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단계 사회변혁의 역사적 경험과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

 

한호석
민주노동당 미국동부지역위원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고전적 민주주의혁명과 혁명전화의 역사적 경험
3. 현대 민주주의혁명의 역사적 경험
   3-1) 인민민주주의혁명의 역사적 경험
   3-2) 유산된 반제반독점민주주의혁명
   3-3) 1960년대와 1970년대 제3세계의 사회변혁
4. 제국주의세계체제 팽창기의 민주주의혁명
5. 식민주의의 형태변화와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
   6-1) 예속자본주의사회를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편입, 결박시킨 신식민주의체제
   6-2)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
7. 글을 마치며

 

1. 글을 시작하며

되돌아보면, 한국(조선)전쟁 이후 반세기에 걸쳐 이어져온 민주주의운동의 흐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남(한국)의 민주주의운동은 1960년 4월 대중항쟁으로 폭발하였으며, 1970년대 반독재민주주의운동을 거쳐 1980년 5월의 대중항쟁과 1987년 6월의 대중항쟁으로 이어졌다. 반세기의 역사적 경험은, 민주주의운동이 대중항쟁으로 폭발하면서 정치격변을 일으키고 남(한국)의 지배계급에 타격을 가하였음을 증언한다.

1960년 4월 리승만정권을 무너뜨린 대중항쟁을 흔히 ‘4월 민주혁명’이라 하지만, 그 대중항쟁의 결말은 지배계급끼리 자리를 바꾼 집권세력교체로 역류하였지, 세상을 바꾼 민주주의혁명(democratic revolution)으로 순항하지 못하였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은 항쟁지역을 고립시키고 짓밟은 계엄군의 만행으로 좌절하였고, 1987년 6월의 민주항쟁 역시 지배계급끼리 자리를 바꾼 집권세력교체로 끝나고 말았다.

리승만정권, 박정희정권, 전두환정권, 노태우정권으로 이어진 극우독재세력이 퇴장한 뒤 10여 년 동안 이른바 ‘저명한 민주인사’를 앞세운 김영삼정권, 김대중정권, 노무현정권이 줄이어 집권하자 일반대중은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의 명목과 형식만 내온 것 밖에 없으며, 추진해오던 사회개량마저 중단하고 만 것이 오늘 남(한국)의 현실이다. 오늘의 집권세력에게는 세상을 바꿀 의사도 능력도 전망도 없나니, 그 집권세력이 낡고 병든 세상을 살맛 나는 새 세상으로 바꿔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은 물거품을 바라보듯 헛되고 어이없는 일이다.  

주목하는 것은, 남(한국)의 민주주의운동을 전진시킨 대중항쟁이 지배계급을 타격하기는 하였으나 민주주의혁명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는 점이다. 남(한국)의 민주주의혁명은 미완성 과업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남(한국)의 민주주의혁명이 미완성 과업으로 남겨진 까닭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격렬한 대중항쟁을 민주주의혁명으로 끌어가는 정치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남(한국)에서 일어났던 세 차례 대중항쟁은 민주주의혁명의 주체적 조건을 갖지 못하였던 것이다.

특히 지적하는 것은, 대중항쟁이 민주주의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미성숙에 있었다는 점이다. 남(한국)의 노동계급은 민주주의운동이 대중운동으로 확대되는 시기에 자신의 총파업투쟁으로 대중항쟁을 폭발시키지 못하였으니 대중항쟁을 민주주의혁명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였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격렬한 대중항쟁이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과 결합하지 못한 까닭은,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여 진보정당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광범위한 통일전선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차례 대중항쟁의 역사적 경험에서는 민주주의혁명의 3대 요인이라 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 진보정당의 정치투쟁, 그리고 통일전선의 대중투쟁을 찾아볼 수 없다. 대중항쟁의 정치적 성과를 번번이 지배계급이 가로채가고 민주주의혁명의 전망이 실종되었던 근본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노동계급의 파업투쟁이 폭발한 뒤로 20년 동안 노동계급은 민주노조와 총파업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움켜쥐고 민주주의운동의 한계를 뚫고 나가기 위한 끈질긴 싸움을 벌여왔다. 분신투쟁으로 희생된 노동해방열사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부짖으며 싸웠고, 전투적 조합원들의 파업투쟁과 고공농성투쟁으로 지배와 착취에 저항했으며, 노조활동가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민주노조를 건설하였고, 수 십만 명이 참가하는 총파업투쟁이 민주노조의 깃발 아래 힘있게 전개되었다.

그처럼 치열하고 끈질긴 싸움을 벌여나간 남(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브라질의 민주노조운동이 라틴아메리카 노동운동을 대표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아프리카 노동운동을 대표하듯이, 아시아 노동운동을 대표하게 되었다. 자본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들이 민주노총을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파업투쟁을 강행하는 이른바 ‘강성노조’로 묘사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아시아의 노동운동을 대표한다는 정치적 평가에 걸맞게, 남(한국)의 선진적 노동계급은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가진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을 건설하였으며, 지금은 근로대중 전체와 각계각층을 결집시키는 새로운 통일전선체를 건설하는 데 힘쓰고 있다. 남(한국)의 노동계급이 총파업투쟁을 밀고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당의 계급적 중심으로 세워 정치세력화한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새로운 통일전선체 건설에 나선 것은,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 진보정당의 정치투쟁, 통일전선의 대중투쟁이라는 민주주의혁명의 3대 요인이 상호연관 속에서 강화, 발전되고 있음을 뜻한다.

민주주의혁명의 3대 요인이 강화, 발전되는 현 정세가 선진적 노동계급에게, 그리고 그들이 계급적 중심으로 나선 진보정당에게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운동의 오래된 한계를 뚫고 나아가 민주주의혁명의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민주주의혁명은 정세의 요구로 되었다.

이제 민주주의혁명의 임무를 수행하여야 할 노동계급과 진보정당에게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혁명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정립해야 할 임무가 주어졌다.

인류사에서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고 세계적 범위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온 사회변혁의 한 유형인 민주주의혁명, 그 혁명의 의미를 진보정당의 시각에서 읽으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고전적 민주주의혁명과 혁명전화의 역사적 경험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초까지 약 150년 동안 인류는 혁명의 시대를 경험하였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민주주의혁명은 낡고 병든 봉건왕정체제를 무너뜨리고 의회민주제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세웠다. 그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국가형태를 부르주아민주주의공화국이라 한다.

혁명의 시대 150년 동안 일어났던 민주주의혁명 가운데서,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미국혁명(1763-1787년), 프랑스혁명(1789-1799년), 그리고 20세기초에 일어난 터키혁명(1908-1909년), 멕시코혁명(1910-1917년)은 승리하였던 반면, 19세기에 일어난 프랑스혁명(1830년), 독일혁명(1848-1849년), 멕시코혁명(1854-1860년)은 좌절하였다.

자본주의체제가 발전도상에 있었던 시기에 유럽과 미국에서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노동계급이 강력한 사회정치역량을 갖지 못하였으므로 민주주의혁명을 이끌어갈 수 없었다. 노동계급이 미성숙하였으므로 신흥자본계급이 민주주의혁명을 이끌어갔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혁명의 성격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되었다. 지금은 혁명역사의 유적지에서 또는 역사박물관의 유물을 통해서나 만날 수 있는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라 한다.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의 역사적 의의는,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체제의 자연발생적인 변화 또는 교체가 아니라 인위적이고 목적의식적인 개조 또는 변혁을 실현하였다는 데 있다.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에 의해서 인류는 처음으로 사회변혁이 사회진보와 역사발전을 어떻게 추동하는지를 경험하였다.

그런데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던 신흥자본계급은, 사회적 생산수단을 틀어쥐고 노동계급을 착취해온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국가통치권까지 배타적으로 틀어쥐고 인민대중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한때 혁명적이었던 신흥자본계급은 반동적 지배계급으로 전락하였다.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하여 봉건주의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체제가 섰으나, 그 체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지배와 착취의 새로운 족쇄를 채웠다.

20세기초에 이르는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는 자본주의체제가 가속적으로 발달하였고, 그 체제에서 날카롭게 형성된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의 적대관계는, 지배와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격렬한 싸움을 불러일으켰으며, 계급투쟁의 격화는 사회변혁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갔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의 노동계급은 사회변혁의 주역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사회변혁운동을 힘있게 밀고 나갔으나, 러시아혁명(1905-1907년), 독일혁명(1918-1919년), 헝가리혁명(1919년)은 좌절하였다. 예외적으로,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10월혁명이 승리하였을 뿐인데, 그 혁명마저 20세기와 함께 저물어갔으며, 오늘 자본주의체제로 복귀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10월혁명은 역사유산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20세기초 유럽의 노동계급이 추진하였던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 다시 말해서 승리한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transform)하는 사회변혁의 발전경로는 세계혁명사에 좌절의 기록을 남긴 채 마감되었다.

여기서 생기는 한 가지 의문은,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하는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가 과연 과학적이었을까 하는 물음이다.

20세기초 유럽의 노동계급이 수행하였던 민주주의혁명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밟아갈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레닌이었다. 그는 1905년 9월 14일에 발표한 글 ‘농민운동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의 태도(Social-Democracy's Attitude Towards the Peasant Movement)’에서 자기의 생각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우리의 힘에, 곧 계급의식적이고 조직화된 프롤레타리아의 위력에 정확히 일치하여, 민주주의혁명은 곧장 사회주의혁명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연속혁명(uninterrupted revolution)을 위하여 싸운다. 우리는 도중에 멈추지 않으리라.”

명백히, 그는 사회주의10월혁명을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한 혁명이라고 생각하였다.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2월혁명이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므로, 2월혁명이 전화하여 사회주의10월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레닌이 제시하였던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의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전화론 또는 연속혁명론은 봉건주의체제를 무너뜨린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한다는 혁명전화의 공식을 성립하였으나, 그 공식은 뒷날 혁명사가들과 이론가들 사이에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고전적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 사이의 단절을 논하면서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1917년 2월혁명 직후 세워진 임시정부가 전화하여 소비에트정부가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소비에트정부를 세웠다. 임시정부는 봉건왕정체제가 무너진 뒤에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실현하지 않았으므로 민주주의체제는 세워지지 못하였고, 따라서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의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전화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고전적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연속을 논하면서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1917년 2월 27일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와 병사 대의원들이 첫 소비에트회의를 개최한 뒤로, 같은 해 11월 7일에 열린 제2차 전러시아 소비에트대회에서 개량주의정치세력들인 멘셰비키, 분트파, 사회혁명당이 소비에트회의에서 자진 이탈하고 마침내 볼셰비키가 이끄는 소비에트정부가 세워진 일련의 과정은 소비에트회의가 소비에트정부로 전화하였음을 명백히 입증하였다. 이것은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소비에트권력 자체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레닌이 제시하였던 혁명전화의 공식과 관련하여 논쟁이 벌어진 원인은,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을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시키는 혁명의 영도계급인 노동계급이 2월혁명 직후에 세워진 임시정부를 주도하지 못하였다는 데 있었다. 임시정부는 처음에 반동적 정치세력이 틀어쥐었고, 5월에 연립정부로 재편되었지만, 여전히 노동계급의 혁명적 진출을 가로막으며 제국주의전쟁을 계속하였으며, 농민이 갈망하는 민주적 토지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다. 그러한 임시정부에 대해서 이른바 ‘이중권력’을 형성하였던 소비에트회의에서도 노동계급의 전위적 정치세력인 볼셰비키는 소수파였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볼셰비키의 정책을 찬성한 때는, 반혁명세력의 우두머리 코르닐로프가 일으켰던 반란이 진압된 다음날인 8월 31일이었다.

만일 노동계급의 전위적 정치세력인 볼셰비키가 강력한 정치역량을 발휘하여 임시정부를 세우고 이끌었더라면, 임시정부는 소비에트정부로 강화, 발전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2월혁명은 혼란과 위기를 겪지 않고 노동계급의 영도에 따라 사회주의10월혁명으로 넘어가는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정상적으로 밟아갔을 것이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밟아갈 것으로 예상하였던 러시아혁명(1905-1907년), 독일혁명(1918-1919년), 헝가리혁명(1919년)이 좌절하였던 근본원인도, 노동계급이 민주주의혁명을 이끌어 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 현대 민주주의혁명의 역사적 경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혁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혁명을 현대 민주주의혁명이라 한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이 불안정하게 밟아갔던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는, 새로운 유형의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함으로써 그 경로가 과학적임을 실천적으로 입증하였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현대 민주주의혁명으로 발전하였을 때,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가 과학적인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이 확실해진 것이다.

러시아의 사회주의10월혁명이 열어놓았던 혁명의 시대 제2기는 고전적 민주주의혁명이 현대 민주주의혁명으로 발전함으로써 그 시대적 특징을 뚜렷이 드러내었다.

3-1) 인민민주주의혁명의 역사적 경험

당시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일본에 맞서 싸운 세력은 반일혁명세력이었고, 동유럽에서 제국주의 독일에 맞서 싸운 세력은 반파시즘혁명세력이었다. 그 두 세력은 동유럽을 강점하였던 제국주의 독일이 패망하고, 동아시아를 강점하였던 제국주의 일본이 그 뒤를 이어 패망하면서 정치군사적 공백이 생겨나자 민주주의혁명을 본격적으로 밀고 나갔다.

동아시아의 민주주의혁명은 한(조선)반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에서 전개되었고, 동유럽의 민주주의혁명은 동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그리스에서 전개되었다. 그 가운데서 한(조선)반도 38도선 이남지역, 인도네시아, 그리스에서 전개된 민주주의혁명은 좌절하였다.

20세기 중반, 제국주의세력의 식민주의통치 아래서 자본주의체제가 발달하지 못하고 봉건주의요소가 강하게 남아있었던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사회성격은 식민지반봉건사회로 규정되었다. 그에 비해서 20세기 중반,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유럽에서 자본주의체제가 가장 발달한 나라였고, 폴란드, 헝가리, 그리스는 자본주의체제가 중위수준으로 발전한 나라들이었으며, 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알바니아, 루마니아는 봉건주의요소가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들이었다. 동유럽 나라들은 동아시아 나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자본주의체제가 더 발달하였고, 제국주의 독일의 점령기간도 짧았으니, 그런 나라들의 사회성격을 일률적으로 식민지반봉건사회라고 규정하기 힘들었다.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전후하여 자본주의체제의 발전수준이나 제국주의체제의 식민지화수준에서 동아시아와 동유럽은 차이를 보였지만, 그 두 지역에서 전개된 민주주의혁명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성격,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성격, 그리고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그러한 성격을 지닌 현대 민주주의혁명을 인민민주주의혁명(peoples' democratic revolution)이라 한다.

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전개된 인민민주주의혁명에서 주목하는 것은, 제국주의 일본과 독일의 패망으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가 완수되면서,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가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봉건주의요소가 강하게 남아있던 나라들에서는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가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임무에 비해 부차적이었는데, 인민민주주의혁명에서 수행된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제를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해결하는 것이었다.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제를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해결한 성과를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중요산업의 사회화, 노동계급의 자주관리 실현, 생산과 분배, 가격에 대한 국가계획 수행, 누진과세 등의 조세제도 개혁, 투기근절 등이었다.

줄여서 말하면, 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전개된 인민민주주의혁명은,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배격하고 봉건주의요소를 청산하면서,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제를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해결하였던 것이다.  

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한 뒤 사회변혁의 단계가 한층 더 높아져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 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되기 시작하였다.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밟아간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영도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노동계급은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여 완수하고 곧장 사회변혁의 사회주의적 임무를 수행하는 길로 나아갔다.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임무를 완수한 조건에서 사회변혁의 사회주의적 임무를 수행하였으므로, 사회주의혁명은 평화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다.

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일어난 인민민주주의혁명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현대 민주주의혁명을 끝까지 이끌어갈 사회변혁의 영도계급은 노동계급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2) 노동계급이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을 자기 주위에 결집시켜 민주주의혁명을 밀고 나갔으므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근로대중이 참가하는 전인민적 범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3) 현대 민주주의혁명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동시에 완수하였으며, 그와 더불어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제를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해결하였다.

(4)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와 수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제투쟁에는 무장투쟁이 따랐는데, 반제투쟁으로 제국주의세력을 몰아내고 민족해방을 실현하였다.

(5) 반제투쟁이 승리하여 민족해방이 실현되자, 사회주의계열의 정당과 좌파 사회민주주의계열의 정당, 좌파 민족주의계열의 정당이 합당하여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통일전선정부를 세웠다.

(6) 통일전선정부는 제국주의독점자본, 전쟁범죄자, 파시즘협력자, 부정축재자가 소유하였던 기업, 이전 정권이 소유하였던 국유기업과 군수기업을 몰수하여 사회주의국유화를 추진하였고, 봉건주의적 토지소유관계를 해체하는 민주주의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국유화와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계급투쟁이 전개되었다.

(7) 민주주의혁명이 전화하여 사회주의혁명으로 넘어가는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가 실현되었다.

3-2) 유산된 반제반독점민주주의혁명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반파시즘연합군은 패전국 독일을 분할, 점령하였고, 미국군은 패전국 일본을 단독으로 점령하였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독일과 일본의 선진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그런 상황에서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여야 하였다.

당시 독일과 일본은 동아시아와 동유럽과 달리 자본주의가 매우 발달한 나라들이었으므로 그 두 나라의 민주주의혁명에 제기된 것은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임무가 아니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였다. 여기서 말하는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과제를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해결하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총자본 전반을 사회화(socialize)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을 사회화하는 것을 뜻한다. 독점자본을 사회화하는 민주주의혁명을 반독점민주주의혁명이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동아시아와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구식민주의체제에서 벗어나 신생독립국이 되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일본과 서독은 일시적으로 제국주의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제국주의 미국의 지배 아래 놓인 일본과 서독의 민주주의혁명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와 더불어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도 제기하였다. 이처럼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성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성격이 통합되었으니, 그러한 유형의 사회변혁을 반제반독점민주주의혁명이라 한다.

그러나 반제반독점민주주의혁명은 유산되고 말았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제국주의 미국은 일본과 서독을 자기 식민지로 강점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 두 패전국을 지배한 기간이 매우 짧았다. 제국주의 미국은 전후처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제국주의점령군을 그대로 남겨둔 채, 일본과 서독의 반동적 지배계급에게 국가통치권을 돌려주고 제국주의동맹관계를 맺었다. 국가통치권의 반환과 제국주의동맹관계의 형성이 일본과 서독에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객관적 조건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음은 물론이다. 그에 따라 일본과 서독의 전후 민주주의혁명에서는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가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

(2) 동아시아와 동유럽을 휩쓴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물결이 일본과 서독에 밀려오는 것을 막아내기 위하여 제국주의 미국은 일본과 서독의 반동적 지배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이른바 전후경제부흥정책을 들이밀었다. 그에 따라 전쟁으로 파괴되었던 일본과 서독의 자본주의생산력이 빠르게 복구되었으며, 사회개량의 물적 기반이 조성되었다. 노동계급에게 완전고용과 생활안정의 보장을 선동하였던 일본과 서독의 이른바 ‘전후 번영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전후 번영기’의 노동운동은 사회개량주의로 흘러갔고, 중간계층의 양적 성장이 촉진되었다. 노동운동의 개량주의화와 중간계층의 양적 성장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객관적 조건을 약화시키면서 노동계급을 내부분화와 정치적 무기력으로 몰아갔다.

(3) 전후 서독의 민주주의운동은 사회변혁운동을 민주주의적 단계에 묶어두고 사회주의적 단계에로의 전화를 부정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우경적 흐름에 휘말려 민주주의혁명의 전망을 잃어버렸다.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운동은 제국주의점령군의 탄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를 뛰어넘어 사회주의적 단계로 나아가려는 급진적 사회주의의 좌경적 흐름에 휘말려 민주주의혁명의 전망을 잃어버렸다.

3-3) 1960년대와 1970년대 제3세계의 사회변혁

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승리한 인민민주주의혁명의 물결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혁명의 물결은 1960년대 초에서 1970년대 말에 이르는 20년 동안 3개 대륙에서 일어났다. 아시아에서 베트남혁명(1975년), 캄보디아혁명(1975년), 라오스혁명(1975년)이 승리하였고, 아프리카에서 베닌혁명(1960년), 콩고혁명(1963년), 소말리아혁명(1969년), 앙골라혁명(1974년), 이디오피아혁명(1974년), 기니비사우혁명(1974년), 모잠비크혁명(1975년)이 승리하였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쿠바혁명(1959년), 칠레혁명(1970년), 니카라과혁명(1979년)이 승리하였다.

쿠바혁명과 베트남혁명은 승리한 인민민주주의혁명이 사회주의혁명으로 전화한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밟아갔다. 칠레혁명은 민주주의혁명을 선거전의 승리로 전진시켰으나 제국주의 미국의 조종과 지원을 받은 군부세력의 반란으로 좌절하였으며, 니카라과혁명은 승리한 민주주의혁명의 발전도중에 실시된 선거전의 패배로 좌절하였다. 그 밖의 나라들에서 좌파 민족주의세력이 주도한 혁명은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약화시키거나 심지어 배제한 채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만을 전면에 내세운 사회변혁이었다. 그러한 유형의 혁명을 민주주의혁명과 구분하여 민족해방혁명이라 한다.

3개 대륙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비자본주의적 발전이라는 평가를 한때 받기도 하였으나,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성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성격이 배제된 민족해방혁명은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밟아가지 못한 채 중도에 좌절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노동계급이 이끌어 가지 않는 사회변혁은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에서 이탈하여 좌절한다는 점이다.

모든 민족해방혁명, 모든 민주주의혁명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따라 전진하는 것이 아니다. 비노동계급이 이끌어 가는 민족해방혁명이나 민주주의혁명은 그것이 아무리 격렬하게 진행된다고 해도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로 나아가지 않는다. 비노동계급의 힘으로는 자본주의체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오직 노동계급이 이끌어 가는 사회변혁만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로 나아갈 수 있다. 민족해방혁명이나 민주주의혁명은 노동계급의 영도에 의해서 반봉건주의계급해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성격을 갖게 되며,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따라 전진하는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사회변혁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따라 전진하는 까닭은 식민주의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성격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 사회에서 무단계적인 사회변혁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식민주의체제와 예속자본주의사회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그러한 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를 뛰어넘어 사회주의적 단계로 들어갈 수 없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사회변혁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따라 전진하는 또 다른 까닭은 사회변혁의 주체역량이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여 단계적으로 강화, 발전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이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개별기업단위의 파업을 벌이는 분산적 계급투쟁의 한계에 머물러있는 조건에서, 그리고 근로대중이 자기의 싸움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자연발생적 저항 이상으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조건에서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를 뛰어넘어 사회주의적 단계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4. 제국주의세계체제 팽창기의 민주주의혁명

사회변혁의 물결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휩쓸었던 세계사의 격변기로부터 시대가 달라지고 세기가 바뀌었다. 그 동안 정세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깃발을 내리고 자본주의체제를 되살려놓았으며, 지난 시기 민주주의혁명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따라 전진하였던 사회주의적 발전은 거의 모두 중단되어 자본주의체제로 돌아섰다.

사회주의발전노선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체제로 돌아서는 추세가 러시아와 동유럽에 퍼져나가자, 제국주의 미국과 제국주의동맹국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본주의시장을 세계적 범위에서 통합하는 이른바 세계화정책을 밀어붙였다. 세계화정책의 강행추진은 자본주의체제를 공황으로 몰아간 축적위기의 빈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적 저항과 투쟁, 개별적 자본주의시장들 사이에서 일어난 불균형한 발전과 이해관계의 갈등 등으로 수없이 파란을 겪으면서도 집요하게 팽창욕구에 매달렸던 제국주의세계체제가 이제 그 욕구를 실현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바야흐로 제국주의 미국과 제국주의동맹국들은 제국주의세계체제를 팽창시키기 위하여 나라별, 지역별로 분산된 자본주의시장을 신자유주의세계시장으로 통합하는 중이다. 신자유주의세계시장을 통합하기 위한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방안(Doha Development Agenda)과 미국이 자기의 수탈대상인 약소국들과 순차적으로 맺고 있는 쌍무적 자유무역협정(bilateral free trade agreement)이 추진일정에 오른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사회주의발전노선을 포기하고 자본주의체제로 돌아선 과도적 사회체제의 성격을 흔히 시장사회주의(market socialism)로 규정하나니, 시장사회주의체제가 신자유주의세계시장에 흡수, 통합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동방에서는 북(조선)이 사회주의발전노선을 고수하고 있으며, 서방에서는 쿠바가 사회주의 깃발을 지키고 있다. 그에 대응하여 제국주의 미국과 제국주의동맹국들은 북(조선)과 쿠바의 사회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고립압살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동지역에서 석유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제국주의침략전쟁을 도발하였다.

다른 한편, 자본주의체제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여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른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노동조합운동은 지배계급에게서 양보를 얻어내는 데 몰두하는 바람에, 사회개량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무기력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미국, 유럽연합, 일본에서 민주주의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세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회변혁을 반대하는 반동적 선동가들이 곳곳에서 일어나 ‘역사의 종말’과 ‘자본주의의 완전승리’를 외치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변혁의지를 뒤흔들고 있다. 민주주의혁명의 앞길에는 역경과 난관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불리해진 정세 속에서도 민주주의혁명의 깃발을 들고 싸우는 세력이 있으니, 그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3개 대륙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제국주의세력과 국내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저항해온 수 십억 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주주의혁명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제국주의세계체제 팽창기에 3개 대륙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제국주의세계체제 출현기에 전개되었던 민주주의혁명과 구분된다는 점이다.

3개 대륙이 봉건주의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낙후한 농업지역이라는 고정관점은 일부 지역을 내놓고는 대체로 통하지 않게 되었고, 동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몇몇 나라들은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편입, 결박되었으면서도 자본주의생산력이 발달한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비록 각 나라별로 자본주의발전수준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오늘 3개 대륙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하는 사회변혁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라 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발전수준이 아직 낮은 나라들에서는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함께 여전히 반봉건주의계급해방의 임무가 나서지만, 3개 대륙 가운데 자본주의발전수준이 가장 높은 동아시아 몇몇 나라들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만을 강조하는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민주주의혁명과 민족해방혁명을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져있지만, 제국주의세계체제 팽창기의 민주주의혁명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하나의 통일적 개념으로 제기하나니, 그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을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라 한다.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은 3개 대륙에서 아직 승리의 역사를 기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3개 대륙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시대에 살며 싸우고 있나니, 이 시대를 가리켜 혁명의 시대 제3기라 한다.

5. 식민주의의 형태변화와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

5-1) 예속자본주의사회를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편입, 결박시킨 신식민주의체제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두 가지 기본요인은 국가통치권의 귀속관계와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이다.

자본주의사회라는 개념 앞에 그 어떤 수식어를 달아놓아도, 국가통치권이 자본계급에게 귀속되고 자본계급이 사회적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회는 자본주의사회 이외에 다른 사회로 될 수 없다. 자본주의사회는 소수의 지배계급이 사적 이윤을 더 많이 거머쥐기 위한 약탈투쟁이 벌어지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야만적인 사회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나타나는 물질적 빈곤과 풍요의 양극현상은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계급적 지배와 착취를 원인으로 하여 생겨난 인위적 현상이다.

노동운동이 한 걸음 전진하여 지배계급으로부터 일정한 분량의 양보를 얻어낸다고 해도, 자본주의사회의 약탈본성이 사라지거나 계급적 지배와 착취가 멈추는 것은 아니다. 남(한국)의 노동계급 가운데 대기업 노동자들이 얻어낸 양보의 현재 수준은 2006년 4월 6일 민주노총이 발표한 ‘2005년 조합원 생활실태 조사보고서’에 나타나있는데, 그 보고서에 따르면 민주노총 조합원의 한달 소득은 평균 240만원, 한달 저축은 평균 77만8천원, 빚은 평균 3천950만원이며, 집을 소유한 조합원이 44%, 승용차를 소유한 조합원이 85.1%라고 한다. (『레디앙』 2006년 4월 10일) 지배계급에게서 양보를 얻어낸 대기업 노동자의 소득수준은 양보를 얻어내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 중소기업 노동자의 소득수준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노동계급이 얻어낸 양보는 그 분량만큼 자본주의사회의 약탈본성과 계급적 지배와 착취의 만행을 노동계급의 시야에서 가리고, 그에 따라 노동계급은 자기의 계급적 저항을 양보와 바꾸는데 자꾸 길들여지게 된다. 그것마저도 지배계급이 그 양보를 언제 일방적으로 걷어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생산력이 발달할수록 국가통치권의 귀속관계와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관계가 더 복잡성을 갖게 되므로, 국가통치권이 자본계급에게 귀속되고 자본계급이 사회적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굴절되거나 가려진다. 굴절과 가려짐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약탈적, 지배적, 착취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게 된다.

이를테면, 국가통치권이 자본계급에게 귀속되었으나, 앞에 나서서 그 통치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것은 집권당과 관료조직이다. 자본계급은 자기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정당과 관료조직을 내세워 국가통치권의 귀속관계를 은폐한다. 또한 사회적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계급은 사회적 생산활동에 대한 아무런 결정권도 없는 도시소자산계층과 일부 노동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 팔고 자기들이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은폐한다.

그런데 국가통치권의 귀속관계와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관계가 굴절되고 가려질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 관계의 성격과 형태마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제국주의지배권력과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지배와 수탈을 받으면서 형성되고 발달한 예속자본주의사회가 그 경우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state monopoly capitalism)단계로 발전한 자본주의사회는 식민주의(colonialism)라는 반동정책을 밀고 나간다. 현대 자본주의체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단계에 이르러 식민주의반동정책으로 자기를 지탱하면서 제국주의세계체제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식민주의란 제국주의세력이 다른 나라 또는 다른 민족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는 가장 반동적인 정책이다. 식민주의는 고대노예제사회나 중세봉건제사회에서도 있었지만, 자본주의사회가 국가독점자본주의단계에 이르면서 세계적 범위로 확대되었다.

식민주의는 세계적 범위로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형태변화를 일으켰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일어난 정세격변에 적응하여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가 등장하였으니 그것을 신식민주의(neocolonialism)라 한다.

제국주의세력이 식민지로 분할, 강점하였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수많은 신생독립국이 일어섰다. 그러나 제국주의 미국은 신생독립국들을 자기가 건설한 제국주의세계체제로 편입, 결박하고 지배, 수탈하기 시작하였다. 지난 시기 제국주의열강의 식민지쟁탈전에 뒤엉켜 서로 충돌하였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같은 제국주의동맹국들은 제국주의 미국이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미국이 장악, 주도하는 제국주의세계체제로 편입, 결박된 식민주의체제를 신식민주의체제라 한다.

주목하는 것은, 신식민주의체제에서 국가통치권의 귀속관계 및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의 성격과 형태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제국주의지배권력과 예속정권이 이중적으로 지배, 억압하게 되니 국가통치권의 귀속관계의 성격과 형태가 변질되고, 또한 제국주의독점자본과 기생자본이 이중적으로 착취, 수탈하게 되니 사회적 생산수단의 소유관계의 성격과 형태가 변질되는 것이다.

변질된 관계의 이중적 성격과 형태도 역시 은폐된다. 제국주의지배권력은 예속정권을 통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지배하면서 예속정권의 뒤에 자기 정체를 숨긴다. 또한 제국주의독점자본은 기생자본을 통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수탈하면서 기생자본의 뒤에 자기 정체를 숨긴다.  

구식민주의체제의 특징이 국가통치권의 강탈, 총독기관의 폭압통치, 식민지초과이윤 약탈이었다면, 신식민주의체제의 특징은 국가통치권의 형식적 이양, 동맹체제로 위장한 정치군사적 지배, 제국주의국가정보기관의 비밀공작, 제국주의경제원조를 통한 식민지초과이윤 수탈이다. 다만 제국주의침략전쟁은 구식민주의체제와 신식민주의체제를 구분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다른 식물에 붙어있어야 자기존재를 유지하는 붙살이식물이 성장하듯, 제국주의독점자본에 붙어있어야 자기존재를 유지하는 기생자본도 성장한다는 점이다. 기생자본이 성장하면서 봉건주의사회성격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사회성격이 지배적으로 되었다. 구식민주의체제에서 나타났던 식민지농업수탈, 봉건적 지주-소작제의 유지, 자본주의적 발전의 억제, 식민지노동계급의 미성숙 같은 요소들이 사라지고, 그 대신 제국주의경제원조를 통한 기생자본의 성장,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기형적 발달, 노동계급의 성장과 내부분화, 신흥중간계층의 등장 같은 새로운 요소들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기생자본이 기형적으로 성장한 신식민주의체제의 사회성격은 예속자본주의로 규정되었다. 줄여서 말하면, 예속자본주의란 식민주의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성격이 통합된 신식민주의체제의 사회성격인 것이다. 명백하게도, 남(한국)은 신식민주의체제가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예속자본주의사회의 전형이다.

그런데 신식민주의체제에 관한 이론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제국주의세계체제에 대한 남(한국)사회의 상대적 독자성이 차츰 강화되었으므로 더 이상 식민주의사회성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남(한국)사회의 식민주의사회성격은 주한미국군이 틀어쥐고 있는 군사부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데, 남(한국)정부가 제국주의 미국에게 전시 군사작전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보면 군사부문의 식민주의적 성격 또한 약화되었고 상대적 독자성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견해의 맹점은, 상대적 독자성이 강화된 현상이라고 지적한 군사작전권 반환문제마저도 동맹체제로 위장한 정치군사적 지배구도를 유지, 강화하는 제국주의군사전략인 전략적 유연성 강화전략에 따라 처리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잘라 말하자면, 예속자본주의사회를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편입, 결박한 신식민주의체제의 상대적 독자성이라는 개념은 허구이다.

오늘 신식민주의체제가 사회성격을 규정하는 예속자본주의사회의 일반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제국주의독점자본에 붙어있어야 자기존재를 유지하는 기생자본이 성장하면서 신식민주의체제의 자본주의생산력을 촉진하였고, 그에 따라 봉건주의사회성격이 사라지면서 노동계급이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고 새로운 중간계층이 출현한 예속자본주의사회로 변화하였다.

(2) 예속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주의생산력이 늘어남에 따라 식민지초과이윤도 늘어나므로,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식민지초과이윤 수탈이 갈수록 증대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더욱이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축적위기에 몰려갈수록 식민지초과이윤 수탈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게 된다. 신자유주의세계시장의 출현은 식민지초과이윤 수탈이 걷잡을 수 없이 폭증하고 있음을 뜻한다.

(3) 예속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주의생산력이 늘어남에 따라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식민지초과이윤을 대량수탈하는 사이에, 제국주의지배권력과 예속정권은 예속자본주의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기만적 포섭정책을 내밀고 있다. 이른바 민주주의, 자유, 인권, 평화를 내세워 그들의 정치의식을 마비시키고, 지배계급의 사상과 문화에 동화시키며, 사회개량의 환상을 주입하는 것이다.

5-2)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민주주의운동은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예속정권을 틀어쥐고 신식민주의체제를 지탱해온 군부와 관료집단이 민주주의운동을 폭력적으로 짓눌렀던 것이다.

그러나 제국주의지배권력과 예속정권이 예속자본주의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기만적 포섭정책을 내밀기 시작한 뒤로, 예속자본주의사회의 군부와 관료집단은 더 이상 폭압통치에 매달릴 수 없게 되었다. 폭압통치가 꼬리를 감추면서 형식적 민주주의와 사회개량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였다.

예상했던 대로, 예속자본주의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와 사회개량은 얼마가지 않아서 파산하고 말았다. 그 까닭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민주주의의 명목과 형식만 보여주고, 사회개량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 앞에서 무용지물로 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명목과 형식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가해지는 지배와 착취를 조금도 제거하지 못하며, 사회개량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로 중단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지배와 착취에서 스스로를 해방하는 길은 민주주의의 실질과 내용을 실현하는 사회변혁의 길밖에 없다.

사회변혁의 관점에서 볼 때 형식적 민주주의와 사회개량의 파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낡고 병든 세상을 바꾸려는 사회변혁의 요구가 그 파산을 체감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절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주의운동을 힘있게 밀고 나가는 가운데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실현하려는 정당과 정권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러한 정세변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형식적 민주주의와 사회개량이 파산하는 사이에 민주주의혁명의 정세는 빠르게 성숙되는 법이다. 형식적 민주주의와 사회개량의 파산을 목격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시야에 민주주의혁명은 사회역사발전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혁명의 시대 제3기를 맞이하고 있다.

위에서 논한 대로,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회변혁이다. 특히 제국주의지배세력의 침략전쟁과 무력강점,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이 신자유주의세계시장과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두 개의 간판을 내걸고 미친 듯이 벌어지는 오늘,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를 가볍게 보거나 외면하는 것은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에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는, 예속자본주의사회를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편입, 결박한 신식민지체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예속자본주의사회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세계체제와 신식민주의체제를 반대하여 싸우는 예속자본주의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민족적 자주성을 실현하게 된다.

신식민주의체제의 사회성격이 예속자본주의이므로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함께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이 수행하는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는 중요산업을 사회화하면서 중소산업을 통제하는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중소자본의 착취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한다는 점이다. 중소산업을 사회화하지 않고 민주주의적으로 통제하는 까닭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통해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이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수행할 때, 중요산업의 사회화는 사회주의국유화정책으로 실현되며, 중소산업에 대한 통제는 민주주의노동정책으로 실현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은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하나로 통합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을 통합하여야 민주주의혁명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경로를 따라 힘있게 전진할 수 있다.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을 끝까지 이끌어갈 사회계급은 제국주의세계체제를 반대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고 예속자본주의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싸우는 노동계급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계급은 민주주의혁명의 영도계급이다.

신식민주의체제에 의해 제국주의세계체제에 편입, 결박된 전형적인 예속자본주의사회인 남(한국)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하는 민주주의혁명이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으로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족적 자주성과 계급적 자주성을 짓누르는 신식민주의체제와 예속자본주의사회의 녹슨 족쇄를 끊어버리는 민주주의혁명이다.

각종 통계자료들이 말해주는 대로, 오늘 남(한국)에서는 제국주의독점자본과 기생자본의 이중착취가 가중되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비정규직으로, 실업자로, 도시빈민으로, 노숙자로 밀려나고 있으며, 차별과 실업과 빈곤에 저항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을 짓누르는 지배계급의 억압이 더욱 격심해지고 있다. 1997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국제통화기금사태 이후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수탈이 체계적으로 증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맺어지면 대량해고, 대량수탈, 대량파산의 재앙에 빠질 수밖에 없는 남(한국)의 현 정세에서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와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의 임무를 통합한 민주주의혁명이 아닌 다른 어떤 혁명이 실현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과학적인 발상이다.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전망은 다음과 같다.

(1) 예속자본주의사회에 조성된 사회개량의 물적 기반이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에 의해서 파괴될 때,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는 신자유주의세계시장에 흡수, 통합되는 것을 반대하고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을 배격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대중항쟁으로 수행될 것이다.

(2) 제국주의점령군의 군사적 지배로 유지되는 신식민주의체제에서는 제국주의점령군의 침략전쟁준비를 파탄시키는 반전투쟁과 제국주의점령군을 내모는 철군투쟁이 전면에 배치되어 반제국주의민족해방의 임무가 수행될 것이다.  

(3)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은 개별적 생산활동에 의존하는 봉건주의농업사회가 아니라 기업단위로 조직된 사회적 생산활동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산업사회에서 수행되는 까닭에 중요산업의 사회화와 중소산업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될 것이다.

(4) 현 시기 민주주의혁명은 자본주의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조건에서 추진되므로, 사회변혁의 민주주의적 단계에서 사회주의적 단계로 넘어가는 전화기간이 짧아질 것이다.

(5) 노동계급이 계급적 중심에 서고 농민을 비롯한 근로대중이 대중적 기반을 형성한 진보정당이 건설되고, 그 당의 정치적 구심력에 의거한 광범위한 통일전선이 형성될 것이다.

(6) 사회적 생산활동의 형식이 다양해지고, 사회적 분배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신흥중간계층이 성장하였을 뿐 아니라 그 계층에 기반을 둔 사회정치세력이 등장하였으므로, 중간계층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결집한 통일전선에 포괄하는 과제가 민주주의혁명의 전략문제로 제기될 것이다.

(7) 통일전선에 의해서 노동계급의 총파업투쟁과 근로대중의 대중항쟁이 결합될 때, 민주주의혁명의 강력한 물리력이 폭발할 것이다.

(8)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하는 경우, 그 혁명의 강령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해온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새로운 정권을 세우는데, 그 정권을 자주적 민주정권이라 한다.

6. 글을 마치며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변혁은 아무 때나 일어나지 않으며 주체적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일어난다.

사회변혁의 주체적 조건이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싸움을 통해서, 그들의 힘으로 성숙되는 것이다. 사회변혁의 주체적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낡고 병든 세상에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바꾸는 대중투쟁에 나서게 된다.

특히 노동계급이 세상을 바꾸는 싸움에 나설 때, 그들은 자신과 근로대중 전체를 하나의 전선으로 결집할 수 있다. 또한 노동계급이 세상을 바꾸는 싸움에 나설 때, 통일전선에 작용하는 진보정당의 정치적 구심력을 비상히 강화,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세상을 바꾸는 싸움에서 단결, 전진, 승리의 삼중문을 여는 열쇠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노동계급의 손이, 노동과 투쟁으로 거칠어진 그들의 손이 움켜쥐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세상을 바꾸는 싸움에 자동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노동계급과 사회변혁은 동의어가 아니다.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으로부터 이념과 환상을 주입 받으면, 사회변혁에 무관심해지며, 심지어 사회변혁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일정한 조건과 매개를 통하지 않으면 사회변혁사상과 만나지 못한다. 사회변혁운동의 지도핵심이 사회변혁사상을 선전한다고 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동적으로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지배계급의 착취와 억압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겪는 사회적 고통이 가중되고 사회적 분배와 소득이 양극화되어 계급적 적대감이 전사회적으로 퍼져나갈 때, 그리하여 민주주의가 실현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머리 속에서 산산이 깨져버릴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배반하고 제국주의세력에 굴종하는 지배계급의 노예근성이 숨김없이 드러날 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지배착취구조를 은폐하며 기만해온 지배계급을 향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분노가 끓어오를 때, 바로 그러할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사회변혁사상을 받아들인다.

사회변혁운동의 지도핵심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자연발생적인 생존권사수투쟁을 반제국주의민족해방과 반자본주의계급해방을 위한 대중투쟁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오직 그 과정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사회변혁사상과 만나 자신을 무장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변혁사상과 만나 자신을 무장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세상을 바꾸려는 신념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민주주의혁명의 깃발을 치켜드는 것이다. 사회변혁사상과 만나 자신을 무장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만이 낡고 병든 세상을 바꾸는 싸움에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나서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의 진보정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회변혁사상을 만나는 유일한 공간이자 통로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진보정당을 통해서 사회변혁사상을 공유하고 하나의 깃발 아래 결집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운동이 남겨놓은 미완의 역사를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지금 진보정당의 휘날리는 기폭을 바라보고 있다. 낡고 병든 세상을 새 세상으로 바꾸는 싸움이 그 깃발 아래 벌어지고 있다. (2006년 4월 17일 작성)

 

* 이 글은 서울에서 발행되는 민주노동당 기관지 월간 『이론과 실천』 2006년 5월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