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문제' 해결의 길을 열어놓은 평양회담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들어가는 말

(2) 평양회담과 주한미군 문제

1) 주한미군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2) 평양회담에서 논의된 주한미군 문제

3) 평양회담 이후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주한미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3) 평양회담과 국가보안법 문제

(4) 평양회담과 연방제 통일 문제

(5) 맺음말

(1) 들어가는 말

이 글은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렸던 역사적인 평양회담에서 세 가지 정치과제가 어떻게 논의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 가지 정치과제란 주한미군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그리고 연방제 통일 문제다. 이 세 가지 정치과제는 한(조선)반도의 정치지형을 전면적으로 바꾸어놓을 '근본문제'다. 또한 이 세 가지 정치과제는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이 끈질기게 추구해오고 있는 자주·민주·통일의 삼대 강령을 실천하는 과제다. 이 글에서 '근본문제'를 '정치과제'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이 세 가지 과제를 한(조선)민족의 주체역량으로 반드시, 그리고 머지 않은 장래에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근본문제'란 위에서 말했듯이 주한미군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연방제 통일 문제를 뜻하는데, 역사적인 평양회담은 바로 그 '근본문제'를 논의하고 해결방도를 찾기 위해서 마련된 최고위급 정치회담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평양회담은 '근본문제' 해결의 길을 열어놓은 정치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 대로, 평양회담의 한 쪽 당사자였던 남(한국) 정부당국과 그 등뒤에서 그림자처럼 밀착하여 움직이고 있는 미국은 평양회담에서 '근본문제'가 논의되는 것 자체를 회피하거나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그러한 사전 의도·계획과는 별로 상관없이 평양회담에서는 '근본문제'가 논의되었고 그 해결의 길이 열렸다. 칠천만 민족이 지금 평양회담의 성과를 전적으로 지지·환영하면서 그 이행을 촉구하고 나서고 있는 까닭, 그리고 진보적 인류가 지금 그 회담에 찬사와 성원을 보내고 있는 까닭은, 그 회담이 '근본문제'를 논의하고 그 해결의 길을 열어놓은 역사적인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평양회담에서 논의된 '근본문제'가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의 삼대 강령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민족민주운동의 자주강령은 주한미군을 철거하는 민족자주운동으로, 민주강령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 민중민주운동으로, 통일강령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민족대단결운동으로 각각 실천되고 있다. 자주·민주·통일의 삼대 강령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민중은 해내외 각지에서 민족민주운동을 힘있게 밀고 나가면서 한(조선)반도의 정치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 가지 정치과제의 측면에서 본다면, 평양회담과 민족민주운동은 비록 '회담'과 '투쟁'이라는 서로 다른 전술방도를 취했으나, 동일한 '근본문제'를 풀어내는 정치운동이라는 점에서 상호일치성이 돋보이게 된다. 민족민주운동의 과제와 평양회담의 성과를 서로 떼어놓고 생각하려는 경향은, 이 양자가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목표의 일치성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보거나 외면함으로써, 또는 전술방도의 상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절대화함으로써 생겨나는 심각한 오류다. 우리는 평양회담의 성과와 민족민주운동의 과제가 두 개의 전술방도를 지렛대로 삼고 하나의 전략목표를 향해서 움직이면서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북(조선)은 접촉, 회담, 제의를 통해서 남(한국) 정부당국에게 이 세 가지 정치과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아보자고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해내외 민족민주운동도 이 세 가지 정치과제를 실현하려는 피땀어린 투쟁의 길을 걸어왔다. 이 정치과제와 관련해서 북(조선)은 양보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다. 양보와 타협을 모른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해내외 민족민주운동도 마찬가지다. 이 글은 이 세 가지 정치과제와 관련하여 특히 북(조선)이 양보와 타협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논증하려 한다.

그런데 관련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제멋대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남(한국) 언론과 분석가들이 세 가지 정치과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완전히 빗나가 있다. 그들은 북(조선)이 세 가지 정치과제를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수정하거나 변경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주관주의적 오류가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에 지나지 않는다. 북(조선)의 견지에서 보자면, 세 가지 정치과제는 칠천만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며, 따라서 외세의 개입과 간섭을 배제하고 마땅히 민족의 주체역량으로 그 정치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확고부동한 원칙이며, 전략방침이다. 북(조선)이 '근본문제'를 칠천만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치과제라고 보고 있으므로, 그와 관련해서는 한 점 한 획도 바꾸거나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역사적 경험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혁명을 하는 공산주의자'의 기질은 자기들이 세운 원칙과 전략에 대해서는 양보나 타협을 모르며 결사관철의 의지와 신념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이다. 평양회담을 논하면서 우리는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분단시대 55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여곡절과 돌발적 사태가 자주 일어나곤 했던 현실조건에 맞게 전술적 대응방식에서 보완한다거나 표현방법에 일정한 변화를 주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사실 그러한 보완과 변화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술적 대응방식의 보완과 표현방법의 일정한 변화를 두고 원칙과 전략 그 자체를 수정했느니 변경했느니 하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빗나간 얘기다.

북(조선)이 '근본문제'에 대한 원칙과 전략을 견지·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평양회담의 성과로 나온 6.15 남북공동선언이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사실에서 뚜렷이 입증되었다. 평양회담이 이룩한 가장 커다란 성과는, 사상과 이념의 대립 때문에 통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좌절과 회의를 남(한국) 사회에서 걷어내고 조국통일은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를 불러일으켰다는 데 있다. 평양회담이 이룩한 성과는 미국의 분할·지배정책이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체제를 지켜오면서 조장해놓았던 남북 사이의 반목과 대결을 단 사흘 동안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위해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단합하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데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지난 6월 30일 원산에서 있었던 재미동포 언론인 문명자 주필과 대담하는 자리에서 평양회담의 성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의 힘으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이고, 나 자신으로선 수령님의 유훈을 계승한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북과 남이 함께 노력할 때가 되었습니다." (『월간 말』 2000년 8월호, 58쪽)

그런데도 남(한국) 정부당국은 평양회담이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련된 최고위급 정치회담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자꾸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것은 칠천만 민족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태다. 평양회담이 끝난 뒤에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언론과 대담하면서 "이번 정상회담도 햇볕정책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다. 북한이 우리의 정책과 특히 김 대통령을 신뢰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가능했다. 따라서 '페리 프로세스'와 남북공동선언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는데, (『연합뉴스』 2000년 6월 18일자) 이것은 전혀 가당치 않은 얘기다. 그가 말한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란 '페리 보고서'에 나타나 있는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을 실현해 가는 일련의 과정을 뜻하며 '햇볕정책'은 그 정책의 복제품인데, '페리 보고서'나 '햇볕정책'에 '근본문제'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들어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남(한국) 정부당국이 왜 그처럼 6.15 남북공동선언과 '페리 보고서'를 억지로 결부하려는 것일까?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윌리엄 페리가 작성한 새로운 전략방침의 요구를 좇아서 평양회담에 나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페리 보고서'의 작성작업이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1999년 1월 27일과 28일에 대북정책 조정관 윌리엄 페리와 백악관 안보보좌관 샌디 버거에게 찾아가서 미국의 새로운 한(조선)반도 정책구상을 들었던 사람은, 평양회담의 한 쪽 당사자인 남(한국) 정부당국 안에서 평양회담을 실질적으로 추진·주도했던 실세인물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었다.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1999년 1월 29일자) 지난 한 해 동안 임동원 국정원장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일하였는데, 김대중 대통령은 그 한 해 동안 그를 페리에게 무려 여섯 차례 (1월 27일, 3월 9일, 5월 24일, 5월 29일, 8월 27일, 9월 22일)나 보내어 미국의 새로운 전략방침을 전달받았다. '페리 보고서'가 작성되던 한 해 남짓한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안보수석과 클린턴 대통령의 대북정책 조정관이 평균 두 달에 한 차례 꼴로 계속 만났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스쳐갈 대목이 아니다. 이런 사정이 있기에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임동원 국정원장을 자기들의 포용정책을 따르는 '참된 신봉자(true believer)'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한국) 정부당국이 그렇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과 상관없이 6.15 남북공동선언은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놓은 최고 수준의 통일문서임에 틀림이 없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제1항에서 자주적 통일 실현을 천명함으로써 주한미군 주둔을 반대하고 있으며, 제2항에서 조국통일방안 모색을 합의함으로써 두 코리아 정책(Two-Korea Policy)에 의한 남북의 평화공존적 영구결별을 반대하고 있으며, 제3항과 4항에서 화해·협력·교류를 추진하는 길을 밝혀줌으로써 국가보안법을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돋보인다.

그런데 주한미군 주둔을 응당하다고 여기면서 한(조선)반도의 연방제 통일 실현이 아니라 국가연합적 평화공존에 의한 영구결별을 추진하려는 정책구상을 담고 있는 '페리 프로세스'가 어떻게 6.15 남북공동선언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말인가. '페리 프로세스'와 6.15 남북공동선언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개와 포도나무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주장만큼이나 황당한 소리다. 지금 워싱턴 정관가에서 나오는 각종 발표문은 그들이 6.15 남북공동선언이 아니라 평양회담을 지지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평양회담을 지지한다고는 하면서도 그 회담이 이루어낸 구체적인 성과인 6.15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한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워싱턴이 속으로는 6.15 남북공동선언을 지지·찬동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평양회담에서 제기했던 '근본문제'란 조국통일 삼대 원칙을 이행하는 정치과제와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국통일 삼대 원칙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인데, 자주의 원칙은 주한미군 철거라는 정치과제로, 평화통일의 원칙은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라는 정치과제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정치과제로 각각 실현되어야 하며, 또 넉넉히 실현될 수 있다. 김정일 총비서는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조국통일 삼대 원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조국통일 3대 원칙은 우리 민족의 통일념원과 의지를 집대성한 가장 정당한 통일강령이며 민족공동의 통일헌장입니다. (줄임) 우리는 앞으로 어떤 어렵고 복잡한 정황이 조성되더라도 조국통일 3대 원칙을 확고히 고수하여야 하며 이 원칙에 철저히 의거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려나가야 합니다. 조국통일의 3대 원칙의 기본정신을 흐리게 하거나 그 의의를 약화시키려는 온갖 현상과 날카롭게 투쟁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 3대 원칙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관철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1972년 7월 14일, 『김정일 선집 2』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 409쪽)

7.4 남북공동성명은 김일성 주석이 제시한 세 가지 통일강령을 1972년 7월 4일에 남북 정부당국이 합의한 최초, 최상의 통일원칙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평양회담을 그 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삼대 원칙을 실현하는 통일회담으로 이끌어가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회담에 나섰으므로, '근본문제'인 주한미군 철거,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 국가보안법 철폐라는 세 가지 정치과제를 어떻게 해서든지 풀어내려고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평양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약 한 달 동안 계속된 남북 정부당국의 실무회담에서부터 이미 북(조선)은 조국통일 삼대 원칙을 평양회담의 의제로 상정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남(한국)의 언론과 분석가들 거의 모두는 평양회담 성사를 눈앞에 둔 시점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뚱딴지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이를테면, 지난 6월 3일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한 「남북정상회담과 진보적 의제·정책을 위한 쟁점찾기」라는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던 강정구 교수의 발언을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는 평양회담이 열리더라도 "남한 주도로 흡수통일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북한이 체제위협까지도 감수하면서 통일정책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북한은 북미 미사일문제를 해결하고 경제협력을 꾀하자는 의도에서 이번 회담을 추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로부터 열흘 뒤에 열린 평양회담은 강 교수의 견해가 얼마나 엉뚱한 착각이었는지를 입증해주었다. 강 교수는 아직도 남(한국) 주도로 흡수통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심한 정세오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조·미 사이의 미사일 문제와 남북 사이의 경제협력 문제가 평양회담에서 북(조선)이 추구하려는 중심과제라고 예상하는 엉뚱한 착각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 무렵 평양회담을 전망하고 있었던 남(한국)의 언론들은 강 교수의 오판과 착각 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조금도 나을 바 없었다. 이러한 오류와 착각은 김정일 총비서의 사상과 전략에 대해서 무지하고, 그가 영도하는 북(조선)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볼 수 있다.

평양회담에서 '근본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그 해결방도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낸 사람은 김정일 총비서였다. 6월 14일 만수대 의사당에서 열렸던 공식면담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외세공조와 민족자주의 모순에 대해서, 그리고 남북의 교류·협력과 국가보안법의 모순에 대해서 '부드러운 어조'로 질문하였다. 그는 '근본문제'를 꼭 집어서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정이 그렇게 된 까닭은 김정일 총비서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결방도를 합의한다는 계획을 사전에 세워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총비서가 평양회담에서 '근본문제'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였는가 하는 내용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비공개로 남아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치회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내막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김정일 총비서가 평양회담에서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어떻게 열어놓았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한(조선)반도의 정세가 바뀌는 변화방향에서 그 모습을 차츰 드러내 보일 것으로 생각되나, 그 전모는 통일 뒤에나 밝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금 외부의 분석가들이 평양회담의 비공개 내용에 접근하는 일에는 명백한 한계선이 그어져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 글은 그러한 제한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평양회담의 '근본문제'를 논의하려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보의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을 틈타서 수구파 반통일세력들이 자의적이고 왜곡된 해석을 마구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정확하게 읽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평양회담에서 '근본문제'가 과연 어떻게 논의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2) 평양회담과 주한미군 문제

1) 주한미군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주한미군은 지난 반세기 동안 준전시상태에 묶여있는 정전·분단체제를 유지·관리하는 가장 강력한 힘의 실체다. 미국은 4성 장군을 한(조선)반도 주둔군의 야전사령관으로 배치하였고 그에게 주둔군과 남(한국)군의 연합군 무력을 지휘·통솔하면서 선제공격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주었다. 주둔군 무력을 배치하고 연합군 무력의 지휘권을 장악한 미국은 정전·분단체제를 유지·관리함으로써 세 가지 전략적 이익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 세 가지 전략적 이익이란 무엇인가?

첫째로, 그 전략적 이익이란 미국과 전면전을 벌였던 적대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끊임없이 무력으로 봉쇄하다가 언제든지 결정적 기회를 잡으면 선제공격을 퍼붓는 극단적인 적대정책을 반세기가 넘도록 유지하는 데서 발생하는 전략적 이익을 말한다.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은 미국의 동북부 지역과 캘리포니아주에 포진하고 있는 거대한 군수산업자본의 이익을 보장해주고, 그 군수산업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정치자금 지원을 자기의 물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워싱턴 정치권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장치로 가동해오고 있다.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이 흔들리고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것은 저들의 전략적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뜻하므로, 저들은 한(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언제까지나 첨예한 상태로 남겨두는 현상유지책을 꾀하고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자기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칠천만 민족에게 준전시상태의 고통과 비극이 언제까지나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미국의 군수산업자본과 그들의 결탁자인 국방부와 군부, 그리고 워싱턴 정치권의 일부 세력(이른바 강경파 정치세력)은 한(조선)반도에서 화해가 아니라 대립을, 그리고 안정과 평화가 아니라 위기와 전쟁을 추구하는 흉악한 집단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이 흉악한 집단이 한(조선)반도에서 전략적 이익을 실컷 챙겨가도록 보장해주는 현지 집행관으로 일하고 있다.

둘째로, 그 전략적 이익은 미국이 북(조선)과 전면전을 치르는 전시 혼란기를 틈타서 남(한국)의 군사권을 장악한 뒤로 지난 50년 동안 남(한국)을 지배하는 데서 발생하는 전략적 이익을 말한다. 김일성 주석은 이러한 지배구조를 "승냥이가 맛있는 비게덩어리를 물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비유로 묘사한 적이 있다. (「현시기 총련 앞에 나서는 몇 가지 과업에 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45돐 재일본조선인축하단, 총련교육일군대표단, 총련분회일군대표단과 한 담화, 1993년 9월 10일, 『김일성 저작집 44』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227쪽) '바다의 비단길'이 펼쳐진 동아시아·서태평양의 해상권을 장악한 미국이 남(한국)을 그 해상권을 지키는 전초기지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태평양시대의 무역·통상·금융부문에서 챙겨가는 엄청난 이익은 누구의 손에 흘러 들어가고 있을까? 그 이익은 미국 전역에 골고루 흩어져 있는 거대한 민수산업자본과 뉴욕 맨해튼에 집중되어 있는 금융자본의 손에, 그리고 그들의 결탁자인 워싱턴 정치권의 일부세력(이른바 온건파 정치세력)의 손에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이 세력은 자기의 전략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남(한국)의 자주와 독립을 억누르는 대신 예속과 굴종을 끊임없이 강요해오고 있는 난폭한 집단이다. 주한미국대사는 이 난폭한 집단이 한(조선)반도에서 전략적 이익을 챙겨가도록 보장해주는 현지 집행관으로 일하고 있다.

셋째로, 그 전략적 이익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적대정책과 지배정책을 배타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휘두르고 있는 전략적 이익을 말한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외교·안보부문에서 생겨난 패권주의적 지위와 권한은 미국의 군수사업자본과 워싱턴의 그 결탁자들, 그리고 민수산업자본 및 금융자본과 워싱턴의 그 결탁자들이 동북아지역을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중심지로 만들고 역내 지배자로 군림하면서 이 지역을 자기들의 활무대로 삼을 수 있도록 안받침해주는 미국의 '국가이익'이다. 워싱턴의 고위관료집단(백악관과 국무부)은 바로 이 '국익'의 이름으로 미국의 다양한 집단들이 한(조선)반도에서 제각기 이익을 챙겨가는 수탈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찰을 조절·통제하면서 남(한국) 지배구도를 효율적으로 유지·관리해오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전략적 이익은 미국이 한(조선)반도에서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챙겨가는 이익이며, 그러한 이익 수탈을 직접적으로, 확고하게 보장해주는 전략단위가 바로 한·미 상호안보조약이라는 법적 장치 위에 세워진 한·미 동맹체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동맹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힘의 실체는 다른 것이 아닌 주한미군이라는 현지에 배치해둔 미국의 무력이다.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듯이, 제국주의 해외침략사에서 이익수탈과 무력배치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결합관계로 묶여 있다. 이것은 예외나 차질이 생겨날 수 없는 불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전략적 이익의 관점에서 볼 때, 칠천만 한(조선)민족의 전략적 이익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전략적 이익 사이에는 서로 타협하거나 절충할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주한미군을 철거하려는 칠천만 민족의 민족자주운동과 그 정치투쟁은, 미국이 전략적 이익을 챙겨가는 지배·수탈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힘의 실체를 제거하려는 운동이며 투쟁이다. 이 힘의 실체를 제거할 때, 칠천만 민족은 비로소 자주와 독립, 평화와 안정, 풍요와 번영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정치·외교·군사·경제부문의 질적, 근본적 변화인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실현하게 된다.

2) 평양회담에서 논의된 주한미군 문제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평양회담에서 다루어진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는 주한미군 문제가 있었다. 평양회담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그 문제가 50년 묵은 정전·분단체제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핵심사안이기 때문이며, 한(조선)반도를 중심축으로 하는 동북아지역의 정치·군사적 정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핵심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정일 총비서와 김대중 대통령은 주한미군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논의할 수 있었던가? 평양회담을 성사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발표된 지난 4월 10일 직후 남(한국)의 언론이 신경을 곤두세웠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북(조선)이 '상봉'과 '회담'을 구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였다. 뒤에 나온 6.15 남북공동선언에서도 "분단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양자를 구분하였다. 그러한 구분법 때문에 남(한국)에서는 김정일 총비서가 김대중 대통령과 상봉만 하고, 정작 회담자리에는 헌법 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예측하면서 한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빗나갔고 의혹은 사라졌다.

그냥 회담이라고 해도 될텐데, 북(조선)은 왜 구태여 그것을 구분하였던 것일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조선)이 상봉과 회담을 구분한 방식을 서방세계 개념으로 바꾸어 말하면 외교적 접견과 공식 회담을 구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김정일 총비서는 바로 이 외교적 접견, 곧 역사적인 상봉의 시공간을 김대중 대통령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비공식 단독회담으로 마련하였다. 상봉은 두 분이 만나 배석자 없이 비공식으로 진행한 단독회담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아래와 같은 사실을 밝혔다.

"저쪽에서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하고 우리의 생각이 애당초 달랐다는 점입니다. 원래 정상회담은 사전에 외교계통을 통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저쪽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무차원에서 타협을 해가지고 두 분이 만나서 형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서명하면 끝나는 데 이번의 경우에도 우리는 그렇게 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저쪽에서 '그렇게 하지 말고 모든 문제는 두 분 정상 간에 만나서 결정하도록 하자'고 해서 사전에 그런 문제들이 전혀 논의가 안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두 분이 만난 자리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놓고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또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71쪽)

중요한 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비공식 단독회담을 왜 마련하였는가 하는 문제다. 그것은 언론의 촉수가 주위에서 얼씬거리는 분위기인 데다가 배석자들이 옆에 앉아 있는 공식 회담에서는 가장 민감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없고, 또 해서도 안 되었으므로 '상봉'의 시공간을 이용한 비공식 회담을 마련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정치적 비중을 따진다면, 공식 회담보다 비공식 회담이 더 중요하였다고도 할 수 있다.

공식 회담에서 논의하기에 부담이 되는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주한미군 문제였다.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이 "대통령께서 특별히 힘줘서 강조하신 것이 '우리 국민이 55년 동안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절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듯이,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78쪽) 원래 김 대통령은 평양회담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군사문제를 다루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 대통령이 이번 평양회담에서 군사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공식 수행원 가운데 국방부 장관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평양회담에서 군사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간접적인 의사표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 그랬을까? 그 까닭은 평양회담에서 군사문제를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는 클린턴의 단호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양회담이 성사단계에 접어들었던 무렵, 미국은 그 회담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문제는 논의대상으로 삼지 말도록 다짐해둔 바 있었다. 김 대통령은 평양회담에서 군사문제에 관한 한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묶여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클린턴은 왜 군사문제를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요구했을까? 그것은 평양회담에서 군사문제가 논의되는 순간, 주한미군 문제가 협상탁자 위에 오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게 되면 김정일 총비서의 주한미군 철거론이 평양회담의 주요의제가 되기에 십상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군대에 대한 군사지휘권이 없는 남(한국)의 최고책임자가 주한미군을 철거하려고 하는 북(조선)의 최고책임자를 만나 주한미군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참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미국 언론이 지적한 대로, 워싱턴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평양회담이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약화시켜 군사적 긴장을 줄인다면 결과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Financial Times 2000년 6월 14일자) 클린턴이 평양회담에 대해서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남(한국)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은 이처럼 남(한국) 정부당국에게 평양회담에서 무엇은 논의해도 괜찮고 무엇은 절대 논의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오만방자하게 내정간섭을 자행하였고, 평양회담이 끝나고 나서 남(한국) 정부당국은 곧 미국에게 회담내용에 관해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클린턴을 만나 통역을 쓰지 않고 직접 영어로 브리핑해주면서 김정일의 주한미군에 대한 언급을 자세하게 전해주었다"고 하며,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63쪽) "미국에 가서 여섯 차례에 걸쳐 관계자들을 면담했다"고 말했다. (같은 책, 83쪽)

이러한 사정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김정일 총비서는 클린턴의 사전조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놓으려고 구상하였다. 그 구상은 김대중 대통령과 상봉하는 시공간을 비공식 단독회담으로 바꾸어 버리는 극적인 전환을 이루어냄으로써 결국 클린턴의 내정간섭 책동을 원천봉쇄하고 남과 북의 최고책임자들끼리만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평양회담 진행과정에서 클린턴의 간섭책동을 원천봉쇄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배석자 없는 비공식 단독회담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양회담에서 비공식 단독회담은 김정일 총비서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순안비행장과 백화원 영빈관을 오고 갔던 리무진 안에서 두 차례나 진행되었다. '리무진 회담'이 바로 그것이었다. 남(한국)의 언론은 서울의 외교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하면서 "75년식 링컨 컨티넨털 리무진은 주한미군이 보유한 유2알(U2R) 고공정찰기, 첩보위성 케이에이취9(KH9)와 케이에이취11(KH11)도 뚫을 수 없는 공간"이므로 "그 대화내용이 정보의 세계에서 우선 관심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미 중앙정보국(CIA)은 '리무진 회담' 내용을 탐지하기 위해 동아시아 담당 첩보원을 서울에 급히 증파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중앙일보』 2000년 7월 11일자) 미국이 이처럼 '리무진 회담'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첩보활동을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 언론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거리로 쏟아져나온 60만 군중에게 정신이 팔려 차창을 내리고 손을 흔드느라고 차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별로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Financial Times 2000년 7월 16일자)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 영빈관으로 갈 때, 그리고 백화원 영빈관에서 순안비행장으로 갈 때, 모두 두 차례나 진행된 '리무진 회담'의 시간은 약 90분이나 된다. 그 리무진을 뒤따르던 수행원 승용차들은 차창을 내렸고 수행원들은 군중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리무진은 경호문제 때문에 차창을 내리지 않았다. 김 대통령이 미국 언론에게 전해준 위의 상황설명은 '리무진 회담'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미국 정보기관의 날카로운 촉수를 피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발언으로 들린다.

김정일 총비서는 6월 15일 오찬에서 "내가 공항에 환영 나가는 것을 김용순 비서가 말렸는데 나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주변에서 빨간 불을 켠다. 내가 새총으로 빨간 불을 모두 깨뜨리면서 나가겠다"고 말했는데, (『문화일보』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16일자) 그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항에 나간 가장 중요한 목적은 '리무진 회담'을 진행하려는 것이었지만, 처음에 주변에서는 단순히 환영하려고 나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으므로 경호문제를 생각해서 만류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김대중 대통령은 원래 순안비행장에서 도착성명을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평양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 북(조선)에서 도착성명을 낭독하지 말고 서면으로 배포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언론은 왜 그런 갑작스런 요구가 나왔는지 설명하지 못했지만, 김정일 총비서가 '리무진 회담'을 진행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 대통령은 평양회담 뒤에 서울에 돌아가자마자 클린턴에게 전화를 걸어 22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통화에서도 김정일 총비서와 만나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했다고 '솔직하게'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느냐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지금 김 대통령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의 표현을 빌리면,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82쪽) 비공개 단독회담의 당사자인 김 대통령 자신이 이처럼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데, 이상하게도 옆에서는 뚱딴지같은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북측에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전쟁억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 통일 후에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경청했고, 충분히 이해한 것으로 저는 보았습니다"고 말했다. (같은 책, 같은 쪽) 또한 그는 "주한미군에 관해서는 피차간 납득할 만한 수준의 얘기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군 철수를 "딱 부러지게" 거론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2000년 6월 18일자) 기자가 "북측이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 시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데 대한 입장은 무엇이었나?"고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주한미군의 장래 문제를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하면서 질문을 슬쩍 피하고 말았다. 그는 김정일 총비서와 김대중 대통령의 '리무진 회담'에 배석하지 못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일본 『아사히신붕』의 보도에 따르면, 절대로 논의하지 말라고 사전에 금지했던 주한미군 문제를 '리무진 회담'에서 논의하였음을 간파한 미국은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였으며,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이 문제에 관하여 직접 설명을 듣기 위해 원래 예정되어 있었던 미국 국무부 고문 웬디 셔먼 대신에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서울에 급파하였다고 한다. 만일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의 말대로 김정일 총비서가 '리무진 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거론하지 않았고, 설령 거론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피차 납득할 만한 수준의 얘기"나 오갔다면 왜 미국이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였고 올브라이트와 첩보원들을 서울에 급파하는 조치를 취했겠는가?

평양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논의한 문제와 관련하여 혼란을 부채질한 발언은 6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있었던 박재규 통일부 장관의 보고내용에서 나왔다. 그는 평양회담에 관해 보고하면서, 6.15 남북공동선언의 제1항에 천명된 통일의 자주적 해결이란 북(조선)의 미군철수 주장과 연결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김 대통령은 평양회담에서 외세를 배격하는 배타적 자주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자주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0년 6월 19일자)

통일부 장관의 그러한 보고내용이 몰고 온 파장을 더욱 증폭시킨 발언은 한나라당에서 터져나왔다.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바로 그 다음날인 6월 20일에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의 청와대 영수회담 내용 가운데서 주한미군에 관한 논의 내용을 공개했다. 영수회담이 끝난 뒤에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은 권 대변인에게 전화를 몇 차례 걸어 영수회담에서 나온 주한미군에 관한 문제는 매우 민감한 것이므로 "클린턴 대통령에게도 대외비를 요청했다. 그 내용이 공개되면 북한의 군부 강경파들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이 난처해진다"고 하면서 제발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클린턴에게도 대외비를 요청한 중요한 기밀사항은 무엇일까? 만일 세상에 알려지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저들의 주장대로 하면, 그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 철수를 바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대변인에 따르면,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이회창 총재가 "남북공동선언의 자주적 통일은 외세배격이며, 주한미군 철수가 아니냐"고 따지듯이 물었을 때, 김 대통령은 "김 국방위원장도 미군 철수를 원치 않고, 심지어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주둔하라는 미군의 역할변화까지 주문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서울경제』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20일자)

이것은 클린턴에게 대외비를 요청했다고 하는 기밀사항을 야당 총재에게 선뜻 말해주는 대통령과 그것을 언론에 털어놓는 야당이 합동연출한 웃지 못할 촌극에 지나지 않는다. 청와대는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난처하게 만들 그런 민감한 문제를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한나라당에게 신신당부해놓았는데도,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서 버젓이 공개하는 한심한 삼류 연속극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혼란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이러한 웃지 못할 촌극을 보면서 남(한국) 정부당국의 정보공개 원칙이 완전히 뒤죽박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총비서와 나눈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비공개 단독회담 내용 가운데서 자기에 불리한 내용은 슬쩍 감추고,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을 적당하게 취사선택하여 공개하고 있다는 데 그 혼란의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김 대통령의 말대로 만일 '자주'가 주한미군 철수를 뜻하는 게 아니라면 김정일 총비서는 주한미군이 영구히 주둔해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말인가? 김 대통령의 말대로 만일 김정일 총비서가 자신에게 주한미군은 동북아 평화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김 대통령은 왜 그러한 일치되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는가? 김정일 총비서의 그런 발언이 북(조선) 군부 강경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난처한 지경에 빠질 것을 걱정한 나머지 그를 도와주려는 갸륵한 마음에서 차마 공개하지 못하는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워싱턴과 서울의 강경파들의 집중공격을 받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김정일 총비서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논의했던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관하여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평양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가 김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무엇을 말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은 주미한국대사를 지낸 현홍주 씨가 6월 26일 일본 『교토통신』과 대담한 자리에서 나왔다. 현 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북(조선)이 72년의 남북공동성명과 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이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음을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 2000년 6월 27일자) 이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조국통일 과업을 수행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민족사 최대의 과업에 결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철수되지 않으면 조국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분명한 견해, 김정일 총비서는 바로 그런 견해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밝혔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 문제를 기존의 원칙과 전략 위에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 그러므로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하여 김대중 대통령에게 했던 말은 북(조선)의 원칙과 전략을 되풀이하여 설명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기존의 원칙과 전략 위에 서있는 주한미군에 관한 김정일 총비서의 생각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요점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김정일 총비서는 자주적 통일실현의 원칙에 따라 주한미군을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북(조선)이 주한미군에 문제와 관련하여 견지해오고 있는 불변의 원칙이며 부동의 전략목표다. 김정일 총비서는 28년 전 조국통일 삼대 원칙이 채택되었을 때, "이번에 남조선 당국자들이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룩하자는 데 대하여 동의한 것만큼 우리는 미군 철거문제를 강하게 들고 나가야 합니다"고 말했다. (「조국통일 3대 원칙을 관철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자」, 1972년 7월 14일, 『김정일 선집 2』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3], 410쪽) 아래에서 언급할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론, 자진철수 유도론, 중립화론, 중·일견제론은 1990년대 이후 김정일 총비서의 그 원칙과 전략에서 파생되었던 다양한 전술론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김정일 총비서는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거되는 시기를 한(조선)반도가 연방제로 통일되기 이전으로 잡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미국이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북과 남이 련방국가를 창립하는 과정에 철수하여도 좋고 그 전에 철수하면 더욱 좋습니다"고 말했다. (민족올림픽위원회 협회 위원장인 메히꼬출판회사 위원장 겸 사장일행과 한 담화, 1991년 6월 5일, 『김일성 저작집 43』[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146쪽) 그런데 이에 반하여 지금 워싱턴과 서울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한미군 용인론, 지위변경론, 영구주둔론은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와 동떨어지거나 배치되는 논리다. '용인'과 '지위변경'은 영구주둔을 위한 구실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한(조선)반도의 통일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수구파 세력은 언제나 주한미군의 용인, 지위변경, 영구주둔을 주장해오고 있다.

셋째, 김정일 총비서는 주한미군 철거 문제를 북(조선)과 미국의 정치협상에 의해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임동원 외교안보수석(당시 직책)은 1999년 4월 15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것이므로 한국과 미국 간의 문제다. 이 문제는 남북이나 북·미 사이에서 논의할 성격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겨레』 인터넷 1999년 4월 15일자) 이것은 그의 개인견해가 아니라 남(한국) 정부당국의 견해로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김정일 총비서는 조·미 정치협상을 진전시켜 결국 미군의 자진철수를 유도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6.25 전쟁 이후 북(조선)은 전쟁을 해서라도 '미제 침략군'을 몰아내겠다는 해방전쟁전략을 줄곧 견지해왔는데, 이것은 주한미군 강제철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김정일 총비서는 조·미 정치회담을 통하여 미국의 한(조선)반도 무력주둔정책을 스스로 바꾸게 만들고 결국 미국 정부가 스스로 주한미군을 철수하게 만든다는 자진철수 유도론을 '최선의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자진철수 유도론은 지금 평화통일전략이 최선의 전략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과 같은 궤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자진철수라는 말은 자동철수라는 말과 완전히 다르다. 자진철수란 미군이 불명예스럽게 쫓겨가기 전에 체면을 깎이지 않고 알아서 결정하고 스스로 물러나도록 정치공세를 펴겠다는 철거의지를 전제하고 있는 개념이다. 조·미 정치협상과 주한미군의 자진철수를 연계하는 김정일 총비서의 미군 철거계획은 6월 30일 원산에서 재미동포 언론인 문명자 주필과 진행한 대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곧 고위급에서 대표를 (워싱턴에) 파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자진철수 유도론에 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동안 미군더러 나라가고 했지만 그들이 당장 나가겠습니까. 우선 미국 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그들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 만큼 통일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날 닉슨도 카터도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는데, 주한미군 문제는 우선 그들 스스로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 (『월간 말』 2000년 8월호, 60쪽)

머지 않아 워싱턴에서 진행될 역사적인 조·미 고위급 정치회담은 워싱턴 정관가에서, 그리고 미국 언론에서 주한미군 자진철수론의 시동을 걸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동은 일차적으로 조·미 평화협정(또는 평화선언)을 채택하는 획기적 사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한(조선)반도의 위태로운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바꾸어놓지 않고서는 주한미군을 자진철수할 뚜렷한 명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미국이 북(조선)에 대해서 화해의 손짓을 보이면서 고위급 정치회담을 줄이어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자진철수를 위한 명분쌓기의 일환이 아닐까? 이러한 화해 분위기에 앞서 나왔던 '페리 보고서'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평화공존관계로 전환하는 전략적 방침을 천명하고 있는데, 조·미 평화협정(또는 평화선언)의 채택은 그 전략적 방침을 수행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가 문명자 주필을 통해 미국에게 밝혔던 주한미군 자진철수론은 바로 이러한 '페리 프로세스'의 전략적 방침을 염두에 두고 설정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미국 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한 그의 말을 주의 깊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넷째, 김정일 총비서는 북(조선)은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고 있으니, 앞으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조·미 사이에 논의되어 진전을 보더라도 남북이 무력을 증강하거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주한미군 철수가 남북의 무력증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화해적, 반통일적 가능성을 남북의 최고책임자가 정치회담을 통해 사전에 예방·저지하자는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남북 사이의 군비감축 문제가 평화통일 문제에 어떻게 결부되는지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전쟁의 화근인 미제 침략군대를 남조선에서 철수시킨 기초 우에서 북과 남의 무력을 대폭 축소하여야 합니다. 이와 함께 남북 쌍방이 정세를 첨예화시킬 수 있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하며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지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실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조국통일을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할 데 대하여 선언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은 빈 말로 되고 말 것입니다." (김정일, 위의 책, 위의 글, 411쪽)

다섯째, 김정일 총비서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는 단계에 맞춰 미국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남북의 군사적 긴장 완화의 상관관계를 말해주는 사례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있었다. 1990년 부시 정권이 아시아 주둔 미군을 2000년까지 10년 동안 세 단계로 나누어 크게 감축하겠다(완전철수가 아니었다)는 획기적인 계획을 발표하자, 북(조선)은 그에 상응하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합의·채택한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면 북(조선)은 그에 상응하여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한다는 기본원칙을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10년 전에는 미국이 먼저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남북 사이의 긴장이 일시적이나마 완화·해소되는 길이 열렸지만, 지금은 남북이 평양회담 이후에 남북 사이의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주한미군의 단계적 자진철수를 유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섯째, 김정일 총비서는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되기 이전에라도 북(조선)을 적대하고 남(한국)을 지배하는 무력이 아니라 남북 사이의 우발적 군사충돌을 예방하는 중립적 성격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주한미군의 성격을 중립화하는 전략이다. 일본의 『산케이신붕』 6월 21일자는 서울 소식통의 말을 인용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중립화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신문의 보도는 미군의 중립화 또는 평화유지군화가 주한미군 용인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는데, 주한미군 용인론은 김정일 총비서의 전략과 배치되는 논리다. 김정일 총비서의 주한미군 중립화 전략은 주둔 용인론과는 애초에 인연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단계적 자진철수론에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주한미군의 성격과 임무를 평화유지군의 성격과 임무로 바꾼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설령 어렵사리 바꾼다고 해도 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주둔시켜야 할 아무런 명분도 실리도 없게 된다. 주한미군은 평화유지라는 '고상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무력이다. 미국이 한(조선)반도에 무력을 배치하는 목적은 평화유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적대관계와 지배·수탈체제를 무력으로 보장·보위한다는 데 있다. 그런 주한미군에게 평화유지 임무나 수행하라고 하는 것은 마치 짐승을 잡아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자에게 토끼풀이나 먹으면서 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은 적대관계와 지배·수탈체제를 위한 전진배치 무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존재의의를 잃어버리게 된다. 남의 나라 평화를 지켜주기 위해서 한 해에 수십 억 달러를 쏟아 부을 그런 정신 나간 나라가 있을까? 만일 주한미군의 성격과 임무를 평화유지군의 성격과 임무로 바꾼다면, 워싱턴 정가와 여론의 철수압력에 밀려 한 두 해 안에 자진철수하고 말 것이 뻔하다. 주한미군의 성격변화, 곧 중립화는 자진철수로 직결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주한미군 중립화 전략은 바로 이 점을 내다보고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일곱째, 김정일 총비서는 주한미군이 자진철수함으로써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적 세력균형이 불안정하게 깨져나가고, 그것이 한(조선)반도의 통일정세에 불리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는 한(조선)반도의 통일에 유리한 정세를 조성하는 것과 더불어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주한미군의 중·일견제론과 관련하여 "지금 미국이 우리를 걸고 자기 군대를 남조선에 주둔시키고 있지만 그들의 진짜 속심은 우리보다도 중국이나 일본을 견제하려는 데 있습니다"고 말했다. (「재미교포들이 단합하여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릴 데 대하여」, 재미교포들과 한 담화, 1993년 3월 11일, 『김일성 저작집 44』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138쪽) 김일성 주석이 말한 중·일견제론은 주한미군 문제가 동북아지역의 세력균형 문제와 결부되어있음을 인정하는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총비서와 만난 비공개 단독회담에서 주한미군 세력균형론을 설명했다. 세력균형론이란 한(조선)반도가 통일된 뒤에도 주한미군은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위한 '균형자'로, 또는 역내 갈등을 막아주는 '안전판'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영구주둔론의 변종이다. 미국은 김정일 총비서를 만나거든 주한미군 문제를 절대로 입밖에 꺼내지 말라고 사전에 요구한 바 있었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리무진 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 문제를 제기하였으므로 김 대통령은 하는 수 없이 평소 자신의 생각인 세력균형론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과 나눈 대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평양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소련이 무너진 뒤에도 유럽에 남아서 안전을 보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한미군도 동북아시아에서 세력균형과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통일 이후에도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Los Angeles Times 2000년 7월 19일자)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나토군이 코소보 사태를 빌미로 삼고 유고슬라비아 내정에 무력개입하여 침략전쟁을 일으킨 것이 불과 한 해 전에 일어났던 일인데, 그런 나토가 유럽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국제정세인식은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나토군이 유럽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남(한국)에도 미군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 해괴한 논법을 긍정할 사람은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의 세력균형론은 6.25 50주년 기념사에서도 되풀이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주한미군에 대해서 태도를 분명히 했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체제가 이루어질 때까지는 물론이고 통일된 후에도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북측에 설명했다. (줄임) 만일 한국과 일본에 있는 10만의 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와 태평양의 안전과 세력균형에 커다란 차질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국익을 위해서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기를 바란다는 것을 나는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천명하고 싶다." (『연합뉴스』 2000년 6월 25일자) 김 대통령의 세력균형론이 워싱턴 전략가들이 주장하고 있는 세력균형론,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주한미군 영구주둔론에 매달려 있는 군수산업자본과 그 결탁자들인 국방부, 군부, 워싱턴의 강경파 세력의 세력균형론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완벽한 복제품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주장하는 세력균형론을 대변한 김 대통령의 말을 들으면서 김정일 총비서는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 언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고 한다. (『한국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16일자) 아마 김대중 대통령이 하도 기가 막힌 얘기만 하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한국)의 수구파 반통일세력들은 그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마치 긍정의 의미를 담은 경청이라고 왜곡하여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 철수를 바라지 않고 통일 이후에도 미군 주둔을 용인하였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는, 김정일 총비서의 세력균형론과 김대중 대통령의 세력균형론 사이에는 서로 건널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김 대통령의 세력균형론은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정당화·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인 반면에, 김정일 총비서의 세력균형론은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하고 당면현실 속에서 균형자 역할, 안전판 기능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논리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력균형론은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이라는 결론을 내놓는 데 반하여, 김정일 총비서의 세력균형론에서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자진철수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남(한국)의 정부당국, 언론,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세력균형론만 자꾸 강조하면서 양자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들이 철수냐 영구주둔이냐 하는 근본적인 차이는 애써 감추면서 세력균형론의 형식적 유사성만을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한미군 세력균형론을 주한미군 용인론에 억지로 끌어다 붙이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세력균형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영구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해괴한 논법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수구파 반통일세력들이 나서서 김정일 총비서가 주한미군 용인론을 용인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김정일 총비서가 김 대통령에게 한 발언은 "이런 요지였음이 확인되었다"고 하면서 왜곡한 사실을 아래와 같이 늘어놓았다.

"주한미군은 남북 간의 전쟁억지 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필요한 존재이며 통일 후에까지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992년에 방미한 김용순 동지를 통해서 미국 정부측에 이런 뜻을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 인민들은 갑자기 생각이 바뀌지 않으므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62쪽)

세력균형론과 영구주둔론을 연계하면서 "주한미군이여, 영원하라"고 외치는 장본인은 김정일 총비서가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다. 김정일 총비서의 세력균형론은 주한미군 용인론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으며 단계적 자진철수론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북(조선)이 주한미군을 즉각적으로 완전히 철수하라고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원래 북(조선)은 주한미군을 즉각적으로 완전히 철수하라고 요구하였으나, 1990년에 들어와서 종래의 요구를 바꿔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하라고 요구하였다. 이것은 1990년에 나왔던 부시 정권의 아시아 주둔 미군의 세 단계 감축계획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술적 방도의 변화였다. 북(조선)은 1992년 1월 뉴욕에서 열렸던 김용순-캔터 정치회담에서 처음으로 그러한 전술적 변화를 미국 정부당국자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러한 전술변화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간단히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사정이 이러했는데도 수구파 언론은 지금 정계에서 떠나 있는 아놀드 캔터를 수소문하여 찾아내 전화까지 걸어서 북(조선)의 주한미군 용인론이라는 자기들이 만든 허구적 가설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그 전화통화에서 캔터는 "오래 된 일이라, 그리고 긴 이야기 중에 나온 것이라 정확하게 기억은 못한다. 김용순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그대로 주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 정리하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말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북미협상에서 북한의 목표는 미국과 제대로 된 만남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액면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 책, 64쪽)

문제는 북(조선)이 즉각적이고 완전한 철수에서 왜 단계적 철수로 전환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한미군이 중국, 일본, 러시아를 견제하는 세력균형의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은 서거 두 달 반 전에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긴 바 있다.

"우리가 련방제 조국통일을 주장하지만 지금 당장 남조선에 있는 미군을 다 몰아내자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북과 남 사이에 화해와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고 우리가 남조선을 <적화>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천명한 조건에서 미군이 남조선에 남아있을 명분이 없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이 중국이나 일본, 로씨야를 견제하기 위하여 남조선에서 물러가려 하지 않는데 우리는 미군이 남조선에서 당장 철수하지 않겠으면 단계적으로라도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북과 남이 화해를 하고 군대를 줄이면 그에 따라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도 단계적으로 철수하여야 합니다. 북과 남이 불가침 문제를 합의하고 서로 싸움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것만큼 많은 군대를 그대로 둘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늘 말하는 것이지만 북과 남의 군대를 점차적으로 줄여 각각 한 10만 명 정도로 유지하면 됩니다. 남조선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도 북과 남의 군대가 각각 10만 명 정도로 축소될 때에는 완전히 철수하여야 합니다." (「조선민족은 누구나 조국통일에 모든 것을 복종시켜야 한다」, 재미교포 녀류기자와 한 담화, 1994년 4월 21일, 『김일성 저작집 44』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407-408쪽)

3) 평양회담 이후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주한미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주한미군 철수가 미국의 국익추구에 전면 배치되는 것이므로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철수 가능성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거라고 속단하기 쉽지만, 그것은 한 쪽 면만 보는 일면적 관찰이다. 주한미군 문제에는 양면이 있다. 전략적 사고를 할 줄 안다고 하는 워싱턴의 전략가들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은 이익이고 철수하는 것은 손해라고 보는 양자택일의 단순·소박한 손익계산이나 따지고 있는 순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주둔시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는 반면에 손해도 있다. 반대로 미국이 주한미군을 철수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는 반면에 손해도 있다. 만일 주한미군을 주둔시켜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커지고, 반대로 주한미군을 철수해서 얻을 수 있는 손해보다 이익이 더 커진다면 그들은 서슴지 않고 미군을 철수할 것이다.

평양회담 이후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개입전략(engagement strategy)과 철퇴전략(disengagement strategy)을 예민하게 저울질하면서 주한미군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들의 예민한 저울질에서 부동의 기준점이 되는 것은 '사상과 이념'이 아니라 '국익'이라는 것이다. 저들은 사상과 이념이 다른 상대라도 자기들의 국익추구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고, 사상과 이념이 같은 상대라고 해도 자기들의 국익추구에 손실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잡았던 손을 놓아버릴 수 있는 것이다.

수구파 반통일세력은 '페리 프로세스'를 해석하면서 그것은 미국이 포용정책으로 북(조선)을 개방·개혁하여 미국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계로 유도·편입하려는 고도의 책략이라고 그럴듯한 주장을 늘어놓고 있지만, 미국은 사상과 이념이 다른 북(조선)과 손을 잡는 것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바로 그래서 국교수립을 목표로 한 평화공존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워싱턴의 고위급 전략가들은 지렛대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포용정책'으로 '혁명적 국가'인 북(조선)을 '자주의 영원한 항로'에서 이탈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앞으로 미국이 북(조선)과 손을 잡으면 잡을수록 남(한국)과 잡았던 이른바 '동맹자의 손'에서는 맥이 풀려나가게 되어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조선)반도에 불어오고 있는 정세변화의 동향을 일컬어 표피적이 아니라 근본적이라 하고 잠정적이 아니라 결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건, 곧 전후 세계 최대의 열점(熱點)이었던 한(조선)반도가 이제는 미국의 적대자도 동맹자도 없는 중립지대로 뒤바뀌는 엄청난 변화사건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미국의 대외관계협의회(CFR) 선임연구원 로버트 매닝의 표현대로 "아시아를 뒤흔든" 역사적인 평양회담은 주한미군 문제에 관한 워싱턴의 전략가들의 생각을 흔들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는 평양회담 이전이나 이후나 아무런 변화가 없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정세변화에 너무 둔감한 소리다. 지금 워싱턴에서는 주한미군의 장래문제에 관하여 자진철수론, 감축론, 유지론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쟁패를 겨루고 있다.

첫째, 자진철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국방부 정책차관실이 작성한 보고서 「아시아 2025」에는 미 국방부 정책자문위원회가 2025년까지 아시아 전략환경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내다보면서 만든 시나리오가 들어있는 데, 그것은 오는 2005년에 남북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남(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압력, 그리고 워싱턴의 정치적 압력이 있게 되면, 앞으로 10-15년 안에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모두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7월 5일자) 미 공화당 소속의 보수파 대부로 알려진 제시 헬름스 상원외교위원장은 6월 17일 씨엔엔 텔레비전방송에 출연하여 "미국은 남북관계가 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므로 한(조선)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3만7천명을 철수할지 여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만일 남북관계가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워싱턴의 군사전문가들과 안보분석가들이 평양회담이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통일이 곧 이루어지건 또는 그렇지 않건 간에 참된 평화가 실현된다면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커다란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회조사국의 군사전문가 로버트 골디치의 말을 인용·보도하였다. (Washington Post 2000년 6월 21일자) 워싱턴의 군사전문가들이 한(조선)반도의 화해가 이루어진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윌리엄 코언이 1997년에 국방장관에 임명되면서 워싱턴의 정책담당 관리들에게 던진 첫 물음이 한(조선)반도에 평화가 정착된 뒤에 주한미군이 철수될 것이라는 예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미국 언론이 보도한 때는 평양회담이 성사되기 얼마 전인 5월 26일이었다. (Washington Post 2000년 5월 26일자)

둘째, 자진철수론에 제동을 거는 현상유지론도 여전하다. 미 국방부 대변인 케네스 베이컨은 김대중 대통령이 서울에 돌아간 직후인 6월 15일 "남북한의 통일 이후에 주한미군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 미군을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으로 계속 주둔시킬 것"이라고 말했고, (『한겨레』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16일자) 미 합참의장 헨리 쉘튼도 주한미군을 감축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Washington Times 2000년 6월 16일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 크롤리도 "지금 우리는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어떠한 변화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Washington Post 2000년 6월 16일자)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서울을 방문하고 있던 6월 23일 서울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분명히 주한미군의 주둔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전쟁억제력이고, 둘째는 이 지역 안정을 위해서다. 이 두 가지 이유가 없어지지 않는 한 주한미군의 존재에는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매일경제』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24일자)

셋째, 자진철수론과 현상유지론 사이의 틈을 비집고 감축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워싱턴에서 주한미군 감축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시간 문제로 생각된다. 1990년부터 삼년 동안 주한미군사령관을 지낸 바 있는 로버트 리스카시는 주한미군 감축론은 하루 밤 사이에 제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 문제에 관한 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Washington Post 2000년 6월 16일자) 국방차관보를 지냈으며, 지금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조지 부시의 외교안보정책을 보좌하고 있는 리처드 아미티지는 6월 15일 언론과 대담하면서 "한반도의 통일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할 것이라고 말한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면 현재 수준의 미군은 주둔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주한미군의 종류와 배치가 변경될 수 있을 것이고 미국은 이에 대해 호의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나는 긴장완화의 전제 아래 주한미군의 감축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16일자)

그렇다면 워싱턴에서 쟁패를 겨루고 있는 자진철수론, 감축론, 현상유지론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가닥이 잡힐까?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조·미 관계개선의 폭과 속도에 따라 앞으로 감축론이 일단 우세하다가 결국 자진철수론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3) 평양회담과 국가보안법 문제

지금 남(한국)의 정치권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느냐 아니면 부분개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국가보안법을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방안, '민주질서수호법'이라는 대체입법을 마련하는 방안, 독소조항을 삭제하는 부분개정 방안, 안보관련 조항을 형법으로 넘기고 나머지 조항은 폐지하는 방안을 놓고 사태 추이를 살피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한겨레』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15일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자민련이 6월 16일 의원회의를 마치고 나서 대변인을 통해 국가보안법 개정에 반대해온 당론을 조정하겠다고 밝혔으며, 자민련 총재인 이한동 총리도 국가보안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발언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지난 2월 27일 "자민련은 국가보안법 폐지와 미전향 장기수의 석방 및 북송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는 데, (『한겨레』인터넷 기사 2000년 2월 27일자) 그로부터 불과 넉 달이 지난 평양회담 이후에 그의 목소리는 반대 방향에서 흘러나왔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보안법 체제가 이미 붕괴의 위기로 몰려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보안법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투쟁의 험한 길을 헤쳐온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이루어낸 성과로 해석할 수 있는 데, 결정적인 전환점은 역시 평양회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평양회담에서 국가보안법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었는가 하는 문제다. 국가보안법 문제는 배석자 없이 진행된 비공식 단독회담이 아니라 배석자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던 공식회담에서 논의되었다. 그 까닭은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이행해야 할 당사자는 김대중 대통령 자신과 남(한국) 정부당국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보안법 문제를 곱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터이므로, 김정일 총비서는 구태여 이 문제를 비공식 단독회담에서 꺼내놓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평양회담에서 국가보안법 문제에 관련하여 어떻게 논의하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반대하고 있는 수구파 반통일세력을 의식해서 국가보안법 문제와 관련된 논의·합의내용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이 다 아는 대로, 평양회담 이후 급변하는 한(조선)반도 통일정세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남(한국)의 현행법은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제2조에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데, 이것은 북(조선)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회담은 이른바 '반국가단체'의 최고책임자와 만나서 합의한 회담이 아니었으므로 평양회담의 성사 자체가 국가보안법을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지금 남(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찬양·고무·선전·동조·선동에 관한 내용과 제10조의 불고지에 관한 내용을 '인권' 침해 차원에서 이해하면서 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국가보안법을 완전히 철폐해야 한다는 논리는 그것이 인권을 짓밟는 악법이라는 차원보다는 남(한국) 민중의 통일논의와 통일운동을 가로막고 있는 반민주적 악법이라는 차원에서 설정되는 것이 옳다.

평양회담 이후 급변하는 한(조선)반도 통일정세에 배치되는 남(한국)의 법체계 가운데는 국가보안법 말고도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과 제4조의 통일조항도 있다. 헌법의 영토조항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까지 자기의 권한이 미치는(또는 미쳐야 하는) '영토'로 규정함으로써 리승만 정권의 '북진통일론',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승공통일론', 노태우·김영삼 정권의 '흡수통합론'을 뒷받침해주는 법리적 근거로 기능하면서 국가보안법을 뒷받침해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의 영토 일부를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국가보안법의 규정은 바로 이 영토조항에서 뒷받침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김대중 정권은 연방제 통일이 아니라 평화공존에 의한 국가연합적 영구결별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만일 영토조항을 "대한민국의 영토는 군사분계선 이남과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고치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변경·설정함으로써 장차 한 나라로 합쳐져야 할 남과 북을 두 나라로 영구히 갈라놓으려는 반통일정책이 헌법 상의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골치 아픈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북(조선)의 헌법에는 영토조항이 들어있지 않다. 그 헌법은 제16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기 영역 안에 있는 다른 나라 사람의 합법적 권리와 리익을 보장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라는 개념 대신에 정치적 개념인 '영역'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남(한국)의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되어있다. 여기서 밝히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자본주의 체제의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뜻하므로, 결국 이것은 북(조선)을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통합하겠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연방제 통일방안과 충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김대중 정권이 추구하고 있는 평화공존에 의한 국가연합 방안과도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평양회담 특별수행원이었던 문정인 교수가 민주당 '386' 의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6월 14일 평양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 요구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은 이른바 '상호주의 원칙'을 들고 나왔다. 김 대통령은 "보안법 폐지는 우리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북한도 노동당 규약 전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20일자)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회담에서 상호주의 원칙을 들고 나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와 관련하여 문제로 삼았던 조선로동당 규약 전문 가운데 일부는 "조선로동당의 당면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한 부분과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국주의 침략군대를 몰아내고 식민지 통치를 청산하며 그리고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기도를 좌절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남조선 인민들의 사회민주화와 생존권 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조국을 자주적,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기초하여 통일을 이룩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투쟁한다"고 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조선로동당 규약 전문의 일부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김정일 총비서는 그 자리에서 "우리가 먼저 7차 노동당 대회를 열어 노동당 규약을 바꾸겠다"고 선뜻 약속했다고 한다.

오는 10월 10일은 조선로동당 창건 55돌이 되는 날이다. 북(조선)에서는 5년, 10년, 15년 하는 식으로 이른바 '꺾어지는 해'를 성대히 기념하고 있고, 올해 초부터 당 창건 55돌의 역사적 의의를 특별하게 강조해오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미루어보아서, 우리는 당 창건 55돌을 기하여 제7차 당대회가 열릴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제6차 당대회가 1980년 10월 10일에 열렸으므로 꼭 20년만에 당대회를 개최하는 셈이다. 20년 전 제6차 당대회에서는 김정일 총비서를 후계자로 공식 추대하였고, 당중앙위원회를 선거하였으며, 연방제 통일방안의 완결판인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이 발표되었다. 이번에 제7차 당대회가 열리면, 김정일 총비서가 김일성 총비서의 뒤를 이어서 제2대 총비서로 추대되고 나서 처음으로 총비서의 직위로 당대회를 이끌어가게 된다. 지난 5월말 북경에서 열렸던 조·중 정상회담에서 장쩌민 주석은 중국공산당 축하사절단을 이끌고 이 당대회에 주빈으로 참석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사실 20년 전에 열렸던 제6차 당대회의 준비사업를 이끌었던 총지휘자는 김정일 총비서였다. 그런 점에서 제6차 당대회나 제7차 당대회는 모두 동일한 지휘자에 의해서 준비·추진될 것이다. 다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번 제7차 당대회에서는 김정일 총비서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를 직접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제7차 당대회의 '사업총화보고'에서 연방제 통일 실현과 대미 관계 개선을 위한 구상을 제시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더불어 김대중 대통령에게 약속한 대로 당 규약의 전문 가운데 일부 내용을 바꾸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로동당 규약 전문 가운데 일부가 바꿔지면 김대중 대통령도 자신이 주장했던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와 더불어 헌법의 영토조항을 삭제하고 통일정책 조항에서 흡수통합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평화공존과 국가연합 수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어째든 올해 안에 국가보안법은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평양회담에서 이 문제를 합의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보안법 문제에 대해서는 두 정상 간에 이렇게 합의가 되었습니다. '보안법과 이와 관련한 북한 법들은 과거에 만들어졌다. 이제는 시대적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시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취지는 살리더라도 시대상황에 맞도록 조정돼야 된다. 시대가 변한 이때 우리 민족이 이 문제로 다투어서 되겠느냐. 만약 우리 두 정상만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면 우리 두 사람만 고치면 되는데 아직도 모든 국민들이 과거의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 두 사람이 선도해서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국민들의 의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82쪽)

국가보안법 체제가 무너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남북의 적대관계를 떠받쳐왔던 기둥이 무너진다는 뜻이며, 해내외 민족민주운동 일군들을 옥죄여왔던 수구파 반통일세력의 힘이 꺾인다는 뜻이다. 55년 동안 칠천만 민족의 양심을 짓눌러오던 국가보안법 체제가 무너지면서 화해와 통일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남북의 적대관계가 풀어지고 수구파 반통일세력의 힘이 꺾이는 새로운 역사는 이미 평양회담에서 시작되었다.

(4) 평양회담과 연방제 통일 문제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는 조국통일과업에 대해서 언제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통일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 그의 관심은 통일이 아니라 온통 화해협력에 쏠려있다. 이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며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그는 7월 10일 청와대에서 범죄예방대회 수상자 등 관계자들과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경제적 능력이 없고 국민감정이 받아들일 수 없어 남북의 통일을 바랄 수 없는 만큼,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해가면서 20-30년 정도 지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 통일이 온다. 통일은 서서히 해야 하지만 남북간 전쟁을 하지 않는 화해와 협력은 꼭 빨리 해야 한다. 통일은 서로가 더 안심할 때까지 20-30년 정도 기다려도 된다" (『조선일보』 인터넷 기사 2000년 7월 10일자)

20-30년 뒤에나 통일이 실현될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나눈 대담에서도 되풀이되었다. 심지어 그는 "우리는 지금 우리가 통일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라는 환상을 사람들에게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Los Angeles Times 2000년 7월 19일자) 지금 통일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아니라니? 통일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환상이라니? 조국통일을 갈망하고 있는 칠천만 민족의 통일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다. 남(한국)이 경제력이 없어서 조국통일을 바랄 수 없다니, 그러면 경제력으로 북(조선)을 통합하겠다는 말인가? 국민감정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그가 조국통일문제를 경제통합문제로 보고 있는 것은 그의 통일관 자체가 잘 못 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통일을 20-30년 정도 기다려도 된다니, 참으로 여유작작하기 이를 데 없다. 20-30년 뒤라면 김 대통령은 이 세상에 없는 때이므로, 통일은 내가 알 바 아니니 내 뒤에 오는 너희들이나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소리인가?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김정일 총비서와 맞잡은 손을 번쩍 치켜드는 사진이 앞으로 교과서에 실리게 되면, 그 사진을 볼 때마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판인데, 다음 세대까지 기다리라는 말은 납득할 수 없다.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서 조국통일방안을 찾아보자고 합의해놓고 이제 와서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을까? 55년의 분단재앙이 몰아오는 고통과 불행 속에서 아우성치며 이제는 하루 빨리 통일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칠천만 민족의 간절한 통일염원을 보고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조국통일과업에 대해서 이러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반대편에 있는 김정일 총비서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한(조선)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이 아니고서는 칠천만 민족이 55년의 분단재앙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확고부동한 통일관, 하루라도 빨리 통일을 실현하겠다는 신념과 의지, 그리고 그것을 안받침하고 있는 통일전략을 그는 실천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실천행동은 김정일 총비서가 회담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연방제 통일 문제를 협상의제로 제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당시의 상황을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저쪽에서 처음 이야기가 '우리 정상이 55년만에 처음 만났는데,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7000만 민족의 염원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 7000만 민족에게 뭔가 선물을 내놓아야 되는데, 그 선물은 큼직하게 내놓아야 되는데, 그 선물은 우리 7000만 민족이 원하는 염원이라는 것, 통일 아닙니까? 통일에 대한 방안을 내놓읍시다. 그 통일방안은 역시 고려연방제입니다'하고 나왔습니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71쪽)

평양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가 연방제 통일 방안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설명하고 제안했는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원리원칙은 이미 6.15 남북공동선언 제1항과 2항에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1항을 다시 살펴보면 세 가지 원리원칙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통일의 주체를 세우는 문제다. 칠천만 민족을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 세우는 민족주체의 원리원칙이다.

둘째, 민족의 역량을 단결하는 문제다. 조국통일은 통일의 주인이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야 해결할 수 있다는, 민족의 단결된 역량을 통일의 기치 아래 묶어 세우는 원리원칙이다.

셋째, 통일을 자주적으로 실현하는 문제다. 조국통일은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반외세 자주화의 원리원칙이다.

제2항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는 김정일 총비서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조국통일 삼대 원칙을 이미 합의해놓은 조건에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는 것은 그가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이루려는 결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김일성 주석은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문제의 시급성과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현 시기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는 조국통일방도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조국통일방도가 확정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통일에 대하여 말한다고 하여도 실천적으로는 북과 남이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보조를 같이할 수 없으며 통일을 위한 대화의 첫 실마리도 풀 수 없습니다. 조국통일이 먼 앞날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과제로 나서고 있는 오늘 북과 남은 하루 빨리 조국통일방도에 대하여 합의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노력함으로써 조국통일을 갈망하는 온 겨레에게 희망을 안겨주어야 할 것입니다." (「신년사」, 1991년 1월 1일, 『김일성 저작집 43』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11쪽)

통일방안을 합의한다는 말은 통일방안을 남과 북의 최고책임자들 사이에서만 합의한다는 뜻이 아니라 전민족적으로 합의한다는 말이며, 그것은 곧 칠천만 민족을 통일실현의 주체로 나서게 한다는 계획이다. 김일성 주석은 이 계획을 조국통일방도를 확정하는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로 구체화하였다. 그는 "우리는 조국통일방도에 대한 전민족적 합의를 이룩하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으로 북과 남의 당국과 정당, 단체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조국통일방도를 확정하는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제의합니다"고 말했다. (같은 책, 같은 글, 14쪽)

6.15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 나타난 통일방안 문제에서 핵심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남과 북이 두 개의 주권국가로 상호인정한 양국관계에서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실현하는 단계를 밟아갈 것이냐, 아니면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에서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실현하는 단계를 밟아갈 것이냐 하는 문제로 집약된다.

분단체제에 묶여있는 오늘의 남북관계를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으로 바꾸어낼 때 가장 커다란 쟁점으로 등장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양국관계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로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다. 이 문제는 결국 남과 북의 정치적 실체가 외교권과 군사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결정짓는 것이다. 외교권과 군사권이 중요한 권한이 되는 까닭은 그것이 나라의 자주권을 보장해주는 두 중심축이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자들이 조선왕조의 주권을 강탈하고 식민지로 만들 때, 가장 먼저 빼앗아간 것이 군사권과 외교권이었다. 일제 침략자들은 1905년 이른바 '을사조약'을 강도적으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강탈함으로써 조선왕조를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차단시켰으며, 1907년에는 조선군대를 강제로 해산하고 군사권을 강탈하여 조선왕조의 무장을 해제함으로써 식민지 지배·약탈의 길을 재촉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외교권과 군사권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어떤 정치적 실체가 주권국가인가 아닌가를 구별해주는 핵심문제가 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평양회담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설명한 뒤에 이 방안을 합의하자고 제의했다. 회담장 밖에 있었던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의 말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가 오래 동안 웅변조로 설명하는 음성이 문 밖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 김대중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은 남북이 별도로 행사하는 것이 연합제안"이라고 말하면서 연합제안을 내놓았다. 김 대통령의 말대로 만일 남북이 외교권과 군사권을 따로 보유·행사한다면 그것은 통일이 아니라 두 개의 주권국가로 갈라서는 영구결별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한(조선)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만들어놓으려는 미국의 '두 코리아 정책'과 동일한 내용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김 대통령의 이러한 연합제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그것이 바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이니 연방제에 합의했다고 남북공동선언에 명시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연방제안을 합의하자는 제안을 완강히 거부했다. "열띤 논쟁 끝에" 김정일 총비서는 "이것으로 논의는 끝났다. 더 이상 하지 말자"고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Financial Times 2000년 7월 16일자) 자리에서 일어난 김정일 총비서는 회담 배석자인 김용순 비서와 함께 저편으로 걸어가서,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에 다시 돌아와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자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남북의 최고책임자가 만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과 연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기까지에는 이처럼 여러 시간 동안의 열띤 논쟁과 대화중단의 위기를 넘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김정일 총비서는 왜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한(조선)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를 만들어 분단을 합법화하고 영구결별을 하려는 연합제안과 질적으로 다른 통일방안인데, 그가 그 두 방안이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것은 얼른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총비서는 평양회담에서 처음부터 연방제안을 내놓고 이에 대해서 합의하자고 요구하였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연방제안에 합의하기를 워낙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으로 수위를 낮추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도 거부했다. 더 이상의 합의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김정일 총비서는 평양회담에서 연방제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김대중 대통령은 연방제안에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사이의 차이점을 따져보아야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으므로 김정일 총비서는 양자의 형식적 공통성(내용적 공통성이 아니라)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총비서가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연방통일국을 세우되 중앙연방정부의 외교권과 군사권 가운데 일부 권한을 지방자치정부가 잠정적으로 보유·행사하도록 한다는 연방화의 초급단계로 설정된 통일방안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1991년 1월 1일 김일성 주석이 발표한 신년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이 민족적 합의의 기초로 될 수 있는 공명정대한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으로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하여 잠정적으로는 련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더욱 더 높여나가는 방향에서 련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습니다." (「신년사」, 1991년 1월 1일, 『김일성 저작집 43』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6], 13쪽)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해석하는 근거는 위에 옮겨 적은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 내용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김정일 총비서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관해서 김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위의 신년사 내용이 유일한 해석의 근거가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남(한국)에서는 6.15 남북공동선언에 들어있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각기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한 자의적 해석과 관련하여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첫째, 김정일 총비서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라는 개념을 6.15 남북공동선언에 포함시켰던 까닭은 기존의 연방제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 기존의 연방제안을 수정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한 민족적 합의를 보다 쉽게 이루기 위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어떤 새로운 연방제안으로 대체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은 대체방안이 아니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에 대한 합의를 더 쉽게 이끌어내기 위한 일시적인 협의방편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둘째,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나오는 지역자치정부라는 개념은 국가연합(또는 남북연합)의 두 단독정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를 뜻한다. 김일성 주석은 "련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고 말함으로써 국가연합 방식은 애초부터 일체 논하지 않았다.

셋째, 연방공화국의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는 말의 뜻은 중앙정부 보다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나오는 지역자치정부에 부여하는 권한 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 나오는 지역자치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에서 나오는 "더 많은 권한"이란 외교권과 군사권을 뜻한다. 연방공화국 안에 존재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정부가 이 권한을 어떻게 나누어서 보유·행사하느냐가 문제의 초점이다. 그런데 국가연합이란 그 자체가 국가가 아니므로 국가연합 방안에는 중앙정부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고 두 주권국가에 각기 존재하는 두 개의 단독정부만이 있을 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정부라는 개념은 오직 연방제 통일방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들이다. 우리는 김정일 총비서가 김 대통령에게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설명하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도 중앙정부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하였던 것을 주목해야 한다. (『월간조선』 2000년 8월호, 72쪽) 연방공화국 안에 존재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정부는 연방공화국의 외교권, 군사권을 적절한 범위와 수준으로 서로 나누어서 보유·행사하게 되지만, 국가연합에는 중앙정부란 존재할 수 없고, 다만 두 국가 안에 존재하는 단독정부들은 하나의 외교권, 군사권을 나누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제각기 독립된 외교권과 군사권을 별도로 보유·행사하게 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각기 독립된 두 주권국가의 국제관계로 만들어 분단체제를 영구히 결별시키려는 반통일정책을 강력하게 반대·배척해오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평양회담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 바 있다. 그의 생각은 회담 상대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절망적인 생각'이 들게 할만큼 강한 것이었다. 김 대통령은 6월 16일 서울에서 통일고문단과 만난 자리에서 평양회담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6.15 남북공동선언에 직접 서명하는 것을 거부한 때였다고 밝힌 바 있다. (『매일경제』 인터넷 기사 2000년 6월 18일자) 처음에 김정일 총비서는 6.15 남북공동선언에 서명을 하지 말고 그냥 발표하자고 하였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서명이 없는 공동선언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자, 그러면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과 임동원 국가정보원장이 서로 상부의 뜻을 받들어 서명하자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남과 북의 최고책임자가 회담을 해놓고 서명은 다른 사람이 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자, 김정일 총비서는 그러면 김정일과 김대중이라는 이름만 서명하고 직책을 적어 넣지 말자고 하였다고 한다. "이 순간 지칠 대로 지친 김 대통령은 암담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선언문을 발표할 생각이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다시 설득하였고, 결국 6.15 남북공동선언에는 지금과 같은 서명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황원탁 외교안보수석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마지막에 김 대통령에게 "전라도 고집 알아줘야 하겠습니다"고 말하며 서명하였다고 한다.

언론은 여기서 말을 멈추고 있지만, 우리는 김정일 총비서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완강하게 공식서명을 거부하려 했던 까닭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가 한(조선)반도에 현존하고 있는 두 개의 정치적 실체를 두 개의 주권국가로 상호인정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배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과 대한민국 대통령이 공식 서명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두 개의 나라이름과 그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직위를 명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남과 북의 정치적 실체를 두 개의 주권국가로 상호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행위가 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자신이 처음으로 공식 서명하는 역사적인 합의문서에, 그것도 다른 것이 아닌 통일문서에 두 개의 주권국가를 상호인정하는 서명이 들어가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북(조선)이 평양회담의 공식 명칭을 주권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정상회담이 아니라 최고위급회담이라는 특수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6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연방제는 군사권과 외교권을 중앙정부가 갖고 내정권은 지방정부가 갖는 것"이라고 하면서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박은 연방제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뜻한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서는 군사권과 외교권의 일정 부분을 지방자치정부가 보유·행사한다는 것인데, 김 대통령은 의도적이었는지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중요한 점을 말하지 않고 있다. 그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자신의 세 단계 통일안 가운데서 제1단계인 국가연합(또는 남북연합)이 "운영이 잘 되면 미국식 연방제처럼 군사·외교권은 중앙정부가 갖고 내정권은 지방정부가 갖는" 연방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도 부정확한 인식이다. 현재 미국에서 군사권과 외교권은 중앙연방정부만 보유·행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정부(주정부)들도 그 권한의 일부를 보유·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김 대통령은 알지 못하고 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건 높은 단계의 연방제건 모든 연방제는 군사권과 외교권을 중앙연방정부와 지방자치정부가 나누어 보유·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김 대통령이 상상하고 있는 연방제, 곧 군사권과 외교권을 모두 중앙의 연방정부가 보유·행사하는 그러한 의미의 연방제, 그래서 그의 말대로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강변하는 그런 연방제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는 존재할 수 없는 허구적 개념에 대해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빈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군사권과 외교권을 중앙연방정부와 지방자치정부가 각각 나누어 보유·행사하느냐 아니면 중앙연방정부만 독점적으로 보유·행사하느냐가 아니라, 연방제를 실현한 통일국가냐 아니면 국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각기 독립된 두 개의 나라냐 하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을 자꾸 비켜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통일방안을 논의하는 데서 일국론의 연방제안이냐 아니면 양국론의 연합제안이냐를 잣대로 삼아 통일론이냐 영구결별론이냐를 판가름해야 할 것이다.

(7) 맺음말

해내외 민족민주운동이 끈질기게 추구해오고 있는 4대 정치과제는 국가보안법 철폐, 조·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거, 연방제 통일 실현인데, 민족민주운동은 2000년 6월의 평양회담을 역사적인 전환점으로 하여 4대 정치과제를 칠천만 민족의 주체역량으로 이루어가는 실천과정에 이미 들어선 것이다. 한(조선)반도 정세의 질적 변화는 마침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삼천리 강산 위에 위대한 연방통일국을 수립하기까지 민족민주운동에 주어진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북(조선)의 2천2백만 인민은 남북관계 개선과 조·미 정치협상을 통해서, 남(한국)의 4천만 민중은 주한미군 철거운동을 벌이면서 주한미군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되돌려보내기 위한 민족의 단결된 정치역량을 발휘한다면, 미 국방부의 주한미군 철수 시나리오에 나타난 10-15년이라는 자진철수 기간설정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한(조선)반도 안팎의 수구파 반통일세력을 제압하고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시기를 앞당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칠천만 민족이 단결의 기치 아래 하나로 일치하여 전개하는 투쟁력에 달려있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약 10년. 우리는 이제 우리 모두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게 될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어디에 서있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열정을 바쳐 이루어놓아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21세기 통일시대는 한(조선)민족의 영웅적 혈통을 이어받은 민족민주운동의 일군들을 주한미군을 철거하고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영예로운 투쟁의 길로 소리쳐 부르고 있다. (2000년 8월 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