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

- 조선로동당 연구를 위한 서설 -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말

(2)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쌓기 위한 항일혁명기 20년간의 투쟁

(3)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합법칙성에 관한 이론

(4) 대중적 당을 건설하기 위한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의 결합

(5) 주체형의 혁명적 당건설에 관한 이론

(6) 당의 영도에 관한 이론

(7) 맺는 말

(1) 들어가는 말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사회주의 조선이 '고난의 행군'길을 헤쳐가면서 "숨쉬기도 힘든 형편"에 놓여있던 1995년 10월 10일은 조선로동당이 창건 50주년을 맞이한 날이었다. 그 무렵 평양에는 당창건 5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기념비가 세워졌다. 조선로동당의 당마크에 들어있는 마치와 낫과 붓을 거대한 화강석 조형물로 세워놓은 그 대형기념비 전면에는 '조선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인 조선로동당 만세!'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이 구호는 당창건 45주년이 되던 1990년 10월 3일 김정일 총비서가 발표한 논문 「조선로동당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이다」에 기초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로동당을 이끌고 있는 김정일 총비서의 가르침에 의해서 그 기념비에 새겨진 구호는 조선로동당이 사회주의 조선의 인민이 이룩한 모든 승리를 조직하고 향도해온 주체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조선로동당이 걸어온 반세기의 역정을 한 마디로 집약하고 총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로동당은 스스로를 '로동계급의 혁명적 당'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이 겪어온 당건설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조선로동당의 역사적 경험을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자기 인식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더 중요한 사실은, 조선로동당은 스스로를 '로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 당은 로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이다."고 밝혔다.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졁.鑁>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 1982년 10월 17일, 『김정일 선집』 제7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6], 267쪽)

여기서 '새 형'이라는 개념에 강조점이 찍혀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강조점에 들어 있는 의미는, 조선로동당이 자기를 다른 나라의 혁명적 당들과 구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로동당이 강조하고 있는 '새 '?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사회주의 조선에서 '새 형'이라는 말은 '주체형'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조선로동당을 한 마디로 특징지으면 주체의 혁명적 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고 말했고,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고급당학교 창립 40돐에 즈음하여 집필한 강의록, 1986년 5월 31일,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4], 14쪽)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 당은 주체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자기 인민의 리익과 자기 나라의 현실에 맞게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혁명활동을 벌려나가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고 말했다.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졁.鑁>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 『김정일 선집』 제7권, 267쪽)

이미 씌여 왔던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라는 개념 앞에 '새 형', '주체형'이라는 강조점을 찍게 된 까닭을 알려면, 무엇보다 먼저 조선로동당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정의는 "로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온갖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자주적인 정치조직"(「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조선로동당 창건 47돐에 즈음하여 집필한 론문, 1992년 10월 10일, 『김정일 선집』 제13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8], 178쪽)이라고 밝힌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에 명백하게 나타나있다. 이 정의가 가지는 의미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어디까지나 자주노선을 확립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주노선의 확립이라는 말은 혁명적 당이 자기의 건설과 활동에서 주체를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표현대로 하면, "당 건설과 활동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기 머리로 사고하고 자기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책, 같은 쪽)

만일 조선로동당이 반세기가 넘는 당 건설과 활동에서 자주노선을 확립하지 못하였더라면, 사회주의 집권당과 사회주의 제도가 줄이어 무너졌던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세계사적 대격동기에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 당도 지난날 당 건설과 활동을 남이 하는대로 하였더라면 피해를 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책, 같은 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서 말하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는 데서 반드시 요구되는 자주노선은 수정주의, 교조주의, 사대주의의 발호와 침습을 전적으로 배격하고 있다. 말하자면, 양자의 관계는 절충의 여지가 없는 대립관계다.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는 데서 가장 위험한 주적은 부르주아 사상이 아니라 수정주의, 교조주의, 사대주의다. 사회주의 사상과 부르주아 사상이 대립적이지만, 부르주아 사상만으로는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위험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부르주아 사상의 반영물인 수정주의야말로 "사회주의 위업 수행에서 주되는 위험"이 된다는 것이다. 수정주의는 "제국주의자들과 자본가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저들의 비위에 맞게 뜯어고친" 것으로, 사회주의 위업을 수행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사상적 도구"라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에 따르면, "수정주의는 공산주의 운동 안에 나타난 부르죠아 사상의 반영으로서 자본주의 나라에서는 사회주의에로의 혁명적 이행의 길을 가로막았다면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자본주의 복귀의 길을 열어주면서 제국주의자들의 <평화적 이행>전략의 사상적 도구로 리용되여왔다."고 한다. (같은 책, 179-180쪽)

격동의 20세기를 넘어서 희망의 21세기에 들어선 사회주의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선로동당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로동당을 모르고서도 사회주의 조선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말은 거짓이다. 이 글은 사회주의 조선을 '강성대국'의 미래로 이끌어가고 있는 조선로동당을 연구하기 위한 서설(prolegomena)이다.

(2)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쌓기 위한 항일혁명기 20년간의 투쟁

도도도도쿄대(東京大)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이 조선로동당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소홀히 여기고 있는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조선로동당이 창건된 조직·사상적 기초가 김일성 주석이 영도한 항일혁명투쟁에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 당 창건을 위한 조직사상적 기초는 김일성 동지의 령도 밑에 20성상에 걸치는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마련되고 공고화되였다."고 지적했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 1995년 10월 2일, 단행본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5], 2쪽)

사회주의 조선에서 조선로동당 창건의 역사적 근원을 항일혁명투쟁으로 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로동당 창건의 역사가 항일혁명투쟁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은 조선로동당을 연구하는 데서 왜 중대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우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세계적 범위에서 진행되었던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되짚어보아야 한다.

러시아 10월 혁명이 성공한 뒤 1920년대 이후 세계는 노동계급의 혁명운동과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이 급격히 강화·발전되는 것을 체험하였으며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출현을 목격했다. 자본가 계급과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압박과 착취를 받고 있던 수억만 노동계급과 식민지 민중들이 지구 위 곳곳에서 낡고 썩은 사회제도를 타파하는 변혁의 주체세력으로 앞다투어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혁명과 반혁명, 민족해방운동과 제국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대립과 투쟁은 바야흐로 세계적 범위에서 격렬한 불꽃을 일으키며 진행되고 있었다. 그 대립과 투쟁의 전선에는 민족의 자주독립 쟁취와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라는 자주시대의 깃발을 들고나선 수억만 민중들이 흘린 고귀한 피땀이 흐르고 있었다.

포악하기로 악명이 높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싸웠던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은 바로 그 대립의 축도였으며, 그 투쟁의 최전선이었다. 혁명과 반혁명, 민족해방운동과 제국주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는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에서 가장 첨예하게,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였던 것이다. 20세기에 일어났던 모든 반제혁명운동사에서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운동만큼 그토록 간고하고 험난한 길을 개척해나가야 했던 변혁운동은 없었다.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운동 앞에 제기된 과제들은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식민지 반봉건사회를 타파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길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들이었다. 이 과제들을 해결하는 길은 기성의 어느 이론이나 기존의 어느 경험을 통해서 열리지 않았다. 그 길은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운동세력이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초행길이었다.

192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이 속속 창건되었고, 그 당들이 이끄는 변혁운동의 물결이 일어났지만, 어느 당도 민중이 변혁의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의 실천적 요구에 맞는 과학적인 당건설 이론을 제시하지 못했다. 1840년대에 유럽지역의 노동계급이 투쟁했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하여 성립된 맑스주의 당건설 이론도, 1910년대에 승리했던 러시아 10월 혁명의 실천적 경험을 반영하여 성립된 레닌주의 당건설 이론도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운동에서 제기되었던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들을 제대로 풀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노동계급의 당에 관한 소부르주아적, 개량주의적 이론을 타파하고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에 관한 이론을 처음으로 정식화한 사람은 러시아 10월 혁명을 영도한 수령 레닌이었다. 인류역사에 '혁명의 세기'로 기록된 20세기가 첫 문을 열었던 때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1904년에 세상에서 빛을 보았던 저 유명한 책 『한 걸음 전진 두 걸음 후퇴』에서 레닌은 혁명적 당을 노동계급의 계급적 조직의 최고형태라고 정식화하면서 부르주아지의 반동권력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권을 확립함으로써 낡고 썩은 자본주의 사회를 폐절하고 새로운 무계급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수행해야 할 역사적 임무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당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는 과업에 관한 정통이론으로, 모범적 경험으로 공인되고 있었던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이론과 소비에트식 당건설의 역사적 경험은 1930년대 식민지 민중의 반제혁명운동에서 시대적 제한성과 실천적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맑스-레닌주의 시대의 당건설 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억압·착취제도를 혁명투쟁으로 타파·청산하고 새로운 사회주의 제도를 세우려는 계급투쟁을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수행해야 하는 역사적 임무로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제국주의의 식민지 체제와 반봉건제도를 타파하려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반제혁명운동에 그대로 들어맞는 이론이 되지 못하였다. 노동계급의 당은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투쟁 뿐 아니라 식민지 민중의 반제혁명운동,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회주의 사회가 세워진 뒤에 혁명과 건설이 제기하는 과제들을 해결하는 보편·타당한 이론과 경험을 줄 수 있는 그런 혁명적 당이어야 했던 것이다.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프롤레타리아혁명운동의 초기 단계에서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진행되었던 반제혁명운동의 초기단계에서는 그 혁명을 이끌어 나갈 영도세력이 아직 미약했으므로 여러 나라의 혁명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영도조직인 코민테른이 존재해야 하였지만, 사회변혁운동이 날로 강화·발전되어 나라와 민족마다 자기의 혁명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갈 혁명운동세력이 장성하면서부터 코민테른은 차츰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에 이르는 전환기에 식민지 조선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겠다고 나선 각이한 정치세력들은 이론의 제한성과 실천적 한계를 안고 있었던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이론과 경험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심각했던 문제는 기존의 당건설 이론을 답습하는 행태가 차츰 굳어지면서 교조주의적 병폐가 생겨났다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운동 앞에는 기존의 당건설 이론을 답습하는 행태와 교조주의적 병폐를 극복하고 자주적으로 새로운 형의 혁명적 당을 창건해야 하는 아름찬 과업이 제기되었다. 그 무렵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운동은 이 난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이 난제는 1926년 10월 17일에 김일성 주석이 동만주에서 결성했던 '타도제국주의 동맹(졁.鑁)'에서 그 해결의 길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제국주의를 타도하자」, 타도제국주의 동맹 결성모임에서 한 보고, 1926년 10월 17일, 『김일성 전집』 제1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5], 1-8쪽)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타도제국주의 동맹을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졌던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적 근원으로 보고 있다. 타도제국주의 동맹은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의 출발점이었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당조직은 아니었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졁.鑁>의 결성은 우리 나라에서 종전의 당과 구별되는 새 형의 당, 주체형의 혁명적 당창건을 위한 투쟁의 출발점으로 되였다. <졁.鑁>의 강령은 우리 당의 강령의 기초로 되였고 <졁.鑁>가 내세운 자주성의 원칙은 우리 당건설과 당활동의 원칙으로 되였으며 <졁.鑁>가 키워내기 시작한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은 우리 당 창건의 골간으로 되였다. 이것은 우리 당이 다름 아닌 <졁.鑁>를 뿌리로 하여 자라났다는 것을 말하여준다."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졁.鑁>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 『김정일 선집』제7권, 254쪽)

그러면 사회주의 조선의 역사에 나오는 최초의 혁명적 당조직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타도제국주의 동맹이 결성된 지 4년 뒤인 1930년 7월 3일에 동만주의 카륜에 있는 진명학교 교실에서 결성된 '건설 동지사'였다. (「당조직 결성에 즈음하여」, 카륜에서 진행된 당조직결성회의에서 한 연설, 1930년 7월 3일, 『김일성 전집』 제1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5], 47-53쪽) 김일성 주석은 "카륜에서 결성된 첫 당조직은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시원으로 되였으며 그후 련이어 조직된 당조직들의 원형으로 되였습니다."고 지적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5쪽) 건설 동지사라는 "소박한 명칭"을 가진 이 최초의 혁명적 당조직은 김일성 주석의 독창적인 당창건 방침에 따라 결성되었는데, 그 성원은 차광수, 김혁, 최창걸, 계영춘, 김원우, 최효일, 김리갑, 김형권, 박근원, 리제우 등이었다고 한다. 건설 동지사는 "타도 제국주의 동맹의 강령과 규약에 조선 공산주의자들의 최종목표와 당면과업이 밝혀져 있었고, 또 카륜회의에서 채택된 혁명로선과 전략적 방침들이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가야 할 길과 행동규범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므로 당조직으로서 자체의 강령과 규약을 따로 채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 주체형의 혁명적 당건설,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8], 176쪽 참조)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이 영도한 항일혁명세력이 다른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과 달리 처음부터 당의 중앙조직을 선포하는 기성 방식을 따르지 않고 먼저 당의 기층조직인 건설 동지사를 결성한 까닭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첫째는, 다른 나라의 영토인 만주에서 "혁명투쟁을 하는 조건에서 조선혁명을 령도할 당조직을 결성하면서도 국제당의 1국1당제 원칙에 모순되지 않도록" 하였던 것이며, 둘째는, "중국 땅 안에서 우리의 당중앙을 내와가지고 중국당과 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층당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확대강화해나감으로써 조선공산주의운동과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도를 보장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같은 책, 179쪽)

그 무렵, 건설 동지사로부터 시작된 기층당조직 건설사업은 빠른 속도로 확대·추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은 "우리는 첫 당조직을 모체로 하여 당조직들을 급속히 확대해나갔습니다. 우리는 짧은 기안에 두만강 연안을 비롯한 넓은 지역에 수많은 기층당조직을 내오고 그에 대한 조직지도체계를 세웠습니다."고 말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5쪽)

사회주의 조선의 당창건사를 보면, 건설 동지사가 결성된 때로부터 4년이 흐른 1934년은 김일성 주석이 영도한 항일혁명세력이 자기의 당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갖는 시점으로 기록되어있다. 김일성 주석의 영도에 따라 1932년 4월 25일에 창건된 반일인민유격대는 1934년 3월 9일에 중국인 항일유격대와 함께 동북인민혁명군이라는 이름의 조·중 항일연합군 체제로 편제되면서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반일인민유격대는 처음부터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무력이었고 중국인 항일유격대는 중국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무력이었다. 1934년 3월에 반일인민유격대가 중국인 항일유격대와 손을 잡고 조·중 항일연합군을 창설하게 된 까닭은 조·중 두 나라 민중의 공동의 주적인 일본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항일혁명의 과업이 서로 일치하였기 때문이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각기 자기 나라의 혁명을 위하여 투쟁해오던 조·중 두 나라의 인민유격대들이 항일혁명이라는 공동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손잡은 비정규전 무장력의 총칭이었다. 반일인민유격대가 개편되면서 항일혁명운동의 무대에 등장한 조선인민혁명군은 동북인민혁명군이라는 조·중 항일연합군 체제 안에서는 '제2군 독립사'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1936년 3월에 동북항일연군으로 다시 개편되었고, 1942년 7월에는 항일연군교도려로 개편되는 과정을 밟아갔지만, 그러한 편제의 변천과정 속에서도 조선인민혁명군은 변함없이 자기의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을 책임진 혁명무력의 주체로서 일관되게 투쟁하였다.

그런데 와다 하루키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왜곡된 논리를 내놓았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의 무장력인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 그리고 소련 극동군이 주도한 항일연군교도려로 이어진 항일연합군만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인 유격부대들은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 항일연군교도려 안에서 독자적 지위를 갖지 못했으므로 조선인민혁명군은 없었으며, 그들은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 시기에는 중국인 군사간부의 지휘·명령을 따랐고, 항일연군교도려 시기에는 소련인 군사간부의 지휘·명령을 따랐던 하부무력단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항일혁명의 주체성과 자주노선을 부정하고 조선혁명의 주체세력을 중국혁명세력의 일부로 규정하려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비판과 반론을 제기할 가치조차 없는 궤변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은 이 문제를 해명하여야 당창건의 역사적 근원에 대해서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와다 하루키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의 왜곡된 주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 항일연군교도려로 이어졌던 항일연합군은 여러 나라 정규군들이 중앙집권적으로 통합된 지휘명령체계에 의해서 전투를 수행했던 그런 연합군 체제가 아니라 각기 독자적인 지휘명령체계를 가진 유격부대들이 상호결합한 '특수한' 연합군 체제였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와다 하루키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은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 항일연군교도려로 이어졌던 항일연합군 체제를 마치 여러 나라 정규군들이 통합된 일반적인 의미의 연합군 체제, 또는 다국적군 체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그들의 착각은 기동성과 은밀성을 보장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유격대의 특성 때문에 유격대는 정규군과 달리 작전지휘 및 작전통제에서 유격대 스스로의 독자성이 강한 무력단위로 비정규전을 수행한다는 군사상식조차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연군은 그에 망라되어 있던 조·중 항일유격대들이 때로 "합동총지휘부"를 구성하여 대규모 연합작전도 전개한 적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각기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김일성 동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제8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8], 254-255쪽 참조) 조선인민혁명군의 또 다른 명칭이었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라는 특이한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중국공산당 만주성위나 그 산하의 동만특위의 지휘·통제를 받는 하부무력단위가 아니라, 독립적인 무력단위였다. 그런데도 와다 하루키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은 조·중 항일연합군 체제 안에 들어간 조선인 항일유격대가 마치 중국인들의 휘하에서 지휘·통제를 받은 하부단위였던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였다.

둘째, 와다 하루키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도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대로,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격대는 처음부터 중국혁명이 아니라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무력의 주체라는 자주노선을 일관되게 밝혔고, 그러한 자주노선에 따라 투쟁하였다. 조선인 항일유격부대들 스스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 유격대를 지지·옹호하는 민중들도 이처럼 조선혁명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무력의 주체를 가리켜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불렀다. "중국인민들 앞에 가서는 항일연군이라고 하고 조선인민들 앞에 가서는 (특히 조선 내지에 가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임춘추,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하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60], 146쪽, 이종석, 「북한 지도집단과 항일무장투쟁」, 『해방전후사의 인식』 제5권 [서울: 한길사, 1989], 82쪽에서 다시 옮김) 동일한 실체에 대해서 조선인 항일유격대원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중국인 항일유격대원들은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던 것은, 동일한 실체를 두고 중국인들은 항일연군교도려로, 소련인들은 소련 붉은 군대 제88특별저격여단으로 각각 달리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와다 하루키는 1980년대 후반기로부터 1990년대 초에 걸쳐 중국에서 간행된 책들을 "가장 중요한 연구와 신뢰할 수 있는 귀중한" 연구자료로 삼았는데, 중공당사자료출판사(中共黨史資料出版社)가 1985년부터 1987년에 걸쳐 여덟 권으로 펴낸 『동북항일연군사료총서(東北抗日聯軍史料叢書)』와 1991년에 나온 『동북항일연군투쟁사(東北抗日聯軍鬪爭史)』 등이 자신의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본요건"이라고 하면서, 그 자료들에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공식명칭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존재는 실증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창청(常城), 리홍원(李鴻文), 주지엔화(朱建華)가 1986년에 흑룡강교육출판사(黑龍江敎育出版社)에서 펴낸 『현대동북사(現代東北史)』에 나오는 중국인 항일유격대 지휘관이었던 저우파오중(周保中)의 발언을 인용한 대목을 보면,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속해 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을 단독편성"해야 한다는 기록이라는 나온다. 여기서 단독편성이라는 개념은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을 조선인 부대와 중국인 부대로 나누어 편성한다는 뜻인데, 조선인민혁명군은 자기들이 분리되는 안을 반대하였다고 한다. (이종석, 같은 글, 같은 책, 80-82쪽 참조) 이것은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가 동일한 실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와다 하루키가 이러한 사실을 무시한 것은 자기의 관점에 들어맞는 사료를 선별적으로 선택한 오류로 보아야 한다. 중국의 자료에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공식명칭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존재가 실증될 수 없다는 주장은 단순무지한 논법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서 밝혀야 할 중요한 점은, 당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나 그 산하의 동만특위는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중국혁명에만 복무하라고 요구하였지만 그러한 부당한 요구는 조선인민혁명군에게 통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은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및 동만특위와 갈등을 빚었으며 그것 때문에 때로는 어려움도 겪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므로 중국인들이 자기들의 문헌에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 공식명칭을 적어놓을 리 만무했으며, 그들의 기억 속에도 그 이름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인 유격대 지휘관들 가운데 남달리 조선혁명을 지지·성원했던 인물인 저우파오중 같은 사람의 기억 속에서나 겨우 지워지지 않았을 뿐이다.

조선로동당의 당창건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 이 글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어려운 조건에서도 주체성과 자주노선을 지켜왔음을 이처럼 자세하게 밝히고 있는 까닭은, 항일혁명기에 당조직을 건설하는 투쟁을 담당했던 주체는 조선인민혁명군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자기의 군사활동에서 주체성과 자주노선을 확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조직을 건설하는 정치활동에서도 주체성과 자주노선을 견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김일성 주석은 1934년 3월 9일 왕청현 마촌에서 열린 반일인민유격대 군사정치간부회의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할 데 대하여」라는 연설(『김일성 전집』 제1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5], 225-233쪽)을 통해 조선인민혁명군 부대 안에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당위원회가 조선인민혁명군 안의 당조직들 뿐 아니라 조선 영토 안의 당조직들도 통일적으로 지도하도록 하는 새로운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김일성 주석은 1934년 3월부터 5월까지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선인민혁명군으로 개편하는 사업과 새로운 당조직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병행하여 추진하였고, 같은 해 5월 31일에는 왕청현 다홍왜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당대표대회를 소집하고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191-192쪽 참조) 김일성 주석은 그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일제의 야만적인 헌병경찰통치는 조선에서 당재건의 모든 가능성을 박탈해버리였습니다. 당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투사들의 대부분이 지금 철창 속에 갇혀있습니다. 적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은 것은 오직 무력의 담보를 받고 있는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뿐입니다.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가 조선혁명 전반에 대한 령도적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리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김일성 동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4], 299쪽)

또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통일적 지도가 가지는 성과에 대해서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지적했다.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가 통일적 령도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각급 당조직들에 대한 지도체계가 정연하게 서고 무장투쟁과 전반적 조선혁명에 대한 당적 령도가 확고히 실현되게 되였습니다. 모든 당조직들이 조직적으로 결속되고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지도 밑에 움직이게 되였습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고급당학교 창립 40돐에 즈음하여 집필한 강의록, 1986년 5월 31일,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4], 6쪽)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는 당조직을 건설하는 정치활동에서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의 지령을 받았던 하부단위가 아니라 주체성과 자주노선을 견지하였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동북항일연군조차도 관내에 있었던 중국공산당 중앙위의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로 매우 고립된 상황에 있었고, 동북항일연군에 망라된 무력단위들도 각 지역별로 독자적인 군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회고하였다.

"중국공산당은 동북항일련군의 활동에 대해 중앙집권적이며 통일적인 지도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상지나 주보중과 같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형식으로 당중앙과의 련계를 모색하고 또 독자적인 동북당조직도 구상하였지만 실현되지 못하였고 서로 병립된 북만성위나 길동성위, 남만성위가 각각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형편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동북항일련군도 로군별로 제각기 활동을 벌리지 않으면 안 되였습니다." (『김일성 동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제8권, 113쪽)

1930년대 후반에 이르자 조선과 만주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의 지도를 받는 기층당조직들이 차츰 늘어났다. 그런데 만주의 광활한 산야를 무대로 항일유격전을 수행하고 있었던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는 어느 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을 수 없는 조건이었으므로 각지역의 기층당조직들을 지도하는 새로운 지도조직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기층당조직을 지도하는 지역별 지도조직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1936년 3월에 결성된 동만당 공작위원회, 같은 해 12월에 결성된 국내당 공작위원회, 1937년 2월에 결성된 장백현 당위원회가 그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195쪽 참조)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는 당조직들을 지지·성원하는 대중을 조직화하는 사업에서도 성과를 얻어 당창건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였는데, 그것은 1936년 5월 5일에 김일성 주석의 영도에 따라 결성된 조국광복회였다. 이 조직의 결성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서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지적했다.

"당창건의 대중적 지반을 꾸리기 위한 투쟁은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과 밀접히 결부되여 진행되였습니다. 1936년 5월 5일 조국광복회가 창건되였는데 이것은 당의 대중적 지반을 강화하는 데서 획기적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 사변이였습니다. (줄임) 조국광복회 조직망은 급속히 확대되였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일대는 물론, 국내 깊이까지 조국광복회 하부조직들이 광범히 조직되였습니다.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은 매개 지방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각이한 명칭으로 조직되였습니다. (줄임) 그리하여 각계각층 군중에 대한 당적 령도를 실현하는 데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고 당창건을 위한 대중적 지반이 더욱 강화되였습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11쪽)

그러나 이 당조직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갈수록 심해졌으며,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일제의 '대토벌' 공세도 극에 달했다. 1940년대에 들어오면서 코민테른과 소련군부는 동북항일연군과 소련 극동군 일부를 소련 극동군사령부의 휘하에 묶어 새로운 항일연합군을 창설하려는 일방적 제안을 내놓았으나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연군은 이를 반대하였다. 이처럼 소련의 일방적인 제안이 제동에 걸려 거의 실현성이 없게 된 상황에서 김일성 주석은 조선, 중국, 소련의 국제연합군을 창설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김일성 동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236쪽 참조)

김일성 주석의 국제연합군 창설안이 지지와 찬동을 받아 1942년 봄 중순경에 조·중·소 3개국 군사간부들은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의 독자성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전제하에 국제련합군을 창설할 데 대하여 결정"하였다. (같은 책, 239쪽) "그리고 형식상 국제련합군은 쏘련원동군 독립88려단으로 부르도록 하고 부대의 대외번호는 8461보병 특별려단으로 하기로 하였"는데, "국제련합군은 그 존재와 활동의 비밀을 보장하며 위장을 철저히 하기 위해 축소하여 편성하는 원칙을 세워 려단규모로 조직하게 되었"으며, "적들의 첩보암해활동으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 군사정치간부들의 신변을 보호할 목적으로 군사관 등급도 실제보다 낮게 상징적인 것으로 정하였"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1로군 력량으로 편성된 제1지대의 지휘를 맡았"는데, "제1지대는 그 내용으로 볼 때 국제련합군의 조선지대"였다고 회고했다. (같은 책, 241쪽)

국제연합군의 조선지대가 된 조선인민혁명군은 소련 영내에서 전투력을 보강한 다음, 만주와 조선 북부지역에 진출하여 전투를 벌이며 항일혁명투쟁을 계속하였다. 3개국 국제연합군이 결성된 이후의 시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조선인민혁명군이 이 시기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독자적인 당창건을 목적으로 하는 자주적인 정치조직을 결성하였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조선인민혁명군은 "1945년 7월 말 그 동안 일국일당주의 원칙에 따라 자신들이 속해 있었던 중국공산당으로 분리해 나와 해방 후 조선에서 당건설과 해방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조선공작단을 결성했다."고 한다. (彭施魯, 『在蘇聯北野營的五年』, 『黑龍江黨史資料』 第10輯, 1987년, 77쪽, 이종석, 『조선로동당연구』 [서울: 역사비평사, 1995], 161쪽에서 다시 옮김) 조선공작단의 단장은 김일성 주석이었다. (喬樹貴, 「在艱苦的年代里」, 『延邊歷史硏究』 1, 1986년, 83쪽, 같은 책, 161쪽에서 다시 옮김)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1926년의 타도제국주의 동맹 결성을 출발점으로 하여, 1930년의 건설 동지사를 비롯한 기층당조직들의 결성과정을 거쳐 1934년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당조직들의 결성, 그리고 1945년 해방 직전의 조선공작단 결성으로 끊임없이 이어진 근 20년 동안의 역사, 이것이야말로 그토록 불리하고 힘겨웠던 항일혁명기에 조선혁명의 주체역량이 마련하였던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조직·사상적 기초였다고 한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침략자들은 패망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지난 20년에 걸친 투쟁에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삼고 해방된 조선에서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45년 10월 10일에 김일성 주석의 영도로 북조선공산당이 창건되었다. 조선로동당은 이 날을 당 창건 기념일로 삼고 있다. 당시 신문자료도 북조선공산당이 김일성 주석의 영도로 창건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일보』 1945년 11월 5일자, 1면, 이종석, 위의 책, 172쪽, 각주 56 참조) 북조선공산당 창건에 관련하여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육성된 공산주의 핵심들을 각 지방에 파견하여 지방당조직들을 정비확대하고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을 묶어세우도록 하면서 당창건 준비사업을 다그쳐나갔으며 마침내 1945년 10월 10일에 강력한 당중앙지도기관인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창설하고 우리 당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습니다. 우리 당의 창건은 력사상 처음으로 되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의 탄생이였으며 로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오랜 기간에 걸치는 투쟁의 빛나는 결실이였습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13-14쪽)

어떤 자료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가 1946년 4월쯤 당이름을 북조선공산당으로 바꾸었다고 기록했으나,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지음,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하권, [서울: 중앙일보사, 1993], 195쪽) 그것은 오류다.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의 창설은 곧 북조선공산당의 창건이었다.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당이름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38도선 확정이라는 외세의 영토분할정책이 통일적 당을 창건하는 추진과정에서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일성 주석이 영도한 항일혁명세력이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사업은 외세의 영토분할정책과 충돌함으로써 당시 38도선 이남지역에까지 확대되기 힘들었다. 다시 말해서, 공산주의세력과 모든 진보세력들을 탄압하고 있었던 미군정 치하의 38도선 이남지역에까지 진출하여 조선공산당을 창건하고 서울에 당의 중앙기관을 세울 수는 없었던 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게다가 서울에서는 1920년대부터 사대주의와 종파주의에 빠져있던 일부 공산주의자들이 조선공산당이라는 급조된 간판을 내걸고 스스로를 '당 중앙'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김일성 주석은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당명을 가진 당중앙지도기관을 평양에 세우는 조치를 취하였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미제의 남조선 강점으로 인하여 조성된 복잡한 정세에 비추어 모든 유리한 조건들이 지어져 있는 북조선에 당 중앙기관을 두어야" 했던 것이다. (『조선로동당력사교재』,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64], 129쪽, 이종석, 위의 책, 170쪽, 각주 43에서 다시 옮김) 북조선공산당은 비록 당명을 북조선공산당이라고 했으나, 창건 직후부터 자신을 '중앙국'이라고 부르면서 '중앙국'이라는 직인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지음,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상권 [서울: 중앙일보사, 1992], 124쪽) 이것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역사적 정통성과 주체역량이 서울이 아니라 평양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공산주의자들의 당창건 역사를 파쟁사로 왜곡하고 있는 와다 하루키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은 박헌영이 주도했던 서울의 남조선공산당을 '조선공산당 중앙'이라고 부르면서 북조선공산당을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북조선공산당이 마치 서울의 '조선공산당 중앙'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세력이 만든 지역당조직인 것처럼 왜곡한 궤변이다. 저들의 주장이 궤변이라는 사실은, 서울의 조선공산당과 평양의 북조선공산당의 관계를 서울의 남조선신당당과 평양의 조선신민당의 관계와 비교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1946년 7월 14일 서울에서는 백남운이 주도하는 남조선신민당이 창당되었는데, 평양에는 김두봉이 주도하는 조선신민당이 1946년 2월 26일에 이미 결성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백남운은 서울에서 독자적으로 남조선신민당을 창당하였다. 백남운의 남조선신민당은 김두봉의 조선신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세력이 만든 지역당조직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조선공산당은 1920년대의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다고 말했던 데 비해, 북조선공산당은 당을 창건했다고 말했다.

북조선공산당의 당원은 1945년 12월 17일 현재 4,530명밖에 되지 못했다. 이에 비해 38도선 이북지역에서 조만식을 대표로 내세운 우파세력이 만든 조선민주당은 당원 46만 명을 가진 거대한 정당이었다. 당시로 말하면 나라 안팎의 정세가 매우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던 시기였고, 북조선공산당은 아직 조직·사상적 단결력이 약한 청소한 당이었으므로 사업에서 결함과 오류를 드러내고 있었다. 당 건설사업 앞에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김일성 주석이 추진한 사업은 두 가지였다.

첫째, 당의 조직·사상적 역량을 강화·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1945년 12월 17일과 18일 제3차 중앙확대집행위원회를 소집한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은 당 사업에서 나타난 결함과 오류를 지적·비판하고 당의 새로운 진로와 과업을 제시하였다. 그가 제시한 것은 "우리 나라에 통일적 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며 북조선을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키는" 과업, "남북조선의 모든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과의 통일전선을 결성하고 그것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과업, "도시와 농촌의 가장 우수한 근로자들, 특히 선진적 로동자들을 당대렬에 받아들"이는 과업, "공장, 기업소들에 당세포를 조직하고 그것을 조직적으로 강화"하는 과업, "당간부들을 양성, 배치, 교양하는" 과업, 그리고 "각 도, 시, 군, 면 당위원회들에서 당의 당면과업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당대표회의를 진행"하는 과업 등이었다. (「북조선공산당 각급 당단체들의 사업에 대하여」,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에서 한 보고, 1945년 12월 17일, 『김일성 전집』 제2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418-419쪽 참조)

둘째, 노동계급의 당과 소자산계급의 당을 합당하여 광범한 인민의 지지를 받는 대중적 당을 재창당하는 것이었다. 김일성 주석의 영도에 따라 마침내 1946년 8월 28일 북조선공산당원 27만 6천여 명과 조선신민당원 9만여 명을 대표한 당대표 801명이 모인 가운데 북조선로동당이 창립되었다. 창립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은 「근로대중의 통일적 당창건을 위하여」(『김일성 저작집』 제1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6], 366-381쪽)라는 제목으로 보고를 하였으며, 당의 강령과 규약이 채택되었고 북조선공산당 기관지 『정로』와 조선신민당 기관지 『전진』을 통합하여 당 기관지『로동신문』을 발간하고 당의 정치이론지 『근로자』를 발간할 것을 결정하였다. 오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과 중앙위원회 정치이론지 『근로자』는 이 때부터 발간되어오고 있다.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의 합당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사회주의 조선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력사에서 로동계급의 당과 소자산계급의 정당이 합당한 례는 그 어느 나라에도 없었으며 그것은 사실상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로 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258쪽)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소자산계급의 당인 조선신민당이라 하더라도 북조선공산당과 합당하면 노동계급의 사상과 이념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두 당을 합당하여 북조선로동당을 창건하는 "독창적인 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같은 책, 같은 쪽)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는 사업은 외세에 의한 국토분할정책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남북 두 지역에서 나뉘어져 각각 추진되었다. 북조선로동당은 김일성 주석의 영도에 따라 장성·강화되고 있었던 반면, "남조선로동당은 주체36(1947)년부터 지하에 들어가고 주체38(1949)년 중엽에 이르러서는 미제의 탄압과 박헌영 간첩도당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전면적 파괴에 직면하게 되였으며 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아래당조직들에 대한 지도력을 거의나 잃게 되였다. 남조선로동당을 그대로 두고서는 당조직들을 보존할 수조차 없게 되였다." (같은 책, 266쪽) 이러한 현실은 남북으로 나뉘어진 두 당을 하나로 합당하여 통일적 당을 건설하는 시급한 과업을 제기하였다. 이처럼 "남조선에서 당조직들이 파괴되고 그 지도적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북반부에 들어왔으며 남반부에서 당의 합법적 활동의 가능성이 완전히 말살된 조건에서" 김일성 주석은 "남반부에서의 당활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북과 남의 로동당을 합당할 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시였다."고 한다. (같은 책, 같은 쪽)

그리하여 1948년 8월 평양에서는 남북조선로동당 련합중앙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 연합지도기관의 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이었다. (선우몽령, 『인민정권의 수립과 그의 공고화를 위한 조선로동당의 투쟁』, 62쪽, 이종석, 위의 책, 209쪽에서 다시 옮김) 이듬해인 1949년 6월 평양에서는 남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련합전원회의가 소집되었고, 이 회의에서 "련합중앙지도기관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로 개편"하였다. 이것은 외세에 의한 국토분단 때문에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두 당을 통합한 형식을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군정의 탄압으로, 그리고 사회주의 조선에서 '간첩종파도당'으로 낙인찍힌 박헌영, 이승엽이 저지른 당 내부 파괴책동으로 거의 무너진 남조선로동당을 북조선로동당이 흡수·편입한 것이었다. 마침내 사회주의 조선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완성단계로 이끌어낸 조선로동당은 혁명적 당의 정통성을 확립함으로써 "조선근로인민대중의 운명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는 유일한 령도적 정치조직으로, 북남 전체 근로인민대중의 통일적 당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267쪽)

(3)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합법칙성에 관한 이론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의 당창건의 합법칙성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은 1930년대 초에서 1940년대 중반에 이르는 항일혁명기에 창시되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1930년 6월 30일 동만주의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들이 모였던 카륜회의에서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를 그 독창적인 이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조선혁명의 진로」,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한 보고, 1930년 6월 30일, 『김일성 전집』 제1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5], 36-46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카륜회의 뒤로 김일성 주석은 1930년 7월 3일에 「당조직 결성에 즈음하여」, 같은 해 10월 1일에 「국내 당조직의 당면과업에 대하여」를 발표하였고, 1936년 2월 27일에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강화발전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임무」, 1937년 11월 10일에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를 발표하였고,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20일에는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 건설에 대하여」를, 같은 해 9월 20일에는 「새 조선 건설과 공산주의자들의 당면과업」을 발표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합법칙성에 관한 이론을 전개·심화하였다고 한다. 사회주의 조선의 해석을 살펴보면, 김일성 주석이 이 저작들에서 정립한 당창건의 합법칙성에 관한 이론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혁명적 당을 자주적으로 창건하는 방침이다. 이것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기성의 리론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자주적으로 당을 창건할 데 대한 리론"으로 정립되었다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당창건 방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주적으로 당을 창건하는 것이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졁.鑁>의 전통을 계승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 『김정일 선집』 제7권, 254쪽)

둘째, 조직·사상적 기초를 쌓아올려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방침이다. 이것은 "튼튼한 조직사상적 기초를 쌓은 토대 우에서 당을 창건할 데 대한 리론"으로 정립되었다고 한다. 이 문제에 관하여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마련하는 것은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요구입니다. 로동계급의 당을 건설하는 사업은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조직사상적 기초를 마련함이 없이는 혁명적 당을 창건할 수 없으며 설사 당을 창건한다 하더라도 그런 당은 혁명의 참모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으며 반혁명의 공세 앞에서 파멸의 운명을 면할 수 없습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7쪽)

이에 대해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로동계급의 당건설과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공고히 다지는 것이다. 로동계급의 당은 로동계급의 사상에 기초하여 조직된 정치조직으로서 그 조직사상적 기초를 어떻게 쌓는가 하는 것은 그 존망을 결정하는 근본요인으로 된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73쪽)

여기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비서가 말하고 있는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기초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그것은 "당조직을 내오고 당조직 지도체계를 철저히 세우며 공산주의 핵심들을 키워 당의 조직적 골간을 튼튼히 꾸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7쪽)

셋째, 혁명적 당을 상향식으로 창건하는 방침이다. 이것은 "기성의 창당방법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당의 기층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확대강화하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할 데 대한 리론"으로 정립되었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22쪽) 김일성 주석은 "우리는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충분한 준비 밑에 당의 기층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확대강화하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할 데 대한 방침을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였습니다."고 말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8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이러한 독창적인 이론에 의해서 당을 창건했기 때문에 조선로동당을 기존의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과 구별되는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이라고 부르는 근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지난 20세기 1백년동안 세계 곳곳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을 자기의 지도사상으로 하는 로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건설해온 간고분투의 역사가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김정일 총비서가 지적한 대로,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력사는 로동계급의 당건설과 활동력사라고 말할 수 있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71쪽) 레닌은 1903년 7월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대회에서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을 결집시켜 '이스크라'의 사상, 조직, 전술적 원칙을 고수·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제2코민테른과 질적으로 다른 혁명적 당을 창건하였다. 독일에서는 1918년 12월 30일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의 영도에 따라 스팔타커스단이 독일사회민주당의 우익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결별을 선포하고 독일공산당을 창건하였다. 일본에서는 1922년 7월 해외파 가다야마 센과 국내파 도쿠다 규이치 등이 주도하여 일본의 공산주의 정치조직들을 일본공산당으로 통합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1921년 1월 21일 이탈리아사회당 안에서 혁명적 좌익세력이 개량주의적인 우익세력과 결별하면서 이탈리아공산당을 창건하였다. 몽골에서는 1921년 3월 쑤흐바따르와 쵸이발산이 지도한 혁명조소들을 통합하여 몽골인민당을 창건하였다. 불가리아에서는 1919년 5월 불가리아사회민주노동당의 혁명적 좌익이 기회주의적인 우익 지도층과 결별하여 불가리아공산당을 창건하였다. 폴란드에서는 1918년 12월 폴란드 및 리트비아왕국 사회민주당과 폴란드사회당이 폴란드공산주의노동당으로 통합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1925년에 조선공산당을 창건하였다.

그런데 세기의 문턱을 넘어 21세기에 들어선 오늘, 지난 시기에 앞을 다투어 건설되었던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세상이 알고 있는 대로, 수많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이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고 역사의 무대에서 아예 사라지고 말았거나, 정치적 영도력을 잃어버리고 비틀거리고 있다. 변혁과 진보를 위해서 투쟁했던 혁명세력들에게 그토록 힘들고 어려웠던 20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혁명의 시기'를 거쳐오면서 한때 왕성한 생활력과 전투력을 지녔던 당들이 혁명에 성공하여 사회주의 사회의 집권당으로 되고 난 뒤에 강화·발전되기는커녕 도리어 변질·약화의 길로 밀려가고, 결국 무너지고 말았던 근본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사회주의 조선의 해석에 따르면, 그 근본원인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한 이론의 제한성과 그러한 당을 창건하고 발전시켜온 역사적 경험의 실천적 한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고 있는 이론의 제한성과 실천의 한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먼저, 사회주의 조선에서 지적하고 있는 선행 이론의 제한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리론은 주로 로동계급의 당이 정권을 잡기 위하여 투쟁을 벌리던 시기의 리론으로서 거기에는 정권을 잡은 로동계급의 당이 당건설과 활동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같은 책, 176쪽) 그런데도 사회주의 진영의 여러 당들은 사회주의 집권당으로서 자기가 처하여 있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자주적인 당건설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도리어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이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교조주의로 흘러갔다.

그 다음으로, 실천의 한계라는 것은 당의 조직적 기초가 없거나 부실한 조건에서 노동계급의 당중앙부터 선포하는 하향식 방법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지난 시기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이론을 가지고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했던 해묵은 방법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고무하는 의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직적 기초가 부실한 허약한 체질의 당을 창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무릇 이론과 실천은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다. 제한성을 지닌 이론에서 올바른 실천이 나올 리 없다. 사회주의 조선의 해석에 따르면,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이론의 제한성이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과정에서 실천적 한계를 드러내었는데, "그것을 기화로 현대 수정주의자들이 로동계급의 당을 변질의 길로 이끌어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결국 "현대 수정주의자들은 변화된 환경과 조건에 맞게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리론을 발전시킨다는 구실 밑에 그 혁명적 진수를 거세하고 당을 체계적으로 약화시켰으며 당의 령도적 기능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같은 책, 177쪽) 김정일 총비서의 분석에 따르면, 그렇게 된 까닭은 "사회주의 집권당이 사회주의 건설을 잘 조직령도하지 못하여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옳게 발양시키지 못하고 당 안에서 관료주의와 같은 낡은 사업 방법과 작풍, 뢰물행위를 비롯한 부정부패현상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책, 174쪽) 인용문이 좀 길지만, 선행 이론을 답습했던 사회주의 집권당들이 교조주의, 수정주의에 빠져 결국 변질하고 몰락하게 된 것에 대한 김정일 총비서의 분석을 옮겨 적으면 이렇다.

"관료주의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첫 시기에도 나타났다. 일군들의 머리 속에 낡은 사상 잔재가 남아있고 사회주의 사회를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 조건에서 낡은 사업방법과 작풍이 나타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였다. 그러나 그 때에는 자기들을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시켜준 로동계급의 당과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로동자, 농민들의 지지가 높았으므로 일군들의 낡은 사업 방법과 작풍이 혁명의 전취물을 위태롭게 할 정도까지 후과를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 속에서 계급적 각성이 무디여지고 생활상 요구가 더 높아진 반면에 혁명적 세련이 부족한 새 세대들이 간부대렬에 들어오면서 관료주의가 더 심하게 나타나고 사회주의 건설의 첫 시기에는 얼마 없었던 부정부패현상까지 적지 않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은 로동계급의 당과 사회주의 사회의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낡은 사상잔재와 부르죠아사상에 기초하여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당이 조직사상사업을 강화하고 투쟁을 벌리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당들이 당조직사상사업에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은 결과 관료주의와 부정부패현상과 같은 불건전한 요소들을 극복할 수 없었다. 한편 인민대중을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교양사업을 잘 하지 않고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에 문을 열어놓다보니 적지 않은 군중이 정치적 각성이 무디여져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반사회주의적 책동에 속아넘어가게 되었다. 사회주의 배신자들과 반동들이 <민주주의>와 <공개성>의 간판 밑에 사회주의 집권당 안에서 나타난 결함을 사회여론을 오도하는 데 리용하였지만 인민대중이 사회주의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였더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혁명분자들의 꾀임에 넘어가 당과 정부를 반대해나서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책, 174-175쪽)

이것이 20세기말에 이르러 사회주의 집권당들의 몰락과 사회주의 체제의 좌절이 일어나게 된 근본원인에 대한 김정일 총비서의 분석이다. 이 분석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은 일찍이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당 창건의 합법칙성에 관한 이론에서 해답이 밝혀졌다는 것이 사회주의 조선의 견해다.

 

(4) 대중적 당을 건설하기 위한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의 결합

 

사회주의 조선의 해석에 따르면,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의 결합은 김일성 주석이 제시하고 구현한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기 위한 독창적인 이론문제들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계급적 요구를 반영하는 계급정당의 기본성격을 고수하면서 전체 인민의 이익과 요구에 복무하는 폭넓은 대중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독창적인 이론이라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우리는 계급로선과 군중로선을 옳게 결합시켜 극소수의 적대분자들을 고립시키고 진압하는 동시에 광범한 대중을 교양개조하여 당주위에 더욱 굳게 단결시켜야 합니다."고 말했다. (「현 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에서 한 보고」, 1966년 10월 5일,『김일성 저작집』 제20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2], 432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당창건 과정에서부터 당의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원만하게 결합시키면서 강화·발전되었다고 한다. "만일 로동계급의 당이 계급로선과 군중로선을 인위적으로 분리시키고 그 어느 하나만을 절대화할 때에는 당활동에서 좌우경적 편향을 면할 수 없게 되며 당건설과 혁명위업 수행에 커다란 해독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118쪽) 이 독창적인 이론과 경험 때문에 조선로동당이 기존의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과 구별되는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이라고 부르는 근거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우리 시대의 요구와 우리 혁명의 구체적 현실을 과학적으로 통찰하시고 대중적 당건설리론을 내놓으심으로써 혁명적 당건설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시였다."고 말했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4쪽)

사회주의 조선의 해석에 따르면,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의 결합하여 대중적 당을 창건하는 이론은 8.15 해방 이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까지의 시기에 정립되었다고 한다. 그 해석에 따르면, 그 이론은 김일성 주석이 1945년 10월 10일에 발표한 「우리 나라에서의 맑스-레닌주의 당건설과 당의 당면과업에 대하여」, 같은 해 12월 18일에 발표한 「당의 공고화를 위하여」, 1946년 8월 29일에 발표한 「근로대중의 통일적 당의 창건을 위하여」, 같은 해 9월 9일에 발표한 「북조선로동당 창립대회의 총화에 관하여」, 1948년 3월 28일에 발표한 「북조선로동당 제2차 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 밝혀져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이 결합될 수 있는 근거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일까? 그 결합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는 "원래 로동계급의 계급적 요구는 근로인민대중의 근본리익을 대표하며 로동계급의 역사적 사명은 로동계급 자신 뿐 아니라 전체 근로인민대중의 사회적 해방을 실현하는 것"이므로 "로동계급의 당은 마땅히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리익을 대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대중적 당으로 건설되는 것이 합법칙적"이라는 해석에서 제시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74쪽) 노동계급의 당은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추구하는 당이 될 수 없으며 인민대중의 이익을 실현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당은 노동계급의 계급적 요구와 지향을 위하여 존재하고 투쟁하는 정치조직체이기는 하지만, 노동계급만을 위한 당으로 국한된다면 광범한 민중이 사회역사변혁의 주체로 등장한 자주시대의 새로운 역사적 요구에 부응할 수 없게 되며 광범한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당을 근로하는 인민들의 대중적 당으로 건설하는 것은 우리 당 건설의 기본방침"이라고 전제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 시기에는 당을 일정한 계급의 리익을 대표하고 옹호하는 계급적 정치조직으로, 계급투쟁의 무기로 보아왔다. 당은 일정한 계급의 요구와 지향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계급의 선봉대이지만 당을 일정한 계급만을 위한 당으로 건설하여서는 혁명적 당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없으며 광범한 인민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광범한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한 우리 시대의 력사적 조건은 로동계급의 당을 전체 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며 근로하는 모든 계급, 계층의 선진분자들을 망라하는 대중적 당으로 건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각계각층 군중이 다 사회주의적 근로자로 전환되고 사회계급적 구성이 더욱더 단일화되여가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로동계급의 당을 대중적 당으로 건설하는 것이 더욱 절실한 요구로 나선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5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물론 로동계급의 당이 정권을 잡지 못한 조건에서는 적아 간의 력량관계에 따라 대중적 당을 건설하는 데서 일정한 제한성을 가질 수 있으며 따라서 혁명정세의 요구에 맞게 당건설 사업을 능동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자주시대의 노동계급의 당을 건설하는 기본원칙은 노동계급을 비롯한 전체 인민대중의 이익을 대표하는 당을 건설해야 하며, 모든 계급과 계층의 선진적 구성부분을 망라하는 대중적 당으로 건설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당이 가지는 성격은 "로동계급의 전위투사들을 핵심으로 하고 로동계급과 함께 농민과 지식인의 우수한 선진분자들을 자기 대오에 널리 망라하며 로동계급적 립장에 튼튼히 서서 로동계급과 광범한 근로대중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모든 활동을 벌려나가는 혁명적이며 대중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40쪽) 김정일 총비서는 이 문제를 사상적 측면에서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 사상은 로동계급의 계급적 리념이지만 한 계급의 리익만을 대표하는 사상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반영한 인류의 보편적인 사상이며 계급해방의 사상일 뿐 아니라 모든 민족과 전인류의 자주적 지향을 반영한 민족해방, 인류해방의 사상이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202-203쪽)

김정일 총비서에 따르면,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의 결합시키는 원리에 의하여 건설된 대중적 당인 조선로동당은 "당의 로동계급적 성격을 견지하면서 당대렬을 끊임없이 늘이고 당의 대중적 지반을 더욱 강화하게 되였으며 온 사회의 로동계급화 과정을 힘있게 다그쳐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 12쪽) 조선로동당이 1948년 3월에 제2차 당대회를 소집했을 때 당원수는 72만5,762명으로, 북조선공산당과 조선신민당이 합당할 때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1950년 6월에는 85만6,893명으로 늘어났다. 또한 당원의 계급구성에서 노동자와 빈농이 제2차 당대회를 소집했을 때는 합당할 때보다 각각 두 배로 늘어났다. 당세포조직도 급격히 늘어나서 제2차 당대회를 소집했을 때는 2만8,000여 개나 되었다. 1952년 11월 1일 현재 조선로동당원은 102만1,233명으로 늘어났는데 노동자가 22.2%, 빈농과 중농이 61.3%, 사무원과 학생 13.9%, 기타 2.6%의 구성비율이었다.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결합한 기초 위에서 대중적 당을 건설하는 이론과 관련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점은, 군중노선을 관철한다고 하여 계급노선을 약화·변질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당을 대중적 당으로 건설한다고 하여 당의 혁명적, 로동계급적 성격을 약화시키거나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6쪽) 그는 "로동계급의 당은 로동계급과 근로인민의 리익을 옹호하여 투쟁하는 혁명적 당이며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 가운데서 우수한 선진분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코 <전인민적 당>으로 될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주체의 당건설리론은 로동계급의 당건설에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지도적 지침이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 앞에서 한 연설, 1990년 10월 10일, 『김정일 선집』 제10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7], 280쪽) 실제로 조선로동당은 창건 이후 노동계급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여왔다. 조선로동당이 스스로를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당은 로동계급의 혁명적 당이며 따라서 로동계급은 계급적 성분상으로 볼 때 우리 당 간부의 기본표징입니다. 간부대렬을 꾸리는 데서 로동계급 출신 간부의 비중을 체계적으로 높여야 당이 자기의 계급적 성격을 변함없이 고수하고 로동계급의 전위부대로서의 역할을 원만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당은 간부의 기본원천을 로동계급 속에 두어야 하며 로동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로동자들, 특히 기간공업부문의 핵심로동자들을 간부로 많이 등용하여야 합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35쪽)

(5) 주체형의 혁명적 당건설에 관한 이론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의 독창적인 당창건 이론은 "로동계급의 당건설 력사에서 처음으로 당의 창건과 그 강화발전의 합법칙성을 과학적으로 밝힌 독창적인 리론이며 우리 시대 로동계급의 당건설의 정로를 명시한 과학적인 리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당의 구성성분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이다. 이것은 노동계급의 새 형의 당은 "로동계급과 농민 뿐 아니라 지식인을 당의 구성부분으로 규정하고 노동계급과 농민, 지식인의 선진분자들로 당대렬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지난 시기 소련공산당의 경우를 보면, 1천8백만 명 당원 가운데 노동자는 43.4%, 농민은 12.8%였던 데 비해 지식인은 43.8%나 되었는데도 소련공산당의 역사에서 지식인은 당의 구성부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로동당은 당의 구성성분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을 정립하고 이를 실현함으로써 "사회의 계급구성이 단일화되여가는 사회주의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에 맞게 당을 강화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었다."고 한다.

둘째, 당의 질적 발전과 공고화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이다. 이것은 "당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단결을 고수"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기존의 당건설 이론에서는 "당 안에서 종파주의와 기회주의를 반대하고 통일과 단결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사상리론적 론쟁이나 조직적 결렬에 귀착시켰"는데, 이것은 "당 안의 기회주의와의 투쟁의 하나의 방도이기는 하지만 그것으로써 기회주의가 뿌리뽑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24-25쪽)

김정일 총비서는 "당의 통일단결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 당 건설의 중심과업"이라고 지적했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8쪽) 또한 그는 "당의 가장 공고한 통일단결은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사상의지 및 도덕의리적 통일단결이다. 의무감에 의한 결합이나 실무적 단합은 오래 갈 수 없으며 혁명의 엄혹한 시련을 이겨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책, 189쪽)

사회주의 조선의 해석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이 당의 사상·의지적 통일과 단결을 이룩하는 문제에 대하여 독창적인 이론을 밝힌 저작들은 6.25 전쟁 시기와 전후 복구기에 정립되었다고 한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저작들은 1952년 12월 15일에 발표한 「당의 조직적 사상적 강화는 우리 승리의 기초」, 1955년 4월 4일에 발표한 「사회주의 혁명의 현 계단에 있어서 당 및 국가 사업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같은 해 12월 28일에 발표한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 1956년 4월 23일에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3차 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같은 해 12월 13일에 발표한 「사회주의 건설에서 혁명적 대고조를 일으키기 위하여」, 1958년 3월 6일에 발표한 「제1차 5개년 계획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라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에 따르면, "오늘 혁명적 당들과 인민들 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라고 한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71쪽) 그렇다면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들이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업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주체형의 혁명적 당건설에 관한 이론을 창시함으로써 이 어렵고 복잡한 물음에 해답을 주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이 창시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의 건설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것은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철저히 세우고 당의 령도적 역할을 강화하며 당사업 체계와 방법, 작풍을 개선하고 사람과의 사업을 강화할 데 대한 리론"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26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서는, 기존의 맑스-레닌주의 당건설 이론이 당건설에서 민주주의중앙집권제 원칙을 구현할 데 대한 이론을 제시하였지만 당 안에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문제는 제기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이 노동계급의 당에 관한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적 견해의 제한성을 극복하고 새롭게 제시한 이론의 핵심내용은 "로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수령의 혁명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계급의 선봉적 조직체입니다."고 한 말에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한 결론」, 1971년 11월 18일, 23일, 『김일성 저작집』 제26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4], 475쪽) 이것은 노동계급의 당을 노동계급의 계급적 이익을 옹호하는 계급적 정치조직으로 규정했던 기존의 맑스-레닌주의 리론을 발전·완성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당이 본질적으로 수령의 당이라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노동계급의 당은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결합된 정치조직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노동계급의 당은 곧 수령의 당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수령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사상적으로 결합되었다는 말은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노동계급의 당은 왜 노동계급의 계급성을 중심으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중심으로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노동계급의 수령의 사상과 영도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요구는 물론 전체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집대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수령은 노동계급을 비롯한 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리익의 대표자이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의 령도자"라고 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36쪽) 그러므로 노동계급을 비롯한 전체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계급적 이해관계를 하나로 통합시키고 그 혁명실천의 앞길을 밝혀주는 수령의 사상과 영도가 없이는 노동계급의 당이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로동계급의 당은 명실공히 혁명과 건설에서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실현하기 위하여 창건되고 강화되는 혁명과 건설의 무기"이며, "혁명과 건설에서 수령의 사상과 령도를 실현할 수 있는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 능력을 체현하고 있는 최고의 정치조직"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37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당의 혁명적 원칙은 그 당의 지도사상에 의해서 밝혀져 있다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당의 지도사상은 당의 투쟁목적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원칙과 방도를 밝혀주는 당의 기본리념이다. 당의 지도사상에 의하여 당의 성격이 규정되며 당의 건설과 활동의 기본방향이 규제된다. 당은 사상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정치조직인 것만큼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지도사상을 마련하는 것은 당건설에서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3쪽)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에 따르면,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여 건설되고 강화발전되여온 주체의 혁명적 당"이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 3쪽) 조선로동당의 지도사상이 주체사상이라는 말은 주체사상에 의하여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했다는 말이다. 그는 "당 안에서 사상과 령도의 유일성을 확고히 보장하는 것"이 조선로동당의 당건설의 근본원칙이라고 지적했으며,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7쪽) "당의 유일사상체계는 수령의 사상체계이며 수령의 령도체계"라고 말했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 7쪽) 또한 그는 "로동계급의 당은 전당이 수령의 사상으로 일색화되고 수령의 유일적 령도 밑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사상적 순결체로, 조직적 전일체로 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책, 같은 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당건설과 당사업의 원칙과 방법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사업의 기본은 사람과의 사업입니다. 다시 말하여 간부들과 당원들과 군중을 하나의 사상의지로 무장시켜 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며 그들을 당정책 관철에로 조직동원하는 사람들과의 조직정치사업이 바로 당사업입니다."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1970년 11월 2일,『김일성 저작집』 제25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3], 336쪽)

사회주의 조선의 해석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당사업의 기본은 사람과의 사업이라고 규정하고 간부들과의 사업, 당원들과의 사업, 군중과의 사업을 강화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줌으로써 사회주의 집권당인 조선로동당이 당사업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지도하였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당건설과 당사업의 원칙과 방법에 관한 독창적인 이론은 1960년대에 이르러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주의 집권당의 당사업에 관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해명한 독창적인 이론이 담겨있는 김일성 주석의 저작들은 1960년 2월 18일에 발표한 「새 환경에 맞게 군당단체의 사업방법을 개선할 데 대하여」, 1961년 1월 23일에 발표한 「당사업에서 주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교양하고 개조하며 단결시키는 것이다」, 같은 해 9월 11일에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4차 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1962년 3월 8일에 발표한 「당 조직사업과 사상사업을 개선강화할 데 대하여」, 1966년 10월 5일에 발표한 「현 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 같은 해 10월 18일에 발표한 「당사업에서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없애며 일군들을 혁명화할 데 대하여」, 1970년 7월 6일 「간부들 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며 혁명화하기 위한 사업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고 한다.

(6) 당의 영도에 관한 이론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노동계급의 당이 인민대중에 대한 자기의 영도적 역할을 강화하는 문제는 그 당이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강화한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당은 사회의 령도적 정치조직입니다. 당의 령도 밑에 로동계급과 근로인민대중의 정치활동이 진행되며 혁명과 건설이 전진합니다. 인민대중의 정치활동을 통일적으로 틀어쥐고 령도하는 여기에 사회에서 로동계급의 당이 차지하는 독특한 지위와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21쪽)

이것은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단지 계급투쟁의 무기라고 보았던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적 견해를 넘어서 그 당을 노동계급을 포함한 전체 근로인민대중의 활동을 혁명과 건설로 이끌어 가는 영도적 정치조직으로 인식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당은 계급투쟁의 무기일 뿐 아니라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이라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이 수행하는 영도적 역할의 중요성에 관하여 김일성 주석은 "혁명과 건설의 성과는 전적으로 당의 령도적 역할에 달려있으며 당의 령도를 강화하는 것은 혁명과 건설에서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결정적 담보"라고 지적했으며, (「당 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 당조직 일군 강습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 1974년 7월 31일, 『김일성 저작집』 제29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5], 386쪽) 김정일 총비서는 "계급적 원쑤들과의 치렬한 투쟁 속에서 자기 앞길을 개척해나가는 사회주의 위업의 운명은 그에 대한 령도를 어떻게 보장하는가 하는 데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1쪽)

사회의 영도적 정치조직인 노동계급의 당이 가지는 지위와 역할에 관한 김일성 주석의 독창적인 이론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로동계급의 당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위한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조직하고 지휘하는 혁명의 참모부"라는 이론이다. 둘째, "로동계급의 당은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진두에서 대중을 불러일으키고 그 정로를 개척해나가는 향도적 력량, 전위부대"라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사회주의 이전 사회에서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은 "조성된 정세와 혁명임무, 사회계급관계와 적아의 력량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타산한 데 기초하여 혁명의 주력군과 보조력량을 편성하고 혁명의 타격대상을 규정하며 혁명력량을 정권전취를 위한塚塚占》?조직동원한다."는 것이며, 사회주의 집권당은 "모든 당조직들과 당원들, 국가, 경제, 문화기관들과 근로단체들, 전체 인민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에로 통일적으로 조직동원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43쪽)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이러한 독창적인 이론은 사회주의 집권당이 자기의 역할을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관료주의적 경향을 배제하고 있으며, 자기의 영도적 지위와 역할을 훼손하여 행정기관 수준으로 격하시키려는 수정주의적 오류를 배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독창적인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당은 장차 공산주의 사회가 건설된 다음에도 사회를 이끌어 가는 영도적 정치조직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혁명화, 로동계급화, 인테리화되여 사회적 구성이 단일화되고 모든 사회성원들의 근본요구과 리해관계가 일치하게 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사회의 공동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사람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정치적 령도가 없이는 사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같은 책, 47쪽)

그런데 부르주아 선동가들은 이러한 사회주의 집권당의 영도가 인민의 자율적 의사와 창의력을 억제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김정일 총비서는 "당의 령도가 사람들의 창발성을 억제한다는 제국주의자들의 비방"은 "부르죠아 자유화를 고취하고 사회주의를 와해시키려는 반혁명적 궤변"이라고 지적하였다. (「조선로동당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이다」, 1990년 10월 3일, 『김정일 선집』 제10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7], 238쪽) 그에 따르면, "당의 령도는 옳바른 투쟁전략과 전술에 의거하여 사회주의 위업을 전진시키기 위한 근본조건"(같은 책, 239쪽)이며, 동시에 "당의 령도는 사회주의 위업수행의 전과정에서 혁명적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철저히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 요구"인 것이다. (같은 책, 240쪽)

김정일 총비서에 따르면, "사회주의 위업은 심각한 계급투쟁을 동반하며 전인미답의 길을 헤쳐나가면서 새 것을 창조하는 어렵고 복잡한 사업"이므로 그 위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와 혁명에 대한 정책적, 전략전술적 령도를 사명으로 하여 출현하고 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같은 책, 239쪽) 그는 노동계급의 당은 바로 그러한 사명을 구현하고 그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유일무이한 정치조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노동계급의 당 이외의 어떤 다른 정치조직도, 심지어는 국가정권도 노동계급의 당이 지니고 있는 갗풂한 사명을 대신하지 못하며 노동계급의 당의 지위와 역할을 대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사회주의 정치제도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서로 나누어 상호견제하도록 하는 통치권의 분립제(이른바 삼권분립제), 중앙집중제와 지방자치제 같은 제도들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권력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권력주체끼리 독점적 행사를 견제하느냐 하는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부르조아 정치제도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자본주의 정치제도와 사회주의 정치제도의 근본적 차이는 '통치'와 '영도'의 차이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 먼저 자본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은 '합리적 통치'라는 개념으로 집약될 수 있는 데, 이 개념은 통치권의 주체와 통치를 받는 대상을 나누어놓고 전자는 언제나 대상을 명령하고 지휘하는 권력행사의 주체가 되고, 후자는 언제나 명령과 지휘를 받는 피동체가 되는 것이다. 삼권분립제, 대의제, 지방자치제는 통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행사의 주체가 인민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통치하느냐는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정치제도들이다.

이에 비해서 사회주의 정치제도의 핵심은 '혁명적 영도'라는 개념으로 집약될 수 있는 데, 이 개념은 인민을 명령과 지휘로 다스리는 권력행사가 아니라 인민의 자주적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민을 교양하고 조직하는 정치적 영도를 뜻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정치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권력을 어떻게 분배하고 행사할 것이냐 하는 통치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인민 자신의 권력이므로, 사회주의 집권당이 자기의 권력에 의거하여 인민에게 명령하는 통치는 사회주의 정치제도의 본성에 배치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명령하고 지시하는 방법으로는 사람들의 사상을 움직일 수 없다."고 하면서 (같은 책, 256쪽) "사회주의 사회에서 로동계급의 당은 집권당으로서 권력을 쥐고 있지만 권력에 의거하는 방법으로는 인민대중의 의사에 맞는 정치를 실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책, 255쪽)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당의 영도는 당사업에서 관료적 명령과 행정적 지휘를 배제하고 인민에게 사상·정신적 깨달음을 주어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상·정치사업으로 수행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사상·정신적 깨달음을 주는 것을 '교양사업'이라고 한다. 교양사업에는 계급교양, 사회주의 애국교양, 집단주의 교양, 공산주의 도덕교양, 노동을 사랑하는 정신을 키우기 위한 교양, 혁명적 락관주의 교양, 준법교양, 반수정주의 교양이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 제7권, 134-136쪽) 그런 점에서 볼 때, 노동계급의 당의 정치적 영도는 인민에게 어떻게 사상적 깨달음을 주고 그들을 어떻게 조직적 단결로 이끌어 가느냐 하는 새로운 차원의 정치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통치명령과 강제동원이 아니라, 사회주의 사상으로 각성되고 단결된 인민 자신의 투쟁에 의하여 생성·발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당이 인민에게 사상적 깨달음을 주고 그들을 조직적 단결로 이끌어준다는 말은 김정일 총비서의 표현을 빌리면 인민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안겨준다는 뜻이다. 인민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안겨주고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당과 인민의 관계가 생명을 주고받으며 운명을 보살피고 의탁하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처럼 결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당과 대중과의 혈연적 련계"라고 말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당과 인민의 관계를 이렇게 해설하였다.

"당과 대중 사이의 관계는 령도하고 령도를 받는 관계인 동시에 생명을 주고받으며 운명을 보살피고 의탁하는 관계이다. 당과 인민 사이의 관계는 당이 인민대중의 어머니로서 인민대을을 귀중히 여기고 극진히 사랑할 때 가장 공고하고 위력한 것으로 될 수 있다." (「조선로동당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이다」, 『김정일 선집』 제10권, 253쪽)

당과 인민의 관계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인민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노선과 정책을 세우고 인민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이 스스로 창조력을 발동하여 자신의 의사와 요구를 실현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나아주고 키워준 나라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여 어머니조국, 또는 모국이라고 부르고, 자기를 길러준 학교의 고마움을 기려 모교라고 부르듯이, 사회주의 조선의 인민은 자기들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을 안겨주고 자기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조선로동당을 어머니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어머니당이라는 말속에는 우리 당에 대한 두터운 신뢰와 함께 장래운명까지 보살펴줄 것을 바라는 인민들의 크나큰 기대가 담겨져 있습니다."고 말했다. (「어머니다운 심정으로 인민생활을 책임적으로 돌봐야한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및 평양시 일군들과 한 담화, 1965년 2월 15일, 『김정일 선집』 제1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73쪽)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말했다.

"로동계급의 당은 인민대중 우에 군림하는 관료기관이 아니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며 인민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보살피는 어머니당입니다. 우리 당은 인민들에게 고귀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안겨주고 그것을 빛내여나가도록 이끌어주며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 늘 세심하게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민들은 우리 당의 품을 진심으로 어머니품으로 여기며 당에 자기의 모든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로동계급의 당이 어머니당으로 되자면 당 안에서 관료화, 귀족화를 철저히 반대하고 인민들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원만히 보장해주며 인민대중과 혁명의 한길에서 끝까지 생사고락을 같이하여야 합니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97쪽)

김정일 총비서에 따르면, 사회주의 위업이 다른 사회적 운동의 목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혁명적 원칙을 고수·관철한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는 "당의 계급적 성격과 력사적 사명을 달라질 수 없으므로 혁명적 원칙은 변함없이 견지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환경과 조건이 달라진다고 하여 혁명적 원칙을 저버리는 것은 곧 혁명적 당을 파괴하고 인민대중의 혁명위업을 배반하는 것으로 된다."고 말했다. (「혁명적 당건설의 근본문제에 대하여」, 『김정일 선집』 제13권, 184쪽)

여기서 그가 말하는 혁명적 원칙이란 인민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구현하는 원칙을 뜻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주적 원칙, 로동계급적 원칙, 사회주의적 원칙"을 뜻한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 24쪽) 또한 김정일 총비서는 "로동계급의 당의 계급적 사명"은 "인민대중의 요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고 실현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조선로동당은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이다」, 『김정일 선집』 제10권, 240쪽)

그렇다면 오늘 노동계급의 당이 수행하는 혁명적 원칙은 무엇으로 표현되고 있을까? 김정일 총비서의 말에 따르면, "사회주의 건설에서 로동계급의 당의 혁명적 원칙성은 중요하게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적 책동에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데서 표현된다."고 한다. (같은 책, 241쪽) 김정일 총비서는 조선로동당은 "급변하는 정세에 능동적으로, 령활하게 대처해나가면서도 혁명의 근본리익과 근본원칙에서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혁명적 원칙과 혁명적 로선을 확고히 견지하였다."고 지적했다. (『조선로동당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당이다』, 24쪽)

김일성 주석은 "조선로동당의 기본사명은 주체위업의 승리를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조선로동당 건설의 력사적 경험」, 『김일성 저작집』 제40권, 15-16쪽) 여기서 김일성 주석이 말한 주체위업이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 위업을 뜻한다. 그것은 인민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청산하는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혁명위업인 것은 물론이며, 계급해방이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에서도 인민대중이 자연과 사회와 자기 자신의 완전한 주인으로 되기 위한 혁명위업을 뜻한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당은 착취와 억압이 청산되고 인민대중의 사회계급적 해방이 실현되었다고 하여 자기의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볼 수 없으며, 인민대중이 자연과 사회와 자기 자신의 완전한 주인으로 되는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투쟁하여야 한다고 한다. 노동계급의 당이 사회주의 집권당이 된 뒤에도 사상, 기술, 문화의 3대 혁명을 계속 추진하고, 온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는 인류의 자주위업을 계속 추진함으로써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해야 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7) 맺는 말

이 글에서 살펴본 사회주의 조선의 당건설 이론과 경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일성 주석이 영도한 항일혁명투쟁의 중심부에는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는 조직·사상적 기초를 쌓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8.15 해방 이후 조선로동당의 창건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투쟁의 역사는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을 건설하고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간고하고 험난한 투쟁의 연속이었다는 사실이다. 항일혁명기의 20년, 그리고 8.15 해방 후 오늘까지 55년을 합해 모두 75년을 이어온 기나긴 투쟁의 역사는 노동계급의 새 형의 혁명적 당을 건설해온 역사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와다 하루키 같은 부류의 연구자들이 항일혁명기에 혁명 ?당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쌓기 위하여 자주노선을 개척했던 조선인민혁명군이 중국공산당, 코민테른, 소련공산당의 휘하에 있었던 것처럼 왜곡한 것이나, 8.15 해방 직후에 노동계급의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사를 '만주파', '국내파', '소련파', '연안파' 사이의 파쟁사로 왜곡한 것은, 조선민족은 단결하지 못하고 파쟁만 일삼는 무능·열등한 민족이므로 유능·우월한 '야마도민족의 문명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극악무도한 모욕을 서슴지 않았던 일제 식민사가들의 궤변과 흡사하게 닮은꼴이다.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시각에는 민중의 투쟁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고 오로지 소수정파들의 주도권 쟁탈만 보일 뿐이다. 이러한 착시현상은 그들이 부르주아 정파들의 파쟁과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민중의 투쟁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권모술수와 음해모략을 휘두르는 싸움판을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우월성'이라고 미화·분식하고 있는 부르주아 정파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민중의 의사와 요구를 배반하고 권력욕에 눈이 멀어버린 소수이익집단들의 추악한 파쟁으로 몰아가지만,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은 광범한 민중의 지지, 성원, 참여를 이끌어내며 민중 스스로를 사회변혁의 주체로 세우는 자주위업으로 이끌어간다.

이 글에서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을 민중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세우는 투쟁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은, 위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항일혁명투쟁을 통하여,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전개되었던 역사였기 때문이다. 항일혁명투쟁에서 중심을 이루었던 유격전쟁은 국가동원체제에 의하여 수행하는 정규전과 달리 조선민중의 자원적인 지지, 성원, 참여가 없이는 지속될 수 없었던 비정규전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항일유격전이 조선민중의 자원적인 지지, 성원, 참여 속에서 수행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인민혁명군이 영도했던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쌓기 위한 항일혁명기 20년간의 투쟁도 역시 조선민중의 자원적인 지지, 성원, 참여 속에서 전개되었다. 이처럼 혁명적 당을 창건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는 민중이 스스로를 사회변혁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민중 자신의 피땀어린 투쟁사였다. 오늘 사회주의 조선은 21세기를 자주시대로 열어 가는 혁명의 기관차인 조선로동당을 움직이는 무한한 힘의 원천이 바로 그 역사에서 솟구쳐 나오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항일혁명기 20년간의 투쟁을 민중 자신의 투쟁으로 만들어갔던 역사적 경험은 오늘 조선로동당을 사회주의 조선의 인민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어머니당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다른 나라의 영토에서 포악한 일제 침략자들과 혈전을 벌이면서, 탄우와 포연, 눈보라와 굶주림 속에서 당창건의 조직·사상적 기초를 마련하였기에, 오늘 조선로동당은 고난과 시련에도 물러서지 않는 생활력과 전투력을 지닌 혁명적 당이 될 수 있었다. 수정주의, 교조주의, 사대주의를 척결하고 전당이 하나의 지도사상 주체사상으로 무장하고 수령을 중심으로 단결하였으며, 수령의 사상과 영도를 계승하는 문제를 해결하였기에, 오늘 조선로동당은 제국주의 세력의 집요한 압살·와해책동에 밀려 수많은 혁명적 당들이 무너지거나 비틀거리는 20세기말의 대혼란기를 돌파한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 될 수 있었다. 세계의 진보적 인민들은 그러한 조선로동당을 세계정치사에 등장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정치조직으로, 20세기말 제국주의자들의 공세를 꺾고 사회주의 수호전에서 승리한 존엄 있는 정치조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01년 1월 2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