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본 6자회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한(조선)민족은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여 미국과 대결하고 있다
2. 부시 정부가 궁색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3. 부시 정부의 대응전략과 대응전술

1. 한(조선)민족은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여 미국과 대결하고 있다

지난 냉전시기에 계속되었던 사회주의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이 사회주의진영의 와해로 종식된 이후에, 제국주의진영은 자기 진영의 종심을 향해 정치적 타격을 가하는 매우 강력한, 새로운 상대를 만났다. 그 새로운 상대는, 놀랍게도 지난날 국제사회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한(조선)민족이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면서 시종 전술적 우세로 미국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는 북(조선), 그리고 친미예속정권의 모진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반미자주화운동을 떠밀고 전진하는 남(한국)민중, 바로 그 북(조선)과 남(한국)민중이 전개하는 치열한 반제투쟁을 전세계 진보적 인민들은 경이와 찬탄의 감정이 뒤섞인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10년이 넘도록 한(조선)반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격돌은, 때로는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로 긴박하고 위급한, 그리하여 피차 명운을 건 치열한 대결이다. 흔히 인간 대 야수의 대결로 묘사되곤 하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한(조선)민족은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며, 미국은 이른바 '세계화전략'을 추진하는 제국주의진영을 대표한다. 한(조선)반도에서 전개되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은,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는 한(조선)민족 대 제국주의진영을 대표하는 미국 사이에서 전개되는 숙명적인 대결이다.

그 대결에서 한(조선)민족이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한다는 나의 견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약간의 설명이 요구된다.

1) 한(조선)민족이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한다는 말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주의라는 낙후하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서는 세계적 범위에서 형성되어 있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구도를 인식할 수 없다.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구도를 통하여 정세를 인식하는 것은, 오로지 반제자주역량의 주체적 관점에서 가능한 일이다. 반제자주진영이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3개 대륙의 피압박 민중과 유럽 및 북미주의 진보적 노동계급이 세계적 범위에서 전개하는 반제자주적 정치역량의 집합을 뜻하는 세계사적 개념이다.

2) 미국이 제국주의진영을 대표한다는 말은, 미국이 제국주의진영에서 주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한(조선)민족이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한다는 말도 한(조선)민족이 반제자주진영에서 주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제국주의진영을 대표하는 미국과 전면전을 각오하며 정치·군사적으로 가장 날카롭게 대치한 반제전선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조선)민족은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에서 주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3개 대륙과 유럽 및 북미주에서는 수많은 진보적 사회정치세력들이 반제자주화의 기치를 들고 투쟁하고 있지만, 미국과 전면전을 각오하며 정치·군사적으로 날카롭게 대치한 상태에서 반제전선을 형성하였을 뿐 아니라, 대화와 협상 자체를 거부하며 발버둥치던 미국을 기어이 정치협상으로 끌어들여 호된 압박공세를 가하면서 백악관의 거만한 태도를 짓누르는 한편,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대중적 반미자주화운동을 일으키어 백악관을 당혹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한(조선)민족이 유일하다.

3) 한(조선)민족이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한다는 말은, 반제자주적 지향에서 동질의식을 갖게 된 북(조선)과 남(한국)민중이 하나의 민족으로서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한다는 뜻이다.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을 조·미 대결이라는 기존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에게는 한(조선)민족이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여 미국과 대결한다고 보는 견해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10여 년 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한 북(조선)이 제국주의진영을 대표한 미국에 단독으로 맞서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시작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대결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 변화는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이 반제자주적 지향성을 갖게 되고, 그에 따라 반제자주적 지향에서 북(조선)의 정치의식과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이 차츰 동질화되고 있는 변화이다. 1990년대 초반의 한(조선)반도 정세와 2000년대 초반의 한(조선)반도 정세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보는 까닭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와 간섭에 반대하는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이 정세변화의 새로운 요인으로 등장하면서 북(조선)의 반제전선과 지향적으로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국)에서 전개되는 반미자주화운동은 불특정한 대중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으로 구성된 조직화된 민중의 사회정치역량에 의해서 발생·추진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한국대학총학생회련합(한총련)과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반미자주화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조직화된 민중의 사회정치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대중단체들도 미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갖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으로 조직화된 민중의 반미자주역량과 미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갖는 각계각층 대중단체역량이 하나의 흐름으로 합류하면서 세력권을 형성하였다는 사실이다.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은 미국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갖고 있는 각계각층 대중단체들을 대중적 지지기반으로 하여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불특정한 대중이 아니라 조직화된 민중의 사회정치역량에 의해서 발생·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은 특정계기에 끓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지는 민족주의적 감정의 발로가 결코 아니며 반제자주화를 지향하는 사회계급의 조직적인 사회변혁운동인 것이다.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이 계급적 기반을 가진 조직적인 사회변혁운동으로 강화·발전되는 추세는, 북(조선)의 정치의식과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이 반제자주화라는 동일한 목표를 향하여 상호수렴되면서 지향적으로 일치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특히 미국의 대북(조선)적대정책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과 북(조선)의 정치의식은 완벽하게 하나의 지향으로 일치되어있다. 이러한 지향적 일치성은 부시 정부가 북(조선)을 이른바 '악의 축'으로 규정·비난하고, 북(조선)을 겨냥한 선제공격전략을 발표하였을 때, 주한미군의 살인범죄가 전민족적으로 격분과 공격의 표적이 되었을 때, 부시 정부가 노무현정부에게 이라크 파병을 강요하였을 때, 그럴 때마다 남(한국)민중의 조직화된 반미자주역량과 각계각층 대중단체역량은 하나의 흐름으로 합류하여 미국의 적대정책, 제국주의적 강권과 횡포, 그리고 전쟁도발책동을 맹렬히 반대·규탄하였던 사실에서 현실로 입증되었다.

최근에 나온 통계자료를 보면, 현재 남(한국)민중의 절대다수는 적어도 한·미 관계가 불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불평등성에 대한 인식은 차츰 예속성에 대한 인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다. 2004년 2월 16일 남(한국)의 케이비에스(KBS) 제1라디오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 리서치'가 남(한국) 전역의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식 조사'에서는 한·미 관계가 동등한 관계로 조정되어야 한다는 응답자가 무려 72.7%에 이르렀다고 한다. 특히 20대 응답자의 80.3%, 30대 응답자의 83%는 한·미 관계가 동등한 관계로 조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18일자)

또한 최근 워싱턴에서 열렸던 국제토론회에 참석한 미국 국방정책위원 리처드 앨런(Richard V. Allen)은 "한국인들이 미국을 북한보다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하는 등 한·미 동맹관계가 악화된 최근의 변화"를 지적하였으며, 아시아태평양안보연구센터 소장 알렉산드르 만수로프(Alexandre Mansourov)는 "한·미 관계에 석양이 지고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일보』 2004년 2월 13일자) 이러한 사실들에서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과 북(조선)의 정치의식이 반제자주적 지향성으로 수렴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남(한국)민중과 북(조선)의 반제자주적 지향의 일치성에 관하여 논하는 것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역대 군사독재정권들이 남(한국)민중의 머릿속에 주입하였던 반북의식이 6.15 공동선언 이후 차츰 사라지면서 반세기 동안 잃어버렸던 동족의식을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도, 반제자주적 지향의 일치성에 직결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변화요인이다. 남(한국)민중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동족의식은 북(조선)을 '적'이 아니라 '우리'라고 생각하는 민족적 동류의식이다. 북(조선)을 '우리'라고 생각하는 민족적 동류의식은, 남(한국)에서 흔히 왜곡된 뜻으로 남용되는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친북의식이다. 그러므로 남(한국)민중의 사회정치의식이 변화·발전되는 추세를 아주 단순화시켜서 표현하면, 낡고 비뚤어진 친미반북의식에서 새롭고 올바른 반미친북의식으로 바뀌는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국)민중의 사회정치의식이 반미친북을 지향하게 됨으로써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과 북(조선)의 정치의식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거대한 사회역사적 기반 위에서 명실공히 지향적 일치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과 북(조선)의 정치의식이 반제자주적 지향에서 일치하게 됨으로써,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는 주체역량의 범위는 북(조선)과 남(한국)민중 전체를 포괄하는 한(조선)민족이라는 거대한 실천단위로 확대·강화되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은 미국에 맞서서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이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의 중요한 구성부분이 된 것이다.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과 북(조선)의 반제전선이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을 구성하고 있다는 말은, 그 양자가 하나의 조직화된 실체로 통합되었다는 뜻은 아니며, 다만 지향적으로 일치되었다는 뜻임은 물론이다.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의 대결에서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는 주체역량의 범위가 하나의 민족단위로 확대·강화되었다는 사실은, 6자회담의 현재와 미래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매우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나는 6자회담의 현재와 미래를 기존의 북(조선) 대 미국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새로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로 인식해야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이라는 6자회담의 본질이 뚜렷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6자회담을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인식한다는 말은,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의 관점에서 6자회담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물론, 6자회담에 참가하는 당사자는 북(조선)이고, 남(한국)민중은 자기의 대표를 6자회담에 참가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남(한국)민중이 6자회담을 통하여 미국에게 직접적인 압박공세를 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볼 때, 북(조선)은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을 대표하여 6자회담에 참석하는 것이므로 남(한국)민중이 자기의 대표를 6자회담에 참석시킬 필요는 애초에 제기되지 않는다. 북(조선)이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을 대표하여 6자회담에 참석하는 것이므로,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을 구성하는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과 6자회담이 무관하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이 전면화될수록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은 비상히 강화·발전될 것이고, 그에 따라 미국은 헤어나올 수 없는 위기상황에 빠질 것이고, 6자회담에서 미국이 추구하는 전략은 파탄될 것이다.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는 한(조선)민족 대 제국주의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의 대결은 이른바 '핵문제'라는 현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대결의 초점은 지금 6자회담이라는 정치협상의 양태로 현상화되어 있다.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이 정치협상의 양태로 현상화된 6자회담에서 부시 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양자택일의 문제를 협상이냐 핵이냐 하는 두 가지 개념으로 구체화할 때, 협상이라는 개념은 조·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조·미 정치협상을 뜻하며, 핵이라는 개념은 미국의 세계지배체제를 안받침해주는 핵확산금지조약체제(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Regime)를 각각 뜻한다. 따라서 그 양자택일의 문제는 조·미 관계를 개선할 것인가 아니면 핵확산금지조약체제를 붕괴시킬 것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말하는 조·미 관계개선이란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는 국교수립을 뜻하며, 핵확산금지조약체제 붕괴란 북(조선)이 핵억제력을 물리적으로 공개하고 입증하는 충격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핵전략질서에 붕괴의 파열구를 뚫어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미국으로서는 조·미 관계개선도 추진할 수 없고, 핵확산금지조약체제 붕괴도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곤경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이 조·미 관계개선을 합의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 합의가 북(조선)의 '개방'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는 미국이 남(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는 것이며,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미국의 완패를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 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 몇 편에서 이미 설명되었으므로 재론은 피한다. 다만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이 승리하는 경우,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남(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게 된다는 점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의 '핵문제'를 요인으로 발생하여 전개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대결은 북(조선) 대 미국의 대결만이 아니라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이라는 사실을 다시 강조한다.

2. 부시 정부가 궁색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조선)민족과 미국이 벌이는 정치·군사적 대결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1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까닭은, 그 대결에 의해서 한(조선)민족의 21세기 운명이 좌우되고, 그 대결에 인류의 자주와 평화의 미래가 걸려있어서 짧은 기간에 쉽사리 승패가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반제자주진영과 제국주의진영을 각각 대표하는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서 한(조선)반도 정세,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 정세가 급격히, 그리고 질적으로 변동하게 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이라는 정세의 본질을 감추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그것은 보통 오가는 거짓말이 아니라 정치적 곤경에 처한 사정을 반영하는 궁색한 거짓말이다. 지난해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할 때도 미국은 있지도 않는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억제하겠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가, 요즘 그 거짓말이 들통나자 부시(George W. Bush)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저들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제멋대로 왜곡하며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국주의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의 궁색한 거짓말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부시 정부의 궁색한 거짓말에 따르면,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상대는 한(조선)민족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것이다. 저들은 북(조선)의 반제자주역량과 남(한국)민중의 반제자주역량을 떼어놓는 분열주의적 관점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과 남(한국)민중의 민족성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분단체제에 의해서 분리될 수 없듯이,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적 지향의 일치성도 그 누가 떼어놓는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2) 부시 정부의 궁색한 거짓말에 따르면, 경제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북(조선)이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목적에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여왔고, 따라서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북(조선)과 대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의 '핵문제'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촉발시킨 결정적 요인이지, 그것이 대결의 본질은 아니다. 또한 북(조선)은 경제적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여왔다. 막대한 자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핵무기 개발이 경제적 보상을 받아내려는 얕은 목적이 아니라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값진 승리를 얻으려는 깊은 목적에서 추진하였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3) 부시 정부의 궁색한 거짓말에 따르면,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우세한 쪽은 언제나 미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우세하다는 주장은 자기에게 유리하게 꾸며낸 근거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결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어왔다. 우세한 쪽은 언제나 한(조선)민족이었다.

부시 정부가 조·미 양자회담을 회피하고, 6자회담을 추진한 것부터 벌써 미국이 한(조선)민족의 공세에 대해서 얼마나 수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혼자서 상대의 강력한 공세를 당해내기 힘들기 때문에 자기편을 싸움판에 끌어들이는 것은 수세에 몰린 쪽이 흔히 취하는 전술이 아닌가. 미국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의 래리 닉시(Larry Niksch)는 2004년 1월 14일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과 진행한 회견에서 "6자회담의 현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선전전술에 밀려 수세에 밀리는 형국이 되고 있다."고 말하면서(『연합뉴스』 2004년 1월 14일자), 부시 정부가 처해있는 곤경을 비교적 솔직하게 인정하였다.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한(조선)민족이 우세하다는 사실은, 미국과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였던 다른 나라의 경험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북(조선)처럼 미국과 대치한 상태에서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인 나라를 손꼽는다면, 리비아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리비아 대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1986년부터 1988년까지의 기간에 집중적으로 전개되었다. 1986년 리비아는 자국 영해에 외국 함정과 항공기의 출입을 봉쇄하였지만, 리비아의 군사력을 우습게 보았던 미국은 보란 듯이 리비아 영해에 근접하여 해상군사작전을 전개하였고, 미 해군기들은 초계비행 중이던 리비아 공군기를 격추하였다. 미 해군기들은 리비아의 강한 경고조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리비아 영공을 마음대로 침범하였고, 리비아는 영공을 침범한 미 해군기들을 향해서 대공미사일을 발사하였으나 한 대도 격추하지 못했다. 미국은 리비아가 미사일 공격을 시도하였다는 것을 구실로 하여, 리비아의 레이더 기지를 기습적인 공중공격으로 파괴하였고, 리비아 경비정을 폭격·침몰시키고, 리비아 군함을 공격하여 파괴하였다. 리비아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서베를린에서 미군들이 많이 드나드는 디스코텍을 폭파하는 테러공격을 감행하였다. 그 테러공격으로 미군 장교 1명과 미국 민간인 1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미군 50여 명을 포함하여 230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격노한 미국은 공군 편대를 출동시켜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공항의 군사기지와 리비아 특수군훈련소를 폭격·파괴하였으며, 리비아 국가원수 카다피(Muammar el-Qaddafi)의 목숨을 노리고 그의 관저를 정밀폭격하였다. 카다피는 화를 면했으나 관저에서 잠을 자고 있던 그의 어린 수양딸을 비롯하여 37명이 몰살당했다. 1988년 12월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여 뉴욕을 향하여 날아가던 미국의 팬앰 여객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파된 것은 미국의 군사공격에 대한 리비아의 테러보복이었다.

그러나 1988년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유엔을 동원하여 리비아에 대한 경제봉쇄를 자행함으로써 리비아의 경제를 헤어나올 수 없는 파탄상태에 빠뜨리고 말았다. 결국 리비아는 미국의 집요한 압박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다. 미국이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자 리비아는 8일 뒤인 3월 28일 대량파괴무기 사찰단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이른바 '무제한 사찰'이라는 명목으로 리비아의 핵무기시설과 화학무기시설은 물론 의료시설, 농업시설까지 마구 수색하면서 리비아의 주권을 짓밟았으며, 핵무기 개발사업과 미사일 개발사업에 관련된 엄청난 분량의 장비, 부품, 설계도를 마구 압수하여 미군수송기로 실어 날랐다. 2003년 5월 28일 리비아 정부는 팬암 여객기 폭파사건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배상금 27억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계속되었던 리비아 대 미국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이처럼 리비아의 완패로 막을 내렸다.

이에 비하여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압박공세를 취하고 있는 쪽은 언제나 한(조선)민족이다. 북(조선)은 리비아처럼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면서 미국과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북(조선)은 핵억제력을 이미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점,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북(조선)의 핵억제력은 증강된다는 점, 그리고 북(조선)은 핵억제력을 물리적으로 하나씩 입증해가면서 압박공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미국은 언제나 수세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또한 남(한국)민중이 한·미 관계의 불평등성 또는 예속성을 인식하고 반미자주화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은 주한미군 문제, 미국자본의 경제침탈 문제를 원인으로 하는 대중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언제나 수세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또한 6.15 공동선언 이후 북(조선)과 남(한국)민중이 동족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남(한국)민중의 정치의식과 북(조선)의 정치의식이 반제자주적 지향에서 일치성을 갖게 되어 한(조선)민족이 통일적인 반제자주역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볼 때, 미국은 더욱 곤경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3. 부시 정부의 대응전략과 대응전술

부시 정부는 진퇴양난의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응전술과 대응전략을 고안해냈다. 부시 정부가 고안해낸 대응전술과 대응전략의 당면목표는, 적어도 11월 대선국면을 지나기까지 조·미 관계가 더 이상 파국에 빠지지 않도록 대응하면서 대선을 무난히 넘겨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 정부는 당분간 북(조선)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대선국면을 지나가려고 한다. 부시 정부의 전략과 전술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슬쩍 넘어가기 전술이다. 현재 대선국면에 들어선 부시 정부는 예상치도 못한 '케리 돌풍'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고충을 겪고 있다. 오는 11월 대선에서는 부시가 재선될 가능성을 차츰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재선될 가능성이 줄어들고 있는 부시 정부가 자기들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엄청난 작업에 착수하고 진지하게 협상을 추진하려고 할까? 대답은 부정적으로 나온다. 6자회담에서 유연한 태도를 보여 회담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 대선국면을 슬쩍 넘어가려는 부시 정부의 전술은, 2004년 2월 8일 미국 엔비씨(NBC) 텔레비전에 출연한 부시가 "대북(조선) 외교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대북(조선) 외교에서 훌륭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했던 발언에서 드러났으며, 최근 익명을 요구한 국무부 고위관리들의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워싱턴포스트』 2004년 2월 20일자) 2004년 2월 1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장치웨(章啓月)가 언론설명회에서 현재의 교착상태가 신속히 해결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연합뉴스』 2004년 2월 10일자)은, 부시 정부가 이번 6자회담에서 슬쩍 넘어가기 전술을 취할 것으로 예상한 발언으로 생각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미국이 북(조선)을 이른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고, 정치적, 경제적 제재조치를 해제하고, 중유와 대체 동력을 공급할 경우 북(조선)은 핵활동을 동결할 것이라는 북(조선)의 "새롭고도 획기적인 제안", 곧 2003년 12월 9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발표된 '동결 대 보상 제안'에 대해서 부시 정부는 진지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적당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핵동결'이라는 개념을 제2차 6자회담의 공동성명에 포함시키자는 중국의 제안에 대해서 부시 정부가 강력히 반발하였던 것(『연합뉴스』 2004년 1월 9일자)은 그러한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로동신문』 2004년 12월 5일자 논평은 "미국은 문제해결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딴장을 보려는 것 같다."고 비난하였다. 이처럼 부시 정부가 슬쩍 넘어가기 전술을 취할 경우, 6자회담은 공전되고 협상은 자꾸 지연될 것이 분명하다.

6자회담이 공전되면 어느 쪽이 유리하게 될까? 시간이 촉박한 쪽이 불리하게 되고 시간여유가 있는 쪽이 유리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촉박한 쪽은 미국이고, 시간여유가 있는 쪽은 한(조선)민족이다. 런던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가 2004년 1월 21일 발표한 보고서 「북(조선)의 무기 프로그램: 최종평가(North Korea's Weapon Programmes: A Net Assessment)」에서 지적하였듯이, 협상이 지연되면 시간은 북(조선)의 편이 될 것이다. 북(조선) 외무성 김계관 부상은 2004년 1월 평양을 방문한 미국 대표단에게 "시간은 미국 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핵억제력이 양적, 질적으로 증대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16일자) 거기에서 더 나아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6자회담의 공전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은 증강될 것이고, 따라서 남(한국)민중과 북(조선)의 반제자주적 지향이 일치하는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다.

2) 딴청 피우기 전략이다. 부시 정부의 딴청 피우기 전략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자기의 요구를 수용하여 핵을 완전히 폐기하면 안전보장을 제공해주겠다는 기만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지금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대북(조선)적대정책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북(조선)의 전략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에 상응하여 핵무기의 계속적인 생산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완전히 포기하면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적대정책 포기와 안전보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2003년 12월 16일 북(조선) 외무성 리근 부국장(6자회담 부단장)이 미국 국가정책센터(Council on National Policy)에 보낸 문서에 따르면,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적대정책 포기란, 미국이 불가침보장을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제공하고, 북(조선)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북(조선)과 다른 나라들 사이의 경제거래를 방해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연합뉴스』 2004년 1월 14일자) 리근 부국장은 적대정책 포기의 의미를 조·미 대결구도에서 해명하였는데,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에서 적대정책 포기의 의미를 해명하면, 적대정책 포기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체제 해체를 이끌어냄으로써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간섭이 영원히 종식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적대정책 포기와 안전보장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더욱이 북(조선)이 안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데도,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요구하는 적대정책 포기에 대해서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안전을 보장해주겠다고 하면서 자꾸 딴청을 피우고 있다. 이것은 부시 정부가 적대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딴청을 피우는 전략이다.

그 다음으로, 부시 정부는 북(조선)에게 이른바 리비아식 핵폐기를 기대한다는 기만여론을 조성하고 있다. 2004년 2월 13일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는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토론회에서 "리비아의 핵폐기 선언에서 보여준 것처럼, 북한도 주권국가로서 그 같은 선례를 행동에 옮길 수 있는 방법들이 있으며 이는 리비아의 경우처럼 북한의 국익에도 틀림없이 합당한 것"이라고 말했으며(『연합뉴스』 2004년 2월 14일자), 2월 19일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는 6자회담과 관련한 언론설명회에서 "우리가 말하는 것은 북한의 선택이며 그것은 리비아가 한 것과 같은 선택"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4년 2월 20일자)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대로, 부시 정부가 말하는 리비아식 핵폐기라는 것은 미국과 벌인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완패하고 사실상 항복하였던 리비아의 전례를 따르라는 뜻이다. 이것은 북(조선)의 표현을 빌리면, "'선핵포기'의 강도적 립장에서는 아무러한 변화도 없는" 부시 정부 앞에서 리비아식으로 항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끝까지 맞서 싸우며 기어이 정치적 승리를 쟁취하려는 북(조선)에게 리비아식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는 부시 정부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부시 정부가 리비아식 핵폐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는 까닭은, 저들이 정말로 리비아식 핵폐기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은폐하고 딴청을 피우기 때문이다.

3) 북(조선)의 공세를 분산시키는 전략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다음과 같이 다소 복잡하게 보이는 배경설명이 요구된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의 평양방문 직후,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은 북(조선)이 2004년 초에 농축우라늄을 이용하여 핵무기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제임스 켈리는 2003년 3월 13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하여 북(조선)이 앞으로 몇 달 안에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한 정보를 액면 그대로 인정한다면, 2004년 2월 하순 현재 북(조선)은 이미 농축우라늉을 이용한 핵무기를 생산한 것으로 된다.

그런데 2003년 11월 16일 『교토통신』은 미국 국가정보기관과 가까운 워싱턴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하여, 부시 정부 내부에서 북(조선)의 우라늄농축문제에 관해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정보국(CIA)이 북(조선)이 농축우라늄을 이용하여 핵무기를 생산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새로운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중앙정보국은 2002년 11월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조선)은 원심분리기를 사용한 우라늄농축시설을 최근까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중앙정보국이 기존의 '농축우라늄 생산 임박설'을 수정한 새로운 정보를 내놓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무부와 국방정보국(DIA)은 여전히 북(조선)이 농축우라늄을 이용하여 가까운 시일 안에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중앙정보국의 '여유설'과 국무부, 국방정보국의 '임박설'이 상충된 것이다.

그런데 1992년에 8월에 벌어졌던 제1차 논쟁에서는 정반대로 중앙정보국이 '임박설'을 주장했고 국무부는 '여유설'을 주장하였다. 당시 중앙정보국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이미 제조하였다고 주장하였고, 국무부 정보조사국(Bureau of Intelligence and Research)은 북(조선)이 7-21kg 정도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중앙정보국과 국무부의 논쟁은 결국 국무부의 승리로 끝났다.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이 적은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뿐이며 핵무기를 생산하지는 못했다는 국무부의 정보평가에 근거하여 2년 뒤인 1994년 10월에 제네바에서 조·미 기본합의를 채택하였다.

중앙정보국 대 국무부의 제1차 논쟁에서 국무부가 승리한 이후 10년이 지난 2002년에 이르러 재발된 제2차 논쟁에서는 중앙정보국이 승리하였다. 제2차 정보논쟁에서 중앙정보국이 승리한 것은, 부시 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1) 중앙정보국의 정보평가는 1994년에 채택된 조·미 기본합의가 완전히 백지화되었음을 뜻한다. 그에 따라 부시 정부가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였음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2) 중앙정보국의 정보평가는 제2차 6자회담을 개최하려는 때에 부시 정부의 외교적 임무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9일자)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폐기하려는 종래의 문제에 더 하여 북(조선)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까지 폐기하려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아니 불가능하게 보이는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9일자는 중앙정보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기술은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보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언급하였다고 보도하였다.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수준은, 핵무기를 제조하기 위해서 지하핵실험을 해야 하였던 1990년대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무기 제조기술 수준이나 1960년대 중국의 핵무기 제조기술 수준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뉴욕타임스』 2003년 11월 12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도하였다.

(1) 최근에 미국 중앙정보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조선)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능력에 관련하여 각각 별도의 비공개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중앙정보국 보고서는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되었고,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는 20개국 정부에게 제출되었다.

(2) 중앙정보국 보고서와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서가 각각 일치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북(조선)과 이란은 이미 플루토늄 재처리에 착수한 바 있으며, 우라늄농축시설을 설치한 바 있다는 사실이다.

(3) 중앙정보국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기폭실험에서 제기되는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이미 완전히 해결하였다고 지적하였다.

북(조선)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실험을 하지 않고서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를 이룩하였다는 중앙정보국의 정보평가는, 제1차 6자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2003년 8월 18일에 이미 미국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 비공개보고서로 제출된 바 있다. 이 비공개보고서의 일부내용은 얼마 뒤에 미국과학자협회(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가 입수하여 인터넷에 공개하였다.

미국 언론들은 중앙정보국이 흘린 극비정보, 즉 북(조선)이 소형화된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매우 심각한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중앙정보국의 비공개보고서가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 제출되기 한 달 반 전인 2003년 7월 1일 『뉴욕타임스』는 미국 첩보위성이 북(조선) 용덕동 지역에 있는 발전된 핵무기 실험장을 탐지해왔으며, 중앙정보국은 그 곳에서 북(조선)이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화된 핵탄두를 생산하기 위한 설계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정보를 동맹국들에게 제공하였다고 밝혔다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도쿄신붕』은 2003년 11월 26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남(한국)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조선)이 무게 700kg 안팎의 소형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남(한국)정부가 입수했다고 보도하였다. 2003년 6월에도 일본 언론들은 북(조선)이 소형 핵탄두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는 정보를 미국으로부터 비공식경로로 전달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중앙정보국은 2003년 8월 18일에 왜 그러한 극비정보를 공개한 것일까? 우선 주목할 것은, 8.18 정보공개가 중앙정보국이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 종류의 극비정보를 공개하는 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서 결정된다. 중앙정보국은 그 결정을 실무적으로 집행하는 것뿐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중앙정보국에게 지시를 내려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의도는 무엇일까?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차피 공개적으로 입증될 것이 확실해진 조건에서, 미국이 먼저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선수를 쳐서 북(조선)의 핵억제력 공개에 의해서 일어날 충격파를 예방해보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일까?

나의 판단으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러한 예방조치를 뛰어넘는 고도의 책략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보공개 결정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에 미국과 이해를 같이하고 있는 중국을 미국 편에 끌어들이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인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중국과 손을 잡고 기존의 조·미 양자관계를 새로운 조·중·미 삼각관계로 대체시킴으로써 북(조선)의 압박공세를 분산시키려는 책략을 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시 정부는 북(조선)을 조·중·미 삼각관계로 끌어들임으로써 자기에게 집중되고 있는 북(조선)의 강한 압박공세를 분산시키려는 것이다.

세상이 알고 있는 대로, 북(조선)이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고, 핵억제력을 물리적으로 입증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조·미 관계의 대립각은 최고도로 날카롭게 형성되었다. 그런 양자의 대립각을 조·중·미 삼각구도로 전환시키는 책략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자기에게 가해지는 북(조선)의 압박공세를 피해보려고 고심한 끝에 찾아낸 궁여지책이다. 2004년 2월 11일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더글러스 페이스(Douglas Feith)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조선)의 모든 핵개발사업을 해체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중국이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연합뉴스』 2004년 2월 11일자)은, 조·미 관계의 대립각을 조·중·미 삼각구도로 전환하여 북(조선)의 압박공세를 분산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었다.

4)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와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문제를 분리하는 전략이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조·미 관계를 개선하라고 들이대는 요구는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를 해결하자는 전략적 요구이며, 구체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요구이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글들에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문제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와 어떻게 결부되어 있는가에 관해서 몇 차례 논하였으므로 재론을 피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와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문제를 분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면서, 또는 주한미군 철수와 무관하게 조·미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한미군을 이른바 '신속대응군'으로 개편하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추진하면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와 무관하게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문제를 다루겠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부시 정부의 대응전술과 대응전략은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관계에 얽혀있는 근본문제, 곧 한(조선)민족의 자주화문제는 철저히 외면하고, '핵문제'만 다루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들이다. 따라서 이번에 열리는 제2차 6자회담에서 부시 정부는 '핵문제'를 2002년 10월 이전으로 복귀시키는 지엽말단적인 문제만 타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부시 정부가 여러 가지 대응전술과 대응전략을 추진한다고 해도, 그것이 한(조선)반도에서 벌어지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고, 부시 정부가 진퇴양난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데도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 까닭은, 아주 단순화시켜서 표현하자면, 미국이 아니라 한(조선)민족이 공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는 공세의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왜곡선전을 펴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최근에 일어난 정황을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북(조선)의 대미공세와 남(한국)민중의 반미자주화운동이 계속 강화되면서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을 형성하고 있는 오늘의 변화된 현실은, 6자회담이라는 날카로운 예각 위에서 전개되는 반제자주진영 대 제국주의진영의 대결에서 공세의 주도권이 전세계 반제자주진영을 대표하는 한(조선)민족에게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2004년 2월 2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