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조선)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1993년의 상황과 2003년의 상황

2. 한(조선)반도의 상황과 페르시아만의 상황

3. '핵문제'는 핵문제가 아니라 자주문제다

4.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압박공세는 시작되었다

 

 

1. 1993년의 상황과 2003년의 상황

 

2003년 1월 10일 북(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다는 정부성명을 발표하였다. 그 탈퇴를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나, 지난 11월 이후 북(조선)이 미국을 상대로 하여 전격적으로 취해오고 있는 일련의 초강력한 압박공세를 생각한다면, 이번의 탈퇴는 북(조선)이 이미 정해놓은 대미압박공세 시나리오에서 하나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은 왜 이러한 초강력한 압박공세를 연속적으로 가하고 있을까? 세상이 다 알다시피, 그것은 미국의 부당한 압박공세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10월초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회담이 결렬된 이후 미국은 이른바 '핵개발의혹'이라는 구실을 들고 나오면서 '핵소동'을 시작하였다. 1993년에 미국은 이른바 '핵시설의혹'을 구실로 하여 북(조선)에게 압박공세를 가한 바 있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에는 이른바 '핵개발의혹'을 구실로 하여 압박공세를 가하였다. 1993년의 '핵시설의혹'은 영변의 핵시설이 핵무기를 생산하는 시설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었는데 비하여, 2003년의 '핵개발의혹'은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의혹이다. 북(조선)의 영토에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물체가 아니라, 북(조선) 정부에게 어떤 의도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를 압박공세의 구실로 삼고 있다는 것은, 2003년의 '핵개발의혹'이 미국에 의해서 날조된 것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핵개발의혹'을 날조하여 북(조선)에게 압박공세를 가하기 시작하자, 북(조선)은 일련의 초강경한 대응압박공세로 대응하였다. 그 일련의 대응압박공세는 1993년 3월에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한 지 꼭 10년만에 탈퇴효력을 발생시킴으로서 절정에 이르렀다.

1993년에 있었던 제1차 탈퇴선언은, 미국이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이 요구한 대로 조·미 뉴욕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탈퇴유예로 일단 매듭을 지은 바 있었다. 지난 10년 전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였던 북(조선)은 그 동안 탈퇴효력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언제든지 탈퇴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특수한 지위에 있었다. 따라서 올해의 제2차 탈퇴선언은 10년 전 조·미 뉴욕 공동성명에서 북(조선)이 천명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기간만큼 일방적으로 임시 정지시켜놓았던" 탈퇴유예조치를 전격적으로 철회한 것이다.

1993년 당시 미국은 이른바 '특별사찰'이라는 날조된 구실로 '의혹이 가는 시설'들을 직접 사찰하겠다는 강력한 압박공세를 가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동원하여 특별결의안을 채택하게 함으로써 국제적 압박도 가중시키고 있었다. 1993년에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였을 때, 북(조선)은 미국이 탈퇴선언을 구실로 하여 군사적 대치상태를 극도로 첨예하게 만들면서 전쟁위기상황을 조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준전시동원체제로 돌입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북(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였으면서도 미국의 침공을 예상한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대치상태는 전쟁발발 일보직전의 위험을 조성하지는 않고 있다. 1993년의 상황과 2003년의 상황이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993년의 상황과 2003년의 상황의 차이는, 조·미 사이의 정치역량관계에서 변동이 발생하였음을 의미한다. 1993년에는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우세한 정치역량을 가지고 압박하였던 것에 반하여, 2003년에는 북(조선)이 미국의 대북압박공세를 능가하는 우세한 정치역량을 가지고 미국을 압박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은 10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영변 핵시설의 봉인과 감시촬영장치를 제거하고, 상주해오던 사찰관을 추방하고, 핵확산금지조약 탈퇴효력을 발생시키는 일련의 초강력한 압박공세를 연속적으로 취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북(조선)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 또는 "북(조선)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 또는 "대화는 하지만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매우 궁색한 발언만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북(조선)이 불과 몇 일 사이에 연속적으로 가하고 있는 초강력한 일련의 압박공세로 미국이 경악과 충격에 휩싸이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금 미국은 이른바 국제공조체제라는 명목으로 북(조선)에 대한 역공을 가하려고 서두르고 있으나, 아무런 효력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북(조선)에게 역공을 가하기 위한 국제공조체제에 동원하려는 남(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은 미국의 역공에 동참하라는 요구를 외면하고 있으며 압박이 아니라 대화로 '핵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는 특별사찰을 받으라고 목청을 돋구면서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하였던 미국이 오늘은 북(조선)의 압박공세 앞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쩔쩔매고 있는 것은, 10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계속되어 오고 있는 조·미 대결에서 전세가 완전히 뒤바뀌어 북(조선)의 정치역량이 미국 보다 우세하게 되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반미국가들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반미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언제나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인 위협과 협박을 받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압박에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하였으며 결국 미국의 요구와 지시에 순종하는 속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미국과 갈등관계에 있는 군사강국들인 러시아와 중국도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미국의 강권과 횡포에 대해서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나라도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에게 감히 맞서거나, 전세계를 '세계화 전략'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치는 미국의 의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실태다.

그러나 오늘 동방에서는 미증유의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하면서 미국을 기어이 굴복시키려는 나라가 세계의 무대에 당당히 등장한 것이다. 그 특별한 나라는 자기 영토의 80배, 자기 인구의 12배, 자기 경제력(GDP)의 462배나 되는 거대한 아메리카합중국과 맞서 싸우면서 그 나라의 오만을 꺾고 그 나라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가하고 있는 강력한 정치적 압박은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으며, 미국의 세계화 전략 한복판에 파탄의 쐐기를 들이박고 있는 것이다.

만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인류는 미국의 일방적인 지배력이 관철되는 현대제국주의체제 안에서 자기의 자주성을 상실하는 비운을 겪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북(조선)의 대미압박공세는 조·미 대결이며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제국주의체제에 단독으로 맞서 싸우는 격렬한 반제투쟁이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정치·외교적으로 압도하는 세계사 초유의 대사변이다.

북(조선)의 반제투쟁은 올해로 10년이 되었으며, 올해 2003년에 이르러 또 하나의 커다란 고비를 넘기면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식량과 에너지가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조선)이 어떻게 하여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과 단독으로 맞서 싸우면서 미국을 정치적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해명할 길이 없는 이 문제에는 상식을 초월한 진리가 들어있다. 조·미 대결의 본질은 그 진리를 해명하지 않으면 인식될 수 없는 것이다.

 

2. 한(조선)반도의 상황과 페르시아만의 상황

 

지난 10년 동안 계속되어 오고 있는 조·미 대결에서 만일 북(조선)이 미국의 압박에 밀렸다면 오늘의 이라크가 당하고 있는 것처럼 '핵사찰'이라는 구실로 자행된 제국주의적 침탈에 의해서 국가주권을 남김없이 짓밟히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거의 무제한적인 무기사찰강요에 한동안 맞서 버티던 이라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사찰단을 받아들였다.

미국의 압박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사찰단을 수용하는 굴욕적 조치를 취했는데도 이라크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제국주의진영의 가공할 무력침공을 받아야 하는 최악의 처지로 밀려가고 말았다. 애초에 미국이 이라크에게 요구한 것은 무기사찰이 아니라 정치적 굴복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최악의 사태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미국은 무기사찰로는 이라크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지 못하게 되자, 무력으로 침공하여 기어이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려 하고 있다.

이라크의 정치적 굴복이란, 미국에게 반기를 들고 있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제거하고 미국의 지시와 요구에 순종하는 새로운 친미정권을 내세우는 것이다. 미국이 전쟁이라는 적지 않은 부담을 지면서까지 기어이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려는 목적은, 미국 석유기업들이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약탈하는 길을 터주고, 페르시아만 지역을 미국이 완전히 장악하려는 데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발생한 대결의 본질이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군사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겉으로는 무기사찰이라는 군사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라크의 굴복을 강요하는 정치문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금 이른바 대량파괴무기확산금지라는 명목을 내걸고 이라크에게 가해지고 있는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공세는,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약탈하기 위하여 이라크의 정치적 굴복을 강요하는 정치문제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이 북(조선)에게 가하고 있는 이른바 '핵개발 저지'의 압박공세는 어떠한 성격의 문제라고 보아야 하는가?

북(조선)에는 세계에너지시장의 경기를 좌우할 만큼 많은 양의 부존자원이 없다. 미국은 미국의 거대기업들이 북(조선)의 어떤 부존자원을 약탈하는 길을 터놓기 위해서 '핵개발 저지'를 구실로 삼아 압박공세를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과연 무엇을 위하여 북(조선)에게 압박공세를 가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제국주의국가가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하여 취하는 모든 군사적 행동에는 정치적 의도가 들어있고, 그 정치적 의도는 반드시 경제적 이권침탈과 결부되어 있는 법이다. 제국주의국가와 약소국의 관계에서, 또는 제국주의국가들 사이에서 물질·경제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그 어떤 정치·군사적 행동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이 지금 북(조선)에 가하고 있는 정치·군사적 압박은 미국의 어떠한 물질·경제적 이해관계에 결부되어 있을까? 아무리 뒤져보아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북(조선)은 미국이 조·미 전쟁이라는 엄청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침탈할 만큼 물질·경제적으로 풍부한 자원부국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북(조선)에게 압박공세를 가하고 있는 근본목적은 페르시아만 사태에 적용하고 있는 기존의 분석방법에 의거해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기존의 모든 정세인식과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조·미 대결의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조·미 대결의 문제를 파악하는 새로운 시각은, 미국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북(조선)에게 압박공세를 가하고 있는가 하는 기존방향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이 과연 무엇을 위하여 미국에게 압박공세를 가하고 있는가 하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성립되어야 한다.

정반대의 방향에서 조·미 대결의 문제를 바라보면, 우선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서 발생한 대결의 본질과 조·미 사이에서 발생한 대결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과 이라크의 대결은,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약탈하려는 목적에 따라 시작된 것으로서, 결국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이라크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방향은, 미국의 침략전쟁을 저지하는 정치과업으로 집중된다. 이 점에서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반전평화운동이 지니는 의의와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은 당연하다.

 

3. '핵문제'는 핵문제가 아니라 자주문제다

 

조·미 사이의 '핵문제'는 문자 그대로 핵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핵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조·미 대결은 미국이 촉발시킨 북(조선)의 '핵문제'를 명분으로 하여 진행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대결이다.

이처럼 조·미 대결의 본질이 정치·군사적인 문제라는 사실은 명백하게 드러나 있지만, 그 정치·군사적 대결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미국은 무엇을 목적으로 북(조선)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하고 있으며, 북(조선)은 무엇을 목적으로 미국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해명되어야 한다.

세상이 인정하고 있는 대로, 미국은 북(조선)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미국이 북(조선)의 초강력한 압박공세 때문에 매우 불리하게 된 처지에 빠져있으면서도 정치·군사적 대결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는, 어떻게 해서든지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자기의 사활적 문제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핵확산금지체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요구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핵확산금지체제는 미국이 움켜쥐고 있는 세계지배전략의 도구다. 핵확산금지체제가 핵무기 확산을 저지함으로써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 만일 핵확산금지체제가 진정으로 세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되려면, 핵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부터 핵무기를 폐기하는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있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첨단기술이 적용된 신형 핵무기를 무한정으로 개발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체제는 핵무기를 폐기하는 평화유지체제가 절대로 아니며, 자기는 마음대로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다른 나라들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핵무기독점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핵무기를 독점하고 있는 미국은 핵무기를 독점함으로써 군사부문에서 결정적으로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압도적으로 우세한 핵무장 군사력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세계지배전략을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범위를 이른바 '핵클럽(nuclear club)'에 들어있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에 한정시키고 있다. 미국은 '핵클럽'에 들어있지 않은 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저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서남아시아와 중동의 지역안보문제와 관련하여 예외적인 핵무장을 허용 받고 있다. 만일 수많은 나라들이 제각기 핵무장을 추진한다면 미국은 핵무기를 가지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거나 통제하지 못하게 되며, 따라서 미국의 핵무기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려면 핵무기가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에 도전하고 있는 두 세력은 극우파쑈세력과 반미국가들인데,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함으로써 극우파쑈세력과 반미국가들이 핵무장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하면서 자기의 세계지배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를 통하여 두 가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데, 극우파쑈세력의 핵무장을 방지하고, 반미국가들의 핵무장을 방지하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극우파쑈세력의 핵무장을 방지하는 데서 중심문제는, 미국이 일본의 반미극우세력에 의해서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동북아시아에서 반미국가들의 핵무장을 방지하는 데서 중심문제는, 미국이 반제자주국가인 북(조선)이 핵무장 군사강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저지하고 있음을 뜻한다.

핵확산금지체제가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의 도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북(조선)은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에 파열구를 내기 위한 강력한 반제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북(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거나 탈퇴하는 양면전술을 정세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구사하면서 미국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고 있다. 반제자주국가인 북(조선)이 미국의 세계지배전략과 충돌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므로,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체제에 도전하는 것도 역시 불가피하다.  

그러한 북(조선)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는 미국은 북(조선)을 핵확산금지체제에 도전하는'불량국가'로 낙인찍었다. 그 뿐 아니라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북(조선)을 고립시키고 압살하려는 책동을 자행하였다. 반제자주국가에 대한 고립·압살책동은 현대제국주의의 본성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태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의 고립·압살책동이 차츰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이 과연 북(조선)을 고립시킬 수 있을까? 북(조선)은 현대제국주의진영에 속해 있으면서도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불만을 토해내고 있는 유럽연합과 국교를 수립하였고, 일본과는 국교수립을 위한 회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미국은 그러한 북(조선)을 무슨 수로 고립시킬 수 있을까. 만일 오늘의 정세가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체제가 줄이어 와해되고, 한·소 수교와 한·중 수교가 이루어졌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의 정세라면, 미국이 이른바 '맞춤형 봉쇄'를 자행할 수 있다는 말을 곧이 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변화된 정세 속에서 미국이 대북고립책동을 자행하고 있다고 말하면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미국의 대북고립책동이 오늘에 와서 힘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미국의 대북고립책동 한복판에 파탄의 쐐기가 들이박혔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조선)반도에서는 미국의 대북고립책동이 완전히 파탄되었다. 6.15 공동선언의 위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앞으로 6.15 공동선언에 따라 우리 민족의 화해와 협력이 더욱 높은 단계에로 실현될수록 미국의 대북고립책동은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판도에서도 여지없이 무력화될 것이다.

둘째, 북(조선)이 자주외교정책에 의하여 대외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북(조선)의 국제적 지위가 상승궤도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 미국의 대북고립책동을 추종하면서 북(조선)과 외교관계를 갖지 않았던 많은 나라들이 오늘에는 북(조선)과 국교를 수립하고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이것은 북(조선)의 자주외교정책이 힘을 얻고 있으며, 반면에 미국의 대북고립책동은 국제사회에서 힘을 잃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전세계 나라들이 북(조선)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있는 오늘, 북(조선)과의 관계정상화를 거부하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 되었다. 북(조선)과의 국제관계에서는 오히려 미국이 외교적 고립상태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과연 북(조선)을 압살할 수 있을까? 압살이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무지막지하게 내리누르는 힘으로 깔아 죽인다는 뜻이다. 북(조선)을 고립시키지도 못하게 된 미국이 북(조선)을 압살한다는 말은 모순이다. 만일 미국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혹심한 시련을 겪고 있었던 북(조선)을 압살하겠다고 주장한다면 곧이 들을 사람이 있겠지만, 최대의 시련기를 이미 승리적으로 결속한 뒤에 강성대국 건설의 기치를 들고 국력신장의 상승궤도를 타고 있는 북(조선)을 압살하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난 '고난의 행군' 시기에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에 대한 고립·압살책동을 집요하게 자행한 바 있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의 고립·압살책동은 힘을 잃어버렸으므로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고립·압살정책이 아니라 적대정책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적대정책의 의미는, 북(조선)을 고립·압살하기가 불가능해진 조건에서 종래의 적대관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은 고립·압살이 아니라 대화를 거부하면서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정책이 되었다. 부시 정부는 대화를 거부하면서 적대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에서의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부시 정부가 들어선 뒤에 줄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이른바 '악의 축' 폭언, 핵태세검토보고서 발표, 제2차 서해교전, 핵선제공격전략 공개, 농축우라늄제조에 요구되는 설비 반입에 대한 정보조작에 의한 '핵소동', 서산호 정선·수색사건 등의 사건들은 부시 정부가 북(조선)과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적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취하였던 적대정책의 조치들이다.

다른 한편, 북(조선)은 무엇을 목적으로 미국과 정치·군사적으로 대결하고 있을까?

북(조선)의 목적은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북(조선)은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이면서 미국에게 정치적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조선)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는 구체적인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세간에 떠돌아다니는 두 가지 그릇된 견해를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지적해야 할 그릇된 견해는, 북(조선)이 미국으로부터 물질·경제적 이익을 얻어내기 위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식량과 에너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미국과 첨예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견해다. 북(조선)에게 식량과 에너지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얻어내려고 미국을 상대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첨예한 대결을 10년 동안이나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지적해야 할 그릇된 견해는, 북(조선)이 미국의 핵공격위협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체제유지를 보장받기 위하여 미국과 첨예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북(조선)이 미국의 핵공격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견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에 의해서 오류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 북(조선)이 미국과 첨예한 대결을 지속할수록 체제유지를 보장받기는커녕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더욱 자초하게 된다.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는 것은, 체제유지를 보장받는 것은 고사하고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가중시키는 빌미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북(조선)이 미국과 대결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체제유지를 보장받기 위해서라고 볼 수 없다. 만일 북(조선)이 자기의 체제유지를 보장받으려 한다면, 미국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정면대결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적당히 타협하거나 미국의 요구를 일정하게 받아주면서 충돌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국에 대해서는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정면대결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북(조선)이 미국과 대결하는 목적이 체제유지를 보장받으려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둘째, 미국이 적대관계에 있는 다른 나라의 체제유지를 보장해주겠다고 하면서 체결한 국제협약은 사실상 하나의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경험을 상기하면, 미국은 1993년에 핵무기로 북(조선)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조·미 뉴욕 공동성명을 채택해놓고서도 1994년에 영변 핵시설을 이른바 외과수술식으로 타격하려는 미국 군부의 무력침공계획을 검토한 바 있었다. 미국의 무력침공은 조·미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였다. 미국의 그러한 행동양태를 잘 파악하고 있는 북(조선)이 어리석게도 미국으로부터 종잇장에 지나지 않는 체제보장의 약속을 얻어내기 위하여 10년 동안이나 미국과 대결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조선)은 무엇을 위하여 미국과의 대결을 10년 동안이나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며, 오늘에 와서는 국가역량을 총동원하여 기어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북(조선)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추구하고 있는 목적은 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정치문제의 본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주문제다. 북(조선)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킴으로써 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안하였던 수많은 평화제안들에 담겨 있는 근본목적은,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결상태를 제거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평화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안한 목적이나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한 목적은 모두 자주문제의 정치적 해결로 지향되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추구하고 있는 자주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북(조선)이 추구하는 자주문제는 북(조선)만의 자주문제가 아니다. 남북을 포괄하는 전민족적 범위의 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북(조선)은 민족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북(조선)이 미국과의 첨예한 대결을 계속하여 기어이 미국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려는 목적이 민족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은, 북(조선)이 신봉하고 있는 주체사상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4.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압박공세는 시작되었다

 

북(조선)은 남(한국)이 미국의 지배 아래 있다고 보고 있으므로, 민족자주문제는 미국이 남(한국)을 지배하는 종래의 지배주의 책동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북(조선)의 견해다. 북(조선)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이 남(한국)에 대한 지배주의 책동을 포기하는 정치과업은, 미국이 남(한국)에 주둔시키고 있는 미군을 모두 철수하고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는 것으로 실현된다.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정치적 프로그램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체제 해체라는 것이다. 북(조선)은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대결이 미국의 남(한국) 지배주의 책동을 근본원인으로 하여 발생한 것이므로, 민족자주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평화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북(조선)의 대미평화제안의 목적이 평화문제의 해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체제 해체를 통한 민족자주문제의 완전한 해결이므로, 미국은 북(조선)의 대미평화제안에 응하기 힘들며, 조·미 대결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회담에 나서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은 북(조선)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제안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으며, 대화는 재개해도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조·미 정치회담을 자꾸 회피하고 있는 중이다.

북(조선)이 미국과의 정치·군사적 대결을 계속하는 가운데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 초강력한 압박공세는, 민족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대미압박공세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며, 그 강도를 더욱 높여갈 것이다. 조·미 대결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되어 왔지만,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본격적인 조·미 대결은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한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시 정부의 대응책은 무엇일까?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강력한 대미압박공세에 대처하여 현상유지책동으로 나오고 있다. 그것은 북(조선)의 대미제안을 무시하면서 아무런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무작정 시간을 끌어보려는 책동이다. 조·미 대결상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은 부시 정부가 현상유지책동으로 나올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현상유지책동을 무력화시킬 압박조치까지 미리 준비해놓고서 대미압박공세를 시작했던 것이다. 북(조선)은 민족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미 정치회담에 미국을 끌어내기 위한 초강력한 압박조치를 두 개나 더 가지고 있다.

하나는, 중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하거나 아니면 소형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백두산 2호'를 발사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약속하였지, 중거리미사일 시험발사와 인공위성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다. 중거리미사일 시험발사와 인공위성 발사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행사하는 자주적 권리이며 국제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는 응당한 권리이므로, 미국이 그 권리를 제한하거나 방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1993년 5월에 그러했던 것처럼 중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할 가능성도 있으며, 1998년 8월에 그러했던 것처럼 소형 인공위성을 탑재한 우주발사체를 발사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공식보고에 의하면, 2003년은 북(조선)이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완료하는 시기다. 나는 북(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이미 완료하였다고 기술한 논문을 오래 전에 발표한 적이 있는데, 미국 중앙정보국은 그 완료시점을 2003년으로 늦게 잡았다. 나는 북(조선)이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고, 1998년에는 자기의 미사일 능력을 미국에게 과시하기 위한 조치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하였다고 생각한다. 어째든 올해 2003년에 북(조선)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북(조선)이 우주발사체를 다시 발사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어떠한 정치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하여 우주발사체를 발사할 것인가 하는 문제만 남아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붕』 2003년 1월 6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오는 3월 하순에 일본 최초의 정보수집 위성 두 기를 발사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나는 일본이 그 인공위성을 발사한 뒤에 북(조선)도 인공위성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북(조선)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처하기가 매우 곤란할 것이며, 결국 조·미 정치회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는 것이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논문들에서 기술하였으므로 여기서는 다시 논하지 않는다. 다만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지난 1월 10일 북(조선) 정부성명에서 "핵무기를 만들 의사는 없다."고 발표한 사실이다. 이것은 북(조선)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였다고 해서 핵무기를 더 많이 만들 의사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핵무기를 많이 쌓아놓았다고 해서 민족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더 잘 해결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북(조선)은 핵무기를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기 위한 압박공세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수단을 확보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려는 반제자주사상과 투쟁의지가 얼마나 강인한가 하는 데 있다.

만일 북(조선)이 미국을 상대로 하여 핵무기 개발경쟁을 하려고 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고 나서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어내야 하겠지만, 북(조선)은 그렇게 할 필요도 없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미국의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기 위한 압박공세의 수단으로서는 다만 몇 개의 핵무기만 있으면 그만이다.

지금 워싱턴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도 미국 언론과의 대담에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인정하였다. 다만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미국 정부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발표하는 것은 핵확산금지체제를 붕괴시키는 매우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였다고 선언하는 것은 어떠한 정치적 효과를 발생시킬 것인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선언은 동북아시아의 잠재적인 핵개발국가들인 일본, 남(한국), 대만의 핵개발 욕구를 자극하여 이른바 핵개발 도미노현상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거대한 지각변동이 될 것이다.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근거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일본, 남(한국), 대만이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북(조선)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지 않으며 오로지 미국에게만 치명적 타격으로 될 것이다.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선언하고 그에 따라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는 것이 미국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된다면, 미국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려고 벼르고 있는 북(조선)이 굳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는 조치를 시행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둘째,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자마자 일본, 남(한국), 대만이 제각기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 남(한국), 대만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요구되며, 미국의 강력한 통제 아래 묶여 있는 그들이 핵무기를 개발하기까지 넘어야 할 정치적 장애는 하나 둘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조선)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위협을 느끼지 않지만, 일본의 핵무장은 그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기 때문에, 북(조선)의 핵무장은 묵인할 수 있어도 일본이 핵무장을 추진하게 되면 크게 반발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일본, 남(한국), 대만의 핵무장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따라서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다고 해도, 일본, 남(한국), 대만의 핵무장은 미국의 강력한 통제와 중국, 러시아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다고 해도 미국의 강력한 통제와 중국, 러시아의 반대에 가로막혀 핵개발 도미노현상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그 시간에 조·미 두 나라는 최후의 담판을 벌이게 될 것이다. 조·미 두 나라가 최후의 담판을 벌이게 되는 경우,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북(조선)은 핵무기를 폐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미국이 빠져있는 난국에서 벗어나는 길은, 한(조선)민족의 자주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북(조선)의 요구에 응하여 조·미 정치회담에 나오는 것이며, 조·미 불가침조약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조선)은 더 이상 미국을 압박하지 않을 것이며,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금지체제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조·미 정치회담에서 조·미 대결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북(조선)에게 치욕스럽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조·미 정치회담을 계속 회피하는 경우,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를 모두 잃어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를 모두 유지하는 길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조·미 국교정상화를 실현함으로써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하는 것밖에 없다. 이것이 미국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이다.

어떤 사람은 미국이 한·미 동맹체제의 유지를 사활적 이익으로 보기 때문에 그 어떤 경우에도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한·미 동맹체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결코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동북아시아 지배전략이 어떠한 구도 위에 수립되어 있는지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지배전략은 핵확산금지체제, 미·일 동맹체제, 한·미 동맹체제의 삼각구도 위에 수립되어 있다. 이 삼각구도는 평면구도가 아니라 입체구도다. 다시 말해서 한·미 동맹체제는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를 유지하는 한에서 존재할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으며,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려는 주된 목적은 미·일 동맹체제를 유지하려는 데 있고, 한·미 동맹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 그 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미 동맹체제의 해체는 미·일 동맹체제를 약화시키는 것이므로 미국은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미 동맹체제가 해체되는 경우 미·일 동맹체제가 약화되리라고 예상할 수도 있으나, 미·일 동맹체제가 약화되는가 강화되는가 하는 문제는 한·미 동맹체제의 존망문제에 직결된 것이 아니라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미 동맹체제가 해체되는 것은, 그에 따라 미·일 동맹체제마저 약화되기를 바라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중국, 러시아는 한·미 동맹체제가 해체되고 미·일 동맹체제가 약화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에서 핵확산금지체제가 무너지고 일본이 핵무장을 하고 미·일 동맹체제가 완전히 해체되는 것은 반대하고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구실 밑에서 미·일 동맹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도 그러한 미국의 의도를 반대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살펴보면, 동북아시아의 핵확산금지체제, 미·일 동맹체제, 한·미 동맹체제 가운데서 가장 취약한 체제는 한·미 동맹체제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미국이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한다고 해서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에 위험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함으로써 나머지 두 체제를 위험에서 구할 수 있다면, 미국에게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 조·미 정치회담이 다시 열리면, 북(조선)은 미국에게 핵확산금지체제를 붕괴시키지 않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제공하고, 미국은 북(조선)에게 조·미 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겠다는 확실한 보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핵문제'를 해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일괄타결방식에 의한 해결이라고 부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주한미군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미국이 만일 주한미군을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면 조·미 관계는 정상화될 수 없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조·미 관계의 정상화를 추진하는 조·미 정치회담에서 반드시 해결될 것이다. 미국이 조·미 정치회담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미국은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하는 대신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한·미 동맹체제를 포기하면, 우리 민족은 그토록 열망해오고 있는 민족자주위업을 달성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한(조선)반도의 연방제 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2003년 1월 2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