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와 주한미국군 변동은 조·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글을 시작하며
2.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조·미 관계에 생겨날 이해득실  
3. 중·미 관계를 정상화한 경험은 조·미 관계 정상화에 적용될 수 없다
4. 주한미국군의 변동과 미국의 대북(조선)정책
5. '전쟁억지'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
6. 글을 마치며

1. 글을 시작하며

요즈음 정세분석가들의 관심을 끄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와 주한미국군 변동이다. 이 두 요인은 한(조선)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요인의 진면목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또한 올해부터 주한미국군의 변동을 추진하기 시작한 미국의 의도와 계획도 좀더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져야 그 변동의 내용과 방향을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변화요인들은 복잡하게 뒤엉켜 난해하게 보이고, 정세는 갈피를 잡지 못할 만큼 유동적이며, 시중에 떠도는 잡음은 요란하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것은, 민족민주세력이 정세의 변화요인과 정세의 변화방향을 파악하는 데서 민족주체적 관점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다. 반제자주의 기치를 치켜든 민족민주세력이 민족주체적 관점을 틀어쥐고 정세의 본질을 꿰뚫어보아야 좌충우돌하는 제국주의 미국의 책동에 휘말리지 않게 되고, 한층 복잡해진 정세의 난맥을 헤치고 자주화의 물결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 글은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미국 대통령선거와 주한미국군 변동에 관한 여러 정보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한다. 민족민주세력의 정세인식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조·미 관계에 생겨날 이해득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조·미 사이의 대화통로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그와 더불어 자연히 6자회담의 장래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미국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고, 대선후보로 나선 조지 부시(George W. Bush, 1946년생)와 존 케리(John F. Kerry, 1943년생)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막판 혼전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부시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북(조선)도 대선 이후에 가서야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을 풀기 위한 시동을 걸게 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더욱이 눈길을 끄는 것은 조지 부시가 낙선하고 존 케리가 당선되어야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이 풀릴 수 있으므로 북(조선)이 조지 부시가 낙선하고 존 케리가 당선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는 그럴듯한 분석이다.

그러나 조·미 관계가 굳어진 원인을 미국 대통령선거에 결부시키는 견해는 한(조선)반도 정세를 너무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오류다. 한(조선)반도 정세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인 반제자주적인 한(조선)민족 대 제국주의 미국의 대결구도는, 미국에서 대통령선거로 정권이 교체되는 것에 따라서 바뀌지 않는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그 대결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대결구도를 새로운 구도로 바꾸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공화당 집권세력과 민주당 지도부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제국주의 미국의 국가차원에서 수립되고 추진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미 관계가 굳어진 근본원인은 당락을 예측하기 힘든 미국 대통령 선거국면 때문이 아니며, 더욱이 북(조선)이 존 케리의 당선을 은근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 자명해진다.

조·미 관계가 굳어진 근본원인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하였다는 것은 나의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미국 주요언론이 내놓은 분석이며, 조·미 관계를 연구하는 미국 전문가들의 일반적 판단이다.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려오는 곳은 대선을 앞둔 케리 진영이다. 지금 부시 진영을 상대로 치열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는 케리 진영에서는 부시 정부의 6자회담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비난하면서 부시를 거세게 몰아 부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케리 진영의 대중선동과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실패에 대한 나의 견해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밝히기로 하고, 그보다 먼저 논하려는 것은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가 한(조선)반도 정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이다. 그 분석은, 위에서 지적한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하였다는 전제 위에서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한(조선)반도 정세전망에서 요구되는 것은,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 한(조선)반도 정세에 유리할 것이라는 단순·막연한 기대심리가 아니라,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조·미 관계에서 발생할 복잡다단한 이해득실을 따져보는 다각적인 분석이다.

1) 케리의 집권이 한(조선)반도 정세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가 선거유세에서 조·미 정치회담을 재개하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는 것이다. 부시 정부의 6자회담 구도가 파탄지경에 빠진 조건에서 케리가 등장하여 양자회담 구도를 되살리는 것은, 조·미 양자회담을 요구하여왔던 북(조선)에게 일단 유리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판단으로는, 조·미 양자회담 구도로 복귀하겠다는 케리의 정책구상은, 부시가 추진해온 6자회담 구도를 대체하는 방편을 제시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푸는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케리가 집권하여 조·미 양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도 '핵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케리가 집권한다고 해도, 그가 대표하는 차기정부는 실패한 대북(조선)정책을 폐기하고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민주당 지도부도 공화당 집권세력과 마찬가지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갖지 못하였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정책을 갖지 못한 공화당 집권세력이나 민주당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극우세력의 반사회주의 난동에 맞장구를 치면서 '북(조선)인권법안' 따위를 채택하는 것밖에 없다. '북(조선)인권법안'이 연방상원에서 채택된 과정에서 주목하는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의원들이 전원일치로 그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공화당 집권세력과 민주당 지도부가 합동하여 북(조선)의 붕괴를 촉진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제국주의 미국의 지배세력은 적대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하는 경우에 언제나 초당적으로 협력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시의 낙선과 케리의 당선을 기다리면서 민주당의 집권에서 '핵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만일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 의해서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경우,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이 해소될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더 정확히 해명하려면, 공화당 정권이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되었던 1993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이 추진해온 대북(조선)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적대정책으로 일관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유화정책으로 바뀐 적은 없었으며, 그렇게 바뀔 수도 없었다.

클린턴 정권 시기에 조·미 정치회담이 진전되고 몇 가지 중요한 정치적 합의에 도달했던 것은 그가 대표한 민주당 정권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가 아니라 적대정책을 포기하라는 북(조선)의 강한 압박공세에 밀려 하는 수 없이 유화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였다. 클린턴이 집권하자마자 민주당 정권은 북(조선)의 '핵문제'를 제기하면서 공화당 정권이 추진하기 시작한 주한미국군 3단계 감군조치를 동결시키고 침략전쟁책동에 달라붙었으며 위험천만하게도 한(조선)반도 정세를 전쟁 일보직전까지 끌고 갔다. 만일 북(조선)이 강력한 압박공세로 클린턴 정권의 침략전쟁책동을 진압하지 못했더라면 한(조선)민족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 유화조치를 취했던 까닭은 북(조선)의 강한 압박공세를 피하려는 것이었지, 적대정책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미국이 압박공세에 밀려 내놓는 유화조치라는 것은 적대정책의 대립물이 아니라 부속물이므로 정세변화에 따라 갑자기 뒤집어질 수 있다.

따라서 케리가 집권하여 조·미 관계를 클린턴 정권 말기의 유화적 분위기로 되돌려놓는다고 해도, 그것은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압박공세를 피하기 위해 유화조치를 취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국가가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반제전선의 강한 압박공세에 의해서 강제된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적대정책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내가 이전에 발표한 여러 편의 글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대로, 조·미 관계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관계이기 때문이다. 만일 북(조선)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로 기울어지는 경우를 가정하거나, 또는 미국이 제국주의를 포기하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그런 두 가지 경우에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관계가 해소될 것이므로 미국의 대북(조선)정책도 자연히 유화정책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부질없는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조·미 두 나라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회담을 진행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적대관계가 이완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이 북(조선)과 정치회담을 추진한다고 해서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의 기본성격이 적대(hostility)에서 유화(appeasement)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미국이 추진하는 적대정책은 포괄적이다. 거기에는 당연히 붕괴촉진정책도 포함되어 있다. 붕괴촉진정책이란 사회주의 북(조선)의 반미정권을 친미정권으로 교체함으로써 사회주의 반제전선을 무너뜨려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정책이다. 제국주의 미국의 적대정책은 사회주의 북(조선)의 반미정권을 친미정권으로 교체하기 위해서 인민경제를 옥죄는 경제봉쇄를 추진한다. 제국주의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끊임없이 가하는 전쟁도발위협은 침략전쟁을 도발하려는 적대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북(조선)의 국가자원을 막대한 군비에 소모하게 만들어 천천히 붕괴를 촉진시키려는 파괴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2003년 7월 21일자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대로, 북(조선)을 자극하는 저강도전쟁 도발위협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작전계획(Operation Plan) 5030'이야말로 붕괴촉진정책의 군사적 전개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주의 소련이 맥없이 붕괴한 경험을 이른바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해석한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집권세력은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끊임없이 추진하면 결국 북(조선)도 소련처럼 천천히 변질·붕괴할 것이라고 보면서 붕괴촉진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이른바 '북(조선)인권법안'이 미국 연방의회에서 통과되고 부시가 결재하였던 것이나, 노무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이른바 '북한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이 국정감사과정에서 드러난 사건이 말해주는 것은 명백하다. '북(조선)인권법안' 통과사건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붕괴촉진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드러내준 것이며, '북한급변사태에 대비한 비상계획'은 남(한국)의 친미예속정권이 미국의 붕괴촉진정책에 의해서 북(조선)이 붕괴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드러내준 것이다. 사회주의를 말살하려는 제국주의 미국의 흉계와 사회주의 붕괴를 기다리는 친미예속정권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2) 만일 케리가 집권하여 그의 선거공약대로 조·미 양자회담이 재개될 때, 한(조선)반도 정세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전망할 필요가 있다. 조·미 양자회담 재개는, 그 동안 6자회담 구도에 가려져 실체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두 나라의 첨예한 정치대결이 다시 전면화되는 것을 뜻한다. 이미 실패로 판명이 난 적대정책을 무작정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민주당 집권세력이 조·미 양자회담에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북(조선)의 핵포기 요구와 주한미국군 철군논의 불가를 공염불처럼 되뇌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조·미 두 나라가 양자회담 형식을 빌어 더욱 첨예한 정치대결을 벌이게 될 것임을 뜻한다. 문제는, 클린턴 정권 초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조·미 양자회담에서 벌어지는 정치대결이 격화되면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가 한층 더 긴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부시의 공화당 정권은 강경한 전쟁집단이지만, 케리의 민주당 정권은 온건한 협상집단이 되리라고 보는 이분법적 상식은 정세인식에서는 통하지 않는 오류다.

주목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가 한층 더 긴장되는 경우, 남(한국)의 민족민주세력이 시민운동단체의 반전평화운동과 연대하여 제국주의 미국의 전쟁책동을 저지·파탄시키는 대중투쟁을 전개할 것이며, 그에 따라 반미자주화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확대·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1993년과 1994년에 클린턴의 민주당 정권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걸고 한(조선)반도 정세를 전쟁 일보직전까지 몰아갔을 때, 당시 민족민주세력은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정세를 인식하는 것도 불철저하였고 반미자주적 대응력도 갖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있는 오늘의 현실은 10년 전과 매우 다르다.

조·미 양자회담에서 정치대결이 격화되고 그에 따라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경우, 양자회담의 대결구도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북(조선)이 대미압박공세를 가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조성됨을 뜻한다.

3) 케리나 부시가 모두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갖지 못하고 북(조선)의 압박공세에 허겁지겁 대응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만, 만일 케리가 당선되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경우 한(조선)반도 정세는 현재보다 더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이 있다. 케리가 집권하는 경우 한(조선)반도 정세가 더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까닭은, 지난 시기의 정권교체 경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될 적마다 새로 등장한 정권은 선임정권의 대북(조선)정책을 재검토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정치회담을 회피하였다. 그들은 임기가 중반을 넘어선 다음에 가서야 사실상 전혀 새로운 내용이 없는데도 마치 새로운 대북(조선)정책을 발표하는 척하면서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임기 말까지 시간을 질질 끌었던 것이다. 이러한 무기한 지연전술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북(조선)의 압박공세를 피하기 위한 목적에서 수행된 전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미국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경우, 차기정부가 구태의연한 무기한 지연전술을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은 케리의 집권으로 풀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 등장한 케리 정부의 지연전술로 더욱 꼬여갈 것이다.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을 푸는 길은, 북(조선)이 미국의 무기한 지연전술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강한 압박공세를 계속 들이대면서 미국을 곤경으로 몰아넣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미국을 곤경으로 몰아넣어 조·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정권교체가 조·미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권투경기에서 연속적으로 강타를 날리면서 상대선수를 구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도중에 갑자기 경기중단을 알리는 신호가 울려 비틀거리던 상대선수가 퇴장하고, 한참 뒤에야 새로운 선수가 나타남으로써 연속타격이 난조에 빠지고, 그런 식으로 선수교체가 계속되는 경우 공격하던 선수가 도리어 힘이 빠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 바뀐 상대가 아니라 같은 상대에게 압박공세를 연속적으로 집중하는 전술이 북(조선)에게는 더 유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 어떤 사람은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 이라크 침략전쟁을 일으킨 흉악한 전범집단이므로, 이번 미국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케리의 민주당 정권이 혹시 이라크 군사점령을 중단하고 점령군을 철군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반전·평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가 케리의 집권 희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심리는 정세인식을 감정이입으로 끌어가는 함정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한 책임을 흔히 '네오콘(neocon)'이라고 부르는 신보수주의집단에게 한정하면서, 정권이 교체되어 그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면 이라크 군사점령이 중단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제국주의국가의 전쟁기구(war machine)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미국의 독점자본이 이라크에 침입하여 석유자원을 '안정적'으로 약탈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라크 정정(政情)이 진정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의 반미저항세력은 벌써 14개월 째 하루 평균 30차례씩 계속되는 매복공격과 자폭공격으로 점령군을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고 있으며, 부시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로이터통신』 바그다드발 기사가 지적한 대로, 그들의 자폭공격은 막아내기가 불가능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세력이 그러한 전술로 미국군을 괴롭히고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4년 10월 15일자) 부시 정부가 2005년에 긴급히 요구되는 전쟁자금 7백억달러를 추가로 마련하려고 한다는 언론보도(『워싱턴포스트』 2004년 10월 26일자)는 이라크 군사점령이 장기화될 것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미국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도 차기정부가 이라크 군사점령을 중단할 가능성은 없다. 실제로 케리는 온갖 잡다한 선거공약을 남발하면서도 정작 이라크 점령군을 철군하겠다는 소리는 입밖에 내지 않고 있다. 그는 자기가 집권하면 이라크문제를 논의하는 다자회담을 개최하겠다고 말하였는데, 그가 말한 다자회담이란 이라크 군사점령을 중단하기 위한 평화회담이 아니라 미국의 독주와 독점을 보고 비판적으로 돌아선 제국주의 동맹국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조절회담이다. 이라크 군사점령을 중단하는 문제를 케리의 집권에 결부시키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중동지역에서 무엇을 노리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인 것이다.

제국주의 미국의 이라크 군사점령과 이라크 반미저항세력의 치열한 반격을 북(조선)의 견지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북(조선)은 세계 곳곳에서 제국주의 미국을 곤경에 빠뜨리는 반제전선이 형성되는 것이 북(조선)의 대미압박공세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차기정부가 이라크 반미저항세력의 반격을 완전히 진압하여 친미예속정권을 내세운 뒤에 점령군을 철군하게 되면 중동지역에 형성된 반제전선의 일부가 무력화되는 것이다.

반면에, 이라크의 반미저항세력이 자폭공격과 매복공격으로 제국주의 점령군을 죽음의 공포로 밀어 넣고 세계 곳곳에서 이라크 군사점령을 반대하는 반미운동이 일어나 제국주의 미국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은 강력한 반제전선이 형성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강력한 반제전선이 형성되는 것이, 반제전선을 주도하는 북(조선)에게 유리한 것은 자명하다. 이라크에서 반미저항세력 대 점령군의 전투가 반미저항세력의 승리로 끝나서 점령군이 패퇴의 철군길에 오르지 않는 한, 이라크 반미저항세력이 점령군을 계속 타격하는 것이 북(조선)의 대미압박공세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5) 케리가 집권하면, 부시 정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주한미국군 감군계획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기의 경험을 살펴보면, 공화당 집권세력은 주한미국군 감군정책을 추진하였던 반면에 민주당 집권세력은 주한미국군이 감군되는 도중에도 감군을 중단하고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두 집권세력이 그처럼 서로 어긋나는 정책을 추진하는 까닭은, 민주당 집권세력이 주로 민수독점자본과 중소자본가계급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반면, 공화당 집권세력은 주로 군수독점자본과 대자본가계급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사업에 지출하는 1백10억달러와 대만에게 미국산 무기를 판매하는 1백80억달러는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 미국 군수독점자본의 이익을 보장해주기 위하여 서두르는 대규모 재정지출의 일환이다. 최근 베이징, 도쿄, 서울을 연속적으로 순방하였던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공화당 정권은 중국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과 벌이는 무기매각협상을 올해 안에 타결하겠다는 강행의사를 표명하였다. 그 뿐 아니라, 공화당 정권은 정부재정 1백10억달러를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사업비로 지출하는 중이다. 이러한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은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사업과 대만에 대한 무기수출이 공화당 정권과 미국 군수독점자본의 상호결탁에 의해서 추진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사업비로 정부재정 1백10억달러를 지출하려는 결정이 주한미국군 감군조치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일 케리가 집권하여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사업비 지출에 제동을 걸 경우, 주한미국군 감군조치에도 차질이 생길 것이다. 차질이 생길 가능성은 주한미국군 감군규모가 축소되거나 감군일정이 연기될 가능성을 뜻한다. 물론 미국 국방부가 오래 전에 수립한 미군재편전략은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추진될 것이 분명하지만, 미군재편전략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여 미국의 군수독점자본을 위해 정부재정을 지출하려는 공화당 집권세력의 주한미국군 감군계획은 케리가 집권하는 경우 지출규모를 줄이던지 또는 지출시기를 뒤로 미루는 식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있다.  

케리는 그가 집권하는 경우, 부시가 추진했던 방향과는 어긋나는 방향에서 주한미국군 감군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케리 진영의 보좌관들은 케리가 집권하면 현재 추진 중인 주한미국군 감군을 중단하고 주한미국군 감군을 북(조선)을 압박하는 책략으로 이용해보려는 의사를 드러내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붕』 2004년 10월 19일자)

만일 케리가 집권하여 주한미국군 감군계획에 변동이 생기는 경우, 감군규모를 줄이거나 감군시기를 연기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은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을 풀어 가는 데서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6) 민주당 지도부에게는 미국 군수독점자본을 위하여 막대한 정부재정을 지출해야 할 절박한 요구가 제기되지 않았으므로 만약 케리가 집권하는 경우 민주당 집권세력은 미국 민수독점자본을 위하여 남(한국)에 대한 통상압력을 가중시키는 데 힘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한국)에 대한 통상압력 가중은 남(한국) 기층민중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노동자와 농민에게 돌아가야 할 막대한 이익을 가로채는 제국주의 수탈정책의 핵심내용이다.

제국주의 수탈정책이 한층 강화되는 가운데 국제독점체들이 자행하는 기업합병인수, 금융시장 점령, 투기자본 침투, 국제유가폭등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노무현 정권이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남(한국)의 경제난이 악화될 것이다. 남(한국)에서 경제난의 악화는 계급·계층적 이해관계의 충돌, 지역적 이해관계의 충돌, 집단적 이해관계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완충기능, 조정기능을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경제난의 악화는 중산층 정권과 중산층 지지기반을 분리시키면서 노무현 정권의 불안정과 정치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다.

지금 남(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은 중소기업 연쇄도산과 중산층 양극분해, 영세자영업 파산과 물가폭등, 개인신용불량자 증대, 비정규직 확산과 실업·실직 확산, 인적 물적 자원의 해외탈출, 사회적 범죄율과 자살율과 가정파탄율의 증가, 생계압박에 대한 저항과 집권세력에 대한 반감 확산 등 갖가지 위기조짐들이 불거지면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경제난 와중에 만일 케리가 집권하여 남(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적 통상압력이 가중되고 국제독점체들의 수탈이 확대되면, 경제난이 극도로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경제난이 극도로 악화된 사회에서는 방화와 약탈을 동반하는 경제난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는 법이다.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린 1998년 5월의 인도네시아 폭동, 페르난도 델라루아 정권을 무너뜨린 2001년 12월의 아르헨티나 폭동,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정권을 무너뜨린 2003년 10월의 볼리비아 폭동은 비교적 근래에 일어났던 경제난 폭동이다. 자연발생적인 경제난 폭동, 정권 붕괴, 민족민주세력의 투쟁이 서로 맞물리면서 발생할 급격한 정세변화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는 앞으로 더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3. 중·미 관계를 정상화한 경험은 조·미 관계 정상화에 적용될 수 없다

민족민주세력의 주체적 인식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미국의 정권교체로 조·미 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이 자기의 주체역량으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북(조선)이 전력을 다하여 풀어내려고 하고, 또 반드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란, 이전에 내가 발표한 여러 글들에서 지적한 대로, 두 나라가 적대관계를 완화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문제다.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표현을 대신에 완화한다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조·미 두 나라가 국교를 수립해도 적대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어 동맹관계로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조·미 국교수립이란 지금까지 고도의 긴장상태에서 고도로 첨예하게 정치적 대결과 군사적 대치를 유지해온 적대관계가 일정하게 완화되어 국가 대 국가의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고 통상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이 제국주의국가로 남아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사회주의국가로 존재하는 현실조건에서는 조·미 두 나라가 적대관계를 완전히 해소하여 동맹관계를 맺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조·미 두 나라가 적대관계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이미 세상에 알려진 대로,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여야 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북(조선)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도 적대정책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핵무기 개발포기와 적대정책 포기를 추진하는 구체적인 해결방안까지 미국에게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조선)에게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라는 일방적인 요구만 내놓았을 뿐, 자기의 적대정책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는 바람에 조·미 사이에서 발생한 '핵문제'가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어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조선)에게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라는 일방적인 요구만 내놓고, 자기의 적대정책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부시 정부는 지금 적대정책을 고수하면서 북(조선)에게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곤경에 빠져있다. 부시 정부가 빠져있는 곤경은, 6자회담을 통하여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려고 하면서도 자기의 적대정책은 여전히 붙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자가당착의 모순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부시 정부가 북(조선)을 압박하려고 만들어놓은 적대정책에 의해서 도리어 제 발목이 잡힌 꼴이다. 이처럼 자기의 적대정책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부시 정부가 추진한 6자회담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공전을 거듭해왔으며, 결국 막을 내릴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부시 정부의 고민이 매우 심각해진 것이다. 부시 정부가 곤경에 빠져들면서도 자기의 적대정책에 발목이 잡혀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적대정책 포기에 의하여 발생하게 될 한(조선)반도 정세의 근본적인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여러 각도에서 설명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전에 내가 발표한 글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대로, 주한미국군의 전면철군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고 적대정책을 포기하였다고 말할 수 없다. 제국주의 미국을 위해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해내는 친미성향의 정세분석가들은, 주한미국군은 동아시아에서 이른바 '안정자'로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주한미국군과 적대정책은 무관하다고 강변하지만, 미국이 북(조선)을 선제공격전략 대상으로 지정해놓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 판에 그런 강변에 귀를 기울이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시 정부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고서도 자기의 적대정책을 포기한 것처럼 꾸며낼 속셈으로 이른바 북(조선)에 대한 '안전보장'을 해주겠다고 선언하였으나, 그런 속셈이 북(조선)에게 통할 리 없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 미국이 다른 나라에게 내놓은 '안전보장' 문서는 아무런 효력도 없는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북(조선)이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조선)의 '안전보장'이란 주한미국군이 완전히 철군하는 적대정책 포기로 가능한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함으로써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조·미 관계를 적대관계도 아니고 동맹관계도 아닌 정상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상관계란 적대관계도 동맹관계도 아닌 두 나라가 국교를 수립한 관계를 뜻한다.

원래 조·미 관계처럼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오랫동안 정치회담을 지속하여 결국 국교를 수립하고 정상관계로 전환하였던 사례는 지난 시기 중·미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미 관계의 근본문제가 해결된 것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함으로써 가능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중·미 두 나라가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정상관계로 전환하였다고 해서, 미국이 중·미 전쟁을 예상한 작전계획까지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중·미 두 나라는 동맹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최악의 경우에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작전계획을 국교수립 이후에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한 과정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지는 두 단계를 거쳤다. 중·미 정치회담을 계속하되 국교를 수립하지 않은 전기단계가 있었고, 중국이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시행하려는 정책적 의지를 보이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대만주둔 미국군을 철군함으로써 국교수립으로 나아간 후기단계가 있었다.

전기단계에서 미국은 중·미 정치회담을 계속하면서도 중국이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시행하는 정책적 의지를 보일 때까지 국교수립으로 나아가지 않고 기다렸다. 제국주의 미국이 오늘날 조·미 정치회담에서 전개하는 지연전술은 이미 1970년대 중·미 관계에서 추진된 바 있었다. 미국의 무기한 지연전술은 중·미 정치회담에 시동을 걸었던 닉슨 정부가 미국 내부의 정치사건에 휘말려 포드 정부로 교체되고 다시 카터 정부로 교체된 뒤에, 그리고 중국에서는 마오쩌뚱(毛澤東) 집권기가 끝나고 덩샤오핑(鄧小平) 집권기가 시작되어서야 끝났다.

이처럼 중·미 두 나라 내부의 정권교체가 중·미 관계에 변화를 일으킨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변화요인은 덩샤오핑이 집권하면서 중국이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수정하여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무기한 지연전술로 버텨왔던 미국은 결국 덩샤오핑 정권이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는 정책적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고서야 국교수립으로 나아갔다. 미국의 견지에서 보면, 지연전술로 중·미 관계개선에서 최대의 효과를 본 것이며, 중국의 견지에서 보면, 덩샤오핑 정권이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정책적 결정을 내림으로써 미국의 적대정책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중·미 관계 정상화는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와 중국의 자본주의적 개혁·개방 추진이 상응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중·미 관계를 정상화한 경험에 근거하여 대북(조선)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무기한 지연전술에 집착하는 속셈은, 북(조선)이 중국처럼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정책적 의지를 보일 때까지 조·미 정치회담을 추진하면서도 국교수립으로는 나아가지 않고 버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중·미 관계를 정상화한 경험을 조·미 관계 정상화에 적용하려는 것은 잘못된 판단 위에 놓인 것이어서 실패를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중·미 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정상관계로 바뀌는 과정에서는 중국의 핵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핵무장국이었던 중국에게 핵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고, 중국은 미국과 정치회담을 추진하는 동안 핵문제를 가지고 미국에게 압박을 가한 적이 없었다. 그에 비하여, 지금 조·미 관계는 핵문제를 풀지 못하면 정상화되기 힘들게 되어 있으며,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압박공세를 가해온 쪽은 북(조선)이고, 곤경에 빠진 쪽은 미국이다.

2) 중국은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함으로써 미국의 적대정책을 포기시켰지만, 북(조선)은 중국처럼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하지 않는다. 북(조선)이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으로 나아가지 않는 까닭은, 중국식 사회주의와 조선식 사회주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의 복잡한 정치역정이 말해주는 대로, 중국은 사회주의 건설노선에서 좌우경적 오류를 범하였고, 그에 따라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내부갈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마오쩌뚱 집권기에 추진되었던 사회주의문화대혁명은, 그 혁명을 추진한 세력이 제시한 목적과 무관하게, 중국인민의 집단주의적 자발성을 발휘하게 이끄는 사회주의적 교양과 개조가 아니라 비사회주의적 강제와 강박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좌경적 오류에 빠졌다. 생전의 마오쩌뚱이 자신이 죽은 뒤에 중국이 사회주의의 길로 계속 나갈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중국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전망이 얼마나 불투명하였는지를 말해주는 유명한 일화다. 덩샤오핑 집권 이후 추진되기 시작한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은 중국인민을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목적을 내걸었으나, 자본주의적 방법을 끌어들여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우경적 오류를 낳았다.

마오쩌뚱의 집권과 덩샤오핑의 집권 사이에는 연속적 측면과 단절적 측면이 모두 존재하였으나, 덩샤오핑의 집권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단절적 측면이 계속 확장되면서 우경화로 흘러갔다. 이러한 좌우경적 오류의 반복은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과학적인 정치노선을 정립하지 못하였음을 현실로 입증한 것이다.

1979년 1월 1일 중국과 미국이 상호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한 직후에 이루어졌던 당시 중국 국무원 부총리 덩샤오핑의 워싱턴 방문은 중·미 관계 정상화를 완결시킨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중국이 사회주의 건설노선을 우경화하고 반제진영에서 이탈하였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이후 덩샤오핑이 이끈 중국공산당이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한 것은 중국인민을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원래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나라 안에서는 사회주의 건설노선의 기본방향을 상실하게 하였으며, 나라 밖으로는 중국을 반제진영에서 이탈시키게 하였다.

그에 비하여, 조선로동당은 중국공산당이 좌우경적 편향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1970년대에 사상혁명, 문화혁명, 기술혁명이라는 3대혁명노선을 자기의 고유한 사회주의 건설노선으로 정립하였고, 1990년대부터는 기존의 3대혁명노선을 인민대중 중심의 조선식 사회주의 건설노선으로 확대·발전시켰으며, 2000년대에 들어와 선군혁명노선을 추진하면서 반제진영을 주도하고 있다. 3대혁명노선, 인민대중 중심의 조선식 사회주의 건설노선, 선군혁명노선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방법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사상과 이론에 근거한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3대노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북(조선)은 앞으로도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할 필요도 없고, 그것을 추진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이 북(조선)이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하지나 않을까 기다리면서 조·미 정치회담에서 무기한 지연전술로 버텨온 것은 대북(조선)정책의 실패를 자초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실현되지도 않을 북(조선)의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회담을 재개하여 조·미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는 것이다.

조·미 관계 정상화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중·미식 국교수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풀지 못하기 때문에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중·미식 국교수립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기 미국은 사회주의 강대국인 중국과는 대등한 차원에서 관계를 정상화하였지만, 지금 미국의 집권세력에게는 북(조선)을 사회주의 약소국이라고 깔보는 비하관념이 지배적이어서 조·미 관계를 대등한 차원에서 정상화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태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한미국군을 자기의 군사전략에 따라서 감군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철군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 완전철군을 거부하는 까닭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지난 시기 미국이 중·미 국교수립을 추진하였던 주된 목적은, 중·소 분쟁의 틈새를 파고들어 중국을 제국주의진영으로 끌어당김으로써 사회주의진영을 분열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하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오늘 미국은 제국주의진영으로 끌어당길 가능성이 없는 사회주의국가인 북(조선)을 상대로 국교수립을 위한 정치회담을 추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국교수립을 위한 정치회담을 추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조·미 정치회담의 의제로 내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다.

2) 미국이 10년 전에 북(조선)의 '핵문제'를 제기한 까닭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로 동아시아에서 핵무기 개발의 연쇄반응이 일어나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러한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조·미 정치회담의 의제로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정치회담을 10년 동안 질질 끌어오면서 자기의 통제력으로 남(한국), 일본, 대만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미국이 동아시아의 핵확산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조·미 정치회담의 의제로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위협적이라고 보는 요인은, 북(조선)의 핵기술이나 핵물질이 반미테러집단이나 반미국가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중동에서 빈 라덴으로 대표되는 반미테러집단이나, 사담 후세인, 카다피 같은 반미성향의 집권세력을 완전히 무력화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이 북(조선)의 핵기술이나 핵물질이 흘러 들어갈 만한 대상을 무력화했다고 판단하는 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조·미 정치회담의 의제로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4) 미국은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면 한·미 군사동맹체제가 해체되고 남(한국)의 친미예속정권이 무너질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에 주한미국군 철군을 거부하고 있다. 친미예속정권의 붕괴는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므로,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어떻게 해서든지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은 남(한국)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약화되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할 때까지, 또는 남(한국)에서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더 이익이 된다고 판단할 때까지 주한미국군을 유지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한(조선)반도 정세가 위와 같은 분석대로 전개된다면, 미국은 곤경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 주한미국군 철군과 조·미 국교수립이 가능하지 않다는 비관적인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주목하는 것은, 한(조선)반도 정세가 위와 같은 분석대로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변화요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변화요인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미국이 남(한국), 일본, 대만의 핵개발사업에 대한 통제를 자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이다. 남(한국), 일본, 대만이 미국의 통제에 따라 핵개발사업을 영구히 포기할 것이라는 견해는 미국의 통제력에 대한 과신이다. 만일 동아시아 정세가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경우, 남(한국), 일본, 대만이 미국의 통제와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를 따돌리고 기존의 핵개발사업을 핵무기개발사업으로 전환시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남(한국), 일본, 대만의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북(조선)의 핵문제는 동아시아에서 핵무기 개발의 연쇄반응 가능성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태풍의 눈'과 같은 변화요인으로 존재한다.

2) 미국은 이른바 '반테러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북(조선)의 핵기술이나 핵물질이 흘러 들어갈 대상들을 제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라크에서 반미저항세력의 반격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빈 라덴의 반미테러집단과 연계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미국의 그러한 주장은 자만으로 보인다. 반미국가인 이란이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핵개발사업을 완강하게 추진하는 것을 볼 때, 동아시아보다는 중동에서 핵확산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만일 중동에서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져 중동의 석유자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동아시아의 안보불안이 증폭되는 경우, 동아시아에서도 핵확산이 촉진될 것임은 자명하다.

3) 주목하는 것은, 남(한국)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동맹체제로 위장된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두 기둥은 주한미국군과 친미예속정권이다. 그 두 기둥 가운데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제국주의 지배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주한미국군과 친미예속정권에게 공세를 가하는 민족민주세력의 반미자주화운동이 장성하는 가운데, 남(한국) 정치사에 등장한 친미예속정권들 가운데서 가장 허약한 모습으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요즈음 예속경제의 누적된 모순에 의해서 발생한 경제난을 견디기 힘들게 되었다. 남(한국)의 경제난은 경제난 폭동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만일 남(한국)에서 경제난 폭동이 일어나는 경우, 그것은 방화와 약탈로 얼룩진 다른 나라의 경제난 폭동과 달리 민족·계급적 모순을 격화시킴으로써 친미예속정권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리고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근간을 파괴할 것으로 예상된다.   

4. 주한미국군의 변동과 미국의 대북(조선)정책

주한미국군은 지상군기지 81개소, 공군기지 12개소, 해군기지 2개소 등 모두 95개소의 기지를 배치해두고 있고, 보유건물은 9천4백96동이나 된다. 주한미국군 1년 예산은 약 30억달러로 추산된다.

2만8천명 병력으로 편성된 주한미국군 지상군 주력은 제2사단이다.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편성된 제1여단과 제2여단은 미국 지상군 가운데서 최강여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국방부에서 제1여단은 '강철여단(Iron Brigade)'으로, 제2여단은 '타격여단(Strike Brigade)'로 불리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2천7백명으로 편성된 제2여단에 방공포부대와 공중강습부대에서 차출한 9백명을 보강하여 3천6백명으로 늘어난 제2여단을 지난여름 이라크 전선으로 보냈다.  

2003년 11월 7일 국방장관들인 럼스펠드와 조영길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에서 열린 제35차 한·미 안보협의회(SCM)는 발표문에서 "주한미국군을 한강 이남 두 개 권역으로 두 단계에 걸쳐 재배치하고 통합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였다."고 밝혔다. 발표문이 지적한 대로, 주한미국군 제2사단 재배치는 지금 두 단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데, 제1단계는 한강 이북 30여곳에 산재한 군소기지들에 배치된 중소규모부대와 특정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긴 부대를 2006년까지 동두천에 있는 케이씨기지(Camp Casey)와 의정부에 있는 레드 클라우드기지(Camp Red Cloud)로 통폐합하는 것이고, 제2단계는 두 기지에 통합된 부대를 평택·오산기지와 동남부에 있는 또 하나의 기지로 이전·재배치하는 것이다.

2004년 5월 미국 의회재정실(Congressional Budget Office)이 발표한 보고서 「미국 육군 해외기지 변동에 관한 대안(Options for Changing the Army's Overseas Basing)」은 해외주둔 지상군 감군 또는 철군에 관한 일곱 가지 대안을 검토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주한미국군에 관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주한미국군 지상군을 미국 본토로 철군하고, 2개 전투여단을 본토에서 남(한국)에 순환적으로 배치하는 대안이 있다. 다시 말해서, 1만3천명을 본토에 재배치하고, 그 가운데 2개 여단 8천명을 6개월마다 남(한국)에 순환하여 배치하는 것이다.

2) 주한미국군 지상군 2만8천명 가운데 1천명만 남기고 모두 철군하고, 1개 전투여단을 순환적으로 배치하는 대안이 있다.

3) 주한미국군 지상군의 전투장비를 관리하는 극소수 요원과 전투장비를 남겨둔 채 주한미국군 지상군을 미국 본토로 철군하고, 전투여단을 순환적으로 배치하지도 않고 필요할 때만 파병하는 대안이 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지금 부시 정부는 주한미국군 1만2천5백명을 감군하고 전방에 배치하였던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후방으로 1백10km 떨어진 지역에 재배치하는 조치를 추진 중이다. 주한미국군 개편은,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적은 인원으로 높은 치사율을(More lethality with fewer people)'이라는 구호에 따라 추진되는 조치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3년 12월 21일자) 그에 따라 2003년 5월 '주한미국군 지휘구조 개편안'이 작성되었다. (『시사저널』 2003년 11월 27일, 제735호)

그렇다면 이러한 감군조치는 미국의 대북(조선)정책과 무관한 것일까 아니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부시 정부의 주한미국군 감군조치와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의 관련성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조·미 관계의 당면정세를 인식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어떤 사람은 부시 정부가 최전방에 배치하였던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후방으로 재배치하는 것을 두고,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조선인민군의 대구경 장사정포 사정권 밖에 배치하여 북(조선)에 대한 공격력을 더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이해하지만, 그것은 후방 재배치조치를 순전히 군사적 측면에 국한해서 바라보는 편협한 견해다.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의 감군, 기지통합, 후방 재배치, 전력구조개편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한편,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친미개혁세력이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극우세력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하려는 행정수도 후방이전도 주한미국군의 후방 재배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만일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을 감군하지 않고 후방 재배치만 추진한다면, 그것은 주한미국군을 조선인민군의 대구경 장사정포 사정권 밖에 배치하는 군사적 측면에 국한해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군조치와 후방 재배치조치를 동시에 추진하는 데는 단순히 군사적 측면에만 국한해서는 파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지금 부시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감군하고 나서 잔여병력을 후방에 재배치하려는 것이다. 강조하는 것은, 잔여병력을 후방에 재배치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1만2천5백명을 감군한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배속된 두 개 여단인 제1여단과 제2여단 가운데서 제2여단을 감군하고 남게 되는 잔여병력 제1여단은 전방에 배치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1만2천5백명이 빠져나간 뒤에 남는 지상군 1개 여단은 사실상 공격작전능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공격작전능력이 없는 잔여병력을 최전방에 배치하는 것은 군사전략수행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주한미국군 제2사단의 공격작전능력을 유지하려 하였다면, 주한미국군 제2사단 병력을 감군하지 말고 후방에 재배치하면서 1백10억달러를 들여 후방에 배치한 제2사단의 전투장비를 보강해야 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감군한 뒤에 남게 되는 지상군 잔여병력을 보강·개편하는 문제다.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배속된 두 개 여단 가운데 남게 된 잔여병력인 제1여단의 병력은 1천9백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제1여단 병력을 2005년에 4천여명으로 늘려 이른바 미래형 전투여단으로 보강·개편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20일자)

미래형 전투여단이란 현재 미국 지상군이 2018년까지 추진하는 군사전략개편에 따라 기존의 전투여단보다 보강된 이른바 행동부대(Unit of Action, UA)를 뜻한다. 미래형 전투여단으로 개편된 행동부대는 대대급 수준의 '미래전투체계(Future Combat System, FCS)' 6-8개로 구성된다고 한다. 미국은 '미래전투체계'를 2008년부터 실험하고, 2014년부터 2018년까지의 기간에 행동부대로 개편할 계획인데, 이른바 '스트라이커 여단'은 '행동부대' 개편이 이루어질 때까지 잠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중앙일보』 2004년 8월 19일자)

이와 같은 전력구조개편에 따라, 기존의 미국군 전투사단도 보강·개편되어 미래형 전투사단인 이른바 근무부대(Unit of Employment-x, UEx)로 대체될 것이며, 기존의 군단 역시 보강·개편되어 미래형 군단인 이른바 실행부대(Unit of Execution-y, UEy)로 개편될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 당국자들이 주한미국군 지상군이 이러한 개편전략에 따라 증강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미국군 지상군 전체를 개편하는 것은 당연히 지상군 전력을 증강하기 위한 조치임에 틀림이 없으나, 특정하게 주한미국군 지상군을 개편하는 것이 실제로 전력증강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론의 여지가 생긴다.

(1)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남게 된 제1여단 병력수를 현재 1천9백명에서 4천여명으로 두 배 이상 늘린다는 확인되지 않은 언론보도는, 미래형 전투여단인 행동부대를 개편하는 전략, 다시 말해서 병력수를 줄이고 첨단전투장비로 무장시킨다는 군사전략과 모순되는 오보로 보인다.

해외미군 전문지 『성조지(The Stars & Stripes)』 2003년 6월 11일자에 보도된 것을 근거로 하여 신속기동여단 규모를 추산하면 다음과 같다. 일명 스트라이커 여단(Stryker Brigade)이라고도 불리는 신속기동여단은 3개 보병대대(6백91명), 정찰대대(4백28명), 포병대대(2백90명), 지원대대(3백88명), 공병중대(1백20명), 정보중대(67명), 신호정보중대(74명), 대전차중대(53명)로 편성되며, 총병력수는 2천1백11명이다. 신속기동여단은 3천5백명선의 기존 1개여단병력보다 적은 병력으로 편성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주한미국군 제1여단 병력수는 그 여단을 미래형 전투여단으로 개편하는 경우 2천1백명선을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남게 된 제1여단을 행동부대로 개편해도 제2여단을 감군한 조건에서 개편하는 것이므로 제2사단의 실제적인 전력증강으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기갑사단은 병력 1만6천명, 브래들리 전투장갑차 2백40대, 에이브럼스 전차 2백40대, 공격헬기 18대, 다연장로켓포 18대, 1백55mm 자주포 50대로 편성된 것에 비해, 주한미국군 제2사단은 1천9백명 병력의 1개 여단밖에 없는, 정규사단으로 기능할 수 없는 기형사단이기 때문이다.

(3) 문제는 그러한 기형사단을 미래형 전투사단인 이른바 근무부대(UEx)로 보강·개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근무부대로 보강·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제2사단사령부를 근무부대사령부로 보강·개편한다는 점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주한미국군 제2사단사령부는 현재 병력 3백명으로 편성되어 있는데, 1천2백명으로 보강될 것이라고 한다.

(4) 주한미국군 제8군은 군단사령부로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국군 제8군 개편도 기존의 군단을 미래형 군단인 이른바 실행부대(UEy)로 개편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제8군사령부를 실행부대사령부로 보강·개편한다는 뜻이다.

(5)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배속된 두 개 여단은 지금까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아왔다. 그런데 미국군 제1군단사령부가 미국 본토에서 일본으로 이전되어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배치된 지상군을 지휘·통제하는 군단사령부로서 지위와 역할을 차지할 경우,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주한미국군 제2사단에 남게 된 제1여단은 앞으로 주일미국군 제1군단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발전적 해체를 추구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2) 부시 정부는 주한미국군 제2사단을 감군하면서 1백10억달러를 들여 잔여병력의 전력을 증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백10억달러는 1백50개 항목에 투입되는 막대한 전력증강사업비라고 한다.

2003년 5월 31일 주한미국군사령관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가 발표한 '향후 3년간 주한미국군 전력증강계획'에 따르면, 스트라이커 장갑차(Stryker Armored Personnel Carrier), 피에이씨(PAC)-3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프레더터 무인정찰기(Unmanned Aerial Vehicle Predator), 아팟치 롱보우(Apache Longbow) 헬기 에이에이취(AH)-64디(D), 정밀유도식 통합직격탄(Joint Direct Attack Munition), 1개 해병원정여단을 위한 전투장비의 사전배치 등에 1백10억달러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 전력증강계획은 이미 2000년부터 추진되어오고 있는 것인데, 라포트는 그 계획이 마치 2003년에 처음 추진되는 것처럼 발표하였다.

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방공여단(air defense brigade)이 2004년 안에 창설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던 때는 2004년 4월이었고, 무인정찰기가 주한미국군 제2사단 제102첩보대대로 배속되어 동두천에 있는 모바일기지(Camp Mobile)에 배치된 때는 2003년 9월이었으며, 공격헬기 1개 대대에 배속된 아팟치 롱보우 헬기 20여 대가 주한미국군 제6기병여단에 배치된 때는 2003년 6월이었고, 주한미국군 제7공군이 보유한 재래식 폭탄을 정밀유도식 통합직격탄으로 개량하기 시작한 때는 2002년이었고, 해상사전배치군함이 경상남도 진해항에 입항한 때는 2003년 10월 29일이었다.

주목하는 것은, 잔여병력의 전력증강이 중무장에서 경무장으로 전환됨을 뜻한다는 사실이다. 1백10억달러는 중무장을 경무장으로 전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인 것이다. 미국 국방부 당국자들은 주한미국군 잔여병력의 전투장비가 첨단전투장비로 교체된다는 점을 말끝마다 강조하지만, 주목하는 것은 그 첨단전투장비가 정찰작전에 투입되는 경무장 전투장비라는 점이다.

『성조지』 2004년 10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현재 주한미국군 제2사단이 보유한 엠(M)1에이(A)1 에이브럼스 전차가 험비(Humvee)나 브래들리 전투차량으로 대체되고, 전투헬기 오에이취(OH)-58 카이오와(Kiowa)가 무인정찰기로 대체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중무장한 공격작전능력이 경무장한 정찰작전능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1백10억달러를 들여 교체되는 첨단전투장비가 공격작전이 아니라 정찰작전에 요구되는 장비들이라는 점은 주한미국군의 작전임무가 북(조선)에 대한 공격작전이 아니라 정찰작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주한미국군 전력구조개편에서는 정찰작전을 주한미국군에게 맡기고, 공격작전은 다른 전투부대가 맡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공격작전을 맡을 다른 전투부대가 미·일 동맹군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감군되는 주한미국군 지상군은 미·일 동맹군에 배속된 정찰작전부대로 전환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을 미국군의 전력투사근거지로 삼고, 남(한국)을 정찰작전지대로 삼으려는 미국 국방부의 전략적 의도가 드러난다.  

5. '전쟁억지'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

미국 의회재정실이 해외주둔 미국 지상군을 재배치하기 위한 일곱 가지 대안을 분석한 보고서는, 한국군 전력이나 주한미국군 제7공군, 주일미국군 제5공군의 전력을 감안하면 주한미국군 지상군 전투여단의 철군은 한(조선)반도의 전쟁억지력을 결정적으로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전투여단을 배치하는 것에는 '전쟁억지'보다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보고서가 지적한 '전쟁억지'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길게 말할 것 없이, 주한미국군을 '전쟁억지'에 결부하는 것은 제국주의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도발책동을 감추려는 은폐술책이 분명하지만,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 잔여병력에게 1백10억달러를 투자하는 목적이 '전쟁억지'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이 있는 곳에 있다는 의회재정실의 견해다.

나의 판단으로는, 주한미국군 전력증강사업비 1백10억달러를 투자하는 목적은 복합적으로 보인다. 주한미국군 전력구조개편에는 '전쟁억지'보다 더 큰 전략적 중요성을 위한 목적,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주한미국군 정찰작전능력을 증강하려는 군사적 목적보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한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정치적 목적이란, 정부재정 1백10억달러를 부시 정부의 중요한 지지기반인 미국 군수산업자본을 위하여 지출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력증강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주한미국국 감군조치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남(한국)의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적은 주한미국군 잔여병력을 주둔시킴으로써 남(한국)에서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감군된 이후에 남게 되는 잔여병력은 제국주의 지배체제 유지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병력이 될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국군 잔여병력을 주둔시켜 남(한국)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뒤집어 말하면, 주한미국군이 완전히 철군하면 조선인민군의 주적이 한(조선)반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남(한국)은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주한미국군이 완전히 철군하는 경우, 조선인민군과 한국군이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전망은 조선인민군과 한국군에 대한 무지가 빚어낸 오류로 보인다.  

1) 주한미국군이 완전히 철군하면,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을 공격하여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은 빗나간 발상이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의 존재목적은 주적을 격퇴하는 전쟁을 수행하는 것, 다시 말해서 남(한국)을 강점하여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유지하게 해주는 미국군을 몰아내는 '해방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한미국군이 완전히 철군하여 주적이 사라진 조건에서,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난 남(한국)을 상대로 조선인민군이 전쟁을 일으킬 이유는 없다.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면 북(조선)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난 남(한국)과 손잡고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게 될 것이며, 남과 북은 미국의 방해와 교란이 없는 상태에서 정치회담을 통해서 평화적 방법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할 것이므로, 북(조선)이 주한미국군 철군 이후에 동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

2) 주한미국군이 완전히 철군하면,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을 공격하여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도 역시 빗나간 발상이다. 한국군에게는 전투능력은 있으나 전쟁능력은 없다. 예를 들면, 미국의 동맹국이 군대 10만명을 이라크 전선에 파병하였다고 가정하는 경우, 그 군대가 이라크에서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작전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라크에 동원된 외국군은 독자적인 작전능력이 없으므로 별수 없이 미국군사령관의 작전지휘 아래 들어가야 한다.

미국군의 발밑에 있는 친미예속군대가 모두 그렇듯이, 한국군도 전면전 작전능력이 없는 불구화된 군대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군을 틀어쥐고 있는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전면전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수행할 능력을 키워주지 않았다. 한국군 역시 주한미국군의 발밑에서 무사안일하게 지내오면서 미국군의 비싼 군사장비를 사들여 몸집만 비대하게 키울 줄 알았지 전면전 작전능력을 키울 줄 모르는 기형적 군대로 되었다. 주한미국군사령부의 작전지휘체계가 가동하지 않으면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전면전 작전을 수립하거나 수행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한국군에게 작전지휘권이 없다는 것은 전면전 작전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한(조선)반도에서 전면전을 벌이는 작전능력은 조선인민군과 미국군에게 있는 것이지, 한국군에게는 없다. 세상에 알려진 '작전계획 5027' 같은 전면전 작전계획은 미국군이 세워놓은 전쟁계획이다. 전면전 작전에 필수적인 전술지휘자동화체계(C4I)는 형식적으로는 한·미연합군사령부가 가동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한국군도 그 체계의 가동에 참가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주한미국군사령부가 단독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전술지휘체계를 장악하지 못한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작전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는 한국군의 공격전 작전능력은 키워주지 않고 방어전 작전능력만 보유하도록 조치하였다.

미국 국방부는 지금까지 주한미국군이 장악해왔던 전쟁수행에 요구되는 핵심적인 10대 작전임무를 앞으로 몇 해에 걸쳐 단계적으로 한국군에게 넘겨주겠다고 발표하였다. 넘겨주기로 한 작전임무는 방공포작전, 공중강습작전, 대포병작전, 특수군대응작전, 화생방작전, 지뢰작전, 수색 및 구조작전 등이다. 한국군이 전쟁수행에 필수적인 작전임무를 맡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군이 전면전 작전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한국군이 미국군으로부터 작전임무를 넘겨받으면 자동적으로 전면적 작전능력을 갖추게 되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전임무를 넘겨받는다고 해서 곧바로 전면전 작전능력을 갖추는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임무를 맡는 행위와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은 다른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군한 조건에서 작전능력이 아직 미흡한 한국군이 단독적으로 전쟁을 일으켜 자멸을 자초할 가능성은 없다.

3) 장차 주한미국군이 철군한 뒤에는, 조선인민군과 한국군의 군사력을 상호감축하여 과잉군비부담을 적정선까지 줄이는 동시에 한(조선)반도 전체범위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수호하는 연방군대를 창군하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가장 중요한 군사문제로 제기될 것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연방군대 창군은 연방통일국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되겠지만, 주한미국군이 철군한 뒤에는 연방통일국이 수립되기 전에라도 조선인민군과 한국군 사이에서 군사적 신뢰관계가 형성되면서 느슨한 형태의 연합군으로 개편되는 중간단계를 밟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6. 글을 마치며

나는 이 글을 시작하면서 조·미 관계가 굳어진 근본원인이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한 데 있다고 밝혔으며,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하였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미국 주요언론이 내놓은 분석이며, 조·미 관계를 연구하는 미국 전문가들의 일반적 판단이라고 지적하였다. 글을 마치면서,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하였다고 보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미국은 50년 이상 북(조선)에 대한 경제봉쇄를 계속 실시해왔으나, 북(조선)은 거듭되는 경제적 난관을 이겨내면서 사회주의경제건설과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을 변함없이 추진하였다.

2) 미국은 50년 이상 북(조선)에 대한 전쟁도발위협을 계속 가해왔으나, 북(조선)은 그 위협 앞에서 동요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사회주의 반제군사전선을 더욱 강화하여 신흥군사강국으로 등장하였다.

3) 미국은 10년 이상 북(조선)에 대한 붕괴촉진정책을 추진하였으나, 붕괴조짐은 찾아볼 수 없고 도리어 북(조선) 사회의 각 부문에서 부흥을 추구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4) 미국은 10년 이상 북(조선)에 대한 압박책동을 계속하였으나, 성과를 전혀 거두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거꾸로 북(조선)의 강한 압박공세에 밀려 곤경에 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일까?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는 뜻이다. 복합적으로 작용한 여러 원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주된 원인은 정치적 요인이다. 나는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이 실패한 원인이 제국주의 미국과 사회주의 북(조선)이 벌인 정치대결에서 제국주의 미국이 패하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사회주의 북(조선)의 선군정치가 제국주의 미국의 반동정치와 대결하여 승리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대결에서 패한 쪽의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제국주의 미국의 정치적 패인 가운데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제국주의 미국의 집권세력이 사회주의 전반에 대한 무지와 몽매, 특히 북(조선) 사회주의에 대한 무지와 몽매에 사로잡혀있다는 점이다. 모든 형태의 대결에서 상대에 대한 무지는 곧 패배로 이어지는 법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제국주의 미국을 움직이는 집권세력의 시야에 비친 모든 사회주의국가들은 스탈린주의국가 이외에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제국주의자들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사회주의관은, 스탈린주의국가인 소련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의 사상과 체제가 함께 소멸되었으므로, 사회주의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당연히 무너질 것이라는 매우 단순한 논리로 요약된다.

미국의 대북(조선)정책 추진자들은 북(조선) 사회주의를 이미 소멸된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로 간주하고 있다. 그들은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가 붕괴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북(조선)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것도 필연적이라고 강변한다. 그들이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의 붕괴요인으로 열거하는 것은,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 강요,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 자행, 사회주의체제를 반대하는 집단에 대한 공포정치 실시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들이 북(조선) 사회주의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라고 지적한 것들은 놀랍게도 히틀러의 파시즘적 전체주의가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들이다. 히틀러가 1930년대의 독일인민에게 개인숭배를 선동하여 파시즘적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자기의 지배체제를 반대·비판하는 세력에게 무자비한 숙청과 공포정치를 자행하였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히틀러의 개인숭배, 숙청, 공포정치는 1930년대 독일의 제국주의적 대외침략을 위한 정치적 준비였다.

반면에, 1930년대 소련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소련인민의 지지가 높아지면서 사회주의정치의 구심력을 형성하였고, 소련 내부에 존재하는 사회주의 적대세력에 대한 계급투쟁이 첨예하게 전개되었다. 제국주의 미국이 스탈린 집권시기의 개인숭배라고 비난한 것은,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실시되는 사회주의정치의 소련적 현상이었으며, 숙청과 공포정치라고 비난한 것은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소련적 현상이었다. 사회주의정치와 사회주의사회 내부의 계급투쟁이 사회주의국가마다 제각기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명백하며, 소련의 사회주의정치와 사회주의건설에서 이러저러한 폐해와 결함이 생겼던 것은 부정할 수는 사실이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그러한 폐해와 결함이 사회주의의 사상과 체제를 붕괴시킨 요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소련의 사회주의정치와 사회주의건설을 좌절시켰던 붕괴요인은 스탈린주의가 아니라 후르시쵸프에 의해서 시작되어 고르바쵸프에 의해서 완결된 반동적 기회주의였다. 1990년대 초에 소련을 붕괴시킨 것은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적 기회주의였던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다그치던 파시즘국가였던 것과 달리, 동시대의 소련은 독일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반대하는 사회주의국가였다. 화해할 수 없는 대척점에 서 있었던 파시즘국가과 사회주의국가를 동일한 내용으로 파악하는 것은 무지와 몽매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나에게는 사회주의 현실문제를 다룬 미국 언론의 보도를 읽거나, 워싱턴 정가에서 움직이는 인사들이 사회주의에 관하여 논하는 견해를 들을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발견하는 것은 그들의 머리 속에 히틀러와 스탈린이 동일한 의미로 입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히틀러와 스탈린을 혼동하는 무지와 몽매에 빠져서 사회주의정치의 소련적 현상마저 파악하지 못한 제국주의 미국의 집권세력이 사회주의정치의 조선적 현상, 다시 말해서 북(조선)의 고유한 사회주의정치방식인 선군정치를 이해할 가능성은 거의 영에 가깝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조선)정책 추진자들이 이미 실패로 판명된 낡은 대북(조선)정책을 붙들고 있는 한, '핵문제'를 풀고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제국주의 미국이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을 풀 수 있는 길은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정치회담에 나서는 것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미국이 실패한 대북(조선)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대북(조선)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대북(조선)정책이란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양자 포괄적으로, 동시적으로, 대등하게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제국주의 미국이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회담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배제하는 한, 그들은 전략적 실패를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집권하건 민주당이 집권하건 미국의 대북(조선)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경색된 조·미 관계를 풀 수 없을 뿐 아니라, 미국이 정치적으로 패배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북(조선) 핵시설의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폐기를 요구하는 낡은 정책은 '핵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의 양자 포괄적이고, 동시적이고, 대등한(comprehensive, simultaneous, equal) 해결을 요구하는 새로운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2005년은 이 교체의 가능성이 실험대에 오르는 시기가 될 것이다. (2004년 10월 2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