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국군 감군조치의 배경과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문제, 미국군 철군운동의 의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기지재배치·폐쇄위윈회'와 '3인위원회'
2.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오판과 라이스의 서울방문
3. 부시 정부의 비밀공작이 노리는 것  
4. 미국이 과신하는 미봉책
5. 주한미국군 철군은 비핵화와 자주화의 지름길이다
6. '불의 신'을 수렁에 빠뜨리는 또 하나의 요인

1. '기지재배치·폐쇄위윈회'와 '3인위원회'

지금 부시 정부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2004년 8월 17일자 기사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제국의 전선 이동"으로 묘사하였던 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되돌아보면, 미국 국방부가 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처음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때는 냉전체제가 무너지기 직전인 1988년이었다. 그 동안 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지휘해온 기구는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Base Realignment and Closure Commission)'다. 이 특별한 위원회는 미국 대통령의 결정과 연방의회의 승인에 따라 구성된 독자적인 정부기구로서 1988년, 1991년, 1993년, 1995년에 각각 소집된 바 있다. (『디펜스 뉴스(Defense News)』 2004년 8월 23일자)

1988년부터 1995년까지 7년 동안 이 위원회가 추진하였던 업무를 '세계방위태세검토(Global Defense Posture Review)'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국내방위태세검토(Domestic Defense Posture Review)'와 '해외방위태세검토(Overseas Defense Posture Review)'를 포함한다. 이 위원회는 1988년부터 1995년까지 네 차례 소집되어, 주로 미국 영토 안에 배치되어 있는 미국군기지를 냉전체제 붕괴 이후의 정세요구에 맞게 재배치하는 업무를 추진하였다.

남(한국)과 필리핀의 미국군기지를 재배치한 것도 바로 그 시기에 해당한다. 1990년 2월 15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주한미국군 감축문제가 논의되었고, 4월 19일 미국 국방부가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아시아·태평양연안에 대한 전략구상: 21세기 전망(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n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st Century)」은 주한미국군을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동안 세 단계에 걸쳐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1991년 11월 제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한 미국 국방장관 딕 체니(Dick Cheney)가 북(조선)의 '핵문제'가 제기되어 주한미국군 감축을 중단한다고 통보함으로써 주한미국군 3단계 감축안은 이행되지 못하였다. 이처럼 남(한국)에서는 미국군감군조치가 중단되었던 반면, 필리핀에서는 1991년 클라크 미국 공군기지가 폐쇄되었고, 1992년에는 수빅 미국 해군기지가 폐쇄되었다.

2001년 말 미국 연방의회는 '국가방위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따라 제5차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를 2005년 5월 중순에 소집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그로써 이 위원회는 1995년 제4차 회의 이후 꼭 10년만에 다시 소집되는 것이다.

2002년 11월 미국 국방부는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의 정책과 추진과정계획을 확정함으로써 제5차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 소집준비사업에 착수하였다. 제5차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는 2005년 5월 16일 이전에 소집되는데, 미국 국방장관은 이 위원회에 제출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2004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는 미국 대통령은 2005년 3월 15일 이전에 제5차 '기지재배치·폐쇄위윈회' 위원을 임명하여 위원회 소집에 시동을 걸게 될 것이다.

2005년 5월 중순에 소집된 제5차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2005년 9월 8일 이전까지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대통령은 그 보고서를 승인하여 9월 23일 이전에 연방의회에 제출하게 된다. 임무를 마친 제5차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는 2006년 4월 15일에 해산될 것이다.

미국이 해외미국군기지를 재배치하는 것은 단지 군사전략적 차원에서만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고, 정치부문과 경제부문까지 포함하는 매우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는 이른바 '국가안보문제'를 고려하면서 추진하여야 하는 일이다. 1988년에 시작된 미국군기지 재배치가 아직도 진행 중인 것은 그러한 복잡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2004년 6월 23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차관 더글러스 페이스(Douglas J. Feith)가 부시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해외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시작했으나 어느 분야도 고립적이지 않고 상호연계되어 있는 등 당초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제기되어 2003년 7월 1일까지 완료하려던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고 말한 것(『연합뉴스』 2004년 6월 24일자)은 과장이 아니다.

2004년 2월 미국 국방부는 제5차 '기지재배치·폐쇄위원회'를 준비하기 위한 최종선택기준(final selection criteria)에 관한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다. 그 최종선택기준이 무엇인지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그 기준에 따라 주독미국군, 주일미국군, 주한미국군을 비롯한 해외미국군기지의 재배치와 감군이 추진되는 것은 명백하다. 미국 국방부가 2002년 말부터 준비에 착수하였던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와 주한미국군 감군은 2004년에 들어서면서 본격화되었다. 부시 정부는 주한미국군을 2005년 말까지 감군하겠다고 노무현 정부에게 통보한 바 있다. 2004년 6월 23일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 국방부 시설·환경담당 부차관보 레이먼드 뒤부아(Raymond F. Dubois)가 괌(Guam)과 한(조선)반도의 군사전략적 관련성을 언급하면서, 괌의 미국군기지 재배치안이 2005년 5월까지 나올 것이라고 지적한 것(『연합뉴스』 2004년 6월 24일자)은,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와 주한미국군 감군이 2005년에 추진될 것이라는 예상을 뒷받침해준다.

그런데 미국군기지 재배치와 미국군 감군에 관한 언론보도는 많지만, 어떤 언론도 그것에 관한 구체적인 실상을 보도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군기지를 재배치하고 미국군을 감군하는 '세계방위태세검토'의 구체적인 내용은 미국의 군사기밀이어서 언론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방위태세검토'의 구체적인 내용 역시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윤곽뿐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바에 따르면, 유럽에 배치한 미국군 10만명 가운데 70%가 독일에 배치되어 있는데, 감군하게 될 해외미국군 7만3천명 가운데 약 40%에 이르는 3만명이 주독미국군이라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17일자) 이것은 미국이 해외미국군기지들 가운데 주독미국군기지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시 정부는 주독미국군기지를 재배치하는 문제에 관하여 모호한 말만 늘어놓았다. 2004년 6월 7일 미국군 합참의장 리처드 마이어스(Richard B. Myers)는 주독미국군 제1기갑사단 방문에 맞춰 열린 영내기자회견에서 주독미국군 재배치 문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7일자) 미국 국방차관 더글러스 페이스는 2004년 6월 9일 『합동통신(Associated Press)』과 회견하면서 미국 정부가 독일 정부에게 주독미국군 2개 사단을 감군하는 계획을 전달했음을 확인하면서, 주독미국군 감군문제를 독일 정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군 육군참모총장 피터 슈메이커(Peter Schoomaker)는 2004년 6월 15일 미국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주독미국군 일부 사단을 철수할 것이라는 점만 말했을 뿐이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16일)

2004년 6월에 차례로 언론에 보도된 위의 발언들은 부시 정부 고위관리들이 주독미국군기지를 재배치하는 구체적인 규모와 시기를 언론에 밝히지 않았음을 뜻한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관리들이 비밀에 쌓인 주독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의 윤곽을 처음으로 공개한 때는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W. Bush)가 해외주둔미국군 감군 계획을 공식 발표하였던 2004년 8월 16일이었다. 부시 정부 고위관리들이 밝힌 윤곽에 따르면, 주독미국군은 2006년부터 2009년의 기간에 2개 사단 3만-4만명이 단계적으로 감군되며, 유럽에 배치된 미국군기지와 시설 가운데 절반 정도가 폐쇄된다고 한다. 한편, 유럽에 배치된 미국 육군군단사령부는 내부개편을 거쳐 주독미국군사령부로 남게 된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17일자)

이처럼 주독미국군기지 재배치에 관한 윤곽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달리, 주일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은 아직도 상당부분이 비밀에 쌓여있다.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미국 육군 제1군단사령부가 일본 가나가와현(神奈川縣) 자마(座間)기지로 옮겨가고, 주일미국군 제5공군사령부가 괌으로 옮겨가 제13공군사령부와 통합되고, 오키나와(沖繩) 주둔 미국군 제3해병대원정군(Marine Expeditionary Force)의 27%가 2008년까지 감군될 것이라고 지적한 일본언론의 단편적인 보도들이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가 추진하는 해외미국군기지 재배치 가운데서 유독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이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주독미국군이나 주일미국군의 경우와 달리,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이 일찍 세상에 알려진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그것은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주일미국군이나 주독미국군의 경우보다 서둘러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 1만2천5백명을 감군하겠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밝힌 때는 제2차 '동맹의 미래에 관한 회의'가 열린 2003년 6월 5일이었다. 그러나 그 회의에서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 감군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당시에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 리처드 롤리스(Richard Lawless)가 2004년 1월 16일 하와이(Hawaii) 호놀룰루(Honolulu)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에서 열린 제6차 '동맹의 미래에 관한 회의(The Future of the Alliance Talks, FOTA)'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사령부, 미국8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 주한유엔군사령부를 오산·평택기지로 옮기는 문제를 노무현 정부에게 통보한 때는 2003년 11월이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17일자)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서두르는 것은, 2004년 7월 24일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동맹의 미래에 관한 회의'의 결정사항에서도 또다시 드러났다. 그 회의결정에 주목하는 까닭은, 2002년 3월 29일 서울에서 국방장관 김동신과 주한미국군사령관 토머스 슈워츠(Thomas A. Schwartz)가 조인하였던 '토지협력계획에 관한 한·미 합의서(Agreement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for the Land Partnership Plan)'에 규정된 주한미국군기지 폐쇄시기를 2년만에 재조정하였기 때문이다.

주한미국군기지 폐쇄시기를 재조정한 바에 따르면, 부산의 하이얼리아기지(Camp Hialeah)와 춘천의 페이지기지(Camp Page)는 2011년에서 2005년으로, 의정부의 폴링워터기지(Camp Falling Water)는 2010년에서 2005년으로, 파주의 스탠튼기지(Camp Stanton)는 2007년에서 2005년으로, 파주의 하우즈기지(Camp Howze)는 2006년에서 2005년으로, 의정부의 씨어스기지(Camp Sears)는 2011년에서 2006년으로, 의정부의 카일기지(Camp Kyle)는 2007년에서 2006년으로, 원주의 이글기지(Camp Eagle)는 2011년에서 2008년으로 각각 앞당겨졌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7월 24일자와 '토지협력계획에 관한 한·미 합의서' 부록 참조)

2002년 3월 29일에 조인된 '토지협력계획에 관한 한·미 합의서'에 규정된 대로 폐쇄될 주한미국군기지들은 다음과 같다. 의정부의 라과디아기지(Camp LaGuardia)는 2006년에, 금천의 에드워즈기지(Camp Edwards)는 2007년에, 대구의 워커기지(Camp Walker)의 부분적 폐쇄는 2007년에, 문산의 개리오웬기지(Camp Gary Owen)와 인천의 마켓기지(Camp Market)는 2008년에, 의정부의 에쎄이언즈기지(Camp Essayons)는 2010년에, 동두천의 님블기지(Camp Nimble)와 문산의 자이언트기지(Camp Giant)는 2011년에, 원주의 롱기지(Camp Long)의 부분적 폐쇄는 2011년에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서울 용산병영(Yongsan Garrison)에 있는 주한미국군사령부, 미국8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 주한유엔군사령부는 2007년 말까지 오산·평택기지로 완전히 옮겨지게 된다. (『연합뉴스』 2007년 1월 17일자)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2004년에 들어와서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기지 폐쇄에 관한 기존의 공식합의를 재조정하여 앞당기면서까지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서두른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까닭은 미국 부통령 딕 체니가 2004년 4월 13일 베이징을 방문하여 중국 지도자들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북(조선)의 '핵문제'를 꺼냈을 때, 시간이 미국의 편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연합뉴스』 2004년 4월 14일자)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 바로 그 위급함 때문인 것이다. 북(조선)의 '핵문제'에 대해서 위급함을 느끼고 있는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서둘렀던 것은 그들이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를 추진해온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미국 국방부 관리와 군사령관들이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를 언론에 가끔씩 흘려주기 시작한 때는 2003년이었다. 2003년 2월 13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주한미국군기지의 한강 이남 재배치를 찬동한다고 말하면서 주한미국군이 감군될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2월 14일자) 그는 2003년 3월 6일 미국 국방부에서 발언하면서 주한미국군을 감군할 것인지, 한강 이남에 재배치할 것인지, 인접지역으로 이동시킬 것인지를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연합뉴스』 2003년 3월 7일자)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과 관련하여 미국 국방부 관리와 군사령관들이 2003년부터 2004년 초까지 언론들에게 흘려준 단편적인 정보에는 주한미국군기지를 한강 이남에 재배치하는 문제만 들어있었고 주한미국군 감군 문제는 들어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 관리는 2003년 3월 20일 『교도통신(共同通信)』과 회견하면서 주한미국군기지 한강 이남 재배치 계획을 2003년 9월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04년 3월 31일 미국 연방하원 군사위원회 국방예산안 심의회의에 출석한 주한미국군사령관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는 지금까지 주한미국군 감군을 전혀 논의한 바 없다고 강조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4월 1일자)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 문제와 관련해서 내외언론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주한미국군기지를 재배치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사안과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주한미국군사령부(USFKC), 미국8군사령부(8th Army Command), 주한유엔군사령부(UNC), 한미연합군사령부(CFC)를 해체하는 문제다. 『뉴욕 타임스』 기자 출신의 군사전문 언론인 리처드 핼로런(Richard Halloran)은 미국 태평양군사령부 대변인 존 싱글리(John Singley)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으로 이 네 개의 사령부가 해체될 가능성(the command elements that will most likely be dismantled in South Korea)을 지적하였다. (『워싱턴 타임스』 2004년 2월 2일자) 그러나 미국 국방부 대변인 플렉스 플렉시코(Flex Plexico)는 2004년 2월 4일 『연합뉴스』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핼로런의 보도는 "동맹국들과 협의해서 결정하려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 보도내용을 부인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5일자)

네 개의 사령부를 한강 이남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해체하는 것은 한·미 동맹체제의 존폐문제에 직결된 매우 민감한 사안이므로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주한미국군 제2사단 병력 1만2천5백명을 감군하는 것은 지난 시기 전술핵무기로 무장하고 세계 최강을 자처하였던 펜토믹(Pentomic)사단이 사실상 해산되는 것이며, 주한미국군의 10대 전투임무를 한국군에게 넘겨주는 것은 사실상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장악해온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넘겨주는 것이므로, 펜토믹사단 해산과 작전지휘권 이양은 네 개의 사령부를 해체할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주한미국군병력과 장비 일부를 철수하는 감군문제다. 미국의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에는 주한미국군기지를 한강 이남으로 옮기는 문제만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감군문제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된 때는 2004년 6월 초였다. 2004년 6월 4일 부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주한미국군을 이라크전선에 차출하는 감군조치를 통보하였고, 같은 날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 참석한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남(한국) 국방장관 조영길에게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통보하였다. 이틀 뒤인 6월 6일 부시 정부가 서울에 파견한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 리처드 롤리스는 주한미국군 감군안을 노무현 정부에게 공식 통보하였다. 부시 정부는 2004년 2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제7차 '동맹의 미래에 관한 회의'에서 주한미국군을 이라크전선에 차출하는 방식으로 감군하겠다는 것을 노무현 정부에게 통보하였으나, 그러한 통보가 있었다는 사실은 당시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2004년 6월 6일 저녁, 서울에서는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한, 그러나 매우 중요한 회의가 열렸다. 외교통상부가 관할하는 청사에서 열린 이른바 '3인위원회' 회의가 그것이다. '3인위원회'라는 이름은 부시 정부의 실무담당 관리 세 사람과 노무현 정부의 실무담당 관리 세 사람이 참석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부시 정부는 6월 6일에 열린 '3인위원회' 회의에 국방부 부차관보 리처드 롤리스, 국무부 특별대사 에번스 리비어(Evans J. R. Revere), 국방부 관리 한 사람을 참석시켰고, 노무현 정부는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김숙, 청와대 국가안보회의 정책조정관 위성락, 국방부 국제협력관 한민구를 참석시켰다.

제9차 '동맹의 미래에 관한 회의'는 '3인위원회' 회의 다음날인 6월 7일 오후 1시 30분부터 리처드 롤리스와 남(한국) 국방부 정책실장직무대행 겸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장 권안도가 각각 양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가운데 다음날까지 진행되었다. 원래는 6월 7일 오후 남(한국) 국방부 청사에서 제9차 '동맹의 미래에 관한 회의'를 진행한 뒤에 별도로 '3인위원회'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일정을 바꿔 전격적으로 '3인위원회' 회의를 먼저 진행한 것이다.

'3인위원회'의 6월 6일 회의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 자리에서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 1만2천5백명을 2005년 말까지 감군하는 계획을 노무현 정부에게 공식 통보하였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2004년 6월 9일자) '3인위원회'의 6월 6일 회의에 참석했던 노무현 정부의 고위관리가 전한 바에 따르면, 부시 정부 대표들은 미국군기지 재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와 주한미국군 감군에 관한 미국의 구상과 개략적 일정을 설명했으며, 노무현 정부 대표들은 주로 그들의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6월 7일자)

2004년 7월 12일에 열린 '3인위원회' 회의에서 부시 정부는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규모와 시기, 철수될 부대와 장비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을 노무현 정부에게 통보하였다. 그 감군안에 따라 2004년 8월 2일 서울 용산병영에서는 주한미국군 3천6백명을 이라크전선으로 차출하는 출병식이 진행되었다. 출병은 8월 11일에 완료되었다.  

여기까지가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하여 위급함을 느낀 부시 정부가 2004년에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서둘러 추진한 과정이다.

2.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오판과 라이스의 서울방문

2003년 3월 6일 럼스펠드가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에 관한 세 가지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때로부터 2004년 6월 초 주한미국군 감군안이 노무현 정부에게 통보되기까지 1년 3개월 동안 서울과 워싱턴의 언론들에 흘러나온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 계획에 관한 정보들은 주한미국군 감군이 아니라 주한미국군기지를 한강 이남에 재배치하는 문제를 담고 있었다. 다만 미국의 『합동통신(Associated Press)』만이 2003년 10월 19일자에서 주한미국군 1만2천명 감축설을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보도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3인위원회'의 6월 6일 회의에서 주한미국군 재배치에 관한 부시 정부의 태도에 일정한 변화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무렵까지 주한미국군기지를 한강 이남에 재배치하는 문제만을 언론에 공개해오던 부시 정부가 2004년 6월 6일 '3인위원회' 회의에서 주한미국군 감군안을 노무현 정부에게 공식 통보하고 통보사실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기지를 한강 이남에 재배치하는 것만이 아니라 주한미국군 감군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계획을 세웠음을 뜻한다. 주한미국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감군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계획은, 미국 국방부 관리들이 실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정치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나의 판단으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003년 초부터 1년이 넘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신중한 내부검토를 거친 끝에 그러한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감군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된 동기와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적 결정의 동기와 배경에 정치적 문제가 놓여있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명백하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다루어지는 한(조선)반도의 정치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조선)의 '핵문제'다. 그러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감군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게 된 동기와 배경에는 북(조선)의 '핵문제'가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주한미국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감군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적 결정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중시하는 북(조선)의 '핵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양자의 연관성을 밝혀주는 것은 2004년 6월 23일부터 26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렸던 제3차 6자회담이다.

제3차 6자회담에서 흥미로운 일은, 그 회담에 참석한 부시 정부 대표들이 특이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특이한 행동이란, 부시 정부가 처음으로 일곱 쪽 분량의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을 북(조선)에게 제안하였고, 이전과 비교해서 사뭇 진지해진 거동을 보이면서 조·미 직접대화를 2시간20분이나 진행하였으며, 자기들이 내놓은 방안에 대한 북(조선)의 긍정적 반응을 기다렸다는 것 등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특이한 행동에서는 주한미국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와 감군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적 결정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중시하는 북(조선)의 '핵문제' 사이의 상호연관성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 연관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제3차 6자회담과 관련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취한 행동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취한 행동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철목련(Steel Magnolia)'이라는 별명을 가진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를 서울에 급파한 것을 말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라이스를 제3차 6자회담이 끝난 지 열흘만에 도쿄, 베이징, 서울에 미국 대통령 특사로 파견해야 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언론이 부시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중국, 일본, 남(한국)의 고위관리들과 '전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라이스가 아시아를 방문한다고 보도한 것(『월 스트릿 저널』 2004년 7월 7일자)은, 라이스의 동방 3국 순방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었다.

라이스가 도쿄와 베이징을 방문하고 나서 서울에 모습을 드러낸 때는 2004년 7월 9일 오후였다. 라이스가 서울에 머문 시간은 불과 여섯 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라이스의 서울방문에 주목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라이스의 서울파견을 그에 앞서 있었던 도쿄파견과 베이징파견보다 더 중시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라이스의 서울파견을 중시한 것은, 라이스를 서울에 파견하는 문제를 먼저 결정한 뒤에 도쿄와 베이징에 파견하는 일정을 추가로 잡았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둘째, 2004년 7월 7일 당시 워싱턴에 머물고 있던 열린우리당 대표단에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스티븐 해들리(Stephen J. Hadley)가 자기의 직속상관인 라이스가 "좋은 이유로 서울에 가는 것"이며, 이번 서울방문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4년 7월 7일자)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라이스를 서울에 파견하면서 모종의 성과를 기대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셋째, 라이스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하였다. 라이스는 미국군 전용기편으로 경기도 오산의 미국 공군기지에 내리자마자 청와대로 직행하여, 노란 봉투에 든 부시의 친서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하고 비밀회담을 진행하였다.

라이스가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부시의 친서를 전달하고 비밀회담을 진행한 과정에서 언론에 드러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라이스-노무현 비밀회담에서 라이스는 제3차 6자회담에서 부시 정부가 북(조선)에게 제안한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을 설명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됐다고 평가하였다."고 한다. 라이스의 그러한 발언은 라이스가 좋은 이유로 서울에 가는 것이며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해들리의 발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라이스와 해들리의 발언에서는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에 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기대감이 엿보인다. 또한 라이스는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과 만나 진행한 회담에서 "북(조선)이 핵활동을 중지하고 국제사찰을 받고 핵을 완전히 폐기하면 얼마나 많은 것을 얻게 될지 북(조선)은 놀랄 것"이라고 하면서 자신감을 보였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조선)이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을 받아들이는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비하였다는 뜻이다.

둘째, 남(한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라이스-반기문 회담에서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이 주한미국군 감군시기가 너무 이르고 감군규모도 너무 크다는 점을 우려 섞인 목소리로 언급하였을 때, 라이스는 "주한미군 병력수를 줄이는 것이 남(한국) 방위공약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줄이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라이스를 서울에 파견하여 주한미국군 감군계획이 변경이나 차질이 없이 추진되고 있음을 노무현 정부에게 재확인한 것이다. 7월 14일 청와대 대변인 김종민이 『연합뉴스』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최근 떠도는 주한미국군 감군일정 연기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잘라 말한 것은, 청와대가 라이스를 통해서 주한미국군 감군계획에 대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확정적 견해를 전달받았으므로 그렇게 발언한 것이었다.

위와 같은 라이스의 발언을 살펴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을 북(조선)에 제안하고, 다른 쪽에서는 동시에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서두름으로써 '핵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고 기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것에 상응하여 북(조선)이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이다.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는 라이스가 서울방문을 마치고 돌아간 뒤로 약 1개월 동안 서둘러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 제2사단 병력과 장비들이 2004년 8월 2일부터 11일까지 이라크전선으로 빠져나간 것은 사실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핵문제'를 해결하는 협상조건으로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북(조선)에게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조치와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의 수용을 연계하려는 계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미국의 군사전략적 요구에 따라 주한미국군을 감군하게 된 조건을 적절히 이용하면, 북(조선)으로 하여금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을 받아들게 만드는 일종의 타협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였다.  

주한미국군 감군과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의 수용을 연계하려는 계책은 2004년 8월 17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가 끝난 직후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연방상원의원이며 군사위원장인 존 워너(John Warner)의 발언에서 확인되었다. 주한미국군 감군이 북(조선)과 진행하는 회담에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조건으로 될 수는 없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서 존 워너는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조선)과의 회담에서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협상조건으로 사용하는 문제를 고려하였으나, 부시 정부는 주한미국군 감군을 협상조건으로 내놓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답변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18일자) 나의 판단으로는, 만일 주한미국군 감군을 협상조건으로 내놓는 경우,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려는 북(조선)의 전략에 말려 들어갈 것을 우려해서 그러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한미국군 감군과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의 수용을 연계시키려는 계책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오판이 빚어낸 실책이었다. 라이스가 워싱턴에서 서울로 떠난 2004년 7월 7일 『로동신문』은 「우리에게는 다른 나라의 <방식>이 통할 수 없다」는 제목으로 된 개인필명의 논평을 실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에 개인필명의 논평을 싣는 것은 집필자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사실상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견해로 볼 수 있다. 북(조선)은 당과 정부의 공식견해를 다른 나라에게 밝히기 전에 먼저 개인필명의 논평형식을 빌어 견해를 밝히곤 하는 것이다. 그 논평에서 지적한 다른 나라의 방식이란 미국 언론들이 말하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Libya-style solution)'을 뜻한다.

'리비아식 해법'이란 부시 정부가 제3차 6자회담에서 북(조선)에게 제안하였고, 그로부터 열흘 뒤에 서울에 급파된 라이스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신감을 보이며 설명했던 바로 그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은 전면공개, 전면폐기, 전면사찰을 받아들인 리비아의 정치적 굴복경험에 의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미국 언론들조차 별반 새로운 것이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였던(『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4년 6월 23일자) '방안 아닌 방안'이었고, 부시 정부의 일부 고위관리들조차 북(조선)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방안이었다. (『뉴욕 타임스』 2004년 7월 25일자)

『로동신문』 2004년 7월 7일자에 실린 논평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 논평은 부시 정부가 제안한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한 거부의사는 2004년 7월 22일 조선중앙방송에서 다시 표명되었으며, 『로동신문』 2004년 7월 24일자에서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의 '전향적인 제안'은 론할 가치도 없다」는 제목으로 발언함으로써 공식화되었다. 이튿날 『뉴욕 타임스』는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기사를 인용하면서 북(조선)이 부시 정부의 제안을 거부할 것 같다고 보도하였다.

북(조선)의 관점에서 보면, 부시 정부가 '리비아식 해법'을 내놓은 것은, 2004년 4월 24일 조선인민군 창건 72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국방위원회 연형묵 부위원장이 지적한 '미국의 기만적인 대화전술'인 것이다. (『연합뉴스』 2004년 4월 24일자) 북(조선)이 리비아식의 정치적 굴복을 자기에게도 요구하는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을 논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일축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리비아식 해법'이 북(조선)에게 통할 수 없는 근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리비아는 강한 군사력을 갖지 못하였고 핵억제력도 갖지 못했다. 그에 비해서, 북(조선)은 강한 군사력과 핵억제력을 모두 갖고 있다. 핵억제력이 없는 리비아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했던 '해법'이 핵억제력을 가진 북(조선)에게도 통할 것으로 본 것은 명백한 오산이다. 둘째, 리비아 인민의 반미자주의식과 사회정치적 통합력은 북(조선) 인민의 반미자주의식과 사회정치적 통합력과 비할 때,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약하다. 그런 형편에 있는 리비아에게 정치적 굴복을 요구한 '해법'이 북(조선)에게도 통할 것으로 본 것은 명백한 오산이다. 셋째, 리비아 영토에는 미국군기지가 없고, 그 대신 국제독점체들이 탐내는 석유자원이 있다. 이것은 석유자원 개발이익이 리비아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조건이 될 수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에 비해서 남(한국)에는 미국군이 장악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체제가 있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북(조선)의 석유자원은 국제독점체들이 탐낼 만큼 풍부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조건이 완전히 다른 리비아에게 통했던 '해법'이 북(조선)에게도 통할 것으로 본 것은 명백한 오산이다. 넷째, 리비아는 국제테러를 반미항전의 수단으로 삼았던 경력이 있는 반미테러국인 반면에, 북(조선)은 반미테러에는 관심이 없고 그 대신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도발할 경우, 북(조선)의 강경한 표현을 빌리면, '미제를 지구상에서 쓸어버리는 혁명전쟁'을 불사하겠다고 선포한 신흥군사강국이다.

리비아와 북(조선)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두 나라가 모두 미국의 제국주의적 경제제재조치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리비아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력에 굴복하여 '핵문제 해법'을 받아들이는 대가로 미국은 제국주의적 경제제재조치를 철회하였고, 그에 따라 리비아의 석유자원이 국제독점체들에게 개방되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북(조선)은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켜 미국의 제국주의적 경제제재조치를 걷어내고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킴으로써 남(한국)의 자주화와 한(조선)민족의 조국통일위업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로동신문』 2004년 7월 7일자 논평에 담긴 거부의사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즉각 전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논평은 다른 『로동신문』 기사와 마찬가지로 국가정보기관이나 국무부 하급관리에 의해서 분석되었을 것이고, 개인필명의 논평이었으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까지 보고할 만큼 중시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 7월 20일 서울을 방문하고 있던 미국 국무부 군비통제담당 차관보 존 볼튼(John R. Bolton)이 '리비아식 해법'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교훈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그렇게 짐작된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기대감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에 개인필명의 논평 한 편이 게재된 것으로 무너졌으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조선)의 '핵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오판하고 있는지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3. 부시 정부의 비밀공작이 노리는 것

『뉴욕 타임스』 2004년 8월 8일자 보도는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부시 정부의 외교노력이 실패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 보도는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외교노력에서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란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외교노력에서도 실패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 지적은 『뉴욕 타임스』 기자의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미국 국가정보기관 관리들과 민간 핵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내린 비중 있는 결론이었다.

부시 정부의 외교노력이 실패하였다면, 남은 선택의 여지는 자연히 강제조치밖에 없게 된다. 『뉴욕 타임스』는 그 기사에서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과 국가정보기관 관리들이 핵개발 노력을 "파열시키거나 연기시키기 위한 불특정한 비밀공작(unspecified covert actions to disrupt or delay)"을 취하는 방도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들이 말한 비밀공작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것이 외교노력이 실패하였을 때 동원하는 강제조치라는 점은 명백하다. 미국 제국주의세력은 강제조치를 흔히 '군사적 선택(military option)'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무력을 동원하여 침략전쟁을 도발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주목하는 것은,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과 국가정보기관 관리들이 핵개발 노력을 파열시키거나 연기시키기 위한 비밀공작대상으로 지목한 나라가 북(조선)이 아니라 이란이라는 점이다. 북(조선)과 이란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펼쳤던 외교노력이 실패하였음을 자인한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과 국가정보기관 관리들은, 이란을 강제조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중동지역에서는 미국이 이란에 대해 침략전쟁을 도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004년 6월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의혹에 관하여 자기들이 수집한 비밀정보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게 제공하였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이 지난 몇 달 동안 사찰하였으나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연합뉴스』 2004년 9월 2일자) 그런데도 미국은 이란의 '핵문제'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여 제재를 가하여야 한다고 계속 우기면서 이란에 대한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치적 압박이 침공의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미국은 정치적 압박만이 아니라 군사적 위협도 가하고 있다. 이란 신문 『쎄다예 에달라트(Sedaye Adalat)』 2004년 8월 24일자 보도에 따르면, 8월 19일 미국군 전투기 다섯 대가 고도 10km로 비행하면서 샤트 알-아랍(Shatt al Arab) 수로(水路)의 이란 영토인 아르반드강(Arband River) 유역까지 침범하였고, 이란 남서부의 샬람체(Shalamcheh) 국경지대를 통과해 접경도시인 호람샤아(Khorramshahr) 상공에 머문 뒤 사라졌다고 한다. 미국군 전투기들의 이란 영공침범은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과 국가정보기관 관리들이 그로부터 약 열흘 전에 『뉴욕 타임스』에게 흘려주었던 이란에 대한 비밀공작이 이미 가동단계에 들어갔음을 말해준다. 요르단 언론인 파헤드 파네크(Fahed Fanek)도 요르단 신문 『알-라이(Al-Rai)』에 기고한 글에서 2004년 9월이나 10월에 미국 또는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공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였다.

미국군 전투기들이 이란 영공을 침범했을 때, 만일 이란군이 방공포로 위협사격을 하거나 요격기를 출격시켰다면, 그런 대응을 노리고 있던 미국군 전투기들이 우세한 공중기동력과 공중화력으로 선제공격을 가하여 영공침범사태는 쌍방의 무력충돌로 번졌을지 모른다.

자기를 겨냥한 미국의 비밀공작이 가동단계에 들어갔음을 의식한 이란은 미국군 전투기들의 영공침범사태에 대해서 단호하게 대응조치를 취하는 것은 고사하고 영공침범을 비난하는 변변한 논평 한 편 내놓지 못하였다.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 도발의지가 드러난 조건에서 섣불리 대응할 경우, 침략전쟁 도발음모에 말려들 수도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란의 침묵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란이 침묵할수록 미국의 비밀공작은 차츰 강도를 높일 것이고, 그 공작은 이란이 미국의 무력위협에 굴복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 이란은 미국의 이른바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으로부터 자국의 핵발전소를 방어하기 위한 비상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란 국방장관 알리 샴카니(Ali Shamkani)는 미국군 전투기들의 영공침범사태가 언론에 보도된 날, 이란 관영일간지 『이란』과 회견하면서 이란의 핵발전소가 공격을 당하여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를 통제하기 위한 특별장비를 마련하였다고 밝혔다. 이란은 자국의 핵발전소가 외과수술식 타격으로 파괴는 상황에 대비한 수동적 방어책을 세워둔 것이다.

그렇지만 이란의 수동적 방어책 역시 '침묵'이 그러한 것처럼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군 전폭기들은 외과수술식 타격으로 핵발전소를 파괴한 뒤에 무슨 구실을 달아서라도 다른 전략시설을 파괴하려고 다시 덤벼들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란의 미사일전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투르크메니스탄, 카스피해 등 주변을 사면에서 포위하여 미사일방어체계(MDS)를 구축하려 한다는 최근 보도(『연합뉴스』 2004년 9월 6일자)는 이란을 겨냥한 미국의 침략전쟁책동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 미국이 제기한 이란의 '핵문제'는 이란의 핵개발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란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란의 '핵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이란이 미국 제국주의세력과 투쟁하여 자주성을 지키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다. '핵문제'를 구실로 하여 비밀공작을 개시한 미국의 침략위협에 맞선 이란에게는 제국주의와 대결하는 반제투쟁에서 승리하여 자기의 자주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굴복하느냐 하는 최대의 국가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부시 정부는 이란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6자회담 같은 정치회담을 추진하지 않았으며,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과 같은 조건을 이란에게 제시하는 외교노력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이라크 전선에서 아직 비정규전이 계속되는 상황인데도, 미국은 이란을 굴복시키기 위한 비밀공작을 개시한 것이다.

이란을 겨냥한 미국 제국주의세력의 비밀공작을 언급하였던 『뉴욕 타임스』 2004년 7월 8일자 기사는 북(조선)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도하였다. 2004년 초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부시 정부에게 제출하였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7월에 가서 어렴풋한 윤곽만이 언론에 공개된 세 개의 비밀보고서들 가운데는 북(조선)에 대한 새로운 정보평가서가 있다. 그 정보평가서는 지난 20개월 동안 부시 정부가 동력자원 지원을 중단하는 것을 포함하여 경제제재조치를 강화하였고, 북(조선) 주변 4개국을 참여시킨 여러 차례의 협상을 진행하였으나 북(조선)의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지 못했고, 그것과 병행하여 추진되는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 개발사업도 비록 속도가 느리기는 하나 진전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 정보평가서에 따르면, 8천개가 넘는 사용후 핵연료봉의 행방은 2003년 이후에 묘연해졌고, 북(조선)은 사용후 핵연료봉을 재처리하여 핵무기 6-8개를 추가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졌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가 언급한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정보평가서가 말해주는 것은, 부시 정부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이란의 핵발전소를 외과수술식 타격으로 파괴하기 위한 비밀공작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의 핵무기 추가생산을 저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핵무기 추가생산을 저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004년 7월 8일 미국 엔비씨(NBC) 텔레비전방송시간 '언론과 만나다(Meet the Press)'에 출연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방송진행자가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수단에 비밀공작도 포함되는지를 묻자 "미국 대통령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검토할 것이 분명하다."는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을 뿐이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핵무기 추가생산을 저지하기 위하여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을 받아들이라고 북(조선)에게 요구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북(조선)은 부시 정부가 내놓은 '리비아식 해법'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였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자기의 제안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였고, 6자회담에 참여하는 중국, 남(한국), 러시아, 일본이 자기의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곤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리비아식 해법'을 붙들고 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2004년 8월 26일 『뉴욕 타임스』 기자와 회견하는 자리에서 기자가 미국이 언제까지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인지를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이 답변 아닌 답변만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노력은 효과를 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그것이 내가 외교전략을 수립한 까닭이다." (『뉴욕 타임스』 2004년 8월 27일자) 그의 발언에서는 곤혹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4. 미국이 과신하는 미봉책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위험은 일본의 핵무장야망에 직결되어 있다. 만약 일본이 핵무장국으로 등장하는 경우,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러한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달리, 남(한국)은 미국의 지배 아래 있으므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을 핑계 삼아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한다. 주한미국군 감군조치에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핵무기를 몰래 개발하려다가 미국의 강한 제재조치를 받고 치명타를 입은 경험, 그리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레이건 정부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착수하였던 핵무기 개발사업을 완전히 포기하는 조건으로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철회하였던 경험이 남(한국)의 핵무장 불가능성을 말해준다. 한편, 미국의 지배 아래 있으며, 중국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대만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며, 미국의 지배를 받는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의 경우는 매우 다르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핵무장야망을 품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은 핵무장야망만 가진 것이 아니라 핵무기 개발에 요구되는 기술과 자금, 그리고 핵물질을 거의 완벽하게 구비해놓았다. 그러한 일본이 핵무장에 나서지 못하는 까닭은 일본의 자제력 때문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북(조선)의 '핵문제'로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가 흔들리게 되자 10여 년 전부터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핵무장야망을 차단하는 책략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일본의 핵무기 개발명분을 없애버리고 일본의 핵무장야망을 차단하면, 북(조선)이 설사 핵무기를 몇 개 은밀히 보유해도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부시 정부는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생각과 일본의 핵무장 명분을 없애버림으로써 핵무장야망을 차단하려는 생각이 뒤엉켜 더욱 고심하고 있다.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를 핑계삼아 일본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을 없애려는 목적에 따라 전략연구를 추진한 결과, 미국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책을 찾아내고 이를 서둘러 추진하게 되었다.

첫째, 미국이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끌어들여 일본열도 위에 미사일방어체계를 세우는 방책이다. 그것은 핵탄두를 탑재한 북(조선)의 중거리미사일이 일본의 심장부를 향하여 날아오는 동안 요격미사일을 발사하여 날아오는 미사일을 파괴하는 방어체제를 뜻한다. 일본 방위청은 2005년 4월에 시작되는 회계연도에서 미사일방어계획에 관련된 예산을 35%나 늘린 13억달러로 채택하기로 하였으며, 육상'자위대'의 미사일방어력을 강화하고 지휘계통을 단일화하기 위해 '자위대' 총사령부에 해당하는 총대(總隊)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31일자) 『아사히신붕(朝日新聞)』 2004년 9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부분인 이지스전투체계(Aegis Combat System)를 개발하기 위하여 일본의 반도체기술과 컴퓨터기술을 그 개발사업에 참여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둘째, 미국이 일본열도의 전략요충지에 미국군 무력과 전략적 지휘통제능력을 증강·배치하여 주일군사기지를 미국의 태평양 지배체제를 '방어'하는 해외중추기지인 이른바 '전력투사근거지(Power Projection Hub)'로 만드는 방책이다.

셋째, 미국이 일본 '자위대'의 무력증강과 군사작전범위의 해외 확대를 용인해주는 방책이다. 부시 정부는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 간판을 정규군으로 바꾸고 침략전쟁을 위한 교전권을 갖도록 일본 정부에게 촉구하고 있는 중이다.

넷째, 미국이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해주는 방책이다. 이것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올라서기를 바라는 일본 지배세력의 정치적 야욕과 맞아떨어지는 조치이다.

그러나 위의 네 가지 방책은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의 핵무장 명분을 제거하는 담보가 되지 못한다. 위에 열거한 미국의 방책들은 불안정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이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끌어들여 일본열도 위에 세우고 있는 미사일방어체계는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다. 미국의 군사전문 주간지 『디펜스 뉴스』 2004년 8월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클린턴 정부 시기에 국방부 수석무기시험관을 지낸 필립 코일(Philip E. Coyle)은 미사일방어체계에 사용될 코브라 데인 레이더(Cobra Dane Radar)는 지난 냉전시기 수평선을 넘어 날아오는 옛 소련 미사일을 추적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어서 그와 다른 궤도로 날아오는 북(조선) 미사일을 탐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한편,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요격미사일 애로우(Arrow)는 2004년 8월 26일 캘리포니아주 앞바다에서 실시된 13번째 시험발사에서 실패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27일자)

둘째, 미국이 일본열도의 전략요충지에 만들어놓은 전력투사근거지는 북(조선)의 공격목표가 된다. 북(조선)의 중거리미사일 사정권 안에 놓여있는 전력투사근거지는 미국의 태평양 지배체제를 방어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셋째, 일본 '자위대'의 무력증강과 군사작전범위의 해외확대는 조선인민군, 중국인민해방군, 러시아 극동군을 크게 자극하여 동아시아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다. 따라서 일본 '자위대'의 무력증강과 군사작전범위의 해외확대라는 조치를 가지고서는 미국의 태평양 지배체제를 안정시키기는커녕 이전보다 더 위태로운 상태에 빠뜨릴 것이다.

넷째,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은 북(조선), 남(한국),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은 것을 문제로 제기하며 반대하고 러시아가 러·일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을 문제로 제기하며 반대할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실현되기는 힘들다.

미국에게 있어서, 일본의 핵무장야망을 차단하고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책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 실현이다. 한(조선)반도 비핵화가 실현되면 일본의 핵무장 명분은 제거되고 핵무장야망은 차단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자기의 불안정한 미봉책을 과신하면서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에 나서지 않고 있다. 만약 미국이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문제를 외면하고 불안정한 미봉책에만 의존하는 경우, 한(조선)반도 비핵화도 실현하지 못하고 일본의 핵무장야망도 저지하지 못하는 최악의 위험을 피하기 힘들다.

5. 주한미국군 철군은 비핵화와 자주화의 지름길이다

명백하게, 부시 정부가 내놓은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으로는 한(조선)반도 비핵화가 실현될 수 없다. 그것은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한 리비아에게나 통할 수 있었던 '방안'이므로, 부시 정부를 '핵문제'의 수렁에 밀어 넣은 북(조선)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선거에 발이 묶인 부시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북(조선)이 2004년 10월에 지하핵실험을 실시할지도 모른다는 '10월 핵실험설'이 최근 워싱턴 정가와 관가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부시 정부가 '핵문제'의 수렁에 빠져있음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부시 정부에게 북(조선)의 '핵문제'는, 미국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면, '베트남식 수렁(Vietnam-style quagmire)'인 것이다.

이런 상황과 조건에서 볼 때, 북(조선)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리비아식이 아니라 북(조선)식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간단히 말해서, 북(조선)식 해결방안이란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원칙에 따라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함으로써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첫째 단계는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동력자원 보상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2004년 8월 19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4차 비동맹운동(NAM) 각료회의에 참석한 북(조선) 대표는 그 첫째 단계를 가리켜 "핵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25일자)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둘째 단계는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동결 대 보상 이행→포기 대 철군 이행→한(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의 과정을 밟아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둘째 단계다.

그런데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길에 조성된 가장 커다란 걸림돌은 미국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상호성의 원칙(principle of reciprocity)을 적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북(조선)은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경우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미국은 주한미국군 철군을 거부하면서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포기만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서부터 상호성의 원칙을 거부하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부시 정부가 오랫동안 6자회담을 추진해오면서도 미국 언론들로부터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하고 외교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은, 그들이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미 정치회담에서 상호성의 원칙을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경우, 경제지원을 해주겠다는 소리만 늘어놓으면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한 목적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북(조선)은 미국의 대북(조선)적대정책에 대응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북(조선)적대정책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미국의 대북(조선)적대정책 포기는 침공의사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실제행동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미국이 미국군 철군문제를 조·미 정치회담의 협상조건으로 제시해야 하는 까닭이다.

또한 미국은 목표설정에서만 아니라 이행방식에서도 상호성의 원칙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북(조선)이 먼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선 핵포기'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조·미 두 나라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시에 서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마땅한 데도, '선 핵포기'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정치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한 미국은 목표설정이나 이행방식에서만 아니라 상호검증방식에서도 상호성의 원칙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포기했는지를 검증해야 한다고 하면서, 북(조선)의 핵시설에 대하여 아무 때나, 어떤 대상이든 사찰하는 강도 높은 검증방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조선)적대정책을 실제로 포기했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 북(조선)이 주한미국군기지 핵시설을 사찰하는 상응적 검증방식에 대해서 미국이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다.

북(조선)의 '핵문제'는 미국이 미국군을 철군하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으며, 미국이 바라는 한(조선)반도 비핵화는 미국군 철군으로 실현될 수 있다. 한(조선)반도 비핵화가 미국군 철군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말을 미국의 견지에서 해석하면, 주한미국군 철군이 일본의 핵무장 명분을 제거함으로써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동아시아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주한미국군을 철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 철군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할 뿐 아니라 한(조선)민족의 자주화도 실현한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국군 철군이 한(조선)민족의 자주화를 실현한다는 말은, 남(한국)을 지배하면서 북(조선)을 봉쇄해온 한·미 군사동맹체제가 주한미국군 철군으로 해체되어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한·미 군사동맹체제가 일반적 의미의 군사동맹체제가 아니라 남(한국)에 대한 지배정책과 북(조선)에 대한 봉쇄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특수체제'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특수체제'를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주한미국군이다. 주한미국군은 일반적인 의미의 해외주둔미국군이 아니라 남(한국) 지배정책과 북(조선) 봉쇄정책을 추진하는 '특수무력'인 것이다. 그러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지 않고 한·미 군사동맹체제가 해체될 가능성은 없다.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미 군사동맹체제의 해체를 불러옴으로써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완성시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한미국군 철군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와 한(조선)민족의 자주화를 실현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장차 조·미 정치회담이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합의점을 찾는 경우, 주한미국군 철군은 베트남전쟁의 패전 직후 미국군이 철군한 것처럼 극적인 계기에 의해 급속히 철군될 가능성도 있고, 극적인 계기가 없이 4-5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철군될 가능성도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극적인 계기에 의해 급속히 철군하는 경우, 북(조선)도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급속히 포기할 것이다. 만일 미국이 4-5년에 걸쳐서 단계적으로 철군할 경우, 북(조선)도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 핵무기 개발사업을 단계적으로 포기하는 과정을 밟아갈 것이다.

6. '불의 신'을 수렁에 빠뜨리는 또 하나의 요인

미국의 관점에서 볼 때, '핵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느냐 또는 마느냐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북(조선)의 관점에서 '핵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는 북(조선)이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냄으로써 주한미국군 철군을 강제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핵문제'와 결부시켜 검토하였으면서도 미국군을 철군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는 조건에서, 문제해결의 열쇠는 북(조선)의 손에 있다.

부시 정부가 '포괄적 다단계 비핵화방안'을 수용하라고 요구한 것에 대응하여 북(조선)은 『로동신문』 2004년 7월 21일자 논설 「미국은 남조선강점 미군무력을 전면 철수시켜야 한다」에서, 그리고 조국통일연구원이 7월 31일에 작성하고 『로동신문』 2004년 8월 1일자에 발표한 글 「미군 '감축' 놀음의 기만적 정체를 해부한다」에서, 그리고 『로동신문』 2004년 8월 6일자에 실린 개인필명의 논평 「남조선강점 미군은 '감축'이 아니라 전면철수되여야 한다」에서 미국군을 철군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였다.

북(조선)이 미국군을 철군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은 2005년을 미국군 철군 원년으로 설정한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04년 5월 13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동포형제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2005년을 남조선에서 미국군대를 철수시키고 미국의 지배를 완전히 끝장내는 원년으로 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4년 5월 13일자에서 다시 옮김)

미국군 철군 원년이라는 말은 한(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에 관한 조·미 정치회담이 진전되어 미국군 철군문제의 실마리를 푼다는 뜻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005년을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기간으로 설정한 것에 비하여, 북(조선)은 2005년을 주한미국군 철군의 실마리를 푸는 획기적인 기간으로 설정한 것이다. 요즈음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난 2005년부터 주한미국군기지의 한강 이남 배치와 미국군 감군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북(조선)은 이러한 상황변화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면서 주한미국군 감군을 주한미국군 철군으로 전환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북(조선)은 미국군 철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적극적인 대미압박공세를 가하면서 미국을 철군협상으로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주목하는 것은,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이 주한미국군 감군을 주한미국군 철군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문제다. 다가오는 2005년에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이 미국군 철군운동을 더욱 힘있게 전개하는 것은, 현재 조성된 정세의 요구로 보나 민족민주운동의 전략적 과업으로 보나 응당하고 중대한 일이다. 당면하여 풀어야 할 문제는 미국군 철군운동을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론이 아니라 미국군 철군운동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이다.

민족민주운동이 대중의 힘에 의거하는 사회변혁운동이므로, 민족민주세력이 추진하는 미국군 철군운동도 마땅히 대중의 힘에 의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군 철군운동의 방법론이란 어떤 다른 묘책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힘에 의거하는 대중운동의 전략전술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군을 철군시키기 위한 대중운동의 전략전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점들을 논할 수 있다.

우선 남(한국)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한국) 사회의 각계각층 대중들 속에서 반미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오늘날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미국 언론은 남(한국) 대중의 반미성향을 가리켜 '반미감정(anti-American sentiment)' 또는 '반미주의(anti-Americanism)'라고 부른다. 구분하자면, 반미감정이란 미국의 오만과 횡포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일반대중의 감정상태를 뜻하며, 반미주의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세력을 반대하는 이념적 성향을 뜻한다.

나의 판단으로는, 현 시기 남(한국) 사회에서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은 반미주의보다는 반미감정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 일반대중에게 반미주의라는 이념적 성향은 아직 낯선 것이다. 반미주의의 이념적 성향은 반미자주화운동을 이끌어 가는 민족민주세력에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일반대중의 반미성향과 민족민주세력의 반미자주화운동을 혼동하지만, 미국군 철군운동에 관한 논의에서는 양자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이 미국군 철군운동을 전개하는 기반인 것은 명백하지만,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사의 경험이 말해주는 대로, 일반대중의 반미성향만 가지고서는 미국군 철군운동을 전진시키지 못한다. 이를테면, 독일의 일반대중 가운데 75%가 반미성향을 가지고 있지만(『연합뉴스』 2004년 5월 18일자), 독일에서 미국군 철군운동을 기대하기 힘들고, 캐나다의 14-18살 청소년 가운데 40% 이상이 미국을 악(惡)으로 생각하는 반미성향을 가지고 있지만(『연합뉴스』 2004년 7월 7일자), 캐나다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문제의 핵심은 일반대중의 반미성향과 민족민주세력의 미국군 철군운동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양자가 결합함으로써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이 미국군 철군운동을 추진하는 역량으로 전화(轉化)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남(한국) 민족민주세력은 얼마 전 이라크 추가파병을 반대·저지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반미성향을 가진 광범위한 일반대중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주된 원인은 그 투쟁에서 민족민주세력의 반미자주화운동과 일반대중의 반미·반전성향이 결합되기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반대중의 반미성향과 민족민주세력의 미국군 철군운동이 아무런 조건 없이 상호결합되는 것은 아니다. 양자를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궤도로 집합시키는 주체는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이다. 조직화된 대중이 미국군 철군운동에 나서야 반미성향을 가진 일반대중을 미국군 철군운동의 투쟁전선으로 결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조직화된 대중이 미국군 철군운동에 아직 나서지 못한 조건에서 일반대중이 반미성향을 가진다고 해서 미국군 철군운동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이 민족민주세력의 미국군 철군운동과 각계각층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을 하나의 전선에 결집시킨 조건에서, 미국군을 반대하는 일반대중의 분노가 폭발하여야 미국군 철군운동이 승리할 수 있다.

미국군 철군운동에 나서는 대중단체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인, 문화예술인, 지역주민들로 각각 구성되어 여러 부문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이다. 바로 그 대중단체들 속에 미국군 철군운동의 거대한 추진동력이 존재한다.

미국군 철군운동의 전선은 대중단체들의 진보성향과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이 만나는 집합공간에서 형성된다. 대중단체들의 진보성향과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이 만나는 집합공간에서 광범위한 전선이 형성된다는 사실은, 몇 해 전 미국군 장갑차에 의한 여학생 살해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크게 확산된 대중운동경험에서 현실로 입증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민족민주세력의 고민은, 미국군 철군운동에 나서야 할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이 자기 계급이나 계층, 또는 자기 지역이나 부문에서 전개되는 운동에 열중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고민을 푸는 길은 민족민주세력이 각 부문과 지역에서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이 수행하는 다종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적극 지원하여 대중단체들과의 조직적 연계를 강화하면서, 그들의 생활현장에 들어가서 미국군 철군을 위한 여러 가지 형식의 선전사업을 벌여야 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 임무는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을 미국군 철군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정치적 임무다.

민족민주세력이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을 미국군 철군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정치사업은 현 시기 반미자주화운동의 사활적 과제가 되었다. 그 정치사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진다.

첫째, 미국군 철군운동은 어느 한 계급이나 계층의 자주성, 또는 어느 한 지역이나 부문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운동이 아니라, 근로대중 전체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근로대중 전체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이 어느 한 계급이나 계층의 자주성, 또는 어느 한 지역이나 부문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과 배치되거나 모순되지 않는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근로대중 전체의 자주성이 실현되어야 어느 한 계급이나 계층의 자주성, 또는 어느 한 지역이나 부문의 자주성이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강조하는 것은, 근로대중 전체의 자주성이 실현되지 못한 조건에서, 어느 한 계급이나 계층의 자주성, 또는 어느 한 부문이나 지역의 자주성이 실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군 철군운동의 최전방에 나서야 할 사회집단은 노동계급이라는 점이다. 노동계급은 근로대중 전체를 대표하고 근로대중 전체의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사회집단이다. 노동계급은 근로대중을 구성하는 여러 사회집단들 가운데서 양적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조건에서 생산수단의 사적 점유를 철폐하여 사회적 노동 자체를 해방하는 유일한 사회집단이라는 점에서 근로대중 전체를 대표하는 지위를 가지며, 근로대중 전체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선도한다.

셋째, 미국군 철군운동은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점이다.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공고하게 형성된 사회집단인 민족의 자주성은 근로대중의 자주성과 완전히 일치되는 것이므로,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미국군 철군운동은 근로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운동과 완전히 일치된다. 그러므로 미국군 철군운동은 근로대중이 자신의 자주성과 민족의 자주성을 한꺼번에 실현하는 근로대중 자신의 운동인 것이다.

넷째, 미국군 철군운동이 지금까지 '소수운동'으로 진행되어온 관행 속에 스며든 정치적 무력감을 걷어내는 일이다. 미국군 철군운동이 힘있게 전개되면, 그것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을 통해서 미국 사회가 자극을 받게 되고, 그에 따라 미국 사회에 조성되는 주한미국군 철군여론은 미국 정부와 연방의회를 압박하게 된다. 리처드 핼로런의 말에 따르면, 남(한국) 전역에서 반미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었던 2003년 1월 연방하원의원 56명이 참여하는 한·미 관계를 논하는 초당적 원내모임(bipartisan caucus)이 결성되었고, 미국 씨비에스(CBS) 텔레비전방송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에서 '미국놈 돌아가라(Yangkee Go Home)'라는 제목의 남(한국)의 반미성향에 관한 기록영상물이 2003년 2월 9일에 방영되었을 때, 연방의회에는 주한미국군을 철수하라는 선거구 주민들의 편지가 쇄도하였다고 한다. (Richard Halloran, "Domestic Political Dimension of Trilateral Relations: The U.S. Political Dimension") 이것은 미국 사회와 정치권이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문정인은 2004년 8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한 조찬회에서 2003년 말 용산기지 앞에서 시위학생이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서 있는 미국군 헌병의 모습이 미국 엔비씨 텔레비전방송의 보도시간에 방영된 것을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보고 격분하여 주한미국군을 빼내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8월 27일자) 럼스펠드가 격분하여 주한미국군 감군조치를 지시한 것처럼 본 견해는 1988년부터 추진되어온 이른바 '제국의 전선 이동'과 그에 따른 주한미국군기지 재배치전략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지만,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이 미국 정부와 연방의회에 커다란 정치적 압박을 가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의 조건은 유리하다. 오늘 남(한국) 사회에는 미국군 철군을 정강정책으로 내세운 진보적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있고, 미국군 철군운동의 중심동력이 잠재되어 있는 진보성향의 대중단체들이 있으며, 반미성향을 가진 각계각층 일반대중들이 있다.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의 정세도 또한 유리하다. 북(조선)은 미국 제국주의세력을 '핵문제'의 수렁에 밀어 넣으면서 압박공세를 가하는 중에 2005년을 미국군 철군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미국은 자기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에 따라 주한미국군을 감군하고 주한미국군사령부와 한미연합군사령부를 앞으로 5-6년 안에 해체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부시 정부가 주한미국군을 감군하는 조건에서 노무현 정권이 미국군 철군운동을 이른바 '이적행위'로 몰아세워 탄압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부시 정부가 서둘러 추진하는 주한미국군 감군조치에 놀란 노무현 정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예속세력들은 바야흐로 불안과 동요에 빠지고 있다. 남(한국)에서 미국군 철군운동을 전개하기에 이처럼 유리한 조건과 정세가 조성된 적은 없었다.

주한미국군 철군운동의 정치적 압박의 대상은 주한미국군 철군의 결정권을 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다. 미국 언론인 제임스 만(James Mann)이 2004년 3월에 출판한 자신의 책 『불의 신들이 일어서다(Rise of the Vulcans)』에서 묘사한 대로, 주한미국군 철군의 결정권을 쥔 사람들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불컨(Vulcan)'이라는 이름을 가진 '불의 신'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불의 신'이란 미국 국방부에서 경력을 쌓은 군부세대(military generation)에 속하는 부통령 딕 체니,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 국방차관 폴 월포위츠(Paul D. Wolfowitz), 국무차관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 등이다. 심지어 대학교수 출신으로 알려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마저도 미국 국방부에서 합동참모본부의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자신의 첫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주한미국군 철군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불의 신'의 한쪽 다리가 '핵문제'의 수렁에 깊이 빠져있는 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인데, 남아있는 다른 한쪽 다리마저 수렁에 빠뜨리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남(한국)의 미국군 철군운동이다. 미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군중이 주한미국대사관 앞으로 집결하여 '미국군 나가라'를 외치는 장면이 미국 언론에 크게 보도됨으로써 미국 사회에서 조성되는 주한미국군 철군여론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베트남식 수렁'에 빠뜨릴 것이다.

'불의 신'에게 남아있는 한쪽 다리마저 수렁에 빠뜨리는 것은 민족민주세력의 결심과 투쟁에 달려있다. 한(조선)민족의 자주역량이 두 다리가 수렁에 빠져 허덕이는 '불의 신'의 정치적 굴복을 언제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 이것은 이제 시간문제가 되고 있다. (2004년 9월 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