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관계의 변화와 '중국위협론'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중미관계의 변화요인
3. 중국 시장사회주의의 빛과 어둠
4. 중국이 겪는 재앙과 미국의 제국주의개입정책
5. 중미관계의 자극요인

6. '중국위협론'의 실상과 허상
7. '중국위협론'과 미일동맹군의 무력증강
8. 글을 맺으며

1. 글을 시작하며

중국과 미국의 국가관계는 양국관계의 범위를 넘어서 아시아정세는 말할 것 없고 세계정세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그러한 중미관계를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글머리에서 짚고 넘어가는 것은 중미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어떤 시각을 갖느냐에 따라 실체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제정세를 읽는 시각은 다종다양한데, 이 글에서 선택한 특정한 시각은 이념적 시각(ideological perspective)이다. 이 글에서 말하는 이념적 시각이란, 국제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정치이념(political ideology)을 통해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념적 시각에 따르면, 국가관계(international relation)는 사회주의와 제국주의라는 두 개의 상충적인 정치이념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 말하자면, 중미관계를 사회주의 중국과 제국주의 미국 사이에서 형성된 국가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념적 시각은 국가조직 자체의 본질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관계의 본질도 정치이념을 통하여 인식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반면, 탈이념적 시각에서 국가관계를 논할 때는 대체로 두 나라의 국가경제지표나 군사력 등을 평면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하는데, 이념적 시각에서 보면 그러한 비교와 분석은 국가관계의 겉에 드러난 몇 가지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글에서 중시하는 것은 중미관계의 현상분석이 아니라 그 관계의 본질인식이다.

이념적 시각에서 살펴보면, 중국의 국가경제지표나 군사력 등은 중국이 추구하는 사회주의정치이념에 따라서, 그리고 중국이라는 사회주의국가에 의해서 실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미국의 국가경제지표나 군사력은 미국이 추구하는 제국주의정치이념에 따라서, 그리고 미국이라는 제국주의국가에 의해서 실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념적 시각에서 볼 때, 중미관계를 단순히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형성된 국가관계로 보는 탈이념적 시각은 너무 제한적이어서 국가관계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다. 그러한 제한성 때문에 탈이념적 시각은 '중국위협론'을 제기하는 미국이 중국 못지 않게 국력증강을 다그치는 인도에 대해서는 왜 '인도위협론'을 제기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주지 못한다.

2. 중미관계의 변화요인

모든 관계에는 힘이 작용한다. 힘의 작용이 관계를 결정한다. 국가관계도 예외로 되지 않는다.

국가관계에 작용하는 힘을 국력(national power)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국가주권이 미치는 범위 안에 형성된 사회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조직하고 동원하는 국가조직의 물리적인 힘을 국력이라 한다. 흔히 국력이라고 부르는 물리력은 정치, 군사, 경제부문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그 세 부문의 물리력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를 강국(power)이라 하고, 절대적으로 강한 나라를 초강국(superpower)이라 한다.

정치, 군사, 경제부문에서 복잡하게 얽혀있는 국가관계는 적대관계, 갈등관계, 협력관계, 동맹관계 등 네 유형으로 분류된다. 적대관계는 이념적 적대성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충돌가능성이 매우 높은 국가관계이고, 동맹관계는 이념적 일치성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충돌가능성이 거의 없는 국가관계이다. 갈등관계는 충돌가능성이 없으나 이념적 갈등요인이 존재하고, 따라서 서로 갈등하는 국가관계이며, 협력관계는 이념적 갈등요인이 존재하나 일단 그것을 접어두고 서로 협력하는 국가관계이다.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이,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는 적대관계이다. 그 둘 사이에는 이념적 적대성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충돌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시기 중국과 미국의 적대관계가 그러하였다. 1950년대에 중국과 미국은 한국(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벌였으며 대만문제로 날카롭게 맞선 적대관계에 놓여있었다. 그 적대관계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이념적 대결구도 위에 형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중국과 미국의 적대관계에 해빙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초에 제국주의 미국은 사회주의진영을 분열, 약화시키기 위하여 이른바 '해빙정책(detente policy)'을 들고 나왔다. 그것은 소련과 중국이 이념갈등과 국경분쟁에 휘말려든 국제정세의 변화추세에 편승한 미국이 사회주의진영을 분열, 약화시키기 위해 취한 공세정책이었다.

1972년 2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 1913-1994)이 중국을 찾아가 상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 중국과 미국은 국가관계를 비적대화하기 위한 정치회담을 계속한 끝에, 1979년 1월 1일 미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대만 주둔 미국군을 철군하며, 대만과 맺은 공동방위조약을 철폐하는 조건으로 국교를 맺었다.

제국주의 미국이 사회주의 중국과 국교를 맺은 까닭은, 중국, 소련, 미국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자 중국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소련을 견제하는 한편,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고 타산하였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사회주의 중국이 제국주의 미국과 국교를 맺은 까닭은, 사회주의노선에서 이탈한 수정주의세력이라고 규정한 소련을 고립, 압박하는 한편, 미국의 제국주의지배 아래에 있는 자기 영토의 일부인 대만을 되찾아 중국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하려고 타산하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미 국교수립에는 두 나라에게 '공동의 적'으로 다가선 소련을 고립, 압박하려는 정치적 의도, 그리고 대만문제와 베트남문제가 강하게 작용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과 국교를 맺었다고 해서 중국이 사회주의를 포기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중미국교 수립이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이념적 대립구도를 무너뜨리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중미 두 나라가 국교를 맺었으나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이념적 대립구도가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기존의 적대관계가 해소된 것도 아니었다.

중국과 미국을 적대관계에서 벗어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은, 중미국교 수립이 아니라 중국의 시장개방(market-opening)과 경제개혁(economic reform)이었다. 중국의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은 미국의 강제력에 의한 타율적 변화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한 자율적 변화였다. 물론 중미국교 수립이 중국에게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의 기회를 안겨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이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의 결정적 조건은 아니었다.

중국이 자국의 시장을 열어놓으면서 경제개혁에 나서기 시작한 때부터 중미관계는 이른바 '전략적 협력(strategic cooperation)'을 향하여 조금씩 진전되었다. 이러한 관계변화는 중미관계를 지배해왔던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이념적 대결구도가 차츰 해소되면서 사회체제의 적대성이 완화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중미관계의 변화과정을 논할 때, 중국의 변화와 더불어 살펴보아야 할 것은 미국의 변화이다. 1970년대 후반에 터져 나온 국제석유파동과 달러화 가치폭락으로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자, 미국은 그 체제를 지탱하기 위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대량수탈의 고삐를 더욱 힘껏 조이는 한편, 세 대륙 곳곳에 세워놓은 친미예속정권들을 앞세워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폭력적으로 짓밟았다. 그에 따라 1980년대 초반에 일어난 현상들은, 이른바 '레어거노믹스(Reaganomics)'로 경제정책을 바꾸고, 중남미와 아시아의 사회주의운동을 무력으로 파괴하는 이른바 저강도전쟁(low-intensity warfare)을 도발하며, 레이건-대처-나카소네로 이어진 제국주의삼각동맹을 강화하고, 한(조선)반도에서 예고 없는 선제핵공격(unwarned preemptive nuclear attack)을 상정한 세계 최대 규모의 침략전쟁연습을 다그친 것 등이다. 10.26사태로 박정희 극우반동정권이 무너진 정치적 공백기를 틈타서 전두환을 중심으로 군사정변을 일으킨 극우군부세력이 정권을 탈취하고 광주민중항쟁을 유혈진압하였던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의 국제정세가 이처럼 제국주의 미국의 주도에 따라 극우반동화되고 있었던 것과 달리, 중미관계는 차츰 적대성을 완화해 가고 있었다. 세계적 범위에서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이 더욱 날카롭게 전개되었던 1980년대에 유독 중미관계에서만 적대성이 완화되는 특이한 현상이 생겨난 까닭은, 중국이 반제사회주의(anti-imperialist socialism)에서 돌아서서 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중국은 1978년 12월부터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시작하였는데, 체제변화의 내부충격을 줄이기 위하여 1984년 10월부터 태평양 연안 대도시를 중심으로 경제개혁을 밀고 나갔고, 1988년 9월부터는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전국적 범위로 넓혀나갔다. 그때로부터 18년이 흐른 오늘 중국의 시장사회주의는 성숙기에 이르렀으며, 따라서 중미관계에서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이념적 대결구도가 해소되면서 새로운 요소가 생겨나게 되었다.

주목하는 것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형성된 새로운 관계에는 갈등과 협력이라는 두 가지 새로운 요소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갈등이란 이념적 갈등이 아니라, 비이념적 갈등이다. 비이념적 갈등이란 갈등이 전면화, 영구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조건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이다. 비이념적 갈등관계는 조건적 협력관계와 모순되지 않는다.

오늘 중미관계에는 비이념적 갈등과 조건적 협력이 뒤엉켜 있다. 중미 두 나라는 정치부문과 군사부문에서 비이념적 갈등관계를 형성하였고, 경제부문에서는 조건적 협력관계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이념적 대결구도가 사라지고 비이념적 갈등관계와 조건적 협력관계가 형성되자, 두 나라는 서로를 잠재적 적국(potential adversary)으로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를 잠재적 적국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장 뚜렷이 드러난 곳은 정치적, 군사적 갈등을 몰고 온 대만문제이다. 대만해협의 군사적 위기가 높아졌을 때, 두 나라는 고위급 군사회담을 열어 위기를 넘겼으면서도(『연합뉴스』 2004년 2월 11일), 중국은 중미 사이에 군사적 비상연락망(military hotline)을 설치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4월 30일)

중국과 미국은 군사부문에서 비이념적 갈등요소를 안고 있으면서도, 1997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씩 군사협의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6년도 중미 군사협의회는 6월 8일 베이징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조리와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가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8일) 그 협의회에서 중국은 2006년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괌 부근에서 미국 태평양군사령부가 실시하는 10년이래 최대의 군사훈련인 '용감한 방패 2006'에 참관단을 보내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9일) 중국언론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은 앞으로 중러합동군사훈련에 자국의 참관단을 보내는 것을 조건으로, 먼저 중국에게 태평양군사령부의 군사훈련에 참관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이라 한다. (『인터내셔널』 2006년 6월 10일)

물론 중국과 미국이 해마다 군사협의회를 개최하고 중국이 미국군 군사훈련에 참관단을 보낸다고 해서 군사부문의 비이념적 갈등요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미관계에 들어있는 비이념적 갈등요소는 유동적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기관들과 연계된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중국이 자기의 국력을 강화하고 미국은 중국의 국력강화를 저지할 것이므로 이제까지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협력관계 안에서 일정하게 완화되었던 적대성이 2020년까지 다시 커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연합뉴스』 2005년 1월 14일)

3. 중국 시장사회주의의 빛과 어둠

1993년 11월 중국은 시장사회주의경제체제를 완성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중국이 1979년부터 시장사회주의로 돌아서기 시작하여 20여 년 동안 점진적으로 바뀌어온 과정은 산업생산력이 고도로 성장해온 과정이었다. 중국은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9.6%에 이르는 고도성장의 길을 달려왔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22일) 2003년에 중국은 전세계 석탄소비량의 33%, 철강소비량의 27%, 알루미늄소비량의 25%, 시멘트소비량의 40%를 차지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3월 9일)

그러나 고도성장의 뒤쪽에는 취약성과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인구증가와 농업생산력 정체에 따라 식량자급체제가 무너질 위험(『에이에프피』 2004년 3월 11일)이 있으며, 전력소비가 12%로 늘어나는 반면 전력생산은 9%밖에 늘어나지 않는 전력난의 위험(『신화통신』 2004년 2월 25일)이 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성장속도가 가파르게 이어지는 경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30년 이전에 미국을 넘어서서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언론들은 중국이 앞으로 13년 안에 경제부문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세계 최대 경제강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25일)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밀고 나가기 시작할 때, 중국공산당은 인민이 빈부격차를 모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주의평등론을 접고, 누구든지 먼저 부자가 되면 그 혜택이 다른 사람에게도 돌아간다는 이른바 선부론(先富論)을 내세웠다.

그러나 오늘의 중국사회는 선부론이 오류였음을 현실로 입증하고 있다. 중국이 시장사회주의로 돌아서고 사회적 생산력을 가파르게 끌어올린 고도성장의 과정은 선부론이 실현되는 과정이 아니라 중국사회에서 사회적 빈부격차와 계급적 착취와 차별이 생겨나 사회계급관계가 대립적으로 바뀌어 가는 퇴행과정이었다.

사회계급관계의 대립적 전환은, 중국공산당이 사회적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점진적으로 포기하고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퇴행적 결과이다. 중국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대형 국유기업 7만7천600 개를 4만2천 개로 줄였고, 중소 국유기업 24만5천 개를 14만9천 개로 줄였으며, 2008년까지 대형 국유기업 1만 개를 더 줄일 것이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21일) 2003년 현재 2천400억 위안이나 되는 빚더미에 짓눌린 국유기업 2천500여 개와 거기에 속한 노동자 510만 명은 파산상태에 있으며 실업률은 7%에 이른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21일)

반면에, 사유기업은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1989년에 9만581 개였던 사유기업이 2004년에는 344만 개로 폭증하였고, 사유기업의 생산은 1989년 422억 위안에서 2003년 말 2조83억 위안으로 48배나 늘어났다. (『연합뉴스』 2005년 2월 4일)

중국에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연합뉴스』 2004년 2월 26일), 농촌에서 빠져 나온 떠돌이 노동자(打工仔) 1억여 명이 도시에 몰려들었고, 농촌 실직자는 1억5천만 명이나 되는데 그 수가 해마다 600만 명씩 늘어나고 있고(『연합뉴스』 2003년 9월 29일), 중국 인구 가운데 하루 생계비가 1달러도 채 안 되는 극빈인구가 2억 명이나 된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15일)

다급해진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는 직장을 얻지 못한 대학졸업자들을 농촌에 보내는 유인정책을 취하고 있으나(『연합뉴스』 2006년 6월 2일), 그 정책의 성과는 미지수이다.

오늘 중국에서는 사회계급관계가 대립적으로 바뀌어 가면서 심각한 파열현상이 곳곳에서 일어고 있다. 임금체불, 정리해고, 토지강제환수, 도시철거, 이주민 보상문제 등으로 폭발한, 이른바 '군체성사건(群體性事件)'이라 부르는 군중폭동이 그것이다. 군중폭동은 1993년에 1만여 건이었던 것이 2004년에는 7만4천 건으로, 2005년에는 8만7천여 건으로 급증하였고(『연합뉴스』 2006년 3월 2일), 노동쟁의는 1995년 3만3천 건, 12만3천 명이었는데 10년 뒤인 2006년에는 18만 건, 60만 명으로 늘어났다. (『연합뉴스』 2006년 4월 5일)

이처럼 사회계급관계가 대립적으로 바뀔수록 사회적 불안정이 수습하지 못할 만큼 커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오늘 중국사회에서 불거져 나온 불안정한 현상들은 다음과 같다.

중국에서는 2003년 말 현재 마약중독자가 105만3천 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청년층 마약중독자가 72.2%에 이르렀다. (『연합뉴스』 2004년 3월 2일) 중국정부당국은 2005년 1월부터 아홉 달 동안 이른바 '마약퇴치 인민전쟁(禁毒人民戰爭)'을 벌여 마약범죄 7만4천419 건을 적발하고, 마약범죄 용의자 4만9천97 명을 체포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10월 28일)

마약범죄만이 아니라 인신매매범죄도 확산되고 있다. 2001년부터 이태 동안 인신매매에 걸려든 여성과 어린이는, 공안에 적발된 경우만 해도 4만2천215 명이나 되었다. (『연합뉴스』 2004년 3월 2일) 거기에 더하여, 자살인구는 세계 자살인구의 4분의 1에 이르는 연간 25만여 명이다. (『연합뉴스』 2003년 11월 20일)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불안정을 해결해야 할 중국공산당과 중국정부가 부정부패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사법당국이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다섯 해 동안 적발한 부패관리는 4만5천여 명, 부패관리들로부터 되찾은 환수재산은 2백12억 위안(약 3조1천800억 원)이고, 그 가운데 환수재산 규모가 100만 위안(1억5천만 원) 이상이 되는 대형부패사건이 5천여 건, 부패한 장관급 고위관리가 20명이 넘으며, 1990년 이후 관리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 때문에 해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3.2-16.8%를 차지하는 1조 위안(1백50조 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 (『시사저널』 제738호 2003년 12월 18일) 2003년 상반기 여섯 달 동안 부정부패에 휘말린 중국공산당원 1천200여 명이 자살했고, 당원 8천 명이 해외로 달아났으며 정부관료와 고위간부 6천500여 명이 실종되었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30일) 놀랍게도, 사유기업을 틀어쥐고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신흥자본가들 가운데 3분의 1이 중국공산당원이다. (『연합뉴스』 2005년 2월 11일)

의료, 교육, 주택, 고용에서 중국인민들이 겪는 사회적 빈부격차, 계급적 착취와 차별,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극성을 부리는 집권세력의 부정부패는 시장사회주의가 몰고 온 병폐로서 21세기의 중국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21세기 중국사회에 밀어닥친 그러한 병폐를 극복할 전망과 능력이 없다는 데 있다.

중국공산당은 시장사회주의의 병폐를 극복하는 길을 맑스주의정치이념(Marxist political ideology)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2004년 1월 중국공산당은 당중앙위원회의 지도에 따라 당간부학교, 교육부, 사회과학원, 중앙편집번역국이 참여하는 '맑스주의 기초연구와 건설공정'을 앞으로 10년 동안 추진하기로 결정하였고, 2005년 12월 중국 최고의 연구기관 사회과학원에 맑스주의연구원을 개설하였으며, 2006년 5월 광시(廣西)대학에 맑스주의경제학연구소를 개설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5일)

그러한 이념적 움직임에 맞서, 중국공산당 안에서는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더욱 심화함으로써만 시장사회주의의 병폐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더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5일) 명백하게도, 오늘 중국공산당 안에서는 시장사회주의가 맑스주의정치이념을 능가하고 있다. 그 까닭은 중국사회가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의 길에서 돌아설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전면화하면서 시장사회주의를 적극 추구하는 중국공산당이 맑스주의정치이념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는 것으로는 시장사회주의가 몰고 오는 병폐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며, 시장사회주의노선에 따라 국력팽창에 힘쓸수록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의 병폐는 덧쌓여갈 것이며, 병폐누적과 국력팽창의 모순은 결국 중국공산당의 통치력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병폐누적과 국력팽창의 모순이 심화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국주의 미국이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전면화하고 있는 중국을 멀찌감치 바라보고만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중국이 겪는 재앙과 미국의 제국주의개입정책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는 2006년 2월 현재 중국 노동자 2천400만 명을 고용한 55만8천여 개의 외국기업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미국의 경제지 『포천(Fortune)』이 뽑은 세계 500대 다국적기업들 가운데 450개 기업이 들어있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22일) 중국에 들어가서 기업활동을 하는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cooperation)들이 제국주의독점자본(imperialist monopoly capital)의 기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04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200대 수출기업들 가운데 외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9.5%, 국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5.5%로 나타났고, 500대 수입기업들 가운데 외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4.0%이고, 국유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1%이다. 외국기업의 수출액은 1천35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0%가 늘어났고, 전체 중국 수출총액의 30.9%를 차지했다. 외국기업의 수입액은 3천600억 달러로 전년 대비 40%가 늘어났고, 전체 수입총액의 42.4%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6일) 이제 중국경제는 외국자본, 외국시장, 외국기술에 의존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중국의 시장개방은 금융시장개방에서 완성된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중국의 금융시장을 지배하여야 시장개방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즈음 중국의 비금융부문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는 줄어드는 데도, 중국의 은행, 보험, 증권에 외국자본이 몰리는 것은 금융시장개방이 완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중국언론보도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중국에 들어간 외국자본은 724억600만 달러(69조2천217억 원)인데, 그 가운데 금융시장에 들어간 자본은 16%인 118억 달러였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9일)

이처럼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시장을 열어주고 사회주의국유화를 자본주의사유화로 바꾸는 경제개혁을 추진해온 중국에서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사회적 생산력이 크게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을 불러들여 자국의 생산력을 크게 발전시킨 대신 두 가지 재앙을 겪고 있다. 오늘 중국을 뒤흔드는 사회적 불안정은 그 두 가지 재앙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첫째 재앙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시장지배와 이윤수탈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중국에서 하는 일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러하지만, 시장지배와 이윤수탈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중국의 시장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은 국가경제지표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중국의 수출총액에서 외국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50.1%, 2003년 55.6%, 2004년 57.8로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으며, 중국의 대외 기술의존도는 50%에 이르며, 설비투자 가운데 60%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 등이다. (『연합뉴스』 2006년 4월 24일) 중국에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시장지배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시장지배는 자연히 이윤수탈로 이어진다. 이른바 다국적기업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들어간 450개에 이르는 제국주의독점자본들은 1990년대 이후 2천700억 달러의 자본을 투자한 대가로 순이익 2천억 달러를 가져갔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22일) 그들이 중국에서 가져간 '순이익'은 중국의 노동계급이 창출하였으나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수탈한 이윤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이윤수탈은 날이 갈수록 대량화되고 있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을 비롯한 외국자본들이 중국에 들어가 노동자 2천400만 명을 고용하였으니 중국이 시장개방과 경제개혁을 추진한 덕택에 대단한 고용창출효과를 얻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외국자본들이 중국 노동자를 세계에서 값싸기로 소문난 저임금 노동자로 고용하여 착취, 수탈하고 있음을 은폐하는 만큼 그 견해는 천박하다.

이처럼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시장지배와 이윤수탈이 재앙을 몰고 오고 있으니, 그에 대해 중국이 제동을 걸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06년 6월 7일 중국 국무원이 반독점법 초안을 채택한 것(『연합뉴스』 2006년 6월 8일)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시장지배와 이윤수탈을 억제하는 제동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둘째 재앙은 자본주의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정치 사이에서 발생한 모순이다.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생산력을 발전시키면서 차츰 확대되는 자본주의경제체제가, 사회주의집권당이 유지하는 사회주의정치체제와 모순관계에 빠지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중국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정치의 모순에 대응하는 제국주의개입정책(imperialist engagement policy)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미국은 중국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발전을 촉진하는 한편, 사회주의정치의 무력화를 촉진한다. 자본주의시장경제 발전의 촉진을 사회주의정치 무력화의 촉진으로 이어가려는 것은 미국의 중국정책에서 움직일 수 없는 원칙이다.

미국이 중국의 자본주의시장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까닭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발전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사회계급관계의 대립적 전환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불안정이 사회주의집권당인 중국공산당의 통치력을 약화시켜 장차 사회주의정치를 자본주의정치로 뒤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반언론에서는 미국이 중국의 자본주의시장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가리켜 흔히 중국과 미국이 경제적으로 협력한다고 표현하거나 또는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심화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현상의 뒤에 숨어있는 실체는 미국이 추진하는 제국주의개입정책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개입정책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전면화를 노린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제국주의개입정책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밀고 나가는 신자유주의세계화(neoliberal globalization)의 전략목표이다.

미국 의회 회계감사원(GAO)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다섯 해 동안 중국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3천900만 달러를 썼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3월 2일) 미국이 중국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킨다는 말은, 중국의 사회주의정치를 자본주의정치로 뒤바꾸려는 제국주의개입정책을 밀고 나간다는 뜻이다. 제국주의 미국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제국주의개입정책의 핵심내용이다. 미국이 중국에서 제국주의개입정책을 밀고 나가는 근본목적은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정치를 다당제와 직접선거를 핵심내용으로 한 미국식 자본주의정치로 뒤바꾸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제국주의개입정책을 밀고 나가자, 중국에서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싹이 자라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이른바 '정치개혁'이라는 구실을 내걸고 진행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국공산당은 2001년부터 사천성 평창현의 당 기층조직들인 향(鄕)위원회와 진(鎭)위원회의 서기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공천을 통해 단일후보를 내세워 직접선거를 실시하였고, 2003년에는 그러한 미국식 선거제도를 강소성 서주시 일부 지방당 조직들로 확대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23일)

문제의 심각성은 '정치개혁'이 계속 확대될 경우 중국공산당의 사회주의정치가 변질될 위험이 생겨난다는 데 있다. 소련의 사회주의정치를 변질, 와해시킨 미하일 고르바쵸프(Mikhail Gorvachov)도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린 자기의 대담기사에서 민주화와 관련된 어떤 일도 하지 말라고 중국에게 충고하면서, 자신은 개혁시기에 당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깊이 체득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2일)

5. 중미관계의 자극요인

국가조직의 물리력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표현되지만, 정치력과 경제력의 직접적인 연장이며 동시에 정치력과 경제력을 통합한 물리력이라는 점에서 군사력은 국가조직의 물리력 수준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므로 국가관계를 분석할 때 중시하는 것은 군사부문이다.

중미관계를 군사부문에서 살펴보아야, 다시 말해서 중미 군사관계를 살펴보아야 중미관계의 실체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군사전문가들은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이 자국의 연해 경제권을 보호하기 위해 2014년 안에 해안선에서 500km까지 이르는 바다에서 제해권을 장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7월 21일) 주한미국군 기지가 있는 전라북도 군산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기지가 있는 산둥반도까지 직선거리는 400km이므로, 앞으로 중국이 500km의 제해권을 장악하려 할 경우 서해는 중국의 제해권 범위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중국이 제해권 장악에 나선 데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도발적 행동에서 자극을 받은 측면이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일본열도에서 1천852km(1천 해리)에 이르는 바다까지 호위함대를 보내는 이른바 '1천해리 전수방어'를 주장하였다가, 공고(金剛)급 이지스 구축함 네 척을 보유하게 되자 3천704km(2천 해리)에 이르는 바다까지 호위함대를 보내는 이른바 '2천 해리 전수방어'를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이정훈, 「대양해군의 비밀병기 6.6함대」, 『신동아』 2001년 9월호)

일본으로부터 자극을 받은 중국이 제해권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은 태평양과 인도양으로 나간다는 뜻인데, 중국이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목을 가로막은 걸림돌이 있으니 그것은 중국 영토의 일부인 대만이다. 대만을 지배하는 세력이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분리, 독립시키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서 중국과 대만의 관계에서는 통합 대 독립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중국의 '일개중국론(一個中國論)'과 대만의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의 대립이 그것이다. 대만의 분리독립을 저지하는 것은 중국이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전략목표이다.

중국은 2020년까지 대만을 통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연합뉴스』 2004년 7월 16일), 실제로 1995년 이후 대만을 마주한 대륙연안지역에 미사일을 증강 배치하고 대만에 대한 공격력을 계속 강화하면서 대만통합을 위한 군사훈련을 실시해오고 있다. 만일 대만이 분리독립을 추진할 경우, 중국 인민해방군과 대만군의 무력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의 초당파적 연구기관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의 대만위협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안보를 크게 해친다고 걱정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4월 26일)

미국 랜드(RAND)연구소가 미국 육군 작전처(G3)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는 중국이 2003년부터 2007년 사이에, 또는 2012년에 미국의 무력개입을 견제한 가운데 대만을 무력으로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연합뉴스』 2004년 12월 23일)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은 대만을 무력으로 통합하려는 전쟁계획을 1950년 초에 세워두었는데, 그해 6월에 한국(조선)전쟁이 일어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1958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이 장악한 진먼섬(金門島)에 44일 동안 포탄 50만 발을 쏟아 부어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매우 높아졌던 시기에 미국은 당시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는 미국 공군기지 핵무기정비반에서 일하던 요원들에게 극비 특별명령을 내려 일본 아오모리현에 있는 미사와 미국군기지 등 두 군데에 배치한 핵폭탄 엠케이(MK)-7을 정비하게 하였다. 그 핵폭탄이 중국으로 출격할 미국 공군 전략폭격기에 실릴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명백하였다. (『연합뉴스』 1995년 8월 28일) 1961년 미국과 대만은 중국의 샤먼(厦門) 일대를 전술핵무기로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연합뉴스』 2002년 4월 14일)

미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인도양 진출을 가로막기 위해서 대만을 정치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커다란 반원형을 그리며 중국을 포위하는 제국주의봉쇄정책(imperialist containment policy)을 밀고 나가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인도를 끌어들여 '해상 공동방어선'을 구축하여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인도양 진출을 가로막으려는 움직임(『연합뉴스』 2003년 12월 24일)이 그것이다.

제국주의봉쇄정책은 미국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정책이다.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피터 로드먼(Peter Rodman)은 중국에 대한 제국주의봉쇄정책을 '울타리전략(hedge strategy)'이라고 불렀다. (『워싱턴타임스』 2006년 3월 17일) 제국주의봉쇄정책은 미국이 대중관계에서 밀고 나가는 제국주의개입정책과 짝을 이룬다.

중국이 자국의 해상진출로를 가로막는 제국주의봉쇄정책에 맞서 육상진출로를 확보하기 위해 창설한 지역안보협력체가 상하이협력기구(SCO)이다. 2001년 상하이에서 창설된 상하이협력기구에는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여섯 나라가 회원국으로, 그리고 이란, 인도, 파키스탄, 몽골 네 나라가 참관국으로 참가하고 있다. 2006년도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담은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상하이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8일)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인도양 진출을 가로막으려는 미국이 동아시아에 제국주의무력을 배치하고 있는 한, 더욱이 미국이 동아시아에 배치한 제국주의무력을 신속기동군으로 개편, 증강하여 전쟁수행력을 높이면서 일본과 인도를 무력증강에 끌어들이고 있는 한, 그리고 대만의 분리독립세력이 차츰 강해지는 한, 중국의 대만통합전쟁계획은 쉽사리 실행에 옮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대만군의 군사훈련에 미국군 장교 60명과 일본 자위대 지휘관들이 참가하여 대만군의 군사작전에 관하여 논의한 것(『연합뉴스』 2004년 7월 19일)은, 미국이 지난 시기 대만과 맺었다가 중미국교수립 이후에 해체하였던 군사동맹을 은밀히 되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대만과 맺었다가 해체하였던 군사동맹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에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2005년 2월 10일 미국과 일본은 대만이 두 나라 공동의 전략목표임을 밝힌 공동성명을 역사상 처음으로 발표하였고(『워싱턴포스트』 2006년 2월 18일), 중국은 그에 대해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뉴욕타임스』 2005년 2월 21일)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대만에서는 미국이 앞으로 미일 합동군사훈련에 대만을 참가시킬 것이며(『연합뉴스』 2004년 7월 21일), 유사시에는 미국군이 대만에 다시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6일) 중국 인민해방군과 미국군이 각각 출동시킨 군함과 전투기들이 대만해협 부근에서 날카롭게 대치한 것(『연합뉴스』 2004년 5월 25일)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대만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군사적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대만문제는 중미관계를 자극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되었다.

중국과 미국의 정치군사적 갈등관계를 부추기는 세력은 미국 국방부와 군부이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본부(DSCA)는 2004년 3월 말 중국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방어하는 데 요구된다고 하면서 장거리 조기경보레이더 장비를 대만에 팔아 넘기는 문제를 승인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5월 3일) 또한 미국 국방부는 2000년부터 해마다 중국과 대만의 군사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연방의회에 제출하고 있는데, 2005년도 보고서에서는 대만의 무력이 중국의 무력에 비해 열세이므로 군사적으로 불균형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5년 5월 19일) 미국 국방부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만을 공격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태평양군사령부(CINCPAC)가 지휘하는 전투기 1천500대로 대만해협 상공을 뒤덮으면서 제공권을 장악하는 군사작전계획을 세워두었다. (『연합뉴스』 2005년 6월 12일)

그러나 대만을 통합하는 과업이 미국의 무력개입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중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기 영토인 대만을 결코 내버리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통합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남(한국)에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고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되는 동아시아 정세의 질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때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대만을 통합하기 위한 무력을 증강하고 있는지 모른다.

만일 주한미국군이 철군하지 않고 한(조선)반도에서 자주적 평화통일이 실현되지 못하면 중국의 대만통합계획은 영영 실행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한미국군 철군과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은 중국의 전략적 이익추구에 밀접하게 결부된 중대한 정치과업으로 된다. 대만통합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중국이 주한미국군 철군과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북(조선)과 전략적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만문제가 부각될수록 또는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와 한(조선)반도 통일문제가 부각될수록 조중동맹과 미일동맹은 각각 서로 대치되는 방향에서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6. '중국위협론'의 실상과 허상

미국 국제평가전략센터(IASC)의 연구자 리처드 피셔 2세(Richard Fisher, Jr.)는 중국이 무력을 증강하는 목표가 단기적으로는 대만점령, 장기적으로는 미국군을 아시아에서 몰아내고 인도를 억제하여 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4년 4월 26일) 미국 국방부는 2006년도 연례보고서에서 중국이 무력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한(조선)반도, 일본,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부르나이, 남사군도, 중앙아시아 등이라고 지적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24일)

2006년 3월 16일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는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여 정치적, 경제적 개혁을 추진하고 국제사회의 안정에 이바지하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불투명한 방식으로 무력을 증강하고 있음을 지적, 경고하였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이 무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중국위협론'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지적하는 대로, 중국이 무력을 증강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06년 5월 25일 중국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는 칭다오에서 회의를 갖고 앞으로 15년 동안 무력을 현대화하는 계획을 채택하였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 2006년 5월 26일)

중국의 무력증강은 사회주의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첨단무기를 지나치게 많이 사들이면 결국 군사력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사회주의자력갱생의 원칙에 따라 무기들을 자기 힘으로 개발한다. 인도는 외국산 무기를 사들이는데 비해, 중국은 자체로 생산한다. 이를테면, 중국은 1997년부터 러시아, 이스라엘과 공동으로 조기경보기를 개발하려고 하였는데, 미국의 방해에 걸려 3국 공동개발사업이 무산되자 2000년 말부터 자국의 50여 개 연구소를 동원하여 독자개발사업을 밀고 나갔으며, 마침내 다섯 해 뒤인 2006년 초 독자적으로 개발한 최신예 조기경보기 '쿵징-2000' 4기를 공군기지에 작전배치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6일)

중국의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 수준에 관한 논쟁을 살펴보면, 중국은 군사부문에서 선진국과 비교할 때 15-25년이 뒤져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군비경쟁을 벌일 여유가 없으므로 중국의 군사력은 100년이 지나도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다른 한 쪽에는 중국의 군사력이 20년 뒤에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10일) 중미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국제정세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앞의 견해가 뒤의 견해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퍼뜨리는 '중국위협론'을 논하려면, 중국이 무력을 증강하는 목적, 중국의 군사적 의지, 중국의 군사전략을 각각 살펴보아야 한다.

6-1) 중국이 무력을 증강하는 것은, 첨단무기로 무장한 제국주의 미국의 무력 우위에 도전하기 위함이다. 한국(조선)전쟁에 참전하였을 때 미국으로부터 핵공격 위협을 받았던 중국은 그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5년 1월 15일 핵무기 독자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고(『연합뉴스』 2004년 12월 1일), 마침내 1964년 10월 지하핵실험에 성공하여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핵무기 독점체제를 무너뜨렸다.

또한 중국은 1965년에 인공위성 개발사업에 착수한 뒤 다섯 해 만인 1970년에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였고, 1992년에 유인유주선 발사계획을 발표하고 1999년에 무인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뒤로 해마다 22억 달러씩 우주개발사업에 투자한 끝에 마침내 2003년에 '선저우 5호'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미국의 우주개발 독점체제를 무너뜨렸다.

지금 중국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로 니미츠급 항공모함과 사정거리 1만2천 km의 장거리 다탄두 전략미사일을 탑재할 최신형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무력증강사업을 밀고 나가면서(『연합뉴스』 2006년 3월 10일, 3월 9일) 태평양과 인도양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중국이 무력을 증강함에 따라 자기의 군사적 독점이 하나씩 무너지는 것을 중국의 군사적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적 독점이 무너지는 것이 곧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반대로, 미국의 군사적 독점이 유지되는 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위협이 증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중국의 무력증강은, 중미관계의 군사적 불균형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전쟁위협을 억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이 국제사회에 퍼뜨리는 '중국위협론'은 왜곡이다.

6-2) 1955년 5월 전라북도 군산의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미국 제5공군 소속 전투기 여덟 대가 서해 상에서 중국 영공에 다가섰을 때 중국은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켜 공중전을 벌였다. 미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군 전투기들은 그 공중전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전투기 4대를 격추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1995년 1월 19일) 1970년 2월 중국군은 대만의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미국군 무인정찰기를 미사일로 격추하였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과 국교를 맺은 뒤부터는 그러한 공격성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자기를 공격하지 않으면 자신도 미국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방어적 군사노선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자기의 무력이 아직 미국과 맞서 싸울 수 없을 만큼 강하지 못하므로 정면충돌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을 통합하기 위해서 대만이 마주 보이는 대륙연안지역에 미사일을 공격형으로 배치한 것을 제외한다면,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력은 전반적으로 방어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중국의 군사전략은 자본주의 멸망의 필연성을 논한 맑스주의정치이념에 따라 미국군의 무력이 크게 감퇴하게 될 2030년까지 미국과 정면대결을 피한다는 전략이다.

1993년 미국 해군 제7함대는 이란을 향해 항해하던 중국 화물선 은하호를 공해 상에서 정선명령을 내리고 검색하였다. 미국은 중국이 화물선에 화학무기 생산물질을 숨겨 이란에 넘겨주려고 하였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그 화물선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중국은 주권을 침해당했으면서도 미국에게 대들지 않았다. 그로부터 여섯 해 뒤인 1999년 5월 나토 공군기가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에 미사일을 발사해 중국인 기자 3명을 비롯하여 20여 명이 죽거나 다쳤을 때도 중국은 미국에 대들지 못했다.

2001년 4월 1일 미국 해군 정찰기가 중국 인민해방군 구축함 상공을 날면서 첩보감시활동을 벌이자 중국 인민해방군 전투기 한 대가 출격하여 근접비행하는 도중 실수로 정찰기와 충돌하여 바다에 추락하였다. 전투기와 충돌한 미국군 정찰기도 기체가 상하는 바람에 하이난섬(海南島)에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기지에 허락도 받지 않고 불시착하였다. 미국은 하이난섬 앞바다에 구축함 세 척을 들이밀면서 중국에게 피해보상금 3만4천 달러를 요구하였고, 중국은 미국의 사과도 받지 않고 정찰기에 탔던 미국군 24명과 기체를 서둘러 돌려주고 말았다.

이 사건은 중국이 미국에 맞서 싸울 의사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지 못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워싱턴타임스』 2000년 2월 2일) 만일 미국이 중국의 대만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개입을 강행하는 경우에도 중국은 미국에게 대량보복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연합뉴스』 2000년 3월 22일) 중국에게는 이처럼 미국에 맞서 싸울 의사가 없는 데도, 미국은 '중국위협론'을 퍼뜨리고 있다. '중국위협론'은 허구이다.

6-3) 중국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지만, 다른 나라를 침공하여 점령하는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도발하지는 않는다. 중국이 벌이는 전쟁의 특징은 응징전이라는 데 있다.

응징전이란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정치적 항복을 받아 내고 패전국의 영토에 자기 군대를 주둔시켜 군정을 실시하지 않는 전쟁이다. 응징전에서 승리하면 곧 철군한다. 이를테면 중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도, 베트남, 소련과 각각 무력충돌을 일으킬 때 응징전을 벌인 바 있다. 군사적 점령과 군정실시는 중국의 군사전략에서 배제된다.

반면에, 미국이 벌이는 제국주의침략전쟁의 특징은 전쟁이 끝난 뒤에 패전국에 자기 군대를 주둔시켜 군정을 실시하면서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점령전이라는 데 있다. 군사적 점령은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중심을 차지한다. 아시아태평양지역 곳곳에 거대한 군사기지를 유지하면서 군사동맹이라는 명목으로 군사점령체제를 틀어쥐고 있는 유일한 제국주의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의 '중국위협론'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점령하는 제국주의국가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여도 그 나라를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는 사회주의국가를 겨냥한 왜곡선전이다.

6-4)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세계체제는 정치, 군사적 대립관계 위에 성립한다. 제국주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자기들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그에 맞서는 정치, 군사적 대립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세계체제는 그 대립관계 위에서 '안보'와 '국익'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자기의 존재를 지탱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세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만들어낸 적대세력이 있으니, 그것이 중국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과 맺은 제국주의동맹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가 미국 육군 작전처(G3)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는 미국이 일본과 맺은 군사동맹을 강화하여 중국의 대만공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12월 23일) '중국위협론'은 미국이 일본을 언제까지나 자기의 하위동맹국으로 묶어놓기 위해 꾸며낸 정치선전이다.

7. '중국위협론'과 미일동맹군의 무력증강

중국이 동아시아시장을 지배하자 동아시아경제는 중국경제를 중심으로 통합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동아시아시장에서 일본경제의 지위와 역할은 상대적으로 약화, 축소되었다. 중국의 생산력이 발전할 수록 일본은 동아시아시장에서 패권적 지위를 빼앗기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독자적 대응노선을 취할 것인지 아니면 미일동맹 강화노선을 취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본이 선택한 것은 후자이다.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는 조건에서 일본이 느끼는 조바심과 불안은, 일본이 미국과 맺은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시키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일본의 무력증강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된다. 일본은 미국의 '중국위협론'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제국주의동맹국이다.

미국은 그러한 추세에 편승하여 일본과 맺은 제국주의동맹체제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2006년 5월 23일 미국 국방부 차관보 리처드 롤리스(Richard Lawless)는 일본이 미국과 맺은 동맹관계를 재편하고 더 많은 군사적 역할을 떠맡기로 사실상 합의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6년 5월 23일)

일본의 '중국위협론'도 미국의 '중국위협론'과 마찬가지로, 군사부문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일본은 '방위계획대강'을 개정하면서 중국이 일본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명시하였다. (『니혼게이자이신붕』 2004년 9월 15일) 2006년 6월 9일 일본 각료회의는 방위청을 방위성으로 승격시키는 법안을 의결하고 중의원에 제출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9일) 방위성 승격조치는 자연히 자위대를 정규군으로 승격시키는 조치와 연계될 것인데, 이것은 단순한 명칭변경이 아니라 무력증강의지의 정치적 표현이다.

일본의 '중국위협론'이 노리는 목표는 자국의 무력증강이다. 자국의 무력을 증강하기 위해서 적대세력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본이 적대세력으로 선택한 대상이 중국이다. 물론 북(조선)도 일본이 자국의 무력을 증강하기 위해 선택한 적대세력이다.

오늘 무력증강에 발벗고 나선 일본의 군사전략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일본이 미국과 맺은 제국주의군사동맹을 강화하면서 무력증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그러한 군사전략이, 미국이 일본과 맺은 제국주의군사동맹을 강화하는 전략과 일치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7-1) 미국과 일본의 '중국위협론'은 중국을 겨냥한 미일군사동맹의 무력증강을 위한 구실로 이용되고 있다.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W. Bush)와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이른바 '전략대화'를 시작하기로 합의한 때는 2001년 6월이었다. 2004년 12월 말 도쿄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의 심의관급 비공식협의회에서 미국대표는 태평양에서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공동대응태세를 강화할 것을 일본에게 요구하였다. (『니혼게이자이신붕』 2005년 1월 4일) 미일전략대화는 2005년에 이르러 외무장관급으로 격상되었다.

미일전략대화가 일차적으로 노리는 것은 미일동맹군의 무력증강이다. 미일동맹군의 무력증강은 미일합동군사훈련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이 미일합동군사훈련에 참가하여 공중급유를 받으며 태평양 횡단훈련을 처음으로 벌인 때는 2003년 5월 28일이었고(『연합뉴스』 2003년 5월 28일), 일본 나가사키현에 주둔하는 육상자위대 병력이 미국 태평양연안 샌디에고에서 실시된 미국군 해병대의 상륙작전훈련에 처음으로 참가한 때는 2006년 1월이었고(『연합뉴스』 2006년 1월 10일), 미국과 일본이 미사일을 요격하는 공동실험을 처음으로 실시한 때는 2006년 3월이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이지스함은 2006년 6월 미국군 태평양사령부가 하와이 앞바다에서 실시하는 미사일방어요격훈련에 처음으로 참가할 것이고(『연합뉴스』 2006년 5월 9일),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발한 지상발사형 요격미사일(PAC3)을 일본에 작전배치하는 때는 2006년 말이며(『연합뉴스』 2005 12월 21일),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재래식 항공모함을 대체하여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배치하는 때는 2008년이다. (『연합뉴스』 2005년 11월 19일)

7-2) 미국과 일본의 '중국위협론'은 미일동맹군을 재배치하는 군사전략을 추진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되고 있다. 일반언론들은 미일동맹군을 재배치하는 군사전략을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을 강화하는 군사전략이라 부른다. 미국 연방의회 회계감사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이 미국군을 현대화하는 이른바 '미래전투체계(FSC)'를 완성하는 데는 적어도 2천억 달러가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2006년 3월 15일)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로, 주한미국군의 재배치가 동아시아에서 집중적으로 추진되는 곳은 경기도 평택이다.

주목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군사전략이 주한미국군과 주일미국군의 재배치만이 아니라 한국군의 재배치, 일본 자위대의 재배치에까지 연장된다는 점이다. 그 까닭은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미일군사동맹과 한미군사동맹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논할 필요가 없이, 동아시아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미국과 일본의 21세기 군사전략은 중국과 북(조선)을 겨냥하는 것이다. 2006년 5월 30일 일본 각료회의가 주일미국군 재배치계획을 승인한 것(『연합뉴스』 2006년 5월 30일)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일본은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미국의 군사전략을 적극 추종하고 있다.

미일동맹군을 재배치하는 군사전략은 전투력의 첨단화라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를테면 미일동맹군의 미사일전력을 첨단화하는 것이다. 현대전은 육상, 해상, 공중에서 미사일을 쏘는 미사일전쟁이다. 현재 미국에서 미사일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2만 명이나 된다. (『연합뉴스』 2006년 3월 25일) 미국과 일본은 이지스함에 설치하는 요격미사일인 에스엠(SM)-3 미사일을 공동으로 개발하여 미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에 공급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8일)

미국군이 보유한 최신예 지상발사형 요격미사일(PAC3)이 2006년 안에 오키나와현 가데나에 있는 미국군 기지에 처음으로 작전배치되는데, 그 요격미사일은 일본 항공자위대 기지에도 배치될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붕』 2006년 5월 21일)

7-3) 미국의 '중국위협론'은 일본에게 '핵우산'을 제공하는 미국의 정책과 결부되어 있다.

오래 전부터 중국은 일본에서 극우세력이 정치적으로 진출하여 핵무장을 요구하지나 않을까 염려해왔다. 만일 미국이 일본에서 '핵우산'을 철거하는 경우, 일본은 곧바로 독자적 핵무장에 나설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산하기관인 국가정보회의(NIE)는 보고서에서 미일동맹의 결속력이 느슨해지는 2020년에 가면 일본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다. (『연합뉴스』 2003년 12월 31일) 미국이 일본에서 '핵우산'을 철거하는 경우, 일본이 독자적 핵무장에 나설 것이라는 점은 일본 총리를 지낸 극우정치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의 견해에서도 확인된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19일) 2002년 4월 6일 일본 자유당 당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후쿠오카에서 열린 강연에서 중국이 군비를 계속 확장하면 일본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2년 4월 7일)

미국 국방부가 기밀해제한 문서에 따르면, 일본 총리였던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899-1965)는 1961년에, 그리고 그의 후임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1901-1975)는 1964년에 각각 미국의 고위관리에게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내비쳤는데, 1965년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Lyndon B. Johnson, 1908-1973)은 미일 정상회담에서 사토 에이사쿠에게 일본의 '안보'를 위해 '핵우산'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밝혔다. (『연합뉴스』 2005년 8월 1일) 이처럼 미국은 일본에게 '핵우산'을 제공함으로써 일본의 핵무장 욕구를 억제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였다고 해서 일본의 핵무장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수 백 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의 플루토늄을 가지고 있고, 핵무기 개발사업에 동원할 수 있는 기술인력을 수 백 명이나 가지고 있는 일본이 핵무장 욕구를 느끼지 않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나카소네는 자신이 방위청 장관으로 있었던 1970년에 핵무장 가능성을 은밀히 검토하라고 방위청 관리들에게 지시하였다. 회고록에 따르면, 나카소네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문제를 가장 열심히 연구하고 있던 방위청 관리에게 핵무장에 요구되는 비용과 시간을 연구하라고 지시하였는데, 당시 연구책임을 맡은 방위청 관리는 조선과 만주를 침략한 원흉 이토오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의 손자였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19일)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본에게 '핵우산'을 계속 제공한다는 방침을 정했는데(『연합뉴스』 2003년 10월 30일), 이것은 일본에 대한 '핵우산' 제공이 일본의 핵무장 억제정책이며 동시에 중국과 북(조선)을 겨냥한 선제핵공격전략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본의 핵무장 욕구를 억제하고 중국과 일본의 군사대결구도를 현재의 핵무장국 대 비핵국의 관계로 유지하는 데서, 미일군사동맹이 일정한 억제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의 전략적 판단이다. 1973년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朱恩來, 1898-1976)가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에게 밝힌 것(『연합뉴스』 1990년 1월 14일)처럼, 중국은 일본이 언제까지나 미국의 '핵우산' 아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고 해서 자기의 핵무장 욕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타율적으로 억제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핵무장 욕구에 대한 타율적 억제력이 느슨해지는 것이야말로 중국에게 걱정거리로 된다. 최근에 중국은 일본이 미국의 비호와 지원을 받아 은밀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여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균형을 깨뜨리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한겨레』 2006년 5월 26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뜻이므로, 중국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걱정하는 것이다.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과 군비확장은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의 핵무장만큼은 억제하는 것은 이미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채택한 정책이며(『연합뉴스』 1990년 1월 12일), 그 뒤에도 줄곧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 억제정책을 추진해왔다.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억제하는 까닭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금지체제(NPT Regime)를 유지하는 데서 필수적이기 때문이고, 군사적 균형을 잡아가면서 동아시아 지배구도를 유지하는 데서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과 맺은 제국주의동맹관계를 유지해야 일본의 핵무장 억제정책도 유지할 수 있다.

7-4) 1931년부터 1945년까지 14년 동안 제국주의 일본이 중국을 침략, 점령함으로써 중국인 5천만 명이 목숨을 잃고, 6천억 달러의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어 결과적으로 사회발전이 반세기나 늦춰진 중국(『연합뉴스』 2005년 7월 6일)에게 미일동맹군이 자기를 겨냥하여 무력증강을 다그치는 것은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그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동북아시아 다자안보협력체를 창설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5일) 그러한 구상은 미일동맹군의 무력증강이라는 위험요인에 직면한 중국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중국은 6자회담에서 북(조선)의 '핵문제'가 해결되면 6자회담 구도를 바탕으로 한 다자안보협력체를 창설하려는 전략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동북아시아에서 다자안보협력체를 창설하려는 목적은 일본의 핵무장 욕구를 국제적 감시를 통해 억제하면서 미일동맹군의 무력증강을 저지하려는 데 있다. 동북아에서 다자안보협력체가 창설되는 것은 냉전의 산물인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지위와 역할을 약화시키고 견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지금 중국이 6자회담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8. 글을 맺으며

갈등의 골이 깊어 가는 오늘의 중미관계를 논할 때, 일반언론에서는 중미관계의 갈등을 지난 시기의 냉전에 빗대어 새로운 냉전(New Cold War)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중미관계의 갈등을 새로운 냉전으로 보는 것은, 중미관계에 들어있는 비이념적 갈등요인에 대한 확대해석이다.

원래 냉전(Cold War)이란 한국(조선)전쟁이나 베트남전쟁 같은 열전(Hot War)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성립된 것이다. 지난 냉전시기 사회주의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졌을 때마다, 냉전은 순식간에 핵열전으로 바뀔 극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최근 공개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1962년 '쿠바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제국주의 미국은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지를 선제공격으로 파괴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6년 4월 4일) 또한 폴란드 국방부가 최근 공개한 기밀문서에 따르면, 1965년부터 1985년까지 20년 동안 바르샤바군 미사일부대가 서유럽 대도시들을 177발의 핵무기로 공격하고, 소련군 전략폭격기가 12발의 핵폭탄으로 추가공격하는 사회주의진영의 핵전쟁계획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7일)

이처럼 냉전이라는 개념은 국가관계에서 형성된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이념적 대결을 뜻하는 역사적 개념이다. 냉전의 극복은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가운데서 어느 한 쪽이 소멸되는 것이었고, 실제로 냉전체제의 해체는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중국이 시장사회주의로 돌아선 뒤에 중미관계에서는 기존의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이념적 대결구도가 사라졌다. 오늘의 중미관계에서는 이념적 적대성이 비이념적 갈등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충돌가능성도 적어졌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개입정책은 중국의 시장사회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발전을 촉진시켜 아직 남아있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완전히 없애고 자본주의로 전면교체하려는 것이며,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봉쇄정책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배체제를 위협하는 중국의 국력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1999년에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제국주의개입정책과 제국주의봉쇄정책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여 '봉쇄적 개입(congagement)'이라는 새로운 합성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연합뉴스』 2005년 11월 17일)

오늘의 중미관계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적대관계가 아니라 시장사회주의 대 제국주의 사이에서 형성되어 때로 갈등하고 때로 협력하는 특수관계이다. 앞으로 중국의 시장사회주의가 자본주의로 전면교체될수록 중국과 미국의 협력관계가 더 진전될 것이고, 중국의 국력이 팽창되는 한 중국과 미국의 갈등관계는 부침을 거듭하면서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2006년 6월 1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