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단계 통일계획과 평양회담 이후 통일정세의 특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말

(2) 다섯 단계 통일계획은 현재진행형이다

(3) 평양회담 이후 한(조선)반도 통일정세가 보여줄 두 가지 특징

(4)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1989년 봄 통일방북으로 분단체제에 파열구를 열어놓았던 고 문익환 목사는 "통일은 다 됐다"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완료형으로 표현한 그 말은 조국통일이 이미 실현되었다는 조급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이 민족이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 들어서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남(한국) 민중의 통일열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사학적 표현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부터 오늘까지 10년 세월은 어떻게 이어져왔던가? 1990년대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자취가 말해주듯이, 이 민족은 시련과 위기의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파른 고빗길을 수없이 넘어야 했다. 칠천만 민족이 걸어가는 자주와 통일의 길을 집요하게 가로막고 있는 제국주의 세력과 수구파 반통일세력이 2000년 6월 역사적인 평양회담 이후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게 되기까지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는 10년이 넘은 험난한 역사의 고빗길을 넘어야 했던 것이다. 유명무명의 통일운동가들이 흘린 피땀이 점점이 수놓아져 있는 그 고빗길의 맨끄트머리에서 칠천만 민족이 불현듯이 맞이했던 대사변, 그것은 바로 평양회담이었다.

평양회담, 우리는 그것을 경이로운 개벽의 첫걸음이라 불러야 한다. 평양회담, 우리는 그것을 새 천년의 통일열망으로 설레이는 한(조선)민족 칠천만에게 선포한 위대한 역사창조의 대장전이라 불러야 한다. 그 회담은 분단의 어둠에 갇혀 통일의 절박성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남(한국) 민중의 통일불감증을 뒤집어 통일열망의 불꽃을 지펴주었으니, 사람들은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통일시대의 어스름한 새벽빛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회담은 남(한국) 민중의 무뎌진 역사감각을 흔들어 깨웠으니, 통일위업을 까마득하게 먼 미래에 후대가 떠맡아야 할 일로 여겨오던 그들이 이제는 그 위업을 당대의 과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몇몇 통일운동가의 주관적 소망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로 입증되는 현실의 변화다. 최근 남(한국)의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국통일에 대한 남(한국) 민중의 의식은 평양회담을 계기로 크게 뒤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응답자 가운데 71.2퍼센트가 조국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응답함으로써 뜨거운 통일열망을 보여주었으며, 평화통일을 지지한 응답자는 93퍼센트로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4일자) 반통일세력의 음흉하고 집요한 선전공세에 휘말리게 되자 조국통일의 희망과 열정을 접어두고 한때 부질없는 낙담과 무기력감에 시달려왔던 그들이었건만, 지금은 놀랍게도 평화통일의 당위성과 실현가능성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양회담이 성사된 뒤부터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이 진하게 실감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반세기 분단민족사의 흐름이 그 회담을 거치면서 방향을 바꾸어 흐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대지를 적시며 감돌고 있는 모든 물줄기들이 한결같이 바다를 향해 흐르듯, 분단민족사의 물줄기는 우리 민족 칠천만을 떠밀어 가며 어느 한 방향으로 굽이쳐 흐르고 있으니, 그 물줄기는 흐르고 흘러 기어이 '자주통일의 바다'에 이를 것이다.

평양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 회담 이후에 급류를 타고 있는 화해·교류·협력 단계의 진전을 보면서 지금 우리는 생전에 "통일은 다 됐다"고 갈파했던 문익환 목사의 말을 실감나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평양회담 이후 우리는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에 마침내 성큼 들어서고 있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통일은 더 이상 미래의 희망과 전망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며, 화해·교류·협력의 현실 속에서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조국통일을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남(한국)의 한 일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10년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응답자는 37퍼센트, 10-20년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응답자는 35.1퍼센트가 되었다고 한다.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4일자) 남(한국)의 민심은 바야흐로 조국통일을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알만한 세상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대로, 분단민족사를 통일시대의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어낸 평양회담의 주역은 김정일 총비서였다. 평양회담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상봉과 회담으로 이루어졌는데도 평양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칠천만 민족과 세계 인류의 경탄 어린 눈길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마디 하나 하나, 그 움직임 하나 하나에 집중되었다. 평양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그리고 평양회담 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처럼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김정일 총비서의 말과 행동을 바라보았던 까닭은, 그가 평양회담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자신의 통일전략, 통일의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통일계획도 세우고 그 계획을 정력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남(한국)과 서방세계에서는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김정일 총비서의 통일전략이 구체적인 통일계획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의 통일의지는 통일계획을 하나씩 이루어가는 추진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의 목적은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을 파악하고, 평양회담 이후의 한(조선)반도 통일정세를 인식하는 데로 지향된다.

(2) 다섯 단계 통일계획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6월 30일 원산 초대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김정일 총비서는 재미동포 언론인 문명자 주필을 접견하고 대담을 나누었다. 김정일 총비서가 외부의 언론인과 역사상 처음으로 대담을 나눈 것이다. 그날의 대담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4년 4월 21일 문명자 주필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의 접견을 받았던 일을 생각나게 한다. 6년 전 그 무렵은 제국주의 전쟁도발책동이 한(조선)반도의 운명을 악몽처럼 가위누르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칠천만 민족은 90년대를 사납게 할퀴며 흘렀던 시련의 강을 건너와 오늘 이 나라 이 강산에 통일열기가 물결치고 있는 희망의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정세의 극적인 반전이다. 김정일 총비서가 처음으로 언론인을 접견하고 대담을 나눈 것은 한(조선)반도의 정세에서 벌어진 이러한 극적인 반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그날의 대담에서 "이번 수뇌급 회담에서 합의된 5대 공동선언은 민족의 통일대헌장이라 할 정도의 의의를 가집니다.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실천돼야 합니다"고 말했다. (『월간 말』 2000년 8월호, 58쪽) 박재규 통일부 장관의 말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번에 합의한 것들에 대해 꼭 지키도록 노력하겠다. 이것을 남측 국민들에게 알려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91쪽) 이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실천되어야 한다"는 김정일 총비서의 말이다. 이것은 6.15 공동선언은 한꺼번에 실현할 수는 없으므로 시간을 두고 실천하겠다는 뜻이다. 이 말속에는 연방제 통일을 앞으로 일정한 기간 동안에 단계적으로 실현해 나가겠다는 통일의지가 들어있다. 그는 평양회담을 통하여 연방제 통일을 단계적으로 추진하여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지금 이를 실천행동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 총비서가 추진하고 있는 연방제 통일의 단계적 실현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다섯 단계 통일계획을 뜻한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그는 지난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북경을 비공식 방문하여 장쩌민 주석과 조·중 정상회담을 하였다. 그 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하나의 중국'과 '일국양제'의 원칙에 의한 장쩌민식 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했고, 장쩌민 주석은 '하나의 조선'과 '1국가 2체제'의 원칙에 의한 김정일식 연방제 통일안을 지지한 바 있다. 중국의 소식통을 인용한 홍콩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조·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10-15년 안에 실현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14일자) 우리가 강조해야 할 대목은, 김정일 총비서가 조국통일을 다섯 단계에 나누어 실현하려는 구체적인 통일계획을 이미 세워두고 있으며, 그 계획에 따라 앞으로 10-15년 안에 통일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신의 통일계획을 다른 나라 국가원수와 만나는 정상회담에서 밝힐 만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확신하고 있으며 조국통일의 실현을 낙관하고 있다. 지난 8월 12일 방북 언론사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통일시기는 언제쯤 될까요?"라는 물음에 대해 "그건 내가 마음먹을 탓입니다. 적절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런 표현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말입니다"고 말했다.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3일자) 이것은 조국통일을 언제 실현하느냐 하는 문제가 다섯 단계 통일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김정일 총비서 자신의 정치지도력에 의해 결정될 것임을 밝힌 것이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 후반에 레이건 정권은 리비아와 이란을 상대로 무력대결을 전개했고, 1990년에 접어들자 부시 정권은 이라크를 상대로 전면전을 일으켰고,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클린턴 정권은 북(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고 이른바 '작전계획 5027'의 다섯 단계 전쟁계획을 세운 바 있었지만, 21세기로 들어선 지금 김정일 총비서는 한(조선)반도를 통일하기 위한 다섯 단계 통일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클린턴의 다섯 단계 전쟁계획이 폐기되고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이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 통일계획이 연방제 통일방안을 실천·이행하는 계획이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이 설정하고 있는 10-15년이라는 기간은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세 단계 통일론에서 통일은 20-30년이 지나야 실현될 것이라고 했던 것에 비하면 꼭 절반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이전에 세 단계 통일론을 말한 적이 있는데, 그의 기간설정에 따르면 한 단계를 지나는 데 약 10년 씩 걸리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대로 만일 조국통일이 앞으로 세 단계를 거쳐서 30년이 지난 2030년에 가서야 실현된다면 그때는 김대중 대통령이 1백살을 넘어선 시점이므로 그는 결국 조국통일이 자신의 손자 때에 가서야 실현되리라고 보는 매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 구체적인 내용은 밖에 알려지지 않아서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다섯 단계 통일계획은 올해 2000년 평양회담을 기점으로 통일정세가 2-3년마다 한 단계씩 성숙·발전되는 경로를 밟아가면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통일정세의 발전단계를 전망하면서 다섯 단계 통일계획에 관해서 아래와 같은 상상도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제1단계 통일계획은 올해 2000년에 평양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2-3년을 지나는 동안 남과 북의 정부당국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면서 연방제 통일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화해·교류·협력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남(한국)에서는 제국주의 세력을 봉쇄·무력화하고 수구파 반통일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민족민주운동의 치열한 정치투쟁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제네바 기본합의서와 페리 보고서에 나타나있는 대로, 무력대결과 전쟁도발책동이라는 '흉기'를 적어도 한(조선)반도에서는 감히 휘두르지 못하게 된 제국주의 세력은 북(조선)과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의 정치투쟁에 밀리면서 패퇴할 것이며, 국가보안법이라는 '흉기'를 잃어버린 수구파 반통일세력은 민족민주운동의 강한 역공에 밀리면서 차츰 몰락하게 될 것이다.

제2단계 통일계획은 오는 2003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2003년은 2002년 12월에 남(한국)에서 대통령 선거를 통해 당선된 차기 대통령이 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키는 정치적 전환기라고 볼 수 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채택한지 꼭 10년이 되는 2004년은 클린턴이 담보서한을 통해 확약했고, 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신포 경수로 두 기를 완공해야 하는 시한이기도 하지만, 그때까지 완공은 아예 불가능하므로 미국은 자기의 약속 불이행을 보상하는 조건으로 페리 보고서에 따라서 조·미 관정정상화를 위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제2단계 기간에 북(조선)은 남(한국)의 차기 정권을 새로운 동반자로 삼고 연방제 통일을 위한 정치협상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다.

제3단계 통일계획은 6.15 공동선언에 나타나있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계획이다. 2006년 12월에 있게 될 남(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수구파 반통일세력이 설 자리가 매우 좁아지게 될 것이며, 그에 반비례하여 민족민주운동세력과 중간세력이 급성장을 거듭하면서 각각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실현하는 과도기에서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남과 북이 두 나라로 완전히 갈라진 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연합과 매우 비슷한 수준과 형식으로 남과 북의 정치적 실체를 통합해가는 일국연방화 과정의 초급단계다. 이 초급단계는 남과 북이 아직 하나의 연방통일국으로 통합되지 않은 과도적 단계, 그러나 연방통일국으로 통합되기 위한 준비가 무르익는 단계다. 그러므로 일국연방화 과정의 초급단계에서 외교권과 군사권은 남과 북의 정부가 각각 종전대로 보유·행사하게 된다.

그러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국가연합과 갈라서는 근본적인 차이는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가 최고위급 정치회담을 통해서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상설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통일상설기구는 아직 중앙정부라고 볼 수는 없으나, 남과 북의 정치세력들이 동등한 자격과 권한으로 참여하는 중앙정부의 지위와 성격을 지닌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중앙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연합방안과 중앙정부가 존재하는 연방제방안의 절충형태가 될 것인데, 통일상설기구를 수립하느냐 못하느냐가 이 절충과정에서 제기될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이 상설기구의 수립은 제3단계에서 추구할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제4단계 통일계획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통일된 이후에 높은 단계의 연방제로 차츰 바뀌어가는 심화·발전기간에 해당되는 계획이다. 이 단계는 연방화의 원리에 따른 국가권력의 통합과정이다. 조국통일의 실현하기 위하여 수립된 상설기구는 제4단계를 거치면서 남과 북의 정부로부터 외교권과 군사권을 단계적으로 넘겨받음으로써 중앙정부로 전환하게 될 것이며, 남과 북의 정부는 각각 지역정부로 전환하게 된다. 상설기구가 중앙정부로 전환되면 그 중앙정부의 국가주권을 차츰 높은 수준으로 통합하는 통일연방국의 건국 준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다.

제5단계 통일계획은 연방통일국을 수립하는 완성단계의 계획이다. 중앙정부는 명실공히 중앙연방정부로 강화되면서 국가주권을 행사할 것이며, 남과 북에 수립된 지역정부는 서로 다른 체제를 관리하는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행정권을 행사하는 지방자치정부로 변화될 것이다. 남과 북의 지방정부가 합의하여 중앙연방정부를 수립하는 경로가 아니라, 남과 북의 지방정부가 합의를 통하여 낮은 단계의 중앙정부를 높은 단계의 중앙연방정부로 강화·발전시키는 경로를 밟아갈 것이다. 중앙정부가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강화·발전되면서 중앙연방정부의 지위·권한을 본격적으로 갖추게 되면, 지방정부들은 명실공히 지방자치정부로 전환될 것이다. 2007년 2월에 취임할 남(한국)의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에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의 행정권을 집행하는 지방자치정부의 수반이 될 것이며, 북(조선)의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그에 상응하는 북(조선) 지역의 지방자치정부 수반이 될 것이다. 중앙연방정부의 수반은 연방통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연방군 무력을 지휘하는 최고통수권자로, 통일민족사를 열고 연방통일국을 창건한 칠천만 민족의 최고지도자로, 연방통일국의 국부로 추앙 받게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은 주한미군 철거 일정과 맞물려 추진되리라는 사실이다. 김정일 총비서가 연방제 통일 문제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결부시켜서 통일정세를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이 주한미군 철거 일정과 맞물려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신의 통일계획을 앞으로 10-15년 안에 실현하겠다고 밝혔는데, 우연한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간설정은 미 국방부의 주한미군 철수 시나리오에 나오는 철수 예상 기간과 일치하고 있다.

1994년 10월의 제네바 기본합의서와 1999년 9월의 페리 보고서가 내다보고 있는 대로 앞으로 조·미 관계가 국교수립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변화·발전하게 되면, 그 발전단계에 맞춰 주한미군은 단계적 자진철수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미국이 북(조선)과 고위급 정치협상을 벌리면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 또는 평화선언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워싱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여론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미국의 차기 정권은 주한미군의 자진철수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남북 사이의 군사적 대결이 사라지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실현되면 주한미군의 자진철수는 더욱 본격화되어갈 것이며, 마침내 연방통일국이 세워지기 직전에는 완전히 철수할 것이다.

6월 22일 북경에 날아가서 장쩌민 주석을 만난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그에게서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을 전해 들었다. 그 통일계획을 전해들은 올브라이트는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장미빛 가정은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2000년 6월 23일자) '장미빛 가정'이니 '순진한 생각'이니 하는 올브라이트의 말에서는 비웃음이 묻어 나온다.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을 장쩌민 주석에게서 전해 듣고 비웃음을 흘렸지만, 김정일 총비서의 통일전략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2천2백만 북(조선) 인민들은 "누가 최후에 웃는가 보자"는 투쟁구호를 들고 조국통일의 길을 헤쳐가고 있다. 이상우 교수는 "6.15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걸 보면 북한 정권은 정확하게 계획대로, 마치 전차가 전찻길 가는 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고 말했으며,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334쪽)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연구실장 이춘근 박사는 "이번 정상회담을 보고 다시 한번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는 북한 정부야말로 통일이라는 궁극적인 상황에서 승리자가 되기 위한 놀라운 수준의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책, 99쪽)

북(조선)이 국가역량을 총동원하여 김정일 총비서의 다섯 단계 통일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과 더불어 남(한국)과 해외의 자주통일세력은 6.15 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는 동일한 전략목표를 향하여 이처럼 남·북·해외의 전민족적 역량이 투쟁하고 있고, 가장 강력한 반통일세력으로 존재해왔던 미국은 적어도 한(조선)반도에서는 자기의 제국주의적 분할·지배정책을 일단 접어두고 조·미 국교수립과 한(조선)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밀려가고 있으며, 남(한국)의 반통일세력은 국가보안법 체제에 '부분개량'이라는 균열이 생기고 종당에는 무너지는 것과 함께 결정적인 쇠퇴국면으로 밀려가게 될 것이다. 오늘의 통일정세는 이처럼 자주통일세력에게 유리하게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워싱턴과 서울에 도사리고 있는 다양한 반통일세력은 앞으로도 여전히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길에 장애와 난관을 조성하면서 방해의 역풍을 몰아오겠지만, 자주통일세력의 궁극적 승리는 확정적이며 통일정세의 장래는 밝고 투명하다. 연방제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통일운동가들, 반제투쟁에 나선 모든 정치일군들, 주한미군철수운동을 힘있게 떠밀어나가고 있는 모든 현장활동가들은 부동의 신념을 간직하고 있으며 필승을 낙관하고 있다.

(3) 평양회담 이후 한(조선)반도 통일정세가 보여줄 두 가지 특징

역사적인 평양회담 이후 한(조선)반도 통일정세의 변화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한(조선)반도를 짓눌러왔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분할·지배전략을 깨뜨리는 주한미군철수운동의 출현이며, 다른 하나는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할 통일 지도자의 출현이다.

향후 통일정세는 강력한 주한미군철수운동의 출현이라는 특징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지금 남(한국)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을 비롯한 전체 민중 속에서는 미국을 제국주의로 규정하고 미국의 지배와 수탈을 반대·배격하는 반미자주화운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평양회담 이후 화해·교류·협력의 열기가 폭발하자 남(한국) 민중은 지금까지 북(조선)을 적대세력으로 오인해온 집단적 최면상태에서 차츰 깨어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정치적 각성은 친미예속적 대미관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맹방, 후원자, 지지세력이 아니라 남(한국)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평양회담 이후 한(조선)반도에서 영향력을 가장 많이 잃은 나라를 미국이라고 지목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4일자)

남(한국)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남(한국) 민중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앙일보』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통일 이전까지만 주둔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4.2퍼센트, 평화가 정착된 뒤에 철수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2.6퍼센트, 하루 빨리 철수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7.9퍼센트였다고 한다. 이것은 응답자 가운데 84.7퍼센트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통일이 된 뒤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겨우 14.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4일자)

한편 『동아일보』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한미군을 즉각 철수하라는 주장은 15.9퍼센트, 3-5년 안에 철수하라는 주장은 20.9퍼센트였고, 통일 전까지 동북아 안전을 위해 주둔하고 통일이 되면 철수하라는 주장은 46.3퍼센트였다고 한다. 통일 뒤에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6.9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응답자 가운데 83.1퍼센트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29일자)

남(한국) 언론들은 크게 보도하지 않았지만, 지난 6월 25일 6.25 전쟁 50주년인 그날, 서울 한 복판에서는 대학 출신의 실직 노동자 한 사람이 미군 소령 데이빗 베리의 가슴을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9일 전에는 주한미군의 처인 미국 여성이 서울에서 반미구호를 외치며 달려든 사람에게 두들겨 맞은 사건이 일어났다. (Washington Times 2000년 7월 6일자) 매향리 미 공군 폭격훈련장 문제, 6.25 전쟁 중에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 문제, 주한미군의 고엽제 살포와 독극물 방류 문제, 주한미군 범죄 문제, 주둔군 지위 협정 문제 등이 계속 불거져 나오면서 남(한국) 민중의 반미자주의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금 남(한국)의 민심은 반미자주화운동과 주한미군철수운동을 지지하는 쪽으로 차츰 옮겨가고 있다.

이처럼 80퍼센트 이상의 민심이 주한미군은 통일 이전에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데도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 뒤에도 주한미군은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넋두리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것은 민심의 변화를 외면하려는 어리석은 행위이며, 종당에 가서는 민심에 대한 배반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정치적 자해행위다.

80퍼센트가 넘는 민중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오늘의 뒤바뀐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것은 앞으로 남(한국)에서 민족민주운동이 이끌어 가는 주한미군철수운동이 머지 않아 전체 민중의 공감과 지지를 얻으리라는 사실을 예고하고 있다. 주한미군철수운동은 6.15 공동선언이 하나씩 실현되면서 남북 사이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 될수록 더욱 강한 전개력, 추동력을 얻게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기 반통일세력은 주한미군철수운동에 이른바 '용공·이적'이라는 혹독한 올가미를 씌웠고 국가보안법이라는 '흉기'로 마구 타격했지만, 이제 그 올가미는 끊어져 나갔고 그 흉기는 쓸모 없는 고철덩이로 바뀌고 있다. 평양회담 이후 조·미관계가 개선되는 추세에 발맞춰 북(조선)은 미국에 대한 위협이나 정치공세를 되도록 자제하는 '기묘한 전술'을 수행하겠지만, 그와 반비례하여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은 국가보안법 체제가 무너지게 된 '해방공간'에서 반미자주의식을 민중 속에 날로 확산시키면서 주한미군사령부와 주한미국대사관에 공포감을 주는 위력적인 반제투쟁을 전개할 것으로 내다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흐름을 남보다 먼저 재빠르게 감지한 세력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수구파 반통일세력이다. 그들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자신들도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거짓선전으로 민심을 교란시키려는 짓밖에 없다. 김정일 총비서가 마치 주한미군 철수를 바라지 않고 있는 것처럼 꾸며낸 거짓선전을 내돌리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민심교란행위는 몰락을 앞둔 잔여물의 가련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정세의 두 번째 특징은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할 통일의 지도자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로 들릴지 모르나, 통일국가의 창건은 우연의 역사가 던져주는 선사품이 아니다. 그것은 강인한 통일의지를 가진 주체역량이 자기의 간고한 투쟁으로 마침내 이루어내는 필연의 역사며, 피땀으로 개척해가는 창조의 역사다. 운동하는 모든 사물의 중심부에 핵이 존재하고 있듯이, 민족의 주체역량이 통일국가를 창건하는 사회역사운동의 중심부에도 반드시 핵이 존재한다. 핵이 없는 사물은 이미 운동하지 못하는 죽은 사물인 것과 마찬가지로, 핵이 없는 주체역량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역사운동을 추동·전개하지 못한다. 조국통일위업을 완수할 영웅적 지도자는 통일국가를 창건하는 사회역사운동의 핵이다.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듯이, 어느 민족, 어느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통일국가는 민족의 주체역량을 조직·동원하는 탁월한 지도자, 곧 통일위업의 완성자에 의해서 창건된다.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엮어온 세계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안팎의 분열주의 세력에 의해서 분산·분열되었던 민족을 하나로 묶어 근대적 민족국가를 건설했던 통일위업의 완성자가 등장하며 그들이 이루어놓은 업적이 눈에 들어온다. 통일민족국가를 세운 장엄한 건국사의 한 복판에는 반드시 통일 지도자의 위대한 업적이 빛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로부터 이탈리아 민족을 해방하고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이룩한 통일영웅 가리발디(Guiseppe Garibaldi, 1807-1882)의 업적을 빼놓고 오늘의 이탈리아를 말할 수 없다. 연방국에서 이탈하여 분리독립의 길로 나아갔던 남부의 반란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아메리카 합중국의 연방제를 지켜낸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을 빼놓고 오늘의 미국을 말할 수 없다. 흩어져 있던 게르만 민족을 하나로 묶어 세우고 독일을 통일함으로써 유럽대륙의 후진국이었던 독일을 일약 일류국가로 일으켜 세운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k, 1815-1898)의 공로를 빼놓고 오늘의 독일을 말할 수 없다. 오토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터어키 민족을 해방한 뒤에 그리이스의 침략을 물리치고 터어키 공화국 세운 케말 파샤(Mustafa Kemal Pasa, 1881-1938)의 업적을 빼놓고 오늘의 터어키를 말할 수 없다. 이처럼 미국, 이탈리아, 독일 같은 구미의 강대국들은 통일국가를 세운 뒤에 더욱 강대해진 힘을 가지고 제국주의화의 길로 나아가면서 자기들 보다 힘이 약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침략·지배·수탈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침략·지배·수탈을 당하고 있었던 아시아의 두 나라 중국과 베트남은 민중의 정치역량을 반제혁명과 민족대단결의 길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프랑스, 일본, 미국으로 이어진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서 베트남 민족을 구하고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한 영웅적 지도자 호치민(Ho Chi Minh, 1890-1969)의 업적을 빼놓고 오늘의 베트남을 말할 수 없다. 서구열강과 일본의 침략, 그리고 내전의 불길 속에서 중화민족을 구하고 중국대륙에 통일국가를 창건한 마오쩌뚱(Mao Zedong, 1893-1976)의 업적을 빼놓고 오늘의 중국을 말할 수 없다. 중국과 베트남의 영토분할과 민족적 분열은 제국주의의 침략·지배·수탈에 의해서 생겨난 불행과 고통이었으므로 그 나라들에게서 조국통일은 곧 반제자주화와 일치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영토분할과 민족적 분열도 제국주의의 침략·지배·수탈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므로 한(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과정은 곧 반제자주화의 과정과 일치되며, 따라서 반제자주화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정치세력만이 통일국가 창건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의 눈길을 한(조선)반도의 현실로 돌려보자. 평양회담 이후 한(조선)반도에서는 과연 누가 통일국가 창건을 주도하려 하고 있는가? 누가 연방제 통일을 향한 반제자주화의 사회역사운동을 추진하고 있는가? 남과 북의 두 정치적 실체 가운데서 어느 쪽이 자주통일의 주역이 될 것인가? 누가 칠천만 민족을 분열과 대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았던 미국의 분할·지배체제를 깨뜨려 민족의 통일염원을 실현할 통일위업의 완성자가 될 것인가? 한(조선)반도의 통일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강제력으로 흡수병합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정치적으로 합의한 기초 위에서 실현될 것이 분명하지만, 제국주의와 수구파 반통일세력을 정치적으로 제압하고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칠천만의 민족적 힘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무 때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과업은 탁월한 통일전략과 강인한 통일의지를 가지고 칠천만 민족의 주체역량을 조직·동원하는 정치 지도자에 의해서, 오직 그러한 위인의 영도력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통일의 지도자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해나가는 칠천만 민족의 투쟁력을 하나로 묶어 세워 지휘하며 그 위력적 힘을 통일건국에로 이끌어갈 수 있는 높은 경륜과 영도력을 가진 지도자이어야 한다. 통일의 지도자는 어느 한 지역, 어느 한 계급계층, 어느 한 정파의 대표자가 아니라 명실공히 칠천만 민족의 추앙을 받고 칠천만 민족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가 될 것이다.

평양회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난 6월 15일 중국의 장쩌민 주석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에게 각각 축하편지를 보냈다. 장쩌민은 김정일 총비서에게 보낸 축하편지에서 평양회담은 "정치가의 원견과 탁견, 지혜에 따라 결단을 내린 결과"라고 지적하고 "김정일 총서기와 조선의 당과 정부에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고 적었다. 그런데 그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축하편지에서는 이런 구절을 찾을 수 없다. "각하에게 충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라는 구절만 들어있을 뿐이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93쪽)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중국이 김정일 총비서가 지도력을 발휘하여 평양회담을 주도하였고 성과를 이루어 냈다고 평가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소련-러시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북(조선)을 찾아갔던 사건도 가볍게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평양회담이 끝나자 서울 방문에 앞서 평양을 먼저 방문한 것도 평양회담 이후 한(조선)반도 정세의 변화과정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사람이 김정일 총비서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워싱턴의 전략가들도 지금 이러한 상황변화를 날카롭게 주시하면서, 앞으로 김정일 총비서가 이끌어갈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에 미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정세변화의 주도력과 장악력을 발휘하는 통일의 지도자에 의해서 자주적 평화통일 과업이 이루어지는 미래로 전진할 것이다. 통일의 지도자는 제국주의와 수구파 반통일세력이 강요한 온갖 고통과 불행 속에서 시련을 겪어오고 있는 이 땅의 모든 민중을 부강번영하는 연방통일국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4) 맺음말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였던 여러 나라 통일의 지도자들이 걸어온 투쟁역사를 되짚어보면 한 가지 공통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통일의 지도자들이 처음부터 우세한 역량으로 외세와 반통일세력을 제압하면서 전세를 승승장구로 이끌어가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숱한 역경과 난관이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으며, 좌절과 실패가 그들의 신념과 의지를 수없이 시험했다. 통일의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정치세력은 양적으로, 수적으로 적었고 물질적 조건도 상대세력에 비해 보잘 것 없었다. 정세는 불리하고 조건이 열악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언제나 필승의 신념을 잃지 않았으며, 무비의 담력과 불굴의 투쟁으로 끝내 통일국가 건설의 혈로를 뚫어 마침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살펴본 대로 여러 나라에서 추앙 받고 있는 통일의 지도자와 그 정치세력이 최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통일의 지도자와 그 정치세력은 사회역사발전의 진리를 위하여 투쟁하였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 민족이 한 나라를 건설하고 살아가는 1민족 1국가의 생활원리는 작위적인 가공물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의 본질적 요구다. 1민족 1국가의 생활원리는 그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서도 훼손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사회역사발전의 진리이며, 민족이 핏줄과 언어와 문화를 지닌 공고한 사회역사적 집단으로서 자기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절실한 요구다. 만일 어떤 민족이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산다거나 한(조선)민족처럼 두 지역에 갈라져 산다면, 그것은 자기를 민이이라는 사회역사적 집단으로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민족 자체의 본질적 요구에 배치되는 모순이다. 그러므로 제국주의와 수구파 반통일세력은 민족이 자기를 사회역사적으로 통일된 집단으로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1민족 1국가의 본질적 요구에 전면배치되는 대립물이며, 민족의 요구와 지향에 의하여 마땅히 배격·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연방제 통일은 1민족 1국가의 생활원리를 가장 투명하게 반영한 현실이며,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민족대단결운동은 바로 그 생활원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1민족 1국가의 생활원리를 구현한 연방제 통일방안은 사회역사발전을 추구하는 민족 자신의 절실한 요구며 강한 지향이다. 오늘 한(조선)반도의 자주통일세력은 민족의 이러한 요구를 실현하는 투쟁의 길을 헤쳐가고 있으므로 머지 않은 장래에 그 투쟁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둘째, 구미 여러 나라와 중국, 베트남의 통일운동사에서 나타나있듯이, 통일의 지도자는 정치자금과 언론의 힘을 휘두르면서 하루 아침에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일개 정객이 아니었고, 통일을 실현하려는 반제국주의 민족대단결운동의 오랜 투쟁역사 속에서 출현하는 민족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통일의 지도자는 정세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고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노련·유능한 정치가이어야 하며, 민중 속에 통일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민중의 지도자이어야 한다. 통일의 지도자는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대단결운동을 이끌어가면서 그 운동력을 정치세력화하는 뛰어난 정치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세력이 없는 통일의 지도자, 민족대단결운동과 동떨어져 있는 통일의 지도자는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통일의 지도자는 개별적 자연인이 아니라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대단결운동의 정치역량 속에서 생활하며 투쟁해왔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통일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한 정치세력이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중의 전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았고 마침내는 민중 자신을 주체역량으로 일으킴으로써 최후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역사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상식처럼 되어있는 것이지만, 영토분할과 민족적 분열을 극복·타파하려는 통일운동은 민중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 자라나고 마침내 민중 자신이 그 운동의 주체역량으로 일어서기 전에는 최후 승리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두루 통하는 사회역사발전의 철리다. 이 철리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이라는 사회역사발전과정에도 예외 없이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조선)반도에서는 누가 민중의 전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는가? 누가 민중을 통일의 주체역량으로 일으킬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지금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가 통과하고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연방제 통일을 자기의 최대 과업으로 삼고 있는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은 오늘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의 전진행로를 찾아야 한다. (2000년 9월 2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