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록 >

6.15 공동선언 이후의 한(조선)반도 정세와 조국통일운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나는 2001년 4월 11일부터 19일까지 조국평화통일협회의 초청으로 일본 여러 지역을 돌면서 재일동포를 위한 강연에 출연하였다. 히로시마, 하카타, 후쿠오카, 나고야, 군마, 요코하마에서 진행된 강연에는 많은 동포들이 참석하였다. 식민지시기에 일본에 건너갔던 1세 동포들의 흰 머리결과 주름진 얼굴에서 나는 반세기를 넘긴 세월 동안 갖은 고생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삶과 투쟁의 흔적을 보았으며, 일본에서 태어나 자라난 2세와 3세 동포들의 생활상에서 나는 민족적 자주성을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는 자랑스런 모습을 보았다. 재일동포를 포함한 모든 해외동포들의 민족적 자주성은 조국이 통일되지 않고서는 완성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는 여러 지역을 돌아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끝내 지울 수 없었다. 해외동포 1세들은 물론이요, 그들의 후대인 2세와 3세들이 민족분열의 현실을 외면하면서 과연 자기의 거주국에서 민족적 자주성을 온전히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해외동포들의 장래운명과 조국통일위업은 뗄 수 없는 관계로 결합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해외동포들이 조국통일운동에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할 근거가 바로 그것이다. 조국통일은 해외동포 자신의 역사적 임무다. 해외동포들이 조국통일을 위해 힘을 합쳐 가는 것은 조국을 위한 참된 애국의 길이며 동시에 해외동포 자신의 장래운명을 개척하는 희망의 길이다. 우리 해외동포들은 조국이 통일되어야 참된 의미에서 자주민족의 구성원으로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이번 강연에서 내가 외쳤던 중심주제였다. 이 대담은 지난 4월 15일 조국평화통일협회의 강민화 홍보국장과 군마현 마에바시에서 진행한 것이다.

강민화: 바쁘신 가운데 다시 일본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재일동포들에게 강연을 하시고 계신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한호석: 저를 초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강연자는 강연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을 육감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해의 강연과 마찬가지로 이번 강연에서도 청중들의 반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반응에는 언제나 조국통일에 관한 열망과 의지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뜨거운 반응은 어느 지역에 가서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저는 지방도시 몇 군데를 돌면서 강연하고 있는데 강연 개최지의 동포들은 물론 강연 개최지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계시는 동포들도 강연장을 찾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더 책임감 있게, 알맹이 있는 말씀을 드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북(조선)에서 말하는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사고

강: 먼저 북의 정세에 관하여 말씀을 나누어 봅시다. 올해 정초에 『로동신문』, 『조선인민군』, 『청년전위』는 공동사설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한 기세로 새 세기의 진격로를 열어나가자」를 발표했습니다. 거기에는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을 혁신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해당되는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사상관점과 사고방식, 투쟁기풍과 일본새에서 근본적인 혁신을 이룩해나가는 것은 우리 앞에 나선 선차적인 과업이다."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참신하게 사고하고 더 높이 비약해야 한다." "새 세기는 혁신적인 안목과 기발한 착상, 진취적인 사업기풍을 요구한다." 그리고 1월 4일부 『로동신문』에서는 이에 관한 김정일 총비서의 명제들이 크게 게재되었는데, 그 명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시기에 마련한 터전에서 그 모양대로 살아나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그 면모를 끊임없이 일신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남측과 서방세계의 분석가들은 이와 같은 공동사설의 내용과 김정일 총비서의 명제들을 주목하면서 마치 다른 나라에서 한때 강조되었던 '새로운 사고'를 연상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실시되었던 개혁·개방과 같은 것처럼 해석하면서 '북의 변화 가능성'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한: '새로운 사고'라는 것은 지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기간에 소비에트형 사회주의를 망쳐먹은 장본인이 한 말입니다. '새로운 사고'라는 것은 사회주의 원칙을 버리고 자본주의화의 길로 되돌아가는 사상관점을 뜻합니다. 그것은 사회주의 체제를 내버리고 자본주의화의 길로 되돌아가는 낡은 역사에로의 복귀와 퇴행이었는데도 부르주아 선동가들은 그것이 마치 '새로운 사고'인 것처럼 왜곡하면서 사람들을 기만하였습니다. 올해 초 공동사설에서 제시된 새로운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의 혁신은 그러한 반사회주의적 사상관점과 전혀 인연이 없는 것입니다. 서방세계의 일부 분석가들이 북(조선)이 제시한 새로운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을 듣고 지난 시기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은 착각 중의 착각입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제는 2000년대에 들어선 것만큼 모든 문제를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보고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였는데, 이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저는 그 내용을 정치사업의 방법을 혁신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북(조선)에서 말하는 정치사업은 곧 당사업이므로, 당사업의 방법을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혁신하여야 한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9월 30일자에는 김정일 총비서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실렸습니다. "밤낮 회의나 하여서는 문제를 풀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업상 권위도 세울 수 없습니다. 우리 일군들이 나와 함께 혁명을 하려면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사업방법을 체득하고 구현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사업방법이란 당사업의 방법을 뜻합니다. 『로동신문』 2001년 2월 3일자에는 김정일 총비서가 "나는 사업을 회의를 하는 방법으로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씀이 실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첫째로, 당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당 일군들이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낡은 사업방법은 회의를 하는 방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김정일 총비서는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낡은 사업방법인 회의를 걷어치우고 새로운 사업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로동신문』 2001년 1월 10일자에는 "지금은 1960년대와 다르므로 지난날의 낡은 일본새로 일하여서는 안 됩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새 시대의 요구에 맞게 무슨 일이나 손색이 없게 하여야 합니다."라는 김정일 총비서의 말씀이 실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북(조선)에서는 당사업에서 새로운 사업방법, 새로운 일본새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 그렇다면 새로운 사업방법과 새로운 일본새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한: 그것에 관해서 알려면 우리는 『로동신문』 2001년 1월 10일자에 나온 기사를 읽어보아야 합니다. 그 기사는 김정일 총비서가 일군들을 평양에 불러 회의를 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현지에 직접 나가서 실태를 구체적으로 요해하고 걸린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방법으로 사업을 전개했다는 것입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며칠 밤을 새우면서 그와 관련한 자료들을 연구하고 현지에 나가서 해결방도를 제시하였고, 그런 다음에도 실패자료를 분석하고 새로운 대책을 연구하였고 그 연구결과를 가지고 다시 현장에 나가서 구체적인 과업과 그 수행방도를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9일자 『로동신문』은 「영웅적 사나이의 심장: 인민의 참된 충복 정평군당 책임비서 오기석 동무의 용감무쌍한 투쟁기풍」이라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기사는 정평군의 금진강 발전소 건설사업에 앞장선 군당책임비서의 모범적인 당사업에 관한 것입니다. 정평군의 금진강 언제(dam)와 발전소 건설사업은 가장 힘들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정평군 자체의 힘으로 추진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거창한 공사입니다. 그 사업을 책임적으로 지도하였던 당일군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언제의 밑면을 건설하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친 일군들이 과학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해서 주저하고 있을 때, 군당책임비서가 그 동안 틈틈이 연구하였던 과학기술지식을 내놓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입니다. 사석언제의 기초를 어떠한 공법으로 설계할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회의에서 군당책임비서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대목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운 눈길로 오기석 책임비서를 바라보았다. 대담하면서도 기발한 우리 식의 보충설계안! 강바닥의 토질과 물흐름 속도, 수압 등을 해부학적으로 분석해가며 기존 관례대로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언제밑면 건설방법을 자신 있게 설명해 가는 오기석 책임비서, 과연 그가 언제 그런 과학기술지식을 소유하게 되였는가. 후에 안 일이지만 당의 과학중시정책을 받들고 짬시간마다 과학기술학습을 꾸준히 하여온 오기석 동무는 민제 부위원장을 도와주기 위한 사색과 연구를 남 모르게 하였으며 이날 당당한 실력가로서 그의 설계를 지지하고 보충해 나섰던 것이다."

금진강 언제와 발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은 정평군 인민들이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추진해온 대중적 영웅주의의 전형입니다. 지금까지 당일군들은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 서서 실지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며 불꽃 튀는 전투장에 달려가 착암기도 잡고 선반도 돌리며 가장 어렵고 힘든 모퉁이를 막아 나서면서 군중의 심장에 불을 지피는" 것(『로동신문』 2000년 1월 8일자)을 최상의 모범적 사업방법으로 여기어 왔습니다. 그런데 정평군당 책임비서의 당사업에서는 그러한 전통적인 사업방법과 더불어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과학기술을 깊이 연구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당당한 실력가"의 모습입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 당의 간부는 정치사상적으로 견실할 뿐 아니라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능력이 딸리면 혁명의 지휘성원으로서의 임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1월 22일자) 이것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현대적인 과학기술지식의 결합을 말하는 것이며, 혁명적 사업방법과 과학기술의 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평군당 책임비서의 사업방법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대중적 영웅주의가 현대적인 과학기술과 어떻게 절묘하게 결합되어 창조력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준 전형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표현법을 빌리면, 흔히 말하는 공동상승작용(synergy)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 인민의 대중적 영웅주의는 반드시 현대적인 과학기술과 결부되여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5월 20일자)

여기서 우리는 김정일 총비서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더불어 기술개건의 문제에 강조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는 기존관념에 사로잡혀 지난 시기의 낡고 뒤떨어진 것을 붙들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 없애버릴 것은 없애버리고 기술개건을 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동신문』 2001년 1월 4일자) 북(조선)에서는 과학기술 혁신 또는 과학기술 개선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과학기술 '개건'이라는 새로운 말을 씁니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대중적 영웅주의만을 가지고서는 오늘 북(조선)의 목표인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북(조선)이 수행해오고 있는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노선에서 기술혁명에 강조점을 찍으면서 3대 혁명노선을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바라보고 추진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회주의 혁명정신과 과학기술지식을 일치시킨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기 소련과 중국의 경우에는 혁명정신과 과학기술지식을 분리하여 사고했고, 그 둘 가운데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함으로써 좌우경적인 오류를 범한 쓰라린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에서는 과학기술을 중시하는 사상관점이 사회주의의 본성적 요구에서 나온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강: 김정일 시대는 선군혁명노선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께서는 북이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학학기술 개건의 결합이라는 문제를 선군혁명노선과 어떻게 결부시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기술혁명을 강조하면서 3대 혁명노선을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높이에서 바라보고 나간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선군혁명노선과 어떻게 결부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한: 우선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에 대하여 설명이 좀더 요구됩니다. 『로동신문』 2001년 2월 28일자에는 「자력갱생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에서 주목해야 할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자력갱생의 원칙에서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은 대외관계를 폐쇄적으로 만들어놓고 경제를 건설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방세계의 현대적인 과학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경제를 현대적 기술로 장비해야 민족경제의 자립적 토대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력갱생은 경제적 실리를 보장하는 원칙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사는 "자력갱생한다고 하면서 제가끔 생산기지들을 꾸려놓고 전기와 국가자재, 로력을 랑비하는 것은 자력갱생과 인연이 없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면 선군혁명노선과 과학기술 중시정책의 관계문제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여, 과학기술 중시정책은 선군혁명노선과 전적으로 부합됩니다. 선군혁명노선이란 인민군대가 앞장에 서서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책임지고 떠밀고 나간다는 전략노선인데, 북(조선)에서 과학기술 중시정책을 수행하는 데서 가장 모범적인 집단이 인민군대입니다. 인민군대의 군사과학은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 새로운 사상관점과 사고방식의 혁신이라는 문제는 북의 사회주의 건설 뿐 아니라 장차 조국통일의 미래까지 내다보는 긴 안목에서 제시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까?

한: 예, 조국통일위업까지를 다 포괄하는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조선)에서는 지금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데, 강성대국 건설이란 조국통일 실현과 떼어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강성대국은 연방제로 통일된 강성대국이라는 말입니다. 통일이 실현된 뒤에 북측은 연방제 강성대국의 사회주의 지역이고, 남측은 연방제 강성대국의 자본주의 지역이 될 것입니다. 연방제로 통일된 강성대국의 북측 지역과 남측 지역의 사회제도는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지금 북측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연방제로 통일된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북측 사회주의 지역의 물질·경제적 발전을 이룩하는 것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북측 사회주의 지역의 물질·경제적 발전은 과학기술이 발전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북(조선)의 과학기술 중시정책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여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물질·경제적 기반을 닦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6.15 공동선언 실현 전망에 대하여

강: 선생의 최근 논문 「조·미관계의 경색국면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부시정권이 등장한 이후 그들의 강경자세 때문에 조·미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논문에서 많이 언급되었고, 또 선생이 이번 일본방문 강연에서 해설하고 계시기 때문에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문제는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김정일 총비서의 서울 방문과 제2차 정상회담에 관하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이라고 하는데, '답방'이라는 표현은 남측 언론에서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서울 방문'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서울을 방문하는 문제는 6.15 공동선언에 명시되어 있으므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측면에서 보아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갔으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으로 서울에 간다고 말하는 것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측면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정치적 의의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한(조선)반도 정세에 그야말로 변화의 폭풍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 변화의 폭풍은 반통일세력을 날려보내고 지금 굳어져 있는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일거에 바꾸어 통일정세를 더욱 심화·발전시킬 것입니다.

강: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통일정세를 더욱 심화·발전시킬 것이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제가 보기에 그것은 6.15 공동선언의 내용을 한 걸음을 더 진전시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조국통일의 방법론을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화해와 협력의 문제를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남(한국)의 반통일세력과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몰락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부시의 평양 방문을 촉진시킬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조·미관계를 경색국면에서 끌어내서 협상과 평화공존으로 진입시키고 부시의 평양 방문을 촉진시킴으로써 조 ·미 국교수립을 실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강: 우리는 김정일 총비서의 서울 방문과 제2차 회담이 실현되면 그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문을 여는 데서 결정적인 전진이 이룩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정세를 보면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습니다. 지난번 미국에서 있었던 김대중·부시 회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부시정권이 강경자세로 나가고 있고, 그들의 대북정책이 굳어진 조건에서 남측 정부당국이 꼼짝하지도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사실 지금 일부에서는 이 문제 때문에 정세를 비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한: 저는 두 가지 근거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정세를 비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첫째는, 부시정권의 대북정책은 '페리 프로세스' 안에서 그 기본틀이 짜여 있으므로 '페리 프로세스'는 다시 가동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조·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는 전제조건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서 다 마련되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0월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조명록 특사가 워싱턴을 방문하여 조·미 공동성명이 나왔고, 그 뒤를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만난 자리에서 조·미 관계개선을 가로막았던 최대의 걸림돌인 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미국은 그 방안이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으므로 클린턴의 평양 방문을 계획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클린턴의 평양 방문에 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해서 역사적인 조·미 정상회담이 열렸더라면 지금쯤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발전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내부의 사정 때문에 조·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했고,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된 뒤에 조·미관계를 개선하는 과정은 지금 일시적으로 보류조치에 묶여 있습니다. 그러한 보류조치의 전적인 책임은 부시정권에게 있습니다.

부시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아니라 법원에서 가까스로 뽑힌 대통령이므로 정치권 내부의 권력기반, 대중적 지지기반이 취약합니다. 그런 까닭에 부시정권은 강력한 정책 추진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지금 부시정권은 선행정권으로부터 넘겨받은 매우 커다란 정책적 문제를 한시 바삐 해결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정책을 확정짓고 추진단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부시정권은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정책을 추진단계에 올려놓기 전에는 다른 것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페리 프로세스'를 계승하여 추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입니다. 부시정권은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정책을 확정지을 때까지 일정한 조절기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조절기간이 얼마나 길어질 것인가 하는 것인데, 제 생각에는 그렇게 길지 않을 것입니다. 부시정권이 미사일방어체계에 관한 정책을 확정짓고 조절기간이 끝나게 되면, 곧 대북정책에 관련한 검토도 곧 끝마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부시정권이 대북정책에 대한 검토를 마친 뒤에 본격적으로 '페리 프로세스'를 추진하게 되면 클린턴정권보다 더 파격적으로 조·미관계를 개선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클린턴정권은 부시정권보다 더 강경한 대북정책, 아니 매우 위험한 대결정책을 추진했던 정권이었습니다.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포악한 정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북(조선)의 대응력에 밀려 전쟁계획을 포기하고 억지로 끌려오면서 마련해 놓은 것이 '페리 프로세스'입니다. 부시정권은 북(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권이고, 또 일방적인 무력대결 정책이라든가 고립·압살정책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알고 있는 정권이기 때문에 출발점이 클린턴정권과 다릅니다. 그래서 클린턴정권보다 부시정권이 조·미관계 개선의 속도를 더 높일 것으로 보는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조성되어 있는 일시적인 냉각상태를 항구적으로 고착화된 상태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한 고착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조·미관계 개선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므로 거기에 동조하거나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강: 선생의 말씀에는 남북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문제와 부시정권이 한(조선)반도 정책을 추진하는 문제가 상관관계로 얽혀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보는데, 그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 지난해 역사적인 평양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은 손을 맞잡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자고 합의했고, 그 구체적인 성과로 6.15 공동선언을 민족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 선언의 제1항에는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원칙으로 관철해야 하는 민족자주의 문제가 명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 사람들은 남과 북이 손을 잡고 6.15 공동선언을 합의한 마당에 또 다시 미국의 부시정권이 방해하는 것을 물리치지 못하고 남북관계가 냉각국면에 들어갔으므로 6.15 공동선언은 미국의 방해로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관론은 현실을 잘 모르는 데서 생겨난 것입니다. 통일정세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우리 민족입니다만, 우리 민족은 미국의 반통일정책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칠천만 자주민족은 미국의 반통일정책을 돌파하고 조국통일을 자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우리 민족이 조국통일의 주인이며 통일을 자주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과 필연성을 선언한 것입니다. 당위성과 필연성은 아직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을 현실화해야 할 책임이 우리 민족에게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앞길에는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미국이 6.15 공동선언의 실현을 제 아무리 방해한다고 해도 우리 민족은 단결된 힘으로 그 방해책동을 돌파하고 나아갈 것이며 6.15 공동선언을 반드시 실현하고 말 것입니다. 지금 부시정권이 6.15 공동선언의 실현을 방해하고 있고, 김대중 정부는 부시정권의 방해책동 앞에서 손과 발이 꽁꽁 묶여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외교력을 집중하여 부시의 방해책동을 돌파할 것이며, 김대중 대통령과 다시 만나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길을 열어놓을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제국주의자들과 민족분열주의자들의 검은 손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칠천만 자주민족의 단결된 힘이 결정합니다. 조직적으로 단결한 민족주체역량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위대한 힘입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에 남북 정부당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

강: 선생은 이번 논문에서 김정일 총비서의 서울 방문과 제2차 회담이 성사되면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연합·연방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더욱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서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단계로 나가게 될 것이라고 쓰셨는데, 이 점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 그 문제는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힘듭니다만, 제 생각에는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연합·연방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인정했으므로 이제는 그 공통성에 기초해서 조국통일로 가는 구체적인 과정 혹은 단계를 제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6.15 공동선언 이전까지는 연합제와 연방제의 상호모순되는 측면을 주목하면서 공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에도 연합제와 연방제가 상호모순되는 측면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국가연합제는 두 개의 코리아로 갈라서서 사이좋은 이웃나라로 살아가려는 방안이고, 연방제는 하나의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방안이므로 이 두 방안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하나의 나라인가 아니면 두 개의 나라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 이후에는 그러한 차이점만을 보지 말고 공통성을 보자는 것으로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차이점보다는 공통성을 더 중시하고 그 공통성에 기초해서 통일문제를 풀어나가자는 겁니다. 공통성을 인정한 뒤에 우리가 가야할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공통성을 상호인정한다는 선언적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통성에 기초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실천적 과제를 합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연합·연방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제기될 수 있는 실천적 과제라는 것은 민족통일기구의 건설입니다. 남과 북의 두 정부가 합의해서 남, 북, 해외의 정부, 정당,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조직적 틀로 묶어낸 것을 민족통일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미·소 공동위원회가 설치되고 그 위원회가 남과 북의 정당,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조직적 틀로 묶어내어 조선의 독립을 달성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반의 해방정국과 21세기 초반의 통일정국의 차이는 해방정국에서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정치일정이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우리 민족이 주체적으로 합의한 6.15 공동선언에 따라 정치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해방정국에서는 외세인 미·소 공동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정당,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정치적 틀로 묶어내는 사업을 추진하였지만, 지금은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주체가 되어 6.15 공동선언에 따라 정부, 정당, 사회단체들을 하나의 정치적 틀로 묶어내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문제의 주인은 외세가 아니라 민족주체역량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민족통일기구는 칠천만 민족의 통일역량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매우 중대한 정치사업을 담당할 주체가 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법적, 정치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지만, 어째든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통일문제를 전민족적으로 합의하고 실천하는 정치적 주체가 반드시 요구될 것이므로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든지 통일위업을 수행하는 전민족적 정치기구를 만들어내야 하리라고 봅니다. 전민족적 정치기구는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정치문제를 합의하는 과도적 국가기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강: 제가 작년 말에 남에서 오신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때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는 이런 얘기가 오갔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통일은 20년, 30년 뒤에나 가능하다고 하면서 당장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지금부터 조국통일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고 해도 시간이 걸릴텐데 20년이나 30년 뒤로 미루어놓는다면 어떻게 통일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는 조국통일을 실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조국통일을 20년이나 30년 뒤의 문제로 미루어놓으려는 것은 사실상 통일불가능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조국통일을 한 세대 뒤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칠천만 민족의 절절한 통일염원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일 그러한 측면만을 보았다면 김대중 대통령 과 손을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정책 가운데 조국통일위업에 복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6.15 공동선언으로 살려내었습니다. 김 대통령의 정책 가운데 통일위업에 복무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은 남북관계를 적대관계가 아니라 화해·협력관계로 변화시키겠다는 것, 남(한국)에서 반통일적이고 반화해적인 질서를 개혁하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측면을 강조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공통성보다 차이점을 강조하는 데 너무 익숙합니다. 그러한 사고의 관성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강: 작년에 나온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통일의 이정표인데, 지금 일부에서는 김정일 총비서의 서울 방문과 제2차 회담이 실현되면 마치 또 다른 공동선언이 나올 것처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상을 하는 사람들은 6.15 공동선언에는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가 빠져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보완하는 새로운 공동선언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총비서는 지난해에 재미동포 언론인 문명자 여사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6.15 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헌장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도 중심적 지위에 있게 될 것은 어디까지나 6.15 공동선언이고 그 이후에 합의되는 문제들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합의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그렇습니다. 앞으로 남북의 최고지도자들 사이에 이루어질 합의는 6.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가 될 것입니다. 그 선언을 대체하는 새로운 선언은 나올 수 없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완성된 내용입니다. 그 선언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선언을 어떻게 이행하고 실현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입니다. 한(조선)반도의 평화문제라는 것은 군사문제입니다. 군사문제는 6.15 공동선언에서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군사문제는 1991년에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완성된 내용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만일 6.15 공동선언이 군사문제를 언급했다면 그것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만일 6.15 공동선언이 군사문제를 언급했다면 그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남(한국)의 군사주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에는 조·미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남북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남북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군사문제는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에 밝혀져 있습니다. 조·미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군사문제는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북(조선)의 미사일 문제인데, 지난해 10월에 워싱턴에서 채택된 조·미 공동성명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방향이 밝혀져 있습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 조국통일운동의 새로운 관점

강: 우리의 화제를 조국통일운동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실현하기 위한 민족적인 공감대가 내외에서 형성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남측에서는 '6.15 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가 결성되었고, 한호석 선생의 말씀을 들어보니 미주동포들 사이에서도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 미주위원회'가 결성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한: 우리는 6.15 공동선언 이후의 조국통일운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추진해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 이후의 조국통일운동은 6.15 공동선언 이전의 조국통일운동과 달라져야 합니다. 그 이전에는 차이점과 상호모순되는 측면만을 보았던 통일운동이었다고 하면, 그 이후에는 6.15 공동선언의 정신과 원칙을 살려서 차이점과 상호모순되는 측면은 놔두고 공통점과 민족공동의 이익을 찾아내고 그것에 기초해서 통일운동을 벌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운동의 새로운 관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통성과 공동의 이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찬성하는 세력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6.15 공동선언이 없었던 지난 시기에는 남북의 정부당국이 민족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객관적 기준을 합의하지 않았으므로 연대·협력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6.15 공동선언이 민족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객관적 기준으로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찬성하는 다종다양한 정치세력, 사회단체, 개별인사들이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해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지난 시기에는 통일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나 소홀하게 생각했던 그런 대상들과도 손을 잡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조국통일운동의 폭이 매우 넓어지는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운동의 대중화가 실현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민족 최대의 과업이었던 항일민족해방을 실현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치세력과 사회단체들이 손을 잡았던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민족의 해방과 자주독립이라는 민족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공통성을 찾아내고 그에 기초해서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 손을 잡았던 것입니다. 항일운동 시기에 있었던 조국광복회와 신간회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8.15 이후에는 남북 제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가 평양에서 열려서 자주독립과 통일이라는 민족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힘을 합쳤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첫째로 공통성에 기초하여 민족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투쟁에 힘을 기울였던 쪽은, 이념적 지형으로 보면 언제나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정치세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혁명을 보더라도 국공합작을 성사시키려고 애쓴 것은 언제나 중국공산당이었는데, 국민당은 국공합작에 소극적이었고 심지어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적 정치세력은 커다란 희생을 무릅쓰고 보수적인 세력을 기어이 항일의 길로 이끌어내고야 말았습니다. 조국통일위업을 위해서 지금까지 무수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우리의 민족대단결운동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민족공동의 과업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화해·협력을 추진하는 세력과 손을 잡고 그들과 함께 통일의 길을 가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의 민족대단결운동은 조국통일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실현방법의 문제에 있어서는 대범하게 양보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시기에 통일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을 앞에 내세우고 우리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양보를 해서라도 새로운 운동의 틀을 짜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통일운동의 대중화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6.15 공동선언 이후의 조국통일운동의 새로운 관점입니다.

강: 예, 오랜 시간에 걸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호석 선생의 앞으로의 활동에서 더 큰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