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말

(2) 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라고 부르는가

(3) 세계관의 근본적 전환과 세계관 발전과정에서 이룩된 완성

(4)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5) 사람 중심의 세계관은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에 구현되어 있는가

(6) 맺음말을 대신하여 - 독자적 세계관의 정립과 자주통일국의 건설

(1)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세계관의 문제를 다룬다.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이다. 세계에 대한 견해와 관점은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물과 현상들에 대한 개별과학의 지식을 뜻하지 않는다. 세계관이란 세계의 본질이 무엇이며, 세계는 어떠한 법칙에 의하여 변화·발전하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는, 세계에 대한 철학적 견해와 관점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은 과학적이며 철학적인 사상이다.

부르주아 선동가들이 '역사의 종말'을 떠들고 있는 사상적 궁핍의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있는 세계관의 문제를 여기서 왜 다시 논해야 하는가? 오늘 '사회주의 없는 21세기'를 떠들고 있는 부르주아 선동가들은 세계관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거부한다. 그러나 세계관의 문제란 누가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거부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연과 사회·역사에서 발생되는 온갖 사물현상을 분석하는 여러 개별과학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세계관의 문제가 깔려있다. 개별과학은 비록 세계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거나 논하지는 않지만, 만일 세계관이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개별과학도 발전할 수 없다. 유럽 역사의 경우를 보더라도, 중세기의 봉건적 지배와 착취를 안받침하고 있었던 기독교 세계(Christendom)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남으로써 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자본주의화의 길로 나아갔던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다.

19세기말에 이르러 노동계급의 사상가들은 부르주아의 낡은 세계관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계관, 노동계급의 세계관을 창시하였고, 그 세계관의 바탕 위에서 건설된 것이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였다. 그러나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이르러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고 말았다. 바로 그 때부터 부르주아 선동가들은 '역사의 종말'과 '사회주의 없는 21세기'를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의 실패는 세계관의 문제와 관련하여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것은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가 자기의 사상·정신적 존립기반으로 삼았던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미완의 한계를 안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안고 있는 미완의 한계, 그리고 그 미완의 세계관 위에서 건설되었던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 사이에 놓여있는 상관관계는 따로 탐구해야 할 복잡하고 중대한 문제다. 다만 이 글에서 지적하는 것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 유럽 사회를 중심으로 한 혁명기에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을 세웠던 사회·역사적 조건에 비해서 오늘의 사회·역사적 조건은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고 하는 제국주의가 이 땅에 출현한지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며, 그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와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반제자주의 기치를 들고 투쟁해온 전 세계 민족해방운동도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로부터 매우 멀리 전진하였다.

전 세계 민족해방운동은 반제자주의 기치를 들고 투쟁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새로운 세계관을 요구하였다. 오늘 민족해방운동은 제국주의의 지배와 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선행 사상가들이 창시하고 정립했던 고전적 세계관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관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민족해방운동은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하여 이룩한 풍부한 역사적 경험,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자주시대의 역사적 전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가 실패하고 제국주의의 지배·착취구도 속에 휘말려들어 가면서 황폐화되고 있는 지금, 어떻게 하여 사회주의 조선의 주체형 사회주의 사회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거창한 국가적 목표를 내걸고 '제2의 천리마 대진군'을 추진하게 되었을까?

이 중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와 주체형 사회주의 사회는 사회를 건설하는 세계관적 기초부터 서로 달랐으며, 사회를 건설하는 원칙과 방도도 서로 달랐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차이를 모르는, 아니 결코 알 수 없는 부르주아 선동가들은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가 실패하였을 때, 사회주의 조선의 붕괴를 마치 기정사실인양 떠들고 다녔지만, 그 차이를 알고 있었던 사회주의 조선의 지도자와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최후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구호를 들고 신심과 낙관을 가질 수 있었다.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의 실패는 역설적으로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와 주체형 사회주의 사회가 근본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회주의 사회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소비에트형 사회주의 사회와 주체형 사회주의 사회가 같은 사회주의 사회의 범주에 들어있으면서도 이러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 것은 세계관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소비에트형 사회주의의 세계관과 주체형 사회주의의 세계관 사이에 놓여있는 근본적인 차이, 바로 그것 때문에 오늘 두 사회주의 사회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형 사회주의의 세계관을 모르면 오늘 사회주의 조선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이 글은 세계관의 문제를 사회주의 조선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사회주의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근원적인 힘이 사상의식에 있으며, 그 사상의식은 세계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회주의 사회는 그 이전 시기에 존재해왔던 세계관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관이라는 모태 안에서 자라난 사회다. 사회주의 사회는 그것이 인류역사에 출현하기 시작한 맹아기로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사회가 아니었다. 그 사회는 처음부터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하여 목적의식적으로 건설되었고 또 건설되어가고 있는 사회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혁명적 세계관이 낡은 세계관을 타파하고 혁명의 앞길을 밝혀주었기에 혁명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고, 그 운동이 혁명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사상·정신적 힘을 발휘하면서 낡은 사회제도를 타파하고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그 혁명 승리에 의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사회주의 사회는 혁명적 세계관 위에 세워진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인류역사에 나타났던 여러 유형의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도 그 나름대로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가 지니고 있는 세계관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잡다하게 뒤엉켜 있다. 그 잡다한 유형의 세계관을 꿰뚫고 있는 핵심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요약하자면 관념론(idealism)과 형이상학(metaphisics)이다. 관념론과 형이상학이라는 낡은 세계관이 온갖 잡다한 유형으로 등장하여 뒤엉켜 있는 어지러운 현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세계관이 처해 있는 실태다.

인류역사에 등장한 모든 세계관은 계급적 성격을 띠고 있다.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세계관은 계급적 지배와 착취가 진행되고 있는 사회를 옹호·지지하는 사상적 도구로, 정신적 지탱점으로 존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지금까지 관념론과 형이상학에 뿌리를 박고 돋아난 잡다한 세계관들은 무한경쟁이라는 자연계의 생존원리가 지배하는 사회,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야만적 존립근거 위에 세워진 사회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데 복무해오고 있다.

우주만물에 근본적인 변화는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형이상학적 세계관은 물질세계를 개변하는 인간의 창조력을 억누르고 있으며, 사회·역사를 변혁하는 민중의 지향과 요구를 짓밟고 있다.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근로대중이 사회·정치적으로 억눌리고 짓밟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세계가 자연과 정신, 존재와 사유, 물질과 의식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가운데서 전자가 아니라 후자가 물질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최고 존재라고 고집하는 관념론적 세계관은 물질·경제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생산노동의 주체를 사회·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묶여놓는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세계관은 혁명적이다. 그 세계관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세계관을 전면적으로 부정함으로써 혁명적이 된다. 노동계급의 세계관은 물질세계를 개변하는 인간의 창조력을 옹호·발양시키는 세계관밖에는 다른 것으로 될 수 없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세계관은 생산노동의 주체인 근로대중 자신을 사회·역사의 주인의 자리에 올려놓는 세계관밖에는 다른 것으로 될 수 없다.

또한 노동계급의 세계관은 투쟁적이다. 노동계급의 세계관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에 바탕을 둔 세계관이 얼마나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찬 궤변인지를 논증·폭로하기 때문에 투쟁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의 세계관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세계관과 투쟁을 벌여 그 궤변적 세계관을 타파한다.

(2) 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라고 부르는가

사회주의 조선이 내세우고 있는 세계관, 사회주의 조선의 사회주의 건설에 사상·정신적 기초가 되고 있는 세계관은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그 세계관을 '주체의 세계관', 또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김일성 주석은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로동계급의 혁명사상"(『김일성 저작집』 제40권, 15쪽)이라고 지적했다. 인민대중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세계관이므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인민대중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새로운 세계관을 왜 '인민대중'의 새로운 세계관이라고 하지 않고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라고 부를까? 그것은 인민대중과 노동계급에 대한 사회주의 조선의 견해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아야 밝힐 수 있는 문제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은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가장 높이 체현하고 있는 계급이며, 다른 모든 계급과 계층을 자주성의 실현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힘있는 영도계급이라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로동계급은 혁명의 령도계급이며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 위업을 떠메고 나갈 우리 혁명의 핵심부대"(『로동신문』 2000년 7월 18일자)라고 지적하였다. 그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은 인류역사에 출현한 계급들 가운데서 가장 혁명적이며 진보적인 계급이라고 한다. 사회역사를 개조·변혁하고 창조하는 모든 투쟁의 선봉에는 언제나 혁명성과 단결성이 강한 노동계급이 서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인류역사에는 지금까지 여러 계급이 출현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노동계급이 인간의 자주성을 실현하려는 요구를 제기할 수 있었고 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고 있다. 그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은 자기 계급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성원을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해방하여 인간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출현은 인민대중이 역사의 자주적 주체로 발전하기 위한 사회계급적 조건이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사회계급적 조건 속에서 비로소 노동계급의 세계관이 창시되고 심화·발전되어왔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형의 사회주의 사회는 노동계급의 창조력에 의하여 자주성을 실현하고 있는 사회며, 노동계급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형성·발전되어 가는 사회며, 인민대중 곧 사회성원 전체를 노동계급으로 개조해나가는 사회, 곧 노동계급화되어 가는 사회라는 것이다.

(3) 세계관의 근본적 전환과 세계관 발전과정에서 이룩된 완성

시대의 발전은 세계관의 발전을 동반한다. 민중이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로 등장함으로써 시대가 발전하면 그 발전된 시대는 새로운 세계관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민중이 사회·역사발전의 주체로 등장한 새로운 시대에 이르러 새로운 세계관이 요구되었다고 한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김일성 주석은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장구한 기간 어렵고 복잡한 투쟁을 계속하여온 인류는 바야흐로 새로운 력사적 시대를 맞이"하였다(『로동신문』 1999년 11월 16일자)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서 김일성 주석이 말한 '새로운 역사적 시대'란 자주시대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주시대는 새로운 세계관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주시대는 철학에서도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을 옳바로 밝힐 것을 요구"하였다(『김정일 선집』 제10권, 91쪽)고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조선에서 말하는 자주시대란 어떠한 시대인가?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자주시대는 "자기 운명을 자기 힘으로 개척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제국주의자들이 력사무대에서 주인행세를 하면서 광범한 인민대중의 운명을 좌우지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인민대중이 력사의 대상으로부터 력사의 주인으로,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위대한 시대"(『주체철학』, 10쪽)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자주시대가 요구하는 세계관이 된다고 한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로동계급의 혁명투쟁이 멀리 전진하고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자주시대 혁명실천의 요구를 반영하고 창시되였다"(『주체철학』, 10쪽)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선행한 노동계급의 세계관과 자주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세계관,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과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 사이에 명백한 구분선을 긋고 후자를 완전히 다른 유형의 세계관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 이 두 세계관 사이에 구분선을 긋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하여 우리는 우선 사회주의 조선에서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로동계급의 첫 세계관인 맑스-레닌주의 철학은 독점전 자본주의 시기 구라파의 발전된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로동계급이 정치무대에 등장하여 혁명투쟁을 벌리던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맑스와 엥겔스에 의하여 창시되였으며 독점 자본주의시기 자본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는 과정에 심화발전되였다"(『주체철학』, 9-10쪽)는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은 "자본주의가 상승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와 제국주의 시기, 프로레타리아 혁명의 준비기와 수행기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세계관으로서 그 시대적 제한성으로 하여 혁명투쟁이 보다 폭넓고 다양하게 벌어지며 멀리 전진한 우리 시대의 앞길을 옳바로 밝혀줄 수 없었다"(『주체철학』, 11쪽)고 비판한다.

사회주의 조선에서 말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변증법적 유물론(dialectical materialism)의 세계관을 뜻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은 그 이전 시기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세계관을 타파한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세계관이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은 관념과 의식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한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였다. 물질세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은 혁명성, 과학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혁명성과 과학성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세계관을 타파하였다는 의미에서 획득할 수 있었던 혁명성과 과학성이었고, 따라서 그 혁명성과 과학성은 시대적, 역사적으로 미완의 한계에 머물러있을 수밖에 없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이 획득한 혁명성과 과학성이 시대적, 역사적으로 미완의 한계에 머물러있다는 것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세계관을 타파하고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립하였으나 그 뒤에 변화·발전된 시대와 역사의 요구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낙후되었다는 뜻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묶여있는 미완의 한계를 가리켜 제한성과 미숙성이라고 부른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물질세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을 묶어놓은 미완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 미완의 한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세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이 물질세계의 일반적 특성을 밝히는 데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어째서 물질세계의 일반적 특성을 밝히는 데 머무르고 말았는가?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수행해야 했던 세계관적 사명이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낡은 세계관을 타파하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창시하고 정립한 고전 사상가들은 낡은 세계관을 타파하기 위하여 관념론과 유물론이 서로 날카롭게 맞서고, 형이상학과 변증법이 서로 날카롭게 맞서는 대치선으로 세계관의 문제를 이끌어감으로써 바로 그 대치선 위에서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정식화하였고, 또 그 '철학의 근본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을을 세우려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은 물질-의식의 관계문제에서 물질을 일차적인 것으로 보고 물질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세움으로써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세계관을 타파하는 역사적 공적을 이루어냈다. 인류역사에서는 여러 유파들이 나타나 제각기 잡다한 세계관을 제시하였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 이전에는 그 어느 세계관도 세계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밝히지 못하였다.

그러나 변증법적 유물론은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변화·발전한다는 진리에 의거하여 세계의 시원과 물질세계의 일반적 특성을 밝혀주었지만, 물질세계를 개조하고 지배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밝혀주지는 못했다.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람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는 진리는 밝혀주었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혀주지 못했으며, 따라서 물질세계를 개조하고 지배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도 밝혀주지 못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관론론과 형이상학의 낡은 세계관을 타파하기 위한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물질세계의 본질을 해명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세계와 사람을 물질적 존재라는 공통성의 견지에서 고찰함으로써 사람을 물질세계를 이루고 있는 일부로 규정하였다. 이처럼 사람을 물질세계의 일부로 고찰하는 한 물질세계에서 다른 물질적 존재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은 밝혀지지 못하게 되며, 따라서 물질세계가 사람을 중심으로 변화·발전되고 있다는 진리를 밝힐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물질세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이 넘지 못한 미완의 한계라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자주시대는 지난 시기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시대적 및 역사적 제한성과 실천적 경험의 미숙성으로 하여 제기할 수 없었던 수많은 리론실천적 문제들에 과학적 해답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의 창시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더우기 우리 나라에서는 력사발전의 특수성과 혁명의 복잡성, 간고성으로 하여 새로운 세계관의 창시가 보다 절박한 요구로 제기되였다"(『주체철학』, 11쪽)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을 창시하고 정립하는 세계관적 사명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그것은 '철학의 근본문제'와 '철학의 근본원리'를 그 이전의 세계관과 전혀 다르게 제기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주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철학의 근본문제'와 '철학의 근본원리'는 세계관이 그 위에 서 있는 두 개의 받침돌이다. 세계관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무엇으로 제기하고 '철학의 근본원리'를 어떻게 정립하는가에 따라 그 체계가 달라지고 그에 따라 그 내용이 규정된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 어떻게 변증법적 유물론의 고전적 세계관과 전혀 다르게, 그리고 완전히 독창적으로 '철학의 근본문제'와 '철학의 근본원리'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주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자주시대에 등장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철학의 근본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주었다는 것이다. 자주시대 이전의 고전적 세계관이 제기했던 '철학의 근본문제'는 자연-정신의 관계문제, 또는 존재-사유의 관계문제였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에서는 이것을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라고 불렀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제기했던 물질-의식의 관계문제는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그 하나는 물질이 일차적인가 아니면 의식이 일차적인가 하는 세계의 시원에 관한 문제며, 다른 하나는 사람이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이와 다르게,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 제기하고 해명한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란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그 하나는 세계에서 차지하는 사람의 지위에 관한 문제며, 다른 하나는 세계의 변화·발전에서 수행하는 사람의 역할에 관한 문제다. 이러한 지위문제와 역할문제는 세계-사람의 관계문제에 대한 해명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김정일 총비서는 "주체사상은 세계의 시원문제가 유물론적으로 밝혀진 조건에서 세계에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제기하고 세계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해답을 주었"다(『김정일 선집』 제7권, 206쪽)고 지적했다. "주체철학은 이러한 자주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새롭게 제기하였"다(『김정일 선집』 제10권, 91쪽)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해명한 세계-사람의 관계문제란 무엇인가? 세계와 사람의 관계는 매우 복잡다양한 현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그러한 현상들의 깊이에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포괄적인 관계는 두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세계에서 사람이 어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지위문제와 세계의 변화·발전에서 사람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가 하는 역할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지위문제란 세계-사람의 관계에서 사람이 물질세계를 지배하는가 아니면 물질세계가 사람을 지배하는가 하는 문제다. 다른 한편으로, 역할문제란 물질세계의 변화·발전에서 사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아니면 물질세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가 하는 문제다.

둘째,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자주시대에 등장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철학의 근본원리'를 새롭게 제기하고 해명하였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 제기하고 해명한 '철학의 새로운 근본원리'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람 중심의 철학원리를 뜻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주체철학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를 밝힘으로써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 문제에 가장 정확한 해답을 주었"다(『김정일 선집』 제10권, 91쪽)고 지적하였다. '철학의 새로운 근본원리'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운명은 세계와의 관계에서 규정되기 때문에 인간이 세계에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세계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곧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세계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밝혀주는 주체의 철학적 원리는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혀주는 원리로 됩니다." (『김정일 선집』 제8권, 435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와 '철학의 새로운 근본원리'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과학적 해명을 주었으니, 그것은 실로 세계관 발전과정의 대전환이었으며,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묶여있었던 미완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관 발전에서 이룩한 혁명적 전환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세계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세계관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이행·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와 '철학의 새로운 근본원리'에 기초한 독창적이며 혁명적인 세계관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력사 상에는 여러 가지 류형의 세계관이 있었지만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에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밝힌 것은 없었습니다. 세계를 관념이나 정신의 세계로 보는 관념론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시기 세계를 물질의 세계로 본 유물론자들도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에 대한 관점과 립장을 밝히지는 못하였던 것입니다." (『김정일 선집』 제7권, 207쪽)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변화·발전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세계관을 전제로 삼고 있지만, 그 고전적 세계관을 단순히 계승·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세계-사람의 관계문제를 독창적으로 제기하고 과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세계의 본질과 사람의 본질을 전면적으로 새롭게 밝힌 독창적인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사람 중심의 세계관에 의하여 변증법적 유물론의 고전적 세계관이 넘지 못하고 있었던 미완의 한계가 극복되었고, 세계가 무엇에 의하여 어떻게 변화·발전하고 있는가 하는 세계관의 문제가 정확히 해명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그 과학성과 혁명성, 그 독창성과 진리성으로 하여 "인류의 철학사상발전, 로동계급의 철학발전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철학으로 되었"으며 "현 시대와 인류의 미래의 전 력사적 시대를 대표하는 완성된 철학"(『주체철학』, 24쪽)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을 완성된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세계관이 독창성과 위대성, 절대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사람을 위주로 하여 세계에 대한 견해를 세우고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에 대하는 관점과 립장을 새롭게 밝힌 주체의 세계관은 세계관 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룬다"(『김정일 선집』 제12권, 399-400쪽)고 지적했다.

(4)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철학적 세계관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그것을 '주체의 철학적 세계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이 세계-사람의 관계문제와 관련하여 '철학의 새로운 근본문제'와 '철학의 새로운 근본원리'를 제기하고 이를 해명하였음은 이미 위에서 설명한 대로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이에 바탕을 두고 두 가지 철학적 문제를 해명한다. 그것은 사람의 문제와 세계의 문제다.

첫째는 사람의 문제인데,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이 문제를 '사람에 대한 주체적 이해'로 해명한다. '사람에 대한 주체적 이해'는 다시 두 가지 문제를 해명한다. 첫째로는 사람이 자연적 존재와 구별되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 세계에서 사회적 존재는 오직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이 해명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맑스주의 창시자들은 사람의 본질문제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제기하면서도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사회적 의식에 반영되는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경제적 관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썼"다(『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 13쪽)고 지적했는데, 이것은 '사람에 대한 주체적 이해'에 나오는 사회적 존재라는 개념이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사용했던 사회적 존재라는 개념과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노동계급의 고전적 세계관이 사회적 존재라는 개념을 논할 때, 그것은 사회를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으로 구분하면서 전자를 사회의 물질·경제적 요소를 뜻하는 개념으로, 후자를 사회의 의식적 요소를 뜻하는 개념으로 썼다. 그런데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에서는 세계를 자연적 존재와 사회적 존재로 구분하면서 사회적 존재를 사람이라는 개념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 대한 주체적 이해'에서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라는 사실이 해명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주성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김정일 선집』 제7권, 151쪽)으로, "창조성은 목적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같은 책, 같은 쪽)으로,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 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같은 책, 152쪽)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자주성과 창조성은 의식성을 전제로 하며 또 그에 의하여 담보"된다(『김정일 선집』 제4권, 122쪽)고 하면서, "사람이 활동하는 과정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발현되는 과정이며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활동은 사람의 존재방식"(『김정일 선집』 제13권, 466쪽)이라고 지적하였다.

둘째는 세계의 문제인데,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세계에 대한 문제를 '세계에 대한 주체적 견해', '세계에 대한 주체적 관점과 입장'으로 각각 나누어서 해명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주체철학은 력사 상 처음으로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한 데 기초하여 사람을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고 힘있는 존재로 내세우고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 3쪽)고 말했다.

사람에 의하여 지배되고 개조되는 세계는 자연과 사회역사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연을 개조하는 인간의 창조적 역할이 커질수록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의 지위는 더욱 높아지게 되며 인간밖에 있는 물질세계는 더욱더 인간에게 복무하는 세계로 개변되여가는 것"(『김정일 선집』 제8권, 434쪽)이며, "력사가 전진함에 따라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사람의 지위와 역할은 더욱 강화되며 그들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이며 의식적인 투쟁에 의하여 사람들의 의사에 지배되는 세계의 령역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김정일 선집』 제7권, 154쪽)고 지적하였다.

여기서 세계가 사람에 의해서 지배되고 개조된다는 말은,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에 따르면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며 세계는 사람에 의하여 지배된다는 것을 밝힌 것이지 결코 물질세계 자체가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김정일 선집』 제4권, 119쪽), "사람이 세계의 개조자이며 사람에 의하여 세계가 개조된다는 것이지 세계의 모든 변화가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책, 같은 쪽)

그 다음으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은 '세계에 대한 주체적 관점과 입장'을 과학적으로 해명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식과 실천에 대한 주체적 이해', 그리고 '세계를 대하는 사람 중심의 관점과 입장'이 각각 해명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인식과 실천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사실, 인식은 대상에 대한 수동적인 반영이 아니라 능동적인 반영이라는 사실, 인식의 주체인 사람은 자기의 능동적인 인식활동으로 사물현상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을 파악한다는 사실, 인식과 실천은 사회역사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 실천은 인식의 기초이며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해명된다.

'세계를 대하는 사람 중심의 관점과 입장'을 해명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한다는 것은 세계의 주인인 사람의 리익으로부터 출발하여 세계를 대한다는 것"(『김정일 선집』 제7권, 153쪽)이며,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를 대한다는 것은 세계의 개조자인 사람의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세계의 변화발전에 대한다는 것"(같은 책, 153-154쪽)이라고 지적하였다. 그에 따르면, "세계에 대한 주체의 관점과 립장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높은 자각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의식적으로 세계를 개조하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하는 참다운 혁명적인 관점과 립장"(같은 책, 154쪽)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 위에는 기둥 두 개가 세워져 있는데, 그것은 사회역사관과 혁명관이다.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주체의 사회역사관'과 '주체의 혁명관'이라고 부른다.

'주체의 사회역사관'은 사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에 따르면, "맑스주의 유물사관은 사회를 사회적 존재와 사회적 의식으로 구분하고 그 호상관계에서 사회적 존재에 규정적 의의를 부여하였으며 사회구조도 생산력과 생산관계, 토대와 상부구조로 가르고 물질적 생산과 경제적 관계에 결정적 의의를 부여"하였던 것과 달리, "사회는 사람들과 그들이 창조한 사회적 재부와 그것을 결합시키는 사회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김정일 선집』 제8권, 437쪽)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로 맺어진 사회적 존재며, 사회는 사회적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에 따르면, "사회적 존재인 사람은 일정한 사회적 집단을 단위로 하여 살며 발전"하는 데(『김정일 선집』 제13권, 278쪽), 다양한 사회적 집단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과 계급이라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민족은 피줄, 언어, 문화생활, 지역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사회력사적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공고한 집단"(『주체철학』, 86쪽)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그는 "착취사회에서는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을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지 못한가 하는 데 따라 사회가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여"진다(『김정일 선집』 제13권, 472쪽)고 지적함으로써 계급은 생산수단과 국가주권의 소유관계에 따라 사회적 처지에서 구별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해당 사회의 성격은 정권이 어느 계급의 손에 있으며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형태가 어떤가에 따라 규정"된다(『김일성 저작집』 제20권, 397쪽)고 한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사회를 개조·변혁하는 모든 사회적 운동은 주체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발생하고 추동된다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연의 운동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질들의 호상작용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사회적 운동은 주체의 주동적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발생발전"한다고 지적하였다.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 6-7쪽) 철학적 세계관의 견지에서 볼 때 세계를 변화·발전시키는 운동의 주체가 사람이라면, 사회역사관의 견지에서 볼 때 사회역사를 개조·변혁하는 사회적 운동의 주체는 인민대중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운동은 인민대중 자신의 운동이다. 김일성 주석은 "사회적 운동은 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에 의하여 일어나며 인민대중의 창조적 능력에 의하여 추동"된다(『김일성 저작집』 제39권, 155쪽)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사회역사관은 사회발전의 법칙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명은 "인민대중의 자주적 요구와 창조적 능력이 끊임없이 높아지며 그에 따라 사회가 개조되고 변화되여나가는 것이 사회발전의 합법칙적 과정"이라(같은 책, 같은 쪽)고 지적했던 김일성 주석의 말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 사회의 개조·변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의 발전과정은 인민대중 자신의 발전과정이며, 사회발전의 역사는 인민대중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발전하는 역사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의 발전은 인민대중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과정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높아지고 그 요구에 맞게 사회제도가 완성되면 사회는 더욱더 인민대중의 목적의식적인 활동에 따라 발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에 의하여 변화발전하는 사회적 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 9쪽)

사회·역사가 발전된다는 것은 의미를 해석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고전적 세계관에 기초한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과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주체의 사회역사관'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맑스주의는 물질적 부의 생산방식이 사회의 성격과 사회발전수준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이며 사회의 발전과정은 계급투쟁을 퉁하여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해결되고 낡은 생산방식이 새로운 생산방식으로 교체되여나가는 과정"(『김정일 선집』 제12권, 278쪽)으로 보았다고 지적하고,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결국 자연개조사업이 발전하여 물질적 재부가 더 많이 생산되며 사회개조사업이 발전하여 사회적 관계가 보다 합리적으로 개변되며 인간개조사업이 발전하여 사람들이 보다 높은 수준의 사상문화적 재부를 가진 힘있는 사회적 존재로 자라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김정일 선집』 제8권, 103쪽)고 밝혔다. 이것은 사회가 자연개조, 사회개조, 인간개조라는 3대 개조를 통하여 발전된다는 사실을 해명한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3대 개조론은 사회발전의 기본영역과 그 순차성을 밝혀주고 있으며,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창조적 활동이 이 세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의 지적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시기에는 착취와 압박을 청산하고 인민대중의 사회정치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문제, 다시 말하여 사회개조문제가 전면에 나서게 되며 사회주의 제도가 수립된 다음에는 사람들을 자연과 낡은 사상문화의 구속에서 해방하기 위한 자연개조, 인간개조 문제가 보다 전면에 나서게" 된다(『김정일 선집』 제10권, 301쪽)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주체의 혁명관'은 혁명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혁명은 본질에 있어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기 위한 조직적인 투쟁"이라고 전제하고 "혁명에 의하여 낡은 사회관계와 사회제도가 개조되고 변혁되며 인민대중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높아"진다(『김일성 저작집』 제37권, 192쪽)고 지적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지적에 따르면, "혁명은 인민대중의 자주적 지향과 요구, 창조적 능력에 의하여 일어나고 추동"되는 것이므로, "혁명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원인은 인민대중의 높은 자주의식과 정치적 준비에" 있다(같은 책, 같은 쪽)는 것이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노동계급의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한 '주체의 혁명관'은 혁명의 내용을 밝히는 데서도 고전적 혁명이론과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맑스주의는 사회주의 제도가 선 다음 혁명을 계속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옳은 해답을 줄 수 없었"지만(『김정일 선집』 제12권, 278쪽), '주체의 혁명관'은 사회주의 제도가 선 다음에도 "사상, 기술, 문화 분야에서 낡은 것을 새 것으로 바꾸는"(『김일성 저작집』 제28권, 275쪽) 3대 혁명을 사회제도를 변혁하는 혁명과 똑같은 비중으로 중시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인민대중은 력사의 주체"라고 전제하고, "인민대중이란 근로하는 사람들을 기본으로 하여 자주적 요구와 창조적 활동의 공통성으로 결합된 사회적 집단"(『김정일 선집』 제13권, 472쪽)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그는 사회·역사를 개조·변혁하는 주체가 인민대중이라는 사실을 해명하는 데 머물러 있지 않고, 인민대중이 '자주적 주체'가 되어야 사회·역사를 개조·변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는 "력사의 자주적 주체는 선진적 로동계급이 출현하고 그들의 자주적인 혁명사상에 의하여 근로인민대중이 의식화되고 조직화됨으로써 비로소 력사무대에 널리 등장할 수 있었"다(『김정일 선집』 제8권, 447쪽)고 지적했는데, 여기서 그는 선진적 노동계급의 출현, 그들의 자주적인 혁명사상의 정립, 그에 의한 근로인민대중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 조선에서는 노동계급의 혁명사상이 노동계급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수령에 의해서 창시되고 정립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근로인민대중은 수령이 영도하는 노동계급의 당에 의해서 의식화되고 조직화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김정일 총비서에 따르면, 인민대중이 '자주적 주체'로 된다는 것은 "당과 수령의 령도 밑에 하나의 사상, 하나의 조직으로 결속"되는 것(같은 책, 같은 쪽)을 뜻한다. 그는 "수령, 당, 대중이 하나로 결합"된 것을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같은 책, 451쪽)라고 불렀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수령, 당, 대중이 결합된 '사회정치적 생명체'는 '혁명적 수령관', '혁명적 조직관', '혁명적 군중관'에 의하여 각각 해명되며, 그 삼자는 '혁명적 도덕관'에 의하여 결합된다고 한다. 그리고 '혁명적 도덕관'은 '혁명적 인생관'에 결부된다고 한다.

(5) 사람 중심의 세계관은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에 구현되어 있는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고전적 세계관을 창시한 사상가들은 사회의 본질을 사회의 물질·경제적 조건을 중심으로 해명하고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근본요인을 해명하였으며, 그 결과 사회의 물질·경제적 조건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역사관, 곧 역사적 유물론을 정립한 바 있다. 이에 비하여 사람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은 사회의 물질·경제적 조건이 아니라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의 본질을 해명하고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근본요인을 해명하였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이로써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역사관이 정립되었다고 한다. 그 이론에 의하면, 사람 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에 기초하여 정립된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역사관은 인민대중을 중심에 놓고 사회의 본질과 그 발전의 합법칙성을 밝히고 전일적으로 체계화한 사회역사관이라는 것이다. 지난 시기 역사적 유물론이 인류의 역사를 계급투쟁의 역사, 또는 생산양식이 교체되어온 역사라고 보았던 것과 달리, 김정일 총비서는 "인류의 역사는 인민대중의 창조의 력사"(『김정일 선집』 제7권, 166쪽)라고 밝혔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에 구현되어 있는가, 구현되어 있다면 어떻게 구현되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묻게 된다. 이 문제에 관해서 김정일 총비서는 "인민대중이 주인으로서의 높은 자각과 능력을 가지고 동지적으로 단결하여 투쟁하는 여기에 모든 착취사회와 구별되는 사회주의 사회의 본질이 있으며 사회주의 사회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있다(『김정일 선집』 제12권, 277쪽)고 하면서, "주체사상의 독창성과 우월성은 그에 기초하고 있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독특성과 우월성을 규정하고" 있다(『김정일 선집』 제10권, 474쪽)고 지적했다.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형의 사회주의 사회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발전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 이론에 의하면,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 지니고 있는 독창성과 우월성은 인민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주체의 사회역사관'과 '주체의 혁명관'으로 정립되었다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는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는 사회력사발전에서 차지하는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에 맞게 인민대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며 모든 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김정일 선집』 제11권, 42쪽)라고 하였다.

문제는 주체형의 사회주의 사회가 '주체의 사회역사관'과 '주체의 혁명관'을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주체의 사회역사관'과 '주체의 혁명관'을 구현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문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체형의 사회주의 사회가 집단주의 생활원리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사회주의의 본질은 집단주의에 있으며 그 우월성과 생활력의 원천도 집단주의에 있다"(『로동신문』 2000년 6월 25일자)고 지적했다.

주체형의 사회주의를 헐뜯고 비난하는 데 열심을 내고 있는 부르주아 선동가들은 집단주의를 전체주의로, 주체형의 사회주의 사회를 이른바 신민사회(臣民社會)라고 왜곡하고 있지만, 사회주의 조선의 이론에 따르면, 집단주의 생활원리라는 것은 지도자와 인민이 하나의 자주적 주체로 결합되어 살아나가는 협동과 단결의 생활원리를 말한다. 이 문제를 김일성 주석은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나는 력사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인민대중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생명을 언제나 인민대중의 생명과 결부시켰으며 인민대중과 생사운명을 같이하는 데서 삶의 보람과 승리의 비결을 찾았습니다. 나는 인민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난관을 맞받아나가면서 투쟁하였습니다." (『김일성 저작집』 제43권, 354쪽)

"인민들 속에 들어가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체사상의 요구입니다. 주체사상을 구현한다는 것은 인민들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며 인민들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주체사상을 구현한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저작집』 제44권, 490쪽)

주체형의 사회주의 사회가 이러한 집단주의 생활원리에 의하여 공고하게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입증되었다. 만일 사회주의 조선이 집단주의 생활원리에 의하여 살아나가는 일심단결의 사회가 아니라 협동과 단결을 소홀히 하였던 소비에트형 사회주의였다면 아마도 '고난의 행군'을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인민과 단결하여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생활원리를 몸소 구현하였던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민들과 <고난의 행군>을 같이 하면서 우리 인민들이 어떤 고충과 고생을 겪는지 다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인민의 령도자, 최고사령관이 되려고 합니다." (『로동신문』 2000년 10월 3일자)

(6) 맺음말을 대신하여 - 독자적 세계관의 정립과 자주통일국의 건설

우리 민족사에서 강성대국을 건설하고 위대한 문명권을 세웠던 나라는 고구려였다. 고구려를 그토록 강대한 나라로 만들었던 힘의 원천, 위대한 고구려 문명권을 건설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그 힘의 원천을 고구려 인민들이 보여주었던 무적필승의 막강한 군사력에서 찾기도 하고, 동아시아의 경제권을 좌우했던 높은 경제·기술력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면적인 고찰이다. 고구려가 강성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고구려 인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독자적인 천하관(天下觀), 곧 자주적 세계관이었다. 강성대국 고구려의 천하관은 중화민족이 자기들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면서 자기 주변의 모든 민족을 오랑캐와 야만족으로 깔보았던 이른바 사이팔만(四夷八蠻)의 천하관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고구려를 천손(天孫)의 나라, 곧 태양족의 나라로 보았다. 그만큼 고구려의 천하관은 독자적이었으며 자주적이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고구려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 무려 1천3백 년 동안이나 중화민족의 천하관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사상적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외세의존사상과 사대주의에 빠져들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고 강대국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속국의 자리에 굴러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 민족은 지난 1백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와 수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이 분단체제 안에서 겪고 있는 모든 불행과 재앙, 모든 비극과 고통의 근본원인은 지난 1천3백 년 동안 사상적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외세의존사상과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상적 복속(服屬)의 현실과 직결되어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비록 군사력이 약하여 전쟁에서 패하거나 경제·기술적으로 뒤떨어졌어도 사상적 주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는 민족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사상적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외세의존사상에 물들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한, 그런 민족은 다시 일어설 수 없으며 속박과 굴종에 순응하며 노예적 운명을 살아갈 뿐이다. 사회적 집단인 민족이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문제는 결국 사상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사상적 주체성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가? 사상적 주체성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적인 세계관이 없으면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그런 뜻에서 독자적인 세계관은 사상적 주체성을 낳는 모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1천3백 년의 비극에 막을 내리고 21세기의 위대한 민족으로 다시 일어서는 당대의 민족사적 과업은, 고구려의 역사적 교훈에서 보듯이 독자적 세계관을 세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오늘 사회주의 조선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첫째 조항은 바로 그들의 독자적인 세계관이며, 그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상적 주체성이다. 조국통일위업이 곧 민족자주위업이라고 한다면, 자주적으로 통일된 위대한 민족에게는 독자적인 세계관과 그에 기초한 사상적 주체성이 요구된다. (2000년 11월 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