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대담 >

자주시대, 통일시대가 칠천만 민족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 글은 일본 도쿄에 있는 통일평론사가 일문으로 발행하는 월간지 『통일평론』이 2001년에 창간 40주년을 맞이하면서 펴낸 2001년 1월호에 일어번역문으로 싣기 위해 작성한 지상대담의 원문이다. 이 글은 원래 『통일평론』의 최석룡 편집국장이 팩스를 통해 서면으로 보내온 것에 대해서 답변하는 기고문 형식으로 작성되었다. 이 원문을 요약·정리하고 일본어로 번역하는 일은 통일평론사에서 담당하였다.


남북정상회담을 오늘 시점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정상회담이라는 개념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회담을 말할 때 쓰는 개념이므로, 저는 평양회담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인정하듯이, 평양회담은 한(조선)한반도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대사변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평양회담으로 남북 사이의 적대관계가 해소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남측은 북측을 '정부를 참칭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적대하여왔으며, 북측은 남측을 '미제의 조종을 받는 괴뢰정권'으로 규정하고 적대하여왔습니다. 남북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적대관계의 본질은 사회주의 체제와 자본주의 체제 사이의 계급적 대립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사적 정통성과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계급문제의 대립이 아니라 민족문제의 대립이었다는 말입니다. 적대성의 본질이 이처럼 계급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것이었으므로 남북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방도도 또한 계급적으로 화해하는 방도가 아니라 하나의 민족으로서 만나서 화해하는 방도로 풀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평양회담은 남북의 정치적 실체가 적대관계를 풀고 서로를 국가가 아니라 정치적 실체로서 상호인정하고 하나의 민족으로 만나서 화해하는 기틀을 마련한 민족사적 의의를 가집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만나서 우리는 한 핏줄로 이어진 민족이라는 존재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순간,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체제의 사상·정신적 억압 속에서 짓눌려왔던 한(조선)민족의 잠재된 에너지는 엄청난 힘으로 폭발되었으며 분단체제의 근저까지 뒤흔들어놓고 말았던 것입니다.

남북 사이의 적대관계가 풀려나간다는 말은 동족에 대한 적대감을 강요해온 분단체제가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남북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실현되면 남북관계는 적대적이고 불안정한 분단체제에서 우호적이고 평화로운 분단체제로 서서히 변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비약적으로 민족적 단결과 나라의 통일로 상승·발전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내장되어 있는 엄청난 사상·정신적 잠재력을 회생과 재활의 뜨거운 불꽃으로 자극하여 되살려내 준 참으로 감동적인 대서사시가 바로 극적으로 성사된 평양회담이었습니다.

평양회담은 조국통일을 까마득하게 먼 장래의 일로 여기고 있었던 칠천만 민족에게 '이제는 통일이 실현되는구나'하는 신심과 의지를 안겨주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통일의 앞길에 제 아무리 우여곡절이 많고 난관이 많다고 한들, 강의하고 슬기로운 한(조선)민족의 사상·정신적 힘을 발동하면 못해낼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민족성원 전체에게 '우리 힘으로 반드시 통일할 수 있다'는 신심과 의지가 생겨난 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사올 수 없는 최고의 사상·정신적 가치를 가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평양회담이 남(한국) 사회의 반북·반통일세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반북·반통일세력은 분단체제에 기생하면서 온갖 기득권을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저들이 북(조선)을 싫어하고 조국통일을 반대하는 까닭은 통일이 되면 자기들이 분단체제에서 얻은 모든 기득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양회담이 성사됨으로써 남(한국) 사회에서 공포와 불안에 빠진 세력, 가장 커다란 정치적 타격을 받고 위축된 세력은 바로 반북·반통일세력입니다.

반북·반통일세력이라고 하면, 정치권에서는 주로 한나라당에 포진하고 있는 세력들, 그리고 정치력을 잃어버리고 빈둥대고 있는 김종필, 김영삼, 이철승 같은 퇴물 정치인들, 언론계에서는 일간지 중에서 최대의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대표적이고, 공안기관, 군부, 재벌, 그리고 잡다한 부르주아 선동가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평양회담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야 반북·반통일세력이 움츠러들고 있는 척하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다시 득세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회역사발전의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반북·반통일세력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역전(逆轉)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북·반통일세력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주도세력인 미국이 자기의 정책을 바꾸어 북(조선)에 대한 적대와 봉쇄에서 평화공존과 수교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한국)의 반북·반통일세력은 위축된 자세로 지금 미국의 장악력에 이끌려 순순히 따라가던가 아니면 얼마동안 가망 없는 반항을 하다가 정세적응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차츰 도태되게 될 것입니다.

남(한국) 사회에서 반북·반통일세력이 위축된다는 말은 연북·통일세력이 팽배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는 말입니다. 연북·통일세력은 지금까지 온갖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해온 통일운동세력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북(聯北)'이라는 개념을 북(조선)을 추종한다는 의미를 담은 '기피어'인 '친북'이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하지만, 여기서 저는 북(조선)과 연대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대중 정권도 북(조선)과 화해·교류·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므로 넓은 의미에서 연북정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지적하자면, 김대중 정권은 반북·반통일세력도 아니고 연북·통일세력도 아닌 제3세력, 또는 화해·협력세력으로 분류됩니다. 이처럼 제3세력이 정권을 쥐고 있으므로 반북·반통일세력이 위축되었는 데도 연북·통일세력이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권을 쥐고 있는 제3세력은 반북·반통일세력도 반대하지만, 연북·통일세력도 '친북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남북공동선언의 의의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연합제 방안의 공통점에 기초한 논의와 협상을 어떻게 전망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평양회담의 성과를 집약적으로 담아낸 것이 6.15 공동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자주, 통일, 화해, 교류, 협력이라는 다섯 가지 과제를 우리 민족끼리 풀어가자고 합의한 것으로서, 자주통일의 앞길을 밝힌 대장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선언은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을 가르는 시금석이 됩니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찬동하고 그 선언을 이행·실천하려는 세력은 통일세력이며, 그 선언을 반대하고 훼손하려는 세력은 반통일세력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1972년에 발표된 7.4 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된 조국통일의 기본원칙을 시대발전의 요구와 전민족적 지향에 맞게 계승·발전시킨 것입니다. 7.4 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입니다. 이번에 나온 6.15 공동선언은 민족자주의 문제와 관련하여 7.4 남북공동성명에 나온 자주의 원칙과 똑같은 내용을 재확인, 재천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6.15 공동선언은 7.4 남북공동성명에 나와있는 평화통일의 원칙을 실천적으로 이행하는 조국통일의 방안문제를 담아내었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습니다. 회담 당사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연방제 통일방안에 합의하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력한 요구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므로, 북측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남측은 그 방안과 합의하는 형식을 취하려고 하다가 보니까 '연합제'라는 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평양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해서 합의가 무산되고 공동선언 자체가 나오지 못했더라면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회담을 마치고 아무런 합의성과도 없이 빈손으로 서울에 돌아간다면 한나라당을 비롯한 반대파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침몰할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연방제 통일방안과 합의하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통일방안이 아닌 '연합제'라는 임기응변식 대응개념을 내놓고 절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회담에서 '연합제' 방안을 관철시키겠다는 회담전략을 가지고 평양에 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에 돌아간 뒤에 반대파들은 국민적 합의조차 없는 '연합제' 방안을 누구 마음대로 6.15 공동선언에 포함시킨 거냐, '연합제' 방안은 김 대통령의 사적인 발상이 아니냐 하고 몰아부쳤습니다. 그래도 김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평양회담에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는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채로 회담에 나섰기 때문에 임기응변식으로, 피동적으로 대응하는 길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근 40년의 역사를 거쳐오면서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완성된 통일방안입니다. 연방제 통일을 통일의 과도상태가 아니라 통일의 완성으로 밝힌 것은 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6차 대회에서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입니다. 김일성 주석은 1994년 7월 남북 최고당국자 회담이 열리면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고 준비하다가 회담을 얼마 앞두고 갑자기 서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회담이 열리면 그 자리에서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받들어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해야 했습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바람에 결국 절충적 형태로 합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반드시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통일방안 자체를 갖지 못하고 있는 남측이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통일방안이 없는 쪽이 통일방안을 제시한 쪽에게 피동적으로 이끌려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느냐 하면, 남북관계에서 연방제 통일방안만이 유일하고, 가장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통일방안으로서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통일방안에는 연방제 방안과 연합제 방안 두 가지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남측이 말하고 있는 연합제 방안은 통일방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남북이 지금처럼 불안정한 분단상태로 언제까지나 지낼 수는 없으니까 앞으로는 쌍방이 정식 국가로 상호 인정한 조건에서 국가 대 국가의 평화공존을 실현하자는 방안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의 나라로 통일하자는 통일방안이 아니라 두 개의 나라로 갈라서서 평화공존적인 영구분열을 추구하겠다는 분열방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통일방안은 연방제 통일방안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통일방안이 아닌 사실상의 분열방안이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회담 자리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의 제2항에 나와있는 대로 통일방안을 합의하고 이를 실현하자는 것은 유일한 통일방안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고 이를 실현하자는 것이 됩니다. 제2항에서 밝히고 있듯이, "서로 공통성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문구는 유일한 통일방안인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북측의 연방제 통일방안과 남측의 연합제 방안 사이에 무슨 공통성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전혀 공통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화해, 교류, 협력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려고 해도 화해, 교류, 협력의 단계를 거쳐야 하고, 남측의 주장대로 만일 국가연합을 수립한다고 해도 그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공통성입니다. 그러므로 공통성이라는 개념은 미래에까지 연장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화해, 교류, 협력의 현재 단계에만 한정되어 있는 개념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6월 이후 남북관계의 발전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6.15 공동선언의 제5항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는 문구로 되어있습니다. 이에 따라 남북 사이의 장관급(상급) 회담이 계속 열렸습니다.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사 대표들 사이의 회담도 여러 차례 열렸고, 남북 경제협력문제를 추진하기 위한 남북 경제실무회담도 여러 차례 열렸습니다.

여러 차례 진행되었던 장관급(상급) 회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남측이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눈길을 끕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6.15 공동선언이 남북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결정적인 문서라면, 적대관계 중의 적대관계라고 할 수 있는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가 당연히 공동선언의 조항에 들어있어야 하는 데 그에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겁니다.

애초에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회담에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문제를 제기하고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하려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계획과 의도는 전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미국이 평양회담에서 한(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였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서 그 문제에 관한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를 논의한다는 말인데, 군사문제를 논의하게 되면 자연히 주한미군 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한국)의 군사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미국은 평양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논의되는 것 자체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세상이 다 알다시피, 김대중 정권은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에 관련해서 아무런 결정권도 없습니다. 결정권도 없는 김대중 대통령이므로 군사문제에 대한 발언권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에 관하여 발언권도 결정권도 없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회담에 나가서 섣불리 군사문제에 관하여 논하다가 자칫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도에 말려들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평양회담이 열리기 직전에 국무장관의 고문 웬디 셔먼을 청와대에 급파하여, 만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회담에서 군사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절대로 응하지 말라고 단단히 다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불안감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공식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군사문제에 관련하여 아무런 권한과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6.15 공동선언에는 한(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문제, 곧 군사문제가 단 한 마디도 들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평양회담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간 김대중 대통령은 커다란 고민에 빠졌습니다. 분단체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가읏뮈뭐曠構?가장 중대한 군사문제를 논의·해결하는 정치협상은 남북 사이에서가 아니라 조·미 두 나라 사이에서 진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조·미 두 나라가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를 직접적으로 논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남(한국)에 대한 철저한 소외와 배제를 뜻합니다. 고민에 빠진 김대중 대통령은 하는 수 없이 장관급(상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렇게 돼서 8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장관급(상급)회담에서 남측 대표인 박재규 통일부 장관은 한(조선)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점을 찾아보자고 집요하게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관급(상급)회담은 군사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6.15 공동선언 제5항에 따라 그 선언에서 합의된 화해·교류·협력에 관한 문제를 실천하는 사업을 논의하고 합의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도 박재규 장관은 회담의 성격과 지위와 임무에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들이대면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박 장관이 남측의 뜻을 하도 완강하게 주장하며 굽히지 않는 바람에, 북측의 전금진 단장은 "군사문제는 이 회담에서 논의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 문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박 장관은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을 하루 늦추고 8월 31일 밤 10시 50분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날인 9월 1일 당시 함경북도 동해안 지역을 현지지도하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예정에 전혀 없었던 접견이 이루어졌습니다. 박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식량 1백만 톤을 보내드릴 테니 제발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문제를 장관급(상급)회담의 공동보도문에 포함시켜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결국 그 간청이 받아들여져서 공동보도문 제2항에 "남과 북은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와 관련해 쌍방 군사당국자들이 회담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가지도록 협의한다"는 문구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남측은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남측을 방문했던 김용순 비서에게도 국방장관 회담을 개최하자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서 공동보도문 제2항에 "쌍방은 남쪽 국방부 장관과 북쪽 인민무력부장 간의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가 현재 논의 중에 있는 데 대하여 환영하였다"는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마침내 9월 25일부터 26일까지 제주도에서 제1차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이 열렸습니다. 북측은 이 회담이 열리기 얼마 전에 남측에 문건을 보냈는데, 그 문건에는 이번 회담의 의제는 남북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사업을 논의하는 것에 국한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회담에서 남측은 군사문제를 논의하려고 하였으나 북측의 불응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남북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사업에 관해서 논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측이 식량 1백만 톤을 북측에 주기로 하면서 얻어낸 성과라고 한다면, 공동보도문 제2항에 "쌍방은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한반도에서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여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 긴요한 문제라는 데 이해를 같이하고 공동으로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문구가 들어간 것뿐입니다. 이 문구를 자세히 뜯어보면 군사문제에 관한 해결의 원칙만 강조하는 것일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자는 합의 내용은 들어있지 아니한 것입니다. 지금 남측은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에서 군사문제를 논의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 의도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한 편, 북측은 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에 나섰던 것일까요? 그것은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 가운데 하나인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사업을 원만히 추진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이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그 회담에서 군사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남측 정권이 군사문제를 해결할 권한과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고 제2차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미 6.15 공동선언에서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문구로 합의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적절한 시기라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김대중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제대로 이행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어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과 제2차 회담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미 관계가 정상화의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지난 시기 북(조선)이 미국에 대하여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의할 때마다 미국은 이른바 '남북 당사자 해결의 원칙'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그 제의를 회피해왔는데, 이번에 평양회담이 열림으로써 미국이 더 이상 회피할만한 구실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미국이 성실하게 조·미 관계 정상화에 나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방문과 제2차 회담은 미국이 조·미 관계 정상화와 관련하여 책임적인 조치를 취하는 문제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조·미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대로, 지금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조·미 관계 개선을 중심으로 하여 변화·발전되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전면전 일보 직전까지 끌어갔던 장본인도 미국이었고, 50년 묵은 적대관계를 풀고 새로운 평화공존으로 나아가겠다는 정책전환을 천명한 '페리 보고서'를 발표한 장본인도 미국이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던 평양회담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회담을 조·미 관계의 획기적인 개선, 곧 수교협상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음악연주회의 비유로 설명하자면, 맨 먼저 전주곡이 울리고 나면, 제1악장 연주가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양회담 이후에는 조·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수교협상이 시작되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평양회담이 전주곡이었다면, 제1악장 연주는 무엇이었을까요? 조명록 특사의 워싱턴 방문과 조·미 공동성명 발표는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변화시키는 제1악장 연주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백악관에 들어가서 클린턴을 만날 때 군복을 입은 것은 조·미 관계의 본질, 아니 더 나아가서 한(조선)반도 문제의 본질이 군사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 군사문제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하나는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고, 다른 하나는 주한미군 문제입니다. 이것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군사문제의 실제 내용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조선)반도는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서 연방제 통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남(한국) 정권이 발언하거나 개입할 수 없는 권한과 지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는 조·미 관계의 정상화에 의해서 추동될 수밖에 없으며, 한(조선)민족이 분단의 질곡에서 벗어나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것도 남(한국)이 아니라 북(조선)의 정치적 주도력에 의해서 가능하리라는 전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조명록 특사가 클린턴에게 전달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에 들어있는 핵심내용은 한(조선)반도의 군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자는 것과 클린턴이 먼저 평양을 찾아오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조명록 특사의 워싱턴 방문으로 발표된 조·미 공동성명에는 "쌍방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 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 회담 등 여러 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하였다"는 문구가 들어있습니다. 이 문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공고한 평화보장체계(permanent peace arrangements)를 수립하겠다는 것과 조선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기 위하여 다양한 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어져온 조·미 두 나라의 정치협상역사에서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라는 외교용어는 그 문서에서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지난 시기 북(조선)이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제의를 그토록 수없이 내놓았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오만방자한 미국이 이제는 정식 외교용어를 사용하여 외교문서를 채택한 것입니다. 커다란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조·미 사이의 준전시상태(정전상태)를 끝내기 위하여 다양한 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그 다양한 회담이라는 표현 가운데는 조·미 정상회담이 포함됩니다. 아니, 단순히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중심축이 됩니다.

한(조선)반도에서 준전시상태를 끝내고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문제는 군사문제인데,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그 군사문제는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주한미군 사이에서 발생한 군사문제입니다.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한(조선)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전략균형을 뒤바꾸어놓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정치문제, 전략적 과제이므로 정상회담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조·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려면 클린턴이 먼저 평양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각입니다. 시간에 쫓겨 다급해지고 있는 쪽은 미국이고 여유와 자신감이 있는 쪽은 북(조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국이 북(조선)의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처음 인정한 사람은 전략가 윌리엄 페리였습니다. 미국의 일간지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은 이미 1999년 2월 25일자 보도에서 이러한 페리의 분석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북(조선)이 만일 광명성 2호를 발사하는 날이면, 미국은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광명성 1호의 성공적인 발사는 북(조선)이 이미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한 것이었는데, 미국은 3단계 발사체가 위성체를 우주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거짓선전을 늘어놓으면서 북(조선)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면 앞으로도 1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말로 세상을 기만하였습니다. 광명성 1호의 발사가 성공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북(조선)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오직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 안에서만 극비정보로 확인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만이 파악한 극비정보는 감추어두고 광명성 1호가 궤도진입에 실패했다는 거짓 정보를 내돌리며 세상을 기만함으로써 당시 광명성 1호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바글바글 끓고 있던 일본을 겨우 진정시켰고, 클린턴 행정부를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 공화당 세력의 정치공세를 겨우 따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경에 처해 있는 미국으로서는 광명성 2호 발사는 견딜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만일 북(조선)이 광명성 2호를 발사하는 날이면 미국의 세계 지배구도를 안받침하고 있는 대량파괴무기 확산저지전략은 남김 없이 산산조각이 날 것이고, 미국은 일본, 남(한국), 대만이 급속한 군비증강과 핵무장화로 나아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러한 사태는 중국과 러시아를 심히 자극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따라서 동아시아 정세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대혼란에 걷잡을 수 없이 빠지면서 미·일 동맹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험악한 사태는 미국으로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악몽입니다. 이미 지난해에 윌리엄 페리도 미국이 조·미 관계에서 시간에 쫓겨 다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었지만, 미국이 그렇게 된 까닭은 바로 붕괴와 대혼란이라는 악몽의 시나리오가 미국의 눈앞에서 자꾸 어른거리기 때문입니다.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는 정보분석력과 전략적 판단력에서 누구보다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이러한 악몽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려면 조·미 정상회담에 나서야 한다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상황전개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명록 특사를 통해 클린턴에게 보낸 친서에서 평양으로 와서 정상회담을 열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전격적으로 제의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습공격으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특한 전법입니다. 만일 그 친서에 평양으로 오라는 제의가 없었다면 왜 클린턴의 평양방문 문제가 제기되었겠습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제의를 받은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평양방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기껏 대안으로 나온 것은 클린턴의 평양방문을 신중하게 처리하자고 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어보는 작전밖에는 없었습니다.

클린턴은 자신의 평양 방문을 신중하게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난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먼저 평양에 보냈습니다. 올브라이트의 평양방문은 클린턴 방북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답사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에 찾아온 올브라이트에게 미국이 한(조선)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면 광명성 2호를 발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표현방식이 매우 극적이고 예술적이었습니다. 5.1 경기장에서 관중 15만 명이 구름처럼 몰려든 가운데 10만 명이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펼치는 자리에 올브라이트를 초청한 것입니다. 올브라이트는 15만 명 군중이 일제히 터뜨리는 열렬한 환호성과 평양의 밤하늘 뒤덮은 불꽃놀이에 우선 기가 질렸고, 군중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10만 명 대공연의 열기 속에 휘말려 자칫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에서는 25만 명이나 되는 군중을 한 자리에 모아놓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고, 설령 한 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그 많은 군중을 정렬해 세우기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10만 명 군중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집단체조와 군중예술을 펼치는 어마어마한 장관을 보면서 올브라이트는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는 북(조선)의 저력을 실감했을 것이고 아마 심리적 충격 때문에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극적인 순간은 따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내용에 맞춰 마치 거대한 전자식 동영상처럼 움직이는 화면을 연출하고 있던 배경대에서 광명성 1호가 우주공간을 향해 솟아오르는 영상이 연출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옆에 앉아있던 올브라이트에게 "저것이 최초의 인공지구위성 발사였다. 그것은 마지막 발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배경대에는 "우리를 건드리는 자 이 행성 우에 살아남을 자리 없다"는 거대한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미국은 더 이상 조선민족을 건드리지 말라는 이 강력한 메시지는 미국이 한(조선)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광명성 2호를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조·미 두 나라 사이에 놓여있는 가장 예민하고 중대한 정치현안이 군중예술의 공연이라는 형식을 통해 미국의 심장부에 전달되는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술과 정치의 절묘한 일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당시 평양에 가있었던 미국 고위관리가 전한 말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나중에 올브라이트와 대화하는 자리에서도 광명성 2호를 발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이 한(조선)반도 문제에서 손을 떼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자진해서 철수하라는 말입니다. 올브라이트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하여 북(조선)이 광명성 2호의 발사를 자진해서 영구 중단하는 문제와 미국이 주한미군 자진해서 완전 철수하는 문제를 맞바꾸면서 조·미 두 나라가 평화협정 체결과 수교문제를 일괄타결이라는 정치적 해결방식으로 풀어가자는 겁니다.

북(조선)이 광명성 2호의 발사를 자진해서 영구 중단하고, 그에 조응하여 미국은 주한미군을 자진해서 완전 철수한다면 두 나라 사이의 적대관계는 완전히 해소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조·미 공동성명에 나타나있는 공고한 평화체계를 수립하는 길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두 나라가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것은 곧 국교를 수립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또한 '페리 보고서'에 들어있는 미국의 전략목표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새 정권 출범으로 어떠한 변화를 예견할 수 있습니까? 특히 부시정권이 들어설 경우 조·미관계는 일정하게 후퇴할 것이라는 말이 있는 데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조·미 두 나라 사이에 제기된 전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을 받은 클린턴은 자신의 임기 안에 평양을 방문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통령 선거 개표사건이 플로리다주에서 터지면서 워싱턴의 정치권이 혼란에 빠졌고, 조·미 관계 정상화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클린턴의 평양행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올브라이트가 평양방문을 마치고 워싱턴에 돌아가서 조선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전직 외교·안보관리들과 전직 주한미국대사들, 조선문제 연구가들을 만찬에 초대하여 의견을 슬쩍 들어보았는데, 그 자리에서 클린턴의 방북은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클린턴이 자기 임기 안에 평양을 방문하지 못하고 조·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차기 대통령은 누가 당선되어도 그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조·미 관계 정상화를 바라지 않는 세력들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부시가 당선되면 민주당 정권이 열어놓은 조·미 관계 정상화의 길이 다시 막히거나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것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보느냐 하면 두 가지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근거는, 지금 조·미 관계 정상화는 '페리 보고서'라는 새로운 정책에 의하여 추진되고 있는데, '페리 보고서'가 민주당 정권이 공화당 쪽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따돌리고 단독으로 작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페리 보고서'의 작성책임을 맡았던 전략가는 윌리엄 페리와 애쉬튼 카터였는데, 이들은 공화당 쪽과 대화하면서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쳐서 '페리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미국은 북(조선) 정책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변경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북(조선) 정책 조정관을 임명하라고 요구했던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요구였습니다. 클린턴은 이 초당적 요구에 따라 페리를 조정관 자리에 임명했습니다. 1999년 9월 페리가 '페리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보고할 때 공화당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페리 보고서'가 이미 초당적 합의를 거쳤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자기들이 이전에 함께 작성한 정책을 내버리지는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 근거는, 고어는 민주당의 강경파고, 부시는 공화당의 온건파인데, 온건파인 부시가 집권한다고 해서 조·미 관계에서 강경노선으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당은 온건파고, 공화당은 강경파라고 단순하게 알고 있는 데 그것은 정치권의 내막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민주당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고, 공화당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당적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떤 세력의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어떤 세력과 결탁하고 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미국 동북부지역(매사추세츠주, 코네티컷주, 뉴욕주)과 캘리포니아주에 포진하고 있는 군수산업자본이 지지한 것은 부시가 아니라 고어였습니다. 미 동북부지역과 캘리포니아주에서 고어가 부시를 크게 이겼다는 사실은 고어 진영이 평화를 싫어하고 전쟁을 좋아하는 군수산업자본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선거 이전에 정책토론을 벌일 때도 미군의 해외파병 문제에 대해서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은 부시가 아니라 고어였습니다. 그러므로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페리 보고서'에 나와있는 조·미 관계 정상화의 정책은 변함없이 추진될 것입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 그는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은 적성국의 수도에 먼저 찾아가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 대통령은 1972년 2월 중국의 수도 북경을 먼저 찾아가서 중·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공화당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찾아가서 역사적인 조·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것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일괄타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고, 그 뒤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제2차 정상회담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는 날, 조·미 두 나라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수립을 세계 만방에 선포할 것입니다.

오늘의 통일정세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저는 위에서 말씀드린 정세발전의 속도와 범위를 가늠해보면서, 우리 민족은 머지 않은 장래에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저에게 정세를 너무 낙관하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낙관은 근거가 있는 낙관입니다.

그러면 무슨 근거로 정세를 그렇게 낙관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주체와 대상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합니다. 이것은 사물현상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입니다. 주체의 힘이 아직 미약한 조건, 다시 말해서 대상에 대한 주체의 작용력이 미약한 조건에서는 주체의 의사와 요구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법입니다. 되레 대상의 규정력이 주체를 억누르고 제약하게 됩니다. 주체가 강해져서 대상에 대한 주체의 작용력이 커지면 그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에서 규정력을 지니고 있는 대상은 분단체제라고 할 수 있고, 그 대상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주체는 통일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통일세력이라는 주체의 힘은 대상의 규정력을 능가할 만큼 강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분단체제라는 대상의 규정력이 더 강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50년이 되도록 분단체제는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변화를 거부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정세는 질적으로 달라졌습니다. 분단체제에 대한 통일세력의 작용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되면서 분단체제의 밑바닥부터 허물어뜨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주력은 미국이라는 반통일세력이고,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주력은 북(조선)입니다. 분단체제를 유지하는 반통일세력은 미국 이외에도 존재하고 있지만, 미국이 결정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력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 이치에서 연방제 통일을 추구하는 통일세력은 북(조선) 이외에도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있지만, 결정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쪽은 북(조선)입니다. 그래서 주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조·미 관계 정상화에 의해서 질적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주력 대 주력이 맞부닥치는 세력관계에서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을 중심에 놓고 정세변화를 읽으려는 일부 사람들은 저의 이러한 분석을 조·미 결정론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남(한국)을 지배·수탈하면서 북(조선)을 적대·봉쇄하는 반통일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조선반도의 현실에서 제국주의세력은 곧 반통일세력의 주력입니다. 반통일세력인 미국이 남(한국)을 지배·수탈하면서 북(조선)을 적대·봉쇄하는 분단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물리적 힘은 주한미군이며, 그 법적 장치는 한·미 상호안보조약과 정전협정입니다.

통일세력의 주력인 북(조선)은 미국이 자기들을 적대·봉쇄하고 있는 분단체제의 반쪽 부분을 타파하면 분단체제의 나머지 부분, 곧 미국이 남(한국)을 지배·수탈하고 있는 반쪽 부분도 벗겨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미국이 분단체제를 유지·관리하는 물리적 힘이 주한미군이라면, 북(조선)이 그에 맞서고 있는, 대비가 되지 않을 만큼 위력한 물리적 힘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북(조선)이 한(조선)반도에서 겨루고 있는 힘과 힘의 대결은 주한미군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조선)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가지고 주한미군을 자진 철수하도록 만들면, 정전협정체제가 해체될 것이며 그로써 한·미 상호안보조약에 의거한 지배·수탈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일 북(조선)이 광명성 2호를 발사함으로써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군사강국으로 등장한다면 미국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미국이 주한미군을 자진해서 철수하고 연방제 통일실현을 방해하지 않는 중립적 태도를 지킨다면 크게 잃어버릴 것이 없게 됩니다. 연방제로 통일된 한(조선)반도는 미국에게 적대하는 나라가 아니고 미국과 평등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수교국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조·미 수교를 거부하고 주한미군 주둔을 고집한다면 미국은 대량파괴무기 비확산체제를 잃어버리고 미·일 동맹체제를 잃어버리고 결국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으로 파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미군 철수냐 아니면 국가적 파산이냐 하는 두 가지밖에는 없습니다. 조·미 관계에서 그 동안 줄곧 써먹었던 '시간 끌기 작전'도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어리석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뛰어난 간지(奸智)의 전략가들입니다. 전략적 사고수준이 그 정도는 되어야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겠다는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러할진대 어리석게도 파산의 길을 스스로 택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페리 보고서'의 전체 내용 가운데 언론에 공개된 극히 일부의 껍데기 말고, 극비사항으로 공개되지 아니한 몸통 부분은 조·미 국교수립과 더불어 주한미군을 자진 철수하는 선택권을 명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미 국교수립과 주한미군의 자진 철수, 바로 거기까지가 미국 쪽의 선택권이 미치는 범위입니다. 그 상대편에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통일역량이 확보할 선택권의 범위가 놓여있습니다. 그 선택권의 범위는 민족자주권의 완전한 실현과 연방제 통일의 완수입니다.

민족자주위업과 연방제 통일위업은 누가 거부하거나 방해한다고 해서 실현되지 못할 그런 위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위업이므로 당대에 반드시 실현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위업입니다. 제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민족주체적 정세관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민족사 발전의 합법칙성을 사회역사의 진리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역사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현실을 개변시키는 힘의 원천입니다. 21세기의 세계는 민족자주위업과 연방제 통일위업을 완수한 동방의 칠천만 민족이 자주강국, 경제부국, 문화대국을 세워가며 부르는 힘찬 승리가의 합창을 들으며 자주시대의 눈부신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2000년 11월 2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