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평양회담 이야기 <2>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6.15 남북공동선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베를린선언은 통하지 않았다.

(3) 이제는 미국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1) 6.15 남북공동선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00년 6월 15일, 이날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가 남북최고당국자회담에서 마침내 남북공동선언을 채택발표한 날이다. 분단시대 55년 동안 남북 정부당국이 합의한 문서들이 있기는 있었지만, 남과 북의 최고당국자가 채택한 문서는 이번의 남북공동선언이 처음이다. 이것은 이 문서가 이전의 문서들과 달리 이행의 필연성을 확인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남과 북의 정부당국은 1994년 6월 남북최고당국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뒤로 여섯해 동안 이 역사적인 선언을 칠천만 겨레에게 안겨주기 위하여 그토록 하많은 위기와 갈등으로 얽룩진 우여곡절의 천리길을 걸어와야 했던 것이 아닌가.

6.15 남북공동선언, 그것은 칠천만 겨레의 끊어진 혈맥을 하나로 이어주어 자주적 평화통일을 기어이 실현하려는 강인한 의지와 뜨거운 염원으로 탄생된 것이다. 그것은 통일연방국 만세를 세계 만방에 외치게 될 영광과 승리의 그날까지 남과 북의 정부당국이 성실하게 지키고 실천해야 할 통일선언문이다.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기 위한 최고당국자회담은 무려 3시간5분이 걸린 길고 복잡한 논의를 거친 회담이었다. 의전관례상 국가원수들이 진행하는 정상회담은 보통 한 시간을 넘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정상회담을 하고 나서 실무진이 미리 합의해둔 사항을 추인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으며, 실무차원에서 합의되지 않은, 풀기 힘든 의제에 관하여 논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 평양회담은 달랐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는 무려 3시간이 넘도록 회담을 진행한 것이다. 회담장 밖에서 있었던 박준영 대변인은 "간혹 김 위원장이 웅변조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뭔가를 깊이 있게 설명하려고 했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전하는 말로 미루어보아서 이 회담은 주로 김정일 총비서가 이끌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 총비서는 이 회담이 평화회담이나 교류협력회담이 아니라 통일회담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을 것이고, 구체적으로 자주통일문제와 통일방안 합의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다.

중국의 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홍콩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지난 번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 주석에게 10-15년 안에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이루겠다는 자신의 구상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김정일 총비서가 자신의 통일실현구상을 추진하려면 통일방안을 합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기 위한 회담에서 김정일 총비서가 오랜 시간 동안 김대중 대통령에게 통일방안문제에 관련하여 설명하면서 결국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통일실현에 대한 그의 의지와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둘째날 만찬답사에서 "력사가 주는 기회는 언제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며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시간도 무한정으로 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통일을 미래형으로 볼 것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만들기 위하여 모든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같은 자리에서 먼저 만찬사를 하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냉전적 요소들을 말끔히 청산하고 남과 북이 우선 평화롭게 공존공영하자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칠천만 우리 민족이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는 통일로 향하는 가장 탄탄하고 효과적인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한 말에 대한 답변형식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은 평화적 공존을 주장하면서 통일은 그 뒤에 실현될 미래의 일로 보고 있는 반면에, 김영남 위원장은 통일실현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통일실현의 시급성과 절박성을 강조한 것이다. 남북공동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1) 평양회담의 성격을 통일회담으로 규정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첫날 백화원 영빈관으로 함께 간 김정일 총비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죠. 김 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 김 위원장은 왜 승낙했는지에 대한 의문부호입니다. 2박3일 동안 대답해줘야 합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대답'이란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합의하는 것을 뜻한다. 김정일 총비서의 이 말은 이번 회담을 통일회담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날 저녁에 있었던 환영만찬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만찬사를 통해 "분렬은 언제 끝장나겠는지, 통일은 또 언제 이룩되겠는지, 칠천만 겨레의 이 절박한 물음에 이제는 북과 남의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대답을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번 평양회담이 통일실현의 돌파구를 열어놓은 회담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남북공동선언은 그의 말대로 이번 평양회담의 성격을 통일회담으로 규정하였다. 이 선언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줄임)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표기함으로써 이번 평양회담의 성격이 조국통일을 위한 회담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남(한국) 정부당국은 이번 회담에서 조국통일문제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회피하려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5월 12일 법조계 인사들과 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어렵고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시간을 두고 더 협의해갈 문제"이며 "지금은 통일이 될 수도 없고 서두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주한외교단을 위한 야외다과회에서도 그는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없애고 평화공존하는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여기서 그가 "어렵고 심각한 문제"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문제다. 남(한국) 언론들은 이것을 '근본문제'라고 부르고 있다.

6월 14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공식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근본문제', 곧 김대중 대통령이 회피하고 있는 '어렵고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김영남 위원장은 "한미일 삼국 공조는 우리의 자주문제와 관계되어 있는데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대통령은 외세공조는 "북한에게도 유리하고 우리에게도 좋은 '윈-윈' 정책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엉뚱하게도 답변 아닌 답변으로 넘기고 말았다. 한미일 삼각공조가 북(조선)에게 유리하다는 말은 마소가 들어도 웃을 거짓말이다. '윈-윈 전략'은 미국의 군사전략인데, 지난 4월 19일 미 국가안보위원회가 국방장관 코언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이 전략이 냉전시대의 유물이므로 21세기의 국방전략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있다. 김대통령은 미국의 전략을 남북회담에서 꺼내놓으면서 한미일 삼국공조체제를 옹호두둔하려고 했지만 정작 '윈-윈 전략'의 용도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다는 정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의 현 정권을 포함해서 역대 정권들은 한결같이 7.4 남북공동성명에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에 대해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여왔다. 이번 회담이 조국통일을 위한 기초가 아니라 평화공존을 위한 기초를 놓는 이른바 평화회담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번 평양회담이 성사되기 전에 나왔던 남(한국) 언론보도는 김대중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을 채택하려고 한다고 지적한 바있었는데, 이것은 위의 사실을 입증해준 것이었다.

남(한국) 정부당국은 한(조선)반도의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 마치 전략목표인 것처럼 애써 강조하고 있지만, 평화는 평화통일의 전략목표 안에 포함되는 부차적, 종속적인 전술단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화통일을 실현해나가는 과정과 경로는 곧 정전체제로 존재하고 있는 한(조선)반도의 정치군사적 대결구도를 해체하고 참된 평화와 안정을 이루는 길이 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평화통일의 실현은 정치군사적 대결구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단 한 발도 진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정전체제의 해체와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은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사전단계로 자리잡아야 하며, 민족사 발전의 전략목표로 될 수는 없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 사이의 불가침선언을 채택함으로써 남북 정부당국 사이에서 공고한 평화체제를 실현하자는 공식합의는 이미 이루어졌다. 이번 평양회담에서 불가침선언을 되풀이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이번 평양회담의 성격을 '근본문제'에 관한 논의합의를 회피하는 평화회담이 아니라 '근본문제'를 논의하고 합의하는 통일회담이라고 규정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조치이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칠천만 겨레의 기대와 지향, 요구와 열망에 흡족한 응답이었다.

2) 자주통일의 대원칙을 천명하였다.

조국통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칠천만 민족의 자주적인 의사와 역량으로 추진되고 실현되어야 할 민족사 최대 위업이다. 이러한 자주통일의 대원칙은 누구도 훼손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이며, 어린애들도 능히 알 수 있는 진리 중의 진리다. 그런데도 남(한국) 정부당국은 자주통일의 대원칙을 논의하는 데 매우 인색하였을 뿐아니라, 자주통일문제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태도와 견해는 남(한국) 정부당국이 자주통일의 원칙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 경제문화적으로 미국과 일본이라는 두 강대국의 지배력에 압도편입되어 그들이 동북아시아에서 추구하고 있는 전략적 이익을 추종할 수 밖에 없는 사실상의 속국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조선)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한(조선)반도가 통일되는 것은 곧 남(한국)이 저들의 지배구도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주독립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뜻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남(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지배구도에서 벗어나서 자주독립을 실현하는 길이며, 따라서 한(조선)반도 통일의 기본성격은 어디까지나 자주통일이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남북공동선언의 제1항은 자주통일의 대원칙을 가장 정확한 개념으로 천명하고 있다.

첫째, "나라의 통일문제"의 "주인"이 우리 민족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조국통일의 주체가 우리 민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둘째,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지난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중국을 비공식방문하였을 때 장쩌민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조선의 통일문제는 조선사람끼리 해결해야 한다"고 확인하였다는 사실을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신화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과 중국의 두 정상은 회담에서 "중국은 조선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지지"하며, "조선은 중국의 대만정책을 지지한다"고 상호합의했다고 한다.

자주통일의 문제는 결국 민족자주역량을 하나로 엮어내는 가장 중대한 정치문제인데, 남북공동선언은 바로 이 민족자주역량의 단결이라는 과업을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라는 표현에 담아 명시적으로 밝혀주었다.

남북공동선언에서 자주통일의 대원칙이 채택됨으로써 남북해외 민족대단결운동이 자주적 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벌여오고 있는 반미자주화운동, 주한미군철수운동은 그 정당성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게 되었다. 반면에 남(한국) 정부당국은 남북공동선언에서 자주통일의 대원칙을 반미자주화문제나 주한미군철수문제와는 완전히 분리시키고 있지만,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과 주한미군이 자주통일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는 근본장애라는 사실은 민족대단결운동의 투쟁을 통하여 남(한국) 사회에서 차츰 인식의 폭을 넓혀갈 것이다.

3)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길을 터놓았다.

7.4 남북공동성명은 조국통일 3대 원칙을 합의한 강령적 문건이다. 지금까지 남과 북의 정부당국은 통일의 원칙은 합의하였지만 그 원칙을 구현할 구체적인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잘 알려져 있는대로, 남(한국) 정부당국은 국가연합 건설방안을 주장해왔으며, 북(조선) 정부당국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해왔다. 이 두 방안은 서로 충돌하고 대립해왔다.

그런데 남북공동선언은 놀랍게도 이 두 방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였다. 두 방안의 공통성이란 구체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말한다. 남측의 국가연합 건설방안을 "나라의 통일을 위한 (국가)연합제안"이라고 규정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남측의 국가연합 건설방안에서 '국가'라는 개념을 빼고 그저 연합이라고 표현한 것도 눈여겨 보야야 할 부분이다. 또한 '연합제안'이라는 말 앞에 "나라의 통일을 위한"이라는 규정을 달아놓음으로써 그것이 영구분열을 위한 방안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하였다. '국가연합'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선언문에 포함시키지 않고 '연합'이라고 표현한 것은, 북(조선)이 그 개념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연합이라는 양국론으로 연결되는 것을 극력 피하려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공동선언에는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이 방향"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그것은 국가연합 건설방안과 연방제 통일방안의 공통성을 구현하는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간다는 뜻이다. 원래 이 두 방안 사이에는 상호용납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국가연합 건설방안은 양국론의 기초 위에 서있는 반면에 연방제 통일방안은 일국론의 기초 위에 서있다. 양국론과 일국론이라는 근본적인 차이를 접어두고 이 두 방안 사이의 공통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단계적, 점진적으로 통일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북공동선언이 말하고 있는 것은, 통일을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실현해나간다는 공통성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이 선언이 채택된 뒤로 이제부터 남(한국) 사회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은 공명정대한 통일방안으로 공인되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 동안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하는 통일운동조직이나 인사들은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정치적인 탄압을 받거나 사회적으로 친북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그런 암울한 시대를 지나가게 된 것이다. 통일방안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며, 민족대단결운동은 연방제 통일방안의 정당성과 합리성, 그리고 실현불가피성을 널리 전파해야 할 임무를 지니게 된 것이다. 커다란 변화라 아니 할 수 없다.

4) 이산가족문제와 비전향 장기수 송환문제를 동시적으로 해결하였다.

지금까지 남(한국)의 역대 정권들이 그래왔지만, 김대중 정권도 역시 이산가족문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조금도 다를 바없다. 남(한국) 정부당국이 이산가족문제에 집착하는 까닭은, 그것을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과제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산가족의 상봉과 교류를 추진하고 확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북(조선)을 개방과 변화로 유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국)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은 북(조선)을 버리고 떠나온 월남자 1세들로서 반공반북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므로, 이들이 북(조선)의 가족들과 상봉교신하는 것은 북(조선)에게는 불리하고 남(한국)에게는 유리하다는 것이 남(한국) 정부당국의 판단이다.

남(한국) 정부당국이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토록 적극적이라면 월남자 이산가족 뿐아니라 월북자 이산가족의 한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남(한국) 사회에서 분단의 고통은 월남자 이산가족보다도 월북자 이산가족에게 더 집중적으로 강요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월북자 가족이라는 사실조차도 밝히지 못하고 온갖 법적, 제도적 억압과 사회적 소외를 당하며 통한의 세월을 살아오고 있다.

남북공동선언은 이산가족문제와 비전향 장기수 송환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합의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올해 8.15에 즈음하여"라고 적음으로써 그 해결시점이 올해 8월 15일이 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올해 8월 15일의 범민족통일대축전에는 비전향 장기수 어른들을 북으로 환송하는 행사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5) 민족경제발전을 위한 경제협력과 상호신뢰증진을 위한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을 합의하였다.

경제협력과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채택된 것인데, 이번에 재확인한 것이므로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행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남북공동선언은 남북 사이의 경제협력의 목적을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으며,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는 남과 북의 "신뢰를 다져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경제협력이나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이 상대방의 체제를 변질시키려는 의도나 목적에서 추진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백하게 규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경제협력과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은 남(한국) 정부당국이 주장하고 요구해온 것이지만, 북(조선) 정부당국도 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북(조선) 정부당국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에 관한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단지 교류협력문제만 추진하려고 하는 견해와 주장을 반대하였던 것이다.

6) 정부당국 사이의 대화를 계속 추진하기로 약속하였다.

남북공동선언은 합의사항을 '선언문' 형식으로 담은 문서다. 그런 까닭에 구체적인 이행과 관련하여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은 나중에 각 분야별로 책임적인 정부당국자들 사이의 대화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 정부당국 사이에서 대화를 개최하기로 약속한 것은 후속실무회담을 통하여 남북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구체화하고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후속실무회담에는 남북공동선언 제2항에 천명된 남북 정부당국이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회담도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조국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후속회담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고위급 정치회담이 열리게 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정부당국 차원에서 통일방안을 합의하는 회담이 진행되는 것과 발맞추어 남북해외의 민족대단결운동도 이제 민간차원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더 깊이 논의하고 실천하기 위한 전민족적 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7)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에 열린 남북최고당국자회담은 한 차례로 끝나는 일과성 회담이 아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적절한 시기"는 구체적으로 언제쯤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조선로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게 될 올해 10월 10일 이전이 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중국의 한 외교소식통이 한 말을 인용한 남(한국)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오는 8월 15일 서울을 방문하여 제2차 남북최고당국자회담을 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장쩌민 주석과 만남 조중 정상회담에서 8월 15일의 서울방문 계획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만일 이 보도대로라면, 월남자 이산가족의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이 성사되는 때에 맞춰, 그리고 서울과 평양에서 범민족통일대축전이 성대하게 열리는 때에 맞춰 김정일 총비서의 서울방문이 이루어지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김정일 총비서는 조국통일의 열기 속에서 남(한국) 사천만 동포들의 환영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2) 베를린선언은 통하지 않았다

남(한국) 정부당국은 이번 평양회담이 지난 3월 9일에 나왔던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에 의해서 성사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베를린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이 주장해오고 있는 햇볕정책을 구체적인 선언문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베를린선언은 남북경제협력 추진, 냉전종식과 평화정착, 이산가족문제 해결, 남북특사교환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3월 13일 뉴욕에서 열린 조미 고위급회담에서 북(조선) 회담대표에게 베를린선언에 대해 긍정적으로 호응하라고 촉구한 바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추종하여 수립된 것이기 때문에 베를린선언에 대한 태도가 이처럼 일치된 것으로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베를린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의 독자적인 구상에 의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대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한국) 정부당국과 미국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베를린선언에서 천명된 내용을 관철하려고 하였던 것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 평양회담에서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는 과정은 결국 미국과 남(한국) 정부당국의 포용정책과 김정일 총비서의 통일전략이 서로 맞붙은 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채택된 남북공동선언이 베를린선언과는 매우 다른 내용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베를린선언에서 가장 중요하게 제기된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에 관한 내용은 일체 들어가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베를린선언에서 "우리의 당면목표는 통일보다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이라고 말했지만, 이번 남북공동선언은 자주통일의 대원칙을 천명하고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약속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남북공동선언은 베를린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었던 남북경제협력문제와 그 밖의 여러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추진한다는 합의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러한 내용은 '근본문제' 즉 통일실현의 자주화와 통일방안의 합의라는 내용 뒤에 배치되어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 한 것으로 되었다. 다른 한편, 베를린선언에서 제기된 이산가족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와 함께 주고 받는 식으로 합의되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보자면, 베를린선언의 내용을 이번 평양회담에서 관철시키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교류협력문제는 물론, '근본문제'까지 합의하는 것을 이번 평양회담에서 관철시키겠다고 했던 김정일 총비서의 생각이 주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3) 이제는 미국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미국은 남북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여야 미국과 북(조선) 사이의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남(한국)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북(조선)에 대한 포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실질적 당사자인데도, 한(조선)반도 문제는 남북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변해오면서 미국 자신이 한(조선)반도 문제에 개입·간섭·지배하고 있는 것을 교묘하게 은폐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미국이 그렇게도 주장하고 요구해왔던 남북 당사자 사이의 대화가 실현된 것이다. 그저 실현되었다고 표현해서는 안되고 칠천만 겨레의 열렬한 환영과 성원, 그리고 전세계 인류의 깊은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내었다고 표현해야 정확하다.

그러므로 이제는 미국이 조미 사이의 현안문제와 관련하여 성실하게 응답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남북당사자 해결원칙을 들먹이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거나 시간을 질질 끌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이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하는 것은, 이미 파기되어 버린 정전협정을 조미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베를린선언에서 주장했던 한(조선)반도의 평화정착을 실현하는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대한 일이다. 이번에 로마에서 열린 조미 고위급 회담에서 무슨 합의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 해 페리보고서를 통해 조미 평화공존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면 시간을 끌지 말고 조미 평화협정을 채택하면 될 것이다.

조미 평화협정을 채택하면 북(조선)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미국의 심장부를 위협하고 있는 대량보복위협에서 미국이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국면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조선)반도의 평화정착을 요구하는 칠천만 겨레의 이익에 부합되는 일이며,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되는 일이다.

올해 6월 25일은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워싱턴에서는 이날을 기념하여 국가적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행사는 미국이 이 전쟁에서 입은 상처를 씻고 한(조선)반도에 드리운 전쟁위험을 가시게 하고 미국이 북(조선)의 대량보복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는 7월에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평양을 방문하는 일정이 잡혀져 있다. 클린턴은 국가미사일방위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푸틴과 만난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와 맺은 미사일협정을 개정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체제는 러시아와 중국의 강한 반대 때문에 곤경에 처해 있다. 지금 미국 안에서도 이 구축계획이 기술적 실효성이 없는 예산낭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은 북(조선)의 미사일 위협을 구실로 삼으면서 국가미사일방위체제를 구축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이것은 안팎의 강한 반대 때문에 실현되기 힘들다.

그런데 미국이 만일 조미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조미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조선)의 대량보복위협이 사라지게 되고, 또한 국가미사일방위체제 구축과 관련하여 러시아와 중국과 빚고 있는 마찰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미국이 조미 평화협정 체결로 응답해야 한다. 당면정세는 클린턴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2000년 6월 1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