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관점의 통일전선 이론과 통일정세 분석

 

* 이 논문은 2003년 10월 21일 고려대 4.18기념관에서 발표된 통일학연구소 한호석소장과 21세기코리아연구소와의 대담 내용이다. 한호석소장과의 대담은 9월과 10월에 걸쳐서 전자우편으로 진행되었다.

문1

- 먼저 한호석 소장님의 건강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민족통신’을 통해 한 소장님의 최근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밝게 웃고 계신 모습은 코리아(COREA)반도의 낙관적 정세와 연동지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국을 떠나 물설고 낯설은 이국에서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염려됩니다. 실례가 되는 질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한호석 소장님의 활동을 보면서 일제의 진주만기습을 과학적으로 예견하며 미국 내에서 강연과 집필 활동을 왕성하게 펼쳤던 한길수 선생을 연상하곤 합니다. 우리는 한길수 선생이 해방 후 코리아에는 좌우합작정권이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미국과 이승만정권의 반대에 부딪혀 고국에 들어오지 못했다고 알고 있는데, 진보적이고 애국적인 연구활동으로 2001년 말부터 국가정보원에 의해 귀국이 불허된 한 소장님의 상황과 연관지어 많은 생각이 교차하게 됩니다. 이번에 한통련 관련자들과 송두율 교수의 이남방문이 실현되는 조건에서 한호석 소장님의 이남방문이 안 되는 것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호석 소장님의 이남방문이 실현되고 직접 강연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입장과 계획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 얼마 전 케이비에스(KBS)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재미동포 독립운동가 한길수 선생에 관한 방영물은 나도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부끄럽게도 나는 지금까지 20년 동안 재미민족민주운동권의 일원으로 일해오면서도 한길수라는 훌륭한 반일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한길수 선생의 반일독립운동행적이 발굴됨으로써 이승만을 수괴로 하는 악질적 친미정상배의 손에 의해서 끊어졌던 재미동포 반일독립운동사의 주체적 맥락이 살아난 것은 매우 기쁘고 뜻있는 일입니다. 나는 한길수 선생의 반일독립운동행적을 담은 텔레비전 방영물을 보면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하였습니다.

첫째, 한길수 선생은 아주 어렸을 때 부모의 손을 잡고 하와이에 이민을 떠나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난 분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그가 우리말과 우리글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투철한 반일민족의식을 가지고 한(조선)민족의 해방과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남다른 민족성과 주체성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한길수 선생의 삶과 투쟁은 오늘날 민족성과 주체성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미국화되기 위하여 별별 짓을 다하고 있는 남(한국)의 친미주의자들의 추악한 타락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둘째, 한길수 선생은 1940년대의 복잡한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였던 분입니다. 한길수 선생이 해방정국에서 주장하였던 좌우합작정권이란, 요즈음 민족민주운동권에서 쓰는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통일전선에 기초한 자주적 민주정권입니다. 해방 직후의 정세에 어두웠기에 친미정상배의 괴수인 이승만과 손을 잡고 이른바 ‘반소·반탁운동’에 앞장서는 결정적인 과오를 범했던 백범 김구 선생과 한길수 선생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셋째, 나는 이번에 한길수 선생의 반일독립운동행적이 발굴됨으로써 그 동안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여기 저기 끊어져 있었던 재미동포 민족자주운동사의 주체적 맥락이 완결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주체적 맥락은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 미국 땅에서 반일무장투쟁을 준비하며 힘쓰다가 비명에 세상을 떠난 반일독립운동가 박용만 선생, 1930년대 말에서 1940년대 말까지 미·일 제국주의열강의 모순관계를 이용하여 반일독립운동을 추진하였고 해방 후에는 통일전선에 기초한 자주적 민주정권의 수립을 제창하였던 반일독립운동가 한길수 선생, 194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 반공주의 광풍이 몰아치던 워싱턴에서 민족자주·통일운동을 위한 선전사업에 힘쓰셨던 선각자 김용중 선생, 그리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30년 동안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하여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힘쓰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임창영 선생으로 이어집니다.

이제 나 자신의 개인형편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되어서 안 됐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몇 가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26살의 청년 유학생으로 뉴욕의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던 때가 1981년 7월이었으니, 올해로 22년의 세월을 미국 땅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때 나는 미국에서 5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얻고 서울에 돌아가 대학교수가 되려는 꿈을 안고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그러나 사회·역사적 현실을 아직 알지 못하던 철없는 20대 청년의 꿈은, 1983년 5월 어느 날 내가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영상자료와 기록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받았던 말할 수 없는 충격으로 2년만에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광주민중항쟁의 충격으로 나는 몇 날 밤을 지새우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이것이 내가 재미민족민주운동에 참가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뉴욕에서 청년학습회를 꾸리면서 민족민주운동에 첫발을 떼었던 때가 1983년 가을이었으니 올해로 꼭 20년 동안 외길을 고집스럽게 걸어왔습니다. 처음에 나는 민족민주운동을 해외에서 할 것인가 아니면 유학을 포기하고 남(한국)에 돌아가서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전두환 군부파쇼통치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고, 남(한국)에서 민족민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이전이었으며, 더욱이 남(한국)에서 운동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재미민족민주운동에 참가하는 것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재미민족민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면서 남(한국)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나는 언제 다시 돌아갈지 알 수 없는 조국의 남녘땅을 마지막으로 밟아보고, 서울에 살고 계시는 나의 부모와 동생들에게도 인사하려고 1984년 7월에 남(한국)을 잠시 찾았습니다.

1984년 이후 1990년까지 나의 손에는 미국체류허가기간이 만료된 여권 한 개와 얼마 되지 않는 비상금밖에 없었습니다.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족민주운동을 전파하고 재미동포청년들을 조직하는 사업이 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하는 동안 양순한 학자지망생이었던 청년은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서 투쟁하는 활동가로 변모하였습니다.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활동하던 나는 살인범죄와 교통사고가 불시에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미국사회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일발의 순간도 몇 차례 넘겨야 했습니다. 나는 1994년 4월에 남(한국) 통일운동단체의 공식초청을 받고 서울 땅을 밟기까지 10년 동안 조국방문 금지조치에 묶여있었습니다.

백인들과 흑인들이 절대다수인 미국에서 살다가 10년 만에 서울거리를 다시 걷게 되었던 1994년 4월 어느 봄날, 나는 종로거리 한 모퉁이에 서서 길을 오가는 인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는 종로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동지들과 벗들의 얼굴로 보이는 착각에 빠져들었습니다. 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하였던 그 날의 체험이 나의 기억에서 지금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7년 동안 나는 남(한국)을 방문하면서 민족민주운동권의 집회에 참가하여 정치연설도 하고 정세강연도 하고 학습과 토론도 하였습니다. 2001년 9월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단체로부터 초청을 받고 정세문제와 운동이론에 관한 강연을 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내렸던 나는, 입국장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국정원의 입국금지조치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습니다. 두 번째로 조국방문 금지조치에 묶인 것입니다.

이번에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단체들과 진보성향의 사회단체들, 그리고 개별 정치인들이 망라되어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해외민족민주운동권의 선배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이번에 범국민추진위가 초청한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선배님들은 30년, 40년 동안이나 남(한국)에 가보시지 못한 분들입니다. 나는 해외민족민주운동권에서 후배세대에 속하는 사람이며, 국정원으로부터 두 번째로 조국방문 금지조치를 당한 것도 불과 이태밖에 되지 않는 처지이므로, 제1차 초청대상명단에서는 누락되었습니다. 범국민추진위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의 말에 따르면, 나는 제2차 초청대상명단에 올라있다고 합니다.

범국민추진위에서 나를 제2차 초청사업에 포함시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만, 나는 남(한국)에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을 남(한국)에 일시적으로, 조건부로 입국시키는 것은 범국민추진위가 아니라 국정원이 주도하는 조치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범국민추진위는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의 자유로운 조국왕래를 실현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만, 그 노력은 악랄한 국정원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범국민추진위의 자유왕래와 국정원의 방문불가 사이에서 찾아진 타협점은 결국 조건부 조국방문이었습니다. 국정원은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 가운데 누구는 국정원의 조사를 받지 않고 입국해도 되고 누구는 입국하면 반드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조건을 달아놓고, 자유왕래가 아니라 한가위나 음력설 같은 특정시기에 한정하여 입국을 허가한다는 조건도 달아놓았습니다. 해외민족민주운동권을 눈의 가시처럼 여기고 있는 국정원이 범국민추진위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자유왕래를 관대하게 허가해 주리라고 기대했다면 그것은 오산입니다.

국정원이 해외민족민주운동단체와 해외운동권 인사들을 옥죄는 이른바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친북인사’라는 올가미를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조건에서,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이 국정원이 정해준 특정시기에 남(한국)을 잠시 방문한다고 해서 해외민족민주운동권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민족민주운동세력을 적대세력으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을 여전히 틀어쥐고 있는 친미예속정권이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의 명예를 회복해 주리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착각 중의 착각입니다. 나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는 한, 해외민족민주운동권의 명예는 회복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국정원이 특정시기에 한정된 조국방문을 허가한 것은, 만고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에 걸려 옥중투쟁을 하고 있는 민족민주운동 활동가를 한가위나 음력설에 잠깐 집에 다녀오라고 ‘선심’을 쓰고 다시 감옥에 집어넣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 해외민족민주운동세력은 해외민족민주운동 인사들에 대한 국정원의 선별입국조치와 특정시기에 한정한 입국조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면서 동시에 무조건적인 조국방문과 자유왕래의 보장, 그리고 남(한국)에서의 사회·정치활동의 보장을 쟁취하기 위해 변함없이 투쟁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나의 주장과 견해는 30년, 40년 동안이나 남(한국)을 방문하지 못하신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이 이번에 처음으로 남(한국)을 방문함으로써 국정원의 조국방문 금지조치에 일정하게 균열이 생기고, 남(한국)사회와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에 해외민족민주운동의 존재와 의의를 널리 알리게 된 정치적 성과를 무시하거나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국정원이 자기의 공작목표에 따라서 주도한 조건부 조국방문에 대해서 득실을 따져볼 때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회한 국정원과 직접적인 대결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해외민족민주운동세력이 청와대 주인의 희멀건 웃음에 현혹되거나, 혹은 국정원장이나 법무부장관의 부드러운 얼굴이나 쳐다보면서 방심하는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아 낭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번에 국정원이 ‘선심성’ 조국방문 허가조치를 통해서 심리공작을 추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은 조국의 남녘땅을 일시적으로 방문하고 해외에 돌아간 인사들이 친미예속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에 심리적 부담을 느끼도록 하여 투쟁강도를 이전보다 낮추도록 만드는 고도의 심리공작을 추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 심각한 사태는 국정원이 송두율 교수에게 이른바 ‘거물간첩’의 올가미를 씌우고,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같은 악질적인 반북·반통일세력이 들고일어나 송 교수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아예 끊어버리고 해외민족민주운동권의 기를 꺾어버리려고 날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이 남(한국)을 방문하는 목적은, 남(한국)에서 국내의 민족민주운동권과 힘을 합하여 자주, 민주, 통일을 실현하는 정당한 사회·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족상봉, 고향방문, 성묘는 사적인 문제이며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이 남(한국)에 들어가서 사회·정치활동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국정원이 해체되어야 합니다.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이 남(한국)에 들어가서 사회·정치활동을 하는 문제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정원을 해체하는 문제는 뗄 수 없는 관계로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외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이 언제 남(한국)을 방문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명백해집니다.

나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국정원이 해체되기 이전에는 남(한국)에 다시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조국의 남녘땅에서 정다운 얼굴들과 만나고 싶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충동을 냉정히 잘라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정원을 해체하는 투쟁구호를 재미동포사회에서 더 열심히 외쳐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정원을 해체하는 투쟁에서 승리한 국내 민족민주운동권 동지들의 초청을 받고 내가 조국의 남녘땅에 돌아가는 그날이 오면, 꿈에도 잊지 못할 통일조국의 미래를 그리며 미국땅에서 투쟁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선배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가겠습니다.

문2

- 우리 21세기코리아(COREA)연구소는 자주, 민주, 통일을 지향하는 진보적인 전략 및 정책 연구소입니다. 세워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실천적인 연구소, 대중적인 연구소를 지향하며 견실하고 진취적인 연구자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연구소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연구소의 하나가 바로 통일학연구소입니다. 격동하는 코리아반도의 정세를 민족주체적 시각에서 해부하며 실천적 의의가 큰 논문들을 연속 발표하시는 한호석 소장님의 연구활동은 우리에게 중요한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이남의 진보적이고 애국적인 연구소와의 첫 대담인 만큼 연구소와 관련된 질문을 몇 가지 했으면 합니다. 통일학연구소가 연구활동에서 견지하고 있는 원칙은 무엇이고 통일학연구소의 성과적인 연구활동의 비결은 무엇인지, 그리고 해외의 진보적이고 애국적인 연구소의 입장에서 이남의 진보적이고 애국적인 연구소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이 기회에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통일학연구소에 관한 물음이 제기되었으니 국내 동지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사연을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1980년대에서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인류는 미증유의 혼란을 경험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고, 독일이 자본주의적 흡수통합을 실현하고, 소련식 사회주의체제가 와해되었습니다. 남(한국)에서는 1987년부터 용솟음쳤던 반파쇼민주화운동(흔히 반독재민주화운동이라고도 하는데, 파쇼독재를 반대한다는 뜻을 가진 반파쇼민주화운동이라고 해야 더 정확합니다)과 1988년부터 일어나기 시작한 조국통일운동의 열기가 한창 끓어오르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국제정세는 혼란의 극점으로 치달리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전환기에 남(한국)에서는 반파쇼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이 강화·발전되면서 민족민주운동이 통일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으나,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에 몰아친 정세인식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민족민주운동에게 있어서 정세인식의 혼란은 패배를 의미합니다.

당시 해내외 민족민주운동권에서 거의 모든 활동가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혼란에 빠진 정세인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안간힘을 쓰면서 출로를 더듬어가고 있었습니다. 해내외 민족민주운동권에는 그 누구도 ‘길은 여기다’ 하는 힘찬 목소리로 출로를 열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힘겨운 경험을 통해서 내가 절실히 깨달은 것은 우리 민족민주운동에게 정세인식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상이 왈칵 뒤집혀진대도 흔들리지 않을 그런 확고한 정세인식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혼미한 안개 속에서 출로를 찾아 헤매던 나를 붙들어주었습니다. 그 무렵 나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연구소를 설립하는 과제였습니다. 그때가 1993년이었습니다.

경험도 준비도 없는 조건에서 연구소를 세우는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았습니다. 선배님들과 동지들을 설득하고 준비하는 2년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통일학연구소는 해방 50주년, 분단 50주년이 되던 해인 1995년 3월 11일에 결성되어 뉴욕시에서 재미동포가 가장 많이 모여 살고 있는 플러싱 한복판에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설립 이후 8년 동안 통일학연구소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초행길을 걸어왔습니다.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몇 사람으로 이루어진 이사회가 각자 주머니를 털어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재정난 때문에 통일학연구소는 다른 운동단체들과 공동으로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유급 연구원을 두지 못하고 자원봉사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볼 때까지 밀고 나간다는 집념이 통일학연구소 동지들을 떠밀어주고 있으며, 조국통일의 미래가 우리를 앞에서 끌어주고 있습니다. 통일학연구소는 통일조국의 수도에서 연방통일정부의 수립이 세계만방에 선포되는 감격의 그날, 자기의 임무를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 날까지 통일학연구소는 안팎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일할 것입니다. 통일학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첫째, 정세인식활동에서 주체적 관점을 세우는 원칙입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인식하는 관점에 따라 객관현실도 다르게 보입니다. 모든 사물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인다는 말은 궤변입니다. 사물은 인식주체의 보는 자리(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진리입니다.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이므로, 문제는 어떠한 관점에서 인식대상을 바라보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나는 대상을 인식하는 여러 관점들 가운데서 주체적 관점이 가장 올바르고 과학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체적 관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주체적 존재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유일한 주체가 되는 근거는 사람만이 세계를 대상으로 인식하고 자기의 요구와 지향에 따라 세계를 개조하려고 실천한다는 데 있습니다. 인식과 실천은 주체의 고유한 활동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인식과 실천은 주체적인 것과 비주체적인 것으로 나누어집니다. 주체적으로 된다는 것은 중심이 되어 책임을 지는 고유한 속성과 태도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중심이 되지 못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비주체적인 것입니다.

나는 정세인식활동에서 언제나 민족주체적 관점을 강조합니다. 민족주체적 관점은 우리 한(조선)민족을 중심으로 하여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한(조선)민족을 중심으로 하여 정세를 바라본다는 말은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근본요구를 어떻게 실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에 놓고 정세변화를 읽는다는 뜻입니다.

민족주체적 관점의 반대편에는 외세중심적 관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외세중심적 관점이란 외세를 중심으로 하여 한(조선)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그릇된 관점, 비과학적인 관점입니다.

만약 외세중심적 관점에서 한(조선)반도의 핵문제를 바라보면, 미국이 핵문제를 통하여 북(조선)을 압박하면서 한(조선)민족을 임박한 전쟁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핵문제를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북(조선)이 핵문제를 통하여 미국을 압박하면서 한(조선)민족의 근본요구를 차츰 실현해나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외세중심적 정세관은 민족자주역량이 미약하여 패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반대로 민족주체적 정세관은 민족자주역량이 강인하여 승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민족주체적 관점과 외세중심적 관점 이외에 제3의 관점은 설령 그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세분석가들이 외세중심적 정세관을 거부하고 민족주체적 정세관에 서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자료에 근거하여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원칙입니다. 천문학적인 분량의 정보자료가 출렁이는 인터넷 공간에서 요구되는 자료를 찾는 것은 마치 드넓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쓸모 있는 조개껍데기 몇 개를 찾아내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뒤져서 겨우 한 줄로 표현되어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인터넷 공간을 누비면서 새로운 정보를 찾는 것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다른 곳에 출장을 다녀왔을 때 그 동안 밀린 자료검색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자료검색이 힘들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사물의 모습이 보는 눈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인터넷 공간에 흩어져 있는 정보도 보는 눈이 있어야 골라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중대한 정보가치가 있는 자료라도 전문가의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면 놓쳐버리게 됩니다. 어떤 때는 가치 있는 자료를 미처 찾지 못하여 집필을 중단하고 애를 태우기도 합니다.

정세분석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주관주의입니다. 객관적 현실이 인식주체의 주관적 의지와 요구대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정세분석가에게 치명적인 오류입니다. 그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자료에 근거하여 대상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료를 조사하지 않고서는 글을 쓰지 말라, 이것이 통일학연구소가 견지하고 있는 연구활동의 원칙입니다.

셋째,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에 복무하는 원칙입니다. 통일학연구소는 돈이나 명예 같은 사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글을 쓰는 매문주의적 집필을 배격합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천은 외면하는 행세주의적 집필도 배격합니다. 흥미로운 말을 늘어놓으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어보려고 하는 인기주의적 집필도 배격합니다.

통일학연구소는 우리 시대의 최고, 최대의 역사적 위업인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에 복무하는 목적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에 복무하는 것은 통일학연구소의 집필활동의 원칙이자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넷째,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의 강화와 발전에 이바지하는 원칙입니다. 나는 우리 시대의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이 민족민주운동에 의해서 수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대 위업이 목적이라면 민족민주운동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그 양대 위업을 수행하려면 무엇보다도 민족민주운동을 강화·발전시켜야 합니다. 통일학연구소는 정세연구활동을 통해서 민족민주운동의 이론분야를 강화·발전시키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다섯째, 개념을 과학적으로 정립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원칙입니다. 집필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문제는 개념을 사용하는 문제입니다. 상식의 틀과 여론의 허구에 묶여있는 개념을 풀어내어 과학적 개념으로 재정립하고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집필활동의 생명선입니다.

여섯째, 집필활동에서 우리글을 살려 쓰는 원칙입니다. 통일학연구소에서 발표하는 모든 글들은 우리글로 작성되고 있는데,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를 쓰지 않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우리글을 살려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민족의식을 가장 투명하게 담아내는 소중한 틀입니다. 외래어와 외국어를 마구 쓰면서 자기 민족의 말과 글을 더럽히는 것은 민족의식을 저버리는 반역입니다. 한자, 영어철자는 필요한 경우에 쓰되 반드시 묶음표에 넣어 적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감각 속에 파고 들어와 있는 한자식 표현, 영어식 표현을 솎아버려야 합니다.

문3

- 우리 연구위원들은 한호석 소장님이 단순한 정세분석가가 아니라 변혁 및 통일 운동이론에도 조예가 깊은 변혁이론가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민족민주전선이 수행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 동력, 실현경로에 대하여」와 같은 논문은 자주, 민주, 통일 운동의 목표와 수단, 방법을 체계적으로 해설하며 우리나라 변혁 및 통일 운동이론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바 있습니다. 또한 한 소장님이 황장엽의 논문을 주체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에서 분석비판한 것이나 최근 논문 「북(조선)의 선군정치와 한(조선)반도의 정세」처럼 이북의 선군혁명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것 등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소장님의 정세분석이 자료수집과 외국어실력보다 철학적, 역사적, 전략전술적 안목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며 우리 청년연구자들이 특히 이런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후배 연구자들이 어떠한 관점과 자세, 능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하여 선배 연구자로서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 오늘의 현실은 어느 분야에서나 실력가를 요구합니다. 정세연구가도 자기의 실력으로 연구실적을 쌓아가야 합니다. 실력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정세연구활동은 형식주의, 행세주의, 인기주의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정세연구가가 갖추어야 할 실력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정세연구활동에서 주체적 관점과 태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주체적 관점에 대해서는 위에서 말하였으므로, 이제는 주체적인 태도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정세연구활동에서 견지하여야 할 주체적 태도는 자기 머리로 이해하고, 자기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뜻합니다. 주체적 태도는 남의 것을 무작정 따라하는 모방행위를 버리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며 일하는 태도입니다. 연구활동에서 모방은 의미 없는 반복이지만, 창조는 새로운 이해, 새로운 서술입니다.

이론활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전(text)의 문구를 그대로 반복하여 서술하는 것은 원전을 이해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원전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원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반복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의 의미를 신념화하고 새로운 표현방식으로 해석·서술(해설)하는 것입니다. 원전은 영구·불변하지만 수용감각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끝없이 변화합니다. 이론활동에서는 원전의 의미를 변화된 정세를 반영하여 새롭게 해설하여야 하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된 수용감각에 맞게 서술하여야 합니다.

둘째, 사색과 탐구의 열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사색하고 탐구하는 사람만이 새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새 것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사색과 탐구의 열정이 사라지면 그것은 곧 인식활동이 멈춘 휴지기에 들어간 것입니다. 열정이 창조의 원천이라는 말은 언제나 진실입니다. 풀먹는 짐승들이 영양을 얻기 위해 쉼 없이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의의 있는 논문 한 편을 쓰기 위하여 논제 하나, 개념 한 가지를 놓고 깊은 사색과 탐구를 이어가야 합니다.

셋째, 글쓰기 훈련과 이론전개능력을 높이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본시 문장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글쓰기 훈련을 통하여 태어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글쓰기란 이론전개를 뜻합니다. 이론전개능력도 끊임없는 훈련을 통하여 향상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고된 훈련의 땀을 흘린 사람만이 뛰어난 이론전개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론전개는 날카로워야 합니다. 두루뭉수리는 통하지 않습니다. 이론에는 칼날이 서야 합니다. 관념의 우상을 깨뜨리고 낡은 관점을 탕탕 끊어버리는 예리한 칼날을 훈련의 불길 속에서 벼리는 투쟁이 요구됩니다.

넷째, 영어문서를 해득하는 능력을 갖는 것입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외면하고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파악하려면 미국에서 나오는 영어문서를 읽어야 합니다. 영어문서를 해득하는 것은 정세연구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문4

- 앞서 밝혔듯이 우리는 한호석 소장님의 논문 「민족민주전선이 수행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 동력, 실현경로에 대하여」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족통일전선은 반제자주의 강령과 조국통일의 강령이라는 두 가지 강령을 가진다는 대목은 우리 운동대오 내에 분분했던 반미구국통일전선과 남북통일전선의 상호관계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었다고 봅니다. 그 이후 우리 운동대오는 통일전선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켜 지역통일전선과 민족통일전선, 또는 지역적 민족민주전선과 전국적 민족민주전선에 대한 관계를 주체적 관점에서 해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주, 민주, 통일 운동을 힘있게 추진해 나아갈 수단의 문제, 통일전선의 문제에 대한 전일적 체계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 10월 19일이면 이 논문이 발표된 지 만 2년이 됩니다. 오늘 주로 통일전선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게 되는 만큼 그 논문이 발표된 이후 한 소장님의 통일전선이론이 어떻게 심화되었는지 매우 기대됩니다. 한호석 소장님의 통일전선에 대한 견해를 정리해서 다시 들었으면 합니다.

- 내가 「민족민주전선이 수행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 동력, 실현경로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작성한 때는 2001년 10월 19일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기관지 『민』으로부터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낮은 단계 연방제 실현의 연관성에 관하여 집필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글을 집필하였습니다. 그 글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에서는 통일전선이론에 관한 인터넷 공간의 논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나도 그 글을 발표함으로써 국내 운동권 논쟁에 참가한 셈이 되었습니다.

나는 원래 통일학연구소에서 정세를 분석하는 논문을 발표해오고 있습니다만,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이 인터넷 공간에서 발표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의 논문들을 읽으며 운동이론에 관해서도 공부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21세기코리아연구소에서 위의 논문을 다시 거론하면서 통일전선이론에 관하여 글을 써달라고 요청하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로서는 거의 2년만에 통일전선이론에 관하여 집필하게 된 것입니다.

이 글은 내가 그 동안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몇몇 논자들이 인터넷 공간을 통하여 진행한 통일전선이론에 관련한 논쟁을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의 중심내용은 나의 독창적인 견해라고 하기보다는 지금까지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에서 인터넷 공간의 논쟁을 통하여 해명하였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글에는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몇몇 논자들이 인터넷 공간의 논쟁을 통하여 해명했던 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또한 이 글에는 내가 2001년 10월 19일의 논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문제들을 해명하고, 미처 명확하게 서술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명료하게 정리한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2001년 10월 19일의 논문에 대한 일종의 보론이라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지난 시기 군부파쇼세력이 조국통일이라는 개념을 어이없게도 북(조선)의 대남혁명전략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남(한국)사회에서 조국통일이라는 말을 기피하도록 강요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국정원, 검찰공안부,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한국)의 극우세력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을 북(조선)의 대남혁명전략의 개념으로 규정하고 통일전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를 금압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은 남(한국)의 대중에게 매우 낯선 것이며 심지어 민족민주운동권에서도 기피하거나 신비화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남(한국)의 극우세력들이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을 북(조선)의 대남혁명전략이라는 특정한 의미로 규정하고 그 개념사용을 금압한다고 해도, 민족민주운동권에서 그 개념을 기피하거나 신비화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은 일제 식민지시기에 항일선열들이 사용한 것으로서 그 누구도 부정하거나 왜곡할 수 없는 민족사적 의의를 가진 개념입니다. 항일선열들은 통일전선을 협동전선 또는 연합전선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일제 식민지시기의 신간회운동, 해방정국의 좌우합작운동, 군부파쇼시기의 유신독재반대투쟁과 6월항쟁은 모두 통일전선운동의 일환이었으며, 1980년대에 결성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 결성된 범민련과 통일연대, 전국연합과 민중연대는 비록 완결되지는 못하였으나 모두 통일전선운동조직의 일종입니다.

지난날 민족민주운동이 군부파쇼세력이 움켜쥐고 있던 조국통일이라는 개념을 풀어내어 대중에게 돌려주었듯이, 오늘 민족민주운동은 극우세력이 금압하고 있는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을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의미로 규정하고 대중의 언어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글에서 통일전선이라는 개념을 여러 사회·정치세력이 공동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투쟁하는 사회·정치운동의 기본방식이라는 뜻으로 규정하며, 모든 형태의 사회·정치운동에서 진행되는 단결과 동맹, 연대와 연합을 과학적으로 해명한 개념으로 씁니다.

먼저 통일전선운동사에서 통일전선의 개념이 정세의 요구에 따라 변천해온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던 여러 형태의 통일전선운동의 역사를 살펴볼 때, 통일전선은 근로대중의 민족적 해방을 위한 통일전선과 근로대중의 계급적 해방을 위한 통일전선으로 구분됩니다. 반제자주화과업과 반파쇼민주화과업(또는 반독점민주화과업)이 서로 구분되는 것에 따라서 그렇게 구분되는 것입니다. 나는 이 글에서 근로대중이라는 개념을 민중이라는 개념과 같은 의미로 씁니다.

반파쇼민주화와 반독점민주화가 구분되는 까닭은, 군부파쇼통치체제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개혁체제로 이행한 오늘의 남(한국)사회에서 반독점민주화과업이 새롭게 제기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반파쇼민주화과업이 파쇼통치체제를 타도하고 일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면, 반독점민주화과업은 독점자본주의체제(또는 예속적 독점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민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반독점민주화는 곧 반독점민주개혁이며, 반독점민주화운동의 목표는 민중민주주의의 실현입니다. 이른바 ‘탈자본주의 대안사회’를 향하여 나아가는 진보적 민주주의(자주적 민주주의)는 민중민주주의체제의 수립으로 실현됩니다.

1930년대부터 70년 동안 계속되어온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운동사에 나타난 통일전선 개념은 전국적 범위의 통일전선과 지역적 범위의 통일전선으로 구분됩니다. 나는 전국적 범위의 통일전선을 전역통일전선으로, 지역적 범위의 통일전선을 지역통일전선으로 부릅니다.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논쟁과정에서 이미 정리된 바대로, 지역통일전선은 독자적 지위를 가지는 전선이 아니라 전역통일전선의 일부인 것은 물론입니다. 전역통일전선의 개념은 반일민족통일전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반미구국통일전선으로 변천되었고, 지역통일전선의 개념은 반파쇼민주전선 민족민주전선으로 확대·변천되어왔습니다.

반일민족통일전선은 1930년대 이후 일제 식민지시기에 형성되었던 전역통일전선의 이름이었습니다. 반일민족통일전선은 한(조선)반도로부터 만주와 일본에 걸치는 넓은 범위에서 한(조선)민족이 반일민족해방을 위하여 투쟁하였던 전역통일전선이었습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독일, 일본, 이탈리아의 삼국파쇼동맹에 맞서 투쟁한 국제민주세력의 반파쇼투쟁이 승리하였던 1945년 해방 직후에 반봉건민주화과업(반봉건민주개혁의 실현 또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진하였던 전역통일전선의 새로운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일전선이라는 개념 앞에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붙였던 것입니다.

반미구국통일전선은 1980년대에 반미자주화과업이 전면에 제기되었던 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전역통일전선의 이름이었습니다. 구국이라는 개념은 조국이 위난에 처해있을 때 성립되는 개념입니다.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 전두환 군부파쇼정권을 동원하여 광주민중학살과 대한항공 여객기의 소련영공 침입·피격,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과 대북 핵전쟁책동을 자행하고 있었던 시기에 위난에 처한 조국을 구하려는 절박한 정세의 요구가 반미구국통일전선의 개념에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반파쇼민주전선은 1960년의 4.19혁명부터 1987년 6월항쟁을 거쳐 1990년대 초까지 남(한국)의 군부파쇼통치를 반대하여 투쟁하였던 지역통일전선의 이름이었습니다. 통일전선의 과업을 민주화과업에 집중시키는 측면에서 보면, 해방정국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과 196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정세를 반영한 반파쇼민주전선은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정국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전역통일전선의 기초 위에서 반봉건민주화과업을 수행하였던 것에 비해서, 1960년부터 30여 년 동안 형성되었던 반파쇼민주전선은 남(한국)의 지역통일전선의 기초 위에서 반파쇼민주화과업을 수행한 것이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남(한국)사회의 민주화과정은 변화된 정세의 요구에 따라 반봉건민주화 반파쇼민주화 반독점민주화로 변천되어 왔으며, 현재는 반독점민주화과업을 수행하는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민족민주전선은 1990년대 이후 자주, 민주, 통일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통일전선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민족민주전선은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반미자주화운동,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반독점민주화운동,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조국통일운동을 포괄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 새로운 내용의 통일전선입니다.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이 인터넷 공간에서 진행한 논쟁과정에서는 민족민주전선을 전역통일전선의 개념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통일전선의 개념으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나는 민족민주전선을 지역통일전선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다만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반미자주화과업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조국통일과업은 남(한국)에서도 수행되는 과업이며 한(조선)반도 전역에서도 수행되는 과업입니다. 그러므로 반미자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은 지역통일전선과 전역통일전선이 서로 겹쳐지는 부분에서 전개되는 운동입니다.

분단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통일전선은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또는 반봉건민주화운동, 반파쇼민주화운동)을 포괄하는 민족민주전선이고, 거기에 조국통일운동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통일전선은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에 더하여, 분단현실에서 형성된 특수한 형식과 내용의 통일전선운동이 포함됩니다. 그 특수한 통일전선운동을 조국통일운동이라고 부릅니다. 조국통일운동은 제국주의세력과 그 예속세력의 민족분열책동을 반대하고 연방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통일전선운동입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나라의 통일전선도 조국통일운동을 포함한 적이 없습니다. 조국통일운동이 통일전선에 포함된 것은 세계변혁운동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한(조선)반도에서 형성되고 있는 통일전선의 역사성과 특수성입니다. 한(조선)민족의 통일전선이 그 포괄범위를 조국통일운동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통일전선의 전략과 전술이 더욱 복잡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통일전선운동은 사회체제를 개조·변혁하는 운동이며, 조국통일운동은 민족분열책동을 반대하고 분단된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운동입니다. 통일전선운동은 통일전선전략에 따라 수행되며, 조국통일운동은 조국통일 3대 강령과 6.15 공동선언에 따라 수행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좁은 의미의 통일전선은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을 포함하는 개념이며, 우리 나라에서 전개되고 있는 넓은 의미의 통일전선은 그 두 운동에 더하여 조국통일운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조국통일운동은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따라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넘어서 6.15 공동선언이 천명한 조국통일과업에 동의하는 모든 민족구성원들이 참가하는 가장 폭넓은 통일전선운동입니다. 조국통일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조국통일운동은 남(한국)의 대북 화해·협력운동과 공조할 수 있으며, 심지어 친미예속정권의 대북 화해·협력사업을 지지해줄 수도 있습니다.

좁은 의미의 통일전선운동도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넘어서 단결하는 운동이므로 조국통일운동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통일전선은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을 포괄하는 운동이므로, 반미자주화과업과 반독점민주화과업에 찬동하는 사회·정치세력들에 의해서 추진됩니다. 반면에 조국통일운동은 비록 반미자주화과업과 반독점민주화과업에는 전면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일단 조국통일과업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들이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통일전선의 성격과 임무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통일전선운동의 발전단계와 정세의 요구에 따라 계속 변화·발전합니다. 4.19 혁명으로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시기에 지역통일전선의 성격은 군부파쇼통치를 철폐하고 일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반파쇼민주화운동으로 이해되었고 그에 동의하는 다양한 사회·정치세력들이 손을 잡고 반파쇼민주화과업을 수행하였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 지역통일전선의 성격은 반파쇼민주화운동 단계를 넘어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 단계로 진입하였으며 그 포괄범위를 조국통일운동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지역통일전선이 반파쇼민주화운동 단계를 넘어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의 단계로 진입하고 그 포괄범위를 조국통일운동으로 확대함으로써 내외조건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지난 시기의 지역통일전선에 포괄되는 범위는 이른바 재야세력과 야당세력까지 확대되었고, 재야세력과 김대중·김영삼을 대표로 하는 야당정치세력이 반파쇼민주화운동의 주도세력으로 행세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역통일전선이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의 단계로 진입하자, 재야세력이나 김대중·김영삼을 대표로 하는 야당정치세력은 지역통일전선에서 이탈하였습니다. 그 대신 1987년 여름의 노동자대투쟁과 1980년대 말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반대하는 농민투쟁 이후부터는 노농대중이 지역통일전선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오늘날 지역통일전선이 그 포괄범위를 조국통일운동으로 확대하자, 재야세력이나 김대중·김영삼을 대표로 하는 야당정치세력이 분리되어, 김대중을 대표로 하는 정치세력을 비롯한 일부세력은 대북 화해·협력세력으로서 조국통일운동과 공조하게 되었고, 김영삼을 대표로 하는 정치세력을 비롯한 일부세력은 조국통일운동을 반대하는 민족분열주의세력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남(한국)의 지역통일전선은 반미자주화운동, 반독점민주화운동, 조국통일운동을 포괄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운동은 반미자주화운동입니다. 지역통일전선이 수행하는 전략적 과업은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과업,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과업,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과업이지만, 그 가운데서 중심이 되는 과업은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과업입니다.

만일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과업을 중심에 놓고 지역통일전선을 형성할 경우, 그 통일전선은 전역통일전선에서 떨어져 나가 독자적 지위를 갖는 지역주의적 편향(인터넷 논쟁에서 등장했던 상대적 독자성론)에 빠지게 되며, 또한 반독점민주화운동에 지나치게 기울어짐으로써 친미예속정권을 제거하는 투쟁만을 앞세우는 좌경적 편향(좌파급진주의적 편향)에 빠지게 됩니다. 만일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과업을 중심에 놓고 지역통일전선을 형성할 경우, 그 통일전선은 계급적 원칙을 망각하고 친미예속정권을 화해·협력대상으로 보는 우경적 편향(우파민족주의적 편향)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과업을 중심에 놓고 통일전선을 형성하여야, 지역주의적 편향과 좌우경적 편향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이미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인터넷 논쟁에서 정리되었던 바대로, 오늘 지역통일전선의 성격과 임무를 이해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강조해야 할 것은, 그 운동이 반미자주화운동을 선차적으로 추진하고 반미자주화과업을 중심적으로 수행하는 통일전선운동이라는 사실입니다. 반미자주화운동의 선차성과 반미자주화과업의 중심성을 관철하는 과제는 지역통일전선만이 아니라 전역통일전선에도 마찬가지로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통일전선의 중심축인 반미자주화운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미국을 반대하는 모든 형태의 반미운동을 덮어놓고 반미자주화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이 미국을 반대하는 모든 형태의 반미운동과 구분되는 근거는, 그 운동이 제국주의 대 식민지 문제와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제국주의 대 식민지 문제와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 문제를 포괄하지 않는 반미운동은 반미자주화운동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일반적인 의미의 반미운동이라고 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반미운동은 외세인 미국을 반대하는 반외세운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반미자주화운동은 미국의 식민지지배와 식민지초과이윤수탈을 반대하고, 미국의 사회주의 고립·말살책동을 반대하는 가장 철저한 반제운동이며, 반독점민주화운동, 조국통일운동과 결합되어 있는 통일전선운동입니다.

현재 남(한국)에서는 반전평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반전평화운동은 전쟁위협과 평화파괴의 주범인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운동입니다만, 그 운동은 반미자주화운동의 전술단위에 지나지 않으며 독자적인 전략적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1960년의 4.19 혁명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근 30년 동안 역량관계의 변동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면서 군부파쇼통치를 반대하고 일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형성되었던 반파쇼민주전선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업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인, 노동대중의 주도적 역할을 보장하는 문제와 노농대중의 중심성을 보장하는 문제입니다. 노동대중의 주도적 역할을 보장하는 문제와 노농대중의 중심성을 보장하는 문제는 노동대중이 영도하는 노농대중의 동맹을 형성하는 것에 의하여 해결됩니다. 이 문제도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인터넷 논쟁과정에서 정리되었습니다. 노농대중의 동맹은 근로하는 계급의 전략적 동맹이며 통일전선의 사회·정치적 기초입니다. 노농대중의 동맹은 사회·정치적 자주성을 실현하려는 대중의 근본요구를 가장 집중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그 근본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대중이 통일전선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노동대중이 다른 모든 계급, 계층과 달리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전투적이며, 가장 강한 조직력을 지닌 계급이기 때문입니다. 노동대중은 사회의 계급구조 자체를 철폐하라는 근본요구를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라는 점에서 선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농민대중이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달리 노동대중은 어떤 생산수단도 소유하지 않은 무산계급이므로 가장 철저하게 가장 전투적으로 투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동대중은 중화학, 전기, 통신, 철도, 항만, 운수 등 기간산업부문의 고도로 조직화된 생산체계에서 노동하고 있는 유일한 계급이므로 다른 계급, 계층들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조직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노동대중은 지구력을 가지고 완강하고 철저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여타의 대중운동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투쟁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노동대중이 통일전선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고 해서, 통일전선을 노동운동의 범위 안에서 협소하게 형성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비록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대중과 마찬가지로 자본가계급과 친미예속정권의 지배와 수탈을 당하고 있는 농민대중은 노동대중의 가장 믿음직한 동맹자가 됩니다. 노동대중과 농민대중은 통일전선에서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어야 하며, 노농대중의 동맹역량은 통일전선의 기본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노농대중이 의식화되고 조직화되기 이전 시기에 전개되었던 반파쇼민주화운동에서는 청년학생계층과 지식인계층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청년학생계층은 지역통일전선의 선봉에서 투쟁해온 세력입니다. 4.19혁명부터 6월항쟁까지 전개되었던 반파쇼민주화운동의 투쟁구호는 노농대중의 생존권 문제까지 포괄하지는 못했고, ‘이승만 하야’, ‘삼선개헌 반대’, ‘유신헌법 철폐’,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이처럼 노농대중의 계급적 이익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투쟁구호를 들지 못했던 반파쇼민주화운동이 청년학생계층과 지식인계층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통일전선운동이 반파쇼민주화운동의 단계를 지나서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의 단계에 진입한 오늘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미·일 제국주의와 남(한국)의 예속적 독점자본주의 대 노농대중의 모순이 격화되고, 노농대중이 민족·계급적으로 각성하였습니다. 노농대중은 지난 시기 청년학생계층과 지식인계층들이 전개하여왔던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에 진출하여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으며, 6.15 공동선언 이후에는 조국통일운동에도 진출하여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청년학생계층은 노농대중과 더불어 지역통일전선의 주도역량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만, 노농대중과 통일전선에서 견고하게 결합되지 못한 까닭에 지역통일전선의 주도역량으로서 자기의 역할과 임무를 만족스럽게 수행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노농대중과 분리되어 있는 청년학생계층은 지역통일전선의 주도역량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정세는 청년학생운동역량과 노농대중운동역량을 통일전선으로 견고하게 결집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일 제국주의와 남(한국)의 예속적 독점자본의 경제적 수탈은 남(한국)사회가 고도로 자본주의화되어야 가능한 것이고, 자본주의화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욱 가중됩니다. 1990년대 이후 고도로 자본주의화된 남(한국)사회에서 노농대중에 대한 경제적 수탈이 날로 가중되고 있는 추세는 노농대중의 민족·계급적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통일전선을 더욱 강고하게 형성시키는 객관적 조건입니다.

남(한국)사회에서 이처럼 노농대중의 민족·계급적 각성이 높아지고 통일전선을 형성하기에 유리한 객관적 조건이 조성되어 있는데도, 지역통일전선운동이 비약적으로 강화·발전되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나의 판단으로는, 핵심주체의 역할이 아직 미흡한 수준에서 수행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통일전선의 핵심주체에 관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인터넷 논쟁과정에서는 통일전선에서 차지하는 지도핵심세력의 중요성에 관해서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는 통일전선의 객관적 조건이 아무리 유리하게 조성되었다고 해도 지도핵심세력이 미약하면 통일전선이 강화·발전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통일전선의 객관적 조건이 좀 불리하여도 지도핵심세력이 강하면 통일전선은 강화·발전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지역통일전선을 강화·발전시키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지도핵심세력의 역할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남(한국)사회의 지역통일전선을 이끌어 가는 지도핵심세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 세력은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를 옹호·고수하며 오로지 통일전선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분투하고 있는 민족민주운동권의 핵심역량을 말합니다. 민족민주운동권의 핵심역량은 지역통일전선의 지도핵심세력입니다.

민족민주운동권의 핵심역량은 지역통일전선을 책임지는 지도핵심세력으로서 정세를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지역통일전선의 전략과 전술을 높은 수준에서 수행해야 합니다. 민족민주운동권의 핵심역량이 지역통일전선의 전략과 전술을 수행하는 데서 직면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파민족주의세력, 좌파급진주의세력, 대북 화해·협력세력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친미예속정권을 대하는 문제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는 통일전선에서 제거대상, 투쟁대상, 동맹대상, 공조대상, 중립화대상을 구분하는 복잡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의 중요성은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인터넷 논쟁에서 강조되었고, 이론적으로 해명된 바 있습니다.

국내 민족민주운동권의 인터넷 논쟁에서 해명한 것과는 좀 다르게, 나는 통일전선에서 제거대상, 투쟁대상, 동맹대상, 공조대상, 중립화대상을 구분합니다. 통일전선을 타도대상과 동맹대상으로만 구분했던 전통적인 통일전선이론은 오늘 남(한국)사회처럼 사회·정치세력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을 전면적으로 해명하기 힘듭니다. 모든 투쟁이 투쟁대상을 제거하는 투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전선의 모든 투쟁대상이 일률적으로 어느 발전단계에서나 제거대상으로 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통일전선의 제거대상은 남(한국)사회를 지배·수탈하고 있는 미·일 제국주의 통치체제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통일전선전략은 친미예속정권과 예속적 독점자본가계급을 명백하게 제거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통일전선운동의 발전단계에 따라 또는 객관정세의 요구에 따라 전술적 투쟁대상도 될 수 있습니다.

공조대상이란 투쟁방향에 따라 전술적 공조를 취해야 하는 대상이며, 중립화대상이란 전술적 공조마저도 불가능하므로 중립화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우파민족주의세력 일반은 통일전선의 반미자주화과업과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동맹대상이지만, 우파민족주의세력 가운데서 반북성향이 완고한 대상은 조국통일운동에서 중립화시켜야 하며 반미자주화운동에서도 투쟁방향에 따라 전술적 공조를 취해야 합니다.

대북 화해·협력세력 일반은 우파민족주의세력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세력입니다만, 대북 화해·협력세력의 중심부분은 친미예속적인 집권세력입니다. 친미예속적인 집권세력은 통일전선의 동맹대상이 될 수 없으며 반독점민주화운동의 제거대상 또는 투쟁대상이며, 조국통일운동에서도 제2차 남북수뇌회담을 추진하는 국면에 한정해서 또는 대북 화해·협력과업에 관련해서만 전술적 공조를 취해야 할 대상입니다.

집권세력이 아닌 대북 화해·협력세력은 조국통일운동의 동맹대상이지만, 친미예속성이 강한 대북 화해·협력세력은 동맹대상이 될 수 없으며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에서는 전술적 공조마저도 불가능하므로 중립화시켜야 합니다.

범운동권세력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좌파급진주의세력 일반은 통일전선의 동맹대상이지만, 좌파급진주의세력 가운데 반북성향이 완고한 대상은 반미자주화운동과 반독점민주화운동에서는 투쟁방향에 따라 전술적 공조를 취해야 할 대상이며, 조국통일운동에서는 전술적 공조마저도 불가능하며 중립화시켜야 합니다.

통일전선은 단순한 저항운동이 아니라 집권전략을 수행하는 운동으로 전개됩니다. 집권전략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볼 때, 통일전선에서 정당문제의 중요성이 부각됩니다. 통일전선이론의 총론에서는 정당, 정파, 단체, 개별인사들이 망라되는 원칙이 해명됩니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남(한국)의 정당분포를 보면,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경우, 집권당이나 야당이나 막론하고 한결같이 친미예속적 정당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전선에 각 정당을 참여시키는 원칙과 친미예속적 정당은 통일전선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현재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 남(한국)의 모든 정당은 친미예속정당이므로 통일전선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은 사실상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새천년민주당은 개혁성과 대북 화해·협력성에 있어서는 한나라당과 모순관계에 있지만 친미예속성에 있어서는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통합신당은 개혁성과 대북 화해·협력성은 물론이고 친미예속성에서도 한나라당과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통합신당은 아직 완결된 정당은 아니므로 좀더 지켜보아야 하겠습니다만, 통합신당이 친미예속성에서 기존의 친미예속정당과 일정한 차이(이를테면 이라크 추가파병 반대)를 보이고, 남(한국)의 반북·반통일세력과 투쟁하면서 6.15 공동선언에 천명된 대북 화해·협력과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경우, 조국통일운동에서 전술적 공조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반미자주화운동에서는 중립화시켜야 하며, 반독점민주화운동에서는 명백한 투쟁대상입니다.

문5

- 해방 직후 북과 남에는 노동계급의 변혁정당이 주도하며 각각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과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이 결성되었고 결국 이 두 지역통일전선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라는 하나의 전국적 민족통일전선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민주대오가 진보적 대중정당을 추진주체로 광범한 지역 민족민주전선을 결성한 후 전국적 범위의 민족민주전선을 형성하려고 하는 조건에서 매우 귀중한 역사적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1960년대 초 사회대중당과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의 관계는 오늘 진보적 대중정당과 민중연대, 통일연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우리는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를 민통련이라는 변혁운동세력과 민주당이라는 부르조아개혁세력과의 반파쇼민주전선으로 규정하며, 반파쇼민주전선의 형성으로 6월항쟁에서 승리하고 그 분열로 대선에서 실패하였다고 봅니다. 물론 이 전선은 오늘 우리가 형성하려고 하는 지역 민족민주전선은 아니지만 큰 덩어리의 통일전선체가 전민족적 항쟁의 승리를 이룩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생생한 실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우리 민족과 외세와의 모순은 폭발적으로 해결될 것이라 보고 있으며 그 관건은 역시 민족통일전선(전국 민족민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에 대한 한호석 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더불어 우리 나라 민족민주전선 건설의 역사와 다른 나라 특히 베트남, 이란의 민족민주전선 건설의 역사도 비교해서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나의 판단으로는, 현재 한(조선)반도에 두 개의 통일전선체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과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이 그것입니다. 범민련, 민주노동당, 민중연대, 통일연대는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과 통일전선전략에 의해서 완결된 통일전선체는 아직 아니며, 통일전선적 지향을 가진 통일운동조직(범민련, 통일연대), 진보적 대중정당(민주노동당), 대중정치조직(전국연합, 민중연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조국전선과 한민전에 관해서 남(한국) 언론의 보도와 출판된 자료들을 분석한 내용을 가지고 이 부분을 집필하였습니다. 남(한국)에서 나온 자료들이 과연 정확한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나, 나는 다른 정보를 접할 수 없는 처지이므로 그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말씀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국전선은 해방정국에서 전역통일전선체로 출범하였으나, 분단체제가 장기화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전역통일전선체로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민전은 1960년대 후반에 남(한국)에서 결성된 통일혁명당의 후신으로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남(한국)의 지역통일전선체로 재출범하였으나, 군부파쇼통치체제와 분단체제 때문에 합법화되지 못하였습니다. 통일전선은 원래 각계각층 대중들이 참가하므로 통일전선체 역시 합법적 운동조직이어야 하는데도, 한민전은 파쇼탄압장치인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이른바 ‘불법화’되었습니다.

나는 한민전이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삼고 있는 지역통일전선체이지 고유한 의미의 전위당은 아니라고 봅니다. 고유한 의미의 전위당이 아니라고 해서 한민전을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는 일반적 의미의 지역통일전선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한민전은 대중정치조직의 성격을 지닌 지역통일전선체가 아니라 특수한 지위에 있는 전위적 지역통일전선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전위’라는 말이 주로 북(조선)에서 많이 쓰인다는 이유 때문에 기피하거나 신비화할 필요는 없으므로, 나는 이 글에서 ‘전위’라는 개념을 모든 사회·정치운동에서 가장 선구적인 역할이라는 뜻으로 씁니다.

한민전이 북(조선)에서 라디오방송을 통하여 선전사업을 한다는 것 때문에 한민전을 신비화하거나 고유한 의미의 전위당인 것으로 보는 것은 오류입니다. 지역통일전선체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라디오방송을 통하여 선전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민전의 라디오방송은 얼마 전 중단되었습니다. 중단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 없습니다만, 고유한 의미의 전위당이 방송을 스스로 중단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또한 전위당이 방송을 중단한다는 것을 북(조선)의 정부인사가 남북 정부당국 간의 공식통로를 통하여 남(한국)의 정부인사에게 통보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조치가 한민전이 고유한 의미의 전위당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한민전이 지역통일전선체이면서도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것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그리고 평양에 지부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한민전이 북(조선)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현재 남(한국)사회에서 형성되고 있는 그 어떤 지역통일전선체도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받아들였다고 공언할 수 없으며, 평양에 지부를 둘 수도 없습니다. 만일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받아들이고 평양에 지부를 둔 운동조직이 남(한국)사회에 있다면, 그러한 조직은 대중적 통일전선체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한민전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받아들이고 평양에 지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전위적 지역통일전선체가 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특수한 지위에 있는 것입니다. 특수한 지위란 지역통일전선에서 전위적 역할을 수행하는 지위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대중적 지역통일전선체를 건설하는 과업입니다. 새로운 대중적 지역통일전선체를 건설하는 과업은 통일전선적 대중조직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도 있고,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도 있습니다. 통일전선적 대중조직과 통일전선적 대중정당 가운데서 후자가 전자보다 여러모로 유리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민족민주운동은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과업에 총력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일제 침략자들과 맞서 싸웠던 반일민족통일전선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듯이, 한(조선)민족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세계적 판도에서 반제통일전선의 모범을 창출하였습니다. 또한 해방정국에서 조국전선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듯이 한(조선)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통일전선의 중심지였습니다. 이러한 전통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조선)민족이 전역통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할 까닭이 없으며,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을 건설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문6

- 오늘 자주, 민주, 통일 운동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주체역량을 비약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변혁 및 통일 운동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주체역량이기 때문입니다. 한호석 소장님도 여러 번 강조하셨듯이, 그 주체역량을 강화하는데서 관건이 되는 문제는 바로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 운동대오는 16대 대선을 계기로 진보적 대중정당 노선의 정당성과 진리성을 실천적으로 확인하였으며 당면해서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우리 사회와 변혁운동의 성격에 맞게 민족자주, 민주개혁, 조국통일의 진보적 민주주의(또는 자주적 민주주의)를 강령으로 하는 진보적 성격과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의 주도역량과 중간세력이라는 방조역량을 포괄하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으로서의 성격을 옳게 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야말로 그 자체가 단일형태의 통일전선이면서도 연합형태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추진주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중연대와 통일연대를 하나로 통합하는데서 민주노동당이 결정적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어떠한 위상을 차지하고 어떠한 역할을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한호석 소장님의 종합적인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통일전선운동은 통일전선체에 의해서 전개됩니다. 통일전선체는 원칙적으로 대중정치조직이지 비합법 전위조직이 아닙니다. 물론 특수한 경우에 한민전과 같은 전위적 통일전선체가 비합법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만, 통일전선체가 비합법적 활동을 하는가 아니면 합법적 활동을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세의 당면한 요구와 통일전선운동의 발전수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현재 민족민주운동권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대중적 통일전선체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대중적 통일전선체는 통일전선적 대중조직과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으로 구분되는데, 후자가 전자보다 더 유리하다는 점은 위에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정당건설문제입니다.

지난 시기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권은 정당문제를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으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해명한 바 있습니다. 기존의 구분방식에 따르면, 진보정당은 주로 도시소자산계층(민족자본가와 중소상공업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이해되었고, 보수정당은 친미수구세력의 집권당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족민주운동이 건설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은 도시소자산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닙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은 노농대중의 동맹역량을 기본동력으로 하여 각계각층 대중들이 망라되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입니다.

남(한국) 민족민주운동권의 논자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해명한 통일전선이론에 따르면, 통일전선체의 유형으로는 단일조직형태의 통일전선체와 연합조직형태의 통일전선체가 있습니다. 나는 지역통일전선체는 느슨한 형태의 연대기구로 결성되어 차츰 단일조직형태로 강화·발전되어야 하고, 전역통일전선체는 느슨한 형태의 협의기구로 결성되어 차츰 연합조직형태로 강화·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족민주운동권은 단일조직형태의 지역통일전선체를 건설하는 임무를 더욱 정열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단일조직형태의 통일전선체는 곧 진보적 대중정당입니다. 통일전선노선에 따라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해야 전역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민족민주운동권이 건설하는 진보적 대중정당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한민전과 같은 특수한 지위에 있는 전위적 지역통일전선체가 아니라 자주, 민주, 통일을 강령으로 하는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입니다.

민족민주운동권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으로 확대·발전시키는 사업을 통해서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3만 5천 명 정도의 당원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진보적 대중정당은 10만 명 이상의 당원을 가진 정당으로 강화되어야 합니다.

문7

- 민주노동당은 올해 11월 1일 대의원대회에서 향후 5년 동안 견지하여야 하는 정치 및 조직 노선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당발전특위에서 제출한 안은 민주노동당을 정치노선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정당, 조직노선에서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을 지향하는 대중정당이 아니라 각각 ‘사회주의 정체성’과 ‘노동계급 중심성’을 강화하는 ‘사회주의 대안정당’을 지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 및 조직 노선은 우리 사회의 성격과 우리 변혁운동의 성격에 맞지 않는 과도한 정치노선이며 편협한 조직노선으로 봅니다. 더욱이 민주노동당 내의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명분아래 제출된 총론, 각론 격의 여러 제도들은 심각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며 전당적인 논쟁과 분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리아반도의 격동하는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대중정당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하며 주동적으로 자주통일투쟁, 민주개혁투쟁을 전개하며 2004년 총선에서 약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보적인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이자 자주적 민주정부의 담당자인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강화되고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변혁의 정세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한호석 소장님은 민주노동당의 당발전방향과 당면과업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현재 민주노동당에서 당내 주도권을 다투는 두 세력이 있습니다.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을 추구하는 민족민주운동세력과 노동계급운동의 강령을 추구하는 좌파급진주의세력입니다. 전자는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후자는 노동대중의 계급정당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근본적인 노선의 차이입니다.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의 정치세력화에 기초한 ‘노동자당’이라고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노동대중의 계급정당으로 인식하는 경우, 통일전선노선은 부정되며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하는 전략과업은 실종됩니다.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을 추구하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이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으로 인식하는 것은, 위에서 논하였던 바대로 이론·실천적으로 올바르며 과학적입니다. 반면에 노동계급운동의 강령을 추구하는 좌파급진주의세력의 견해와 주장은 제국주의 대 식민지 문제를 외면하고 자본 대 노동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으므로 그릇되며 비과학적입니다.

자본 대 노동 문제는 현 시기 모든 사회변혁운동이 해결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근본문제를 해결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하면 좌파급진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제국주의 지배체제, 자유민주주의개혁체제, 분단체제에 묶여있는 남(한국)사회에서 사회변혁운동이 자주, 민주, 통일의 강령을 외면하고 자본 대 노동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주의적 강령부터 들고 나오는 것은, 사회변혁운동의 합법칙적 발전경로에 무지한 소치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좌파급진주의세력이 제국주의 대 식민지 문제(근로대중의 민족적 해방)를 선차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자본 대 노동 문제(근로대중의 계급적 해방)부터 해결하려는 것은 사회변혁운동의 합법칙적 발전경로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좌파급진주의세력의 완고한 견해는, 집에 불이 났는데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고 주춧돌을 새 것으로 바꿀 생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좌파급진주의세력은 불을 끄고 있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주춧돌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낡은 집을 개량하려고 한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 비판을 가하고 있으나, 민족민주운동세력이 낡은 집을 개량하기 위해서 불을 끄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국주의 대 식민지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고 근로대중의 민족적 해방을 선차적으로 추구하는 민족민주운동은, 자본 대 노동 문제를 외면하고 근로대중의 계급적 해방을 반대하는 소자산계층의 민족개량주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민족민주운동이 만일 모든 사회변혁운동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자본 대 노동 문제를 외면한다면, 애초에 사회변혁운동으로 존립할 수 없음은 명백합니다. 문제는 사회변혁운동의 발전경로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좌파급진주의세력이 자본 대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반독점민주개혁과 민중민주주의실현의 강령을 외면하고 사회주의적 강령부터 추구하려는 것은 조급증의 발로입니다.

민족민주운동세력은 민주노동당의 발전전망과 관련하여 사상·이론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투쟁을 전개하여야 합니다. 좌파급진주의세력과의 논쟁을 통하여 그들의 주장의 비과학성과 몰역사성을 지적하고 다수 당원들에게 통일전선적 대중정당 건설노선의 정당성과 과학성을 이해시켜야 할 것입니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사회·정치적 기반은 운동권과 그 주변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운동권 정당’이라는 달갑지 않은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전선노선에 따라 확대·발전되는 진보적 대중정당은 ‘운동권 정당’으로 되어서는 안 되며, 어디까지나 근로대중의 권리와 이익을 옹호·대변하고 각계각층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대중정당으로 강화·발전되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그러한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대중조직과 농민대중조직이 중심에 서고 각계각층의 진보적 민주역량이 당조직에 망라되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은 연합조직형태의 지역통일전선체로 발돋움하고 있는 민중연대, 통일연대와의 관계도 잘 풀어나가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에 참가한 민족민주운동세력은 기존의 당조직을 지역통일전선의 요구에 맞게 강화·발전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문8

- 우리 운동대오만이 아니라 이남의 모든 민중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북미대결전의 향배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분명한 답을 줄 수 있는 정세분석가 중 한 사람이 바로 한호석 소장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발표된 한 소장님의 논문들은 2003년 북미대결전을 분석하고 총화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들의 하나라고 봅니다. 우리 운동대오는 이제 90년대 북미대결전이 아니라 북미 10년 대결전, 북미최후대결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올해가 그 역사적인 총화지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북미대결전이 절정에 이른 오늘, 누구보다도 한호석 소장님의 감회가 남다르고 만 가지 생각이 교차하리라 봅니다. 지난 10년간 북미관계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심층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한 대표적인 연구자가 바로 한호석 소장님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논문에서 여러 번 언급하신 바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있으리라 예견되지만, 이 기회를 빌어 지난 10년간의 북미관계에 대하여 오늘의 시점에서 총화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993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조·미 두 나라는 피차 국운을 걸고 치열한 대결을 벌여오고 있습니다. 조·미 관계의 본질은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결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결을 사상의 대결로 파악합니다. 조·미 대결은 몰주체적 세계관 대 주체적 세계관의 대결, 지배주의사상 대 자주사상, 그리고 개인주의 대 집단주의의 대결을 뜻합니다.

10년 동안 지속되어오고 있는 조·미 대결이 어떠한 결말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민족민주운동권에서는 물론 전사회적으로도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였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들에서 조·미 대결의 본질과 전개방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데 기초하여 조·미 대결은 북(조선)의 최후승리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왜 그렇게 보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의 대결에서 사회주의가 투쟁다운 투쟁을 하지 못한 채 와해되었던 역사적 경험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놓고 오늘의 조·미 대결을 보아야 합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현대제국주의진영 대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주의진영의 장기간 대치상태는 결국 소련식 사회주의의 와해로 끝났습니다. 소련식 사회주의가 와해된 근본원인은 오랜 세월을 두고 사상체계가 침식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주의의 운명은 사상문제에 달려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몰주체적 세계관이 비과학적인 반면 주체적 세계관은 과학적이며, 지배주의사상은 야만성의 극치인 반면 자주사상은 진리의 완성이고, 집단주의는 개인주의에 대해서 비할 바 없이 우월합니다. 그렇다면 주체적 세계관, 자주사상, 집단주의 위에 세워진 사회주의체제가 승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승리할 것으로 믿었던 사회주의체제가 와해된 것은, 그 체제가 세워진 사상체계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소련식 사회주의의 사상체계에는 주체적 세계관과 자주사상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였습니다. 물론 주체적 세계관과 자주사상이 전혀 없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의 사회주의이건 본질적으로 주체적 세계관과 자주사상과 무관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연관성이 아니라 확실성입니다. 어떤 특정한 사회주의가 주체적 세계관과 자주사상을 자기의 성립기반과 발전전략으로 확실하게 삼았는가 아니면 불확실하게 반영하는 수준에 머물렀는가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미 과거사가 되어버린 소련식 사회주의는 주체적 세계관과 자주사상을 불확실하게 반영하는 수준에 머물러있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소련식 사회주의를 이끌었던 지도세력이 페레스트로이카를 소리치다가 소멸했던 까닭은, 그들의 소련식 사회주의가 사상적 한계를 스스로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련식 사회주의가 주체적 세계관과 자주사상을 불확실하게 반영하였으므로 집단주의를 구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집단주의를 원리로 하여 성립된 사회주의체제가 집단주의를 구현하지 못하였으므로 더 이상 발전되지 못하고 결국 와해된 것도 역시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북(조선)의 조선식 사회주의는 어떠할까요? 내가 그 동안 연구한 결과를 종합하면, 조선식 사회주의는 주체적 세계관을 성립기반으로 하고 자주사상을 발전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집단주의원리를 구현하고 있는 체제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평가는 논리적 근거가 없이 북(조선)의 사회주의를 무조건 옹호·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련식 사회주의는 현대제국주의와 대치하기는 하였으나 치열하게 대결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식 사회주의는 현대제국주의와 단순히 대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대결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국운을 걸고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우는 대결입니다.

몰주체적 세계관에 대해서 주체적 세계관이 승리하고, 지배주의사상에 대해서 자주사상이 승리하며, 개인주의에 대해서 집단주의가 승리한다는 사회·역사관의 전망에 따르면, 조·미 대결에서 최후승리를 얻는 쪽은 분명히 북(조선)입니다. 지난 10년 동안의 조·미 대결을 되돌아보면 전술적 승리를 얻은 쪽은 북(조선)이었습니다. 북(조선)의 전술적 승리에 관해서는 이전에 내가 발표한 논문들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제국주의세력은 자기의 제국주의전략을 이른바 ‘세계화전략’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계화전략은 미국이 틀어쥐고 있는 현대제국주의체제를 세계화하는 전략입니다. 반제진영으로서 존재하였던 소련식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진 뒤에 현대제국주의체제는 고삐가 풀린 미친 소처럼 지구 곳곳에서 날뛰면서 인류의 자주성과 평화를 짓밟고 있으며, 힘이 약한 다른 나라들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예속화하고 파괴와 약탈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세력도 현대제국주의의 파괴와 약탈을 막아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다.

현대제국주의가 가장 심하게 난동을 부리고 있는 지역은 한(조선)반도와 중동입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은 지금 제국주의자들의 난동 때문에 아비규환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제국주의자들의 난동은 차츰 이란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한(조선)반도에서는 제국주의의 난동이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이 현대제국주의의 난동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은 제국주의자들의 난동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은 전세계 반제자주화운동에서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한(조선)민족의 반미자주화운동은 공격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공격양상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 유형은 북(조선)이 선군혁명의 기치를 들고 강력한 반미자주화전략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반사회주의, 반북(조선)책동에 커다란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둘째 유형은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이 민족자주의 기치를 들고 반미자주화투쟁을 전개하면서 미국의 지배주의책동에 커다란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미 대결은 북(조선) 대 미국의 대결로 좁게 보아서는 안 되며,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로 넓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한(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에서 가장 치열하고 가장 중심적인 것은 북(조선) 대 미국의 대결입니다. 북(조선) 대 미국의 대결에서 만일 북(조선)이 완전히 패하였다면, 과연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권이 단독으로 반미자주화운동을 변함없이 전개하여 승리할 수 있을까요? 나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만일 북(조선)의 반미자주화운동이 무너지면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세력의 반미자주화운동도 와해될 것입니다. 남북의 반제자주역량은 비록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하나의 민족단위로 결합되어 있는 동일한 주체역량이며,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과 북(조선)의 반미자주화운동은 비록 조직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지만 하나의 전역통일전선에서 동질성을 가지고 전개되는 하나의 사회변혁운동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언어와 역사, 문화와 정서, 생활환경과 생활습관에서도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하여야 하지만,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하여야 할 첫째 대목은 반제자주역량의 민족적 동질성입니다.

문9

- 향후 정세전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언제 어떻게 열리는가 입니다. 북미관계에 의해 남북관계도 좌우되고 ‘남남관계’도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북미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에 동북아의 정세와 나아가 세계정세도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정세변화의 중심에 바로 북미정상회담이 놓여있다고 봅니다. 우리 운동대오는 대체로 머지않아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그 자리에서 단계적 미군철거와 핵, 미사일 개발 중단이라는 이북과 미국의 요구가 일괄타결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일괄타결에서 단계적 미군철거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이면합의로 이루어지고 표면상으로는 북미수교와 경제협력, 그리고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새로운 평화보장체계의 확립의 내용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최근 6자회담에서 이북은 미국에 ‘노정도’를 제시하는 한편 핵억제력에 대한 위협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데 비해 미국은 이북의 공화국창건기념일을 앞두고 ‘양원합동결의’니 ‘평화협정’이니 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 1998년 공화국창건 50돌에 즈음하여 우주발사체(대륙간탄도미사일)를 발사하며 대미 군사적 공세를 취했던 이북이 2003년 공화국창건 55돌을 별다른 군사적 공세가 없이 지나갔다는 것은 북미정치협상이 어느 단계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북미관계의 전망, 구체적으로 북미정상회담의 시기와 의제에 대하여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 나의 판단으로는, 조·미 대결관계의 질적 변화가 두 가지 방향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전쟁과 협상입니다. 대치상태도 가능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대치는 질적 변화가 아니라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상유지입니다.

조·미 관계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방향은 조·미 정치협상입니다. 전쟁전략과 협상전략 가운데 우선적인 것은 후자입니다. 협상전략이 가능한 데도 전쟁전략에 기울어질 리는 없습니다. 정치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협상을 추진하는 것이고, 만일 협상의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지는 경우에 전쟁전략으로 기울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대적 국제관계에서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있습니다.

관심의 초점은 북(조선)이 추구하는 대미협상의 전략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데 집중됩니다. 그 전략목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북(조선)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책동을 물리치고 남(한국)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체제에서 벗어나서 한(조선)반도 전역에서 자주성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민족자주위업의 전국적 완성, 그 이외에 다른 목표는 없습니다.

어떤 무식한 논자들은 북(조선)이 경제지원을 받기 위해서, 또는 체제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 미국과 정치협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모두 잠꼬대 같은 소리입니다.

현대제국주의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곧 경제적으로 예속화된다는 뜻인데, 북(조선)이 조·미 정치협상에서 경제적 예속을 자초하려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북(조선)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기아와 빈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현대제국주의로부터 체제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 미국과 정치협상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잠꼬대 같은 소리입니다. 다시 한번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조선)의 대미협상의 전략목표가 오로지 민족자주위업의 전국적 완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조·미 정치협상은 현재 6자회담의 구도 안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북(조선)은 지난번 6자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알맹이 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점령이 암초에 걸리고,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궤도에 오르게 되자 더욱 정신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자회담이나 하면서 슬슬 시간을 끌어보려고 하는 작전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가 고집하고 있는 6자회담은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4단계 해결방안의 추진을 회피하려는 술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금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하고 친미예속국들의 군대를 대신 밀어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부시 정부의 이라크 파병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할까봐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조선)은 부시 정부를 더욱 강하게 압박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국의 태도가 조·미 정치협상에 유리하게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북(조선)이 부시 정부를 더욱 강하게 압박해야 그들은 조·미 양자회담으로 방향을 돌릴 것이며, 결국 조·미 정상회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클린턴 정부는 대통령 선거 직전 막판에 가서야 조·미 양자회담에 응하면서 조·미 정상회담에 나오려고 하였으나, 결국 불발로 끝났습니다. 부시 정부도 클린턴 정부의 경로를 따라가려고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예감도 듭니다.

여기서 문제는 북(조선)이 어느 때에 부시 정부를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부시 정부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는 조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취해질 것이므로, 그 시기를 예견하는 것은 힘듭니다. 다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임박하지 않은 시점에 조·미 양자회담이 재개되고 조·미 정상회담으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시기를 선택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미 관계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두 번째 방향은 조·미 전쟁입니다. 먼저 전쟁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조·미 전쟁은 일부 무식한 군사평론가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서울함락 정도의 수준이 절대로 아닙니다. 서울함락이라는 전쟁개념은 1950년에 일어났던 6.25 전쟁시기에나 통했던 낡은 개념입니다. 미사일과 핵무기가 오가는 현대전에서 서울함락이라는 낙후한 전쟁개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싱턴의 군사전문가들은 조·미 전쟁이 일어나면 조·미 쌍방은 물론 동아시아와 세계 전반에 커다란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공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도 북(조선)의 전쟁전략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쟁전략은 조·미 전쟁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눈 깜빡할 사이에 미국을 제압하는 전격전전략입니다. 이 사실은 몇몇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하여 이미 알려진 바 있습니다. 전쟁물자생산력이 미국에 비해서 크게 제한적인 북(조선)이 미국과 장기전을 벌이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므로 북(조선)에게 전격전전략은 유일한 선택입니다. 북(조선)의 전격전전략은 미국의 급소(전략거점)를 불시에 타격하여 전쟁수행력을 급속도로 마비시키는 전략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인민군이 전격전전략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군사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여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조선)의 전격전전략에 대응하여 개발한 것이 이른바 선제공격전략입니다. 전격전전략과 선제공격전략은 전략이론상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문제는 어느 전략이 전쟁에서 실제로 승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군사전략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전격전전략이건 선제공격전략이건 기동력이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조·미 두 나라 군대 가운데 어느 군대가 더 기동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승패를 예상하는 기준이 됩니다.

기동력은 몸집이 작고 단단한 군대에게 있는 것이지 몸집이 비대하고 허점이 많은 군대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집이 작고 단단한 사람이 기동력을 발휘하여 상대의 급소를 타격할 것입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간파한 미국은 미군을 몸집이 작고 단단한 편제로 개편하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속배치여단의 창설이 그것입니다.

미국이 신속배치여단을 배치하면 기동력이 생길 것이므로 북(조선)에 대해서 군사적 우위에 서게 될 것이 아닌가 하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예상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첫째, 미국이 창설하고 있는 신속배치여단은 기동력을 가질 수는 있으나 전략적 타격력을 갖지 못하는 전술공격단위입니다. 그에 비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전쟁전략은 미국을 공격할 때 전략적 타격을 전개하는 전격전전략입니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전쟁전략은 전격전전략만이 아니라 총력전전략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총력전전략이란 군대만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인민과 군대가 함께 수행하는 전략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전쟁은 군민총력전이 될 것입니다. 군민총력전을 수행하는 것은 말처럼 간단치 않습니다. 우선 사회 전반에 총력전 준비태세가 확립되어 있어야 하며, 군대와 인민이 일치단결하는 태세가 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군민총력전을 준비한 수준을 보자면, 북(조선)을 따라갈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사회는 개인주의, 집단이기주의, 지역이기주의가 매우 발달하였으므로 군민총력전 준비태세는 상상하지 못합니다.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미국의 군대와 인민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그들의 처지와 형편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전쟁전략문제를 검토하였을 때 나오는 결론은 조·미 전쟁이 일어날 경우에 이기는 쪽은 북(조선)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이 북(조선)을 상대로 전쟁도발을 위협하면서도 감히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근본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북(조선)은 승리할 수 있는 대미전쟁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요? 북(조선)이 대미전쟁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미국이 정세를 오판하여 북(조선)에게 선제공격을 가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조·미 정치협상이 완전히 깨지고 다른 가능성이 없어진 경우입니다. 조·미 정치협상이 완전히 깨지고 다른 가능성이 없어진 경우, 북(조선)은 협상 이전의 기나긴 대치상태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문10

-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는 정세라면 반드시 남북수뇌자회담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북미관계의 진전은 남북관계의 진전과 밀접히 맞물려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994년과 2000년의 남북수뇌자회담 성사가 그러했습니다. 우리는 1990년대 북미대결전과 남북관계를 분석, 총화하면서 1994년 말 김일성 주석의 서거가 없었다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의 수뇌자회담을 통해 오늘의 6.15공동선언을 합의했을 것이고 클린턴정권 시절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1995년경에는 낮은 단계 연방제로 진입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2000년 말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부시가 아니라 고어가 당선되었을 때에도 2001년경에는 낮은 단계 연방제로 진입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모든 우여곡절을 겪고 이제 정세는 2003년 북미대결전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습니다. 한호석 소장님은 북미정상회담과 남북수뇌자회담의 관계와 그 개최시기, 의제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한호석 소장님께서는 「조·미 관계 10년을 통해 본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에서 6.15공동선언의 조직적 구현체이며 현시기 상층 민족통일전선의 최고형태인 민족통일기구에 대하여 설명하신 바 있는데, 과연 제2차 평양회담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를 순조롭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인지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00년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남북수뇌회담이 약 6개월 먼저 열렸고 조·미 정상회담이 뒤를 이어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페리 보고서’가 제시한 방향을 따라서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였던 것에 비하여 현재 부시 정부는 ‘아미티지 보고서’가 제시한 6자회담에 매달리면서 조·미 정치협상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2000년 당시 김대중 정부는 남북수뇌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이었습니다만, 현재 노무현 정부는 그 문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부시 정부의 협상회피전술과 노무현 정부의 소극적 태도 때문에 조·미 정상회담과 남북수뇌회담이 순조롭게 개최될 가능성은 적어졌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일 정상회담도 더 이상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장애를 돌파하는 것은 북(조선)이 미국에게 강한 압박전술을 퍼부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북(조선)은 제네바 기본합의에 의해서 1994년 이후 지금까지 봉인되었던 영변의 핵시설을 재가동하고, 사용후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을 완전가동하여 무기급 플루토늄을 계속 대량으로 제조하고,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강공책을 써야 부시 정부를 조·미 정치협상에 다시 끌어올 수 있습니다. 조·미 정치협상을 회피하고 있는 부시 정부를 그 협상에 끌어내기 위한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지난 10월 2일 북(조선)의 외무성 대변인이 담화발표를 통해 6자회담의 파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핵억제력을 계속 유지·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부시 정부를 조·미 정치협상으로 끌어내려는 강공책의 일환으로 생각됩니다. 북(조선)은 지금부터 연말까지 약 석 달 동안 압박전술의 강도를 높여가면서 부시 정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2001년 9월 18일에 작성한 논문 「조·미 관계 10년을 통해 본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에서 나는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제의 공통성을 실체화하는 6.15 공동선언의 내용을 해석하면서 그 내용은 조국통일과업을 담당·추진하는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의미로 풀이하였습니다. 또한 나는 북(조선)이 그 정치적 주체를 민족통일기구라고 부르면서 2000년 10월 6일에 그 기구를 수립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민족통일기구는, 민족민주운동권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전역통일전선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려면 평양에서 남북수뇌회담이 다시 열려야 합니다. 민족통일기구는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기 이전까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조국통일과업을 수행할 것입니다. 민족통일기구가 수립되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높은 단계의 연방제, 곧 연방제의 완성단계로 들어설 것이 분명합니다.

2000년의 제1차 남북수뇌회담은 남북의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합의되고 추진되었는데, 당시로서는 남북의 다양한 교류·협력은 아직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앞으로 열리게 될 제2차 남북수뇌회담은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각 계층 대중들 사이의 교류·협력이 상당히 진전된 조건에서 열리게 됩니다.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각 계층 대중들 사이의 교류·협력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이루었고 날로 강화·발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민족민주운동권의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하층통일전선이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발전된 조건에서 제2차 남북수뇌회담이 열리고 민족통일기구의 수립을 합의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집니다.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각 계층 대중들 사이의 교류·협력의 기초 위에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한다는 말은 전역통일전선체가 지위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각 계층 대중들 사이의 교류·협력의 기초 위에서 민족통일기구를 수립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문제는 전역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민족민주운동권의 용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하층통일전선의 기초 위에서 상층통일전선이 형성되고 그로써 전역통일전선체가 수립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북(조선)의 강력한 대미압박전술에 의해서 조·미 관계가 풀리게 되고, 그에 따라 제2차 남북수뇌회담이 성사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처럼 중대한 시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민족민주운동권은 남북의 정당, 사회단체, 각 계층 대중들 사이의 교류·협력이 전면적으로 추진되도록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른바 하층통일전선을 한층 강화하고 그 기초 위에서 제2차 남북수뇌회담이 성사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문11

-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 수뇌자회담이 이어지는 격동의 코리아반도 정세는 분명 ‘남남관계’에서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특히 내년에 예정되어 있는 총선에는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년 총선은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아직 진보 대 보수의 대결에 이르지 못하고 개혁 대 수구의 대결로 치러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과연 민중의 일반민주개혁의 요구를 반영한 진보정당과 개혁세력이 의회과반수를 점하게 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만약 일반민주개혁을 요구하는 정치세력이 의회과반수를 넘게 될 경우에는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비롯한 일반민주개혁이 실현되며 남측 내 전반적인 정세가 크게 전변될 것이라 예견됩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집권 첫해에 오히려 집권여당이 정치적, 법률적 타격을 입고 야당이 기승을 부리는 희한한 상황이 조성되는가 하면 친미극우분자들이 반북 집회와 시위를 벌이며 최후저항하는 국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의 단계적 미군 철거와 남북수뇌자회담의 낮은 단계 연방제 합의, 그리고 총선 이후의 국가보안법 철폐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은 오늘의 코리아반도가 얼마나 격동적인 정세에 놓여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내년 총선에 대한 전망과 함께 민족민주세력을 강화하고 친미수구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총선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현재 남(한국)의 정치권에서는 친미수구세력과 친미개혁세력의 모순이 전면에 드러나 있습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양대 세력이 모두 이합집산을 하고 있습니다. 친미수구세력과 친미개혁세력이 판을 치는 정치권에 반미자주세력이 자기의 모습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이 진보적 대중정당의 당면목표입니다.

문제는 반미자주세력의 힘이 아직 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힘이 약한 반미자주세력이 강해지는 비결은 단결입니다. 약자의 무기는 조직적 단결밖에 없다는 것은 언제나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조직적 단결의 가장 유력한 형태는 통일전선입니다. 민족민주운동은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을 통일전선노선에 의거한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강화·발전시키는 당면과업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총선에서 성과를 얻으려면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총선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으려면 반독점민주개혁을 지향하는 근로대중의 요구를 옹호·대변하는 당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근로대중의 일할 권리, 병치료를 받을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문화정서생활의 권리가 보장되는 반독점민주개혁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도를 근로대중에게 제시하고, 근로대중이 반독점민주개혁을 요구하도록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또한 친미개혁세력이 추구하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적 개혁은 반독점민주개혁의 요구와 충돌하고 있는 기만적 개혁이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추구하는 반독점민주개혁은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제도와 사회질서를 세우는 정치과업입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총선에 참여하는 문제와 자유민주주의 의회에 근로대중이 진출할 수 없다는 기존의 공식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만일 진보적 대중정당이 내년 총선에서 선전하여 원내의석을 확보한다면 자유민주주의 의회에 근로대중이 진출할 수 없다는 기존의 공식은 폐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의회에 근로대중이 진출할 수 없다는 기존의 공식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요? 자유민주주의 의회에 근로대중이 진출할 수 없다는 기존의 공식이 뜻하는 바는, 진보적 대중정당이 원내의석을 확보하는 의미가 아니라, 근로대중의 정치세력이 선거를 통하여 자유민주주의 의회를 장악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선거를 통하여 자주, 민주, 통일의 전략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우경적 편향에 빠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진보적 대중정당의 자유민주주의 의회 진출이 가지는 사회·정치적 의의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면서 지역통일전선의 대중투쟁에만 집중하는 것은 좌경적 편향에 빠지는 것입니다.

나는 지역통일전선의 대중투쟁과 자유민주주의 의회의 진출을 배타적 모순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은 지역통일전선의 대중투쟁을 전략적 중심에 두고 자유민주주의 의회 진출을 전술적으로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진보적 대중정당이 자유민주주의 의회에 진출하는 목적은 원내의석을 몇 자리 얻어내고 잘 하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통일전선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함입니다. 의회진출전술은 지역통일전선 강화전략에 복무합니다.

문12

- 마지막으로 자주, 민주, 통일 운동에서 선차적으로 틀어쥐어야 할 주선인 반미자주화운동에 대하여 질문하고자 합니다. 한호석 소장님의 논문들에 밝혀진 바대로, 우리의 변혁 및 통일 운동은 한마디로 선자주화노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북측의 반미자주역량만이 아니라 남측의 반미자주역량까지 하나가 되어 투쟁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는 과제입니다. 북측의 반미자주역량이 대미 군사적, 정치적 공세를 취하고 있는 오늘 남측의 반미자주역량 또한 대미 대중적, 정치적 공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6.15공동선언의 자주의 원칙과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미투쟁에 합세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반미정세이고 주체역량인 것입니다. 한때 한 소장님의 견해는 ‘북미결정론’이니 비자주적이니 뭐니 하며 부당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곡해와 비방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판은 반국적 관점과 주관주의에서 비롯된 명백한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이북의 선군정치가 미국의 전쟁책동을 억제하고 나아가 자주통일을 촉진한다는 견해와 민족공조를 민족대단결로 발전시켜 반미투쟁을 가속화하여야 하는 견해, 그리고 미군철거를 앞당기는 한편 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남측의 반미자주역량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는 한 소장님의 견해가 이렇게 왜곡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한호석 소장님의 견해를 오늘 대담을 마무리하는 말씀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 민족민주운동권의 일부 논자들은 나의 견해를 ‘조·미 결정론’이라고 오해하면서 내가 마치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의 지위와 역할을 무시 또는 홀시하는 것처럼 비판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민족민주운동권 일각에서 아직도 완전히 청산되지 않는 두 가지 오류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 오류는 이른바 ‘조·미 결정론’과 ‘지역주의적 결정론’입니다.

‘조·미 결정론’은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조·미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조·미 관계에서 결정된다는 말은 북(조선)이 조·미 대결을 승리로 이끌어감으로써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지역주의적 결정론’은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를 주도한다(또는 현재는 주도하지 못하지만 주도해야 하며 앞으로 주도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첫째,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변화·발전시키는 것은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입니다. 그 역량은 북(조선)의 반미자주화운동과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세력의 반미자주화운동을 포괄하고 있는 민족주체역량입니다. 나의 견해를 ‘조·미 결정론’이라고 오해하면서 비판하는 논자들은 내가 북(조선)의 반미자주화운동만을 중시하면서 마치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변화·발전시키는 민족주체역량(남북의 반미자주역량)을 무시 또는 홀시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민족주체적 관점에 서서 민족주체역량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변화·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나의 견해를 ‘조·미 결정론’이라고 오해하면서 비판하는 논자들이야말로 민족주체적 관점을 세우지 못하고 있으며 민족주체역량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견해를 ‘조·미 결정론’이라고 오해하면서 비판하는 논자들은, 북(조선)이 조·미 대결을 승리로 이끌어감으로써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결정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나의 견해를 비판하는 논자들이 말하고 있는 ‘조·미 결정론’은, 북(조선)이 조·미 대결에서 승리하는 문제를 한(조선)반도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의 주도권을 누가 장악하느냐 하는 문제로 끌고 갑니다. 그들은 북(조선)이 조·미 대결을 승리로 이끌어 가는 경우 반미자주화운동의 주도권이 북(조선)에게 넘어가고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에게는 반미자주화과업을 수행할 여지가 없어져서 결국 반미자주화과업이 북(조선)에 의해서 완수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조선)이 조·미 대결을 승리로 이끌어 가면 반미자주화운동의 주도권이 북(조선)에게 넘어간다고 예상하고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반미자주화운동을 주도해야 한다(또는 주도할 수 있다)는 ‘지역주의 결정론’에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견해야말로 반미자주화과업에 대한 주체적 관점과 태도를 잃어버린 천박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며,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이 수행하는 반미자주화과업을 주도권 문제로 규정하려는 매우 위험한 발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북(조선)이 조·미 대결을 승리로 이끌어 가면, 반미자주화운동의 주도권이 북(조선)에게 넘어가서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이 자기의 투쟁과업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 전역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이 비약적으로 강화·발전되고 상승세를 타게 됩니다. 조·미 대결에서 북(조선)이 승리하면, 남(한국)에서 주한미군을 전면적으로 철거하고 미국의 지배체제를 철폐하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도 승리의 결정적인 국면에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나의 견해를 비판하는 논자들은 자기들이 말하고 있는 ‘조·미 결정론’에서 ‘결정’이라는 개념을 북(조선)의 자주위업이 완성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나는 ‘결정’이라는 개념을 한(조선)민족의 민족자주위업을 완성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나는 한(조선)민족이 수행하고 있는 민족자주위업은 남과 북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역차원의 위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조선)민족은 민족자주위업의 전국적 완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민족주체적 관점에 서서 민족자주위업의 전국적 완성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나의 견해를 ‘조·미 결정론’이라고 오해하면서 비판하는 논자들이야말로 민족자주위업의 전국적 완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2년 동안 몇몇 논자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진행하였던 논쟁의 주요쟁점이 민족자주위업의 전국적 완성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제기되는 전역차원에서의 역량배치 문제, 국가역량과 사회운동역량의 지위와 역할을 해명하는 문제였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전역차원에서 역량을 배치하는 문제, 국가역량과 사회운동역량의 지위와 역할을 해명하는 문제가 민족자주위업의 전국적 완성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전략문제라고 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그처럼 중요한 전략문제를 이론적으로 해명할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나에게는 그럴만한 이론전개능력도 아직 없습니다. 나는 앞으로 남(한국) 민족민주운동권의 활동가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생산적인 논쟁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여 그 전략문제에 관한 이론적 해명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바랍니다.(통일학연구소 소장 한호석, 2003. 10. 7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