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회담에서 사용된 유감표명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 들어가는 말

(2) 서해교전의 발생원인을 다시 논함

(3) 서해교전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표명한 부시 정부의 두 파벌

(4) 서해교전에 대한 북(조선)의 견해표명

(5) 북(조선)의 유감표명에 관련한 두 가지 선례들

(6) 조·일 평양선언에서의 유감표명

(1) 들어가는 말

나는 지난 9월 23일 「조·일 정상회담의 추진배경과 조·일 평양선언의 역사적 의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들어있다.

"서해교전은 파월-아미티지-켈리로 이어지는 집행체계가 추진하기 시작한 조·미 정치협상 재개에 제동을 걸어보려는 미국 군부와 강경파의 방해책동이었다." 이 구절은 지난 6월 29일에 있었던 서해교전의 발생원인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밝혀주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해서, 서해교전은 미국 군부와 강경파의 방해책동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북(조선)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었음을 전제로 하면서, 북(조선)이 미국을 대신하여 '유감'표현으로 사과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북(조선)은 남북 장관급(상급)회담을 재개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서해교전과 관련하여 남(한국)에게 유감(遺憾)을 표명한 적은 있다. 그러나 북(조선)이 서해교전과 관련하여 미국을 대신하여 일본에게 유감을 표명한 적은 결코 없고, 도대체 그러한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근거를 제시하면서 나의 견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상에서 그저 지나가면서 비야냥거리는 식으로 써 갈긴 그 낙서 한 줄에 대해서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 했으나, 건전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 보론을 작성하였다.

(2) 서해교전의 발생원인을 다시 논함

나는 지난 6월 29일 연평도 근해에서 일어났던 서해교전이 조·미 관계개선을 방해하려는 미국 군부와 신보수주의자들(이른바 강경파)에 의해서 일어난 무력충돌사건이라는 사실을 밝힌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내가 7월 23일에 발표한 「6.15 공동선언 이후의 통일정세와 조국통일 실현의 전망」이라는 논문이 그것이다. 나는 7월 23일의 논문의 제6항에 「조·미 고위급 정치회담을 가로막은 서해교전」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서해교전의 발생원인과 경과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논증하였다.

1999년 6월 15일에 제1차 서해교전이 일어났을 때도 나는 그 사건의 배후에서 미국 군부가 도발책동을 벌였음을 논증하였다. 1999년 6월 21일에 발표된 「국지전을 상정한 '연평도 군사작전'을 추진한 것은 누구인가?」라는 나의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나의 논문은 모두 통일학연구소 웹싸이트(www.onekorea.org)에 올라있다.

서해교전에 대한 나의 견해를 다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99년의 제1차 서해교전과 2002년의 제2차 서해교전이 발생한 원인은, 미국 군부와 신보수주의자(이른바 강경파)들의 도발책동에 의한 것이었으며, 저들의 도발책동을 현장에서 집행한 것은 남(한국)의 해군이었고, 그 도발책동에 단호하게 대처하여 남(한국)의 해군 고속정을 격침시킨 것은 북(조선)의 해군이었다. 만일 미국 군부와 신보수주의자들의 도발책동이 없었다면 6.29 서해교전은 일어나지 않았고, 또 일어날 필요조차 없었다. 따라서 서해교전의 모든 책임은 미국 군부와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있다.

(3) 서해교전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표명한 부시 정부의 두 파벌

나는 미국이 서해교전의 도발책동을 일으켰다는 포괄적인 표현 대신에, 미국 군부와 신보수주의자들이 서해교전의 도발책동을 일으켰다는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미국의 대북 정책수행과정을 정밀하게 추적하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눈으로 보면, 미국 국무부를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협상파와 미국 국방부를 중심으로 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이른바 강경파)이 뚜렷이 구별된다.

원래 신보수주의자들(neo-conservatives)이라는 용어는 미국 언론에서 붙인 것인데, 매파 또는 강경파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반면에, 협상파라는 용어는 미국의 적대국과의 정치협상을 통하여 미국의 지배를 관철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는 특정한 정치파벌을 뜻하는데, 언론에서는 비둘기파 또는 온건파라고 부른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부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의 국방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물론, 국무부에도 일부 들어가 있다. 얼마 전 서울에 나타나서 대북 강경발언을 내뱉고 돌아간 미국 국무부의 존 볼튼이 그러한 축에 끼는 인물이다. 신보수주의자들은 백악관도 사실상 장악하였다. 미국 부통령 딕 체니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도 그 부류에 속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뚜렷한 정견이 없는 인물이므로, 언제나 두 파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강세로 나오는 파벌의 견해에 끌려가곤 한다.

나는 부시 정부 안에서 신보수주의자들과 협상파들이 미국의 대외전략을 놓고 어떻게 파쟁을 벌이고 있으며, 그 두 파벌은 어떠한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지금 준비하고 있는 별도의 논문에서 자세하게 밝힐 것이다. 나는 켈리가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직후에 그 논문을 완성하여 발표하려고 한다.

신보수주의자들과 협상파가 벌이고 있는 파쟁문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지난 1월 상하 양원합동연설에서 발표된 부시의 연설문에 협상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른바 '악의 축'에 관한 도발적 내용을 기어이 삽입했던 것도 신보수주의자들의 책동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신보수주의자들과 협상파는 대북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번번이 갈등을 빚고 있다. 이번에 열렸던 조·일 정상회담은 신보수주의자들의 견제를 무릅쓰고 미국 국무부 협상파와 고이즈미 정권의 친미파 고위관리들이 강행하여 성사시킨 것이다.

지난 6월 29일 서해교전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 나온 공식반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협상파와 신보주의자들의 태도에서 명백히 구별되는 점이 드러난다.

6월 30일 백악관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은 서해교전을 북(조선)에 의한 군사도발이라고 명백하게 규정하였다. 이것은 신보수주의자들의 상투적인 왜곡선전이다. 그런데 그에 비해서 같은 날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발표한 성명은 남(한국)의 전사자, 부상자들에게 유감을 표명하면서 그 유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으며, 서해교전과 관련하여 남(한국)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국무부의 성명에서는 서해교전이 누구에 의해서 일어났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명하지 않았다. 신보수주의자들과 협상파 사이에서는 똑같은 사건을 두고 발언수위와 의사표명방식이 이렇게 다르게 나온다.

(4) 서해교전에 대한 북(조선)의 견해표명

그러면 서해교전에 대해서 북(조선)은 어떠한 태도를 보였을까? 지난 7월 25일 남북장관급(상급)회담의 북측 수석대표인 김령성 단장은 남측 단장인 정세현 통일부 장관에게 보낸 전화통지문에서 "서해 상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무력충돌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북남 쌍방은 앞으로 이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구절에서 분석해야 하는 내용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북(조선)은 서해교전의 발생원인을 우발적이라고 규정하였다는 사실이다. 서해교전이 미국 군부와 신보수주의자들의 도발책동을 원인으로 하여 발생했는데도, 북(조선)은 왜 우발적 사건으로 규정하였을까? 그 까닭은, 김령성 단장의 전화통지문이 미국이 아니라 남(한국)에게 전달하는 의사표명이었고, 더욱이 그 동안 중단되었던 남북장관급(상급)회담의 재개를 제안하는 통보이었으므로 굳이 '미국 군부가 일으킨 무력충돌사건'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그 통보가 서해교전에 대한 책임을 따지기 위한 것이었다면, 북(조선)은 '미국의 호전계층이 일으키고 남조선 군부가 동원된 무력충돌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단호하게 책임을 따졌을 것이다.

혹 북(조선)의 의사표명이 미국 정부에게 보내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서해교전에 대한 책임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조·미 정치협상 재개를 제안하는 통보라고 하면, '미국이 일으킨 무력충돌사건'이라고 명백히 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조선)이 서해교전의 발생원인을 우발적이라고 규정한 것은, 전술적 유연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둘째, 북(조선)은 서해교전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는 사실이다. 유감표명은 사과표명이 아니다. 유감스럽다는 말은 사과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서 섭섭함을 느낀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였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유감이 없다는 말은 마음에 흡족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해교전에 대해 유감스럽다는 말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서 섭섭함을 느낀다는 뜻이다. 7월 25일의 대남 전화통지문에서 북(조선)은 주한미군사령관의 도발작전명령에 따라서 북측의 관리수역을 침범하였다가 북측의 공격으로 격침 당한 것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었다.

셋째, 남북은 앞으로 그러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리라는 견해를 표명하였다는 사실이다. 남북이 공동으로 노력하여 서해교전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말은, 서해교전의 도발책임이 남(한국) 군부에게 있지 않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5) 북(조선)의 유감표명에 관련한 두 가지 선례들

서해교전에 대한 북(조선)의 유감표명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두 가지 선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첫째, 1976년 8월 21일에 있었던 북(조선)의 유감표명이다. 그날 군사정전위원회 북측 수석대표는 8.18 판문점사건에 관하여 주한미군사령관에게 보내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의의 구두성명을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발표하였다. 그 성명내용에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또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쌍방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는 구절이 있다.

8.18 판문점사건은 미국 군부의 도발음모에 의해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사건현장에서는 도발자인 미군들이 피살당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 사건이었다. 미국 군부의 도발음모에 의해서 발생하였지만, 사건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것은 북(조선)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8.18 판문점사건과 6.29 서해교전은 발생원인과 사건경과의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그 두 사건의 발생원인과 사건경과의 구조가 유사하므로, 북(조선)은 그 사건에 대한 의사표명도 거의 유사하게 하였던 것이다.

둘째, 1996년 9월 18일에 일어났던 강릉 잠수함사건에 대하여 12월 29일에 북(조선)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이 있다. 강릉 잠수함사건은 조선인민군 정찰국의 정기적인 정찰활동이 잠수함 좌초로 인하여 실패하자, 강릉에 상륙한 잠수함 승조원들은 집단적으로 자폭하고 나머지 정찰국 요원들은 산으로 피신하여 개인화기를 가지고 저항하다가 피살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발생원인은 미국 군부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남(한국) 군부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까닭에 그 사건에 대한 북(조선)의 의사표명은 다르게 나왔다. 강릉 잠수함사건에 대한 북(조선)의 성명은 이렇게 되어있다.

"막심한 피해를 초래한 1996년 9월 남조선 강릉해상에서의 잠수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함께 힘쓸 것이다."

위의 구절에서 주목할 것은, 북(조선)이 그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대목이다. 이것은 북(조선)이 강릉 잠수함사건을 일으킨 책임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서해교전에 대한 북(조선)의 의사표명에서는, 서해교전과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6) 조·일 평양선언에서의 유감표명

9월 17일 평양에서 열렸던 조·일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조·일 평양선언에서도 '유감표명'이 포함되어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조일 두 나라의 비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한 이러한 유감스러운 문제가 앞으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확인하였다."고 기록한 부분이 그것이다. 여기서 '유감스러운 문제'라는 것은 일본인 행방불명자 문제를 의미한다.

조·일 평양선언에서는 일본인 '납치'문제라고 규정한 일본측의 용어도 사용하지 않았음을 물론, 일본인 행방불명자 문제라고 규정한 북(조선)측의 용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유감스러운 문제라고 모호하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감스러운 문제'가 조·일 두 나라의 비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였다고 밝혔다는 사실이다.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것은 적대관계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위의 구절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 조·일 두 나라는 일본인 행불자 문제가 조·일 두 나라 사이의 적대관계 속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인정한다.

둘째, 북(조선)은 일본인 행불자 문제에 대해서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섭섭함을 느낀다.

북(조선)은 일본인 행불자 문제에 대해서 사죄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 마음에 흡족하지 않아 섭섭함을 느낀다고 밝혔을 뿐이다.

한편, 일본 총리 고이즈미는 조·일 평양회담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서 언론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어놓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행불자 문제에 대해서 사과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하였다. 정상회담 석상에서 오간 발언들은 외교관례상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므로, 고이즈미의 주장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말로 '사과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는지 아니면 유감을 표명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설령 고이즈미의 주장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석상에서 '사과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하더라도, 북(조선)은 그러한 '사과표명'을 조·일 평양선언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므로 공식성을 부여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다. (2002년 9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