 생활현장에 진보정당 기층조직을 내오고 활성화하는 것은, 진보정당을 강화하는 것이자 통일전선을 강화하는 것이다.

5-3) 통일전선의 동력배합방식과 투쟁통합방식

앞서 나간 연재물에서 논한 것처럼, 21세기 민주주의혁명은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사회변혁이다.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의 유기적 통합이란 결국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의 배합을 말하는 것이다.

통일전선에서는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통합적으로 조직, 전개되고,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의 배합은 통일전선에서 가능하다. 통일전선을 형성하지 않은 조건에서,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은 배합될 수 없다.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이 배합된다는 말은, 그 두 갈래의 투쟁동력이 하나의 전선역량으로 전화, 발동된다는 뜻이다.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의 배합이란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과 근로대중의 대중투쟁을 통합하는 것만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집권투쟁까지 통합하는 것을 뜻한다. 통일전선에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각계각층 대중조직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조직인 진보정당도 참가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통일전선의 힘은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 근로대중의 대중투쟁, 진보정당의 집권투쟁이 통합된 그야말로 거대한 배합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런 뜻에서, 통일전선전략은 동력배합전략이라 할 수 있다.

통일전선전략에서 나서는 문제는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이 어떻게 배합되는가 하는 동력배합방식, 그리고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 근로대중의 대중투쟁, 진보정당의 집권투쟁이 어떻게 통합되는가 하는 투쟁통합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는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나온다. 노동계급이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을 배합시킬 수 있는 까닭, 그리고 자신의 총파업투쟁과 근로대중의 대중투쟁, 진보정당의 집권투쟁을 통합시킬 수 있는 까닭은, 노동계급이 전면적 총파업투쟁을 조직,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전면적 총파업투쟁은 반제적 요구와 계급적 요구를 가장 뚜렷이, 자장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투쟁이며, 가장 강력한 힘으로 그 두 가지 요구를 해결해 가는 투쟁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의 그러한 혁명적 능력을 대신할만한 사회계급이나 사회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전면적 총파업투쟁을 밀고 나갈 때, 상호유리되어 있는 반제투쟁동력과 계급투쟁동력이 전략적으로 배합될 수 있다. 또한 노동계급이 전면적 총파업투쟁을 밀고 나가야 그들 자신의 총파업투쟁, 근로대중의 대중투쟁, 진보정당의 집권투쟁이 전략적으로 통합될 수 있다.

노동계급의 전면적 총파업투쟁은 민주노조 깃발 아래 조직적으로 단결한 가장 강력한 사회계급역량이 폭발하는 위력적인 투쟁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 투쟁은 노동계급의 절박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서 지배계급의 폭력진압을 뚫고 나가는 가장 강인한 전투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또한 그 투쟁은 지배계급으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처지에 있는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연대와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투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투쟁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투쟁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을 이끌어 가는 선도투쟁으로 되는 것이다.

5-4) 노동계급의 생산수단 점거와 진보정당의 집권투쟁

소수의 자본계급이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배타적으로 소유함으로써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은 전면적 총파업투쟁을 일으켜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게 되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여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관계를 폐지하고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생산관계를 개조하는 사회변혁을 전진시킨다.

노동계급이 생산활동을 멈추고 전면적 총파업에 나설 때, 생산활동에 대한 자본계급의 지배력을 파탄시킬 수 있으며, 잉여가치에 대한 자본계급의 착취를 거부할 수 있다.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는 사회변혁은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다.

위에서 논한 대로, 노동계급이 전면적 총파업투쟁을 일으키고 그 투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 승리하려면, 통일전선에 결집한 근로대중의 대중투쟁과 통합되어야 하고,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지향하는 진보정당의 집권투쟁과 통합되어야 한다. 근로대중의 대중투쟁, 진보정당의 집권투쟁과 통합되지 못한 노동계급만의 총파업투쟁은 사회변혁을 전진시킬 수 없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전면적 총파업투쟁만을 사회변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노동계급이 전면적 총파업투쟁을 일으키면 자본계급은 공장과 기업체에서 내쫓기고 노동계급이 공장과 기업체를 점거하게 될 것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전면적 총파업에 나선 노동계급이 모든 공장과 기업체를 한꺼번에 점거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한꺼번에 점거하였다 해도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형태가 자동적으로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동계급이 생산수단을 점거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생산재와 생산관리능력이 노동계급에게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생산물을 분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복잡한 사회경제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생산현장에서 노동계급이 가진 것은 노동력, 그리고 노조활동경험뿐이다. 공장이나 기업체를 점거한 노동자들이 노동자주식회사를 급조하여 원자재, 에너지, 부품 등을 사들일 막대한 재정을 마련할 수도 없거니와, 갑자기 노동자대학을 세워 생산관리능력을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산에 요구되는 일련의 필수적 활동들 곧 제품설계, 공정설계, 생산계획, 공정관리, 품질관리, 원가관리, 설비관리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노동계급의 생산수단 점거를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체계, 생산현장에서 요구되는 생산재를 보내주는 사회적 공급체계, 노동계급이 생산관리능력을 획득하는 사회적 교육체계를 만들어내고 작동시킬 때, 점거는 소유로 전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형태가 성립될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노동계급의 점거를 사회적 소유로 전화시키는 정치적 과정이다. 점거를 소유로 전화시키는 정치적 과정이란 새로운 소유형태를 성립시키는 법과 제도를 내오는 과정이다. 그러한 법과 제도를 내오려면 정권의 소유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정권의 소유형태를 바꾼다는 말은 정치체제를 바꾼다는 뜻이다.

정권의 소유형태를 바꾸어야, 다시 말해서 소수의 자본계급을 위한 정치체제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새롭고 진보적인 정치체제로 바꾸어야 노동계급의 생산수단 점거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로 전화될 수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새롭고 진보적인 정치체제를 세우는 임무를 수행하는 직접적 담당자는 집권투쟁에 나선 진보정당이다. 소수의 자본계급을 위한 정치체제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위한 새롭고 진보적인 정치체제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집권투쟁을 조직, 전개하는 진보정당에게 있다. 진보정당 이외의 그 어떤 정치조직도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 노동계급의 전면적 총파업투쟁이 진보정당의 집권투쟁과 반드시 통합되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6. 글을 맺으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역사상 최대의 표차로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볼리비아의 사회주의운동당(MAS)은 2006년 1월에 집권하였다. 사회주의운동당의 집권은 볼리비아의 안데스산맥 기슭에 있는 낭카와수 강가의 유격근거지에서 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50명의 유격대원을 이끌고 투쟁하던 라틴아메리카의 전설적 혁명가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1928-1967)가 전투에서 부상당한 유격대원들의 치료약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작전을 벌이던 중 미국 중앙정보국의 사주와 지원을 받은 볼리비아 반동군부에게 체포, 학살당하여 볼리비아혁명이 좌절한 때로부터 39년만에 일어난 일이며, '선거혁명'이라는 미증유의 정치적 돌풍을 일으키며 집권하여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고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던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08-1973)가 백악관의 사주와 미국 국방부의 지원을 받은 반동군부에게 완전포위된 대통령궁에서 경호원 40여 명과 함께 일곱 시간 동안 결사항전을 벌인 끝에 적탄에 쓰러져 칠레혁명이 좌절한 때로부터 33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만국의 노동자들에게 단결과 투쟁의 기운이 차 넘치는 국제노동절인 2006년 5월 1일,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Evo Molares)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는 국영에너지기업(YPFB), 탄화수소공장 등 중요산업에 대한 국유화를 실시한다는 포고령을 발표하였다. 역사적인 포고령이 발표되던 날, 볼리비아군은 국유화를 실시하게 될 기업체에 공병대를 투입시켜 볼리비아 국기를 게양하고 유전지대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지금 볼리비아의 중요산업 국유화는 중단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 까닭은 브라질, 스페인, 아르헨티나, 영국, 프랑스의 독점자본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영에너지기업의 지분 가운데서 51%를 사들일 1억8천만 달러가 볼리비아 중앙은행에 없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의 중요산업 국유화정책은 중요산업의 생산수단을 막대한 재정을 들여 사들이는 방식으로 추진해온 것이다.

볼리비아의 집권당인 사회주의운동당이 중요산업 국유화를 중앙은행의 국고를 털어 해결하려다가 중단위기에 빠진 것은, 그 집권당이 볼리비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으로 전화, 발동시켜 중요산업 국유화강령을 밀고 나갈 실천방도를 찾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들이 중요산업 국유화의 실천방도를 찾지 못한 까닭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잠재동력을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으로 전화, 발동시키는 통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중요산업의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은 중앙은행 금고에서 나오는 달러의 힘으로 추진하는 방식의 국영기업정책이 아니라 통일전선을 형성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력으로 밀고 나가는 민주주의혁명의 국유화강령이다. 만일 볼리비아 중앙은행의 재정으로 국유화대상기업의 지분을 전부 사들인다 해도, 그런 방식으로 추진한 국유화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요산업의 국유화정책은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을 중심으로 하여 근로대중의 대중투쟁과 진보정당의 집권투쟁이 통합되는 민주주의혁명의 통일전선에 의해서, 오직 그 전선에서 끓어오르며 솟구치며 마침내 폭발하는 거대한 동력으로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에서 중단위기는 허용되지 않으며 언제나 전진만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혁명의 전진행로는 강고한 조직태세, 과학적 이론해명, 완강한 실천활동으로 개척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의 조직태세, 이론해명, 실천활동은 민주주의혁명의 승패를 결정한다. (2006년 8월 17일 작성)

* 이 글은 민주노동당 정책이론지 '이론과 실천' 2006년 9월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