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은 부시 정부에 의해서 바뀌었는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시작하며

2. '아미티지 보고서'와 '제2의 페리 보고서'

3. '군사부문의 혁명(RMA)'과 주한미군 철수문제

4. 한(조선)반도 정세의 변화전망

5. 맺으며

 

1. 시작하며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이 클린턴 정부의 그것과 비교하여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이해가 옳은 것일까? 클린턴 정부의 온건한 한(조선)반도정책이 부시 정부의 강경한 한(조선)반도정책으로 바뀌었다는 '정책변화론'이 지금 내외언론들 사이에서 하나의 지배적인 견해로 되어있지만, 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정책변화론'은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내놓은 결론이라고 하기보다는 언론들 속에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상식적 이해로 보인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정책변화론'이라는 상식적 이해를 넘어서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이 과연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는 하는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점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을 논할 때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정책이 어떤 목적에 의해서 수립되고 추진되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정책이라는 개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방책이라는 뜻을 지닌다.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은 미국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자기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립하고 추진하는 방책인 것이다.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을 논할 때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어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가 하는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정치적 목적을 본질이라고 한다면, 정책의 수립과 추진은 그 본질이 드러내고 있는 현상들이다. 다양한 현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주체의 다양한 전술이고,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주체의 전략이다. 현상은 특정계기에 변화되는 반면, 본질은 현상이 변화한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은 워싱턴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내외정세가 바뀜에 따라 변화되지만, 미국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하여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은 한(조선)반도정책이 바뀐다고 해서 그것과 함께 변화되지 않는다. 미국의 정치적 목적이 바뀌려면 미국과 한(조선)민족의 전략관계에서 질적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셋째, 본질과 현상이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를 논하는 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논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넷째, 세상만물이 고립되어 있지 않고 상호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은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정책과 상호연관되어 있다.

나는 이 글의 주제를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이 무엇인가를 짚어보고,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과 아시아정책의 상호연관성을 파악하는 데로 집중시키려고 한다. 그 주제를 탐구하기 위하여 나는 미국의 전략가들이 작성한 몇 개의 정책보고서를 분석하였다.

 

2. '아미티지 보고서'와 '제2의 페리 보고서'

 

미국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하여 추구하고 있는 정치적 목적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나는 미국의 전략가들이 발표한 한(조선)반도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분석함으로써 그 목적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발표한 한(조선)반도 정책보고서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하여 미국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을 포괄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낸 전략문서라고 지목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북(조선)정책 재검토: 탐색과 제안(Review of United States Policy toward North Korea: Findings and Recommendations)」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 겸 국무부 특별보좌관이었던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를 수장으로 하는 정책연구집단이 작성한 그 보고서는 세상에 '페리 보고서(Perry Report)'로 알려져 있다. 그 보고서는 1999년 9월 15일에 대통령 클린턴에게 제출되었고, 10월 12일에 그 발췌·요약된 내용이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핵심내용은 국가기밀로 남아있다.

'페리 보고서'에는 미국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하여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이 어떻게 드러나 있을까? '페리 보고서'의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하여 추구하는 가장 중대한 정치적 목적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중단시키려는 것이다. '페리 보고서' 자체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려는 동기에 의해서 작성된 전략문서다.

1993년도에 미국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제기한 이후 지금까지 10년 동안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문제에 집중되었다. 1993년도 이후 10년 동안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조·미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변화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93년도 이후 10년 동안의 한(조선)반도 정세를 조·미 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여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미국이 추진해오고 있는 한(조선)반도정책을 분석하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에서 중심적인 내용은 한·미 관계나 남북 관계가 아니라 조·미 관계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페리 보고서'는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채택된 조·미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를 이행함으로써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고, 2000년 10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Joint Communique)을 이행함으로써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책략을 담고있다. 그 책략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weapons of mass destruction, WMD)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페리 보고서'가 드러냈던 미국의 정치적 목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킬 수만 있다면, 북(조선)이 제기한 요구, 다시 말해서 조·미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는 요구까지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윌리엄 페리의 머리 속에 들어있었던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의 기본방향이었다.

2000년 10월에 조명록 차수의 워싱턴 방문과 조·미 공동성명 채택, 당시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의 평양방문이 잇달아 성사되었고, 당시 대통령 클린턴(William J. Clinton)의 평양방문이 계획되었다. 이전에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일련의 사변이 '페리 보고서'가 발표된 뒤 약 1년 동안의 기간에 연달아 일어났던 까닭을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클린턴 정부가 조·미 기본합의를 이행함으로써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리 보고서'는 두 가지 결정적인 오류와 한 가지 장애요인을 안고 있었다.

1) '페리 보고서'는 북(조선)이 조·미 정치회담을 통해서 추구하는 전략목표에 대해서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오류를 범했다. '페리 보고서'는 너무 주관주의적이고 일방적이었던 것이다.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페리 보고서'가 한(조선)반도정책을 그렇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윌리엄 페리를 수장으로 하는 정책연구집단이 조·미 기본합의를 이행함으로써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였기 때문이다.

2) '페리 보고서'는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보고서는 한(조선)민족이 한(조선)반도 정세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일어서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현재상태 그대로 유지하려는 비주체다. '페리 보고서'는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과 대립관계에 있는 비주체에 의해서 작성된 전략문서다.  

'페리 보고서'가 나온 이후, 200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3년 동안의 기간에 한(조선)민족은 두 가지 역사적 사변을 겪으면서 자신이 정세를 변화시키는 주체임을 거듭 확인하였다.

첫 번째 일어난 역사적 사변은 6.15 공동선언이 발표됨으로써 조국통일위업에 대한 대중적 각성이 급속히 증대되고 그에 따라 조국통일운동이 힘있게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특수현상을 조국통일 실현을 위한 민족공조라고 부른다.

두 번째 일어난 역사적 사변은 전쟁시기 미군의 양민학살사건과 미국의 한(조선)반도전쟁 도발책동이 폭로되고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참사사건이 일어나자 민족자주위업에 대한 대중적 각성이 급속히 증대되고, 그에 따라 반미자주화운동이 대중적 차원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특수현상을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민족공조라고 부른다.

'페리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지난 3년 동안 두 가지 역사적 사변이 주체의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주체의 운동을 급진전시켰는데도, '페리 보고서'는 한(조선)민족에게 그러한 두 가지 역사적 사변이 일어날 가능성을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3) 워싱턴의 정관계에 포진하고 있는 클린턴 정부의 반대파들이 '페리 보고서'를 비판적으로 대하면서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이 그 보고서가 제시한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월리엄 페리를 수장으로 하는 정책연구집단이 '페리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던 1999년에 미국 국방대학교(National Defense University)에서는 주목할만한 움직임이 있었다. 현재 국무차관인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와 현재 국방차관인 폴 월포위츠(Paul D. Wolfowitz)가 주도하는 정책연구집단이 결성되어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 문제를 연구하였던 것이다.

그들의 연구결과는 1999년 3월 4일 당시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였던 아미티지가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 벤저민 길먼(Benjamin A. Gilman)에게 제출한 보고서 「북(조선)에 대한 포괄적 접근(A Comprehensive Approach to North Korea)」로 정리되었다. '아미티지 보고서(Armitage Report)'로 알려진 그 보고서는 클린턴 정부가 채택한 조·미 기본합의가 북(조선)의 핵개발사업 가운데 일부만을 동결시켰을 뿐이며, 북(조선)은 핵무기 개발을 계속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하면서, 핵무기 개발 이외에 미사일 개발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보고서는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된 이른바 '포괄적 종합안(comprehensive package)'을 제시하였다. (1) 조·미 관계에서 외교적 주도권 장악, (2) 남(한국), 일본과 공조체제 유지, (3) 중국의 협조, (4) 6자회담 추진, (5) 조·미 국교수립이 그것이다. 나는 미국이 '아미티지 보고서'에서 제시된 '포괄적 종합안'을 추진해 가는 과정을 '아미티지 프로세스(Armitage Process)'라고 부른다.

일부 분석가들은 '아미티지 보고서'가 북(조선)에 대한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북(조선)에 대한 봉쇄조치와 선제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아미티지 보고서'가 '페리 프로세스'를 차단하고 결국 조·미 관계를 대결로 몰아가려는 적대적 책략을 제시하였다고 이해하였으나, 그것은 그 보고서의 전반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확대해석으로 보인다.

이른바 '두 개의 길 전략(two-path strategy)'을 담고있는 '페리 보고서'도 '제1의 길 전략'에서 외교적인 노력으로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했을 경우, '제2의 길 전략'은 다른 동맹국들과 공조하여 북(조선)에 대한 봉쇄조치를 취할 것임을 언급하였다. '페리 보고서'가 언급한 '제2의 길 전략'에서 나오는 봉쇄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공개본에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으나, '아미티지 보고서'가 말하는 선제공격과 그에 따른 전면전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페리 보고서'와 '아미티지 보고서'는 일차적으로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외교적 노력으로 중단시켜야 한다고 지적하였으나, 만약 외교적 노력이 실패할 경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논하였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페리 보고서'와 '아미티지 보고서'는 기본방향에서 서로 일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아미티지 보고서'는 '페리 프로세스'를 차단한 것이 아니라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아미티지 보고서'와 '페리 보고서'의 가장 커다란 차이는 전자가 후자의 전제가 되었던 조·미 기본합의의 한계를 지적하였다는 점이다.

'아미티지 보고서'와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의 상관성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요점은 세 가지다.

1) '페리 보고서'와 '아미티지 보고서'의 기본방향이 서로 일치하고 있으므로, 오늘 부시 정부가 '아미티지 보고서'가 제시하였던 다섯 가지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결국 부시 정부가 비록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했으나 '페리 프로세스'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음을 뜻한다.

만일 부시 정부가 '페리 프로세스'를 완전히 차단하는 경우, 마지막 선택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이다. 부시 정부도 클린턴 정부와 마찬가지로 한(조선)반도에서 자기들이 취하게 될 마지막 선택인 전쟁도발을 생각하였으나, 조·미 전면전에서 미국이 재기불능의 전략적 패배를 당할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으므로 섣불리 전쟁을 도발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조선)반도에서 섣불리 전쟁을 도발하지 못하게 된 부시 정부는 '아미티지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1993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미국이 조·미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킬 때마다 한(조선)반도의 전쟁위기설이 나돌았으나 결국 미국이 북(조선)의 정치적 요구에 굴복하고 조·미 정치회담에 끌려나오는 똑같은 유형의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서 밝혀진다.

2) 클린턴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과 부시 정부의 그것을 비교할 때 드러나는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페리 프로세스'를 추진하느냐 차단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조·미 기본합의를 인정하느냐 부인하느냐 하는 문제다. 클린턴 정부는 조·미 기본합의를 인정한 기초 위에서 '페리 프로세스'를 추진하였다면, 부시 정부는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조건에서 '아미티지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3) 오늘 부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미티지 프로세스'는 남(한국) 및 일본과의 공조, 그리고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어 6자회담을 개최하는 단계에 이미 이르렀으며, 6자회담 이후에는 조·미 국교수립이라는 마지막 단계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페리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정작 '페리 프로세스'를 차단하려고 했던 것은 '아미티지 보고서'를 작성한 집단이 아니라 그 보고서가 지적하였던 조·미 기본합의의 한계를 조·미 기본합의의 파기로 끌어가려는 또 다른 집단이었다. 그 집단은 북(조선)이 조·미 기본합의 채택 이후에도 핵무기 개발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다는 증거, 특히 우라늄 농축기술을 획득하였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여 배포함으로써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고 '페리 프로세스'를 차단하려고 획책하였다.

조·미 기본합의의 파기와 '페리 프로세스'의 차단을 획책하였던 대표적인 집단은 연방하원의 공화당계 의원들로 구성된 '북(조선) 자문단(North Korea Advisory Group)'이다. 그 자문단이 작성하고, 1999년 10월 29일에 연방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위원장 벤저민 길먼이 하원의장 데니스 해스터트(J. Dennis Hastert)에게 제출한 형식으로 세상에 공개된 보고서 「미국 연방하원의장에게 제출한 북(조선) 자문단 보고서(North Korea Advisory Group Report to the Speaker U.S. House of Representatives)」는 '페리 프로세스'를 차단하려는 책동들 가운데서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 보고서는 북(조선)의 핵무기, 생화학무기, 미사일을 포함하는 대량파괴무기 전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북(조선)이 우라늄농축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문단이 제기하였던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설은 원래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작성한 비공개 보고서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중앙정보국은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보유설에 관한 자기의 비공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2002년 10월초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회담에서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가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보유설을 제기한 뒤에야 언론에 공개하였다.

2002년 11월 19일에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되는 형식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던 중앙정보국의 제목 없는 정보자료(untitled CIA estimate)에 따르면, 북(조선)은 2000년에 우라늄농축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하였고, 2001년에는 우라늄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관련설비를 구입하였다고 하며, 북(조선)이 현재 건설하고 있는 우라늄농축시설이 앞으로 5년 안에 완공되면, 1년에 2개 이상의 핵무기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설은 '페리 프로세스'를 차단하려는 의도에 따라 조작된 것이었으나, '페리 프로세스'를 완전히 차단하는 데서는 실패하였고 결국 조·미 기본합의만 파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려있었던 부시 정부도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설을 제기함으로써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였다.

그러나 '페리 프로세스'를 차단하려고 획책한 집단이 유포하였던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설은 중앙정보국가 조작한 허구다. 일반적으로, 고농축 우라늄(HEU)을 원자력발전에 사용하려는 나라들은 우라늄농축기술을 자체로 개발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야 한다. 만일 북(조선)이 고농축 우라늄을 가지고 핵무기를 만들려고 하였다면, 우라늄농축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감시망을 뚫기에 매우 불리하고 그 대신 농축우라늄을 수입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국제암시장에서는 농축우라늄 1kg에 미화 8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이를테면 2001년 7월 18일 흑해의 항구도시 바투미의 한 호텔에서 유리병에 담긴 1.7kg의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가방이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러시아의 핵동력 잠수함에서 훔쳐낸 고농축 우라늄으로 추정되었다.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을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일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탄두를 제조하려고 하였다면, 농축우라늄시설을 건설하는 것보다 국제암시장에서 고농축우라늄을 사들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유리하였을 것이며 핵무기 개발기간을 크게 단축하였을 것이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설을 제기하면서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기 훨씬 전에 북(조선)의 우라늄농축기술 개발설을 유포함으로써 조·미 기본합의를 사실상 파기하려고 하였던 몇몇 집단의 책동은 미국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이 '페리 보고서'가 지시한 방향으로 진전되지 못하게 하였던 장애요인이었다.   

위에서 지적한 결정적인 오류와 장애요인 때문에 '페리 보고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워싱턴의 정관계에서 '페리 보고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윌리엄 페리는 조·미 기본합의를 다시 검토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윌리엄 페리의 발의에 따라서 2000년 9월, 2001년 1월과 2월에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었다. 그 일련의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 2001년 4월에 발표된 「기본합의에 대한 검증(Verifying the Agreed Framework)」이라는 정책보고서다. 문제의 정책보고서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국제안보협력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Security and Cooperation)와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 산하의 세계안보연구소(Center for Global Security Research)가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정책보고서는 조·미 기본합의를 재검토한 정책보고서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 정책보고서는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2의 페리 보고서'라고 불린다.

2001년 5월 워싱턴에 있는 우드로우 윌슨 국제학술단체(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는 한(조선)반도 문제에 관한 비공개 토론회를 열었다. 그 토론회에서는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을 포함한 전략가 50여 명이 '제2의 페리 보고서'를 기본자료로 하여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토론을 벌였다. 이것은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이 클린턴 정부 시기에 작성된 '페리 보고서'가 아니라 새로 작성된 '제2의 페리 보고서'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001년 5월 이후,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의 추진방향이 실제로 북(조선)의 핵시설에 대한 이른바 '확실한 검증'의 요구, 그리고 조·미 기본합의에 대한 일방적 파기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부시 정부의 정책추진방향이 '제2의 페리 보고서'에 의해서 설정되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2의 페리 보고서'의 핵심내용은 무엇일까? 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였다.

1) 미국 정부는 북(조선)에게 핵개발 활동에 관련하여 수정된 내용의 보고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2) 미국 정부는 북(조선)에게 국제원자력기구의 '추가의정서'에 가입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추가의정서'는 1997년도에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에서 채택된 매우 강화된 사찰방식에 대한 합의로서 핵물질이 없는 원자력시설에 관한 정보도 제공해야 하고, 환경시료를 채취하기 위한 불시사찰을 진행하는 등 이전의 핵안전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핵사찰에 비해서 훨씬 강화된 사찰방법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페리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북(조선)을 '추가의정서'에 가입시킨 뒤에, 국제원자력기구로 하여금 북(조선)의 사찰대상을 영변 핵시설 이외의 시설로 확대하고 사전통보 없는 불시사찰을 진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1) 조·미 기본합의 이행이 지연되는 것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검증하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포 경수로가 완공된 이후에 조·미 기본합의 이행이 지연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2) 영변 핵시설의 폐연료봉을 제거하지 못하면 그것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에 사용하는 물질을 보유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3)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지 못하면 그것은 북(조선)이 그 핵시설을 나중에 다시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4) 신포 경수로에 적용될 핵안전조치들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거나 북(조선)이 그 안전조치의 이행을 방해하는 경우,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안전협정은 효력을 제한 받게 될 것이다.

5) 신포 경수로가 가동된 이후에 북(조선)이 신포 경수로의 핵활동과 관련하여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거나 또는 은밀하게 위반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위에서 지적한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조·미 기본합의는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는 데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페리 보고서'는 조·미 기본합의를 전제로 하여 작성된 전략문서이므로, '제2의 페리 보고서'가 조·미 기본합의를 사실상 부인한 것은,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정책이 조·미 기본합의를 외면하고 '제2의 페리 보고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여나갈 수밖에 없었음을 뜻한다.

실제로 부시 정부는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신포 경수로 건설사업을 사실상 중단하였다. 부시 정부가 '한(조선)반도 에너지개발기구(Korean Peninsul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 KEDO)'를 해체하면 신포 경수로 건설사업은 완전히 중단될 것이다.

부시 정부가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까닭에 대해서는, 북(조선)을 압박하기 위해서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견해는 설득력이 없다. 나의 판단으로는, 부시 정부가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까닭이 북(조선)을 압박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위에서 논한 대로, 미국이 한(조선)반도를 대상으로 하여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적은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이며, 그러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클린턴 정부가 채택한 것이 조·미 기본합의였다. 1994년 10월에 조·미 기본합의가 채택될 때, 클린턴 정부가 생각하였던 것은 다음과 같다.

1) 1994년부터 1999년까지의 기간에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이 붕괴위기에 처해있다고 판단하였고, 이른바 '체제붕괴'의 가능성을 '연착륙(soft landing)'의 가능성으로 전환시키는 한편, 북(조선)을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2) 클린턴 정부의 시각에서 붕괴위기에 처해 있는 것으로 보였던 북(조선)은 조·미 기본합의의 이행이 완료되기 전에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므로 체제가 붕괴하기 전까지 핵시설을 동결시키기만 하면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조·미 기본합의가 채택된 이후의 상황은 클린턴 정부의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북(조선)은 클린턴 정부가 떠들었던 이른바 '연착륙'과는 상관없이 사회주의 체제를 옹호·고수하면서 '고난의 행군'을 끝냈다. 북(조선)은 선군혁명노선과 강성대국 건설의 추진을 선포하고, 곧이어 김대중 정부와 손잡고 6.15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사회주의 국제시장의 붕괴파장으로 한때 휘청거렸던 북(조선)의 경제도 차츰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클린턴 정부가 임기 8년 동안 줄기차게 기대하였던 북(조선) 사회주의 체제의 '연착륙' 조짐은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클린턴 정부는 붕괴위기에 빠진 북(조선)을 '연착륙'으로 유도하면서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려 했던 자기의 전략이 빗나간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미 기본합의가 채택될 때, 클린턴 정부가 북(조선)에게 약속했던 것은 신포 경수로의 건설이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신포 경수로의 발전용량은 영변 흑연감속로의 발전용량보다 무려 4백배나 크다. 신포 경수로의 발전용량은 조·미 기본합의에 의해서 가동이 중단된 영변의 흑연감속로와 건설공사가 중단된 다른 두 흑연감속로의 발전용량을 모두 합한 것보다 열 배가 크다. 따라서 장차 신포 경수로에서 추출할 플루토늄(PU)은, 미국이 가동을 중단시키거나 건설공사를 중단시킨 흑연감속로 세 기에서 추출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합한 것보다 두 배나 많게 된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신포 경수로가 가동된 뒤 15개월이 지나 첫 번째 연소주기가 끝났을 때 플루토늄 3백30kg이 추출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북(조선)이 그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면 핵탄두 75개를 제조할 수 있다.

1994년 당시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플루토늄 추출을 중단시키는 것을 당면한 목표로 삼았던 클린턴 정부가 그로부터 9년 뒤인 2003년까지 커다란 경수로를 건설해줌으로써 엄청나게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클린턴 정부가 경수로를 건설해주겠다고 한 약속이 어불성설이라는 증거는 그것 말고도 더 있다. 다른 나라에 경수로를 건설할 때 제기되는 미국의 법적 규제에 관한 것이다. 우선 미국의 '원자력법'이 문제의 초점으로 떠오른다. 신포 경수로 건설공사가 지연되어 완공기일이 2008년이나 2009년으로 연기된다고 했을 때, 미국의 원자력발전업체들은 그 경수로에 들어갈 미국산 핵심부품들과 작동기술을 예정된 공사기일에 맞춰 북(조선)에 수출해야 한다.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기업들이 자국산 핵심부품과 작동기술을 북(조선)에 수출하려면 우선 조·미 양국 정부가 원자력협력협정을 체결해야 하며, 미국의 핵안전규제위원회는 늦어도 2004년까지 수출을 허가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2008년 또는 2009년으로 연기한 완공기일에 맞춰 경수로 공사를 진척시킬 수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하는 '원자력협력협정'은 연방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또한 신포 경수로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피해보상을 미국 정부가 떠맡아야 하는 법적 문제도 조·미 사이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2000년 5월 18일 미국 연방하원은 신포 경수로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피해를 미국 정부가 보상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이 채택되자 제너럴 일렉트릭(GE)이 제작한 3천만 달러짜리 증기터빈은 신포 경수로 공사현장에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지휘에 따라 줄이나 서고 돈이나 대주고 있었던 남(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말만 믿고 있다가 경수로 건설이 중단되는 바람에 황당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조·미 기본합의는 부시 정부에 의해서 파기되기 이전인 클린턴 정부 시기에 이미 이행중단상태에 빠져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정부는 지진부진 끌어오던 경수로 건설계획을 파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곤경에 몰렸던 것이다. 곤경에 빠진 클린턴 정부는 어느 새 임기가 끝나 퇴진하였고 부시 정부가 등장하였다. 결국 경수로 건설을 중단함으로써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악역'은 부시 정부가 떠맡게 된 것이다. 만일 클린턴의 뒤를 이어 고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민주당의 집권이 연장되었다고 해도, 고어 정부는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경수로 건설을 약속하고 추진하였던 클린턴 정부를 '온건파'라고 생각하고, 경수로 건설계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부시 정부를 '강경파'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건전개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페리 보고서'가 오류와 장애요인 때문에 맥을 추지 못하고 그 대신 '제2의 페리 보고서'가 등장하였던 2000년 초부터 2002년 말까지 2년 동안의 기간은, 미국이 신포 경수로 건설사업을 중단하고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페리 보고서'가 외면당하고 '제2의 페리 보고서'가 등장했어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려는 미국의 정치적 목적이다. 그렇다면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무엇을 하였을까?

조·미 기본합의의 파기는, 신포 경수로를 건설해주기로 한 약속을 파기한 것만을 뜻하지 않으며,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약속을 파기한 것도 뜻한다. 조·미 기본합의가 파기되는 것과 동시에 조·미 관계가 정상화 추진궤도를 이탈하여 또 다시 대결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하여 취해졌던 조·미 공동성명의 채택은 부시 정부에 의해서 무효화되었다.

부시 정부는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했으나, 그 합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내놓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새로운 전략을 내놓을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한다. 부시 정부의 전략가들은 조·미 기본합의를 대체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2의 페리 보고서'는 '페리 보고서'가 제시한 전략을 대체하는 새로운 전략을 담고 있는 전략문서가 아니다. '제2의 페리 보고서'는 조·미 기본합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것을 부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다.

부시 정부는 '페리 보고서'를 외면한 상태에서 북(조선)과 정치대결을 벌이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2002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이 결렬된 이후, 부시 정부는 북(조선)을 상대로 무모한 정치대결을 계속하였지만, 그 대결은 또 다시 미국의 전술적 패배로 끝났다. 북(조선)으로부터 날아온 두 발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을 먼저 포기해야 대화에 응하겠다는 완강한 태도를 고집하였던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고 대화의 장에 끌어낸 북(조선)의 '직격탄'은 8천17개에 이르는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작업의 완료와 임박한 지하핵실험 준비다.

폐연료봉에서 추출하여 재처리한 플루토늄으로 핵탄두를 제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개월인데, 북(조선)은 2003년 7월 8일의 뉴욕회동에서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6월 30일에 완료하였다고 통보하였으므로, 재처리 작업 완료시점인 6월 30일부터 계산하여 2개월이 되는 8월 31일에 북(조선)은 다량의 핵탄두를 추가로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의 분석가 월프스털(Jon B. Wolfsthal)은 2003년 7월에 발표한 글에서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키지 못할 경우, 북(조선)은 2010년까지 플루토늄 핵탄두 2백35기, 고농축 우라늄 핵탄두 18기를 제조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플루토늄 핵탄두의 보유는 지하핵실험의 실시로 이어지게 된다. 미국이 2003년 8월이 되기 전에 제2차 베이징 회담을 개최하려고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03년 4월 23일에 열렸던 제1차 베이징 회담에 이어, 오는 8월말에 제2차 베이징 회담이 열리게 된 것은, 부시 정부에게는 정치적 패배를 안겨준 것이고 북(조선)에게는 정치적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이제 부시 정부는 조·미 기본합의가 파기된 상태에서 북(조선)을 상대로 더욱 매우 힘겨운 협상을 하게 되었다.

부시 정부는 앞으로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으로부터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약속을 받아내는 한편, 북(조선)의 요구대로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절차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부시 정부에게 그것 말고 다른 출로는 없다.

 

3. '군사부문의 혁명(RMA)'과 주한미군 철수문제

 

2001년 상반기에 백악관은 약 20개의 위원회를 동원하여 미군의 전술, 전략, 편제, 장비, 병력, 무기체계, 해외기지, 공격용 및 방어용 미사일, 우주전략 등 미국의 군사전략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수정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작업이 마감되었던 2001년 7월 7일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와 육, 해, 공군의 고위지휘관들은 수정된 군사전략에 관련한 설명을 들었다.

2001년 상반기에 부시 정부의 군사전략을 검토하는 사업을 총지휘하였던 책임자는 앤드류 마샬(Andrew W. Marshall)이다. 올해 82살인 그는 1949년에 랜드연구소에서 핵전략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1973년에 국방부에 민간인 출신 전략가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30년 동안 국방부에서 일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군사전략가다. 그는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측근이다. 그의 공식직책은 국방부의 내부연구집단(internal think tank)인 최종평가실(Office of Net Assessments)의 선임분석관(chief analyst)이다. 그는 국방부 내부에서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선호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군사전략가 마샬은 미국의 기존 군사전략을 검토하고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1) 미국에게 최대의 위협은 적대국 지상군의 재래식 전력이 아니라 대량파괴무기, 특히 미사일전력이다.

2)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항공모함과 공군기지들은 적대세력의 대량파괴무기에 너무 가까이, 너무 취약하게 배치되어 있다.

3) 미군의 새로운 무기체계는 근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항공모함과 함선의 크기를 축소해야 하며, 장거리, 정밀유도, 스텔스 성능을 지닌 폭격기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4) 미군 지상군의 중무장한 병력은 기동력이 떨어져있다. 미군 지상군은 경량화, 기동화된 신속배치여단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5) 미군은 미사일방어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지금 미국 국방부는 마샬이 지적했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구조조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분석가들과 언론들은 미군의 구조조정을 이른바 '군사부문의 혁명(RMA, 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라고 부른다.

'군사부문의 혁명'이라는 움직임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사건은, 2003년 2월 27일에 있었던 미국 국방정책위원회(Defense Policy Board)의 회의다. 국방정책위원회는 미국의 국방정책에 관련한 자문에 응하는 30명의 전략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로서 군사기밀로 분류된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는 특권을 행사하면서 국방장관 럼스펠드와 정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방정책위원회의 회의는 언제나 비공개로 진행된다.

국방정책위원회의 2월 27일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문제가 논의되었다.

1) 비확산정책교육원(Nonproliferation Policy Education Center)의 헨리 소콜스키(Henry D. Sokolski), 그리고 국방차관 더글러스 페이스(Douglas J. Feith)의 자문위원인 마이클 필스베리(Michael Pillsbury)가 조·미 대결의 위험성과 그 전망에 대해서 각각 설명하였다. 헨리 소콜스키는 이전 부시 정부 시기에 국방장관이었던 부통령 체니(Dick Cheney)의 비확산정책 보좌관으로 일한 바 있었다.

2) 미국 국방정보국(Defense Intelligence Agency)의 고위관리가 북(조선)과 이라크에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3) 미국 국방차관보 존 스텐비트(John P. Stenbit)가 첨단군사통신체계로 부상하고 있는 '통신망 중점사업(network centric efforts)'에 관하여 해설하였다. 이 사업은 정밀유도무기와 첨단통신망과 정찰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른바 '군사부문의 혁명'라고 불리는 것이다.

'군사부문의 혁명'으로 불리는 미군의 구조조정작업이 완료되면, 미국은 구조조정작업에 의해서 수립된 군사전략을 앞으로 20-30년 동안 계속 수행하게 될 것이다. 현재 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유럽에서 진행 중인 부시 정부의 다양한 군사적 행동들은 다음과 같은 기조 위에서 수립된 새로운 군사전략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1) 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전략에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2) 미국은 큰 전쟁은 피하면서 그 대신 여러 지역에서 작은 전쟁을 벌인다.

3) 미국은 작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신속하게 기동할 수 있는, 고도로 경량·기동화된 전투력을 보유한다.

4) 신속배치능력을 강화함으로써 지상군에 대한 비중을 줄이고 그 대신 공군과 해군에 비중을 둔다.

2001년 상반기에 백악관이 약 20개의 위원회를 동원하여 미국의 군사전략을 종합적으로 검토·수정하는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무렵인 2001년 5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정책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미국 공군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미국과 아시아: 미국의 새로운 전략과 병력구조(The United States and Asia: Toward a New U.S. Strategy and Force Structure)」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그 정책보고서는,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의 아시아 군사전략을 논한 보고서다.

그 정책보고서의 작성책임자는 현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인 잘메이 칼릴자드(Zalmay Khalilzad)였고, 클린턴 정부 시기 국방부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보를 지냈던 커트 캠벨(Kurt Campbell)과 이전 부시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부장으로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냈던 더글러스 펄(Douglas Perle)이 감수하였다.

그 정책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자인 잘메이 칼릴자드는 대통령 선거 직후의 정권인수기에 부시 선거진영의 국방부 인수단장을 지냈는데, 그는 정책보고서가 발표된 5월 14일 바로 그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에 임명되었다. 정책보고서를 감수한 커트 캠벨과 더글러스 펄은 부시 정부의 군사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그 정책보고서의 기본골격은 부시 정부의 아시아정책에 반영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 글에서는 그 정책보고서에 관심을 집중하려는 것이다.

랜드연구소의 아시아정책보고서에 포함되어 있는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1) 남(한국)과 북(조선) 사이의 전쟁위험이 줄어들면 주한미군(지상군과 공군)의 병력규모를 재검토하여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특히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은 제83공수사단이나 제10산악사단과는 달리 전략적 기동성을 지니지 못하였으므로 신속기동전략에는 부적합하며 따라서 선차적인 감축대상이 될 것이다.

2) 오산과 군산에 배치한 4개의 전투비행대대는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감축압력에 버티기는 힘들 것이므로, 1개 기지를 철폐하고 1-2개의 전투비행대대를 괌(Guam) 등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검토해야 한다.

3) 북(조선)의 미사일과 특수전 능력은 주한미공군의 작전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으므로 북(조선)의 미사일 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4) 주한미군을 전면적으로 철수할 경우, 동아시아에 유일하게 남을 주일미군에 대한 철수압력도 거세질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주한미군의 일부는 남겨두어야 한다.

5) 미국은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6) 미국은 아시아에서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지 못하게 통제하기 위해서 중국, 인도, 러시아의 삼각세력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 개입정책과 봉쇄정책을 정교하게 배합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7) 동북아시아에 집중적으로 배치한 미국의 군사력을 남쪽으로 이동하고, 괌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 군사력의 전략요충지로 삼아야 한다.

8) 통일된 한(조선)반도는 군사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며, 결국 일본을 자극할 것이다. 통일된 한(조선)반도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인지, 통일 이후 남북의 군사력을 합쳐 증강된 군사력을 유지할 것인지, 통일된 한(조선)반도가 북(조선)의 미사일전력과 핵전력을 그대로 계승·보유할 것인지,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나는 랜드연구소의 아시아정책보고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과 관련하여 눈여겨보아야 할 요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는 이전의 부시 정부가 1990년 4월 19일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아시아태평양 연안에 대한 전략구조: 21세기 전망(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n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th Century)」에서 제기하였던,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에 걸친 주한미군의 3단계 철수계획을 폐기하고 이른바 '현수준 유지론'을 내놓았다.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의 붕괴위기설, 연착륙 유도설 등으로 표출되었던 정세오판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주한미군 3단계 철수계획을 폐기하고 현수준 유지로 돌아섰던 것이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작성된 '페리 보고서'의 비공개본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언급되었을 것으로 보이나, 공개본에서는 주한미군을 현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또한 2000년 10월에 조·미 두 나라가 공동성명을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비공개로 논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외부에는 알려진 바 없다. 어쨌든 클린턴 정부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계획을 국가기밀사항으로 은폐하였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주한미군 계속유지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런데 오늘 부시 정부는 '럼스펠드 독트린(Rumsfeld Doctrine)'에 따라 클린턴 정부의 주한미군 현수준 유지계획을 폐기하고 단계적 철수계획을 다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럼스펠드 독트린'에는 군사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Second Infantry Division)을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신속기동여단 (Stryker Brigade Combat Team)으로 개편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미국 육군의 현역 여단 가운데 약 3분의 2는 해외에 주둔하고 있다.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에 편제되어 있는 두 개의 여단도 그 가운데 일부다. 해외 여러 지역에 분산배치되어 있는 여단들은 모두 중무장을 하고 고착된 군사기지에 주둔하고 있다. 미국의 적대국들이나 반미테러집단들이 핵무기, 미사일, 생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파괴무기를 개발·보유하게 된 현재의 조건에서 중무장을 하고 고착된 해외 군사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지상군 병력은 군사전략적 가치를 상실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한미군이 군사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원인은 북(조선)이 대량파괴무기를 실전에 배치하고 군사전략적으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부시 정부가 '럼스펠드 독트린'에 따라 군사전략적 가치를 상실한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을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는 경우,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을 지휘하는 주한미8군사령부는 자동적으로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8군사령부가 해체되면 주한미7공군작전사령부와 그 산하에 있는 4개 비행대대만이 남게 되는데, 랜드연구소의 아시아정책보고서는 그 비행대대들도 절반이 괌으로 이전하게 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상 주한미군의 전면철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정치적으로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취급하고 있으므로, 철수계획을 언론에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현재는 다만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는 계획, 주한미군기지들을 통폐합하는 계획, 미군기지를 후방으로 이전하는 계획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에 남아있는 2개 여단의 기지를 후방으로 이전한다는 말은, 신속기동여단의 새로운 기지를 후방에 설치한다는 뜻이다. 후방에 설치하게 될 신속기동여단의 새로운 기지는 주둔기지가 아니라 한(조선)반도 밖에 있는 주둔기지에서 공수된 신속기동여단이 일정기간 머물면서 훈련을 실시하는 훈련기지다. '럼스펠드 독트린'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미군이 주둔해온 기지는 폐쇄하고 미군이 일정기간 머물면서 훈련하는 기지만을 남(한국)에 남겨두겠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는 계획과 주한미군기지들을 통폐합하고 후방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서로 분리하여 언급하고 있으나, 그것은 오류다. 나는 그 계획들이 하나의 추진과정에 포괄되어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에 남아있는 2개 여단을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는 계획과 미군기지를 통폐합하는 계획은 동시적으로 추진될 것이며, 신속기동여단의 훈련기지를 후방에 배치하는 계획과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계획도 역시 동시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주한미군을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고 미군기지를 통폐합하는 제1단계를 거쳐, 신속기동여단의 훈련기지를 후방에 배치하는 제2단계에 따라서 주한미군은 단계적으로 철수될 것이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발표한 2단계 계획에서는 미군을 철수한다는 표현은 보이지 않고, 감축한다는 표현만 보인다.

지금 부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후방에 재배치하는 계획은, 1990년에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스카시(Robert W. Riscassi)가 북(조선)의 대구경 장거리포를 두려워하여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을 한강 이남지역의 후방에 재배치하려고 하였던 계획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1990년도의 후방 재배치는 감축이나 철수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었고, 현재의 후방 재배치는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고 철수하는 전략에 따라서 추진되는 것이다.

랜드연구소의 아시아정책보고서에 따르면,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대부분 철수하면서도 극소수의 주한미군을 남겨놓으려는 까닭은 주일미군을 철수하라는 압력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주일미군에 대한 철수압력이 없는 경우 주한미군을 전면적으로 철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있는 동안에 미국의 정치권과 여론이 주한미군만 아니라 주일미군도 함께 철수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나의 판단으로는, 그러한 동반철수 요구는 제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상황은 정반대로 될 것이다.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되기 시작하면,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주일미군을 오히려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미군에 대한 철수압력을 피하기 위해서 극소수의 주한미군을 상징적으로 남겨놓아야 한다고 지적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다. 주한미군의 전면철수가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정치·군사적 파장을 우려한 나머지, 그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조치는 해외에 배치한 미군 지상군을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는 조치, 동북아시아 집중되어 있는 미국 군사력을 괌을 중심으로 한 남태평양지역으로 이동하는 조치, 그리고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미·일 군사동맹체제를 증강하는 조치와 연동된다. 신속기동전략을 개발하는 문제, 미·일 동맹군의 군사력 증강에 관한 문제는 지난 6월 17일에 발표한 나의 논문 「미·일 군사동맹체제의 증강과 6.15 공동선언의 실현」에서 자세히 논의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다가 종국적으로 완전히 철수하는 조치는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된다. 요즈음 '미래 한·미 동맹 정책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략회의를 통해서 주한미군사령부가 공개한 내용을 종합하면, 주한미군의 기지이전 2단계 추진일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서울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를 후방으로 이전할 시설의 공사를 2004년부터 시작하여 2006년에 완공하고 주한미군사령부를 이전한다.  

(2) 주한미군 제2사단이 옮겨가게 될 오산·평택지역의 기지(주둔기지가 아니라 훈련기지)를 2008년에 완공한다.

이것은 동두천, 의정부, 포천 등에 흩어져 있는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의 기지 20여 개소를 2006년까지 통폐합하고, 주한미군 제2사단에 남아있는 2개 여단을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작업을 2008년까지 완료하겠다는 뜻이다.

이전에 나왔던 이른바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르면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의 기지들을 통폐합하는 시기는 2011년으로 정해졌는데, 부시 정부는 통폐합시기를 5년이나 앞당기려고 서두르고 있다. 주한미군 제2사단에 남아있는 2개 여단이 2008년까지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된다는 것은 2008년까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뜻이다.

2002년 5월 3일 럼스펠드가 서명한 비공개문서인 '국방계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에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의 5개년 계획이 담겨있는데, 2008년까지 주한미군을 신속기동여단으로 개편하고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계획도 거기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미국 국방부, 태평양군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의 수뇌부가 동북아시아의 지상군을 약 5년에 걸쳐 감축 또는 철수하는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검토에 착수하였던 시기는 2000년 9월경이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는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의 정치적 압박에 의해 가닥이 잡힐 것이 분명하며, 그와 더불어 대중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있는 남(한국)의 반미자주화운동에 의해서 가속화되는 것 또한 분명하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논문들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이 강력한 철수압박을 가하는 한편, 남(한국)에서 반미자주화운동이 강화됨으로써 민족공조의 동력을 형성하게 되고, 그러한 민족공조의 철수압력에 의하여 급속도로 해결되리라고 예상한 바 있다.

현재 미국이 신속기동여단의 개편과 미·일 동맹군의 증강을 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준비단계에 이미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속기동군 배치전략은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2) 랜드연구소의 아시아정책보고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과 관련하여 눈여겨보아야 할 두 번째 요점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아무리 방해·저지하여도 결국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통일을 실현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뜻이다.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조치와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실현되는 것은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니다. 주한미군의 철수는 한·미 동맹체제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며, 한·미 동맹체제의 해체는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과 한(조선)반도 통일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장애요인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므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완료되는 시점에 이르러 한(조선)민족의 자주위업과 통일위업은 동반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거의 동시적으로, 급속하게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3) 랜드연구소의 아시아정책보고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과 관련하여 눈여겨보아야 할 세 번째 요점은, 미국이 중국을 통제하는 전략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패권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미·일 동맹군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조치에 결부되어 있으며, 통일된 한(조선)반도가 중국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문제에도 결부되어 있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한(조선)반도의 통일국가가 중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미·일 동맹제체를 위협하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날로 강해지고 있는 중국이 동아시아의 신흥강국으로 등장한 한(조선)반도의 통일국가와 동맹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미·일 동맹체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태로 보일 것이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조·미 국교수립은 미국에게 적대적인 북(조선)을 비적대적인 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미국에게 비적대적으로 변화된 북(조선)과 미국의 '동맹국'(실제로는 지배를 받는 속국)인 남(한국)이 통일되는 전단계인 것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은 한(조선)반도의 통일국가가 중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미·일 동맹체제를 위협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조·미 국교수립을 매우 조심스럽게 논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의 방해를 극복하고 한(조선)반도가 통일되더라도 한(조선)반도의 통일국가가 중국의 편에 기울어지지 않고 중립노선을 취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중국을 통제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방해·저지하다가 결국에는 역량관계에서 압도당하면서 자기의 반통일정책이 폐기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4. 한(조선)반도 정세의 변화전망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의 중국통제전략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1) 중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패권국가로 등장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는 미국은 '개입'과 '봉쇄'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대한 통제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개입'이란 중국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체제 안으로 완전히 포섭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중국사회 전반의 미국화(Americanization)를 획책하고,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확대함으로써 금융부문과 기술부문에서 중국의 경제를 장악하려는 조치다. '봉쇄'란 미국이 대만해협을 겨냥한 군사력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통합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차단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대만해협을 봉쇄하는 군사적 조치로 될 것이다.

2) 미국은 중국의 동북부에 위치한 한(조선)반도와 남서부에 위치한 인도차이나반도에 대하여 새로운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중국통제전략을 한층 강화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견지에서 보면, 한(조선)반도→대만→인도차이나반도로 이어지는 반원형의 전략지구대는 중국의 아시아·태평양 진출을 통제하는 전략통로로서 중국통제전략을 추진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그 전략통로 가운데서 한(조선)반도와 인도차이나반도가 미국에 대해서 적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의 중국통제전략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므로, 미국은 그 두 반도가 중국과 밀착되지 못하게 하는 대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베트남의 국교수립은 이미 실현되었으며, 현재 미국에게 남아있는 과제는 북(조선)과의 국교수립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한(조선)반도정책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나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미국은 북(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클린턴 정부는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북(조선)과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였다. '페리 보고서'의 공개본도 그 원칙을 언급하였다. 클린턴 정부는 '페리 프로세스'에 따라 조·미 정치회담을 추진하면서도 주한미군을 현수준으로 유지하는 원칙을 고수하였으나, 부시 정부는 클린턴 정부가 고수했던, 주한미군을 현수준에서 유지하는 원칙을 사실상 포기하였다. 클린턴 정부는 주한미군을 현수준에서 유지하면서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려 하였던 데 비하여, 부시 정부는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면서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려 하고 있다.

2) 미국이 북(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한편에서는 미·일 군사동맹체제의 증강을 불러올 것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한·미 동맹체제를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지난 4월에 열렸던 제1차 베이징회담에서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새롭고 대범한 제안'인 4단계 방안에 따르면, 제3단계에서 조·미 국교수립이 실현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북(조선)이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중단시키려는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경우, 미국도 북(조선)과 국교를 수립하겠다는 내용의 '아미티지 보고서'가 제시한 '포괄적 종합안'은, 조·미 국교수립을 목표로 삼고 있는 북(조선)의 4단계 방안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포괄적 종합안'과 북(조선)의 4단계 방안에는 상충되는 측면도 많이 있지만, 조·미 두 나라는 앞으로 조·미 정치회담을 진행하면서 양대 방안의 상충되는 측면을 해결해 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해결'이란 비적대적 관계에 있는 쌍방이 정치적으로 타협한다는 뜻이 아니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쌍방이 치열한 정치대결을 벌여 상대를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포괄적 종합안'과 4단계 방안의 상충되는 측면은 외교적 양보가 아니라 정치적 굴복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

나는 지난 8월 10일에 발표한 글 「조·미 대결전은 또 하나의 분수령을 넘고 있다」에서 북(조선)이 조·미 정치회담에서 벌어질 미국과의 치열한 정치대결에서 결국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킬 것임을 예견한 바 있는데, 이것은 '포괄적 종합안'과 4단계 방안의 상충되는 측면이 북(조선)의 정치적 승리로 해결될 것이라는 뜻이다.

3) 주한미군 철수가 가속화될 수 있는 계기는 두 가지인데, 북(조선)이 미국에게 철수압력을 가하는 것과 남(한국) 대중이 철수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조·미 양국 정부가 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회담을 추진하는 동안, 남(한국)에서는 주한미군 철수운동이 대중적 차원으로 확대·강화될 것이다. 남(한국)에 살고 있는 20대와 30대 청년층은, 불과 몇 해 사이에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의식은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지배정책을 반대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높은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주한미군이 남(한국)의 안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주둔하고 있다는 견해는 일반화되어 있다. 이것은 주한미군 철수운동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하여 촉발될 것임을 말해준다. 청년층에는 대학생만이 아니라 30대 연령층의 노동자들이 절대다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주한미군 철수운동은 청년학생계층의 운동력으로 촉발되고 노동계급의 운동력으로 확대·강화될 것이다.

주한미군은 결국 조·미 정치회담과 남(한국) 대중의 주한미군 철수운동에 의해서 철수될 것이다. 조·미 양자회담에서 미국이 정치적으로 패배하여 주한미군 철수에 동의하는 것과 남(한국)의 대중적 주한미군 철수운동이 강화되는 것 가운데서 어떤 것이 더 앞서느냐 하는 문제는 예견하기 쉽지 않지만, 현재의 추세를 보면 전자의 진전속도가 후자의 진전속도보다 앞서고 있다.  

미국이 북(조선)의 철수압력과 남(한국) 대중의 철수운동에 밀려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조성하고 있는 첨예한 무력대치가 계속되는 상태에서도 한(조선)민족의 자주위업과 통일위업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치투쟁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고한다.

 

5. 맺으며

 

부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아미티지 프로세스'와 북(조선)이 추진하고 있는 4단계 방안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나서 내린 나의 결론은, 한(조선)민족의 자주위업과 통일위업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리라는 것이다. 자주와 통일의 양대 위업이 가까운 장래에 실현될 것이라는 말은 사람들을 고무하기 위한 선전구호가 아니라 정세분석에 근거한 과학적 전망이다. 나는 이 글을 마치며 그 전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조·미 수교는 조·미 정상회담이 개최됨으로써 결정적인 진전을 보게 될 것이다. 조·미 정상회담은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으로 성사될 것인데, 그 역사적인 회담에서는 양국 정상이 서명한 조·미 공동성명이 발표될 것이며, 그 회담의 성사에 의해서 주한미군 철수와 수교협상이 가속적으로 진전될 것이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추진일정에 올랐다가 부시 정부의 출현으로 폐기된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과제는 북(조선)의 역량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

(2) 조·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고 하더라도, 미국 정부는 워싱턴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한(조선)반도정책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조·미 수교를 회피 또는 지연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조·미 정상회담이 성사된 이후에도 조·미 수교를 추진하는 과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음을 예고한다. 조·미 정상회담 이후에 미국 정부가 조·미 관계의 발전추세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지 못하도록 차단하면서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지연시키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수교협상을 진전시키는 과제는 북(조선)의 역량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다.

(3) 조·미 국교가 수립되고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되는 단계에 이르면, 한·미 동맹체제는 결정적으로 약화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미 두 정부가 자기들의 손으로 동맹체제를 자진해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미 동맹체제는 오직 남(한국)의 민족자주정권에 의해서만 해체될 것이다. 이것은 조·미 국교수립과 주한미군 철수가 진행되는 격동기에 정세변화의 주도권을 장악한 남(한국)의 민족민주세력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북(조선)은 조·미 국교를 수립함으로써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놓을 것이고, 남(한국)의 민족자주정권은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과정에서 약화된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는 과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한국)의 민족민주세력이 대중적 지지를 받는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자주와 통일의 양대 위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다.

한(조선)민족이 열망하며 추구하고 있는 자주와 통일의 양대 위업은, 조·미 양자회담에서 적대관계 청산에 대한 가시적 성과 도출→평양에서 조·미 정상회담 개최→북(조선)의 조·미 국교 수립, 남(한국) 대중의 주한미군 철수운동 전개, 전민족적 차원에서 6.15 공동선언 실현의 가속화→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남(한국)에서 민족자주정권 수립→민족자주정권의 한·미 동맹체제 해체→연방제 방식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이라는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통하여 실현되어 갈 것이다.

아무도 한(조선)민족의 자주위업과 통일위업이 실현되는 미래의 정확한 시간표를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한(조선)반도정세의 급격한 변화추세와 대세의 흐름을 조·미 두 나라의 정책에 근거하여 분석하면서 한(조선)민족의 양대 위업이 가까운 장래인 2010년에서 2012년의 기간에 실현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그 실현시기가 그 이전으로 앞당겨 지느냐 아니면 그 이후로 늦춰지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언제나 주체의 손에 쥐어져 있음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 이래 100년을 넘긴 오랜 기간 동안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제국주의 침략과 지배에 맞서 싸워오고 있는 이 땅의 민족자주운동이 자기의 과업을 완수하는 미래, 1945년 9월 주한미군이 출몰한 이래 50년을 넘긴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의 지배와 전쟁위협을 받아왔던 치욕의 역사를 청산하는 미래, 그리고 민족분열과 조국분단의 올가미를 벗고 한(조선)민족의 힘으로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눈부신 미래는 날로 가까워지고 있다. 7천만 겨레가 통일된 자주강국에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융성번영의 미래로 통하는 정세변화의 거대한 문은 바야흐로 우리 대에, 우리 자신의 손으로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것이다. (2003년 8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