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협상과 대결의 교차점으로 끌어간 베이징 회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글

2. 미국이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까닭

3. 조·미 기본합의 파기에서 베이징 회담 개최까지

4. 베이징 회담을 개최하게 된 원인과 배경

5. 베이징 회담의 형식

6. 베이징 회담의 승패

7. 북(조선)이 제시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

8. 북(조선)의 회담 전술과 그에 대한 미국의 반응

9.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전개방향과 그 결말

10. 미국의 대북 관여정책의 불가피성과 전개과정

11. 북(조선)의 해결방도가 지향하는 목표

12.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전망함

 

 

1. 들어가는 글

 

베이징 회담은 조·미 정치협상의 출발점이다. 그 회담에 의해서 대결국면이 협상국면으로 바꿔졌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조·미 두 나라는 대결국면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대화를 시작했다.

조·미 관계에서 협상국면이 열린다는 것은, 북(조선)이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에게 제시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놓고 두 나라 대표들이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선다는 것을 뜻하는데, 지금은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다.

미국 정부 고위관리의 표현을 빌리면, 베이징 회담은 '초기 회의(initial meeting)'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6일자)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길고, 격렬한 논의과정의 시작"이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17일자)

현재 미국은 북(조선)의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검토하면서 내부논쟁을 거치고 있는 단계에 있다. 미국 언론은 미국 대통령 부시(George W. Bush)의 고위급 국가안보담당 보좌관들이 북(조선)이 제시한 해결방도를 놓고 내부논쟁을 벌였다고 보도하였다. (『워싱턴 타임스』 2003년 4월 30일자)  

베이징 회담에 의해서 형성된 현재 국면은 협상국면으로 넘어간 것도 아니고 대결국면으로 고착된 것도 아니다. 두 개의 국면이 서로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회담은 그 동안 대화를 거부해온 미국을 협상과 대결이 교차하고 있는, 되돌아설 수 없는 지점으로 끌어갔다. 이것이 베이징 회담이 조·미 관계사에서 가지는 의의다.

이 글에서 나는 미국이 제네바 조·미 기본합의(Agreed Framework betwee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를 파기한 까닭과 그 이후의 조·미 관계 동향, 베이징 회담을 개최한 원인과 배경, 회담의 형식과 전술문제, 북(조선)의 제안, 미국의 대북 정책과 향후전망을 논하려고 한다.

 

2. 미국이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까닭

 

부시 정부는 2002년 10월초에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에서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파악했다는 '정보'를 내놓았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북(조선)이 1995년부터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17일자) 미국 연방의회 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의 아시아문제 담당관리인 래리 닉쉬(Larry Niksch)는 최근 연방의회에 제출한 한·미 관계에 관한 정책보고서에서 부시 정부는 2001년 7월부터 북(조선)에게 농축우라늄 개발계획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면사찰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해오고 있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003년 5월 7일자)

그렇다면 부시 정부는 2001년 7월부터 북(조선)에 제기하였던 문제를 왜 2002년 10월의 시점에서 마치 새로 발생한 문제인 것처럼 '핵소동'을 일으켰을까?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는 2003년 3월 12일 연방상원 대외관계위원회(Senate Foreign Relations Committee)에서 "일각에서는 북한의 농축우라늄 문제를 먼 장래의 일로 생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문제는 몇 년 뒤의 일이 아니라 아마도 몇 달 뒤의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3월 13일자)

나의 판단으로는, 켈리의 그 발언은 북(조선) '핵문제'를 원인으로 하여 생긴 미국의 다급한 처지를 반영하는 선동발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2002년 10월 31일에 작성한 논문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에서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은 왜곡·날조된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설사 미국이 왜곡·날조한 주장을 사실이라고 가정한 조건에서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추진한다고 해도 농축우라늄을 몇 달 뒤에 생산할 정도로 임박했다고는 볼 수 없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진척시켜 핵탄두를 제조하는 데는 약 5년의 시간이 요구된다고 한다. 제임스 켈리가 자기의 발언에서 '아마도 몇 달 뒤의 일'이라는 불투명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농축우라늄 생산이 몇 달 뒤로 임박하였다는 그의 발언이 허위발언임을 드러내고 있다.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진척시켜 핵탄두를 제조하는 데 약 5년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에 비하여,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흑연감속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reprocessing)하여 추출하는 무기급 플루토늄(weapon-grade plutonium)을 가지고 핵탄두를 제조하는 데는 약 5개월의 시간이 요구된다.

그런데 미국은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날조하여 새로운 '핵의혹'으로 제기하고 중유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조·미 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미국이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것은, 북(조선)으로 하여금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여 5개월 뒤에 플루토늄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이다.

미국이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는 경우,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여 플루토늄을 재처리하게 될 것임을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알지 못해서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그렇지 않다. 조·미 기본합의가 파기되는 경우, 북(조선)은 곧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작업에 돌입하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백한 일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국은 5년 뒤에나 우라늄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개발사업에 대한 '핵의혹'을 제기하면서, 5개월 뒤에 플루토늄 핵탄두를 제조하지 못하도록 동결시킨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실수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왜 그렇게 하였을까? 그들의 의도는 무엇일까?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에게 다음과 같은 원인과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영변 핵시설을 동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해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미국은, 핵시설의 동결만을 규정한 조·미 기본합의를 가지고서는 북(조선)의 '핵문제'를 풀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결론에 따라 미국은 자기에게 이용가치가 없게 된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였던 것이다.

둘째, 미국은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날조한 뒤에, 북(조선)에게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는 것은 물론 농축우라늄 관련시설도 해체하라고 요구하면서 압력의 강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미국의 그러한 의도는 2003년 3월 12일 연방상원 대외관계위원회에서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전부 풀어야만 하며, 그 시급성이 플루토늄 문제에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의 발언에서 드러난다. (『연합뉴스』 2003년 3월 13일자)

만일 미국이 조·미 기본합의를 그대로 붙들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중유공급을 계속해야 하며, 남(한국)과 일본을 동원하여 신포 경수로를 2003년 안에 건설해주어야 하는 조·미 기본합의를 이행하지 못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다. 북(조선)은 미국이 2003년까지 신포 경수로를 건설하기로 한 약속시한을 지키지 못한 것을 지적하면서 미국에게 약속위반의 책임을 추궁하게 되었을 것이다.

북(조선)의 책임추궁이 어떤 방향에서 터져 나오면서 자기를 강타할 것인지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앞으로 밀려올 사태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불안하고 암담했다. 불안하고 암담한 처지에 빠진 그들은 결국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으로 날조된 새로운 '핵의혹'으로 제기하고 대북 중유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

 

3. 조·미 기본합의 파기에서 베이징 회담 개최까지

 

미국은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한 뒤에 더욱 심한 곤경에 빠져들었다. 나는 2002년 11월 14일에 작성한 논문 「2002년 말의 정세는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에서 "부시 정부가 중유공급을 중단함으로써 조·미 기본합의서를 스스로 파기하였으므로, 북(조선)으로부터 보복공세를 받게 될 것이다. 중유공급 중단조치는 부시 정부에게 자승자박의 결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 정부의 중유공급 중단조치는 궁여지책의 효력조차 발생하지 못하는 최악의 '자충수'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이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함으로써 북(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면서 폐연료봉을 재처리하여 5개월 뒤에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얻었다. 미국을 곤경에 몰아넣을 수 있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기회가 북(조선)에게 찾아온 것이다.

결정적인 기회를 얻은 북(조선)은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승리'하여 기고만장해진 미국에게 압박공세를 연속적으로 가하면서 재처리 작업을 강행하기 시작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하는 정치적 차원의 대미 공격전이 강도를 높이게 된 것이다.

지금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이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면서 아예 언급을 회피하려 하거나, 재처리 작업을 했다고 해도 아직 초기단계이므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하면서 한(조선)반도의 정세에 미칠 충격파를 애써 막아보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조선)의 초강력한 압박공세를 받아 곤경에 빠진 그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언급을 회피하거나 충격파를 막는다고 해서 북(조선)의 재처리 작업이 중단된다고 보기 어렵다. 북(조선)의 재처리 작업은 이미 완료단계로 접어들었다. 아무리 늦어도 2003년 6월 안에는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자세하게 논한다.

북(조선)의 재처리 작업 강행으로 미국이 곤경에 빠진 까닭은, 만일 미국이 2000년의 조·미 공동성명을 위반하고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는 경우 북(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발언을 무시하면서 조·미 공동성명을 위반하고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2002년 10월 31일에 작성한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에서 2002년 10월초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에서 강석주 제1부상이 제임스 켈리에게 하였던 경고발언, 즉 "미국이 조·미 공동성명과 조·미 기본합의를 위반하였으므로 우리도 핵확산금지조약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내용의 대미 경고발언을 인용하였는데, 오늘의 사태는 그 경고발언대로 되었다.

지금 세계는 재처리 작업을 거의 완료한 북(조선)에 대해서 미국이 과연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가 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곤경에 빠진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그들은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노염과 좌절감을 느끼면서 자기들끼리 비상대책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에게 최후통첩 수준의 압박공세를 들이대면서 무장해제와 무조건 항복을 강요하는 공갈과 협박을 하루가 멀다 하고 연신 토해내던 미국의 입은 지금 북(조선)에 대해서는 굳게 닫혀 있다. 기껏해야 미국 국방부의 일각에서 대북 봉쇄를 단행해야 한다는 맥빠진 공갈이 다른 나라 언론을 통하여 흘러나왔을 뿐이다. 북(조선)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노염을 느끼고 있는 미국 국방부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이 핵무기 또는 핵물질(nuclear material)을 다른 나라에 수출할 경우 미국은 해상봉쇄를 단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영국 언론에 흘려주었던 것(『연합뉴스』 2003년 4월 27일자)이 이라크 침략전쟁의 '승전' 분위기에 들떠 있다는 국방부가 내뱉은 공갈발언의 전부였다.

이제는 조·미 기본합의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누구도 조·미 기본합의로 복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진 조·미 기본합의를 미국이 제 손을 파기하였으므로 복귀는 불가능하다.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이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조·미 기본합의로 복귀하지 못하게 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다른 하나의 선택은 북(조선)의 '핵문제'를 마치 이라크 침략전쟁을 도발하였듯이 무력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유혹을 느낄 수 있는 대안은 북(조선)에 대한 무력대결이다.

만일 미국이 북(조선)과 무력으로 대결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지역 전체, 그리고 미국 본토에까지 파멸적 재앙(ruinous disaster)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케이토 연구소(Cato Institute)의 연구원 덕 밴도우(Doug Bandow)가 지적한 대로,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행동은 단순한 해결이 아니라 가공할 파괴를 수반하는 전쟁을 알리는 전조인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4월 22일자)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조·미 사이의 대결국면을 더욱 첨예화하면서 무력대결, 곧 전쟁으로 나아가려는 미국의 호전세력의 전쟁도발의지는 북(조선)의 강력한 전쟁억지력에 의하여 막혀있다. 이에 관해서도 나는 위에서 인용한 두 논문에서 논술하였다.

미국이 침략전쟁의 범위를 한(조선)반도에까지 확대하지는 못하고 중동지역에 국한시킬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군사적 이유다.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의 반미국가들은 미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미국에게 반격을 가할 수 있는 대량보복능력(massive retaliatory capability)이 없다. 미국은 이라크의 군사력을 의도적으로 부풀려놓은 왜곡정보를 이라크를 침략하기 전에 국제사회에 흘려주었다. 중동의 반미국가들인 시리아, 이란의 군사력도 대단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국의 침공을 격파할 뿐 아니라 미국에게 파멸적 재앙을 입힐 수 있는 대량보복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북(조선)의 빈틈을 노리면서 선제공격을 가하려는 집요한 침략전쟁 도발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북(조선)에 대한 침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북(조선)의 대량보복능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감히 자신의 의도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과의 전면전은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더 이상 아니다. 미국이 북(조선)과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 미국은 북(조선)의 전략적 대량보복을 받아 자칫 미국이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할지 모르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조·미 전쟁의 선택권이 미국의 손을 떠난 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미국이 북(조선)과 전면전을 벌이는 경우, 미국이 파멸적 재앙을 입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2003년 4월 3일과 4월 19일에 「한(조선)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을 두 개의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각각 작성한 나의 두 논문 「제1부: 미국의 선제공격전략과 '작전계획 5027'」, 「제2부: 북(조선)의 대량보복전략과 미국의 패전경험」에서 논술한 바 있다.

두 번째는 정치적 이유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지만, 그것은 '목소리'일뿐 힘이 없었다. 이라크 주변의 그 어떤 나라도 이라크 침략전쟁을 예방하는 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동에는 미국의 전쟁책동을 가로막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지역 강대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국,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터키, 이스라엘 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나섰고, 중동의 반미국가인 이란은 방관하였다.

그에 비해서 동북아시아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일본은 자기에게도 파멸적 재앙을 입히게 될 조·미 전쟁의 가능성을 반대하고 있다. 경제건설에 몰두하고 있는 중국도 자기에게 재앙을 입히게 될 조·미 전쟁의 가능성을 반대하고 있다. 시베리아, 연해주, 사할린에서 21세기 최대의 에너지자원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 역시 조·미 전쟁으로 동북아시아가 쑥대밭이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남(한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처럼 동북아시아의 나라들 가운데 조·미 전쟁을 지지하거나 그에 대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으며, 모두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이 북(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세 번째는 경제적 이유다. 이라크 침략전쟁 이후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점거하게 된 미국의 석유자본들은 자기들이 약탈한 석유자원을 동북아시아의 거대한 소비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미국은 자기의 약탈에 저항하는 중동의 반미세력들을 무력으로 제압하지만, 자기에게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거대한 소비시장을 전쟁으로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의 거대한 시장경제체제가 조·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파괴되는 것은, 가뜩이나 침체된 미국의 경제를 아예 파국으로 몰아가는 자해행위가 될 것이다.

이제 미국에게 남아있는 선택권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정치회담을 재개하여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조선)과의 대화를 외면·회피하면서 현재의 위태로운 대치상태를 무한정으로 연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조선)반도에서 정치·군사적 대치상태를 언제까지나 유지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북(조선)이 '핵문제'를 가지고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대치상태를 제거하고,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전략연구소의 로버트 아인혼(Robert J. Einhorn)이 지적한 대로, "문제는 북(조선)이 핵무기를 가졌는가 갖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핵무기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만일 북(조선)이 '핵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다면,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대치상태는 미국의 의도대로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북(조선)은 '핵문제'를 가지고 미국을 강하게 압박함으로써 미국의 한(조선)반도 현상유지책을 파탄시키고 있는 것이다.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현상유지책을 붙들고 있는 미국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하였다. 한계점에 도달한 미국은 북(조선)의 압박공세로 자기의 위신이 짓밟히고 수모를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베이징 회담에 끌려나올 수밖에 없었다.

 

4. 베이징 회담을 개최하게 된 원인과 배경

 

베이징 회담에 끌려나온 미국이 그 회담에서 추구하였던 목적은, 북(조선)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려던 미국은 막상 회담이 시작되자 북(조선)의 강력한 회담 전술에 밀려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북(조선)의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받아 가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북(조선)은 1993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여러 차례 조·미 정치회담을 진행해오면서 자기의 제안을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미국에게 제시한 적이 없었으며, 자기의 대미 제안을 가리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라고 자신만만하게 표현한 적이 없었다.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은 조·미 관계에서 발생한 "논쟁을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다(ready to settle the dispute)."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4일자)

북(조선)은 '핵문제'가 미국이 제기한 문제이고, 1994년에 미국과 협상을 통해서 일정한 수준의 합의에 도달하였던 문제이며, 현재는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의해서 악화된 문제이며, 앞으로 조·미 정치회담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자기가 북(조선)의 '핵문제'를 제기한 장본인이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조·미 양자회담(bilateral talks)이 아니라 다자회담(multilateral talks)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이 조·미 양자회담을 집요하게 거부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2003년 3월 12일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가 연방상원 대외관계위원회에서 발언한 바에 따르면,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강조하면 할수록, 북한은 미국을 따로 고립시켜 협상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믿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조·미 양자회담은 "과거에 북한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양자회담은 "미국이 미리 양보하고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미 양자회담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3년 3월 13일자)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다자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고, 미국이 조·미 양자회담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자회담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북(조선)은 다자회담을 개최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조·미 양자회담을 개최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2003년 4월 23일에 열렸던 베이징 회담은 북(조선), 미국, 중국의 대표들이 참가한 3자 회담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북(조선)은 왜 조·미 양자회담을 개최하자는 종래의 주장을 일정하게 수정하여 3자 회담의 형식을 받아들인 것일까? 미국은 왜 다자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포기하고 3자 회담의 형식을 받아들인 것일까?

미국이 3자 회담의 형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북(조선)의 '핵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매우 급박한 처지에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관리들이 "아시아의 블랙홀(the black hole of Asia)"이라고 부르고 있는(『뉴욕 타임스』 2003년 5월 5일자) 북(조선)의 '핵문제'에는,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의 표현을 빌리면, "그 자체로 급박함과 중대함이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2003년 3월 13일자) 만일 미국이 급박한 처지에 몰려있지 않았다면, 다자회담을 개최하자는 주장을 계속 고집하면서 언제까지나 시간을 질질 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의 '핵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급박한 처지에 몰리게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북(조선)이 영변의 흑연감속로에서 사용한 폐연료봉 8천17개를 꺼내서 재처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재처리 작업의 강행은 미국에게 끔찍스러운 악몽이다.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으로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가지고 여러 개의 핵탄두를 만들어내는 경우, 동북아시아에서는 미국이 장악·유지하고 있는 핵확산금지체제(nonproliferation regime)가 붕괴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는 미국의 세계 지배체제의 붕괴를 뜻한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북(조선)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여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개월이고, 추출된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탄두를 제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개월이다. 북(조선)은 이미 지난 1월부터 재처리 작업에 들어갔으므로 오는 6월쯤이면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미국의 회담 대표에게 재처리 작업이 "거의 끝났다(almost finished)."고 통보했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5일자)

북(조선)이 폐연료봉 8천17개를 재처리하여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으로 핵탄두를 제조할 경우, 핵탄두 약 6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18일자) 북(조선)은 오래 전에 은밀하게 제조한 상당량의 핵탄두를 중거리 미사일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탄두부에 탑재하여 이미 실전에 배치하였으므로, 올해에 추가로 생산하는 무기급 플루토늄은, 북(조선)이 어떻게 결심하느냐에 따라서 실전에 배치하는 핵탄두가 될 수도 있고, 비싼 값으로 팔려나가는 해외수출품도 될 수 있다.

핵탄두 1개에 들어가는 무기급 플루토늄의 크기는 야구공보다 조금 큰 것이어서 철통같다는 미국의 감시망이 그것의 운반경로를 포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미국에게 공포와 괴로움을 안겨주고 있는 악몽이다.

지난 3월 31일 북(조선)은 뉴욕의 유엔에서 열린 조·미 비공식 회의에서 미국 대표에게 재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한 바 있었고, 4월 18일 『조선중앙통신』은 3월 31일에 미국에게 재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통보하였다는 사실을 확인보도하였다. 이것은 베이징 회담이 개최되기 전에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강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이 매우 불리하고 급박한 처지에 놓여있었음을 뜻한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는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강행한 것이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의 협상지위를 약화시켰을 것이라고 분석하였으나(『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7일자), 나의 판단으로는, 그 회담이 열리기 이전부터 미국은 곤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곤경에 빠져들게 된 미국, 그리고 불리하고 급박한 처지에 몰려있던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두 가지 상반되는 듯한 반응이 있었다.

첫째는 미국 국방부의 반응이다.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미국이 북(조선)의 지도부를 축출하기 위하여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국방부 비망록(Pentagon memorandum)을 베이징 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에게 내돌렸다. 그 문제의 비망록은 베이징 회담 개최를 반대하는 국방부 관리들에 의해서 초안이 작성된 비공개 비망록이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1일자)

일부 분석가들은 국방부 비망록 배포사건과 관련하여 지금 미국은 북(조선)의 정권교체를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해석하고 있다. 그들의 해석에 따르면, 사담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기 위한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이 북(조선)의 정권을 교체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판단으로는, 국방부 비망록 배포사건과 북(조선)의 정권을 교체하려는 의도를 결부시키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으로 보인다. 국방부 비망록 배포사건은 베이징 회담이 개최되는 것을 반대하려는 행동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미국 국방부의 고위관리들은 '정권교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북(조선)을 심히 자극하여 베이징 회담을 사전에 무산시키려고 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미국 국무부의 반응이다. 2003년 4월 15일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참석하지 않은 자리에서 부시를 만나 베이징 회담 개최에 관한 최종 결재를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17일자) 국방부가 이라크 침략전쟁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국무부는 베이징 회담을 개최하려고 서둘렀던 것이다. 베이징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최종 결재는 통상적인 절차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토론을 거치지 않고 다급하게 추진되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9일자) 이것은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불리하고 급박한 처지에 몰려있었는가를 말해준다.

미국 언론들은 베이징 회담이 중국의 중재역할에 의하여 개최되었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 회담은 북(조선)의 강력한 대미 압박공세를 원인으로 하여 개최되었다.

베이징 회담과 관련하여 굳이 중국의 상징적인 중재역할을 인정한다면, 베이징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회담 과정에서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은 베이징 회담이 시작된 첫날부터 회담이 결렬될 것 같은 위기가 발생하자, 조·미 회담 대표들을 만나서 손을 잡게 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취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3월 24일의 회담에서 미국의 회담 대표인 제임스 켈리가 발언하던 중 북(조선) 대표들이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을 때, 중국은 회담 결렬을 막기 위하여 외교부장 리자오싱(李肇星)을 회담장에 보냈다. 리자오싱은 리근과 켈리를 각각 따로 만나서 회담이 결렬되어서는 안 된다고 설득하였으며, 3월 25일에는 리근과 켈리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대화를 계속하자는 뜻으로 악수를 청했고, 세 사람이 손을 함께 잡는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중앙일보』 2003년 4월 27일자) 상징적인 장면의 연출, 그것이 베이징 회담에서 중국이 취하였던 상징적인 중재역할의 전부였다. 그러므로 베이징 회담이 중국의 중재로 개최되었다는 주장은 오류다.

 

5. 베이징 회담의 형식

 

나는 베이징 3자 회담이라고 부르지 않고, 베이징 회담이라고 부른다. 베이징 회담의 형식은 3자 회담이었지만, 그 내용은 조·미 양자회담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베이징 회담 전에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가 "다자간 대화에서도 직접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연합뉴스』 2003년 3월 13일자)고 예상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의 표현을 빌리면, 베이징 회담은 "조선반도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조미회담"이며, "이 회담에서 중국측은 장소국으로서의 해당한 역할"을 하였을 뿐이며, "핵문제의 해결과 관련한 본질적인 문제들은 조미 쌍방 사이에서 론의"되었던 것이다.

북(조선)이 이처럼 베이징 회담에서 중국의 역할을 "냉정하게 기각하고(bluntly dismiss), 부시 정부가 베이징 회담을 다자회담이라고 포장해 놓은 중대한 조치를 제거해버린 데 대하여 남(한국)과 일본의 정부 관리들은 놀라움을 느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9일자)

미국이 제기하고 악화시킨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해 가는 정치회담에서 '핵문제'의 당사국이 아닌 중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미국 정부와 미국 언론들은 대체로 중국의 중재역할(mediating role)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베이징 회담에서 중국 정부의 대표가 발언한 것은 사실이지만, 회담의 방향을 결정하는 발언권을 행사하였던 것이 아니라 회담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한 범위에 국한하여 발언권을 행사하였다. 북(조선)과 미국이 '핵문제'에 관한 회담을 진행하는 자리에서 중국은 중재자(mediator)가 아니라 회담이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사회자(moderator)였다. 1994년에 열렸던 남·북·미·중 4자 회담에서도 중국은 참관자(observer)였다.

중국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에 대해서 책임적인 발언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근본문제에 깊이 관여하지도 않으려 하고 있다. 중국은 그러한 처지에 있기 때문에 참관자 또는 사회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한국)에 주재하는 중국 대사는 베이징 회담 직전에 서울의 한 라디오 방송과 대담하면서 "중국이 중재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은 건설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두 관련 당사국들이다. 문제가 어느 만큼 해결되느냐 하는 것은 그 두 당사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18일자)

베이징 회담에서 중국의 회담 대표는 1992년에 남(한국)과 북(조선)이 채택한 한(조선)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5일자) 중국이 북(조선)의 '핵문제'를 논의하는 베이징 회담에서 조·미 사이의 '핵문제'가 아니라 남북 사이의 핵문제에 대해서 발언한 것은, 중국이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에 대해 책임적으로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북(조선)은 왜 중국 정부의 대표가 조·미 회담의 사회자로 참석하는 것을 용인하였던 것일까? 거기에는 까닭이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의 회담 대표가 회담내용을 외부에 발표하면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왜곡하려는 의도를 차단하여야 하는 요구가 제기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초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회담에서 미국의 회담 대표는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발언한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면서 왜곡하였다. 제임스 켈리가 강석주 제1부상의 발언을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개발계획을 시인한 것으로 왜곡하여 한때 파문을 일으켰던 사건이 그것이다.

 

6. 베이징 회담의 승패

 

적대관계에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모든 정치회담이 그러하듯이 베이징 회담에서도 승패가 갈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족 내부에서 진행되는 남북의 정치회담은 화해와 협력의 상생원리에 따르는 것이므로 승패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2000년 6월에 있었던 평양회담은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은 것이었다. 그에 비해서 조·미 정치회담은 서로 상대방을 '악의 축'과 '철천지 원쑤'라고 규정하고 있는 날카로운 대립각에서 형성되는 상극원리에 따르는 것이므로 승패의 결말을 낳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베이징 회담의 승패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의 판단으로는, 베이징 회담에서 전술적 패배를 당한 쪽은 미국인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게 보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베이징 회담에 누가 대표로 나갔는가를 살펴보면, 미국이 전술적으로 패하였음이 드러난다.

북(조선)은 지난해 10월초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회담에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각각 대표로 교체하면서 내보냈으나, 이번 베이징 회담에는 외무성 미주담당 부국장(Deputy Director-General of the American Affairs Bureau at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인 리근을 대표로 내보냈다.

그에 비하여 미국은 지난해 조·미 정치회담에 대표로 내보냈던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East Asian and the Pacific Affairs)인 제임스 켈리를 이번에도 대표로 내보냈다.

베이징 회담에 사회자의 자격으로 참석한 중국의 공식대표는 외교부 아주국장인 푸잉(傅營)이었다. 중국의 공식대표 푸잉과 더불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인 왕이(王毅)도 줄곧 참관자로 참석하였다. 왕이는 원래 회담 개막식에서 연설만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줄곧 남아서 회담을 참관하였다.

회담 대표를 정하는 문제는 회담이 열리기 전에 회담 당사국들 사이에서 상호통보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므로 미국은 베이징 회담에 나올 북(조선)의 대표가 누구인지를 사전에 알았을 것이다. 외무성 미주담당 부국장인 하급관리를 회담의 대표로 내보내겠다는 사전통보를 받고서도 미국은 항변을 하지 못했다.

만일 미국이 북(조선)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정치회담을 하였다면, 미국은 자기의 회담 대표보다 한 급 높은 직책을 가진 상대의 회담 대표가 회담에 나오라고 요구했을 것이고, 그것이 통하지 않는 경우에는 적어도 자기의 회담 대표와 같은 급의 회담 대표가 나오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그 어떤 나라도 미국과 정치회담을 하면서 미국의 회담 대표보다 낮은 직책을 가진 관리를 자기의 대표로 임명하여 회담에 내보내지 못한다. 그것은 세계 외교무대에서 미국이 정해놓은 일종의 불문율이다. 모든 나라들은 그 불문율이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초강대국의 부당한 행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불문율을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불문율을 무시하고 있는 나라가 북(조선)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의 이익을 해치거나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면 미국에게 언제 어떻게 얻어맞을지 모르는 국제사회에서 북(조선)은 초강대국의 패권주의적 태도를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로서 자기의 위신을 세우고 있다.

북(조선)도 베이징 회담에 나올 미국 대표가 누구인지를 사전에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격을 낮춰 부국장급 관리를 대표로 참석시킨 데는 의도가 있다. 북(조선)의 정치적 의도는 북(조선)이 미국보다 한 급 높은 위치에서 베이징 회담을 주도하겠다는 데 있었다. 그러한 의도를 사전에 간파했을 때, 미국은 모욕감을 느꼈겠지만, 회담을 거부하지 못하고 응할 수밖에 없는 곤경에 빠져있었다. 미국은 의기양양한 기세로 회담에 나선 것이 아니었으며, 불쾌하고 곤혹스러운 심정을 안고 회담에 나섰던 것이다.

둘째, 베이징 회담 전에 미국이 마련한 지침과 준비한 전술이 무력화됨으로써 미국은 베이징 회담에서 전술적 패배를 당하였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 부시와 국무장관 파월은 베이징 회담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회담 대표인 제임스 켈리에게 주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마련했다고 한다.

첫 번째 지침은, 미국이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과 농축우라늄 관련시설을 동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한다고 약속하여야 북(조선)과의 포괄적인 협상에 나선다는 지침이었다. 미국은 베이징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의 전면적인 해체와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의 완전한 포기를 북(조선)에게 요구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아사히신붕』 2003년 4월 18일자)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영변 핵시설의 해체, 그리고 왜곡·날조된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개발사업의 포기를 대북 압박의 새로운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은 북(조선)이 강한 압박공세를 가했기 때문에 그 새로운 수단을 사용하지 못했다.

두 번째 지침은, 미국은 북(조선)이 먼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조·미 불가침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지침이었다. 이것은 조·미 정치회담이 재개되기 이전에 미국이 취하려고 했던, 선 핵포기, 후 대화를 요구하는 전술에서 나온 지침이었다.

미국이 북(조선)에게 요구하는 핵무기 개발의 포기는,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Ari Fleisher)가 설명한 대로, "북(조선)이 자기의 핵무기 개발사업을 되돌릴 수 없고, 입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체하는 것(North Korea's irrevocable and verifiable dismantlement of its nuclear weapons program)"을 뜻한다. (『워싱턴 타임스』 2003년 3월 30일자)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는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회담이 결렬된 직후인 2002년 10월 19일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부시 정부는 조·미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북(조선)이 먼저 즉각적으로, 가시적으로 비밀 핵무기 개발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이번에는 1993년과 1994년의 재판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6일자)

그러나 "미국은 북(조선)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북(조선)이 핵물질을 폐기할 것을 약속하라는 당초의 요구를 포기하였고", 그로써 북(조선)에게 "중요한 양보(key concession)"를 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1일자) 이것은 선 핵포기, 후 대화의 전술이 무력화되었음을 뜻한다.

세 번째 지침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경우, 미국은 북(조선)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새롭고 창조적인 방도"를 모색한다는 지침이었다. 그러나 이 지침은 북(조선)이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미국에게 제시함으로써 무력화되고 말았다.

네 번째 지침은, 조·미 두 나라 이외에 중국, 일본, 남(한국), 러시아도 참가하는 6자 회담을 추진한다는 지침이었다. 미국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다자회담 추진 구상은 원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 나라가 모두 참가하는 것을 예상한 것이었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6일자)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는 워싱턴에서 열린 남(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 나라와 북(조선), 남(한국), 일본이 참가하는 5+3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으며 6자 회담도 생각하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3년 4월 10일자)

2003년 4월 17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 필립 리커(Philip T. Reeker)가 했던 발언을 보면, 미국의 다자회담 추진 구상은 제1단계에서 중국을 참가시키고, 제2단계에서는 남(한국)과 일본을 참가시키고, 마지막으로 러시아까지 참가시키는 확대경로를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조선)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조·미 양자회담은 하지 않겠으며, 반드시 다자회담을 개최해야 한다고 고집하였다. 그러나 다자회담 개최라는 전술목표는 베이징 회담이 개최됨으로써 파탄되고 말았다.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회담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자신의 두 동맹국을 자진해서 옆으로 제쳐둠으로써" 북(조선)에게 "중요한 양보(key concession)"를 하였던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1일자)

미국 대통령 부시는 제임스 켈리를 베이징 회담에 회담 대표로 파견하면서 북(조선)이 앞으로 미국과 회담하려면 남(한국)과 일본을 참가시키는 다자회담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라는 지침을 주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6일자) 그러나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의 회담 대표는 다자회담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는 압력을 가하기는커녕 되레 압력을 받았으며,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미국의 다자회담 제안을 묵살하였다.

조·미 정치회담이 재개되기 이전에 미국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술을 취하려고 했었는데, 그 전술도 역시 베이징 회담이 열림으로써 무력화되고 말았다.

첫째 전술은, 북(조선)이 만일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경우, 이른바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으로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전술이다. 그러나 미국은 무기력하게도 그 전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베이징 회담이 개최되기 전에 미국에게 통보하거나 세상에 공개적으로 발표했는데도, 미국은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을 가하지 못했던 것을 말할 것도 없고,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겠다는 식의 공갈도 하지 못했다.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베이징 회담에서 재처리 작업이 거의 끝났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해주었는데도, 지금 미국은 아무런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재처리 작업을 강행하면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겠다는 전술이 파탄되었음을 뜻한다.

둘째 전술은,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력을 의제로 삼으려는 전술이었다. 이 전술은 미국 대통령 부시가 직접 공언하였던 전술이다. 그러나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의 그 전술은 통하지 않았다. 북(조선)의 강력한 회담 전술에 밀린 미국의 회담 대표는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력에 관한 문제는 제기하지 못했다. 나는 2002년 3월 15일에 작성한 논문 「부시 행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에서 "앞으로 조·미 정치협상이 재개되면 부시 행정부는 그러한 부당한 요구(재래식 군사력을 감축 또는 후퇴시키라는 요구)를 꺼내지 못하게 되어있다."고 예견한 바 있다.

셋째,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베이징 회담을 주도하였다는 견지에서 볼 때, 미국의 전술적 패배가 드러난다. 미국이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에게 내놓은 제안은 없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미국은 북(조선)에게 내놓을만한 제안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대북 적대정책을 여전히 붙들고 있는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핵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방안을 내놓을 없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부시 정부는 베이징 회담에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사전에 이미 말한 바 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4일자)

회담은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그 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진전된다. 그런데 회담 첫날인 4월 23일 회담에서 미국의 회담 대표는 합리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고, 일방적인 요구만을 되풀이하였다.

그러자 북(조선)의 회담 대표들은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였고, 얼마 뒤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만찬석상에서 다시 만난 미국의 회담 대표에게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핵무기 보유사실을 입증하겠다는 위협발언을 하였다.

미국의 회담 대표는 북(조선)의 회담 대표로부터 그러한 심각한 위협발언을 들었는데도 반격발언을 하지 못했다.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의 회담 대표에게 위협발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전달받은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핵선제공격을 가하겠다든지 아니면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으로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겠다든지 아니면 해상봉쇄를 단행하거나 경제제재조치를 추가로 취하겠다든지 하는 따위의 반격발언을 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반격발언을 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의 일부 고위관리들은 북(조선) 정부를 전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취하게 될 강력한 경제제재조치를 '부시의 비 계획(Bush's Plan B)'이라고 부르고 있는데(『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그들은 북(조선)의 드센 압박공세를 받으면서도 그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감히 선언하지 못했다.

4월 24일 미국의 엔비씨(NBC) 텔레비전 방송 뉴스에 출연한 부시는 "북(조선)이 해묵은 공갈수법(old blackmail game)으로 되돌아갔다."고 지적하면서, "우리의 목표와 목적은 핵확산금지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번 사태는 북(조선)과 전세계에 미국이 위협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데 그쳤다.

베이징 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미국은 중국과 손을 잡고 북(조선)의 정권을 교체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비망록을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에게 내돌렸던 국방장관 럼스펠드조차도 4월 25일에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 핵문제는 부시 대통령과 파월 국무장관에게 맡겨져 있다."고 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으며, 기자들이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여전히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느냐고 거듭 묻자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방금 내가 밝힌 입장을 넘어서 논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연합뉴스』 2003년 4월 26일자)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북(조선)은 미국이 위협을 받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위협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4일자)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Richard A. Boucher)는 국무부에서 열린 언론설명회에서 베이징 회담은 "유익했다(useful)."고 지적하고, 미국은 "북(조선)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위협이나 협박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위의 발언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의 대통령과 고위관리들은 북(조선)의 드센 압박공세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베이징 회담이 막을 내릴 때, 미국의 회담 대표는 북(조선)의 회담 대표에게 다음 회담 일정을 잡자고 제안했으나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응하지 않았다. (『아사히신붕』 2003년 4월 26일자) 미국은 남(한국)과 일본의 회담 참여를 요구하면서 다자회담 구도로 끌고 가려는 의도를 베이징 회담에서 다시 밝혔으므로, 북(조선)은 다음 회담의 일정을 합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7. 북(조선)이 제시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

 

2003년 4월 25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은 "조선반도 핵문제의 당사자들인 조·미 쌍방의 우려를 동시에 해소할 수 있는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내놓았다."고 밝혔다. '새롭고 대범하다'는 표현에서 북(조선)의 자신감에 찬 태도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2003년 4월 30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북(조선)이 내놓은 해결방도를 "조성된 위기를 평화적으로 타개하고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인 방도"라고 표현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4월 30일자)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시한 해결방도는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적인 방도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는 일반적인 국제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중대한 문제이므로 그 문제를 푸는 방도가 대범하고 실천적인 것은 당연하다.

북(조선)이 제시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는, 내가 2002년 10월 31일에 작성한 논문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에서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우려사안' 해결요구와 북(조선)이 제기하고 있는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 실현요구를 서로 맞바꾸는 일괄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은 북(조선)에게 '핵포기'를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선결해야 할 조건으로 내놓은 데 반하여, 남(한국) 정부의 한 관리의 말에 따르면, 북(조선)은 베이징 회담에서 미국에게 어떤 조치를 먼저 취하라는 선결조건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동아일보』 2003년 4월 28일자) 이것은 북(조선)이 제시한 해결방도가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일괄타결 방안이었음을 뜻한다.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이 제시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는 2002년 10월초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이 제시했던 '놀라운 제안'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인다.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와 '놀라운 제안'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후자에 비해서 구체적이고 상세한 추진단계까지 포함한 완성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한국) 정부의 고위관리는 북(조선)의 해결방도는 '도로지도(road map)'처럼 단계적으로 상세히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3년 4월 28일자)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는 북(조선)이 제시한 해결방도를 "자세한 요구목록(a long list of demands)"이라고 묘사했다. (『워싱턴 타임스』 2003년 4월 29일자)

그러므로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는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면 북(조선)도 그에 상응하는 어떤 조치를 취하면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두 나라가 동시에 포괄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합리적인 방도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정부의 관리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북(조선)은 미국이 북(조선)에게 "어떤 상당한 대가(something considerable in return)를 제공하는 경우, 핵무기를 제거하고(get rid of its nuclear weapons), 심지어 핵무기 개발사업을 전면적으로 해체(dismantle its broader nuclear program)하겠다."는 해결방도를 제시하였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4월 28일자) 일본의 언론은 베이징 회담 경위를 잘 알고 있는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면서,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은 핵시설에 대한 현장검증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였으나,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제거하겠다는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 (『교토통신』 2003년 5월 10일자)

북(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제거하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한 북(조선) 회담 대표의 발언내용에 대해서는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언론의 보도가 상반된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스스로 제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협상과정에서 북(조선)에게 주어야 하는 '어떤 상당한 대가'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월 스트리트 저널』 2003년 4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의 해결방도는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불가침을 확약하고 북(조선)과 국교를 수립하면, 북(조선)은 모든 핵무기 개발사업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4월 29일자도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가 한 말을 인용하면서 대동소이한 내용을 보도하였다. 미사일 수출 중단이 첨가된 것이 다를 뿐이다.

미국은 북(조선)이 지난해 10월초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에서 제안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체 밝히지 않고 있으나, 최근 연방상원 대외관계위원회의 민주당 소속 동아시아 담당전문가인 프랭크 재누지(Frank S. Jannuzi)가 밝힌 바에 따르면, 북(조선)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현안에서 유연성을 보였다고 한다. 핵사찰을 받는 문제, 조·미 기본합의에 따라 경수로를 건설하는 문제, 주한미군의 장래에 관한 문제, 미사일을 개발하고 수출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그런데 국무부 관리의 말에 따르면, 그 회담에서 북(조선)은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조건에서만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0일자)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현안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북(조선)이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나의 판단으로는, 주한미군이 당장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통일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통일 직전에 철수를 완료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견해는 북(조선)이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관련하여 이미 몇 차례 밝힌 바 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현안들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게 만드는 일종의 협상책으로 제시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조선)이 강조하고 있는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초점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어떻게 포기하게 만드느냐 하는 것으로 집중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조선)이 조·미 불가침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는 까닭이 자명해진다.

북(조선)은 베이징 회담에서도 이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조·미 불가침협정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2003년 4월 27일 남(한국) 정부의 한 관리는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이 조·미 불가침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기존의 표현을 완화했다고 주장하였고, 다른 관리는 표현을 조금 다르게 하여 조·미 불가침협정 체결을 요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한겨레』 2003년 4월 27일자)

미국은 건국이래 그 어느 나라와도 불가침협정을 체결한 적이 없다. 조·미 불가침협정이 체결된다고 해서 미국으로부터 군사적 침략을 받지 않는 확실한 보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국제협정을 깨고 군사적 침략을 자행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북(조선)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북(조선)은 조·미 불가침협정 자체에 대한 의미보다는 그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시키는 것에 더 많은 의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은 조·미 불가침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시키고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고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조·미 불가침협정은 북(조선)의 체제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시키고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전략적 의의를 갖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이 조·미 불가침을 국제법적 구속력을 가진 협정으로 체결하자고 제안하였는가 아니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외교문서로 보장해도 된다고 수정제안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성공적인 회담의 관건(master key)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는가 포기하지 않는가 하는 데 달려있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4일자)

 

8. 북(조선)의 회담 전술과 그에 대한 미국의 반응

 

북(조선)이 베이징 회담에서 취한 전술은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술이다. 원래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은 미국이 제 말을 듣지 않는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 쓰는 용어다. 그 말에는 나귀 주인이 말을 듣지 않는 말썽꾸러기 나귀를 부릴 때 당근을 주거나 채찍을 휘둘러서 일을 시킨다는 모욕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지금까지 미국은 자기와 다른 나라의 관계를 사람과 나귀의 관계로 비하하는 용어를 쓰면서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왔다.

그런데 베이징 회담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회담 대표는 '나귀'의 신세가 되었고,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나귀'를 부리는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였던 것이다.

북(조선)은 베이징 회담에서 '채찍'을 휘두르면서 미국을 압박하였다.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휘두른 '채찍'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미 언론을 통하여 전세계에 알려진 대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겠다(prove)"(『워싱턴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또는 "실물로 증명해 보이겠다(physical demonstration)"(『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5일자)는 발언내용이었다.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10년 전인 1993년 6월 뉴욕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회담에서도 미국에게 통보한 바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4일자) 북(조선)이 1993년의 조·미 정치회담에서 핵무기 보유사실을 통보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정부의 관리들이 클린턴 정부의 전직 관리들을 접촉하여 확인하였으나 1993년의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4일자)

북(조선)은 1993년의 조·미 정치회담에서 핵무기 보유사실을 통보했다고 주장하였고, 미국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어느 쪽의 주장이 사실일까?

나의 판단으로는, 1993년의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통보했는데도, 클린턴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그 통보사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인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사실을 통보한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미증유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당시 클린턴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그 통보내용을 인멸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핵무기를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미국에게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입증해 보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겠다 또는 실물로 증명하겠다고 말한 대목에 대해서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북(조선)이 핵실험을 하거나 핵물질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워싱턴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이것은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사실을 미국에게 통보하는 차원을 넘어서 전세계에 선언하겠다는 뜻이다. 나는 2003년 1월 29일에 작성한 논문 「북(조선)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입증하느냐(실물로 증명하느냐) 또는 그렇게 하지 않으냐 하는 문제는 미국의 향후 행동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이것이야말로 미국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압박공세다. 나는 2003년 3월 7일에 작성한 글 「정세분석-노무현 정권의 등장, 불가침 조약과 주한미군 철수」에서 북(조선)이 미국에게 "입체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조선)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것은 "핵무기를 꽝꽝 만들어내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인데, 핵무기 제조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는 최대의 압박공세를 가할 수 있음을 예견한 바 있다.

미국 언론들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통보한 내용에 대해서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가 지적한 대로,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사실을 통보한 것은 미국에게 별반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 정부를 더욱 괴롭히고 있는 것은 북(조선)이 영변의 흑연감속로에서 꺼낸 폐연료봉 8천개를 재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미국과 중국의 회담 대표들이 참석한 본회담(plenary session)에서 미국의 회담 대표에게 북(조선)이 폐연료봉 8천개의 재처리 작업을 거의 끝냈다고 밝혔고 미국의 회담 대표는 그 발언내용을 확인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5일자) 북(조선)의 재처리 작업 강행은 미국을 곤경으로 몰아넣는 초강력한 압박공세다.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는 4월 25일 밤에 『로이터통신』의 베이징발 보도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는 베이징 회담에서 처음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북(조선) 대표는 뉴욕의 유엔에서 열린 조·미 비공식 회의에서 미국 대표에게 재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한 바 있었다. 그런데 미국 국방부가 재처리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베이징 회담 자체를 반대할 것으로 우려하였던 미국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그 사실을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고위관리들에게 알리지 않고 베이징 회담을 추진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7일자)

베이징 회담을 불과 닷새 앞두고 있었던 4월 18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미 선포한 바와 같이 지난해 12월부터 핵활동을 재개한 데 따라 그리고 지난 3월초에 미국을 비롯한 유관국들에 중간통보를 해준 바대로 이제는 8천여개의 폐연료봉들에 대한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위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 문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하였지만(『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9일자), 그것은 충격과 당혹이 빚어낸 무의미한 논란이었다. "미국 정부는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해서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것을 극도로 심각한 문제(extremely serious matter)로 보고 있다."고 밝힌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의 발언(『워싱턴 타임스』 2003년 4월 19일자)은, 당시 미국 정부가 받은 충격과 당혹을 반영한 것이었다. 나의 판단으로는, 2003년 5월 중순 현재,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마지막 단계에서 끝내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4월 18일에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이 나오자, 미국 정부의 일부 고위관리들은 한때 베이징 회담을 취소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18일자) 베이징 회담에 응하는 경우, "미국은 바보처럼 보인다는 것"(『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19일자)이 그 회담을 취소하려는 이유였다.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현실에 대한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처음에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북(조선)이 실제로는 재처리 작업을 하지 않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lying)고 생각했다.

지난 4월 중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는 미국 국가정보기관들에게 북(조선)의 재처리 작업 실태에 관한 정보를 다시 검토하라고 지시하였다. 그에 따라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관리들이 재검토한 결과, 북(조선)은 폐연료봉을 소규모로 재처리하였으면서도 조·미 협상에서 양보를 끌어내기 위하여 거의 끝냈다는 식으로 과장(exaggeration)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뉴욕 타임스』 2003년 5월 8일자)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재처리 작업을 거의 끝냈다는 북(조선)의 발표를 미국에게 "호전적으로 으름장을 놓는 것(bellicose bluster)"(『뉴욕 타임스』 2003년 5월 1일자), 또는 "정신이 들게 만드는 엄포(sobering bluff)"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4일자)

미국 언론들은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이 재처리 작업을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노염(anger)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으며(『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7일자), "분노하고 실망하였다(angry and disappointed)."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9일자) 미국의 주요언론들이 고위관리들의 감정상태를 이렇게 보도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왜 노염, 분노, 실망을 느꼈던 것일까? 그것은 선제공격을 해볼 테면 어디 한 번 해봐라 하는 식의 대담한 태도를 취하면서 폐연료봉 재처리를 강행하고 있는 북(조선)의 드센 압박공세를 받으면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베이징 회담 첫날인 4월 23일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제시하였으나, 미국의 회담 대표는 선 핵포기와 다자회담 개최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내놓을 뿐 아니라 조·미 사이의 문제가 아닌 일본인 납북사건을 해결하라는 말까지 꺼내자 북(조선)의 회담 대표들은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였다.

미국의 회담 대표들 면전에서 자리를 박차고 퇴장하는 행동 자체가 미국의 회담 대표들에게는 위협적인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미국 정부의 대표들과 공식회담을 진행하는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퇴장함으로써 미국의 위신을 짓밟는 행동은, 다른 나라의 대표는 취할 수 없고 북(조선)의 대표들만이 취할 수 있는 것이다.

회담장에서 철수한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미국의 회담 대표에게 중국 대표를 배제하고 일 대 일로 만나자고 요구하였다. 조·미 양자회담을 요구한 것이다. 중국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신을 당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미국의 회담 대표 제임스 켈리는, 북(조선)의 양자회담 요구를 놓고 고심하였다. 그는 급히 워싱턴으로 연락을 취하여 훈령을 받았는데, 워싱턴에서는 조·미 양자회담을 하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6일자)

첫날 회담에서 북(조선) 대표들이 자리를 박차고 퇴장함으로써 베이징 회담에 무거운 분위기가 드리워진 가운데,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예정된 만찬시간이 되었다. 그 날의 만찬은 중국이 주최한 것이었다. 만찬석상에는 제임스 켈리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는 푸잉이, 왼쪽에는 리근이 앉아 있었으며, 만찬 도중에는 통역이 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만찬이 끝날 무렵 북(조선)의 통역관이 켈리에게 다가가자, 북(조선)의 회담 대표 리근은 준비한 문건을 켈리에게 읽어주었다. (『도쿄신붕』 2003년 5월 1일자)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미리 준비해온 문건을 우리말로 "매우 빠르게 그리고 단정적으로" 읽어주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5일자) 그가 읽은 문건내용은 북(조선)의 통역관이 즉석에서 영어로 통역하였다. (『한겨레』 2003년 4월 27일자)

본회담에서 미국에게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라는 '당근'을 주면서 미국을 타결방향으로 견인하였던 북(조선)의 회담 대표는 미국이 오만한 태도로 나오자 회담장에서 퇴장하는 한편, 만찬장에 가서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채찍'을 휘두르면서 압박공세를 가한 것이다.

미국 언론은 북(조선)의 회담 대표가 "일부는 회유적이고 일부는 위협적인(some conciliatory, some threatening)" 내용을 역겹고 모호한 언어(obnoxious, ambiguous language)로 표현하여서 "혼동을 일으킨다(confusing)"고 표현하였는데(『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나의 판단으로는, 그것은 '역겹고 모호한 언어'가 아니라 베이징 회담에서 북(조선)이 취했던 '당근과 채찍' 전술인 것이다.

북(조선)은 '당근과 채찍' 전술을 취하면서 회담을 압도하였던 반면에, 미국은 '나귀'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베이징 회담에서 '나귀'의 신세가 된 미국은 자기의 외교회담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수모를 당하였고, 세계를 지배한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초강대국의 위신은 베이징 회담에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9.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전개방향과 그 결말

 

베이징 회담 이후의 조·미 관계를 전망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조·미 두 나라가 어떠한 정책을 가지고 조·미 정치회담을 이끌어 가려고 하는가 하는 문제다. 조·미 두 나라의 정책을 제대로 알아야 조·미 관계의 향후동향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내외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조·미 관계를 논하면서 정책은 외면하고 전술만 논하고 있다. 그들은 베이징 회담에 대해서 논하면서도 전술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다.

베이징 회담은 전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책적 측면에서도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책을 정확하게 분석하여야 전술의 승패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북(조선)의 정책과 미국의 정책은 앞으로 진행될 조·미 정치회담의 방향을 결정한다. 국가 대 국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정치회담은 정책과 정책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대북 정책을 중심으로 조·미 관계의 전망문제를 논술하려 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적대정책이다. 지난 시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은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봉쇄정책, 와해정책, 무력대결정책이 그것이다.

한때 미국의 전략가들이 이른바 '연착륙(soft landing)'이니 '추락(crash)'이니 하는 해괴한 개념을 등장시킨 '북(조선) 붕괴설'을 놓고 자기들끼리 설왕설래하였던 논의는 이제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말았으며, 미국이 북(조선)을 무력으로 침공하여 군정을 실시하겠다는 식의 '작전계획 5027'에 관한 선동적 논의도 맥이 빠진 상태에 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대북 정책이 통하지 않고 사실상 무력화되었음을 뜻한다.

그 세 가지 정책이 무력화되었을 무렵, 미국의 전략가들이 새로 고안해낸 정책은, 클린턴 정부가 추진하였던 이른바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이다.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의 중심개념인 '관여'는, 북(조선)을 '개방'시키고 북(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차츰 변질시키면서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 자본주의체제 안으로 유인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클린턴 정부의 관여정책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대상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하였던 사회주의 국가였으나, 관여정책을 추진하던 클린턴 정부 시기에 미국과 국교를 수립함으로써 사실상 미국에 의해서 개방되었고, 지금은 사회주의적 발전의 길을 사실상 포기하고 세계 자본주의체제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클린턴 정부의 관여정책은 미국과 베트남의 국교수립을 베트남을 '개방'하고 유인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삼는 정책이었다.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과 수교를 하면 '개방'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고, 일단 '개방'하기만 하면 미국의 자본을 들이밀면서 그 나라의 체제를 변질시키고 결국에는 세계 자본주의체제 안으로 흡수한다는 것, 이것이 미국이 말하는 관여정책의 요체다.

북(조선)에 대해서 봉쇄정책, 와해정책, 무력대결정책을 모두 시도하였으나,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통하지 않자 관여정책을 들고 나왔던 클린턴 정부가 부시 정부로 교체된 이후, 부시 정부는 선행 정부가 추진하였던 관여정책을 일단 유보하였다.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지난 시기에 미국의 역대 정부들이 북(조선)에 대해서 추진하였던 정책들 가운데 어떤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자기들끼리 내부논쟁을 벌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 2003년 5월 11일자)

그들의 내부논쟁은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인가? 나의 판단으로는,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일시적인 내부갈등을 겪겠지만 결국에는 관여정책을 추진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공화당의 대외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는 노회한 전략가들인 브렌트 스카우크로프트(Brent Scowcroft)와 아널드 캔터(Arnold Kanter)는 미국 언론에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평화적 해결을 협상하겠다는 전망을 가지고 대북 관여정책을 (가능하면 빨리 남[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범위로 확대하여) 계속 추진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뉴욕 타임스』 2003년 5월 1일자)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에 대해서 관여정책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논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시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계속하여 추진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였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강경한 접근을 주장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많은 고위관리들이 궁극적으로 북(조선) 정부를 고립시키고, 아마도 붕괴시키는 것을 선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5월 7일자)

그러나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 정부의 일부 고위관리들이 현 단계에서 적대정책을 추진하려고 생각하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러한 적대정책을 고집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대화와 협상을 배제하고 압력을 가하는 적대정책을 가지고서는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도리어 북(조선)으로부터 드센 압박공세를 받아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핵문제'로 알려져 있는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를 열어놓으려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에 맞서서 "사생결단의 정신으로 투쟁"하고 있다. 만일 폐연료봉의 재처리 작업을 완료한 뒤에도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 지하핵실험 강행, 우주발사체 겸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실험 강행과 같은 초강력한 압박공세를 연속하여 가하면서 미국이 북(조선)의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받아들이도록 강제할 것이다.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의 설명에 따르면, 부시 정부가 북(조선)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폐연료봉 8천개의 재처리 작업,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 핵무기 실험이다. (『연합뉴스』 2003년 4월 10일자) 현재 북(조선)은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강행하면서 미국을 강도 높게 압박하고 있는데,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할 때까지 지하핵실험, 또는 우주발사체 겸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을 강행하면서 미국을 더욱 곤경에 몰아넣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생각하면, 미국은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머지 않은 장래에 관여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둘째, 세계 최대의 미국 석유회사인 엑슨 모빌(Exxon Mobil)이 부시 정부로 하여금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대북 관여정책을 추진하도록 강력한 교섭활동(lobbying)을 벌이고 있고, 일본, 러시아, 남(한국) 정부가 엑슨 모빌의 계획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동조하고 있다. 엑슨 모빌은 러시아의 사할린 제1광구에서 연해주를 거쳐 한(조선)반도를 종단하는 천연가스 공급선(pipeline)을 건설하는 거창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엑슨 모빌은 부시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자기들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엑슨 모빌의 요구조건은 남(한국) 정부가 엑슨 모빌로부터 25년 동안 천연가스를 사들이겠다는 공급계약을 체결해 달라는 것, 남(한국) 정부가 한국가스공사를 민영화할 경우 자기들이 그 공사의 자산을 인수하는 주요 3대 사업자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남(한국) 정부가 위의 요구조건을 보장해주면 엑슨 모빌은 20년에서 25년 동안 최소 5백억 달러를 투자하여 천연가스 공급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엑슨 모빌은 미국 대통령 부시를 설득하여 남(한국), 북(조선), 미국 3자 수뇌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여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고, 조·미 불가침을 보장하며, 사할린에서 한(조선)반도로 연결되는 천연가스 공급선을 건설하는 과업에 대한 남·북·미 3자 합의를 이끌어내고 이를 공동성명 형식으로 채택하도록 만드는 교섭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남·북·미 3자 수뇌회담의 합의사항을 국제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6자 회담을 개최하고, 6자 회담의 참가국들이 구성하는 동북아시아 에너지 및 안보공동체를 발족시키려는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맹렬하게 교섭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엑슨 모빌의 계획은 이미 남·북·미 최고위층에 전달되었다고 한다. (『월간중앙』 2003년 4월호 관련기사 참조)

미국은 21세기 에너지 자원의 보고인 시베리아, 연해주, 사할린에서 에너지 자원 개발사업을 장악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세계 에너지 소비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한 동북아시아에서 에너지 개발과 공급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발벗고 나선 것이다. 엑슨 모빌은 바로 이러한 미국의 이해관계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시베리아, 연해주, 사할린 개발사업은 북(조선)의 '핵문제'를 관여정책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에게는 이른바 관여정책으로 복귀하는 길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10. 미국의 대북 관여정책의 불가피성과 전개과정

 

관여정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클린턴 정부에 의해서 작성된 '페리 보고서(Perry Report)'다. 그 보고서는 미국의 대북 정책의 목표가 조·미 관계의 정상화라는 사실을 명시하였다. 미국의 대북 관여정책의 목표가 조·미 관계의 정상화하는 것은 명백하다. 문제는 그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어떤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견지에서 볼 때, 관여정책의 전개과정은 미국이 북(조선)에게 조·미 관계를 단계적으로 정상화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북(조선)을 '개방'시키고 체제를 변질시키면서 세계 자본주의체제 안으로 차츰 유인하는 과정이다.

중시해야 할 것은, 대북 관여정책은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관여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북(조선)의 핵무기를 제거하는 적대정책을 동시에 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이 만일 적대정책을 고집하면서 북(조선)의 핵무기를 제거하려면, 북(조선)과의 전면전을 각오하고 무력대결을 강행해야 하는 데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워싱턴에 있는 케이토 연구소의 찰스 페나(Charles Pena)가 지적한 대로, "미국은 북(조선)의 무장을 해제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2003년 4월 25일자)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tacitly acknowledge) 한편, 북(조선)이 핵물질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선으로 물러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2003년 5월 3일 부시는 텍사스주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수상 존 하워드(John Howard)를 만나 국무부 차관보 제임스 켈리로부터 베이징 회담 등 조·미 관계의 현안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에, 미국은 북(조선)이 핵물질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국제적 조치를 주도한다는 "새로운 접근(new approach)"에 관하여 논의하였다고 한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 정상회담에서 그러한 새로운 접근이 논의되었다는 정보는 미국 정부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관리들에 의해서 미국 언론에 흘러나온 것이다. 그렇지만 부시와 하워드는 정상회담 뒤에 그 문제에 관해서는 발언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 2003년 5월 5일자)

이것은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대신, 핵무기 개발사업을 포기시키고 핵물질 수출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하여 국무부 대변인 리처드 바우처는 미국의 대북 정책은 여전히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사업을 영구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미국의 대북 정책의 초점이 핵물질 수출저지로 전환되고 있다는 『뉴욕 타임스』의 보도내용을 부인하였다. (『연합뉴스』 2003년 5월 6일자)

주목해야 할 문제는, 현재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의 초점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사업을 영구히 제거하는 방향에서 핵물질 수출을 저지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적대정책에서 관여정책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조선)으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과 수출을 포기하게 하고, 핵무기 보유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면서 '핵문제'를 해결하는 관여정책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11. 북(조선)의 해결방도가 지향하는 목표

 

미국의 관여정책이 베트남과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에게 적용되고 있는 관여정책이 북(조선)에게도 똑같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라크에 대한 무력대결정책이 북(조선)에게 적용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관여정책도 북(조선)에게 적용될 수 없다.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북(조선)이 베트남처럼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수립하는 경우, 미국이 바라는 대로 베트남처럼 '개방정책'으로 선회함으로써 미국의 자본이 밀려들어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한때 사회주의 발전의 길을 걸어갔으면서도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개방정책'으로 선회하고 미국의 자본을 받아들였지만, 북(조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개방정책'으로 선회하지 않는다면, 북(조선)은 어떤 길을 택하게 될까? 북(조선)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연방제 통일을 실현할 것이다. 북(조선)에게 있어서, 이것은 명백한 국가적 목표로 제시되어 있다. 북(조선)은 말로만 주한미군 철수와 연방제 통일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총력을 기울여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이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관계를 정상화할 때, 그 두 나라의 영토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았다. 중·미 관계가 정상화될 때, 중국이 대만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을 철수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대만에 주둔하고 있었던 미군이 중국의 민족적 자주성을 결정적으로 침해하는 존재는 아니었다. 베트남이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할 때, 미군은 베트남 영토에서 이미 철수한 뒤였다. 그러므로 중국과 베트남이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한 것은 그 두 나라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와 무관하거나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이었다.

그에 비하여 북(조선)이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주한미군은 한(조선)민족의 민족적 자주성을 유린하고 있는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 이것이 북(조선)의 인식이다. 조·미 관계의 정상화는 주한미군의 철수와 불가분리적으로 연동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지름길인 것이다.

미국의 관여정책은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의 목표로 삼고 있으며, 북(조선)의 대미 정책도 역시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강력하게 추구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두 나라가 추구하는 목표는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부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북(조선)을 '개방'시키려는 목적에서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며, 북(조선)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목적에서 그것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에 대해서 관여정책을 추진하면, 조·미 관계의 정상화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조·미 관계의 정상화는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결정적인 조치, 다시 말해서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안정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조치에 의해서 추진되는 것이다. 그 조치는 어떤 형태가 되었든 조·미 사이의 준전시상태를 해소하게 될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는 불가침협정 체결은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조선)이 요구하고 있는 조·미 불가침협정 체결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국면을 열어놓을 것이다.

미국이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미 정치회담에 나서지 못하고 자꾸 회피하고 있는 까닭은, 조·미 관계의 정상화가 미국의 의도대로 북(조선)의 '개방'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의 의도대로 주한미군의 철수로 연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은 "조·미 협상이 미국이 양보하기만 하는 블랙홀(black hole)이 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3년 4월 20일자)

미국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자니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고, 조·미 적대관계를 유지하자니 북(조선)의 드센 압박공세에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이렇게 하지도 못하고 저렇게 하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져있다.

나는 2002년 3월 15일에 작성한 논문 「부시 행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에서 "미국의 역대 모든 행정부들이 조·미 협상에서 거부(denial), 분노(anger), 흥정(bargaining), 좌절(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다섯 단계를 밟아왔다."고 지적한 뉴욕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실장 리온 시걸(Leon V. Sigul)의 말을 인용하였는데, 나의 판단으로는, 지금 부시 정부가 '거부'와 '분노'의 단계를 지나서 '흥정'과 '좌절'의 단계에 막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전망함

 

앞으로 조·미 정치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시 정부의 관여정책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관여정책의 제창자인 클린턴(William J. Clinton)이 미국 대통령으로서 적성국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하여 베트남·미국 정상회담에 나섰던 사실은, 2000년 말에 클린턴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을 실현하려 했던 획기적인 전환국면이 단지 상상의 시나리오가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장차 부시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는 조·미 두 나라를 대표하는 정상이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풀릴 수 있는 문제다. 부시 정부는 대북 관여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반드시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조선)도 자기의 새롭고 대범한 해결방도를 미국과 합의하기 위해서 반드시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조·미 정상회담 개최는 불가피하다.

『아사히신붕』 2001년 1월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2001년 1월에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장쩌민 주석에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조선을 방문할 경우 환영할 용의가 있으나, 미국의 새 정부가 적대정책을 취할 경우 조선은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마이니치신붕』 2002년 11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2003년 10월 3일부터 5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의 회담 대표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의 회담 대표인 제임스 켈리에게 부시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조·미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여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구상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의 관여정책이 추진되는 경우, 부시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를 회피하거나 우회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부시가 평양을 방문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역사적 사변은 어떠한 조건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그 문제는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조치를 단행하는 조건에서, 오직 그 조건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 구체적인 조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적 결정에 달려있다. 나의 판단으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치적 결정은 미국이 대북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하고, 그의 실천적 조치로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것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제1단계는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 지역으로 재배치하면서 일부는 감축하는 경로에 따라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5월 15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은 "한강 이북의 미군기지의 재배치는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정치·경제·안보상황을 신중히 고려하여 추진해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일부 언론들은 그 문장을 미국의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이 유보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을 유보한 것이 아니라, 재배치 계획을 계속 추진하되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재배치를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부시 정부의 의사표명은, 주한미군 재배치를 반대하면서 현상고착을 애걸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외교적으로 고려한 수사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는, 일정한 수준에서 감축하는 단계를 얼마 동안 밟아가다가 한강 이남 지역으로 재배치한 주한미군마저도 미국 영토로 철수함으로써 완료될 것이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과정은 한·미 동맹체제의 점진적 해체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며, 한·미 동맹체제의 해체는 '동맹'으로 위장되어있는 미국의 남(한국) 지배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뜻한다.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완전히 실현될 것이며, 한(조선)반도의 자주민족은 머지 않은 장래에 자기의 힘으로 한(조선)반도를 통일할 것이다. (2003년 5월 1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