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회담 이후 민족주체적 정세관과 민족민주운동의 전략문제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말

(2) 제국주의적 정세관과 '포용정책'의 전략문제

(3) 김세균의 착각과 임동원의 혼동

(4) 화해·교류·협력이 추진되고 있는 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

(5) 민족주체적 정세관과 민족민주운동의 전략문제

1) 민족주체적 정세관에 대하여

2) 전략문제의 중심은 민족자주에 놓여있다

3) 반제국주의운동과 민중운동은 하나다

4) 민족민주운동세력과 김대중 정권의 관계문제

5) 현 단계 조국통일운동의 두 가지 전략

6) 민족민주운동의 주체강화전략

(6)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한(조선)반도는 지금 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 한(조선)반도의 현 정세는 대결·봉쇄·전쟁위협에서 화해·교류·협력으로 전환되는 격동기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평양회담 이전에 사람들은 평양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한 차례 특별한 행사로 끝나는 게 아닐까 하고 은근히 걱정하기도 했고, 평양회담 직후에는 6.15 공동선언이 그저 선언으로 그치고 이행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고 회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화해·교류·협력이 심화·발전되고 있는 오늘의 정세변화는 일시적이거나 잠정적인 국면전환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힘으로도 되돌려 세울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며,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정세의 질적 변화다.

그런데 민족민주운동의 정세관을 논하면서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한(조선)반도 정세의 질적 변화가 어떤 세력에 의해서 촉발되었고 어떤 힘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이 글에서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는 말이지만, 민족민주운동은 한(조선)반도 정세의 질적 변화를 일으킨 근본원인과 그 추동력을 인식한 기초 위에서 올바른 정세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복잡한 정세 속에서 정세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은 단지 실무적 문제가 아니라 전환기의 정세관을 올곧게 세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정치적 문제다. 이 글이 정세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정세관이 전략적 사고를 직접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제국주의 침략과 내부모순의 폭발로 낡은 봉건체제가 무너지고 있었던 19세기말 20세기초의 전환기에, 그리고 일제의 패망과 민족의 해방으로 급격한 질적 변화를 겪었던 1945년 이후의 전환기에 정세관을 올바르게 세우지 못했던 여러 정치세력들은 좌충우돌하다가 결국 와해와 몰락의 막다른 길로 밀려가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의 가르침은 오늘 전환기의 민족민주운동에게 정세관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심각한 것인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이 글은 오늘 한(조선)반도 정세의 질적 변화가 어떤 세력에 의해서 촉발되었고 어떤 힘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관점과 견해가 서로 다른 두 방향에서 형성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로 다른 정세관이 팽팽히 맞서있다고 해야 한다. 서로 배치되는 두 가지 정세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그것을 제국주의적 정세관과 민족주체적 정세관이라고 부른다. 이 글의 전반부는 서로 배치되는 두 가지 정세관을 해설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글의 후반부는 민족주체적 정세관의 견지에서 바라본 민족민주운동의 전략문제를 논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제국주의적 정세관을 해부하고 그것이 모순과 허위로 엮어진 궤변임을 논증하는 한편, 민족민주운동이 민족주체적 정세관을 견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아주 상식적인 말이지만, 민족민주운동은 자기의 고유한 전략목표를 가져야 하며, 민족민주운동의 전략은 민족주체적 정세관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민족민주운동의 전략문제는 평양회담 이후 급변하고 있는 정세 속에서 어떠한 전략목표를 가져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해명하는 문제다.

(2) 제국주의적 정세관과 '포용정책'의 전략문제

제국주의적 정세관은 무엇인가? 그것은 화해·교류·협력이라는 정세의 질적인 변화와 발전을 불러일으킨 근본원인이 제국주의세력의 한(조선)반도 정책에 있으며, 그러한 변화와 발전을 일으키고 있는 추동력도 제국주의세력으로부터 나온다고 보는 정세관이다. 그것은 화해·교류·협력이 실현되고 있는 현 정세는 제국주의자들이 추진하는 한(조선)반도 정책의 전략목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정세관이다. 제국주의세력의 한(조선)반도 정책이란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정세관에 따르면, 오늘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해·교류·협력의 정세는 오로지 '포용정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국주의적 정세관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제국주의적 정세관의 내용은 앞뒤가 전연 맞지 않는 궤변이며, 그럴듯한 말을 늘어놓아 사람들의 판단을 혼란에 빠뜨리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글은 제국주의적 정세관이 궤변이며 속임수라는 사실을 논증하기 위해서 우선 '포용정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려 한다. '포용정책'을 정확하게 파악하면, 오늘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해·교류·협력의 정세가 '포용정책'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자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포용정책'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여섯 해 전인 1994년의 일이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앤터니 레이가가 발표한 화제의 논문 「반동국가들과 벌이는 대결」에서 '포용정책'의 기본틀이 제시되었다. (Anthony Lake, "Confronting Backlash States," Foreign Affairs 73, no.2 [March/April 1994]) 클린턴 행정부의 전략가들은 그 뒤로 3-4년 동안 이 기본틀을 더욱 다듬고 그 내용을 채워 넣어가면서 '포용정책'을 차츰 완성해갔다. '포용정책'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냉전체제가 무너진 새로운 전략환경에서 제국주의가 세계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고 정립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제국주의의 '세계 경영'이란 세계적 범위의 지배와 수탈이라는 개념을 좀 점잖은 표현술로 분칠한 것이다.

인류가 21세기에 들어온 지금 미국이 '포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밀고 나가는 제국주의적 '세계경영전략'은 세 갈래로 분화되어 있다. 그 분화된 전략은 억지전략(deterrence strategy), '세계화전략(globalization strategy)', 평화공존전략(peaceful-coexistence strategy)이다. 이처럼 세 갈래로 분화된 전략은 '포용정책'이 포괄하고 있는 세 개의 전략단위들인 것이다.

탈냉전기의 '포용정책'이 지난 냉전기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세계화전략'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세계화전략'이 '포용정책'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지난 냉전기에 미국의 정책은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이었고, 그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은 격퇴전략(rollback strategy)이었다. 미국이 냉전기 초기에 이 격퇴전략에 의거하여 아시아대륙에서 벌인 두 차례의 전쟁이 1950년대의 6.25전쟁과 1960년대의 베트남전쟁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미국은 격퇴전략을 억지전략으로 전환하였다. 억지(deterrence)라는 전략개념은 방위(defense)라는 전략개념과 다르다. 방위가 적대세력이 침공했을 때 이를 막아낸다는 수동적 전략개념이라면, 억지는 적대세력이 침공하기 이전에 선제공격을 가하고 더 나아가서 적대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며 적대세력이 존재하던 지역을 점령한다는 매우 도발적인 전략개념이다. 민족민주운동이 미국의 다섯 단계 전쟁계획인 '5027 작전계획(OPLAN 5027)'을 전쟁도발책동이라고 규정해야 하는 까닭은, 그 전쟁계획이 방위라는 수동적 전략개념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억지라는 도발적 전략개념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봉쇄정책과 억지전략은 지난 시기 냉전체제를 유지해왔던 기본정책과 그 전략단위였고, 오늘날 냉전체제가 무너진 뒤에는 '포용정책'과 그 전략단위인 '세계화전략'으로 이행되었으므로 이제는 억지전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탈냉전기에 들어와서도,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가 '포용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오늘에 와서도 냉전기의 전략이었던 억지전략은 여전히 살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냉전기의 전략과 탈냉전기의 전략 사이에서 생겨난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이 '세계화전략'을 새로운 전략으로 추진하면서 종래의 억지전략에만 의존하지 않고 있다는 것뿐이다.

미국은 냉전기에 봉쇄정책과 억지전략을 추진했지만, 소련과 중국의 대립으로 사회주의 진영이 분열된 뒤부터 이 두 나라에 대해서 억지전략과 더불어 평화공존전략을 병행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냉전체제가 무너졌던 1990년대로 다가올 수록 평화공존전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욱 커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미국의 평화공존전략은 냉전기와 탈냉전기를 구분하지 않고 적용되는 제3의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 탈냉전기에 모습을 드러낸 '포용정책'은 종래의 억지전략을 배제·포기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포괄하면서 상대국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종래의 평화공존전략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포용정책'을 논할 때, 오로지 '세계화전략' 하나에만 주목하면서 그 전략을 '신자유주의 전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를 논하고 있는 사람들은 '포용정책'의 일면만 보고 있을 뿐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화전략'과 억지전략과 평화공존전략이 어떻게 '포용정책'의 틀 안에서 연관·작동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민족민주운동은 이러한 일면적 관찰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세계화전략'은 '개방'과 '개혁'이라는 기만적 구호를 앞세운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침탈의 전략이고, 억지전략은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같은 전략공격무기의 확산을 저지하겠다는 군사적 패권전략이며, 평화공존전략은 정치적 지배, 경제적 침탈, 군사적 패권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 협력적 갈등관계를 유지하는 대외전략이다.

억지전략이 노리고 있는 주된 목적은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전략공격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무력대결과 전쟁도발로 극력 저지하려는 것이다. 그 전략은 다른 나라들이 전략공격무기를 개발·보유하는 것을 무력으로 저지함으로써 제국주의세력의 군사적 패권을 공고하게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만일 미국이 억지전략에 실패한다면, '세계화전략'이나 평화공존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만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나라들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같은 전략공격무기를 개발·보유하게 된다면 미국의 군사적 패권은 무너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는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침탈 자체가 크게 위축될 것이며, 평화공존전략도 물거품이 될 것이다.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미국이 억지전략에 성공하는 만큼 '세계화전략'과 평화공존전략을 추진하는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전략은 '포용정책' 안에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연관관계로 묶여있다. 민족민주운동이 북(조선)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포용정책'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하려 한다면, 반드시 평화공존전략, '세계화전략', 억지전략이라는 세 측면을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이 북(조선)에게만 적용되는 특수한 정책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미국의 대외정책 전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오류다. '포용정책'은 여러 지역, 여러 대상국의 특수한 조건에 따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수행되고 있다. 미국이 '포용정책'의 한 전략단위인 억지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대상국은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수단, 쿠바 등이다. 미국은 이러한 나라들이 전략공격무기를 개발하려 하거나 수입하려 한다고 하면서 이 나라들에 대해서 이른바 '깡패국가'라고 모욕하면서 고립·봉쇄하고 전쟁을 도발하거나 무력대결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이 '포용정책'의 한 전략단위인 '세계화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대상국은 친미의존적 성향이 강한 나라들, 또는 미국에 예속된 나라들이다. 아시아에서는 남(한국), 태국,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며, 중남미에서는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가가 대표적이며, 아프리카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나라들에 대한 '세계화전략'은 각 나라들의 아메리카화·예속화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은 미국이 이런 나라들에게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라는 온갖 형태와 방식의 압력을 가하거나 '개혁·개방'의 길로 적극 유도하면서 제국주의적 지배와 수탈을 차츰 격화·확장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이 '포용정책'의 한 전략단위인 평화공존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대상국은 중국과 러시아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이 두 나라에 대해서는 협력과 갈등을 되풀이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냉전기에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정치대국이며,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같은 전략공격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군사강국이다. 미국은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침탈을 마구 자행할 수 없고 군사적 패권주의가 잘 통하지 않는 정치·군사강국, 러시아와 중국에 대해서는 냉전기에 일찌감치 봉쇄정책과 억지전략을 포기하고 평화공존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 글이 주목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평화공존전략으로 상대하고 있었던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밖에 없었는데, 다른 한 나라가 미국의 평화공존전략의 상대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미국은 북(조선)에 대해 전개해왔던 종래의 억지전략을 포기하면서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미국이 평화공존전략으로 상대하고 있는 나라는 북(조선), 중국, 러시아 세 나라가 되었다.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종래의 전략을 바꾸게 된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서 이 글이 주목하는 사람은 미국의 전략가인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와 애쉬튼 카터(Ashton B. Carter)다. 이 두 사람은 1998년 11월 23일 클린턴의 요구에 따라서 미국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임무를 맡았던 전략가들이다. 당시 클린턴은 윌리엄 페리를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임명하였는데, 페리는 자기가 맡은 대북정책 조정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애쉬튼 카터를 자기의 특별보좌관으로 삼았다. 이 두 전략가는 미국의 새로운 안보전략을 논의한 화제의 책 『예방적 방위: 미국의 새로운 안보전략』을 펴냈다. 탈냉전기에 미국의 '포용정책'이 추진해야 할 새로운 군사전략을 정리한 책 『예방적 방위』는 1999년에 나왔는데, 이 책이 출판될 때까지만 해도 '페리 보고서'는 작성되고 있었고 아직 완성되지는 못했다.

페리와 카터는 이 책에서 미국의 새로운 전략개념을 적용하는 상대국으로 러시아, 중국, 북(조선) 세 나라를 지목하면서 안보전략을 논한 바 있다. 이 두 전략가는 그 책을 출판하기 직전에 쓴 '맺음말(epilogue)'에서 조·미 관계의 위기상황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고나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이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 책을 끝맺은 바 있다.

그렇다면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찾아내려 했던 '대북 포용정책'의 새로운 해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1999년 9월에 완성된 '페리 보고서'에 나와있는 해법이다. 두루 알려진 대로, '페리 보고서'는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냉전기의 억지전략과 탈냉전기의 '세계화전략'을 모두 포기하고 제3의 전략인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을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종래의 두 전략을 포기하고 제3의 전략인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오늘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인식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미국의 북(조선) 전략이 이렇게 바뀔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이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은,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이 지난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이미 두 차례나 자기의 전략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을 처음으로 전환한 것은 1994년 10월의 제네바 기본합의서 채택과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난 바 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전의 '대북 포용정책' 내용과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후의 '대북 포용정책' 내용은 서로 다르다.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주는 가장 중요한 전략적 의미는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단위가 종래의 억지전략에서 '세계화전략'으로 전환되었다는 데 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나와있는 미국의 약속, 즉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를 알아보면 그 전략변동의 전후맥락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미국은 북(조선)이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되면서 완전히 고립·약화되었다고 판단했으며, 거듭 몰아친 식량난과 동력난으로 붕괴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그러한 정세인식에 기초하여 경수로 건설과 조·미관계 정상화라는 일종의 '약속어음', 즉 미국으로서는 나중에 지불할 생각이 별로 없는 '약속어음'을 내놓으면서 북(조선)의 전략공격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한편,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북(조선)이 머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세계화의 길'로 자진해서 끌려나올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나중에 현실로 입증된 것이지만, 이것은 미국의 결정적인 정세오판이었으며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실책이었다.

미국이 자기의 오판과 실책을 알게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98년의 일이었다. 북(조선)은 엄혹한 시련으로 이어진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고 도리어 강하게 단련되었으며, 4년이라는 시간을 벌어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사업을 완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북(조선)은 마침내 1998년 8월 31일에 '광명성 1호'를 발사함으로써 북(조선)이 이미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보유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신호를 미국에게 보냈다. 이로써 19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서 이후에 북(조선)을 겨냥하고 있었던 '세계화전략'은 하루 아침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북(조선)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커다란 혼란과 충격에 빠진 미국의 전략가들은 하는 수 없이 새로운 대북전략을 세워야 했다. 미국은 북(조선)을 '개방·개혁'으로 유도하는 데 시간과 자금이 들어갈 뿐 아니라, 장차 성공할지 실패할지조차 알 수 없는 모호한 '세계화전략'을 포기하고 새로운 대북전략을 세웠으니 그것이 평화공존전략이다. 새롭게 추진하기 시작한 조·미 평화공존전략이 1999년 9월에 완성된 '페리 보고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민족민주운동은 '페리 보고서' 이전의 '대북 포용정책' 내용과 '페리 보고서' 이후의 '대북 포용정책' 내용을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네바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페리 보고서' 이전까지 4년 동안의 '대북 포용정책'은 '세계화전략'에 의해서 추진된 바있으나, '페리 보고서' 이후의 '대북 포용정책'은 평화공존전략에 의해서 추진되고 있다. 이것은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목표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페리 보고서'는 조·미 두 나라가 종래의 적대관계를 포기하고 국교수립에 의한 평화공존이라는 종착점을 향해서 나아간다는 전략목표를 담고 있는 정책문서이므로 평화공존전략 보고서라고 부를 수 있다.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조·미관계의 평화공존은 곧 한(조선)반도의 평화공존을 뜻하는 것이므로, 조·미 평화공존은 결국 한(조선)반도 분단의 평화적 관리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미관계의 평화공존화 추세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를 화해·교류·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었다. 워싱턴의 전략가들의 제국주의적 정세관은 화해·교류·협력이 앞으로 심화·발전하게 되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없앨 수 있으며 따라서 준전시화되어 있는 분단체제를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한(조선)반도 국가연합'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3) 김세균의 착각, 임동원의 혼동

그런데 조·미 관계의 전략적 변동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페리 보고서'의 전략목표가 조·미 평화공존(분단의 평화적 관리)이 아니라 북(조선)을 개방·개혁으로 이끌어내는 '세계화전략'의 신자유주의적 체제통합(자본주의적 흡수통합)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인식에 그대로 의존한 채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제멋대로 논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김세균 교수다. 그는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이란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관련활동을 완전히 종식시킬 경우 북한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편입시킨다는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하면서, "사회주의체제의 세계자본주의체제로의 통합과 시장경제화에 기초한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장기적 관점에서 유도해내는 '기능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붕괴유도 노선'의 성격을 지닌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세균, 「남북정상회담과 진보진영의 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186-187쪽)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있듯이, 김세균 교수는 '페리 보고서' 이전에 추진되었던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과 '페리 보고서' 이후에 추진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주관주의적 관념을 늘어놓고 있다. 그가 이처럼 그릇된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세를 거꾸로 읽고 있는 까닭은 그의 생각이 워싱턴의 전략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청산된지 오래인 '북(조선) 생존위기설'에 아직도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옮겨보자.

"북한은 무엇보다 세계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퇴조로 인해, 그리고 미국과 대자본주의권과의 관계개선 등을 위해 더 이상 제국주의의 세계 지배에 대항하는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진영의 강고한 보루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북한은 자신이 견지해온 민족자립경제 건설노선을 크게 훼손시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자국 경제의 세계 자본주의체제로의 통합을 많든 적든 추진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같은 책, 188쪽)

지금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북(조선)을 중국, 러시아와 같은 수준의 군사강국으로 대하면서 종래의 전략을 바꾸어 평화공존의 길로 나아가는 '페리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는 판인데, 김세균 교수의 정세인식은 캄캄절벽에 갇혀있는 한심한 꼴이다. 특히 김세균 교수가 오늘의 남북관계에 관하여 주장하는 내용은 차마 옮겨 적기에도 창피함을 느낄 만큼 엉망진창이다. 그의 엉터리 분석에 따르면, "남북한간의 힘관계가 북한에 대한 남한의 압도적 우위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있고 그 우위가 갈수록 더욱 커지고" 있으므로, "북한이 자신의 '주체형 사회주의체제'를 크게 훼손시킬 수 있지만 생존과 체제보존을 위해서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점차 문호를 개방하고 남한과의 경제적 교류관계를 증진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같은 책, 194쪽)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읽으면 놀랄만한 기상천외한 분석이다. 그의 이러한 오류는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를 보는 견해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남북한의 통일과정은 남한이 통일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같은 책, 같은 쪽)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남한체제가 그대로 북한에 이식되는 형태로 통일이 이루어"질까봐 매우 걱정하면서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통일정책"을 반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한층 높이고 있다. (같은 책, 194-195쪽)

이 글이 김세균 교수의 엉터리 정세인식이 지닌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제국주의적 정세관이 파놓은 세 가지 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첫째, 미국은 '페리 보고서' 이후에 대북전략을 스스로 바꾸어놓고서도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고 있으며, 이전처럼 '포용정책'이라는 동일한 정책개념을 쓰고 있기 때문에 김세균 교수 같은 사람들이 미국의 전략변동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김세균 교수는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이미 오래 전에 내버린 시대착오적인 '북(조선) 생존위기설'에 아직도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 셋째, 김세균 교수는 평양회담 이후에 6.15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화해·교류·협력단계로 변화·발전하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가 북(조선)의 주도력에 이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국주의적 정세관의 함정에 빠져 있는 김세균 교수의 착각과 오류를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오늘의 화해·교류·협력은 제국주의세력의 대북전략이 이루어놓은 산물이라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한(조선)반도 정세의 질적인 변화와 발전을 불러일으킨 동인은 제국주의세력이며, 그 변화를 이끌어가는 추동력도 제국주의세력에게서 나온다는 기만과 거짓인 것이다. 이처럼 남(한국)의 일부 좌파 이론가들이 결국에 가서는 자신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제국주의적 정세관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김세균 교수의 이러한 엉터리 정세인식은 비단 그에게만 국한된 오류가 아니며, 남(한국)에서 사회변혁을 논하는 이른바 '좌파 이론' 속에 널리 퍼져있는 오류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좌파 이론'의 오류는, 제국주의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므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이나 사회주의 나라와 맞붙을 경우 언제나 이긴다는 주관주의적 관념이 빚어낸 인식의 오류다. 이러한 오류가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것은 결국 패배주의의 절망과 파산이다.

다른 한 편, 김세균 교수의 착각과는 다르게, 어떤 사람들은 '페리 보고서'에 들어있는 새로운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목표가 평화공존과 신자유주의적 체제통합 두 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이 두 가지 전략목표를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혼동에 빠져있는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은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대북정책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분단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평화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전쟁은 안 된다. 긴장을 완화해야 한다. 평화공존해 나가야 한다. 절대로 전쟁에 의한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흡수통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화해협력을 통해 북한이 개방하고 현대화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주자. 북한이 안심하고 변할 수 있도록 끌어내자.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성원으로 끌어내자는 것이다. '끌어내자'는 말이 너무 지나친 말이라면 '모셔내자'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대북정책의 두 가지 목표다. 이렇게 해서 사실상의 통일상황(de facto unification)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즉 법적인 통일(de jure unification)에 앞서 사실상 통일상황부터 만들자는 것이다. 서로 오가며 돕고 나누는 상황이다." (『신동아』 2000년 8월호, 158-159쪽)

위의 인용문에 따르면, 임동원 국정원장은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목표가 분단의 평화적 관리와 '세계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첫째 목표인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것은 화해·교류·협력을 통하여 한(조선)반도의 전쟁위험을 차츰 해소해가면서 남북의 평화공존에 의한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1민족 2국가를 지향하는 전형적인 양국론적 반통일론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둘째 목표인 '세계화'라는 것은 김대중 정권의 이른바 '햇볕정책'의 전략목표를 뜻하는 말인데, 화해·교류·협력을 통하여 북(조선)의 '개방'과 '개혁'을 촉발시켜 '세계화의 길'로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임동원 국정원장은 '흡수통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말했듯이 북(조선)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성원으로 끌어내려는 것은 사회주의 체제를 변질시키고 결국에 가서는 제국주의가 장악·지배하고 있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통합하려는 전형적인 체제통합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는 논리적 모순이 들어있다. 한(조선)반도를 두 나라로 영영 갈라놓으려 하면서도 한(조선)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두 체제를 하나로 통합시키려는 자가당착이 그것이다. 만일 임동원 국정원장의 주장대로 하면, 북(조선)의 현존 체제가 장차 자본주의 체제로 통합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두 나라가 아니라 한 나라로 쉽게 통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목표가 분단의 평화적 관리, 곧 양국론적 반통일론에 있는 게 아니라, '세계화전략'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체제통합론에 있다는 말이다. '대북 포용정책' 안에서 평화공존전략과 '세계화전략'은 상호모순된다. 분단의 평화적 관리는 신자유주의적 체제통합론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도 임동원 국정원장은 상호모순되는 두 전략을 '대북 포용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억지로 끌어다 붙여놓고 있다.

임동원 국정원장이 그와 같은 혼동에 빠진 까닭은, 그가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목표가 두 가지라고 밝혔던 그 시점이 윌리엄 페리와 애쉬튼 카터가 새로운 대북전략, 곧 조·미 평화공존전략을 정립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은 '페리 보고서'가 완성되기 이전에 임동원 국정원장이 발언했던 것이다. 당시 그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윌리엄 페리와 자주 접촉하고 있었다. 페리와 카터의 새로운 대북전략인 조·미 평화공존전략이 '페리 보고서'라는 정책문서에 담겨 세상에 그 일부내용이 알려지고 난 뒤에, 임동원 국정원장은 그러한 혼동에서 빠져나왔을까?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전략을 '세계화전략'에서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시켰던 두 전략가 윌리엄 페리와 애쉬튼 카터는 그들이 쓴 책 『예방적 방위』의 '맺음말'에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을 추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 두 전략가의 말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이렇다.

"북(조선)이 계속하여 추진하고 있는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이 김대중의 포용정책을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시간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 그리고 연방의회의 여러 의원들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 이 문제를 풀어내는 해법을 찾지 못하면, 상황은 1994년 여름에 있었던 것과 같은 대결국면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예방적 방위'의 접근법은 1994년 여름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접근법은 여러 세력들이 복잡하게 존재하는 이 지역에서 실행될 수 있을까? 미국은 한(조선)반도에서 파멸적인 전쟁을 하지 않고서도 평양정권이 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려는 야망을 포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은 매우 불투명하다. 이것은 '예방적 방위' 앞에 나선 새로운 도전이다." (Ashton B. Carter and William J. Perry, Preventive Defense: A New Security Strategy for America [Brookings Institution Press, Washington, D.C., 1999], 221쪽)

위의 인용문은 북(조선)을 '개방·개혁'하는 '세계화전략'을 더 이상 추진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북전략을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하고 정립해야 하는 임무를 지고 있었던 두 전략가 페리와 카터는 '예방적 방위'가 맞닥드린 '새로운 도전'에 대한 해법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그것은 '대북 포용정책'의 전략적 전환이었다. 북(조선)이 아메리카 대륙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전략공격무기를 개발·보유하였음을 전세계에 시위했던 '광명성 1호' 발사를 극적인 전환점으로 하여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세계화전략'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미 위에서 설명한 바대로다. 그 책에서 페리와 카터는 핵무기를 보유한 북(조선)은 미국에게 '삼중 위협(triple threat)'을 가할 수 있다고 보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보유한 북(조선)은 미국에게 '치명적 위협(deadly threat)'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책, 같은 쪽) 여기에서는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북(조선)의 전략공격무기에 대해 느끼고 있는 공포심이 그대로 배어나오고 있다. 그런데 김세균 교수는 위협을 받고 있는 쪽이 미국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한심한 주장을 대담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는 "북한이 경제위기에 대처하고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 등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김세균, 위의 책, 194쪽)

(4) 화해·교류·협력이 추진되고 있는 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 글에서 따져보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제국주의세력이 왜 종래의 억지전략과 '세계화전략'을 접어두고 평화공존전략으로 이동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왜 김대중 정권이 화해·교류·협력의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도록 허용하였을까? 미국은 왜 조·미 평화공존과 국교수립이라는 '페리 보고서'의 전략목표를 내걸게 되었을까?

제국주의적 정세관을 설교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중요한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제국주의의 본질 속에 그러한 전략이동의 요인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되지 않는 헛소리를 감히 늘어놓을 수 있을까? 아니면 제국주의가 이따금 온화한 시혜정책도 펼치기 때문이라는 헛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을까? 제국주의적 정세관을 설교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면서 기껏 내놓는 답변은, 제국주의세력이 한(조선)반도의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평화공존전략으로 전환하였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답변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주의세력의 평화공존전략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지, 제국주의세력이 자기의 전략을 전환하게 된 근본원인이 무엇인지를 묻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아니다. 전략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과 전략전환의 근본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이 주목해야 할 것은 제국주의세력이 왜 자기의 전략을 바꾸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지금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이 자기들의 전략목표를 그럴듯한 말로 줄기차게 선전하고 주입하고 있는 조건에서, 전략목표의 내용과 전략전환의 원인이 혼동될 뿐 아니라 현 정세가 저들이 설정한 전략목표대로 착착 이끌려가고 있다고 보는 엉뚱한 착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민족민주운동의 정세인식은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의 기만적 선전공세에 흔들리거나 혼동과 착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이 글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물음을 던진다. '포용정책'을 떠들고 있는 제국주의세력이 자기의 대북전략을 바꾸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억지전략과 '세계화전략'을 포기하고 평화공존전략을 채택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화해·교류·협력단계로 들어선 오늘의 정세를 읽어내는 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 결과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하자면, 전략변화의 원인을 파악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민족주체의 정세관에서, 오직 그 올바른 정세관에서만 얻을 수 있다. 이 글에서 명확하게 밝혀야 하는 것은, 제국주의세력의 내부에 평화공존이나 화해·교류·협력을 추구하려는 어떤 요소 또는 요인이 들어있기 있기 때문에 그러한 전략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국주의의 본질 속에서는 그 어떤 화해·교류·협력의 지향성도 찾을 수 없다. 제국주의세력은 이 지구 위에 모습을 들어낸 첫 순간부터 앞으로 언젠가 사멸하게 될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공존이 아니라 침략전쟁을, 화해가 아니라 대결을, 교류가 아니라 봉쇄를, 협력이 아니라 전쟁위협을 위해서 존재하는 포악한 세력이라는 사실은 여기서 더 설명하거나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제국주의세력의 전략변화가 그 자체의 내재적 요인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면 그 세력밖에 있는 어떤 외재적 요인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렇다면 외재적 요인이란 무엇일까? 외재적 요인은 힘의 대결에서 오는 변화다. 그것은 한(조선)반도를 무대로 하여 제국주의세력과 반제역량 사이에서 일어난 힘의 대결에서 오는 변화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제국주의세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반제역량 사이에서 일어난 힘의 대결이 가져온 변화였다. 그 힘의 대결에서 제국주의세력은 자기의 전략을 온통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지경으로 밀려난 것이다.

세계 최강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었던 북(조선)과 벌인 힘의 대결에서 어떻게 밀려났을까? 일반 상식으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명해야 할까? 불행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묶어놓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가 퍼뜨려놓은 '전지전능의 강대성'이라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고정관념이다. 바로 이 고정관념이 정세인식의 오류를 낳는다. 민족민주운동은 '전지전능의 강대성'이라는 신화를 떠들고 있는 제국주의의 담론에 파열이 일어난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약소민족이 강대한 제국주의를 상대로 사활을 걸고 맞붙은 준엄한 싸움에서 그들의 공세를 꺾어버리고 물리친 위대한 승리의 역사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다. 약소민족이 필승의 신념과 강고한 단결력, 불굴의 의지와 투쟁정신, 그리고 영활한 전략전술을 가지고 제국주의와 맞붙는다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었음을 민족해방운동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오늘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해·교류·협력은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에 의해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북(조선)의 반제·통일역량에 의해서 촉발된 한(조선)반도 정세의 질적인 변화와 발전이다. 화해·교류·협력을 이끌어가는 것은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이 아니라 북(조선)의 반제·통일역량이다. 이것이 화해·교류·협력이 추진되는 현 정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물음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정답이다.

화해·교류·협력단계는 한(조선)반도의 정세 속에 생겨난 일종의 갈림길이다. 미국의 전략목표와 북(조선)의 전략목표 사이에 놓인 갈림길이다. '페리 프로세스'의 화해·교류·협력단계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미국의 전략목표와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 가운데 제1단계인 화해·교류·협력단계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연방제 통일실현이라는 북(조선)의 전략목표 사이에 놓여있는 갈림길이다. 그 갈림길에서 민족민주운동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오늘의 화해·교류·협력단계가 과연 분단의 평화적 관리(국가연합 수립)라는 전략목표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연방제 통일 실현이라는 전략목표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이 두 가지 전략목표 가운데 어떤 것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세력관계의 우위에서 결판이 날 것이다.

지금 북(조선)은 미국의 '포용정책'을 파산 직전의 곤경에 몰아넣고 전략변화를 강제하였던 막강한 힘을 동원하여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총력전이다. 북(조선)은 이 총력전에서 과연 승리할 것인가?

북(조선)이 '페리 프로세스'의 반통일적 전략목표인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저지·파탄시키고 화해·교류·협력단계를 연방제 통일 실현이라는 전략목표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과연 그럴까 하고 회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북(조선)이 되레 '페리 프로세스'에 휘말려들어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전략목표로 끌려가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다. 이러한 쓸 데 없는 걱정은 민족주체적 정세관이 올바로 서있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감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주체적 정세관을 세우고 그것을 통해서 오늘의 한(조선)반도 정세를 읽어보면 화해·교류·협력단계는 연방제 통일을 실현해가는 여러 단계들 가운데 한 단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민족주체적 정세관과 민족민주운동의 전략문제

1) 민족주체적 정세관에 대하여

민족민주운동세력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족주체적 정세관을 든든히 세우는 일이다. 민족주체적 정세관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말해서 주체적 정세관이란 정세의 변화·발전을 주도하는 힘의 원천을 주체역량과 그 능동적 작용에서 찾으려는 관점과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주체역량과 그 능동적 작용만이 주위세계를 주체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개변시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주체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파악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오늘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말하자면, 북(조선)의 주체역량이 강한가 그렇지 못한가를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북(조선)의 주체역량을 알아보기 위하여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승리하였던 베트남과 오늘의 북(조선)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은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전략공격무기가 없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재래식 무기조차 변변히 갖지 못했는 데도 '전지전능의 강대성'이라는 신화를 떠들며 세계 최강의 군사강국이라고 자처하던 미국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미국은 1962년 2월에 남베트남을 지원하는 군사령부를 설치하고 방대한 무력을 동원하여 베트남 민족을 굴복시키고 점령하려고 책동하였지만, 베트남 민족이 영웅적 지도자 호치민과 베트남 공산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하여 벌인 결사항전에 패배를 거듭하다가 급기야는 1969년 7월 8일부터 미군을 단계적으로 자진철수하기 시작하였고 1973년 1월 27일에는 마침내 평화협정에 조인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3월 29일 주월미군사령부가 해체되면서 주월미군의 단계적 자진철수가 완료되었다. 이태 뒤인 1975년 4월 30일에는 주월미군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남베트남의 부패무능한 티우 정권이 전투다운 전투 한 차례 해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고, 한 해 뒤인 1976년 4월 25일에는 통일 총선거가 실시되어 6월 24일 통일국회가 열렸고 7월 1일에는 마침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제국주의세력에 맞서싸웠던 베트남 민족의 지도자 호치민은 전쟁승리를 아직 보지 못하고 있었던 1969년 9월 2일, 미군이 단계적 자진철수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는데 그는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이러한 유언을 남겼다.

"미국의 침략에 대한 저항전쟁은 장기간 계속될 수 있다. 이 애국투쟁에서 우리는 이제까지보다 더 많은 곤란과 희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완전히 승리할 때까지 미국 침략자와 싸우겠다고 결의해야만 한다. 우리 강산, 우리 인민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기필코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우리 조국을 더 아름답게 세울 것이다. 어떤 어려움이 앞에 놓여 있더라도 우리 인민의 승리는 확실하다. 우리 조국은 반드시 다시 통일될 것이다. 북과 남의 우리 동포는 다시 한 지붕 아래서 살 것이다. 우리 나라는 영웅적인 투쟁을 통해 두 개의 거대한 제국주의-프랑스와 미국-를 타도하고 민족해방을 이룬 위대한 소수민족이라는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오구라 사다오 지음, 박경희 옮김, 『한 권으로 읽는 베트남사』 [서울: 도서출판 일빛, 1999], 255쪽)

위의 인용문은 제국주의세력을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려는 주체역량의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호치민이 베트남 민족의 해방과 통일을 위해 이루어놓은 가장 커다란 공적은 베트남 민족에게 반제·통일투쟁의 강인한 의지와 필승의 신념을 심어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반제·통일투쟁의 의지와 필승의 신념에 관해서 말하자면, 당시 베트남 민족보다 오늘의 북(조선) 인민들이 더욱 강하다.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에 관한 한 오늘의 북(조선) 인민들은 당시 베트남 민족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의식화, 조직화, 무장화되어 있다. 베트남의 군사력과 북(조선)의 군사력을 비교한다면, 적당한 비유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초등학생과 대학생의 수준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북(조선)의 무장화 수준은 막강한 재래식 군사력에 더하여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보유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에 버금가는 군사강국의 지위에 올라섰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북(조선)의 재래식 군사장비가 낡았으므로 무장화 수준이 보잘 것 없다고 섣불리 단정하기도 한다. 북(조선)의 일부 전술무기체계가 오래 되고 낡은 것은 사실이지만, 북(조선)은 독자적인 전략·전술을 개발하여 그러한 약점을 보완해왔으며,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불과 한 시간 동안의 집중타격으로 상대의 전쟁수행능력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는 전략공격무기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다음으로, 북(조선)의 의식화와 조직화의 수준을 살펴보자. 오늘의 북(조선) 인민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미국의 5년 총공세에 맞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사실이 말해주듯이 베트남 전쟁을 벌이던 시기의 북베트남 인민들보다 훨씬 강고하고 높은 수준에 있다.

베트남 민족의 현대사에서 볼 수 있듯이 반제·통일투쟁은 불가피하게 힘의 대결을 동반한다. 제국주의·반통일세력을 한 편으로 하고 반제·통일세력을 다른 한 편으로 하는 힘의 대결이 그것이다. 이 힘의 대결에서 의식화, 조직화, 무장화되어 있는 쪽이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강대하고 포악한 제국주의·반통일세력을 상대로 하는 반제·통일세력의 정의로운 투쟁은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투쟁이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약해 보이는 것이 강해 보이는 것을 이기는 투쟁이다. 민족민주운동은 허장성세하면서 세계 제패를 떠들어대고 있는 제국주의세력에 대한 공포심, 열패감에서 벗어나야 하며, 자신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약해 보이는 것이 강해 보이는 것을 능히 이길 수 있고, 또 능히 이겼던 역사가 있었음을 되새겨보아야 한다. 항공모함과 항공기, 장갑차와 대포를 몰고 다니며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겠다고 미쳐 날뛰던 강대·포악한 일제 침략군에게 맞서서 마구간 바닥흙과 버드나무 가지를 태운 재로 만든 원시적인 '연길폭탄'을 들고 비바람 눈보라 속에서 굴함 없이 싸웠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제국주의·반통일세력을 이길 수 있는 반제·통일세력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민족민주운동은 정의와 진리를 위하여 투쟁하고 있다는 사상적 우위, 도덕적 우위에서 오는 힘이다. 그러한 사상을 가진 세력이 조직화됨으로써 생겨나는 엄청난 힘이다.

그런데도 지금 남(한국)의 일각에서는 남(한국)의 경제력이 북(조선)의 경제력보다 월등히 강하므로 조국통일은 남(한국)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른바 '통일비용'이나 헤아리고 있는 웃기지도 않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세계사를 다 뒤져보아도 경제력만으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비록 경제력은 좀 빈약하다고 해도 정치력과 군사력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세력이 패한 사례는 없다. 그렇지만 경제력만 믿고 정치력과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소홀했던 세력이 패망·몰락한 사례는 흔하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경제생활이 풍족할수록 사회 전반에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국가권력의 기강이 문란·해이해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남(한국)과 같은 '천민 자본주의 사회'는 그 정도가 더 심한 경우에 든다. 지난 1990년대부터 경영실패와 기술력 부족 때문에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치열한 경쟁에서 차츰 낙오되기 시작한 남(한국)의 재벌체제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빚더미에 짓눌려 있는 거대한 부실기업집단이 되고 말았다. 지난 30여 년 동안 남(한국)에서 경제성장의 기관차로 역할을 해왔던 재벌주도형 경제구조가 '아시아의 작은 용'이라는 화려한 신화를 벗어버려야 했던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리하여 재벌주도형 경제구조는 지금 국제금융자본이 가하는 웬만한 외적 충격에도 견디지 못하고 맥없이 비틀거리는 허약체질로 바뀌고 말았다. 이러한 추세로 나간다면, 남(한국)의 경제는 앞으로 철강, 반도체, 자동차 부문의 몇몇 대기업들만이 살아남는 게 아니냐 하는 비관적 전망이 사람들을 우울하게 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남(한국) 정부는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부실기업집단을 살려보려고 분주하지만,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식의 방책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막대한 빚을 들여와 다급한 빚을 갚거나, 아니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재벌체제와 금융권을 분해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한 뒤에 대기업을 헐값으로 외국 자본에게 팔아넘기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방책이다. 자기의 힘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힘에 의존하여 경제난을 해결하려고 하는 비주체적인 위기해법은 자기에게 남아있는 이권마저 외국 자본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 총체적 비극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1997년 11월에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안으로 편입된 뒤로 남(한국) 사회에서는 부유한 계급과 빈곤한 계급이 20 대 80으로 양극화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계급모순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 남(한국)의 경제적 현실은 19세기말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조선왕조가 제국주의 열강에게 물고 뜯기어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며 식민지화의 구렁텅이로 끌려가던 상황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남(한국)의 경제력이 쇠약해지고 있는데도 김대중 정권은 왜 북(조선)에게 식량을 보내고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전략의 힘이 정치, 군사적 차원이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 집중적으로 쏠리고 있는 까닭은, 지금까지 남북관계에서 남(한국)이 가장 믿어왔던 힘의 유일한 원천이 경제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토록 믿어왔던 경제력은 1997년 이후 날로 쇠약해지고 있으며 제국주의의 경제수탈체제에 휘말리고 있으므로 장차 다시 살아날 전망마저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남북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러한 세력관계의 동향을 살펴볼 때, 남(한국)이 화해·교류·협력단계로 들어선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를 능동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 중에서도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서 북(조선)은 비록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고난의 행군'에서 단련되고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강화된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화해·교류·협력의 정세를 주도하고 있으며 대미관계, 대남관계를 연방제 통일 실현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족민주운동은 민족주체적 정세관을 통해 사회역사를 개변시키고 있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고 있는 것이다.

2) 전략문제의 중심은 민족자주에 놓여있다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는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의 세력관계에서 결정되며, 조국통일을 실현해가는 과정은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의 투쟁과정이다. 통일세력과 반통일세력의 세력관계는 고정·불변한 관계가 아니다. 이미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이 세력관계는 제네바 기본합의서(1994년)→'페리 보고서'(1999년)→6.15 공동선언(2000년)으로 이어진 기간에 커다란 변동을 겪어왔다. 그 변동을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통일세력의 강세화 현상과 반통일세력의 양분 현상이다. 반통일세력의 양분 현상이란 기존의 반통일세력이 대결·봉쇄·전쟁위협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화해·교류·협력을 추진하려는 세력으로 나누어진 현상을 말한다.

화해·교류·협력 추진세력은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면서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최종적인 전략목표로 추구하고 있는 세력이다. 다시 이 세력은 주도세력과 추종세력으로 구분된다. 주도세력은 '페리 프로세스'에 의거하여 조·미 평화공존을 추진하는 제국주의세력이고, 추종세력은 이른바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남(한국)의 집권세력이다.

이에 반하여 화해·교류·협력을 추진하는 변화와 발전의 길을 가로막고 현 정세를 대결·봉쇄·전쟁위협의 낡아빠진 틀로 다시 끌어가려는 세력이 있다. 사회역사발전의 시계바늘을 되돌려놓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이 세력을 수구파 반통일세력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조·미 평화공존을 반대하고 남북의 화해·교류·협력을 반대하는 세력이다. 수구파 반통일세력들 가운데 가장 강대하고 포악한 세력은 제국주의세력이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워싱턴의 제국주의세력이 평화공존적 세력과 대결주의 세력으로 분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평화공존적 세력이나 대결주의 세력은 모두 연방제 통일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니고 있지만, 평화공존적 세력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대결주의 세력은 대결·봉쇄·전쟁위협을 각각 자기의 전략목표로 삼고 있다는 측면에서 상호모순관계에 놓여있다.

이 문제를 파악할 때, 민족민주운동은 공통성만 보거나 모순성만 보는 일면적 고찰의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되며, 제국주의세력의 두 측면과 그 세력관계를 정확히 간파해야 한다. 민족민주운동은 조·미 평화공존을 추진하고 있는 평화공존적 세력의 움직임이 한(조선)반도 통일의 과정에서 긍정적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들이 조·미 평화공존을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저들의 전략목표로 끌고 가려는 반통일적 책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대하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 다른 한편, 민족민주운동은 당면정세 속에서 평화공존적 세력과 대결주의 세력의 상호모순관계를 적극 이용하면서 대결주의 세력을 고립·타격하는 다양한 정치투쟁을 벌여야 한다.

평화공존적 세력이건 대결주의 세력이건 간에 제국주의의 지배와 수탈을 반대하는 반제국주의운동은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불변의 기본전략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다.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반제국주의운동 이외에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은 없으며, 반제국주의운동과 동떨어진 조국통일운동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우리 민족끼리 교류·협력을 통하여 아무리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남과 북이 화해하고 가까워진대도 제국주의세력의 반통일정책이 존재하고 있다면 조국통일은 실현될 수 없다. 따라서 조국통일운동이야말로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가장 힘있는 반제국주의운동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우리 민족이 단결된 힘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지 않으면 남(한국)은 제국주의의 지배·수탈체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제국주의의 지배·수탈체제 아래에 묶여있는 한 남(한국) 민중은 언제까지나 고통과 불행의 운명을 지고 살아가야 한다. 남(한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전체 민중에게서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박탈하려는 제국주의의 지배와 수탈은 조국통일이 실현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사회변혁문제와 조국통일문제를 갈라놓으면서 현 정세에서는 조국통일운동이 아니라 사회변혁운동에 선차적 의의를 두어야 하며 민족민주운동은 사회변혁에 자기의 모든 힘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사회변혁과 조국통일의 상관성 문제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하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문제의 초점은 제국주의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지배·수탈체제와 정전·분단체제 아래 묶여있으면서 어떻게 사회변혁문제에 선차적 의의를 둘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지배·수탈체제와 정전·분단체제 아래 묶여있으면서 사회변혁이 과연 가능할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대답밖에 나올 수 없다. 만일 제국주의의 지배·수탈체제와 정전·분단체제 안에서 사회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회역사적 현실을 떠나 주관적 관념의 허공을 맴돌고 있는 몽상가일 것이다.

우리 민족이 제국주의의 지배·수탈체제와 정전·분단체제에 묶여 있으므로 남(한국) 민중은 자신의 생존권을 빼앗기고 있으며, 칠천만 민족은 자기의 생활원리를 실현하고 자기의 최고, 최대 이익을 보장받는 조국통일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한국) 민중의 생존권 문제와 조국통일 문제는 상호모순되는 것이 아니며,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두 가지 문제는 반제국주의운동이라는 공통성 위에서 동시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반제국주의운동은 민중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지름길이며, 칠천만 민족의 자주권을 완전히 실현하는 지름길이며,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만일 조국통일의 실현이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에게 유리한 것이라면 왜 그들이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그토록 악착 같이 방해하고 있으며, 조국통일운동을 그토록 짓누르고 있겠는가? 잘라 말하건대, 제국주의세력에게 유리한 그런 통일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만일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에게 북(조선)을 제압하고 '흡수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이 있다면 왜 그들이 자기들의 전략목표를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분단의 평화적 관리로 설정했겠는가? 다시 잘라 말하건대, 제국주의세력이 주도하는 그런 '흡수통일'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연방제 통일은 제국주의세력, 남(한국)의 집권세력 및 자본가계급이 반대하고 있다. 제국주의세력과 조국통일의 실현은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 모순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명백한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 민족민주운동이 조국통일운동에 모든 힘을 집중적으로 배치해야 할 근거가 된다.

이 글의 전개과정에서 명백하게 지적했듯이 지금 제국주의세력은 화해·교류·협력을 통하여 한(조선)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민족민주운동은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제국주의세력의 전략목표를 제거하고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데로 자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남(한국) 민족민주운동은 반제국주의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조선)민족의 반제국주의운동은 고난과 승리가 아로새겨진 위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변혁운동이다. 19세기말 갑오농민전쟁부터 21세기초라는 시점에 와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1백년이 넘은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제국주의의 지배와 수탈을 반대·배격하는 반제국주의운동을 줄기차게 벌여오고 있다. 항일운동시기의 반제국주의운동은 민족해방운동이라고 불렀는데, 오늘 민족민주운동시기의 반제국주의운동은 민족자주운동이라고 부르고 있다. 항일운동시기의 반제국주의운동이 추구했던 전략목표는 민족해방과 자주독립이었으며, 현 시기 반제국주의운동이 추구하고 있는 전략목표는 주한미군 철거와 민족자주정권 수립이다.

제국주의세력이 오늘의 화해·교류·협력단계를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전략목표로 끌어가느냐, 또는 민족자주운동이 오늘의 화해·교류·협력단계를 연방제 통일 실현이라는 전략목표로 끌어가느냐 하는 문제는 주한미군을 철거하느냐 아니면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지금 '페리 프로세스'를 추종하고 있는 남(한국)의 집권세력은 주한미군이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해주고 있고, 역내 갈등을 방지하는 '안전판'으로 기능하고 있으므로 한(조선)반도가 통일된 뒤에도 주한미군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지난 1백년 동안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네 강대국이 복잡하게 뒤얽힌 세력판도가 한(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해오고 있는 것은 중학교 학생들도 학교에서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러한 세력판도의 균형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주한미군이 아니라 영세중립국으로 통일된 한(조선)반도다. 한(조선)반도의 통일만이 동아시아 세력판도의 균형을 안정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 시기 민족자주운동은 주한미군을 철거하는 전략과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남(한국)에서 민족자주운동이 주한미군 철거를 자기의 전략목표로 명확하게 내걸고 투쟁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한미군 철거라는 전략목표가 어떻게 민족자주정권 수립이라는 전략목표와 결부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 자기의 인식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자주정권을 수립하는 문제는 지금 사회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을 정치세력으로 일으켜 세우는 문제다. 민족민주운동의 정치세력화는 민족자주위업 수행과 조국통일위업 수행을 정치강령으로 하는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문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한국) 사회는 친미사대주의와 민족분열주의에 젖어들었지만, 앞으로 제국주의세력이 더욱 혹심하게 지배·수탈체제의 고삐를 조일수록 남(한국) 사회에는 민족자주의식이 팽창력을 얻게 될 것이며, 화해·교류·협력이 심화·발전될수록 민족분열주의는 소멸되어 갈 것이다. 이러한 유리한 정세변화는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의 수행을 강령으로 하는 정치세력의 출현, 곧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은 이에 대한 전략구상을 논의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3) 반제국주의운동과 민중운동은 하나다

지금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민중의 계급적 이익을 위하여 투쟁하는 운동이며, 장차 노동계급와 농민계급을 중심세력으로 하는 민중 자신의 운동으로 전화·발전할 변혁운동이다. 이러한 과정은 필연적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민족민주운동 역사와 그 진행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전화·발전이 필연적임을 알 수 있다. 노동계급와 농민계급을 중심세력으로 하는 민중 자신의 운동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민족민주운동의 기본성격이 민중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그런 뜻에서 민족민주운동은 민중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시기 민중운동의 전략목표는 정치적으로는 국가보안법 완전철폐에, 사회경제적으로는 민중생존권 쟁취에 정조준되어 있다. 국가보안법은 민중의 사회·정치적 기본권을 짓누르는 악법이므로 부분개정이 아니라 완전히 철폐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완전히 철폐되고 민중의 사회·정치적 기본권이 법적으로 보장되면 민중운동은 폭발적인 성장의 길에 들어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중은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자기의 운동을 떠밀고 나아가는 위력적인 사회·정치세력으로 일어서게 될 것이다.

민중생존권윽薇民뽀構?있는 주된 세력은 제국주의세력, 남(한국)의 집권세력 및 자본가계급이다. 이들 사이에는 상호모순되는 측면이 있지만, 민중의 이익을 수탈한다는 기본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하며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되어 있다. 제국주의세력, 남(한국)의 집권세력 및 자본가계급 가운데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세력이다. 제국주의세력은 '세계화전략'을 휘두르며 남(한국)의 집권세력을 배후조종하고 있으며, 남(한국)의 자본가계급을 압박하고 있다.

4) 민족민주운동세력과 김대중 정권의 관계문제

민족민주운동이 남(한국)의 집권세력인 김대중 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김대중 정권의 성격을 민족자주적 관점과 민중주체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정권은 민족민주운동의 투쟁대상이다. 김대중 정권의 대미 예속성과 반민중성은 남(한국) 민중의 이익을 빼앗고 있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수탈정책에 굴종·순응하면서 자본가계급의 편을 드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사회·정치적 기본권을 억누르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화해·협력과 평화공존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 정권은 역대 정권과는 명백하게 구별되는 긍정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만큼 그러한 긍정적 측면은 더욱 확장되어갈 것이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중요한 문제는 민족민주운동이 김대중 정권을 대하는 전술의 양면성이다. 민족민주운동은 김대중 정권의 대미 예속성과 반민중성에 대해서 투쟁하는 한편,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김대중 정권의 화해·교류·협력사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대해야 한다. 민족민주운동은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고 화해·교류·협력사업을 방해하는 수구파 반통일세력을 타격·제압하기 위하여 김대중 정권의 화해·교류·협력사업과 제휴할 필요가 있다. 만일 김대중 정권이 수구파 반통일세력의 반격에 밀려 6.15 공동선언의 이행을 소홀하거나 회피한다면 김대중 정권을 압박하여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길로 이끌어내야 한다.

민족민주운동세력은 김대중 정권의 화해·교류·협력사업만을 본 나머지 대미 예속성과 반민중성을 보지 못하는 몰계급적 관점에 빠져있는 관변단체들의 우경적 편향을 좇아가서도 안 되고, 김대중 정권의 대미 예속성과 반민중성만 본 나머지 화해·교류·협력사업의 긍정적 측면까지 모조리 부정하는 '좌파 세력'의 좌경적 편향에 빠져서도 안 된다.

5) 현 단계 조국통일운동의 두 가지 전략

민족민주운동이 추구해야 하는 조국통일운동의 전략목표는 연방제 통일 실현이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부동의 전략목표다. 연방제 통일은 한꺼번에 실현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정치적 과업이다. 그러므로 단계적 실현경로는 불가피하다.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단계 가운데 현 단계에서 조국통일운동이 해야 할 과업은 6.15 공동선언에 기초한 화해·교류·협력단계의 심화·발전이다. 현 단계에서는 정부당국 사이의 정치회담이 중심에 배치되면서, 다양한 분야의 교류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비전향 장기수 송환, 남북철도 복원, 경제협력, 언론교류, 문화교류, 관광교류, 그리고 사회단체교류 등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화해·교류·협력의 성격을 논하면서, 화해·교류·협력사업이 6.15 공동선언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하는 까닭은 조국통일운동의 화해·교류·협력은 그 선언의 제1항과 제2항에 나와있는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의 전략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화해·교류·협력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하기 위해서다. 만일 화해·교류·협력이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제국주의세력의 반통일적 전략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면 민족민주운동은 그것을 반대·배격해야 한다.

6.15 공동선언에 기초한 화해·교류·협력단계를 심화·발전시키기 위하여 민족민주운동이 추진해야 할 두 가지 전략은 사회단체 상호교류 전략과 연방제 통일방안의 정당성을 확산시키는 전략이다.

사회단체 상호교류 전략은 남과 북의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상호교류하면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 실천하는 전략이다. 남(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단체들은 제각기 특정분야, 특정계급과 계층, 특정지역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하는 대중단체들이다. 이러한 사회단체들이 민족 전체의 공동이익인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을 수행하는 길에서 민족민주운동세력과 함께 힘을 합한다면 위력적일 것이다.

6.15 공동선언이 보장하고 있는 남북 사회단체 상호교류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기 이전 시기에 국가보안법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전투적으로 추진했던 자주교류 전략은 마치 민족민주운동의 전유물처럼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사회단체 상호교류를 악착 같이 봉쇄·탄압하는 국가보안법 체제 속에서 그 체제를 부정하고 그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저항했던 세력은 오로지 민족민주운동세력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민족민주운동이 종래의 자주교류 전략에서 '자주'를 강조했던 까닭은 국가보안법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역대 정권들이 교류전략 자체를 금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에 민족민주운동은 종래의 자주전략을 수행하는 폭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종래의 자주교류 전략은 이제 사회단체 상호교류 전략으로 전화·발전되어야 한다. 종래의 자주교류는 남과 북이 상호교류하는 쌍방통행의 전략이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가는 일방통행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 채택 이후의 교류는 달라져야 한다. 남의 사회단체들이 북으로 가기도 하고, 북의 사회단체들이 남에 가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단체 상호교류 전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체제의 금압을 뚫고 교류사업을 추진했던 민족민주운동은 자기의 경험과 능력을 살려 사회단체 상호교류 전략에 힘을 실어야 한다. 민족민주운동세력은 각이한 대중단체들, 사회단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연대사업의 근거와 방도를 명백히 밝혀주면서 그러한 단체들 속에서 6.15 공동선언의 의의를 바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능숙한 정치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지금 김대중 정권은 남북교류사업을 자의적 기준을 가지고 통제하고 있는데, 이러한 폐단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6.15 공동선언이 민족민주운동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정권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 선언은 칠천만 민족 전체의 것이다. 그런데 남(한국)의 정부당국이 자의적 기준을 가지고 사회단체의 교류사업을 관리하면서, 민족민주운동의 대북교류를 통제하거나 막으려고 하는 옹졸하고 우매한 처사는 6.15 공동선언이 칠천만 민족 전체의 운명을 이끌어가는 조국통일 실현의 이정표라는 사실을 감히 부정하려는 짓이다.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은 이 선언이 제시하고 있는 여러 과업들을 수행하는 민족적 전진행로에 정부당국, 정당들, 민족민주운동세력, 그리고 일반 사회단체들이 함께 나서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는 수구파 반통일세력을 제외한 각계각층이 상호교류의 길에 나서야 한다. 자주·민주·통일을 추구하고 있는 민족민주운동 조직들은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반 사회단체들과 손잡고 사회단체 상호교류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화해·교류·협력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두루 알려진 대로, 6.15 공동선언에는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과업이 제시되어 있다. 민족민주운동이 6.15 공동선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연방제 통일은 단계적 과정을 거쳐 실현되리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는 대로, 연방제 통일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심화·발전하는 단계를 거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느냐 하는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단계에서 민족민주운동이 힘을 집중해야 할 목표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의 공통성을 논하는 데 있지 않고 국가연합 방안의 반통일성을 폭로·규탄하는 데 있다. 민족민주운동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의 공통성을 논하는 문제를 기능주의적 접근법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정치적인 문제로 대해야 한다. 국가연합은 통일된 나라를 건설하려는 통일지향적 개념이 아니라, 영구히 합법적으로 갈라선 두 나라 사이에서 맺어지는 특수한 외교관계를 일컫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국가연합 수립방안은 통일방안이 아니라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려는 제국주의세력이 만들어놓은 반통일방안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국가연합의 공통성을 논하는 문제는 단순히 서로 다른 방안을 합의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칠천만 민족이 자주화·연방화·중립화의 원리에 따라 강성부흥하는 통일조국을 일으켜세우느냐 아니면 제국주의세력의 강도적 요구에 굴복하여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받는 대상으로 굴러떨어지느냐 하는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다. 조국통일의 방안문제를 순전히 기능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사람들은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과업을 그리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여기고 있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다. 만일 남(한국)의 4천만 민중이 제국주의세력의 교활한 기만선전에 넘어가서 그들이 내놓은 국가연합 수립방안을 마치 통일방안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를 지지해 나선다면 합의에 의한 통일과정은 그만큼 더 시련과 난관을 겪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자기의 힘으로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화해·교류·협력단계를 거쳐야 하고, 제국주의세력이 한(조선)반도에 국가연합이라는 특수한 외교관계로 맺어진 두 개의 코리아를 세우려고 해도 화해·교류·협력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화해·교류·협력단계에서는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문제가 아직 중대한 정치문제로 부각되어 있지 않고 일종의 잠복기를 지나고 있다. 오늘 화해·교류·협력단계에 들어선 칠천만 민족에게 국가연합 수립방안이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전략목표로 삼고 있는 제국주의세력과 그 추종세력의 교활한 정치음모라는 사실을 폭로·규탄하면서 연방제 통일방안의 정당성과 필연성, 합리성과 현실성을 대중적으로 합의하는 과업은 오로지 민족민주운동의 고유한 몫으로 남겨졌다.

6) 민족민주운동의 주체강화전략

지금 남(한국) 사회에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와 관련하여 세 가지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통일세력, 반통일세력, 중간세력이다. 여기서 통일세력이라는 개념은 연방국가를 건설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려는 변혁세력을 말하며, 반통일세력이라는 개념은 현존하는 분단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수구세력을 말한다. 중간세력이라는 개념은 조국통일이 30년 뒤에나 실현될 것이라고 말하는 한편, 연방제 통일도 반대하고 현존 분단체제의 유지도 반대하면서 화해·교류·협력만을 추진하려는 세력을 말한다.

평양회담 이후 중간세력이 등장하게 되었고, 화해·교류·협력의 정세가 변화와 발전을 가속화하면서 중간세력의 힘은 일정하게 장성하였다. 그렇게 된 것은 이 중간세력이 평양회담에 한쪽 당사자로 참가했을 뿐 아니라, 그 이후에 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화해·교류·협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평양회담과 화해·교류·협력의 추진과정에서 반통일세력의 힘은 크게 위축·약화되었으며, 종래의 반통일세력 가운데 일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중간세력 안으로 견인·포섭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중간세력의 권력기반은 아직 약하므로 반통일세력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중간세력이 반통일세력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화해·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구세력의 반발과 방해를 완전히 통제·제거하기 힘들다는 점을 말해준다. 힘이 약한 중간세력이 그나마 반통일세력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그 세력이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을 충실히 추종하고 있는 대가로 미국의 정치적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정 기간 동안 중간세력은 통일세력의 정치공세와 반통일세력의 반발을 양쪽에서 각각 받게 되겠지만, 반통일세력은 차츰 약화되는 길로, 통일세력은 차츰 강화되는 길로 나아갈 것이므로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이후부터 조국통일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전은 주로 통일세력과 중간세력 사이에서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세력관계에서 보자면, 현 정세에서는 민족민주운동의 통일세력이 중간세력과 제휴하여 화해·교류·협력단계를 더욱 심화·발전시키면서 현재 위축·약화되어 있는 반통일세력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완전히 고립·타격하는 전술을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민족민주운동의 통일세력이 수행할 다수획득·소수고립의 전술이다. 민족민주운동의 통일세력은 중간세력 가운데 화해·교류·협력을 조국통일의 실현과 배치시키지 않는 일부 세력을 견인·포섭하여 통일세력의 활동범위를 더욱 확장해야 하는 정치사업을 전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족민주운동이 이러한 정치사업을 추진하려면 추진주체의 조직적, 정치적 역량이 강해야 한다. 만일 미약한 역량을 가지고 상대를 견인·포섭하러 나섰다가는 자신이 되레 견인·포섭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민족민주운동의 조직역량, 정치역량을 비상히 강화하는 길은 무엇일까? 지금 이러저러한 이유로 갈라지고 헤어져서 통일된 지휘체계도 전략전술도 없이 제각기 형형색색의 깃발을 들고 승리할 가망이 없어 보이는 '산개전'을 벌이고 있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을 단일한 정치대오를 중심으로 하여 재편하는 것이다.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산개전'으로 악전고투하다가 각개격파를 당하는 분산된 대오의 조직역량을 가지고서는 제국주의·반통일세력의 정치공세를 당할 수 없으며 언제까지나 단순한 저항세력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지도구심체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한 조직체계, 단일한 지휘체계를 갖춘 위력적인 정치대오, 사상의식과 정세관, 전략전술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정치대오, 조직·정치사업을 능숙·노련하게 추진하는 유능한 정치일군들이 결집한 세련된 정치대오, 오늘의 민족민주운동은 그런 모범적이고 힘있는 정치대오의 출현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6) 맺음말

6.25 전쟁 이후 폭압적인 국가보안법 체제에 굴함 없이 맞서 싸워온 수십년 세월, 그 세월의 갈피마다에는 민족민주운동이 자주·민주·통일을 실현하는 투쟁의 길에 흘린 고결한 자기 희생의 피땀이 스며있다. 오늘의 민족민주운동은 이 고결한 희생의 자취를 기억하는 것만으로 자기만족을 느껴서는 안 된다. 민족민주운동은 그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할 임무를 안고 있다. 이 성스러운 임무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수단과 조건도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수행할 수 없다. 민족민주운동의 준비가 철저하지 못하고 수단과 조건이 빈약하다면 어떻게 수많은 난관과 역경을 뚫고 나갈 수 있겠는가.

오늘의 민족민주운동이 갖추어야 할 준비는 가까운 장래에 자기의 힘으로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을 이루어내기 위한 사상의식적, 조직·정치적 준비다. 이러한 준비는 후방에 있는 무슨 훈련소 같은 데서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민주운동에게는 그러한 시간여유도 안일한 후방도 없다. 그 준비는 제국주의 세력과 그 추종세력에 맞서싸우는 전선의 완강한 실천활동과정 속에서 갖추어지는 것이다. 전선의 실천활동은 그 자체가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을 이루어내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과 조건을 착실히 마련해나가는 투쟁이다.

이 글은 오늘의 민족민주운동이 마련해야 할 수단과 조건에 관해서 논하였다. 이 글은 그것이 민족주체적 정세관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급변하는 현 정세의 본질을 파악하는 민족민주운동의 과학적 인식활동이라고 지적하였다. 이 글은 또한 그것이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을 이루기 위한 민족민주운동의 고유한 전략목표를 세우는 정치사업이며, 그리고 민족민주운동의 주체역량을 명실공히 힘있는 정치대오로 강화·발전시키는 조직사업이라고 논하였다.

이러한 수단과 조건이 마련된 바탕 위에서 민족민주운동은 다양한 전략전술을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을 더욱 빠른 속도로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민족자주위업과 조국통일위업의 완수는 필연적이고 확정적이지만, 그 위업을 완수하는 장래일정의 완급여부는 민족민주운동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다. 연방제 통일이 언제쯤 실현될 수 있을지를 묻지 말자. 그 날은 바로 민족민주운동 자신의 헌신적인 투쟁 속에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지 아니한가. (2000년 10월 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