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혹' 공방전,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 조·미 관계의 근본문제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

(2) 미국이 3년 동안 덮어두었던 북(조선)의 '핵의혹'

(3) 조·미 사이에서 재개된 '핵의혹' 공방전의 실상

(4) 2002년의 '핵의혹' 공방전에서 부시 정부가 자행한 왜곡과 날조

(5) 올해 '핵의혹' 공방전은 두 차례 있었다

(6) 부시 정부를 충격에 빠뜨린 것

(7) 북(조선)의 '놀라운 제안'은 무엇일까?

(8) 정세는 근본문제의 일괄타결을 요구하고 있다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

 

1993년 3월 10일 북(조선)은 미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앞세워 강요하고 있었던 이른바 '특별사찰'을 거부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3월 12일 오전 10시 50분 북(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Non-Proliferation Treaty)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하였다.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한다는 폭탄선언은 그 어떤 나라도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전격적이고 대담한 정치공세였다.

당시 미국 정부와 워싱턴 정치권에서 핵확산금지체제(non-proliferation regime)를 강타한 북(조선)의 정치공세를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국은 북(조선)의 초강경 정치공세 앞에서 대경실색하였다. 북(조선)은 미국의 허를 찔렀고, 북(조선)의 기습공세를 받은 미국은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북(조선)의 공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북(조선)은 1993년 5월 29일에 사거리 500 킬로미터의 준중거리 미사일 1기를 일본의 노도반도 앞바다로 시험발사하였고, 30일에는 사거리 3,000 킬로미터의 2단형 중거리 미사일 2기를 괌 앞바다와 하와이 앞바다로 각각 시험발사하였다. 이것은 북(조선)이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군사전략거점들인 일본 열도, 하와이, 알래스카, 괌,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들을 모조리 미사일 공격 사정권에 두고 있음을 실증한 것이었다.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무력시위였다. 북(조선)은 정치공세와 무력시위를 동시에 전개하면서 미국을 전면적으로 압박해 들어갔다.

북(조선)의 영변 핵시설에 대하여 이른바 특별사찰을 실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만일 특별사찰을 거부하면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던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의 강력한 정치공세와 무력시위를 당해내지 못하고 불과 몇 일 뒤에 기가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에서 개최되었던 역사적인 조·미 정치협상은 북(조선)의 전술적 승리와 미국의 전술적 패배를 보여준 사변이었다.

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은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원칙을 천명하였고, 곤경에 몰린 미국은 어쩔 수 없이 그 원칙을 수용·합의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6월 11일 뉴욕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조·미 공동성명이 채택·발표되었다.

1993년의 조·미 공동성명이 조·미 관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까닭은, 그 공동성명에서 처음으로 조·미 관계개선의 원칙이 천명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원칙을 제시하여 역사적 문서를 채택하였던 전술적 승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휘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원칙은 다음과 같이 짤막한 세 개의 문장으로 기록되었다.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이러한 무력으로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담보한다. 전면적인 담보적용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며 상대방의 자주권을 호상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조선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

위의 문장에는 네 가지 원칙이 들어있다. 그것을 다시 정리하면, 적대정책 포기의 원칙,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원칙, 자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원칙이다.

이 네 가지 원칙 가운데 조·미 두 나라가 합의하여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공동의 원칙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와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원칙이다. 나머지 3개의 원칙은 형식상 조·미 두 나라가 합의한 원칙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내심 반대하였고 지금까지도 반대하고 있으므로, 쌍방이 합의한 원칙이 아니라 북(조선)이 일방적으로 관철하려고 제시한 원칙인 것이다. 당시에 미국은 내심 반대하였으면서도, 강력한 정치공세와 무력시위로 미국을 압박하였던 북(조선)의 요구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기에 합의하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까닭에 1993년의 조·미 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적대정책 포기의 원칙, 자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원칙은 북(조선)의 일방적인 정치적 요구를 그대로 공동성명에 포함시킨 원칙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3대 원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에게 제시한 조·미 관계개선의 원칙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1993년에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한 이후 지금까지 북(조선)은 시종일관 그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4년 8월에 제네바에서 채택된 조·미 합의성명, 같은 해 10월에 제네바에서 채택된 조·미 기본합의문, 그리고 2000년 10월에 워싱턴에서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은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3년의 조·미 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북(조선)의 대미전략의 성과였다.

부시 정부가 등장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된 2002년 10월의 조·미 정치협상에는 대통령 특사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가 파견되었는데, 그의 상대역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뉴욕에서 열린 조·미 정치협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미국에게 제시하여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하게 하였던 바로 그 사람, 그리고 이듬해 1994년 10월에 조·미 기본합의문에 서명하였던 바로 그 사람 강석주 제1부상이었다. 이 사실은 북(조선)이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변함없이 견지하면서 추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북(조선)이 1993년의 조·미 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정치협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북(조선)이 경제재건에 요구되는 물질적 보상을 얻어내기 위해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으며, 핵무기 개발이라는 협상수단을 이용하여 미국과의 정치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북(조선)이 조·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목적도 순전히 북(조선)의 경제재건에 요구되는 물질적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이 '달러'를 얻어내기 위해서 미국에게 맞서서 그토록 치열하게 정치·군사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견해는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근본문제를 '달러' 획득의 문제로 바꿔치려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오해다. 물론 조·미 관계와 조·일 관계에서 경제지원 또는 경제협력이라는 표현으로 제기되고 있는 물질적 보상문제가 배제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조·미 관계와 조·일 관계의 핵심문제는 경제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군사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에는 물질적 보상문제가 들어있지 않다. 북(조선)의 대미협상전략은 물질적 보상을 얻어내려는 목적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에 집중되어 있다. 북(조선)은 오로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과의 '총포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 미국이 3년 동안 덮어두었던 북(조선)의 '핵의혹'

 

부시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한 『월 스트리트 저널』 2002년 10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이 농축우라늄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품을 제3국으로부터 사들였다는 '정보'를 부시 정부가 파악한 시점은 2002년 7월이었다고 한다. 부시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8일자도 미국이 지난여름에 북(조선)이 농축우라늄을 제조하는데 쓰이는 물품을 구입했다는 '정보'를 확인하였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30일 브루나이에서 북(조선)의 백남순 외무상과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의 회동이 이루어진 직후에,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북(조선)이 비밀스럽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한국) 정부 소식통의 말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은 2002년 9월말, 그러니까 제임스 켈리가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에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뒤늦게나마 남(한국) 정부당국에 제공하였다고 한다.

지난 10월 16일에 발표한 미국 국무부의 성명은 그 문제를 언급한 대목에서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에 요구되는 우라늄을 농축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최근 입수했다."고 표현하였다.

아래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관련물품을 제3국에서 반입했다는 부시 정부의 주장은 날조다. 농축우라늄을 제조할 목적이 아니라 일반적인 산업용으로 반입한 물품에 대해서 '핵의혹'이라는 올가미를 씌우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부시 정부가 2002년 7월에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관련물품을 반입하였다는 '정보'를 파악하였다고 하면서도 이 사실을 즉각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 10월 26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에서 이루어진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이후에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제조를 조·미 정치협상에서 시인했다는 '정보'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언론에 그 '정보'가 미리 새어나가는 바람에 10월 16일에 앞당겨 공개하였다고 한다. 미국은 그날 낮에 발표하지 못하고 일과시간이 끝난 저녁에 서둘러 발표하였다. 백악관이 국무부보다 한 발 앞서서 발표하였다.

아래에서 논하겠지만,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제조를 시인했다는 부시 정부의 주장도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관련물품을 반입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북(조선)의 협상대표자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왜곡이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이 농축우라늄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품을 사들였다는 '정보'를 지난 7월 이후 두 달 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일까? 북(조선)이 농축우라늄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품을 사들였다는 '정보'를 조·미 정치협상에서 시인하였다는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미국 언론에 새어나가자 서둘러 공개하였던 까닭은 무엇일까? 일반 언론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첫째, 국내외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이라크 침략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정한 부시 정부가 만일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면 이라크 침략전쟁을 준비하는 데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조·일 정상회담이 다가오고 있었던 시점에서 부시 정부가 만일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 일본의 여론에는 조·일 정상회담 추진을 반대하는 역풍이 몰아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조·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계획이 파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언론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부시 정부는 등장 이후 처음으로 북(조선)과의 정치협상에 나설 때, 북(조선)이 강력한 정치공세로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무척 긴장하였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맞설 수 있는 대항수단을 절실히 요구하였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 정치협상의 대항수단으로 고안해낸 것이 바로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였던 것이다. 부시 정부가 그러한 정치협상의 대항수단을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외부에 공개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를 2002년 7월에 처음으로 파악했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이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정보'를 처음으로 파악했다는 시점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보'파악의 시점에 관한 내외 언론의 보도내용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이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의혹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 시점은 1999년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파키스탄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로 폭발실험에 성공하였을 때, 미국 연방정부 산하 동력자원부가 북(조선)도 앞으로 6년 안에(다시 말해서 2004년 안에)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때는 1998년이었다.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원 의장 벤저민 길먼(Benjamin A. Gilman)이 뉴욕에 있는 아시아협회에서 연설하면서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던 때는 1999년 10월이었다. 지난 10월 20일 미국의 씨엔엔(CNN)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였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는 "단편적인 정보는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1999년에 이르러서는 북(조선)이 적극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올해 여름에는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남(한국)의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10월 17일 국회에서 제임스 켈리 차관보는 수년 전부터 북(조선)이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0월 21일 남(한국)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이 농축우라늄 관련 장비를 외국에서 도입하려고 시도한다는 첩보를 정부가 지난 99년에 입수, 미국에 제공했다. 이준 국방장관도 지난 18일 국회 국방위에서 이 사실을 비공개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가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파악했다고 주장하는 1999년은 클린턴 정부 시기다. 이것은 미국이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관한 '정보'를 3년 동안 의도적으로 덮어두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1999년부터 최근까지 약 3년 동안에 걸쳐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정보'를 파악하였다고 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미국은 1999년에 북(조선)의 '핵의혹'이 제기되었다고 하면서도 왜 '페리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워싱턴에서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클린턴의 방북으로 조·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하였을까? 그리고 그 '정보'를 왜 3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공개하면서 북(조선)의 '핵의혹'을 유포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이 북(조선)의 '핵의혹'을 제기·유포하고 있는 행위의 이면에는 자기의 정치적 목적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밝혀내기 위한 목적에서 북(조선)의 '핵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북(조선)이 비밀스럽게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는 '극비정보'를 '핵의혹'이라는 이름으로 날조하여 국제사회에 유포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핵의혹' 날조에 관련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술할 것이다.

 

(3) 조·미 사이에서 재개된 '핵의혹' 공방전의 실상

 

그렇다면 미국이 '핵의혹'을 날조·유포함으로써 추구하려는 정치적 목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문제는 간단한 답변으로 해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미국이 북(조선)을 고립·압살하려는 강력한 압박공세를 취하기 위한 구실로 북(조선)의 '핵의혹'을 제기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그릇된 것이다. 미국은 북(조선)의 강력한 정치공세에 대응하기 위하여 북(조선)의 '핵의혹'을 날조·유포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조선)의 '핵의혹'에 관련하여 마치 '정설'처럼 굳어진 판단을 뒤집어엎는 이 새로운 관점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미국이 끈질기게 '핵의혹'을 날조·유포하고 있는 대상은 북(조선)과 이라크다. 그런데 북(조선)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새로운 친미정권으로 교체하고 이라크군을 무장해제하려는 가공할 침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조적으로 북(조선)에 대해서는 '평화적 해결'을 운운하면서 공격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1990년 이후 지금까지 '핵의혹'의 대상으로 지목한 북(조선)과는 수없이 정치협상을 추진하면서 1993년 6월의 조·미 공동성명, 1994년 8월의 조·미 합의성명과 10월의 조·미 기본합의문, 2000년 10월의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하였으며, 한때 조·미 정상회담까지 추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똑같이 '핵의혹'의 대상으로 지목한 이라크와는 지난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정치협상도 하지 않았고, 단 한 건의 합의문서도 채택하지 않았으며, 오직 침략전쟁, 정치압박, 경제봉쇄, 외교고립을 총동원하여 기어이 압살하려고 책동하고 있다.

이라크 침략전쟁 준비를 지휘하고 있는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지난 10월 17일 미국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미국의 선제공격 대상이 아니라면 미국의 입장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은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그것은 나에게 물을 질문이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이나 의회에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중얼거리면서 답변을 회피하였다. 이라크 침략전쟁을 선동하고 있는 호전광 럼스펠드조차도 북(조선)에 대해서는 우물쭈물하면서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제국주의적 재침책동을 피할 길이 없는 이라크는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밀려가는 처지에 있다. 유엔주재 이라크 대사 모하메드 알두리가 『뉴욕 타임스』 2002년 10월 16일자에 기고한 글을 읽어보면, 이라크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몰려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라크는 핵무기, 생물학무기, 화학무기 등 어떤 대량파괴무기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런 무기를 획득할 의사도 없다. 우리가 미국과 유엔 회원국들에게 요구하는 바는 우리의 말을 믿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무기사찰단을 보내어 조사하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조사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감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이러한 공개정책을 제안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이라크가 미국의 '핵의혹'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사실상 굴복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라크는 자기의 정치적 굴복과는 상관없이 미국의 군사적 침략을 10여 년만에 또 다시 받아야 하는 비참한 처지로 밀려가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은 이라크와는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핵의혹' 공방전에서는 공세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있지만, 북(조선)을 상대로 벌이고 있는 '핵의혹' 공방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공세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쪽은 북(조선)이다. 이것은 조·미 사이에서 '핵의혹' 공방전이 벌어졌던 1993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북(조선)은 '핵의혹' 공방전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던 지난 9년 동안 단 한 번도 공세의 주도권을 미국에게 빼앗긴 적이 없었으며, 미국이 '핵의혹'을 물고 늘어지면서 공세로 나오면 즉각 더 강력한 역공을 가하여 미국을 정치적 곤경에 몰아넣곤 하였다. 북(조선)은 미국의 '핵의혹' 공세를 단호히 물리치고, 강력한 역공으로 미국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그렇다면 이라크는 어찌하여 1990년 이후 '핵의혹' 공방전에서 완패를 당하면서 위기에 몰려 있으며, 북(조선)은 어찌하여 1993년 이후 '핵의혹' 공방전에서 미국에게 압박공세를 가하면서 미국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다른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군사력에서 찾아야 한다. 2002년 10월 19일 미국 텔레비전 방송 엔비씨(NBC)의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은 "북(조선)은 이라크보다 군사적으로 훨씬 강하다."고 말했다.

강한 군사력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군대의 사상무장 수준은 일단 논외로 치고, 순전히 무장장비의 수준만을 평가할 때, 강한 군사력은 전술무기의 보유수준을 넘어 전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략무기라는 것은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핵무기와 그 운반수단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뜻한다.

이 글은 북(조선)의 '핵의혹'을 주제로 하고 있으므로 북(조선)의 전략무기에 대하여 논하면서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관한 문제까지 언급하지는 않고 핵무기에 관한 문제만 다룬다.

이라크는 핵무기를 아직 보유하지 못하였으므로 미국에게 완패를 당하고 있는 반면에, 북(조선)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미국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만일 북(조선)이 핵무기를 갖지 못했다면, 미국은 애초에 북(조선)과의 정치협상을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북(조선)의 운명도 이라크의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핵무기를 가진 나라와는 협상을 하고, 핵무기를 갖지 못한 나라와는 전쟁을 한다는 것, 이것이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 그리고 북(조선)과 미국의 관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과 그것의 정치·군사적 의미를 알지 못하고 조·미 관계를 분석하려 하는 경우, 결론은 여지없이 빗나가 버리게 된다. 북(조선)은 이라크와 달리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왜 그렇게 집요하게 '핵의혹'을 물고 늘어지면서도 번번이 패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풀 수 없는 것이다.

나는 2001년 1월에 작성한 장문의 논문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북(조선)의 대응 핵전략』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논술하였다. 그 구체적인 논술내용을 이 글에서 다시 언급하는 것은 피한다. 다만 최근에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의 '핵의혹'을 날조·유포하는 과정에서 클린턴 정부와는 구별되는 발언을 하였던 것에 대해서만 언급하려고 한다.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지난 10월 17일 미국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지난 1990년대 초 이후 정보분석을 통해 북(조선)이 1개 또는 2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평가해왔다. 그러한 분석은 정보당국의 평가에 의한 것이다. 나는 북(조선)이 소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제임스 켈리도 지난 10월 21일 일본 외상 가와구치 요리코를 비롯한 고위관리들과 잇따라 회담하는 자리에서 북(조선)이 소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 2002년 10월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일부 관리들은 북(조선)이 1년 안에 연간 6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위에서 인용한 부시 정부 고위관리들의 견해는, 미국이 그 동안 북(조선)의 '핵의혹'에 대한 발언수위를 조절하면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북(조선)의 '핵의혹'에 대한 미국의 발언수위는 지난 9년 동안 조·미 '핵의혹' 공방전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천해왔다.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다→조야한 형태의 원시적인 핵무기 1-2개를 보유하고 있다→소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연간 6개의 핵무기를 곧 만들 것이라는 식으로 변천된 것이다.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비록 정부의 공식발언은 아니지만,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일반 언론들도 그러한 견해에 슬그머니 맞장구를 치고 있다. 영국 신문 『선데이 타임스』 2002년 10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북(조선)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추산한 것보다 훨씬 많은 3-5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미국에게 경고했다고 한다. 이처럼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는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며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오늘 한(조선)반도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정치·군사적 동향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조·미 관계가 그 문제에 의하여 규정받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면 조·미 두 나라는 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만일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일본에게 핵무장의 구실을 주는 것이므로 동아시아에서의 핵확산금지체제는 즉각 붕괴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본에게 핵무장의 구실을 주지 않아야 미·일 동맹체제도 유지할 수 있고 핵확산금지체제도 유지할 수 있으므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알고 있으면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북(조선)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핵무기 보유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핵무기 보유사실을 구태여 공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미국에게 핵확산금지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강력한 정치공세를 취하면 된다. 북(조선)의 목적은 핵확산금지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핵확산금지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정치공세를 가함으로써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는 데 있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면서 북(조선)의 '핵의혹'이라는 허구를 날조·유포하고 있다. 미국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은폐하면서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으며, 북(조선)은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강력한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삼아 핵확산금지체제를 붕괴시키려고 위협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체제가 유지되느냐 붕괴되느냐 하는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조·미 정치협상의 겉모습만 훑어보면, 그 협상은 미국이 날조한 '핵의혹'의 허구를 놓고 첨예하게 대결하는 참으로 '기묘한 협상'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조·미 두 나라가 대결하고 있는 지점은 미국이 날조한 '핵의혹'의 허구가 아니라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다. 조·미 정치협상은 '핵의혹'의 허구가 아니라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를 놓고 사회주의국가와 제국주의국가가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는 치열한 공방전이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물품을 제3국에서 반입하였다고 하는 '정보'가 왜곡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은 미국에게 충격적인 정보가 될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은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가 매우 충격적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북(조선)의 '핵의혹'을 다시 꺼내어놓았다.

거의 모든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부시 정부가 한동안 잠잠하였던 '핵의혹'을 다시 꺼내어 날조·유포하는 것을 북(조선)에 대한 압박공세를 재개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만일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였다면, 부시 정부가 '핵의혹'을 날조·유포하는 것이 북(조선)에 대한 압박공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조건에서 조·미 관계의 현재 상황은 정반대로 조성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핵의혹'은 부시 정부의 압박공세가 아니라, 북(조선)의 강력한 정치공세에 의해서 곤경에 몰리게 된 부시 정부가 취하고 있는 수세적 대응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북(조선)은 '핵의혹' 공방전에서 언제나 공세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미국은 정치적 곤경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조·미 사이의 '핵의혹' 공방전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북(조선)이 언제나 공세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까닭은 '핵의혹' 공방전이 핵확산금지체제의 존망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강국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 핵확산금지체제가 붕괴되기 때문에 미국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7일자 기사가 지적했던 것처럼,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만들었는가 아직 만들지 못했는가 하는 기자들의 물음에 대해서 미국 관리들은 답변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며, 그 대신 '핵의혹'의 허구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

미국이 대외전략을 추진하는 데서 핵확산금지체제가 가지는 정치·군사적 의의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 체제는 세계를 '경영'하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미국의 정치·군사전략이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경우 동아시아에서의 핵확산금지체제는 붕괴되고 말 것이며, 그에 따라 일본의 '비핵 3원칙'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는 미·일 동맹체제도 동반적으로 붕괴되고, 결국 미국의 정치·군사전략은 전세계적 범위에서 파탄지경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일본에게 조·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까닭은, 조·일 적대관계를 일정하게 완화시킴으로써 일본의 비핵화를 계속 유지하면서 자기의 안보관리체제 안에 묶어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2년 10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강경하게 나올 경우를 가장 우려하고 있는데, 북(조선)이 취할 수 있는 최대의 강경책은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를 선언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함으로써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가 동시에 붕괴되는 악몽의 시나리오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워싱턴에 있는 전략국제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조엘 위트(Joel S. Wit)가 『뉴욕 타임스』 2002년 10월 19일자 기고문에서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만일 북(조선)이 핵무기로 무장하는 경우, 남(한국)과 일본도 핵무기로 무장하겠다는 압력을 받게 됨으로써 전세계적인 핵확산금지체제(global nonproliferation regime)가 훼손될 것이다. 조엘 위트는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핵무기로 무장하는 경우를 논하였지만, 이 글에서 나는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로 전제하고,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핵확산금지체제가 붕괴되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까지 서술한 내용은 웬만한 정보와 판단력을 갖고 있으면 대체로 이해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미국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조·미 정치협상에서 비공개적으로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비공개적으로 인정하였다고 해서 핵확산금지체제가 붕괴될 위험성은 없을 터인데도, 미국은 비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만일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에서 비공개적으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인정하면,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대응할 마지막 수단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 북(조선)의 '핵의혹'은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수세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미국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대항수단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끝내 감추면서,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대항하려는 목적에 따라 북(조선)이 핵무기를 비밀스럽게 개발하고 있다는 '핵의혹'을 날조·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에게 남아있는 최후의 대항수단인 '핵의혹'의 허구에 매달려 있고, 북(조선)은 정치공세를 퍼부으면서 그 마지막 대항수단마저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의 눈앞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조·미 '핵의혹' 공방전의 실상이다.

 

(4) 2002년의 '핵의혹' 공방전에서 부시 정부가 자행한 왜곡과 날조

 

부시 정부는 이번에 또 다시 마지막 대항수단에 의존하여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맞서보려고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였다. 구체적으로, 부시 정부는 마지막 대항수단을 어떻게 사용하였을까? 지난 시기 클린턴 정부는 플루토늄에 관련한 '핵의혹'의 허구를 마지막 대항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에 비하여, 이번에 부시 정부는 농축우라늄에 관련한 '핵의혹'의 허구를 마지막 대항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하였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8일자 보도를 살펴보면,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이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의혹에 관련한 '증거자료'로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만드는데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을 많이 반입하였다는 '정보'다. 『요미우리신붕』 2002년 10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미 정치협상에서 제임스 켈리는 파키스탄으로부터 북(조선)으로 반입된 농축우라늄 관련물품에 관한 영수증 및 통관서류를 제시하였다고 한다. 둘째, 북(조선)이 우라늄 농축에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다. 이것은 미국의 첩보위성 및 첩보기에서 입수한 '의혹지점'에 대한 영상정보를 뜻한다.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증거자료'들은 2002년 10월 4일 평양에서 있었던 조·미 정치협상에서 제임스 켈리에 의하여 대항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켈리가 나중에 언론에 공개한 내용을 종합하면, 그는 대항수단을 이렇게 사용하였다. "미국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농축우라늄 제조 계획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계획이 시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자료가 여기 있다. 그 계획을 폐기하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시 정부가 내놓은 북(조선)의 '핵의혹'에 관한 '증거자료'라는 것은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핵의혹'에 관한 '증거자료'를 왜곡·날조하였음을 밝힌다.

첫째,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으로부터 철저하게 감시를 받고 있는 북(조선)이 과연 미국의 정보망에 노출되리라는 것도 모르고 버젓이 '의혹을 살만한 행동'을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많은 양의 고강도 알루미늄을 다른 나라에서 반입하는 것은 미국의 정보망이 쉽게 포착할 수 있는데, 북(조선)은 그 반입이 미국에게 포착되리라는 것을 미처 몰랐을까?

『워싱턴 타임스』2002년 10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은 1999년에 북(조선)의 무역회사가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물품을 일본 회사에 주문했다는 정보를 파악함으로써 북(조선)이 초기 단계의 농축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일본 회사의 판매가 미국에 의해서 중단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3년 전에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이 파악했다는 그 '정보'도 역시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서 날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설령 3년 전의 그 정보를 사실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북(조선)이 올해 또 다시 농축우라늄 제조에 관한 물품을 제3국에서 통관절차를 밟아서 수입하는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는 부시 정부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부시 정부는 농축우라늄 제조를 위한 물품이 아니라 일반 산업용 물품을 정상적으로 수입한 것을 농축우라늄 물품을 제조하기 위한 물품을 반입한 것으로 왜곡하였던 것이다.

둘째, 미국의 첩보위성과 첩보기가 24시간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정찰의 눈초리를 번득이고 있는 조건에서 북(조선)이 우라늄 농축시설로 의심받을 수 있는 지상시설을 버젓이 착공하였을까?  

미국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비확산문제 연구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전문가 존 월프스털(Jon Wolfsthal)은 우라늄 농축시설인 가스원심분리시설들(gas-centrifuge facilities)은 크지 않고 높은 열을 발생하지도 않으므로 얼마든지 지하에 건설할 수 있다고 한다. 우라늄 농축은 소규모 지하시설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중요한 군사시설을 지하에 건설한 북(조선)이 만일 우라늄 농축시설을 세우려 하였다면 지상에서 착공하였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미국의 주장에 따르면, 북(조선)은 이번에 지상시설을 버젓이 착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미국의 정찰 아래 있다는 사실을 잠깐 망각했던 북(조선)의 실수였을까? 부시 정부는 일반 산업용 건축공사현장을 촬영한 영상자료를 우라늄 농축에 관련된 시설이라고 왜곡하였던 것이다.

위의 내용을 종합해볼 때, 미국이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의혹을 부각시키면서 이른바 '증거자료'로 제시했다는 것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다.

북(조선)이 고강도 알루미늄을 반입하려다가 미국의 정보망에 노출되었다는 것, 그리고 우라늄 농축시설로 의심받을 수 있는 지상시설을 착공하여 미국의 첩보위성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부시 정부가 언론에 흘린 것은 평범한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함으로써 또 하나의 '핵의혹'을 날조한 행위다. 부시 정부는 처음 맞붙게 되는 '핵의혹' 공방전에서 북(조선)의 강력한 정치공세에 대항할만한 적절한 수단을 갖지 못해 고심한 나머지, 자기들의 감시정보와 정찰정보를 왜곡하여 또 하나 새로운 '핵의혹'을 날조해낸 것이다.

 

(5) 올해 '핵의혹' 공방전은 두 차례 있었다

 

여기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올해 '핵의혹' 공방전은 미국이 먼저 공세를 취함으로써 시작된 것이지, 미국이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대응한 것이 아닌데, 어째서 미국의 '핵의혹' 날조·유포를 북(조선)의 정치공세에 맞서려는 대항전술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에 앞서서, 조·미 사이의 '핵의혹' 공방전은 이번에 부시 정부에 의해서 처음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핵의혹' 공방전은 이미 1993년 클린턴 정부에 의해서 시작되어 9년 동안이나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대결의 연속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에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하는 것 자체가 북(조선)이 부시 정부에게 강력한 정치공세를 가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클린턴 정부가 조·미 관계를 결정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조치들을 북(조선)과 합의해놓고 퇴장하였으므로, 부시 정부가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하는 것은 그 합의된 조치들을 이행하여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지난 시기 클린턴 정부와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전술적 승리를 얻으면서 조·미 관계개선을 위하여 마련해놓았던 조치들을 무시하고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미 정치협상 재개를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 부시 정부는 이번에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하면 북(조선)의 '핵의혹'을 대항수단으로 들고 나오면서 북(조선)의 강력한 정치공세에 대응하려고 타산하였다.

올해 '핵의혹' 공방전은 두 차례 있었다. 제1차 '핵의혹' 공방전은 9월 17일 평양에서 열렸던 조·일 정상회담에서 있었다.

부시 정부는 제1차 '핵의혹' 공방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선 일본 정부에게 북(조선)이 농축우라늄을 만드는데 쓰이는 물품을 사들였다는 이른바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 시점은 지난 8월 하순이었다. 『마이니치신붕』 2002년 10월 22일자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27일 일본을 방문하였던 미국 국무차관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는 총리 관저에서 고이즈미를 만나 북(조선)의 '핵의혹'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조·일 정상회담 준비에 관한 미·일 전략협의가 진행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북(조선)의 '핵의혹'은 조·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직전인 지난 9월 12일 뉴욕에서 30분 동안 열렸던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거론되었다. 그 회담에서 부시는 고이즈미에게 조·일 정상회담에 나가면 북(조선)의 '핵의혹'을 제기하라고 요구하였다. 일본 언론들이 부시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2002년 10월 22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부시는 고이즈미에게 "북(조선)의 '핵의혹'을 너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형태로 핵무기 개발의 동결을 유지하도록 북(조선)에게 강력히 요구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고이즈미는 부시의 요청에 따라 조·일 정상회담에서 북(조선)의 '핵의혹'을 거론하였다.

일본 정부당국이 언론에 공개한 조·일 정상회담의 논의내용을 보면, 조·일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는 북(조선)이 '핵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합의, 한(조선)반도 비핵화공동선언, 조·미 기본합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일 관계소식통을 인용한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그러한 고이즈미의 발언에 대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문제'는 일본과는 무관한 것이며, 조·미 사이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핵문제'는 조·미 사이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일본은 주제넘게 끼여들지 말라는 뜻이다. 할 말을 잃은 고이즈미가 핵전쟁 능력에서는 미국이 북(조선)보다 훨씬 우세하다고 말하면서 핵사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전쟁 능력에서 미국이 우위인지 북(조선)이 우위인지는 실제로 핵전쟁을 해보아야 안다고 말했다.

부시의 요구대로 허위정보를 가지고 조·일 정상회담에 나섰던 고이즈미는 '핵의혹'에 관하여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9일자에 보도되었던 제1차 '핵의혹' 공방전에 대한 미국 언론의 관전평에 따르면, 고이즈미는 미국이 전달해준 '핵의혹'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조·일 정상회담에 나섰지만 그 문제를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실패하였다고 한다.

제2차 '핵의혹' 공방전은 10월 3일부터 5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조·미 정치협상에서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제2차 공방전도 역시 미국의 완패로 끝났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20일자 기사에 나온 흥미로운 표현을 빌리면,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을 흉내내고 있었던 조지 부시의 향후 진로는 북(조선)에 의해서 가로막힌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미 정치협상에서 강석주 제1부상은 제임스 켈리에게 "단호하고 공세적으로(assertive, aggressive)" 발언했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 2002년 10월 16일자는 부시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강석주 제1부상의 태도가 "호전적(belligerent)"이었다고 보도했다.

그 동안 미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국)의 언론들이 매우 산만하게 보도하였던 내용을 종합하면, 이번에 조·미 정치협상에서 강석주 제1부상이 켈리에게 단호하고 공세적으로 발언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밑그림으로 재구성된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를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했다. 미국 군대는 조선반도에 배치되어 있다. 부시 정부가 미국의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나 테러조직에 대해서 선제공격을 가한다는 새로운 안보전략을 발표한 것은 결국 우리에게 선제공격을 가하겠다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조·미 공동성명과 조·미 기본합의를 위반하고 우리에 대한 적대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다. 미국이 조·미 공동성명과 조·미 기본합의를 위반하였으므로 우리도 핵확산금지조약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 우리는 미국의 핵전쟁 위협에 대응하여 핵무기는 물론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갖게 되어 있다. 만일 미국이 남조선과 일본을 끌어들여 우리와 전쟁을 하려 한다면, 우리도 준비가 되어 있다."

위의 재구성한 내용은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미국과 일본의 언론에게 흘려줌으로써 여기저기 산만하게 보도되었던 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내용은 북(조선)이 추구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대미전략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북(조선)은 부시 정부가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둘째, 조·미 기본합의문은,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핵의혹'에 대한 최후의 안전판이고,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조치다. 그런데 북(조선)은 부시 정부가 그러한 조·미 기본합의문을 위반하였음을 밝혔다.

셋째, 북(조선)은 조·미 기본합의문의 무효화는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에 남아있어야 할 근거를 제거하는 것임을 지적하면서,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였다.

넷째, 북(조선)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기 않는 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정당한 주권행사임을 밝혔다.

다섯째, 북(조선)은 미국의 침략전쟁전략에 대해서 해방전쟁전략으로 맞서고 있다는 '주체의 전쟁관'을 다시 한번 명백하게 천명하였다.

 

(6) 부시 정부를 충격에 빠뜨린 것

 

이번에 열린 조·미 정치협상에서 부시 정부는 북(조선)으로부터 불의의 타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켈리가 나중에 언론에 공개한 내용을 보면, 강석주 제1부상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자 부시 정부는 경악과 충격에 빠졌다는 것이다. 부시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시인은 "입을 다물지 못하는 충격(jaw-dropper)"이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이 2002년 10월 17일자 기사에서 표현한 대로, "미국은 북한의 도전적인 태도에 내심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강석주 제1부상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는 부시 정부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강석주 제1부상은 켈리와의 협상에서 "우리는 미국의 핵전쟁 위협에 대응하여 핵무기는 물론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갖게 되어 있다."는 내용으로 말하였지, 켈리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추궁한 데 대해서 시인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핵전쟁 위협에 대응하여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이 당당한 주권행사임을 밝히는 것과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런데도 부시 정부는 핵무기의 보유가 주권행사라는 사실을 밝힌 것을 두고 농축우라늄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시인한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였던 것이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발언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것도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는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시인한 발언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제임스 켈리 같은 고위관리들이 자신의 입으로 북(조선)이 소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였으며,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이 자기들의 정보평가내용을 종합·정리하여 2002년 1월에 발표한 「국가정보보고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에서도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부시 정부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시인발언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조선)은 농축우라늄을 가지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을 해명할 필요도 없으며, 시인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북(조선)은 미국의 핵전쟁 위협에 대응하여 핵무기는 물론 그것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갖게 되어 있다는 주권행사의 문제를 확인해주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였다는 부시 정부의 주장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며, 부시 정부가 그 시인 발언에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미국은 다른 데서 충격을 받았다. 부시 정부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미국이 조·미 공동성명과 조·미 기본합의를 위반하였으므로 우리도 핵확산금지조약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부시 정부의 "오만무례한 처사"를 질타하였던 강석주 제1부상의 초강경한 공세적 발언이었다. 미국은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그 발언을 듣고 경악과 충격에 빠졌던 것이다.

그런데 북(조선)과의 정치협상에 부시 정부의 대표로 참석했던 제임스 켈리는,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발언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하였다는 왜곡된 주장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그에 따라서 모든 언론들은 조·미 정치협상에서 제임스 켈리가 북(조선)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에 쓰이는 물품을 제3국으로부터 반입하였다는 '증거자료'를 내놓자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인한 것으로 잘못 보도하고 있으며, 부시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북(조선) 협상대표의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잘못 보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금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인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던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20일자 기사 따위가 그것이다. 모든 언론의 논조는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북(조선)의 협상대표가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발언에서 충격을 받은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모든 언론들과 분석가들은 그 왜곡된 발표내용을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으며, 따라서 조·미 정치협상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의 강력한 정치공세를 받고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부시 정부의 언론공작이다.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핵의혹'을 추궁하기 위해서 제임스 켈리를 평양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보도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제임스 켈리가 '증거자료'를 내놓으면 북(조선)의 협상대표가 부인할 것으로 예상하고 협상전술을 수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시 정부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으며 협상전술은 파탄되고 말았다.

부시 정부의 협상전술이 그렇게 파탄되었던 원인은, 부시 정부가 나중에 왜곡하여 발표하였던 대로 북(조선)의 협상대표가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의혹을 시인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였기 때문이다.

북(조선)이 미국과의 정치협상에서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발언은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사안이므로 강석주 제1부상의 발언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 사안에 대한 결정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다. 『요미우리신붕』 2002년 10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조·미 정치협상에서 강석주 제1부상은 약 1시간 동안 회담장을 떠났다가 다시 와서 회담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강석주 제1부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서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초강경 정치공세로 미국의 협상대표를 경악과 충격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왜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초강경 정치공세를 강석주 제1부상에게 지시하였을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정치과업의 수행정형을 언제나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에 의하여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이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인정하고 이행하는가 혹은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가 정치협상의 평가기준으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시 정부는 등장한 이후에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인정하기는커녕 관계개선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인을 조성하며 관계개선을 방해하였다. 지난 시기 클린턴 정부와의 어렵고 힘든 정치협상을 통해서 거의 완성단계에 접근하였던 관계개선의 추세를 정체상태에 빠뜨린 것이다. 조엘 위트가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19일자 기고문에서 지적한 대로, 부시 정부는 조·미 대화나 조·미 기본합의 이행에 대해서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시 정부가 등장한 이후 계속 정체상태에 빠져있는 조·미 관계개선의 정치과업을 언제까지나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시 정부와의 첫 정치협상에서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초강경 정치공세로 타격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7) 북(조선)의 '놀라운 제안'은 무엇일까?

 

2002년 10월의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를 예고하는 초강경 정치공세에 의해서 경악과 충격에 빠져들었던 미국의 협상대표는 연이어 또 한 차례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북(조선)이 충격적인 제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워싱턴에 돌아간 켈리의 보고를 통해서 북(조선)의 제안을 전달받았던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교소식통의 말에 따르면, 켈리 특사는 북(조선)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을 받았으며 그가 워싱턴으로 돌아가서 그 제안을 보고하자 미국 정부 안에서는 큰 논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북(조선)은 부시 정부에게 충격적인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연속하여 강타를 날린 셈이다.

제임스 켈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부시 정부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북(조선)의 제안은 무엇일까? 그 제안에 관해서는 조·미 두 나라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아서 전모를 파악할 길이 없으나, 당시 강석주 제1부상이 제임스 켈리에게 발언하였던 것으로 언론에 공개된 내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우리 정부를 인정하며,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려 하면 우리도 미국의 '우려사안'을 해결하려 한다."

제임스 켈리가 서울에서의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을 인용한 『워싱턴 포스트』 2002년 10월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이 미국에 제안한 것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과 북(조선) 정부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북(조선)의 자주권을 존중하라는 요구라고 볼 수 있다.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적대정책을 포기하라는 요구에 대한 법적 담보라고 이해된다.

따라서 북(조선)의 협상대표가 제임스 켈리에게 요구하였던 적대정책 포기와 자주권 존중은 1993년 6월에 북(조선)이 천명하고 클린턴 정부가 합의하여 조·미 공동성명으로 발표하였던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 가운데 제1원칙과 제2원칙을 다시 제시한 것이다.

부시 정부와의 첫 번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은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 가운데 두 개의 원칙을 제안하였고, 한(조선)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는 제3의 원칙은 언급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10월 25일에 발표된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는 조금 다른 내용이 들어있다. 그 담화는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의 협상대표는 "미국이 첫째로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둘째로 불가침을 확약하며, 셋째로 우리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명백히 밝혀주었다."고 밝혔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제임스 켈리의 발언과 북(조선) 외무성 대변인의 담화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기 위한 3대 조건과 조·미 관계를 개선하는 3대 원칙을 구분하는 문제다.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은 이 글의 앞부분에서 논술하였다.

이번에 북(조선)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하여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이 아니라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는 3대 조건을 제시하였다. 북(조선)은 앞으로 3대 조건 위에서 정치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명백하게 천명한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미국이 그 3대 조건을 받아들지 않으면 조·미 정치협상은 계속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조선)이 10월 25일의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밝혔던 대로, 미국이 북(조선)의 자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기 위한 조건이며 동시에 조·미 관계개선의 제2원칙인 자주권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이다. 이것은 북(조선)이 자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상대와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백하게 제시한 것이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제안하였던 조·미 사이에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것도 역시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기 위한 조건이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기존의 조·미 평화협정 체결제안을 조·미 상호불가침조약 체결제안으로 대체한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미국이 북(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것을 불가침조약 체결로 담보하는 것은 조·미 정치협상을 추진하는 조건이고,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조·미 관계개선의 제1원칙인 적대정책 포기의 원칙을 법적으로 담보하는 것이다.

1994년 4월 28일 북(조선)이 외교부 성명으로 발표했던 조·미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자는 제안과 1996년 2월 22일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하여 조·미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서 조·미 잠정협정을 체결하고 조·미 공동군사기구를 조직·운영하자는 제안은 이번에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으로 나왔다. 2002년에 제안한 조·미 불가침조약과 1996년에 제안한 조·미 잠정협정은 동일한 것이다.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은 조·미 평화협정 체결의 선행단계라고 볼 수 있다. 북(조선)은 조·미 평화협정 체결을 조·미 관계개선의 원칙을 실현하는 법적 담보로 견지하면서 변함없이 추구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제시되었던 북(조선)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철폐하는 것을 뜻한다. 1999년 9월 17일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조치 일부를 완화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형식적인 행위였으며 경제제재조치의 실체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번에 북(조선)은 조·미 정치협상은 미국이 북(조선)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조성하지 않는 조건에서"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지적하였다.

미국이 북(조선)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미국이 북(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조건에서 조·미 정치협상이 추진된다면,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결정적 국면이 열리게 될 것이고, 결국 미국은 북(조선)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로써 1993년 6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에게 제시하였던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 가운데서 두 개의 원칙이 실현될 것이며, 그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되고 조·미 국교가 수립될 것이다.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조·미 사이에서는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하는 조·미 관계개선 제3원칙이 실현되는 것이다.  

10월 25일의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미국이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면 북(조선)이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미국의 안보상 우려'라는 표현은 부시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우려사안'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북(조선)이 미국의 '우려사안'을 어떻게 해결하겠다고 제안하였을까? 『연합뉴스』 2002년 10월 17일자에 보도된 외교소식통의 해석에 따르면, 미국이 북(조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북(조선)은 핵사찰을 수용하고,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고, 재래식 군사력을 감축하겠다고 제안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보면, 강석주 제1부상이 제임스 켈리에게 제안하였던 충격적인 제안은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일괄타결안이라고 생각된다. 외교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한 『연합뉴스』 2002년 10월 17일자 기사는 이번에 열린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은 조·미 두 나라의 모든 현안을 포괄하는 일괄타결을 역제의했다고 보도하였다.

언론에 산만하게 보도된 북(조선)의 '놀라운 제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경우, 북(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핵사찰을 수용하고,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고, 재래식 군사력을 감축한다는 것이다.

 

(8) 정세는 근본문제의 일괄타결을 요구하고 있다

 

북(조선)의 '충격적인 제안'은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명백하게 밝혀준 것이다. 그 제안은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우려사안' 해결요구와 북(조선)이 제기하고 있는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 실현요구를 서로 맞바꾸는 일괄타결이 그것이다.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를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북(조선)이 이번에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며, 이미 오래 전에 제시했던 것이다. 또한 근본문제에 대한 일괄타결안은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오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로 일했던 리처드 아미티지는 1999년 3월 4일 연방하원 의장 벤저민 길먼에게 제출한 「아미티지 보고서(A Comprehensive Approach to North Korea)」에서 조·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포괄적 종합안(comprehensive package)'을 제시하면서 "북(조선)이 미국의 안보관심사를 충족시켜준다면 미국은 완전한 관계정상화(국교수립을 뜻함-옮긴이)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일괄타결안을 제기하였던 리처드 아미티지는 지금 부시 정부의 한(조선)반도 정책 수행을 총지휘하는 국무차관으로 있다.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는 '우려사안'과 3대 원칙 실현을 서로 맞바꾸는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해결방식이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데도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북(조선)의 제안을 외면하면서, 북(조선)이 핵문제에 관한 협정들을 위반하였으므로 먼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여야 정치협상이 계속될 수 있다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제임스 켈리는 지난 10월 19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북(조선)으로부터 일괄타결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제안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북(조선)과의 협상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북(조선)이 먼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청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한 미국 국무부는 지난 10월 16일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서 "북(조선)의 비밀 핵무기 계획은 조·미 기본합의, 핵확산금지조약,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합의, 한(조선)반도의 비핵화 공동선언 등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조약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고, 증명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핵무기 계획을 폐기할 것을 촉구"하며,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평화적인 해결을 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부시 정부의 생각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지금 부시 정부는 겉으로는 북(조선)에게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핵확산금지체제를 위협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만일 부시 정부가 북(조선)이 제시한 조·미 정치협상 재개의 3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북(조선)은 핵확산금지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초강경 정치공세로 부시 정부를 계속 압박하면서 정치적 곤경에 몰아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핵확산금지체제와 미·일 동맹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부시 정부는 겉으로는 북(조선)의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하라는 공허한 요구를 되풀이하며 맞서겠지만, 결국에는 1993년에 조·미 사이에서 합의한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인정하고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조·미 정상회담에서 가능하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조·미 사이에 얽혀있는 근본문제들을 일괄타결방식으로 해결하는 조·미 정상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조선을 방문할 경우 환영할 용의가 있으나, 미국의 새 정부가 적대정책을 취할 경우 조선은 그에 상응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아사히신붕』 2001년 1월 22일자에 보도된 이 발언은, 2001년 1월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중 정상회담에서 장쩌민 주석에게 밝힌 대미정책의 기본입장이다.

지금 부시 정부는 조·미 정상회담에 나서서 근본문제를 일괄타결할 것인가 아니면 핵확산금지체제의 붕괴로 파국을 맞을 것인가를 택해야 하는 2003년의 갈림길에 차츰 밀려가고 있다. 2003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에게 조·미 관계개선 3대 원칙을 제시한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2002년 10월 3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