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한(조선)반도 정세를 논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조·미 관계의 긴장상태를 격화시킨 원인과 현재 긴장국면의 본질

2. 조·미 사이에 형성될 2003년형의 새로운 합의구도

3. 조·미 정상회담에서 근본문제의 일괄타결은 가능한가?

4. 남(한국) 대통령선거 이후의 정세 전망

 

 

1. 조·미 관계의 긴장상태를 격화시킨 원인과 현재 긴장국면의 본질

 

조·미 관계의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있는 요인은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다. 미국이 제기한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는 미국의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과 대북 적대정책이 결합되어 있다. 미국은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과 대북 적대정책을 모두 추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그러한 의도는 북(조선)의 강한 반격에 부딪치고 말았다. 북(조선)은 미국이 제기한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역이용하여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파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클린턴 정부 말기에 이르러 조·미 사이의 대결에서 차츰 밀리면서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과 대북 적대정책 가운데 어느 것 하나를 택하고 다른 것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고농축 우라늄 설비를 파키스탄에서 수입했다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가지고 '핵의혹'을 제기하였고, 대결주의적 극렬분자들이 '핵의혹'을 대중선동으로 증폭시키자,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시인했다고 '정보'를 공개하면서 '핵의혹' 공방전을 일으키더니, 그러한 사태악화를 구실로 삼아 결국 중유공급의 의무이행을 중단하였다.

북(조선)도 부시 정부가 중유공급의 의무이행을 중단한 데 대한 보복조치로서 영변 핵시설을 다시 가동하겠다고 발표하고 국제원자력기구가 영변 핵시설에 설치해놓은 봉인과 감시촬영기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부시 정부가 처음부터 중유공급 의무의 이행을 중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의도에 따라 '핵의혹'을 제기하였다는 것이다. '핵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긴장이 격화되니까 나중에 중유공급의 의무이행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부시 정부는 중유공급의 의무이행을 중단할 때,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 동결을 해제하는 강경한 보복조치를 취하리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들은 그러한 보복조치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부시 정부는 중유공급의 의무이행과 핵시설 동결해제의 보복조치에 의해서 조·미 기본합의가 파기되는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들은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부시 정부는 그러한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려고 하였던 것일까? 조·미 사이의 대결에서 차츰 밀리면서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정책과 대북 적대정책 가운데 전자를 택하고 후자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미국이 왜 또다시 '핵문제'를 제기하면서 긴장상태를 더욱 격화시키고 있는 것일까?

조·미 전쟁을 도발하려고 하는 것일까? 미국이 섣불리 조·미 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클린턴 정부 시기에 현실로 입증된 바 있으며,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전쟁도발의도가 아니라면, 부시 정부는 도대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조·미 기본합의를 파기하였던 것일까?

현상적으로 보면, 부시 정부는 지금 '핵문제'를 다시 들고 나와서 조·미 관계의 긴장상태를 더욱 격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의 이면에서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부시 정부가 지금 조·미 관계의 긴장상태를 격화시키고 있는 의도는 긴장고조와 대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시 정부의 의도는 다른 데 있다.

지난 10월초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 이후에 터져 나온 '핵소동'과 그에 의한 긴장격화현상은, 부시 정부가 이행하기 싫은 합의, 설령 억지로 이행한다고 해도 자기들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쓸모 없게 되어버린 합의를 파기하려는 치밀한 계획에 따라 추진되어온 것이다. 1994년에 채택되었던 조·미 기본합의를 가지고서는 한(조선)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이 내린 판단이다. 부시 정부는 1994년의 기본합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합의구도를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핵소동' 현상 뒤에 감추어진 부시 정부의 진짜 의도다.

다른 한편, 1994년의 조·미 기본합의에 대한 북(조선)의 견해는 어떠할까? 그 점에 대해서는 북(조선)의 견해도 미국의 견해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미 기본합의를 가지고서는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 북(조선)의 판단이다. 북(조선)도 조·미 기본합의가 부시 정부에 의해서 이행되기 힘든 합의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새로운 합의를 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추진하는 방향과 추구하는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1994년의 합의구도를 가지고서는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합의구도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조·미 두 나라의 견해가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미 기본합의에 의한 1994년형의 낡은 구도가 파기되는 것을 합의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파국적 사태로 볼 수 없다. 합의 이전의 대결상황으로 되돌아가는 파국적 사태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있는 핵확산금지체제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사태가 될 것이므로, 부시 정부는 그러한 파국적 사태에 빠지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미 기본합의에 의한 1994년형의 낡은 구도가 파기되는 것은, 2003년형의 새로운 합의구도를 창출하기 위한 '난산의 고통'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2. 조·미 사이에 형성될 2003년형의 새로운 합의구도

 

부시 정부의 견지에서 보면, 새로운 합의구도는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합의구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부시 정부에게 있어서 북(조선)의 '핵문제'는 결국 미국의 세계 지배전략의 중심축인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문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시 정부가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조·미 사이에 새로운 합의구도를 세우는 협상과정에서 미국은 북(조선)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면, 새로운 합의구도는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구도가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이정표는 이미 6.15 공동선언에서 천명되었으므로, 2003년형의 새로운 합의구도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조국통일과업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하는 합의구도가 될 것이다. 새로운 합의구도는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와 전쟁도발위험을 없애기 위한 합의구도가 될 것이며, 동시에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결정적인 국면을 열어놓는 합의구도가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대치상태와 전쟁도발위험을 없애려면 조·미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되어야 한다. 한(조선)반도에서 군사적 긴장과 전쟁도발위험을 상존시키고 있는 책임은, 이미 오래 전에 사실상 효력을 잃어버린 정전협정체제 아래서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북(조선)을 겨냥한 선제공격전략을 운용하고 있는 미국에게 있다.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치상태와 전쟁도발위험을 없애기 위한 정치적 합의는 이미 남북기본합의서로 정리된 바 있다.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 사이의 긴장상태가 상당히 해소되면서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이 전면화되고, 남북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사업이 마무리되고 있는 오늘의 급변하는 현실은,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도발위험이 남북 사이의 대치상태가 아니라 조·미 사이의 대치상태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조·미 사이에서 형성될 2003년형의 새로운 합의구도는, 조·미 사이의 근본문제들을 해결하는 선에서, 다시 말해서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는 한(조선)민족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선에서 일괄타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3. 조·미 정상회담에서 근본문제의 일괄타결은 가능한가?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미 정치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다. 재개될 조·미 정치회담은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고위급회담이 될 것이다. 부시 정부가 '핵소동'을 일으키자, 북(조선)은 조·미 정치회담을 재개하여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을 공개적으로 제시하였다.

지난 10월초에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에서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안한 것은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 평화협정 체결, 경제제재 해제, 부시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 이 네 가지였다.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은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선결적 의의를 지닌다. 그 조약이 체결되면 부시의 평양방문이 성사될 것이고, 조·미 사이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먼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여야 조·미 정치회담이 재개될 것이라는 공식적인 주장을 내놓고 있다.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포기를 조·미 정치회담 재개의 선행조건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모순이다. 조·미 정치회담을 재개하려는 목적이 '핵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데, 부시 정부는 거꾸로 '핵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조·미 정치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핵문제'는 조·미 정치회담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다른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부시 정부가 대화와 협상의 방식이 아니라, 그 무슨 압력으로 '핵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러한 사실은 아마도 부시 정부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시 정부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핵소동'에 매달려서 세월을 허송할 것이 아니라,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미 정치회담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미국에게도 이익이 되는 길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북(조선)이 해결하려는 조·미 사이의 근본문제들은 한(조선)민족과 미국 사이의 근본문제라는 사실이다. 자주적 평화통일의 문제는 한(조선)민족 전체의 포괄적 이익과 근본요구를 해결하는 최대의 문제다. 다른 한편으로,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문제는 미국의 정치·군사적 이익에 직결되어있는 최대의 문제다.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최대의 문제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최대의 문제를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하자는 것, 이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를 평양에 초청하여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는 의도다.

부시 정부는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조·미 정상회담 제안에 어쩔 수 없이 응함으로써 지난 반세기 동안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길을 가로막았던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론 한 차례의 조·미 정상회담으로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미 정상회담에서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국면을 열어놓았다고 해서 즉시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남(한국)에서 반통일세력들, 친미사대주의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한, 조·미 사이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합의구도가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남(한국)의 반통일세력, 친미사대주의세력은 크게 반발하면서 정세 발전을 저해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국)의 반통일세력, 친미사대주의세력의 반발은 한(조선)민족이 민족자주와 조국통일로 나아가는 대세의 흐름을 결코 막지 못한다. 조·미 사이에서 새로운 합의구도가 형성되고 그에 따라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가 급속도로 변화·발전하면, 남(한국)에서는 반통일세력과 통일세력의 대결, 친미사대주의세력과 민족자주세력의 대결이 더욱 첨예하게 될 것이다. 그 대결에서 통일세력, 민족자주세력이 승리하게 되는 것은 사회역사발전의 필연이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통일세력, 민족자주세력의 지지를 받으면서 새로운 진보정치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한(조선)반도의 정세발전을 추동하는 강력한 주체역량이 자라나고 있음을 현실로서 입증한 것이다.

 

4. 남(한국) 대통령선거 이후의 정세 전망

 

'핵'과 '촛불' 속에서 진행된 2002년의 대선은 역대 대선들과 비교해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주었다.  

첫째, 서울 한복판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을 포위하면서 계속되고 있는 대규모 촛불시위는 대중적 반미투쟁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2002년의 대선은 이처럼 대중적 반미투쟁이 확산되는 조건에서 진행되었다. 대선 시기에 발생한 대중적 반미투쟁의 확산은 이회창 후보보다는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되었다. 노무현정권이 들어서면 미국에게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취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 유권자 대중은 노무현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은 김대중정권과 마찬가지로 미국에게 당당하지 못하고 비굴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미예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한국)에서의 대중적 반미투쟁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므로, 노무현정권이 들어선 뒤에 더욱 확산되고, 더욱 격화될 것이다. 친미예속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노무현정권은 그러한 대중적 반미투쟁에 탄압으로 대응할 것이다. 반미자주화를 상징하는 대중의 '촛불'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거대한 '들불'로 확산될 것이며, 궁지에 몰린 미국은 '들불'을 진화하는 탄압책동에 노무현정권을 앞세울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노무현정권의 친미예속성은 전면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둘째, 2002년의 대선은 조·미 사이에서 발생한 '핵소동'의 긴장상태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도 조·미 사이의 격화된 긴장상태는 2002년의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대선 직전에 미국이 북(조선)의 '소산호'를 공해 상에서 불법적으로 정전·수색하는 사건이 터지고,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 동결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도, 조·미 사이의 격화된 긴장상태는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이것은 미국이 조·미 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발생되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가 남(한국) 민중들에게 미미한 영향력밖에 주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성의 근본원인은 남(한국)에 대한 북(조선)의 무력공격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전쟁위협에 있다는 사실을 남(한국) 민중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폐기되어야 하며, 동시에 대북적대론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대북대화론을 주장하는 민주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견해가 남(한국) 민중들 속에 널리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은 자기의 대선공약에 따라서 제2차 남북 최고위급 회담 개최를 비롯한 유연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무현정권의 대북정책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대북정책을 추종하는 선에서 움직일 것이다. 친미예속적인 노무현정권에게는 미국의 의사와 어긋나게 독자적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 대선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다는 점이다. 남(한국) 민중의 정치적 요구는 자주, 민주, 통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세 가지 정치적 요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은 진보적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밖에 없다. 한국(조선)전쟁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남(한국)에서는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려는 정치세력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파쑈적 집권세력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였다. 진보적 대중정당의 존재는 미미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적 대중정당의 존재가 민중의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왔으며, 일정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이번 대선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발전에 안겨준 가장 중요한 의의다.

5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할 때, 남(한국)의 민중은 김대중정권의 개혁 프로그램에게 매우 커다란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김대중정권이 내걸었던 개혁 프로그램은 5년이 지난 지금 좌절과 파탄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2003년 초에 대통령직을 인수할 노무현 당선자는 김대중정권의 개혁 프로그램을 계승하겠다고 공약하였고, 남(한국) 민중 가운데 다수는 아직도 노무현 당선자가 제시한 개혁 프로그램에 두 번째의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앞으로 5년의 대통령 임기를 경과하면서 민중은 노무현정권의 개혁 프로그램이 결코 민중의 요구와 민족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김대중정권의 개혁 프로그램에 의해서 5년을 기만당하고, 노무현정권의 개혁 프로그램에 의해서 또다시 5년을 기만당해야 하는 것이 남(한국) 민중의 현실이다.

그러나 남(한국)의 민중은 집권세력에 의해서 언제까지나 기만과 우롱을 당하는 아둔하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남(한국)의 민중은 자기들의 요구를 위하여 투쟁하는 새로운 진보정치세력, 민족적 이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자주적 정치세력이 진보적 대중정당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될 것이며, 그에 따라 진보적 대중정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날로 상승할 것이다. (2003년 1월 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