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미국 군수산업자본의 이익문제

2)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미국의 동아시아·서태평양 군사전략 변경문제

3)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행문제

4)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김대중 정권의 화해·협력정책

(2) 민족민주운동의 전략·전술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1)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민족민주운동의 전략적 목표

2) 민족통일전선의 형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1)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의 정권 교체가 한(조선)반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바꾸어놓게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부추기고 있다. 클린턴 정권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유화 외교(appeasement diplomacy)'에 의존하는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이었지만 '강한 미국의 신봉자'들이 장악한 부시 정권의 한(조선)반도 정책은 '힘의 외교'에 의존하는 '강경정책'이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추론이 그러한 예감을 뒷받침하고 있다. 클린턴 정권의 포용정책을 반대해왔던 세력들은 제 철을 만난 듯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있다.

2001년 3월 7일 미국 대통령 부시는 "나는 북(조선)의 지도자에 대해서 좀 회의하고 있다.(I do have some skepticism about the leader of North Korea.)"고 하면서, "우리는 장차 어느 시점에 이르러 북(조선)과 대화할 것이지만 모든 절충에는 그 조건에 대한 완전한 검증(complete verification)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 이튿날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lin L. Powell)은 북(조선)을 모욕하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그 것은 독재정권이다. 그 정권은 파산당했다. 우리는 그 정권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북(조선)을 이끌어가는 그 분의 본성에 대해서도 아무런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독재자다.([North Korea] is a regime that is despotic. It is broken. We have no illusions about this regime. We have no illusions about the nature of the gentleman who runs North Korea. He is a despot.)"고 말했다.

북(조선) 포용정책을 반대하고 있는 세력들은 부시의 강성발언과 파월의 폭언을 확대해석하면서 지금 한층 더 소란을 피우고 있다. 그렇지만 포용정책을 반대하고 있는 세력들은 자기들의 주관적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수사적 표현과 정책추진을 구분하지 못하는 커다란 오류에 빠져있다. 한때 미국 국방부와 국무부의 관리로 일했으며 지금은 전략 및 국제문제 연구소(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의 선임연구원인 앤터니 콜즈먼(Anthony H. Cordesman)이 잘 지적했던 것처럼,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북(조선) 정책과 관련하여 내놓았던 "지금까지의 수사적 표현은 아직 제대로 조정되지 않았다.(the rhetoric to date hasn't been well coordinated yet.)"고 보아야 한다.

다른 한편, 일부 분석가들은 동북아시아에서 '새로운 냉전체제'가 생겨남으로써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이 장기화·고착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들의 정세인식은 두 가지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 중·미 관계가 악화되어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냉전체제'가 생겨날 것이라는 잘못된 관측이다. 부시 정권이 중·미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의 관계에서 전략적 경쟁자의 관계로 악화시키려 한다는 주장이 나돌고 있지만, 그 것은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의 중국정책은 어떠한 수사적 표현을 쓰느냐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중국 포용정책'의 궤도 위에서 움직여나갈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중·미 관계를 악화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는 그 것으로 생겨날 손실이 훨씬 더 크다. 미국의 중국 포용정책은 지난 10년 동안 지속됨으로써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지점을 통과하였으며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일부 분석가들은 조·미 관계와 중·미 관계의 상관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부시 정권이 중·미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의 관계에서 전략적 경쟁자의 관계로 경색시키려 하기 때문에 조·미 관계도 덩달아 경색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그러한 전망은 일면적 고찰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조·미 관계와 중·미 관계가 상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미 관계가 조·미 관계를 전면적으로 규정짓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조·미 관계를 중·미 관계의 종속변수로 파악하려는 관점은 명백한 오류다. 양자는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연관성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다. 만일 미국이 중·미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우, 미국은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인접국들인 베트남과 북(조선)에 대한 관계마저도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개선하는 포용정책으로 한 걸음 더 나가게 될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지역에서 조·중·러 삼각전략균형이 형성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조·미 관계와 조·일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하여 북(조선)을 적어도 중립지대에 머물게 하는 것이 자기들의 안보이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하여,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은 일시적인 것이다. 힘의 외교를 표방하는 부시 정권이 종래의 포용정책을 파기하고 강경정책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추론은 빗나간 것이며, 포용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의 소란은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거품처럼 꺼져버리고 말 것이다. 왜 그렇게 보는가? 그러한 정세전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다.

첫째, 공화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의 차이를 강성 외교와 유화 외교로 대비하는 논법은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본질을 은폐하려는 거짓논리다. 민주당 정권의 대외정책은 온건노선이고, 공화당 정권의 대외정책은 강경노선이라고 떠들어대는 부르주아 언론의 허튼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아메리카 제국주의는 정권 교체와는 상관없이 무력을 동원하는 강경노선에서 한 걸음도 물러선 적이 없다. 제국주의 세력의 본질은 언제나 힘의 외교를 앞세우면서 세계를 지배·약탈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제국주의 세력이 이른바 유화 외교를 표방하는 것에 대하여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아시아 민중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은 제3세계에 대한 지배와 약탈을 강요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데서는 민주당 세력이나 공화당 세력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공화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이 저들의 대외정책에서 드러내 보이는 차이를 굳이 지적한다면 그 것은 본질적 차이가 아니라 표피적, 지엽적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아메리카 제국주의는 자기 내부의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언제나 지배와 약탈을 추구하는 강경노선으로 일관해오고 있다. 아메리카 제국주의가 어느 특정한 상대에 대해서 유화 외교를 표방하며 이른바 온건노선을 취하는 까닭은 자기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대가 힘으로 제압할 수 없는 강대한 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대외정책에서 나타나는 일정한 변화는 제국주의의 본질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선 상대의 힘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시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서 미국의 대외정책이 온건노선에서 강경노선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클린턴 정권이나 부시 정권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대외정책에서 제국주의적 강경노선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면, 그 것은 정세를 보는 기본관점에서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북(조선) 정책이 유화 외교의 성격을 띄면서 포용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클린턴 정권 후반부에 이르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진영과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대해서 가장 난폭한 태도를 취했던 레이건 정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레이건 정권은 1988년에 이른바 '온건한 주도성(modest initiative)'을 표방하는 북(조선)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그 것이 바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북(조선) 포용정책의 시발점이다. 그러므로 미국의 북(조선) 포용정책은 13년의 역사와 경험을 지니고 있는 정책이며, 다른 정책으로 교체하거나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지나온 공고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북(조선) 포용정책은 클린턴 정권 후반기에 이르러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라는 외연을 확보하고 자본주의 열강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더욱 공고하게 되었다.

부시 정권은 13년 동안 북(조선) 포용정책을 반대하는 세력들과 무수한 갈등을 벌이고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져져 마침내 조·미 국교수립을 향하여 움직여나가는 '포괄적 포용(comprehensive engagement)'을 추구하고 있는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를 제 손으로 깨부수어 '대형 안전사고'를 자초할 만큼 그렇게 어리석은 정권은 아니다.

셋째, 부시 정권에게 제기된 문제는 클린턴 정권의 유화 외교와 포용정책을 폐기할 것이냐 아니면 그대로 계승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계승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클린턴 정권의 유화 외교와 포용정책을 계승한다는 것은 페리 프로세스의 전략구상을 계속하여 추진한다는 말인데, 그 중심내용은 조·미 정상회담을 통하여 두 나라 사이의 대결상태를 마감하고 국교를 수립한다는 평화공존전략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결상태란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배치에 의한 종심타격전략과 미국의 주한미군 전진배치에 의한 선제핵공격전략 사이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것은 힘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고 떠들고 있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의 군사력과 '주체의 붉은 기'를 휘날리고 있는 사회주의 조선의 군사력 사이에서 힘의 동학이 결정한 새로운 관건 ?형성을 뜻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러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 근본원인을 차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아니 밝히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북(조선)이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게 되어 자기들의 포용정책에 끌려나오고 있다는 거짓선전을 내돌리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조·미 관계를 마침내 평화공존관계의 문턱으로 이끌어간 원인이 조·미 두 나라 사이의 힘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클린턴 정권이 북(조선) 정책을 추진해온 8년의 과정은 두 단계를 밟아왔다. 첫째 단계는 클린턴이 집권하자마자 1993년부터 북(조선)의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려는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이기 시작하였으나 결국 북(조선)의 강력한 대응력에 밀려 대결을 포기하고 정치협상으로 나아갔던 단계이다. 그 정치협상은 1994년 10월에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채택됨으로써 결속되었다. 둘째 단계는 1998년 8월 말 북(조선)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이후에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억제하려는 정치·군사적 대결을 벌였으나 결국 또다시 북(조선)의 강력한 대응력에 밀려 대결을 포기하고 정치협상으로 나아갔던 단계이다.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관한 조·미 정치협상은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지 6년이 되는 2000년 10월에 워싱턴에서 조·미 공동성명을 채택함으로써 일단 고비를 넘겼다.

클린턴 집권시기 8년 동안의 경험이 분명히 말해주는 것은 제국주의 아메리카와 사회주의 조선의 관계는 결국 군사력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국장이었던 척 다운스(Chuck Downs)가 지적한, 북(조선)이 발휘하고 있는 "세계 강국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기술"이란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군사강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군사력에 의하여 결정된 조·미 관계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압도하지 못하는 전략적 균형상태로 들어섰다. 그러한 힘의 균형상태를 국제관계에서는 평화공존이라고 부르는데, 만일 힘의 균형이 깨어지는 경우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클린턴 정권이 지난 8년 동안 북(조선)의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관련된 대결과 협상을 교차적으로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이르렀던 결론은 군사강국인 북(조선)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다는 것, 그러므로 조·미 전쟁을 상정하고 수립되었던 종래의 북(조선) 정책을 새로운 관점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것이 페리 프로세스가 시작된 직접적인 배경이다.

2000년 10월에 조·미 공동성명이 채택되었을 때, 클린턴 정권이 북(조선)과 국교를 수립할 것을 전제로 하여 클린턴의 평양 방문과 조·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했던 것은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페리 프로세스의 평화공존전략을 이행하려는 계산된 행동이었다. 페리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북(조선)전략은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무장한 군사강국 북(조선)과 정치·군사적 대결을 추구하는 것은 더 이상 이익이 없으며 그러한 대결을 지속할수록 미국의 국가안보이익이 훼손될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러시아, 중국과 더불어 군사강국으로 등장한 북(조선)과 평화적으로 공존하려는 전략이며, 따라서 그 것은 조·미 국교수립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협상 곧 조·미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전략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부시 정권은 페리 프로세스의 평화공존전략 이외에 다른 전략을 선택할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만일 부시 정권이 페리 프로세스의 평화공존전략을 포기한다면, 미국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조·미 전쟁에 의한 대파멸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시 정권이 북(조선)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치협상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바로 전 날, 기자회견에 나온 국무장관 콜린 파월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행 정권이 남겨놓은 정치협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매우 유망한(very promising) 내용이 들어있다. 문제는 북(조선) 정권과 협상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일종의 감시 및 검증체계(a monitoring and verification regime of the kind)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가 떠난 바로 그 자리에서 북(조선)을 포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협상에는 몇 가지 유망한 요소들이 놓여있으므로 우리는 그 요소들을 검토할 것이다."

국무부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좌우하는 실무책임자의 직책인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 지명된 제임스 켈리(James Kelly)는 3월 15일 워싱턴에 있는 브루킹스 연구원(Brookings Institution)에서 연설하면서 "지난 주 윌리엄 페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페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대북정책 조정관이었던 윌리엄 페리의 보고서가 내린 결론을 여전히 옳다."고 말했다. 이 것은 부시 정권의 북(조선) 정책이 페리 프로세스를 따를 것임을 말해주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부시 정권이 들어선 뒤에 미국 국무부는 기존의 특사 55명 가운데 23명의 직제를 폐지하였는데, 중동담당 특사 같은 중요한 직제를 폐지하면서도 페리 프로세스의 전략수행에 요구되는 한(조선)반도 평화회담 특사와 대북정책 조정관 두 직제는 그대로 존치시켰다. 이 것은 부시 정권이 페리 프로세스의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부시가 집권한 뒤에 조·미 고위급 정치협상이 중단되고, 부시 자신은 물론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강성발언을 내뱉으면서 조·미 관계가 경색국면에 들어선 까닭은 무엇일까? 그 경색국면은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아래와 같은 분석이 나온다.

1)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미국 군수산업자본의 이익문제

클린턴 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부시 정권도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위협을 구실로 삼으면서 탄도미사일방어체계(BMD)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탄도미사일방어체계란 패트리어트 미사일 방어체계(PAC-3), 전역(戰域)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해상요격미사일 체계(SM-2), 외기권(外氣圈) 요격미사일 체계(EKV), 중거리 요격미사일 체계(MEADS), 항공기 발사 레이저 체계(ABL)로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 복잡한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최소 600억 달러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탄도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구상은 단지 클린턴 정권이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20년 전인 레이건 정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깊은 전략구상이다. 힘의 외교를 표방하며 '강대한 아메리카의 재건'을 부르짖던 레이건 정권이 만들어낸 탄도미사일방어체계의 전략구상은 소·미 군사력 균형을 미국 우위의 군사력 균형으로 재편하는 한편 미국의 군수산업자본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려는 전략구상으로 존재해왔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 부시 정권이 나라 안팎의 거센 반대기류를 무릅쓰고 탄도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려는 계획을 더욱 완강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것은 저들이 집권에 성공하기까지 미국의 군수산업자본으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수산업체들 가운데 손꼽히는 4대 기업체들인 보잉, 록히드, 레이시언, 티알더블유(TRW)가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공화당에 갖다 바친 정치자금은 580만 달러이며, 1997년과 1998년 이태 동안에 로비스트들에게 지불한 돈은 3,400만 달러에 이른다.

게다가 군수산업체들은 미국 경제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부시 정권은 그들의 요구를 절대로 무시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보잉은 26개 주에 18만 명, 록히드는 45개 주에 15만 명, 레이시언은 42개 주에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한 군수기업체들이다. 군수산업체들은 미국 전체 취업인구의 2퍼센트를 차지하는 22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부시 정권은 군수산업체들에게 600억 달러가 들어가는 탄도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을 맡겨주는 경우, 최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미국 경제를 되살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군수산업자본은 1940년대에는 핵무기 개발사업과 태평양전쟁, 1950년대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사업과 한국(조선)전쟁,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우주개발사업과 베트남전쟁, 1980년대에는 소련을 겨냥한 레이건 식의 무제한 군비증강 통해 엄청난 이익을 줄곧 챙겨오면서 공룡처럼 비대해졌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난 뒤에 지난 10년 동안 저들의 이윤추구활동은 일정하게 위축되었다. 그러한 미국의 군수산업자본은 이번 기회에 탄도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여 600억 달러의 이윤을 챙기려고 날뛰고 있다. 그들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부시 정권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

그런데 만일 부시 정권이 페리 프로세스를 추진하는 과정에 들어서게 되면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협상을 벌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위협 때문에 탄도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던 핑계가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부시 정권은 미국의 군수산업자본을 탄도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여놓기 전에는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조·미 정치협상을 벌일 수 없는 형편에 있다. 바로 이 것이 부시 정권이 조·미 정치협상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경색국면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다.

2)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미국의 동아시아·서태평양 군사전략 변경문제

부시 정권은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의 미군을 다시 배치하려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1995년 이후 이 지역에서 미군을 10만 명 수준으로 유지해왔던 클린턴 정권의 군사전략은 불가피하게 수정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정보의 흐름에 둔감한 사람들은 부시 정권이 지난 수 십 년 동안 이 지역에 전진배치해두었던 미군을 이제 와서 설마 자진하여 철수하거나 후방으로 재배치하겠는가 하고 의심하면서 '주한미군 자진철수론'을 좀처럼 믿으려하지 않고 있지만 그 것은 엄연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전략가들 사이에서 '주한미군 자진철수론'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인 것으로 파악된다. 2001년 3월 15일에 나온 『시사저널』 549호가 보도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눈길을 끈다.

2001년 10월 주한미군사령부의 각본에 따라 '작전계획 5027-98'을 세상에 공개했던 언론인 리처드 핼로런(Richard Halloran)은 워싱턴의 군 수뇌부는 물론 태평양사령부, 주한미군사령부, 주일미군사령부가 남(한국)과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 지상군 병력을 감축 또는 철수하는 가능성에 대한 검토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면서, 주한미군 제2사단 2만7천 명을 알래스카, 괌, 하와이 또는 미국 본토 서해안으로 철수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고,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제3해병 원정군 1만8천 명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또는 인구 밀도가 비교적 낮은 오키나와 북부로 이전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는 국방장관 출신 프랭크 칼루치의 지휘 아래 안보 및 군사문제 전문가 50여 명이 참여하여 작성한 보고서 「정권 교체 2001」을 최근 발표했다. 그 보고서는 한(조선)반도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경우,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정치적 압력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또한 동남아시아에 패권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한(조선)반도와 일본열도 아래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보고서는 부시에게도 전달되었다고 한다.

클린턴 정권 때 국방부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냈던 커트 캠벨(Kurt Campbell)은 『워싱턴 쿼털리(Washington Quarterly)』 2000년 가을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 국방부가 1995년부터 고수해오고 있는 '동아시아 10만 병력 유지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2001년 1월 16일 국방장관(당시) 윌리엄 코언이 빌 클린턴에게 제출한 『2001년 국방보고서』에는 해마다 들어가 있던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미군 10만 명을 유지한다는 내용이 빠지고 그 대신 그 지역에 고도의 능력을 갖춘 군사력을 유지한다는 새로운 내용이 들어 있다.

러시아 신문 『네자비시마야 가제타』 3월 2일자 기사에 따르면, 2001년 2월 6일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국방부 최종평가국의 분석관 앤드류 마샬에게 미군 쇄신에 관한 보고서를 3월 중순까지 작성하라는 특명을 내렸다고磯磯? 마샬은 1973년 닉슨 정권 때부터 현직에 근무해오면서 국방장관 럼스펠드, 국무부 부장관 아미티지와 가깝고, 지난 대선 때 부시 후보의 안보공약을 입안했던 노회한 전략가로서 지금 이른바 '마샬 계획(Mashall Plan)'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가 작성하고 있는 새로운 군사전략은 앞으로 동아시아 안보는 일본이 주된 책임을 맡게 되고 그 지역에 배치하고 있는 미군을 철수하는 대신 공군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위에 열거한 내용들은 워싱턴의 군사전략가들이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의 미군을 다시 배치하려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새로운 군사전략을 논의하기 시작한 배경은 무엇일까? 그 것은 미사일이 전 세계적 범위로 확산되고 있는 현실과 관련되어 있다. 제3세계 여러 나라들이 전략미사일을 개발하고 실전배치하고 있다. 오늘 전략미사일을 제3세계에 확산시키고 있는 '태풍의 눈'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북(조선)이다. 전략미사일 확산추세가 몰고 온 이러한 정세변화는 미국이 기존의 군사전략을 변경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을 변경시키는 데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북(조선)의 전략미사일이다.

지금 부시 정권은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서 미국이 상대하고 있는 3대 군사강국 북(조선), 중국, 러시아의 전략미사일 사정권 안에 들어있는 미군의 전략거점들을 철거하거나 후방으로 재배치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 남(한국)과 일본열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 수많은 미군기지를 늘어놓고 10만 명이나 되는 대병력을 전진배치한 비대한 전략거점을 운영하는 것은 마치 북(조선), 중국, 러시아의 중거리 전략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미군기지들과 10만 명의 병력을 볼모로 묶어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략미사일이 제3세계로 확산됨에 따라서 현대전은 지상군이 아니라 미사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게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따라서 중무장한 지상군을 위주로 하여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 여기저기 늘어놓은 비대한 전략거점들은 쓸모가 없게 되었고 도리어 적성국의 미사일 공격목표로 변해버렸다.

이러한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은 미군의 전투력을 현대전에 적합하게 조정해오고 있다. 병력과 전쟁물자의 장거리 수송력, 군사장비의 장거리 타격력, 그리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항모전단을 중심축으로 하는 해양군사전략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13시간만에 미국 본토의 항공기를 투입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데, 중동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 본토의 항공기를 투입하기까지에는 40시간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초고속이 아닐 수 없다. 해양군사전략의 주력군이라고 할 수 있는 1개 항모전단은 항공모함 1척, 이지스급 미사일 구축함 2척, 순양함 1-2척, 구축함 2-3척, 초계함 1-2척, 핵추진 잠수함 1-2척, 지원함 3-4척, 그리고 비(B)-52 폭격기, 에프(F)-15이(E)/16 전폭기, 이에이(EA)-6비(B) 전자전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전의 양상이 바뀌었고 그에 대응하는 미군의 전략도 바뀌었으므로 비대한 미군기지들과 중무장한 지상군을 일정한 지점에 고착시켜놓은 기존의 동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전진배치 군사전략은 그 전략적 의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것이 고착된 전략거점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군사전략인 '동아시아 10만 병력 유지 전략'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면 미국이 해외 전략거점의 철거 또는 재배치 이후에 발생하는 군사력의 공백을 메워주는 대안으로 생각해낸 것은 무엇일까? 그 것이 바로 탄도미사일방어체계다. 지금 부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탄도미사일방어체계 구축사업은 10만 병력 유지 전략을 변경하는 문제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서 10만 병력 유지 전략을 변경한다는 말은 전략거점의 지상군 무력을 철수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탄도미사일방어체계의 구축은 동아시아·태평양지역 곳곳에 비대한 전략거점들을 늘어놓았던 기존의 군사전략을 폐기하도록 만들 것이며 따라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철수를 재촉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체계 구축계획을 격렬하게 반대하던 중국이 최근에 와서 그 문제에 대해 갑자기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 까닭은 그 구축계획이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 지상군을 철수하는 전략변경문제와 결부되어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째든 부시 정권이 탄도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해 가는 과정은 곧 주한미군을 자진하여 철수해 가는 과정과 일치하게 될 것이다. 부시 정권은 앞으로 머지않아 주한미군을 소수의 요원만 남겨두고 철수하는 '주한미군 자진철수'에 시동을 걸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부시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조·미 관계에서 경색국면이 나타나는 까닭은 부시 정권의 '10만 병력 재배치론'에 관한 전략구상이 미처 완결되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 부시 정권은 그 전략구상을 아직 완결하지 못했으므로 조·미 정치협상에 나서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기존의 군사전략을 변경하면서 10만 병력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로 등장하는 주한미군의 존재를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다른 지역으로 빼돌릴 만큼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다. 부시 정권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과정에 들어서면서 두 가지 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조치는 주한미군 철수 이후의 군사력 공백을 메워야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자기들에게 별로 쓸모가 없게 된 구식 군사장비들을 남(한국)에게 마구 팔아 넘기는 것이다. 구식 군사장비를 강제로 떠넘기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 연방하원의 민주당 원내총무인 리처드 게파트(Richard A. Gephardt), 연방상원의원들인 크리스토퍼 본드(Christopher S. Bond)와 진 카내헌(Jean Carnahan), 그리고 국방차관 지명자인 폴 월포위츠(Paul D. Wolfowitz)는 에프(F)-15 전투기를 만들고 있는 맥도넬 더글러스(McDonnell Douglas)사의 이익추구를 대변하여 김대중 정부에게 그 전투기 40-50 대를 사들이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 전투기는 30년 전인 1970년대에 나왔던 구식 기종이어서 지금 미국 공군은 도입을 중단하였고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도 2015년까지 모두 폐기처분하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더욱이 그 전투기의 부품을 생산해오던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이 부품 생산을 중단했고, 그 항공기를 조립하는 공장마저 남(한국)에 판매가 무산되면 즉시 가동을 중단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자기들이 폐기처분한 항공기를 남(한국)에게 팔아먹으려고 압력을 가하고 있고, 무력한 김대중 정부는 그 압력에 굴복하여 2008년까지 그 구식 항공기를 사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에 있다.

둘째 조치는 부시 정권이 앞으로 북(조선)과 정치협상을 벌이는 경우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가지고 북(조선)과 밀고 당기면서 북(조선)으로부터 양보를 받아내려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자기들이 주한미군을 철수할 테니 그 대신 북(조선)은 군사분계선 부근에 배치하고 있는 재래식 군사력을 후방으로 재배치하거나 감축하라는 이른바 '상호주의에 입각한 군축 요구'를 들고나올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시 정권은 동아시아·서태평양지역의 전략거점들을 다시 배치하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확정짓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미 정치협상을 벌이면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북(조선)의 군사력의 단계적 감축을 연계시키려고 할 것이다. 국무장관 파월이 군사분계선에 전진배치된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력은 "대량파괴무기와 마찬가지로 서울과 지역 안정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라고 지적한 것은 그러한 연계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의 상호군축 요구는 결국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력을 약화시키려는 무장해제의 요구와 다르지 않으므로 앞으로 미국이 그 문제를 제기한다 해도 타결점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행문제

제네바 기본합의서의 공약인 신포 경수로 건설공사를 완공해야 할 시한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2003년까지 지어주기로 공약한 경수로는 앞으로 10년이 지난 뒤에나 완공될 수 있을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하는 지경에 있다. 부시 정권은 공약 불이행에 따르는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클린턴 정권으로부터 고스란히 넘겨받고 말았다.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된 부시 정권이 지금에 와서 아예 제네바 기본합의 자체를 파기해 버리는 극단적 행동으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저들은 자기들에게 떠넘겨진 공약 불이행의 정치적, 경제적 부담을 어떻게 덜어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에게 남아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그것은 경수로 건설사업을 공약시한에 맞춰 추진하지 못하게 된 조건에서 조·미 고위급 정치협상을 통해서 그 내용의 일부를 수정하는 길밖에 없다. 부시 정권이 생각하고 있는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대한 수정방안은 경수로 건설을 재래식 발전소 건설로 대체하는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시 정권이 그러한 대체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첫째, 미국이 책임지고 지어주기로 공약한 신포의 경수로 2기는 핵무기를 만드는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위험한 원자로'다. 미국은 북(조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자체의 전력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지난 1990년대에 건설하고 있었던 흑연감속로가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위험한 원자로'라는 억지논리를 들이대면서 흑연감속로가 아니라 '안전한 원자로'인 경수로를 지어주겠다고 하였지만, 경수로도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기능에서는 흑연감속로와 별로 다를 바 없다. 신포의 경수로 2기는 지난 시기 북(조선)이 건설하고 있었던 흑연감속로보다 발전용량이 훨씬 더 커서 약 5.5배나 많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신포의 경수로 2기는 완공될 경우 핵폭탄을 해마다 자그마치 65 개나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함유한 사용후 핵연료를 축적하게 되는 '매우 위험한' 원자로다. 지난 시기 러시아가 이란에 경수로를 제공한다고 했을 때 격렬하게 반대했던 미국은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경수로를 제공하라고 요구하였을 때, 그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고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그렇다면 클린턴 정권은 왜 흑연감속로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경수로를 책임지고 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바보짓을 했던 것일까? 당시 클린턴 정권은 앞으로 신포에 경수로가 세워질 때쯤이면 사회주의 조선은 세계 지도 위에서 사라졌을 것이라는 이른바 '북(조선) 붕괴설'을 어리석게도 그대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체로 건설하고 있었던 흑연감속로를 포기하는 대신 경수로를 지어달라고 했던 북(조선)의 보상요구가 미국에게 얼마나 위험한 사태를 가져올 것인지를 별로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은 채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체결하였다. 이 것은 북(조선)의 정세를 오판한 클린턴 정권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였다. 부시 정권은 선행 정권의 결정적인 실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안간힘을 써야 하는 매우 곤혹스런 상황에 몰려 서게 되었다.

둘째,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행에서 부시 정권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은 미국의 까다로운 원자력법이다. 미국산 원자력 발전설비를 공급받은 나라에서 안전사고가 일어나는 경우 미국 정부가 그 피해에 대해 보상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부시 정권은 한(조선)반도에너지기구(KEDO)를 통해 미국산 원자력 발전설비를 공급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데, 미국의 원자력법은 미국이 수출한 원자력 발전설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하여 미국 정부가 보상하지 못하도록 규제함으로써 발전설비 제조회사의 발이 묶여있는 것이다. 지금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는 자사 제품인 3000만 달러짜리 발전소 터빈을 신포 공사현장에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부시 정권은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연방의회로 하여금 그러한 법적 규제를 변경시키거나 해제하도록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부시 정권이 연방의회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야 하는데, 지금 부시 정권은 집권 초기에 으레 나타나는 행정부 안의 정리되지 못한 어수선한 분위기와 연방의회를 대하는 미숙한 태도 때문에 그럴만한 형편에 있지 않다. 부시 정권이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행일정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한, 당분간 조·미 고위급 정치협상이 재개되고 진척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만일 북(조선)이 부시 정권과 연방의회의 갈등관계를 인정하고 연방의회의 법적 규제를 피해갈 수 있는 다른 방도를 조·미 협상에서 합의한다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부시 정권은 클린턴 정권이 신포 경수로를 약속시한에 맞춰 건설해주지 못하게 됨으로써 북(조선)의 동력수급체계에서 발생한 경제적 손실에 대한 보상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클린턴 정권은 북(조선)의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기 위하여 1995년부터 경수로가 완공되기까지 해마다 중유 50만 톤을 제공해야 했다. 그런데 중유값이 국제유가 상승기류를 타면서 1995년에 30만 달러였던 것이 올해에는 100만 달러로 크게 올랐다. 중유값은 계속 오를 것이며, 그에 따라 부시 행정부의 재정지출부담은 자꾸만 커질 것이다.

게다가 2003년 이후에는 경수로 완공의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여 발생하게 될 북(조선)의 전력난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도 생겨나게 되어 있다. 그 손실도 미국이 보상해주어야 한다. 클린턴 정권은 물러나기 직전 그 보상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국이 져야할 부담을 김대중 정권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려고 하였다. 이른바 대북 전력공급사업으로 알려진 일련의 계획들이 나오게 된 배경이 그 것이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 전력공급사업은 전력난을 겪고 있는 북(조선)이 전력 50만 킬로와트를 요구하였고 앞으로 연간 200만 킬로와트를 제공해달라고 요구하게 되어 추진한 것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나 사실은 김대중 정권이 조·미 관계에서 발생한 미국의 경제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맡게 되는 대리보상사업의 일환이었다. 북(조선)이 남(한국)에게 요구한 전력 200만 킬로와트는 미국이 신포에 지어주기로 약속한 경수로 2기의 발전량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 지금 부시 정권은 김대중 정권이 대북 전력공급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대북 전력공급사업이 추진되면서 남북 사이에서 화해국면이 조성되는 것은 부시 정권의 당면요구에 배치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종합하면, 부시 정권은 선행 정권이 추진해왔던 포용정책과 그 것을 실현해 가는 페리 프로세스를 파기하지 않을 것이며, 비록 서두르지 않겠지만 계승할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부르킹스 연구원의 대외정책연구 담당 객원연구원 조엘 위트(Joel Wit)가 2001년 3월에 발표한 논문 「미국과 북조선(The United States and North Korea)」에서 부시 정권의 북(조선) 정책에 대해서 '신중한 낙관론(cautious optimism)'을 결론으로 내놓은 것은 그러한 사실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2001년 3월 9일자 기사에서 부시 정권이 올해 하반기쯤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4)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과 김대중 정권의 화해·협력정책

현 시기 조·미 관계의 특징은 부시 정권이 페리 프로세스의 추진일정을 보류함으로써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먼저 챙기려는 데서 생겨난 경색국면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처럼 조·미 관계에서 경색국면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가장 커다란 불안감을 느낀 쪽은 김대중 정권이다. 김대중 정권은 2002년의 대선일정을 눈앞에 두고 있으므로 정국이 본격적인 대선국면에 들어서기 이전인 올해 안에 남(한국) 대중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비상조치를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책략은 화해·협력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밖에는 없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자본축적의 위기에 빠지면서 매우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 남(한국) 경제가 그 전처럼 잘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경제파탄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대중의 지지율을 화해·협력정책으로 만회해보겠다는 것이 김대중 정권의 전략구상이다. 그런데 부시 정권이 등장하면서 조·미 관계에서 경색국면이 조성되기 시작하자 대선일정을 앞두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는 김대중 정권은 매우 불안하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의 심복인 임동원 국정원장을 서둘러 워싱턴에 파견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의 심복을 통하여 북(조선) 정책과 관련한 부시 정권의 견해를 듣는 한 편,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 속에서 화해·협력정책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선국면을 앞두고 있는 올해에 대북 전력공급사업 추진, 국가보안법 부분개정, 남북 교통망 복원, 이산가족 상봉사업, 남북 장관급(상급) 회담 개최 등을 밀고 나감으로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제2차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을 원만히 성사시키고 그로써 남북관계를 최고조의 분위기로 올려놓고 재집권에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돌파구를 열어보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부시 정권이 쳐놓은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임동원 국정원장을 만났던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은 한결같이 올해 김대중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화해·협력사업의 일정을 보류하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부시 정권은 자기들이 조·미 정치협상을 시작하기 전에 남북의 정치협상이 먼저 시작되어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를 주도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 다급해진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2001년 3월 6일부터 9일까지 김대중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함으로써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른 한 편, 부시 정권이 조·미 관계에서 경색국면을 조성하자 북(조선)도 그에 대한 대응책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북(조선)은 경색국면을 조성하려는 워싱턴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한 편, 남북의 장관급(상급) 회담을 추진하기로 한 일정을 일단 보류하는 비상조치를 취하였다. 조·미 관계가 경색국면에 묶여있는 조건에서 남북의 장관급(상급) 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조·미 관계가 경색국면으로 들어서고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사업 일정이 보류되자 남(한국)의 반통일세력은 마침내 공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은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정책을 전면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그들은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반대하고, 국가보안법 체제를 유지·보존하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정책이 너무 앞서 나가고 있으므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느니, 북(조선)은 변하지 않았는데 퍼주고만 있다느니 하는 따위의 궤변을 떠벌이면서 차츰 몰락해가는 자기들의 운명을 잠시라도 붙잡아보려고 날뛰고 있다. 그러나 반통일세력은 조·미 사이에서 힘의 관계에 의하여 결정된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화해와 협력, 자주와 통일을 향하여 흐르고 있는 것을 되돌리거나 멈춰 세울 힘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일시적인 경색국면을 틈타 반역의 음모를 꾀하고 있는 반통일세력은 결국 발붙일 자리를 찾지 못하고 몰락할 것이다.

(2) 민족민주운동의 전략·전술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조·미 관계에서 일시적으로 조성된 경색국면과 그에 따른 김대중 정권의 화해·협력사업 일정의 보류,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나온 반통일세력의 준동, 지금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이처럼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 속에서 민족민주운동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나올 수 있으나, 우선 중시해야 할 것은 민족민주운동이 자기의 전략적 목표와 전술적 목표를 구분하여 생각하는 예리한 분별력을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민족민주운동은 조·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거,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 실현을 4대 정치과제로 세우고 그 것을 위하여 투쟁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4대 정치과제들 가운데 전략적 목표는 무엇이고, 전술적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정세는 4대 정치과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정치과제들을 전략·전술의 관점에서 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4대 정치과제들 가운데 연방제 통일 실현이 전략적 목표라는 점은 명백하다. 조·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거, 국가보안법 철폐는 연방제 통일 실현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한 전술적 목표들이다. 조·미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정치과제는 조·미 수교에 포괄되는 과제라고 볼 수 있고, 또한 주한미군 철거라는 전술적 목표에도 포괄될 수 있으므로 전술적 목표로서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다고 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민족민주운동이 지향해오고 있는 전략적 목표는 연방제 통일 실현이고, 그 것의 전술적 목표는 주한미군 철거와 국가보안법 철폐다.

1)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은 민족민주운동의 전략적 목표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지금까지 민족민주운동이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것을 전략적 목표로 명확하게 제시한 것은 올해 들어 전국연합이 제시한 것이 처음이었다. 주한미군 철거와 국가보안법 철폐는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전술적 목표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자주화와 민주화의 전략적 요구에 복무하는 전술적 요구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을 철거하는 투쟁은 민족자주위업에 복무하는 투쟁이며,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투쟁은 민중민주위업에 복무하는 투쟁이다. 이 두 갈래의 투쟁은 자주화와 민주화의 최종적, 통합적 완성단계인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전략적 목표를 지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오늘 민족민주운동이 주한미군을 철거하는 투쟁을 벌이는 목적과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투쟁을 벌이는 목적은 한결같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전략목표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철거투쟁과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이 승리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전략적 요구가 실현되면 그 것은 곧 연방제 통일이 실현되는 것이다. 남(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우리 나라는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강국이 될 것이며, 외세의 눈치를 보지 않는 통일강국이 될 것이다. 이로써 민족의 자주성을 완성하기 위하여 지난 100년 동안 끊임없이 전개해오고 있는 민중의 민족자주화운동은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민족민주운동의 모든 투쟁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과 완전히 일치한다.

2) 민족통일전선의 형성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문제는 지금 당면정세 속에서 민족민주운동이 주한미군 철거와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두 가지 전술적 요구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많은 힘을 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조·미 관계의 경색국면에서 민족민주운동은 주한미군 철거투쟁에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더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더 많은 힘을 실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부시 정권은 동아시아 10만 병력 유지전략을 자기의 요구에 따라 변경하려 하고 있고 머지 않아 군사전략이 변경되면 주한미군을 철수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부시 정권이 주한미군을 철수해 가는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협상은 북(조선)과 부시 정권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의 주한미군 철거투쟁은 그 협상에서 북(조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주는 보조역량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주한미군이 철수된다고 해서 국가보안법 체제가 자동적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 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교체하고 참된 민주사회를 건설하는 것은 민족민주운동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그러므로 당면정세 속에서 민족민주운동은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더 힘써야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은 남(한국)의 반통일세력을 제압하고 소멸하기 위한 투쟁이다. 국가보안법과 6.15 공동선언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투쟁이다. 국가보안법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성사시키는 투쟁이다. 국가보안법은 그 법을 개정하려는 김대중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 완전히 철폐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서 민족민주운동이 승리하려면 반통일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전술을 세우고 완강한 실천력으로 이를 추진해야 한다. 반통일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가장 위력적인 전략은 무엇일까? 그것은 민족통일전선전략이다. 이 전략이 실천적 운동방식으로 전개되는 경우 그 것을 민족대단결운동이라고도 부른다. 그 전략과 그 운동은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과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세력이 공동의 적을 반대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공조하는 전략과 운동이다.

2000년 6월에 이루어졌던 평양회담과 6.15 공동선언 채택은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과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세력이 공동의 적인 반통일세력, 민족분열세력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고 민족통일전선을 구축한 역사적인 사변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회담을 성사시키고 6.15 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남북의 정부당국 사이에서 상층 통일전선을 이루어냈지만 그 것은 아직 전선의 공고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층 통일전선이 공고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 원인은, 상층 통일전선이 평양회담이라는 한 차례의 정치협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원인은, 김대중 정권의 권력기반이 취약할 뿐 아니라 정권 내부에도 화해·협력정책을 반대하거나 그 정책수행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세력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그 정책을 추진하는 동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현 정권 내부에 화해·협력정책을 반대하는 세력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국가보안법으로 민족민주운동의 조국통일사업을 금압하는 사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셋째 원인은, 지금 부시 정권이 조·미 관계에서 조성한 경색국면 때문에 상층 통일전선의 추진일정에 일단 제동이 걸렸으며 반통일세력은 그러한 상황을 틈타고 전세를 역전시키려는 도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민족민주운동은 무엇을 위해 힘과 열정을 쏟아야 할까? 오늘 민족민주운동 앞에는 이미 형성된 상층 통일전선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그와 더불어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업이 주어졌다. 민족민주운동이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과업을 수행하려 할 때,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은 국가보안법 체제다. 그러므로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투쟁은 곧 국가보안법 철폐투쟁과 일치된다.

그렇다면 아직 공고하지 못한 상층 통일전선을 공고하게 하는 방도는 무엇일까? 그 것은 올해 민족민주운동이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반통일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고 그 세력의 준동을 제압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게 되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루어낸 상층 통일전선이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과업은 6.15 공동선언을 전민족적 범위에서 실현해 가는 투쟁에 의하여 그 성패가 좌우된다. 올해 민족민주운동은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를 각계층 대중의 마음속에 새겨 넣고 그 선언을 실현하는 길에 각계층 대중 자신이 나서게 하는 조직·정치사업에 달라붙어야 한다.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사업은 민족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며 민족대단결운동의 중심축으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은 6.15 공동선언에 따라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세력과 공조하여 공동의 적인 반통일세력을 고립시키고 그 세력이 의존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체제를 타격하는 투쟁을 벌어야 할 것이다. 그 투쟁의 승리는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에게는 물론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세력에게도 공동의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바로 이 것이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민족민주운동이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세력과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의하여 공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김대중 정권이 정권 재창출의 야망에 사로잡혀 화해·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민족민주운동이 화해·협력 추구세력과 공조하는 것은 결국 집권세력의 정권 재창출을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김대중 정권이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건 아니면 무슨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하건 상관없이 6.15 공동선언을 존중하고 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하는 한, 민족민주운동은 공동의 적을 타도하고 공동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들과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김대중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고 화해·협력정책을 파기한다면 민족민주운동은 그 정권과 공조할 수 없고 또 공조해서도 안 된다. 그 때에는 상호대립성만이 남게 된다.

다른 한 편에서 어떤 사람들은 김대중 정권의 반민중적 성격을 거론하면서 민중의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민족민주운동이 어찌 그러한 정권의 화해·협력정책과 공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민중의 계급적 이익을 쟁취하는 과제를 중심에 두고 본다면 민족민주운동과 김대중 정권은 도저히 공조할 수 없는 대립관계에 있다. 그렇지만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고 민족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제를 중심에 두고 본다면 민족민주운동은 김대중 정권의 화해·협력정책과 공조할 수 있고 또 공조해야 한다. 대립적 측면만을 보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민족통일전선전략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원래 민족통일전선전략이란 차이와 대립성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전략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전략이다.

그러므로 지금 민족민주운동은 공동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며 행동해야 한다. 상층 통일전선이 아직 공고하지 못하고, 하층 통일전선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현재의 조건에서 민족민주운동이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세력과 공조하는 것은 민족민주운동의 승리를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민족민주운동이 상층 통일전선을 공고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과업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도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도가 떠오르게 된다.

첫째 방도는 민족민주운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성사시키고 제2차 최고당국자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조직·정치사업을 전개하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제2차 최고당국자 회담의 개최는 6.15 공동선언의 실현과정을 더욱 심화·발전시키고 지난해에 형성된 상층 통일전선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제2차 최고당국자 회담을 개최하게 되면 그 것은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연합·연방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국가연합 방안은 통일국가를 건설하려는 통일방안이 아니라 남북이 서로 사이좋은 이웃나라로 살아가자는 국가공존방안이므로 그 방안 자체는 연방제 통일방안과 배치된다. 그렇지만 국가연합 방안은 남북 사이의 화해·협력을 실현하는 의의를 지니고 있으므로 연방제 통일방안을 실현하는 과정 안에 얼마든지 포괄될 수 있다. 그러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여 열리는 제2차 최고당국자 회담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될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은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방안을 포괄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제2차 최고당국자 회담(상층 통일전선)에서 합의·확정된 연방제 통일방안을 남(한국)의 각계층 대중이 즉각적으로 지지·찬동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연방제 통일이 강제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합의에 의한 통일이므로, 남(한국)의 각계층 대중이 연방제 통일방안에 합의하고 그 것을 지지·찬동해야 합의에 의한 통일이 실현될 수 있다. 지금까지 남(한국)의 집권세력들은 한결같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적화통일 방안'이라고 왜곡하면서 그 자체에 대한 논의와 의사표시마저 금압해왔으므로 남(한국) 대중의 의식구조에서 그러한 부정적 분위기가 가셔지는 데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민족민주운동은 남(한국)의 각계층 대중 속에 들어가서 연방제 통일이 '적화통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연방제 통일방안은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방안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것을 포괄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정당한 통일방안이라는 것, 그리고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이룩하는 유일무이한 통일방안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교양·선전하는 사업을 벌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전국연합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성사시키고 환영하는 특별결의문을 발표하고 그를 위하여 대중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김대중 대통령의 화해·협력정책은 비록 부시 정권의 경색국면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제2차 최고당국자 회담 개최를 어떻게 해서든지 성사시키려 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성사시키고 제2차 최고당국자 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당면과업에 대하여 민족민주운동과 김대중 정권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민족민주운동이 화해·협력을 추구하는 김대중 정권과 공조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성사시키면, 그 것은 연방제 통일과 화해·협력을 반대하는 공동의 적인 반통일세력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땅을 밟는 역사적인 그 날, 그를 환영하는 민족의 환호성은 세상을 뒤덮을 것이며,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최고당국자 회담을 개최하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합의를 민족 앞에 내놓는 그 순간 삼천리 강산은 민족의 통일열기 속에 잠길 것이다.

둘째 방도는 반민주, 반통일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이는 것이다. 지금 국가보안법 문제를 둘러싸고 완전 철폐세력, 부분 개정세력, 유지·보존세력 사이에서 날카로운 대립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완전 철폐세력인 민족민주운동의 당면과업은 부분 개정세력과 공조하여 유지·보존세력을 고립·타격함으로써 국가보안법 체제를 무너뜨리고 참된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있다. 지난해 평양회담에서 이루어진 상층 통일전선은 완전 철폐세력과 부분 개정세력이 정치적 화해의 길로 들어섬으로써 국가보안법 체제를 크게 뒤흔들어놓았다.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하층 통일전선은 남(한국)에서 완전 철폐세력이 부분 개정세력과 공조하여 국가보안법을 유지·보존하려는 세력을 고립·타격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남(한국)의 232개 단체가 망라된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의 적극적인 투쟁이 기대된다.

셋째 방도는 올해 6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두 달 동안에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각이한 사회단체들과 정치세력들을 연대의 틀로 묶어내고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이는 것이다. 지금 남측과 해외동포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연대기구의 결성은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열쇠다. 3월 15일 서울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가 결성된 것은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문을 열어놓은 것이었다. 얼마 전 전국연합이 북과 해외의 동포들에게 공식 제안했던 민족대토론회를 개최하는 사업은 하층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3월 10일과 11일 남측의 노동계급을 망라하고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그리고 북측의 노동계급을 망라하고 있는 사회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의 대표자들이 금강산에서 만나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노동자 회의'를 결성하기로 합의한 것은 올해 하층 통일전선사업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쾌거였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한(조선)반도 전체의 농민계급을 망라하고 있는 남측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북측의 조선농업근로자동맹의 대표자들이 남북농민 통일대토론회와 통일 단오명절놀이를 공동으로 개최하자고 합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하층 통일전선이 노동계급과 농민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운동세력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948년 4월에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정당·사회단체 연석회의는 국토분할과 민족분열을 항구화·고착화하려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와 그 추종세력의 책동을 반대하는 전민족적 투쟁에서 하층 통일전선의 승리를 이룩한 위대한 역사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그 때 이승만 정권은 소·미 양군 철수와 민족대단결을 반대하는 정권이었기 때문에 상층 통일전선이 형성될 수 없었다.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2000년 6월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은 화해와 협력, 그리고 자주와 통일로 나아가는 상층 통일전선의 승리를 이룩하였다.

올해 2001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과 제2차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의 성사를 통하여 상층 통일전선의 승리를 더 한 층 공고하게 만들고, 1948년에 이룩했던 하층 통일전선의 역사적 의의를 계승·발전시킴으로써 반통일세력을 파멸로 몰아넣고 재생의 여지가 없게 소멸하여 상층 통일전선과 하층 통일전선의 동시적 승리, 결정적 승리를 이룩해야 할 시기다. 이 역사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자기 모든 것을 다 바쳐 투쟁할 가장 힘있는 주체는 민족민주운동밖에 없다. (2001년 3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