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강성대국 건설의 총진군'을 이끄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고난의 행군> 때와 같은 엄혹한 시련은 우리 당력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7월 25일자)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이다. 우리는 이 말에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시련 속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조선) 인민들이 겪어야 했던 뼈아픈 체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저들에게 '고난의 행군'의 시련과 고통은 다음과 같은 네 방향에서 다가온 것이었다. 첫째, 사회주의 진영의 와해가 몰고온 정치외교적 불안정과 경제적 난관이었다. 둘째, 연속된 자연재해 때문에 극도로 악화된 식량난이었다. 셋째,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서거와 그에 따른 상실감이었다. 넷째, 이러한 불리한 조건을 틈타서 고립압살정책을 동원하여 몰아친 미국의 5년 총공세였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위협요인은 이른바 다섯 단계 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이라고 세상에 알려진 미국의 전쟁책동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선제핵공격으로 일어날 전쟁의 검은 구름이 시시각각으로 밀려드는 살벌한 위기를 직감하면서 "미제국주의자들은 특히 조선에서 새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책동을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고 있습니다"(『로동신문』 1999년 12월 8일자)고 말했다. 어느 시각에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위기의 나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민들은 제국주의의 전쟁위협에 기가 꺾여 뒤로 물러서거나 적당히 양보하면서 위기를 넘겨보려는 옹졸하고 비겁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제에 대한 양보는 곧 굴종이며 투항"(『로동신문』 1998년 12월 4일자)이라고 규정하고, "제국주의자들에게 굴복하고 빌붙어서는 평화도 유지할 수 없고 민족의 존엄도 지킬 수 없다"(『로동신문』 1998년 12월 7일자)고 단호히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제국주의자들의 지배주의적 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을 떠나서는 현 시기 나라와 민족의 자주적 발전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으며 인민들이 다시금 식민지 노예의 운명에 굴러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로동신문』 2000년 1월 7일자), "제국주의와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반제투쟁을 포기한다면 언제 가도 제국주의의 지배와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로동신문』 1999년 7월 22일자)고 하면서 제국주의세력의 5년 총공세에 당당하게 맞서싸웠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민들은 전쟁책동으로 광분하던 제국주의세력의 위협과 공세를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적들과 싸우다가 죽으리라는 결사의 각오로 맞섰다. 만일 저들에게 그토록 비장한 각오와 강인한 의지가 없었다면, 미국의 5년 총공세가 강요했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난관과 위기를 돌파해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5년 총공세에 맞서싸우는 최전선의 진두에 서서 1백만 인민군대와 2천만 인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져있고 미제와 직접 맞서있는 조건에서 어느 때든지 적들이 달려들면 싸울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8년 12월 13일자) "적들과 맞서 싸우면 살고 굴복하면 죽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는 각오를 가지면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5월 12일자)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무력으로 덤벼들 때에는 혁명전쟁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7일자)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적들이 덤벼들 때에는 맞받아나아가 적들을 단매에 때려부셔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8년 12월 9일자) "유고슬라비아 정세가 보여주는 것처럼 미제국주의자들은 약하다고 생각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제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들도 우리 나라에 대하여서는 유고슬라비아나 이라크와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적들이 오만해질수록 더 강경고압자세로 맞받아나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9월 5일자)

『로동신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요즈음 북(조선)에서는 '우리는 잊지 않으리'라는 제목의 노래가 널리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장 아끼는 조선인민군 공훈합창단이 부르는 이 노래에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모진 시련을 헤쳐온 사람들의 심정과 체험이 뜨거운 문체로 녹아있다. 『로동신문』 2000년 7월 25일자에 소개된 그 노래말을 여기에 옮겨 적는다.

얼마나 준엄한 날이 이 땅에 흘렀던가

얼마나 험난한 길을 우리가 걸었던가

피눈물 언덕에서 장군님 시작하신

고난의 행군을 우리는 잊지 않으리

조국의 운명 지키려 철령을 넘어 몇 천리

락원의 길을 여시려 강계를 찾아 몇 천리

한 공기 죽도 나누며 장군님 헤쳐 가신

시련의 그 자욱을 우리는 잊지 못하리

장군님 없었다면 조선은 숨졌으리

그이가 계시였기여 우리는 승리했네

총대를 앞세우고 언제나 그날처럼

장군님 한 분만을 우리는 믿고 따르리

'고난의 행군'으로 마감해야 했던 20세기가 저물고 새로운 세기의 아침이 밝아오던 2000년 1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과 국가기관의 간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령님의 뜻대로 인민군대를 틀어쥐고 선군정치를 하여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 시기에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 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지켜냈으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였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7월 9일자) "우리는 가장 어렵고 간고한 시기를 극복하였습니다. 그새 우리 인민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 나도 정말 의지의 힘으로 극복해왔고..." (『로동신문』 2000년 5월 8일자) "혁명하는 사람은 어려운 일에 부닥치거나 곤난한 때일수록 마음을 더욱 굳게 먹고 그것을 극복해나가야 합니다." (『로동신문』 2000년 3월 30일자) 그렇다면 '고난의 행군'이라는 엄혹한 시련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조선) 동포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 측면에서 이 문제를 해명하기로 한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혁명적 신념'을 가지고 '혁명적 원칙'을 지킴으로써 '고난의 행군'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가 말하는 '혁명적 신념'이란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혁명적 신념은 혁명투쟁과정에 어떤 어려운 난관과 시련에 부닥쳐도 불굴의 투지를 가지고 그것을 용감하게 뚫고 나갈 수 있게 하는 사상적 원천입니다. 혁명적 신념은 수령이 령도하는 혁명위업의 정당성, 그 승리의 필연성에 대한 확신과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끝까지 싸우려는 확고한 결심이 결합된 숭고한 마음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11월 20일자, 11월 21일자) 그리하여 그는 "한생토록 혁명적 신념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라, 죽을 때 혁명적 신념을 베고 죽는 인생의 최우등졸업생이 되라!"고(『로동신문』 1999년 11월 17일자) 말할 수 있었다.

그가 '혁명적 신념'을 가지고 지켜낸 것은 다른 것이 아닌 '혁명적 원칙'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과 같은 어려운 정세 속에서 내가 원칙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 혁명은 견디여내지 못합니다. 내 나라, 내 조국, 내 민족을 위하여 나는 끝까지 혁명적 원칙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 이것은 나의 확고한 결심입니다." (『로동신문』 1997년 7월 2일자, 1999년 7월 1일자) "혁명적 원칙을 지키는 것은 혁명의 근본리익을 지키고 혁명을 편향 없이 승리에로 이끄는 길이며 혁명적 원칙에서 물러서는 것은 혁명의 근본리익을 저버리고 혁명을 패배에로 이끌어가는 길이다. 혁명운동의 력사는 혁명적 원칙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두 걸음 물러서게 되고 두 걸음 물러서면 열 걸음 물러서게 되며 결국은 혁명을 망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로동신문』 1999년 10월 9일자)

여기서 말하는 '혁명적 원칙'이란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라. 우리 식대로 투쟁하라, 우리 식대로 창조하라"(『로동신문』 1999년 7월 13일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로 요약하여 표현할 수 있다. 우리 식의 생활, 우리 식의 투쟁, 우리 식의 창조라는 말속에 들어있는 '혁명적 원칙'은 민족자주의 원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8월 12일 방북 언론사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족자주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라가 작을수록 자존심을 굳게 세우고 열강 대국에 맞서야 합니다. 북남 합쳐봤자 인구가 1억도 안 되는데 그럴수록 명예를 중히 해야지요. 대국에 비굴하거나 아첨하면 절대 안됩니다."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3일자)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들 속에서, 인민들과 함께, 인민을 위하여 일하고 생활함으로써 '고난의 행군'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식량난으로 고생하던 인민들과 함께 강냉이가루빵, 건빵, 가마치 같은 음식을 나누었다. 인민들이 먹는 강냉이가루빵과 장국으로, 때로는 인민군 병사들의 비상식량인 건빵과 맹물로, 때로는 자신의 전용승용차 운전사가 먹는 가마치로 끼니를 에우신다는 말을 들은 자강도 인민들은 안타까운 심정에서 자신들이 기르고 있던 검정 닭과 검정 염소를 보내드렸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들의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는 인사와 함께 그것을 인민들에게 되돌려보냈다. (『통일신보』 2000년 6월 24일자) 인민들 속에서 인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활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는데, 그 시절의 이야기 가운데는 1998년 10월 '희천려관'에서 있었던 이런 이야기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희천려관을 찾으셨을 때 그곳 일군들은 지성이 담긴 식사를 준비해드렸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오늘은 식사를 하지 않겠다, 앞으로 인민들이 다 잘 살게 되였을 때 자신께서도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로동신문』 1999년 3월 10일자)

지난 8월 12일 방북 언론사 대표단과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십니까?"라는 물음에 대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활을 사무실에 앉아서 우울하게 보내지 않습니다. 인민 속에 들어가 노래하며 즐겁게 함께 보냅니다. (줄임) 나는 거의 지방에서 인민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수영도 하고 말도 일주일에 한 두 번 탑니다."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3일자)

지난 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홍단군 종합농장을 현지지도할 때 있었던 일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한(조선)반도의 북방에 자리잡고 있는 대홍단군 종합농장은 수많은 제대군인들이 자원 진출하여 정착하면서 '감자농사혁명'을 일으키고 '공산주의 리상촌'을 건설하고 있는 이름난 곳이다. 그 농장에 자원 진출하여 가정을 이루고 정착한 어떤 평범한 제대군인의 가정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찾았을 때, 그 집의 아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나직한 귀엣말로 자기 갓난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정감 어린 부탁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청을 들어주어 갓난아이에게 홍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대홍단군에 진출한 수많은 제대군인의 아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자기들의 친정아버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로동신문』 2000년 4월 30일자, 7월 4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부대나 근로자의 생산현장, 인민의 생활현장을 찾아가서 찍은 기념사진이 『로동신문』 일면에 자주 실리곤 하는데, 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진을 찍기 위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옆에 서는 여성 병사들,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럼없이 그의 팔을 잡고 다정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높은 권위를 지닌 국가원수와 평범한 인민들이 한 자리에서 만날 때 생겨나기 마련인 거리감이나 긴장된 분위기, 딱딱한 격식 따위를 거기에서는 찾기 힘들다. 그것은 마치 출가한 딸이 자신을 찾아온 친정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듯한 정감 넘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민들은 바로 이러한 사상감정으로 서로 통하며 하나로 결속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근로자의 생산현장과 인민의 생활현장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는 생산과 생활의 현실에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의 현지지도는 다른 나라의 대통령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현장을 한 바퀴 휙 둘러보면서 현지 책임자와 한 두 마디 격려인사나 나누고 언론기관의 홍보용 사진발이나 받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다. 대홍단군 종합농장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를 보더라도 감자농사에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내용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로동신문』 2000년 5월 2일자 참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때로 인민들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는가 하면, 냉면으로 이름난 초대형 식당 옥류관의 고기쟁반국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등 구체적인 생활력을 지닌 현지지도인 것이다. (『로동신문』 2000년 4월 30일자, 5월 26일자) 해마다 1월 1일 아침에 『로동신문』에 실리는 공동사설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도도 마찬가지로 세심하고 구체적이다. 그는 올해 2000년 1월 1일에 발표될 공동사설 초안을 여러 번 검토하고 표현과 문장을 바로잡도록 가르쳐주었으며, "제목을 잘 달아야 사람들이 당의 정책적 의도를 명백히 알 수 있다"고 하면서 공동사설의 제목을 직접 달아주었다. (『로동신문』 2000년 1월 10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인민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30여 년 동안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후대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 나는 수 십 년 동안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않고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13일자) 그는 "나에게 있어서 새벽 1시는 초저녁입니다"(『로동신문』 2000년 5월 21일자)고 말할 정도로 인민을 위하여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전투적인 생활태도는 지난 8월 12일 방북 언론사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그가 밝힌 자신의 생활일정에도 그대로 나타나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면시간은 하루 네 시간 정도 잡니다. 나는 조직비서 생활을 20년 해왔습니다. 나는 모든 업무보고를 새벽 3시까지 받아 반응을 다 종합해서 주석님께 보고를 드리고나면 새벽 4시가 됐습니다. 이런 조직비서 생활을 20년간 해와서 그게 버릇이 됐습니다. 새벽 3시까지 종합보고 준비를 해왔지요."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3일자) 그는 "나는 어떻게 하면 우리 인민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인민으로 되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인민생활을 위해 애쓰는 일군들을 만나게 되면 나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 생각하게 됩니다"(『로동신문』 1999년 11월 7일자)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9년 1월 1일 당과 국가기관의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저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인민을 위해 일해야지 누구를 위해 일하겠습니까. 나는 인민을 위해 한생을 바치겠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인민을 위해 바치는 한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조국의 륭성발전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 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사실 나는 새벽 3시, 4시까지 일하면 허기가 져서 밤참을 찾군합니다. 가마치를 찾은 적도 있습니다. 동무들이 내가 밤낮으로 일을 하니 건강이 나빠진다고 걱정하는데 나는 일없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인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하여 더 헌신분투하겠습니다. 동무들이 나를 보고 이번 설에는 잠시라도 가족들과 명절을 보내라고 하는데 나라고 왜 가족들과 같이 단란하게 설명절을 쇠고 싶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인민에게 가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가족들과 함께 별로 설을 쇠여 보지 못하였습니다. 명절 뿐 아니라 다른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5월 21일자)

그는 "나는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인민을 하늘처럼 믿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려고 합니다"고(『로동신문』 1999년 8월 30일자) 말했는데, 그의 이러한 마음에 대하여 인민들은 그를 하늘처럼 믿고 산다는 노래로 화답하고 있다. 요즈음 북(조선)에서 널리 불려지고 있는 노래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를 옮겨 적으면 이렇다.

품고 있는 생각도 모두다 말을 하고

움터나는 희망도 터놓습니다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장군님을 믿고 삽니다

천년 세월 흐른대도 김정일 장군님만을

온 나라가 운명을 맡기고 삽니다

온 세상이 미래를 의탁합니다

하늘처럼 믿고 삽니다 장군님을 믿고 삽니다

천년 세월 흐른대도 김정일 장군님만을

셋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낼 수 있었다.

지난 8월 12일 방북 언론사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힘의 원천은 두 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모두가 일심단결하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3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체혁명위업 수행의 길에 나설 때부터 일심단결의 사상을 혁명의 무기로 틀어쥐였습니다. 일심단결은 나의 혁명철학입니다. 지금 우리 혁명은 일심단결의 힘으로 주체혁명위업의 대진군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일심단결은 우리 혁명의 천하지대본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1월 4일자)

그는 "이 세상에 우리 로동계급과 인민들처럼 고상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 로동계급과 인민은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딴 생각을 모르고 당과 수령, 조국과 혁명에 충실하려는 그 하나의 생각만을 하면서 살며 투쟁하는 혁명가들이고 애국자들입니다. 이런 충성의 대부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야말로 우리 당의 커다란 자랑이며 우리 혁명의 위대한 힘입니다"(『로동신문』 2000년 3월 18일자)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로동계급과 인민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일심단결의 정신세계'를 뜻한다.

북(조선)의 설명에 따르면, 지도자는 인민을 하늘처럼 믿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고 있고, 인민은 지도자를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것을 '일심단결'이라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심단결'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인민은 참으로 좋은 인민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 인민처럼 자기의 령도자를 진심으로 높이 받들고 따르는 인민은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일심단결된 우리 나라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하지 않습니다.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은 우리 나라의 참모습이며 불패의 위력의 원천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12월 6일자) "당과 수령은 인민을 믿고 끝없이 사랑하며 인민은 당과 수령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받들어나가는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일심단결의 참모습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8월 23일자) "일심단결이야말로 우리 식 사회주의의 생명선이며 필승불패의 보검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5월 7일자)

북(조선)에서는 '일심단결'이란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단결을 말하고 있고,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표현으로 집약되는 집단주의 생활원리에 의한 단결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일심단결'에 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 가운데서 다음 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항일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마련된 통일단결의 전통은 수령을 구심점으로 한 통일단결, 수령의 혁명사상에 기초한 통일단결, 수령과 전사들 사이의 혁명적 의리와 동지적 사랑에 기초한 통일단결의 전통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11월 25일자) "우리 사회에서는 전체 인민이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하여 하나로 굳게 뭉쳐있으며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라는 원칙에 따라 서로 돕고 이끌면서 함께 투쟁해나가고 있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2월 18일자) 이 말속에서 우리는 항일혁명투쟁의 역사적 경험과 집단주의 생활원리가 강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항일혁명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에 기초한 집단의 단결과 집단주의 생활원리를 철학적으로 해명하고 이것을 주체사상의 정수인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역사적, 집단적 경험에서 '일심단결'의 이론이 생성되었고, 그 이론이 다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으로 정립되었으며, 지금 그 이론을 북(조선)의 현실 속에 구현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수령, 당, 대중이 가장 숭고한 혁명적 의리와 동지적 사랑에 기초하여 혼연일체를 이룬 일심단결, 여기에 바로 우리 사회정치적 생명체의 본질과 비할 바 없는 우월성이 있다"(『로동신문』 1999년 12월 12일자)고 말했던 것이다.

새로운 세기인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일심단결'은 더욱 강고해질 것이며, 더욱 커다란 생활력와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각이다. 올해 첫날인 2000년 1월 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혁명의 길은 아직 멀고 험난합니다. 이 길에서 우리는 전체 인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당을 굳게 믿고 따르면 당과 생사운명을 같이해 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과 수령을 한결같이 그리며 따르는 것이 곧 일심단결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3월 14일자) "우리는 일심단결로 혁명의 붉은 기를 고수해온 것처럼 2000년대에도 일심단결로 강성대국 건설위업을 실현하고 사회주의 위업수행에서 승리를 이룩해나가야 합니다." (『로동신문』 2000년 8월 9일자) "우리는 앞으로도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우리 당의 총로선을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를 더욱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로동신문』 2000년 1월 6일자)

넷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정치'의 전략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겨낼 수 있었다.

방북 언론사 대표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힘의 원천이 두 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군력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외국과 잘 되어도 군력이 있어야 하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내 힘도 군력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친해도 군력을 가져야 합니다."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8월 13일자)

북(조선)의 해설에 따르면, '선군정치'는 '혁명적 군인정신'에서 나오는 정치전략이며,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것은 바로 그 '혁명적 군인정신'이라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과 같은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 군대가 강하고 군대에서 발휘되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따라배워야 적들의 고립압살책동으로부터 나라의 존엄과 사회주의제도를 옹호고수하고 수령님의 유훈대로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1월 26일자)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던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앞을 가로막는 난관은 하나 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가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서 찾아간 곳은 다른 곳이 아닌 군대였다. "나는 정세가 복잡하고 당과 국가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이 많을수록 자주 군대에 나가군합니다. 어려울 때면 먼저 병사들을 만나보고 싶고 군대에 나가 우리 군인들의 씩씩한 모습을 보면 새 힘이 생깁니다. 나는 지금 군대를 믿고 군대는 나를 믿고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4월 23일자) "오늘도 나는 군인들과 하루를 보냈습니다. 군인들과 인민을 위해 보내는 것이 곧 나의 기쁨이고 바로 그런 날이 나의 명절입니다. 내가 군인들과 인민들을 위해 살아야지 누구를 위해 살겠습니까." (『로동신문』 1999년 12월 30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힘의 원천을 군력에서 찾고 '선군정치'의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그의 삶 자체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항일유격대의 아들로 태어나 항일혁명의 총소리를 들으며 자라났고 어린 시절에는 6.25 전쟁의 포성을 들으면서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작전대 곁에서 전투현장을 체험했다. 그 ?자신이 어릴 적에 겪었던 인상 깊은 경험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11살 때에 수령님으로부터 시계를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권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혁명을 하자면 총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권총을 주시였습니다. 친구들 가운데는 변절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총은 변함이 없습니다. 총은 예나 지금이나 적을 향해 쏘면 적을 잡게 되여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총이다, 이것은 혁명투쟁의 력사적 총화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3월 21일자) 그에게 있어서 총은 곧 혁명이며, 군사력은 가장 중요한 혁명역량인 것이다. "총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직 혁명이 무엇인지도, 총알맛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당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손에서 총을 놓지 않을 것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11월 27일자)

그리하여 그는 "선군정치는 나의 기본정치방식이며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만능의 보검입니다"(『로동신문』 1999년 6월 25일자)고 선언하고, "백두에서 시작된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열째도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힘을 넣어야 합니다"(『로동신문』 2000년 1월 5일자)고 강조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선군정치'는 '혁명의 원리이며 공식'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수령의 사상을 실현해나가는 혁명투쟁은 반혁명세력과의 힘의 대결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런 것만큼 혁명무력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혁명에서 승리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혁명의 원리이며 공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동계급의 혁명투쟁력사를 놓고 보아도 혁명무력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혁명의 승리를 이룩할 수 없고 승리한 혁명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4월 24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백두의 혁명전통'에 그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선군정치'의 전략이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투쟁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수령님께서는 혁명투쟁의 첫 시기에 먼저 군대부터 창건하고 무장투쟁으로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광복하시였습니다. 그때 수령님께서 당이 있고 정권이 있어서 무장투쟁을 벌리신 것이 아닙니다. 수령님께서는 무장한 적을 때려부시고 나라와 민족을 해방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무장투쟁을 벌리는 데 있다는 사상을 내놓으시고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시였으며 조국을 광복한 다음에야 비로소 당과 국가도 창건하시였습니다. 수령님의 혁명투쟁력사는 군대를 먼저 창건하고 그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선군혁명령도의 력사입니다. 수령님께서 총대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총대로 끝까지 완수하려는 것은 나의 변함없는 의지이고 확고한 결심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4월 24일자)

특히 미국의 5년 총공세가 강요한 첨예한 군사대결과 전쟁위기 속을 돌파하여야 했던 '고난의 행군'이라는 투쟁현장에서 '선군정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견지하는 최선의 전략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 끊임없는 군사적 위협을 받으며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조건에서 강력한 군대가 없이는 인민도 없고 사회주의 국가도, 당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이며 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24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당과 군대의 결합력을 강조하고 실천하는 전략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혁명투쟁에서 승리하자면 당과 군대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당과 군대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군대를 틀어쥐지 못한 당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당의 령도를 받지 못하는 군대는 힘있는 전투부대로 될 수 없습니다. 당이 없이 군대만으로는 혁명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군사명령지휘체계로 군대는 움직일 수 있어도 수백만 대중은 움직일 수 없습니다. 광범한 군중을 조직동원하는 것은 당입니다. 오직 당과 군대가 혼연일체를 이룰 때에만 전당, 전민, 전군을 하나와 같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혁명적 당은 군대가 총대로 보위해주어야 그 불패성이 담보되며 혁명군대는 혁명적 당의 령도를 받고 당이 군중을 조직동원해주어야 무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당과 군대가 힘을 합치면 그 어떤 원쑤와도 싸워이길 수 있으며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당이자 군대이고 군대이자 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민군대에서 당풍에 기초한 혁명적 군풍을 철저히 세워야합니다. 우리 인민군대는 우리 당을 견결히 옹위하고 당의 령도에 무한히 충실하며 당의 위업을 무력으로 확고히 담보하여야 합니다." (『로동신문』 2000년 4월 24일자)

다섯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힘의 정신적 원천은 '강계정신'과 '대홍단정신'이었다.

그는 "나는 강계정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로동신문』 2000년 5월 8일자)고 말했고, "강계정신을 가지고 투쟁하면 최후 승리를 위한 장엄한 투쟁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로동신문』 2000년 5월 12일자)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강계정신은 우리 당이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창조된 사회주의 수호정신이며 새로운 천리마대고조의 불길이 타오르게 한 투쟁정신"(『로동신문』 2000년 6월 19일자)이라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강계정신'이 창조된 역사의 현장은 자강도다. 자강도 인민들이 어떻게 '고난의 행군'길을 헤쳐왔는가를 보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강도를 돌아보면서 내가 의도하고 내세운 것,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7월 25일자)

지금 '강계정신'과 더불어 북(조선) 전역에 퍼져있는 것은 '대홍단정신'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60년대에는 위대한 청산리정신이 나래쳤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는 대홍단정신이 나래쳐 감자농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일으키도록 하여야 합니다"(『로동신문』 2000년 5월 9일자)고 말했다. '대홍단정신'이 추구하고 있는 당면목표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감자농사혁명으로 인민의 먹는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감자농사에 커다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바대로다. 그는 "수령님께서 청산리를 추켜세우고 벼농사에서 전변을 가져오도록 하시였는데 나는 대홍단군을 추켜세워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자고 합니다"(『로동신문』 2000년 4월 3일자)고 말했고, "나는 대홍단군에 대한 현지지도를 통하여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습니다"(『로동신문』 2000년 4월 4일자)고 말했다. <P瀏瀏릿鳴?해서 '대홍단정신'을 단지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농업생산전략에 국한하여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대홍단군을 사회주의의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 모범적인 생산단위, 생활단위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그는 "대홍단군을 살기 좋은 락원으로 일떠세우며 온 나라가 대홍단정신, 대홍단기풍으로 일하게 하자는 것이 당의 요구입니다"(『로동신문』 2000년 8월 15일자)고 말했고, "우리는 어떻게 하나 대홍단군의 감자농사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켜 먹는 문제를 하루 빨리 풀고 대홍단군을 공산주의 락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로동신문』 2000년 6월 18일자)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서는 대홍단군이 제일 먼저 공산주의에 들어가게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한평생을 인민을 위하여 바치신 수령님의 유훈이며 우리 당의 구상"(『로동신문』 2000년 5월 7일자)이라는 것이다.

북(조선)의 문헌을 읽어보면, '강계정신'과 '대홍단정신'은 강계와 대홍단이라는 생산현장, 생활현장에서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구현해가는 근로자들의 집단적 체험에서 빚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정신은 항일혁명투사들이 구현했던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오늘의 현실 속에서 되살려낸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이란 무엇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은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기의 힘으로 혁명을 끝까지 수행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고유한 혁명정신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10월 11일자) "자력갱생의 길만이 혁명의 종국적 승리를 이룩하는 길이며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이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11월 30일자) "혁명과 건설은 인민대중 자신의 사업이기 때문에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는 마땅히 자력갱생의 원칙에서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11월 30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백두의 혁명정신'이라고 부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각 속에서 백두산이라는 자연지리적 공간은 항일혁명역사와 완벽하게 일체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는 백두산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선을 알자면 백두산을 보아야 하며 조선에서 혁명을 하자면 백두산을 알아야 합니다." (『로동신문』 2000년 8월 7일자) "백두산은 우리 혁명의 성지이며 우리 혁명의 반석이 마련된 혁명승리의 성새입니다." (『천리마』 2000년 4호, 76쪽)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우리 혁명의 뿌리가 내린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8월 11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실제로 백두산을 자주 찾아간다. 그 산에서 항일혁명역사와 자신의 운명을 일체화하는 체험을 얻기 위해서다. 그에게 영감과 힘을 안겨주는 것은 백두산의 해돋이와 눈보라다. 1998년 10월 그가 백두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는 동녘 하늘을 열어제끼며 눈부시게 펼쳐지는 장엄한 해돋이를 바라보았다. 삼라만상을 붉게 물들이는 백두산의 아침노을을 온몸에 맞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백두산 해돋이는 볼만합니다. 장쾌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백두산의 해돋이 장면이 굉장합니다. 백두산의 해돋이야말로 최고입니다. 조선의 아침이 여기 백두산에서부터 밝아오듯이 주체혁명위업도 여기 백두산에서 시작되였습니다. 나는 여기에 올라 저 붉게 타오르는 해돋이를 볼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기어이 완성해야겠다는 결심과 각오를 더 굳게 다지게 됩니다." (『천리마』 2000년 5호, 17쪽,『로동신문』 2000년 1월 1일자)

그에게 영감과 힘을 안겨주는 것은 백두산의 붉은 노을과 함께 백두산의 거센 눈보라도 있다. 그가 1999년 2월 백두산을 찾았을 때 그 산에는 강추위와 폭설을 동반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내가 지난해에 백두산에 갔을 때 기온이 령하 42도였습니다. 나는 그런 추위 속에서 맵짠 눈보라를 맞는 것을 좋아합니다." (『로동신문』 2000년 3월 26일자) 영하 40도를 밑도는 추위는 남쪽의 기후조건에서는 체감하기 힘든 살인적인 혹한이다. 거기에 더하여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으니 웬만한 사람은 거기에 잠시 버티고 서있기조차 힘들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산의 눈보라 속을 헤쳐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인간의 의지와 담력을 단숨에 집어삼킬 듯이 몰아치는 살인적 강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그는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과감한 공격정신을 벼리고 혁명적 신념과 의지를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혹독한 체험 속에서 '백두산형의 기질'을 단련하는 그의 특이한 자기 수련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백두산형의 기질'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감한 공격정신으로 만난을 뚫고나가며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으려는 자들을 추호도 용서하지 않는 백두산형의 기질을 꺾을 자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해 우리 식대로 길을 개척해나가는 우리의 신념과 의지의 정당성은 미래가 증명할 것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3월 21일자) "나는 한다면 반드시 하고야 맙니다. 나의 이 기질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5월 28일자)

그가 말하는 '백두산형의 기질'은 '백두의 혁명정신'을 자기의 생활 속에 체현한 사람에게 형성되는 강의한 기질이다. '백두의 혁명정신'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선의 언덕을 수없이 맞받아 헤쳐나가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두의 혁명정신입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만난을 맞받아나가는 완강한 공격정신이며 백번 쓰러지면 백번 다시 일어나 싸우는 견결한 투쟁정신입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은 꺾이면 꺾일지언정 신념을 버리지 않는 고결한 혁명정신이며 제 힘으로 기어이 이 땅에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건설하려는 숭고한 혁명정신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4월 1일자) "백두의 혁명정신은 수령님께 끝까지 충성 다하는 충실성의 정신이며 자체의 힘으로 난관을 맞받아 뚫고나가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이며 억천만번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싸우는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입니다." (『로동신문』 1998년 12월 7일자) "백두의 혁명정신은 항일혁명선렬들로부터 새 세대들이 이어받아야 할 가장 값높은 재부이며 사람들을 견결한 혁명가로 키우기 위한 귀중한 정신적 량식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5월 7일자) "우리는 항일혁명선렬들이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굴함 없이 싸운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사람들을 교양하여야 합니다.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조국의 통일도 이룩할 수 있고 후손만대의 번영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로동신문』 2000년 8월 14일자)

지금 북(조선)에서는 '고난의 행군'을 단순히 시련기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따르는 2천만 인민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강인하게 만든 단련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강인하게 단련된 인민들은 21세기에 들어와서 '강성대국 건설의 총진군'을 다그치고 있다. 그들이 만일 '고난의 행군'과 같은 단련기를 거치지 않았다면 오늘에 와서 '강성대국'을 건설하겠다는 사회역사발전의 원대한 목표를 그토록 자신 있게 내걸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련 속에서 단련된 인민들만이 정세의 질적 변화를 꾀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투쟁의 길에 서슴없이 자신의 몸을 던질 수 있는 법이다.

'강성대국 건설'이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주체혁명의 당면목표'를 한 마디로 집약하고 있는 정치구호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백두산형의 기질'에 그대로 나타나있듯이 강성대국 건설은 사회역사를 개조하는 혁명과업을 통이 크게 궁리하고 높은 목표를 내걸고 끝장을 볼 때까지 끈기 있게 밀고 나가자는 것이다. '백두산형의 기질'을 가진 공산주의 혁명가의 사업작풍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혁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통이 크게 일을 벌려나가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일본새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10월 19일자) "통이 크게 궁리하고 높은 목표를 내걸어야 제기된 과업을 혁명적으로 해제낄 수 있으며 일하는 보람이 있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9월 7일자) "대담하게 용단을 내리며 통이 크게 일판을 벌리고 내밀면 막혔던 길도 열리고 없던 것도 생기는 법입니다." (『로동신문』 2000년 6월 21일자) "일단 목표를 내건 다음에는 오물쪼물하지 말고 그것을 대담하고 패기 있게 내밀어 끝까지 해제껴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9일자) "혁명가들은 일단 시작한 일은 어떤 난관과 애로가 가로놓여도 10년이건 20년이건 끝장을 볼 때까지 근기 있게 밀고나가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23일자)

세상에 널리 알려진 '강성대국'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은 1998년 12월 말 '고난의 행군'을 마감하던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창안하고 제시한 것이다. 그는 1999년 1월 1일에 당과 국가의 지도일군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올해에 어떤 구호를 내놓겠는가 하는 것을 오래동안 생각해오다가 <올해를 강성대국 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구호를 제시하여 <고난의 행군>이 락원의 행군으로 이어지게 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수령님의 생전의 뜻이였고 웅대한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수령님께서 한생을 바쳐 마련해놓으신 사회주의 자립적 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에 의거하여 우리 식으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여야 합니다. <개혁>, <개방>은 망국의 길입니다. 우리는 <개혁>, <개방>을 추호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강성대국은 자력갱생의 강성대국입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구상을 해왔으며 그 준비를 갖추어왔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2월 6일자, 7월 26일자, 10월 9일자) "내 나라, 내 조국 땅 우에 하루 빨리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여 그 어떤 적도 건드릴 수 없게 하며 전체 인민이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나의 구상이며 확고한 결심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7월 26일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원대한 역사의 항해는 손쉽고 간단한 행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민들은 앞으로 그 창조와 건설의 전진행로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나가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을 생각하면서 강성대국 건설의 의지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수령님을 생각하면서 새 힘과 용기를 얻군합니다. 우리가 너무 고생을 하니 수령님께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내려다보시고 도와주실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고생을 무릅쓰고라도 수령님의 생전의 뜻을 기어이 실현하여 이 땅 우에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5월 26일자)

강성대국을 건설하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의지는 매우 확고하다. 그는 "나는 앞으로도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계속 힘있게 벌려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타개하고 우리 나라를 온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강성대국으로 만들려고 합니다"(『로동신문』 1999년 9월 8일자)고 확언하였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래를 사랑하는 공산주의자들이며 인민의 행복과 조국의 번영을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가들입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고 일하여 수령님께서 념원하신대로 기어이 우리 나라를 세상이 부러워하는 인민의 락원으로 만들고 이 땅에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일떠세우려고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12월 30일자)

그의 신념은 자신의 구상과 계획이 현실적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빚어지고 세워진 신념이다. 그는 "우리가 강성대국을 건설한다는 말은 결코 빈소리가 아니며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고(『로동신문』 2000년 4월 3일자) 말했는데, 그가 지적한 근거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몇해 동안 간고한 투쟁을 벌려 부강조국 건설의 튼튼한 도약대를 마련한 조건에서 강성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가까운 시일 앞날에 실현할 수 있는 일이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로동신문』 1999년 7월 26일자) "이제는 강성대국 건설의 담보도 마련되고 목표도 뚜렷한 것만큼 총진격하여 새로운 전환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토대도 마련하고 투쟁경험도 쌓았으므로 전도는 매우 밝고 휘황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5월 23일자, 12월 1일자) "우리 시대는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 시대이며 오늘 우리 혁명은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의 새로운 높은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12월 3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올해 2000년은 영광스러운 당창건 55돐이 되는 뜻깊은 해이며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인 전진을 이룩하여야 할 총진격의 해"(『로동신문』 2000년 8월 2일자)라고 지적하면서, 이제부터는 "모든 사람들이 준마를 타고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위하여 질풍같이 내달려야"(『로동신문』 1999년 10월 13일자)한다고 말했다. "수령님시대에는 우리가 천리마를 타고 달려왔는데 새로운 우리 시대에는 준마를 타고 구보의 속도로 달려나가야"(『로동신문』 2000년 1월 10일자)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현하려는 강성대국의 미래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려질 수 있을까? 그는 강성대국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국력이 강하고 모든 것이 흥하며 인민들이 세상에 부럼 없이 사는 나라가 사회주의 강성대국"(『로동신문』 1999년 7월 13일자)이라고 해설하였다. 그에 따르면, "강성대국 건설은 우리가 주인이 되여 이 땅 우에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 우리의 자원으로 부강조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사업"(『로동신문』 2000년 1월 6일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당의 령도 밑에 주체의 사회주의 위업을 빛나게 계승완성하며 우리 조국을 가장 위력하고 번영하는 사회주의 강국으로 일떠세우는 더없이 보람차고 거창한 투쟁"(『로동신문』 2000년 1월 1일자)이므로, "앞으로도 우리는 로동계급을 중시하고 적극 내세우며 로동계급을 위하여 충실히 일하고 로동계급에게 철저히 의거하여 부닥치는 난관을 뚫고 나감으로써 강성대국 건설의 력사적 위업을 빛나게 실현하여야"(『로동신문』 2000년 4월 6일자)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실현하려는 강성대국은 통일된 한(조선)반도에 세워질 강성대국이다. 조국통일에 대한 그의 신념과 의지는 1996년 11월 판문점에 있는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 친필비 앞에서 했던 그의 말속에 선명하게 나타나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조국통일의 앞길에는 첩첩한 난관이 가로놓여있으나 우리 대에 통일은 이룩되여야 합니다. 백두산에서 항일대전의 총성을 자장가로 들으며 자라난 빨찌산의 아들인 나는 수령님께서 이룩하시지 못한 민족의 통일위업을 반드시 성취할 것입니다. 통일도상에 가로놓인 장애가 아무리 크다하여도 우리는 난관을 맞받아나아가는 조선혁명가들의 기질을 이어 두려움없이 투쟁하여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8월 15일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어서 조국통일의 위업은 최상의 위업이다. 그는 "반세기 이상에 걸치는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더는 늦출 수도 미룰 수도 없는 민족의 사활적 요구이며 지상의 과업"(『로동신문』 1999년 12월 19일자)이라고 지적하였다. 그에 따르면, "나라의 안팎의 정세로 보나 우리 민족의 근본리익과 시대의 추세로 보나 지금이야말로 온 민족이 대단결을 이룩하여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통일된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존엄과 영예를 높이 떨쳐야 할 때"(『로동신문』 1999년 10월 20일자)라는 것이다.

지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조선)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 속에서 단련된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한(조선)반도에 통일된 강성대국을 일떠세우기 위한 투쟁의 낮과 밤을 이어가고 있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뒤바꾸어놓은 6.15 공동선언과 그것을 이행하기 위한 모든 사업은 바로 이러한 현실 속에서 추진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2000년 9월 1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