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전선이 수행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 동력, 실현경로에 대하여

- 9월테제에 대한 해석

한호석  

글을 시작하며

민족민주전선의 전략적 과업은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과업,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과업,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과업이다. 나는 민족민주전선이 이 세 가지 과업을 본격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하여 적어도 10년을 전후한 기간에 완수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전망은 당면정세와 역량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기초한 것이며 사회역사발전의 법칙성과 필연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세가지 과업이 앞으로 10년을 전후한 기간에 완수하리라는 것은 확정적이다. 민족민주전선의 최후승리에 대한 부동의 신념과 강인한 의지는 이러한 확정적 전망에 의해서 전선일꾼들의 심장에 생명의 기운을 뿜어준다.

지난 몇해동안 이어지고 있는 나의 사색과 집필과 강연은 사회역사발전의 법칙성과 필연성을 반영하고 있는 민족민주전선의 전략적 과업이 현시기 어떠한 정세 속에서 실현되고 있는지를 해명하는데 집중되어있으며, 그 전략적 과업이 앞으로 10년을 전후한 기간에 완수될 것이라는 전망을 좀더 투명하게 제시하는데 집중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내 능력의 한계 때문에 아직 미흡한 성과를 내놓았을 뿐이다.

이 글은 민족민주전선의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중앙상임위원회가 지난 9월 22일 민족민주전선일꾼전진대회에서 ≪조국통일대사변기를 맞는 전국연합의 조직·정치방침≫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발표한 ≪9월테제≫를 읽고 그 문건에 훌륭하게 정리되어 있는 전략적 과업에 관하여 조금 부언하여 설명하려는 목적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내가 지난 10월9일 전국연합 기관지 민의 편집진으로부터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것과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어떻게 연관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청탁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문제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문제는 모두 민족민주전선의 전략적 과업이므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전략적 과업의 성격, 동력, 실현경로를 이론적으로 해명하지 않으면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파악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주제를 세 가지 전략적 과업의 성격, 동력, 실현경로를 해명하는데 집중시켰다.

두루 알려진 대로, 민족민주전선의 전략적 과업은 자주민주통일의 강령에 의하여 규정되었으며 전민족적인 반제자주역량, 전민족적인 조국통일역량, 남(한국)의 민주변혁역량에 의하여 지금 힘있게 수행되고 있다. 자주강령은 전민족적인 반제자주역량이 수행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적 과업을 제기하고 있으며, 민주강령은 남(한국)의 민주변혁역량이 수행하는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전략적 과업을 제기하고 있고, 통일강령은 전민족적인 조국통일역량이 수행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과업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주시해야 할 사실은 민족의 자주성완성,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 자주적 평화통일실현이라는 세 개의 전략적 과업과 반제자주역량, 민주변혁역량, 조국통일역량이라는 세 개의 역량은 병렬적으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배열되고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세가지 전략적 과업과 그것을 수행하는 역량이 체계적으로 배열되었다는 말은 세 가지 전략적 과업이 서로 구분되는, 그러나 분리할 수 없는 성격, 동력, 실현경로에 의해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세 가지 전략적 과업의 성격, 논리구성은 더 복잡하고 세밀한 희로로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9월테제≫가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듯이, 남(한국)의 민족민주전선은 자기의 전략적 과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이미 해명하였다. 이제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문제, 그리고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는 동력문제, 그 과업을 실현하는 경로문제를 해명해야 하는 한 층 더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 아직 미흡한 이 글은 그러한 높은 단계에 들어선 민족민주전선의 이론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토론과정에 하나의 논변으로 내놓았다.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 동력, 실현경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 과업은 민족의 자주성을 지역적 범위가 아니라 전민족적 범위에서, 그리고 불완전하지 않고 완전하게 실현하는 최대, 최상의 전략적 과업이다. 그런 까닭에 ≪완성≫이라는 개념을 쓰게 된다. ≪완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 할 때 지적해야 하는 문제는 남(한국)의 자주성만이 아니라 민족전체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한다는 사실이다.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한다는 것은 남(한국)과 북(조선), 그리고 해외동포집단을 모두 포괄하는 전체 민족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여, 그 과업은 남(한국)에 대한 제국주의세력의 지배·수탈을 제거하고, 북(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세력의 적대·말살 책동을 제거함으로써 한(조선)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민족성원들은 물론 해외 여러 지역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집단을 포함하는 전체 민족의 자주성을 높은 수준에서 완성한다는 뜻이다.

그 전략적 과업의 성격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민족해방≫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쓰지 않고, ≪민족자주≫라는 새로운 개념을 쓰고 있다. 민족해방의 전략적 과업은 1930년대 이후에 조선민족이 전개하였던 항일무장투쟁시기의 과업이었으며, 지금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민족민주전선에서 수행하고 있는 과업이다. 우리가 민족해방이라는 개념대신에 민족자주라는 개념을 쓰고 있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다양한 민족민주전선이 처해 있는 조건과 달리 한(조선)민족은 제국주의세력의 분할·지배정책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분단된 특수한 조건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문제를 새로운 개념으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영토분할과 민족분열을 알지 못했던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조건과 달리, 분단이후 남과 북의 사회변혁운동의 발전수준이 서로 달라진 현실조건에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의 성격문제를 새로운 개념으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줄여서 말하자면, 민족자주라는 개념과 민족해방이라는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 까닭은 그 두 개념에는 반제자주화운동의 형식과 내용에서 발생한 일정한 차이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족해방이라는 개념은 제국주의세력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지배와 수탈을 당하고 있는 지역에서 전개되는 반제자주화운동의 전략개념이다. 민족해방은 이전 시기의 식민지적 예속이나 오늘날의 신식민지적 예속을 가릴 것 없이 제국주의세력에 의하여 강요된 모든 형태의 예속상태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실현하려는 사회적 집단의 변혁을 지시하는 개념이다. 이에 비하여 민족자주라는 개념은 제국주의세력을 반대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려는 모든 종류의 반제자주화운동을 규정하는 폭넓은 전략개념이다. 민족자주는 민족해방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된다. 그러므로 민족해방의 전략적 과업을 실현한 뒤에도 제국주의세력이 이 지구 위에 남아있는 한, 민족자주의 전략적 과업은 계속하여 수행해야 할 과업으로 남는다.

이를테면 베트남민족은 지난 시기 민족해방의 전략적 과업을 피흘려 수행하고 승리했으나, 민족해방의 전략적 과업을 완수한 뒤에 제기된 민족자주의 전략적 과업을 완수한 뒤에 제기된 민족자주의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는 데서는 시행착오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오늘 반제자주화운동의 동력을 상당히 약화시키고 있는 베트남민족이 저러다가 전 세계 반제전선의 전진행로에서 낙오하는 게 아니냐 하는 세계 진보적 인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베트남민족이 민족해방의 과업을 완수한 뒤에 자기들의 반제자주화운동을 영도할 사상, 다시 말해서 자주성에 관한 철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지도사상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족자주라는 개념은 한(조선)민족이 피흘려 개척하고 자기의 힘으로 진전시키고 있는 반제자주화운동을 영도하는 사상을 한마디로 농축시킨 개념이며, 자주성에 관한 철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사상의 핵심개념이다. 또한 민족자주라는 개념은 민족과 계급이라는 두 개의 공고하고 포괄적인 사회적 집단을 수행단위로 하여 진전되고 있는 현존 인류의 자주화위업을 지시하는 보편적 개념이다.

한(조선)민족의 반제자주역량이 전 세계 진보적 인민들 앞에 높이 치켜든 민족자주의 위대한 기치는 남(한국)의 민족민주전선의 반제민족해방운동과 북(조선)의 사회주의혁명역량의 반제자주화운동을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시킨 폭넓고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민족자주라는 이 한 마디의 단어 속에는 반세기를 넘긴 지난 세월동안 파쇼감옥의 쇠창살 속에서, 교수대 위에서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며 사라져간 남(한국) 민족민주전선의 투사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고여있으며, 내 나라 흙탕물을 마실지언정 제국주의자의 코카콜라는 마시지 않겠다고 허리띠를 동여매고 ≪고난의 행군≫을 헤쳐온 북(조선)의 혁명적 인민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담겨있다. 민족자주라는 이 한 마디의 단어 속에는 제국주의세력의 광란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며 매개 민족의 자주성과 근로대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있는 전세계 진보적 인민이 간직한 철의 신념과 의지가 자리잡고 있다.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은,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전략적 과업이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전략적 과업이 두 단계로 수행되는 것과 달리 단계적으로 나누어서 수행되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 전략적 과업이 다른 두 가지 전략적 과업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면서 그 두 가지 전략적 과업의 수행과정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전략적 과업과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전략적 과업은 오직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 안에서, 그 과정을 통하여, 그 과정에 의하여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조금도 달라질 수 없는 불변의 철칙이다. 그러므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전략적 과업은 다른 두 가지 전략적 과업과의 관계에서 선차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며, 다른 두 가지 전략적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근본과업으로, 다른 두 가지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선도과업으로 된다.

우리가 민주정부 수립과 평화통일 실현의 전략적 과업을 말할 때, 언제나 ≪자주적≫이라는 규정적 개념을 앞에 내세워 자주적 민주정부와 자주적 평화통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부는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수립될 수 있으며, 평화통일도 마찬가지로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자주적≫이라는 개념은 남(한국) 지역에서 수행되고 있는 민족해방이라는 특정한 전략적 과업을 뜻하는 것이고, 자주적 평화통일의 ≪자주적≫이라는 개념은 남(한국)에서의 민족해방의 전략적 과업과 북(조선)에서의 민족자주의 전략적 과업을 모두 포함하는 총체적 전략개념이다. 민족민주전선의 3대 강령 가운데서 자주강령의 의미는 그러한 총체적 전략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자주적≫이라는 개념은 남(한국)의 민족민주전선이 수행해야 하는 고유한 과업, 민족해방의 전략적 과업을 지시해주는 개념이며, 그것은 또한 제국주의세력의 직접적인 지배와 수탈을 겪었던 항일혁명시기의 식민지민족해방의 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킨 역사적 개념으로 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적 과업을 수행하는 동력은 민족주체역량에서 나온다. 민족주체역량이란 남북해외에 존재하는 전민족적 범위의 주체역량을 뜻한다. 전민족적 범위의 주체역량이 반제자주화운동을 추진하는 전선을 민족통일전선이라고 부른다.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 민족주체역량은 남북해외의 각 지역에 병렬·분산적으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조직·체계적으로 배치될 때 비로소 제국주의세력을 압도하는 반제자주화운동의 강위력한 동력으로 될 수 있다. 민족주체역량을 조직·체계적으로 배치한다는 말은 반제자주화운동의 다양한 동력을 지위와 역할의 일정한 차이에 따라 중심동력과 보조동력으로 구분하고 배치한다는 뜻이다.

(2001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