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과 진보정당의 집권경로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저항의 한계와 해묵은 쟁점
3. 선거중심적 집권전략
4. 항쟁중심적 집권전략
5. 대중항쟁의 동학
6. 진보정당의 집권경로
7.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한 헌법 제11조는, 사회적 특수계급이 그들의 제도를 창설하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그러한 계급의 존재를 묵인하고 있다. 명백하게도, 자본주의사회에는 헌법이 묵인하는 사회적 특수계급이 존재한다. 사회적 특수계급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수단을 틀어쥐고 사회적 생산활동을 지배함으로써 사회적 관계 전반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한다. 그러한 사회계급을 지배계급(ruling class)이라 한다.

지배계급은 절대다수의 사회구성원을 거느리고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자기의 계급적 이익에 따라 처리하는 최고권한을 행사한다. 지배계급이 사회적 관계 전반에 대해서 행사하는 최고권한을 정치적 지배권이라 하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적 지배는 언제나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라는 기만적 구호로 위장, 은폐된다.

정치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배계급의 반대쪽에 피지배계급이 있다. 피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을 전혀 갖지 못한 노동계급,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생산수단만을 가진 농민과 다양한 서민계층으로 이루어진다. 노동계급도 넓은 의미의 근로대중에 속하는 사회계급이지만, 생산수단을 전혀 갖지 못한 근로대중이라는 점에서 보잘 것 없는 생산수단을 가진 농민이나 다양한 서민계층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사회의 피지배계급은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계급과 보잘 것 없는 생산수단을 가진 근로대중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중이라는 개념을 피지배계급이라는 개념과 동일하게 써오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라는 두 개념을 구분하여 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일반을 구분하는 까닭은, 생산수단을 전혀 갖지 못한 근로대중인 노동계급이야말로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가 실현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역사발전전망을 자기의 장래운명과 일치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민주주의혁명에 가장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나서기 때문이며, 또한 민주주의혁명을 동요나 중단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고, 따라서 새로운 미래사회에 가장 먼저 도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구성체론이 유행하면서 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상부구조를 나누어 보는 인식론이 제기되었고, 그에 따라 경제적 토대를 틀어쥔 자본계급과 정치적 상부구조를 틀어쥔 정권을 갈라놓고, 경제적 토대를 틀어쥔 자본계급을 중심으로 사회계급관계를 논해 왔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자본계급과 그 정권을 지배계급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여 쓴다. 그렇게 쓰는 까닭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사회적 생산활동에 대한 지배와 사회적 관계 전반에 대한 지배가 분리되지 않고 단일한 계급적 지배로 통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적 실체를 '지배블럭'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원래 블럭(bloc)이란 지배권을 뜻하는 프랑스식 외래어이고 지배의 계급적 성격이 모호한 말이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계급적 실체를 지배계급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눈에 피지배계급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언제나 하찮은 존재, 불행한 존재로 비친다. 그러한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발생근원은 지배계급의 머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급관계 속에 있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하는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하찮은 존재, 불행한 존재로 보는 자기의 계급적 견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본주의사회의 구성원들 가운데서 절대다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사회적 생산활동에 노동의 주체로 참여함으로써 자연을 개조하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요구되는 모든 물질을 생산하고 사회 전체에 공급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보통선거권 이외에 그 어떤 의미 있는 정치적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적 무권리상태에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무권리상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급관계에서 인위적으로 발생한 결과이다. 정치적 무권리는 곧 계급적 피지배를 뜻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기본으로 되는 사회적 관계는 고용주, 기업주, 사장으로 불리는 지배계급의 구성원들 곧 자본가를 한편으로 하고, 직장인, 종업원, 근로자로 불리는 피지배계급의 구성원들 곧 노동자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계급관계이다. 그러나 고용주와 직장인의 관계, 기업주와 종업원의 관계, 사장과 근로자의 관계를 규정하는 계급관계는 생산현장의 일상업무 속에 묻혀버리고, 계급적 지배는 '잊혀진 일상'으로 남는다. 노동계급은 끝없이 흘러가는 '잊혀진 일상' 속에서 직장인, 종업원, 근로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잊혀진 일상'의 껍데기를 걷어 내었을 때 드러나는 계급관계는 어디까지나 적대적인 것이다. 지배계급은 사회적 생산활동을 지배함으로써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노동계급을 착취한다. 착취(exploitation)의 사전적 정의는 짓누르고 비틀어 쥐어짠다는 뜻이다. 착취는 사회적 생산과정 속에 묻혀진 '잊혀진 일상'으로 흘러가는 것이기에, 노동계급은 노동시간 연장, 임금동결이나 삭감, 비정규직 차별, 노동조건 악화 등으로 착취의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잊혀진 일상'에서 깨어나게 된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을 착취하여야 자기 존재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계급적 착취는 지배계급의 본성으로 된다. 또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지배하여야 착취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계급적 지배 역시 지배계급의 본성으로 된다.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계급의 착취는 상대적 착취와 절대적 착취로 구분된다. 이를테면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상대적 착취라 할 수 있고, 중소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는 절대적 착취라 할 수 있다. 제국주의세계체제의 내부모순이 격화되어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신자유주의세계화의 대량수탈로 치닫게 될 때, 그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위축과 파산으로 밀려나는 국내예속자본은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을 치게 되는데, 그것은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식의 절대적 착취로 나타난다. 오늘 남(한국)에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과 국내자본의 절대적 착취는 그야말로 광란적이다.

자본계급이 상대적 착취에 매달려 있는 동안 자본주의체제는 안정기를 지나지만, 일단 절대적 착취로 전환하게 되면 그 동안 은폐, 이완되었던 계급독재(class dictatorship)가 공공연하게 야만의 몰골을 드러낸다. 적대적 관계를 형성한 사회계급들이 존재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독재는 필연적이고 보편적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독재의 물질적 기반은 독점자본(monopoly capital)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지배하는 독점자본이 출현함으로써 계급독재는 자기의 물질적 기반을 한층 강화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독재는 관료독재(bureaucratic dictatorship)로 나타난다. 헌법 제7조는 관료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 규정하였지만, 지배계급의 전략거점을 차지한 고위직 공무원들은 정치적 지배권을 틀어쥐고 관료독재를 실시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관료독재는 필연적이다.

헌법 제10조는 국가(state)가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였지만, 국가는 인민(people)의 생활단위인 나라(nation)를 뜻하는 개념이 아니라, 인민을 지배하는 지배계급의 전략거점 곧 국가기구(state apparatus), 통치기관(governing system) 등으로 부르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지배권력구조를 뜻하는 개념이다.

민주주의혁명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계급독재를 종식시키고 독점자본을 해체하여 실질적 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 자주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은 그들이 '잊혀진 일상'에서 깨어나 비일상적인 투쟁에 나섬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계급독재를 종식시키고 독점자본을 해체하여 자신을 위한 민주주의체제를 세우는 비일상적인 투쟁의 총체를 민주주의혁명(democratic revolution)이라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혁명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계급독재의 종식과 독점자본의 해체를 실현한, 질적으로 새로운 민주주의체제를 세우는 사회변혁의 역사적 발전단계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변혁적 관점 곧 민주주의혁명의 관점에서 집권전략의 문제를 논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은 계급독재의 종식과 독점자본의 해체를 통해서 수행되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2. 저항의 한계와 해묵은 쟁점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34조는, 소수의 지배계급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고, 절대다수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계급독재에 의해서 짓밟힌다.

계급독재 아래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짓밟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저항은 필연이며 본능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생존권사수투쟁, 파업투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저항이 생존권을 지키려는 필연이며 본능임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자본주의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신의 피땀을 짜내고 숨통을 조이는 고통의 근원이 계급독재임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는 투쟁에 아직 나서지는 못하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쟁취하려는 여러 형태의 저항은 끝없이 이어진다.

지배계급의 착취와 수탈이 가중될수록 비정규직, 실업, 파산, 빚더미의 벼랑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생존권을 지키는 것보다 더 절박한 요구가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런데 문제는, 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절박한 요구가 저항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배계급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절박하게 요구하는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않으며, 자기들이 지배하는 생산활동에 요구되는 노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요구만 보장해주는 것이 명백한데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그러한 지배계급에게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를 들이대면서 저항한다. 그것이 저항의 한계이다.

생존권을 지키려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저항은 그것이 아무리 격렬한 형태로 폭발한다고 해도, 지배계급으로부터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저항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생존권 보장의 절박한 요구를 실현하지 못하며, 지배계급이 언제 도로 빼앗아갈지 모르는 생존권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취득하는 양보 아닌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뿐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저항의 한계는 곧 계급독재를 종식시키지 못하는 존재의 한계로 전화된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저항은 계급독재 아래서 그들의 계급적 이익을 부분적으로, 불안정하게 취득하는 데 머물기 때문에 저항의 한계가 존재의 한계로 전화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과제로 나서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줄 리 없는 지배계급으로부터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저항의 한계를 넘어서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는 민주주의혁명의 길을 열어놓는 일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것은 계급적 이익을 쟁취하려는 가장 절박한 요구이지만, 그러한 요구는 지배계급으로부터 생존권을 보장받으려는 저항의 한계를 넘어설 때, 다시 말해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낡은 관계를 깨뜨려 계급독재를 종식시킬 때 전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착취와 억압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길은 지배계급으로부터 생존권을 보장받는 일시적 양보의 쟁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급독재의 종식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존권을 지키려는 투쟁이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는 투쟁과 동떨어진 것도 아니고 모순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에서 생존권 보장과 계급독재 종식의 상호관계는 생존권을 보장한 뒤에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는 식의 순차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은 그들의 투쟁이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낡은 관계를 깨뜨려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는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과 지향을 가질 때 그러한 투쟁의 전진행로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낡은 관계를 깨뜨려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새로운 지배거점을 내온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거점이란 국가기구, 통치기관 등으로 부르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지배권력구조이다. 현행 헌법에 따르면, 입법권을 행사하는 지배거점은 국회이고, 행정권을 행사하는 지배거점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이고, 사법권을 행사하는 지배거점은 법원과 헌법재판소이다.

새로운 통치기관, 국가기구를 세우는 방도와 경로를 밝혀주는 것을 집권전략이라 한다. 이 글에서 논하려는 것은 일반적인 집권전략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를 짓누르는 계급독재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통치기관, 국가기구를 세우는 방도와 경로를 밝혀주는 특정한 집권전략이다. 그러한 집권전략을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이라 한다.

사회변혁의 방대하고 복잡한 과제들이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으로 모두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두 단계 사회변혁전략의 중심부에 집권전략이 놓여있음은 명백하다. 집권경로는 사회변혁경로에서 중심을 이룬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새로운 통치기관, 국가기구를 세우는 방도와 경로를 밝혀주는 집권전략이 해묵은 쟁점을 아직 명쾌하게 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그 쟁점은 선거중심적 집권전략과 항쟁중심적 집권전략 사이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거를 전략적 중심에 놓고 집권방도와 집권경로를 인식하는 것이 선거중심적 집권전략이라면, 대중항쟁을 전략적 중심에 놓고 집권방도와 집권경로를 인식하는 것은 항쟁중심적 집권전략이다.

3. 선거중심적 집권전략

선거는 계급적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한 형태이다. 그래서 흔히 선거전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선거가 다른 정치투쟁과 구별되는 차이점은, 그것이 지배계급이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매우 제한된 범위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투쟁이라는 데 있다. 그리하여 선거전이라는 정치투쟁은 언제나 평화적인 투표행위로 귀결된다. 국민투표(national referendum)가 그것이다.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 실시하는 국민투표를 선거라 하는데, 헌법 제72조에 따르면,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결정할 때"도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다.

지배계급은 선거관리법을 내오고 선거관리위원회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선거관리권을 틀어쥐고 선거라는 정치투쟁을 관리한다. 지배계급이 선거를 얼마나 중시하는가 하는 것은 현행 헌법 제7장에서 선거관리를 규정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지배계급이 선거를 그처럼 중시하고 관리하는 까닭은, 선거가 그들의 정치적 지배권을 연장시켜주는 유력한 방도이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선거관리권을 틀어쥐고 관리하는 선거에서 자기의 정치적 지배권을 연장하려는 의도가 가로막히는 경우, 그들은 관료조직이나 불법자금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선거관리법을 내던지는 범죄적 일탈행동에 서슴없이 나서게 되는데, 그것을 선거부정이라 한다.

이처럼 지배계급은 자기의 정치적 지배권을 연장하기 위하여 선거를 관리할 뿐만 아니라 지배권을 연장하기 위해서라면 선거부정도 저지르기 때문에, 선거전 구도에는 사회계급관계가 반영되기 힘들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 실시되는 여러 종류의 선거들은 사회계급관계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선거가 사회계급관계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이없게도 사회계급관계와 반대되는 선거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만일 사회계급관계가 반영된 선거가 공정하게 실시된다면, 유권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권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후보가 당선되어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권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고 지배계급의 정당이 내세운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이상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한 '이상현상'이 나타나는 까닭은, 선거전에 나선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속한 유권자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교란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역량을 분산,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선거국면에서 지배계급과 그 정당은 사회여론을 조작하거나 그럴듯한 선거공약을 내거는 식으로 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교란하는 전술에 능하며, 대중언론을 이용하여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후보자의 영상을 조작하는 식으로 유권자 대중의 심리정서를 자극, 유도하는 전술에 능하다.

지배계급과 그 정당의 선거전술이 집중되는 대상은 이른바 지역주민 유권자로 분류되는 미조직 대중이다. 그들의 선거전술에 휘말린 미조직 대중은 자기의 계급적 요구에 눈을 감아버리고 엉뚱하게도 지배계급의 정당이 내세운 후보를 지지하게 된다. 선거국면에서는 조직대중의 역량이 분산될 뿐 아니라, 조직대중에 비해서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미조직 대중이 선거판에 나서게 되므로, 선거결과는 보나마나 미조직 대중의 다수투표에 의해서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선거전술과 더불어 선거전을 좌우하는 또 다른 숨겨진 요인은 제국주의세력의 선거개입공작이다. 제국주의세력은 자기에게 예속된 정치세력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선거전을 자기의 의도에 맞게 끌어간다.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지배계급 내부의 여러 정파들이 어지럽게 이합집산하는 난장판 뒤에서는 제국주의세력의 은밀한 선거개입공작이 진행된다. 제국주의세력은 자기에게 예속된 신식민지형 권력구도를 개편하는 선거전을 방관하지 않는다.

'지역조사과(ORS)'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의 첩보활동과 비밀정치공작은 비밀에 쌓여있어서 파악할 길이 없지만,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의 첩보활동은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참사관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남(한국)의 노동운동을 "상당히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노동자 파업현장에 자주 나가 보며, 노동운동의 현안들을 본국에 보고하고,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의미 있게 지켜본다는 것이다. (『디지털 말』 2004년 6월 16일) 그것만이 아니라 남(한국)에서 발표되는 여론조사결과를 "낱낱이 수집해서 분석"하고, 민중운동단체, 시민운동단체들을 조사하고, 워싱턴 연구기관의 조사요원이라는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한 정보요원들이 남(한국)에 들어가 첩보활동을 벌인다. (『신동아』 2001년 9월호 관련기사 참조) 주한미국대사관의 국회담당관은 국회에 거의 상주하면서 의원, 보좌관, 당직자를 만나 첩보활동을 벌인다. (『월간중앙』 2004년 4월호 관련기사 참조)

선거전에서 유권자 대중의 지지성향은 지역감정 자극, 대중영합주의, 여론조작, 제국주의세력의 개입공작, 자연발생적 정치감각의 착오, 사회계급의식의 실종 등이 뒤엉킨 복합적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에 비해서, 지배계급과 그 정당의 선거전술, 그리고 제국주의세력의 선거개입공작에 맞서야 하는 진보정당의 대응력은 약하다. 약한 대응력은 미흡한 대처방안을 낳는다.

선거전에서 진보정당의 대응력이 약해지는 결정적인 원인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힘을 결집한 전선이 미조직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데 있다. 지배계급과 그 정당의 선거전술은 미조직 대중과 조직화된 대중이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것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음으로써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힘을 분산, 약화시킨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역량분산은 전선역량의 약화로 직결된다. 선거 때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선이 힘을 쓰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선거를 통해서 자기의 힘을 결집, 축적하지 못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평소에 결집, 축적해온 자기의 힘을 선거를 통해서 시위, 표출하는 것이다. 선거는 결집, 축적의 장이 아니라 시위, 표출의 장이다.

선거과정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단행동은 금지된다. 선거라는 정치행위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힘을 결집하지 못하고 수천만 명의 유권자로 개별화된다. 선거란 사회계급단위의 집단적 정치행동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합법적 통제와 행정적 관리를 받는 개별적 유권자의 정치행위로 변형되는 것이다. 집단적 정치행동에 나설 때 힘을 가질 수 있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개별적 선거권을 가진 지역주민으로 낱낱이 분해될 때, 그들의 힘은 결정적으로 축소되고 제한된다. 개별적 유권자로 분해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선거에서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반면에, 지배계급과 그 정당의 선거전술이 선거국면을 좌우할 만큼 매우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지배계급과 그 정당의 선거전술은 객관정세가 그들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불리하게 뒤바뀔 때, 그러한 정세를 뚫고 나가지 못한 채 실패할 수 있다. 지배계급과 그 정당의 선거전술이 객관정세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실패하여 피지배계급과 그 정당의 후보가 아슬아슬한 표차로 선거전에서 승리한, 흔치 않은 역사적 사례가 그러한 경우이다.

그러나 지배계급의 정당이 선거에서 졌다고 해서 지배계급이 전략적으로 패한 것은 아니며, 반대로 피지배계급의 정당이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피지배계급이 전략적으로 승리한 것도 아니다. 지배계급은 자기의 정당이 저지른 선거실패를 뒤집어엎고 정치적 지배권을 탈환하기 위해 이내 반격에 나선다. 그러므로 만일 선거전에서 어렵사리 승리한 피지배계급과 그 정당이 지배계급의 반격을 진압하지 못하면 새로운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 중남미의 역사적 경험에서 그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위와 같은 논거에서 볼 때, 자본주의사회의 계급독재 아래서 추진되는 선거일정은 민주주의혁명의 수행경로와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러한 선거전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선이 미조직 대중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거일정은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사회의 계급독재 아래서 추진되는 선거일정은 진보정당이 작성한 집권전략의 일정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집권을 방해, 저지하는 지배계급과 그 정당이 작성하고 주도하는 일정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거전의 의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진보정당은 마땅히 진보정치의 견지에서 선거전의 의의를 찾아야 한다.

명백하게도, 진보정치의 견지에서 바라보는 선거전의 의의는 선거전이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경우에 한한다. 선거전이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경우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이다.

첫째, 선거부정이 폭로되거나 선거제도개혁에 대한 강렬한 요구가 전사회적으로 제기되면서 지배계급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폭발하여 대중항쟁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1960년 4월에 일어난 대중항쟁과 1987년 6월에 일어난 대중항쟁이 그러한 경우에 속한다. 비록 민주주의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중도에 좌절하였으나 1960년 4월에 일어난 대중항쟁은 3.15 부정선거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폭발이 전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지배계급을 타격하고 결국 정권을 무너뜨렸다. 1987년 6월에 일어난 대중항쟁도 민주주의혁명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으나, 대통령을 직접선거로 선출하려는 대중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끝내 반대하였던 군부세력의 파시스트적 계급독재를 대중항쟁의 물리력으로 퇴장시키는데 성공하였다.

둘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중항쟁이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해체하였을 때,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과도적 정치거점을 세우게 되는데, 그 거점에 의거하여 민주주의적 총선거가 실시된다. 그러한 선거를 통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새로운 입법부가 구성된다. 새로운 입법부의 구성은 민주주의혁명을 완성단계로 끌어올린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4. 항쟁중심적 집권전략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려면 지배계급에 맞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본주의사회의 계급독재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에 의해서 종식될 수 있으며, 바로 그런 뜻에서 계급독재의 종식은 비평화적으로, 전투적으로 실현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지배계급 내부의 여러 정파들끼리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하지만, 계급독재의 평화적 종식이라는 기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지배계급 내부의 정파들끼리 정권을 교체하는 경우에도 그 정권교체가 언제나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계급독재의 종식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한편으로 하고 지배계급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대 세력의 격렬한 투쟁을 불가피하게 동반한다.

자본주의사회의 계급독재를 종식시키려는 투쟁은 여러 양상으로 일어나지만, 그 본질은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해체하려는 세력과 그 전략거점을 유지하려는 세력의 격돌이다.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은 그것이 오래되어 아무리 낡고 취약하다 해도 자기를 유지, 보전하려는 물리력을 갖고 있다. 지배계급은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해체하려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공격에 맞서 온갖 물리적 수단을 동원하여 완강히 반격한다. 따라서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해체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체제를 세우려면 지배계급의 반격을 능가하는 매우 강력하고 폭발적인 물리력이 요구된다. 사회변혁의 과학에서는 그러한 물리력을 일반적 폭력과 구별하여 혁명적 폭력(revolutionary violence)이라 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격렬한 공방전이 일어나지 않고서,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항쟁을 일으키지 않고서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해체하는 길은 없다. 계급독재의 평화적 종식을 주장하는 견해는 그러한 물리력의 작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인 공상으로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해체하기 위해 벌이는 격렬한 공방전을 대중항쟁(people's uprising)이라 한다. 대중항쟁의 역사를 외면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으며, 대중항쟁의 전망을 배제하고 진보정당의 집권 가능성을 논할 수 없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는 대중항쟁으로 실현되고, 진보정당의 집권도 대중항쟁으로 실현된다.

대중항쟁은 1960년 4월, 1980년 5월, 1987년 6월에 각각 경험한 바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갑오농민전쟁, 3.1운동, 6.10반일투쟁의 역사적 맥락을 계승하는 것이므로, 21세기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대중항쟁이라는 개념은 낯선 것이 아니다. 1894년에 일어난 갑오농민전쟁부터 1987년 6월에 일어난 대중항쟁에 이르는 역사적 경험이 뚜렷이 말해주는 것처럼, 대중항쟁은 민중봉기형태로 전개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의 최고발전단계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를 짓누르는 계급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항쟁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 제37조에서 규정한 것처럼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인민의 기본권이다.

그런데 현행 헌법 전문(前文)에는 식민지지배에 항거한 3.1운동의 대중항쟁과 계급독재의 "불의에 항거한" 1960년 4월의 대중항쟁을 역사적 정통성으로 계승한다고 명시되었는데도, 지배계급은 대중항쟁을 반란 또는 폭동이라고 비난하는 반역사적이고 위헌적인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지배계급은 대중항쟁을 두려워하고 극렬하게 반대할 뿐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대중항쟁을 일으키는 경우 그 항쟁을 유혈적으로 진압하고 파괴한다.

일제식민지시기 이후 오늘까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저항이 민중봉기형태로 발전하지 못하고 제국주의세력과 국내지배계급의 유혈적 탄압에 가로막혀 발전단계 도중에 좌절되었던 대중투쟁의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절과 시련 속에서 겪은 대중투쟁의 역사적 경험을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그 의의를 되새길 때, 그것은 그들이 희생을 무릅쓰면서 투쟁력을 축적, 준비해온 대중항쟁의 전사(前史)로 된다.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대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대중항쟁의 역사에서 두 가지 근본적 요구를 제기하였나니, 그것은 반제적 요구와 계급적 요구이다. 일제식민지시기 대중항쟁의 역사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제기한 반제적 요구는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혁명적 요구였고, 그들이 제기한 계급적 요구는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혁명적 요구였다.

그런데 한국(조선)전쟁 이후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대중항쟁에서 반제적 요구와 계급적 요구를 뚜렷이 제기하지 못하였다. 전쟁 이후 반세기를 넘어서는 대중투쟁사에서 반제국주의민족해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혁명적 요구가 제기되지 못한 까닭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 양대 과업을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혁명에서 제기되는 항쟁중심의 집권전략은 갑오농민전쟁부터 1987년 6월 대중항쟁에 이르는 근 100년의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집권전략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정통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역사적 정통성의 견지에서 보나, 이론적 정합성의 견지에서 볼 때,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은 항쟁중심의 집권전략 이외에 다른 것으로 될 수 없다.

물론 1961년 5월에 일어난 군사정변이나 1979년 12월에 일어난 군사정변에서 경험하였듯이, 소수의 정치세력이 무력정변을 일으켜 집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두 차례의 정변이 대중항쟁의 역사적 정통성을 배격, 파괴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정변중심의 집권전략은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으로 될 수 없다.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은 소수의 정치세력이 무력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는 방식으로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중항쟁으로, 오로지 그러한 항쟁의 전략적 승리로 집권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선거중심의 집권전략이 확산, 수용된 반면, 항쟁중심의 집권전략이 정립, 발전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서도 그러하다. 그 까닭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대중항쟁의 전략적 승리를 한 차례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 거의 민중봉기의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일어났던 1987년 6월의 대중항쟁 이후, 군사독재정권이 점진적, 평화적으로 퇴장하면서 이른바 1987년형 민주주의체제가 성립되자 몰계급적 시민사회개조운동이 선거중심의 정권교체전략을 수용, 확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대중항쟁의 전략적 승리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항쟁중심의 집권전략을 폐기할만한 이론적 근거는 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역사의 발전전망을 제시하고 그 전망을 추구하는 정치역량은, 중산층의 비계급적 요구를 실현하는 비정부기구들(NGOs)의 시민사회개조운동이 아니라 제국주의세력과 국내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변혁운동에서 형성되어왔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사회변혁운동에서 항쟁중심의 집권전략을 추진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1990년대 남(한국)에서 여성운동, 환경운동, 평화운동, 소수자운동, 이주노동자운동, 인권운동, 교육운동, 지역운동, 협동조합운동 등이 활발히 전개되고, 그에 따라 반제국주의민족해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논하는 사회변혁론이 체제합리적이고 계급협조적인 시민사회개조론으로 대체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시민사회(civil society)가 계급사회(class society)를 대체할 수 없듯이, 시민사회개조운동이 사회변혁운동을 대체할 수 없으며, 대체하는 것도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변혁운동에서 제기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적, 계급적 요구는 시민사회개조운동이 제기하는 다양한 비계급적 요구를 배제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러한 요구들까지 자기 안에 수용, 포괄함으로써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지평이 더 넓어지고 그 발전전망이 더 풍부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주의혁명은, 시민사회를 개량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 안에 하나의 발전계기로 내포한다.

시민사회개조론이 사회변혁론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였던 일시적 현상은 1987년형 민주주의체제의 붕괴와 함께 지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다. 시민사회개조운동이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선에서 걸음을 멈춘 오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실질적 민주주의, 진보적 민주주의, 자주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대중투쟁에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치조직으로 건설한 진보정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행진대오를 멈추게 한 저항의 한계를 뚫고 나갈 정치적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 농민대중의 상경투쟁, 서민대중의 연대투쟁이 강화, 발전되는 중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시민사회개조운동을 견인하여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 비정규직차별 반대투쟁, 평택미국군기지확장 저지투쟁을 폭넓은 대중적 기반 위에 올려놓고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정세발전을 생각할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건설한 진보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벌이는 대중투쟁의 한 복판에서 항쟁중심의 집권전략을 정립, 발전시키는 것은 마땅하고 시급한 일이다.

5. 대중항쟁의 동학

대중항쟁의 동학(動學)을 19세기에 출판된 고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쓸모 없는 공식쯤으로 경시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이어져온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항쟁사에 대한 몰이해이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전개하는 21세기 민주주의혁명의 세계사적 보편성에 대한 무지이다.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이,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은 대중항쟁의 동학에 기초한 집권전략이다. 그 집권전략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대중항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정치세력이 집권하는 방도와 경로, 과정과 단계를 밝혀준다.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중항쟁에서 승리하여 집권하는 전략이므로, 대중항쟁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고 전개되는가 하는 문제가 그 집권전략을 인식하는 중심주제로 나선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중항쟁의 동학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 글에서는 시론을 내오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5-1)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은 일련의 단계적 발전과정을 거쳐 대중항쟁으로 나아간다.

대중항쟁의 단계적 발전과정을 단순화하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산발적 방어전이 벌어지는 사회변혁역량의 조직화단계→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선형 대중투쟁이 벌어지는 사회변혁역량의 전선화단계→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략적 대중항쟁이 벌어지는 사회변혁역량의 폭발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회변혁역량의 조직화단계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투쟁력을 결집, 축적, 장성시키는데, 그 과정은 구체적 실정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로 2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 이 시기에는 민주노동조합, 민주농민회 같은 진보적 성격을 띈 각종 대중조직들이 생겨나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역량이 단위별, 지역별로 조직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결성한 대중조직들은 지배와 착취, 억압과 수탈, 기만과 사기,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지배계급에 맞선 산발적 저항에 나선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산발적인 저항이 지배계급의 집요하고 야만적인 탄압으로 좌절할 때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원한과 분노가 덧쌓여간다.

둘째, 사회변혁역량의 전선화단계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정치조직인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자기의 분산된 힘을 결집하여 전선을 형성한다. 이 시기의 특징은 사회변혁역량의 조직적 통합이라 할 수 있다. 범국민운동본부, 범국민대책위원회 같은 명칭을 든 대규모 공동투쟁체들이 속속 세워지는 가운데 이른바 상설적 연대체가 건설되는 것이다. 특히 노동계급은 산별노조를 결성함으로써 자기의 조직역량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로써 전선의 계급적 중심에 서게 된다. 요즈음 민주노총이 자기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는 이른바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내부혁신요구를 제기한 가운데, 기업별 노조가 산별노조로 확대, 발전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덧쌓여가는 원한과 분노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계급적 대립을 격화시키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분산된 힘을 결집하는 전선을 구축하고, 그 전선에서 수많은, 크고 적은 대중투쟁이 벌어지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연합한 상설적 연대체가 건설된다. 상설적 연대체와 진보정당은 전선에서 벌어지는 대중투쟁의 현장에서 상호결합관계를 강화시키고 자신을 단련한다.

올해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저지하는 범국민운동본부와 평택 미국군기지확장을 저지하는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수만 명 단위의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한편, 상설적 연대체를 건설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민주노총이 한국(조선)전쟁 이후 처음으로 산별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한 일련의 움직임은, 사회변혁역량의 전선화를 촉진하는 중대한 사변이다.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전선을 구축하는 것은 평온하게 진행되는 평화적 추진과정이 아니라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비평화적 투쟁과정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분산된 힘을 결집한 전선이 대중항쟁의 전략거점이라면, 대중항쟁은 민주주의혁명을 가장 힘있게 떠밀어 가는 급진적인 전략형태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전선을 구축하지 못한 조건에서 일어난 대중항쟁은 민주주의혁명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며, 진보정당을 건설하지 못한 조건에서 일어난 대중항쟁은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을 수행할 수 없다.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지닌 조직역량의 강약정도에 따라서 전선형 대중투쟁의 진퇴와 승패가 결정되는데, 그러한 투쟁이 진행되는 기간은 대체로 약 10년 동안 이어진다. 이 시기에 주객관적 조건이 성숙되는 경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힘을 결집한 전선은 백만 명에 이르는 그야말로 '태풍급' 대중투쟁을 일으키게 되며, 근로대중 가운데서 가장 잘 조직된 사회계급인 노동계급 역시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광역적 총파업투쟁을 벌이면서 전선형 대중투쟁을 이끌어 간다.

또한 이 시기에 나타나는 특징은 사회변혁운동의 핵심세력이 등장하여 상설적 연대체의 지도집행력, 진보정당의 구심력이 형성되는 것이다. 사회변혁역량의 전선화단계에 이르러 진보정당은 비로소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을 정립, 발전시키기 시작한다.

여러 정황들을 가늠해볼 때, 오늘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사회변혁역량의 전선화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사회변혁역량의 폭발단계에서 노동계급은 총파업투쟁에 나서고, 근로대중은 대중투쟁에 나선다. 투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경찰력과 충돌하면서 그들의 투쟁은 차츰 폭동화, 광역화되고 결국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이 폭발한다.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이 폭발하려면 경찰력의 유혈적 진압과정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총궐기시키는 기폭제적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김주열 열사의 희생이 1960년 4월 대중항쟁의 기폭제적 사건이었고, 이름 없는 광주민중들의 희생이 1980년 5월 대중항쟁의 기폭제적 사건이었으며, 이한열 열사의 희생이 1987년 6월 대중항쟁의 기폭제적 사건이었다.

기폭제적 사건을 계기로 하여 계급독재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직접적, 집중적으로 폭발하면 정권을 퇴진시키려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이 일어나는데, 그 대중항쟁의 폭풍 속에서 진보정당은 집권투쟁에 나서게 된다. 진보정당이 대중항쟁과정에서 벌이는 집권투쟁에 관한 연구는 공백으로 남아있다.

해당시기의 주객관적 정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중항쟁은 대체로 한 두 달 정도의 단기간에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5-2) 대중항쟁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지배계급은 '선동분자'들이 대중항쟁을 일으킨다는 왜곡선전을 자꾸 퍼뜨리지만, 대중항쟁은 대중선동(popular agitation)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일 대중항쟁이 대중선동으로 일어난다면, 지금까지 수 십 차례 더 일어났을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항쟁은 대중선동에 의해 일어나는 충동적이고 맹목적인 폭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결집하고 축적한 힘을 폭발하는 조직적이고 합목적적인 투쟁이다.

대중항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독재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할 때 일어나므로, 대중적 분노의 폭발이 대중항쟁의 직접적 계기라고 말할 수 있다. 대중적 분노가 대중항쟁을 일으키는 사상심리적 요인이라면, 대중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객관적 요인은 사회경제적 상황에 있다.

대중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회경제적 상황이란 민생파탄이 전면화되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존권마저 짓밟히는 상황을 뜻한다. 오늘 남(한국)사회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이 1천만 명에 이른 것은 민생파탄이 전면화됨으로써 대중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조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지배계급은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감소와 수출둔화, 높은 실업률과 비정규직 확대, 부익부 빈익빈의 소득양극화 현상이 서로 맞물리면서 대파국이 다가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안에 떠는 지배계급이 대파국을 피해보려고 기껏 찾아낸 생존전략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재빨리 체결하여 제국주의독점자본을 무제한적으로 불러들이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졸속 체결과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무제한적 유치는 지배계급의 생명을 얼마동안 연장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이미 민생파탄으로 고통을 겪는 그들의 피땀을 더욱 잔혹하게 쥐어짜는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5-3)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일으킨 대중항쟁은 통치기구, 국가기구라고 부르는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공격하여 지배체제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대중항쟁은 지배체제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공격전술을 취한다. 지배체제의 기능마비는 그 체제의 해체로 이어진다.

대중항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지배계급의 반격을 진압하고 지배체제의 기능을 마비시킬 때까지 항쟁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대중항쟁의 지구력은 투쟁역량을 조직하고 전개하고 집중시키는 전술에 의해서 담보된다.

5-4)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로, 그들의 집권의지를 관철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란 그들이 자신의 정권을 세우려는 정치적 의지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는 그들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의 진보정치와 상설적 연대체의 대중투쟁에 의해서 합목적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과 근로대중의 대중투쟁은 저항의지를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집권의지를 벼리는 진보정치로 발전되어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저항의지를 집권의지로 바꾸는 것은 상설적 연대체이다.

대중항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집권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문제로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의 정권을 세우려는 강렬한 집권의지를 가져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집권의지가 없다면, 그들이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을 일으킨다 해도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봄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중항쟁은 저항의지의 격렬한 폭발이었지만, 프랑스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집권의지가 없었다.

대중항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집권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이 자기의 정당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데서 드러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를 실현하는 것은 그들의 정치조직인 진보정당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는 진보정당을 통해 표출되고 실현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중항쟁은 그들 자신의 정치조직 곧 진보정당에 의해서 민주주의혁명의 집권투쟁으로 전화된다.

6. 진보정당의 집권경로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는 민주주의혁명의 발전경로와 떼어놓을 수 없다. 진보정당의 집권은 민주주의혁명의 전략적 승리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혁명의 발전경로에서 전망하는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는, 나라 안팎에서 조성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경로를 밟아갈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은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를 일정하게 변형시킬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권경로의 기본축까지 완전히 뒤바꿔놓지는 못한다.

당위성을 지적하는 말이지만, 진보정당은 자기의 집권경로를 밝혀주는 과학적인 집권전략을 내와야 하며, 자기의 집권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정치역량을 가져야 한다.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를 논할 때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집권전략을 수행하는 주체적 요인 곧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정치역량이다. 여기서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진보정당과 상설적 연대체의 결합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정치역량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선역량과 결합되어야 천만 배로 강해질 수 있다. 진보정당의 집권은 진보정당만의 독자적 정치역량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과 상설적 연대체의 결합관계에서 형성되고 표출되는 최강의 위력적인 정치역량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정치역량이야말로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러므로 진보정당의 정치역량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선역량과 결합시키는 것은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를 좌우하는 사활적 과제이다. 진보정당은 자신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상설적 연대체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한 치의 틈도 벌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진보정당과 상설적 연대체의 결합관계를 논할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결집한 상설적 연대체는 민주주의혁명의 전선적 임무를 수행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건설한 진보정당은 민주주의혁명의 당적 임무를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진보정당의 정치역량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선역량과 결합하여 민주주의혁명의 당적 임무를 수행할 때, 그때 비로소 자기의 집권전략을 정치일정에 올려놓을 수 있다.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는 진보정당 안팎에서 논하면서 다듬어나가야 할 중요한 연구과제인데, 이 글에서는 진보정당의 집권경로를 정치적 상상력으로 기술한 시나리오형태를 내오는데 그칠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의 집권경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6-1)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

오늘 남(한국)사회의 현실에서 드러나는 것은, 사회개량의 물질적 기반이 허물어지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삶이 황폐화되는 현상이다. 이것을 극단적 빈부격차라 한다. 자기들에게도 피해를 주지나 않을까 해서 지배계급마저 우려하는 이른바 사회적 양극화는 사회개량의 물질적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주목하는 것은,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휩쓴 뒤로, 제국주의세력의 신자유주의세계화 공세가 남(한국)에 집중되면서 사회개량의 물질적 기반의 붕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개량의 물질적 기반의 붕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주어졌던 사회적 분배의 적은 몫마저 도로 빼앗아간다.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지배계급에 대한 환멸과 증오를 품게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전선형 대중투쟁에 나설 때, 지배계급에 대한 그들의 환멸과 증오는 계급독재에 맞서 싸우는 투쟁력으로 전화된다.

6-2) 정치권의 혼란과 지배체제의 균열

사회개량의 물질적 기반에 얹혀 집권에 성공하였던 정권은 그 기반이 허물어지면서 무기력증에 빠진다. 사회개량정책에 매달렸던 보수정당과 보수정권에게 몰락위기가 찾아오지만, 사회변혁의 강령을 내걸은 진보정당은 변혁전망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다. 반동정당은 그러한 상황을 틈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판단을 교란, 농락하면서 자기의 지지기반을 확대한다.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것은 그러한 정세의 반영으로 해석된다.

반동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한다. 집권한 반동정당은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여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대중의 환심을 사려는 일련의 술책을 펴지만, 그러한 술책은 통하지 않는다. 반동정당의 집권으로 계급독재의 야만적 몰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계급독재에 맞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결이 격화된다.

다른 한편, 반동정당의 집권은 집권연장에 실패한 보수정당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반동정당과 보수정당의 충돌은, 계급독재에 맞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결과 맞물리면서 정치권의 혼란과 지배체제의 균열을 불러온다. 반동정당의 집권은 이처럼 지배체제의 균열, 정치권의 혼란, 계급적 대결의 격화를 불러온다는 점에서, 그들 손으로 계급독재의 무덤을 파는 정치적 자살행위로 된다.

6-3) 계급적 대결의 격화와 대중항쟁의 폭발

계급독재에 맞서 전선으로 결집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저항의지를 불태우면서 전선형 대중투쟁에 나서고, 진보정당은 의회 안팎에서 정치투쟁을 진공적으로 벌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집권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전선형 대중투쟁이 격화되고 장기화되면, 중요산업을 틀어쥐고 있던 제국주의독점자본은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떠나게 되며,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연쇄적 철수는 가뜩이나 위태로운 경제체제를 결국 재기불능의 마비상태로 몰아넣는다. 경제체제가 마비되면 생계보장을 절박하게 요구하는 군중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선형 대중투쟁이 민중봉기형태를 띄게 된다. 지배계급이 전선형 대중투쟁을 유혈적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대중항쟁이 폭발한다. 대중항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6-4) 지배계급의 반격과 제국주의세력의 개입

지배계급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항쟁공세에 맞서 완강히 반격할 때,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에서 치열한 물리적 공방전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세력의 전략거점이 항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공격을 받는다. 제국주의세력이 자기의 전략거점을 보호하고, 수세에 몰린 지배계급을 지원하기 위하여 개입한다.

북(조선)이 제국주의세력의 개입을 저지하려고 나서면서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높아져 준전시상태가 조성된다. 항쟁에 나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선제핵공격작전을 가동하여 급박한 전쟁위험을 조성하면서 지배계급을 지원하는 제국주의세력에게 분노하게 되고, 대중항쟁은 반제적 성격을 띄게 된다. 그로써 노동계급의 계급적 요구는 반제적 요구와 결합된다.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업을 수행해온 민주주의혁명은 준전시상태에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과업을 수행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6-5) 낡은 지배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정부의 수립

대중항쟁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요구와 반제적 요구가 사회변혁의 단일한 요구로 통합되면서 대중항쟁은 명실공히 민주주의혁명으로 전화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대중항쟁을 밀고 나아가 지배체제를 마비시키고 마침내 민주주의혁명의 전략적 승리를 쟁취한다.

진보정당은 전선역량이 계급독재의 전략거점을 해체한 뒤에 과도적 정치거점을 내온다. 과도적 정치거점에 의거한 민주주의적 총선거가 실시되고 그 선거결과에 따라 새로운 입법부가 구성된다. 새로운 입법부에서 제정한 반제자주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법에 의거하여 대외예속성과 관료독재와 단절된 새로운 정부가 세워진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폭적인 지지와 참여 속에서 새로운 정부는 이미 승리한 민주주의혁명을 더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나간다.

7. 글을 맺으며

언론보도에 따르면, 1998년에 12만3천 명이었던 남(한국)의 부유층 인구는 2008년에는 27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데, 그들 27만 명이 움켜쥔 유동자산총액은 2천483억 달러가 되고, 평균자산은 91만2천 달러가 될 것이라고 한다. 다른 한편에서, 지배계급이 이른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차상위계층으로 분류하는 빈곤인구는 1천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미 인구의 20%가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이른바 참여민주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사회개량에 손을 대었던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에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비난과 증오가 쏟아지는 원인은, 빈곤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극단적 빈부격차에 있다. 5.31 지방선거 유세과정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들은 생계위협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비난이 두려워 그들의 생활현장에는 가까이 가지 못하였다. 집권당의 지방선거 참패는 지배계급에게 쏟아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비난과 증오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입증하였다.

빈곤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은, 1987년 6월에 일어난 대중항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1987년형 민주주의체제에서 그 동안 파행적으로 추진해오던 사회개량이 결국 종말을 고했음을 뜻한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1987년형 민주주의체제가 차츰 허물어지는 것은 명백한 현실이다.

1987년형 민주주의체제의 붕괴는 열린우리당의 퇴장을 재촉하고 있으나, 그들의 퇴장이 민주노동당의 집권으로 이어지기는커녕 한나라당이 집권할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는 점에서 진보정치는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도전을 넘어 목격하는 또 하나의 현실은, 지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힘있게 밀고 나가는 3대 당면투쟁과 3대 대중투쟁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투쟁, 비정규직차별 반대투쟁, 평택미국군기지확장 저지투쟁이 3대 당면투쟁이라면,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 농민대중의 상경투쟁, 서민대중의 연대투쟁은 3대 대중투쟁이다. 이러한 대중투쟁은, 이름 없는 열성당원들과 활동가들이 평소에 현장을 찾아가고 골목을 누비면서 끊임없이 조직사업, 정치사업을 밀고 나간 노력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다.

3대 당면투쟁과 3대 대중투쟁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저항의 한계를 넘어서 전선역량을 더욱 강고하게 단련시키고,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를 힘있게 떠밀어 주며, 대중항쟁의 거대한 폭발력을 축적하고, 민주주의혁명의 집권전략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간다.

진보정치의 전진, 민주주의혁명의 승리로 표현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위대한 미래가 그 길에서 밝아오고 있다. (2006년 7월 16일 작성)

* 이 글은 민주노동당 정책이론지 '이론과 실천' 2006년 8월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