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부의 '핵소동',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누가 '핵소동'을 일으켰는가?

2. 진퇴양난에 빠진 부시 정부의 고민   

3. 1974년의 대미제안, 2002년의 대미제안

4. 푸에블로호 송환교섭의 정치적 의미

 

1. 누가 '핵소동'을 일으켰는가?

 

원래 부시 정부는 북(조선)과의 '핵의혹' 공방전을 확대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핵문제'를 놓고 조·미 사이의 정치적 대결이 격화될 수 있는 2003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더욱이 이라크 침략전쟁에 나서야 하는 적지 않은 정치·군사적 부담을 안고 있는 시점에서, 부시 정부가 자기들에게 승산이 별로 없는 북(조선)과의 '핵의혹' 공방전을 재개하는 것은 미국에게 불리하면 불리했지 결코 유리한 것은 아니다.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이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제임스 켈리를 특사로 한 미국 정부대표단을 평양에 보내어 조·미 고위급회담을 개최하고 북(조선)에게 '핵의혹'를 제기하되 '핵의혹' 공방전을 외부로 확대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애초에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이 가졌던 속셈이었다. 켈리는 평양에서 열린 조·미 고위급회담에서 그 속셈에 따라 행동하였다. 그가 북(조선)의 회담 대표에게 '핵의혹'을 강한 어조로 제기한 것은 그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양에서 돌아온 켈리는 기자회견에서 말을 매우 아꼈으며, 부시 정부는 조·미 고위급회담 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서 외부에 공개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는 켈리의 보고를 받은 뒤에 근 10일 동안이나 조·미 고위급회담과 관련한 심각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언론은 그때까지만 해도 '핵의혹' 공방전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예상치 못한 데서 터지고 말았다.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조·미 고위급회담에서 있었던 '핵의혹' 공방전에 관한 정보를 미국 언론에 흘려주었던 것이다. 이로써 '핵의혹' 공방전을 외부로 확대하지 않는다는 부시 정부의 방침은 파탄되었고, 미국 여론과 국제사회의 여론은 '핵의혹'을 걷잡을 수 없는 파문으로 확대시켰다.

'핵의혹' 공방전을 외부로 확대하지 않는다는 부시 정부의 방침을 어기고 관련정보를 미국 언론에 흘려준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 정보를 흘려준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미국 시사주간지 『뉴 리퍼블릭(New Republic)』 2002년 11월 4일자 보도에 따르면, 그 정보를 처음으로 입수한 사람은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의 기자 바버라 슬레이빈이었다고 한다. 그는 북(조선)을 세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는 북(조선) 담당 전문기자다. 그는 2002년 10월 16일 오전에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그 정보를 얻었다.

부시 정부가 외부로 확대하지 않으려 하였던 '핵의혹' 공방전에 관한 정보통제방침을 어기고 그 정보를 미국 언론에 흘려준 사람들은, 조·미 관계를 첨예한 대결구도로 몰아감으로써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긴장상태를 더욱 고조시키려고 책동하는 소수의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이다. 바로 그들이 정보유출을 자행하였던 것이다.

미국 정부의 아시아정책을 다루고 있는 분석가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전자우편 소식지 『넬슨 리포트(Nelson Report)』를 발행하는 크리스토퍼 넬슨도 그 정보를 입수하였으나, 미국 국무부가 그 정보를 공개하면 미국의 국익이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바람에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버라 슬레이빈은 그 정보를 기사로 작성하여 『유에스에이 투데이』 편집국에 넘겨버렸다. 그러자 백악관은 더 이상 정보를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6일 오후 7시에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하였다.

부시 정부의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이 조·미 고위급회담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유출할 때, 그들은 회담내용 가운데서 중요한 대목을 은폐하고 대중선동에 요구되는 자극적인 내용만을 부각시켰다. 그들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면서 대중선동을 획책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부시 정부가 조·미 고위급회담에 관한 정보를 통제하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더욱이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의 정보유출책동에 대응하여 서둘러 언론에 정보를 공개하는 바람에 그 회담의 진상은 상당부분 왜곡되고 말았다.

조·미 고위급회담의 중심내용은 조·미 관계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일괄타결하기 위해서 부시가 평양을 방문하여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여야 할 것이라는 북(조선)의 제안이었는데, 그러한 내용은 언론보도에서 실종되고 그 회담의 중심내용이 마치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시인한 것인 양 왜곡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문제가 있다. 지난 10월초에 평양에서 열린 조·미 고위급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조·미 관계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조·미 정상회담에서 일괄타결하자는 북(조선)의 제안이었다. 그 제안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전달되었을 때, 그들이 무려 근 10일 동안이나 심각한 토론을 진행하였던 것은 그 제안의 정치적 비중이 너무도 큰 것이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 제안에 대한 부시 정부의 대응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몇 차례 토론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북(조선)의 조·미 정상회담 개최 제안은, 조·미 정상회담 개최문제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의 대북 적대감을 자극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미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고 조·미 사이의 대결구도를 더욱 첨예화하려고 책동하였다. 정보유출에 의한 대중선동은 이렇게 하여 그들의 손에 의해서 자행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은 조·미 고위급회담 내용과 관련하여 자기들의 의도에 따라 왜곡한 정보를 어째서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같은 주요 일간지에 넘겨주지 않고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넘겨주었을까?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미국 전역의 가판대에서 팔려나가는 가장 대중적인 일간지다. 『워싱턴포스트』가 주로 워싱턴의 전문가들에게 읽히고, 『뉴욕타임스』가 주로 뉴욕의 전문가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에 비하여,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미국 전역의 일반대중에게 읽히고 있다.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초보적인 이해조차 없는 미국의 일반대중들을 선동하려면 『유에스에이 투데이』만큼 적절한 매체가 없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핵의혹' 공방전은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대하는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이 일으킨 '핵소동'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 가운데 주류는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이 일으킨 '핵소동'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극렬분자들의 대중선동에 적극 동조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있다. 극렬분자들이 정보유출을 자행하였을 때, 미국 국무부가 정보유출은 미국의 국익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그대로 미국은 극렬분자들의 대중선동 때문에 외교적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져 국익을 훼손 당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대북관계에서 외교적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졌다는 것, 바로 이것이 지금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핵문제'에 대해서 강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온건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유며, 부시 정부가 북(조선)에 대해서 양면성을 지닌 모호한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다.

미국의 '핵소동'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합의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소수의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의 자의적인 대중선동에 의해서 자행된 사건이다. '핵소동'은 진로를 잃어버린 태풍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선동력이 약해지면서 슬그머니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될 것이다.

 

2. 진퇴양난에 빠진 부시 정부의 고민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으로 일관해오고 있다. 1993년부터 근 10년 동안이나 부침을 계속하면서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핵소동'은 그러한 적대정책이 표출된 것이다.

클린턴 정부 시기 8년간의 대북 적대정책은 무력위협전술→고립·압살전술→정치협상전술로 변천되어 왔다.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이 그렇게 변천한 것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종래의 극단적인 적대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부시 정부도 역시 클린턴 정부와 마찬가지로 북(조선)에 대해서 종래의 극단적인 적대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부시 정부는 극단적인 적대관계를 일정하게 완화하면서 조·미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전환하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페리 보고서'의 전략구상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폭언을 자행한 사실, 그리고 핵무기로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는 매우 호전적인 전쟁전략을 발표한 사실 등을 지적하면서 부시 정부가 등장한 이후 조·미 관계가 개선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더 악화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견해도 있으나, 그러한 평가는 비본질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고 내린 것이다.

부시 정부의 대북발언 내용이 '페리 보고서' 이후 클린턴 정부의 대북발언 내용과 비교해서 더 험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부시 정부가 북(조선)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관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은 아니다. 부시 정부의 험악한 대북발언들은, 부시 정부가 조·미 관계를 종래의 극단적인 적대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점을 알고는 있으나, 그러한 관계로 전환할 자체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만일 부시 정부가 종래의 극단적인 적대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험악한 발언만이 아니라 험악한 행동으로 나왔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적대적인 발언만 앞세우고 있지, 정작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못하고 있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태의 본질은 발언이 아니라 행동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부시 정부가 기껏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은 북(조선)에 대한 중유공급을 중단하는 조치 정도에 그치고 있다. 북(조선)이 예맨으로 수출하는 미사일을 실은 화물선을 공해 상에서 정선·수색하였던 것은 명백히 적대행동이었지만, 미국 군부가 미국 해군이 아니라 스페인 해군을 앞세워 자행했다는 점, 그리고 백악관과 국무부가 불과 이틀 뒤에 미국 군부의 정선조치를 해제하였다는 사실은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의 군사적 적대행동에 정치적 제동이 걸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부시 정부의 중유공급 중단조치는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 동결을 해제하게 하는 더 강력한 대응조치를 불러왔고, 그에 따라 조·미 기본합의는 사실상 파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시 정부의 중유공급 중단조치와 북(조선)의 영변 핵시설 동결 해제조치에 의해서 조·미 기본합의가 사실상 파기되었으므로, 조·미 관계가 결정적으로 악화되었다고 평가하는 견해가 있으나, 그러한 평가도 역시 비본질적인 현상만을 바라보고 내린 것이다. 왜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조·미 기본합의는 북(조선)과 미국이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국제법적 효력을 지닌 협약이었으나, 미국은 처음부터 그 협약의 의무를 이행하려는 의지가 없었고, 따라서 경수로 건설공사를 제대로 추진하지 않고 조·미 관계개선도 하지 않으면서 마냥 늑장을 부렸다. 북(조선)은 조·미 기본합의에 대한 미국의 불성실한 태도가 의미하는 것이 협약의무를 이행할 의지가 없다는 것임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있었다.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행될 가능성이 없는 조·미 기본합의를 새로운 협약으로 대체하여야 한다는 것, 이것이 지금 조·미 두 나라가 공감하고 있는 바다. 조·미 두 나라는 직접적인 대화를 통하여 조·미 기본합의를 새로운 협약으로 대체하려는 의사를 상호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 정부의 중유공급 중단조치와 북(조선)의 영변 핵시설 동결 해제조치에 의해서 발생한 조·미 기본합의의 사실상 파기사태는, 조·미 기본합의를 새로운 협약으로 대체하는 문제에 대해서 조·미 두 나라가 공감하고 있는 현실조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 부시 정부가 중유공급 중단조치를 강행하면서 대북 적대관계를 최악으로 악화시키고 전쟁위협과 무력공격을 획책하려고 한다면, 무력공격의 구실을 조작해야 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그러한 구실을 조작하지 않고 있으며, 이른바 '평화적 해결'을 말하고 있다.

부시 정부의 '평화적 해결'에 관한 의사는 부시가 지난 11월 15일 북(조선)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발표했던 대통령 성명에서 드러났다. 그 성명에서 부시는 "내가 지난 2월 남(한국)을 방문했을 때 분명히 밝힌 것처럼 미국은 북(조선)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라고 전제하고, "우리는 단합해서 이 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그 성명에서 부시가 말했던 '평화적 해결'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평화적 해결'의 의미를 해석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 성명에서 부시가 말했던 "미국은 북(조선)과 다른 미래를 갖기를 희망한다."는 구절이다. 그 구절에는 부시 정부가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의 대중선동에 의해서 발생하였던 '핵소동'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조·미 적대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의사가 담겨있다.

부시 정부가 희망하고 있는 '다른 미래'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가 일정하게 이완된 새로운 미래를 의미한다. 부시 정부가 이처럼 조·미 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전환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는 근본이유는, 조·미 대결구도를 첨예하게 유지하는 문제와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문제가 상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이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이 일으킨 '핵소동'을 적절하게 조절·수습하지 못하고 조·미 대결구도를 계속 첨예하게 유지할 경우, 핵확산금지체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상충되는 두 문제 가운데서 어느 쪽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리한 상황에 몰려있는 것이다.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는 지난 10월 31일에 작성된 나의 논문 『'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에 설명되어 있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그런데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대미제안에 응하지 않고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먼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야 대화에 응하겠다고 하면서 버티고 있지만, 그것은 버티기를 위한 발언에 불과하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핵문제'에 관한 정치회담에 나서야 하며, 그 회담에서 북(조선)의 대미제안에 응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북(조선)의 대미제안에 어쩔 수 없이 응해야 한다는 데 부시 정부를 괴롭히고 있는 고민이 있다. 부시 정부의 그 고민은, 북(조선)의 대미제안에 응하기에는 아직 자체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렇다고 그 제안을 거부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매우 당황하고 있는 태도로 표출되고 있다.

 

3. 1974년의 대미제안, 2002년의 대미제안

 

그렇다면 북(조선)의 대미제안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북(조선)이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것은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이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대외적으로 발표한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제안만 바라보아서는 북(조선)의 대미제안이 성립되어 있는 전략구도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북(조선)의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제안은 전체적인 전략구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제안이 성립되어 있는 전체적인 전략구도는, 지금으로부터 근 30년 전인 1974년 3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가 미합중국 국회에 보내는 편지에 밝혀져 있다. 그 편지는 북(조선)이 조·미 적대관계를 새로운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최초의 대미제안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매우 중요한 문건이다. 그 편지에서 북(조선)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전략구상을 밝힌 바 있다.

첫째, 북(조선)은 그 편지에서 조·미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전제가 마련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오늘 사용되고 있는 표현을 빌리면, 조·미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우리 민족끼리 6.15 공동선언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편지에는 "현실은 조선에서 긴장상태를 가시고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장애로 되는 외부적 요인들을 제거하며 조선사람끼리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려면 남조선에 자기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모든 군사통수권을 틀어쥐고 있는 미국과 직접 평화협정 체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기하고 있다."고 기록되었다.

둘째, 북(조선)은 그 편지에서 조·미 평화협정에 불가침, 자주권 존중, 통일문제와 내정에 대한 불간섭의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 편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는 미합중국과의 사이에 체결된 평화협정이 다음과 같은 조치들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쌍방은 서로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고 직접적 무력충돌의 모든 위험성을 제거할 것이다. 미국은 남조선당국자들의 전쟁도발책동과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파쑈적 탄압행위를 사촉하지 않고 비호하지 않으며 조선의 북과 남이 남북공동성명에 따라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나라를 통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며 조선의 내정에 일절 간섭하지 않을 데 대한 의무를 질 것이다."

셋째, 북(조선)은 그 편지에서 불가침, 자주권 존중, 통일문제와 내정에 대한 불간섭의 조치를 전제로 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정치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하였다. 그 편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는 이와 같은 조치들을 전제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회담을 진행할 것을 제기한다."고 기록하였다.

넷째, 북(조선)은 그 편지에서 조·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남북관계의 개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 편지는 "조선에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가 성과적으로 해결될 때 조선의 북과 남 사이의 관계에서도 개변이 일어날 것이며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제안은 이번에 처음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조선)이 1974년에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정치과업을 미국에게 제시하고 근 30년 동안 그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변함없이 노력해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1974년에는 미국이 북(조선)의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제안을 완전히 묵살하였지만, 오늘에는 미국이 북(조선)과의 회담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북(조선)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조·미 관계사가 밟아온 발전과정이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은, 조·미 관계가 북(조선)의 요구대로 개변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조·미 불가침조약이 체결될 경우, 백남순 외무상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평양이나 워싱턴에서 만나 정치회담을 개최해야 한다. 조·미 정치회담에서 불가침조약이 체결되는 것은, 부시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이 곧 일정에 오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클린턴 정부 말기에 조명록 특사의 워싱턴 방문과 조·미 공동성명 발표, 그리고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합의가 연속적으로 진행되었던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조선)이 최초로 대미제안을 제시한 이후 근 30년이 지난 오늘, 북(조선)은 2000년 10월의 조·미 공동성명보다 한 급 높은 수준의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모든 근본문제를 일괄타결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붕』 2002년 11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강석주 제1부상이 조·미 고위급회담에서 켈리 특사에게 제시한 북(조선)의 대미제안은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 평화조약 체결, 경제제재 전면해제, 그리고 부시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였다고 한다. 이 네 가지 현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진하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21세기 전략구상에 포함되어 있는 대미제안의 내용이다.

 

4. 푸에블로호 송환교섭의 정치적 의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신의 21세기 전략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몇 가지 중대한 조치를 준비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는 조·미 적대관계의 상징이며, 조선인민군의 전리품인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반환하기 위한 준비다.

북(조선)은 1968년 1월 원산 앞바다를 침범한 미국 국가안보국(NSA) 소속의 최첨단 정탐함정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뒤, 30년 동안 원산항에 두었다가, 1999년 10월에 대동강으로 옮겨놓았다. 지난 10월 3일 제임스 켈리를 특사로 하는 미국 정부대표단이 평양에 나타나기 직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푸에블로호를 남포항으로 옮기라고 해당기관에 지시하였다. 이것은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대미제안에 응하면 즉시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전투에서 노획했던 전리품을 적대국에게 송환하는 것은, 적대관계를 비적대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러한 의도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내셔널 저널(National Journal)』 2002년 11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은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반환할 수 있다는 의사를 미 국무부에 전했으며, 그에 따라 비공개 송환교섭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에서 최근 푸에블로호 송환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2003년 중 어느 때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북(조선)이 푸에블로호를 미국에 넘겨주는 날, 미국의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이 일으킨 '핵소동'은 종말을 고할 것이며, 미국은 조·미 관계를 결정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치회담에 다시 나올 것이다.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제안은 이처럼 30년의 시차를 넘어 차츰 현실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2002년 12월 19일 작성되어, 서울에서 발행되는 『월간 우리』 2003년 1월호에 기고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