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 대결전은 또 하나의 분수령을 넘고 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들어가는 말

2. 7월 31일의 극적인 반전

3. 미국 정부는 북(조선)의 방안을 수용하였다

4. 미국 정부가 두려워한 '공포의 8월'

5. 7월 8일 회동 전후에 일어난 일들

6. 이번 회담에서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가

1. 들어가는 말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무한정 지속될 것으로 우려하였던 조·미 대결국면에 마침내 해결의 돌파구가 열렸다. 2002년 10월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양자회담이 결렬됨으로써 급격하게 악화되었던 조·미 관계는, 지난 4월 베이징에서 3자회담이 열렸는데도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정치적 공방전을 계속해오다가 이번에야 전환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조·미 양자회담의 재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북(조선)을 대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는 날이 갈수록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불과 몇 일 전까지만 해도 북(조선)에게 욕설에 가까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거나 북(조선)의 제안을 묵살하면서 도발적인 태도를 드러내왔던 것에 비교한다면, 최근 미국 정부의 태도는 속으로는 여전하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상당히 부드럽게 바뀐 것이다.

이를테면, 8월 4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는 미국의 전국 라디오방송에 출연하여 대담을 진행하는 중에 방송진행자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불안정한 사람(unstable man)'이라고 묘사하자 "나로서는 그를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릴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약한 패를 쥐고도 게임을 매우 잘 해온 사람이다. 그의 성격은 여러 가지로 묘사할 수 있겠지만 그는 빈틈없는(canny) 인물이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3년 8월 5일자)

북(조선)에 대한 부시(George W. Bush)와 고위관리들의 태도가 갑자기 유화적으로 바뀐 것은, 분석가들의 관측범위를 벗어나서 발생한 돌발현상이다. 그 돌발현상이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에 의해서 일어난 것임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나의 시야에서는,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이 우연히 발생한 잠정현상이 아니라 어떤 원인에 의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인 것으로 보인다. 사물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복잡다단한 과정 속에는 반드시 변화와 발전을 추동하는 원인이 들어있는 법이므로,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에도 그 반전을 발생시키고 추동하는 원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구태여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분석가들과 언론들은 자기들의 관측범위를 벗어나 극적인 반전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 까닭은 그들이 핵문제의 본질을 읽지 못하고 핵문제의 현상만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 발표한 논문들에서 조·미 사이에 제기된 핵문제는 핵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며,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는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라고 해명하였다. 다시 강조하는 것은, 핵문제는 북(조선)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핵개발을 포기하고 그 대신 미국은 북(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여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정치협상의 차원을 초월하는 근본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문제의 본질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 다시 말해서 한(조선)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구성원들, 그리고 해외동포들까지 포괄하는 7천만 한(조선)민족 전체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민족자주위업을 실현하는 최대의 정치문제이며, 최고의 역사적 과업이다.

핵문제는 한(조선)민족이 주체적인 투쟁과 노력으로 민족자주의 역사적 위업을 수행하는 기나긴, 그리고 복잡다단한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며, 이번에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을 보면서 나의 생각이 옳았음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최근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인 민족자주위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하나의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미 관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였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그러한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곧 재개될 조·미 양자회담에서는 어떠한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 중대한 물음들에 대한 해답은, 조·미 관계에서 발생한 극적인 반전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조·미 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한(조선)반도 정세의 변화에 대한 역사적 전망에 의해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을 파악하려면,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변화무쌍하게 뒤얽히고 뒤바뀌면서 운동하고 있는 복잡한 전개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하고 그 현상들의 내적 연관성을 포착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조·미 사이에 제기된 핵문제가 민족자주의 문제를 본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미 양자회담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실현되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 회담이 어떤 경로로 합의되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북(조선)이 미국 정부의 압박공세에 시달리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기존의 조·미 양자회담 원칙을 철회하고 미국 정부의 6자회담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핵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돌파구가 열렸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조·미 관계에 관련한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이성적 판단을 스스로 포기하고 정보조작과 왜곡선전에 빠져드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정보를 조작하고 왜곡선전을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은, 비단 조·미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상에 폭로된 대로, 미국 정부가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기 위해서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조작하고 왜곡선전을 일삼았던 것은 조·미 관계를 인식하려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정확한 정보, 심층정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일반대중을 자기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적당히 속여넘기려는 미국 정부의 기만술책에 말려드는 경우, 정세오판의 늪에 빠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글에서 나는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경과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분석·검토하면서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를 뒤집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가까운 장래에 재개될 회담의 결과를 전망하려 한다.

2. 7월 31일의 극적인 반전

모든 현상에는 발생시점이 있다.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에도 특정한 발생시점이 있다. 조·미 관계에서 극적인 반전이 발생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나의 판단으로는, 2003년 7월 31일이 그 발생시점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많은 날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7월 마지막날에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을까? 느닷없이 발생한 우연한 현상이었을까? 그것은 결코 느닷없이 발생한 우연한 현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7월 31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미국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Richard A. Boucher)의 발표에 따르면, 그날 유엔주재 북(조선)대표부의 외교관들이 미국 국무부 관리들과 뉴욕에서 만나 북(조선)이 다자회담 방안에 동의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통보하였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8월 2일자) 북(조선)이 다자회담 방안에 동의하였다는 소식은 그보다 몇 시간 앞서서 모스크바에서 먼저 발표되었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발표하고, 박의춘 러시아 주재 북(조선)대사가 6자회담 방안을 지지하며 회담조직을 위한 적극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해왔다고 밝혔다.

북(조선)이 6자회담 방안을 수용하였다는 미국 국무부의 발표는, 지난해 10월부터 팽팽한 긴장국면에 빠져 악화되고 있었던 조·미 관계에 해결의 돌파구가 열렸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미국 정부의 관리들을 한껏 고무하였다. 7월 31일 리처드 바우처는 정례 언론설명회에서 "이 시점에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북(조선)이 다자회담에 대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가 고무되었다는, 매우 고무되었다는 것"이라고 말하며 흡족해 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8월 1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8월 1일자 기사는, 미국 정부의 지지자들이나 비판자들이 한결같이 6자회담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미국 대통령 부시에게 "커다란 승리(major victory)"를 안겨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으며, 『뉴욕 타임스』도 같은 날짜의 기사에서 6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것은 "부시 정부의 승리"라고 보도하였다.

이튿날인 8월 1일 오전에 백악관에서 소집된 각료회의의 분위기도 고무적이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각료회의를 마치면서 부시는 "긍정적인 발전(positive developments)"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발언하였는데, 그가 언급한 긍정적인 발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부시는 각료회의 직후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북(조선)이 6자회담에 동의한 것을 "훌륭한 진전(good progress)"라고 지칭하고 이를 환영한다고 하면서, 자신은 "상승감을 느꼈다(felt upbeat)"고 말했다. 각료회의를 마치고 부시는 텍사스주의 향리에 있는 부시 가문의 크로포드 목장에서 8월 한 달 동안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백악관을 떠났다.

부시와 고위관리들은 어째서 그토록 고무되었을까? 미국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미국 정부의 외교적 승리라고 칭송하였던, 북(조선)이 6자회담 방안을 수용한 극적인 반전이 그들을 고무했던 것일까? 나는 부시와 고위관리들이 고무된 원인은, 북(조선)이 미국 정부의 회담방안을 수용하였기 때문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아래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북(조선)은 미국 정부의 회담방안을 수용한 적이 없다. 6자회담을 열고 그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은 미국 정부가 북(조선)에게 제시한 방안이 아니라, 북(조선)이 미국 정부에게 제시한 방안이므로, 북(조선)이 미국 정부의 6자회담 방안을 수용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3. 미국 정부는 북(조선)의 방안을 수용하였다

북(조선)이 조·미 양자회담 원칙을 철회하고 미국 정부의 6자회담 방안을 수용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북(조선)의 방안을 수용하였다는 사실은 이번에 발생한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을 이해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정보조작과 왜곡선전을 일삼고 있는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를 일단 접어두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6자회담 방안을 합의하였던 복잡한 과정을 분석해보면, 미국 정부의 공식발표와는 사뭇 다른 사실이 드러난다.

나의 결론은, 미국 정부가 북(조선)의 방안을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수용하였던 북(조선)의 방안을 6자회담 방안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매우 부정확한 이해다. 정확하게 말해서, 미국 정부가 수용하였던 북(조선)의 방안은 6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이다. 강조점이 찍히는 부분은, 6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이 전적으로 북(조선)의 주동적인 노력에 의해서 마련된 방안이라는 점이다.

다자회담 방안은 미국 정부가 먼저 내놓은 것이었지만, 다자회담을 6자회담 구도로 진행하는 방안을 미국 정부에게 제시한 것은 북(조선)이었다. 그러므로 6자회담 방안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북(조선)이 마련하고 제시한 방안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조선)은 6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최종 수정안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8월 4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발표하면서 "미국측은 '선핵포기, 후대화' 주장만을 고집해오던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6자회담 제안에 동의하면서 그 테두리 안에서 조·미가 접촉하여 호상입장을 밝히고 논의하자고 하였다."고 밝혔다. '우리의 6자회담 제안에 미국이 동의하였다'는 지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나는 북(조선)이 관철한 방안, 곧 6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실질과 외피의 절묘한 조화라고 묘사한다. 조·미 양자회담이라는 실질에 6자회담이라는 외피를 씌운 것이다. 실질과 외피의 절묘한 조화, 그것은 예술적 경지에 이른 탁월한 외교전술이라고 부를만하다.

지난 클린턴 정부 시기의 조·미 양자회담은 4자회담이라는 외피를 쓰고 진행되었다. 오늘부시 정부 시기의 조·미 양자회담은 러시아와 일본까지 포괄된 6자회담이라는 확대된 외피를 쓰고 진행되게 되었다. 조·미 양자회담은 이중외피, 다시 말해서 남(한국)과 중국이라는 안쪽 외피와 러시아, 일본이라는 바깥쪽 외피를 쓰고 진행될 것이다. 6자회담 구도는 조·미 사이의 양자합의를 나머지 네 참가국들이 국제적으로 지지하는 구도이면서 동시에 북(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조·중·러 공조체제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미·일·한 공조체제의 정치적 대결구도이기도 하다.

다자회담 구도에 러시아를 포함시킨 것은 북(조선)의 선택이었고, 일본을 포함시킨 것은 미국의 선택이었다. 북(조선)은 다자회담 구도에 러시아를 포함시킴으로써 중국의 과도한 대미경도를 견제하고 일본의 대미추종에 제동을 거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미국은 다자회담 구도에 남(한국)과 일본을 끌어들임으로써 정치협상은 미국이 주도하고, 경제적 보상책임은 남(한국)과 일본에게 떠넘기는 전략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조·중·미 삼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내려는 중국의 노력은 지난 7월중에 두 차례가 있었다. 지난 7월 12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외교부 수석부부장 다이빙궈가 특사자격으로 북(조선)을 방문하였던 것과, 7월 18일부터 19일까지 그가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였던 것이다.

평양과 워싱턴을 오간 다이빙궈의 발빠른 행보는, 중국도 미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핵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대폭발'을 예감하면서 나름대로 그에 대처하기 위해서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7월 12일 평양에 도착한 다이빙궈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백남순 외무상을 각각 의례예방하고 환담하였으며,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회담하였다. 7월 14일 다이빙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예방하고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를 접견한 자리에서 조·미 사이에 진지한 대화가 가능하다면 3자회담이든 5자회담이든 대화의 형식에는 구애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붕』 2003년 7월 19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러한 견해는 조·미 대결국면에 해결의 돌파구를 열어놓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당시 중국은 3자회담 방안을, 미국은 5자회담 방안을 각기 주장하고 있었는데, 중국의 방안이건 미국의 방안이건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이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은,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새로운 방안을 미국 정부에게 제시한 것이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은, 미국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다이빙궈를 통해서 자기들에게 제시한 새로운 방안, 다시 말해서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수용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다자회담 구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다자회담 구도로는 3자회담, 4자회담, 5자회담, 6자회담 구도가 제시되었다.

다자회담을 조·중·미 3자회담으로 또는 남(한국)까지 포함하여 4자회담으로 진행하는 두 가지 방안은 중국이 내놓은 것이었고, 조·중·미 세 나라에 더하여 남(한국)과 일본까지 포함하여 5자회담으로 진행하는 방안은 미국이 내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북(조선)과 중국은 미국의 5자회담 방안을 반대하였다. 그 까닭은 5자회담 방안이 일본의 참가를 보장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조선)은 7월 12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던 다이빙궈에게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일본이 다자회담에 참가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혔으며, 중국도 이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의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3년 7월 19일자)

북(조선)과 중국이 다자회담에 일본이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였다는 것은, 조·중·미 3자회담이 아니면 남(한국)까지 포함된 4자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으로 의견을 조율하였음을 의미한다. 북(조선)이 조·미 양자회담을 보장하는 3자회담 또는 4자회담 구도에 대해서 중국과 의견을 조율한 것은 일본을 배제하는 문제에서 조·중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기 때문이었다.

다이빙궈가 평양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에 돌아간 7월 15일 중국은 재빨리 미국과의 협의를 시작하였다. 그날 중국 외교부장 리자오싱은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과 전화통화를 하였다. 7월 16일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의 말에 따르면, 그 전화통화에서 리자오싱은 북(조선)이 3자회담에 참가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파월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 7월 16일자 기사는, 리자오싱이 파월과의 전화통화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할 수 있는 다자회담 구도를 제안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미국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 7월 17일자 기사는, 리자오싱이 파월과의 전화통화에서 북(조선)이 조·미 양자회담 원칙을 철회하기로 동의하였다고 하면서, 미국에게 5자회담 원칙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워싱턴 포스트』가 북(조선)이 조·미 양자회담 원칙을 철회한 것으로 보도한 것은 오보라는 사실이다. 북(조선)은 조·미 양자회담 원칙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을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관철하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였다고 보아야 정확하다. 핵문제를 미국과의 회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북(조선)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확고부동한 원칙이며, 따라서 북(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조·미 양자회담 원칙을 철회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7월 15일의 전화통화에서 리자오싱이 파월에게 제시한 다자회담 구도는 일본을 포함한 5자회담이 아니라 중국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줄 수 있는 3자회담이었다.

중국은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회담 구도를 합의하는 문제를 두고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7월 15일 리자오싱-파월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에게 3자회담을 제안하기 이전에 4자회담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중국이 처음에 제안한 다자회담 방안은 조·중·미 삼국에 남(한국)까지 포함하는 4자회담으로 진행하는 방안이었다. 중국의 4자회담 방안은 7월 1일 중국 외교부 부부장 왕이의 워싱턴 방문에서 제시되었다. 왕이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를 각각 만났는데, 리처드 아미티지를 만난 자리에서 왕이가 제안한 것이 4자회담 방안이었다.

그러나 아미티지는 중국의 4자회담 방안을 거부하면서 5자회담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사히신붕』 2003년 7월 3일자) 이 사실을 보도한 『아사히신붕』은 왕이가 아미티지에게 내놓은 4자회담 제안이 마치 북(조선)의 제안인 것처럼 보도하였으나, 그것은 착오다. 7월 1일 당시에 북(조선)은 조·미 양자회담을 개최하여야 한다는 종래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자기의 4자회담 제안이 미국에 의해 거부당한 때로부터 약 보름 뒤에 중국이 중·미 외무장관의 전화통화에서 두 번째로 제안한 것이 바로 3자회담 구도였다. 그런데 7월 15일의 전화통화에서 다자회담을 3자회담으로 진행하자는 중국의 수정안을 받은 미국 정부는, 자기들이 주장해온 5자회담 방안을 철회하지 않고,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진행하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7월 16일 일본을 방문하고 있던 미국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 존 볼튼(John R. Bolton)은 기자회견에서 "3자회담으로 시작하여 5자회담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진행하는 미국의 절충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 까닭은 3자회담을 진행하여야 중국의 외교적 위상이 올라가게 되는데,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진행하는 경우 3자회담은 5자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으로 격하되고 따라서 중국의 외교적 위상이 축소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은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진행하는 미국의 절충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의 3자회담 방안과 미국의 5자회담 방안이 타결점을 찾지 못하게 되자, 중국은 7월 18일부터 19일까지 외교부 수석부부장 다이빙궈를 워싱턴에 파견하였다. 그는 백악관을 방문하여 부통령 딕 체니(Dick Cheney)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를 만난 뒤에 국무장관 콜린 파월과 두 시간 반 동안 회담하였다. 다이빙궈와 파월의 장시간 회담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그 회담에서 파월은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북(조선)의 방안을 다이빙궈를 통해 전달받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연합뉴스』 2003년 8월 1일자 기사는 그 회담에서 파월이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다이빙궈에게 제안한 것처럼 보도하였는데, 그것은 오보다.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한다는 방안은 이미 7월 14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다이빙궈를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 정부에게 전달하도록 제시한 방안이었다.

다이빙궈-파월의 회담에서 파월이 다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북(조선)의 방안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 정부가 3자회담에 이어서 5자회담을 진행하면서 5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 비난을 계속해오던 부시가 다이빙궈-파월의 회담이 끝난 지 불과 이틀만인 7월 21일에 태도를 부드럽게 돌변한 까닭은, 그 회담에서 북(조선)의 방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7월 21일 부시는 텍사스주의 크로포드 목장에서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벨루스코니(Silvio Berlusconi)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확인시켜준 북(조선)의 의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고 말함으로써 북(조선)이 제2의 은폐된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내용을 무시하였다. 또한 그는 자기의 발언에서 처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미스터(Mr.)라는 존칭을 붙였다. 미국 정부의 관리들은 부시가 그 기자회견에서 이란과 시리아에 대해서 강경하게 발언한 것과 대조적으로 북(조선)에 대해서는 매우 온건하게 발언한 것은 "신중하게 조정된 것(carefully calibrated)"이라고 평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7월 22일자)

7월 22일 백악관 대변인 스캇 매클렐런(Scott McClellan)은 기자들에게 조·중·미 3자회담을 개최하고 즉시 남(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5자회담을 연속적으로 개최하는 2단계 회담형식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에 관하여 중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7월 23일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는 미국 정부가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중국을 통해 북(조선)의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자회담은 공식회담으로 열리게 되며 미국은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5자회담에서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미국 정부는 현재 5자회담 방안에 대한 북(조선)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7월 24일자)

미국 정부가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열고 5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제기한 것은, 3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중국의 방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었다. 만일 미국의 방안대로 5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이 진행되는 경우, 3자회담은 일종의 예비회담이 되어 그 위상이 격하될 것이며, 5자회담에서의 중국의 외교적 위상은 남(한국)과 일본의 수준으로 하향조정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미국의 그러한 방안을 전달받은 중국이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3자회담과 이어진 5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북(조선)에 전달해 달라고 다이빙궈에게 요청하였으나, 불쾌감을 느낀 중국은 그 요청을 제때에 들어주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의 방안을 즉시 북(조선)에 전달하지 않고 1주일 이상 시간을 끌다가 7월 28일에 가서야 중국 주재 북(조선)대사관을 통해 전달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7월 29일자 기사는 중국이 미국의 방안을 북(조선)에 전달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미국, 남(한국), 일본의 정부관계자들이 당혹감을 느꼈다고 보도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양과 워싱턴을 분주하게 오가던 중국의 행보가 갑자기 쳐지고, 중대한 사안을 특사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던 중국의 태도가 돌변하여 대사관을 통해 전달하게 된 사연 속에는 중국의 3자회담 방안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데 대한 불쾌감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7월 27일 중국을 방문하고 있던 존 볼튼은 다자회담이 언제 개최될지 알 수 없다면서 유엔안보리를 통하여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중국이 미국의 방안을 북(조선)에 즉시 전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것이었다. 7월 30일 미국 국무부 부장관 리처드 아미티지는 일본 엔에이취케이(NHK)방송과의 단독회견에서 중개역할을 맡은 중국이 조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회담이 재개될 전망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중국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7월 28일 북(조선)은 중국이 베이징에 있는 북(조선) 대사관을 통하여 중계한 미국의 방안을 전달받았다. 북(조선)은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진행하면서 5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을 전달받은 것이다. 8월 1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은 얼마 전에 제3자를 통하여 다자회담 틀거리 안에서 조·미 쌍무회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왔다."고 발표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중국이 미국의 방안을 1주일 이상 붙들어두면서 북(조선)에 전달하지 않고 있었지만, 북(조선)과 미국은 베이징 이외에 뉴욕을 통하는 또 다른 비공개 접촉통로로 다자회담 구도에 관한 양자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조·미 사이의 비공개 접촉통로는 유엔 주재 북(조선) 대표부와 미국 국무부 사이의 직접통로였다. 유엔주재 북(조선) 대표부와 미국 국무부가 비공개 직접접촉을 진행하였다는 사실은, 8월 1일 오전 백악관 각료회의가 끝난 뒤 익명의 고위관리가 그 동안 조·미 접촉은 유엔주재 북(조선)대표부의 외교관리들과 인편으로, 또는 전화나 팩스로 진행되었다고 밝힌 것에서 확인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8월 2일자)

이미 7월 8일 뉴욕에서 있었던 조·미 비공개 회동에서 북(조선)은 베이징통로를 배제하면서 뉴욕통로만을 조·미 접촉통로로 인정한다고 통보한 바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베이징을 통한 기존의 조·미 간접접촉통로와 뉴욕을 통한 새로운 조·미 직접접촉통로를 모두 인정한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북(조선)은 다자회담의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자기의 방안을 미국이 받아들였음을 확인하고, 미국의 5자회담 방안을 러시아를 포함시킨 6자회담 방안으로 수정하였다. 북(조선)이 6자회담 방안을 내부적으로 확정지은 시점이 언제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북(조선)은 7월 20일부터 23일 사이에 자기의 6자회담 방안을 뉴욕의 직접접촉통로를 통해 미국 정부에게 전달하였고, 그에 따라 5자회담을 완강하게 주장하던 미국 정부도 슬그머니 6자회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미국이 북(조선)의 6자회담 방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조선)이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열고 5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미국의 방안을 중국을 통해 전달받기 나흘 전인 7월 24일 미국 정부는 3자회담에 이어서 5자회담을 진행하는 기존의 방안을 3자회담에 이어 러시아를 포함시킨 6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으로 바꾼 수정안을 러시아와 협의하였다. 그 수정안은 7월 24일 러시아 외무장관 이고르 이바노프(Igor Ivanov)와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전화통화에서 논의되었다.

미국이 7월 24일에 6자회담 방안을 러시아와 협의한 것은, 미국 정부가 이미 뉴욕을 통한 조·미 직접접촉통로를 통하여 북(조선)의 6자회담 방안에 동의한 뒤에 있었던 일이다.

러시아의 『인테르팍스통신』은 러시아 외무차관 알렉산드르 로슈코프(Alexandr Roshkoff)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은 중국이 참가한 가운데 북(조선)과 3자회담을 개최하고, 이튿날 남(한국), 러시아, 일본이 참가하는 6자회담을 개최하는 데 동의했다고 보도하였다. 7월 28일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던 존 볼튼은 중국 외교부 부부장 장예수이와 회담한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다자회담에 참가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7월 31일 북(조선)은 유엔주재 북(조선) 대표부를 통하여 미국 정부에게 최종 수정안을 제시하였다. 북(조선)의 최종 수정안은 3자회담을 거치지 말고 처음부터 6자회담을 열고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방안이었다. 8월 1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기자가 제기한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월 31일에 뉴욕에서 조·미 사이에 핵문제에 대한 회담과 관련한 조·미 접촉이 있었다. 최근에 조·미 사이에 핵문제 해결을 위하여 3자회담, 4자회담, 3자회담에 이어 5자회담을 진행할 데 대한 제안들이 나왔다. (줄임) 우리는 이번에 조·미 접촉에서 3자회담을 거치지 말고 직방 6자회담을 개최하며 거기에서 조·미 쌍무회담을 진행할 데 대한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8월 4일에 발표된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는 "최근 뉴욕에서 진행된 조·미 쌍무접촉들에서 (줄임) 미국 측은 '선핵포기, 후대화' 주장만을 고집해오던 것을 포기하고 우리의 6자회담 제안에 동의하면서 그 테두리 안에서 조·미가 접촉하여 호상립장을 밝히고 론의하자고 하였다."고 밝혔다.

6자회담을 열고 그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북(조선)의 최종 수정안을 전달받은 미국 정부는 마치 그 방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즉각 받아들였다. 미국 정부가 북(조선)의 최종 수정안을 받아들인 다음날인 8월 1일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기자들에게 "미국은 북(조선)과 불가침 협정을 맺을 수는 없지만 북(조선)의 안보와 미국의 불가침 의사를 논의할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런 논의는 미국 상원의 인준 등 의회의 비준과정을 거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3년 8월 4일자) 이러한 발언은 회담을 재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북(조선)과 정치적으로 합의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북(조선)의 최종 수정안을 받아들였으면서도 북(조선)이 조·미 양자회담 원칙을 철회하고 미국의 다자회담 원칙을 받아들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세상에 발표하였던 것이다.

4. 미국 정부가 두려워한 '공포의 8월'

미국 정부가 두려워한 '공포의 8월'은, 북(조선)이 미국 정부의 퇴로를 차단하고 치명적인 정치공세를 가하려고 벼르고 있었던 시기인 2003년 8월을 의미한다. 7월 31일에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8월은 미국 정부에게 공포를 몰아오는 시기로 예상되었다.

2003년 8월이 '공포의 8월'이 될 것이라고 미국 정부가 예측하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핵활동을 전면적으로 재개하고 있는 북(조선)이 8월중에 미국 정부에게 치명적인 정치공세를 가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음을 미국 정부가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조선)이 전면적으로 재개한 핵활동은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를 거치면서 미국 정부를 '공포의 8월'로 몰아가고 있었다.

첫째 단계는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에 의하여 그 동안 동결되었던 평안북도 영변의 5메가와트급 실험용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는 것이었다. 그 흑연감속로를 가동한다는 것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둘째 단계는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에 의하여 그 동안 건설공사를 중단하였던 영변의 50메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와 평안북도 태천의 200메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 건설공사를 재개하는 것이었다. 이 건설공사가 완료되면, 북(조선)은 고순도 플루토늄을 풍부하게 보유함으로써 원자력 발전의 자립을 실현하게 되며, 확보한 고순도 플루토늄의 일부는 해외로 수출할 수도 있게 된다.

셋째 단계는 영변 핵시설의 폐연료봉 8천 개에 대한 재처리작업을 완료하여 무기급 플루토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넷째 단계는 재처리작업에서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가지고 추가로 핵탄두를 제조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섯째 단계는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탄두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고 핵무장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이미 2002년 12월말에 첫째 단계에 돌입한 북(조선)의 핵활동이 한 단계씩 진전되어온 일련의 과정은 미국 정부를 단계적으로 압박해 들어가는 공포와 충격의 과정이었다. 미국 정부는 북(조선)이 자기를 단계적으로 압박해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대항조치를 취할 수 없었고 북(조선)의 압박공세를 피할 수 있는 퇴로도 찾을 수 없었다. 2002년 12월부터 2003년 6월말까지 약 6개월 동안 미국 정부는 퇴로를 차단 당한 채 단계적인 압박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세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기간에 미국 정부가 이라크 침략전쟁에 몰두하는 바람에 북(조선)의 압박공세에 대응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오류다. 미국 정부에게 치명적인 공세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드러난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가 아니라 북(조선)이 전면적으로 재개한 핵활동에 의해서 가해지고 있었는데, 그런 현실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던 부시와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소홀히 하면서 이라크 침략전쟁에만 매달렸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다.

7월에 들어서면서 북(조선)은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하여 지난 6개월 동안 수행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단계적 압박전술 가운데 셋째 단계에까지 진전하였고, 바야흐로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한 공포와 충격의 압박전술로 전환하였다. 북(조선)의 단계적 압박이 치명적인 공세로 전환된, 그리하여 미국 정부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시점은 2003년 7월 8일이었다. 평양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서거 9주기를 맞은 그날, 평양으로부터 지구의 반대편에 위치한 국제도시 뉴욕의 맨해튼에서는 주목할만한 회동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은 채 조용히 진행되었던 바로 그 7월 8일의 회동에서 북(조선)의 단계적 압박은 치명적인 공세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7월 8일 회동에는 유엔주재 북(조선)대표부 박길연 대사와 한성렬 차석대사, 그리고 미국 국무부의 대북교섭 담당대사 잭 프릿처드(Charles L. Pritchard)와 코리아과장 데이빗 스트라우브(David Straub)가 참석하였다. 그 회동에서 박길연 대사는 우리말로 미국 정부에게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내용을 통보하였다. 그 내용을 한성렬 차석대사가 영어로 통역하였음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통보는 미국 정부의 눈앞에 '공포의 8월'이 다가왔음을 예고한 일종의 최후통첩이었다. 『연합뉴스』 2003년 7월 13일자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통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북(조선)은 영변 핵시설의 폐연료봉 8천 개에 대한 재처리작업을 6월 30일에 완료하였다고 통보하였다. 지난 4월 18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이 폐연료봉 8천 개의 재처리작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한 뒤 3개월만에 완료된 것이다.

이 통보를 받고 혼비백산한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재처리작업이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국가정보기관의 촉수를 통해 확인하고서도 그 엄청난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라고 하면서 덮어두려고 하였다. 7월 19일 미국 정부의 관리들은 미국이 군사분계선 부근에 설치한 탐지기들을 가동시켜 크립톤 85(krypton 85)가 발생하는지 탐색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하면서도, 북(조선)의 발표대로 폐연료봉 8천 개의 재처리작업이 완료되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7월 20일자) 크립톤 85는 폐연료를 플루토늄으로 전화시키는 화학처리공정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기체다.

미국 정부가 북(조선)의 재처리작업 완료 통보를 미확인 정보라고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던 까닭은, 재처리작업의 완료가 몰고 올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자기들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이 재처리작업을 완료하지도 않았으면서 완료한 것처럼 거짓말을 통보하는 식의 옹졸하고 유치한 전술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에 맞서 심각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북(조선)이 나중에 거짓이 탄로날 수 있는 얕은 속임수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02년 12월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은 북(조선)이 폐연료봉 재처리작업에 필요한 트라이부틸 인산염(tributyl phosphate) 20t을 중국기업체로부터 수입한 것을 포착하였는데, (『워싱턴 타임스』 2003년 7월 4일자) 이것은 재처리작업을 완료하였다는 북(조선)의 통보를 뒷받침하고 있는 미국 측의 정보다.

2) 북(조선)은 재처리작업으로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겠다고 통보하였다. 지난 6월 9일 『조선중앙통신』 논평에서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핵위협을 계속한다면 핵억제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고 발표한 뒤 1개월만에 같은 의사를 미국 정부에게 직접 전달한 것이다.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겠다는 말은 핵탄두를 제조하겠다는 뜻이다.

3) 북(조선)은 영변의 5메가와트급 흑연감속로를 가동하고 있으며 적절한 시기에 플루토늄 추출작업도 계속할 것이라고 통보하였다. 영변의 흑연감속로는 실험용으로 설계되어 1979년에 착공되었으며, 1986년부터 가동되다가 1994년에 조·미 기본합의에 따라 가동을 일시 중지하였다. 실험용 흑연감속로를 다시 가동하고 플루토늄을 계속 추출하겠다는 말은, 앞으로 핵탄두를 많이 제조하겠다는 뜻이다.

4) 북(조선)은 50메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공사와 200메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공사를 재개하였다고 통보하였다. 영변에 있는 50메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는 1985년에 착공되어 9년 동안 공사가 진척되다가 1994년에 조·미 기본합의에 따라 건설공사가 중지되었다. 평안북도 태천에 있는 200메가와트급 원자력발전소도 역시 1989년에 착공되어 5년 동안 공사가 진척되다가 1994년에 조·미 기본합의에 따라 건설공사가 중지되었다. 대형 흑연감속로 두 기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한다면, 북(조선)은 엄청난 양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게 된다.

5) 『아사히신붕』 2003년 7월 26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은 미국이 조·미 양자회담을 거부하면서 북(조선)에 대한 압살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가까운 장래에 북(조선)은 대항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대항조치의 일환으로 핵실험을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하였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지하핵실험을 '가까운 장래에' 실시하겠다는 명백한 의사를 밝혔던 이 대목에서 미국 정부는 공포와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북(조선)의 지하핵실험은 미국의 핵확산금지체제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겠다는 북(조선)의 발언은 상대방에게 겁을 주기 위한 엄포용 발언이 아니라 실제로 준비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방의 분석가들과 언론들도 그렇게 예측하고 있었다. 7월 23일 『로이터통신』은 도쿄의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서, 만일 미국이 북(조선)의 건국기념일인 9월 9일까지 북(조선)의 요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 북(조선)은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증강의 길을 열어놓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7월 25일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몽드』는 북(조선)이 건국기념일인 9월 9일을 기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할 가능성과 그 선언이 몰고 올 파장에 관하여 대서특필하였다. 『르 몽드』는 "북(조선)이 미국에게 희대의 공갈과 협박을 가하면서 지난 50년 동안 군사력으로 유지되어오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평화에 마침표를 찍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에 대한 북(조선)의 의지는 갈수록 확고해지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은 지하핵실험 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집행명령을 기다리는 대기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은 지난 1960년대부터 핵기술 개발에 힘써왔기 때문에 매우 탄탄한 핵기술공학 기반을 축적하고 있으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치적 결단만 내리면 지하핵실험은 언제든지 실시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나는 북(조선)의 지하핵실험이 건국기념 55주년인 9월 9일을 앞둔 2003년 8월말에 실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으로 판단한다. 북(조선)이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겸 우주발사체(SLV)를 시험발사한 시점을 8월 31일로 잡았던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6) 북(조선)은 미국의 다자회담 방안을 반대하지 않으며, 어떠한 경우에든지 다자회담 개최에 앞서 반드시 조·미 양자회담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통보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은 남(한국)과 일본이 참가하는 5자회담이 개최되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밝히면서, 5자회담에서 미국의 입장과 계획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7) 북(조선)은 미국이 북(조선)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중국을 앞세워 상대하려 하고, 중국도 자기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보려고 조·미 관계에 개입하려는 것에 제동을 걸면서, 앞으로는 뉴욕통로만을 조·미 접촉통로로 인정한다고 통보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중국을 조·미 사이의 간접접촉통로로 계속 인정한다고 하면서, 뉴욕통로만을 조·미 접촉통로로 한다는 북(조선)의 견해에는 반대하였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미국 정부는 북(조선)으로부터 위와 같은 엄청난 내용을 통보 받고서도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퇴로가 차단 당한 채 치명적인 압박공세를 받게 된 시점에서 미국 정부가 대응조치를 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5. 7월 8일 회동 전후에 일어난 일들

7월 8일 회동을 전후하여 '공포의 8월'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과 워싱턴의 정치권, 그리고 핵문제 관계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두 가지 반응으로 대별된다. 불안과 공포의 반응과 반격시도다.

먼저 불안과 공포의 반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북(조선)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함으로써 핵무장국임을 선언하기 직전에 있으며, 미국이 그것을 중지시킬 수 있는 마땅한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는 "우리는 올 여름에 그러한 충격적 사태(북[조선]이 핵무장을 선언하는 사태를 뜻함-옮긴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고 실토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7월 22일자) 북(조선)의 생활을 "끔직한 악몽(hellish nightmare)"이라고 저주하는 악담을 늘어놓으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악한 독재자(tyrannical dictator)"라고 비난하였던 존 볼튼마저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자 7월 16일 일본을 방문하는 중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이 8월중에 개최될 가능성을 시사하였다. 그만큼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 사이에는 '공포의 8월'에 대한 불안감이 퍼져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반응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사람은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였다. 그는 클린턴 정부 시기에 국방장관과 대북정책 조정관을 지냈으며, 현재는 클린턴 정부 고위관리 출신인사들이 지난 3월에 설립한 국가안보자문단(NSAG)의 의장으로 있는 비중 있는 인물이다. 그는 7월 15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단독회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1) 미국은 현재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만일 미국이 6개월 전에 조치를 제대로 취하였다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핵문제는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2) 북(조선)이 추진하고 있는 핵개발은 미국의 도시들에서 핵무기가 폭발될 수 있는 "절박한 위험(imminent danger)"을 조성하고 있다.

3)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혼란에 빠져있다. 미국 정부가 아시아의 관련국들과 집중적으로 접촉하는 다자적 외교접근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7월 21일 윌리엄 페리는 미국 공영텔레비전 방송(PBS)에 출연하여 대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북(조선)이 현재와 같은 과정을 계속 진전시킨다면, 나는 우리가 올해 연말까지 핵무기 8개를 용인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며, 내년부터는 북(조선)이 해마다 핵무기 5-10개를 생산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줄임) 이것은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줄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북(조선)과 직접 협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다른 나라들에게 내맡길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7월 23일에도 계속 표명하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만일 미국 정부가 핵무기 확산방지를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2010년 안에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 정부는 우선 북(조선)과의 직접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7월 18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무총장 모하메드 엘바라데이(Mohamed Albaradei)는 "북(조선)의 상황은 현재 핵확산금지체제에 대한 가장 임박하고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7월 20일자)

『뉴욕 타임스』 2003년 7월 22일자 기사는, 백악관의 고위보좌관은 미국가 북(조선)의 상황을 완화시킬 시간적 여유를 아직 가지고 있다고는 말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 미국 정부의 관리들은 만일 북(조선)이 핵강국을 선포하기 위하여 핵실험을 실시한다면 미국의 대북전략은 유지될 수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뉴욕 타임스』는 '제2의 핵무장 시대를 직면하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장 심각한 사태는 북(조선)이 핵무장을 완료하였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북(조선)의 핵무장은 극동지역에서 급격한 핵확산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만일 일본이 핵무장을 하게 되면, 중국은 그에 대항하여 핵무기 증강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기사는 미국 예일대학교의 정치학자인 폴 브래큰(Paul Braken)의 말을 인용하여, 단순히 핵무기의 확산이 아니라 제2의 핵무장 시대가 도래한다는 데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뉴욕 타임스』 2003년 8월 3일자)

다음으로 미국 정부의 반격시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유형은 정치적 조치다. 6월 18일 아세안외무장관회담 및 아세안지역안보연단(ARF) 회담에서 한·중·미·일 외무장관들은 연쇄적으로 교차 양자회담을 가졌다. 그 양자회담에서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유엔안보리에서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조선)을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하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 정부가 핵문제를 유엔안보리로 넘기려고 시도한 것은 지난 2월 12일 국제원자력기구가 핵문제를 유엔안보리에 회부한 이후 계속 시도된 것이다. 미국은 4월 9일에 소집되었던 유엔안보리 회의에서도 북(조선)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비난하는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을 채택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중국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둘째 유형은 왜곡된 정보를 퍼뜨리는 행위다. 미국 정부의 관계기관은 미국 언론을 통하여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정보를 퍼뜨렸는데, 그들이 이용한 것이 미국 최대의 일간지 『뉴욕 타임스』와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다. 『뉴욕 타임스』를 이용한 여론조작은 중앙정보국(CIA)이,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를 이용한 여론조작은 국방부가 각각 추진하였다.

『뉴욕 타임스』 2003년 7월 1일자 기사는, 중앙정보국 관리들이 북(조선)이 도쿄와 주일미군을 공격하는 미사일에 탑재할 소형화된 핵탄두 제조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중앙정보국 관리들은 미국의 첩보위성에 의해서 북(조선)의 '용덕동'이라는 지역에 핵실험시설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핵실험시설에서는 핵폭탄을 기폭하기 위한 재래식 폭발실험이 진행되어왔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일 뒤에 『뉴욕 타임스』에는 제2의 핵실험시설에 관하여 더 실감나게 엮은 기사가 실렸다. 7월 20일자 기사는, 미국 국가정보기관이 한(조선)반도 상공에서 이동하는 기체를 컴퓨터로 추적한 결과를 분석하였더니, 크립톤 85가 미국의 첩보위성이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는 영변 핵시설이 아니라 또 다른 핵시설, 아마도 깊은 산 속에 은폐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제2의 핵시설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하였다. 기사는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핵물질을 생산하는 능력을 가진 핵시설이 적어도 두 군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하면서, 미국 중앙정보국과 국가안보회의의 고위관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북(조선)의 어딘가에 제2의 핵시설이 은폐되어 있다고 생각하여 왔음을 상기시켰다.

제2의 핵시설 발견설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지나지 않으며, 그 내용을 보더라도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서 유치하게 꾸며낸 흔적이 보인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미국 언론에 흘려줌으로써 여론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돌려세우려는 시도는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취해오고 있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셋째 유형은 심리전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략전쟁 직전에 이라크군의 사기를 꺾어놓기 위하여 미군의 작전능력을 과장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주면서 심리전을 벌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이 조·미 대결에서도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 이른바 '작전계획 5030'에 관한 정보를 미국 언론을 통하여 퍼뜨린 것은 대북 심리전의 전형이다.

부시가 미국·이탈리아 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2의 은폐된 핵시설에 관한 미국 언론의 보도를 무시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존칭을 붙이는 등의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었을 때, 미국 국방부의 고위관리들은 '작전계획 5030'을 언론에 흘려주면서 대북 심리전을 획책하고 있었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 2003년 7월 21일자 기사가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한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지난 두 달 안에 미군사령관들에게 북(조선)과의 충돌이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새로운 전쟁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였다.

2) 그에 따라 전쟁을 도발할 정도로 공격적인 내용으로 된 '작전계획 5030(Operation Plan 5030)'의 초안이 마련되었다.

3) 현재 미국태평양군 사령관이며 해군제독인 토머스 파고(Thomas B. Fargo)와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들은 극비의 전쟁계획을 작성하고 있다.

4) 최근 미국 국방부는 백악관, 국무부, 그리고 다른 정부기관들의 고위관리들에게 전쟁계획의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미국 국방부가 '작전계획 5030'을 수립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얻은 결과에 의하여 미군을 개혁하려는 국방장관 럼스펠드의 의도에 따라 시작되었다.

넷째 유형은, 군사적 조치다. 미국이 취하려는 군사적 조치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이른바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PSI)의 추진이다.

7월 9일과 10일 오스트레일리아 브리스베인에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을 위한 제2차 국제회의가 열렸다. 11개 나라에서 1백명이 넘는 국방부와 외교부 관리들이 참석하였다. 여기에는 주도국인 미국을 필두로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포르투갈이 참가하고 있다.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은 2003년 5월 31일 폴란드를 방문하고 있던 미국 대통령 부시가 연설에서 처음으로 밝혔고, 그에 따라 6월 1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제1차 회의가 열린 바 있다. 제3차 회의의 개최시기는 오는 9월 3일과 4일로 예정되었다.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은 회원국의 영해를 통과하는 선박이나 영공을 통과하는 항공기에 대량파괴무기나 그와 관련된 물질이 있는지를 강제로 검색할 수 있는 이른바 '선제적 저지(preemptive interdiction)'를 강행하는 매우 도발적인 국제협약이다. 제1차 강제검색훈련은 오는 9월 또는 10월에 실시될 예정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 알렉산더 다우너(Alexander Downer)가 밝힌 바와 같이, 미국이 주도하는 확산방지구상을 적용하려는 일차적인 대상은 북(조선)이다.

무게가 5-8kg밖에 되지 않고, 크기가 커다란 자몽 정도인 무기급 핵물질이 국제사회에 유통되는 것을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이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윌리엄 페리는 야구공보다 작은 플루토늄 덩어리를 운반하기 위해서 선박이 동원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의 무의미성을 비판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7월 15일자)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은 핵물질의 유통을 막겠다는 의도라기 보다는 동맹국들과 추종국들을 동원하여 북(조선)을 더욱 압박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조·미 관계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던 7월 31일 미국 국방부는 미군 신속기동여단 스트라이커(Stryker) 부대 소속 1개 소대를 남(한국)에 파견하였다. 미군병력은 그날 오후 2시 경기도 오산의 미군 공군기지에 도착하였다. 최신예 공군수송기 씨(C)-17기 세 대에 나눠 수송된 소대병력은 경장갑차 6대를 동원하여 열흘 동안 경기도 포천의 영평사격장에서 실전훈련을 실시한 뒤에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것은 스트라이커 부대의 첫 해외훈련이다.

미국 국방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오는 8월 18일부터 29일까지 을지 포커스 렌즈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북(조선)을 자극하는 이러한 군사적 조치들은 조·미 정치회담에 장애를 조성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마이니치신붕』 8월 5일자가 보도한 미국 해군의 '원정공격대' 배치에 관한 내용도 같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해군은 기존의 강습양륙부대의 전투력을 크게 증강하기 위하여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장착한 이지스 구축함, 순양함, 공격용 핵동력 잠수함으로 편성된 '원정공격대'를 일본 나가사키의 사세보 해군기지에 새로 배치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유형은 이른바 '탈북자 문제'를 제기하려는 시도다.

7월 17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대북압박정책의 일환으로 이른바 '탈북자' 수천명을 미국에 입국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반격시도는 그들이 기대하였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북(조선)의 압박공세가 너무도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반격시도의 실패는 정치대결에서의 패배로 이어졌다.

6. 이번 회담에서 어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가

미국은 북(조선)과 벌인 정치대결에서 또 다시 패배하였다. 그런데도 미국 정부는 자기의 정치적 패배를 숨기면서, 되레 외교적으로 승리하였다는 허위선전을 늘어놓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미국의 외교적 양보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외교적 양보가 아니라 정치적 패배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북(조선)의 정치적 요구에 미국이 굴복한 것이다.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에 의하여 동결되었던 핵시설을 다시 가동한 것, 재처리작업을 완료한 것, 조·미 양자회담을 받아들인 것은 미국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최대의 핵심사안들이었다. 원래 미국은 북(조선)이 동결된 핵시설을 가동할 경우 제재를 가한다는 원칙, 재처리작업을 추진할 경우 제재를 가한다는 원칙, 조·미 양자회담을 반대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한때 강경한 태도를 보였으나, 2002년 12월부터 2003년 6월까지의 기간에 북(조선)과 벌인 치열한 정치대결에서 패배하면서 그 원칙들은 하나씩 무너지고 말았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양보한 것은 양보가 아니라 굴복이며 패배다. 이번에 조·미 정치대결에서 미국이 북(조선)에게 양보한 것이 있다면, 자기의 5자회담 방안을 철회하고 북(조선)의 6자회담 방안을 받아들인 것 정도일 것이다.

지난 시기 클린턴 정부가 1998년 8월 31일에 북(조선)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겸 우주발사체를 시험발사한 것을 보고 나서 결국 북(조선)의 정치적 요구에 굴복하였던 것처럼, 오늘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단계적 압박공세의 셋째 단계에서 재처리작업을 완료한 것을 보고 나서 굴복하였다.

미국이 북(조선)과 벌인 정치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패인은 무엇일까? 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북(조선)의 초강력한 압박공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북(조선)의 단계적 압박공세는 위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2) 한(조선)민족의 민족공조전략이 힘을 발휘하였다. 북(조선)이 미국에 대해서 단계적 압박공세의 강도를 차츰 높여가고 있었던 그 기간에 남(한국)에서는 반미투쟁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거의 모든 분석가들과 언론들은 무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클린턴 정부 시기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요인이다. 북(조선)의 단계적 압박공세와 남(한국) 대중의 반미투쟁은 민족자주화의 거대한 궤도 위에서 민족공조의 동력을 발휘하였다. 민족공조는 민족의 자주적 공조, 민족자주를 위한 공조다. 민족자주의 공조는 전민족적 차원에서 반미자주역량이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3) 미국이 대통령 선거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라크 민중의 유격전술에 의해 미국 점령군의 사상자가 늘어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에 관련하여 미국 정부의 정보조작이 폭로되면서, 이라크 침략전쟁이 차츰 수렁에 빠지고 있는 지금,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은 위기에 밀려가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오는 9월부터 대통령 선거분위기에 말려 들어가게 되는데, 대선국면에서 이라크 침략전쟁과 북(조선)의 핵문제가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든다면, 그것은 부시 정부의 외교적 실패로 되지 않을 수 없다. 대선국면이 다가오면서 다급해진 쪽은 북(조선)이 아니라 부시 정부다.

지난 시기 북(조선)의 정치적 압박에 굴복한 클린턴 정부가 조·미 양자회담에 끌려나와서 결국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면, 이번에 북(조선)의 정치적 압박에 굴복한 부시 정부는 6자회담이라는 외피 속에서 진행되는 조·미 양자회담에서 어떠한 요구를 받아들일 것인가?

거의 모든 분석가들과 언론들은 북(조선)이 6자회담이라는 외피 속에서 진행되는 조·미 양자회담에서 미국에게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요구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북(조선)의 대미회담전략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북(조선)은 이번 기회에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놓으려고 총력을 집중할 것이다.

그에 비하여 미국은 조·미 양자회담에서 핵문제에만 집착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6자회담의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이 개최되면, "북(조선)에 대한 불가침 문제와 조·미 사이의 총체적인 전반문제(whole gamut of issues between Nor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7월 22일자)

그렇다면 북(조선)이 해결하려는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는 무엇일까? 나는 이전에 발표한 논문들에서, 그리고 이 글의 도입부에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가 민족자주위업을 실현하는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민족자주위업을 실현하는 문제라는 것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과 남(한국)에 대한 지배정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과 남(한국)에 대한 지배정책은 한·미 동맹체제와 주한미군 주둔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다.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철거하는 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과 남(한국)에 대한 지배정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한미군을 철거하면 한·미 동맹체제는 존재근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 철거는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는 지름길이며 민족자주위업을 실현하는 관건이다.

지금까지 북(조선)은 미국에게 조·미 불가침조약(또는 협정) 체결을 요구하여 왔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이 체제보장이라고 하면서, 체제보장의 구체적인 조치가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관리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관리들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전쟁을 도발하지도 공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였던 "부시의 구두보장(verbal guarantees)을 공식화(formalize)하는 문제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7월 22일자) 그들이 말하는 공식화는 불가침조약 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콜린 파월의 발언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불가침을 약속하는 외교문서를 연방의회가 의결하는 형식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된다. (『연합뉴스』 2003년 8월 8일자)

그러나 북(조선)이 해결하려는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는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미 관계의 정상화, 다시 말해서 조·미 국교수립의 단계로 이어지는 문제다. 북(조선)이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렸던 조·중·미 3자회담에서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했던 4단계 방안에 밝혀져 있다. 4단계 방안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4단계 방안에 따르면, 북(조선)은 제2단계에서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제3단계에서 조·미 국교를 수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제1단계는 대북 중유공급을 재개하고 식량을 지원하는 일종의 준비단계며, 제4단계는 신포 경수로를 완공하는 일종의 마무리단계다. (『연합뉴스』 2003년 6월 27일자)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는 제2단계와 제3단계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 외교부 부부장 왕이가 8월 7일과 8일 북(조선)을 방문하였을 때, 북(조선) 외무성의 관리들은 이번에 회담이 재개되면 지난 4월에 열렸던 베이징 3자회담에서 북(조선)이 내놓은 '4단계 대범한 제안'에 대한 미국의 대답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3년 8월 8일자)

주목해야 할 문제는,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와 주한미군 철거문제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북(조선)이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수립하려는 목적은, 자주의 기치를 들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있는 제국주의 국가와 평화적으로 공존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한미군을 철거하기 위함이다.

북(조선)은 왜 주한미군을 철거하려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우선 북(조선)이 주한미군을 바라보고 있는 관점을 이해하여야 한다. 북(조선)은 주한미군을 '미제침략군'이라고 부른다. '미제침략군'이라는 말은 주한미군에 대한 북(조선)의 관점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북(조선)은 남(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제국주의 침략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침략이라는 개념은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는 행동을 말하는데, 무력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군사적 침략 곧 침략전쟁을 의미한다. 국제법상 침략전쟁은 전쟁범죄로 규정된다.

그러므로 북(조선)이 사용하고 있는 '미제침략군'이라는 개념에는 제국주의 국가인 미국이 무력을 사용하여 한(조선)반도를 침략한 전쟁범죄를 자행하였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주한미군은 한(조선)반도에 쳐들어온 침략군이며 한(조선)민족에게 전쟁범죄를 자행한 원흉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조선)민족은 수없이 외세침략을 받아온 민족이다. 한(조선)민족은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온 북방 오랑캐들이나 현해탄을 건너 쳐들어온 남방 오랑캐들을 한(조선)반도에서 몰아내고 조국강토를 지키기 위한 험난한 조국방위전쟁에서 언제나 승리의 기치를 휘날리며 용감하게 투쟁해온 민족이다. 한(조선)반도에 쳐들어온 오랑캐(침략군)를 물리치고 한(조선)민족에게 전쟁범죄를 자행한 원흉을 징벌하는 것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한(조선)민족 전체에게 주어진 최대의 역사적 임무였다.

오늘날 북(조선)은 "태평양을 건너 쳐들어온 서양오랑캐인 미제침략군"을 한(조선)반도에서 철거하는 것을 그러한 역사적 임무로 인식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북(조선)이 주한미군 철거문제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포기하는 문제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한(조선)민족의 역사적 임무라고 보고 있는 이유가 밝혀진다.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미국에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라는 요구와 '미제침략군'을 철거하는 역사적 임무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분석가들과 언론들은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불가침조약을 북(조선)에 대한 불가침을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나,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이다.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쌍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이 될 것이지만, 북(조선)은 불가침조약이 적용되는 범위를 북(조선)에만 국한하지 않고 '남조선'을 포함하는 한(조선)반도 전역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것이다. 북(조선)이 말하고 있는 '하나의 조선'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미국에게 요구하는 불가침조약은 북(조선)에 대한 불가침만이 아니라 한(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불가침을 국제법적으로 규정하는 조약이다.

'하나의 조선'을 말하고 있는 북(조선)이 한(조선)반도 안에 '미제침략군'이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한(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불가침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한(조선)반도 전역에 대한 불가침은, '미제침략군'이 철거되어야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주한미군 철거와 무관한 조·미 불가침조약은 그것이 비록 체결되었다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종이장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미국이 과연 북(조선)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건국 이후 그 어떤 나라와도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미국이 특별히 북(조선)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이변'이 과연 일어날 것인가?

조·미 불가침조약은 조·미 양국의 최고수뇌들이 불가침문서에 조인한 뒤에 반드시 미국 연방의회의 상하 양원에서 비준절차를 거쳐야 한다.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문제는, 그것이 양국 최고수뇌의 조인절차와 상하 양원의 비준절차를 모두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렵다. 나의 판단으로는, 양국 최고수뇌가 조인하는 문제도 간단치 않지만, 미국 연방의회의 상원과 하원이 조·미 불가침조약을 비준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불가침조약의 의회비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북(조선)이 미국에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불가침을 보장하는 논의에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최고수뇌의 조인과 의회의 비준으로 불가침을 보장하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을 철거함으로써 불가침을 보장하는 내용에 있다. 북(조선)은 주한미군을 철거하기 위해서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주한미군이 철거되는 경우 조·미 불가침조약은 체결되지 않아도 된다는 반대의 논리도 성립될 수 있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4단계 방안에 따르면, 제2단계에서 북(조선)이 미국에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제3단계에서 주한미군을 철거하기 위한 준비조치라고 해석된다.

그렇다면 북(조선)은 왜 주한미군 철거문제를 조·미 양자회담의 공식의제로 내놓지 않는 것일까? 주한미군 철거문제는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는 문제이므로, 만일 주한미군 철거문제를 조·미 양자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논하는 경우 미국 국방부와 군부, 그리고 남(한국) 정부와 친미세력의 강한 반발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문제가 조·미 양자회담에서 아직 제기되지 않았고, 조·미 국교수립의 전망도 아직 불투명한 현재상황에서 조·미 양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해서 주한미군 철거문제부터 조급하게 제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미 양자회담을 시작하자마자 주한미군 철거와 한·미 동맹체제 해체를 요구하는 것은 회담 자체를 결렬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북(조선)이 주한미군 철거문제를 조·미 양자회담의 의제로 제기하려면 적어도 조·미 국교수립을 위한 회담이 열리는 제3단계까지 진전되어야 할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4단계 방안에 따르면, 북(조선)은 조·미 국교가 수립되는 제3단계에서 주한미군 철거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조선)은 이번 회담에서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미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4단계 방안에 따르면, 이번에 6자회담 구도 안에서 조·미 양자회담을 진행하는 것은 제1단계와 제2단계를 통과하는 것이다. 장차 제3단계에서 진행될 조·미 국교수립을 위한 회담은 다자회담 구도로는 진행될 수 없다. 6자회담 구도는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요구로 미국을 압박하는 과정(제2단계)에만 국한되는 일시적인 회담구도다. 장차 제3단계에서 진행될, 국교수립을 위한 조·미 양자회담은 사실상 북(조선)이 주한미군 철거요구를 관철시키고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시키는 회담으로 진행될 것이다.

조·미 정치대결은 조·미 양자회담이 진행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조·미 정치대결은 양자회담에서 더욱 치열하고 집중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회담이 결렬된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조·미 정치대결이 회담 안에서, 회담을 통하여 벌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회담 밖에서도 벌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회담에서 벌어질 정치대결이 이미 정치적으로 굴복하고 회담장으로 끌려나온 상대와 벌이는 승산 있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조·미 정치대결은 최종적으로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나는 이 물음에 대해서 북(조선)이 종국적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예상답변을 내놓는다. 나의 전망적 시야에는 굴복한 쪽과 굴복시킨 쪽의 투쟁의 결말이 선명하게 보인다. (2003년 8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