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6자회담에서 어떤 가능성을 찾을 것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발루치스탄 사막의 지하핵실험
2. 북(조선)이 제2차 6자회담에서 취한 전술과 전략
    1) 북(조선)의 분리전술
    2) 북(조선)의 돌파전술
    3)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시키려는 북(조선)의 전략
3.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본 조·미 관계 정상화의 의미
4. 6자회담에서 중국은 어떠한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
    1)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다
    2)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것이다
    3)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한(조선)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것이다.
5. 대세는 기울어지고 있다

1. 발루치스탄 사막의 지하핵실험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에서 서남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는 발루치스탄(Baluchistan)이라는 드넓은 사막지대가 있다. 발루치스탄의 정동쪽과 북동쪽에는 키르타산맥(Kirthar Range)과 술레이먼산맥(Sulaiman Range)이 각각 둘러있다. 발루치스탄 사막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 사막에 파키스탄의 차가이(Chagai) 핵실험장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발루치스탄 사막의 북동쪽 구릉지대에 있는 차가이 핵실험장은 파키스탄-이란 국경으로부터 약 50km 떨어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1998년 5월 30일 오전 11시 55분(현지 시간) 발루치스탄 사막의 차가이 핵실험장에서는 거대한 핵폭발 굉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지하핵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이튿날인 5월 31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키스탄 원자력위원회(Pakistan Atomic Energy Commission)의 한 고위관리는 어제 실시한 지하핵실험이 소형화된 핵무기를 폭발하는 실험이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998년 5월 31일자)

그러나 당시 세계는 인도 대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경쟁에만 이목을 집중하였을 뿐, 북(조선)이 자체 개발한 핵무기를 가지고 파키스탄 영토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음을 알지 못했다. 북(조선)이 1998년 5월 30일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자국산 핵무기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4년 2월 하순이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제2차 6자회담이 한창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뉴욕타임스』 2월 27일자 보도는 지난 6년 동안 철저히 감추어져 있었던 발루치스탄 사막의 지하핵실험 비밀 그 한 귀퉁이를 세상에 드러내 보였다.

당시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발루치스탄 사막의 지하핵실험은 1998년 5월 28일과 30일에 실시되었다. 5월 28일에 실시한 제1차 지하핵실험은 핵무기 다섯 기를 연이어 폭발하는 실험이었고, 5월 30일에 실시한 제2차 지하핵실험은 핵무기 한 기를 폭발하는 실험이었다. 따라서 핵폭발실험은 모두 여섯 차례나 실시된 것이었다. 당시 파키스탄 외무장관 샴사드 아흐맷(Shamshad Ahmad)은 기자회견에서 "여섯 번에 걸친 모든 핵실험은 완전히 성공적이었으며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번 핵실험은 운반수단과 조화를 이룬 무기급 핵실험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5월 28일에 실시한 제1차 지하핵실험은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다섯 기를 연이어 폭발한 실험이었고, 5월 30일에 실시한 제2차 지하핵실험은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 한 기를 폭발한 실험이었다. 제2차 지하핵실험은 제1차 지하핵실험이 실시된 곳에서 96km 정도 멀리 떨어진 다른 장소에서 실시되었다. 제1차 지하핵실험에서 핵무기는 수평갱에서 폭발하였던 것에 비해, 제2차 지하핵실험에서는 핵무기가 수직갱에서 폭발하였다. 수직갱은 수평갱보다 경비가 적게 든다.

수평갱에서 폭발한 고농축우라늄 핵무기는 파키스탄이 생산한 핵무기이고, 수직갱에서 폭발한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는 북(조선)이 생산한 핵무기이다. 1998년 당시 파키스탄은 고순도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으므로 고농축우라늄으로 제조한 핵무기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미국 국방정보국(Defense Intelligence Agency) 국장 로웰 재코비(Lowell E. Jacoby)가 최근 미국 연방상원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에 따르면, 파키스탄이 고순도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뉴욕타임스』 2004년 2월 27일자) 반면에, 북(조선)은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핵시설이 없으므로 고순도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밖에는 제조하지 못한다.

『뉴욕타임스』 2004년 2월 27일자 기사는 5월 30일에 실시한 제2차 지하핵실험을 해설하면서, 명확한 증거는 없으나 그 지하핵실험이 북(조선)과 파키스탄의 공동실험(joint test)이었을 가능성이 많다는 클린턴 정부의 국방부 고위관리가 했던 말을 인용하는 식으로 모호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나는 아래에 서술한 여러 정황을 분석한 결과, 그것은 공동실험이 아니었으며, 북(조선)이 개발한 전략핵무기의 폭발실험을 파키스탄 영토에서 실시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서, 북(조선)은 1998년 5월 30일 파키스탄의 제1핵실험장에서 96km 떨어진 제2핵실험장에서 경비를 적게 들여 수직갱을 설치하고 자국산 전략핵무기 폭발실험을 성공적으로 실시하였던 것이다.

2) 북(조선)이 생산한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가 파키스탄의 고농축우라늄 핵무기에 비해서 가지는 장점은, 적은 양의 플루토늄을 가지고서도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전략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고농축우라늄 전략핵무기는 고농축우라늄 15-25kg을 가져야 한 기를 만들 수 있는데 비해, 고순도플루토늄 전략핵무기는 고순도플루토늄 5-8kg만 가지고서도 한 기를 만들 수 있다.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는 제작하기 쉽고, 폭발시키기 쉽고, 파괴력이 강하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핵무장국 대부분은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일본 나가사키 상공에서 투하하여 지상 500m에서 폭발한 '팻맨(Fat Man)'이라는 이름의 핵폭탄이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였다. 양파 만한 크기의 고순도플루토늄 덩어리를 두 쪽으로 나누어 각각 손에 쥐고 맞부딪친다고 해도 핵폭발이 일어날 정도로 고순도플루토늄의 폭발력은 강하다. 2004년 1월 8일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 출신의 핵공학전문가 식프릿 헥커(Sigfried Hecker)가 영변 핵시설을 참관하였을 때, 북(조선)은 유리병에 들어있는 핵물질 200g을 그에게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고순도플루토늄이다.

5월 28일에 실시된 제1차 지하핵실험을 통해서 파괴력을 입증한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다섯 기 가운데 세 기는 1킬로톤(kiloton) 이하의 낮은 파괴력을 가진 전술핵무기들이었고, 나머지 두 기는 각각 25kt과 12kt의 파괴력을 가진 전략핵무기들이었다. (Center for Nonproliferation Studies, Chronology of Pakistani Nuclear Development 참조) 1kt의 파괴력이란 티엔티(TNT) 1천t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파괴력을 뜻한다. 5월 30일의 제2차 지하핵실험을 통해서 파괴력을 입증한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는 1945년 8월 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핵폭탄보다 파괴력이 조금 큰 15-18kt의 파괴력을 가진 전략핵무기였다. (『연합뉴스』 1998년 5월 31일자)

북(조선)이 지하핵실험을 통해서 입증한 전략핵무기의 파괴력은 실제로 어느 정도일까? 일반적으로 전략핵무기와 구분되는 전술핵무기란 5kt 이하의 파괴력을 가진 소형핵무기를 뜻한다. 1960년대에 미국은 네바다 사막의 지하핵실험장에서 전술핵무기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는데, 2.3kt의 파괴력을 가진 소형 전술핵무기를 지하 55m에서 폭발하였더니, 지표에 지름 120m의 거대한 분화구가 생겼고 방사능 낙진이 2.4km까지 날아갔다. 1kt의 파괴력을 가진 극소형 전술핵무기가 대도시에서 폭발할 경우에도, 현장에서 수만 명이 몰살당한다. 전술핵무기가 이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으므로, 전략핵무기는 대도시를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것이다.

5월 30일에 실시된 지하핵실험에서 폭발한 북(조선)의 전략핵무기가 일본 히로시마에서 폭발한 미국 핵폭탄의 파괴력을 능가하는 전략핵무기였다면, 북(조선)의 전략핵무기는 도시 90%가 파괴되고 6만6천 명이 사망하고 6만9천 명이 부상하였던 히로시마 핵폭발의 대재앙을 넘어서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북(조선)이 적은 양의 고순도플루토늄를 가지고 파괴력이 강한 전략핵무기를 만들었다는 말은, 북(조선)이 탄도미사일 탄두부에 탑재하는 소형화된 핵탄두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미국 첩보위성이 북(조선) 용덕동에 있는 최신 설비의 핵무기 실험장을 탐지해왔으며, 그 곳에서 북(조선)이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화된 핵탄두를 생산하는 설계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동맹국들에게 제공하였다고 한다. (『뉴욕타임스』 2003년 7월 1일자) 미국 중앙정보국은 북(조선)이 무게 700kg 안팎의 소형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남(한국)정부에게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도쿄신붕』 2003년 11월 26일자)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는 500kg으로 소형화, 경량화되어야 한다는 게 '정설'처럼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일면적인 이해에 지나지 않는다. 탄도미사일에 탑재하는 핵탄두 무게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고순도플루토늄 무게가 아니라 고성능폭약 무게이다. 500kg의 핵탄두 경우, 고순도플루토늄 무게는 대략 8kg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고성능폭약과 기폭장치 무게이다. 따라서 핵탄두를 소형화, 경량화하는 문제는 고성능폭약 무게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 하는 것과 얼마나 정교한 기폭장치를 개발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북(조선)이 기폭실험에서 제기되는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이미 완전히 해결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12일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공식자료에 따르면, 전략핵무기 한 기를 만드는 데 요구되는 고순도플루토늄 무게는 8kg이라고 한다. 나가사키에서 폭발한 핵폭탄의 고순도플루토늄 무게가 8kg이었다. 그런데 핵공학 전문가들은 8kg보다 적은 양을 가지고서도 얼마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8kg은 절대수치가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가 자기들의 핵사찰활동이 실제로 가능한 범위를 기준으로 하여 설정한 수치에 지나지 않는다. 8kg보다 적은 고순도플루토늄까지 찾아내려면 너무나 많은 대상을 사찰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사찰업무량을 고려하여 임의로 설정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3) 북(조선)과 파키스탄은 1998년 5월에 동시에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 미국 연구기관들의 분석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현재 약 40 기의 고농축우라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고농축우라늄 핵무기를 만드는 것보다 쉽다는 점을 생각하면, 북(조선)은 적어도 파키스탄이 보유한 핵무기 수량과 비슷한 정도, 또는 그 이상의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4) 북(조선)은 1998년 5월 30일에 지하핵실험을 통해서 파괴력을 입증한 전략핵무기를 대륙간탄도미사일 탄두부에 탑재하고 실전에 배치하였다. 북(조선)은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날로부터 꼭 석 달이 되는 8월 31일에 자국산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실은 우주발사체(Space Launch Vehicle) 백두산 1호 발사에 성공하였다.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의 탄두부에 인공위성을 싣는 대신에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핵폭발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전략핵탄두를 실으면 그것은 이 지구상 어느 곳이건 날아가 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된다.

만일 북(조선)이 전략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보유하지 못했다면, 미국은 지금까지도 북(조선)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고 업신여겼을 것이고, 따라서 자주화를 향한 한(조선)반도의 정세발전도 불가능했을 것이며 6자회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북(조선)이 보유한 핵억제력의 정치·군사적 의미를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까닭에, 북(조선)정부가 인민경제생활을 향상시키지 못하면서 핵무기와 미사일을 만들고 있다고 빈정거린다. 그런 빈정거림은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5) 미국 중앙정보국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기술은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보하였다고 하는데, 그 수준은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해서 지하핵실험을 해야 하였던 199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기 제조기술 수준이나 1960년대 중국의 핵무기 제조기술 수준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9일자)

북(조선)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이룩하였다는 중앙정보국의 정보평가는, 제1차 6자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003년 8월 18일에 미국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 비공개보고서로 제출된 바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은,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핵무기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는 북(조선)이 왜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는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전직, 현직 관리들의 발언에서 발견된다. 그들에 따르면,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북(조선)의 핵폭발실험이 실시된 직후 현장에 급파된 미군 첩보기가 대기 중에 남아있는 플루토늄 흔적을 채취하였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2004년 2월 27일자) 나의 판단으로는, 당시 미국이 더블유씨(WC)135더블유(W)라는 고성능 첩보기를 현장에 급파하여 대기 중에 떠다니는 불활성 기체인 크립톤85(crypton 85)를 채취한 것으로 생각된다.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는 경우, 미국이 반드시 그 현장에서 첩보수집활동을 전개하리라는 것을 북(조선)은 알고 있었다. 파키스탄이 아니라 다른 나라가 핵실험을 하는 경우에도, 미국은 반드시 그 실험결과에 대한 첩보수집활동을 벌인다. 이것은 하나의 관행처럼 되어있다.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실시한 전략핵무기 폭발실험은 북(조선)이 미국의 현장 첩보수집활동을 예견하고 실시한 것이었다.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북(조선)이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굳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했던 것은, 자기의 핵억제력(nuclear deterrent force)을 미국에게 물리적으로 입증해주기 위해서 그러했던 것이다.

6) 북(조선)은 왜 자국 영토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지 않고, 파키스탄의 핵실험장을 빌려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1998년 당시 만일 북(조선)이 자국 영토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첫째,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중국과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며,  남(한국) 일본, 대만을 자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조선)이 핵억제력을 물리적으로 입증함으로써 미국을 정치협상에 끌어내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핵확산금지조약체제의 붕괴를 촉발하여 조·미 정치협상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뜻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할 우려도 있었다.

둘째, 북(조선) 영공에는 미국 첩보기가 접근하지 못하므로, 북(조선)이 자국 영토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한다고 해도 자기의 핵억제력을 미국에게 물리적으로 보여주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핵실험은 핵폭발 후 대기 중에 방출되는 미량의 방사성 물질, 자연지진과 달리 여진이 없는 지진파, 기압의 미묘한 진동에 의해서 탐지된다. 미국과 남(한국)이 북(조선)의 핵실험을 감지할 수 있는 특수진동감시장치를 남(한국)의 40여 개 지점에 설치한 때는 북(조선)이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지 5년이 지난 2003년이었다. 1kt 정도의 소규모 핵폭발까지 탐지할 수 있는 시설을 전세계 321개소에 설치하여 지구에서 실시되는 모든 핵실험을 파악하려는 핵실험전면금지조약(CTBT) 국제감시제도(IMS)의 핵실험 감시망 구축사업은, 미국이 핵실험전면금지조약을 비준하지 않는 바람에 아직 착수하지도 못했다.

북(조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지하핵실험을 굳이 실시한 목적이 미국에게 자기의 핵억제력을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데 있었으므로, 핵실험 장소는 마땅히 미국의 첩보수집활동이 가능한 곳으로 선택되어야 했다. 북(조선)은 핵실험으로 중국과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을 피하고, 남(한국), 일본, 대만을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미국에게만 핵억제력을 은밀히 보여줄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한 끝에 파키스탄의 핵실험장을 빌려쓰는 방도를 선택하였던 것이다.

1998년 5월에 있었던 지하핵실험과 8월에 있었던 광명성 1호 발사는 북(조선)이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시키고 미국을 정치협상으로 끌어내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였다. 그 결정적인 조치에 의하여 미국이 이른바 '페리 보고서'라는 이름의 새로운 정책구상을 마련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결국 미국은 북(조선)의 탁월한 전략과 전술에 말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7) 파키스탄이 과연 자국 영토에서 다른 나라의 핵실험을 허용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의 핵실험장에서 핵실험을 실시하는 사례는 국제사회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날 파키스탄도 중국 영토에서 한 차례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경험이 있다.

그렇다면 파키스탄은 왜 자국 영토에서 북(조선)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도록 도움을 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 의문을 풀려면, 발루치스탄 사막에서 지하핵실험이 실시되기 얼마 전인 1998년 4월 6일에 파키스탄이 탄두무게 700kg, 사거리 1천5백km의 가우리 중거리 탄도미사일(Ghauri intermediate-range ballistic missile)을 시험발사하였던 사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가우리 미사일이 북(조선)의 미사일기술에 의해서 제조되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가우리 미사일 시험발사 일주일 뒤인 4월 14일 미국 국가정보기관 관리들은 가우리 미사일이 이름만 가우리 미사일일 뿐 실제로는 북(조선)의 노동미사일이라고 발표하였다. (Center for Nonproliferation Studies, Chronology of Pakistani Missile Development) 1998년 5월 6일 미국은 북(조선)의 창광신용회사가 파키스탄의 미사일개발을 지원했다는 혐의를 내세우고, 그 회사와 계열사들에 대해서 경제제재조치를 발동한다고 발표하였다.

제2차 6자회담에 북(조선) 수석대표로 참가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조선)과 파키스탄은 "외화를 벌기 위해 미사일을 팔고 현금을 받는 미사일 거래"를 하였음을 밝혔다. (『뉴욕타임스』 2004년 2월 29일자) 파키스탄 총리를 역임한 베나지르 부토(Benazir Bhutto)는 최근 언론과 대담하면서 자신이 1993년에 파키스탄 군부와 과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북(조선)을 방문했으며 핵운반기술을 현금으로 구입하기 위한 협상을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1일자)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의 미사일 기술지원과 파키스탄의 핵실험장소 제공이 상호교환된 것으로 보인다.

8) 베이징에서 제2차 6자회담이 열리고 있던 시기에 북(조선)이 파키스탄의 핵실험장에서 핵폭발실험을 실시하였다는 정보가 미국 언론에 보도된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적으로 미묘한 기류가 조성된 때에 맞춰 민감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주어 미국 정부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은, 미국 중앙정보국이 여론을 조작하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이번에도 중앙정보국은 북(조선)이 파키스탄의 핵실험장에서 핵폭발실험을 실시하였다는 정보를 미국 언론에 흘려줌으로써 부시 정부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고 책동하였다. 그 정보유출행위가 제2차 6자회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제2차 6자회담에서도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우라늄 농축기술을 파키스탄으로부터 은밀히 들여왔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북(조선)의 압박공세에 대항해보려고 애썼다. 미국은 북(조선)이 종래의 플루토늄 재처리기술만이 아니라 우라늄 농축기술도 보유하고 있으므로 그 두 종류의 핵개발사업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 제2차 6자회담이 열리기 전인 2004년 2월 19일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의 목표 중 우라늄 부분을 빼고 플루토늄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이다. 그것은 완전한 해결이 아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0일자) 그리하여 미국은 북(조선)과 파키스탄이 핵개발 공동협력을 추진하면서 비밀거래를 하였던 것처럼 조잡하게 날조한 '정보'들을 그러한 억지를 부리기 위한 이른바 '정황증거'로 동원하였다. 미국이 날조한 '정보'들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반박할 수 있다.

(1) 미국이 기체확산법을 이용한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는 데 소비한 자금은 12억8천만 달러라고 한다. 가스원심분리법을 이용한 우라늄 농축시설을 건설하는 자금은 그것 보다 조금 적게 들지만, 20kg의 핵무기 1기를 만들기 위해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려면 약 36만-45만 달러의 자금이 추가로 들어간다고 한다.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사용한 북(조선)이 그에 버금가는 자금이 들어가는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가로 진행할 필요는 전연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조선)은 이미 매우 발전된, 그리고 핵실험까지 마친 고순도플루토늄 핵무기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제조기술은 요구되지 않는다. 제2차 6자회담에 북(조선) 수석대표로 참가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농축우라늄 문제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 그런데 미국이 이를 강조하는 것은 회담 진전에 제동을 거는 것이고 그들의 자세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다."고 단언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

(2) 북(조선)은 질이 좋은 천연우라늄이 2천6백만t이나 매장되어 있는 세계 굴지의 우라늄 부국이다. 흥남, 평산, 웅기에 있는 우라늄 광산에서 채광된 천연우라늄은 정광(yellow cake)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천연우라늄 정련은 우라늄 농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제2차 6자회담에 북(조선) 수석대표로 참가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농축우라늄과 상관이 없는", "천연우라늄에 기초한 핵동력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밝혔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 이런 견지에서 보면, 미국은 농축우라늄과 상관이 없는 핵동력정책을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이라는 혐의에 억지로 꿰어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파키스탄 대통령 무샤라프(Pervez Musharraf)는 자국의 우라늄 농축기술이 북(조선)으로 유출되었다는 미국의 혐의를 부인하였다. 중국 정부도 2003년 12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국장급회의에서 북(조선)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갖고 있다는 미국의 혐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8일자) 제2차 6자회담 소식통에 따르면, 북(조선)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그 회담에서 미국이 우라늄 농축에 관련된 증거를 제시하면 그에 관해서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6일자)

그런데 미국은 혐의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혐의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것은, 미국의 혐의가 북(조선)의 대미 압박공세에 반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날조되었음을 말해준다.

(4) 파키스탄의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사업을 이끌었던 저명한 핵공학자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은 2004년 2월 4일 파키스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자기의 견해를 발표하였다. 그는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기술을 다른 나라에 유출한 문제에 관해서 언급하면서도 단 한 차례도 북(조선)을 거론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1일자) 그런데도 미국 언론들은 칸이 마치 북(조선)에게 파키스탄의 우라늄 농축기술을 유출한 것처럼 조작한 왜곡선전에 열을 올리면서 미국 중앙정보국의 여론공작에 적극 협력하였다.

(5) 2004년 2월 20일 말레이시아 경찰당국은 말레이시아 총리의 아들이 최대 주주로 있는 스코미 정밀엔지니어링사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를 제작했다는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정보에 따라 그 회사에 문제의 원심분리기를 발주했던 부하리 시에드 아부 타히르(Abu Tahir)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발표에 따르면 그 회사는 1990년대 중반 이란에 원심분리기 부품을 팔았고, 2001년에는 리비아에 농축우라늄을 팔았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1일자) 이것은 북(조선)과 우라늄 농축문제를 억지로 결부시키려는 미국의 주장이 근거 없는 것임을 말해주는 하나의 방증이다.

2. 북(조선)이 제2차 6자회담에서 취한 전술과 전략

그 이전의 회담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 열린 제2차 6자회담에서도 북(조선)은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회담을 시종 주도하였으며,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고 미국의 반발적 대응을 압도하였다. 북(조선)이 제2차 6자회담에서 취한 전술과 전략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1) 북(조선)의 분리전술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른바 '선핵포기' 전술을 취하면서 북(조선)의 강한 공세에 반발적으로 대응하였다. '선핵포기' 전술이란 북(조선)이 먼저 핵포기를 단행해야 한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적대정책 포기와 핵포기를 동시에 단행하는 것이 지극히 정당한데도 미국은 '선핵포기'라는 억지주장을 늘어놓으며 협상을 거부하였던 것이다. 제2차 6자회담에 북(조선) 수석대표로 참가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협상거부방침을 이렇게 지적하였다. "미국 대표단이 근본적으로 협상할 자세가 아니라는 것은 두 번 있은 조미 접촉에서 명백히 나타났다. 미국은 그때마다 이것은 비공식접촉이고 협상을 위한 접촉이 아니라고 꼭꼭 말했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

이른바 '선핵포기'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협상을 거부하는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이번에 북(조선)이 새로 개발한 전술은 군사적 핵개발사업과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분리하는 전술이다. 군사적 핵개발사업은 미국과 협상이 진전되는 데 따라서 포기할 수 있으나,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전술의 내용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은 이 분리전술을 2월 25일에 있었던 제2차 6자회담 기조연설에서 천명하였으며, 회담 중에 열린 두 차례의 조·미 직접대화에서도, 그리고 본회담에서도 천명하였다.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은 어떤 명분으로도 반대할 수 없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사업이다. 오늘날 선진적 산업기반을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들은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북(조선)이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제2차 6자회담에 북(조선) 수석대표로 참가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핵무기와 관련된 그런 핵활동은 포기하지만 우리는 원자력을 여러 분야에 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의학적으로 사용하고 농사에도 사용하고 전기에도 써야 하는데 그것을 왜 없애겠느냐. 세계적으로 비핵지대들 가운데 원자력도 있고, 비핵지대에 평화적으로 사용되는 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

미국 정부 고위관리는 제2차 6자회담이 끝나기 전에 한(조선)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는 핵시설의 완전한 해체(complete dismantlement)를 뜻한다고 지적하였는데(『워싱턴포스트』 2004년 2월 28일자), 그것은 북(조선)이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핵개발사업을 완전히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오늘날 모든 나라들이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조건에서 북(조선)에게만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포기하라는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내놓음으로써 자국의 주장이 황당한 궤변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제2차 6자회담에서 북(조선)은 군사적 핵개발사업과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분리하는 전술을 취함으로써 미국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미국은 이번에도 또다시 허를 찔린 것이다. 허를 찔린 미국측 회담대표들은 북(조선)의 분리전술이 이른바 '완전한 핵폐기'에 위배된다고 하면서 북(조선)이 완전한 핵폐기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제2차 6자회담을 정리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7일자) 그런데도 제2차 6자회담에 참가한 미국 고위관계자는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군사적 핵개발사업과 평화적 원자력개발사업을 분리하는 전술을 취했을 때, "미국은 놀라지 않았으나 다른 참가국들은 화가 난 것 같았다."(『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고 너스레를 떨면서 체면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일부 언론은 북(조선)의 분리전술을 이른바 '설라미전술(salami tactic)'이라는 해괴한 신조어로 왜곡하면서, 그 전술이 군사용 핵폐기와 평화적 핵폐기를 이분화하여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극대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설라미는 서양사람들이 먹는 기다란 소시지의 일종인데, '설라미전술'이란 기다란 소시지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먹는 것처럼 한 가지 현안을 여러 개로 분리하여 이익을 더 많이 얻어내려는 전술을 뜻한다. 그러나 그러한 분석은 북(조선)의 분리전술을 순전히 경제적 보상에만 국한시켜보려는 천박한 이해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다.

북(조선)의 분리전술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조선)은 핵개발사업을 해체하는 문제와 포기하는 문제를 분리하는 전술을 취하였다. 이번에 미국은 북(조선)이 핵개발사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주장은 북(조선) 핵시설의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돌이킬 수 없는 해체(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해체와 포기가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해체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없애는 것이며, 포기(renunciation)는 자체의 힘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과의 협상진전에 따라서 군사적 핵개발사업을 그만두는 경우, 그것은 외부의 힘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힘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자율적 포기는 가능한 것이고, 타율적 해체는 불가능한 것이다.

미국이 북(조선) 핵시설의 타율적 해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처럼 해체주장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는 까닭은, 협상을 거부하기에 마땅한 다른 구실이 없기 때문이다. 북(조선)과 회담은 진행하되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태도는 제2차 6자회담에서 뚜렷이 드러났다. 미국이 북(조선)과 협상하는 것을 거부하는 까닭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조선)반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말은, 일차적으로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조·미 정치협상의 조건은 북(조선)의 주동적 조치에 의해서 이미 명백하게 제시되었다. 미국이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하면,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은 군사적 핵개발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현재 6자회담은 조·미 정치협상의 실질적 진전에 의해서 미국이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6자회담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2) 북(조선)의 돌파전술

제2차 6자회담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미국 정부관리들은 "(제2차 6자회담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은 북(조선) 대표들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6자회담의) 표어는 '해로운 일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것이 올해 대선까지 우리의 버팀목이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2004년 2월 20일자) 이 발언에서 드러나는 것은, 미국이 6자회담의 판을 깨지 않고 대화를 계속하는 척하면서 올해 11월 대선국면을 넘겨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제2차 6자회담이 열리기 전부터 이른바 '시간끌기작전'으로 북(조선)의 압박공세에 대응하겠다고 결정하였으므로, 제2차 6자회담이 성과 없이 막을 내렸는데도 미국 정부 고위관리는 이번 회담이 "아주 성공적이었다.", "자신의 기대를 능가했다.", "지난해 4월과 8월에 있었던 회담보다 훨씬 좋았다." 또는 "생각보다 많이 나갔다."는 등의 요란한 표현을 남발하면서 만족을 표시하였던 것이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

이처럼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기에 정치협상 자체를 거부하면서 대선까지 시간이나 끌어보려고 하는 미국을 협상으로 끌어내려 할 때, 요구되는 것은 돌파전술이다. 일반적으로 돌파전술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로 나아가기 위한 돌파구를 열어놓아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단계에서 취하는 전술이다.

제2차 6자회담에서 북(조선)은 자국의 핵개발을 동결하고,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제2차 6자회담에 북(조선) 수석대표로 참가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용한 표현을 빌리면, "핵동결은 비핵화의 첫 걸음으로, 비유해 말하자면 달리는 기차를 세우기 위해 먼저 정지, 정차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

북(조선)의 핵동결 제안은 미국이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하기 이전에 우선 협상의 돌파구를 열어놓고 차츰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최종 단계로 끌어가는 돌파전술이다. 핵개발 포기 대 적대정책 포기의 상호교환이 전략적 목표라면, 핵개발 동결 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경제적 보상의 상호교환은 전술적 목표이다. 북(조선)의 돌파전술은 핵개발 동결 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경제적 보상이라는 전술적 목표를 점령하고 나서, 핵개발 포기 대 적대정책 포기라는 전략적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조선)의 돌파전술에 막무가내로 버티면서 대응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이 핵개발 동결 방안에 동의하는 경우, 그 다음 단계인 핵개발 포기 대 적대정책 포기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3)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시키려는 북(조선)의 전략

사회주의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치상태가 사회주의진영의 와해로 종식되자, 미국은 한(조선)반도와 유럽에 배치해두었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게 되었다.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철수한 것은, 냉전종식 이후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여 군사전략을 수정한 조치에 따라 취해진 것이었다.

1992년 11월 미국은 대통령선거를 실시하였다. 그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었던 아버지 부시는 한(조선)반도와 유럽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를 철수하여 냉전종식 이후의 정세에 들어맞는 이른바 '평화외교정책의 주도'를 내세워 자기의 재선 가능성을 높이려고 하였다. 그러한 자체의 요구에 따라 이전의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였고, 대선을 넉 달 앞둔 1992년 9월 한(조선)반도와 유럽에 배치한 전술핵무기 철수를 완료하였다고 발표하였다. 1992년에 이처럼 미국이 남(한국)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를 철수했어도 전략적 핵공격력이 제거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당시에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는 것은 미국의 요구였는데, 그것은 또한 북(조선)이 강하게 요구해온 것이기도 하였다. 서로 의도와 목적은 판이하게 달랐으나, 북(조선)과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에 대해서 북(조선)의 요구와 미국의 요구가 형식적으로나마 일치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로부터 12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1992년의 부시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군사전략을 추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2004년의 부시 정부도 대선을 앞두고 새로운 군사전략을 추진하는 중이다. 1992년의 부시 정부가 추진했던 새로운 군사전략은 해외에 배치한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는 전략이었고, 2004년의 부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군사전략은 해외에 배치한 미군을 감축·재배치하는 전략이다. 그 새로운 군사전략에 따라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재배치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나의 판단으로는,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재배치하는 군사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을 북(조선)이 강하게 압박하는 경우, 조·미 두 나라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단계적 실현을 합의하는 정치협상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미국은 자체의 군사전략적 요구에 따라서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재배치하려는 것이지 주한미군을 자발적으로 완전히 철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주한미군 철수는 타율적 강제력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명백하다. 앞으로 3-4년에 걸쳐서 주한미군을 감축하고 재배치하려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게 하려면 북(조선)이 강한 압박을 가해야 한다.

미국이 북(조선)에게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실현할 것을 요구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미국이 북(조선)에게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북(조선)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6자회담은 설전을 거듭하며 공전될 뿐이며 결국에는 파탄될 것이다. 6자회담의 파탄은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금지조약체제를 유지해주고 있는 마지막으로 남은 지반마저 허물어지는 것을 뜻한다.

북(조선)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면,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실현하려는 북(조선)의 의사는 명백하며, 그 구체적인 방도는 이미 제1차 6자회담에서 미국에게 제시되었고 이번에 제2차 6자회담에서도 확인되었다. 당면문제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6자회담의 성패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결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최종적인 문제로 좁혀진다.

(2) 대선을 앞둔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압박공세에 견디지 못하고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과연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북(조선)이 임기를 거의 끝내가고 있는 부시 정부를 어느 범위까지 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결부된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이 부시 정부를 끌어갈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단계적 실현을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일괄타결방안에 동의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에게 남아있는 기회는, 핵개발사업 동결 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경제적 보상을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 이상으로 진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힘들다.

앞으로 6자회담을 통해서 북(조선)이 핵개발사업을 동결하고 미국이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방안에 합의한다면, 북(조선)은 핵개발사업 포기와 대북(조선) 적대정책 포기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어놓게 될 것이며, 부시 정부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외교적 성과를 내세우면서 현재 자기에게 불리해진 대선국면을 유리하게 전환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3.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본 조·미 관계 정상화의 의미

북(조선)과 미국이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전략적 화해를 뜻하는 것일까? 혹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적 공존을 뜻하는 것일까?

북(조선)은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전략적 화해, 또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적 공존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주체사상은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화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혁명사상이며, 선군정치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적 공존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회주의정치이다.

그러므로 조·미 관계 정상화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전략적 화해, 또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적 공존과는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해서 조·미 관계 정상화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전략적 화해, 또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미 관계 정상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나는 조·미 관계 정상화를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한(조선)민족이 최후 승리를 이룩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한(조선)민족이 최후 승리를 이룩하는 것은, 한(조선)민족이 미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민족적 자주성을 완성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한(조선)민족이 미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말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과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정책이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파기되는 것을 뜻한다.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미국의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이 파기되는 것은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되고 한·미 동맹체제가 해체되는 것을 뜻하며, 한(조선)민족이 자주성을 완성한다는 말은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한다는 뜻이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조·미 관계 정상화란 미국의 적대정책, 지배정책의 파기와 조국통일위업의 완수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이 생각하는 조·미 관계 정상화도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전략적 화해, 또는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평화적 공존과 무관하다. 미국이 생각하는 조·미 관계 정상화는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미국이 최후 승리를 이룩하는 것을 뜻한다.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미국이 최후 승리를 이룩하는 것은, 미국이 북(조선)을 이른바 '개방'으로 유도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체제 안으로 포섭하고, 동시에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을 약화·사멸시키는 것을 뜻한다.

자본주의 나라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개방하는 것은 보호무역주의를 폐기하고 자국의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뜻으로 이해되는 데 비하여, 북(조선)과 같은 사회주의 나라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개방하는 것은 시장개방이라는 경제적 범위를 넘어서 체제전환이라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이 북(조선)을 '개방'으로 유도하는 것은 지구의 자전방향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왜 그렇게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북(조선)을 '개방'으로 유도하려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조선로동당을 해산하고, 조선인민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전체 인민의 사상을 자본주의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지구의 자전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여기는 몽상에 빠진 미치광이일 것이다.

나는 2004년 2월 21일에 작성한 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본 6자회담」에서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이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을 비롯한 조직화된 사회변혁세력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으며, 각계각층의 폭넓은 참여와 성원을 이끌어내고 있음을 여러 가지 논거를 제시하면서 서술하였다. 10년 전만 해도 실개천처럼 흐르던 반미자주화운동의 물결은 지금 샛강처럼 여울져 흐르고 있다. 반미자주화운동이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불과 몇 해 안에 커다란 강물이 되어 흐를 것이며, 친미예속으로 부패한 온갖 쓰레기를 휩쓸어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남(한국)에서는 반미자주화로 진출하는 민중의 흐름을 거스르는 친미예속세력의 소동이 간간이 일어나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을 봉쇄·저지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각양각색 극우세력들은 반미자주화운동을 척결하겠다고 고함을 지르며 날뛰고 있다. 그러나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이 장성·발전하는 도도한 흐름은 그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만일 저들이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을 봉쇄·저지하려면 수백만 민중을 감옥에 넣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역시 지구의 자전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여기는 몽상에 빠진 미치광이일 것이다.

북(조선)을 '개방'으로 유도하려는 발상이나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을 봉쇄·저지하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궤변이며, 한(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몽상이다. 따라서 미국이 한(조선)민족과 대결하여 승리할 것이라고 떠드는 것은, 몽상에 빠져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언제나 몽상에 빠져 궤변을 늘어놓는 미국이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당하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해진다. 한(조선)민족의 정치적 승리는 지구의 자전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 없는 것만큼이나 확정적이다.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은 전세계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이며, 북(조선) 대 미국의 대결은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이므로, 미국과 대결하고 있는 한(조선)민족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것은 한(조선)민족만이 아니라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의 정치적 승리로 되며 동시에 북(조선)만이 아니라 세계사회주의의 정치적 승리로 된다.

4. 6자회담에서 중국은 어떠한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

미국은 자기를 곤경에 몰아넣는 북(조선)의 강한 압박공세를 분산시키기 위하여 제3자인 중국을 '핵문제'에 끌어들였다. 미국의 책략에 의하여 기존의 조·미 양자회담 방식은 6자회담 방식으로 확대·전환되었다. 그렇지만 조·미 양자회담 방식이 6자회담 방식으로 전환되었다고 해서, '핵문제'의 당사자가 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핵문제'는 미국의 대북(조선) 적대정책과 그것을 파기하려는 북(조선)의 핵개발사업 추진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중국은 '핵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이 자기의 책략에 의하여 중국을 '핵문제'에 끌어들이는 바람에 중국이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2차 6자회담에 북(조선) 수석대표로 참가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2차 6자회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8일자) 그의 발언에 나오는 중국의 '중요한 역할'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 단순히 회담장소나 빌려주고 중재역할이나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독자적인 전략을 선택하는 수준으로 차츰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핵문제'를 해결해 가는 6자회담 과정에서 중국의 전략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6자회담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서 일정한 의의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은 북(조선)의 강한 압박공세를 분산시키려는 의도에서 '핵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중국을 끌어들였지만, 그것은 미국이 실책을 저지른 것이다. 미국은 다급한 김에 중국을 '핵문제'에 끌어들임으로써 자기의 잔꾀에 자기가 해를 입는 이른바 '자충수'를 둔 셈이 되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중국이 미국이 바라는 대로 북(조선)의 대미 압박공세를 분산시켜주는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의 대미 압박공세에 힘을 실어주는, 미국에게 매우 불리한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2차 6자회담과 관련하여 중국이 북(조선)의 대미 압박공세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2월 26일에 중국이 미국에게 제시하였던, 제2차 6자회담을 마치면서 발표할 공동성명 초안에서 드러났다. 중국은 초안에서 북(조선)의 핵개발사업을 완전하고, 검증할 수 있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을 외면하고, 그 대신 북(조선)의 핵개발사업을 되돌릴 수 없고 검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폐기한다는 북(조선)의 요구를 반영하였다. 또한 중국은 초안에서 북(조선)이 핵개발을 동결하면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에게 경제적으로 보상(중유공급)하는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중국이 제시한 공동성명 초안을 받아본 미국측 회담대표들은 그 초안이 북(조선)에 편향되어 있어서 동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거부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7일자) 이러한 상황은 이미 오래 전에 예견된 것이다. 북(조선)이 2004년 1월 7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핵활동을 동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과 동시에 중국은 미국의 이른바 '완전한 핵포기' 주장을 외면하고 북(조선)의 핵동결 방안을 지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교토통신』 2004년 1월 8일자)

중국이 북(조선)의 대미 압박공세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6자회담에서 중국이 취하게 되는 전략적 선택을 파악하여야 한다.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다음과 같이 세 방향에서 정리된다.

1)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이다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21세기의 중·미 관계는 상호협력보다는 상호갈등의 요인이 더 크다. 중·미 관계의 상호협력은 경제적 측면에 한정된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중국의 패권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미국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중국은 국력이 강해질수록 패권주의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중국의 패권주의 정책과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 충돌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중국은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이 감축되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은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국의 군사력 가운데 주일미군 철수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서는 적극적이다. 중국이 주일미군 철수에 대해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까닭은, 일본이 미국의 '군사적 보호국' 지위에서 벗어나는 경우, 곧바로 군국주의와 핵무장으로 나아가는 것이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처럼 주일미군 철수에 대해서 유보적이므로, 중국으로서는 동아시아에 배치된 미국 군사력을 감축하기 위해서 철수시켜야 할 대상은 주한미군밖에 없게 된다.

물론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가 한(조선)반도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만일 주한미군 철수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불러오게 된다면,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촉발시키지 않는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고 있다. 중국이 바라는 것은, 한(조선)반도에서 평화통일의 조건이 성숙된 가운데 조·미 정치협상을 통해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 이후 한(조선)반도에서 평화통일의 조건이 성숙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 비록 협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공전하고 있으나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오늘, 중국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현실적으로 가능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2)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것이다

중국이 북(조선)이나 남(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중국은 한(조선)반도의 핵무장이 자기의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조선)반도의 핵무장으로 촉발될 수 있는 일본과 대만의 연쇄적 핵무장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핵강국의 지위를 뒤흔들어놓는 것이 된다. 따라서 중국은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중국이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적극 지지하는 것은, 한(조선)반도 통일과도 관련된다. 중국은 한(조선)반도에 통일국가가 세워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조선)민족의 통일국가가 핵강국의 지위까지 가지게 되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중국은 한(조선)반도 통일을 지지하면서도 한(조선)반도 비핵화는 반대하는 것이다.

중국이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적극 지지하는 것은, 북(조선)이 핵억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상호충돌된다. 북(조선)이 핵억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반대하면서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추구하는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미국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북(조선)은 미국이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하면 핵억제력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한(조선)반도 비핵화에 동의하고 있으므로, 중국과 미국의 협력관계는 어디까지나 일시적, 한정적으로 된다.

중국은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도는 미국이 대북(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북(조선)이 핵억제력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국이 6자회담을 통하여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와 북(조선)의 핵억제력 포기를 현실화하려고 애쓰는 까닭은,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실현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3) 중국의 전략적 선택은 한(조선)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것이다.

지난 시기 중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이른바 '불통불란(不統不亂)'이라는 축약개념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중국이 한(조선)반도에서 통일이 실현되는 것도 반대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반대한다는 뜻이다. 한(조선)반도에서 통일실현이나 전쟁발발은 정세가 급격하게,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지난 시기 중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어떠한 형태의 근본변화도 반대하는 현상유지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이 한(조선)반도의 현상유지를 바랐던 까닭은, 한(조선)반도 정세의 급격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자국의 경제성장과 동아시아의 안보환경에 매우 불안한 요인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한(조선)반도의 현상을 유지하는 낡은 정책기조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자기의 낡은 정책기조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두 가지 방향에서 설명할 수 있다.

(1)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새로운 정세 속에서 이른바 '불통불란'의 정책기조는 의의를 상실하였으므로 중국은 언제까지나 전략적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현상유지책만 붙들고 있을 수 없었다. 지난날 한(조선)반도에서 통일과 전쟁의 가능성을 모두 반대하였던 중국은, 그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서 자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중국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 하나를 선택하면, 당연히 그것은 한(조선)반도의 전쟁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통일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새로운 전략적 선택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한(조선)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새로운 방향으로 정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2) 중국은 대만을 통합하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만통합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의 대만통합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여 방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중국이 대만을 통합하고 국토완정의 역사적 임무를 성취하는 데서 커다란 걸림돌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다. 중국의 대만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의 군사력은 주일미군과 미7함대이다. 미7함대가 대만해협에 출동하지 못하도록 묶어놓는 묘안이 있으면, 중국인민해방군은 삽시간에 대만으로 진격하여 분리독립세력을 제압하고 국토완정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무슨 수로 미7함대가 대만해협에 출동하지 못하도록 묶어놓을 수 있을까? 중국의 단독적인 힘으로는 미7함대를 묶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에게는 자기의 대만통합을 지원해주는 강한 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것은 한(조선)반도에 건설될 강력한 통일국가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국가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견제해주어야 중국의 대만통합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중국은 장차 한(조선)반도의 통일국가와 협력하여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견제하고 대만통합을 실현하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중국의 전략적 선택이 한(조선)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국가가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견제하고 중국의 대만통합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막을 수 있으려면, 한(조선)반도 통일은 친미예속적인 남(한국)정권이 아니라 반미자주적인 북(조선)정권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생각이다. 중국은 북(조선)의 주도로 한(조선)반도가 통일되기를 바라고 있다.

5. 대세는 기울어지고 있다

제2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예상했던 대로, 슬쩍 넘어가기 전술과 딴청 피우기 전략으로 일관하였다. 미국은 근본문제가 아니라 부차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슬쩍 넘어가기 전술을 취했고, 딴청 피우기 전략으로 조·미 정치협상을 거부했다. 제2차 6자회담이 열리기 전인 2004년 2월 19일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협상거부방침에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직접적인 대화에 응할 것이다. (줄임) 그러나 우리는 양자협상은 안 한다. 이것은 다자간 회담이며 6자 모두가 관련돼 있고 미국과 북한 간에 직접적 양자협상은 없을 것이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0일자)

2004년 2월 29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6자회담 때처럼 우리와 평화적으로 공존하려는 립장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회담의 간판 밑에 시간이나 끌면서 우리를 고립·질식시키기 위한 적대시정책을 끝까지 추구하려는 본심을 다시금 말짱 드러내놓았다. (줄임) 미국이 대조선정책 전환의지를 가지지 않는 한 6자회담은 앞으로도 조미 사이의 핵문제 해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무맥한 회담으로 될 것이다. (줄임) 회담이 이어진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기는 어렵다."

앞으로도 미국은 6자회담에서 대화만 하는 척하고 협상을 하지 않는 전술을 계속 취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제2차 6자회담에서 드러난 현상만 놓고 보면, 한(조선)민족의 자주화와 한(조선)반도 통일은 머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아직 보이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한(조선)민족과 미국이 대결하는 전략구도에서 6자회담의 미래를 전망하면 전혀 다른 가능성이 보인다. 북(조선)은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미국의 반발적 대응을 시종 압도하면서 6자회담을 주도하고 있으며,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은 미국에 대한 압박공세의 수위를 차츰 높이고 있다. 따라서 6자회담에서 미국은 언제까지나 조·미 정치협상을 거부하면서 딴청을 피울 수 없고,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6자회담의 판을 깰 수는 더구나 없게 되었다. 6자회담이 한 걸음씩 진전될수록 조·미 관계 정상화로 차츰 다가서는 것이다.

위에서 나는 몇 가지 논거를 제시하면서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한(조선)민족의 승리가 확정적임을 서술하였다. 한(조선)민족과 미국이 대결하는 전략구도에서 보면, 조·미 관계 정상화는 미국이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정세발전의 필연적 귀결로 보인다.

한(조선)민족과 미국이 대결하는 전략구도에서 보면,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는 것과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도 명백해진다. 주한미군이 철수되지 않는다면 조·미 관계 정상화는 실현될 수 없다. 더욱이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이 날로 장성·발전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촉진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이 '핵문제'에 끌어들인 중국도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한(조선)민족에게 유리한 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이라는 전략구도로 보면, 대세는 한(조선)민족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으며, 한(조선)민족은 끈질긴 투쟁 속에서 자기의 주체역량을 강화하면서 반미자주화운동을 승리의 길로 밀어가고 있다. (2004년 3월 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