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 정치협상과 북(조선)의 '핵문제'

이 글은 일본 도쿄에 있는 조국평화통일협회의 강민화 홍보국장이 보내온 질문에 대하여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이 응답하는 대담록으로 작성되었다. 이 대담은 일본에 있는 '통일코리아 연구소'의 의뢰로 이루어진 것이다.

<차례>

1. 북(조선)의 '핵개발계획 시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2. 조·일 관계와 북(조선)의 '핵문제'

3. 조국통일정세를 논한다

1. 북(조선)의 '핵개발계획 시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강민화: 미 국무부는 10월 16일 성명을 통해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차관보와의 회담에서 북(조선)측이 핵개발계획을 시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북(조선)이 핵개발계획을 시인했다고 하는 것은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이며, 아직까지 북(조선)은 그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째든 미국은 물론 남(한국)과 일본에서는 이에 대해서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사실관계의 파악과 함께 북측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가를 놓고 여러 가지 주장이 나와 있습니다. 소장님은 이번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한호석: 저는 그 동안 집필활동과 강연활동을 통해서 2003년이라는 시점이 매우 중대한 전환기가 되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2003년은 조·미 관계의 최대 현안인 '핵문제'와 '미사일문제'가 근본적인 해결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는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전략균형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시한폭탄의 뇌관'으로 비유될 수 있는데, 그 뇌관을 잘못 건드리면 대폭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핵문제'와 '미사일문제'가 한(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전략균형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지금까지 50년 이상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배치하고 있는 군사력이 북(조선)의 대량파괴무기에 의해서 전략적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주한미군을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력으로 배치해 왔는데, 북(조선)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전략균형이 깨져나가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할 존재근거가 소멸되는 것이지요. 제가 언제나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의 본질은 핵무기와 미사일이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문제라는 사실을 이 대담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시한폭탄의 뇌관'을 처리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부시 정부가 취해왔던 기본태도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뇌관'을 못 본 척하였습니다. 그것은 '시한폭탄의 뇌관'이 2003년에 폭발하도록 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정책인 것입니다.

이번에 부시 정부가 등장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특사 제임스 켈리를 평양에 파견하였을 때, 켈리는 북(조선)의 '핵문제', '미사일문제'와 관련하여 진지하게 협상하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켈리는 정치협상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인위적인 장애요소를 협상탁자에 늘어놓으면서 상대방에게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려 했던 것이지요. 부시 정부는 북(조선)과의 정치협상에서 이른바 '우려사안'을 늘어놓고 2003년이라는 '거대한 시한폭탄의 뇌관'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어영부영 2003년의 '뇌관'을 피해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협상전술은 이미 클린턴 정부 시기에 완전한 실패로 입증된 것이었는데도, 오만한 부시 정부는 그 실패의 전철을 또 밟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부시 정부가 왜 그러한 실패의 전철을 다시 밟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제가 지난 10월 10일에 발표한 논문에서 지적하였듯이, 지금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두 패로 갈라져서 고질적인 파쟁에 빠져있습니다. 협상파와 대결파의 파쟁 때문에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중심을 잡을 수 없는 형편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어렵사리 성사된 조·미 정치협상에서 부시 정부는 실책을 범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시정책은 이제 한계점이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닙니다.

북(조선)은 부시 정부가 고질적 파쟁에 휘말려서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처리하기는커녕 시간만 질질 끌면서 2003년을 넘기려 한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부시 정부에 대한 북(조선)의 대응은 역시 선제공세에 의한 강공책이었습니다.

미국이 전혀 예상치 못한 강공을 퍼부으면서 미국을 벼랑끝으로 밀어부치는 협상전술은 이미 1993년의 핵확산금지조약 전격 탈퇴로부터 1998년의 '금창리사건'까지 6년 동안 클린턴 정부와의 정치·군사적 대결에서 북(조선)이 취했던 주효한 전법이었습니다. 바로 그 강공책에 녹아 났던 클린턴 정부는 결국 2000년 하반기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거의 개최하게 된 결정적인 지점에까지 끌려나왔던 것입니다.

이번에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는 것은 북(조선)이 그 강공책을 취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직 협상준비가 미흡한 부시 정부에게 강력한 선제공세를 퍼부으면서 벼랑끝으로 밀어부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는 것은 부시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부시 정부가 그 발표내용을 날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일 부시 정부가 그러한 중대한 사실을 일방적으로 날조하여 발표한다면 그것은 조·미 관계를 완전히 파탄에 빠뜨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부시 정부는 조·미 관계를 완전히 파탄시킬 만큼 대담한 정책을 추진하지 못합니다.

켈리를 평양에 파견하기 전까지 부시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은 정세를 매우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왜 안이하게 판단하였는가 하면, 북(조선)이 남북관계의 개선, 조·일 정상회담 개최,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치 등 일련의 과정에서 괄목할만한 조치들을 취하였는데, 부시 정부는 그 조치들이 미국에 대한 유화책 또는 북(조선)이 변화하려는 노력이라고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의 본심이 무엇인지를 읽지 못한 채, 안이한 태도로 제임스 켈리를 평양에 파견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북(조선)은 부시 정부가 조·미 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이 없이 오만한 무시정책으로 일관하면서 시간이나 질질 끌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오래 전에 간파하고 제임스 켈리가 평양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켈리의 입에서 이른바 '우려사안'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북(조선)은 강한 반격을 가했습니다.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핵무기를 비밀스럽게 개발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어 충격을 받은 게 아닙니다. 부시 정부가 충격을 받은 것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협상 자리에서 시인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것은 미국이 전혀 예상치 못한 강공책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클린턴 정부를 조·미 정상회담에로 끌어내려고 하였던 바로 그 강공책이 자기들에게도 취해지고 있는 것을 직감하는 순간, 부시 정부는 일종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면서 갈팡질팡하였습니다.

클린턴 정부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북(조선)이 핵무기를 이미 오래 전에 개발하여 실전배치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이 불러일으키는 정치·군사적 파장이 너무나 커서 그 정보를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2000년 1월에 발표한 장문의 논문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북(조선)의 대응핵전략』에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논증한 바 있습니다.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있는 부시 정부는 지금 북(조선)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강공을 받으면서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리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는 최근 쿠웨이트,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연이어 터지고 있는 폭탄테러공격, 워싱턴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저격사건 등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에게는 매우 불리한 시점입니다.

강: 이번 발표가 있기 전에 특히 일본에서는 북(조선)이 미국의 강경책 앞에서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타협을 택했다고 논평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 어긋나게 북(조선)은 핵개발계획을 시인했을 뿐 아니라, "더 강력한 무기도 있다"(강석주 제1부상)고 밝힘으로써 미국에 대해서 강경한 태도를 표시했습니다. 이것은 북(조선)이 미국에 대해서 일관하게 "대화에는 대화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대응하겠다고 표명해온 것을 실천하려는 의사표시로 생각되는데, 소장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한: 조·미 정치협상에는 북(조선)의 외무성 고위관리들이 나오지만, 그 협상의 전과정을 전략·전술적으로 지휘하는 총지휘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입니다. 이번에 켈리의 평양방문으로 성사된 부시 정부 최초의 조·미 정치협상에서 첫날 협상에 나선 것은 김계관 부상이었습니다. 첫날 협상에서 켈리가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 비밀계획을 '압박카드'로 꺼내들면서 매우 오만하게 나오자 김계관 부상은 북(조선)이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전면 부인하였습니다.

켈리가 조·미 정치협상에서 핵무기 개발 비밀계획이라는 '압박카드'를 꺼내들고 압박하면 북(조선)은 그에 대해서 부인할 것이고, 따라서 압박하는 미국과 압박을 부인하는 북(조선) 사이에는 공세와 수세의 관계가 조성될 것이며, 그러한 정치공방을 지루하게 지속하면서 2003년을 말싸움으로 넘기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켈리를 평양에 파견한 부시 정부 정책결정권자들의 타산이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미 정치협상 첫날에 드러난 부시 정부의 협상전술을 꿰뚫어보고, 이튿날에는 협상대표의 급을 한 급 높여 강석주 제1부상을 참석시켜 켈리를 상대하도록 비상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오만하게 꺼내들고 있는 '압박카드'를 무력화시키고 상대를 완전히 압도하는 대담한 강공을 퍼부으라고 지시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더 강력한 무기도 있다"는 강석주 제1부상의 말입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핵무기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도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워싱턴과 도쿄를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넣은 그 폭탄선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전격적으로 취해진 메가톤급 정치공세입니다. 그 말은 북(조선)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전제하는 발언이며, 한 발 더 나아가서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지금 언론을 살펴보면,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치적인 해석인데, 군민일치의 강한 단결력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석주-켈리의 긴장된 정치협상에서 핵문제를 심각하게 논하고 있을 때, 강석주 제1부상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문제가 아닌 군민일치의 문제를 갑자기 꺼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는 군사적인 해석인데, 핵무기보다 강력한 수소폭탄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수소폭탄은 플루토늄 핵무기와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모두 보유하고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초강력 전략무기인데, 이미 플루토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조선)이 이번에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수소폭탄도 제조하였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에 따르면, 플루토늄 핵무기보다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 더 쉽다고 합니다. 플루토늄 핵무기를 개발하여 실전배치한 북(조선)이 그것보다 더 만들기 쉬운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아직까지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북(조선)의 경공업기술이 뒤떨어져 있다고 해서, 군사과학기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파키스탄 같은 나라도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만들어냈는데, 파키스탄 보다 훨씬 발전된 군사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북(조선)이 왜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만들어내지 못했겠습니까? 따라서 북(조선)은 플루토늄 핵무기와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만들었으며, 그 동안 수소폭탄 개발에도 힘써왔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플루토늄 핵무기와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를 제조하는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북(조선)이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것은 손쉬운 일일 것입니다.

강: 미국은 이번 문제로 북(조선)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은 거짓말이었으며,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고 하고 있는데, 그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ː핵무기는 매우 강력한 군사공격의 수단이며 동시에 매우 강력한 정치공세의 수단입니다. 북(조선)의 핵무기는 미국에 대한 매우 강력한 정치공세의 수단입니다. 핵무기를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전법이 동원됩니다. 상대를 속여넘기는 기만전술도 거기에 포함됩니다.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의 기만전술에 속아넘어가서 북(조선)과의 정치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1994년 10월에 제네바에서 조·미 기본합의서를 체결할 때, 이미 북(조선)은 핵무기를 계속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으로 기만당하고 정치협상에 나섰고 결국 조·미 기본합의서를 채택하였던 것입니다.

조·미 기본합의서를 체결할 때,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에게 "미국은 조선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보장을 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전형적인 기만전술이었습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북(조선)을 위협하지 않겠으며,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공식문서에 합의해놓고 나서도, 클린턴 정부는 선제핵공격으로 북(조선)을 멸망시키려는 가공할 전략훈련을 계속하였습니다.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속고 속이는 기만전술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적대관계에서 상대를 속이는 기만전술은 불가피합니다. 문제는 그 기만전술로 어떻게 상대의 허를 찌르고 승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 사이에서 기만전술을 서로 동원하는 치열한 대결이 계속되는데, 제3자가 왜 자꾸 상대를 속이려 하는가 하는 도덕적 양심의 문제로 그 문제에 접근하려는 것은 바보의 논리입니다. 북(조선)은 미국을 속이고 있고, 미국도 북(조선)을 속이고 있습니다. 기만전술과 기만전술의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적을 속여서 궁지에 빠뜨리는 기만전술에 있어서 북(조선)은 미국보다 월등하게 우위에 있습니다.

조·미 기본합의서 제3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쌍방은 핵없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힘쓴다." 그런데 이 제3항을 위반한 당사자는 그 문항을 합의하여 채택한 쌍방입니다. 미국은 "미국은 조선에 대한 핵무기 불위협 또는 불사용에 관한 공식보장을 한다"는 조항을 위반하였고, 북(조선)은 "조선은 조선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처를 일관성 있게 취한다"는 조항을 위반하였습니다. 아니 위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불이행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합니다. 북(조선)이 남북 사이에 채택된 비핵화공동선언을 위반하였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조선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처를 일관성 있게 취한다는 조·미 기본합의서를 위반한 것은 아닙니다. 그 조항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북(조선)이 왜 조·미 기본합의서를 위반하였는가 라는 말이 되지 않는 질문을 자꾸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왜 조·미 두 나라가 조·미 기본합의서 제3항을 이행하지 않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바꾸어서 현 사태의 본질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조·미 두 나라는 조·미 기본합의서를 채택한 뒤 8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 합의내용을 왜 이행하지 않는 것일까요? 대답은 명백하게 나옵니다. 그것은 조·미 적대관계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미 적대관계가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치적 합의도 상대를 속아 넘기는 기만전술에 이용될 수 있고, 합의서라는 것은 결국 한 장의 휴지 조각처럼 되어 사문화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우리는 이번에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조·미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근본원인은 무엇일까요? 근본원인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입니다. 미국이 겉으로는 정치협상을 하려는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적대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니까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꼬여만 가는 것입니다. 원인은 거기에 있습니다.

그 동안 북(조선)은 조·미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중대한 조치를 실천하였습니다. 남북관계와 조·일관계의 진전, 신의주 특별행정구 설치 등 굵직굵직한 조치들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부시 정부는 등장 이후에 무엇을 했습니까? '악의 축'이요, 핵태세보고서요, 선제공격전략 발표요 하면서 적대정책을 고집하면서 2003년의 '뇌관'을 피하려고 무시정책으로 일관하더니, 기껏해야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여 강압적인 태세로 나오는 부질없는 관행을 되풀이한 것뿐입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한 모든 책임은 적대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부시 정부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 미국은 지난 10월 16일 국무부 대변인의 발표를 통해서 "이제는 과감한 대북 접근법을 계속 추구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고, 부시도 "걱정스럽고 정신이 들게 하는 뉴스"라고 말하는 등 놀라움과 불쾌감을 표시하였습니다. 또 17일에는 국방장관 럼스펠드가 "이미 북조선은 소수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추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차원에서 군사행동을 밀어 부치고 있는 이라크 이상으로 북(조선)이 '위협'이고 '우려대상'일 것인데, 부시는 17일에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서 이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되겠습니까?

한: 미국은 전세계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가공할 전략무기를 무기고에 수없이 쌓아놓고 세계 곳곳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장본인이면서도 '평화'라는 구호를 가장 많이 외치고 있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평화'라는 말이나 '평화적 해결'이라는 말은 액면 그대로 믿지 말고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번에 백악관이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고 한 것은, 정치협상을 진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치협상이 아니라면 무력대결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부시 정부는 지금 이라크에 대한 무력대결을 추진하고 있는 막바지에 있습니다. 이라크와 전쟁을 하면서 북(조선)에 대해서 무력대결을 시도하는 것은 매우 무모한 짓이라는 사실을 부시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북(조선)에 대해서는 정치협상을 해야 합니다.

만일 이라크전쟁이 임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클린턴 정부 시기에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가 번번이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던 대북 무력위협 조치가 이번에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시 정부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시 정부의 선택의 여지는 역시 정치협상으로 좁혀집니다.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부시 정부는 이번에 정치협상에서 강압적인 태도로 나오면서 '시간끌기 작전'을 시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여지없이 파탄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미국에게 남아있는 길은 두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첫째,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속전속결로 종결하고 클린턴이 그 여세를 몰아 북(조선)에 대한 노골적인 무력위협을 시도하였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아들 부시가 이라크와의 전쟁을 속전속결로 종결하고 그 여세를 몰아 북(조선)에 대한 노골적인 무력위협을 재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이라크와의 전쟁이 부시 정부의 의도대로 순식간에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종결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라크와의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테러조직들이 전세계에서 들고일어나서 무차별적으로 미국인들과 미국의 시설을 테러공격으로 살상·파괴할 것입니다. 미국은 이라크전쟁이라는 가시적인 제1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전세계를 무대로 일어나는 테러공격에 대응하는, 불가시적인 제2전선에서도 전투를 벌여야 합니다. 미국의 침략전쟁에 대한 미국사회와 국제사회의 반대여론도 거세게 들끓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있었던 제1차 이라크전쟁에서도 미국은 완승을 거두지 못하고 서둘러 전쟁을 끝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테러공격에 의한 보이지 않는 제2전선이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고, 전선은 미국에게 더 불리하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지난 1993년과 1994년 클린턴 정부가 북(조선)에게 정치·군사적 대결을 집중하고 있을 때, 북(조선)은 김일성 주석의 서거와 '고난의 행군'이라는 힘겨운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오늘 북(조선)은 강성대국 건설의 구호를 따라 경제재건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6.15 공동선언 이후 한(조선)민족은 반미자주화와 조국통일의 기운을 드높이며 통일의 진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북(조선)은 1998년 8월 31일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백두산 1호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를 전세계에 입증하였습니다. 지금 백두산 2호 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하여 보류되고 있지만, 국방위원장의 결심에 따라 언제든지 무수단리의 우주발사대에 세울 수 있습니다.

2002년을 거의 마감하고 있는 오늘, 조·미 관계에서는 어느 것 하나도 부시 정부에게 유리한 조건은 없고 모두 불리한 조건들뿐입니다.

둘째, 부시 정부에게 남아있는 또 하나의 길은,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에 나서되 수세적인 입장에서 협상을 진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휘하였던 조·미 정치협상의 전술로 볼 때, 북(조선)은 수세적인 입장으로 밀려가는 미국에게 강공을 퍼부어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2003년을 넘기기 전에 아예 끝장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 저의 예상입니다.

지금 조·미 관계에서 어느 것 하나도 부시 정부에게 유리한 조건은 없고 불리한 조건들이 조성되어 있는 이러한 때에 우리 한(조선)민족이 총단결하여 부시 정부에게 정치적 맹공을 퍼부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한(조선)민족이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 아래 총단결하여 부시 정부에게 강력한 정치공세를 집중한다면, 부시 정부는 우리 민족을 괴롭혀온 적대정책을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위기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위기는 투쟁하는 사람에게만 기회로 됩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승리를 안겨줍니다. 한(조선)민족에게 그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강: 서울에 있는 저의 친구는 이번 일로 '찻잔 속의 태풍'이 일었다고 하면서, 미국의 움직임을 더 두고 봐야겠지만 조미 평화협정이 멀지 않았고 미국이 통일 프로세스에 편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소감을 말했습니다. 조미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보십니까?

한: 그런데 한 가지 지적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부시 정부가 북(조선)에게 제기한 '우려사안'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지만, 북(조선)이 부시 정부에게 제기한 정치적 사안이 무엇인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조·미 정치협상에 대해서 편파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 편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언론의 편파보도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며, 우리 나름대로 날카로운 시각을 세워서 실상에 접근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켈리가 제기한 '우려사안'보다 북(조선)이 제기한 사안이 더 중요합니다.

북(조선)이 미국에게 제기한 정치적 사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라는 것입니다.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는 주한미군 철수와 동의어입니다.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했는데 주한미군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것은 적대정책의 포기가 아닙니다. 적대정책을 포기했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느냐 철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위해서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한(조선)반도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위해서이므로,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당사자인 미국이 평화협정의 체결 당사자로 나서야 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정치과업이 무조건적이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정치과업도 무조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시 정부가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북(조선)도 그에 상응하여 군사분계선에 배치한 재래식 무력을 재배치하고 감축할 것입니다. 재래식 무력을 감축하는 문제는 이미 1994년 6월에 지미 카터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논의된 바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카터를 접견한 자리에서 당시 핵문제로 격화되었던 조·미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조치로서 주한미군을 철수하고 남북의 재래식 무력을 상호감축하는 문제를 거론하였습니다.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핵문제'는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문제이며, 동시에 남북의 재래식 무력을 감축하는 문제이며, 동시에 북(조선)이 제기하고 있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핵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 남북의 재래식 군사력을 상호감축하는 문제와 더불어 포괄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일괄타결 방식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길밖에 없습니다. 다른 해법은 제시될 수 없습니다. 이번에 다시 불거져 나온 '핵문제'는 결국 한(조선)반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핵심사안인 주한미군 철수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북(조선)은 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그토록 중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미국의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이 주한미군 주둔에 의해서 보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은 북(조선)에 대한 봉쇄력과 남(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동시에 상실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힘을 잃고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자주권을 완전히 되찾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남(한국)에 대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남(한국)의 자주권을 일정정도 제약하는 것뿐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남(한국)의 주권을 단순히 제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권을 장악하고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미국의 주권 장악과 지배권 행사가 가장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지점은 군사부문입니다. 지구 위의 그 어떤 나라도 남(한국)처럼 군사주권을 미국의 손에 고스란히 넘겨준 나라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정치부문에서도 남(한국)은 형식상 정치적 독립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입김에 따라 정계개편이 이루어지고 정권이 교체되고 있습니다. 남(한국)의 정치적 현실은 남(한국)의 정치권이 사실상 미국의 지배권 안에 놓여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경제부문에서 남(한국)의 경제체제가 구조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경제권 안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기서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한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군사, 정치, 경제부문에서 미국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하면, 북(조선)이 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서 그토록 완강하게 투쟁하고 있는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북(조선)은 남(한국)과 북(조선)이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된 유기체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한(조선)민족이라는 통일된 유기체의 한 부분이 미국의 지배권에 놓여있는 것을 단 하루도 용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자면, 주한미군은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된 유기체에 침투하여 유기체적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참을 수 없는 격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있는 악성박테리아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 악성박테리아를 퇴치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자주권 문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몸 속에 침투하여 유기체적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격심한 고통을 유발하고 있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재촉하는 무서운 질병이 골수에 들어 깊어지면 신경계의 기능이 자꾸 마비되면서 웬만한 고통은 느끼지 못하게 되는 병리학적 현상과 마찬가지의 불행한 현상이 사회역사적 현실 안에서도 일어나는 것이지요.

미국의 독점자본들이 남(한국)을 구조적으로 수탈하고, 주한미군 병사들이 남(한국)의 동포를 죽여도 미국에 대해서 항의 한 마디 하지 못하는 남(한국)의 정치권은 대미예속이라는 죽음의 질병이 골수에 깊이 들어 자주의식이 마비된 중환자입니다. 중환자가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병상에서 희미해져 가는 눈길로 바라보면, 북(조선)이 왜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미국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남(한국)의 민중은 중환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한(조선)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되찾으려는 자주민족의 구성원들입니다. 남(한국)의 민중은 북(조선)이 왜 모든 국력을 동원하여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미국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한국)의 민중 속에서 반미자주의식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줍니다.

2. 조·일 관계와 북(조선)의 '핵문제'

강: 미국은 북(조선)의 핵개발 정보를 "한국, 일본과 공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 정부도 머지 않아 재개될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에서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북(조선)이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것과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진행하는 것은 어떻게 연관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 일본 정부는 독자적으로 조·일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것이 아니며,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에 따라서 추진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발표한 논문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통제하고 통제를 받는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미·일 동맹체제는 일본이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을 추종하는 체제이며, 동시에 미국이 일본을 동북아시아 정책에 동원하고 적절하게 통제하는 체제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이 최근에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에 관한 정보를 일본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한정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자기의 동북아시아 정책 수행에 이익이 되는 범위에 한정하여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에 관한 정보를 일본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범위를 넘어서는 진짜 정보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1998년 8월 31일 북(조선)이 일본 열도의 고공을 뚫고 우주공간으로 날아간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을 때도 그에 관한 정보 가운데 중대한 부분은 일본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노골적인 적대정책을 동원하면 일본도 따라서 합니다. 그런데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 대로, 지금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노골적인 적대정책을 동원할 수 없는 매우 불리한 처지에 있으므로, 일본 정부는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일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노골적인 적대정책으로 다시 돌아설 수 없습니다. 고이즈미는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부시 정부의 뒤를 따라서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강: 지난 조일 정상회담에서도 그러했지만, 원래는 조미 사이에서 논의되고 해결되어야 할 미사일문제나 핵문제가 조일 사이에서도 논의되고 미사일 발사를 보류하는 조치를 더 연장하기로 합의가 되었는데, 이런 문제를 일본과의 합의에 포함시킨 북(조선)의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는 일본을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북(조선)의 중거리 미사일들이 일본 영토를 겨냥하여 실전배치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일본의 '자위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일미군과 그 기지를 공격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자기의 영토를 미군에게 제공하고 자기의 달러를 주일미군 유지비로 제공함으로써 조·일 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일본은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에서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포기하면 주일미군에 대한 북(조선)의 공격태세도 완화될 것입니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자기의 영토와 자원을 주일미군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만일 일본이 미국의 적대정책에 편승하지 않는다면, 북(조선)이 일본 영토를 겨냥하여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공격태세를 유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1993년 5월에 북(조선)이 일본 열도와 태평양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기지들을 겨냥하여 중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실시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에 편승하여 조·일 사이의 적대관계를 더욱 격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을 계속하지 말아야 하며, 적대정책 편승을 포기하고 조·미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도를 미국과 함께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미·일 전략협의회에서는 북(조선)에 대한 부질없는 적대정책의 공조를 논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게 아니라 조·미 관계개선과 조·일 관계개선을 위한 실질적이고 전향적인 공조조치들을 논하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공동으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발표된 조·일 평양선언에서 북(조선)의 미사일 발사 보류조치를 더 연장할 의향을 표명하였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은, 북(조선)이 부시 정부에게 보내는 정치적 의사표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보류조치를 취한 것은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물론, 일본 열도와 태평양의 미군기지들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의 시험발사를 보류하는 조치라고도 광범위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심점은 언제나 미국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맞춰져 있습니다.

조·일 평양선언에 북(조선)의 미사일 발사 보류조치에 관한 문제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조·일 관계의 개선추세가 조·미 관계라는 포괄적 구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강: 일본 정부는 지난 10월 17일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을 통해서 "수교교섭이 재개되더라도 핵문제의 해결이 없이는 조일 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납치문제로 일본의 국내 여론이 몹시 험악해진 조건에서도 수교교섭을 하겠다면서 외교부문에서의 '독자성'을 강조했던 일본 정부가 이번에 이렇게 나오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의사 작용되고 있는 것일까요?

한: 네, 그렇습니다. 관방장관의 지적은 틀리지 않습니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조·미 관계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고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것이므로, 조·미 적대관계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일본 정부가 조·일 국교수립에로 튀어나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얼마 전에 조·일 정상회담 직후에 일본인 행방불명자 문제로 일본의 국내 여론이 험악해졌을 때, 일본 정부가 그래도 북(조선)과의 수교교섭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외교부문에서 '독자성'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조·일 정상회담 이후로 예정되어 있었던 켈리의 평양방문과 조·미 정치협상 재개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습니다. 켈리의 평양방문에 의한 조·미 정치협상이 일정에 올라있는데, 일본 정부가 일본의 국내 여론이 험악해진다고 해서 조·일 관계를 대결 분위기로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던 것입니다.

조·일 국교정상화 회담은 계속 진행되기는 하겠지만, 일본 정부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면서 미국의 통제권 안에서 회담을 진행할 것이므로 조·미 정치협상에서 타결의 접점을 찾는 가능성이 제시되기까지 조·일 회담의 실질적인 성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3. 조국통일정세를 논한다

강: 소장님은 저와의 대담이나 여러 건의 논문들에서 2003년이 조국통일정세에 하나의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한(조선)반도를 둘러싼 정세, 특히 이번 문제를 보면 2003년의 격동이 예측한 것보다 이르게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2003년은 조·미 사이의 치열한 정치·군사적 대결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10년은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격동기였습니다.

1998년 8월 31일에 있었던 백두산 1호 발사를 기점으로 계산하면 1993년은 5년 전이고, 2003년은 5년 후가 됩니다. 1998년이 조·미 대결과정과 정세변화의 격동기에서 꼭 중간시점에 놓여있는 셈이지요. 1998년 이전의 5년 동안은 미국이 공세적이었고 북(조선)이 수세적이었다면, 1998년 이후의 5년은 전세가 역전되어 북(조선)이 공세적으로, 미국이 수세적으로 되었던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의 공세기에 북(조선)은 준비사업을 전개하였습니다. 그것은 2003년의 대결을 미리 예견하고 그 대결에서 승리하기 위한 준비사업이었습니다. 준비사업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남북 최고위급회담을 개최하고 6.15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전민족적 범위에서 주체역량의 단결을 촉진시켰습니다. 둘째, 조·러 관계와 조·중 관계를 복원하여 반미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셋째, 조·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였습니다. 넷째, 유럽나라들과의 수교를 촉진시키면서 미국의 봉쇄망에 파열구를 냈습니다. 다섯째,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함으로써 경제적 위기를 넘어섰습니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조건을 생각할 때, 만일 2003년에 가서 조·미 대결이 전면화된다면 10년 전인 1993년의 조·미 대결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 분명합니다. 1993년에 클린턴 정부는 북(조선)에 대한 무력위협을 전면화하면서 압박해 들어갔지만, 2003년에 부시 정부는 일방적으로 무력위협을 가할 수 없는 조건에 있으며 수세적인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부시 정부도 오늘의 변화된 상황을 깊이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부시 정부는 자기의 패배가 예상되는 조·미 대결을 피하려고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미 정치협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강: 남(한국)의 반응을 보니 정부는 역시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이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한나라당은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미국의 대북정책을 따를 것이지만, 그래도 이번 문제가 머지 않아 있게 될 대통령선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한: 부시 정부가 이번에 다시 불거져 나온 '핵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남(한국)의 대통령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일 부시 정부가 조·미 정치협상을 내던지고 전면적인 대결로 나온다면, 선거국면에서 한나라당에게 유리한 외적 조건이 생겨날 수 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핵문제'는 조·미 사이의 문제이므로, 남(한국) 내부의 정치권에 직결되지는 않습니다. 간접적인 영향을 주겠지요. 한나라당이 '핵문제'를 선거에 이용하려고 북(조선)의 전쟁위험을 들먹일 수 있지만, 요즈음 분위기에서 그러한 케케묵은 '북풍공작'은 이용할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강: 저는 이번에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를 참관하였습니다. 남북의 선수들이 손잡고 경기장에 공동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보았고, 남측의 동포들이 북측의 '미녀응원단'을 혈육의 정으로 따뜻이 맞이하고 '통일응원'에 열렬히 참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핏줄도 하나, 마음도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했습니다. 금강산에서는 남북의 청년학생과 여성이 각각 통일대회를 개최하였고, 남북을 잇는 철도와 도로 연결공사가 추진되는 가운데 장관급회담도 약속된 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이루자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이 커다란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측 동포들의 반미자주화 기운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민족의 힘이 단합되고 있는 현실과 '핵문제'가 돌출한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 반미자주화운동은 민족대단결운동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반미자주의식이 높아지면 우리 민족끼리 단결하게 되어 있고, 민족대단결운동은 반미자주화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친미예속성은 미국제일주의사상과 민족허무주의, 민족분열주의를 낳아놓는 반면에, 반미자주성은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는 민족적 긍지와 민족끼리 힘을 합치자는 민족대단결사상에 직결됩니다. 6.15 공동선언을 기치로 들고 민족대단결운동을 추진하는 가운데 반미자주화운동이 고양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남(한국)의 민중들이 미국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서 미국의 정체를 똑바로 알고 반미자주의식을 획득하게 되면, 자연히 대북 혐오감에서 벗어나서 민족대단결을 추구하게 됩니다.

다시 불거져 나온 '핵문제'는 대북 공포감이나 대북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10년 전에 국내외 반통일세력이 '핵문제'를 이용하여 친미예속성과 반북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상황과는 크게 달라진 것입니다.

강: 마지막으로 최근에 제가 필요성을 공감하게 된 문제와 관련해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 조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에서는 북(조선)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여론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물론 북(조선)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하고 사과한 것은, 그런 일이 없다고 믿어 왔던 우리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언론들이 피해의식과 대북적대감을 조장하는 바람에 일본이 과거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행문제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격이 되고, 일본의 우익깡패들은 나어린 학생들에게 또다시 협박과 박해를 가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의 대북 적대감은 곧 총련동포사회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환됩니다. 이처럼 조일관계의 변동은 재일동포사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재일동포사회에 대한 남북의 동포들과 해외 다른 지역의 동포들의 연대와 지원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소장님의 견해를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우리 민족과 일본의 관계는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지배 때문에 적대관계로 규정되었습니다. 일제는 한(조선)민족의 철천지원수인 침략자, 약탈자, 지배자였습니다. 일제는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한 조선의 애국자들을 납치, 고문, 투옥,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끊임없이 저질렀습니다. 자본주의나라들의 식민지지배역사 가운데서도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지배역사는 가장 악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일제가 패망한 뒤에 일본 정부는 한(조선)민족에 대한 자기들의 죄행을 사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한(조선)반도를 넘보는 재침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한(조선)민족에게 그처럼 엄청난 죄행을 저지르고서도 사죄는커녕 재침야욕을 지니고 있는 오늘의 일본 지배세력들이 오늘에 와서 그 무슨 '일본인 납치사건'을 운운하는 것은 가증스러운 짓입니다. 조·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일 국교정상화를 중시하여 고이즈미에게 관대하게 대하였으므로, 일본의 지배세력은 고마움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고이즈미가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일본인 납치'를 떠들어대면서 대북 적대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것은 일본의 지배세력의 머리 속에 한(조선)민족에 대한 적대감과 멸시의 더러운 뿌리가 얼마나 깊이 박혀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재일동포사회가 일본의 지배세력과 우익세력들로부터 박해를 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우리 민족은 하루빨리 강력한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합니다. 한(조선)반도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세워져야 일본의 지배세력과 우익세력들이 재일동포사회를 깔보거나 짓누르지 못하게 됩니다. 한(조선)반도에 원한의 분단체제가 남아있는 한, 일본의 지배세력과 우익세력들은 우리 민족을 깔보고 짓밟으려고 하며, 따라서 재일동포사회가 고통을 겪게 됩니다.

한(조선)반도의 통일정부만이 재일동포사회의 민족적 권리와 자주적 지위를 보장해줄 것입니다. 재일동포들은 재일동포사회에서 자라나는 후대들에게 민족적 권리와 자주적 지위를 보장해주겠다는 결심을 굳게 세우고 조국통일운동에 앞다투어 나서야 할 것입니다. 조국통일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꿔놓을 것이며, 우리 민족의 운명이 바뀌어야 재일동포사회의 미래도 빛날 수 있습니다. (2002년 10월 2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