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평양회담 이야기 <1>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차 례 >

(1) 민족에게 감동과 확신을, 인류에게 희망과 경탄을 안겨준 그날

(2) 옹졸했던 동독의 지도자와 평양의 대범한 지도자

(3) '전투복'을 입은 김정일 총비서

(4)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1) 민족에게 감동과 확신을, 인류에게 희망과 경탄을 안겨준 그날

2000년 6월 13일, 마침내 남과 북의 최고당국자가 두 손을 맞잡은 광경이 영상전파에 실려 삼천리 강산 방방곡곡으로 세계 만방으로 전해졌다. 반만년 민족사도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그 감격의 순간을 지켜보았다.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그것은 칠천만 겨레의 심장을 고동쳐 울린 깊은 감동이었다. 우리 민족도 이제는 분단의 통한을 씻고 다시 하나로 만날 수 있다는 역사의 진리를 확인하는 순간에 터져오르는 감동, 바로 그것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민족을 짓누르고 괴롭혀온 분열과 대립의 검은 구름을 걷어내고 화해와 단결의 햇살 아래서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동족으로 넉넉히 만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에 솟구쳐오르는 감동, 바로 그것이었다. 조국의 푸른 산천도 평양의 하늘 아래 울려퍼진 감동의 대서사시를 길이 기억하리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의 만남. 그 만남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산주의 혁명운동의 지도자와 저명한 자본주의 정치인의 만남이 아닌가. 힘들고 어렵게만 생각되었던, 아니 도저히 만날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었던 만남이 참으로 기적 같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역사적인 만남은 공산주의 혁명운동의 지도자와 자본주의 정치인이 사상과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한 핏줄로 손을 맞잡을 수 있음을 세상에 당당히 선포한 대사건이었다. 그것은 칠천만 민족이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넘어서서 화해와 단결을 이룰 때 능히 자주와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제낄 수 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한 편의 장쾌한 화폭이었다.

그 만남은 인류에게 희망과 경탄을 안겨준 만남이었다. 그것을 이 지구 위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땅에서 평화의 기운이 살아나고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세계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세기적 대사건이 눈앞에 환상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역사의 대전환은 경이롭고 황홀하다. 그것은 신묘하고 충격적이다. 이처럼 경이롭고 신묘한 대전환기에 들어선 칠천만 민족은 자기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내면서 얼어붙은 분단장벽을 민족애의 힘으로 조용히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칠천만 민족의 마음에는 확신이 섰다.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고 힘과 슬기를 모으면 능히 자주적이고 평화로운 통일연방국을 세울 수 있다는 확신이다. 우리도 머지 않은 장래에 남 부럽지 않게 통일시대를 열어 자주강국, 경제부국, 문화대국을 이 강토 위에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2) 동독의 옹졸했던 지도자와 평양의 대범한 지도자

평양 하늘 아래 펼쳐진 이날의 경이로운 화폭에서 특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예상과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김대중 대통령이 참으로 극진하고 융숭한 영접을 받은 것이었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려진대로, 김정일 총비서는 친히 공항에 영접을 나와 최상의 예를 갖추어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하였다. 의전관례 상 국가원수가 공항까지 직접 영접을 나오는 일은 없다. 이것은 의전관례의 격식을 뛰어넘은, 김정일 총비서만이 할 수 있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조명록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홍성남 총리를 비롯한 당정군을 대표하는 고위인사들이 따뜻이 맞이하는 가운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조선인민군 육해공군 의장대의 사열까지 받았다. 두 화동이 김대중 대통령과 영부인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김정일 총비서는 그 광경을 옆에서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손뼉을 치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났다. 공항에서 환영행사를 마친 뒤에 김정일 총비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승용차에 함께 타고 백화원 영빈관에 이르렀다. 의전관례에 따르면, 화동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에게 꽃다발을 드리게 되어있는데, 김정일 총비서는 그러한 격식을 과감하게 뛰어넘어 김대중 대통령 내외에게만 꽃다발을 드리도록 한 것이다. 또한 공항에서 영접행사를 마친 뒤에는 각각 다른 승용차편으로 떠나서 손님은 숙소로 향하게 되며, 공식만찬이 베풀어지는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 의전관례인데도, 김정일 총비서는 그런 격식 따위는 과감하게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현장에서 생중계로 나오는 이 장면을 신선한 충격 속에 지켜보면서 해설을 하던 케이비에스 방송원은 "인덕정치, 광폭정치"라는 말로 김정일 총비서의 파격적인 영접이 주는 의미를 풀이하여 눈길을 끌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김정일 총비서의 이와같은 의전관례와 격식을 뛰어넘은 영접은 김대중 대통령을 외국의 국가원수 ?대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통일위업을 함께 풀어갈 남녘 사천만 동포의 대표자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청와대 대변인이 현지에서 기자들에게 밝힌 바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그 승용차 안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동포애의 정이 넘치는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약 40분 동안 이어진 승용차 속의 단독대담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그가 잠깐 밝힌 바에 따르면 김정일 총비서는 지금으로부터 꼭 여섯해전인 1994년 6월 김일성 주석이 평양회담을 어떤 심정에서 어떻게 준비하였는지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번 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이루는 회담이라는 점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의전관례와 격식을 완전히 뛰어넘은 영접. 그리고 평양 시내를 뒤덮은 60만 인파의 열렬한 환영물결 속에서 울려나오며 하늘땅을 뒤흔든 만세의 환호성. 북(조선) 역사에서 그 어떤 방문자도 이토록 뜨거운 환영을 받은 적이 없었다. 거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환영하는 의미를 넘어 남녘의 사천만 동포들에게 보내는 김정일 총비서의 마음이 어려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만나 역사적인 평양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기어이 실현하려는 김정일 총비서의 의지와 결심이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처럼 의전관례와 격식을 완전히 뛰어넘으면서 뜨겁게 환영하는 분위기였으므로 미리 준비해간 도착성명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백화원 영빈관에 들어가서 청와대 대변인이 대독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말았다.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70년 3월 동독의 조그만 국경도시에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와 동독 서기장 슈토프가 역사상 처음으로 동서독 정상회담을 열었을 때, 환영인파도 의장대 사열도 없이 기차역에서 내려서 동독땅을 밟던 브란트의 모습은 쓸쓸했다. 동독의 군악대는 일부러 동독 국가를 연주함으로써 동독이 별개의 주권국가임을 부각시키려고 애썼다. 동독의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허약한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느라고 서독이 제안한 협상자리에서 언제나 동독을 별개의 국가로 승인하라는 궁색한 요구를 되풀이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통일을 떠맡을 역량도 의지도 열정도 없었으며, 통일의 길을 밝혀줄 사상도 이론도 전략전술도 없었다. 그런 까닭에 서독과의 만남에서 언제나 자신이 없었고, 따라서 옹졸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정이었으므로 동서독 정상회담이 제대로 풀려나갈 리 없었다. 독일민족은 통일회담의 물꼬를 텄던 브란트 이후 슈미트와 콜로 이어지는 20년 정권교체의 세월 내내 분단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독일민족이 정상회담을 가진 뒤로 무려 20년이나 되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허약한 동독체제가 내부에서 와해되는 바람에 겨우 통합을 실현할 수 있었던 근본원인은, 통일주체의 역량과 의지, 사상과 전략이 결핍되었다는 데 있었다. 이것은 분단된 독일민족이 겪어야 했던 커다란 비극이었다.

같은 사회주의의 길을 걸어왔던 지도자들이었어도 동독의 지도자들과 김정일 총비서는 그렇게 다르다. 동독의 지도자들과 김정일 총비서 사이에서 돋보이는 옹졸함과 대범함의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것은 통일을 이끌어갈 사상이론과 전략전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본질적인 문제이며, 통일을 실현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신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에서 오는 근본문제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이 준비되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독일민족과 다르다. 칠천만 민족의 통일의지는 독일민족과는 견주지 못할 만큼 더 강하다. 이것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뚜렷이 입증되었으며 세계 인류 앞에 공인 받은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한(조선)반도에서 통일이 실현되어가는 경로뉘떫뗌球适렝?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놓고 수없이 협상을 거듭하면서도 20년이나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한 쪽이 와해됨으로써 통일이 아니라 통합의 길로 나아갔던 경로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조국통일위업을 위해 힘과 슬기로 안팎의 난관과 역경을 헤쳐가는 민족은 위대하다. 본시 하나로 통했던 민족의 혈맥을 다시 하나로 잇기 위해 투쟁하는 민족의 열정과 의지는 아름답고 고귀하다. 통일의 의지와 신념과 열정을 가진 민족과 뭍윷의 지도자는 통일위업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해도 반드시 자기의 뜻과 힘으로 이루어내고야 말 것이다. 역사적인 평양회담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3) '전투복'을 입은 김정일 총비서

이번의 평양회담에서 세상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을 끄는 것은, 김정일 총비서가 처음으로 생중계되는 영상전파를 통해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김정일 총비서는 외부언론에 자신의 모습을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초강대국 미국의 5년 총공세와 혹심한 자연재해의 역풍에 당당히 맞서 나라를 지켜냈으며, 다시 강력한 역공을 퍼부어 결국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략을 뒤바꾸어놓은 그는 과연 어떤 지도자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해갔다.

지난 시기 한때 서방세계의 언론들은 그를 '은둔의 지도자'로 오해하기도 했으며, '건강이상설'이니 '대인기피증'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억측과 모략이 난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온갖 억측과 모략이 만들어놓은 거짓신화는 이번 평양회담으로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김정일 총비서는 남북최고당국자회담이라는 세기적인 대사건을 통하여 칠천만 민족 앞에 통일의 지도자로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60억 인류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생중계되는 텔레비전 영상에 비친 김정일 총비서는 건강하였으며, 활달한 손짓을 하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은 그가 입고 있는 수수한 갈색옷에 머물게 된다. 칠천만 겨레와 60억 인류가 지켜보는 역사의 현장에 모습을 나타낸 그는 참으로 놀랍게도 간편복을 입은 지도자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이날 역사의 현장에 나온 북(조선)의 당과 국가기관의 고위간부들이 많았는데 한결같이 양복 정장(제낀깃 양복) 차림이었지 간편복을 입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오로지 김정일 총비서만이 평소에 입는 수수한 갈색 간편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왜 역사적인 날에도 평소처럼 그 옷을 입어야 했을까?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1984년까지만 해도 김일성 주석은 언제나 닫긴깃 양복만을 입었다. 북(조선)에서는 그 옷을 '전투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보통사람들이 입는 평범한 옷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해 여름 김정일 총비서는 외국 방문길에 오르는 김일성 주석이 양복 정장이 아니라 평소처럼 닫긴깃 양복을 입고 떠나는 것을 본 뒤에, 서양식 양복 정장 한 벌을 마련하여 김 주석이 귀국한 뒤에 앞으로는 그 양복 정장을 입으시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은 "인민들을 위해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에게는 몸에 배인 <전투복>이 좋습니다"고 말하면서 입던 옷을 그대로 입겠노라고 하였다. 그때 김정일 총비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수령님을 대신하여 한평생 <전투복>을 입고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겠습니다. 그러니 수령님께서만은 부디 제낀깃 양복에 넥타이를 매시고 쉬염쉬염 일하셔야 합니다. 저는 전체 인민들의 마음을 담아 수령님께서 제낀깃 양복에 넥타이를 매시고 쉬염쉬염 일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로동신문』』 1996년 9월 4일자)

그날부터 오늘까지 14년 동안 김정일 총비서는 '전투복'을 단 하루도 벗지 않았다. 이번에 중국 방문길에 나설 때도 그 옷 그대로였다. 아마도 김일성 주석 앞에서 한 약속이므로 그의 조국통일유훈을 이루어 한(조선)반도 통일의 그날까지 수수한 갈색의 '전투복'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수한 옷차림과 머리모양새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소탈하며 솔직담백한, 아주 서민적 풍모의 지도자라고 했던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북(조선)의 자료에 따르면, 그는 인민들 속에서 인민을 위하여 일하는 지도자라고 한다. "인민들이 바란다면 돌 우에도 꽃을 피워야 한다"고 한 말이나 "휴식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책이나 문건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지에 나가 인민들을 만나보는 것"이라고 한 말에는 그의 인민관이 잘 나타나있다. (『로동신문』 1999년 3월 10일자) 그는 당과 국가기관의 간부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30여년동안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후대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였습니다. 나는 수십년동안 하루에 2-3시간 밖에 자지 않고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인민을 하늘처럼 믿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려고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13일자, 8월 30일자)

1998년 10월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던 시기 김정일 총비서는 자강도를 현지지도하였다. 그가 자강도 희천시에 있는 희천려관을 방문했을 때 그곳 일군들은 지성 어린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김정일 총비서는 "오늘은 식사를 하지 않겠다. 앞으로 인민들이 다 잘 살게 되었을 때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로동신문』 1999년 3월 10일자) 당과 국가기관의 고위관리들은 때로 외국의 사절들을 접대하는 외교행사나 국가 경축일에 양복 정장을 차려입고 만찬장에 나서지만, 김정일 총비서는 수수한 갈색 '전투복'을 입고 때로 죽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거나,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인적 드문 산길에서 죽과 김치마저 없을 때는 건빵이나 줴기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간다고 한다. 그는 자기에게 정성이 담긴 음식을 대접하려고 애쓰는 수행원들에게 "인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만류하면서 그날도 승용차 안에서 줴기밥으로 식사를 하였다. (『로동신문』 1999년 11월 21일자, 통일신보 1999년 10월 30일자) 1998년 10월 자강도를 현지지도하던 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점심때가 되자 김정일 총비서는 수행원들과 허물 없이 한 자리에 앉으면서 "빵이나 좀 들여와 간단히 요기나 하자"고 하였다. 식탁 위에는 "남새로 속을 넣어 만든 몇 개의 강냉이가루빵과 남새장국이 매 사람당 차례지게 놓였다." 수행원들이 그 빈약한 음식 앞에서 선뜻 수저를 들지 못하자 김정일 총비서는 "인민들이 강냉이가루와 장국으로 끼니를 에우면 우리도 강냉이가루와 장국으로 끼니를 에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수저를 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감동의 눈물을 글썽이며 점심을 먹어야 했다고 한다. (『로동신문』 2000년 1월 16일자)

(4)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김정일 총비서를 만났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간간이 들려오던 그의 풍모에 관한 소문 가운데는 그가 시원시원하고 통이 큰 지도자라고 하는 소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이번에 평양회담이 의전관례 따위를 아예 걷어치우고 따스한 동포애를 느낄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라든지, 60만명 북녘 동포들을 동원하여 성대하게 준비된 것을 보아도 그의 풍모에 관한 소문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과 국가기관의 간부들에게 언제나 "언제나 통이 크게 판을 벌리고 처음부터 높은 목표를 내걸어야 기백있게 일할 수 있다"고 하면서 "혁명적인 일본새를 가지고 언제나 잡도리가 크게 궁리하고 설계하며 일단 설정된 목표는 패기 있게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고 한다. (『로동신문』 1998년 12월 9일자)

『로동신문』에는 김정일 총비서의 풍모와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말이 자주 실리곤 한다. 이를테면, "사업에서 주저하지 말고 모든 사업을 대담하고 통이 크게 벌려나가야 하겠습니다. (『로동신문』 1999년 5월 28일자) 무슨 일을 하든지 대담하게 달라붙어 판을 크게 벌려야지 오물쪼물하여서는 일자리를 내지 못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5월 29일자) 무슨 일을 하나 조직하여도 모가 나고 패기있게 조직하며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일단 시작한 다음에는 끝장을 볼 때까지 전투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9월 30일자) 일단 목표를 내건 다음에는 오물쪼물하지 말고 그것을 대담하고 패기있게 내밀어 끝까지 해제껴야 합니다. (『로동신문』 1999년 6월 9일자) 통이 크게 궁리하고 높은 목표를 내걸어야 제기된 과업을 혁명적으로 해제낄 수 있으며 일하는 보람이 있습니다"(『로동신문』 1999년 9월 7일자)고 한 말은 그의 풍모와 성품을 잘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몇해 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김정일 총비서의 접견을 받고 서울에 돌아가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김정일 총비서에게서 받은 인상을 물었을 때,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예절 있는 태도에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 평양회담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그러한 인상은 사실이었다. 어제 영상전파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김정일 총비서의 음성은 확성기 없이도 넓은 방을 울리는 듯한 우렁우렁한 목소리였으며, 정열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모습이었다. 또한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영부인을 아주 예의 바른 태도로 대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정열적인 풍모와 예의 바른 태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지도자라고 하는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2000년 6월 13일 작성)